방광반야경(放光般若經) 제1권
서진(西晉) 우전국(于闐國) 무라차(無羅叉) 한역
1. 방광품(放光品)
이와 같이 들었다.
한때 부처님께서 나열기(羅閱祇) 기사굴산(耆闍崛山)에서 큰 비구 5천 인과 함께 계셨다. 그들은 모두 아라한으로 모든 번뇌[漏]가 이미 다했고, 의식상의 해탈[意解]에는 더러움[垢]이 없었으며, 온갖 지혜가 자재하여 이미 모든 일을 알았다. 비유하면 큰 용과 같아서 할 바를 이미 하였고, 무거운 짐을 여의었으며, 원하는 바를 체득하였다. 세 곳[三處]에서 이미 번뇌가 다했으며 바른 이해[正解:깨달음]로 이미 해탈하였다. 다시 5백 비구니와 모든 우바새․우바이가 있었다. 모든 보살마하살들이 있었는데, 이들은 이미 다린니(陀隣尼:다라니)와 공행삼매와 무상(無相)과 무원장(無願藏)을 얻었고, 이미 평등한 인[等忍]을 얻었으며, 걸림이 없는 다린니문을 얻었다. 모두 다섯 가지 신통력[五通]을 갖추었으며, 하는 말은 부드러우면서도 게으름이 없고, 이미 이익 쫓는 것을 버려서 바라는 바가 없으며, 심오한 법인(法忍)에 이르렀으며 정진하는 힘을 얻었다. 이미 마군의 소행을 초월하였고 사지(死地)를 건넜다. 그 가르침은 차례로 아승기겁을 지나되, 근본의 소행을 따르며, 할 바를 잊지 않았고 안색은 화기애애하였다. 항상 먼저 겸손하고 공경하여 말이 거칠지 않았으며, 대중들 가운데서도 생각할 바를 구족하여 무수한 겁 동안 교화(敎化)를 맡을 수 있었다. 일체는 허깨비[幻]와 같고 꿈과 같고 메아리와 같고 빛과 같고 그림자와 같고 변화[化]와 같고 물거품[泡]과 같고 거울 속에 비친 모습과 같고, 뜨거울 때의 불꽃과 같고 물 위에 비친 달과 같다고 말씀하셨으니, 항상 이 법으로 모든 것을 깨달았다. 또한 중생의 뜻이 나아가는 바를 능히 미묘한 지혜로 알아서 그 근본행을 따라 모두 제도하여 해탈하게 하였고 뜻에 걸림이 없었으며 인(忍)을 구족하여 지녔고 들어가는 바도 자세히 알았으며, 무수하고 무량한 불국토들을 섭수하기를 원하였고 한량없는 모든 부처님들께서 행하신 삼매가 모두 앞에 드러나기를 원하였다. 모든 부처님께 일체를 위해 설법을 하시기를 능히 청하고, 갖가지 모든 소견에 집착함을 여의고 이미 백천 삼매에 노닐어서 스스로 즐거워하였다.
모든 보살들의 덕이 모두 이와 같았는데, 그 이름은 호제계(護諸繫)보살․보래(寶來)보살․도사(導師)보살․용시(龍施)보살․소수즉능설(所受則能說)보살․우천(雨天)보살․천왕(天王)보살․현호(賢護)보살․묘의(妙意)보살․유지의(有持意)보살․증익의(增益意)보살․현무치(現無癡)보살․선발(善發)보살․과보(過步)보살․상응(常應)보살․불치원(不置遠)보살․회일장(懷日藏)보살․의불결감(意不缺減)보살․현음성(現音聲)보살․애아위(哀雅威)보살․보인수(寶印手)보살․상거수(常擧手)보살․자씨(慈氏)보살 등이었다. 나머지 억 나술(那術) 백천 보살들이 함께 있었는데, 모두 보처(補處)에 상응하는 존귀한 지위에 있는 이들이었다. 다시 무앙수(無央數) 억백천의 다른 보살들과 모든 존자(尊者)들이 모두 빠짐없이 이 모임에 왔다.
그때 세존께서는 몸소 높이 자리를 펴고 가부좌하시고 바로 정의삼매(定意三昧)에 드셨다. 그 삼매는 삼매의 왕이라고 이름하는데, 일체의 삼매가 모두 그 가운데 들어가니, 이 삼매에 들어 천안(天眼)으로 세계를 친히 관하셨다. 그때 세존께서 발 아래 천 개의 바퀴에서 광명을 놓으시니, 종아리에서부터 배를 거쳐 위로는 육계(肉髻)에 이르기까지 몸의 마디마디 곳곳에서 각각 60억 백천 광명을 놓으셨다. 삼천대천국토를 모두 비추고 두루하지 않음이 없었으니, 그 광명은 다시 동방․서방․남방․북방과 네 간방[四維]․상하를 비추었다. 갠지스강의 모래 수처럼 많은 모든 불국토의 중생들로서 그 광명을 보는 자는 마침내 뜻이 견고해져서 모두 위없는 바르고 참된 도[無上正眞道: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뜻을 발하였다. 그때 세존께서 다시 몸의 하나하나의 털구멍에서 다 광명을 놓아 다시 삼천대천국토를 비추셨다. 다시 시방의 무수한 갠지스강의 모래 수처럼 많은 국토를 비추셨다. 이 광명을 본 모든 중생들은 마침내 뜻을 세워 위없는 바르고 참된 도의 마음을 발하게 되었다. 세존께서는 다시 모든 여래ㆍ무소착(無所着)ㆍ등정각(等正覺)의 법으로써 대광명을 놓으시어 모든 삼천대천국토에 두루하게 하시고, 다시 시방의 무수한 갠지스강의 모래 수처럼 많은 국토를 비추시니, 광명을 본 모든 중생들이 또한 마침내 위없는 바르고 참된 도의 뜻을 발하게 되었다.
그때 세존께서 넓고 긴 혀[廣長舌]를 드러내어 삼천대천국토에 두루하게 하셨다. 두루하신 뒤에 그 설근(舌根)으로부터 다시 무수한 억백천 광명을 내시니, 그 하나하나의 광명이 변하여 천 잎[千葉]의 보화(寶華)가 되었으며 그 색은 금과 같았다. 하나하나의 꽃 위에는 모두 부처님께서 앉아 계셨고, 한 분 한 분의 모든 부처님께서는 6도무극(度無極:6바라밀)을 설하셨다. 그 설법을 들은 모든 중생들은 모두 위없는 바르고 참된 도의 뜻을 발하게 되었다.
그 설(舌) 광명의 하나하나 꽃[華像]에서 다시 시방의 갠지스강의 모래 수처럼 많은 국토를 비추었다. 그 광명을 보고 설법을 들은 모든 중생들 또한 위없는 바르고 참된 도의 뜻을 발하였다. 이때 세존께서 사자좌삼매(師子座三昧)에 드셨는데 그 삼매는 사자유희(師子遊戱)라고 이름하였다. 몸에서 신족(神足)을 놓으시니, 삼천대천국토가 감동을 하고 여섯 갈래로 진동하였다. 이 삼매의 위신력으로 삼천대천국토의 땅이 모두 부드러워지고 비스듬해지고 함몰하고 솟았다. 모든 지옥과 아귀와 꿈틀거리는 곤충류와 8난(難)이 있는 곳까지 모두 해탈하여 천상 사람들 가운데 태어나게 되어 제6천(第六天:他化自在天)과 같아졌다. 마침내 천상 사람들 가운데 태어나서는 모두 크게 기뻐하면서, 곧 숙명(宿命)을 알게 되고 부처님 처소에 나아가서 머리를 조아려 법을 받았다. 이와 같이 시방의 갠지스강의 모래 수처럼 많은 국토들의 모든 3악취(惡趣)와 8난이 있는 곳에서도 역시 고통을 멀리 여의게 되어 천상 사람들 가운데 태어나 제6천과 같아졌다. 마침내 태어나 기뻐하고 또한 숙명(宿命)을 알면서 각각 스스로 그 나라의 부처님 처소에 이르러 머리를 조아려 법을 받았다.
그때 삼천대천국토에 있는 모든 눈먼 자는 볼 수 있게 되고, 귀먹은 자는 들을 수 있게 되고, 벙어리는 능히 말을 할 수 있게 되고, 구부러진 자는 펴지고, 두 다리로 걷지 못하는 자는 수족을 얻고, 미친 자는 정신이 올바르게 되고, 산란스러운 자는 선정[定]을 얻게 되었다. 병이 있는 자는 회복되고 배고프고 목마른 자는 포만하게 되고, 힘이 없는 자는 힘을 얻게 되고 늙은 자는 젊어지고, 옷이 없는 자는 옷을 얻게 되었다. 모든 중생들이 모두 같은 뜻[同志]을 얻어 서로를 아버지같이 어머니같이 형같이 아우같이 보았다. 10선(善)을 평등히 행하고 순박하게 범사(梵事)를 행하니 번뇌[瑕穢]가 없고 조용하면서 즐거웠다. 비유하면 마치 비구가 제3선(第三禪) 색계(色界) 4선천(禪天) 중에 삼선삼천(三禪三天)은 소정천(小淨天)․무량정천(無量淨天)․변정천(徧淨天)이다.
을 얻음과 같아, 모든 중생들은 모두 지혜에 이르게 되어 이미 조복하여 자신을 지켜서 중생을 어지럽게 하지 않았다.
그때 세존께서는 사자상(師子牀)에 앉아 계셨는데, 이 삼천대천국토에서 덕이 우뚝 존엄스러웠으며 광명과 색상(色像)과 위덕(威德)이 거룩하였다. 비유하면 마치 산(山) 중의 왕인 수미산에 많은 산이 미치지 못하는 것과 같았다. 그때 세존께서는 모든 여래ㆍ무소착ㆍ등정각의 법대로 크고 넓은 음성[大普音]으로써 삼천대천국토에 두루 하시니, 모든 수타회천(首陀會天:정거천)과 모든 범천(梵天)과 제육천왕과 석천(釋天)과 사왕천(王天)과 그 가운데 모든 천과 모든 중생들이 빠짐없이 사자좌(師子座)를 보고 부처님께서 설하신 법을 들었다. 각각 하늘에 있는 갖가지 이름의 향과 꽃을 갖고 부처님 처소에 나아가서 여래ㆍ무소착ㆍ등정각께 공양하였다. 삼천대천국토에 있는 중생들은 각각 세간에서 이름 있는 향[名香]과 물과 육지에서 나는 여러 꽃들을 가지고 부처님 처소에 나아가서 세존께 공양하였다. 이때 모든 하늘의 향화(香華)와 중생의 향화로서 공양할 수 있는 것을 여래 위에 흩으니 공중에서 변하여 큰 누대[臺]를 이루었다. 그 누대에는 모든 당번과 당번화개가 드리워져서 오색으로 영롱하게 빛이 났다. 그 화개 광명이 두루 삼천대천국토를 빠짐없이 비추니 모두 금색이 되었다. 시방의 갠지스강의 모래 수처럼 많은 모든 불국토도 역시 이와 같았다.
이때 염부제(閻浮提) 사람들은 마음속으로 스스로 생각하기를 ‘오늘 여래․무소착․등정각께서는 오직 우리들만을 위하여 설법하시고 다른 곳에는 계시지 않는다’고 하였다. 모든 삼천대천국토 가운데 모든 중생들도 각각 ‘오늘 여래께서 우리 앞에 앉아 계시면서 오직 우리들만을 위하여 설법하시고 다른 나라에는 계시지 않는다’고 생각하였다.
이때 세존께서 사자좌에서 다시 광명을 놓아 삼천대천국토를 비추니, 그 중에서 광명을 본 중생은 동방의 갠지스강의 모래 수처럼 많은 부처님과 제자들을 모두 보았으며, 간사하(間沙訶) 국토의 석가문(釋迦文)부처님과 모든 회중들도 보았다. 시방의 국토 각각에서 서로 보는 것도 다시 이와 같았다. 동방으로 갠지스강의 모래 수처럼 많은 국토들을 지나가면 보적(寶積)이라는 세계가 있고, 그곳의 부처님 명호는 보사(寶事) 여래․무소착․등정각이신데, 지금 현재 반야바라밀로써 일체를 교화하고 계시었다. 보명(普明)이라는 보살이 있어 석가문부처님의 광명 변화와 위신력에 감동되어 곧 보사여래께 아뢰었다.
“오늘 무슨 인연으로 이 부처님 몸의 광명 변화가 감동시킴이 이와 같습니까?”
보사여래께서 보명에게 말씀하셨다.
“서방으로 지극히 먼 곳에 사하(沙訶)라는 세계가 있고, 그곳의 부처님 명호[佛名]는 석가문(釋迦文)이신데 지금 현재 모든 보살들을 위해서 반야바라밀법을 설하시니, 이것이 그 상서로움을 보이시는 것이다.”
보명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예, 그러하옵니다. 세존이시여, 제가 저 석가문부처님께 나아가 뵙고 예배드리고 공양올리고자 합니다. 그 나라의 보살들은 모두 총지(摠持)를 얻었으며 모든 삼매와 초월삼매를 얻었습니다.”
부처님께서 보명에게 말씀하셨다.
“가고자 하면 뜻대로 하거라.”
이때 보사부처님께서는 곧 천 잎의 금색연화를 보명에게 주시면서 말씀하셨다.
“이것을 석가문부처님께 공양하여라.”
거듭 보명에게 말씀하셨다.
“그대는 저 국토에 나아가되 위의를 지키고 법도(法度)를 잃지 말아야 한다. 왜냐하면 그 나라의 보살은 율행(律行)을 지켰으므로 이곳에 태어나게 된 것이기 때문이다.”
이때 보명보살은 무앙수 백천 보살들과 무수한 비구들과 모든 선남자와 선여인들과 함께 동방으로부터 지나오면서 모든 부처님들께 향화로써 공양올리고 예배드렸다. 인계(忍界:사바세계)에 나아가서 석가문부처님을 뵙고 머리를 조아려 예를 올리고 보명보살이 석가문부처님께 아뢰었다.
“보사여래께서 간절하게 안부를 여쭙기를, ‘세존이시여, 앉고 일어나시는 동작은 가볍고 기력은 평상시와 같으십니까?’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지금 이 꽃을 세존께 공양드리라고 하셨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즉시 그것을 받으셨다. 석가문부처님께서는 곧 이 꽃을 동방의 갠지스강의 모래 수처럼 많은 불국토에 흩뿌리자 그 꽃이 두루 이르고, 하나하나의 꽃에는 모두 부처님께서 앉아 계시면서 반야바라밀법을 설하시어 중생을 교화하셨다. 이 가르침을 들은 자는 모두 위없는 바르고 참된 도의 뜻을 발하였다. 저 선남자와 선여인들은 보명보살을 따라와서 모두 석가문부처님의 발에 예를 올리고 가지고 온 향화로 세존께 공양하였다.
남방으로 갠지스강의 모래 수처럼 많은 국토를 지나가면 도우(度憂)라는 세계가 있는데, 그곳의 부처님 명호는 무우위(無憂威) 여래ㆍ무소착ㆍ정등각이시며, 이우(離憂)라는 보살이 있었다. 서방으로 갠지스강의 모래 수처럼 많은 국토를 지나가면 멸악(滅惡)이라는 세계가 있는데, 그곳의 부처님 명호는 보상(寶上) 여래ㆍ무소착ㆍ등정각이시며, 의행(意行)이라는 보살이 있었다. 북방으로 갠지스강의 모래 수처럼 많은 국토를 지나가면 승(勝)이라는 세계가 있는데, 그곳의 부처님 명호는 인왕(仁王) 여래ㆍ무소착ㆍ등정각이시며, 시승(施勝)이라는 보살이 있었다.
하방(下方)으로 갠지스강의 모래 수처럼 많은 국토를 지나가면 현(賢)이라는 세계가 있고, 그곳의 부처님 명호는 현위(賢威) 여래ㆍ무소착ㆍ등정각이시며, 묘화(妙華)라는 보살이 있었다. 상방(上方)으로 갠지스강의 모래 수처럼 많은 국토를 지나오면 사락(思樂)이라는 세계가 있고, 그곳의 부처님 명호는 사락위(思樂威) 여래ㆍ무소착ㆍ등정각이시며, 사락시(思樂施)라는 보살이 있었다.
이와 같이 육방(方)의 보살들이 각각 부처님께 아뢰었다.
“무슨 변화로 이 같은 현상이 여기에 나타난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각각 모든 보살들에게 말씀하셨다.
“여기로부터 지극히 먼 곳에 인세계(忍世界:사바세계)가 있는데, 부처님 명호는 석가문으로서 모든 보살들을 위해서 반야바라밀법을 설하시니, 이것이 상서로움[瑞應]을 보이신 것이다.”
저 보살들이 각각 부처님께 아뢰었다.
“인계에 나아가서 석가문부처님을 뵙고 공양올리고 예배드리고자 합니다.”
그때 모든 부처님께서는 각각에게 보화(寶華)를 주셨다. 그리고 모든 무수한 백천 보살들과 모든 비구승과 선남자와 선여인들이 모두 이곳에 함께 왔으며, 지나오는 모든 국토에서 각각 이 향화로써 모든 부처님들께 공양올렸다.
다음에 인계(忍界)에 나아가서 석가문부처님을 뵙고 공양올리고 예배드리고 안부를 여쭈는 일은 각각 동방의 모든 보살처럼 했다. 그때 일시(一時)에 삼천대천국계(千大千國界)의 땅에 있던 것이 보배를 이루었으며 모든 나무와 초목들도 빠짐없이 향화가 되었고 모든 당번과 오색 비단의 화개 등이 걸려 있었다. 비유하면 마치 화적세계(華迹世界)의 보화여래(寶華如來) 국토와 같으니, 문수사리(文殊師利)와 선주의왕천자(善住意王天子)와 모든 대위신(大威神)을 지닌 보살들이 거처하는 국토이다. 이 인세계(忍世界)의 모든 것이 진기하고 묘함[珍妙]도 또한 저 국토와 같았다. 그때 대중의 모임에 모든 천(天)․마(魔)․범(梵)과 용․귀신․사문․바라문․세계의 백성과 모든 보살마하살들과 새롭게 발심한 자가 모두 다 와서 모였다. 부처님께서는 대중의 모임이 이미 다 이루어진 것[定]을 아시고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보살마하살은 반드시 반야바라밀을 익히고 행해야 한다.”
사리불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일체 제법(諸法)을 잘 알고자 하면 어떻게 반야바라밀을 행해야 합니까?”
부처님께서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반야바라밀을 행하는 보살마하살은 보시함에 재물과 베푸는 자와 받는 자가 있은 적이 없음으로써 단(檀:보시)바라밀을 행하고, 죄를 알고 복을 앎으로써 시(尸:지계)바라밀을 행하고, 성내는 마음을 일으키지 않음으로써 찬제(羼提:인욕)바라밀을 행하고, 몸과 입으로 항상 정진하여 뜻에 게으르지 않음으로써 유체(惟逮:정진)바라밀을 행하고, 6정(情: 희·노·애·락·악, 혹은 6근)에 탐익하는[味] 바 없음으로써 선(禪:선정)바라밀을 행하였다.”
부처님께서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함에는 정의(定意:삼매)에서 일어나지 않아야 하고 마땅히 4의지(意止:4념처)․4의단(意斷:4정근, 4정단)․4신족(神足)․5근(根)․5력(力)․7각의(覺意:7각지)․현성팔품도(賢聖八品道:8정도)를 구족해야 한다. 또 마땅히 공(空)삼매․무상(無相)삼매․무원(無願)삼매를 구족해야 한다. 4선(禪)․4등(等:자·비·희·사, 4무량심)․4무형삼매(無形三昧:4무색정)를 구족해야 하며, 8해선(解禪:8배사, 8해탈)을 구족해야 하고 9차제선(次第禪)을 얻어야 한다. 마땅히 9상(相:9想)인, 신사상(新死相)․근전속신상(筋纏束薪相)․청어상(靑瘀相:어혈상)․농상(膿相)․혈상(血相)․식불소상(食不消相)․골절분리상(骨節分離相)․구골상(久骨相)․소초가악상(燒焦可惡相)을 알아야 한다. 이 모든 상을 이미 알고 나서는 마땅히 부처님을 염하고 법에 뜻을 두고 비구승에 뜻을 두어야 하고, 보시[施]․지계[戒]에 뜻을 두어야 하고 안반수의(安般守意)에 뜻을 두어야 하고, 무상(無常)․고(苦)․공(空)․무아인상(無我人想)과 무소낙상(無所樂想:즐겁다는 생각이 없는 것)․무생멸상(無生滅想)․무도상(無道想)․무진상(無盡想)․무소기상(無所起想)․선상(善想)․법상(法想)에 뜻을 두어야 한다. 모든 중생들의 뜻[意]을 미리 아는 것을 지혜롭다고 한다. 그러면 곧 각의삼매(覺意三昧)와 무외삼매(無畏三昧)를 얻고 유상(有想)․유외(有畏)․무상(無想)․무외(無畏)․역무상역무외(亦無想亦無畏)․소부지근(所不知根)․당지(當知)․이지(已知)를 마땅히 알려고 하면 8환(患)을 지나야 하고 12쇠(衰)를 물리쳐야만 한다. 부처님의 10력(力)․18법(法)․4무소외(無所畏)․4무애혜(無礙慧)․대자대비(大慈大悲)를 구족해야 한다. 모든 보살의 혜(慧)를 깨달아 알려고 하는 자는 마땅히 반야바라밀을 익혀야 한다. 보살마하살이 살운야(薩云若:일체지)를 구족하려면 생사를 여의어야 하고, 처음 익히는 자[習緖者]는 마땅히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한다. 이와 같음이 사리불이여,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하는 것이다.
또 사리불이여, 보살마하살이 보살위(菩薩位)에 오르려고 하고 성문지(聲聞地)와 벽지불지(辟支佛地)를 지나려고 하고 아유월치지(阿惟越致地) 아유월치지는 아유월치를 말한다. 아유월치는 범어로 Avinivartanīya이다. 아비발치(阿毘跋致)라고도 쓰며, 불퇴(不退)․무퇴(無退)․불퇴전(不退轉)․불퇴위(不退位)라 번역한다. 반드시 성불이 결정되었다는 동시에 보살위에서 물러나지 않는 위치이다. 소승 유부종에서는 예류과(豫流果)를, 대승에서는 초주(初住)․초지(初地)․8지(地)를 불퇴라 한다.
에 머물려고 한다면 마땅히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한다. 6통(通)에 머물려고 하고 모든 사람들의 뜻이 취향하는 바를 알려고 하면 마땅히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한다. 나한(羅漢)․벽지불(辟支佛)의 지혜보다 뛰어나고자 하면 마땅히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한다. 보살마하살이 모든 다린니삼매문(陀隣尼三昧門)과 모든 중지문(衆智門)을 얻으려고 한다면 마땅히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한다. 모든 성문․벽지불의 가(家)에서 보시하고 계를 지키며 남을 도와 갖가지 공덕을 지으면서 그 상위[上]에 오르려고 한다면 마땅히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한다. 보살마하살이 성문․벽지불의 가에서 모든 계․삼매․지혜․해탈견․해탈혜를 지니고 그보다 뛰어나고자 하면 마땅히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한다. 보살마하살이 조금 보시하고[少施]․조금 계를 지키고[少戒] 조금 인욕하고[少忍] 조금 정진하고[少進] 조금 선정하고[少禪] 익히고 행한 것이 적으면서도 큰 과보와 공덕이 무량함을 얻으려고 한다면 마땅히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한다. 보살마하살이 친족의 신체가 부처님의 형상과 같기를 원하면 마땅히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한다. 보살마하살이 대사(大士)의 32상(相)과 80종호(種好)를 구족하려고 하고 모든 보살 종성(種姓)을 이루어서 구마라부(鳩摩羅浮)를 얻는데 이르게 하려 한다면 마땅히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한다. 보살마하살이 모든 부처님 세존으로부터 떠나지 않으려 하고, 모든 부처님께 공양하고 온갖 행으로 공덕을 이루려고 한다면 마땅히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한다. 보살마하살이 모든 중생들이 원하는 것을 충족시켜 주고자 하고, 음식․수레[車]․말․신발․갖옷·화만(華幔)으로 장식한 침상 도구를 구해서 중생이 구하는 바를 주어 구족하게 할 수 있게 하고자 이를 얻으려 하면 마땅히 반야바라밀을 배워야만 한다.
또한 사리불이여, 보살마하살이 갠지스강의 모래 수처럼 많은 불국토 가운데 사람들로 하여금 빠짐없이 6바라밀을 구족하여 행하게 하려면 마땅히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한다. 보살마하살이 공덕을 행하여 바로 부처님 지위에 이르고자 하면 마땅히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한다. 보살마하살이 시방의 갠지스강의 모래 수처럼 많은 불국토의 모든 부처님 세존으로부터 공덕을 찬탄받으려고 한다면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한다. 보살마하살이 뜻을 한 번 발하여 시방의 갠지스강의 모래 수처럼 많은 불국토들을 초월하여 널리 빠짐없이 이르고자 하면 마땅히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한다. 보살마하살이 일음(一音)을 발해서 모든 시방에서 그 음성을 듣게 하려면 마땅히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한다. 보살마하살이 모든 시방의 모든 불국토를 보호해서 끊어지지 않게 하려면 마땅히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한다. 보살마하살이 내공(內空)․외공(外空)․대공(大空)․최공(最空)․공공(空空)․유위공(有爲空)․무위공(無爲空)․지경공(至竟空)․무한공(無限空)․소유공(所有空)․자성공(自性空)․일체제법공(一切諸法空)․무소의공(無所猗空)․무소유공(無所有空) 등 이러한 공(空)의 법[事法]을 알려고 한다면 마땅히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한다. 보살마하살이 일체의 모든 부처님들과 모든 법이 여여함을 깨달으려고 한다면 마땅히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한다. 일체 모든 법성(法性)을 알려고 한다면 마땅히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한다. 일체 모든 법의 진제(眞際)를 알려고 한다면 마땅히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한다.
사리불이여, 보살마하살이 이와 같음이 반야바라밀을 행함이니 마땅히 여기에 머물러야 한다. 또한 사리불이여, 보살마하살이 삼천대천국토 가운데 있는 티끌의 수[塵數]와 모든 수목․생초(生草)․지엽(枝葉)․경절(莖節) 등의 수를 빠짐없이 알려고 한다면 마땅히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한다. 보살마하살이 한 터럭[一毛]을 쪼개어 백 개로 나누고 그 중 하나로써 삼천대천국토 가운데 있는 바닷물을 취하여 찍어서 몇 방울인가를 헤아려 알고 ,그 숫자가 물의 성질[水性]을 어지럽게 하지 않음을 다 알고자 한다면 마땅히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한다. 삼천대천국토 가운데 있는 불이 일어남이 마치 겁이 다하여 타버릴 때와 같을 경우에, 일시에 큰 불을 불어서 꺼버리려고 한다면 마땅히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한다. 삼천대천국토 가운데 큰 바람이 일어나서 수미대산을 마치 겨처럼 휩쓸어 버릴 때 능히 한 손가락으로 그 바람의 힘을 막아서 일어나지 않게 하려면 반야바라밀을 마땅히 배워야 한다. 보살마하살이 가부좌를 하고서 삼천대천국토의 허공을 가득 채우려고 한다면 마땅히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한다. 삼천대천국토에 있는 모든 수미산을 능히 한 손으로 들어서 타방의 무수한 불국토에 놓으려고 한다면 마땅히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한다. 보살마하살이 한 발우의 음식으로 시방의 갠지스강의 모래 수처럼 많은 부처님과 제자들을 모두 만족하게 하고자 하면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한다.
또한 진기한 보배․복식․당번․비단 일산[繒蓋]․향화로 갠지스강의 모래 수처럼 많은 부처님과 제자들을 공양하려고 한다면 마땅히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한다. 시방의 갠지스강의 모래 수처럼 많은 국토들 가운데 있는 중생들이 모두 계(戒)․삼매(三昧)․지혜(智慧)․해탈견(解脫見)․해탈혜(解脫慧)를 갖추게 하고, 사문(沙門) 4도(道:수다원과․사다함과․아나함과․아라한과)와 무여니원(無餘泥洹:무여열반)을 얻게 하고자 하면 마땅히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한다.
또한 사리불이여,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하면서 만약 보시를 행할 때는 마땅히 생각하기를, ‘나는 큰 과보를 얻게 될 것이고 존자가(尊者家) 또는 범지 대성가(梵志大姓家)․가라월가(迦羅越家) 범어로는 Kulava, 유족자(有族者)라는 뜻이다. 거사․출가하지 않고 집에 있으면서 불법에 귀의한 남자를 말한다.
에 태어나게 될 것이고 사왕천(王天), 나아가 제6천에 태어나게 될 것이고 이 보시로 인해서 제1선(第一禪)에서부터 4선(禪)․공무형선(空無形禪)에 이르게 될 것이다. 보시를 지으면 현성팔품도를 얻을 것이고 수다원(須陀洹)에서부터 위로 아라한․벽지불에 이르게 될 것이다’라고 해도 마땅히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한다.
또한 사리불이여,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함에는 혜방편(慧方便)으로써 6바라밀을 구족하게 된다.”
사리불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보살마하살이 어떻게 보시를 해야 6바라밀을 구족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보살마하살이 단바라밀을 행하려고 한다면 마땅히 의지함이 없는 법[無所猗法]을 익혀서 그 보시하는 자와 받는 자로 하여금 모든 바라밀을 구족하게 하면 이것이 단바라밀을 구족하는 것이다. 선에 대해서도 악에 대해서도 죄와 복을 더불어 행하지 않는 것이 시바라밀이다. 성냄도 없고, 기뻐함도 없는 것이 찬제바라밀이다. 뜻에 게으름이 없는 것이 유체바라밀이다. 집착할 바 없음에 망상이나 의심을 일으키지 않는 것이 선바라밀이다. 모든 법을 여읜 것이 반야바라밀이다.
또한 사라불이여, 보살마하살이 과거․미래․현재의 모든 부처님 세존의 법을 알려고 한다면 마땅히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한다. 유위(有爲)․무위(無爲)의 법을 뛰어넘으려[度] 한다면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한다. 과거․미래․현재의 모든 부처님과 모든 법이 여여함과 법상(法相)이 일어남을 알려고 해도, 멸제(滅際)를 알려고 해도, 성문․벽지불 앞을 지나고자 해도, 일체의 모든 부처님을 위해서 모든 일을 담당하고자 하고 모든 부처님 세존 안의 권속이 되고자 해도, 대권속을 도모하는 자가 보살의 권속을 얻고자 해도, 대보시를 갚는 자가 무상의 보시[無相施]를 행하고자 해도, 악한 뜻을 일으키지 않으려고 해도, 성을 내고 원한을 갖는 뜻을 일으키지 않으려고 해도, 게으른 뜻을 일으키지 않으려고 해도, 어지러운 뜻을 일으키지 않으려고 해도, 악한 지혜를 일으키지 않으려고 해도 마땅히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한다.
또한 사리불이여, 보살마하살이 일체를 보시와 계에 대한 생각에 세우고 공덕에 힘쓰고 권하고 도와 주려고 한다면 마땅히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한다. 보살마하살이 5안(眼)을 세우려고 한다면 마땅히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한다. 무엇이 5안인가? 육안(肉眼)․천안(天眼)․지안(智眼)․법안(法眼)․불안(佛眼)이다.
또한 사리불이여, 보살마하살이 천안을 얻어 시방 모든 부처님들을 보고자 하고, 천이(天耳)를 얻어 시방 모든 부처님께서 설법하시는 것을 들으려 하고, 모든 부처님의 뜻을 모두 알려고 한다면 마땅히 반야바라밀을 배워야만 한다. 보살마하살이 시방 모든 부처님께서 설법하심이 끊어지지 않는 것과 나아가 아뇩다라삼야삼보(阿耨多羅三耶三菩: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들으려고 한다면 마땅히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한다.
또한 사리불이여, 보살마하살이 과거의 모든 부처님과 현재의 모든 부처님 세존의 찰토(刹土)를 보려고 한다면 마땅히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한다. 보살마하살이 시방 모든 부처님께서 설하신 12부경(部經)을 듣고자 하고 외우고자 하거나 모든 성문으로서 아직 들어본 적이 없다면 마땅히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한다. 보살마하살이 시방 모든 부처님께서 설하신 법과 앞으로 설하실 것을 듣고 모든 중생들을 알고 두루 가르치고자 한다면 마땅히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한다. 과거․미래․현재의 모든 부처님께서 설하신 법문을 다 들어 알고 듣고 나서는 일체의 독송자에게 두루 가르치고자 한다면 마땅히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한다. 시방의 갠지스강의 모래 수처럼 많은 모든 불세계에 그윽하여 어두운 곳이 있어 해와 달조차 비추지 않는데 그곳에 광명을 지니고 두루 비추려고 한다면 마땅히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한다. 시방의 갠지스강의 모래 수처럼 많은 모든 불세계에 애초부터 불음(佛音)․법음(法音)․승음(僧音)을 듣지 못했는데 이 중생들을 세우고 그들로 하여금 모두 정견으로 삼보음(寶音)을 듣게 하고자 한다면 마땅히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한다.
또한 사리불이여, 보살마하살이 시방의 갠지스강의 모래 수처럼 많은 중생들로 하여금 눈먼 자는 보게 하고 귀먹은 자는 듣게 하고, 미친 자는 뜻을 얻게 하고 벌거벗은 자는 옷을 얻게 하고, 주리고 목마른 자는 배부르게 하려고 한다면 마땅히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한다. 보살마하살이 시방의 갠지스강의 모래 수처럼 많은 나라 가운데 죄의 땅인 3악취(惡趣:지옥․아귀․축생)에 있는 중생들로 하여금 해탈하게 하여 사람의 몸을 얻게 하고자 한다면 마땅히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한다. 갠지스강의 모래 수처럼 많은 세계에 모든 중생들로 하여금 계행․삼매․지혜․해탈견․해탈혜를 구족하고 수다원으로부터 아라한․벽지불, 나아가 아뇩다라삼야삼보와 모든 부처님의 위의(威儀)를 구족하게 하고자 하면 마땅히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한다.
또한 사리불이여, 보살마하살이 도를 닦는 일[道事]과 세속의 일[俗事]을 모두 알려고 한다면 마땅히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한다. 걸을 때에 발이 땅에서 4촌(寸)만큼 떨어지게 하고 그 바퀴 발자국[輪跡]이 나타나게 하며 모든 사천왕과 아가니타천(阿迦膩吒天:색구경천)과 무앙수의 모든 천의 권속들에게 둘러싸여 함께 불수(佛樹:보리수)에 이르게 하고, 마땅히 모든 하늘로 하여금 천상의 방석[天上疊]으로 자리를 삼게 하고, 내가 아뇩다라삼야삼보를 이루어 유행하는 곳․머무는 곳․앉아 있는 곳을 모두 금강이 되게 하려고 한다면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한다. 보살마하살이 출가한 날에 곧바로 아뇩다라삼야삼보를 이루려 하고, 출가한 날에 문득 법륜(法輪)을 굴리려 하고, 무앙수 아승기의 사람들이 티끌[塵]을 멀리하고 더러움[垢]을 여의어 모든 법과 법안이 깨끗하도록 하고, 무수한 아승기의 사람들이 번뇌[漏]가 다하여 뜻으로 해탈하도록 하고, 무앙수 아승기의 사람들이 아유월치(阿惟越致)를 얻고 아뇩다라삼야삼보를 이루게 하려 한다면, 이와 같은 보살마하살은 마땅히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한다. 보살마하살이 부처되기를 원할 때 무수한 제자들을 위해서 일시에 설법을 하면 곧 앉은 좌상에서 아라한을 얻고, 보살의 뜻을 일으키면 아유월치를 얻고, 아뇩다라삼야삼보를 이루어서 무수한 보살들이 그 수명이 한량없이 늘어나고 광명이 수명을 따라 증감(增減)이 없게 하려면 마땅히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한다. 보살마하살이 아뇩다라삼야삼보를 이룰 때 그 국토에서는 음욕[婬]․성냄[怒]․어리석음[癡]이라는 명칭조차 없을 것이며, 중생들의 지혜도 모두 동등할 것이며, 항상 보시를 생각하고 항상 청정한 계를 생각하며, 스스로 조복하고 스스로 단속하여 중생을 어지럽히지 않고 반니원(般泥洹)한 뒤에 법이 멸진(滅盡)한다는 말조차 없게 하려면 마땅히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한다. 보살마하살이 스스로 아뇩다라삼야삼보를 얻으려고 할 때, ‘나의 음성을 들은 자는 반드시 아뇩다라삼야삼보에 이를지어다’라고 하여, 이와 같이 얻고자 한다면 마땅히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한다.”
2. 무견품(無見品)
“또한 사리불이여,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하려는 생각을 일으킬 때 사천왕이 모두 기뻐하면서 마음으로 ‘우리들은 예전에 왕이 모든 부처님께 발우를 올린 것처럼 위의 보살에게도 네 개의 발우를 마땅히 올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도리천왕(忉利天王)과 제6천왕(天王)은 모두 기뻐하면서 마음으로 ‘이 보살이 성불할 때 우리들은 마땅히 받들어 모시고 아수륜(阿須倫) 아수라(阿修羅). 6도의 하나이고 10계의 하나이다. 싸우기를 좋아하는 귀신.
의 무리를 줄이고 모든 천(天)의 무리를 늘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삼천대천국토 가운데 모든 아가니타천은 각각 기뻐하면서 또한 마음으로 ‘이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하여 부처를 이룰 때 우리들은 또한 마땅히 부처님께 법륜을 굴려 주도록 권조(勸助)하고 청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와 같이 사리불이여,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 6바라밀이 갈수록 늘어나고 구족되자, 선남자와 선여인이 각각 기뻐하면서 마음으로 ‘우리들은 마땅히 이 보살을 위해서 부모․형제․처자․권속․친구․선지식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때 사천왕과 모든 아가니타천이 각각 마음으로 ‘이 보살로 하여금 항상 범행(梵行)을 닦게 해서 초발의(初發意)에서 성불에 이르기까지 색욕이 있는 이들과 함께 모이지 않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욕을 범한다면 범행을 잃을 것인데 하물며 어떻게 도를 행하겠는가? 이 보살은 항상 범행을 닦으므로 반드시 부처를 이룰 것이다. 색욕을 범하지 않으면 성도(成道)할 것이다.”
사리불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보살에게 부모․처자․권속이 있어야만 합니까?”
부처님께서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어떤 보살에게는 혹은 부모는 있으나 처자는 없고, 어떤 보살은 초발의 때부터 동남(童男)의 행을 지어 부처를 이룰 때까지 처색(妻色)을 취하지 않는다. 어떤 보살은 구화구사라(漚惒拘舍羅:善巧方便)로 5욕(欲) 가운데서도 아뇩다라삼야삼보의 뜻을 일으켜 출가하는 것을 보인다.
사리불이여, 비유하면 마치 환사(幻師)가 환법(幻法)을 잘 알아 오락색욕(樂色欲)을 만들어 놓고 그 가운데서 스스로 방자하여 서로서로 즐거워하고 즐기는 것과 같다. 너의 생각에 어떠하냐? 이 환사가 만들어낸 것을 정말로 입고 먹을 수 있는가?”
사리불이 말하였다.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환영은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와 같이 사리불이여, 보살이 구화구사라로써 욕(欲)이 있는 것을 시현해서 저 색욕 중에서 일체를 양육하지만 염착하는 것이 없고 욕은 불[火]과 같다고 관한다. 비유하면 원수와 같나니, 욕의 나쁜 뜻[惡志]을 말하고 항상 더럽게 여긴다. 보살은 비록 욕 가운데 있지만 항상 이런 뜻을 지음을 보인다. 방편[權]을 행하는 보살도 오히려 이런 뜻을 짓는데, 하물며 새로 배우려고 뜻을 일으킨 자는 어떻겠는가?”
사리불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보살이 어떻게 반야바라밀을 행해야 합니까?”
부처님께서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보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하려면 보살이 있는 것도 보지 말고 또한 글자도 보지 말고, 또한 반야바라밀도 보지 말고, 볼 바가 다 없고 또한 행하지 않음도 보지 말라. 왜냐하면 보살도 공하고 글자도 공하며, 공에는 5음(陰)이 없기 때문이다. 무엇이 5음인가? 색음(色陰)․통음(痛陰)․상음(想陰)․행음(行陰)․식음(識陰)을 말한다. 5음이 곧 공이며, 공이 곧 5음이다. 왜냐하면 글자일 뿐이다. 단지 글자인 까닭에 도(道)라고 이름하고, 글자인 까닭에 보살이라고 이름하며, 글자인 까닭에 공이라고 이름하고, 글자인 까닭에 5음이라고 이름하기 때문이다. 그 실(實)은 생하는 것도 아니고[不生] 사라지는 것도 아니며[不滅], 또한 집착도 없으며[無著], 또한 단절됨도 없는[無斷] 것이다. 보살은 이와 같은 행을 하되 생(生)도 보지 말고 멸(滅)도 보지 말고, 집착도 보지 말고 단절도 보지 말아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단지 공으로 법을 삼고 이름을 세워 거짓 명칭으로 글자를 삼기 때문이다. 보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에 모든 법의 글자를 보지 말아야 하니, 보는 것이 없으므로 들어갈 곳도 없는 것이다.”
3. 가호품(假號品)
“또한 사리불이여,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에 보살은 마땅히 이와 같이 관(觀)해야 한다. 보살이란 단지 글자일 뿐이며, 부처 또한 글자일 뿐이고, 반야바라밀도 글자일 뿐이고, 5음이란 것은 글자일 뿐이다. 사리불이여, 나라고 말하는 일체의 언어는 글자일 뿐이다. 나라는 것을 찾아도 또한 나라는 것이 없으며, 중생도 없으며, 생하는 바도 없으며, 생겨나게 하는 자도 없으며 , 스스로 생겨남도 없다. 사람도 없으며 생겨남도 없으며, 자음[作]도 없으며, 만듦[造]도 없으며, 또한 이루는 자도 없으며, 받는 자도 없으며, 주는 자도 없으며, 보는 것도 없으며, 얻는 것도 없다. 왜 그런가? 일체의 모든 법은 있는 바가 없어서 공이라는 말을 쓰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보살이라는 것도 일체 명자의 법에 모두 보는 바가 없고, 보는 바가 없음에도 다시 견(見)을 두지 않는다. 보살이 이와 같이 반야바라밀을 행하면 모든 부처님을 제외하고 일체 모든 성문․벽지불보다 뛰어난데 무소유인 공을 쓰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일체에서 들어갈 곳[所入處]을 보지 않기 때문이다.
사리불이여, 보살이 이와 같음이 반야바라밀을 행하는 것이다. 비유하면, 한 염부제 안에 있는 수목․초목․벼․삼․사탕수수․잔잔한 떨기나무․대나무․갈대가 모두 사리불․목건련 등과 같으면서 그 수(數)가 그들처럼 지혜와 신족과 그 덕(德)이 한량없다고 해도 반야바라밀을 행하는 보살에 비교해 보고자 하면 마침내 무수한 억백천 배 만큼이나 비교가 될 수 없고 비유로써 견줄 수 없다. 왜냐하면 사리불이여, 보살은 지혜를 가지고 모든 중생들을 제도하여 해탈하게 하기 때문이다.
또한 사리불이여, 보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하면서 생각하는 지혜는 하루 중에도 모든 성문․벽지불보다 뛰어나다.
사리불이여, 염부제에 있는 초목 숫자 정도는 그만두기로 하고, 삼천대천국토에 사리불․목건련 등과 같은 이들이 가득 차 있다고 하자. 다시 이 정도는 그만두기로 하고, 시방의 갠지스강의 모래 수처럼 많은 세계에 사리불․목건련 등과 같은 이들이 가득 찼다고 하자. 그 수가 이와 같다면 헤아릴 수 없을 것이지만, 이것을 보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하는 것에 비교하면 백 분․천 분․거(巨)억만 분에도 미치지 못한다. 반야바라밀을 행하는 보살이 가진 지혜에 비교해 보면 모든 성문․벽지불의 지혜는 백천만 배로도 비교가 되지 않는다.”
사리불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제자들이 가지고 있는 지혜는 수다원에서 성문․벽지불에 이르고, 위로는 보살과 모든 부처님 세존에 이르기까지 이 여러 무리의 지혜는 서로 위배되지 않고 생겨남이 없어서 그것은 실로 모두 공하여 차별도 없고 나오는 것도 아니며, 생(生)하는 것도 아닙니다. 실로 공은 특별히 낫거나 못함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세존이시여, 어째서 반야바라밀을 행하는 보살이 하루 동안 생각한 것만으로도 성문․벽지불보다 뛰어날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까?”
부처님께서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그들보다 낫다고 한 까닭은 보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하면서 하루 동안 마음으로 ‘나는 도법(道法) 인연으로 중생을 위해 모든 법을 깨달아서 중생을 제도하고 해탈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리불이여, 모든 성문과 벽지불이 진실로 이런 생각이 있는가?”
사리불이 말하였다.
“예, 세존이시여, 모든 성문과 벽지불은 처음에 이런 생각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사리불이여, 마땅히 이렇게 알고 생각하기를, ‘모든 성문과 벽지불이 소유한 지혜를 보살의 지혜에 비교해 보면 백 분․천 분․거억만 배에도 미치지 못한다’라고 해야 된다.
또한 사리불이여, 성문과 벽지불은 마음으로 ‘나는 마땅히 6바라밀을 행해서 중생을 가르치고 불국토를 청정하게 하고, 부처님의 열 가지 힘[十種力]과 4무소외(無所畏)와 4무애혜(無礙慧)를 구족하고, 부처님의 18법(法)을 구족해서 아유삼불(阿惟三佛) 범어로는 Abhisambuddha이며, 현등각(現等覺)이라는 뜻. 즉 정각을 이룬 사람, 부처님이 깨달은 지혜이다.
을 이루고, 헤아릴 수 없는 아승기의 사람으로 하여금 니원(泥洹:열반)을 얻게 하겠다’는 이런 생각이 정말로 있겠는가?”
사리불이 말하였다.
“예, 세존이시여, 이런 생각이 없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보살은 능히 그렇다. 보살은 이 6바라밀을 행해서 18법을 구족하고 아유삼불을 이루어서 모든 중생들을 제도하고 해탈하게 한다.
사리불이여, 비유하면 마치 반딧불이 ‘나는 광명으로 염부제를 비추어서 두루 밝게 하겠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과 같이, 사리불이여, 모든 성문․벽지불도 또한 ‘나는 마땅히 6바라밀을 행하여 18법을 구족하고, 아유삼불을 이루어서 모든 중생들을 제도하고 해탈하게 하겠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사리불이여, 비유하건대 해가 뜨면 염부제를 두루 비추어서 그 빛을 받지 않는 곳이 없는 것과 같이, 보살은 6바라밀을 행하고 18법을 구족하고 아유삼불을 이루어서 헤아릴 수 없는 모든 중생들을 제도한다.”
사리불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보살이 어떻게 나한과 벽지불지를 지나서 아유월치지(阿惟越致地)를 얻는데 이르며, 불도지(佛道地)를 장엄합니까?”
부처님께서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보살은 초발의 때부터 항상 6바라밀을 행하고 공(空)․무상(無相)․무원(無願)의 법에 머무르며, 아라한․벽지불의 지를 지나서 아유월치지에 이른다.”
사리불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보살은 어떤 지(地)에 머물러야 성문․벽지불을 위해서 복전을 짓습니까?”
부처님께서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보살은 초발의 때부터 항상 6바라밀을 행하고 나아가 그 도량에 이를 때까지 그 중간에 항상 성문․벽지불을 위해서 보호해야 한다. 무슨 이유에서인가? 사리불이여, 세상에는 보살이 있어서 곧 5계․10선(善)․8재(齋)․4선(禪)․4등의(等意)․4무형정(無形定), 나아가 37품법(品法)이 있음을 알고 모두 이 세상에 나타내며, 곧 18사(事)․부처님의 열 가지 힘[佛十種力]․4무소외(無所畏)를 구족하기 때문이다. 세간에 마침 이런 법이 있으니, 곧 왕자종(王者種)․범지종(梵志種)․장자종(長者種)․가라월종(迦羅越種)이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첫 번째 사천왕에서 위로 삼십삼천에 이르는 줄 알고, 수다원․사다함․아나함․아라한․벽지불과 위로 부처님에 이르기까지 세상에 나타남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사리불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보살은 어떻게 마침내 시은(施恩)에 보답합니까?”
부처님께서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보살은 시복(施福)에 보답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근본적으로 이미 보답했기 때문이다. 보살은 항상 베풀고 있다. 그러면 무엇으로 베풀고 있는 것인가? 모든 선법(善法)을 베푼다. 무엇이 선법인가? 10선(善)의 법을 말한다. 10선의 법에서 위로 모든 부처님 세존의 법에 이르기까지 10력․4무소외․부처님의 18법을 구족하여 이것을 베풀어 주고 있는 것이다.”
사리불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보살은 어떻게 반야바라밀과 상응하게 됩니까?”
부처님께서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보살은 마땅히 색(色)이 공과 합치됨[合]을 알아야 하나니, 이것이 반야바라밀과 상응하는 것이다. 마땅히 통(痛:受)․상․행․식도 공과 합치됨을 알아야 하니, 이것이 반야바라밀과 상응하는 것이다. 마땅히 안(眼)․이(耳)․비(鼻)․설(舌)․신(身)․의(意)도 공과 합치됨을 알아야 하며, 색(色)․성(聲)․향(香)․미(味)․세활식(細滑識:촉) 원문에는 ‘세활식’으로 되어 있으나 ‘세활’이 되어야 맞다.
․법(法)도 공과 합치됨을 알아야 하며, 안색식(眼色識)․이성식(耳聲識)․비향식(鼻香識)․설미식(舌味識)․신세활식(身細滑識)․법성식(法性識)도 또한 그러하니, 이것이 상응하는 것이다. 마땅히 고(苦)․습(習:集)․진(盡:滅)․도(道)의 4제(諦) 법도 공과 합치됨을 알아야 하며, 마땅히 12인연(因緣)을 알아야 한다. 무엇이 열둘인가? 첫째는 치(癡:무명)이고, 둘째는 소작행(所作行)이고, 셋째는 식(識)이고, 넷째는 명색(名色)이고, 다섯째는 6입(入)이고, 여섯째는 재(栽:觸)이고, 일곱째는 통(痛)이고, 여덟째는 애(愛)이고, 아홉째는 수(受)이고, 열째는 유(有)이고, 열한째는 생(生)이고, 열두째는 사(死)이다. 이 12인연은 공과 합치되는 것이다. 마땅히 알지니, 일체의 모든 법은 유위법(有爲法)이건 무위법(無爲法)이건 또한 공과 합치된다. 마땅히 알아야 할지니, 본성(本性)이 또한 공과 합치되는 것이다. 이것이 반야바라밀과 상응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사리불이여, 보살마하살은 일곱 가지가 공과 합치됨을 알았다. 무엇이 일곱 가지인가? 위에서 말한 일곱 가지 일이니, 이 일곱 가지 일과 반야바라밀이 상응하는 것을 안다. 5음이 합치됨을 보지 않으며, 또 합치되지 않음도 보지 않는다. 또한 5음법이 생하는 것도 보지 않으며, 또한 5음법이 멸하는 것도 보지 않는다. 또한 5음법에 집착함을 보지 않고, 5음법이 또한 단절됨도 보지 않는다. 색(色)과 통(痛)이 합치되는 것도 보지 않으며, 통(痛)과 상(想)이 합치되는 것도 보지 않으며, 상(想)과 식(識)이 합치되는 것도 보지 않으며, 식과 행(行)이 합치되는 것도 보지 않는다. 왜냐하면 처음에 법과 법이 합치되는 것을 보지 않는 것은 성(性)이 본래 공하기 때문이다.
사리불이여, 색은 공하므로 색(色)이 아니며, 통․상․행․식도 공하므로 식이 아니다. 색이 공하므로 봄이 없으며, 통(痛)이 공하므로 지각함이 없으며, 상이 공하므로 생각함이 없으며, 행이 공하므로 작용함[行]이 없으며, 식이 공하므로 분별함[識]도 없다. 왜냐하면 색과 공이 동등하여 다름이 없기 때문이다. 어째서 그러한가? 색이 곧 공이고 공이 곧 이 색이기 때문이다. 통․상․행․식도 또한 공이며 공이 곧 식이며, 또한 생함도 보지 않고 멸함도 또한 보지 않는다. 또한 집착함도 보지 않으며, 또한 단절됨도 보지 않으며, 또한 중장됨도 보지 않으며 또한 감소됨도 보지 않는다. 과거․미래․현재도 아니며 또한 5음도 없다. 색․성․향․미․세활․법도 없고, 또한 안․이․비․설․신․의도 없으며, 또한 12인연도 없고, 4제(諦)도 없으며, 얻음에 이를 것도 없다. 수다원․사다함․아나함․아라한․벽지불도 없고, 또한 부처님도 없으며, 또한 도(道)라고 할 것도 없는 것이다.
이와 같이 사리불이여,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로써 마땅히 이러한 생각을 가져야 하며, 마땅히 이렇게 알아야 하며, 이렇게 상응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행을 하면 또한 상응하는 것도 보지 않으며, 또한 상응하지 않는 것도 보지 않는다. 6바라밀에서도 또한 합하는 것을 보지 않으며, 5음법과 나아가 신법(身法)도 합하는 것과 합하지 않는 것을 보지 않으며 37품(品)․부처님의 10종력(種力)․4무소외(無所畏)․부처님의 18법(法), 나아가 살운야법(薩云若法) 살바야(薩婆若), 범어로는 Saruajna, 줄여서는 살운(薩雲:薩云, 一切智)이라 번역하며, 불과(佛果)에서 일체법을 증득하는 지혜이다.
도 상응하는 것과 상응하지 않는 것을 보지 못한다.
그러므로 사리불이여, 보살은 반야바라밀과 상응함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또한 사리불이여,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 공과 합하지 않으며, 무상(無相)과 무원(無願)에 합하는 것도 아니며, 무상․무원이 공과 합하는 것도 아니다. 왜 그러한가? 공은 합하는 것도 보지 않으며, 또한 합하지 않는 것도 보지 않는다. 무상․무원도 이와 같은 것이다. 이것이 반야바라밀과 상응하는 것이다.
사리불이여, 보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 공의 법상(法相)을 건너서 5음과 합하지도 않고 합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 과거색(過去色)은 과거색과 합하지 않으며 또한 과거색은 볼 수 없다. 미래의 색[當來色]도 미래의 색과 합하지 않으며 또한 미래의 색은 볼 수 없다. 현재의 색도 현재의 색과 합하지 않으며 또한 현재의 색은 볼 수 없다. 통․상․행․식도 이와 같은 것이다. 왜냐하면 과거․미래․현재의 삼세 이름 모두가 공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처럼 합하는 것이 반야바라밀에 상응하는 것이다. 사리불이여, 보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 살운야법이 과거․미래․현재에 합하는 것을 보지 못하며, 과거․미래․현재도 보지 못한다. 보살은 마땅히 이와 같은 생각을 지어야 하며, 이와 같이 상응해야 한다.
또한 사리불이여, 살운야가 5음에 합하는 것도 보지 못하며, 5음이 살운야와 합하는 것도 보지 못한다. 살운야가 6정(情)과 합하는 것도 아니며 6정이 살운야와 합하는 것도 아니다. 색․성․향․미․세활․법이 살운야와 합하는 것이 아니며, 살운야도 색․성․향․미․세활․법과 합하는 것이 아니며, 또한 합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 이것이 반야바라밀과 상응하는 것이다.
사리불이여, 보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 단바라밀이 살운야와 합하는 것을 보지 못하며, 시바라밀․찬제바라밀․유체바라밀․선(禪)바라밀과 반야바라밀도 또한 살운야와 합하는 것을 보지 못하며, 또한 살운야와 6바라밀이 합하는 것도 보지 못한다. 또한 살운야와 37품․10력이 합하는 것도 보지 못하며, 37품․10력이 살운야와 합하는 것도 보지 못한다. 또한 살운야도 보지 못한다. 이것이 반야바라밀과 상응하는 것이다.
사리불이여,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 부처님도 또한 살운야와 합하지 않으며, 살운야도 또한 부처님과 합하지 않는다. 도(道)도 또한 살운야와 합하지 않으며 살운야도 또한 도와 합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살운야가 곧 부처님이고 부처님이 곧 살운야이며, 도가 곧 살운야이고 살운야가 곧 도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반야바라밀과 합하는 것이다.
또한 사리불이여, 보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 5음이 유(有)와 합하지 않으며 유 또한 5음과 합하지 않음을 안다. 5음은 또한 고락(苦樂)․유아(有我)․무아(無我)와 합하지 않으며 6정법(情法)도 이와 같다. 5음은 또한 공․무상․무원과 합하지도 않으며, 또한 합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 또한 행하는 것도 보지 못하며 행하지 않음도 보지 못한다. 보살은 마땅히 이와 같이 행하며, 이와 같이 상응해야 한다.
또한 사리불이여, 보살은 또한 반야바라밀을 위해서 단(檀)을 행하고 시(尸)를 행하고 찬(羼)을 행하고, 유체(惟逮)를 행하고 선(禪)바라밀을 행하는 것이 아니다. 또한 다섯 가지 바라밀을 위해서 반야바라밀을 행하는 것이 아니다. 또한 아유월치(阿惟越致)를 위해서 중생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며, 불국토를 청정하게 하기 위해서 반야바라밀을 행하는 것이 아니다. 또한 4무소외(無所畏)․4무애혜(無礙慧)․부처님의 10종력(種力)․18법불공(法不共)을 위해서 반야바라밀을 행하지 않는다. 또한 내공(內空)․외공(外空)․소유무소유공(所有無所有空)․공공(空空)․대공(大空)․필경공(畢竟空)을 위해서 반야바라밀을 행하는 것이 아니다. 또한 유위공(有爲空)․무위공(無爲空)․무저공(無底空)․제법상공(諸法相空)․일체제법공(一切諸法空)을 위해서, 또한 생공(生空)을 위해서, 또한 무생공(無生空)을 위해서, 또한 진공(眞空)을 위해서, 또한 위공(僞空)을 위해서, 또한 여여함[如]을 위해서, 또한 법성(法性)을 위해서 또한 진제(眞際)를 위해서 반야바라밀을 행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저 법이 파괴되는 것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사리불이여, 보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 신족(神足)․철시(徹視)․철청(徹聽)․지타인의(知他人意:누진통)․자지숙명(自知宿命:숙명통)을 위해서 반야바라밀을 행하는 것은 아니다. 왜 그런가? 반야바라밀을 행하면서 오히려 반야바라밀을 보지 않거늘, 하물며 어떻게 보살이 신통 등의 일을 보겠는가? 이것이 반야바라밀과 상응하는 것이다.
사리불이여, 반야바라밀을 행하는 보살은 마음으로 ‘나는 마땅히 신족(神足)으로 시방에 이르러 모든 부처님 세존을 뵈어야겠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또한 ‘시방의 모든 부처님 세존께서 설하신 법을 나는 마땅히 들어야겠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또한 ‘나는 마땅히 시방의 중생들이 마음속으로 생각하는 것을 다 알아야겠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또한 ‘나는 마땅히 헤아릴 수 없는 겁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알아야겠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또한 ‘시방의 중생들이 태어나고 죽는 곳[生死所趣]과 선악으로 인해 가는 곳[善惡之趣]을 보아야겠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것이 보살이 반야바라밀과 상응하는 것이다.
사리불이여, 보살이 스스로 ‘나는 마땅히 헤아릴 수 없는 아승기만큼의 사람들을 제도해서 반니원에 이르게 하겠다’고 생각한다면, 이것이 보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한 것이다. 보살이 이와 같이 행한다면 온갖 마군이 그 틈을 얻을 수 없고 모든 세간의 일에서 모두 항복받을 수 있다. 시방의 갠지스강의 모래 수처럼 많은 모든 부처님들이 모두 다 함께 이 보살을 옹호하여 성문․벽지불지에 떨어지지 않게 하고, 사천왕에서부터 위로 아가니타천에 이르기까지 모든 천들이 모두 함께 이 보살을 옹호하여 중도에 장애가 없게 한다. 이 보살의 몸에 중병이 있어도 현세에 낫게 된다. 왜냐하면 널리 중생들을 자비심으로 보살폈기 때문이다. 이것이 반야바라밀과 상응하는 것임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또한 사리불이여, 보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 속히 다란니와 모든 삼매문을 얻어서 다 앞에 나타나 있을 것이다. 태어나는 곳마다 항상 모든 부처님을 뵙고 도량에서는 항상 부처님을 여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이 반야바라밀과 상응하는 것이다. 보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 법이 합하는지 합하지 않는지, 평등한지 평등하지 않는지를 생각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 법이 합하는 것도 보지 않으며, 또한 법이 평등한 것도 보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이 반야바라밀과 상응하는 것이다. 보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 또한 나는 마땅히 법성(法性)을 빨리 깨달음에 이르러야 한다든가, 깨달음에 이르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법성이란 깨달음에 이르름이 없음이 이 합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사리불이여, 반야바라밀을 행하는 보살은 법과 법성이 구별된다고 보지 않으며, 또한 합한다고 보지도 않는다. 또한 법성은 약간 차별을 짓는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것이 보살이 일체에 모두 합하는 것이다. 법성에서 법이 나타난다고도 생각하지 않으며, 또한 나타나지 않는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처음부터 법성이 나타나는 것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합하는 것임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또한 사리불이여, 보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 법성은 공과 합하지 않으며, 공도 또한 법성과 합하지 않는다. 이것이 합하는 것이다. 6정(情)․18성(性)도 또한 공과 합하지 않으며, 또한 공도 6정․18성과 합하지 않는다. 법성도 공과 합하지 않으며, 공도 또한 법성과 합하지 않는다. 사리불이여, 이와 같이 공과 합하는 것을 제일이라고 한다. 공을 행하는 보살은 성문․벽지불지에 떨어지지 않으며, 불국토를 청정하게 하며, 중생을 가르치고 속히 성불에 이르게 된다. 사리불이여, 모든 존재하는 상응 중에서 반야바라밀과 상응하는 것이 존귀하며 제일의 상응이니, 그 이상이 없다. 왜냐하면 이것은 공․무상․무원․무상정진(無上正眞)과 상응하기 때문이다.
사리불이여, 이와 같이 행하면 이 보살은 이미 수기[莂]를 받았고 도량에 근접한 것임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이와 같이 행하면 헤아릴 수 없는 아승기만큼의 사람들에게 이익을 두텁게 할 수 있다. 보살은 또한 ‘나는 반야바라밀과 상응했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또한 ‘모든 부처님 세존께서는 마땅히 나에게 수기를 내릴 것이다’라고 생각하지 않으며, 또한 ‘나는 수기를 받아서 오래지 않아 불국토를 청정하게 하겠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또한 ‘나는 마땅히 성불해서 법륜을 굴리겠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저 법성과 일체는 분별[別]이 없으며 또한 법이 있는 것도 보지 못하며,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 모든 부처님께서 설하시는 바가 아뇩다라삼야삼보를 위함을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무슨 이유인가? 보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 처음부터 중생상(衆生想)이 생기는 것을 보지 못했고, 또한 중생상이 멸하는 것도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모든 중생들이 처음부터 일어나고 멸하는 것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모든 중생들이 생(生)하는 것도 보지 못했는데, 오히려 어떻게 생멸이 있음을 보겠는가? 어떻게 반야바라밀을 행해야 하는가? 보살이 이와 같이 행하는 것은 반야바라밀을 행하기 위해서이다. 중생상을 일으키지 않으며, 중생상이 공한 것이라 여기지 않으며, 중생행(衆生行)도 보지 않으며, 중생행이 다른 것도 아니라고 여긴다. 이것이 보살이 제일의 공[第一空]을 행하는 것이며, 보살이 이 가운데 머무는 것은 모두 집합하기 위함이며 대중은 모아서 그 가운데에 머문다. 보살이 이와 같이 머무는 것은 대자대비에 처하기 위함이다. 그러므로 질투하고 자만하는 뜻이 없으며, 어지럽고 게으른 뜻이 없으며, 성내어 분한 뜻이 없으며, 악한 뜻을 일으키지 않으며, 악한 지혜의 뜻을 일으키지 않는다.
방광반야경 제2권
서진 우전국 무라차 한역
4. 학오안품(學五眼品)
사리불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과 상응하면 어디에서 와서 이 세상에 태어나며, 이 세상에서 죽어서 다시 어디에 태어납니까?”
부처님께서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보살로서 반야바라밀과 상응하면 도솔천상에서 와서 이 세상에 태어났으며, 혹은 타방 불국토에서 와서 이 세상에 태어났으며, 혹은 인도(人道) 중에 와서 이 세상에 태어났다. 도솔천으로부터 온 사람은 마침내 반야바라밀을 잃지 않고 모든 다린니(陀隣尼)와 모든 삼매문과 모든 중지문(衆智門)이 빠짐없이 모두 앞에 나타나게 된다. 타방 불국토에서 온 사람은 곧 빨리 반야바라밀을 이룬다. 그 지혜 가운데서 나날이 증익되어 모든 심오한 법요(法要)가 드러나서 앞에 나타나게 된 후에는 반야바라밀을 이룰 수 있는 것이다. 태어나는 곳마다 항상 모든 부처님들을 뵙고 모든 부처님들을 여의지 않게 되는 것이다. 인도로부터 온 사람은 이 보살이 아직 아유월치(阿惟越致)에 이르지 못하며 모든 감관[根]이 어둡고 둔하여 빨리 반야바라밀을 얻을 수 없으며, 바로 다린니문을 볼 수 없다.
사리불이여, 그대는 보살이 반야바라밀을 익히고 행하면 이 세상에서 죽어서 어느 곳에 태어나느냐고 물었다. 이 보살은 마땅히 타방 불국토에 태어나게 되고, 한 불국토로부터 다시 다른 한 불국토에 이르기까지 항상 모든 부처님들을 뵙고 모든 부처님 세존을 여의지 않게 될 것이다. 또 어떤 보살은 구화구사라(漚惒拘舍羅) 범어로는 upāyakauśalya, 10바라밀의 제7 방편선교(方便善巧)․방편승지(方便勝智)라 번역한다.
가 없이 4선(禪)에서부터 6바라밀을 행하였다. 이 선복(禪福)으로 장수천(長壽天)에 나서 천수를 다하지 않고 이 세간에 와서 태어나 모든 부처님을 공양한다. 그러나 이 보살의 무리는 모든 감관[根]이 어둡고 둔하여 크게는 총명하지 못하다.
사리불이여, 또 어떤 보살은 4선(禪)과 4등의(等意)․4무형선(無形禪)을 행하고, 37품(品)과 대자대비를 생각하며 구화구사라를 가져서 그 선복에 머물러 있을 수 없지만 항상 부처님 처소에 나서 가르침을 받을 것이다. 마땅히 발타겁(拔陀劫) 파타겁(波陀劫)이라고도 쓴다. 범어로는 Bhadrakalpa, 현겁(賢劫)이라 번역한다.
중에 나서 깨달음을 이루어 항상 반야바라밀을 여의지 않을 것이다. 또 어떤 보살은 4선과 4등의․4무형정(無形定)을 행하고 구화구사라로써 선(禪)을 따라 태어나지 않고 종성대호(種姓大豪)의 귀한 집안에 태어나거나, 범지(梵志)의 집안에 태어나거나, 가라월(迦羅越)의 집안에 태어나고, 출생할 수 있는 곳마다 항상 중생을 가르치게 된다. 또 어떤 보살은 4선과 4등의․4무형정을 행하고 구화구사라를 가지나 선에 머물러 있지 않고 사왕천(王天)에 태어나거나, 도리천(忉利天)에 태어나거나 제6천(第六天)에 태어나고 항상 모든 하늘을 가르치고 불국토를 깨끗이 한다. 중생을 가르치고 모든 부처님들을 받들어 모신다. 또 어떤 보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하고 구화구사라로써 제1선(第一禪)을 행하면 범천에 태어나 범천 중에서 존경을 받고, 범천에서 시방의 모든 부처님들이 법륜을 굴리는 곳에 이르러 모든 부처님 세존들에게 청하여 법륜을 굴리게 한다. 또 일생보처(一生補處)로 태어난 보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하고 구화구사라로써 4선을 구족하며, 4등의․4무형정․37품․공․무상․무원을 구족하고 삼매를 구족하였으나 선처(禪處)를 따르지 않고 항상 모든 부처님들을 뵙고 세존을 함께 섬기며, 청정행을 가져 문득 도술천(兜術天)에 나서 천상에서 그 수명이 다할 때까지 모든 감관[根]이 구족하여 무앙수 모든 천인들과 권속들에게 둘러싸여 그들을 위해서 설법을 한다. 다시 세간 사람으로 태어나 아유삼불(阿惟三佛)을 이루게 된다.
사리불이여, 또 어떤 보살은 6신통을 얻어 욕계(欲界)․형계(形界)․무형계(無形界)에 태어나지 않고 한 불국토에서 다른 한 불국토에 이르기까지 모든 부처님들을 예배하고 섬기게 된다.
또 어떤 보살은 6신통을 얻어 모든 불국토를 유람하며, 그 이르는 곳마다 성문․벽지불의 가르침이 없을 것이다. 또 어떤 보살은 6신통을 가지고 모든 불국토에 태어나 그 수명이 무량하며 그 나라에 왕생하게 된다. 또 어떤 보살은 6신통으로 모든 불국토를 유람하다가 부처님께서 계시지 않는 곳에 이르러서 그 국토에서 불(佛)․법(法)․중(衆)을 찬탄하고 그 중생으로 하여금 3존(尊)의 공덕을 듣게 하며 다 들은 후에는 환희하여 모두가 모든 불국토에 왕생하게 된다. 또 어떤 보살은 처음 뜻을 일으킬 때 4선을 얻고 4청정(淸淨)․4무형정․37품 나아가 부처님의 18법(法)을 얻는다. 그리고 삼계에 태어나지 않고 항상 중생을 이익되게 하는 곳에 태어나게 된다. 또 어떤 보살은 6바라밀을 행하여 처음 뜻을 일으킬 때 곧 보살위(菩薩位)에 오르고 아유월치지에 이르게 된다. 또 어떤 보살은 처음 뜻을 일으킬 때 곧 아유삼불을 얻고 법륜을 굴리어 무수한 억백천 중생들을 이롭게 한 후 무여계(無餘界)에서 반니원(般泥洹)에 든다. 그 법은 혹 반 겁이나 1겁 동안 머물게 된다. 또 어떤 보살은 도의 뜻을 발하여 문득 반야바라밀과 상응하며, 모든 무수한 억백천의 모든 보살들과 함께 모든 불국토를 유람하며 모든 불국토를 깨끗이 한다. 또 어떤 보살은 6바라밀․4선․4등을 행하여 4무형정(無形定)에 이르면 모두 그 가운데서 스스로 즐거워하면서 4선에 머문다. 4선에서 일어나 해탈선(解脫禪)에 이르고, 해탈선에서 일어나 무형정에 이르고, 무형정에서 일어나서 해탈선에 들어가고, 해탈선에서 일어나서 무사상혜선(無思想慧禪)에 이른다. 다시 여기에서 일어나 또 해탈에 들어간다. 구화구사라로써 포거사삼매(蒲佉闍三昧)에 들어간다. 이것이 반야바라밀을 행하는 것이다. 또 어떤 보살은 37품과 나아가 부처님의 18법으로써 성문․벽지불의 증득을 취하지 않는다. 또 어떤 보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하며 구화구사라로써 37품에 들어가서 모든 작은 도(道)를 발한 자로 하여금 각각 제도받게 한다. 제유(諸有)의 성문과 벽지불이 얻은 도의 지혜[道慧]는 모두 보살의 인(忍)이다. 반야바라밀을 행하는 자는 이것이 아유월치라는 것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사리불이여, 또 어떤 보살은 6바라밀을 행하여 도술천에 태어나니, 발타겁 중에 있는 모든 보살들임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또 어떤 보살은 4선복(禪福)과 나아가 부처님의 18법에 이르기까지 행하며 도의 뜻이 있었으나 믿고 수지하지 못했는데, 이 보살은 곧 일생보처임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또 어떤 보살은 6바라밀을 행하며 한 불국토에서 다른 한 불국토에 이르러 중생을 세워서 그들로 하여금 이 도량에 이르게 한다. 이 보살은 처음 뜻을 일으킨 이래로 무수한 아승기겁에 성불할 것임을 알아야 한다. 또 어떤 보살은 6바라밀을 행하며 중생을 위하는 까닭에 그들에게 유익하지 않은 일은 설하지 않는다. 또 어떤 보살은 6바라밀을 행하며, 중생을 위하는 까닭에 한 불국토에서부터 다른 한 불국토에 이르기까지 3악취(惡趣) 지옥․아귀․축생.
를 단절시킨다. 또 어떤 보살은 6바라밀을 행하며 항상 혜시(惠施)로써 일체를 안락하게 해준다. 코끼리․말․수레를 타고자 하면 타게 하고, 옷을 입고자 하면 입게 하고, 재산․곡식․나라․성읍․진주․보배도 모두 베풀어 준다. 또 어떤 보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하며 스스로 부처님 형상처럼 변화하여 3악취에 들어가서 그들의 말을 따라서 설법하여 모두 해탈하게 한다. 또 어떤 보살은 6바라밀을 행하며 변신하여 부처님과 같이 시방에 두루 가서 중생을 가르치고 불국토를 청정하게 하고, 이미 시방에 이르러서는 모든 부처님의 위의와 법칙의 좋고 추함, 청정하고 더러움을 빠짐없이 관하여 곧 스스로 가장 미묘하고 최고로 존귀하고 뛰어나며 특이한 국토를 일으켜 일승교(一乘敎)의 모든 일생보처 보살로 순수하게 한다. 또 어떤 보살은 6바라밀을 행하는데 문득 대사(大士)의 32상(相)을 구족하고 모든 감관[諸根]이 특이하여 보는 중생들이 존경하고 환희하지 않음이 없다. 그 환희함으로 인해 삼승법으로 제도하여 반니원하게 한다.
사리불이여, 보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하려면 먼저 마땅히 몸과 입과 뜻을 청정하게 하는 것을 배워야 한다. 곧 모든 감관이 특이함을 얻어야 하고, 이미 특이함을 얻었으면 또한 스스로 높이지도 말고 또한 다른 사람을 업신여기지도 말아야 한다. 또 어떤 보살은 처음 뜻을 일으킨 때부터 단(檀:보시)바라밀과 시(尸:지계)바라밀을 행하고 나아가 아유삼불을 이룰 때까지 처음부터 3악취에 떨어지지 않는다. 또 어떤 보살은 처음 뜻을 일으킬 때부터 아유월치에 이르기까지 처음부터 10선(善)의 행을 잊거나 버리지 않는다. 또 어떤 보살은 단․시 바라밀을 행하여 차가월라(遮迦越羅)가 되어 중생을 교화하고 10선을 건립한다. 소유한 재보(財寶)로 중생에게 보시를 베푼다. 또 어떤 보살은 단․시 바라밀을 행하여 억백천 차가월라가 되어 항상 모든 부처님들을 공양하며 공경한 마음으로 계시를 받는다. 또 어떤 보살은 6바라밀을 행하며 모든 중생을 위해서 밝게 법화(法化)를 비추고, 나아가 아유삼불에 이를 때까지 밝게 비춤을 여의지 않는다. 그러므로 보살은 항상 불법을 밝히며 이것이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하는 것이다. 보살행은 항상 신(身)․구(口)․의(意)를 조심스레 거둬들여 선한 일이 아닌 것을 망령되이 일어나지 않게 하는 것이다.”
사리불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어떤 것을 보살이 신․구․의를 거둬들이는 것이라고 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보살은 마음속으로 신․구․의를 지키지 않으면 모든 나쁜 인연이 이들로써 죄되는 일을 짓는다고 생각한다. 보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하면 신․구․의를 보지 않으며, 비록 신․구․의가 있어도 마침내 질투와 성냄과 삿된 견해가 없으며, 양설(兩舌)․악구(惡口)․망언(妄言)․기어(綺語)가 없으며, 살생․투도[盜]․사음[婬]이 없으며, 게으르고 교만의 뜻이 없다. 처음부터 악한 지혜로 생기는 일들은 일으키지 않는다. 만약 어떤 보살이 모든 악한 일들을 거두어들이지 못한다면 보살이 아니다. 또 어떤 보살이 6바라밀을 행하려면 몸의 악행을 제거해야 하며, 입의 악한 말을 하지 않아야 하며, 뜻[意]의 악한 생각을 제거해야 한다.”
사리불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어떻게 하면 보살이 신․구․의를 제거할 수 있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보살은 신․구․의에 의지하지 않으므로 능히 제거할 수 있다. 보살은 처음 뜻을 일으킨 이래로 항상 10선을 받든다. 그러므로 모든 성문․벽지불보다 뛰어나다. 보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하려면 불도(佛道)를 청정하게 하고 6바라밀을 청정하게 해야 한다.”
사리불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어떤 것을 보살이 불도를 청정하게 하는 것이라고 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보살은 신․구․의에 의지하지 않으며, 6바라밀에 의지하지 않으며, 나한․벽지불에 의지하지 않으며, 보살에 의지하지 않으며, 또한 부처님께도 의지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일체법은 의지할 것이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보살도(菩薩道)인 것이다. 사리불이여, 또 어떤 보살이 하나하나 모두 바라밀을 행하므로 능히 굴복시킬 자가 없다.”
사리불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무슨 까닭에 보살이 6바라밀을 행할 때 능히 굴복시키는 자가 없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보살이 6바라밀을 행할 때 5음(陰)과 6정(情)의 생각이 없으며, 색․성․향․미․세활(細滑)․법의 생각이 없으며, 18성(性)의 생각이 없으며, 37품(品)의 생각이 없으며, 6바라밀의 생각이 없으며, 부처님의 10종력(種力)․4무소외(無所畏)․부처님의 18법불공(法不共)의 생각이 없으며, 성문․벽지불의 도의 생각이 없으며, 부처님의 도의 생각이 없으며, 아뇩다라삼야삼보의 생각이 없다. 이와 같이 사리불이여, 보살이 6바라밀을 행할 때 공덕이 점점 늘어가므로 굴복시킬 자가 없는 것이다. 또한 사리불이여, 보살은 반야바라밀에 머물러 살운야(薩云若:一切智)를 구족하고 모든 지혜로써 악취(惡趣)에 떨어지지 않고, 빈천(貧賤) 중에 떨어지지 않고, 타고난 신체는 모든 감관[根]이 구족하여 사람들이 증오하지 않고 항상 모든 천과 아수륜(阿須倫:아수라)이 경애(敬愛)한다.”
사리불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어떤 것이 보살마하살의 지혜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보살은 지혜를 구족함으로써 갠지스강의 모래 수처럼 많은 모든 부처님 세존들을 다 뵙고, 모든 세존으로부터 법의 가르침을 듣고 받으며 모든 부처님 덕호(德好)의 법을 빠짐없이 듣는다. 지혜를 얻은 보살은 부처님이라는 생각[佛想]이 없으며, 보살이라는 생각[菩薩想]도 없으며, 성문․벽지불이라는 생각도 없으며, 아상(我想)도 없으며, 인상(人想)도 없으며, 모든 불국토라는 생각[佛國想]도 없다. 이러한 지혜로 행하는 보살은 단바라밀을 행하되, 또한 단(檀)도 보지 않으며 또한 반야바라밀이란 것도 보지 않는다. 37품을 행하되 또한 37품의 이름도 듣지 않으며 또한 부처님의 18법도 보지 않는다. 사리불이여, 이것이 보살의 지혜이다. 이 지혜로써 모든 법을 구족하되, 또한 일체의 모든 법을 보는 것을 자랑하지 않는다. 반야바라밀을 행하는 보살은 5안(眼), 즉 육안(肉眼)․천안(天眼)․혜안(慧眼)․법안(法眼)․불안(佛眼)을 청정하게 한다.”
사리불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무엇이 보살이 육안을 청정하게 하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어떤 보살은 육안으로써 백 유순(踰旬) 성왕(聖王)의 하루 동안의 행정(行程). 인도 잇수(里數)의 단위.
을 보거나 2백 유순을 본다. 어떤 보살은 육안으로써 한 염부제(閻浮提) 수미사주(須彌四洲)의 하나.
를 보기도 하고, 두 개의 염부제를 보기도 하고, 사천하를 보기도 한다. 어떤 보살은 육안으로써 천 세계를 보고, 2천 세계를 보기도 하며, 3천 세계를 보기도 한다. 이것이 보살이 육안을 청정하게 하는 것이다.”
사리불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무엇을 천안(天眼)이라고 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보살은 천안으로써 사왕천상(四王天上)에 있는 것을 보고 빠짐없이 인식하고 빠짐없이 안다. 도리천에서부터 제6천에 이르기까지 나아가 아가니타천(阿迦膩吒天) 색구경(色究竟)이란 뜻. 색계18천 중 최상천의 명칭.
에 이르기까지 보살은 빠짐없이 보고 모두 인식하고 빠짐없이 안다. 사왕천상에서부터 아가니타천에 이르기까지 이 모든 천인들은 보살이 천안으로 보는 것을 모두 인식하지 못하고, 알지 못하며, 보지 못한다. 보살은 천안으로 시방의 갠지스강의 모래 수처럼 많은 세계들을 빠짐없이 보고 중생들의 생사와 선악의 일들을 빠짐없이 보고 빠짐없이 안다. 이것이 보살이 천안을 청정하게 하는 것이다.”
사라불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무엇이 보살이 혜안을 청정하게 한다고 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보살의 혜안은 유위법(有爲法)․무위법(無爲法)․도법(道法)․속법(俗法)이라는 생각으로 짓지 않는다. 혜안의 보살은 보지 못하는 법이 없고, 듣지 못하는 법이 없으며, 모르는 법이 없고, 깨닫지 못하는 법이 없다. 이것이 보살이 혜안을 청정하게 하는 것이다.”
사리불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무엇을 보살이 법안의 청정함[法眼淨]을 얻었다고 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보살은 법안으로써 다음과 같이 보는 것이다. 이 사람은 믿음이 견고하여 법에 견고하게 머문다. 이 사람은 무상(無相)과 무원(無願)의 해탈을 얻어서 5근(根)에서 중지하지 않는 정[不中止定]을 세우며 중지하지 않는 정에서 해탈혜(解脫慧)를 이룬다. 이 해탈혜로써 세 가지 장애[三礙], 즉 유신애(有身礙)․유호의애(有狐疑礙)․유사신애(有邪信礙)를 제도한다. 이 세 가지 장애를 제도하면 수다원(須陀洹)을 얻고, 곧 득도하여 음욕․성냄․어리석음에 대한 생각이 엷어지면 사다함(斯陀含)을 얻고, 도에 부지런히 정진하여 음욕․성냄․어리석음을 물리치면 아나함(阿那含)을 얻는다. 곧 다섯 가지 애[五愛], 즉 첫째는 색애(色愛), 둘째는 무색애(無色愛), 셋째는 치애(癡愛), 넷째는 한려애(恨戾愛), 다섯째는 난지애(亂志愛)가 사라진다. 이것을 제도하면 곧 나한(羅漢)을 얻는다. 이와 같이 공을 행한 보살은 곧 공해탈[空脫]을 얻어서 곧 5근을 이루고 중지하지 않는 선[不中止禪]에 빨리 근접하여 나한도에 이르게 된다. 이 사람은 이미 무상해탈(無相解脫)을 얻어 5력(力) 나아가 나한을 체득한 것이다. 이것이 보살이 법안정(法眼淨)을 얻은 것이다. 보살이 생법(生法)이 곧 멸법(滅法)인 줄을 알면 곧 5근을 체득한다. 이것이 보살이 법안정을 얻은 것이다. 보살이 뜻을 발하여 단바라밀에서부터 반야바라밀에 이르기까지 신근(信根)․정진판근(精進辦根)․구화구사라근(漚惒拘舍羅根)을 구족하고 이 세 근(根)과 모든 공덕을 가지게 되면 곧 왕자의 집안․대종성(大種姓)의 집안․범지의 집안․가라월의 집안에 태어나고, 사천왕상에서부터 제6천에 태어난다. 그 가운데서 중생을 교화하고 양육하며 그 즐거워하는 바를 따르고 불국토를 청정하게 하고 모든 부처님들을 예배하고 섬기어 성문․벽지불에 떨어지지 않으며, 마땅히 삼야삼불(三耶三佛)을 이룬다. 이것이 보살이 법안정을 얻은 것이다. 법안의 보살은 일체를 빠짐없이 안다. 부처님으로부터 수기를 받았는지 수기를 받지 못했는지를 알고, 활동하여 돌이킬 수 있는지 활동하여 돌이킬 수 없는지를 알고, 신통을 구족했는지 하지 않았는지를 안다. 이미 신통을 구족하여 모든 세계들을 유람하여 모든 부처님들을 예배하고 섬기는지 아직 그렇지 못한지, 불국토의 청정을 얻었는지 청정하게 하지 못하는지를 안다. 보살이 중생을 교화하는지, 중생을 교화하지 못하는지를 안다. 보살이 모든 부처님께 칭예(稱譽)를 받는지, 칭예받지 못하는지를 안다. 보살이 모든 부처님들과 친근한지, 친근하지 않은지를 안다. 보살이 성불할 때 그 제자 무리인 모든 보살들의 수가 무한한지, 유한한지를 안다. 이 보살이 성불할 때 모든 보살들이 스님이 되는지, 보살이 스님이 되지 않는지를 안다. 보살이 부지런히 고행하여 성불할 것인지, 부지런히 고행하지 않고 성불할 것인지를 안다. 보살이 일생보처(一生補處)인지, 보처가 아닌지를 안다. 보살이 도량에 이르는지, 도량에 이르지 못하는지를 안다. 보살이 나무 아래 앉아서 마군을 항복시키는지, 마군을 항복시키지 못하는지를 안다. 이러한 모든 일들을 하나하나 빠짐없이 알면 이것이 보살이 법안정을 얻은 것이다.”
사리불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무엇을 보살이 불안정(佛眼淨)을 얻었다고 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이미 금강삼매를 얻었으며, 살운야(薩云若)․부처님의 10종력(種力)․4무소외(無所畏)를 얻었으며, 4등심(等心)․18불공(不共)․대자대비를 행하면 이 보살의 눈은 모든 법과 모든 일들을 본다. 보지 못하는 일이 없고 듣지 못하는 소리가 없고 알지 못하는 사물이 없고 깨닫지 못하는 법이 없다. 사리불이여, 이것이 보살이 아유삼불을 얻는 것이며 최상의 정각안(正覺眼)을 얻는 것이다. 보살이 5안(眼)이 청정함을 얻고자 하면 마땅히 6바라밀을 익혀야 한다. 왜냐하면 모든 선법이 빠짐없이 6바라밀 가운데 있기 때문이다. 모든 보살들․성문․벽지불의 법과 모든 법 등이 반야바라밀보다 뛰어난 것은 없다. 반야바라밀은 5안의 어머니이다. 보살이 이 5안을 배우면 빨리 아유삼불을 이룰 것이다.”
5. 도오신통품(度五神通品)
“또한 사리불이여, 보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하려면 마땅히 5신통을 구족하여 제도할 것을 생각해야 한다. 모든 보살의 무량한 신족(神足)을 체득하면 능히 천지를 움직일 수 있고 무수히 변화하되 다시 합하면 하나가 된다. 명확하게 보아 걸림이 없어 석벽도 모두 지나갈 수 있다. 비유하면 새가 나는데 걸림이 없는 것과 같다. 능히 물을 밟고 허공을 밟으며 몸이 물과 불 속에서 나오며 손으로 일월을 휘어잡으며 몸은 범천에 이르다. 이 신통이 있되, 스스로를 높이지 않고[貢高], 높이는 것을 보지 않는다. 본래 공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누가 능히 신족을 일으키는가? 오직 살운야(薩云若)를 얻은 자만이 능히 일으킬 수 있다.
사리불이여, 보살이 반야바라밀을 배워 이미 신족을 증득하였으므로 귀로는 명확하게 들어 모든 천인(天人)의 귀보다 뛰어나다. 비록 명확하게 들음을 얻었지만 또한 높이지 않고 유․무 가운데서 얻을 것이 없음을 깨달으며, 유공(有空)․무공(無空)에서 생하는 것이 없음을 안다. 보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해서 천이혜(天耳慧)의 신통을 증득한다. 능히 다른 사람이 마음속으로 생각하는 것을 알며, 음욕․성냄․노여움이 있는지 음욕․성냄․노여움이 없는지도 알며, 애욕의 뜻이 있는지 애욕의 뜻이 없는지도 알며, 유(有)가 있는지도 알고 무(無)가 없는지도 알며, 어지러운 뜻이 있는지 어지러운 뜻이 없는지도 안다. 많은지 적은지를 알며, 정의(定意)가 있는지 정의가 없는지도 알며, 해탈이 있는지 해탈이 없는지도 알며, 높은지 낮은지도 안다. 비록 이와 같이 다 알지만 스스로 높이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 뜻은 뜻이 아니기 때문이며, 뜻이 불가사의(不可思議)하기 때문이다. 신통이 멸하여 숙명을 증득하여서 하나의 뜻부터 백 가지 뜻에 이르기까지 알며, 일 일(日)에서 백 일에 이르기까지 일 월(月)에서 백 월에 이르기까지, 일 년에서 백 년에 이르기까지, 일 겁(劫)에서 백 겁에 이르기까지, 무수한 백 겁에서 무수한 천 겁에 이르기까지, 무수억 백천 나술(那術)에 이르기까지 빠짐없이 안다. 스스로 이름과 종족, 행하고 익힌 것, 수명의 길고 짧음, 고통과 즐거움을 받은 것을 안다. 그리고 여기서 죽어서 저기서 태어나고, 저곳으로부터 이곳에 태어남을 알고, 행하는 일과 위의와 예절을 모두 안다. 또 신통을 가졌다고 스스로 높이지 않는다. 보살이 이와 같이 배우는 것을 반야바라밀을 배우는 것이라고 한다. 신통으로써 밝게 숙명(宿命)을 안다. 천안(天眼)으로써 중생이 태어나고 죽을 때 나아가는 선악의 처소와 얻는 지위의 높고 낮음이 각각 본래의 행을 따르는 것을 본다. 몸으로 악을 행하고, 입으로 악을 말하고, 뜻으로 악을 생각하고, 성현을 비방하고, 그릇되고 전도된 견해를 믿어, 이 사견(邪見)의 인연으로써 스스로 그 몸을 무너뜨리고 죽어서는 지옥에 떨어진다. 사람 몸을 받아서 선하게 말하고 뜻도 또한 선하며 성현을 비방하지 않고 정견(正見)을 믿고 행하면 천상에 태어난다. 능히 시방의 중생들, 나아가 5도(道)를 본다. 이와 같이 보아 그 하나의 신통한 덕으로 시방을 모두 본다. 지닌 신통이 멸한 누진(漏盡)을 증득하여 성문․벽지불의 도를 취하지 않고, 다른 법을 가지지 않고 마땅히 아유삼불을 이룬다. 신통과 누진을 증득했으나 스스로 높이지 않는다. 보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하여 신통을 구족하고 그 공덕이 점점 증상(增上)해 가서 나아가 아유삼불을 이루게 된다.
어떤 보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 단바라밀에 머물러서 살운야의 자취와 헤아리는 공을 깨끗이 없애서 여우같이 의심내는 것이 없다. 보살이 시바라밀에 머물러서 살운야의 자취를 깨끗이 없애고 죄와 복을 의심하지 않으니, 공하여 일어난 바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리불이여, 어떤 보살은 찬바라밀 중에 머물러서 설운야의 자취를 깨끗이 없애니, 공이어서 성내는 마음을 일으키지 않는다. 보살은 유체(惟逮:정진)바라밀에 머물러서 살운야의 자취를 깨끗이 없애고 몸으로 정진을 행하여 게으른 마음을 일으키지 않는다.
보살이 선바라밀에 머물러서 살운야의 자취를 깨끗이 없애서 선정에 드는 뜻[定志意]을 일으키지 않는다. 보살이 반야바라밀에 머물러서 살운야의 자취를 깨끗이 없애서 어리석음이 일어나지 않는다. 보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 6바라밀에 머물러서 설운야의 자취를 깨끗이 없애고, 공으로부터 오고 가며 의심하지도 않고, 범(犯)하지도 않고, 성내지도 않고 인욕하지도 않고, 정진하지도 않고 게으르지도 않고, 안정되지도 않고 산란하지도 않고, 지혜롭지도 않고 어리석지도 않고, 또한 베풀지도 않고, 또한 탐심이 있지도 않고, 계를 지키지도 않고 어기지도 않고, 나아가지도 않고 물러가지도 않고, 인욕하지도 않고 성내지도 않고, 안정되지도 않고 산란하지도 않고, 지혜롭지도 않고 어리석지도 않고, 비방하지도 않고 칭찬하지도 않고, 유위(有爲)도 아니고 무위(無爲)도 아니다.
이와 같이 사리불이여, 생기는 법도 없고, 꾸짖을 것도 없고 찬탄할 것도 없고, 유위도 없고 무위도 없다. 이것이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하는 것이다. 이 기특한 덕을 얻었으므로 모든 성문․벽지불들이 능히 미치지 못한다. 이 구족한 덕으로써 중생을 교화하고 불국토를 청정하게 한다.”
6. 수결품(授決品)
“또 사리불이여, 보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 모든 사람들에 대하여 평등한 뜻을 일으키고, 평등한 뜻을 일으킨 이후에는 곧 일체의 법이 평등함을 얻고, 모든 법이 평등함을 얻었으면 곧 일체 법에 대해 뜻을 평등하게 할 수 있다. 현재에 모든 불․보살․나한․벽지불로부터 애경(愛敬)을 받으며 태어나는 곳에서 눈으로는 마침내 악한 존재[色]를 보지 않고, 뜻에도 처음부터 악한 생각이 없다. 반야바라밀을 행하는 보살은 마침내 아뇩다라삼야삼보에서 조금도 감해지지 않는다.”
그때 반야바라밀행을 설할 때 좌중(坐中)에 3만 비구가 있었는데, 몸에 입고 있던 옷을 모두 부처님께 올리고 위없는 바르고 참된 도[無上正眞道]의 뜻을 발하였다. 그때 부처님께서 미소를 지으시니, 아난이 자리에서 일어나 의복을 단정히 하고 오른쪽 무릎을 땅에 대고 합장한 채 부처님께 아뢰었다.
“부처님께서는 망령되이 미소를 지으시지 않으시니, 마땅히 이 모임에 어떤 뜻이 있습니까?”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여기에 있는 3만 비구들은 수명이 다하면 아촉불국(阿閦佛國)에 태어날 것이다. 그 후 62겁이 지나면 마땅히 부처를 이루어 명호를 성문지두(聲聞支頭)라고 할 것이다. 다시 6만 욕계의 천자[欲天子]들은 모두 미륵부처님 전에 태어나고 모두 마땅히 출가하여 사문이 될 것이다. 부처님의 위신력으로 모임에 모인 자들은 동방의 천 분의 부처님들과 4부 대중과 모든 시방의 각각 천 분의 부처님께서 나타나심을 보게 하였다.
그때 사하루타(沙訶樓陀) 찰토는 저 불국토처럼 장엄되고 청정하지 않았다. 그때 좌중에는 만 명이 있었는데 모두 ‘우리들은 모두 마땅히 공덕을 지어서 저 청정한 국토에 태어날 것입니다’라고 발원하였다. 그때 부처님께서는 선남자들의 뜻과 생각하는 바를 아시고 다시 미소를 지으셨다.”
아난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원하옵건대 미소지으신 뜻을 듣고 싶습니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이 만 명의 사람들을 보았느냐?”
아난이 말하였다.
“예, 세존이시여, 이미 보았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이 만 명의 사람들은 수명을 마치게 되면 모두 마땅히 저 모든 불국토에 왕생하여 모든 부처님 세존들을 여의지 않을 것이다. 그 후에는 마땅히 부처가 되어 명호를 장엄왕(莊嚴王) 여래․무소착․등정각이라고 할 것이다.”
7. 묘도품(妙度品)
그때 존자 사리불․마하목건련․수보리․마하가섭과 모든 대신통 비구들, 또 나머지 대신통 보살마하살, 모든 우바새와 우바이가 함께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반야바라밀은 보살마하살의 가장 큰 도[最大度]이며, 뛰어난 도[上度]이며, 미묘한 도[妙度]이며, 위없이 존귀한 도[無上尊度]입니다.
세존이시여, 변재의 도(度)이며, 동등함이 없고 또 동등함이 없음도 없는 도(度)이며, 법도(法度)이며, 공도(空度)이며, 공하여 모양이 없는 도[空無相度]이며, 모든 법이 공한 도[諸法空度]이며, 유무가 공한 도[有無空度]이며, 모든 덕과 공을 구족한 도[具足諸德空度]입니다. 세존이시여, 모든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 그 공덕이 널리 구족하여 능히 굴복시킬 사람이 없습니다. 세존이시여, 보살마하살에게 반야바라밀의 공덕을 이루게 하여 반야바라밀을 행하는 보살은 무등등(無等等)의 보시를 이미 행하였습니다. 동등함이 없이 갖가지를 구족한 것이 단바라밀입니다. 신체도 갖가지여서 동등함이 없으며, 이미 동등함이 없는 이익을 얻었으면 이 반야바라밀을 행하여 아유삼불을 이루어야 합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도 또한 다시 반야바라밀을 행하시어 갖가지 동등함이 없는 법의 근본과 갖가지 동등함이 없는 욕의 근본[欲本]과 갖가지 동등함이 없는 5음(陰)의 이익으로 위없는 법륜을 굴리십니다. 과거와 미래의 모든 부처님 세존들께서 반야바라밀을 행하는 것도 이와 같으며, 또한 위없는 법륜을 굴리십니다. 세존이시여, 모든 보살마하살이 모든 법을 득도하고자 하면, 피안에서도 마땅히 반야바라밀을 익히고 행해야 합니다. 세존이시여, 어떤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하면 모든 천․용․귀신과 모든 아수륜․세간 백성은 모두 마땅히 예배할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모든 대회(大會)에 있는 비구와 모든 보살들에게 말씀하셨다.
“선남자․선여인으로 반야바라밀을 행하는 자에게는 마땅히 예배해야 한다. 모든 천․용․신들이 모두 마땅히 예배할 것이다.”
부처님께서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세간에는 보살마하살이 있고, 모든 천제왕과 세간 사람들이 있으며, 범지(梵志)와 가라월종(迦羅越種)이 있으며, 전륜성왕이 있으며, 사대천왕(四大天王), 나아가 아가니타천이 있으며, 수다원도와 나한․벽지불도가 있으며, 보살이 있으며, 불도가 있다. 이미 보살이 있기에 의복․음식․침상과 이부자리․7보․진주․영락․유리․마니의 공양이 있다. 사리불이여, 천상과 세간 사람이 좋아하는, 몸에 붙이는 도구들을 보살이기 때문에 빠짐없이 갖고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보살의 일을 행할 때 6바라밀에 머물러서 중생을 조복시키며 보시로써 반야바라밀을 이루게 하기 때문이다. 보살마하살이 중생을 안온하게 하려면 마땅히 반야바라밀을 행해야 한다.”
8. 설상광품(舌相光品)
그때 세존께서 넓고 긴 혀의 모습[廣長舌相]을 내어 널리 삼천대천세계에 두루 미치고, 그 설근(舌根)에서 갖가지 무앙수(無央數) 백천 광명을 내시어 명확하게 시방 각각의 한 갠지스강의 모래 수처럼 많은 나라들을 비추었다. 이때 동방과 시방의 국토에 있는 무앙수 모든 보살들이 이 광명을 보고 각각 스스로 그들의 부처님께 아뢰었다.
“어떤 서응(瑞應)으로 이 대광명이 있습니까?”
부처님께서 모든 보살들에게 말씀하셨다.
“서방으로 가서 한 갠지스강의 모래 수처럼 많은 곳을 건너가면 부처님 세계가 있는데 사하(沙訶)라고 이름하며, 그 부처님의 명호는 석가문(釋迦文)이다. 혀에서 광명을 놓으시고 모든 보살들을 위해서 반야바라밀을 설하시니, 지금 이런 서응이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시방의 갠지스강의 모래 수처럼 많은 나라의 모든 보살들이 각각 그 부처님께 아뢰었다.
“우리들은 석가문부처님과 모든 보살들을 가서 뵙고 싶으며, 아울러 반야바라밀을 듣고자 합니다.”
모든 부처님께서 모든 보살들에게 말씀하셨다.
“가고 싶으면 뜻대로 하라.”
그리하여 모든 보살들이 각각 여러 가지 이름난 꽃․이름난 향․갖가지 당번(幢幡)․진보․화개(華蓋)를 가지고 그 국토에서 출발하여 인계(忍界)에 나아갔다.
모든 사천왕에서 아가니타천에 이르기까지 각각 천상의 모든 이름난 향과 꽃을 가지고 부처님 처소에 나아갔다. 모든 하늘 사람들과 모든 보살들이 모두 빠짐없이 와서 석가문부처님을 뵙고 나서 각각 공양하려고 한 모든 이름난 꽃들을 뿌리니, 뿌린 꽃과 보배가 부처님 위의 허공에서 변하여 네 기둥의 누대[臺]가 되었는데, 그 누대는 사면으로 창이 높게 드러나 있었다. 그 누대를 향하여 삼천대천찰토가 각각 보이지 않음이 없었다. 훌륭한 누대들이 나열되어 구분[分別]이 있으면서도 서로 장애가 되지 않으며, 그 누대는 기묘하고 아름다우면서 서로 장엄함을 드러냈는데 일찍이 이런 것이 없었다. 이때 좌중(坐中)의 모든 억백천 인들이 각각 자리에서 일어나 길게 무릎을 꿇고 합장한 채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원컨대 저희들로 하여금 미래세에 법의 이익을 체득하여 마땅히 지금 부처님께서 백천 대중에게 둘러싸여 설법하시는 것과 같이 되고, 그 나타난 감동이 또한 마땅히 이와 같도록 하여지이다.”
부처님께서는 모든 대중들이 이미 각각 모든 법은 생함이 없다는 법인[無所從生法忍]을 감당할 만함을 아셨으므로 부처님께서 미소를 지으셨다.
아난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무슨 인연으로 미소를 지으십니까? 원컨대 그 뜻을 듣고자 합니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억백천 대중들이 모두 생함이 없는 법인을 얻을 것이니, 68억 겁 후에 겁의 이름을 산화(散華)라 하고 모두 부처를 이룰 것이며, 명호를 각화(覺華) 여래․무소착․등정각이라고 할 것이다.”
9. 행품(行品)
세존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모든 보살마하살들을 위해서 인(因)으로부터 반야바라밀을 성취함을 설하라.”
이때 모든 모임에 있던 보살들과 대제자와 모든 천인들은 마음속으로 ‘지금 수보리가 모든 보살들을 위하여 반야바라밀을 설하는 것은 스스로 변재(辯才)를 지녀 설하는 것인가, 부처님의 위신력에 의해서인가?’라고 생각했다. 수보리는 모든 보살들과 대제자와 천인이 생각하는 뜻을 알고 사리불에게 말하였다.
“감히 부처님의 제자가 법을 설하는 것과 음성으로 말하는 것과 가르칠 수 있는 것은 모두 세존 대사의 힘 때문입니다. 부처님께서 설하신 법은 현상[事]과 법이 서로 위배되지 않으므로 선남자가 법을 배워서 법으로써 증득합니다. 사리불이여, 우리들이 마땅히 부처님의 위신력을 이어받아 모든 보살마하살들을 위해서 반야바라밀을 설하지만 우리들이 들어가는 경계가 아니며, 성문․벽지불은 보살마하살을 위해서 반야바라밀을 설하지 못합니다.”
이에 사리불과 수보리가 함께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보살을 말씀하셨는데 보살은 어느 법 중에 보살이란 말이 있습니까? 저희들은 처음부터 보살이란 것이 있는 법을 보지 못했습니다. 저는 처음부터 보살을 보지 못했으며, 또한 보살이란 글자도 보지 못했으며, 또한 반야바라밀도 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곳의 보살을 위해서 반야바라밀을 설합니까?”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반야바라밀과 보살과 그 글자는 안에 있는 것도 아니고, 또한 밖에 있는 것도 아니고, 또한 양자의 중간에 머무는 것도 아니다.”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비유하면 마치 중생이란 글자가 중생이 되는 것과 같다. 나 너라고 말하고, 남자이다, 선비이다, 지아비이다, 짓는다, 안다, 지각한다는 말이 생겨나는 것이다.”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법이라는 것도 이름을 설정해 놓은 것이며 단지 명자(名字)일 뿐이어서 생하지도 않고 또한 멸하지도 않는다. 오래전부터 문자로 전해져 올 뿐이다.”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반야바라밀이라는 것과 보살이라는 것과 보살이라는 글자도 단지 자법(字法)일 뿐이며, 오래전부터 단지 그 글자로 사용한 것이며, 또한 생하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는다. 수보리여, 비유하면 색(色)․통(痛)․상(想)․행(行)․식(識)도 단지 자법(字法)일 뿐 오래전부터 내려온 인연이 화합해서 된 수이며, 모든 인연이 화합해서 된 법수(法數)로서 또한 생하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는다. 반야바라밀이라는 것도 보살이라는 것과 보살이라는 글자도 또한 이와 같다.”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안․이․비․설․신․의라는 것도 오래전부터 내려온 자법일 뿐이며, 생하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는다. 색․성․향․미․세활․법도 또한 이와 같아서 안에도 있지 않고, 밖에도 있지 않고, 생하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는다. 오래전부터 내려온 자법일 뿐이다. 반야바라밀과 보살과 그 글자는 안에 있는 것도 아니고, 밖에 있는 것도 아니며, 양자의 중간에 머무는 것도 아니다.”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비유하면 몸 안에 있는 것을 머리라고 이름하지만 글자인 것처럼 목․어깨․팔․등․옆구리․넓적다리․배․다리라고 하나 이 법은 또한 생하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으며, 또한 안에 있는 것도 아니고, 밖에 있는 것도 아니며 양자의 중간에 머무는 것도 아니다. 이른바 반야바라밀과 보살과 그 글자도 또한 이와 같은 것이다.”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비유하면 밖에 있는 모든 초목․가지․잎․줄기․마디 등도 오래전부터 내려온 명자일 뿐이며 이런 글자는 또한 생하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으며, 또한 안에 있는 것도 아니고, 또한 밖에 있는 것도 아니다. 반야바라밀이라 하는 것과 보살이라는 것과 그 글자도 이와 같은 것이다.”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비유하면 과거의 모든 부처님 세존들도 오래전부터 내려온 글자로 인하여 머무는 것 같나니, 이 글자는 생하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으며 또한 안에 있는 것도 아니고 밖에 있는 것도 아니다. 수보리여, 비유하면 꿈․메아리․환영․아지랑이와 같고 여래께서 변화하신 것과 같아서 모두 글자이며 법수일 뿐이다. 반야바라밀이라는 것과 보살이라는 것과 그 글자도 또한 생하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으며, 또한 안에 있는 것도 아니고 밖에 있는 것도 아니며, 또한 양자의 중간에 머무는 것도 아니다.”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 마땅히 자법(字法)과 합법(合法)과 임시의 법수[權法數]를 배워야 한다.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 색․통․상․행․식의 글자와 항상함[有常]과 항상하지 않음[無常]을 보지 않아야 하며, 또한 5음이란 글자의 고통이 있음과 즐거움이 있음을 보지 않아야 하며, 5음과 유아(有我)와 무아(無我)도 보지 않아야 하며, 5음과 공․무상․무원도 보지 않아야 하며, 5음이 청정한 것도 보지 않아야 하며, 고요한 것도 보지 않아야 한다. 또한 집착도 보지 않아야 하며, 또한 단멸[斷]도 보지 않아야 하며, 또한 5음이 생하는 것도 보지 않아야 하고, 멸하는 것도 보지 않아야 한다. 안․이․비․설․신․의와 색․성․향․미․세활․법과 18성(性)도 또한 이와 같다. 반야바라밀을 행하는 보살마하살은 유위성(有爲性) 중에서 반야바라밀을 보지 않으며, 또한 보살도 보지 않으며, 또한 보살이란 글자도 보지 않는다. 또한 무위성(無爲性) 중에서도 보지 않는다. 왜냐하면 수보리여,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에 모든 법에 대하여 상념(想念)이 없기 때문이다.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에는 무상법(無想法)에 머물러야 하며, 37품을 이루어야 한다.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에는 반야바라밀을 보지 않아야 하고, 또한 반야바라밀이란 글자도 보지 않아야 한다. 또한 보살도 보지 않아야 하고, 또한 보살이란 글자도 보지 않아야 한다. 반야바라밀을 행하여 부처님의 18법을 이루더라도 또한 다시 반야바라밀도 보지 않아야 하고, 반야바라밀이란 글자도 보지 않아야 하며, 또한 보살이란 글자도 보지 않아야 한다. 보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하면서 이미 모든 법의 상(相)을 초월했으며, 초월했다는 것도 또한 보지 않아야 하고 단절시키지도 않아야 한다.”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보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에 자법과 법수와 합법을 배워서 알아야 하지만 깨닫고 나서는 색(色)에도 들어가지 않고 통․상․행․식에도 들어가지 않고, 안․이․비․설․신․의에도 들어가지 않고, 색․성․향․미․세활․법에도 들어가지 않고, 18성(性)에도 들어가지 않고, 깨달았다는 의식[意識覺]에도 들어가지 않고, 고락(苦樂)에도 들어가지 않고, 불고불락(不苦不樂)에도 들어가지 않는다. 또한 유위성(有爲性)에도 들어가지 않고, 무위성에도 들어가지 않고, 단(檀)․시(尸)․찬(羼)․유체(惟逮)․선(禪) 바라밀에도 들어가지 않고 반야바라밀에도 들어가지 않고, 상호(相好)에도 들어가지 않고 보살신(菩薩身)에도 들어가지 않고 5근(根)에도 들어가지 않고, 혜도(慧度)에도 들어가지 않고, 도신통(度神通)에도 들어가지 않는다. 도혜(度慧)에도 들어가지 않고, 내외공(內外空)에도 들어가지 않고, 소유․무소유공(無所有空)에도 들어가지 않고 중생을 교화하는 데에도 들어가지 않고, 청정한 불국토에도 들어가지 않고 구화구사라(漚惒拘舍羅)에도 들어가지 않는다. 왜냐하면 모든 법이 마땅히 들어갈 수 있는 것이 있음을 보지 않기 때문이다.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 모든 법은 들어갈 것이 없어서 곧 6바라밀이 증익되고 곧 보살위(菩薩位)에 올라가며, 보살위에 올라가서는 아유월치(阿惟越致)에 이른다. 모든 신통을 구족하고, 신통을 구족한 후에는 모든 불국토에 유람하면서 중생을 양육하고, 공양드리고 예배하며 섬기고 불국토를 청정하게 하고 모든 부처님들을 다 뵙는다. 모든 부처님들께 원을 구하면, 그 바라는 바에 따라서 모두 얻게 된다. 모든 부처님 세존으로부터 법을 들어 모든 다린니(陀隣尼)․삼매문을 얻으며, 나아가 아뇩다라삼야삼보를 얻어 마침내 단절됨이 없다.”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보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에 마땅히 법수가 글자일 뿐이라는 것을 충분히 알아야 한다. 수보리여, 어떻게 생각하느냐? 색․통․상․행․식이 보살인가, 안․이․비․설․신․의가 보살인가?”
수보리가 대답하였다.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수보리여, 어떻게 생각하느냐? 색․성․향․미․세활․법이 보살인가, 안식․이식․비식․설식․신식․의식이 보살인가?”
대답하였다.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어떻게 생각하느냐? 지(地)․수(水)․화(火)․풍(風)․공(空)․식(識)이 보살인가?”
“아닙니다.”
“어리석음[癡]이 보살인가, 행(行)․식(識)․명색(名色)․6입(入)․재(栽)․각(覺)․애(愛)․수(受)․유(有)․생(生)․사(死)가 보살인가?”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어떻게 생각하느냐, 5음(陰)․6쇠(衰)․6정(情)․18성(性)과 지․수․화․풍․공을 여의고 12인연을 여읜 것이 보살인가?”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5음․12인연이 여여(如如)한 것이 보살인가?”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수보리여. 어떻게 생각하느냐? 여여함을 여읠 수 있어야 보살인가?”
수보리가 대답하였다.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그대는 어떤 뜻을 관(觀)하였기에 5음․6쇠․12인연과 여여함을 보살이 아니라고 말하며, 또한 5음․6쇠․12인연과 여여함을 여읜 것을 보살이라고 하지 않는가?”
존자 수보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처음부터 중생이 있는 것을 보지 않았는데 어디에 보살이 있겠으며, 어떻게 5음․6쇠․12인연을 보살이라 하며, 어떻게 마땅히 5음․6쇠․12인연을 여의는 것을 보살이라고 하겠습니까? 여여한 것도 또한 보살이 아니고, 여여한 것을 여읜 것도 또한 보살이 아니니, 옳은 점이 없습니다.”
세존께서 수보리를 찬탄하여 말씀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구나. 수보리여, 보살은 배우되 마땅히 보고 배울 바가 없음을 지어야 하고, 중생을 보지 않아야 하고, 반야바라밀을 보지 않아야 한다. 수보리여, 어떻게 생각하느냐? 5음이 항상하므로 보살이라고 말하는가, 5음이 무상하므로 보살인가, 5음이 아소(我所)여서 보살인가, 아소가 아닌 것이 보살인가, 5음이 공(空)하고 모양도 없고 원도 없으므로[無相無願] 보살이라 말하는가?”
수보리가 대답하였다.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5음․공․무상․무원을 여읜 것을 보살이라 하는가?”
수보리가 대답하였다.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그대는 어떤 뜻을 관하였기에 5음․공․무상․무원을 보살이 아니라 말하며, 5음․공․무상․무원을 여읜 것을 보살이라고 하지 않는가?”
수보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처음부터 5음을 보지 않았는데 어떻게 5음으로써 보살을 말하겠습니까? 처음부터 항상한 것도 보지 않았는데 어떻게 무상(無常)으로써 보살이라 말하겠습니까?”
수보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처음부터 즐거움이 있는 것을 보지 않았는데, 어떻게 5음이 고(苦)라 해서 보살이라 하겠습니까? 처음부터 아(我)가 있는 것을 보지 않았는데 어떻게 5음이 무아라고 해서 보살이라 하겠습니까? 처음부터 인(人)이 있는 것을 보지 않았는데 어떻게 5음이 공하다고 해서 보살이라 말하겠습니까? 세존이시여, 처음부터 상(相)이 있는 것을 보지 않았는데 어떻게 5음이 상이 없다고 해서 보살이라 하겠습니까? 세존이시여, 처음부터 원(願)이 있는 것을 보지 않았는데 어떻게 5음이 원이 없다고 해서 보살이라 하겠습니까?”
그때 세존께서 수보리를 찬탄하여 말씀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구나. 보살마하살이 마땅히 5음이 공하고 모양도 없고 원도 없고 볼 바도 없고 얻을 바도 없는 것으로 여김을 배워야 한다. 보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는 마땅히 이와 같이 배워야 한다.”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그대는 예전에 ‘나는 보살이 있는 법은 보지 못했다’고 말했는데, 진실로 말한 것과 같다. 수보리여, 법과 법은 서로 보지 못하고 법은 법성(法性)을 보지 못하고, 법성은 또한 법을 보지 못한다. 5음성(陰性)은 법성을 보지 못하고 법성은 5음성을 보지 못하고, 6정성(情性)은 법성을 보지 못하며, 법성도 6정성을 보지 못한다.”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유위성(有爲性)은 무위성(無爲性)을 보지 못하고, 무위성은 유위성을 보지 못한다. 유위는 무위를 여의지 않고 무위도 또한 유위를 여의지 않는다.”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보살이 이와 같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 모든 법에 대해서 보는 바[所見]가 없으며, 비록 모든 법을 보지 않아도 또한 두려워하지도 않고 또한 무서워하지도 않고, 후회하지도 않고 또 게으르지도 않다. 왜냐하면 5음을 보지 않고, 안․이․비․설․신․의도 보지 않고, 또한 색․성․향․미․세활․법도 보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음욕․성냄․어리석음도 보지 않고, 또한 12인연도 보지 않고, 또한 나도 보지 않고, 또한 지견(知見)을 쓰는 일도 보지 않고, 또한 삼계도 보지 않고, 또한 성문․벽지불의 뜻도 보지 않고, 또한 보살도 보지 않고, 또한 보살법도 보지 않고, 또한 부처님도 보지 않고, 또한 불법도 보지 않고, 도(道)도 보지 않고 일체 모든 법을 모두 보지 않는다. 또 두려워하지도 않고 무서워하지도 않고, 겁먹지도 않는다.”
수보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보살은 무슨 까닭으로 두려워하지도 않고, 무서워하지도 않습니까?”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보살의 의식법(意識法)은 얻을 수도 없으며, 볼 수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두려워하지도 않고, 무서워하지도 않는 것이다. 보살은 마땅히 모든 법은 얻을 것이 없고 소견이 없음을 배워서 반야바라밀을 행하는 것이다. 또한 반야바라밀을 보지 않고, 또한 보살도 보지 않고, 또한 보살이란 글자도 보지 않고, 또한 보살의 뜻도 보지 않는 것이 바로 보살의 배움이고 바로 보살행이다.”
10. 학품(學品)
그때 수보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보살마하살이 단바라밀을 구족하려고 하면 마땅히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하며, 시․찬․유체․선 바라밀을 구족하려고 하면 마땅히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합니다. 보살마하살이 색․통․상․행․식을 알려고 하면 마땅히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합니다. 6정(情)과 내외(內外)를 알려고 하면 마땅히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합니다. 18성(性)을 알려고 하며, 음욕․성냄․어리석음을 소멸하려고 하며, 나라는 상[我想]을 소멸하려고 하면 마땅히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합니다. 여우처럼 의심이 많은 것을 없애려고 하며, 계를 범함과 그릇된 견해를 없애려고 하며, 삼계의 음욕과 다툼을 없애려고 하며, 6쇠(衰)의 습을 버리려고 하며, 4식(食)을 없애려고 하며, 4연류(淵流)․4결(結)․4전도(顚倒)를 버리려고 하며, 10악(惡)을 버리고서 10선(善)의 행을 알려고 하면 마땅히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합니다. 4선(禪)․37품․4등심(等心)․부처님의 18법(法)을 알려고 하면 마땅히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합니다. 학의삼매(學意三昧)를 얻으려고 하면 마땅히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합니다. 4선(禪)․4공정(空定)을 알려고 하며, 사자유보(師子遊步)․사자분신(師子奮迅)삼매를 얻으려고 하며, 모든 다린니(陀隣尼)삼매․수능엄(首楞嚴)삼매․해보(海寶)삼매․월당(月幢)삼매․제법보지(諸法普至)삼매․관인(觀印)삼매․진법성(眞法性)삼매․작무구당(作無垢幢)삼매․금강(金剛)삼매․제법소입문(諸法所入門)삼매․삼매왕(三昧王)삼매․왕인(王印)삼매․역정(力淨)삼매․월당(月幢)삼매․제법소입진변재(諸法所入眞辯才)삼매․제법언소입조시방(諸法言所入照十方)삼매․제법다린니문인(諸法陀隣尼門印)삼매․불망제법(不妄諸法)삼매․제법도취인(諸法都聚印)삼매․허공소지(虛空所止)삼매․정(淨)삼매․처(處)삼매․불기신통(不起神通)삼매․작상당(作上幢)삼매를 얻으려고 하며, 보살이 이와 같은 모든 삼매문과 다른 삼매를 얻으려고 하면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합니다.”
수보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보살마하살이 모든 중생들의 소원하는 바를 만족시켜 주고자 하면 마땅히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하고, 보살이 모든 공덕을 구족하여 이런 구족한 덕을 지녀 죄처(罪處)에 떨어지지 않으며, 비천한 집안에 태어나지 않으며, 또한 나한․벽지불지에 머물지 않고 또한 보살의 정쟁(頂諍)이 되지 않으려고 하면 마땅히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합니다.”
사리불이 수보리에게 말하였다.
“무엇을 보살의 정쟁이라 합니까?”
수보리가 대답하였다.
“보살마하살이 구화구사라로써 6바라밀을 행하지 않고 다시 구화구사라로써 공․무상․무원 삼매에 나아가지 않으면 성문․벽지불지에 떨어져 보살도(菩薩道)를 수순하지 못합니다. 이것을 보살의 정쟁이라 하는 것입니다.”
사리불이 수보리에게 물었다.
“무슨 이유로 보살의 정쟁이라 이름합니까?”
수보리가 대답하였다.
“법애(法愛)를 말하는 것입니다.”
“무엇을 법애라고 합니까?”
수보리가 대답하였다.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 5음에 들어가 5음을 공․무상․무원이라고 계교하는 것, 이것을 법애를 수순한다고 합니다. 5음에 들어가서 5음을 공적(空寂)․무상(無常)․고(苦)․공(空)․비아(非我)라고 계교하는것, 이것을 보살의 법애라고 합니다. 계교하여 마땅히 5음이 멸했다고 말하면, 이것은 무위증(無爲證)이고 이것은 비증(非證)이고 이것은 성도(成道)이며, 이것은 집착이고 이것은 단멸이며, 이것은 익힐 수 있고 이것은 익힐 수 없으며, 이것은 보살행이고 이것은 보살행이 아니며, 이것은 도(道)이고 이것은 도가 아니며, 이것은 보살학(菩薩學)이고 이것은 보살학이 아니며, 이것은 6바라밀이고 이것은 6바라밀이 아니며, 이것은 구화구사라이고 이것은 구화구사라가 아니며, 이것은 보살이 법애(法愛)를 수순하는 것입니다.”
수보리가 사리불에게 말하였다.
“보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 법 가운데 들어가서 계교하고 분별하는데 이것을 보살이 법애에 수순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사리불이 수보리에게 말하였다.
“무엇을 보살이 도에 수순하는 것이라고 합니까?”
수보리가 대답하였다.
“보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 내공(內空)으로 외공(外空)을 관하지 않고 외공으로 내공을 관하지 않으며, 내외공(內外空)으로 공공(空空)을 보지 않고 공공으로 내외공을 보지 않습니다. 또한 공공으로 대공(大空)을 보지 않고 대공으로 공공을 관하지 않으며, 대공으로 최제일공(最第一空)을 보지 않고 최제일공으로 대공을 보지 않으며, 제일공으로 유위공(有爲空)을 관하지 않고 유위공으로 제일공을 관하지 않습니다. 또한 유위공으로 무위공을 관하지 않고 또한 무위공으로 유위공을 관하지 않으며, 또한 무위공으로 무변제공(無邊際空)을 관하지 않으며, 또한 무변제공으로 작공(作空)을 관하지 않으며, 작공으로 또한 성공(性空)을 관하지 않고, 성공으로 또한 작공을 관하지 않습니다. 작공으로 또한 자공(自空)을 관하지 않으며, 자공으로 또한 성공(性空)을 관하지 않으며, 자공으로 또한 제법공(諸法空)을 관하지 않고 제법공으로 자공을 관하지 않으며, 제법공으로 또한 무공(無空)을 관하지 않고 무공으로 또한 제법공을 관하지 않습니다. 제법공으로 또한 유공(有空)을 관하지 않으며, 유공으로 또한 무공을 관하지 않으며, 유공으로 또한 무유공(無有空)을 관하지 않고 무유공으로 또한 유공을 관하지 않습니다.
사리불이여, 보살이 이와 같이 반야바라밀을 행하면 위로 전향하여 곧 보살이 도에 상응하게 됩니다. 또한 사리불이여, 보살은 이와 같이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하는데, 5음을 생각하지 않고, 또한 높이지 않고, 또한 안․이․비․설․신․의도 생각하지 않고, 색․성․향․미․세활․법도 생각하지 않고, 또한 6바라밀과 부처님의 18법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생각하지 않고 높이지 않는 이와 같은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합니다. 또한 도의 뜻이 미묘하여 동등함이 없다고 생각하지 않고, 높이지 않는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옳은 뜻[是意]에도, 그른 뜻[悲意]에도 의성(意性)은 광대하고 청정하기 때문입니다.”
사리불이 수보리에게 물었다.
“어떤 것을 의성이 광대하며 청정하다고 합니까?”
수보리가 대답하였다.
“음욕․성냄․어리석음에 합하지도 않고 흩어지지도 않으며, 또 번뇌[塵勞]와 더불어 합하지도 않고 흩어지지도 않으며, 악행과 62견 대열반경에도 나오는 말이다. 이른바 외도의 사람들이 말하는 색․수․상․행․식 5음법 중에서 각 한 음(陰)이 네 종류의 견(見)을 일으키니 바로 20견을 이룬다. 과거․현재․미래의 삼세론(三世論)을 기준하면 60견을 이룬다. 이 60견은 단(斷)․상(常) 2견이 근본이 되므로 총 62견을 이룬다. 네 종류의 견이란 것은 5음 중에서 색은 크고 나는 작아서 내가 색 중에 있는 것을 1견(見)이라 말하는 것이고, 나는 곧 신아(神我)이다. 소위 식신(識神)이다. 또 나는 크고 색은 작다 하여 색이 아(我) 중에 있는 것이 2견(見)며, 또 색을 여읜 것을 나라고 계교하는 것을 3견이라 하며, 또 색에 즉해서 이 나라고 생각하는 것을 4견이라 말한다. 색음이 이러했으면 수․상․행․식도 또한 그러한 것이다.
에 합하지도 않고 흩어지지도 않으며, 또한 성문․벽지불의 뜻과 합하지도 않고 흩어지지도 않습니다. 이것을 보살의 의성이 광대하며 청정하다고 하는 것입니다.”
사리불이 다시 물었다.
“옳은 뜻 또는 그른 뜻이라고 말하는 데 뜻이 있습니까?”
수보리가 대답하였다.
“뜻에 생각이 없을 때 뜻이 있고 없음을 어찌 얻을 수 있으며, 볼 수 있으며, 알 수 있습니까?”
사리불이 대답하였다.
“수보리여, 얻을 수 없으며, 볼 수 없으며, 알 수 없습니다.”
수보리가 사리불에게 말하였다.
“만약 뜻이 무념(無念)이 되었을 때에는 뜻이 있음[有意]도 볼 수 없고, 또한 뜻이 없음[無意]도 볼 수 없으며, 또한 얻을 수도 없고, 또 볼 수도 없으므로 곧 청정(淸淨)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사리불이 수보리에게 물었다.
“어떤 것을 뜻이 없는 뜻[無意意]이라고 합니까?”
대답하였다.
“모든 법은 지음[作]도 없고, 생각도 없으므로[無念] 뜻이 없는 뜻이라 하는 것입니다.”
사리불이 다시 물었다.
“무위무작(無爲無作)이 또한 이 뜻입니까? 그러면 5음에 무위무작한 것도 또한 이 뜻입니까, 나아가 도에 무위무작한 것이 또한 이 뜻입니까?”
수보리가 대답하였다.
“그렇습니다. 질문한 것과 같습니다.”
이때 사리불이 수보리를 찬탄하여 말하였다.
“훌륭하고 훌륭합니다. 수보리는 불자(佛子)이며, 부처님으로부터 태어났고, 법으로부터 화생(化生)하였습니다. 이것은 법을 베푸는 것[法施]이며 생각으로[思欲] 베푸는 것이 아닙니다. 그 중득한 바에 따라서 설법을 하니, 실로 부처님께서 공적행(空寂行)을 즐김에 제일이라고 하신 것과 같습니다. 보살마하살이 마땅히 이와 같이 반야바라밀을 배우면 곧 아유월치에 이르고 마침내 반야바라밀을 여의지 않을 것입니다. 보살이 성문․벽지불지를 알려고 하면 마땅히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하고 독송해야 하고 익혀야 하고 수지해야 합니다. 보살지를 배우려고 하면 마땅히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하고 독송해야 하고 배워야 하고 수지해야 하고 익혀야 합니다. 왜냐하면 반야바라밀 중에 삼승의 가르침을 널리 설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보살마하살․성문․벽지불도 또한 마땅히 이로부터 배워서 이루었기 때문입니다.”
11. 본무품(本無品)
그때 수보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이처럼 보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하는데, 저는 보살이 있는 것도 알지 못하고 보살도 보지 못했는데, 어떻게 보살을 위해서 반야바라밀을 설하겠습니까? 모든 법의 끝과 시작을 보지 못했는데, 누가 무엇을 가르치겠습니까? 어떻게 보살을 위해서 글자를 지어서 보살이란 말을 하겠습니까?
세존이시여, 이 글자는 반드시 머무는 것도 아니고, 또한 머물지 않는 것도 아닙니다. 왜냐하면 이 글자는 볼 수도 없고, 또한 얻을 수도 없습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또한 5음의 끝과 시작을 보지 못했는데 어떻게 보살을 위해서 글자를 짓겠습니까? 그러므로 세존이시여, 이 글자는 머무는 것도 아니고 머물지 않는 것도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또한 6정(情)과 6쇠(衰)의 끝과 시작도 보지 못했는데 어떻게 보살을 위해서 글자를 짓겠습니까? 이 글자는 머무는 것도 아니고 머물지 않는 것도 아닙니다. 왜냐하면 이 글자는 또한 볼 수도 없고, 알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보살을 위해서 글자를 세우겠습니까? 이 글자는 또한 볼 수도 없고 알 수도 없습니다. 이 글자는 머무는 것도 아니고, 머물지 않는 것도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또한 18성(性)도 보지 못했고 또한 12인연의 끝과 시작도 보지 못했습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또한 12인연이 생멸하는 근본도 보지 못했으며, 또한 음욕․성냄․어리석음의 끝과 시작도 보지 못했으며, 또한 62견도 보지 못했으며, 또한 6바라밀의 끝과 시작도 보지 못했으며, 또한 나라는 것도 보지 못했으며, 또한 다른 사람도 보지 못했으며, 또 수명[壽]도 보지 못했으며, 또한 중생의 수명의 끝과 시작도 보지 못했으며, 또한 37품․공․무상․무원․4선(禪)․4등(等)․4무형선(無形禪)의 끝과 시작도 보지 못했으며, 불지(佛志)․법지(法志)․승지(僧志)․계지(戒志)․시지(施志)․천지(天志)․안반지(安般志)․사지(死志)의 끝과 시작도 보지 못했습니다. 저는 또한 부처님의 18법의 끝과 시작도 보지 못했습니다.
세존이시여, 5음은 꿈과 같고 메아리와 같고 빛과 같고 그림자와 같고 환(幻)과 같고 불꽃과 같고 변화[化]와 같아서 끝과 시작을 얻을 수 없습니다. 적정(寂靜)함과 생하지 않음과 멸하지 않음의 끝과 시작, 집착하지 않음과 단절되지 않음의 끝과 시작, 여여한 법성(法性)의 법과 진제(眞際)의 끝과 시작도 모두 볼 수 없습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또한 선악법의 시작과 끝을 보지 못했으며, 저는 또한 유위․무위․유루․무루의 끝과 시작도 보지 못했습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또한 미래․과거․현재의 끝과 시작도 보지 못했으며, 저는 또한 미래도 아니고 과거도 아니고 현재도 아닌 법의 끝과 시작을 보지 못했으며, 저는 또한 세존의 끝과 시작도 보지 못했으며, 저는 또한 시방의 갠지스강의 모래 수처럼 많은 국토와 모든 여래․무소착․등정각과 모든 제자들과 보살 무리의 끝과 시작도 보지 못했습니다.
세존이시여, 모든 법의 끝과 시작도 오히려 얻을 수 없고 볼 수 없는데, 어떤 보살을 가르칠 것이며, 누구를 위해서 반야바라밀을 설할 것입니까? 이 글자는 또한 머무는 것도 아니고, 또한 머물지 않는 것도 아닙니다. 이 글자는 알 수도 없고, 또한 얻을 수도 없고, 또한 볼 수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글자는 또한 머무는 것도 아니고, 또한 머물지 않는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어떻게 보살을 위해서 글자를 지을 수 있겠습니까? 무슨 이유입니까? 모든 글자법[字法]은 모두 볼 수 없고, 또한 얻을 수도 없습니다. 세존이시여, 보살이란 것도 수를 합하고 글자법을 건립한 것으로 또한 문자로 지을 것도 없는 것입니다.
5음․18성․12쇠․37품․부처님의 18법도 문자로 지을 것이 없습니다. 세존이시여, 비유하면 꿈․메아리․빛․그림자․불꽃․변화․이름․허공과 같습니다.
세존이시여, 비유하면 지․수․화․풍․공이라 말하는 것도 글자로 지은 것이지 있는 것이 아닙니다. 계(戒)․삼매(三昧)․지혜․해탈견(解脫見)․해탈혜(解脫慧)라 말하는 이 글자도 글자를 지은 것이지 있는 것이 아닙니다. 수다원․사다함․아나함․아라한․벽지불이라 말하는 글자도 글자로 지은 것이지 있는 것이 아닙니다. 보살이라 말하고, 도(道)라 말하고, 불(佛)․불법이라 말하는 글자도 또한 지은 것이지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선악이라 말하고, 유상(有常)․무상(無常)․고락(苦樂)․아가 있다고 말하는 것과 적(寂)이라 말하고, 적정․소유․무소유라 말하는 문자도 지은 것이지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저는 여우처럼 깊이 의심합니다. 왜냐하면 모든 법의 끝과 시작도 볼 수 없는데, 보살이란 글자를 만들 수 있겠습니까?
세존이시여, 이 글자는 또한 법성에 머물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 글자는 있는 것도 아니고, 얻을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글자는 또한 머무는 것도 아니고, 머물지 않는 것도 아닙니다. 만약 보살마하살이 이와 같이 듣고 반야바라밀을 설한다면 한탄하지도 않고, 후회하지도 않고, 게으르지도 않고, 나태하지도 않고, 두려워하지도 않고, 무서워하지도 않는다면, 이 보살은 깊이 알아서 아유월치지에 머무는 것이며, 무소주(無所住)에 머무는 것임을 마땅히 알아야 합니다.
또한 세존이시여, 보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 색․통․상․행․식 가운데에 머물지 않으며, 안․이․비․설․신․의 가운데에 머물지 않으며, 색․성․향․미․세활․법 가운데에 머물지 않으며, 6식(識) 가운데에 머물지 않으며, 6재(栽) 가운데에 머물지 않으며, 6각(覺) 가운데에 머물지 않으며, 지․수․화․풍․공․식 가운데 머물지 않으며, 12인연 가운데에 머물지 않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색․통․상․행․식이 공하기 때문입니다.
세존이시여, 만약 5음이 공하다면 5음이 아니며, 5음은 또한 공을 여의지 않고 공은 또한 5음을 여의지 않으니, 공이 바로 5음이고 5음이 바로 공입니다. 그러므로 세존이시여,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 5음 가운데에 머물지 않으며, 나아가 12인연 가운데에도 머물지 않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12인연이 공하기 때문입니다. 12인연이 바로 공이며, 공이 바로 12인연입니다.
또한 세존이시여,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 37품 나아가 부처님의 18법 가운데 머물지 않으며 부처님의 18법도 또한 공을 여의지 않습니다. 공이 바로 18법이며, 18법이 바로 공이므로 그 가운데에 머물지 않습니다.
또한 세존이시여,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 6바라밀 그 가운데에 머물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6바라밀이 공하기 때문입니다. 머문다면 6바라밀이 아닙니다. 6바라밀은 공을 여의지 않고, 공도 또한 6바라밀을 여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세존이시여, 보살은 6바라밀 가운데 머물지 않아야 합니다.
또한 세존이시여,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 문자의 수(數) 가운데에 머물지 않고 문자수가 많든 적든 그 가운데에 머물지 않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문자수가 공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세존이시여, 반야바라밀을 행하는 보살은 신통 가운데에 머물지 않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신통이 바로 공이며, 공이 바로 신통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세존이시여, 반야바라밀을 행하는 보살은 색․통․상․행․식․무상(無常) 가운데에 머물지 않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무상이 공하기 때문입니다. 가령 무상이 공하지 않다면 무상이 아닙니다. 공이 또한 무상을 여의지 않으니 무상이 바로 공이며, 공이 바로 무상입니다. 그러므로 보살은 그 가운데 머물지 않아야 합니다. 5음고(陰苦)․5음무아(陰無我) 가운데에 머물지 않고 5음공(陰空) 가운데에 머물지 않고 5음적정(陰寂靜) 가운데에도 머물지 않아야 합니다.
또한 세존이시여, 반야바라밀을 행하는 보살은 이처럼 그 가운데에 머물지 않아야 합니다. 법과 법성 가운데에 머물지 않고 진제(眞際) 가운데에 머물지 않아야 합니다.
또한 세존이시여, 보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 모든 삼매문․다린니문 가운데에 머물지 않아야 합니다. 세존이시여, 보살마하살이 구화구사라가 없어서 나라는 상[我想]을 짓고 5음에 집착하고 5음에 의지하면 반야바라밀을 받더라도 또한 반야바라밀을 수순하지 못하고, 반야바라밀을 구족하지 못하며, 곧 살운야(薩云若)를 출생시킬 수 없습니다.
또한 세존이시여, 보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 아상에 집착하고, 모든 다린니삼매문에 머물게 되면, 이 아상 의식[想識]으로 다린니삼매문을 구하게 됩니다. 또한 의지하여 반야바라밀을 받더라도 반야바라밀에 상응하지도 않고 수순하지도 않으며, 반야바라밀을 구족하지 못하며, 살운야도 출생시킬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색․통․상․행․식을 받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5음을 받지 않으면 5음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 성(性)이 공하기 때문입니다. 모든 다린니삼매문을 받지 않고, 받지 않으면 다린니삼매문이 아니니, 그 성이 공하기 때문입니다. 나아가 반야바라밀도 또한 받지 않는 것은 본성이 공하기 때문입니다.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에 마땅히 성(性)이 공한 법을 관해야 합니다. 비록 저 모든 법을 관하되, 집착하는 바가 없어야 합니다. 이것을 보살마하살의 무소수삼매(無所受三昧)라고 이름하는 것입니다. 쌓이고 모여서 광대하며 무한한 작용[用]이 있어 모든 나한․벽지불은 능히 미칠 수 없으며, 살운야도 또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나아가 내외공(內外空)과 유무공(有無空)도 또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무슨 이유인가 하면 상(相)으로 행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상으로 행하면 번뇌[垢]가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상인가 하면 5음상이며, 삼매상이니, 이것이 번뇌의 상[垢相]입니다. 마땅히 이와 같이 받아들이고 이와 같이 생각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이도인(異道人) 선니(先尼)와 같아서 마침내 살운야혜(薩云若慧)를 믿지 않습니다. 어떤 믿음[信]인가 하면 반야바라밀을 믿을 때 상(相)으로써 신해수지(信解受持)해도 안 되며, 그 상응하는 바를 상으로도 관하지 않고 또한 무상(無相)으로도 관하지 않아야 합니다. 이와 같이 상(相)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선니는 신해의 종요를 얻게 되고, 문득 도공성(度空性)의 지혜를 얻게 되고, 또 통․상․행․식을 받아들이지 않게 됩니다. 왜냐하면 공상(空相)의 법을 보고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무슨 까닭인가 하면 또한 안에서 지혜를 본 것도 아니고 또한 밖에서 지혜를 본 것도 아니고 또한 안과 밖을 떠나 지혜를 본 것도 아닙니다. 왜냐하면 법은 마땅히 알 수 있다고 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안의 5음에서 지혜를 본 것도 아니고 또한 밖의 5음에서 지혜를 본 것도 아니고, 또한 5음을 떠나 지혜를 본 것도 아닙니다. 이 인연으로 선니(先尼)는 깨달았고, 깨달은 후에는 살운야에 대한 믿음의 종요를 얻게 됩니다. 이것을 모든 법 등에 비교해 보면 믿음으로써 증득되는 것이므로 모든 법을 보지 않습니다. 선니는 이와 같이 지어서 이미 해탈하였습니다. 곧 모든 법에 받은 것도 없으며, 무상․무념이기 때문에 이 법은 또한 얻을 것도 없고 또한 받을 것도 없고 또한 해설할 것도 없습니다. 이 법은 또한 받아들임도 없고, 또한 지님도 없고 또한 얻을 수도 없고, 또한 생각도 없습니다. 일체의 모든 법은 모두 무념이기 때문입니다.
세존이시여,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에 통달하여 피안(彼岸)과 차안(此岸)을 왕래하는 까닭은 무엇입니까? 모든 법에 대하여 받아들임이 없으며 색․통․상․행․식도 받아들이지 않고 모든 법은 받아들임이 없기 때문입니다. 나아가 삼매다라니문도 받아들임이 없으며, 모든 법은 또한 받아들임이 없습니다. 37품․부처님의 10력[佛十力]․부처님의 18법불공[佛十八法不共]도 구족하지 못했으며, 마침내 이 가운데서 반니원(般尼洹)도 말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37품은 37품이 아니고 나아가 부처님의 18법도 18법이 아니고, 이 법은 또한 법이 아니고 법 아닌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 5음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입니다.
또한 세존이시여,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 마땅히 이와 같이 관해야 합니다. 어떤 것을 반야바라밀이라고 하는지, 반야바라밀은 누구를 위한 것인지, 누구에게 반야바라밀이 있는 것인지를 관해야 합니다. 보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 마땅히 다시 이와 같은 생각을 지어야 합니다. 법은 얻을 수 없는 것이고, 법은 볼 수 없는 것이니, 반야바라밀이 아닌 것입니다.”
사리불이 존자 수보리에게 물었다.
“현자(賢者)여, 어떤 법이 얻을 수도 없고, 볼 수도 없는 것입니까?”
수보리가 대답하였다.
“반야바라밀은 얻을 수 없고, 볼 수도 없습니다. 선․유체․찬․시․단 바라밀도 얻을 수 없고, 또한 볼 수도 없습니다. 그것은 외공․내공․유무공(有無空)이기 때문입니다. 5음도 또한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며, 37품․부처님의 18법․신통도 또한 있는 것이 아니고 볼 수 있는 것도 아니며, 법성․법주(法住)․진제(眞際)․불․살운야(薩云若)도 또한 있는 것이 아니고 또한 볼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내외가 공하고 유무(有無)가 모두 공하기 때문입니다.
사리불이여,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 만약 이와 같이 관하고 이런 생각을 가지면 뜻이 한탄하지 않고, 싫증내지도 않고, 두려워하지도 않고, 무서워하지도 않으며, 이 보살은 마침내 반야바라밀을 여의지 않음을 마땅히 알아야 합니다.”
사리불이 존자 수보리에게 물었다.
“어떻게 마땅히 보살이 반야바라밀을 여의지 않는지를 압니까?”
수보리가 대답하였다.
“색의 모양은 색을 여의었고, 통․상․행․식의 모양은 통․상․행․식을 여의었고, 단바라밀의 모양은 단바라밀을 여의었고, 나아가 반야바라밀의 모양은 반야바라밀을 여의었고, 나아가 부처님의 18법 나아가 진제(眞際)도 또한 이와 같기 때문입니다.”
사리불이 수보리에게 물었다.
“5음의 모양은 어떤 종류이며, 6바라밀․부처님의 18법의 모양은 어떤 종류이며, 법성과 진제의 모양은 어떤 종류입니까?”
수보리가 대답하였다.
“5음은 소유(所有)한 모양이 없으며, 6바라밀․부처님의 18법․진제도 또한 소유한 모양이 없으니, 그 종류는 물질의 종류가 아닙니다. 사리불이여, 이런 까닭으로 5음의 모양은 5음을 여의었고, 6바라밀의 모양은 6바라밀을 여의었고, 나아가 진제도 또한 이와 같습니다. 5음이 5음의 형상을 여의었고, 나아가 진제도 형상을 여의었고, 형상 또한 진제를 여의었습니다.”
사리불이 수보리에게 물었다.
“보살마하살이 그 가운데에서 살운야를 출생할 수 있습니까?”
대답하였다.
“이 질문에도 별다른 차이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법은 나올 바도 없고, 또한 생길 바도 없기 때문입니다.”
사리불이 또 물었다.
“무슨 까닭에 모든 법은 생(生)하지 않고 나오지도 않습니까?”
수보리가 대답하였다.
“5음은 공하여 또한 나옴을 보지 못하고 또한 생함을 보지 못하며 반야바라밀․부처님의 18법․진제(眞際)의 나옴도 볼 수 없고, 또한 그 생함도 볼 수 없습니다. 사리불이여,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이와 같이 배우면 점점 살운야에 가까워지고 이미 살운야에 가까워진 후에는 바로 몸과 뜻과 모습이 청정해집니다. 이미 몸과 뜻과 모습이 청정해진 후에는 바로 음욕․성냄․어리석음도 없어집니다. 마음속에 강하게 일어나는 탐의(貪意)도 다시는 생기지 않고, 마음의 뜻은 마침내 62견사(見事)도 없을 것이며, 마침내 어머니의 뱃속에서 출생하지도 않고 항상 화생(化生)함을 얻으며, 한 불국토에서 다른 한 불국토에 이르기까지 중생을 양육하고 널리 불국토를 청정하게 하며, 아뇩다라삼야삼보를 이룰 때까지 마침내 모든 부처님 세존을 여의지 않습니다. 사리불이여,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 이와 같이 배워야 하고, 이와 같이 행해야 합니다.”
방광반야경 제3권
서진 우전국 무라차 한역
12. 공행품(空行品)
수보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 구화구사라(漚惒拘舍羅)가 없으면 5음은 행상(行相)이 되며, 만약 5음에 항상함이 있다고 생각하면 행상이 되며, 5음이 무상하다고 생각하면 행상이 되며, 5음이 괴로움이라고 생각하고 5음이 이 아소(我所)라고 말하면 행상이 되며, 5음이 적정하다고 생각해도 행상이 됩니다. 세존이시여, 보살마하살이 구화구사라 없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 37품과 부처님의 18법을 배우는 것도 또한 행상이 됩니다. 세존이시여, 만약 보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에 스스로 ‘나는 반야바라밀을행한다’고 생각하고 얻는 바가 있기를 바란다면 또한 행상이 됩니다. 만약 보살이 ‘이와 같이 배우는 것이 반야바라밀을 배우는 것이다’라고 생각하면 이것도 또한 행상이 됩니다. 이와 같이 배우는 자는 마땅히 이 보살이 구화구사라가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수보리가 사리불에게 말하였다.
“보살이 반야바라밀을 이와 같이 배운다면 색에 머무는 것이 되며, 색을 분별하여 앉는 것이 되며, 색을 분별하면 색을 구하는 행을 짓습니다. 이미 이와 같이 행하면, 생로병사의 고통을 여의지 못하게 됩니다. 보살은 다시 구화구사라가 없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 안․이․비․설․신․의에 처하여 6정(情)으로 분별하고 다시 18성(性)으로 분별하고 다시 37품과 부처님의 18법에 머물고 각각 분별하고 계교하여 색을 구하므로 또한 다시 생로병사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이 보살은 오히려 성문․벽지불도 증득할 수 없거늘 하물며 아뇩다라삼야삼보를 얻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한 일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보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 구화구사라가 없다고 마땅히 알아야 합니다.”
사리불이 수보리에게 물었다.
“보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에 구화구사라가 있는지 어떻게 마땅히 알겠습니까?”
수보리가 대답하였다.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 색(色)․통(痛)․상(想)․행(行)․식(識)에서 상행(相行)을 짓지 않고, 또한 5음이 유상(有常)․무상(無常)하다고 말하지 않고, 5음에서 또한 고락행(苦樂行)을 짓지 않고 또한 아소이다 아소가 아니다라는 행을 짓지 않고, 5음에서 공(空)․무상(無相)․무원(無願)이라는 행을 짓지 않고 5음에서 또한 적정하다는 행도 짓지 않습니다. 이런 까닭으로 사리불이여, 5음을 공하다고 하면 5음이 아닌 것이 되며, 5음이 공을 여읜 것도 아니고 공이 5음을 여읜 것도 아니므로 5음이 바로 공이고 공이 바로 5음입니다. 6바라밀․37품과 부처님의 18법이 모두 공하며, 가령 공이라 하는 것은 또한 18법을 여의지 않고 18법도 또한 공을 여의지 않습니다. 보살이 이와 같이 반야바라밀을 행하면 이것이 곧 구화구사라입니다. 보살이 이와 같이 반야바라밀을 행하면, 곧 아뇩다라삼야삼보를 이룰 것입니다.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에 또한 반야바라밀을 보지 않고 또한 행함을 보지 않고 행하지 않음도 보지 않습니다.”
사리불이 수보리에게 물었다.
“무슨 까닭에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 반야바라밀을 보지 않는 것입니까?”
수보리가 대답하였다.
“반야바라밀의 모양은 본래 실로 볼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있는 것은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 볼 바가 없는 것입니다. 무슨 까닭인가 하면, 보살은 모든 법에 있는 바가 없음을 빠짐없이 알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모든 법에 생함이 없는 삼매라고 이름하니, 모든 보살마하살의 무량하고 무한하고 광대한 작용으로 성문․벽지불이 알 바가 아닌 것입니다. 보살마하살이 이 삼매를 여의지 않으면 곧 속히 아뇩다라삼야삼보를 얻을 것입니다.”
사리불이 수보리에게 물었다.
“단지 이 삼매가 보살로 하여금 속히 아뇩다라삼야삼보를 이루게 하는 것입니까, 다시 다른 삼매가 있습니까?”
수보리가 대답하였다.
“또한 다른 삼매가 있어 보살로 하여금 속히 부처를 이루게 합니다.”
사리불이 물었다.
“그것은 무엇입니까?”
수보리가 말하였다.
“수능엄(首楞嚴)이라고 이름하는 삼매가 있는데, 보살이 이 삼매를 행하면 또한 속히 부처를 이룰 것입니다. 또 보인(寶印)삼매․사자유보(師子遊步)삼매․월(月)삼매․작월당(作月幢)삼매․제법인(諸法印)삼매․조정(照頂)삼매․진법성(眞法性)삼매․필조당(必造幢)삼매․금강(金剛)삼매․제법소입인(諸法所入印)삼매․삼매왕소입(三昧王所入)삼매․왕인(王印)삼매․역진(力進)삼매․보기(寶器)삼매․필입변재(必入辯才)삼매가 있습니다. 이와 같은 삼매를 보살마하살이 빠짐없이 배우면 곧 속히 부처를 이룰 것입니다.
사리불이여, 다시 무앙수의 헤아릴 수 없는 삼매가 있으니, 보살은 마땅히 배워야 하며, 또한 보살로 하여금 속히 부처를 얻게 할 것입니다.”
수보리가 부처님의 위신력을 이어받아 말하였다.
“만약 어떤 보살마하살이 이 삼매를 행한다면 이미 과거의 부처님께 수기를 받은 것이, 지금 현재의 모든 부처님들도 또한 수기를 주시는 것입니다. 또한 삼매를 보지 않고 삼매를 생각하지 않고 또한 스스로를 높이면서 ‘나는 이 삼매를 얻었다’고 생각하지 않고, 또한 ‘나는 이 삼매에 머문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도무지 삼매에 대한 생각[三昧想]이 없습니다.”
사리불이 수보리에게 물었다.
“이런 모든 삼매에 머물러 과거의 모든 부처님으로부터 수기를 받았습니까?”
수보리가 말하였다.
“그렇지 않습니다, 사리불이여. 왜냐하면 반야바라밀과 삼매는 보살과 다르지 않으며 보살이 바로 삼매이고 삼매가 바로 보살입니다. 반야바라밀도 또한 이와 동등하며 다름이 없습니다. 그런데 선남자는 모든 법과 삼매가 동등함을 알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보살은 보지 않음을 삼매로 삼는 까닭에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자 세존께서 수보리를 찬탄하여 말씀하셨다.
“훌륭하고도 훌륭하구나. 내가 찬탄한 것처럼 그대는 저 모든 공적(空寂)을 행함에 제일이다. 보살마하살은 마땅히 6바라밀과 37품과 부처님의 18법도 이와 같이 배워야 한다.”
사리불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을 이렇게 배워야 하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6바라밀과 37품과 부처님의 18법은 마땅히 이와 같이 배워야 한다. 그러나 또한 얻을 것도 보는 것도 있다고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사리불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어떤 것을 얻을 바가 없고 보는 바가 없다고 하는 것입니까?”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나와 중생을 볼 수 없는 것은 안팎이 공하기 때문이다. 5음․18성․12쇠(衰)를 얻을 수도 볼 수도 없는 것은 본래 청정하기 때문이다. 12인연을 볼 수 없는 것은 항상 청정하기 때문이다. 고(苦)․습(習)․진(盡)․도(道)를 볼 수 없는 것은 항상 청정하기 때문이다. 욕성(欲性)․형성(形性)․무형성(無形性)을 볼 수 없고 37품과 부처님의 18법을 볼 수 없는 것은 청정하기 때문이다. 6바라밀과 수다원에서부터 나아가 부처에 이르기까지 볼 수 없는 것도 청정하므로 볼 수 없는 것이다.”
사리불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무엇을 청정하다고 합니까?”
세존께서 대답하여 말씀하셨다.
“생하지도 않고 있지도 않고 볼 수도 없고 하는 바가 없는 것을 청정한 것이라고 한다.”
사리불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보살마하살이 이와 같이 배우는 것은 어떤 법을 배우기 위해서입니까?”
세존께서 대답하여 말씀하셨다.
“보살은 저 모든 법이 배울 바가 없다는 것을 배우는 것이다. 왜냐하면 법은 범인(凡人)이 받아들이는 것과 같지 않기 때문이다.”
사리불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법은 무엇입니까?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대답하여 말씀하셨다.
“법의 소유는 지은 바가 없는 것과 같으므로 무소유라고 말한다.”
사리불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어떤 것을 무소유이면서 있는 것이라고 합니까?”
세존께서 대답하여 말씀하셨다.
“5음이 무소유인 것은 내외소유가 무소유공이기 때문이다. 37품과 부처님의 18법이 무소유인 것은 내외소유가 무소유공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범부와 어리석은 사람은 어리석음을 따라서 애(愛)에 들어가며 그 가운데서 어리석은 행을 지어서 양제(兩際:有無)에 얻는 바 되어 알지 못하고 보지도 못한다. 법은 어리석은 바가 없는데 명색(名色)에 들어가고, 6입(入)에 들어가고 37품과 부처님의 18법에 들어가고 비록 그 가운데에 들어가나 법은 없는 것인데, 다시 생각하여 알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한다.”
“무엇을 알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하는 것이라고 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5음은 아는 것이 아니며, 5음은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며, 37품과 부처님의 18법도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범부와 어리석은 사람의 범주에 떨어지고 어떠한 것으로부터도 벗어나지 못한다. 욕계․형계(形界)․무형계(無形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성문․벽지불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다시 불신(不信)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무엇을 믿지 않는가? 5음이 공함을 믿지 않고 37품과 부처님의 18법이 공하며 또한 머물지 않음을 믿지 않는다. 어느 곳에 머물지 않는가? 6바라밀에 머물지 않고, 아유월치지(阿惟越致地)에도 머물지 않고 나아가 부처님의 18법에도 머물지 않는다. 그러므로 범부와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하는 것이다. 곧 안․이․비․설․신․의에 들어가며, 5음․6쇠(衰)에 들어가며, 18성(性)에 들어가며, 음욕․성냄․어리석음에 들어가며, 모든 견[諸見]에 들어가며, 37품과 부처님의 18법에 들어가며, 도(道)에 들어가는 것이다.”
사리불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보살은 이와 같이 배워야 하나, 반야바라밀을 배우지 않으면 살운야혜(薩云若慧)를 이룰 수 없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이와 같이 배워야 하나, 반야바라밀을 배우지 않으면 살운야에서 나오지 못한다.”
사리불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어째서 보살이 반야바라밀을 배우지 않으면 살운야혜를 이루지 못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보살마하살이 구화구사라가 없어서 상념(想念)으로 6바라밀과 37품과 부처님의 18법에 들어가며, 이 상념으로 살운야에 들어간다. 그러므로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배우지 않으면 살운야혜를 생성하지 못하는 것이다.”
사리불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보살이 어떻게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살운야혜를 이루게 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보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하려면 반야바라밀을 보지 않아야 한다. 이것이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배워서 살운야혜를 이루려면, 마땅히 보는 바도 없어야 하며 얻을 바도 없어야 한다.”
사리불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어떤 것을 보는 바도 없고 얻을 바도 없는 것이라 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일체법을 보지 않음이니 공하기 때문이다.”
13. 문환품(問幻品)
수보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만약 어떤 사람이 묻기를, ‘환인(幻人)이 보시․지계․정진․인욕․일심(一心)․지혜를 배우고 37품과 부처님의 18법을 배우고 살운야(薩云若)를 배우면 살운야를 이루게 되는 것입니까?’라고 한다면, 저는 마땅히 어떻게 대답해야 합니까?”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다시 그대에게 묻겠으니, 그대의 뜻에 따라 나에게 대답하여라. 수보리여, 어떻게 생각하느냐? 5음과 환(幻)은 다름이 있는가? 안․이․비․설․신․의와 색․성․향․미․세활․법과 18성과 환은 다름이 있는가?”
수보리가 대답하였다.
“다름이 없습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37품․부처님의 18법․공(空)․무상(無相)․무원(無願), 나아가 도(道)와 환은 다름이 있는가?”
수보리가 대답하였다.
“다름이 없습니다. 세존이시여, 5음이 바로 이 환이고 환이 바로 5음이며, 12쇠와 18성이 모두 이 환이며, 37품과 부처님의 18법도 또한 환이며 환이 곧 18법입니다.”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환인(幻人)에게 집착이 있고, 번뇌[縛]가 있고, 생(生)이 있고, 사(死)가 있는가?”
대답하였다.
“없습니다.”
“수보리여, 어떻게 생각하느냐? 환인은 또한 생하지도 않고 또한 멸하지도 않는데, 반야바라밀을 배워서 살운야를 이룰 수가 있겠는가?”
수보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얻을 수 없습니다.”
“수보리여, 어떻게 생각하느냐? 명자(名字)에 집착하고, 법과 5음 숫자를 합하여 보살이라고 하는가?”
대답하였다.
“이와 같습니다. 세존이시여.”
“명자에 집착하고 5음 생멸을 볼 수 있겠는가?”
수보리가 대답하였다.
“볼 수 없습니다.”
“또한 일어남도 없고 멸함도 없고, 명자도 없고 또 신행(身行)도 없고, 의행(意行)도 없고, 집착도 없고, 번뇌[縛]도 없는데 반야바라밀을 배운다고 해서 어찌 살운야를 얻겠는가?”
수보리가 대답하였다.
“이룰 수 없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보살이 반야바라밀을 배우면, 응당 얻을 바가 없다.”
수보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보살이 이와 같이 반야바라밀을 배우면 아뇩다라삼야삼보에 이르게 되니, 마치 환인의 배움과 같은 것입니다. 왜냐하면 5음은 환인과 같기 때문입니다.”
“수보리여, 어떻게 생각하느냐? 5음으로 반야바라밀을 배우면 살운야를 이루겠느냐?”
수보리가 대답하였다.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왜냐하면 5음의 소유(所有)는 무소유(無所有)이고, 무소유란 것도 또한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수보리여, 어떻게 생각하느냐? 5음은 꿈과 같고 메아리와 같고 그림자와 같고 더울 때의 아지랑이와 같고 변화와 같은데, 마땅히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하겠느냐?”
대답하였다.
“그렇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5음․6쇠는 꿈과 같고 환과 같고 무소유이니, 볼 수가 없습니다.”
수보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새롭게 대승의 뜻을 발한 보살이 반야바라밀의 법문을 들으면 공포가 없겠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새롭게 대승을 배우는 보살은 반야바라밀과 구화구사라를 얻지 못하고 선지식과 같이 하지 못하여 혹은 두려워하고 혹은 무서워한다.”
수보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보살이 어떤 구화구사라를 행해야만 보살들로 하여금 무서워하지도 않고 두려워하지도 않게 되겠습니까?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보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하여 살운야의 행과 상응하며, 5음은 무상하다고 관하여 5음에 의지하지 않는다. 이것을 보살이 반야바라밀과 구화구사라를 행하는 것이라고 한다. 또한 수보리여, 보살이 뜻으로 살운야의 행과 상응하여 5음이 고(苦)이고, 공하며 아(我)가 없음을 관하며, 5음이 공하고 상(相)이 없고 원(願)이 없음을 관하며, 5음이 적정한 것임을 관하면 마땅히 얻을 것이 없게 되며, 의지할 것이 없게 된다. 이것을 보살이 반야바라밀과 구화구사라를 행하는 것이라고 한다. 보살은 마땅히 ‘나는 모든 중생들을 위해서 무상(無常)․고(苦)․공(空)․비아(非我)를 설하고, 공(空)․무상(無相)․무원(無願)․적정의 법이 응당 얻을 것도 없으며, 의지할 것도 없음을 설하리라’고 생각하면 이것을 보살의 단바라밀이라고 한다.
또한 수보리여, 보살은 또한 나한․벽지불의 뜻으로 5음이 무상하고 고(苦)이고 공하고 아(我)가 없음을 관하지 않으며, 또한 나한․벽지불의 뜻으로 공․무상․무원․적정을 관하지 않으면 이것을 보살이 계를 범하지 않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보살은 공포에 떨지도 않고 두려워하지도 않는 것이다. 보살이 온 힘을 다해서 봉행하고 능히 참을 수 있으면 이것을 보살이 찬제바라밀을 행하는 것이라고 한다.
또한 수보리여, 보살이 뜻으로 살운야의 행과 상응하여 5음이 무상함을 관하나 응당 소견이 없어야 하며, 집착도 없어야 하며, 살운야의 뜻을 버리지 않으면 이것을 보살이 유체바라밀을 행하는 것이라고 한다. 보살이 마땅히 이러한 행을 지으면 나한․벽지불의 뜻을 일으키지 않고 다른 사람의 악한 마음에 구속되어도 이러한 생각을 일으키지 않는다. 이것을 보살마하살이 선바라밀을 행하는 것이라고 하며, 무서워하지도 않고 두려워하지도 않는다.
또한 수보리여, 보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하려면 마땅히 이렇게 관해야 하는 것이 5음이 공하므로 공이 바로 5음인 것은 아니다. 6정(情)․18성․37품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그러므로 보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하면 무서워하지도 않고 두려워하지도 않게 되는 것이다.”
수보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보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하려면 어떤 선지식과 함께 반야바라밀의 설법을 듣고 무서워하지도 않고 두려워하지도 않겠습니까?”
부처님께서 대답하여 말씀하셨다.
“보살은 5음이 무상하고 고(苦)이고 공하고 아(我)가 없는 것이고, 공하고 모양이 없고 원하는 것도 없으며, 적정하여 희망하는 바가 없으며, 이 희망하는 바가 없는 복을 가지고 나한․벽지불지의 행은 짓지 않고 단지 살운야만을 구한다. 이것을 보살의 선지식이라고 한다. 6정․18성․적정을 설하면서 희망하는 바가 없다. 이 공덕을 가지게 되면 성문․벽지불지는 원하지 않는다. 이것을 보살의 선지식이라고 한다. 또한 수보리여, 보살이 37품과 부처님의 18법을 생각하고 살운야를 생각하며 도(道)를 생각하고, 일체 설법에 희망하는 바가 없음으로써 희망하는 바가 없는 복을 가지고 성문․벽지불지를 위하지 않고 다만 살운야를 위한다. 이것을 보살의 선지식이라고 한다.”
수보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어떤 것이 보살이 반야바라밀을 배울 때 구화구사라가 없고 악지식(惡知識)이 되며, 반야바라밀의 설법을 듣고 무서워하고 두려워합니까?”
세존께서 대답하여 말씀하셨다.
“보살이 살운야의 뜻을 여의고 반야바라밀에 의지하여 스스로를 높이고 선․정진․인욕․지계를 행하고 보시를 행하며 단바라밀에 의지하게 되니, 스스로를 높이는 것이다.
또한 수보리여, 보살이 살운야의 뜻을 여의고, 5음의 내외공(內外空)을 생각하며, 이 공으로 스스로를 높이고 의지하게 된다. 6정(情)이 공함을 생각하고, 18성이 공함을 생각하며, 이로써 스스로를 높이고 37품과 부처님의 18법이 공함을 생각하고, 18법에 의지하여 스스로를 높이는 것이다. 이것을 보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 구화구사라가 없고, 반야바라밀의 설법을 들었으나 두려워하고 무서워하는 것이다.”
수보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어떤 것이 보살의 악지식(惡知識)이 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6바라밀을 멀리 여의도록 가르치며, 보살이 말하기를 부처님께서 설하신 것이 아니니 배우지 말라고 하며, 단지 모일 줄만 알고 들으려고 하지 않고, 수지(受持)하지 않고, 경전을 독송하지 않고, 또한 타인을 가르치려고 하지 않는다. 이것이 보살의 악지식임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다시 보살에게 악지식이 있어 마군이 즐겨 하는 일을 말하고 마왕 파순(波旬)이 부처님의 형상을 하고서 보살의 처소에 가서 보살들에게 6바라밀을 멀리 여의라고 말하며, 보살에게 ‘선남자여, 이러한 6바라밀을 배우는 것이 무슨 소용인가?’라고 말한다. 이것이 보살의 악지식임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마군이 다시 부처님의 형상을 하고서 보살의 처소에 가서 성문에 해당하는 행동과 경을 분별하고 자세히 설하지만 이것은 마군의 일을 설하는 것이다. 이것이 보살의 악지식임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마군이 다시 부처님의 형상을 하고서 보살의 처소에 가서 보살에게 ‘선남자여, 그대는 또한 보살의 뜻이 없고, 또한 아유월치도 아니다. 그대는 또한 아뇩다라삼야삼보를 이룰 수 없다’고 말한다. 가령 보살을 가르치지도 않고, 마군의 일을 깨닫게 하면 이것이 보살의 악지식이다. 마왕 파순이 다시 부처님의 형상을 하고서 보살의 처소에 가서 보살에게 ‘선남자여, 안․이․비․설․신․의가 공하며, 6쇠․18성이 모두 공하며, 6바라밀과 37품과 부처님의 18법이 모두 공한데, 아뇩다라삼야삼보를 배운들 무슨 소용인가?’라고 말하고, 이와 같이 가르친다면 이것이 보살의 악지식인 것이다.
또한 수보리여, 마군이 다시 벽지불의 형상을 하고서 보살의 처소에 이르러서 보살에게 ‘선남자여, 시방은 모두 공하며 부처님도 없고 또한 보살도 없고 또한 성문도 없다’고 말하며, 보살들에게 이러한 마군의 일을 설한다. 이것이 곧 보살의 악지식임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마군이 다시 성문의 형상을 하고서 옷을 입고, 보살의 처소에 가서 보살들에게 살운야의 뜻을 단절하게 만들고, 성문․벽지불의 행을 설한다. 이와 같이 지어야 한다고 가르친다면, 이것이 보살의 악지식이다. 마군이 다시 보살의 스승의 몸을 하고서 그에 맞는 옷을 입고 보살의 처소에 가서 보살행을 여의도록 가르치고, 살운야․37품․부처님의 18법을 여의도록 가르친다. 공하여 모양이 없으며 원하는 것도 없어야 한다 하고, 보살에게 이 법을 가지게 하면서 ‘그대는 마땅히 이 법을 생각해야 하고 성문지(聲聞地)를 증득하는데, 아뇩다라삼야삼보를 배우는 것이 무슨 소용인가?’라고 할 것이다. 이렇게 하면 마군의 일일 뿐이다.
또한 수보리여, 마군이 다시 보살의 어머니 모양을 하고서 보살의 처소에 이르러서 ‘아들아, 너는 마땅히 수다원을 증득해야 하고 나한과를 익혀 증득해야 하는데, 아뇩다라삼야삼보가 무슨 소용인가? 이것을 얻으려면 무량한 겁 동안 생사를 받을 것이며, 응당 손을 끊고, 다리를 끊는 아픔을 받게 될 것이다’라고 말한다. 보살들을 향해서 이러한 마군의 일을 설한다면, 이것이 마군의 일을 짓는 것이다.
또한 수보리여, 마군이 다시 비구의 형상을 하고서 그대 옷을 입고 보살의 처소에 가서 보살에게 안․이․비․설․신․의는 무상(無常)하고 고(苦)이고 공하고 아(我)가 없는 것이라 하고, 공하여 모양도 없으며 원하는 것도 없어 적정한 것인데, 37품과 부처님의 18법을 설하는 것은 모두 모양을 설하고 일에 집착한 것이라고 말을 한다면, 이것이 보살의 악지식임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이미 알았으면 마땅히 속히 널리 여의어야 한다.”
14. 요본품(了本品)
수보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보살이라는 호칭이 보살이 되는 것입니까? 그 글 구절의 뜻은 무엇입니까?”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보살이란 구절[句]의 뜻은 의미가 없다. 왜냐하면 도라는 것에는 구절의 뜻이 있는 것이 아니며, 또한 나라 할 것도 없는 것이다. 보살이라고 하는 뜻도 이와 같은 것이다. 수보리여, 비유하면 새가 허공을 날지만 발자취가 있지 않은 것처럼 보살이란 뜻도 이와 같은 것이다. 비유하면 꿈과 같고 환과 같고, 아지랑이와 같고, 그림자와 같고, 여래가 변화한 것과 같아서 무소유이니, 보살의 뜻도 이와 같은 것이다. 비유하면 법성과 진제(眞際)도 또한 무소유이다. 비유하면 환사(幻士)가 5음을 얻을 수도 없고 볼 수도 없는 것처럼 반야바라밀을 행하는 보살마하살이란 뜻도 또한 이와 같은 것이다. 비유하면 환사가 내외에 공을 행하는 것과 같으니, 또한 무소유이다. 보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하는 그 뜻도 또한 이와 같은 것이다.
수보리여, 비유하면 환사가 6바라밀과 37품과 부처님의 18법을 행하는 것과 같아서 있는 것이 아니며, 보살의 뜻도 이와 같은 것이다. 수보리여, 비유하면 부처님께서 5음을 얻을 수 없는 것과 같다. 왜냐하면 5음은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보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하지만 보살이란 글귀의 뜻은 볼 수 없는 것이다. 수보리여, 비유하면 달살아갈(怛薩阿竭)․아라하(阿羅訶)․삼야삼불(三耶三佛)의 6정(情)이 무소유인 것처럼 보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에 그 뜻도 또한 이와 같은 것이다. 수보리여, 비유하면 부처님께서 내외공을 행하는 것과 같아서 그 끝[際]을 볼 수 없는 것이다. 37품과 부처님의 18법을 행하는 것도 볼 수 없는 것이니, 보살이란 그 뜻도 또한 이와 같은 것이다. 유위(有爲)와 무위(無爲)의 성품도 또한 그 뜻이 있는 것이 아니다. 수보리여, 비유하면 생하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는 것처럼 짓는 것도 없고 집착하는 것도 없으며 단절하는 것도 없는 것이니, 그 뜻은 또한 있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이 생하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고, 집착하지도 않고 단절되지도 않고 있지도 않고 짓지도 않는 것입니까?”
“5음은 생하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으며, 또한 집착하지도 않고 또한 단절되지도 않으며, 또한 볼 수 없는 것이다. 18성․6정․6쇠․5음도 볼 수 없는 것이며, 37품과 부처님의 18법에 집착할 것도 없으며 집착도 없고 끊어버릴 뜻도 없으니, 얻을 수 없는 것이다. 반야바라밀을 행하는 보살의 그 뜻도 또한 이와 같은 것이다. 수보리여, 비유하면 37품과 부처님의 18법은 본래 청정해서 뜻이 없는 것처럼 보살이란 뜻도 이와 같은 것이다. 비유하면 아(我)가 청정한 것처럼 아에 변제(邊際)가 있지 않으므로 우리의 수명도 청정해서 볼 수 없는 것이다. 중생이 변제가 없으므로 보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하는 그 뜻도 또한 이와 같은 것이다. 비유하면 해가 뜰 때 모두 어두운 자취는 다시 나타나지 않는 것처럼 보살도 또한 이와 같은 것이다. 비유하면 천지겁(天地劫)이라 해서 불이 타오를 때에 세간에 있는 모든 것은 모두 다 타서 그 자취를 볼 수 없는 것처럼, 보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하는 그 뜻도 또한 이와 같은 것이다.
수보리여, 비유하면 세존께서 계(戒)를 구족하셨을 때에 악계(惡戒)의 자취는 다시 나타나지 않고, 삼매를 얻으면 어지러운 뜻의 자취는 다시 나타나지 않고, 지혜를 얻으면 어리석음[愚癡]의 자취는 없고, 해탈을 얻으면 해탈하지 못한 자취는 다시 볼 수 없고, 이미 해탈의 지혜를 보았으면 해탈하지 못한 지혜는 다시 볼 수 없는 것과 같은 것이다. 비유하면 불광(佛光)이 나올 때에 일월(日月)과 도리(忉利)의 모든 천왕과 아가니타천의 광명이 다시 나타나지 않는 것처럼 보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 그 글귀의 뜻은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도라는 것과 보살․보살의 뜻은 또한 합하지도 않고 또 흩어지지도 않으며, 형상이 없어서 볼 수 없는 것이다. 상대[對]가 없는 한 가지 모양[一相]이며, 한 가지 모양은 곧 모양이 아니다. 수보리여, 보살은 마땅히 모든 법에 집착하는 바가 없음을 배워야 하며, 또한 마땅히 모든 법을 깨달아야 한다.”
수보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어떤 것이 모든 법이며, 어떤 것이 보살이 모든 법에 집착함이 없음을 배우는 것이며, 어떤 것이 보살이 모든 법을 깨달아 아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모든 법이란 이른바 선법(善法)․악법(惡法)․기법(記法)․미기법(未記法)․속법(俗法)․도법(道法)․유루법(有漏法)․무루법(無漏法)․유위법․무위법이다. 이것을 보살이 마땅히 모든 법에 집착이 없음을 배워야 하는 것이라고 한다.”
수보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어떤 것이 세속의 선법입니까?”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세속의 선법이란 부모에게 효순(孝順)하고 사문과 도인에게 공양하고, 장로(長老)를 양육하고 모든 복을 베풀고 몸을 단속하여 수절하고, 정근하고 선한 뜻을 생각하고 방편으로 10선(善)을 수행하는 것, 속인의 내상(內想)․부패상(腐敗想)․청어상(靑瘀想)․혈상(血想)․식불초상(食不消想)․어지러운 상(亂想)․골상(骨想)․반초상(半燋想)․4선(禪)․4등(等)․4무형선상(無形禪想)․불상(佛想)․법상(法想)․비구승상(比丘僧想)․계상(戒想)․시상(施想)․천상(天想)․정근상(精勤想)․안반상(安般想)․신상(身想)․사상(死想)을 말하는 것이다. 수보리여, 이것을 세간의 선법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세속의 악법입니까?”
“살생하는 것․도둑질․음욕․성내는 것․악구(惡口)․망언(妄言)․기어(綺語)․질투․사견 등을 세속의 악법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기법입니까?”
“선법이든 선법이 아니든 이것을 기법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미기법입니까?”
“신(身)․구(口)․의(意)가 있지 않고, 4대(大)가 있지 않고, 5음․18성(性)․12쇠(衰)가 있지 않은 것을 미기법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세속법입니까?”
“5음․12쇠․18성․10선(善)․4선(禪)․4등․4무형선을 세속법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도법입니까?”
“37품․3해탈문․3근(根)․3삼매(三昧)․해탈섭의(解脫攝意)․8해탈문․9차제선(次第禪)․18공(空)․부처님의 10력․4무소외(無所畏)․부처님의 18법을 도법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누법(漏法)입니까?”
“5음․12쇠․18성․12인연․4선․4무형선을 누법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무루법입니까?”
“37품과 부처님의 18법을 무루법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유위법입니까?”
“욕계(欲界)․형계(形界)․무형계의 37품, 나아가 부처님의 18법을 유위법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무위법입니까?”
“무위법이란 생하는 것도 아니고 또한 멸하는 것도 아니며, 마침[終]이 있는 것도 아니고 또한 시작이 있는 것도 아니며, 상주(常住)하여 변화도 없고, 음욕․성냄․어리석음이 다하여 법성과 진제(眞際)와 같아 다름이 없는 것을 무위법이라고 한다.”
“보살마하살은 공상(空相)의 법에 집착함이 없으며, 경동(傾動)함이 없으며, 모든 법이 둘이 아님을 깨달아야 한다.”
수보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어떤 것이 마하살입니까?”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모든 대중들에는 반드시 상수(上首)가 있으므로 마하살이라고 이름하는 것이다.”
수보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어떤 중생이 상수가 되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대중이란 수다원․사다함․아나함․아라한․벽지불․처음 발심한 보살마하살에서 아유월치지에 머무는 자에 이르기까지가 대중의 모임이며, 이 가운데서 보살이 상수이며, 이 가운데서 마땅히 금강의 뜻[金剛意]을 발하여 곧 상수가 되는 것이다.”
수보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어떤 것이 금강의 뜻입니까?”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보살마하살은 다음과 같이 뜻을 발해야 한다.
‘나는 마땅히 한량없는 생사를 받는 동안 정진행을 지을 것이다. 나는 마땅히 중생을 위해서 일체의 소유(所有)를 버릴 것이다. 나는 마땅히 일체 중생들에게 마음을 평등히 할 것이다. 나는 삼승으로써 중생을 제도하며 해탈케 하고, 반니원(般泥洹)에 이르게 할 것이며, 또한 중생이 반니원에 드는 것을 보지 않을 것이다. 나는 모든 법이 어느 곳으로부터 와서 생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하고, 항상 살운야혜(薩云若慧)의 뜻으로 6바라밀을 행할 것이다. 나는 마땅히 배워서 반드시 일체를 구할 것이다.’
수보리여, 이것을 보살이 금강의 뜻을 발한 것이라고 한다. 즉 대중을 위하는 최고의 상수가 되는 것이다.
보살이 다시 다음과 같이 뜻을 발해야 한다.
‘나는 마땅히 니리(泥犁:지옥)와 벽려(薜荔:축생)에서 죄인이 받는 고통을 받을 것이다. 나는 마땅히 중생을 위해서 무량한 겁 동안 고통을 대신 받을 것이며, 중생으로 하여금 무여니원(無餘尼洹)과 반니원에 이르게 한 후에 나 자신 스스로 몸으로 선한 근본을 지어 억백천 겁 후에 아뇩다라삼야삼보를 이룰 것이다.’
수보리여, 이것을 보살이 금강의 뜻을 발한 것이며, 대중들 가운데 상수(上首)가 되는 것이라고 한다. 보살은 마땅히 묘의(妙意)를 가지며 묘의로써 중생 가운데 상수가 되는 것이다. 처음 뜻을 발한 이래로 또한 음욕․성냄․어리석음의 뜻을 일으키지 않고, 또한 중생을 혼란스럽게 하지 않고, 또한 성문․벽지불의 뜻을 일으키지 않는다. 이것을 보살마하살이 묘한 뜻을 가져서 대중 가운데서 상수가 되는 것이라고 하며, 또한 스스로 높이는 것을 생각하지 않는다. 보살은 마땅히 살운야의 뜻에서 동요하지 않고, 또한 스스로 높이지도 않는다. 보살은 항상 중생을 호념(護念)하는 마음을 일으키며, 또한 중생을 버리지 않는다. 보살마하살은 마땅히 법을 행하니, 응당 법락(法樂)을 누리게 되는 것이다.”
“어떤 것이 법락입니까?”
“그 아는 바를 따라서 외우고 수지하며, 보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 모든 법공(法空)에 머물고, 대중을 위해서 인도하지만 또한 의지하지도 않고, 또한 얻을 것도 없는 것이다. 보살은 37품과 부처님의 18법에 머물고, 대중을 위해서 상수가 되지만 의지함도 없고, 어떠한 소견도 없다. 보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 금강과 같은 삼매를 행함에 머물고 나아가 허공 끝이 다하도록 물들지 않는 해탈삼매를 체득하여 곧 대중 가운데 상수가 되지만 얻을 바도 없고, 또한 의지할 것도 없는 것이다. 수보리여, 보살은 이와 같은 법지(法地)에 머무므로 곧 능히 중생을 위해서 상수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마하살이라 이름하는 것이다.”
15. 마하살품(摩訶薩品)
이때 사리불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저도 또한 마하살이 되는 까닭이 무엇인지 설하고 싶습니다.”
부처님께서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설해 보아라.”
사리불이 말하였다.
“보살은 모든 망견(妄見)을 다 끊었으므로 마하살이라고 이름하는 것입니다. 어떤 것을 모든 견[諸見]․망견이라고 하는 것인가? 아견(我見)과 인견(人見)과 중생견이 있고, 단견(斷見)이 있고, 상견(常見)이 있고, 유견(有見)․무견(無見)․5음견(陰見)․18성견(性見)․12쇠견(衰見)․제견(諦見)․12인연견․37품과 부처님의 18법견이 있고, 육양중생견(育養衆生見)이 있고, 정불토견(淨佛土見)이 있고, 도견(道見)이 있고, 불견(佛見)․전법륜견(轉法輪見) 등이 있는데, 일체의 모든 견을 모두 끊으며 이와 같이 설법을 하므로 마하살이라 이름하는 것입니다.”
수보리가 사리불에게 물었다.
“보살마하살이 무슨 이유로 5음․12쇠․18성․12인연의 견해가 있으며, 무슨 이유로 37품․부처님의 18법견, 나아가 망견이 있는 것입니까?”
사리불이 대답하였다.
“보살마하살은 구화구사라가 없이 반야바라밀을 행하므로 5음․6정․18성․12인연에 힘쓰고, 6바라밀․37품․부처님의 18법에 의지하여 모든 견을 일으키기 때문입니다.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 구화구사로써 모든 견해를 끊고 사람들을 위해서 설법을 하되 의지할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수보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저도 마땅히 마하살이 되는 까닭이 무엇인지 설하고 싶습니다.”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설해 보아라.”
수보리가 말하였다.
“도의 뜻과 동등함이 없음은 성문․벽지불이 아는 바와 다릅니다. 왜냐하면 살운야의 뜻은 무루(無漏)여서 뜻에 집착하지 않으므로 마하살이 되는 것입니다.”
사리불이 수보리에게 물었다.
“어떤 것이 보살의 동등함이 없는 뜻으로 모든 나한과 벽지불이 미치지 못하는 것입니까?”
수보리가 대답하였다.
“보살마하살은 처음 뜻을 발한 이래로 법에 생멸이 있음을 보지 않고, 또한 증감(增減)이 있음을 보지 않고, 또한 집착도 보지 않고 또한 단절함도 보지 않습니다. 사리불이여, 모든 법은 생하는 것도 아니고 멸하는 것도 아니며, 또한 나한․벽지불의 뜻도 없고, 또한 도의 뜻도 없고, 또한 부처의 뜻도 없습니다. 이것을 보살마하살의 동등함이 없는 뜻은 나한․벽지불이 알 수 있는 것과 다르다고 합니다.”
사리불이 말하였다.
“수보리의 뜻처럼 나한․벽지불지에 집착하지 않고 5음에도 집착치 않고 또한 37품과 부처님의 18법에 집착하지 않습니다.”
사리불이 수보리에게 말하였다.
“가령 살운야의 뜻이 무루라고 한다면, 범인의 뜻도 또한 마땅히 무루이니 성품이 공하기 때문입니다. 나한․벽지불과 모든 부처님 세존의 뜻도 또한 마땅히 무루입니다.”
수보리가 말하였다.
“그대가 말한 바와 같습니다.”
사리불이 말하였다.
“5음도 또한 무루이니 그 성품이 본래 공하기 때문입니다. 37품․부처님의 18법도 또한 무루(無漏)이니 성품이 공하기 때문입니다.”
수보리가 말하였다.
“사리불이 말한 것과 같습니다.”
사리불이 수보리에게 물었다.
“뜻이 없어서 뜻과 합하지 않습니까? 색․통․상․행․식이 없어서 식과 합하는 것이 아닙니까?”
수보리가 말하였다.
“그대가 말한 것과 같습니다.”
사리불이 다시 물었다.
“37품과 부처님의 18법과 18법이 아닌 것에 집착하지도 않고, 합하지도 않는 것입니까?”
수보리가 대답하였다.
“유무의 일은 모두 합하는 것입니다.”
수보리가 사리불에게 말하였다.
“보살마하살은 이와 같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 도의 뜻을 갖지 않은 이와 나한․벽지불은 능히 알 수 없는 것입니다. 또한 스스로 높이지도 않고 의지함도 없으며 의지함에도 법에도 들어갈 수 없는 것입니다.”
16. 문승나품(問僧那品)
그때 빈누문타니자(邠耨文陀尼子)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저도 마땅히 마하살이 되는 까닭을 설하고 싶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대가 설하고자 하면 곧 설하라.”
빈누가 말하였다.
“보살은 큰 공덕을 지어서 대승에 연류하여 오르려고 합니다. 그러므로 마하살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사리불이 빈누에게 물었다.
“어떤 것이 보살마하살이 큰 공덕으로써 연류하여 마하살이 되는 것입니까?”
빈누가 대답하였다.
“보살마하살은 사람에게만 제한하지 않으므로 단(檀)바라밀에 머물러서 보시를 하며, 널리 일체 중생들을 위하기 때문입니다. 단바라밀과 시․찬․유체․선․반야 바라밀을 행하는 데 널리 일체 중생들을 위하기 때문이며, 겸손하게 고행을 합니다. 보살은 승나승녈(僧那僧涅) 범어로는 Saṃnāha-saṃnad-dha. 승나는 홍서(弘誓) 또는 대서(大誓)라 번역하고, 승녈은 자서(自誓)라 번역한다. 곧 보살의 사홍서원을 말한다. 스스로 사홍서원을 맹서하는 것을 승나승녈이라 한다. 또 승나는 개(鎧), 승녈은 착(着)이라 하기도 하는데, 갑옷을 입는다는 뜻이고, 피갑(被甲)이라 번역한다. 사홍서원을 갑주에 비유한 말이다.
을 이루어서 중생에게만 제한하지 않고, 또한 ‘나는 마땅히 약간의 사람만을 제한적으로 제도하고 나머지 사람은 제도하지 않겠다’고 말하지 않으며, 또한 ‘나는 약간의 사람만 가르쳐 도(道)에 이르게 하겠다’고 말하지 않으며, 또한 ‘나는 나머지 사람을 가르치지 않겠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보살은 중생을 위하므로 큰 서원을 일으켜 ‘나는 스스로 6바라밀을 구족해서 마땅히 타인을 가르쳐 6바라밀을 구족하게 하겠다’고 말합니다. 보살이 단바라밀을 행할 때 보시는 살운야의 뜻에 상응하고 서원을 세워 ‘이 공덕을 일체 중생들과 함께 가져 함께 아뇩다라삼야삼보를 얻을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사리불이여, 이것을 보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 보시를 익히는 것이라고 합니다. 또한 사리불이여, 보살의 보시는 살운야에 상응하며, 나한․벽지불지를 구하지 않습니다. 이것을 보살이 반야바라밀의 보시를 행할 때 시바라밀을 익히는 것이라고 합니다.
또한 사리불이여, 보살이 보시를 행할 때 살운야를 지으며, 법이 상응하는 바의 행을 생각합니다. 이것을 찬바라밀을 익히는 것이라고 합니다. 정진과 상응하는 바의 행을 유체바라밀을 익히는 것이라고 합니다. 일심(一心)으로 하는 보시는 살운야와 상응하며, 마침내 성문․벽지불의 뜻을 일으키지 않음을 생각합니다. 이것을 선바라밀을 익히는 것이라고 합니다. 보시하는 것은 환상(幻相)과 같은 것이니, 베푸는 자도 보지 말고, 또 베푸는 물건도 보지 말고, 또 받는 자도 보지 말아야 합니다. 이것을 보살이 보시를 하면서 반야바라밀을 익히는 것이라고 합니다. 보살은 살운야의 뜻으로 모든 반야바라밀을 생각하지 않고 또 의지하지도 않습니다. 사리불이여, 그러므로 보살의 승나승녈이 됨을 마땅히 알아야 합니다.
또한 사리불이여, 보살마하살이 시바라밀을 행할 때 살운야에 상응하는 뜻을 보시하고 보시 공덕을 중생과 더불어 가져 함께 아뇩다라삼야삼보를 구합니다. 이것을 보살이 시바라밀을 행할 때 단바라밀을 구족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또한 사리불이여, 보살이 시바라밀을 행할 때 능히 정성을 다하여 봉행하고 능히 인욕해야 하니, 이것을 보살이 시바라밀을 행할 때 찬바라밀을 구족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또한 사리불이여, 보살이 시바라밀을 행할 때 유체바라밀을 구족하는 것을 보살이 정진을 익히는 것이라고 합니다. 보살은 시바라밀을 행할 때 나한․벽지불의 뜻을 받지 않으며, 보살은 시바라밀을 행할 때 모든 바라밀을 환상같이 여기고 스스로 높이지 않고, 또한 의지하지도 않습니다. 사리불이여, 이것을 보살이 시바라밀을 행할 때 반야바라밀을 익히는 것이라고 하며, 이것을 보살이 시바라밀을 행할 때 모든 반야바라밀을 총지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승나승녈이라고 이름합니다. 보살은 인욕바라밀을 행할 때 살운야의 뜻에 상응하여 보시하고 보살은 무형선(無形禪)에 들어가며, 또한 그 가운데 처하지도 않습니다. 이것을 보살이 구화구사라를 행하고 반야바라밀을 실행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또한 사리불이여, 보살은 선을 행하면서 공․무상․무원을 분별합니다. 이것을 보살이 승나승녈을 행하면서 반야바라밀을 실행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런 이유로 승나승녈이라고 이름하는 것입니다.
사리불이여, 보살이 이와 같이 승나승녈을 지으면 시방의 모든 부처님 세존께서 모두 큰 음성으로 이 보살을 찬탄하여 ‘어떤 국토의 보살은 모든 공덕을 갖추고 승나승녈을 세워서 마땅히 중생을 양육하고 불국토를 청정하게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리불이 빈누문타니자에게 물었다.
“어떤 것이 보살마하살의 마하연삼발치(摩訶衍三拔致)입니까? 마하연삼발치라는 것은 진(晋)나라 말로는 발취대승(發趣大乘)이라 합니다. 무엇이 대승을 발하여 일으키는[發起] 것입니까?”
빈누가 대답하였다.
“6바라밀을 행할 때 모든 선(禪)을 따라 상응하여 행하고 정성들여 봉행하고 살운야를 구해야 합니다. 보살은 살운야의 뜻으로 8선(禪)에 들어서 무상을 관하고 고․공․비아․무원을 관합니다. 이것이 보살의 반야바라밀을 행하는 것이며, 마하연이 되는 것입니다. 보살이 37품과 부처님의 18법을 염(念)하는 것이 보살마하연입니다. 보살의 뜻은 나한․벽지불지를 가까이 하지 않고 뜻은 단지 살운야만을 숭상합니다. 이것이 보살이 4등(等) 능가경(楞伽經)에서 나온 말이다. 그것은 제불여래의 명자 언어와 현신설법과 평등불이(平等不二)와 불불이도가 같다는 것을 나타낸 것이다.
을 행해서 찬바라밀을 실현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보살이 살운야를 행하는 뜻에 게으름이 없을 때 이것을 보살이 유체바라밀을 행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보살이 비록 4선(禪)과 자(慈)․비(悲)․희(喜)․호(護)와 9선(禪)을 행하지만 또한 보살은 동요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구화구사라가 있기 때문입니다. 보살이 4등을 행할 때 중생을 위해 모든 번뇌[漏]를 소멸하게 하는 것을 보살이 4등을 행할 때 단바라밀이라고 합니다. 모든 법에 선(禪)을 지으며 나한․벽지불을 구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항상 살운야를 구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보살이 4등을 행할 때 시바라밀을 그치지 않는 것이라고 합니다. 보살에게는 또한 마하연이 있어 내외공(內外空)에서 그 지혜가 전(轉)해지는 것도 아니며, 의지할 것도 없으며, 얻을 것도 없으며, 볼 바도 없습니다. 이것을 보살마하연이라고 합니다. 또 마하연이 있는데, 모든 법도 아니며, 지혜에 있는 것도 아니며, 어지러운 것에 있는 것도 아니며, 또한 선정[定]에 있는 것도 아니며, 지혜는 또한 유상(有常)에 있는 것도 아니며, 무상(無常)에 있는 것도 아니며, 또한 고락(苦樂)에 있는 것도 아니며, 또한 유아(有我)와 무아(無我)에 있는 것도 아닙니다. 이것을 보살마하연이라고 하며 의지할 바가 없습니다. 또한 마하연이 있는데 지혜는 미래․과거․현재에 있는 것도 아니며, 또한 삼세(三世)를 여읜 것도 아닙니다. 이것을 마하연이라고 하며 의지할 바가 없습니다. 마하연이란 지혜가 삼계에 있는 것도 아니며, 또한 삼계를 여읜 것도 아닙니다. 또한 마하연이 있는데 지혜는 속법(俗法)에 있는 것도 아니며 또 도법(道法)에 있는 것도 아니며, 또한 유위(有爲)에 있는 것도 아니며 또한 무위(無爲)에 있는 것도 아니며, 또 유루(有漏)에 있는 것도 아니며 또한 무루(無漏)에 있는 것도 아닙니다. 이것을 의지할 것이 없는 것이라고 합니다. 사리불이여, 이것이 보살마하살의 마하연인 것입니다.”
17. 마하연품(摩訶衍品)
그때 사리불이 빈누문타니자에게 물었다.
“어떤 것을 보살마하살이 대승을 탄다[乘]고 합니까?”
빈누가 사리불에게 대답하였다.
“보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 단․시․찬․유체․선 바라밀을 타고 이 6바라밀을 타지만 6바라밀을 보지 않으며 또한 보살은 의지함도 없다는 것에도 의지하지 않습니다. 이것을 대승을 탄다고 하는 것입니다. 또한 사리불이여, 보살마하살이 일심으로 살운야를 배우고 37품과 부처님의 18법을 구족하고 비록 이루었다고 생각해도 이것을 의지하는 것이 없습니다. 이것을 보살이 대승을 탄다고 합니다.
또한 사리불이여, 보살은 이와 같이 생각합니다.
‘보살이란 단지 글자일 뿐이며, 5음이라 하는 것도 단지 글자일 뿐이니, 5음은 의지할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6정(情)이라 하는 것도 글자일 뿐이니, 6정은 의지할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37품이라 하는 것도 다만 글자일 뿐이니, 37품은 의지할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내외공이라 하는 것도 글자일 뿐이니, 내외공은 의지할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부처님의 18법이라 하는 것도 다만 글자일 뿐이니, 부처님의 18법은 의지할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여래법(如來法)이라 하는 것도 단지 글자일 뿐이니, 법성(法性)을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진제(眞際)라 하는 것도 단지 글자일 뿐이니, 진제를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부처님이나 도라 하는 것도 단지 글자일 뿐이니, 부처님에 의지할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것을 보살마하살이 대승을 한다고 합니다. 또한 사리불이여, 보살마하살은 처음 뜻을 발한 이후로 보살의 신통을 구족하고 있으며, 구족한 후에는 군생(群生)들을 양육하고 한 불국토에서 다른 한 불국토로 다니면서 모든 부처님 세존을 공양하고 예배하며, 모든 부처님들로부터 법의 가르침[法敎]을 듣습니다.”
“무엇을 법의 가르침이라고 합니까?”
대답하였다.
“보살대승(菩薩大乘)은 보살승(菩薩乘) 대승이며, 모든 불찰들을 다니면서 불국토를 청정하게 하고 중생을 양육하지만 처음부터 불국토에 대한 생각이 없고 또한 중생에 대한 생각도 없고, 또 2지(地)에 머물지 않습니다. 보살은 중생을 위하기 때문에 그 응하는 바에 따라서 그 형상을 변화하며, 일체 지혜를 얻지 못해도 끝내 보살승을 여의지 않고, 일체 지혜를 체득했으면 곧 능히 법륜을 굴립니다. 이것은 나한․벽지불, 나아가 모든 천․용․열차(閱叉:야차)․아수륜(阿須倫)․세간 사람들은 능히 굴리지 못합니다.
이때 시방의 갠지스강의 모래 수처럼 많은 모든 부처님 세존께서 찬탄하여 ‘어떤 나라의 어떤 보살마하살이 대승을 타고 살운야를 체득하여 법륜을 굴린다’고 말씀하십니다. 사리불이여, 이것을 보살마하살이 대승을 탄다고 합니다.”
18. 승나승녈품(僧那僧涅品)
그때 수보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어떤 것이 보살마하살의 승나승녈입니까?”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6바라밀․37품․내외공․유무공(有無空)․부처님의 18법․일체 지혜는 모든 공덕의 갑옷을 입어 불신(佛身)을 이루고 광명은 삼천대천세계를 명확하게 비춘다. 또 이 광명으로써 두루 시방의 갠지스강의 모래 수처럼 많은 불국토들을 비추면 삼천대천세계를 여섯 갈래로 흔들고, 다시 시방의 갠지스강의 모래 수처럼 많은 불국토들을 여섯 갈래로 흔든다. 이미 이 광명을 받았으면, 단바라밀에 머물러 대승의 갑옷으로 곧 능히 삼천대천찰토를 변화시켜 유리(琉璃)로 만들고 스스로 그 형상을 변화시켜서 차가월왕(遮迦越王:전륜성왕)이 된다. 원하는 것에 따라 모든 것을 보시한다. 굶주리고 목마를 때에는 음식을 주며, 옷을 얻고자 하면 옷을 주며, 향화(香華)와 의약을 얻고자 하면 보시하고, 갖가지로 각 대중들이 원하는 대로 즐겁게 모든 것을 준다. 이와 같이 보시하고 난 뒤에는 곧 중생을 위해서 6바라밀을 행할 것을 설법한다. 중생은 보살의 가르침을 듣고 아뇩다라삼야삼보에 이를 때까지 6바라밀의 행을 여의지 않는다. 이것을 보살이 대승의 갑옷을 입은 것이라고 한다.
수보리여, 비유하면 마치 교묘한 환사(幻師)가 네 거리의 중요한 길목에서 대중들 앞에서 사람들이 원하는 바에 따라 음식․의복․돈․재물을 보시하고 사람들의 뜻에 따라서 구하는 바를 환인(幻人)이 빠짐없이 주는 것과 같은 것이다. 수보리여, 어떻게 생각하느냐? 이 환사가 정말 사람들에게 보시하는 것인가?”
수보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보시한 것도 없으며, 또한 얻은 것도 없습니다.”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보살은 스스로 몸을 변화하여 차가월왕이 되어서 사람들의 즐거워하는 바에 따라서 보시하며, 사람이 하고자 하는 대로 베풀어 준다. 비록 베풀었다고 하지만 준 것이 없으며, 또한 얻을 것도 없다. 왜냐하면 수보리여, 법이 환법(幻法)과 상응했기 때문이다. 또한 수보리여, 보살마하살이 시바라밀에 머물러 차가월라(遮迦越羅)로 시현해서 그 가운데서 사람으로 하여금 10선법(善法)을 지니게 한다. 사람들을 가르쳐서 4선(禪)․4등․4무형선을 행하게 하고, 37품과 부처님의 18법을 세우게 하여 중생들이 이 법의 가르침을 듣고 도를 얻을 때까지 마침내 법의 가르침을 여의지 않게 한다.
수보리여, 비유하면 환사가 대중을 변화로 지어서 환인에게 10선을 지니라고 가르치고 37품과 부처님의 18법을 세우게 하는 것과 같다. 수보리여, 어떻게 생각하느냐? 정말 사람들이 10선․4선․4무형선을 세우는가? 진정 사람들이 37품과 부처님의 18법을 세우는가?”
수보리가 대답하였다.
“세우는 자가 없습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보살은 모든 중생들에게 10선지(善地)․37품․부처님의 18법을 세우게 하되, 또한 어떤 사람도 이 법에 머문다고 보지 않는다. 왜냐하면 법이 법과 자연히 상응하여 이와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수보리여, 보살마하살은 대승의 갑옷을 입는 것이다. 또한 수보리여, 보살은 찬바라밀에 머물러서 또한 중생도 찬바라밀을 세우게 한다. 보살은 처음 뜻을 발한 이래로 서원을 세워 ‘가령 중생이 칼과 막대기로 해치려고 해도 나는 모두 받으며 끝내 잠깐동안도 악의를 일으키지 않겠다’고 말한다. 마땅히 다시 인욕지(忍辱地)에 중생을 서게 함도 또한 이와 같다. 비록 중생에게 찬바라밀을 세우게 하나, 또한 환사(幻師)와 같고, 또한 중생상이 없다. 수보리여, 이것을 보살이 대승의 갑옷을 입는 것이라고 한다.
또한 수보리여, 보살마하살이 유체바라밀에 머물러서 중생에게 정진의 뜻을 세우게 하고 살운야에 상응하게 함도 또한 환사와 같은 것이며, 이것을 보살대승의 갑옷이라고 한다. 보살이 선바라밀에 머물러서 또한 모든 사람들에게 일심(一心)을 행하게 하고, 보살은 등법(等法)에 머물러서 법에 산란함이 있는지 일심이 있는지를 보지 않는다. 수보리여, 이 보살은 선바라밀에 머물러서 또한 사람들에게 일심을 가르쳐서 선(禪)을 행하게 하며, 나아가 아뇩다라삼야삼보에 이를 때까지 끝내 일심을 여의지 않게 하는데, 이것도 또한 환사와 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승나승녈이라고 이름하는 것이다.
또한 수보리여,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에 머물러서 또한 모든 사람들을 권조하고 가르쳐서 반야바라밀을 세우게 된다. 수보리여, 이것이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 모든 법에 차안과 피안이 있음을 보지 않는 것이다. 이 보살은 반야바라밀에 머물러서 또한 중생들을 권조하고 가르쳐서 반야바라밀을 세우게 하고, 중생을 교화하는 것도 또한 환사와 같은 것이다. 배우는 자가 있다고 보아도 안 되며, 받는 자가 있다고 보아도 안 된다. 그러므로 수보리여, 보살마하살의 승나승녈이 되는 것이다.
또한 수보리여, 보살은 대승의 갑옷을 입고서 시방의 갠지스강의 모래 수처럼 많은 불국토의 중생들을 편안한 곳에 처하게 하고, 6바라밀을 세워서 중생을 위하여 6바라밀법을 설하고 중생으로 하여금 이것을 듣게 하고, 들은 후에는 아뇩다라삼야삼보에 이를 때까지 이 법을 여의지 않게 하는데 또한 환(幻)과 같아서 또 법을 받을 자도 보지 못하며, 또 가르침을 받을 자도 보지 못한다. 그러므로 보살은 대승의 갑옷이 되는 것이다. 보살은 또 대승의 갑옷을 입고 뜻은 살운야와 상응하여 보살은 ‘나는 마땅히 약간의 사람을 가르쳐서 6바라밀을 세우게 하겠다’고 말하지 않으며, 또한 ‘나는 마땅히 약간의 사람을 가르쳐서 37품과 부처님의 18법을 행하게 하겠다’고 말하지 않으며, 또한 ‘나는 약간의 사람은 가르칠 수 없다’고도 말하지 않는다. 또한 ‘나는 약간의 사람을 가르쳐서 수다원(須陀洹) 나아가 아라한(阿羅漢)․벽지불(辟支佛)을 얻게 하겠다’고도 말하지 않으며, ‘나는 약간의 사람은 아라한에 이르도록 가르치지 않겠다’고 말하지 않으며, ‘나는 저 사람들을 모두 가르치지 않겠다’고도 말하지 않는다. 왜 그런가? 보살은 제도하는 데 한계와 장애가 없으며 좋아하고 싫어함도 없다. 보살이 제도하는 데는 또한 그 수가 정해져 있지 않고 그 양도 정해져 있지 않다.
수보리여, 보살은 비유하면 환사가 환인을 가르치는 것과 같아서 가르치는 것을 볼 수 없으며, 또한 가르침을 받는 자도 볼 수 없는 것이다. 이것이 보살마하살의 승나승녈인 것이다.”
수보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제가 부처님으로부터 들은 뜻대로라면 보살은 승나승녈이 아니라는 것을 마땅히 알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모든 법은 공하기 때문입니다. 색․통․상․행․식이 공하며, 안․이․비․설․신․의와 색․성․향․미․세활․법과 18성이 각각 그 상을 따라 각자 스스로 공합니다. 단바라밀에서 반야바라밀에 이르기까지도 또한 스스로 공하며, 내외공이 모두 스스로 공하며, 37품에서 부처님의 18법에 이르기까지 모두 공하며, 보살도 또한 공하며, 승나승녈도 또한 스스로 공합니다. 그러므로 세존이시여, 보살은 승나승녈이 아니라는 것을 마땅히 알아야 합니다.”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그대가 말한 것과 다름이 없다. 수보리여, 살운야는 행하는 것도 아니고, 짓는 것도 아니다. 보살은 중생을 위해서 마하승나승녈을 짓지만 중생이 또한 행하는 것도 아니고, 또한 짓는 것도 아니다.”
수보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무슨 까닭으로 살운야와 중생들은 행하는 것도 아니고 짓는 것도 아니라고 하십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사람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살운야는 행함도 없고 지음도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수보리여, 5음은 또한 지어짐도 있지 않고 짓지 않음도 아니며, 6정(情)과 6쇠(衰)도 행하는 바도 없고 지어짐도 없다. 나와 남, 수명도 행함도 없고 지어짐도 없다. 왜냐하면 변제(邊際)를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수보리여, 꿈․메아리․그림자․허깨비․아지랑이가 지음이 없고 행함이 없는 것과 같다. 또한 내외공․37품․부처님의 18법도 행하는 바가 없고 짓는 바도 없다. 왜냐하면 그 본제(本際)는 얻어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법성(法性)과 진제(眞際)에 이르기까지 또한 짓는 바가 없고, 또한 행하는 바도 없다. 보살의 살운야도 또한 지을 것도 없고, 또 행하는 바도 없다. 왜냐하면 본제가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수보리여, 살운야와 중생에 이르기까지 있는 것도 아니고 지을 바도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보살은 마하승나승녈이 되는 것이 아님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수보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께서 설법하신 뜻을 관한 대로라면 5음은 또한 묶임도 없고 벗어남도 없습니다.”
빈누문타나자가 수보리에게 물었다.
“어떤 것을 5음에 묶임도 없고 벗어남도 없다고 합니까?”
수보리가 대답하였다.
“5음은 꿈과 같고 메아리와 같고, 그림자와 같고 환과 같고 변화와 같고 아지랑이와 같아서 미래․과거․현재의 5음은 묶임도 없고 벗어남도 없는 것입니다. 5음은 단서(端緖)도 없고 묶임도 없으며, 벗어남도 없습니다. 5음은 고요해서 생하는 바도 없고, 묶임도 없고 벗어남도 없습니다. 5음의 선과 불선(不善)․5음의 속(俗)과 도(道)․5음의 유무․무루에도 또한 묶임도 없고, 벗어남도 없습니다. 일체 모든 법이 묶임도 없고 벗어남도 없고 끝[際]이 없고 적정하여 묶임도 없고 벗어남도 없습니다.
6바라밀도 묶임도 없고 벗어남도 없으며 끝이 없고 적정합니다. 내외공에도 묶임이 없고 벗어남도 없으며, 37품에도 묶임이 없고 벗어남도 없으며, 부처님의 18법에도 묶임이 없고 벗어남도 없으며, 끝도 없고 적정합니다. 그러므로 도와 보살․살운야의 일체 지사(智事)에도 끝이 없어 적정하며 생하는 바도 없으며, 또한 묶이지도 않고, 또한 벗어남도 없습니다. 저 법성․진제는 함도 없으며 또한 묶임도 없고, 벗어남도 없고 끝이 없고 적정하여 생하지도 않고, 묶임도 없고 벗어남도 없습니다.
이와 같이 빈누여, 보살마하살은 묶임도 없고 벗어남도 없는 6바라밀 가운데서 묶임도 없고 벗어남도 없는 살운야에 머물고 묶임도 없고 벗어남도 없으므로 중생을 양육하고, 집착도 없고 묶임도 없고 벗어남도 없으므로 불국토를 청정하게 합니다. 집착할 것도 없고 묶임도 없고 벗어남도 없으므로 모든 세존들을 뵙고, 묶임도 없고 벗어남도 없으므로 법을 들음을 끝내 여의지 않습니다. 묶임도 없고 벗어남도 없으므로 모든 부처님 세존을 끝내 여의지 않습니다. 묶임도 없고 벗어남도 없으므로 모든 신통을 끝내 여의지 않습니다. 묶임도 없고 벗어남도 없으므로 5안(眼)을 끝내 여의지 않고, 묶임도 없고 벗어남도 없으므로 법을 굴리고, 묶임도 없고 벗어남도 없으므로 중생을 삼승에 안립(安立)시킵니다.
이와 같이 빈누여, 보살마하살은 묶임도 없고 벗어남도 없는 6바라밀에서 모든 법을 체득하여 깨닫는데 끝이 없고 적정하며 생함이 없기 때문입니다. 빈누는 이것이 보살마하살의 묶임도 없고 벗어남도 없는 승나승녈임을 마땅히 알아야 합니다.”
방광반야경 제4권
서진 우전국 무라차 한역
19. 문마하연품(問摩訶衍品)
그때 수보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어떤 것이 보살마하살의 큰 서원입니까? 세존이시여, 보살이 대승에 나아가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까? 이 승(乘)을 타고 마땅히 어느 곳에 이르는 것이며, 누가 마땅히 이 승을 이루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6바라밀이 보살마하살의 대승이다. 여섯 가지는 무엇인가? 단(檀)․시(尸)․찬(羼)․유체(惟逮)․선(禪)․반야(般若) 바라밀이다.”
수보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어떤 것이 보살의 단바라밀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보살마하살이 보시하는 뜻은 살운야(薩云若)에 상응하여 내외에 가지고 있는 바를 보시하며 이미 가지고 있는 공덕은 중생에게 빠짐없이 베풀며 중생과 함께 아뇩다라삼야삼보를 발하는 것이 보살마하살의 단바라밀이다.”
수보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어떤 것이 시바라밀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보살은 계를 지킬 때 살운야에 상응하는 뜻을 발하여 스스로 10선(善)을 가지며, 타인에게도 10선을 행할 것을 가르친다. 그러나 또한 그것에 의지함이 없어야 한다. 이것이 보살이 계를 무너뜨리지 않고 의지함이 없는 데 응하는 것이 된다.”
수보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어떤 것이 찬바라밀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보살은 스스로 인지(忍地)를 구족하며, 또 타인에게 권하여 인욕을 행하게 하면서도 의지함이 없는 것이 보살마하살이 찬바라밀을 행하는 것이다.”
수보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어떤 것이 유체바라밀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보살의 뜻은 살운야에 상응하여 다섯 바라밀을 폐하지 않고 또 중생에게 다섯 바라밀을 세우게 하면서도 의지하지도 않는데, 이것이 보살의 유체바라밀이다.”
수보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어떤 것이 선바라밀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보살마하살이 살운야의 뜻으로써 스스로 구화구사라(漚惒拘舍羅)를 가지고 모든 선(禪)에 들어가서 선을 따라 생하는 것도 없으며 또한 다시 타인을 가르치며 선을 행하게 해도 의지하지도 않는다. 이것이 보살의 선바라밀이다.”
수보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어떤 것이 보살의 반야바라밀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보살마하살이 살운야의 뜻으로 모든 법에 들어가지 않고 모든 법의 성품을 관하면서도 의지하지 않는다. 또한 다른 사람도 모든 법에 들어가지 않고 모든 법의 성품을 관하게 하면서도 의지함이 없게 가르친다. 이것이 보살마하살의 반야바라밀이며, 이것이 보살마하살의 마하연(摩訶衍)이다. 또 수보리여, 다시 마하연이 있는데 내공(內空)․외공(外空)․유무공(有無空)이 이것이다.
어떤 것을 내공이라고 하는가? 내법(內法)으로 안․이․비․설․신․의를 말하는 것이다. 눈은 본래 공해서 번뇌[垢]에 집착하지 않고 또한 파괴되지도 않는다. 왜냐하면 본래 성품이 그러하기 때문이다. 귀에서는 귀가 본래 공하고, 코에 있어서는 코가 본래 공하고, 혀에 있어서는 혀가 본래 공하며, 몸에 있어서는 몸이 본래 공하고, 뜻에 있어서는 뜻이 본래 공하여 또한 번뇌에도 집착하지 않고 또한 파괴되지도 않는다. 왜냐하면 본래 성품이 그러하기 때문이다. 이것을 내공(內空)이라고 한다. 어떤 것을 외공이라고 하는가? 색(色)․성(聲)․향(香)․미(味)․세활(細滑)․법(法)을 말하는 것이다. 색은 본래 공해서 번뇌에 집착하지 않고 또한 파괴되지도 않는다. 왜냐하면 색의 본래 성품이 그러하기 때문이며, 성․향․미․세활․법도 모두 그러하다. 왜냐하면 본래 성품이 공하기 때문이다. 이것을 외공이라고 한다. 어떤 것을 내외공이라고 하는가? 안으로 6쇠(衰), 밖으로 6쇠가 내외법이다. 외법으로써 하면 내법이 공하며, 내법으로써 하면 외법이 공하다. 또한 집착하지도 않고, 또한 파괴되지도 않는다. 왜냐하면 본래 성품이 그러하기 때문이다. 이것을 내외공이라고 한다. 어떤 것을 공공(空空)이라고 하는가? 모든 법이 공함과 모든 법이 공하다는 생각을 가진 공도 공하다. 이것을 공공이라고 한다. 어떤 것을 대공(大空)이라고 하는가? 팔방과 상하가 모두 공한 것을 대공이라고 한다. 어떤 것을 최공(最空)이라고 하는가? 니원(泥洹)에 집착하지도 않고, 파괴하지도 않는다. 이것을 최공이라고 한다. 어떤 것을 유위공(有爲空)이라고 하는가? 집착하지도 않고 파괴하지도 않으니 삼계가 본래 공하기 때문이다. 이것을 유위공이라고 한다. 어떤 것을 무위공(無爲空)이라고 하는가? 생하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으며 다르지 않음에 머물며 집착하지도 않고 파괴하지도 않는데 모두 공한 것이다. 왜냐하면 본래 공하기 때문이다. 이것을 무위공이라고 한다. 어떤 것을 지경공(至竟空)이라고 하는가? 변제(邊際)를 가히 얻을 수 없는 것이니, 이것을 지경공이라고 한다. 어떤 것을 원공(原空)을 얻을 수 없다고 하는가? 모든 가히 온다고 인정하는 것도 어디로부터 오는지를 알 수 없어서 처소가 없으므로 이것을 원공이 없다고 하는 것이다. 어떤 것을 무작공(無作空)이라고 하는가? 모든 법에서 버릴 것이 없는 것을 무작공이라고 한다. 어떤 것을 성공(性空)이라고 하는가? 모든 법의 성품과 유위․무위의 성품은 나한․벽지불과 모든 부처님 세존께서 지은 것이 아니다. 이것을 성공이라고 한다. 어떤 것을 제법공(諸法空)이라고 하는가? 모든 법이란 5음․12쇠․18성․유위법․무위법이다. 이것이 모든 법이며 집착하지도 않고 파괴하지도 않는 것이 모든 법의 성품이다. 이것을 제법공이라고 한다. 무엇을 자상공(自相空)이라고 하는가? 색상(色相)과 소수상(所受相)과 소지상(所持相)과 소유상(所有相)과 느끼는 상[所覺相]과 나아가 유위․무위상에 이르기까지와 유위․무위상에서부터 모든 법은 다 공하다. 이것을 자상공이라고 한다. 어떤 것을 무소득공(無所得空)이라고 하는가? 처음부터 집착함도 없고 파괴됨도 없어서 무소득법에 이르는 것이며, 또 얻을 것이 없는 것을 무소득공이라고 한다. 무엇을 무공(無空)이라고 하는가? 그 가운데에 소견(所見)이 없는 것을 무공이라고 한다. 어떤 것을 유공(有空)이라고 하는가? 모든 법에는 우연이 없으며, 모든 것이 화합한 가운데도 모두 실(實)이 없다. 이것을 유공이라고 한다. 무엇을 유무공(有無空)이라고 하는가? 모든 것이 모인 가운데도 또한 실이 없다. 이것을 유무공이라고 한다.
또한 수보리여, 유는 유위공을 쓰고, 무는 무위공을 쓰며, 이(異)는 이위공(異爲空)을 쓴다. 어떤 것을 유(有)라고 하는가? 유라는 것은 5음의 성품[性]을 말하는 것인데, 이 성품은 성품으로써 공하며 이것을 유공(有空)이라고 한다. 어떤 것을 무(無)라고 하는가? 무위공이므로 이루는 바가 없고, 이루는 것이 없으므로 공한 것이다. 공이란 지혜로 지은 것이 아니고 견해로 지은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여사공(餘事空)이라고 하는가? 부처가 있든 부처가 없든 법성․법․고요함․여여함과 나아가 진제(眞際)에 머무는 것도 이와 같다. 그러므로 이것을 이공(異空)이라고 하며 여사공이라고 한다. 수보리여, 이것을 보살마하살의 마하연이라고 한다.
수보리여, 다시 마하연이 있는데 무엇을 마하연이라고 하는가? 107삼매에 각각 이름이 있다. 어떤 삼매를 수능엄(首楞嚴)삼매라고 이름하는가? 무엇을 수능엄삼매라고 하는가? 모든 삼매문이 나아가서 모이는 곳이며, 모두 와서 그 가운데 들어오는 것이다. 그러므로 수능엄이라고 이름하는 것이다. 또 삼매가 있으니, 보인(寶印)이라고 이름한다. 어떤 것을 보인삼매라고 하는가? 모든 삼매가 소유한 인(印)을 모두 인정한다. 또 삼매가 있으니 사자유희(師子遊戱)삼매라고 이름한다. 무엇을 사자유희라고 하는가? 이 삼매에 머물면 빠짐없이 모든 삼매 가운데서 유희할 수 있는 것이다. 또 월(月)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능히 광명으로 모든 삼매를 비출 수 있다. 또 월당(月幢)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모든 삼매를 지닐 수 있다. 또 제법상(諸法上)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모든 삼매가 그 가운데에서 생겨나온다. 또 조정(照頂)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광명으로써 모든 삼매 위를 비출 수 있다. 또 법성필(法性畢)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모든 법을 결정코 알 수 있는 것이다. 또 필조당(必造幢)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모든 삼매 가운데서 반드시 견고한 당(幢)을 가지게 된다. 또 금강(金剛)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모든 삼매가 이 삼매를 감당할 수 없다. 또 법소입인(法所入印)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모든 법인(法印)과 서로 상응할 수 있다. 또 안주(安住)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바로 모든 삼매에 머물 수 있다. 또 방광명(放光明)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곧 모든 삼매를 두루 비출 수 있다. 또 세진(勢進)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이 세력으로 모든 삼매를 가르칠 수 있다. 또 등보(等步)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모든 삼매를 평등하게 행할 수 있다. 또 입변재교수(入辯才敎授)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모든 삼매를 변별하여 알 수 있다. 또 과량음성(過量音聲)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무량한 명자(名字)삼매에 들어갈 수 있다. 또 조처처(照處處)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모든 삼매에서 능히 두루 모든 방면을 비출 수 있다. 또 총지인(總持印)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모든 삼매인(三昧印)을 가질 수 있다. 또 불망(不忘)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모든 삼매를 잊지 않는다. 또 일체법소취해(一切法所聚海)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능히 일체 모든 삼매를 평등하게 행할 수 있다. 또 허공보(虛空普)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두루 모든 삼매를 만족하게 할 수 있다. 또 금강부(金剛部)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모든 삼매부(三昧部)를 가질 수 있다. 또 보승(寶勝)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모든 번뇌[垢濁]로부터 항복받을 수 있다. 또 치염(熾炎)삼매에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능히 빛의 광염(光炎)으로 모든 삼매를 비출 수 있다. 또 무원(無願)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모든 법에서 취함이 없다. 또 심주(審住)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모든 법에 주처(住處)가 있다는 것을 보지 않는다. 또 선택(選擇)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모든 삼매에서 생각하는 의념상(意念想)이 없다. 또 무구등(無垢燈)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모든 삼매에서 등불과 같이 밝음을 갖는다. 또 무한광(無限光)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모든 삼매에 한량이 없다. 또 작광명(作光明)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모든 삼매에서 능히 곳곳을 비출 수 있다. 또 보조명(普照明)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모든 삼매가 모두 다 눈앞에 현전한다. 또 정요(淨要)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등정(等淨)삼매를 체득할 수 있다. 또 무구광(無垢光)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모든 삼매의 번뇌를 없애 버릴 수 있다. 또 조락(造樂)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모든 삼매의 즐거움을 받는다. 또 전명(電明)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모든 삼매를 등불과 같이 밝게 비춘다. 또 무진(無盡)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다하지 않음으로 다함을 보지 않는다. 상위(上威)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모든 삼매 가운데서 위덕(威德)이 홀로 우뚝하다. 또 필진(畢盡)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모든 삼매를 보되 볼 수 있는 바를 다해 보지 않음과 같다. 또 부동(不動)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모든 삼매를 움직이지 않고, 지각하지도 않고 희론(戱論)도 없다. 또 불별(不別)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이별을 보지 않는다. 또 일등(日燈)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모든 삼매문을 비춘다. 또 월무구(月無垢)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능히 모든 삼매의 어둠을 제거할 수 있다. 또 정광명(淨光明)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모든 삼매에서 네 가지 걸림이 없는 지혜[四無礙慧]를 분별한다. 또 작명(作明)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모든 삼매문을 위해서 빛을 만든다. 또 조작(造作)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모든 삼매를 위해서 필경(畢竟)을 짓는다. 또 제혜(諸慧)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모든 삼매혜를 볼 수 있다. 또 금강(金剛)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모든 삼매를 결단할 수 있다. 또 주의(住意)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동요하지도 않고 흔들리지도 않고, 두려워하지도 않고, 무서워하지도 않으며, 또한 의상(意想)이 없다. 또 현명(現明)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모든 삼매 가운데서 모든 것을 다 밝게 볼 수 있다. 또 안립(安立)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모든 삼매에 편하게 처한다. 또 보적(寶積)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널리 모든 삼매의 보배를 볼 수 있다. 또 법인(法印)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모든 삼매로부터 나오는 인(印)이나 인 아닌 것도 모두 법인을 할 수 있다. 또 등(等)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법이 등(等)에서 벗어남을 볼 수 없다. 또 기락(棄樂)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모든 즐거움을 다 버릴 수 있다. 또 과법정(過法定)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모든 법의 어둠을 멸해서 모든 삼매 위에 있게 된다. 또 산결(散結)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모든 삼매를 나누어 쓸 수 있다. 또 해제법구(解諸法句)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모든 삼매와 모든 법구(法句)를 알 수 있다. 또 등문자(等文字)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여러 가지 문자를 얻을 수 있다. 또 필자(畢字)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한 글자도 보지 않는다. 또 단인연(斷因緣)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모든 인연을 끊을 수 있다. 또 무태(無態)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모든 법태(法態)를 얻지 않는다. 또 무행(無行)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모든 법의 행을 보지 않는다. 또 무굴행(無屈行)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모든 삼매의 굴 속 같은 행이 없다. 또 필음(畢陰)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모든 음(陰)을 청정하게 할 수 있다. 또 주행(主行)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모든 삼매의 행을 볼 수 있다. 또 불기(不起)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모든 삼매가 일어남을 보지 않는다. 또 도경계(度境界)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모든 경계를 통과할 수 있다. 또 취제선(聚諸善)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모든 법과 모든 삼매를 얻을 수 있다. 또 지선(止選)삼매가 있으며, 이삼매에 머물면 뜻이 타락하지 않는다. 또 청정화(淸淨華)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모든 삼매의 청정화를 얻는다. 또 주각(主角)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모든 삼매에 7각의(覺意)가 있다. 또 무한변(無限辯)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한량없는 변재를 얻을 수 있다. 또 무등등(無等等)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곧 등차가 없는 평등[無等等]을 얻을 수 있다. 또 도제법(度諸法)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삼계를 초월할 수 있다. 또 결단(決斷)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능히 모든 법을 볼 수 있으며, 모든 삼매의 일을 결단함을 볼 수 있다. 또 산제호의(散諸狐疑)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모든 법과 삼매가 흩어짐을 체득한다. 또 무주(無住)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모든 법처(法處)를 보지 않는다. 또 일행(一行)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모든 법에 둘[二]이 있다고 보지 않는다. 또 중생소입(衆生所入)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중생도 보지 않고 또한 들어갈 곳도 보지 않는다. 또 일사(一事)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모든 삼매의 일을 보지 않는다. 또 염해중사(厭該衆事)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다름이 있음을 보지 않는다. 또 산제생사로원(散諸生死勞怨)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모든 것을 싫어하는 삼매를 속히 얻어서 지혜가 들어가는 곳마다 깨닫는 것이 없다. 또 중행음소입(衆行音所入)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온갖 행의 음성이 모두 다 쫓아옴을 얻는다. 또 탈제음향자(脫諸音響字)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모든 삼매가 소리와 문자에서 벗어남을 볼 수 있다. 또 연거(然炬)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모든 삼매 가운데서 위덕이 홀로 밝다. 또 정상(淨相)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능히 일체의 삼매상(三昧相)을 깨끗하게 할 수 있다. 또 무준(無准)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모든 삼매에서 끊어짐을 볼 수 없다. 또 구족중사(具足衆事)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모든 삼매에서 모두 구족함을 얻을 수 있다. 또 불원고락(不願苦樂)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모든 삼매에 고락이 있음을 보지 않는다. 또 사불감(事不減)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모든 삼매가 다함이 있음을 보지 않는다. 또 지적(持迹)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모든 삼매를 빠짐없이 볼 수 있다. 또 사정취(邪正聚)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모든 삼매에서 사(邪)와 정(正)을 보지 않는다. 또 멸에쟁(滅恚諍)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모든 삼매에서 성냄과 다툼을 보지 않는다. 다시 무에(無恚)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모든 법과 모든 삼매에서 성냄이 있음과 성냄이 없음을 보지 않는다. 또 무구광(無垢光)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모든 삼매에서 광명도 보지 않고 또한 번뇌[垢]도 보지 않는다. 또 주요(主要)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모든 삼매에서 중요하지 않음을 보지 않는다. 또 명월만무구염(明月滿無垢炎)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모든 삼매을 원만하고 구족하게 함이 마치 보름달과 같다. 또 대장식(大莊飾)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능히 모든 삼매를 보기 좋게 장엄할 수 있다. 또 여세간작광명(輿世間作光明)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광명이 널리 시방과 모든 법을 비춘다. 또 삼매가 있는데 삼매등(三昧等)이라고 이름하며, 이 삼매에 머물면 모든 법에서 산란함도 보지 않고, 또 선정도 보지 않는다. 또 무분(無忿)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모든 삼매에서 분한 마음이 없다. 또 무의무굴무락(無倚無窟無樂)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모든 삼매에서 소굴(巢窟)을 보지 않는다. 또 최여(最如)삼매가 있으며, 이 삼매에 머물면 모든 삼매에서 여여(如如)함을 굴리지 않는다. 또 삼매가 있는데 신해(身骸)라고 이름하며, 이 삼매에 머물면 이러한 삼매의 성품을 보지 않는다. 또 삼매가 있는데, 단구행여공합(斷口行輿空合)이라고 이름하며, 이 삼매에 머물면 모든 삼매에 언어가 있음을 보지 않는다. 또 삼매가 있는데 허공본탈무색(虛空本脫無色)이라고 이름하며, 이 삼매에 머물면 모든 법이 본래 공함을 체득한다.
수보리여, 이것을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 마하연이라고 한다.
20. 다린니품(陀隣尼品)
또한 수보리여, 또 마하연이 있는데 무엇을 마하연[衍]이라고 하는가? 이른바 4의지(意止)가 이것이다. 무엇을 4의지라고 하는가? 보살이 스스로 자신의 몸을 관하고 타인의 몸도 관하고, 안팎의 몸을 관하고 난 뒤에는 몸에 대한 생각[身想]도 없으며, 의지함도 없다. 행동하든 고요하든 항상 세간의 어리석음으로부터 고뇌가 있음을 생각한다. 안의 통(痛)․의(意)․행․법을 관하고, 밖의 통․의․행․법을 관하고, 안팎의 통․의․행․법을 관한다. 행하든 고요하든 항상 세간의 어리석음과 고뇌를 생각한다.
수보리여, 어떻게 보살은 내신행(內身行)을 관하는가? 보살은 스스로 행할 만하면 행할 줄 알고, 머물 만하면 머물 줄 알고, 앉을 만하면 앉을 줄 알고, 누울 만하면 누울 줄 알고, 몸이 행하는 바를 모두 스스로 안다. 이것을 보살이 스스로 자신의 행동을 관하는 것이라고 한다. 행동하든 고요하든 항상 세간의 고뇌를 생각한다. 또 수보리여, 보살은 출입하고 나아가고 멈출 때 침착하고 주의 깊게 하며 망령되지 않게 쳐다보고 좌우로 앉고 누울 때도 침착하고 주의 깊게 하고 3법의(法衣)를 입고 위의(威儀)를 잃지 않아야 한다.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 보살은 스스로 안팎의 몸을 관하고, 행하는 것도 이와 같이 하되 의지함이 없다. 보살은 항상 호흡의 출입을 관하며, 호흡이 긴 줄 알며, 호흡이 짧은 줄 안다. 비유하면 도륜(陶輪)과 같아서 그 느리고 급함을 조절한다. 보살은 뜻과 식이 함께여서 함께 나오고 함께 들어감을 스스로 안다. 이것을 보살이 안으로 몸의 행을 관하는 것이라고 한다. 행동하는 고요하든 항상 세간의 어리석음․괴로움․환난을 생각한다.
또한 수보리여, 이처럼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 항상 몸은 지․수․화․풍의 네 가지 원소로 되어 있다는 것을 관해야 한다. 비유하면 소를 잡는데 네 부분으로 나누는 것처럼 보살은 몸이 네 가지로 분별됨을 관해야 하며, 근본으로부터 지말[末]에 이르기까지 이와 같은 것이다. 이것을 보살이 안팎의 몸을 관하는 것이라고 하며, 또한 의지함도 없는 것이다.
또한 수보리여, 보살은 몸이 머리에서부터 발까지 단지 부정(不淨)한 것만 있음을 관해야 한다. 머리카락․털․손톱․치아와 근육․뼈․5장(藏)․36물(物)에 어떤 탐할 만한 것이 있겠는가? 비유하면 농가에 농기구와 오곡이 가득하지만 눈 밝은 선비가 열어 농기구를 분별하여 아는 것과 같다. 보살은 몸을 관하되, 몸 가운데 있는 것도 이와 같음을 알아야 한다. 이것을 보살이 스스로 안의 몸을 관하는 것이라고 한다. 행동하든 고요하든 항상 세간의 어리석음․애착․고통을 생각하며 또한 그것을 의지함도 없어야 한다.
또한 수보리여, 보살은 사람을 관해야 한다. 처음 죽은 날로부터 닷새가 지나 살이 문드러지고 악취가 나고 신체는 점점 무너져 더러운 물이 줄줄 흘러나오니 깨끗한 곳이 없다. 혹은 날아다니는 새가 쪼아 먹기도 하고 걸어 다니는 짐승이 먹기도 한다. 혹은 반을 먹다가 내버리니 보기 흉하게 드러나서 깨끗하지 못하다. 혹은 어떤 죽은 자는 근육과 뼈가 흩어지며 해골에서 피고름이 흐르기도 하다. 어떤 죽은 자는 피와 살점이 이미 다 없어지고 근육과 뼈로 서로 연결되었고 그 가운데 해골이 으스러진 것은 마디마디가 다른 곳에 흩어져 있다. 혹은 죽은지 오래되어 해골이 청백색인 것도 있으며, 혹은 부패하여 파괴된 것도 있으며, 혹은 썩어서 땅과 같은 색이 된 것도 있다. 보살은 모두 이와 같이 관해야 하며, 이와 같이 관한 후에는 도리어 내 몸은 이 법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했으며 아직 떠나지도 못했으며, 마땅히 그러하리라고 헤아려야 한다. 이것이 보살이 안으로 몸의 법을 관하는 것이며, 다른 사람의 몸도 관하는 것이며, 의지하여 탐할 것도 없는 것이다. 행동하든 고요하든 항상 세간의 어리석음․괴로움․재난과 환난을 생각한다. 스스로 각의법(覺意法)을 관하며, 또한 타인의 각의법도 관해야 한다. 분별하고 생각하는 어리석음과 미혹의 뜻을 끊어야 한다. 수보리여, 이것을 보살마하살의 마하연이라고 한다.
수보리여, 또 마하연이 있는데 점점 4의단(意斷) 대보적경(大寶積經)에서 나온 말로서 첫째는 몸이 신정계(身淨戒)를 갖는 것을 말하는데, 몸으로 모든 계를 받아지키고 궐(闕)함이 없으며 법을 범함이 없어야 하는 것이다. 둘째는 언정계(言淨戒)이고, 셋째는 의정계(意淨戒)이다.
을 수지하여 나아가야 한다. 무엇이 넷이 되는가? 악의법(惡意法)이 아직 생기지 않았으면 즐겁게 익히고 정진하고 뜻을 섭수하여 생기지 않게 한다. 악의법이 이미 일어났으면 또 즐겁게 정진하고 뜻을 섭수하고 익혀서 끊게 한다. 아직 생기지 않은 선한 일과 법을 가지려면 기쁜 뜻으로 정진하고 익혀서 생기게 한다. 이미 생긴 선한 법의 생각들은 널리 구족하게 나타내어 잊지 않게 한다. 또한 다시 기쁘게 정진하고 익히고 뜻을 섭수하여 나아가면 이루어진다. 이것을 보살마하살의 미하연이라고 한다.
수보리여, 또 마하연이 있는데 4신족(神足)이 이것이다. 무엇이 넷이 되는가? 이미 즐거움의 선정[樂定]을 얻어서 모든 지은 행동을 없애고 신족을 총섭(總攝)한다. 정진의 선정[精進定]으로 모든 지은 행동을 없애고 신족을 총섭한다. 뜻을 지닌 선정[持意定]으로 모든 지은 행동을 없애고 신족을 총섭한다. 지혜의 선정[智之定]으로 모든 지은 행동을 없애고 신족을 총섭한다. 이것을 보살마하살의 마하연이라고 한다. 수보리여, 또 마하연이 있는데 5근(根)이 이것이다. 무엇을 5근이라고 하는가? 신근(信根)․정진근(精進根)․지근(志根)․정근(定根)․지혜근(智慧根)이다. 이것을 보살마하살의 마하연이라고 한다.
수보리여, 또 마하연이 있는데 5력(力)이 이것이다. 무엇이 다섯 가지인가? 신력(信力)․정진력(精進力)․지력(志力)․정력(定力)․지혜력(智慧力)이다. 이것을 보살마하살의 마하연이라고 한다.
수보리여, 또 마하연이 있는데 7각의(覺意)가 이것이다. 무엇이 일곱 가지인가? 지각의(志覺意)를 가지는 것이며, 법각의(法覺意)를 가지는 것이며, 정진각의(精進覺意)를 가지는 것이며, 열희각의(悅喜覺意)를 가지는 것이며, 신각의(信覺意)를 가지는 것이며, 정각의(定覺意)를 가지는 것이며, 나아가서는 이러한 각의(覺意)를 가졌다는 집착도 없음을 알아야 한다. 이것을 보살마하살의 마하연이라고 한다.
수보리여, 또 마하연이 있는데 현성팔품도(賢聖八品道)가 이것이다. 무엇이 여덟 가지가 되는가? 정견(正見)․정념(正念)․정언(正言)․정행(正行)․정업(正業)․정습(正習)․정지(正志)․정정(正定)이다. 이것을 보살마하살의 마하연이라고 하며, 또한 의지할 것도 없는 것이다.
수보리여, 또 마하연이 있는데 3삼매(三昧)가 이것이다. 무엇이 세 가지가 되는가? 공삼매(空三昧)․무상삼매(無相三昧)․무원삼매(無願三昧)이다. 이것을 보살마하살의 마하연이라고 한다.
또 마하연이 있는데 온갖 지혜[慧]를 갖고 있는 일이다. 고혜(苦慧)․습혜(習慧)․진혜(盡慧)․도혜(道慧)․소혜(消慧)․무소기혜(無所起慧)․법혜(法慧)․명혜(明慧)․각각지타인소념혜(各各知他人所念慧)․진혜(眞慧)이다. 무엇을 고혜라고 하는가? 고통을 생기지 않게 하는 것을 고혜라고 한다. 무엇을 습혜라고 하는가? 나쁜 습관은 없애고 끊어버리면 이것을 습혜라고 한다. 무엇을 진혜라고 하는가? 모든 고통스런 일들을 모두 소멸하는 것을 진혜라고 한다. 무엇을 도혜라고 하는가? 현성팔품도를 도혜라고 한다. 무엇을 소혜라고 하는가? 음욕․성냄․어리석음이 모두 다하는 것을 소혜라고 한다. 무엇을 불기혜(不起慧)라고 하는가? 생사를 받지 않는 곳을 불기혜라고 한다. 무엇을 법혜라고 하는가? 5음을 끊을 줄 아는 것을 법혜라고 한다. 무엇을 명혜라고 하는가. 안․이․비․설․신․의가 무상하며, 색․성․향․미․세활․법도 또한 무상한 것을 명혜라고 한다. 무엇을 각각지타인소념혜라고 하는가? 일체 중생의 마음 가운데 갖가지 생각이 일어나는 바를 모두 다 아는 것을 각각지타인소념혜라고 한다. 무엇을 진혜라고 하는가? 여래의 살운야지(薩云若智)를 말하는 것이며, 이것을 진혜라고 하며, 또한 의지할 것도 없다. 수보리여, 이것을 보살마하살의 마하연이라고 한다.
또 마하연이 있는데 3근(根)이 이것이다. 무엇을 3근이라고 하는가? 학사(學士)들이 백의(白衣)에서 수다원에 이르기까지의 5근(根)으로 이것이 마땅히 알아야 할 것을 아직 다 알지 못하는 것이다. 사다함에서 아나함에 이르기까지 또한 5근이 있는데 알아야 할 것을 마땅히 아는 것이다. 아라한․벽지불․보살에서 부처에 이르기까지에도 또한 5근이 있는데, 이는 이미 알고 있어 다시 배울 것이 없음을 말한다. 이것이 보살마하살의 마하연임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수보리여, 또 마하연이 있는데 3삼매가 이것이다. 무엇을 세 가지라고 하는가? 첫째는 유각유관(有覺有觀)이고, 둘째는 무각유관(無覺有觀)이며, 셋째는 무각무관(無覺無觀)이다. 무엇을 유각유관이라고 하는가? 제1선(禪)을 말하며 이것을 유각유관이라고 한다. 무엇을 무각유관이라고 하는가? 제1선에서 2선에 이르지 않는 그 중간에 있으며 이것을 무각유관이라고 한다. 무엇을 무각무관이라고 하는가? 제2선에서 무사상무사상혜선(無思想無思想慧禪)에 이르는 것이며 이것을 무각무관이라고 한다. 이것을 보살마하살의 마하연이라고 한다.
수보리여, 또 마하연이 있는데 10념(念)이 이것이다. 불념(佛念)․법념(法念)․승념(僧念)․계념(戒念)․시념(施念)․천념(天念)․멸념(滅念)․안반념(安般念)․신고념(身苦念)․사망념(死亡念)이며, 의지할 것은 아니다. 이것을 마하연이라고 한다.
수보리여, 또 마하연이 있는데 4선(禪)․4등(等)․4무형선(無形禪)․8유무선(惟無禪)․9차제선(次第禪)․부처님의 10종력[佛十種力]․4무소외(無所畏)이다. 10종력이란 것은 부처님의 몸과 상호에 나타난 신족변화를 말한다. 많은 삿된 무리를 감동시켜서 올바른 곳에 들어가게 하는 것이 첫 번째의 힘이다. 입에서 말하는 것은 온갖 지혜의 위에 있어서 의심 맺힌 것을 열어서 해탈케 하는 것이 두 번째의 힘이다. 뜻이 공의 선정[空定]에 들어가며 청명(淸明)하여 6달(達)하게 되며, 삿된 신[邪神]이 도의 뜻을 요란하게 하여도 동요하지 않는 것이 세 번째의 힘이다. 묵연하여 생각을 끊으며 신족(神足)도 하는 것이 없으며 삼천대천과 일월을 감동시키되 사람에게는 놀라움과 두려움을 주지 않는 것이 네 번째의 힘이다. 도의 뜻이 총명하고 슬기롭고 법을 연설하여 포교하니, 시방이 두루 유익하게 되고 각각 그 편안함을 얻게 하는 것이 다섯 번째의 힘이다. 온갖 뜻을 거슬러 알고 사람들이 행하는 취향을 깨달아서 묶여 있거나 벗어나거나 빠짐없이 해산시킬 수 있는 것이 여섯 번째의 힘이다. 삼세에 지은 재앙과 복의 근본과 받는 과보를 큰 지혜로써 모두 알며 걸림이 없는 것이 일곱 번째의 힘이다. 일체 인민들의 온갖 행위의 근원과, 각양각색으로 몸을 받는 것이 다른 그 본제(本際)의 인연이 일어난 곳을 모두 깨닫는 것이 여덟 번째의 힘이다. 혜안이 청정하여 통찰하는 바가 무한하여 모든 생사에 왕래하고 떨어짐을 보는 것이 아홉 번째의 힘이다. 큰 지혜는 이미 구족했고, 방편도 이미 갖추었고 생사는 이미 끊어졌고 집착하는 행은 이미 다했고 지은 바를 이미 마쳐서 받지 않는다. 자연히 스승 없는 일체지라고 말하는 것이 열 번째의 힘이다.
4무소외(無所畏)라는 것은 부처님께서 정각을 이루었을 때 혹은 사문(沙門)이나 바라문, 혹은 마군, 혹은 천(天), 혹은 범(梵), 다른 대중들 가운데 어느 누구도 나에게 와서 힐난하는 자가 없으며, 부처님께서는 또한 이러한 뜻을 일으키는 자도 보지 못하신다. 이와 같이 증득했으므로 부처님의 행은 안온하여 두려움이 없음을 체득하는 것이 첫 번째의 무소외이다. 정진을 행해서 최고의 장소를 얻을 줄 알며, 대중 가운데서 사자후(師子吼)를 얻어서 능히 범륜(梵輪)을 굴린다. 모든 사문․바라문과 모든 천[諸天]․범(梵)․마(魔)는 일체의 다른 법을 굴리지 못하고, 오직 부처님만이 능히 굴릴 수 있는 것이 두 번째의 무소외이다. 부처님께서는 이미 번뇌[漏]를 다했다. 만약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 혹은 천․마․범이 감히 부처님의 번뇌가 아직 다하지 않았다고 말할 자가 없는 것이 세 번째의 무소외이다. 부처님께서 설하신 말씀처럼 진실하여 어긋남이 없고 선악의 과보가 행해짐을 잃지 않으며, 일체의 나머지 대중들과 모든 천․마․범은 감히 부처님의 말씀이 위배됨을 보지 못한다. 부처님께서 설하신 것처럼 현성팔도(賢聖八道)를 행하면, 득도하고 온갖 괴로움을 제도할 수 있다. 일체의 나머지 무리들과 모든 천․마․범은 또한 이 가르침을 위배할 자도 없으며, 부처님께서도 또한 이러한 곳이 있음을 보지 않는 것이 네 번째의 무소외이다. 이것을 보살마하살의 마하연이라고 하며 의지함도 없어야 한다.
수보리여, 또 마하연이 있는데 4무애혜(無礙慧)가 이것이다. 무엇이 네 가지인가? 모든 법의 일을 아니 그 지혜가 걸림이 없고, 모든 경구의 뜻을 아니 그 지혜가 걸림이 없고, 변재로 분별하니 그 지혜가 걸림이 없고, 말씀하시는 것이 분명하게 확실하니 그 지혜가 걸림이 없다. 이것을 보살마하살의 마하연이라고 한다.
수보리여, 또 마하연이 있는데 부처님의 18법(法)을 말한다. 무엇을 18법이라고 하는가? 첫 번째는 부처님께서는 성불하신 이래로 처음부터 그릇됨이 있을 때가 없었다. 두 번째는 성불하신 이래로 말에 추함이 없었으며 누실(漏失)됨도 없었다. 세 번째는 뜻을 잊어 버린 적이 없었다. 네 번째는 여러 가지 생각이 없었다. 다섯 번째는 뜻에 선정 아닌 때[不定時)가 없었다. 여섯 번째는 처음부터 다른 것을 관한 적이 없었다. 일곱 번째는 자재함이 줄어듦이 없었다. 여덟 번째는 정진함이 줄어듦이 없었다. 아홉 번째는 지념(志念)이 줄어든 적이 없었다. 열 번째는 지혜가 줄어든 적이 없었다. 열한 번째는 해탈이 줄어든 적이 없었다. 열두 번째는 견해탈혜가 줄어든 적이 없었다. 열세 번째는 일체의 몸으로 행하는 바가 지혜로워서 가장 앞에 있었다. 열네 번째는 입으로 말한 것이 지혜로워서 언제나 앞에 있었다. 열다섯 번째는 뜻으로 행하는 것이 지혜로워서 가장 앞에 있었다. 열여섯 번째는 과거의 일을 보아서 그 지혜가 걸림이 없다. 열일곱 번째는 미래의 일을 보아서 그 지혜가 걸림이 없다. 열여덟 번째는 현재의 일을 보아서 지혜가 걸림이 없다. 이것을 마하연이라고 하며 또한 의지함이 없다.
수보리여, 또 마하연이 있는데 다린니목거(陀隣尼目佉)가 이것이다. 무엇을 다린니목거라고 하는가? 글자의 무리와 말의 무리가 들어가는 문이다. 무엇을 자문(字門)이라고 하는가? 첫 번째는 아아(阿阿)라는 것인데, 모든 법이 와서 들어가지만 일어남이 있음을 보지 않는다. 두 번째는 라라(羅羅)라는 것인데, 번뇌[垢]의 모양이 모든 법 속에는 어떤 티끌도 없다. 세 번째는 파파(波波)라는 것인데, 모든 법에서 니원이 가장 제일임을 가르친다. 네 번째는 차차(遮遮)라는 것인데, 모든 법에서 생사가 있음을 보지 않는다. 다섯 번짼는 나나(那那)라는 것인데, 모든 법에서 모든 글자를 다 마쳤으니, 글자의 본성은 또한 얻음도 없고 잃음도 없다. 여섯 번째는 라라(羅羅)라는 것인데, 세상을 건너 애정의 가지와 각 인연을 이미 멸한 것이다. 일곱 번째는 타타(陀陀)라는 것인데, 모든 법이 여여해서 단절한 때가 없었다. 여덟 번째는 파파(波波)라는 것인데, 모든 법은 이미 지옥을 여의었다. 아홉 번째는 다다(茶茶)라는 것인데, 모든 법에서 번뇌가 이미 다했다. 열 번째는 사사(沙沙)라는 것인데, 모든 법에 걸림이 없다. 열한 번째는 화화(和和)라는 것인데, 모든 법의 언행이 이미 끊어졌다. 열두 번째는 다다(多多)라는 것인데, 모든 법은 여여하여 움직이지 않는다. 열세 번째는 야야(夜夜)라는 것인데, 모든 법은 진리[諦]여서 생겨남이 없다. 열네 번째는 타타(吒吒)라는 것인데, 모든 법은 강한 번뇌를 볼 수 없다. 열다섯 번째는 가가(加加)라는 것인데, 모든 법이 조작되는 것을 또한 볼 수 없다. 열여섯 번째는 사사(娑娑)라는 것인데, 모든 법은 얻을 때가 없으며, 굴릴 것도 없다. 열입곱 번째는 마마(摩摩)라는 것인데, 모든 법에서는 나를 볼 수 없다. 열여덟 번째는 가가(伽伽)라는 것인데, 모든 법을 수지함을 볼 수 없다. 열아홉 번째는 타타(他他)라는 것인데, 모든 법처를 얻을 수 없다. 스무 번째는 사사(闍闍)라는 것인데, 모든 법이 생하는 것도 얻을 수 없다. 스물한 번째는 습파습파(濕波濕波)라는 것인데, 모든 법이 선한다는 것은 얻을 수 없다. 스물두 번째는 대대(大大)라는 것인데, 모든 법성(法性)은 얻을 수 없다. 스물세 번째는 사사(赦赦)라는 것인데, 모든 법이 적정함을 얻을 수 없다. 스물네 번째는 거거(佉佉)라는 것인데, 모든 법은 허공과 같아서 얻을 수 없는 것이다. 스물다섯 번째는 차차(叉叉)라는 것인데, 모든 법이 소멸됨을 얻을 수 없다. 스물여섯 번째는 치치(侈侈)라는 것인데, 모든 법은 각각 처한 곳에 있어 동요하지 않는다. 스물일곱 번째는 약약(若若)이라는 것인데, 모든 법의 지혜는 얻을 수 없다. 스물여덟 번째는 이타이타(伊陀伊陀)라는 것인데, 모든 법의 뜻은 얻을 수 없다. 스물여덟 번째는 번번(繁繁)이라는 것인데, 모든 법은 한가할 때가 없다. 서른 번째는 거거(車車)라는 것인데, 모든 법에는 가히 버릴 것이 없다. 서른한 번째는 마마(魔魔)라는 것인데, 모든 법은 구릉이나 분묘가 없다. 서른두 번째는 파파(叵叵)라는 것인데, 모든 법은 분별할 수 없다. 서른세 번째는 차차(蹉蹉)라는 것인데, 모든 법에 사망이라는 것을 얻을 수 없다. 서른네 번째는 아아(峨峨)라는 것인데, 모든 법에는 붕당(朋黨)이 없다. 서른다섯 번째는 타타(咃咃)라는 것인데, 모든 법에는 각각 다름이 있어 장소가 있지 않음이 없다. 서른여섯 번째는 나나(那那)라는 것인데, 모든 법은 옴도 없고 감도 없으며 머물지도 않고 또한 앉지도 않고 눕지도 않으며 구별하지도 않는다. 서른일곱 번째는 파파(破破)라는 것인데, 모든 법은 삼계에서 불안한 것이다. 서른여덟 번째는 가가(歌歌)라는 것인데, 모든 법성을 얻을 수 없다. 서른아홉 번째는 차차(嵯嵯)라는 것인데, 모든 법은 항상함을 얻을 수 없다. 마흔 번째는 차차(嗟嗟)라는 것인데, 모든 법은 분리되어 나가 버리니 얻을 수 없다. 마흔한 번째는 타타(吒吒)라는 것인데, 모든 법에는 제도함이 없다. 마흔두 번째는 노노(嗏嗏)라는 것인데, 모든 법의 변제(邊際)가 다한 곳에는 태어나지도 않고 죽지도 않는다. 많은 글자가 있지만 노(嗏)자를 뛰어넘을 수 없다. 왜냐하면 이 글자는 수(數)가 없으며 또 이 글자를 생각하고 말하지 않아도 잃지 않으며 또한 보는 것도 아니며, 또한 설하는 것도 없으며, 또한 서사[書]하는 것도 없으며, 또한 나타나지도 않는다.
수보리여, 일체 법은 비유하면 허공과 같음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이 문자를 배워 들어가는 것은 모두 다린니에 들어가는 문이다. 만약 어떤 보살마하살이 이 문자의 일을 깨달아 알았다면 언수(言數)에 머물지 않고 곧 말의 지혜를 알 수 있다. 만약 어떤 보살마하살이 42자(字)가 들어가는 구절을 듣고 인(印)자를 소지하여 풍송(諷誦)하고 만약 다른 사람을 위하여 그 뜻을 해설하여 망령되지 않게 소지하고 독송하면 마땅히 스무 가지 공덕을 얻는다. 무엇이 스무 가지인가? 첫 번째는 강하게 생각하는 힘을 얻는 것이고, 두 번째는 참괴수치의 힘[慚愧羞恥力]을 얻는 것이고, 세 번째는 견고하게 행하는 힘을 얻는 것이고, 네 번째는 깨달아 아는 힘을 얻는 것이고, 다섯 번째는 변재(辯才)가 있어서 교묘하게 말하는 힘을 얻는 것이고, 여섯 번째는 다린니(陀隣尼)가 어렵지 않은 힘을 얻는 것이다. 일곱 번째는 말하는 바가 급하지 않은 일을 설하지 않는 것이다. 여덟 번째는 끝내 경에 대해서 여우처럼 의심하지 않는다. 아홉 번째는 선을 듣고도 기뻐하지 않고, 악을 듣고도 근심하지 않는 것이다. 열 번째는 또 스스로 높이지 않으며, 또한 스스로 낮추지도 않는 것이다. 열한 번째는 나아가고 멈출 때 침착하고 주의 깊게 하여 위의를 잃지 않는 것이다. 열두 번째는 5음(陰)과 6쇠(衰)를 깨달아 아는 것이다. 열세 번째는 4제(諦)와 12연기를 잘 아는 것이다. 열네 번째는 인연의 일을 잘 아는 것이다. 열다섯 번째는 법혜를 잘 알아 능히 모든 감관[根]을 만족하게 갖추는 것이다. 열여섯 번째는 타인의 생각하는 바 길흉의 인과응보를 아는 것이다. 열일곱 번째는 천이(天耳)로 명확하게 들으며, 스스로 숙명을 아는 것이다. 열여덟 번째는 중생이 생하는 바를 잘 아는 것이다. 열아홉 번째는 능히 모든 번뇌[漏]를 소멸할 수 있는 것이다. 스무 번째는 왕래하는 곳곳마다 가르치기를 잘하는 것이다. 수보리여, 이것이 다린니문이고 자문(字門)이고, 들어가는 문이다. 이것을 보살마하살의 마하연이라고 한다.”
21. 치지품(治地品)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그대는 보살마하살이 마하승나승녈로 마하연에 나아가는 것[摩訶衍三拔致]에 대해서 물었다. 보살이 6바라밀을 행하면서 한 지[一地]에서 다른 한 지에 이르는 것이다.”
“무엇을 보살이 한 지에서 다른 한 지에 이르는 것이라고 합니까?”
“모든 법에는 지나간 법이 없으며 오는 것도 없고 가는 것도 없으며, 또 지나감이 없고 지나가지 않음도 없다. 모든 법에는 무너짐이 없으며 또 높이지도 않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다만 머무는 지(地)의 일을 다스리며 또한 지(地)를 보지 않는다. 무엇을 보살이 지의 일을 다스리는 것이라고 하는가? 제1지(地)로부터 머물면서 열 가지 일[事]을 행한다. 무엇이 열 가지가 되는가? 첫째는 우선 세 가지의 번뇌[垢]로부터 깨끗해야 하며, 또 의지함도 없어야 한다. 둘째는 베풀고 주는 것이 자신을 위해서라고 생각하지 않아야 하고, 또 의지해서도 안 된다. 일체 중생들을 위해서 4등심(等心)으로 청정하게 하지만 또한 중생이 있는 것도 아니다. 셋째는 보시를 하지만 주는 것이 있지 않으며, 받는 자가 있지 않다. 넷째는 선지식과 함께 하고 또한 아만을 부리지 않는다. 다섯 번째는 법을 얻으려고 하지만 모든 법은 있지 않다. 여섯째는 출가를 하고자 하니 애욕이 있지 않다. 일곱째는 부처님의 몸이 되고자 하지만 상호(相好)는 있지 않다. 여덟째는 법의 가르침을 널리 퍼뜨리니 법에는 무너짐이 없다. 아홉째는 아만[虜怙]에서 스스로 법재(法財)가 아닌 것을 멸하고자 하는 것이다. 열째는 진실되게 설하고자 하나 언교(言敎)가 없기 때문이다. 수보리여, 이것이 지(地)를 다스리는 것이며, 보살은 마땅히 이 열 가지 일을 해야 한다.
수보리여, 보살마하살은 2지(地) 가운데서 항상 여덟 가지 법[八法]을 염(念)해야 하고 또 마땅히 이루어야 한다. 무엇이 여덟 가지인가? 첫째는 계(戒)를 청정하게 하는 것이고, 둘째는 항상 보은(報恩)을 생각하는 것이고, 셋째는 인욕에 머무는 것이고, 넷째는 환희하는 뜻을 얻는 것이고, 다섯째는 일체를 버리지 않는 것이고, 여섯째는 대자비로 시작하는 것이고, 일곱째는 사존(師尊)을 공경하고 섬기며 독실히 믿는 것이고, 여덟째는 모든 바라밀에 대해서 항상 세존을 받들어 모시듯이 숭상하고 익히는 것이다. 수보리여, 보살마하살은 2지 가운데서 마땅히 이 여덟 가지 법을 구족해야 한다.
또 수보리여, 보살은 3지(地) 가운데서 마땅히 다섯 가지 법에 머물러야 한다. 무엇이 다섯 가지인가? 첫째는 배우고 묻기를 많이 하여 싫어함이 없는 것이고, 둘째는 문자법에 들어가지 않고서도 법시(法施)를 베풀되 또한 스스로 높이지 않는 것이고, 셋째는 불국토를 청정하게 하는 것이고, 넷째는 선의 근본[善本]을 베풀되 스스로 높이지 않는 것이고, 다섯째는 수치스러워하고 부끄러워하는 지(地)에 머무는 것이다. 수보리여, 이것이 3지 가운데서 다섯 가지 법에 머무는 것이다.
수보리여, 보살은 4지(地) 가운데서 마땅히 10사법(事法)을 봉행하여 버리지 않아야 한다. 첫째는 연좌(宴坐)를 버리지 않는 것이고, 둘째는 욕심을 적게 갖는 것이고, 셋째는 만족할 줄 아는 것이고, 넷째는 사문의 12법행(法行)을 버리지 않는 것이고, 다섯째는 계(戒)를 버리지 않는 것이고, 여섯째는 욕망을 더러움으로 보는 것이고, 일곱째는 니원과 같은 뜻을 일으키는 것이고, 여덟째는 몸에 소유한 것을 아끼지 않는 것이고, 아홉째는 게으름이 없는 것이고, 열째는 소유(所有)하고 있는 것을 사모하지 않는 것이다. 수보리여, 이것이 보살이 4지 가운데서 마땅히 10사를 봉행하고 버리지 않아야 하는 것이다.
수보리여, 보살은 5지(地) 가운데서 마땅히 여덟 가지 법을 여의어야 한다. 무엇이 여덟 가지가 되는가? 첫째는 가업(家業)을 멀리 여의는 것이고, 둘째는 비구니를 멀리 여의는 것이고, 셋째는 공덕을 쌓되 멀리 질투를 여의는 것이고, 넷째는 세상의 모임을 멀리 여의는 것이고, 다섯째는 분쟁을 멀리 여의는 것이고, 여섯째는 싸우는 것과 소송하는 것을 멀리 여의는 것이고, 일곱째는 높은 데 머무는 것을 멀리 여의는 것이고, 여덟째는 사람을 멸시함을 멀리 여의는 것이다.
수보리여, 이것이 5지 가운데 머물면서 여덟 가지 일을 멀리 여의는 것이다.
수보리여, 보살은 6주지(住地)에서 여섯 가지 법을 구족해야 한다. 무엇이 여섯 가지인가? 그것은 6바라밀을 말하는 것이다. 또 여섯 가지의 일이 있는데, 행해서는 안 된다. 무엇이 여섯 가지인가? 첫째는 성문(聲聞)의 뜻이 없는 것이고, 둘째는 벽지불(辟支佛)의 뜻이 없는 것이고, 셋째는 적은 뜻이 없는 것이고, 넷째는 찾던 것을 보고도 만족하는 뜻을 멀리 여의는 것이고, 다섯째는 소유한 좋은 물건을 보시한 후에 후회하는 뜻을 멀리 여의는 것이고, 여섯째는 나[我]라고 하는 생각을 멀리 여의는 것이다. 수보리여, 이것이 보살이 6주지 가운데서 여섯 가지 일을 구족하고, 또 여섯 가지 일을 멀리 여의는 것이다.
수보리여, 보살은 7주지(住地)에서 해서는 안 되는 스무 가지 일이 있다. 무엇이 스무 가지인가? 나라는 것이 있고, 중생이라는 것이 있고, 수명(壽命)이라는 생각이 있고, 끊어짐[斷]이 있고, 항상함이 있고, 염상[念想]이 있고, 온갖 상[種想]이 있고, 음(陰)에 들어가고, 성(性)에 들어가고, 쇠(衰)에 들어가고, 삼계에 태어나고자 하고, 부처님의 견해에 의지하여 들어가지 않고, 법견(法見)을 의지하여 들어가지 않고, 승견(僧見)을 의지하여 들어가지 않고, 계(戒)를 의지하여 들어가지 않고, 공(空)에 들어가지 않고, 무상(無相)에 들어가지 않고 무원(無願)에 들어가지 않고, 도(道)에 들어가지 않는다. 이것이 마땅히 해서는 안 되는 스무 가지의 일들이다.
또 마땅히 스무 가지의 일을 구족해야 한다. 무엇이 스무 가지인가? 공․무상(無相)을 깨닫고, 바람이 없는 지혜[不願慧]를 증득하고, 몸[身]․입[口]․뜻[意]을 청정하게 하고, 일체 중생을 자비로 보살펴야 하고, 또한 중생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고, 모든 법을 평등하게 관하고, 비록 그렇다 하여도 들어감이 없어야 하고, 인도하여 모시려고 하여도 또한 아만을 부리지 않고, 무소생인(無所生忍)이고, 한 도(道)로써 교화하고, 모든 분별을 끊고, 생각을 전환하고, 견(見)을 전환하고, 모든 구견(垢見)을 멸함을 전환하고, 혜지(慧地)에서 스스로 조절하고, 의혜(意慧)는 걸림이 없고 욕사(欲事)에서 물들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수보리여, 이것이 보살마하살이 7주지(住地)에서 마땅히 구족해야 하는 스무 가지의 법이다.
또한 수보리여, 보살은 마땅히 8주지(住地)에서 네 가지 법을 구족해야 한다. 무엇이 네 가지인가? 신통으로 두루 관하여 중생의 뜻에 들어가는 것이며, 모든 불국토에 이르러서 기특(奇特)한 일들을 관하는 것이며, 그 불국토는 스스로 장엄하는 것이며, 실제로 부처님의 몸을 관하는 것처럼 모든 부처님께 가서 뵙고 예경하고 공양하는 것이다. 이 네 가지의 법을 구족해야 한다.
또 수보리여, 보살마하살은 8주지에서 마땅히 네 가지 법을 구족해야만 한다. 무엇을 네 가지 법이라고 하는가? 지혜로써 모든 감관을 구족하고, 불국토를 청정하게 하고, 항상 여환(如幻)삼매에 들어서 중생이 본래 지은 공덕을 알고, 얻고자 하는 바에 따라 응해서 성취하게 한다. 수보리여, 보살은 8주지에서 네 가지 법을 구족해야 한다.
또 수보리여, 보살마하살은 9주지(住地)에서 열두 가지 법을 구족해야 한다. 무엇이 열두 가지인가? 무한한 곳에서 광대한 원(願)을 가졌으므로 각자에게 그 응하는 바에 따라서 각각 증득을 주는 것이며, 천․용․열차(閱叉:야차)․건다라 등이 모두 구족하며, 음성을 알아서 변재(辯才)로써 원인이 되는 바를 가르쳐 주고, 포태(胞胎)를 성취하고, 집에 기거하는 것을 성취하고, 부모를 성취하고, 종성(種姓)을 성취하고, 종친을 성취하고, 태어남을 성취하고, 출가를 성취하고, 불수(佛樹)를 장엄함을 성취하고, 모든 선한 공덕을 성취해야 한다. 수보리여, 보살마하살은 9주지에서 마땅히 이 열두 가지 법을 성취해야 한다.
수보리여, 10주(住)의 보살마하살은 마땅히 여래라고 불린다.”
수보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무엇을 보살이 소유하고 있는 것을 청정하게 한다고 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많은 선을 지어서 살운야의 뜻과 상응하는 것이다. 이것이 보살마하살이 소유하고 있는 것을 청정하게 하는 것이다.”
“무엇을 보살이 중생에게 평등하게 하는 것이라고 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4등심(等心)으로 청정하게 하는 것이 중생에게 평등하게 하는 것이다.”
“무엇을 보살이 소유하고 있는 것을 베푸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중생에게 베풀어 주되 분별하지 않아야 하는 것이다.”
“보살은 어떻게 선지식과 함께 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사람으로 하여금 살운야에 들어가게 하도록 부지런히 수행하고 힘써 도와주어야 한다. 마땅히 이런 사람과 함께하여 스승을 공경하고 가르침을 받는다. 이것을 보살의 선지식이라고 한다.”
“무엇을 법을 얻는다고 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법은 행하되 단지 살운야법을 구하면 나한․벽지불지에 떨어지지 않는다.”
“무엇을 보살이 항상 출가해서 도를 닦는 것이라고 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출생하는 곳마다 언제나 사문이 되어 중도(中道)를 행하는 데 걸림이 없는 것이며, 처음부터 출가할 일을 잊지 않는 것이다.”
“무엇을 뜻으로 부처님의 신상(身相)을 발원하는 것이라고 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부처님의 형상(形像)을 보면 뜻은 항상 부처님께 두어야 하고, 살운야를 얻을 때까지 이것을 여읜 때가 있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무엇이 법을 교화하는 것을 널리 퍼뜨리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부처님께서 세상에 계실 때나 반니원에 드신 후에도 보살이 12부(部)의 경전을 수지하고 가르치는데, 처음의 가르침도 또한 진실하고 중간의 가르침도 진실하고 마지막의 가르침도 또한 진실하며 본말(本末)의 뜻을 알아서 청정함을 구족하는 것이다.”
“보살이 어떻게 해야만 스스로 서고 포로가 되지 않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성냄과 분노를 멸한 이래로는 처음부터 하천한 곳에 떨어지지 않는 것이다.”
“무엇을 보살이 진제(眞際)를 설하는 것이라고 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입에서 설하는 말이 행동과 상응(相應)하면 이것이 보살이 열 가지 법을 행하는 일이 되는 것이다.”
수보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무엇을 보살이 계(戒)를 청정하게 하는 것이라고 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나한․벽지불의 뜻과 다른 나쁜 계와 도를 비방하는 것을 생각하지 않는다면 이것이 계를 청정하게 하는 것이다.”
“무엇을 보살이 보은(報恩)하고 염은(念恩)하는 것이라고 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보살도를 행하면 작은 은혜도 오히려 잊지 않는데 하물며 큰 은혜를 잊겠는가? 이것을 염은(念恩)이라고 한다.”
“무엇이 보살이 인욕력을 세우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모든 중생에게 침입함이 없고, 성냄이 없으면 이것이 인욕의 힘이다.”
“무엇이 보살이 환희하는 즐거움을 얻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중생을 가르치는 것으로써 즐거움을 삼는 것이다.”
“무엇이 보살이 중생을 버리지 않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일체를 구원해 주려고 하는 것이다.”
“무엇이 보살이 대비를 가지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보살이 마음속으로 ‘나는 마땅히 한 명 한 명의 중생을 위하기 때문에 지옥에서 갠지스강의 모래 수처럼 많은 겁 동안 많은 고통을 대신 받더라도 한 명 한 명의 중생이 모두 부처님의 도를 얻어 반니원에 들도록 해야겠다’고 생각한다면, 이것이 즐거움이며 대비(大悲)이다.”
“무엇이 보살이 스승을 존경하고 믿고 공경해야 하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부모를 섬기듯 하고, 세존을 생각하듯 하는 것이다.”
“무엇이 보살이 모든 바라밀을 익히려고 하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다른 일을 멀리 여의고 단지 모든 바라밀만을 구하는 것이다.”
“무엇이 보살이 배우기를 즐겨하며 싫어함이 없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모든 시방의 부처님 세존께서 설하신 것을 모두 수지(受持)하는 것을 싫어함이 없는 것이라고 한다.”
“무엇이 보살이 희망하는 바 없이 법시(法施)를 널리 유포하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법시를 베풀고도 도(道)를 희망하지 않는데, 하물며 나머지이겠는가?”
“무엇을 보살이 불국토를 청정하게 하는 것이라고 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모든 선의 근본의 갖가지 공덕을 행하며, 이 공덕을 가지는 것이 불국토를 청정하게 하는 것이다.”
“무엇을 보살의 생사는 무량하여 아승기겁의 제한이 없는 것이라고 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모든 공덕을 구비하였으므로 중생을 양육하고 불국토를 청정하게 하고, 살운야를 구족할 때까지 싫어하지도 않고 게으르지도 않는 것이다.”
“무엇이 보살이 참괴(慚愧)에 서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나한․벽지불의 뜻을 부끄러워하는 것이다.”
“무엇이 보살이 연좌(宴坐)를 버리지 않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모든 나한․벽지불은 여기에 이르지 못하며 이것이 보살이 연좌를 버리지 않는 것이다.”
“무엇이 보살이 하고자 하는 것에 욕심을 적게 내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보살은 도(道)도 오히려 원하지 않는데, 하물며 나머지 욕심이겠는가?”
“무엇이 보살이 스스로 만족할 줄 아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살운야를 얻는 것이 만족함을 아는 것이다.”
“무엇을 보살이 사문의 두타덕행(頭陀德行:탁발)을 버리지 않는 것이라고 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깊이 법인(法忍)에 들어간 것을 말하는 것이다.”
“무엇을 보살이 계를 버리지 않는다고 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보살은 계를 이용하지 않는 것이 계를 버리지 않는 것이다.”
“무엇을 보살이 색욕을 더러워한다고 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음욕과 질투하는 마음이 생기지 않는 것이다.”
“무엇을 보살의 뜻과 니원이 동등한다고 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보살에게는 일체의 모든 법이 없는 것이다.”
“무엇을 보살이 소유한 것을 버린다고 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안팎의 소유를 받지 않는 것이 버리는 것이다.”
“무엇이 보살에게 싫어함도 없고 게으름도 없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두 가지를 식별하는 경우가 생기지 않는 것이 싫어함이 없는 것이다.”
“무엇을 보살이 모든 소유하고 있는 것을 연모(戀慕)하지 않는 것이라고 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모든 물건에 생각이 없는 것이다.”
수보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무엇이 보살의 거업(居業)을 멀리 여의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모든 불국토를 다니면서 출생하는 곳마다 항상 머리카락과 수염을 깎고 가사를 입는다. 이것이 가업을 멀리 여의는 것이다.”
“무엇이 보살이 비구니의 무리를 멀리 여의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손가락을 튀기는 짧은 시간이라도 함께 머물지 않으며 손가락을 튀기는 짧은 시간이라도 그런 뜻을 내지 않는다. 이것이 보살이 비구니를 여의는 것이다.”
“무엇이 보살이 질투를 여의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보살은 마땅히 생각하기를 ‘나는 마땅히 중생을 안온하게 해야 하고, 질투하는 마음을 내지 말아야 한다’고 해야 한다.”
“무엇이 보살이 모임을 멀리 여의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보살이 모임에 있을 때 나한․벽지불의 뜻을 가진다면 항상 멀리 여의어야 한다.”
“무엇이 보살이 성냄과 분한 마음을 멀리 여의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화를 내고 해치고 투쟁하는 마음이 틈을 얻을 수 없게 하는 것이다.”
“어찌하여 보살이 자기를 과시하는 것을 멀리 여의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내법(內法)을 보지 않기 때문이다.”
“어찌하여 보살이 타인을 멸시하는 것을 멀리 여의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외법(外法)을 보지 않기 때문이다.”
“어찌하여 보살이 10악(惡)을 멀리 여의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이 10악의 일은 항상 현성의 도를 파괴하려고 하는데 하물며 어떻게 부처님의 도로서 멀리 여의지 않겠는가? 그러므로 마땅히 10악을 멀리 여의어야 하는 것이다.”
“무엇이 보살이 포악한 것을 여의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높일 만한 법이 있다고 보지 않는다. 이것이 보살이 포악한 것을 여의는 것이다.”
“어찌하여 보살이 스스로 사용하는 것을 멀리 여의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형상이 있는 것을 보지 못하는데 어느 곳에서 마음대로 사용하겠는가?”
“어찌하여 보살이 전도(顚倒)됨을 여의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이 형상으로써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어찌하여 보살이 음욕․성냄․어리석음을 멀리 여의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음욕․성냄․어리석음의 형상을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무엇을 보살이 6주(住)에 있으면서 6바라밀을 구족한다고 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모든 부처님 세존과 성문․벽지불은 6바라밀에 머물러 피안(彼岸)에 이른다. 이것을 보살이 6바라밀을 구족한다고 하는 것이다.”
“어찌하여 보살이 성문의 뜻을 갖지 않는다고 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성문의 일은 평등한 도가 아니므로 작은 뜻을 갖지 않는다. 왜냐하면 또한 평등한 도가 아니기 때문이다.”
“무엇을 싫어하지 않는다고 합니까?”
“싫증을 내는 것도 또한 평등한 도가 아니므로 버리고 나서 후회하지 않는다. 후회하는 것도 평등한 도가 아니다. 처음 뜻을 발하면 곧 베풀어 주어야 하고, 또한 아까워하지 않아야 하는 것이다.”
“어찌하여 보살이 나라는 상[我想]을 짓지 않는다고 합니까?”
“본래부터 볼 수 없기 때문이며, 나아가 중생과 수명상(壽命想)이 있다는 것도 본래부터 또한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어찌하여 보살이 생겨난다는 견을 끊지 않는다고 합니까?”
“모든 법에는 단절(斷截)이 없으며, 처음부터 생기함이 없기 때문이다.”
“어찌하여 보살이 상견(常見)을 갖지 않는다고 합니까?”
“법에는 생하는 것이 없다고 보는 것이며, 또한 항상함이 없기 때문이다.”
“어찌하여 보살이 염상(念想)을 짓지 않는다고 합니까?”
“번뇌가 없기 때문이다.”
“어찌하여 보살이 종상(種相)을 짓지 않는다고 합니까?”
“모든 견(見)은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어찌하여 보살이 명색(名色)에 들어가지 않는다고 합니까?”
“형상이 있음을 보지 않기 때문이다.”
“어찌하여 보살이 5음(陰)에 들어가지 않고 또한 성(性)에 들어가지 않고 또한 쇠(衰)에 들어가지 않는다고 합니까?”
“그 실체를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어찌하여 보살이 삼계에 들어가지 않는다고 합니까?”
“삼계 또한 실체가 없기 때문이다.”
“어찌하여 보살이 주처(住處)를 만들지 않는다고 합니까?”
“허공과 같아서 기한을 짓지 않으며 의지함도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형상이 없기 때문이다.”
“어찌하여 보살이 불견(佛見)에 들어가지 않는다고 합니까?”
“부처님을 보려고 하는 생각을 갖지 않기 때문이다.”
“어찌하여 보살이 헛된 쟁론을 하지 않는다고 합니까?”
“일체법은 공하고 공하여 헛된 쟁론은 하지 않기 때문이다.”
“무엇을 보살이 공을 구족한다고 합니까?”
“상(相)을 구족하려고 함이 공을 구족하는 것이다.”
“어찌하여 보살이 무상(無相)을 증득한다고 합니까?”
“모든 상(相)을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어찌하여 보살이 무원지(無願智)를 얻는 것입니까?”
“삼계에 집착하지 않기 때문이다.”
“어찌하여 보살이 3사(事) 화엄경에 나오는 42자문(字門)에서 마흔 번째의 실자문(室字門)이며, 실(室) 자(者)는 대품반야경(大品般若經)에서는 차(遮)라고 나온다. 범어로는 차라지(遮羅地)라 하며, 중국말로는 동(動)이다. 일체법이 부동상(不動相)인 줄 아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를 청정하게 한다고 합니까?”
“10선(善)을 구족했기 때문이다.”
“어찌하여 보살이 혜(慧)로써 중생을 애민히 생각하는 것을 구족하는 것입니까?”
“대비(大悲)로써 중생을 이롭게 하기 때문이다.”
“어찌하여 보살이 중생을 생각하지 않는 것입니까?”
“불국토를 깨끗하게 하기 때문이다.”
“어찌하여 보살이 모든 법을 평등하게 관하는 것입니까?”
“모든 법에 높고 낮음이 없기 때문이다.”
“어찌하여 보살이 도를 깨닫는 것입니까?”
“모든 법을 따라서 깨닫게 하고 해탈을 얻게 하기 때문이다.”
“어찌하여 보살이 무소생인(無所生忍)을 얻는 것입니까?”
“모든 법이 생하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으며, 참을 것도 없기 때문이다.”
“어찌하여 보살이 무소생혜(無所生慧)를 얻는 것입니까?”
“명색(名色)은 일어남이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어찌하여 보살이 한 도[一道]의 가르침을 얻는 것입니까?”
“두 가지 가르침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어찌하여 보살이 모든 분별을 멸하는 것입니까?”
“모든 법에는 부분이 없기 때문이다.”
“어찌하여 보살이 전견(轉見)을 닦지 않는 것입니까?”
“나한․벽지불을 구하려는 생각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어찌하여 보살이 번뇌[垢濁]을 전환하는 것입니까?”
“모든 익혀진 번뇌[漏]를 멸하기 때문이다.”
“어찌하여 보살이 모든 번뇌[垢]를 멸해서 청정함을 얻게 하는 것입니까?”
“살운야의 지혜를 얻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어찌하여 보살이 스스로 뜻을 조절하는 것입니까?”
“삼계를 싫어하지 않기 때문이다.”
“어찌하여 뜻을 멸하는 것입니까?”
“6근을 제어하기 때문이다.”
“어찌하여 보살의 지혜에 걸림이 없는 것입니까?”
“불안(佛眼)을 얻었기 때문이다.”
“어찌하여 보살이 정욕(情欲)이 견고하지 못한 것을 아는 것입니까?”
“6쇠(衰)를 관하기 때문이다.”
“어찌하여 보살이 중생의 뜻에 들어가는 것입니까?”
“오로지 하나의 뜻을 가져 중생이 생각하는 것을 모두 아는 것이다.”
“어찌하여 보살이 신통에서 노니는 것이라고 합니까?”
“한 불국토에서 다른 한 불국토에 이르기까지 처음부터 불국토라는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무엇이 보살이 불국토를 관하는 것입니까?”
“그 국토에 머물러 두루 모든 불국토를 보되, 또한 불국토라는 생각이 없는 것이다.”
“어찌하여 보살이 그 소견을 따라서 모든 불국토를 스스로 이루는 것입니까?”
“차가월라지(遮迦越羅地) 4정근(正勤)과 같다. 범어로 catvāri-samyak-prahānāni. 또는 4정단(正斷)․4의단(意端)이라고도 한다. 열반에 나아가기 위하여 수행함에 서른일곱 가지 종류가 있는데 4념처(念處) 다음에 닦는 법이다.
에 머물러 모든 삼천대천국토에 노닐기 때문이다.”
“무엇이 보살이 모든 부처님을 뵙고 모시는 것입니까?”
“법을 보는 것이 부처님을 뵙는 것이다.”
“무엇이 보살이 참으로 불신(佛身)을 보는 것입니까?”
“법성을 깨닫는 것이 참으로 보는 것이다.”
“무엇이 보살이 지혜가 구족한 힘을 가지는 것입니까?”
“이미 세존의 10력의 지위에 머물렀으면 곧 능히 중생력을 구족한 것이다.”
“무엇이 보살이 불국토를 청정하게 하는 것입니까?”
“중생을 청정하게 하는 것이다.”
“어찌하여 보살의 환과 같은 삼매[如幻三昧]입니까?”
“응해주는 곳을 따라 지어서 움직이지[動轉] 않기 때문이다.”
“어찌하여 보살이 항상 삼매에 머무는 것입니까?”
“이미 보응(報應)을 얻었기 때문이다.”
“무엇이 보살이 모든 공덕에 들어가는 것입니까?”
“도법(道法)을 따라서 해탈을 얻게 하는 것이다.”
“어찌하여 보살이 다시 생각하지 않는 것입니까?”
“스스로 능히 일체를 성립할 수 있고 가르칠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이 보살이 원하는 바를 조화시킬 수 있는 것입니까?”
“6바라밀을 구족하게 행하는 것이 해우(諧偶)이다.”
“어찌하여 보살이 모든 천․용․귀신의 아는 것과 말을 아는 것입니까?”
“변재혜(辯才慧)를 가지므로 알지 못하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어찌하여 보살이 태 안에 듦을 성취하는 것입니까?”
“태어남에서 항상 화생(化生)하기 때문이다.”
“태어나는 보살이 가문[居家]을 성취하는 것입니까?”
“부자이면서 귀한 집에 태어나기 때문이다.”
“어찌하여 보살이 부모를 성취하는 것입니까?”
“찰제리와 바라문가에 태어나기 때문이다.”
“어찌하여 보살이 종성(種姓)을 성취하는 것입니까?”
“과거에 모든 보살의 종성을 이었기 때문이다.”
“어찌하여 보살의 종친을 성취하는 것입니까?”
“많은 보살들의 권속이 되었기 때문이다.”
“무엇이 보살이 출생을 성취하는 것입니까?”
“태어날 때 광명이 무량한 국토를 두루 비추고, 무량한 국토를 진동하게 하는 것이다.”
“무엇이 보살이 출가를 성취하는 것입니까?”
“보살이 출가할 때 모든 무량한 백천 중생들을 편안하게 하고, 삼승의 원을 원만하게 구족하기 때문이다.”
“무엇이 보살이 불수(佛樹)를 장엄하는 것입니까?”
“황금으로 나무를 삼고, 7보(寶)로 줄기와 잎을 삼으며, 그 줄기와 잎의 광명이 시방의 무량한 찰토(刹土)를 빠짐없이 두루 비추는 것이 불수를 성취하는 것이다.”
“무엇이 보살이 모든 선한 공덕을 성취하는 것입니까?”
“보살마하살이 불토를 청정하게 하고 중생을 청정하게 하는 것이 모든 공덕을 청정하게 성취하는 것이다.”
“무엇을 10주(住) 보살이라 하며, 여래(如來)라고 이름하는 것입니까?”
“6바라밀을 구족하고, 부처님의 18법(法)을 모두 익혀서 얻으며, 살운야혜를 구족하는 것이다. 수보리여, 이런 까닭으로 보살마하살은 이미 10주를 얻어 여래라고 이름하는 것이다.”
“무엇이 보살이 이미 10지(地)에 머문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보살마하살은 구화구사라로써 6바라밀을 행하고 나아가 37품과 18법을 행하며, 멸정지(滅淨地)․종성지(種性地)․팔지(八地)․견지(見地)․박지(薄地)․멸음노치지(滅婬怒癡地)․이작지(已作地)․벽지불지(辟支佛地)․보살지(菩薩地)를 지나는 것이다. 수보리여, 보살마하살은 이 9지(地)를 지나 곧 불지(佛地)에 머무는 것이다. 수보리여, 이것이 보살마하살의 10주의 지(地)이다. 이것이 보살마하살의 마하연삼발치임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22. 문출연품(門出衍品)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그대는 보살마하살에게 연(衍)은 어느 곳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며, 마땅히 어느 곳에 머무는 것인가를 질문하였다. 지금 이것을 설하겠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삼계를 나와서 살운야를 따라서 머무니 의지함이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마하연과 살운야라는 이 법은 함께 평등하기 때문이다. 또 다르지도 않고 같지도 않고, 또한 형상도 없고 견해도 없고, 또한 한 가지 모양[一相]에도 걸림이 없는 것이다. 한 가지 모양이란 이른바 모양이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수보리여, 모양이 없는 법은 나오는 것도 아니고 또한 나오지 않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수보리여, 만약 무상법(無相法)을 출현하게 한다면 법성도 또한 다시 생겨나는 것이다. 가령 무상법이 출생한다면 여여함도 또한 마땅히 다시 출생하는 것이다. 무상법을 출생시키려고 하면 진제(眞際)를 출생시키려고 하는 것이 된다. 만약 무상법을 출생시키려고 한다면 다시 불가사의한 성품을 출생시키려고 하는 것이 된다. 무상법을 출생시키려고 한다면 다시 안온한 성품을 출생시키려고 하는 것이 된다. 무상법을 출생시키려고 한다면 멸진(滅盡)을 출생시키려고 하는 것이 된다. 무상법을 출생시키려고 한다면 멸진의 체를 출생시키려고 하는 것이다. 무상법을 출생시키려고 한다면 색의 공함과 통․상․행․식의 공함을 출생시키려고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색의 공함은 삼계에서 나오지도 않고 또한 살운야에도 머물지 않기 때문이며, 통․상․행․식의 공함도 또 그러한 것이기 때문이다. 무슨 까닭인가? 수보리여, 색은 색 자체가 공하고 통․상․행․식도 자체가 공한 까닭이다. 무상법을 출생하려고 한다면 안공(眼空)을 출생하려고 하는 것이며, 의공(意空)을 출생하려고 하는 것이다. 무상법을 출생시키려고 한다면 6쇠(衰)와 12인연이 공함을 출생시키려고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6쇠가 공하다는 것은 삼계에서 나오지도 않고 또한 살운야에 머물지도 않기 때문이다. 무상법을 출생시키려고 한다면 꿈․허깨비․불꽃․메아리․광명․그림자를 출생시키려고 하는 것이 된다. 무상법을 출생시키려고 한다면 여래가 지은 변화를 출생시키려고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꿈․허깨비․불꽃․메아리․광명․그림자와 여래가 지은 변화는 삼계에서 나오지도 않고 또한 살운야에 머물지도 않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꿈은 몽사(夢事)로써 공하고, 염사(炎事)․환사(幻事)․향광사(響光事)․영사(影事) 나아가 여래께서 변화한 일도 모두 자체가 공하기 때문이다. 무상법을 출생시키려고 한다면 단(檀)바라밀을 출생시키려고 하는 것이다. 무상법을 출생시키려고 한다면 시(尸)바라밀․찬(羼)바라밀․유체(惟逮)바라밀․선(禪)바라밀을 출생시키려고 하는 것이 된다. 무상법을 출생시키려고 한다면 반야바라밀을 출생시키려고 하는 것이 된다. 왜냐하면 수보리여, 6바라밀의 일은 또한 삼계에서 나오지도 않고 살운야에 머물지도 않기 때문이다. 무슨 까닭인가? 6바라밀은 6바라밀이 공하기 때문이다. 무상법을 출생시키려고 한다면 내외공(內外空)을 출생시키려고 하는 것이다. 무상법을 출생시키려고 한다면 유공(有空)․무공(無空)을 출생시키려고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수보리여, 내외공의 일에서부터 유무공에 이르기까지는 스스로 공하며 또한 삼계에서 나오지도 않고 살운야에 머물지도 않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내외공은 공한 것이며, 나아가 유무공도 공한 것이기 때문이다. 무상법을 출생시키려고 한다면 4의지(意止)․4의단(意斷)․4신족(神足) 4여의족(如意足)을 말한다. 욕여의족(欲如意足)․염여의족(念如意足)․정진여의족(精進如意足)․사유여의족(思惟如意足)이다.
․5근(根)․7각의(覺意)․8정행(正行)을 출생시키려고 하는 것이다. 무상법을 출생시키려고 한다면 18법을 출생시키려고 하는 것이다. 무상법을 출생시키려고 한다면 나한․벽지불과 위로는 여래․등정각(等正覺)을 출생시키려고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나한․벽지불에서 부처에 이르기까지 삼계에서 나오지도 않고, 또 살운야에 머물지도 않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나한은 나한의 모습이 공한 것이며, 벽지불은 벽지불의 모습이 공하며, 부처는 부처의 모습이 공하기 때문이다. 무상법을 출생시키려고 한다면 수다원과․사다함과․아나함과․벽지불과․불과(佛果)를 출생시키려고 하는 것이 된다. 무상법을 출생시키려고 한다면 살운야를 출생시키려고 하는 것이 된다. 무상법을 출생시키려고 한다면 명상(名相)을 출생시키려고 하는 것이며, 행을 출생시키려고 하는 것이며, 법을 설하고 가르치는 일을 출생시키려고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수보리여, 이름은 공한 것이고, 나아가 시설된 가르침과 법과 행도 공한 것이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이름의 공함도 공한 것이기 때문이다. 무상법을 출생시키려고 한다면 생함이 없음과 멸함이 없음과 집착함이 없음과 끊음이 없음과 소유가 없음을 출생시키려고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수보리여, 마하연은 삼계로부터 나와서 움직임이 없는 곳인 살운야에 머무는 것이다.
수보리여, 그대는 마하연은 어느 곳에 머무느냐고 물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마하연은 머무는 곳이 없다. 왜냐하면 모든 법도 또한 머무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마하연이 머무는 것은 머묾이 없음과 같다. 비유하면 법성은 머무는 것도 아니고 또한 머물지 않는 것도 아니다. 마하연은 머무는 것도 아니고 또한 머물지 않는 것도 아니다. 생함이 없음도 또한 머무는 것도 아니고 또 머물지 않는 것도 아니다. 생하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고 집착하지도 않고 단절되지도 않는 것이다. 소유함이 없음도 또한 머무는 것도 아니고 또 머물지 않는 것도 아니다. 마하연도 또한 이와 같은 것이다. 왜냐하면 법성의 모습[法性事]도 또한 머무는 것도 아니고, 또한 머물지 않는 것도 아니다. 법성의 모습 자체가 스스로 공하며 나아가 무소유(無所有)이고, 무소유 또한 스스로 공하기 때문이다. 수보리여, 그러므로 마하연은 머묾이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모든 법은 머묾이 없이 머물러서 움직임이 없다.
수보리는 누가 마하연을 출생시키는가를 물었다. 마하연으로부터 나오는 것은 없다. 왜냐하면 수보리여, 나오는 것과 마하연이 마땅히 나오는 것은 또한 없는 것이며 볼 수도 없기 때문이다. 모든 법 또한 볼 수 없는 것인데 어느 곳으로부터 법이 나오겠는가? 왜냐하면 나를 볼 수 없으며, 나아가 수명․지견의 일도 근본에서부터 지말에 이르기까지 청정하기 때문이다. 나와 다른 사람에서부터 지견(知見)과 법성에 이르기까지도 볼 수 없으며, 이와 같음도 또한 볼 수 없는 것이다. 진제(眞際)라 하는 것도 또한 볼 수 없으며, 마침내는 청정한 것이다. 불가사의한 성품․음(陰)․쇠(衰)도 볼 수 없고 6바라밀도 또한 볼 수 없으며, 마침내는 청정한 것이다. 내외공(內外空)에서 유무공에 이르기까지도 또한 볼 수 없고 마침내는 청정한 것이다. 37품과 부처님의 18법도 또한 볼 수 없고 마침내는 청정한 것이다. 수다원에서부터 나한․벽지불에 이르고 위로는 부처에 이르기까지도 볼 수 없고, 마침내는 청정한 것이다. 수다원도에서부터 나한․벽지불도에 이르고, 위로는 아뇩다라삼야삼보에 이르기까지도 또한 볼 수 없고 마침내는 청정한 것이다. 생하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고 집착하지도 않고 단절되지도 않고 무소유도 볼 수 없고 마침내는 청정한 것이다. 과거․미래․현재도 무소유이며 마침내는 청정한 것이다. 가고 머물고, 여기에서 저기에 이르러도 또한 무소유이고 마침내는 청정한 것이다. 늘어나고 줄어듦도 또한 볼 수 없고 마침내는 청정한 것이다. 그러면 어떤 것이 생하지 않는 것이며, 볼 수 없는 것인가? 법성은 생하지 않으며 볼 수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법성은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며 또한 볼 수 없는 것도 아니고, 볼 수 없다는 그 소견도 볼 수 없는 것이다. 공․진제에서 반야바라밀에 이르기까지도 무소유이며, 볼 수 없는 것이다. 내외공(內外空)에서 유무공(有無空)에 이르기까지도 무소견(無所見)이고 볼 수 없는 것이다. 37품과 18법도 무소유이며 볼 수 없는 것이다. 수다원에서부터 부처에 이르기까지도 무소유이며 볼 수 없는 것이다. 수다원도에서부터 불도․아뇩다라삼야삼보에 이르기까지도 무소유이며 볼 수 없는 것이며, 생하는 것도 없고 볼 수 없어야 무소유에 이르는 것이며, 무소유에서 무소유도 볼 수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수보리여, 무소유는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초주지(初住地)에도 또한 볼 수 없는 것이고, 십주지(住地)에 이르러도 무소유이며, 볼 수 없는 것이며, 무소유에서도 볼 수 없는 것이며, 마침내는 청정한 것이다.
무엇을 초주지(初住地)․멸정지(滅淨地)․종성지(種性地)․제팔지(第八地)․견지(見地)․박지(薄地)․제구지(除垢地)․소작이작지(所作已作地)․벽지불지․보살지․불지라고 하는가? 내외공에서도 볼 수 없고 초지(初地)에서도 볼 수 없고, 나아가 내외공․유무공도 무소유이다. 제2주지와 제3․제4․제5 제6․제7․제8․제9, 나아가 제10에 이르기까지도 무소유이다. 내외공․유무공에서 제10주에 이르기까지도 또한 볼 수 없다. 왜냐하면 수보리여, 1주(住)에서 10주에 이르러도 또한 무소유이며 또한 볼 수 없고, 마침내 청정한 것이기 때문이다. 내외공에서 유무공에 이르기까지에서 중생을 청정하게 함도 무소유이며, 마침내는 청정한 것이다. 내외공에서 유무공에 이르기까지에서 불국토를 청정하게 함도 무소유이며, 마침내는 청정한 것이다. 내외공․유무공에 이르기까지에서 5안(眼)도 무소유이며, 마침내는 청정한 것이다.
수보리여, 이와 같이 보살마하살이 모든 법에 의지함이 없으므로 마하연으로써 살운야를 낼 수 있는 것이다.
방광반야경 제5권
서진 우전국 무라차 한역
23. 탄연품(歎衍品)
수보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마하연(摩訶衍)이라고 하는 마하연이란 모든 천․세간 사람․아수륜(阿須倫)에서 벗어납니다. 마하연과 공(空)은 평등하여 허공과 같아서 무량 무앙수의 중생들을 구호해 줄 수 있습니다. 세존이시여, 이것이 마하연입니다. 보살마하살은 오는 때도 볼 수 없고 또한 가는 때도 볼 수 없으며, 또 주처(住處)도 볼 수 없습니다. 마하연도 이와 같은 것입니다. 또한 전후도 볼 수 없고, 또 중앙도 볼 수 없습니다. 세존이시여, 이런 까닭으로 마하연이라고 이름하는 것은 함께 동등한 것이 있는 것도 아니고 쌍(雙)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이런 까닭으로 마하연이라고 이름하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그렇다, 그렇다. 수보리여, 마하연이란 6바라밀이다. 또 마하연이란 모든 다라니문․모든 삼매문․수능엄삼매, 나아가 허공제해탈무소착삼매[虛空際解脫無所著三昧]이다. 이것이 보살마하살의 마하연이다. 수보리여, 또 마하연이란 내외공 나아가 무유공이다. 이것이 마하연이다. 또 마하연이란 37품과 부처님의 18법이다. 이것이 보살마하살의 마하연이다. 수보리가 말한 것처럼 마하연은 모든 천․아수륜․세간 사람들에서 벗어난다. 수보리여, 가령 욕계 가운데 소유한 실체가 있고, 진리와 다르지 않고, 전도(顚倒)된 것이 아니고, 항상 견고하고 강함이 있고 또한 변하지 않고, 공한 법이 되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면, 마하연은 또한 모든 천․용․아수륜․세간 사람들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수보리여, 마땅히 알지니, 욕계의 겁(劫)이 타버릴 때에 모든 것이 없어져서 항상함도 없고, 강함도 없고, 또한 견고함을 쓸 필요도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마하연은 세간 사람들과 모든 천․아수륜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이다. 만약 색계에 또한 마땅히 항상함이 있고 항상 견고함이 있다면, 마하연은 또한 그 위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색계는 공하므로 항상 견고한 것도 없으며, 또한 무너져 다해 버리며, 또 오래 머물지 못한다. 그러므로 마하연은 그 위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이며, 무색계에 이르기까지도 마땅히 멸진(滅盡)하여 또한 이와 같은 것이다.
수보리여, 만약 색이 담연(湛然)하고 견고하고 항상함이 있고 전도되지 않아서 견고한 법이 있다면, 마하연은 또한 모든 천․아수륜․세간 사람들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색은 무상하고 견고함이 없으며 진리는 전도됨이 없으므로, 마하연은 그 위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이다. 통(痛:受)․상(想)․행(行)․식(識)이 모두 다 무상하며, 또한 이와 같은 것이다. 만약 안․이․비․설․신·의와 색․성․향․미․세활(細滑)․법 및 12인연이 담연하고 항상함이 있고 견고하고 굳센 진리가 있어 전도되지 않고 항상 오래 안주한다면, 마하연은 또한 다시 그 위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모든 법과 12인연은 항상함이 없고, 견고함도 없고 강함도 없고 탄탄함도 없고 굳셈도 없고, 진리가 전도되지 않음은 마치 겁이 타버리는 것처럼 안주하는 법은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마하연의 덕은 모든 천․용․귀신․세간 사람들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이다.
수보리여, 만약 법성 가운데 소유할 것이 있다면 마하연이 아니다. 법성은 무소유이므로 마하연이 된다. 가령 여여함과 진제(眞際)와 불가사의한 실체에 소유가 있다고 한다면, 또한 마하연이 아니다. 여여함과 진제와 불가사의한 실체에 소유가 없으므로 마하연이 되는 것이다.
수보리여, 만약 6바라밀에 소유가 있다고 한다면 마하연이 아니다. 6바라밀은 무소유이므로 마하연이라고 하는 것이며, 모든 천․용․아수륜․세간 사람들에게 벗어날 수 있는 것이다. 만약 내외공과 유무공에 소유함이 있다고 한다면 마하연이 아니다. 내외공과 유무공은 무소유이므로 마하연이라고 하며, 모든 천․아수륜․세간 사람들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이다. 만약 37품과 18법에 소유가 있다고 한다면 마하연이 아니다. 37품과 부처님의 18법은 무소유이므로 마하연이라고 하며, 모든 천․아수륜․세간 사람들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이다.
수보리여, 만약 8배지법(輩地法) 4향(向)4과(果)의 성자.
․수다원법․사다함법․아나함법․아라한법․벽지불법․아유삼불법(阿惟三佛法) 아비삼불타(阿毘三佛陀, Abhisambuddha)라고도 쓰며, 현등각(現等覺)이라 번역. 부처님께서 깨달은 지혜를 말한다.
․불법에 소유가 있다고 한다면 마하연이 아니다. 8배법(輩法)에서 수다원, 나아가 불법에 이르기까지 무소유이므로 마하연이라고 한다. 그리고 모든 천․아수륜․세간 사람들에게 벗어날 수 있는 것이다. 수보리여, 만약 8배법․수다원․사다함․아나함․아라한․벽지불․아유삼불․불에 소유함이 있다고 한다면 마하연이 아니다. 종성(種性) 수다원에서 위로는 부처에 이르기까지 무소유이므로 마하연이라고 하며, 모든 천․아수륜․세간 사람들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이다.
수보리여, 만약 모든 천․아수륜․세간 사람들이 소유할 것이 있다고 한다면 마하연이 아니다. 모든 천․아수륜․세간 사람들은 무소유이므로 마하연이라고 하며, 그 가운데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이다.
수보리여, 만약 어떤 보살마하살이 처음 뜻을 발한 때부터 불좌(佛坐)에 이를 때까지 그 중간에 지을 것이 있고 뜻을 발한 이래로 소유할 것이 있다면, 마하연이 아니다. 보살마하살이 처음 뜻을 발한 때부터 불좌에 이르기까지 무소유이므로 마하연이라고 한다. 그리고 모든 천․아수륜․세간 사람들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이다.
수보리여, 만약 보살마하살의 금강혜(金剛慧)에 소유할 것이 있으면 보살은 모든 번뇌[習緖]를 깨닫지 못하여 살운야를 이루지 못한다. 금강혜는 무소유이므로 보살은 모든 번뇌를 깨달아서 살운야를 이루는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천․아수륜․세간 사람들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이다.
수보리여, 만약 여래․무소착․등정각․서른두 가지의 대사상(大士相)에 소유가 있다면 여래․무소착․등정각은 모든 천․아수륜․세간 사람들에서 벗어날 수 없으며, 위덕(威德)과 신비롭게 빛나는 광명과 숭고한 일이 없다. 서른두 가지의 상은 무소유이므로 여래․무소착․등정각에게 위덕이 있고 신령한 광명이 숭고하게 벗어날 수 있으며, 모든 천․아수륜․세간 사람들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이다.
수보리여, 만약 여래․무소착․등정각의 광명에 소유할 것이 있다면, 여래의 광명은 시방의 갠지스강의 모래 수처럼 많은 국토에 두루 이르지 못할 것이다. 수보리여, 광명은 무소유이므로 능히 갠지스강의 모래 수처럼 많은 국토를 두루 비출 수 있는 것이다.
수보리여, 만약 여덟 가지 음성[八種聲] 범어의 형용사, 대명사, 본사 등의 끝바꿈에 여덟 종이 있는 것. 즉 체성(體聲)․업성(業聲)․구성(具聲)․위성(爲聲)․종성(從聲)․속성(屬聲)․어성(於聲)․호성(呼聲) 등의 여덟 품사를 말한다.
에 소유할 것이 있다면 여래의 음성은 시방의 갠지스강의 모래 수처럼 많은 무량한 국토에 두루 이르지 못할 것이며, 만약 부처님의 법륜에 소유할 것이 있다면 여래께서는 법륜을 굴리시지 못할 것이며, 모든 사문․바라문․세간 사람들과 모든 천․귀신․용과 모든 마군과 모든 범(梵)에 대해서도 능히 굴리시지 못할 것이다.
수보리여, 만약 중생이 소유할 것이 있다면 여래께서 어떻게 중생을 위해서 법륜을 굴리실 수 있으며, 중생들로 하여금 무여니원계(無餘尼洹界)에서 반니원에 들게 하실 수 있겠는가? 중생은 사물이 아니며 무소유이므로 여래께서 법륜을 굴리시는 것이며, 니원을 얻게 하시는 것이며, 미래에도 또한 마땅히 반니원을 얻게 하실 것이다.”
24. 연여공등품(衍與空等品)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그대가 말한 것처럼 마하연과 허공은 동등하다. 참으로 그러한 것이다. 실로 허공과 동등하다. 비유하면 허공은 동쪽을 알지 못하고, 또 서쪽을 알지 못하고, 또 남쪽을 알지 못하고, 또 북쪽을 알지 못하고, 또 4유(惟)․상하(上下)를 알지 못하는 것과 같다.
수보리여, 여래의 마하연에도 또한 동서남북이 있는 것이 아니며, 또한 4유․상하도 없는 것이다. 수보리여, 비유하면 허공이 길지도 않고 짧지도 않고 모나지도 않고 둥글지도 않은 것처럼, 여래의 마하연도 또한 이와 같은 것이다. 비유하면 허공이 또한 푸르지도 노랗지도 않고, 또 붉지도 희지도 않고, 또한 붉지도 파르스름하지도 않는 것처럼, 여래의 마하연도 또한 이와 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수보리여, 마하연과 허공은 동등한 것이다. 그러므로 마하연이라고 이름하는 것이다. 비유하면 허공이 과거도 아니고 미래도 아니며 또한 현재도 아닌 것처럼, 여래의 마하연도 또한 이와 같은 것이다. 마하연과 허공은 동등한 것이다. 비유하면 허공은 길지도 않고 크지도 않고 늘지도 않고 줄어들지도 않는 것처럼, 여래의 마하연도 이와 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마하연과 허공은 동등한 것이다.
수보리여, 비유하면 허공은 집착하지도 않고 또한 단절되지도 않는 것처럼 여래의 마하연도 이와 같은 것이다. 비유하면 허공은 생하지도 않고 또한 멸하지도 않고, 또한 머물지도 않고 또한 달라지는 것도 없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마하연과 허공이 동등하다고 이름하는 것이다. 비유하면 허공은 착하지도 않고 또한 착하지 않은 것도 아니며, 또한 말[言]도 아니며 또한 언어도 아닌 것처럼, 마하연도 또한 이와 같아서 말도 아니고, 또한 선악도 아니다. 그러므로 마하연과 허공은 동등한 것이다.
수보리여, 비유하면 허공이 보는 것도 없고 또한 듣는 것도 없고 또한 소유한 것도 없고 또 아는 것도 없는 것처럼, 마하연도 또한 듣는 것도 없고 또 보는 것도 없고 또한 소유한 것도 없고 또 알고 있는 것도 없다. 그러므로 마하연과 허공은 동등한 것이다. 수보리여, 비유하면 허공이 생각도 없고 깨달음도 없고, 또한 증득함을 짓지도 않고 또한 버리지도 않고 또한 염(念)하지 않는 것처럼, 마하연도 또한 이와 같은 것이다. 비유하면 허공이 음란한 법도 없고 또한 음란함이 없는 것도 아닌 것처럼, 마하연도 이와 같은 것이다. 수보리여, 비유하면 허공이 또한 욕계에 속한 것도 아니고 형계(形界)에 속한 것도 아니고 또 무형계(無形界)에 속한 것도 아닌 것처럼, 마하연도 이와 같아서 또한 삼계에 속한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마하연과 허공은 동등한 것이다. 비유하면 허공이 처음 발심한 뜻도 없고, 또한 두 번째․세 번째․네 번째․다섯 번째․여섯 번째․일곱 번째․여덟 번째․아홉 번째에 머무는 뜻도 없으며 열 번째에 머무는 뜻[十住意]도 없는 것처럼, 마하연도 또한 이와 같아서 또한 10주의 뜻이 없다. 그러므로 마하연과 허공은 동등한 것이다. 비유하면 허공이 또한 수다원도․사다함도․아나함도․아라한도가 없는 것처럼, 마하연도 이와 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마하연과 허공은 동등한 것이다.
수보리여, 비유하면 허공이 제자의 지위[弟子地]가 아니고, 또한 벽지불의 지위도 아니며 또 아유삼불의 지위도 아닌 것처럼, 마하연도 또한 이와 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마하연과 허공은 동등한 것이다. 비유하면 허공이 또한 형색(形色)도 아니고 또한 형색 아닌 것도 아니며, 또 걸림도 없고 또한 걸림이 없는 것도 아니며, 또 상응하는 것도 아니고 상응함이 없는 것도 아닌 것처럼, 마하연도 이와 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마하연과 허공은 동등한 것이다. 수보리여, 비유하면 허공이 항상함이 있는 것도 아니고 또한 무상한 것도 아니며, 또한 괴로움도 아니고 또한 즐거움도 아니며, 또 아(我)도 아니고 또한 아(我)가 아닌 것도 아닌 것처럼, 마하연도 이와 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마하연과 허공은 동등한 것이다. 비유하면 허공이 공도 아니고 또한 공 아닌 것도 아니며, 또 상(相)도 아니고 또한 상 아닌 것도 아니며, 또한 원(願)도 아니고 또한 원 아닌 것도 아닌 것처럼, 마하연도 이와 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마하연과 허공은 동등한 것이다.
수보리여, 비유하면 허공이 또한 청정함을 멸하는 것도 아니고 청정함을 멸하지 않는 것도 아니며, 또한 고요한 것도 아니고 또한 고요하지 않은 것도 아닌 것처럼, 마하연도 이와 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마하연과 허공은 동등한 것이다. 비유하면 허공이 또한 밝은 것도 아니고 또한 어두운 것도 아닌 것처럼, 마하연도 이와 같은 것이다. 수보리여, 비유하면 허공이 또한 볼 수 없는 것이고 또 볼 수 없는 것도 아닌 것처럼, 마하연도 이와 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마하연과 허공은 동등한 것이다. 비유하면 허공이 또한 행(行)하는 것도 아니고 또한 행하지 않는 것도 아닌 것처럼, 마하연도 이와 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마하연과 허공은 동등한 것이다. 이런 까닭에 수보리여, 마하연과 허공은 동등한 것이다. 수보리가 말한 것처럼 허공이 헤아릴 수 없는 아승기의 사람들을 덮고 보호하듯이 마하연도 이와 같은 것이다. 수보리여, 중생에게는 시작이 없으며 허공도 또한 시작이 없다. 허공에 시작이 없으므로 마하연도 또한 시작이 없는 것이다. 마땅히 이렇게 생각하며, 마땅히 이렇게 알아야 한다. 수보리여, 그러므로 헤아릴 수 없는 아승기의 사람들이 마하연을 숭앙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수보리여, 중생과 마하연과 허공은 모두 무소유이기 때문이다. 중생은 한량없으며, 허공도 또한 한량없으며, 마하연도 또한 한량없어 헤아릴 수 없다. 그러므로 수보리여, 한량없는 아승기의 중생들이 마하연을 바라보는 것이다. 수보리여, 허공과 마하연과 중생은 모두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수보리여, 중생이 한계가 없는 것처럼 허공도 한계가 없는 것이다. 마땅히 이렇게 알아야 한다. 마하연도 한계가 있는 것이 아니다. 중생에게 시작이 없으며 법성도 또한 시작이 없으며, 법성이 시작이 없는 것처럼 허공도 또한 시작이 없는 것이며, 허공에 시작이 없는 것처럼 마하연도 또한 시작이 없는 것이다. 마하연에 시작이 없는 것처럼 무량하고, 무한함도 또한 시작이 없는 것이다. 무한함에 시작이 없는 것처럼 헤아릴 수 없음도 또한 시작이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수보리여, 헤아릴 수 없는 중생들이 마하연을 희망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중생과 법성․허공․마하연․아승기겁․한량없음․헤아릴 수 없음은 모두 볼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수보리여, 중생에게 시작이 없는 것처럼 여래도 또한 시작이 없는 것임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부처가 시작이 없는 것처럼 허공도 또한 시작이 없으며, 허공에 시작이 없는 것처럼 마하연도 시작이 없는 것임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마하연에 시작이 없는 것처럼 아승기도 시작이 없는 것이다. 아승기가 시작이 없는 것처럼 무량하고 무한함도 또한 시작이 없는 것임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무한함에 시작이 없는 것처럼 일체 중생들도 또한 시작이 없는 것임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수보리여, 이와 같이 헤아릴 수 없는 아승기 사람들이 모두 마하연을 숭앙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중생과 부처․허공․마하연․아승기겁․무량함․무한함․일체의 모든 법은 모두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수보리여, 자아[我]라는 것의 시작도, 나아가 지견[知見]의 시작도, 진제(眞際)의 시작도 없는 것이다. 진제가 시작이 없는 것처럼 모든 법도 시작이 없음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수보리여, 무앙수 아승기의 사람들이 모두 마하연을 숭앙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중생과 모든 법은 모두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수보리여, 자아와 중생의 시작과 지견과 불가사의한 실체도 이와 같다. 불가사의하므로 5음의 시작도 모든 법의 시작도 없음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수보리여, 헤아릴 수 없는 아승기의 사람들이 마하연을 희망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자아라는 것과 모든 법은 모두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수보리여, 자아[我相]의 시작과 지견의 시작처럼 안․이․비․설․신․의도 또한 시작이 없는 것이다. 6정(情)에 시작이 없는 것처럼 모든 법도 또한 시작이 없음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이와 같으므로 수보리여,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아승기의 사람들이 모두 마하연을 숭앙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자아와 모든 법은 모두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수보리여, 자아에 시작이 없는 것처럼 지견도 또한 시작이 없다고, 이와 같이 알아야 한다. 6바라밀도 또한 시작이 없으며, 반야바라밀도 또한 시작이 없는 것처럼 모든 법도 또한 시작이 없음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수보리여, 그러므로 무앙수 아승기의 사람들이 모두 마하연을 숭앙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자아라는 것과 모든 법은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수보리여, 자아가 시작이 없으므로 내외공도 시작이 없으며 나아가 유무공에도 또한 시작이 없다. 유무공에 단서가 없는 것처럼 모든 법에도 또한 단서가 없다. 그러므로 헤아릴 수 없는 아승기의 사람들이 모두 마하연을 희망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자아와 모든 법은 모두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수보리여, 자아와 중생 나아가 지견에도 단서가 없으며, 37품과 18법에도 또한 단서가 없다. 이와 같이 18법에 단서가 없는 것이다. 수보리여, 그러므로 헤아릴 수 없는 아승기의 사람들이 마하연을 희망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자아라는 것과 모든 법은 모두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수보리여, 자아에 단서가 없으며, 종성(種姓)이 이미 분별되어 있는 것과 모든 법에도 단서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헤아릴 수 없는 중생들이 마하연을 희망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자아와 모든 법은 모두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수보리여, 수다원에 단서가 없으며, 사다함․아나함․아라한․벽지불과 위로 부처에 이르기까지와 살운야와 나아가 모든 법에 단서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일체 중생들이 마하연을 희망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자아라는 것과 모든 법은 모두 볼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비유하면 니원의 성품이 일체 중생들을 위해서 덮어 보호함을 짓는 것처럼 마하연도 일체 중생들을 위해서 덮어 보호함을 짓는 것이다.
수보리여, 말한 대로 마하연은 오는 때도 볼 수 없고, 또한 가는 때도 볼 수 없으며, 또한 머무는 곳도 볼 수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모든 법은 동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모든 법은 가지도 않고, 또한 오지도 않고, 또한 머무는 곳도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5음의 성품[五陰性]․5음의 모습[五陰相]․5음의 일[五陰事]․5음의 여여함[五陰如]은 또한 오는 것도 아니고 가는 것도 아니며, 또한 머무는 곳도 없기 때문이다. 안․이․비․설․신․의와 색․성․향․미․세활․식․법의 성품․여여함․사상(事相)은 또한 오는 것도 아니며, 또한 가는 것도 아니며, 또한 머무는 곳도 없는 것이다. 4대의 성품․여여함․사상과 식(識)의 성품․공허함․여여함․사상도 또한 오는 것도 아니며, 또한 가는 것도 아니며, 또한 머무는 곳도 없는 것이다. 여여함․진제(眞際)․불가사의한 성품도 또한 오는 것도 아니며, 또한 가는 것도 아니며, 또한 머무는 곳도 없다. 6바라밀의 성품․여여함․사상도 또한 오는 것도 아니며, 또한 가는 것도 아니며, 또한 머무는 곳도 없다. 37품과 18법의 성품․여여함․사상도 또한 오는 것도 아니며, 또한 가는 것도 아니며, 또한 머무는 곳도 없다. 도(道)와 부처의 성품․여여함․사상도 또한 오는 것도 아니며, 또한 가는 것도 아니며, 또한 머무는 곳도 없다. 유위․무위의 성품․여여함․사상도 또한 오는 것도 아니며, 또한 가는 것도 아니며, 또한 머무는 곳도 없는 것이다.
수보리여, 그대가 말한 것처럼 마하연은 또한 동서남북․4유(惟)․상하를 볼 수 없어서 삼세와 동등하다고 이름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마하연이라고 한다. 수보리여, 그대가 말한 것처럼 진실한 진제는 다름이 없다. 왜냐하면 과거세는 과거세에 있어서 공하고, 미래세는 미래세에 있어서 공하고, 현재세는 현재세에 있어서 공하고, 삼세가 동등함은 동등함에 있어서 공하고, 마하연은 마하연에 있어서 스스로 공하고, 보살은 보살에 있어서 스스로 공하기 때문이다.
수보리여, 공이란 숫자도 아니고, 또한 많은 것도 아니며, 또 적은 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보살마하살의 마하연은 삼세와 동등한 것이다. 우(偶)도 없으며, 쌍(雙)도 없으며, 음욕․성냄․어리석음도 없으며, 또한 음욕․성냄․어리석음을 여읜 것도 아니고, 또한 성냄[恚]도 없으며, 또한 볼 수 없는 것이다. 선악도 볼 수 없으며 유상(有常)․무상과 자아라고 하는 것도 또한 볼 수 없으며, 고(苦)․낙(樂)․아(我)․비아(非我)도 또한 볼 수 없는 것이다. 삼계도 볼 수 없으며 삼계를 벗어나는 것도 볼 수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형사(形事)는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과거색은 과거색에 있어서 스스로 공하고, 미래색은 미래색에 있어서 스스로 공하고, 현재색은 현재색에 있어서 스스로 공하다. 통․상․행․식도 그러한 것이다. 과거색은 공하여 볼 수 없으며, 과거의 공도 공하여 볼 수 없으며, 현재의 5음색(陰色)도 공하여 볼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하물며 미래와 과거의 5음이 공함을 볼 수 있겠는가? 공은 또한 5음을 보지 못하고, 5음도 또한 공을 보지 못한다. 가령 공(空)이 능히 5음을 본다면 5음도 또한 마땅히 공을 볼 수 있는 것이다.
수보리여, 과거의 6바라밀도 볼 수 없고, 미래의 6바라밀도 또한 볼 수 없고, 현재의 6바라밀도 또한 볼 수 없다. 삼세가 동등한 가운데서 6바라밀을 또한 볼 수 없고, 동등한 것도 또한 볼 수 없다. 삼세가 동등하여도 동등함을 볼 수 없고, 동등함은 동등함을 볼 수 없기 때문에 삼세를 볼 수 없는 것이다.
과거․미래․현재의 37품․18법도 볼 수 없는 것이며, 삼세가 동등함도 또한 볼 수 없는 것이다.
수보리여, 동등함도 또한 볼 수 없는 것이며, 37품과 18법이 과거․미래․현재에 동등함도 또한 삼세에서 볼 수 없는 것이다. 삼세 가운데서 또한 37품과 18법을 볼 수 없는데, 하물며 삼세가 동등한 것을 가히 볼 수 있겠는가? 또한 수보리여, 과거의 범인(凡人)과 미래의 범인과 현재의 범인도 또한 볼 수 없으며, 삼세가 동등한 가운데서도 범인을 또한 볼 수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중생은 본래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과거․미래․현재의 제자(弟子:성문)․연각․보살․여래도 또한 볼 수 없으니, 삼세가 동등한 가운데서도 제자․연각․보살․여래․중생은 본래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수보리여,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에 머물러 마땅히 삼세의 일을 알며 마땅히 살운야를 구족해야 한다. 이것을 보살마하살이 삼세가 동등한 가운데서 마하연을 배우는 것이라고 한다. 보살마하살이 이미 그 가운데 머물면 곧 모든 천․아수륜․세간의 사람들에서 벗어날 수 있으며, 살운야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이다.”
수보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훌륭하십니다, 훌륭하십니다. 세존이시여, 보살마하살은 마하연 가운데서 배워서 살운야혜를 구족하는 데 이를 것입니다. 과거 시방의 모든 보살들은 모두 이 마하연으로부터 살운야혜를 얻어 성취했으며, 미래 시방의 모든 보살들도 또한 마땅히 이 마하연 가운데서 배워서 살운야를 이룰 것이며, 지금 현재 시방의 무수하고 헤아릴 수 없는 모든 보살마하살들도 또한 모두 이 마하연으로부터 살운야를 이루고 구족하니, 이런 까닭에 보살마하살의 마하연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그러하다, 그러하다. 수보리여, 과거․미래․현재의 모든 부처님들도 모두 마땅이 이 마하연 가운데서 배워서 살운야를 이루었다. 이미 이룬 자와 아직 체달하지 못한 자와 곧 당장 이루는 자도 모두 마땅히 미하연 가운데서 배워서 살운야혜를 구족할 것이다.”
25. 합취품(合聚品)
이때 빈누문타니자(邠耨文陀尼子)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수보리로 하여금 반야바라밀을 설하게 하시고, 왜 마하연의 가르침을 설하십니까?”
수보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제가 설한 마하연의 가르침이 장차 반야바라밀을 여읨이 없었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아니다. 수보리여, 그대가 설한 마하연의 가르침은 반야바라밀의 가르침을 수순하였고 어긋나지 않았고 잃지 않았다. 왜냐하면 수보리여, 모든 존재하는 일체의 선법(善法)과 나아가 모든 성문․벽지불의 법과 위로 불법에 이르기까지가 모두 반야바라밀 가운데에 합취하기 때문이다.”
수보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무엇이 선법과 성문․벽지불의 법과 보살법과 불법이 모두 반야바라밀 가운데 합해 있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이른바 6바라밀․4의지(意止)․4의단․4신족․5근․5력․7각의․현성팔품도․3탈문(脫門)․4무애혜․대자대비․10종력․4무소외․18불공․무소망법(無所望法)을 항상 동등하게 행하는 것이다. 수보리여, 이것을 선법이라고 한다. 37품․성문법․벽지불법․보살법․불법이 반야바라밀 가운데 합취되는 것이다.
수보리여, 이른바 마하연․6바라밀․5음․12쇠․18성․37품 나아가 부처님의 18법․3탈문․선법(善法)․누법(漏法)․유위법․무위법․고습진도법(苦習盡道法)과 욕계․형계․무형계와 내공․외공․소유공․무소유공과 모든 삼매문․다린니문․부처님의 18법과 이와 같이 여래가 설한 법․가르친 율법의 성품과 나아가 여여함․진제․불가사의한 성품과 니원과 일체의 모든 법은 또한 합하는 것도 아니고 흩어지는 것도 아니며, 또한 형상도 없으며, 또한 볼 수 없는 것이다. 또한 상대[對]가 없는 한 가지 모양[一相]이며, 한 가지 모양이란 이른바 모양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수보리여, 그대가 설한 마하연의 가르침과 반야바라밀은 그 뜻이 수순하여 서로 어긋남이 없다. 왜냐하면 마하연과 반야바라밀은 차이도 없으며, 다름도 없기 때문이다. 마하연과 37품 나아가 18법도 또한 다르지 않다. 마하연이 바로 불법이며, 불법이 바로 마하연이다. 이것은 하나이며, 둘이 있는 것이 아니며, 또한 서로 위배되지 않는다. 수보리여, 이런 이유로 마하연의 가르침을 설하는 것은 곧 반야바라밀을 설하는 것이다.”
26. 불가득삼제품(不可得三際品)
이에 수보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보살마하살은 단서(端緖)가 없으며 변제(邊際)가 없으며 또한 바닥[底]도 없습니다. 색․통․상․행․식도 또한 단서가 없으며 변제도 없습니다. 보살은 이와 같음을 마땅히 알아야 합니다. 색을 보살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아닙니다. 통․상․행․식을 보살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아닙니다.”
수보리가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저는 도무지 보살이 있음을 보지 못하였습니다. 그런데 마땅히 누구를 위하여 반야바라밀을 설하며, 누구를 가르치겠습니까?”
수보리가 말하였다.
“이른바 보살이란 단지 보살이라고 하는 글자일 뿐입니다. 세존이시여, 비유하면 스스로 나라고 말하지만 유무의 법이 생겨나지 않는 것처럼 어떠한 색․통․상․행․식도 생겨나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생겨나지 않는다면 색(色)이 아니며, 또한 통․상․행․식도 아닙니다. 하물며 생겨나는 바가 없다면 마땅히 누구를 위해서 반야바라밀을 설할 것이며, 또한 생하는 곳을 떠나서 보살이 도를 행하는 것을 볼 수 없습니다. 이와 같은 설을 행하면 보살은 이를 듣고도 두려워하지도 않고 무서워하지도 않고 후회하지도 않고 물리치지도 않습니다. 이것을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사리불이 수보리에게 물었다.
“만약 보살이 전후의 변제․중앙제(中央際)를 얻을 수 없다면 무슨 이유로 색(色)과 보살이 모두 끝[邊]이 없는 것입니까? 무슨 이유로 색․통․상․행․식은 보살이 되지 못하는 것입니까? 무슨 이유로 도무지 보살을 볼 수 없다고 말하며, 그런데 마땅히 누구를 위해서 반야바라밀을 설하는 것입니까? 무슨 이유로 보살은 단지 글자만 있다고 말합니까? 무슨 이유로 자아라고 말하지만 유무의 법은 생겨나지 않으며, 5음은 어떻게 생겨나는 것입니까? 무슨 이유로 생겨나지 않으면 5음이 아니라고 말합니까? 무슨 이유로 생겨남이 없다고 하면서 누구에게 마땅히 반야바라밀을 가르치고 설하는 것입니까? 무슨 이유로 생함을 여의고서 보살도를 행함을 볼 수 없다고 말합니까? 무슨 이유로 보살은 이것을 듣고도 두려워하지 않고 무서워하지 않고 반야바라밀을 행한다고 말하는 것입니까?”
수보리가 사리불에게 말하였다.
“중생은 처음과 끝의 단서를 얻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보살은 전후․중앙제를 볼 수 없습니다. 사리불이여, 중생이 공하기 때문에 보살의 단서도 또한 볼 수 없는 것입니다. 중생은 적정하기 때문에 보살의 단서도 볼 수 없는 것입니다. 5음은 변제가 없으며, 5음은 공하며, 5음은 적정하며, 5음은 진실되지 않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보살이란 단서도 볼 수 없는 것입니다. 6바라밀은 바닥이 없으며 변제가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리불이여, 공과 5음과 보살은 동등하여 다름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 세 가지는 하나이며 둘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사리불이여, 보살이란 단서도 볼 수 없는 것입니다. 6바라밀은 공하고 적정하며 진실되지 않으므로 보살이란 단서도 볼 수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리불이여, 공하여 본제(本際)도 볼 수 없는 것이고, 말제(末際)도 또한 볼 수 없는 것이고, 중제(中際)도 또한 볼 수 없는 것이고, 공과 보살은 모두 또한 볼 수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리불이여, 공과 보살이란 단서도 하나이며 둘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보살이란 단서도 볼 수 없는 것입니다. 내공․외공과 유무공(有無空)의 변제(邊際)도 볼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보살이란 단서도 볼 수 없는 것입니다.
또한 사리불이여, 37품과 부처님의 18법은 모두 단서가 없는 것이며, 불법은 공하고 불법은 적정하며 불법은 진실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보살이란 단서는 볼 수 없는 것입니다. 6바라밀에서 부처님의 18법에 이르기까지 모두 단서가 없고 모두 공하고 모두 적정하고 모두 진실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보살이란 단서도 얻을 수 없으며, 볼 수 없는 것입니다.
또한 사리불이여, 모든 삼매문과 다린니문은 모두 단서가 없으며 모두 공하고, 모두 적정하고 모두 진실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보살이란 단서도 볼 수 없는 것입니다.
또한 사리불이여, 법성과 여여함․진제․불가사의한 성품은 모두 단서가 없는 것이며 공하고 적정하며 진실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보살이란 단서도 볼 수 없는 것입니다. 또한 사리불이여, 성문․벽지불․여래가 모두 단서가 없는 것이며 모두 공하며 모두 적정하며 모두 진실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보살이란 단서도 볼 수 없는 것입니다. 도(道)․살운야가 모두 단서가 없는 것이며 모두 공하며 모두 적정하며 모두 진실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보살이란 단서도 볼 수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리불이여, 공․처음과 끝․단서․중변(中邊)은 모두 볼 수 없는 것이므로 보살도 또한 볼 수 없는 것입니다.
사리불이여, 공․5음․보살이라는 이 세 가지는 모두 하나이며, 두 가지 법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보살이란 단서는 볼 수 없는 것입니다. 사리불이 질문한 것처럼 5음은 바닥[底]이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보살도 바닥이 없는 것임을 마땅히 알아야 합니다.”
수보리가 말하였다.
“5음은 허공과 같은 것입니다. 허공은 또한 변(邊)도 없으며, 또한 제(際)도 없으며, 또한 헤아릴 수 없으며, 또한 바닥이 없는 것입니다. 단지 명자(名字)로써 허공이라고 한 것입니다. 사리불이여, 색은 공하여 변제가 없으며 통․상․행․식도 식이 공하여 변제가 없으며 또한 볼 수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리불이여, 허공의 바닥과 5음의 바닥과 보살의 바닥을 또한 볼 수 없는 것입니다. 12쇠(衰)․12인연․37품․부처님의 18법 이 모든 법의 단서와 보살이란 단서는 모두 볼 수 없는데 모두 변제가 없기 때문입니다.”
수보리가 말하였다.
“사리불이 5음이 보살인가라고 물었는데, 이것도 볼 수 없는 것이며, 또한 변(邊)도 없으며, 또한 제(際)도 없으며, 또한 헤아릴 수도 없으며, 또한 바닥도 없는 것입니다. 다만 명자로써 허공이라고 했을 뿐입니다. 사리불이여, 색은 공하여 변제가 없으며 통․상․행․식의 식도 공하여 변제가 없으며 또한 볼 수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리불이여, 허공의 바닥과 5음의 바닥과 보살의 바닥도 또한 볼 수 없는 것입니다. 12쇠․12인연․37품․부처님의 18법, 이 모든 법의 단서와 보살이란 단서는 모두 볼 수 없으니, 모두 변제가 없기 때문입니다.”
수보리가 말하였다.
“사리불이 5음이 보살인가라고 물었는데, 이것도 또한 볼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5음과 보살은 모두 다 볼 수 없는 것입니다.
사리불이여, 6바라밀은 6바라밀 스스로 공하며, 내외공은 내외공 스스로 공하며, 나아가 유무공은 유무공 스스로 공합니다. 37품은 37품 스스로 공하고 나아가 부처님의 18법은 18법 스스로 공합니다. 여여함과 진제․부사의한 성품과 다린니문․삼매문과 살운야․도(道)의 일과 성문․연각․부처․부처님의 뜻도 각각 스스로 공합니다.
사리불이여, 여래와 5음은 공하여 또한 있는 것도 아니고, 볼 수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리불이여, 이런 이유로 보살과 5음은 볼 수 없는 것입니다. 사리불은 무슨 이유로 보살은 볼 수도 없고 얻을 수도 없는데, 마땅히 어떻게 누구를 위하여 반야바라밀을 설할 것인가라고 물었습니다.”
수보리가 사리불에게 말하였다.
“색은 색을 볼 수 없고, 색은 또한 통(通)을 볼 수 없고, 통은 또한 색을 볼 수 없습니다. 통은 또한 행을 볼 수 없고 행은 또한 통을 볼 수 없고, 통은 또한 상(想)을 볼 수 없고, 상은 또한 통을 볼 수 없습니다. 상은 또한 식(識)을 볼 수 없고, 식은 또한 상을 볼 수 없습니다. 색․통․상․행․식도 또한 이와 같은 것입니다. 눈[眼]은 눈 가운데서 또한 있지 않으며, 또한 볼 수도 없는 것입니다. 나아가 뜻은 뜻 가운데 또한 있지 않으며, 또한 볼 수도 없는 것입니다. 안식(眼識)과 의식도 또한 있지 않으며 또한 볼 수 없는 것입니다. 안재(眼栽)는 뜻에 이르고, 의재(意栽)는 인연법에 이르지만 또한 있는 것도 아니며, 또한 볼 수도 없는 것입니다. 나아가 6바라밀도 또한 있지 않으며, 또한 볼 수 없는 것입니다. 내공․외공에서 소유공․무소유공․37품과 부처님의 18법에 이르기까지 또한 있지 않으며, 또한 볼 수 없는 것입니다. 모든 삼매문과 다린니문도 또한 있지 않고, 또한 볼 수도 없는 것입니다. 수다원법에서부터 나한법에 이르기까지도 또한 있지 않으며, 또한 볼 수 없는 것입니다. 10주(住)도 또한 있지 않고, 또 볼 수도 없는 것입니다. 도법(道法)과 살운야법도 또한 있지 않으며, 또한 볼 수도 없는 것입니다. 수다원에서 나한․벽지불 나아가 부처에 이르기까지도 있지 않으며, 볼 수도 없는 것입니다. 나아가 교법(敎法)도 또한 있지 않으며, 또한 볼 수도 없는 것입니다. 사리불이여, 모든 법은 무소유이므로 볼 수 없는 것이며, 보살도 볼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런 이유로 가르칠 바가 없는 것입니다.”
수보리가 사리불에게 말하였다.
“질문한 것처럼 무슨 이유로 단지 문자로써 보살이라고 합니까? 문자법은 단지 명자(名字)이며, 보살은 거짓된 이름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다만 문자가 보살일 뿐입니다. 색․통․상․행․식도 또한 거짓된 이름으로 문자일 뿐입니다. 모든 명자가 있는 것에도 또한 색․통․상․행․식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공하여 진실한 이름이 없기 때문입니다. 만약 공하다면 이는 보살이 아닙니다. 이런 이유로 단지 문자로써 보살이라고 말했을 뿐입니다.
또한 사리불이여, 6바라밀은 다만 글자일 뿐이며, 6바라밀은 또한 글자가 아니며, 문자도 또한 6바라밀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문자와 보살과 모든 바라밀은 모두 동등하여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보살이라고 하는 것은 다만 거짓된 이름으로써 문자일 뿐입니다. 사리불이여, 내외공과 유무공도 또한 다만 문자에 집착했을 뿐입니다. 문자가 또한 공이 아니며, 공도 문자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자공(字空)․내외공 나아가 유무공에 이르기까지 모두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사리불이여, 이런 이유로 단지 문자로써 보살이라고 한 것일 뿐입니다. 사리불이여, 37품과 18법도 또한 거짓된 이름이며, 문자일 뿐입니다. 모든 삼매문과 다린니문도 또한 이와 같고 나아가 살운야에 이르기까지 널리 모두 이와 같은 것입니다. 사리불이 질문한 것처럼 무슨 이유로 나라고 이름하지만 본래 생한 바가 없다고 합니까? 본래부터 나[我]에 이르기까지 또한 마땅히 생하는 바를 볼 수 없는 것입니다. 생이 있고 명[命]이 있음에서부터 지견(知見)에 이르기까지 항상 그 생하는 바를 볼 수 없는 것입니다. 이름이 있는 것에서부터 5음에 이르기까지 볼 수 없는데 마땅히 생하는 것을 알 수 있겠습니까? 6정(情)에서 12인연기(因緣起)에 이르기까지 또한 볼 수 없는데, 하물며 생함이 있겠습니까? 6바라밀도 또한 볼 수 없는데 하물며 생함이 있겠습니까? 내외공에서 유무공에 이르기까지 항상 볼 수 없는데 하물며 생함이 있겠습니까? 이름이 있는 이래로 37품과 18법에 이르기까지도 또한 볼 수 없는데 마땅히 어디로부터 생하겠습니까? 이름이 있는 이래로 모든 삼매문과 다린니문도 또한 볼 수 없는데, 마땅히 어디로부터 생하겠습니까? 이름이 있는 이래로 성문․벽지불과 나아가 부처에 이르기까지도 또한 볼 수 없는데, 마땅히 어디로부터 생하겠습니까?
사리불이여, 이런 이유로 나라고 이름하지만 모든 법은 다 생겨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또한 사리불이여, 질문한 것처럼 모든 법의 유무의 일에는 작자(作者)가 없는 것입니다.”
사리불이 수보리에게 물었다.
“무엇을 소유한 것에 작자가 없다고 합니까?”
수보리가 말하였다.
“5음의 소유에는 작자가 없으며, 6정(情)․내외(內外) 나아가 12연기의 소유에도 또한 작자가 없으며, 6바라밀의 소유에도 또한 작자가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인연으로 사리불이여, 모든 법은 또한 있는 것도 아니며, 또한 없는 것도 아닙니다. 또한 사리불이여, 일체 모든 법은 모두 다 무상한 것이며, 능히 무너뜨리지도 못하는 것입니다.”
사리불이 수보리에게 물었다.
“어떤 것이 모든 법에는 항상함도 없고, 무너짐도 없는 것입니까?”
대답하였다.
“5음에는 항상함이 없고, 무너짐도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무상하고 무소유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법에는 항상함이 없고 무너짐도 없는 것입니다. 나아가 유위법․무위법․유루법․무루법․이기법(已記法)․미기법(未記法)에는 항상함이 없으며, 무너짐도 없는 것입니다. 사리불이여, 무상하고 무소유이므로 다 없어지는 것입니다. 이런 이유로 모든 법은 항상함이 없고 무너짐도 없는 것입니다. 사리불이여, 모든 법은 또한 모이지도 않고 흩어지지도 않는 것입니다.”
사리불이 말하였다.
“무엇이 모이지 않는 것이며, 무엇이 흩어지지 않는 것입니까?”
수보리가 말하였다.
“5음은 모이지도 않고 흩어지지도 않습니다. 왜냐하면 성품이 스스로 그러하기 때문이다. 나아가 선법․악법․유위법․무위법․유루법(有漏法)․무루법도 또한 모이지도 않고, 또한 흩어지지도 않습니다. 왜냐하면 성품이 스스로 그러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이유로 모든 법은 또한 있는 것도 아니고, 또한 없는 것도 아닙니다. 사리불이 5음은 생하는 바가 없는 것인가라고 질문하였습니다. 5음․6쇠는 작자가 없으며, 작자가 있음을 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모든 법은 모두 작자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생하는 바가 없는 것입니다. 사리불이 생하는 바가 없으면 5음이 아닌가라고 질문하였습니다. 이는 5음의 성품이 스스로 공하기 때문에 또한 생하지도 않고 또한 멸하지도 않고 또한 머물지도 않는 것입니다. 나아가 유위성(有爲性)의 성품이 공하기 때문입니다. 성품이 스스로 공하여 또한 일어나지도 않고 또한 멸하지도 않으며 또한 머물지도 않습니다. 이런 이유로 생하는 바가 없으면 5음이 아닌 것입니다.
사리불은 생하는 바가 없는데 누구를 위해서 반야바라밀을 설할 것인가라고 질문하였습니다. 만약 생하는 바가 없다면 반야바라밀이 아니며, 반야바라밀은 또한 생하는 바가 없는 것도 아닙니다. 생하는 바가 없음과 반야바라밀은 하나의 법이며, 둘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마땅히 누구를 위해서 반야바라밀을 설할 것인가를 말한 것입니다.
사리불은 또한 5음이 생하는 것을 여의지 않고, 보살도를 행하는 것인가라고 질문하였습니다. 생하는 바가 없음은 바로 반야바라밀이며, 반야바라밀은 바로 생하는 바가 없음입니다. 생하는 바가 없음이 바로 5음이며, 5음이 바로 생하는 바가 없음입니다. 이 법은 다르지 않으며 또한 둘이 아닙니다. 사리불이여, 그러므로 또한 생함을 여의지 않고 보살도를 행하는 것입니다.
사리불은 무엇이 이것을 듣고도 두려워하지도 않고 무서워하지도 않고 반야바라밀을 행하는 것인가라고 질문하였습니다. 보살마하살은 모든 법이 공하여 꿈과 같고 환영과 같고 아지랑이와 같고 메아리와 같고 그림자와 같고 변화와 같음을 봅니다. 그러므로 보살은 이 가르침을 듣고 두려워하지도 않고 무서워하지도 않는 것입니다.”
수보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보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 이와 같이 관해야 합니다. 이때 색(色)을 보지도 않고, 색에 들어가지도 않고, 색을 생하지도 않고, 색에 머물지도 않고, 이것을 색이라고 말하지도 않습니다. 통․상․행․식은 또한 식(識)을 보지 않고, 식에 들어가지도 않고, 또한 식을 생하지도 않고, 또한 식에 머물지도 않고, 또한 이것을 식이라고 말하지도 않습니다. 안․이․비․설․신․의를 또한 보지도 않고, 또한 들어가지도 않고, 또한 생하지도 않고, 또한 머물지도 않고, 또한 이것을 나의 것이라고 말하지도 않습니다. 6바라밀을 보지 않고, 또한 들어가지도 않고, 또한 생하지도 않고, 또한 머물지도 않고, 또한 이것을 나의 것이라고 말하지도 않습니다. 내외공과 유무공을 또한 보지도 않고, 또한 들어가지도 않고, 또한 생하지도 않고, 또한 머물지도 않고, 또한 이것을 나의 것이라고 말하지도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보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 37품과 부처님의 18법을 보지도 않고, 또한 들어가지도 않고, 또한 생하지도 않고, 머물지도 않고, 또한 이것을 나의 것이라고 말하지도 않습니다. 모든 삼매문과 다린니문을 보지도 않고, 또한 들어가지도 않고, 또한 생하지도 않고, 또한 머물지도 않고, 또한 이것을 나의 것이라고 말하지도 않습니다. 왜냐하면 보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 색을 보지 않고 나아가 살운야도 보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색(色)은 생하는 것이 아니어서 색이 아니고, 또한 통․상․행․식은 생하는 것이 아니어서 식이 아닙니다. 6쇠(衰)는 생하는 것이 아니어서 6쇠가 아니고, 6바라밀은 생하는 것이 아니어서 6바라밀이 아닙니다. 6바라밀과 생하는 바가 없음은 한 법이며, 둘이 없는 것입니다. 내외공은 생하는 것이 아니어서 공이 아니고, 유무공은 생하는 것이 아니어서 공이 아닙니다. 유무공과 생하는 바가 없음은 한 법일 뿐이며 둘이 없는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37품은 생하는 것이 아니어서 37품이 아니며, 부처님의 18법도 생하는 것이 아니어서 18법이 아닙니다. 생하는 바가 없음과 부처님의 18법은 한 법이며 둘이 없는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생하는 바가 없음은 한 법일 뿐이며, 또한 둘도 아니고, 또한 셋도 아니고, 또한 넷도 아니고, 또한 다섯도 아니고, 또 약간(若干)의 수도 아닌 것입니다. 그러므로 불법과 생하는 바가 없는 법은 한 법[一法]이며, 둘이 없는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여여함과 부사의한 성품은 생하는 것이 아니어서 여여함도 아니고, 부사의한 성품도 아닙니다. 도(道)는 생하는 것이 아니어서 도가 아니며, 살운야는 생하는 것이 아니어서 살운야가 아닙니다. 생하는 바가 없음과 살운야는 한 법이며 둘이 없는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생하는 바가 없음도 또한 하나가 아니며, 약간의 수가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므로 생하는 것이 아닙니다. 살운야라고 하면 살운야가 아니며, 색을 멸했다고 하면 색이 아닙니다. 멸함과 색은 한 법이며, 둘이 없는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멸함은 하나이며 둘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색을 멸했다고 하는 것은 색이 아니고, 통․상․행․식을 멸했다고 하는 것도 식이 아닙니다. 이런 이유에서 식을 생하게 했다고 하면 식이 아니며, 내공․외공 나아가 유무공과 37품․부처님의 18법에 이르기까지도 또한 이와 같은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약간만 멸하는 것이 아닙니다. 식(識)에서부터 살운야에 이르기까지도 이와 같은 것입니다. 이것이 반야바라밀을 행하는 것입니다.”
27. 문관품(問觀品)
사리불이 수보리에게 물었다.
“보살마하살은 어떻게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 모든 법을 관하는 것입니까? 무엇이 보살이고, 무엇이 반야바라밀이며, 무엇이 관(觀)하는 것입니까?”
존자 수보리가 사리불에게 말하였다.
“질문한 것처럼 무엇이 보살이냐고 했는데 보살은 도사(道士)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보살이라고 이름하는 것입니다. 도(道)로써 모든 법의 일을 알며 들어갈 바가 없는 것입니다.”
“무엇이 모든 법의 일들을 아는 것입니까?”
“색의 일[色事]을 알지만 색에 들어가지 않고, 통․상․행․식의 일들을 알지만 식(識)에 들어가지 않고, 부처님의 18법의 일을 알지만 18법에 들어가지 않는 것입니다.”
사리불이 물었다.
“어떤 것을 모든 법의 일이라고 합니까?”
수보리가 말하였다.
“이름할 수 있는 모든 법의 모양으로 색․성․향․미․세활․법과 내법․외법․유위․무위법의 모양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름할 수 있는 것이 모든 법의 일입니다. 사리불은 어떤 것을 반야바라밀이라고 하는가라고 물었는데, 반야바라밀은 멀리 여의는 것을 이름합니다.”
“무슨 이유에서 멀리 여읜다고 이름합니까?”
수보리가 말하였다.
“5음을 멀리 여의며, 18법을 멀리 여의며, 6쇠를 멀리 여의며, 단바라밀에서부터 선바라밀에 이르기까지를 멀리 여의고, 내외공에서부터 유무공에 이르기까지를 멀리 여의고, 37품에서부터 18법에 이르기까지를 멀리 여읩니다. 이것을 멀리 여읜다고 이름합니다. 살운야를 멀리 여의고 살운야의 일도 멀리 여읩니다. 존자 사리불이여, 이런 까닭에 반야바라밀을 멀리 여읜다고 이름하는 것입니다. 사리불은 무엇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 관하는 것인가라고 물었습니다. 보살은 또한 5음이 항상함이 있다거나 항상함이 없다고 관하지 않으며, 또한 5음은 고락이라고 관하지도 않으며, 또한 5음에 아(我)가 있다거나 아가 아니라고 관하지도 않습니다. 또한 공(空)도 아니고 또 공이 아님도 아니며, 또한 상(相)도 아니고 상이 아님도 아니며, 또한 원(願)함도 아니고 또한 원함이 아닌 것도 아니며, 또한 멸(滅)하는 것도 아니고 또 멸하지 않는 것도 아니며, 또한 고요한 것도 아니고 고요하지 않은 것도 아니고, 자음[作]도 아니라고 관해야 합니다. 6바라밀에 이르기까지, 내외공에서부터 유무공에 이르기까지, 부처님의 18법에 이르기까지도 또한 이와 같은 것입니다. 모든 삼매문과 다린니문에서부터 살운야에 이르기까지, 나아가 멸함에서부터 멸하지 않음에 이르기까지도 또한 항상함이 있다거나 항상함이 없다고 관하지 않아야 합니다. 사리불이여, 반야바라밀을 행하는 보살은 마땅히 이와 같이 관해야 합니다.”
사리불이 존자 수보리에게 물었다.
“무슨 이유로 현자(賢者)는 5음은 생한 바가 없으므로 5음이 아니고, 나아가 살운야도 생한 바가 없으므로 살운야가 아니라고 말하는 것입니까?”
수보리가 대답하였다.
“5음은 공하며, 공은 5음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5음은 생한 바가 없어서 5음이 아니라고 하는 것입니다. 6바라밀은 공하며, 공은 또한 6바라밀이 아니며, 또한 생한 것도 아닙니다. 그러므로 6바라밀은 생한 바가 없으므로 6바라밀이 아니라고 합니다. 내외공에서부터 유무공에 이르기까지도 또한 이와 같은 것이고, 37품에서부터 부처님의 18법에 이르기까지도 또한 이와 같은 것이고, 살운야도 또한 그러합니다. 그러므로 5음은 생하는 바가 없어서 5음이 아니며, 5음은 또한 생하는 것도 아닙니다. 나아가 살운야도 또한 생한 바가 없는 것입니다.”
사리불이 수보리에게 물었다.
“무슨 이유로 5음은 둘이 아니므로 5음이 아니고, 나아가 살운야도 둘이 아니므로 살운야가 아니라고 말하는 것입니까?”
수보리가 대답하였다.
“5음은 둘이 아니고, 또한 합하지도 않고, 또한 흩어지지도 않고, 또한 형상이 없어서 하나의 상(相)도 볼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의 상이란 상이 없는 것입니다. 살운야도 또한 이와 같습니다. 이런 까닭에 5음은 둘이 아니므로 5음이 아니며, 살운야도 둘이 아니므로 살운야가 아닌 것입니다.”
사리불이 물었다.
“무슨 이유로 5음에는 둘이 없는데 수(數)를 짓는 것이며, 나아가 살운야도 둘이 없는데 수를 짓는 것입니까?”
수보리가 말하였다.
“생하는 바가 없음과 5음은 둘이 없어서 5음은 바로 생하는 바가 없음이고, 생하는 바가 없음은 바로 5음입니다. 그러므로 5음은 둘이 없지만 수를 짓는 것일 뿐입니다. 나아가 살운야도 또한 둘이 없지만 수를 짓는 것일 뿐입니다.”
수보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보살이 반야바라밀을 배워서 이 법을 관할 때 5음이 생하지 않음을 보니 항상 청정하기 때문이며, 자아가 생하지 않음을 보니 항상 청정하기 때문이며, 단바라밀에서 반야바라밀에 이르기까지도 또한 생하지 않음을 보니 항상 청정하기 때문입니다. 내외공에서부터 유무공에 이르기까지도 또한 생하지 않음을 보니 항상 청정하기 때문이며, 37품과 부처님의 18법이 또한 생하지 않음을 보니 항상 청정하기 때문입니다. 살운야가 생하지 않음을 보니 항상 청정하기 때문이며, 범인(凡人)과 범인의 법도 또한 생하지 않음을 보니 항상 청정하기 때문입니다. 수다원과 수다원의 법, 사다함과 사다함의 법, 아나함과 아나함의 법, 아라한과 아라한의 법, 벽지불과 벽지불의 법, 보살과 보살의 법, 부처님과 부처님의 법이 모두 생하지 않음을 보니 항상 청정하기 때문입니다.”
사리불이 물었다.
“제가 수보리로부터 들은 바로는 5음은 생하는 바가 없고, 나아가 도(道)도 또한 생하는 바가 없고, 불법도 또한 생하는 바가 없고, 또한 얻은 바도 없습니다. 수다원에서부터 아라한․벽지불에 이르기까지도 또한 얻은 것이 없습니다. 보살도 또한 얻은 바가 없으며, 살운야도 또한 얻은 바가 없으며, 보살마하살도 얻은 바가 없는 것입니다. 살운야는 5취(趣:5道)를 무너뜨리며, 보살은 5취 가운데서 도를 얻는 것이 아닙니다.”
사리불이 말하였다.
“만약 모든 법이 생한 바가 없다고 한다면, 무슨 이유로 수다원은 3응(應)을 멸하여 도를 이루려고 생각하며, 사다함은 3구(垢)를 엷게 하여 도를 이루려고 생각하며, 아나함은 5응(應)을 멸하여 도를 이루려고 생각하며, 아라한은 위의 5소득(所得)을 멸하려고 하며, 벽지불은 이러한 인연을 알아서 도를 이루려고 생각하는 것입니까?
무슨 이유로 보살은 부지런히 고행을 하며 중생의 여러 가지 고통을 대신 받는 것입니까? 무슨 이유로 여래․무소착은 등정각을 얻어 법륜을 굴리는 것입니까?”
수보리가 말하였다.
“사리불이여, 나는 또한 무소생법(無所生法)으로 하여금 얻은 바가 있게 하지 않고, 나는 무소생으로 하여금 수다원도와 사다함․아나함․아라한․벽지불도를 얻게 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또한 보살로 하여금 힘든 고행을 하지 않게 하고, 보살행도 또한 근고(勤苦)라는 상(想)이 없습니다. 사리불이여, 보살은 또한 괴로움이라는 생각[苦想]을 알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사리불이여, 괴로움이라는 생각으로는 능히 헤아릴 수 없는 아승기의 중생들을 위해서 근본을 지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보살은 중생을 아버지같이 생각하고 어머니같이 생각하고 자식같이 생각하고 몸과 같이 생각하는데 무소유이기 때문입니다. 보살은 내외법에 대해서도 마땅히 이와 같이 생각합니다. 마땅히 이와 같이 생각하면 말한 것처럼 나와 일체 중생들이 또한 있는 것도 아니고, 또한 볼 수 없는 것입니다. 내외법에 대하여 마땅히 이와 같이 생각해야 하며, 이와 같이 상념(想念)을 지으면 괴로움이라는 생각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일체가 무소유이기 때문입니다. 세존이시여, 생하는 바가 없음에서 나의 것은 있지 않으며, 능히 여래․아유삼불을 얻게 되나 또한 생하는 바가 없습니다. 여래는 생하는 바가 없으므로 법륜을 굴리지 않는 것입니다.”
사리불이 존자 수보리에게 물었다.
“생하는 바가 없음으로 깨달음을 얻는 것입니까, 생하는 바가 있음으로 깨닫음을 얻는 것입니까?”
수보리가 말하였다.
“나는 또한 생하는 바가 없음으로부터 깨달음을 얻게 하지 않고, 또한 생하는 바가 있음으로부터 깨달음을 얻게 하지도 않습니다.”
수보리가 말하였다.
“말한 것처럼 깨달음도 없고, 얻음도 없다는 것입니까?”
수보리가 말하였다.
“깨달음도 있고 얻음도 있습니다. 둘이 있는 것이 아니지만 세속의 일에는 깨달음도 있고, 얻음도 있습니다. 다만 세속의 일이어서 수다원․사다함․아나함․아라한․벽지불과 부처가 있는 것입니다. 가장 제일인 것을 논하려고 하면 깨달음도 없고 얻음도 없는 것입니다. 수다원에서부터 위로 부처에 이르기까지도 또한 깨달음도 없고 또한 얻음도 없는 것입니다. 수보리여, 무슨 이유로 단지 세속의 일이기 때문에 깨달음도 있고, 얻음도 있는 것입니까? 5취(趣)를 무너뜨리는 것도 또한 이와 같은 것입니까?”
수보리가 말하였다.
“세속의 일이기 때문에 깨달음도 있고 얻음도 있는 것입니다. 세속의 일이기 때문에 5취의 가르침이 있는 것입니다. 무슨 이유로 사리불이여, 가장 제일의 법에는 생사도 없고 선악의 과보도 없고 끊음도 없고 집착도 없는 것입니까?”
사리불이 말하였다.
“무슨 이유로 수보리여, 생하는 바가 없음이 생하는 것입니까, 생하는 바가 있음이 생하는 것입니까?”
수보리가 대답하였다.
“나는 또한 생하는 바가 없음을 생하게 하지 않았고, 또한 생하는 바가 있음을 생하게 하지 않았습니다.”
사리불이 말하였다.
“어떤 무소생법을 생하게 하려고 하는 것입니까?”
수보리가 말하였다.
“나는 5음은 있지 않고 공하여 생하게 하지 않고, 나아가 도(道)도 있지 않고 공하여 또한 생하게 하지 않습니다.”
사리불이 말하였다.
“생하지 않는 것이 생하는 것입니까, 생하는 것이 생하는 것입니까?”
수보리가 말하였다.
“생함도 또한 생함이 아니며, 생하지 않음도 또한 생함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모든 생하는 바가 있음과 생하는 바가 없음은 하나일 뿐입니다. 또한 다르지도 않고, 형상이 없어서 또한 볼 수도 없고, 하나의 상도 얻을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의 상이란 소유한 모양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리불이여, 생하는 것이 있음도 또한 생하는 것이 아니며, 생하는 것이 없음도 또한 생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리불이 말하였다.
“마땅히 생하는 것이 없는 무소생법을 설하며, 생하는 것이 있는 무소생법을 설하시오. 나는 즐겁게 듣고자 합니다.”
수보리가 말하였다.
“뜻대로 즐거워하는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사리불이여, 생함이 없는 법에도 생함이 있는 법에도 즐거움은 없는 것입니다. 생함이 없음은 생함이 없는 것인가라고 질문했는데, 이 모든 법은 또한 합하지도 않고, 또한 흩어지지도 않고, 또한 형상도 없으며, 볼 수도 없고, 하나의 상도 얻을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의 상이란 곧 상이 없는 것입니다.”
사리불이 말하였다.
“생하는 것은 또한 생하는 바가 없고, 즐거워하는 것도 또한 생하는 바가 없고, 법도 또한 생하는 바가 없고, 과보도 또한 생하는 바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합니다, 그러합니다. 사리불이여, 모든 법은 모두 생하는 바가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5음은 생하는 바가 없으며, 6정(情)도 또한 생하는 바가 없으며, 6성(性)은 지․수․화․풍․공․식이고 6성도 또한 생하는 바가 없는 것이며, 신(身)․구(口)․의(意)의 행(行)도 또한 생하는 바가 없는 것이며, 살운야에 이르기까지도 또한 생하는 바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리불이여, 과보도 또한 생하는 바가 없으며, 인연이 있어 즐겨 듣는 것도 모두 생하는 바가 없는 것입니다.”
사리불이 말하였다.
“존자 수보리 같은 분은 법사 중에서 최상의 법사입니다. 왜냐하면 질문한 바에 대하여 능히 대답을 하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모든 법은 의지할 바가 없기 때문입니다.”
사리불이 장로 수보리에게 물었다.
“모든 법은 무슨 이유로 의지할 바가 없는 것입니까?”
“사리불이여, 색의 성품[色性]은 공해서 안에도 의지하지 않고 밖에도 의지하지 않고 또한 양쪽의 중간에도 의지하지 않습니다. 통․상․행․식의 성품도 공해서 안에도 의지하지 않고 밖에도 의지하지 않고 양쪽의 중간에도 의지하지 않습니다. 6정․12쇠의 성품도 공하여 안․밖․중간에 의지하지 않고, 6바라밀의 성품도 공해서 또한 안․밖․중간에 의지하지 않습니다. 내외공에서 유무공에서 이르기까지의 성품도 안․밖․중간에 의지하지 않고, 37품에서 부처님의 18법에 이르기까지의 성품도 공해서 또한 안․밖․중간에 의지하지 않습니다. 모든 법의 성품이 다 공하여 안․밖․중간에 의지하지 않습니다. 사리불이여, 그럼으로써 의지할 바가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까닭에 6바라밀을 행하는 보살은 능히 5음에서부터 살운야에 이르기까지 청정하게 하는 것입니다.”
사리불이 수보리에게 물었다.
“무엇이 보살이 6바라밀을 행하면서 보살도를 청정하게 하는 것입니까?”
대답하였다.
“사리불이여, 또한 도(道)의 단바라밀이 있고 속(俗)의 단바라밀이 있습니다. 반야바라밀에 이르기까지도 도가 있고 속이 있습니다.”
다시 물었다.
“어떤 것이 속의 단바라밀이며, 어떤 것이 도의 단바라밀입니까?”
대답하였다.
“보살은 보시에 머물러 사문이나 바라문이나 빈궁한 자나 질병이 있는 자나 형색이 초라한 자에게 그 원하는 바에 따라서 성(城)․나라․진보(珍寶)․옷과 음식을 주고 처자․권속과 머리․눈․살과 수뇌(髓腦)와 골혈(骨血) 등 일체 소유한 것을 모두 베풀어 줍니다. 줄 수 있되 의지하는 바가 있어서 속으로 말하기를 ‘나는 주고 그들은 받지만 나는 타인이 주는 것을 질투하지 않는다’고 하고, ‘나는 시주한 자’라 하고, ‘나는 일체를 주었다’고 하고, ‘나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른다’고 말하고, ‘나는 단바라밀을 행하였다’고 합니다. 비록 베풀었다고 하지만 의지한 바가 있고 지은 바가 있으며, 아뇩다라삼야삼보를 중생과 함께 공유합니다. 이렇게 베풀어 줌으로써 중생으로 하여금 무여니원에서 반니원에 들게 합니다. 비록 보시를 했으나 세 가지 장애의 뜻[三礙意]이 있습니다. 무엇이 세 가지인가 하면 아상(我想)이 있고 피상(彼想)이 있고 시상(施想)이 있으니, 이것이 세 가지의 장애입니다. 이것은 세속의 보시입니다. 왜냐하면 세속의 보시라고 이름하는 것은 세속을 능히 여의지 못하여 세속의 일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세속의 보시라고 합니다. 어떤 것이 도(道)의 보시인가? 세 가지 일이 청정한 것입니다. 어떤 것이 세 가지인가? 보살의 보시는 자신을 보지 않고 또한 받는 자도 보지 않고, 그 과보도 바라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이 보살이 세 가지의 일에 청정한 것입니다. 사리불이여, 보살의 보시는 중생에게 베풀어 주며 또한 중생에게 의지하지 않고 아뇩다라삼야삼보를 위하지 않으며, 또한 아뇩다라삼야삼보의 조짐[兆]도 보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이 도의 단바라밀입니다. 무슨 까닭에 도의 단바라밀이라고 이름하는가 하면, 도의 단바라밀은 세간에서 뛰어나게 벗어나기 때문입니다. 단바라밀에서 반야바라밀에 이르기까지 세속에는 의지할 바가 있지만, 도는 의지할 바가 없는 것입니다.”
수보리가 말하였다.
“이것을 보살이 6바라밀을 행하면서 보살도를 청정하게 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사리불이 수보리에게 물었다.
“어떤 것을 보살마하살의 도라고 합니까?”
대답하였다.
“37품이 보살마하살의 도이며, 공․무상․무원의 3해탈문 3공문(空門)․3삼매(三昧)라고도 한다. 해탈을 얻는 세 가지 방법으로서 공해탈문(空解脫門)․무상해탈문(無相解脫門)․무작해탈문(無作解脫門)을 말한다.
과 내외공에서 나아가 유무공에 이르기까지와 모든 삼매문․다린니문과 부처님의 열 가지 힘[十種力]․4무소외(無所畏)․부처님의 18법․4무애혜(無礙慧)․대자대비가 보살마하살의 도입니다.”
사리불이 말하였다.
“훌륭하고 훌륭합니다. 수보리여, 어떤 것이 바라밀의 공덕력입니까?”
수보리가 말하였다.
“이것이 반야바라밀의 공덕력입니다. 왜냐하면 반야바라밀은 모든 선법(善法) 공덕의 어머니이고, 반야바라밀은 삼승의 법을 빠짐없이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모든 과거의 부처님 세존도 모두 반야바라밀을 행해서 스스로 아유삼불을 이루었으며, 미래의 모든 부처님 세존도 반야바라밀을 행하여 스스로 아유삼불을 이룰 것이며, 현재 시방의 갠지스강의 모래 수처럼 많은 나라의 모든 부처님 세존도 또한 반야바라밀을 행하여 스스로 아유삼불을 이루는 것입니다.”
수보리가 말하였다.
“만약 반야바라밀을 설하는 것을 듣고서 의심하지도 않고, 두려워하지도 않으면 이것이 보살의 능히 보살도를 행하는 것이며, 중생을 버리지 않는 것임을 마땅히 알아야 합니다. 능히 일체 중생들을 위해서 보호하며 또한 의지하지도 않으며 마침내 이 생각을 여의지도 않으니, 이른바 대자대비의 생각입니다.”
사리불이 다시 물었다.
“보살이 대자대비의 생각을 버리지 않으려고 한다면 이것을 여의지 않고, 일체 중생들을 위해야 모두 마땅히 보살이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일체 중생들은 마침내 이 생각을 여의지 않기 때문입니다.”
수보리가 찬탄하여 말하였다.
“훌륭하고 훌륭합니다. 사리불이여, 나는 이미 기미가 오는 자취를 깨달아 알았으므로 나는 마땅히 이것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중생이 없는 것처럼 생각[想]도 없으며 유무도 또한 무소유입니다. 중생이 적정한 것처럼 생각도 적정합니다. 중생이 공한 것처럼 생각도 또한 공합니다. 중생에게 깨달음이 없는 것처럼 생각에도 또한 깨달음이 없습니다. 5음이 소유가 없는 것처럼 생각도 또한 소유가 없습니다. 5음에 실체가 없는 것처럼, 5음이 공한 것처럼, 5음이 고요한 것처럼, 5음은 깨달을 바도 없는 것처럼, 생각도 또한 깨달을 바가 없음을 마땅히 알아야 합니다. 안․이․비․설․신․의와 색․성․향․미․세활․법과 지․수․화․풍․공․식도 또한 그러한 것입니다. 6바라밀은 공하며, 내외공에서 유무공에 이르기까지와 37품․부처님의 18법․다린니문․모든 삼매문과 살운야․살운야의 일, 나아가 도(道)와 생각은 동등하며 무소유입니다. 도에 깨달을 바가 없는 것처럼 생각도 깨달을 바가 없는 것입니다.
사리불이여, 나는 보살들에게 이렇게 생각을 행하여 여의지 않게 하고자 합니다.”
이에 세존께서 수보리를 찬탄하여 말씀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구나. 모든 보살마하살들을 위해서 반야바라밀의 행을 설하였도다. 마땅히 이와 같고 수보리가 말한 바와 같도다.”
수보리는 부처님의 위신력을 이어받아서 반야바라밀을 설한 것이다. 보살마하살도 또한 마땅히 수보리가 설한 바와 같이 해야 한다.
수보리가 이 반야바라밀품을 설할 때 삼천대천의 국토[刹土]는 여섯 갈래로 진동하여 앞이 잠기면 뒤에서 솟아나오고, 앞이 솟아나오면 뒤에서 잠기고, 팔방의 상하가 모두 이와 같았다.
부처님께서는 이 일로 인하여 문득 미소를 지으시니, 그때 수보리가 합장한 채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무슨 인연으로 미소를 지으십니까?”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지금 내가 반야바라밀을 설했으므로 동방의 갠지스강의 모래 수처럼 많은 헤아릴 수 없는 모든 부처님들도 또한 모든 보살들을 위해서 반야바라밀을 설할 것이다. 시방의 모든 여래․등정각․무소착도 또한 다시 모든 보살들을 위해서 반야바라밀을 설하는 것도 또한 이와 같은 것이다. 수보리가 반야바라밀을 설할 때, 12나술억(那術億)의 천(天)과 사람과 아수륜(阿須倫)이 모두 생함이 없는 법인[無所從生法忍]을 얻었다. 시방의 모든 부처님께서 반야바라밀을 설할 때 헤아릴 수 없는 아승기의 중생들이 모두 위없는 바르고 참된 도[無上正眞道]의 뜻을 내었다.”
방광반야경 제6권
서진 우전국 무라차 한역
28. 무주품(無住品)
그때 삼천대천찰토의 모든 사천왕들과 무앙수 억백천의 모든 천자들이 모두 함께 이 모임에 모였다. 모든 석제환인(釋提桓因)과 모든 무수한 억백천의 모든 천(天)이 함께 와서 모였다. 수염 천자(須炎天子)에서부터 위로 수타회천(首陀會天)에 이르기까지 그 가운데 모든 천들이 각각 무수한 약간의 억백천의 천자들과 함께 모두 와서 모였다. 사천왕에서부터 수타회천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하늘들의 공덕으로 인한 광명이 크게 비쳤지만 세존의 최하의 광명에는 백천만 배․거억만(巨億萬) 배의 일과도 같지 못하였고, 모든 천의 광명과 염부단보(閻浮檀寶)의 광명이 모두 나타나지 못하였다. 모든 천은 부처님의 가장자리에 있으며 그 형체와 광명은 마치 등잔의 심지가 타는 것과 같았다. 그러므로 모든 천의 광명은 곧 다시 나타나지 못하였다. 석제환인이 존자 수보리에게 아뢰었다.
“지금 삼천대천찰토의 모든 사천왕과 모든 수타회천은 수보리께서 반야바라밀의 가르침을 설하는 것을 듣고자 합니다. 보살은 어떻게 반야바라밀에 머물러야 하며, 어떤 것이 보살마하살의 반야바라밀이며, 마땅히 어떻게 반야바라밀을 행해야 합니까?”
수보리가 석제환인에게 대답하였다.
“구익(拘翼)아, 지금 마땅히 부처님의 위신력을 이어서 모든 보살들을 위해서 반야바라밀을 설하리라. 마땅히 보살을 위해서 응당 머물 바에 따라 설해 주리라. 모든 천자들 가운데 아직 뜻을 일으키지 않은 이는 이제 마땅히 보리심을 일으켜야 한다. 이미 도에 안주한 자라도 아뇩다라삼야삼보의 뜻을 일으켜 감당할 만한 힘은 부족하다. 왜냐하면 생사의 세계에서 장애를 지었기 때문이다. 가령 이 무리들이 능히 아뇩다라삼야삼보의 뜻을 일으킨다면 나는 또한 그 대신 환희하며 그들을 위로 상전존(上轉尊)에 나아가게 하며, 나는 또한 끝내 중도에서 그 공덕을 끊지 않게 하리라. 구익아. 무엇을 반야바라밀이라고 하는가? 보살마하살은 마땅히 살운야에 상응하는 뜻을 가져서 마땅히 색은 무상하고 괴로움이며 공하며 몸[身]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늙고 병들고 우환․번뇌가 결집되고 모이고 흘러가고 변하여 무너지고 없어지고 두려워하고 서로 싸우고 하니 의지할 것이 못 된다. 보살은 마땅히 이것에도 또한 의지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해야 한다. 통(痛)․상(想)․행(行)․식(識)과 6정(情)․6성(性)도 모두 항상 괴로움이며 청정한 것이라고 생각하며 또한 의지하지 않아야 한다. 마땅히 5음이 청정함을 생각해야하며, 마땅히 6정․6성이 청정하고 적정함을 생각해야 한다. 살운야의 뜻으로 마땅히 어리석음에 연하여 애습(愛習)이 있고, 12인연에도 또한 의지할 것이 없음을 알아야 한다. 마땅히 또 치애(癡愛)를 멸하면 12인연을 멸하게 되니, 온갖 고통도 또한 의지할 것이 없음을 생각해야 한다.
또한 구익아, 보살마하살은 살운야의 뜻으로 마땅히 37품도 또한 의지할 것이 없다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또한 마땅히 나아가 부처님의 18법도 의지할 것이 없다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또한 구익아, 보살마하살은 살운야의 뜻으로 단(檀)바라밀․시(尸)바라밀․찬(羼)바라밀․유체(惟逮)바라밀․선(禪)바라밀을 행하지만 또한 의지할 것이 없는 것이다. 이와 같이 구익아, 보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 이와 같이 관해야 한다. 법과 법은 서로 전해 주고 법과 법은 서로 얻는 것이니, 모두 구족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에서 보살에게는 나라는 것도 없어야 한다. 만약 다른 생각을 짓는다면 도의 생각에 상응하지 못하는 것이다. 구익아, 평등하지 못한 생각으로는 도를 또한 볼 수 없으며, 또한 얻을 수도 없다. 도(道)에는 뜻[意]도 염의(念意)도 없으며 또한 얻을 수 없으며 또한 볼 수도 없는 것이다. 구익아, 보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 마땅히 모든 법에는 얻을 바가 없다고 관해야 한다.”
석제환인이 말하였다.
“연세 많으신[耆年] 수보리시여, 어째서 염의(念意)와 도의(道意)는 같지 않은 것입니까? 어째서 도의와 염의는 같지 않은 것입니까? 어째서 도의와 염의를 함께 얻을 수 없으며, 볼 수도 없는 것입니까?”
수보리가 말하였다.
“구익아, 생각하는 뜻은 뜻을 이루지 못하며, 도의도 또한 뜻이 아니며, 또한 뜻을 이루지 못한 것이며 뜻이 아닌 것을 가진 것이 아니다. 생각하는 것은 뜻이 아니며, 뜻은 바로 뜻이 아니며, 뜻이 아닌 것이 또한 뜻이다. 이것을 보살마하살의 반야바라밀이라고 한다.”
이에 부처님께서 수보리를 찬탄하여 말씀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구나. 그대는 모든 보살들을 위해서 반야바라밀를 설해서 권조(勸助)하는 뜻을 가르쳤다.”
수보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저는 마땅히 은혜에 보답하고자 하니, 은혜에 보답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저는 마땅히 과거의 모든 여래․무소착․등정각의 은혜에 보답하고자 합니다. 그 분들은 제자들을 권조하고 모든 보살들을 안립(安立)하게 하였습니다. 세존께서도 그때에 또한 6바라밀을 배워서 아유삼불(阿惟三佛)을 얻으셨습니다. 세존이시여, 저희들도 또한 마땅히 모든 보살들을 권조하고 안립하게 하고, 6바라밀을 배워서 또한 마땅히 아유삼불을 이루게 하겠습니다.”
수보리가 말하였다.
“구익아, 내가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에 머물면서 머무는 것 같되 또한 머물지 않음을 설하겠으니 들을지어다. 5음은 5음이 공한 것이며, 보살은 보살이 공한 것이며, 5음이 공한 것과 보살이 공한 것은 하나이며 공함에는 둘이 있는 것이 아니다. 구익아, 보살은 마땅히 이와 같이 지어서 반야바라밀에 머물러야 한다. 구익아, 6정(情)은 6정이 공하고, 보살은 보살이 공한 것이며, 6정이 공함과 보살이 공함은 동등하여 다름이 없다. 6성(性)은 6성이 공하고, 보살은 보살이 공한 것이며, 6성이 공함과 보살이 공함은 동등하여 다름이 없다. 보살마하살은 마땅히 이와 같이 생각하고, 반야바라밀에 마땅히 이와 같이 머물러야 한다.
또한 구익아, 12인연은 12인연이 공하고, 12인연을 멸하면 12인연을 멸해서 공하고, 보살은 보살이 공하고, 12인연과 12인연이 멸함이 공한 것과 보살이 공함은 하나이며 공함에는 둘이 있는 것이 아니다. 구익아,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에 마땅히 이와 같이 머물러야 한다. 6바라밀은 6바라밀이 공한 것이며, 내외공과 나아가 유무공․37품․부처님의 18법․모든 삼매문․다린니문․성문승․벽지불승도 또한 그러하다. 보살․여래․살운야도 또한 그러하다. 보살이 공함과 살운야가 공한 것은 하나이며, 공함에는 둘이 없다. 보살은 반야바라밀에 마땅히 이와 같이 머물러야 한다.”
석제환인이 말하였다.
“수보리시여, 무엇이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 가운데 머물지 않아야 하는 것입니까?”
수보리가 말하였다.
“구익아, 보살은 5음에 머물지 않아야 하니 의지함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6정에 머물지 않아야 하니 의지함이 있기 때문이며, 6정을 의지함에도 머물지 않아야 한다. 37품에서부터 살운야에 이르기까지 모두 머물지 않아야 하니 의지함이 있기 때문이다. 수다원에서부터 아라한․벽지불에 이르고, 위로 부처에 이르기까지 다 머물지 않아야 하니, 의지함이 있기 때문이다. 5음에서부터 살운야에 이르기까지 머물지 않아야 하니, 또한 의지할 것이 없기 때문이다. 수다원에서부터 부처에 이르기까지도 머물지 않아야 하니, 의지함이 있기 때문이다. 5음은 무상하니 마땅히 그 가운데에 머물지 않아야 하며, 5음은 항상함이 있으니 마땅히 그 가운데에 머물지 않아야 한다. 5음의 고락에 마땅히 머물지 않아야 한다. 청정함과 부정함에 머물지 않아야 하며, 아(我)와 비아(非我)에 머물지 않아야 한다. 공(空)과 불공(不空)에 머물지 않아야 하며, 멸과 불멸에 머물지 않아야 하며, 적정함과 적정하지 않음에 머물지 않아야 하니, 의지함이 있기 때문이다. 수다원은 구족하지 못하므로 그 가운데에 머물지 않아야 하며, 부처에 이르러도 구족하지 못하므로 그 가운데에 머물지 않아야 한다. 수다원에서 성취한 덕으로 일체의 복이 있다고 해도 그 가운데에 머물지 않아야 한다. 위로 부처에 이르는 덕을 성취해서 일체의 복이 있다고 해도 그 가운데에 머물지 않아야 한다.
또한 구익아, 보살은 초지(初地)에 머물지 않아야 하며, 제10지(第十地)에 이르러도 그 가운데에 머물지 않아야 하니 의지함이 있기 때문이다. 초지에서 ‘나는 마땅히 단바라밀을 구족하겠다’고 말하는 것에도 머물지 않아야 하며, 시바라밀․찬바라밀․유체바라밀․선바라밀․반야바라밀에 머물지 않아야 하니 의지함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마땅히 37품을 구족하여 성취하겠다’고 하는 것에도 머물지 않아야 하니 의지함이 있기 때문이며, 보살도에도 머물지 않아야 하며, ‘나는 보살도에서 아유월치지(阿惟越致地)에 이르러 머문다’는 것에도 머물지 않아야 한다. 보살은 5통(通)을 구족하는 것에도 머물지 않아야 하니 의지함이 있기 때문이다. 보살이 신통에 머문 뒤에 ‘나는 마땅히 무량한 아승기의 불국토에 노닐면서 모든 부처님 여래를 친견하고 법의 가르침을 들은 다음에 법륜을 굴려서 다시 일체 중생들을 가르치겠다’고 하는 것에도 머물지 않아야 하니 의지함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또한 마땅히 이와 같이 변화시켜서 모든 부처님 여래의 세계를 소유하겠다’는 것에도 마땅히 머물지 않아야 하니 의지함이 있기 때문이다. 반야바라밀에도 마땅히 머물지 않아야 하니 의지함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마땅히 중생을 가르쳐 도에 이르게 하겠다’는 것에도 마땅히 머물지 않아야 한다. ‘나는 마땅히 무량한 아승기의 모든 부처님을 공양할 때 모든 당(幢)․번(幡)과 향화(香華)와 비단 일산과 무앙수(無央數) 백천억 장의 방석으로 하겠다’는 것에도 머물지 않아야 하며, ‘나는 마땅히 무앙수 아승기의 중생들을 성취해서 아뇩다라삼야삼불을 얻게 하겠다’는 것에도 머물지 않아야 한다. ‘나는 마땅히 5안(眼)인 육안(肉眼)․천안(天眼)․법안(法眼)․혜안(慧眼)․불안(佛眼)을 구족하겠다’는 것에도 머물지 않아야 하며, ‘나는 마땅히 모든 삼매를 일으키겠다’는 것에도 머물지 않아야 하며, 또한 마땅히 소원하여 말하지 않는다. ‘나는 삼매를 얻었을 때 마땅히 그 가운데서 노닐겠다’는 것에도 머물지 않아야 하며, 다린니문을 구족했어도 마땅히 그 가운데 머물지 않아야 하며, ‘나는 마땅히 4무애혜․4무소외․부처님의 10종력․부처님의 18법을 구족하겠다’는 것에도 마땅히 머물지 않아야 한다. ‘나는 마땅히 4등심(等心)․대자대비를 구족하겠다’는 것에도 마땅히 머물지 않아야 하며, ‘나는 마땅히 서른두 가지 대사(大士)의 상(相)과 80종호를 구족하겠다’는 것에도 마땅히 머물지 않아야 하니 의지함이 있기 때문이다. 8배사(輩事)에 머물러서 신요(信要)와 법요(法要)를 성취하는 것에도 머물지 않아야 하며, 수다원에서 제7에 이르는 것에도 마땅히 머물지 않아야 한다. 사다함의 한 종류에도 마땅히 머물지 않아야 하며, 도(道)가 동등함에도 마땅히 머물지 않아야 하며, 수명[命]이 다해서 번뇌[垢]가 다함에도 마땅히 머물지 않아야 하며, 수다원의 중도에서 반니원하는 것에도 마땅히 머물지 않아야 하며, 사다함에서 모든 괴로움의 근본을 끊지 못해도 마땅히 그 가운데 머물지 않아야 하며, 아나함도의 뜻을 얻어도 마땅히 그 가운데에 머물지 않아야 한다. 아나함 가운데서 중도에 반니원하는 것에도 마땅히 머물지 않아야 하며, 아라한의 깨달음을 얻어 아라한을 이루고 이 사이에서 무여니원하고 반니원하는 것에도 마땅히 머물지 않아야 하며, 벽지불에도 마땅히 머물지 않아야 하며, 나한․벽지불을 경과하고 보살지에 이를지라도 마땅히 그 가운데 머물지 않아야 하며, 도사혜(道事慧)에도 머물지 않아야 하니 의지함이 있기 때문이다. 많은 일을 하여 아유삼불을 이루는 것에도 마땅히 머물지 않아야 하며, 점차 모든 번뇌[垢]가 녹아 없어짐에도 마땅히 머물지 않아야 하며, 여래․등정각․무소착을 이루어서 마땅히 법륜을 굴리는 것에도 마땅히 머물지 않아야 하며, ‘나는 마땅히 불사를 위해서 헤아릴 수 없는 일체 중생들을 제도하겠다’는 것에도 머물지 않아야 하며, 4신족(神足)으로 삼매에 들어 수명이 갠지스강의 모래 수처럼 많은 겁을 유지하는 것에도 마땅히 머물지 않아야 한다. ‘나의 수명은 끝이 없다’는 것에도 마땅히 머물지 않아야 하며, 서른두 가지 대사의 상(相)에서 하나의 상(相)마다 백 가지 복의 공덕을 이루는 것에도 마땅히 머물지 않아야 하며, ‘나의 한 불국토의 크기는 시방의 갠지스강의 모래 수처럼 많은 불국토들과 같다’는 것에도 마땅히 머물지 않아야 하며, ‘나의 삼천대천의 찰토(刹土)가 모두 금강으로 된다’는 것에도 마땅히 머물지 않아야 한다. ‘나의 불수(佛樹) 가운데서 향기를 내니 일체 중생들로서 이 향기를 맡는 자는 3독(毒)이 없고, 성문이나 벽지불의 뜻을 일으키지 않는다. 또 이 향기를 맡는 자는 신병(身病)과 의병(意病)이 모두 없어져서 낫게 되며, ‘나의 불국토에서는 5음인 색․통․상․행․식과 6바라밀의 소리를 듣지 못하게 된다’는 것에도 마땅히 머물지 않아야 하며, 나의 불국토에서 37품과 부처님의 18법을 듣지 못하게 되며, 수다원에서 위로 부처에 이르기까지 그 소리를 듣지 못하는 것에도 마땅히 머물지 않아야 한다. 왜냐하면 여래․무소착․등정각이 아유삼불을 이룰 때 모든 법도 또한 얻을 바가 없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구익아, 보살은 반야바라밀에 의지하여 머물지 않아야 한다.”
그때 존자 사라불이 속으로 생각하였다.
“보살마하살은 마땅히 어떻게 머물러야 하는 것인가?”
수보리가 사리불이 생각하는 것을 알고, 문득 사리불에게 물었다.
“모든 부처님께서는 어떠한 것에 머무신다고 생각합니까?”
사리불이 대답하였다.
“모든 부처님께서는 머무시는 바가 없으며, 뜻이 어느 곳에도 머물지 않으며, 또한 5음에도 머물지 않으며, 또한 성취함에도 머물지 않으며, 또한 성취하지 않음에도 머물지 않으며, 또한 유위․무위에도 머물지 않으며, 18법․살운야의 어느 곳에도 머물지 않는 것입니다.”
수보리가 말하였다.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 가운데 머물러야 하며, 마땅히 모든 여래․무소착․등정각이 머물되 머물지 않음에 머무는 것처럼 해야 합니다. 보살은 마땅히 이와 같이 머물러야 하며, 머물되 처소가 없이 머물러야 합니다.”
이에 모임 가운데 있던 천자가 이렇게 생각하였다.
‘모든 열차(閱叉:야차)가 말하고 설한 것은 모두 알 수 있는데, 존자 수보리가 반야바라밀의 가르침을 설한 것은 분명하게 알 수 없다.’
수보리가 모든 천자들이 생각하는 바를 알고, 모든 천자들에게 말하였다.
“이해가 되지 않고 알지도 못하겠는가?”
모든 천자들이 말하였다.
“그렇습니다. 수보리시여, 실로 이해가 되지 않고 알지도 못하겠습니다.”
수보리가 모든 천자들에게 말하였다.
“내가 설한 것은 항상 한 문자의 가르침도 볼 수 없으며, 또한 들을 자도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반야바라밀이란 것은 문자가 아니며, 또한 들어서 아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어째서인가? 모든 천자들이여, 모든 여래․무소착․등정각의 도에는 또한 문자가 없기 때문이다. 모든 천자들이여, 비유하면 마치 여래께서 변화로 부처를 만들고 네 무리의 제자를 만들고, 만든 후에는 모든 법을 설하는 것과 같다. 모든 천자들이여, 그대들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여기에 가르침이 있고, 설하는 것이 있고, 정말로 받는 자가 있는 것인가?”
모든 천자들이 말하였다.
“수보리시여, 소유할 것이 없습니다.”
수보리가 말하였다.
“모든 법은 비유하면 변화와 같아서 또한 설하는 자도 없고, 또한 받는 자도 없고, 또한 아는 자도 없는 것이다. 비유하면 마치 사부(士夫)가 꿈속에서 부처님을 뵙고 부처님께서 설법을 하시는 것과 같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설하는 것이 있으며, 받는 자도 있는 것인가?”
모든 천자들이 말하였다.
“설함도 없고 받음도 없습니다.”
수보리가 말하였다.
“모든 법은 환영과 같아서 설함도 없고, 받음도 없고, 또한 소유함도 없는 것이다. 비유하면 어떤 두 사람이 저 깊은 계곡의 각각 한쪽 면에서 머물러서 함께 음성을 내어 불법과 비구승을 찬탄할 때, 그 소리의 메아리가 울리는 것과 같다. 정말로 전전(展轉)하여 서로 알겠는가?”
모든 천자들이 말하였다.
“메아리는 아는 바가 없습니다. 비유하면 절묘하고 공교한 환사(幻師)가 네 거리의 길에서 여래와 네 무리의 대중을 변화로 만들어 내고 법을 설하는 것과 같습니다.”
“모든 천자들이여, 어떻게 생각하는가? 진실로 설함이 있고, 가르침이 있고, 받는 자가 있는 것인가?”
모든 천자들이 대답하였다.
“실로 있는 바가 없습니다.”
모든 천자들이 다시 생각하였다.
‘지금 수보리께서 반야바라밀을 알기 쉽게 설하셨지만 그 일이 더욱 깊으며, 가르친 바도 점점 깊어지고 설한 바도 점점 미묘해지기만 한다.’
수보리가 모든 천자들에게 말하였다.
“색은 깊지도 않고, 또한 미묘하지도 않다. 5음도 미묘하지 않기 때문이다. 6정과 내외공에서 유무공에 이르기까지 나아가 6바라밀과 부처님의 18법에 이르기까지 모두 이와 같은 것이다. 모든 삼매문․다린니문에서 살운야에 이르기까지도 또한 깊지도 않고, 또한 미묘하지도 않다. 살운야도 깊고 미묘하지 않다.”
모든 천자들은 이렇게 생각하였다.
‘이 설한 것 가운데 또한 5음․6정을 설하지 않았고 또한 6바라밀을 설하지도 않았고, 또한 내외공과 나아가 유무공도 설하지 않았다. 또한 37품과 부처님의 18법을 설하지 않았고, 또한 수다원의 도를 설하지 않았고, 또한 아라한․벽지불의 도를 설하지 않았고, 또한 문자를 설하지 않았다. 이 일은 무슨 뜻으로 이러한 것인가?’
수보리가 대답하였다.
“이와 같고 이와 같은 것이다. 모든 천자들이여, 모든 여래의 도는 모두 얻을 바도 없으며, 또한 설한 바도 없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모든 법은 또한 설하는 자도 없으며, 또한 듣는 자도 없으며, 또한 받는 자도 없으며, 또한 얻는 자도 없는 것이다.”
수보리가 말하였다.
“모든 천자들이여, 수다원의 도에 머물려고 하고 수다원의 깨달음을 얻으려고 하고, 나한․벽지불, 위로 부처님에 이르기까지 깨달음을 얻으려고 하고, 이와 같이 머물려고 하면 마침내 이 인(忍)을 얻지 못한다. 보살은 처음 뜻을 발한 이후로 설할 바도 없으며, 들을 바도 없으며, 마땅히 이와 같이 머물러야 한다.”
29. 여환품(如幻品)
그때 모든 천자들이 생각하였다.
‘우리들은 마땅히 어떻게 수보리로부터 가르침을 듣겠는가?’
존자 수보리가 모든 천자들이 속으로 생각하는 바를 알고, 모든 천자들에게 말하였다.
“지금 이 모임에 모인 자들은 내가 설하는 바를 보고 들을지어다. 마땅히 마치 환(幻)으로 만들어진 사람들이 듣는 것처럼 또한 받을 바도 없고 또한 볼 수도 없고 또한 증득할 것도 없다.”
모든 천자들이 말하였다.
“어찌하여 수보리는 중생이 환화(幻化)와 같다고 하십니까? 이 모임에 온 자도 또한 환화와 같습니까?”
수보리가 말하였다.
“그렇다, 그렇다. 중생은 환과 같고 모인 자도 또한 환과 같으며, 나라고 하는 것도 또한 환과 같고 꿈과 같은 것이다. 5음도 환과 같고 변화와 같으며, 6정식재(情識栽)도 환과 같고 변화와 같으며, 내외공과 유무공도 환과 같고 꿈과 같으며, 37품과 부처님의 18법도 환과 같고 변화와 같으며, 수다원의 도에서 위로 부처님의 삼야삼불에 이르기까지도 또한 환과 같은 것이다.”
이때 모든 천자들이 수보리에게 물었다.
“어째서 부처님에 이르기까지도 또한 환과 같고 꿈과 같은 것입니까?”
수보리가 말하였다.
“나는 부처님에 이르기까지도 또한 환과 같다고 말했다. 만약 또 니원보다도 더 뛰어난 법이 있다고 해도 나는 또한 환과 같다고 말할 것이다. 모든 천자들이여, 꿈과 환화는 하나이며 둘이 있는 것이 아니다.”
이때 사리불․대목건련(大目揵連)․마하구치라(摩訶拘絺羅)․마하가전연(摩訶迦旃延)․빈누문타니자(邠耨文陀尼子)․대가섭(大迦葉) 등과 무수한 보살들이 모든 대중과 함께 수보리에게 물었다.
“반야바라밀은 깊고 깊으며, 심히 넓어서 깨닫기 어렵고 알기 어렵고 보기 어렵고 이해하기 어려운데, 누가 능히 이 어려움을 막아서 끊을 수 있겠습니까?”
이때 아난이 많은 제자들과 모든 보살들에게 말하였다.
“반야바라밀은 깊고 미묘한 법이며, 매우 광대해서 보기 어렵고 이해하기 어렵고, 알기 어려우며 불가사의한 것입니다. 오직 아유월치에 있는 보살마하살만이 구족하게 진리를 볼 수 있는 아라한입니다. 과거세에 무앙수 모든 부처님의 처소에서 공덕을 지었으며 선지식을 따라 가까이한 선남자와 선여인은 큰 지혜가 있으며, 이와 같은 무리는 깊은 반야바라밀을 듣고, 이에 능히 즐겁게 믿어서 끝내 막아 끊을 수 없습니다. 공으로써 5음을 분별하지 않고 5음으로써 공을 분별하지 않으며, 또한 5음으로써 무상(無相)과 무원(無願)을 분별하지 않고 무상․무원으로써 5음을 분별하지 않으며, 또한 무소생(無所生)과 무소멸(無所滅)로써 5음을 분별하지 않고, 5음으로써 무소생․무소멸을 분별하지 않으며, 또한 적정으로써 5음을 분별하지 않고 5음으로써 적정을 분별하지 않는다. 나아가 6정(情)과 모든 연기도 또한 이와 같고, 단바라밀에서부터 반야바라밀에 이르기까지도 또한 이와 같고, 내외공에서부터 유무공에 이르기까지도 또한 이와 같고, 37품에서부터 부처님의 18법에 이르기까지도 또한 이와 같습니다. 모든 삼매문․다린니문으로써 5음을 분별하지 않고, 5음으로써 삼매문․다린니문을 분별하지 않습니다. 수다원에서부터 나한․벽지불에 이르기까지, 나아가 살운야도 또한 공을 분별하지 않고 공으로써 살운야를 분별하지 않으며, 또한 무상․무원으로써 살운야를 분별하지 않고 또한 살운야로써 무상․무원을 분별하지 않으며, 구족(具足)․불구족성(不具足性)으로써 공을 분별하지 않고, 공으로써 구족․불구족성을 분별하지 않으며, 나아가 무상․무원도 또한 이와 같습니다. 무소생과 무소멸로써 적정을 분별하지 않고 적정으로써 5음을 분별하지 않습니다.”
수보리가 모든 천자들에게 말하였다.
“이것은 깊고 깊은 반야바라밀이므로 지극한 지혜가 있는 자라도 능히 이를 막아 끊을 자가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법에는 근심도 없고 또한 슬퍼할 자도 없다. 만약 근심도 없으며 슬퍼할 중생도 없다면, 또한 능히 막아 끊을 자도 없는 것이다.”
사리불이 수보리에게 말하였다.
“반야바라밀은 널리 삼승의 가르침과 보살총지의 가르침을 설한 것입니다. 처음 뜻을 발한 때부터 10주(住) 도지(道地)의 가르침에 이르기까지와 6바라밀․37품․부처님의 18법에 이르기까지 보살마하살은 모든 총지의 가르침을 설합니다. 이것이 보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 화생(化生)하여 신통을 소모하지 않고, 모든 불국토에 노닐며, 그 하고자 하는 바에 따라서 선한 근본을 짓고, 모든 부처님을 공양하고, 소원하는 바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모든 세존의 처소에서 법을 듣고, 살운야에 이를 때까지 처음부터 단절되지 않습니다. 일찍이 삼매를 여의지 않을 때에 마땅히 무소괘애변(無所罣礙辯)․불가단절변(不可斷絶辯)․여소응변(如所應辯)․이변(利辯)․의변(義辯)․일체최변(一切最辯)을 얻습니다.”
수보리가 말하였다.
“이와 같으며 이와 같습니다. 사리불이 말한 것처럼 널리 삼승과 보살승을 설하고 대승의 보살마하살은 최고의 변재를 얻으니, 또한 의지할 바가 없으며 또한 의지하지도 않습니다. 자아라는 것․지견․수명․5음도 또한 의지할 바가 없고, 단바라밀에서부터 반야바라밀에 이르기까지도 또한 의지할 바가 없고, 내외공에서부터 유무공도 또한 의지할 바가 없고, 37품과 부처님의 18법에서부터 살운야의 지혜에 이르기까지도 또한 의지할 바가 없는 것입니다.”
사리불이 말하였다.
“무슨 이유로 반야바라밀에서 삼승의 가르침을 설하였는데 의지할 바가 없습니까? 무슨 이유로 보살은 총지(總持)하는 것입니까? 무슨 이유로 가장 미묘한 변재를 얻었으나, 의지할 바가 없습니까?”
수보리가 말하였다.
“내공에서부터 나아가 삼승에 이르기까지 모두 반야바라밀의 가르침에서 나오지만 또한 의지할 바가 없으며, 외공에서부터 유무공에 이르기까지 널리 삼승의 가르침을 설했다고 해도 또한 의지할 바가 없습니다. 내외공에서 설한 가르침과 보살이 총설한 일체 세간의 가장 미묘한 변재[最妙之辯]도 또한 의지할 바가 없고, 유무공에서부터 보살에 이르기까지 일체 세간의 제일인 변재를 호지했다고 해도 의지할 바가 없습니다.”
30. 우법우품(雨法雨品)
이에 석제환인이 속으로 생각하였다.
‘존자 수보리가 설한 법문이 법우(法雨)가 되어 삼천대천국토에 내리는구나.’
사천왕에서부터 위로 아가니타천에 이르기까지 각각 생각하였다.
‘지금 수보리가 설한 법의 비가 내리니 우리들이 어떻게 꽃을 만들어서 부처님 세존과 모든 보살들과 큰 제자들과 수보리의 위에 뿌리지 않겠는가?’
그때 삼천대천국토에 있는 모든 석재환인과 모든 사천왕이 각각 꽃을 만들어 불보살과 비구승에게 뿌리고 수보리 위에 뿌렸다. 이것을 가지고 반야바라밀에 공양했고 모든 천이 꽃을 뿌렸다. 이때 삼천대천국토의 땅에 두루 꽃이 가득하여 공허하고 빈 곳이 없어서 마치 자리를 편 것과 같았다. 허공 가운데서 꽃이 아직 땅에 떨어지지 않고 이때 변화하여 화교로대(花交露臺)를 이루었으며, 뛰어나고 미묘하고 장엄하였다.
그때 수보리가 속으로 생각하였다.
‘나는 수많은 천상에 이르러서도 처음부터 일찍이 이와 같은 꽃과 비견되는 것을 볼 수 없었다. 모든 천자들이 뿌리는 꽃은 나무에서 핀 꽃이 아니고 변화된 꽃일 것이다.’
석제환인이 수보리에게 말하였다.
“이 꽃은 생화도 아니고, 또한 뜻의 나무[意樹]에서 핀 꽃도 아닙니다.”
수보리가 말하였다.
“구익이 말한 것처럼 이 꽃은 생화도 아니고, 또한 뜻의 나무에서 핀 꽃도 아니다. 구익아, 만약 생겨난 것이 아니라면 이는 꽃이 아니다.”
석제환인이 수보리에게 말하였다.
“단지 이 꽃만이 생겨나는 것이 아닙니까. 5음도 또한 생겨나는 것이 아닙니까?”
수보리가 말하였다.
“이 꽃과 5음은 모두 생겨나지 않았으니, 만약 생겨나지 않았다면 5음이 아닌 것이다. 6정도 또한 생겨나지 않았으니 만약 생겨나지 않았다면 6정이 아닌 것이다. 6바라밀도 또한 생겨나지 않았으니 만약 생겨나지 않았다면 6바라밀이 아닌 것이다. 내외공에서부터 유무공에 이르기까지도 또한 생겨나지 않았으니, 만약 생겨나지 않았다면 유무공이 아닌 것이다. 37품과 부처님의 18법도 또한 생겨나지 않았으니, 만약 생겨나지 않았다면 18법이 아닌 것이다. 살운야에 이르기까지도 또한 생겨나지 않았으니, 만약 생겨나지 않았다면 살운야가 아닌 것이다.”
석제환인이 속으로 생각하였다.
“지금 수보리의 변재가 깊고 묘하여서 이와 같은 것입니까? 그 상응하는 바에 따라서 이와 같이 설법을 하되, 위배되지 않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석제환인에게 말씀하셨다.
“그렇다, 그렇다. 구익아, 수보리는 실로 깊이 변재 제일에 들어가서 그 상응하는 바에 따라서 설법을 하되, 위배됨이 없다.”
석제환인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어떻게 수보리는 그 상응하는 바에 따라서 설법을 하되, 위배됨이 없습니까?”
부처님께서 구익에게 말씀하셨다.
“5음․6정은 다만 수(數)일 뿐이다. 5음․6정은 단지 수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수보리가 설한 것에는 그릇됨이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법에는 또한 위배되는 것도 없고 또한 화합하는 것도 없기 때문이다. 화합도 없고 그릇됨도 없으므로 수보리가 설한 것에 착오가 없는 것이다. 6바라밀에서부터 내외공에 이르기까지, 유무공에서부터 37품․부처님의 18법에 이르기까지도 모두 이와 같다. 수다원도에서부터 벽지불도에 이르기까지, 살운야와 살운야의 일에 이르기까지도 또한 이와 같다. 수다원에서부터 나한․벽지불, 위로 부처님․삼야삼불에 이르기까지도 구익아, 또한 법수(法數)로써 베푼 것일 뿐이다. 수보리가 설한 것도 또한 법수로써 베푼 것과 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설법한 것에 위배됨이 없다. 왜냐하면 구익아, 법에는 또한 화합도 없고, 또한 그릇됨도 없기 때문이다. 화합도 없고 착오도 없으므로 수보리는 이와 같이 법을 설했으며, 그 상응하는 바에 따라서 위배되고 그릇됨이 없었다.”
수보리가 말하였다.
“그러하다, 그러하다. 구익아, 부처님 세존께서 모든 법의 가르침을 베푸신 것처럼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 마땅히 알아야 하니, 모든 법도 또한 다만 이 법수를 베푼 것일 뿐이다. 구익아, 보살이 이와 같이 배우는 것을 색․통․상․행․식을 배우지 않는 것이라고 하며, 또한 5음에서 마땅히 배울 것을 보지 않는다. 이와 같이 배우는 것을 6바라밀을 배우지 않는 것이라고 한다. 왜냐하면 6바라밀에서 마땅히 배울 것을 보지 않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배우는 것을 내외공과 나아가 유무공도 배우지 않는 것이라고 한다. 왜냐하면 공법(空法)에서 배울 것을 보지 않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배우는 것을 37품과 부처님의 18법을 배우지 않는 것이라고 하며, 수다원의 도도 배우지 않는 것이라고 하며, 나한․벽지불의 도도 배우지 않는 것이라고 하며, 살운야의 도도 배우지 않는 것이라고 한다. 왜냐하면 살운야에서 마땅히 배울 것을 보지 않기 때문이다.”
석제환인이 수보리에게 말하였다.
“무슨 이유로 5음을 보지 않고 나아가 살운야도 또한 보지 않습니까?”
수보리가 말하였다.
“그러므로 구익아, 5음도 5음으로서 스스로 공하고, 살운야는 살운야로서 스스로 공하다. 왜 그런가? 공색(空色)은 색공(色空)을 배울 수 없고, 살운야공(薩云若空)은 공살운야(空薩云若)를 배울 수 없다. 공을 배울 수 없는 것이 공을 배우는 것이다. 둘이 아니므로 이와 같이 배움을 배우고, 둘이 아니므로 5음이 공함을 배우고, 또한 둘이 아니므로 살운야가 공함을 배우는 것이다. 구익아, 둘이 아니므로 공오음(空五陰)을 배우는 것이 6바라밀을 배우는 것이 된다. 둘이 아니므로 살운야가 공하다는 것을 배우는 것이 6바라밀을 배우는 것이 되고, 내외공에서 유무공에 이르기까지를 배우는 것이 되고, 37품을 배우는 것이 되고, 부처님의 18법을 배우는 것이 된다. 둘이 아니므로 수다원에서 나한․벽지불에 이르는 것을 배우는 것이 된다. 둘이 아니므로 삼야삼불(三耶三佛)을 배우는 것이다. 또한 둘이 아니므로 살운야를 배우는 것이 되며, 부처님을 배우는 것이 된다. 살운야를 배운다는 것은 헤아릴 수 없는 아승기법의 모든 불법을 배우는 것이 된다. 모든 불법을 배우면, 5음이 증장됨을 배우지 않고 5음이 감소함을 배우지 않는다. 또한 살운야가 증장됨을 배우지 않고, 또한 살운야가 감소함을 배우지 않는다. 이와 같이 증가하지도 않고 감소하지도 않는 것을 배운다면, 또한 5음을 받아들이지 않고 또한 중도에서 5음을 멸하지도 않는다. 살운야에 이르기까지 배우는 것도 또한 받아들여 배우지 않고, 또한 중도에서 살운야가 멸하지도 않는다.”
사리불이 수보리에게 말하였다.
“보살이 이와 같이 배우는 것이 또한 살운야를 받아들이는 것을 배우지 않고 또한 중도에서 살운야를 멸하는 것도 배우지 않는 것입니까?”
수보리가 대답하였다.
“그러합니다, 그러합니다.”
사리불이 다시 물었다.
“무슨 이유로 5음에서부터 살운야에 이르기까지도 또한 받아들여 배우지 않고, 또한 중도에서 살운야를 멸하는 것도 배우지 않습니까?”
“색은 스스로 받아들임이 없으며, 또한 색을 받아들이는 것도 없습니다. 살운야도 또한 스스로 받아들임이 없으며, 또한 살운야라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도 없습니다. 내외공에서부터 유무공에 이르기까지도 또한 스스로 받아들임이 없으며, 또한 공이라고 하는 것은 받아들이는 것도 없습니다. 이와 같이 사리불이여, 보살마하살은 모든 법에서 받아들일 것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살운야에서 출생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리불이 말하였다.
“보살은 반야바라밀을 배워서 모든 법에는 받아들이는 것이 없으므로 살운야를 출생하는 것입니까?”
수보리가 말하였다.
“그러합니다, 그러합니다.”
사리불이 다시 말하였다.
“보살은 이와 같이 배워서 모든 법에는 받아들임도 없으며, 또한 받아들임을 배우지 않고, 또 멸함을 배우지 않는데, 어떻게 살운야를 출생할 수 있는 것입니까?”
수보리가 대답하였다.
“보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 또한 색이 생겨나는 것도 보지 않고 또한 색이 멸하는 것도 보지 않고 또한 받아들이지도 않고 또한 받아들이지 않음도 없고, 또 집착하지도 않고 또한 단절되지도 않고, 또한 늘어나지도 않고 또한 줄어들지도 않습니다. 왜냐하면 사리불이여, 5음이어서 있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생함도 보지 않고 또한 멸함도 보지 않으며, 또한 받아들임도 보지 않고 또한 받아들이지 않음도 보지 않으며, 또한 집착함도 보지 않으며, 또한 단절됨도 보지 않으며, 또한 늘어남도 보지 않고 또한 줄어듦도 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사리불이여, 5음이 있음과 나아가 살운야에 이르기까지도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또한 생멸도 보지 않고, 또한 받아들임도 보지 않고, 또한 집착과 단절도 보지 않고, 또한 증감도 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살운야는 공하므로 얻을 바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보살이여, 모든 법에는 생하는 바도 없고 멸하는 바도 없고 받을 바도 없고 집착할 것도 없고 끊어짐도 없고 늘어남도 없고 줄어듦도 없는 것으로 반야바라밀을 배워서 살운야에 이릅니다. 마땅히 이와 같이 생각을 지어야 하니, 또한 배울 바도 없으며, 또한 나올 바도 없는 것입니다.”
석제환인이 사리불에게 물었다.
“보살은 마땅히 어느 곳에서 반야바라밀을 구해야 하는 것입니까?”
사리불이 대답하였다.
“구익아, 보살마하살은 마땅히 「수보리소전품(須菩提所轉品)」 중에서 구해야 한다.”
석제환인이 말하였다.
“수보리의 인연(因緣)과 은혜의 힘[恩力]으로 사리불로 하여금 보살마하살의 반야바라밀을 마땅히 「수보리소전품」 중에서 구해야 한다고 말하게 하는 것입니까?”
수보리가 대답하였다.
“구익아, 나의 인연과 은혜의 힘이 아니다.”
석제환인이 말하였다.
“이 셋은 누구의 은혜의 힘에서 나오는 것입니까?”
수보리가 말하였다.
“이것은 부처님의 위신력에서 나오는 것이다.”
석제환인이 말하였다.
“모든 법은 모두 처소가 없는데, 어떻게 이것을 부처님의 위신력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말합니까? 여래께서는 또한 처소가 없는 법과 다른 곳에서 부처님을 보지 못하며, 또한 여여함과 다른 곳에서도 보지 못합니다.”
수보리가 말하였다.
“이와 같이 구익아, 여래께서는 또한 그 밖의 다른 곳[餘處]에서 보는 것이 아니고 또한 이처(異處)의 여여함 가운데서 보는 것도 아니다. 또한 여래가 여여함이 되지 않으며, 또한 여여함이 여래가 되지 않는다. 또한 5음이 여여함이 여래가 되지 않으며, 또한 여래가 5음이 여여함이 되지 않는다. 또한 5음법이 여래가 되지 않으며, 또한 여래가 5음법이 되지 않는다. 또한 살운야의 여여함이 여래가 되지 않으며, 또한 여래가 살운야의 여여함이 되지 않는다. 또한 살운야법이 여래가 되지 않으며, 또한 여래가 살운야법이 되지 않는다.
구익아, 만약 부처님과 5음법이 합하는 것도 아니고 또한 합하지 않는 것도 아니라고 한다면, 또한 5음법을 여의는 것과 합하지도 합하지 않는 것도 아니고, 또한 5음의 여여함과 합하지도 합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 나아가 살운야와 살운야법에 이르기까지와 여여함과도 또한 합하지 않는 것도, 또한 합하지 않는 것도 아닌 것이다. 구익아, 모든 법은 합하지도 않고, 흩어지지도 않으니 신력의 처소이며, 처소가 없는 행이 되는 것이다. 구익이 물은 것처럼 마땅히 어느 곳에서 반야바라밀을 구해야 하는가? 또한 5음 가운데서 구할 수 없고 또한 5음을 떠나서 구할 수 없다. 왜냐하면 구익아, 반야바라밀과 5음이라는 법은 또한 같은 것도 아니며, 또 다른 것도 아니며, 또한 형상이 없으며, 또한 볼 수도 없는 것이며, 또한 한 가지 모양[一相]에도 걸리는 것이 없으니 한 가지 모양이란 곧 모양이 없기 때문이다.
또한 구익아,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구할 때 또한 살운야를 떠나서 구하는 것도 아니며, 또한 살운야에서 구하는 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반야바라밀과 살운야를 구한다는 것은 또한 같은 것도 아니며, 또한 다른 것도 아니며, 또한 형상도 없는 것이며, 또한 보는 것도 아니며, 또한 한 모습에도 걸림이 없는 것이니, 한 모습이라고 말하는 것은 모습이 없기 때문이다. 무슨 뜻인가? 반야바라밀은 또한 5음도 아니며, 또한 5음을 여읜 것도 아니다. 반야바라밀은 또한 살운야도 아니며, 또한 살운야를 여읜 것도 아니다. 5음의 여여함은 또한 반야바라밀이 아니며, 반야바라밀은 또한 5음의 여여함을 여읜 것이 아니다. 반야바라밀은 또한 5음법이 아니며, 또한 5음법을 여읜 것도 아니다. 반야바라밀은 또한 살운야법도 아니며, 또한 살운야법을 여읜 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구익아, 모든 법은 또한 있는 것도 아니며, 또한 얻을 수 없으며, 모든 법은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5음은 반야바라밀이 아니고, 반야바라밀은 또한 5음을 여읜 것도 아니다. 반야바라밀은 또한 5음법도 아니며, 또한 5음법을 여읜 것도 아니다. 반야바라밀은 또한 5음의 여여함도 아니며, 또한 5음의 여여함을 여읜 것도 아니다. 반야바라밀은 또한 살운야도 아니고, 또한 살운야를 여읜 것도 아니다. 또한 살운야의 여여함도 아니고, 또한 살운야의 여여함을 여읜 것도 아니며, 또한 살운야법도 아니고, 또한 살운야법을 여읜 것도 아니다.”
석제환인이 말하였다.
“마하바라밀은 보살마하살의 대도(大度)이고, 바라밀은 모든 보살들의 무량․무한한 대도입니다. 이 가운데서 수다원․사다함․아나함․아라한․벽지불을 배워서 얻으며, 이 가운데서 보살이 불국토를 청정히 하고 중생을 교화하는 것을 배워서 이루며, 아뇩다라삼야삼불을 이루는 것입니다.”
수보리가 말하였다.
“구익아, 이와 같고 이와 같은 것이다. 석제환인이 말한 바와 다른 것이 없다. 이미 얻은 자와 곧 마땅히 얻을 자도 모두 마땅히 반야바라밀 가운데서 아유삼불을 이룰 것이다. 5음이 크기 때문에 반야바라밀도 또한 광대한 것이다. 구익아, 5음은 또한 앞도 없고 또한 뒤도 없고 또한 중간도 없고 또한 변제(邊際)도 없으며, 살운야에 이르기까지도 또한 이와 같다. 구익아, 이것이 보살마하살의 대도이다. 5음이 한량없으므로 보살마하살의 한량없는 도(度)이다. 왜냐하면 5음은 헤아릴 수 없기 때문이다. 비유하면 허공과 같아서 헤아릴 수 없는 것처럼 5음도 또한 헤아릴 수 없는 것이다. 공과 같아서 헤아릴 수 없는 것이며, 5음도 또한 헤아릴 수 없는 것이다. 5음을 헤아릴 수 없으므로 반야바라밀도 또한 헤아릴 수 없는 것이며, 나아가 살운야도 헤아릴 수 없으므로 보살이 제도한 반야바라밀도 또한 헤아릴 수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구익아, 살운야도 또한 헤아릴 수 없기 때문이다. 허공과 같아서 헤아릴 수 없는 것이며, 살운야가 헤아릴 수 없으므로 허공도 헤아릴 수 없다. 허공이 헤아릴 수 없으므로 반야바라밀도 또한 헤아릴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구익아, 보살마하살의 반야바라밀도 헤아릴 수 없는 것이고, 공도 헤아릴 수 없는 것이다. 5음이 바닥이 없으므로 보살의 반야바라밀도 또한 바닥이 없다. 왜냐하면 5음의 바닥과 변제는 볼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아가 살운야도 또한 바닥이 없는 것이다. 보살의 반야바라밀도 또한 바닥이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구익아, 살운야도 또한 바닥을 얻을 수 없으며, 또한 변제도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보살의 반야바라밀에도 바닥이 없는 것이다. 5음에 바닥이 없는 것이며, 살운야에 이르러도 또한 바닥이 없는 것이다.
또한 구익아, 인연에 바닥이 없으므로 보살의 반야바라밀도 또한 바닥이 없다.”
석제환인이 말하였다.
“수보리여, 어떤 인연이 바닥이 없어서 보살의 반야바라밀에도 바닥이 없는 것입니까?”
대답하였다.
“살운야의 인연에 바닥이 없기 때문에 보살의 반야바라밀에도 바닥이 없으며, 법 인연도 바닥이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보살의 반야바라밀에도 바닥이 없는 것이다.”
또 물었다.
“어떤 법 인연에 바닥이 없어서 보살의 반야바라밀에도 바닥이 없는 것입니까?”
대답하였다.
“구익아, 법성에 바닥이 없으므로 보살의 반야바라밀에도 바닥이 없는 것이다. 인연이 바닥이 없는 것처럼 보살의 반야바라밀에도 바닥이 없는 것이다.”
다시 물었다.
“어떤 인연에 바닥이 없어서 보살의 반야바라밀에 바닥이 없는 것입니까?”
대답하였다.
“여여한 것에 바닥이 없는 것과 같이 여여함의 인연에도 바닥이 없는 것이다. 여여함의 인연에 바닥이 없으므로 보살의 반야바라밀도 바닥이 없는 것이다. 중생이 바닥이 없으므로 보살의 반야바라밀에도 바닥이 없는 것이다.”
다시 물었다.
“어떻게 중생의 바닥이 없고, 보살의 반야바라밀에도 바닥이 없는 것입니까?”
대답하였다.
“구익아, 어떻게 생각하느냐? 어떤 곳의 법을 보살이 있다고 말하는 것인가? 또한 법이라고 말할 것도 아니며, 또한 법이 아니라고 말할 것도 아니다. 다만 가명(假名)이고, 문자를 들었을[擧字] 뿐이다. 이 이름을 드는 것도 또한 형상이 있는 것이 아니며, 들은 명자(名字)도 또한 인연이 없는 것이며, 들은 문자와 중생도 또한 인연이 없는 것이다. 구익아, 어떻게 생각하느냐? 반야바라밀에 중생을 지음이 있다고 설하고 있는가?”
“수보리여, 없습니다.”
“구익아, 만약 중생을 지음이 있다고 설하지 않는다면 어느 곳에 중생의 바닥이 있겠는가? 구익아, 여래․무소착․등정각은 갠지스강의 모래 수처럼 많은 겁의 수명에 머무시면서 중생은 생도 있고 멸도 있다고 말씀하셨다. 구익아, 어떻게 생각하느냐? 진실로 중생이 있고 생도 있고 멸도 있는 것인가?”
“그렇지 않습니다. 수보리여, 왜냐하면 중생이 청정하기 때문에 소유가 없이 깨끗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익아, 마땅히 알아야 하니, 중생이 바닥이 없어서 반야바라밀도 또한 바닥이 없으며, 또한 변제도 없는 것이다.”
31. 탄품(歎品)
이때 모든 범왕(梵王)과 모든 범천(梵天)이 함께 이 모임 가운데 있었다. 석제환인과 제석의 권속과 채녀의 무리도 또한 이 모임 가운데 있었다. 석(釋)․범(梵)과 모든 천자들이 각각 찬탄하여 말하였다.
“수보리가 설한 법은 쾌활하고 쾌활합니다. 모두 부처님의 위신인연(威神因緣)으로 능히 이 가르침을 연설한 것입니다. 만약 이 반야바라밀행을 멀리 여의지 않는다면 우리들은 마땅히 이 무리의 보살마하살 보기를 마땅히 여래를 뵙듯이 할 것입니다. 또한 능히 이 법은 볼 수 없으며, 또한 능히 색․통․상․행․식도 볼 수 없습니다. 나아가 살운야․삼승교처(三乘敎處)․나한․벽지불․부처에 이르기까지도 또한 얻을 수 없습니다.”
부처님께서 모든 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그러하다, 그러하다. 모든 천자들이 말한 것처럼 법은 얻을 것도 없으며, 또한 볼 수도 없는 것이다. 색․통․상․행․식에서부터 살운야에 이르기까지 모두 얻을 수가 없으며, 또한 볼 수가 없는 것이다. 다만 삼승의 가르침이 있을 뿐이다. 삼승의 가르침도 또한 얻을 수 없으며, 또한 볼 수도 없다. 어떤 이가 반야바라밀을 행하되 의지할 바가 없으면 마땅히 여래를 뵙듯이 해야 한다. 왜냐하면 반야바라밀 가운데서 널리 삼승의 가르침을 설하기 때문이다. 또한 6바라밀을 여의지 않으면 부처를 얻으며, 또한 내외공과 유무공을 여의지 않고 또한 37품과 부처님의 18법을 여의지 않고 또한 살운야를 여의지 않으면 부처를 얻는다. 모든 천자들이여, 보살은 모두 마땅히 모든 법인 단바라밀에서부터 살운야에 이르기까지 배워야 한다. 그러므로 마땅히 이 보살을 여래와 같이 여겨야 함을 알아야 한다.”
부처님께서 모든 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옛적에 내가 화엄국(花嚴國)에서 제화갈불(提和竭佛:연등불)을 섬긴 이후로 처음부터 6바라밀을 여의지 않았고, 내외공에서부터 유무공에 이르기까지 37품․4선(禪)․4등(等)과 4공정(空淨)․모든 삼매문․다린니문․부처님의 10종력․4무소외(無所畏)․4무애혜․대자대비․부처님의 18법과 무앙수의 모든 부처님의 상법(上法)에 이르기까지 처음부터 이 모든 법을 여의지 않았으며, 또한 의지할 바도 없었다. 이때 제화갈불께서 곧 나에게 수기하시기를 ‘이후 아승기겁의 미래세에 그대는 마땅히 부처를 이루어 석가문(釋迦文) 여래․무소착․등정각․무상사(無上士)․도법어(道法御)․천인사(天人師)라고 불릴 것이다’라고 하셨다.”
이에 모든 천자들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기이하고 특이합니다.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 살운야에서 취할 것도 없고 버릴 것도 없습니다. 5음법에서도 또한 취할 바도 없고 또한 버릴 바도 없습니다.”
그때 부처님께서는 네 무리의 제자들인 비구․비구니․우바새․우바이와 모든 보살마하살들과 모든 사천왕과 위로 아가니타천에 이르는 모든 천들의 대중들이 이미 선정[定]에 들어갔음을 보셨다. 부처님께서 석제환인에게 말씀하셨다.
“구익아, 만약 어떤 보살마하살, 비구와 비구니, 우바새와 우바이, 모든 천과 천녀들이 반야바라밀을 받아 지니고 외우고 독송하고, 또 다른 사람에게 보시하여 외우고 독송하게 하고 살운야의 뜻을 여의지 않는다면 마군과 마군의 천자들이 그 틈을 얻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선남자․선여인이 5음이 공하고 모양도 없고[無相] 원도 없는[無願] 행에 머물기 때문에 공․무상․무원의 기회를 얻을 수 없으며, 나아가 살운야가 공행(空行)이므로 또한 살운야의 공의 기회를 얻을 수 없다. 이 일에서 기회를 얻을 수 있다는 것도 볼 수 없는 것이다. 구익아, 선남자․선여인에게 사람이 아닌 것[非人]이 그 틈을 얻을 수 없다. 왜냐하면 이 선남자․선여인은 대자대비가 있어서 4등심(等心)으로 중생을 이익되게 하기 때문이다.”
구익아, 이 선남자․선여인의 수명도 끝내 중간에 잘못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 선남자․선여인은 단바라밀을 행할 때 일체 중생들을 위해서 평등하게 대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수명이 잘못되지 않는 것이다. 구익아, 이 삼천대천국토의 모든 사천왕(四天王)․도리천(忉利天)․염천(炎天)․도술천(兜術天)․니마라천(尼摩羅天)․바라니밀천(波羅尼密天)․범천(梵天)․아파회천(阿波會天)․수하기나천(首訶旣那天)․유우파라천(惟于頗羅天) 등 이 모든 천인들이 아뇩다라삼야삼보의 뜻을 일으켰지만 모든 천자들은 아직 반야바라밀을 듣지 못하였고, 아직 외우고 독송하고 지니지 못한 모든 천자들은 모두 마땅히 반야바라밀을 익혀 행하고 외우고 독송하고 지녀서 뜻이 항상 살운야에서 여의지 않아야 한다. 구익아, 이 선남자․선여인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 만약 받아 지니고 외우고 독송하고 설하고 익히고 보호하고 행하여 살운야의 뜻을 여의지 않는다면, 이 선남자․선여인은 공허하여 적막한 곳에 있거나 밖에 앉아 있거나 집에 있거나 간에 끝내 두려워하지 않고 끝내 무서워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 선남자․선여인은 그 내외공과 유무공이 밝기 때문에 또한 의지하지 않는다.”
그때 삼천대천국토의 모든 사천왕과 위로 수타회천에 이르기까지 모두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저희들은 마땅히 이 선남자․선여인이 반야바라밀을 행하고 외우고 독송하여, 설하고 익히고 보호하고 지닌다면 보호할 것입니다. 저희들은 마땅히 살운야에서 여의지 않는다면 옹호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보살이 내왕하는 인연으로 3악취를 끊고 천인의 빈곤함을 끊고 사람들 가운데의 탐욕을 끊고 이 무리의 재변(災變)을 끊고 모든 기아와 곡식이 귀함을 끊기 때문입니다. 보살마하살이 내왕한 인연 때문에 10선(善)의 일이 세간에 나타나고, 곧 4선․4등․4공정(空定)․6바라밀과 내외공에서부터 유무공에 이르기까지를 알며, 곧 37품․부처님의 18법과 살운야에 이르기까지도 압니다. 보살이 내왕한 인연 때문에 세간에 곧 찰리(刹利)․장자종(長者種)이 있는 것을 알며, 곧 바라문대성종이 있는 것을 알며, 곧 전륜성왕이 있는 것을 알며, 곧 사천왕에서 위로 아가니타천에 이르기까지도 있는 것을 압니다. 보살이 내왕한 인연 때문에 곧 수다원․사다함․아나함․아라한․벽지불의 도가 있음을 알며, 곧 중생을 가르칠 수 있음을 알며, 곧 청정한 불국토가 있음을 압니다. 보살이 내왕한 인연 때문에 곧 부처님 세존․여래․무소착․등정각이 있음을 알며, 곧 법륜을 굴리는 것이 있음을 알며, 곧 삼보가 있음을 압니다. 그러므로 모든 천의 아수륜(阿須倫)과 모든 세간의 사람들이 모두 이 보살마하살을 옹호합니다.”
부처님께서 석제환인에게 말씀하셨다.
“이와 같이 구익아, 보살이 내왕한 인연 때문에 3악취를 끊고, 불삼보를 일으키는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천과 세인들이 모두 마땅히 이 보살마하살을 공경해야 하며, 그 적당한 바를 주고 항상 옹호해야 한다. 구익아, 이 보살마하살을 공양하고 받들어 섬기기를 마땅히 나를 공양하고 공경하고 섬기는 것처럼 해야 한다. 마땅히 이와 같이 아는 것이 여래를 공양하는 것과 다름이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구익아, 모든 천과 세간 사람들은 마땅히 이를 공경해야 한다. 구익아, 삼천국토에 사탕수수․대죽․갈대․벼․마․총림이 가득 찬 것처럼 모든 성문․벽지불의 수가 이와 같은 것이다. 만약 어떤 선남자․선여인이 빠짐없이 그들을 공양하고 받들어 섬기고 적당한 바를 주어도 선남자․선여인이 뜻을 발하여 6바라밀을 행하는 보살을 공양하고 받드는 것과 같지 않다. 왜냐하면 구익아, 나한․벽지불이 있기 때문에 보살․여래․무소착․등정각을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니, 보살 인연이 있기 때문에 나한․벽지불․삼야삼불을 아는 것이다. 그러므로 구익아, 모든 천과 세인들은 마땅히 이 보살마하살을 공경하고 받들어 섬겨야 하며, 마땅히 옹호해야 한다.”
32. 항중생품(降衆生品)
그때 석재환인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심히 기이하고 심히 특이합니다. 반야바라밀을 받아 지니고 외우고 익히고 읽고 보호하고 행하고 생각하는 사람은 현세에 공덕을 얻고 중생을 가르칠 수 있으며, 모든 불국토를 청정하게 하고, 한 불찰(佛刹)에서 다른 한 불찰에 이르기까지 모든 부처님을 뵙고 이미 뜻으로 공양하려고 하면 그 원하는 바에 따라서 곧 공양물을 얻을 수 있습니다. 선본(善本)을 구족하여 모든 부처님의 처소에서 경법(經法)을 듣고 삼야삼불을 얻을 때까지 처음부터 중간에서 잊지 않습니다. 곧 집을 성취할 것이며 부모를 성취할 것이며 태어남을 성취할 것이며 권속을 성취할 것이며 상(相)을 성취할 것이며 광명을 성취할 것이며 눈을 성취할 것이며 귀를 성취할 것이며 삼매를 성취할 것이며 다린니를 성취할 것입니다. 구화구사라로써 변신하여 부처님처럼 한 나라에서 다른 한 나라에 이르기까지, 부처님께서 계시지 않는 곳에 이르기까지 도착하여 곧 6바라밀의 공덕을 찬탄하고, 내외공과 유무공․4선(禪)․4등(等)․4공정(空淨)을 찬탄하며 모두의 공덕을 찬탄하고, 또 37품과 부처님의 18법의 공덕을 찬탄합니다. 구화구사라로써 중생을 위해서 설법을 하며, 삼승으로써 중생을 항복시킵니다.”
석제환인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기쁩니다. 세존이시여, 매우 기이하고 매우 특이한 일입니다. 어떻게 반야바라밀을 지니면 다섯 바라밀을 모두 지니고 또한 37품과 부처님의 18법에 이르기까지도 모두 지니며, 또한 성문․벽지불의 법에 이르기까지도 모두 지니며, 또한 살운야와 살운야사(薩云若事)를 지니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석제환인에게 말씀하셨다.
“그러하다. 구익아, 반야바라밀을 지니면 이미 모든 바라밀을 모두 지니는 것이고, 이미 37품과 부처님의 18법을 모두 지니는 것이고, 성문․벽지불의 법과 살운야사를 모두 지니는 것이다. 또 구익아, 반야바라밀을 지니고 가까이 하고 읽고 생각하면 모든 얻을 수 있는 공덕과 상응하게 될 것이다. 또한 듣되 자세히 들어야 한다. 이 선남자․선여인이 얻는 금세의 공덕을 그대를 위해서 설할 것이다.”
석제환인이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원하옵건대 즐겁게 듣겠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다른 것을 배운 외도(外道)나 마군과 그 부계(部界)의 한 종류인 사람이거나 파괴하려고 생각하고 비뚤어져 어그러지게 하려고 생각하고 모든 악의를 지니고 와서 무너뜨리려고 하면 모두 이 원을 이루지 못하고 중도에서 없어진다. 왜냐하면 구익아, 이 보살마하살은 긴 밤에도 6바라밀을 행했기 때문이다. 중생이 재물을 탐하여 다투기 때문에 보살은 안팎의 소유법을 모두 희사하여 중생을 안립시키므로 단(檀)바라밀을 행하는 것이다. 모든 중생들은 악한 계[惡戒]를 행하기 때문에 보살은 내외법(內外法)을 희사하여 시(尸)바라밀에 중생을 안립시킨다. 중생이 긴 밤 동안 싸우고 다투고 원망하고 분노하므로 보살은 내외법을 희사하여 중생을 찬(羼)바라밀에 안립시킨다. 중생이 게으르므로 보살은 내외업을 희사하여 중생을 유체(惟逮)바라밀에 안립시킨다. 중생은 항상 뜻이 어지러우므로 보살은 내외법을 희사하여 중생을 안립시켜 선(禪)바라밀을 행하게 한다. 중생이 악한 지혜를 탐하므로 보살은 내외법을 희사하여 중생을 안립시켜 반야바라밀을 행하게 한다. 중생은 생사은애(生死恩愛)에 머물므로 보살은 바라밀과 구화구사라로써 은애 가운데 생사에서 끌어내어 4선․4등․4공정(空定)․37품․공․무상․무원에 안립시킨다. 권하고 도와주어 안립시켜 중생이 수다원에서 아라한에 이르도록 도와주고 중생이 벽지불을 얻도록 도와주고 중생에게 권하여 보살행을 해서 부처를 얻게 한다. 구익아, 보살의 행을 행해야만 현세의 특이한 덕을 얻고, 후세에 곧 아뇩다라삼야삼보․아유삼불을 얻고, 곧 법륜을 굴려서 중생이 응하는 바에 따라 해탈하게 한다. 이것이 보살의 후세에 기이한 덕이 되는 것이다.
또 구익아, 선남자․선여인이 반야바라밀을 받아 지녀 만약 외우고 독송하고 익히고 반야바라밀을 보호하고 행하면 그 땅의 마군과 마군의 천과 다른 것을 배운 외도의 부류들이 무너뜨리고 어지럽히려고 하거나 중도(中道)에서 끊으려고 하거나 싸우고 다투고 악의를 가져 향하려고 해도 끝내 이 뜻을 일으켜 얻지 못하게 된다. 이 보살이 행한 공덕은 점점 더욱 높이 나타나고 특이해져서 능히 이를 자가 없게 된다. 반야바라밀의 음성으로써 삼승에서 나와 해탈을 얻게 한다. 비유하면 구익아, 마기(摩祇)라고 하는 약초가 있는데 뱀이 배가 고파서 먹이를 찾아다니다가 곤충을 먹으려고 할 때 곤충이 멀리서 뱀을 보고, 약초가 있는 곳으로 가면 뱀은 그곳에 가고자 하나 약초의 냄새 때문에 그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것과 같다. 왜냐하면 이 약초의 위덕 때문에 뱀으로 하여금 중도에서 돌아가게 하는 것이다. 구익아, 이것은 마기라는 약초의 위덕이 그러하기 때문이다.
만약 선남자․선여인이 반야바라밀을 행하고, 외우고 독송하고 익히고 지니고 보호한다면 그를 어지럽히려고 하며, 그를 향해 끊어 무너뜨리고, 투쟁하려고 해도 반야바라밀의 위덕의 힘으로 그 나아갈 곳을 따라서 그들로 하여금 스스로 멸하게 한다. 왜냐하면 이 반야바라밀은 모든 법의 정(定)이며, 모든 법의 다툼을 없애기 때문이다. 무엇이 모든 법인가? 이른바 음욕․노여움․어리석음, 12인연에 사견이 없음, 뜻에 집착함이 있고, 아견(我見)이 있고, 인견(人見)이 있고, 중생견(衆生見)이 있고, 진견(盡見)이 있고, 상견(常見)․무구견(無垢見)․무유견(無有見)․중사견(衆邪見)․질악계견(嫉惡戒見)․진에견(瞋恚見)․해태(懈怠)․어지러운 뜻[亂意]․악지상견(惡智常見)이 있다. 그리고 낙상(樂想)․정상(淨想)․아상(我想)과 은애(恩愛)의 행이 있다. 색․통․상․행․식을 받아들이고 6바라밀을 받아들이고 내외공을 받아들이고 유무공을 받아들이고 37품을 받아들이고 18법을 받아들이고 살운야를 받아들이고 니원에서 5근(根)이 증익됨을 받아들인다. 이것이 모든 법이 공한 것이다. 삼천대천찰토의 모든 사천왕과 모든 제석환인과 모든 범천, 나아가 아가니타천에 이르기까지 모든 천인들이 모두 이 선남자․선여인이 반야바라밀을 행하고 외우고 설하고 익히고 지닌다면, 이들을 옹호할 것이다. 시방의 모든 현재불이 모두 함께 이 선남자․선여인이 반야바라밀을 행하고 외우고 독송하며 설하고 지니며 익히고 보호한다면 이들을 옹호할 것이다. 모든 악이 소멸하고 모든 선이 증익되고 6바라밀은 점점 더욱 증익되니 또 의지할 바가 없어서이다. 내외공이 또한 증익되니 의지할 바가 없어서이며, 37품․부처님의 18법․모든 삼매문․다린니문․살운야혜가 점점 증익되니 의지하는 바가 없어서이다. 설한 것을 사람들이 모두 신용하니 모든 중생들과 함께 벗을 삼고 말한 바를 잃지 않고 끝내 성냄이 없으며 끝내 스스로 높이지도 않는다. 또한 질투도 하지 않고, 스스로 살생을 하지 않고,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자비를 행하게 하고, 중생을 위해서 살생하지 않는 덕을 찬탄하며, 항상 모든 살생하지 않는 자를 찬탄한다. 항상 스스로 주지 않은 것을 취하는 것을 멀리 여의고 사람들로 하여금 도둑질하지 않게 하고, 항상 도둑질하지 않는 덕을 찬탄한다. 스스로는 청정하게 행하고,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음행하지 않게 하고 또한 음행하지 않는 덕을 찬탄한다. 자신 스스로도 망어(妄語)․추언(麤言)․악구(惡口)․기어(綺語)를 멀리 여의고, 또한 질투와 성냄과 삿된 견해를 여의고,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바른 견해를 갖게 하고, 또한 바른 견해의 덕을 찬탄한다. 스스로 6바라밀을 행하고, 항상 다른 사람이 6바라밀을 행하도록 하고 항상 6바라밀을 행한 대공덕을 찬탄하고 설한다. 스스로 내외공을 행하고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공을 행하게 하고 또한 공을 행한 덕을 찬탄한다. 유무공도 또한 이와 같다. 스스로 다린니와 모든 삼매문을 행하고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모든 삼매를 배워 지니게 하고 총지와 삼매의 덕을 찬탄하여 설한다. 스스로 4선(禪)을 행하고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선을 행하게 하고 선정의(禪定意)를 행하는 덕을 칭찬하여 설한다. 스스로 4등(等)을 행하고,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4등을 행하게 하고 또한 자비의 공덕을 칭찬하여 설한다. 스스로 4무형정(無形定)을 행하고,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행하게 하고 무형정(無形定)의 공덕을 칭찬한다. 스스로 근력(根力)과 37품을 행하고,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행하게 하고 또한 도품의 공덕을 칭찬한다. 스스로 3삼매(三昧)․8유무선(惟無禪)․9차제선(次第禪)․여래의 10력․4무소외․4무애혜․대자대비․부처님의 18법․살운야혜를 행하고,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살운야를 행하게 하고 살운야의 공덕을 찬탄한다. 항상 6바라밀을 행하고 보시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중생에게 주며 함께 아뇩다라삼야삼보를 얻게 되니 의지할 바가 없어서이다. 지은 보시․지계․정진․인욕․일심․지혜도 단지 일체 중생들을 위할 뿐이며 그들로 하여금 아뇩다라삼야삼보를 얻어 해탈하게 하니, 또한 의지할 바가 없어서이다.
선남자․선여인이 이와 같이 6바라밀을 행할 때 이렇게 생각한다.
‘만약 내가 보시하지 않으면 빈천한 집안에 태어날 것이며, 중생을 가르칠 수 없을 것이며, 또한 불국토를 청정하게 하지 못할 것이며, 또한 살운야도 얻지 못할 것이다. 만약 내가 계를 지키지 않으면, 3악취에 태어나서 인간의 몸을 얻지 못하고, 곧 중생을 가르치고 불국토를 청정하게 하지 못하고, 또한 살운야도 얻지 못할 것이다. 내가 만약 인욕을 행하지 않으면 곧 모든 감관이 훼손되고, 또한 설상(舌相)이 얼굴을 덮지 못하여 형상을 성취하지 못하고, 보살의 구족한 몸도 얻지 못하고, 중생을 가르치지도 불국토를 청정하게 하지도 못하고, 또한 살운야도 이루지 못할 것이다. 내가 정진하지 않고 게으르다면 악처(惡處)에 태어나서 몸이 명료하지 못할 것이며, 또한 중생을 가르치지도 불국토를 청정하게 하지도 살운야를 이루지도 못할 것이다. 내가 만약 선의(禪意)를 행하지 않고 선정을 하지 않으면, 또한 모든 삼매의 지혜를 얻어 중생을 가르치며 불국토를 청정하게 하고, 살운야를 이루는 것을 얻지 못할 것이다. 만약 내가 악지(惡智)를 행한다면, 곧 구화구사라를 얻지 못하고 나한․벽지불지를 제도하지 못할 것이며, 또한 중생을 가르치지도 불국토를 청정하게 하지도 살운야를 이루지도 못할 것이다.’
선남자․선여인은 마땅히 이와 같이 생각한다.
‘내가 탐욕하고 질투하는 마음을 따르므로 단바라밀을 행하는 것을 구족하지 못하면 안 된다. 악계(惡戒)를 따르기 때문에 시바라밀을 행하는 것을 구족하지 못하면 안 된다. 내가 성내기 때문에 찬바라밀을 행하는 것을 구족하지 못하면 안 된다. 내가 게으르기 때문에 유체바라밀을 행하는 것을 구족하지 못하면 안된다. 내가 어지러운 뜻 때문에 선바라밀을 행하는 것을 구족하지 못하면 안 된다. 내가 악한 지혜를 따르기 때문에 반야바라밀을 행하는 것을 구족하지 못하면 안 된다. 6바라밀의 행을 구족하지 못하면 끝내 살운야를 생하지 못할 것이다.’
선남자․선여인이 반야바라밀을 받아 지니고 외우고 보호하고 행하면 마땅히 현세와 후세의 공덕의(功德意)를 얻게 되어 마침내 살운야의 뜻을 여의지 않을 것이다.”
석제환인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심히 기이하고 심히 특이합니다. 기쁩니다. 반야바라밀은 이 보살마하살이 베푼 것이며, 장차 인도하여 그렇게 할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구익아, 어째서 반야바라밀은 보살마하살이 지어 보시하고 장차 인도할 일이 되느냐?”
석제환인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속의 모든 곳에 보시하되, 만약 부처님과 성문․벽지불과 빈궁한 자와 거지에게 구화구사라로써 주지 않았다면, 구화구사라가 없어서 곧 아만[貢高]에 떨어지게 될 것입니다. ‘나는 단바라밀․시바라밀․유체바라밀․선바라밀을 구족하게 행했다’고 말하며, ‘나는 반야바라밀을 깨달아 행했다’고 말하면 이는 세속의 바라밀로서 곧 아만에 떨어지게 됩니다. ‘나는 다린니와 모든 삼매문을 구족하게 행하였다’고 말하며, ‘나는 10종력과 부처님의 18법을 구족하였고 나는 마땅히 중생을 가르치고 불국토를 청정하게 했다’고 말하며, ‘나는 마땅히 살운야혜를 얻었다’고 말한다면 우리의 아만에 들어가는 것이며, 이는 세속의 반야바라밀입니다. 보살이 이 세속법을 행하면 곧 우리의 아만에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보살마하살이 도의 단바라밀을 행했다면, 또한 아상(我想)도 없으며, 또한 시상(施想)도 없으며, 또한 물상(物想)도 없으며 또한 받았다는 생각도 보시했다는 생각도 없습니다. 이것이 반야바라밀을 행하는 보살마하살의 보시가 장래를 인도하는 것입니다. 보살이 계를 행하여도 시바라밀은 있지 않고, 인욕을 행하여도 또한 찬바라밀은 있지 않고, 정진을 행하여도 또한 유체바라밀은 있지 않고, 정의(定意)를 행하여도 또한 선바라밀은 있지 않고, 큰 지혜를 행하여도 반야바라밀은 있지 않고, 37품 나아가 부처님의 18법을 행하여도 또한 무소유이고, 또한 의지할 바도 없습니다. 대자대비를 행하고 살운야를 행하여도 또한 무소유이고 또한 의지할 바도 없습니다. 세존이시여, 이것을 반야바라밀을 행하는 보살의 보시가 장차 인도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방광반야경 제7권
서진 우전국 무라차 한역
33. 수행품(守行品)
부처님께서 석제환인에게 말씀하셨다.
“만약 선남자․선여인이 이 깊은 반야바라밀을 받아서 외우고 독송하고 지니고 익히고 수행한다면 구익(拘翼)아, 이 선남자는 만약 싸우는 전투 중에서도 끝내 중도에서 그 수명이 손상되지 않고, 만약 칼․창․화살을 쓴다 해도 마침내 그 몸을 맞추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이 선남자는 긴 밤에도 6바라밀을 행하여 이미 음욕의 칼과 성냄과 어리석음의 칼로부터 항복받았으며, 또 타인을 위해서 음욕․성냄․어리석음으로부터 항복받았기 때문이다. 스스로 이미 사견(邪見)의 칼로부터 항복받았고 또 타인을 위해 사견의 칼로부터 항복받았으며, 또 스스로 모든 습관과 은애(恩愛)의 칼로부터 항복받았고, 또 능히 타인을 위해서 모든 습관과 은애의 칼로부터 항복받았기 때문이다. 구익아, 그러므로 선남자․선여인은 창․칼․화살에 맞지 않는다.
또 구익아, 선남자․선여인이 반야바라밀을 받아 지니고 외우며 독송하고 수행하여 살운야의 뜻을 여의지 않는다면 마침내 중독되지 않고, 끝내 벌레에게 물리지 않고, 끝내 적을 만나지 않고, 끝내 수해를 입지 않고, 끝내 불도 만나지 않고, 온갖 악한 일들도 끝내 따르지 않는다. 왜냐하면 구익아, 이 반야바라밀은 위없는 주술[術]이기 때문이다. 선남자․선여인이 이 주술을 배우면 또한 스스로 악을 생각하지 않고, 또한 타인의 악도 생각하지 않고, 또한 이 두 가지 악도 생각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또한 자신도 있지 않고 또한 타인도 있지 않고 또한 지견(知見)도 있지 않고 또한 5음도 있지 않기 때문이다. 위로 살운야에 이르기까지도 또한 무소유이며, 얻을 바가 없다. 소유할 것이 없다고 하는 것은 또한 스스로도 악을 생각하지 않고 또한 타인의 악도 생각하지 않고, 또한 이 두 가지 악도 생각하지 않는다. 아뇩다라삼야삼불을 얻기에 이르기까지 중생의 뜻을 관한다. 왜냐하면 이 주술을 배웠기 때문이다. 과거․미래․현재의 모든 여래․무소착․등정각께서는 모두 이 주술로부터 아유삼불(阿惟三佛)을 얻는 데 이르게 된다.
또한 구익아, 만약 선남자․선여인이 이 반야바라밀을 배워 이미 써서 지닌다면 사람이든 사람이 아니든 간에 마침내 그 틈을 얻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삼천대천국토와 시방의 무앙수 아승기의 모든 국토 가운데 모든 사천왕과 위로 아가니타(阿迦膩吒)의 모든 천에 이르기까지 다 함께 이 선남자․선여인을 옹호하기 때문이다. 반야바라밀을 써서 지니고 공양하고 존경하며 예를 올리는 것은 서사(書寫)하여 지니는 덕이 이와 같아서이다. 만약 단지 반야바라밀을 써서 지니기만 하고 외우지도 독송하지도 않고, 또한 지키고 행하지 않아도, 비유하건대 도량의 사면․좌우에 앉아 있으면 그 가운데 축생이나 그 밖의 사람이나 사람 아닌 것이 와서 해치려고 해도 마침내 그 틈을 얻지 못하는 것과 같다. 왜냐하면 과거의 모든 여래․무소착․등정각께서 모두 이 가운데서 부처를 얻었기 때문이다. 미래와 현재의 모든 여래․무소착․등정각께서 모두 또한 마땅히 이 가운데서 부처를 얻기 때문이다. 불도를 이미 얻고 나서는 일체 중생들에게 무서움도 없고 두려움도 없게 해 준다. 이미 무서움도 없고 두려움도 없으면 모두 천상인의 복을 받게 하고 삼승에 안립시키고 제도하여 해탈을 얻게 한다.
왜냐하면 구익아, 이 반야바라밀은 비유하면 이 도량의 땅이 일체의 옹호를 받는 것과 같으니 마땅히 예를 갖추어 이름난 꽃․도향(擣香)․택향(澤香) 다년생 풀로서 난과에 속한다. 매 줄기마다 일엽이 나온다. 여름날에 화경(花莖)이 나오고 경 하나마다 일화(一花)가 되며 색은 홍자색이다.
․잡향․비단 화개(花蓋)․당번(幢幡)․음악 등으로 공양을 받는 것이다.”
석제환인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만약 선남자․선여인이 반야바라밀을 써서 경권(經卷)을 이미 지니고 이름난 꽃․도향․택향․잡향․비단 화개․당번․음악으로 공양합니다. 이와 같이 공양을 하는 것과 세존께서 반니원하신 후에 사리를 취하여 이름난 꽃․도향․택향․잡향․비단 화개․당번․음악 등으로 공양하여 이와 같이 공양드리면 어느 것이 그 복이 더 많은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석제환인에게 말씀하셨다.
“구익아, 내가 이제 그대에게 되묻겠으니 질문한 바에 따라서 대답하여라. 어떻게 생각하느냐? 여래․무소착․등정각께서 살운야를 이루고 이 상호(相好)를 얻은 것은 어디로부터 배워서 얻은 것이냐?”
석제환인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저는 여래․무소착․등정각께서 살운야를 깨닫고 상호를 이룬 것은 반야바라밀 가운데서 배워 얻은 것이라고 들었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러하다, 그러하다. 구익아, 이 몸에 상호를 가졌으므로 여래라고 이름하는 것이 아니라 살운야의 지혜를 깨달아 얻었기 때문에 여래를 이룬 것이다. 이 살운야는 반야바라밀 가운데서 출생한 것이다. 이와 같이 구익아, 여래가 소유한 몸은 살운야 지혜의 집인 것이다. 여래는 이 집으로 인하여 살운야를 깨달아 얻는다. 그러므로 살운야 지혜의 길이라고 이름하는 것이다. 내가 반니원한 이후에 사리공양해야 하며, 이와 같이 선남자․선여인이 반야바라밀를 서사하고 외우고 독송하고 설하고 익히고 지니고, 지키고 행하고 경권을 공양할 때 이름난 꽃․도향․택향․잡향․비단 화개․당번․음악으로 하고, 공경하고 예를 갖추어 이와 같이 공양하는 것은 살운야를 공양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구익아, 그러므로 선남자․선여인은 반야바라밀을 받아 지니고 외우고 독송하고 설하고 마땅히 지키고 익히고 행해야 하며, 마땅히 경권을 이름난 꽃․도향․백향․잡향․비단 화개․당번․음악으로 공양하고, 마땅히 공경하고 예를 갖추어야 한다. 만약 반니원한 이후에 사리를 편안한 곳에 모셔 탑을 세우고, 이름난 꽃․도향․택향․잡향․비단 화개․당번․음악으로써 공양한다고 하자, 만약 선남자․선여인이 반야바라밀을 써서 지니고 외우고 생각하고 지키고 받들어 섬기고 이름난 꽃․도향․택향․잡향․비단 화개․당번․음악으로 공양하면 그 복이 사리를 공양한 것보다 많다. 왜냐하면 이 가운데서 사리가 출생하고, 내외공과 유무공․37품․부처님의 18법이 모두 이 가운데서 출생하고, 모든 삼매문과 다린니문이 모두 이 가운데서 출생하고, 중생을 교화하고 불국토를 청정하게 하는 것도 또한 이 가운데서 출생하기 때문이다. 또 보살마하살이 집에 기거하는 것을 성취하고, 색상(色像)을 성취하고, 재물을 성취하고, 권속을 성취하고, 대자대비함이 모두 이 가운데서 출생하며, 찰리종(刹利種)․바라문종․대성(大姓) 장자종(長者種)과 사천왕에서부터 위로 아가니타천에 이르기까지 모두 이 가운데서 출생하며, 수다원에서부터 나한․벽지불․보살․불․삼야삼불과 살운야에 이르기까지 모두 이 가운데서 출생하기 때문이다.”
이때 석제환인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이 염부제의 사람이 반야바라밀을 공경하지도, 공양하지도, 받들어 섬기지도 않는 것은 이 무리의 사람들이 그 존귀함과 마땅히 공양해야 함을 알지 못해서입니까?”
부처님께서 석제환인에게 말씀하셨다.
“구익아, 어떻게 생각하느냐? 염부제 가운데 어느 정도의 사람들이 부처님을 믿고 법을 믿고 비구승을 믿으며, 어느 정도의 사람들이 3존(尊)에 대하여 여우처럼 의심하며, 어느 정도의 사람들이 3존을 공경하는지 아느냐?”
석제환인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을 의지하고 법을 의지하고 비구승을 의지하는 자는 적고 적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구익아, 어떻게 생각하느냐? 염부제 가운데 어느 정도의 중생들이 37품․3탈문(脫門)․8유무(惟無)․9차제선(次第禪)․6통(通)․4등(等)과 4공정(空定)․4무애혜 등을 얻었으며, 염부제 가운데 어느 정도의 중생들이 세 가지의 의심을 없애서 수다원에 상응하며, 어느 정도의 중생들이 세 가지의 번뇌[垢]가 없어져서 사다함에 상응하며, 어느 정도의 중생들이 다섯 가지의 의심을 끊어서 아나함에 상응하며, 어느 정도의 중생들이 위의 5처(處)를 마치고 아라한이 되며, 어느 정도의 중생들이 벽지불도를 일으키며, 어느 정도의 중생들이 아뇩다라삼야삼보의 뜻을 일으키는가?”
“세존이시여, 적은 중생들이 37품을 얻으며 삼야삼불을 얻은 자는 아주 적습니다.”
부처님께서 석제환인에게 말씀하셨다.
“이와 같이 구익아, 중생이 심히 많지만 도의 뜻을 일으킨 자는 적고 적다. 왜냐하면 이 전세에 부처님을 뵙지 못했고, 법을 듣지 못했고, 비구승을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보시를 하지 않았고, 계를 지키지 않았고 계를 옹호하지 않았고, 인욕하지 않았고, 정진하지 않았고, 선이 있음을 듣지 못했고, 반야바라밀을 듣지 못했기 때문이다. 또한 내외공과 유무공을 듣지 못했고, 또한 37품과 부처님의 18법을 듣지 못했고, 또한 이러한 것들을 듣지도 못했으며, 또한 생각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또한 삼매가 있음을 듣지 못했고, 또한 살운야가 있음을 듣지 못했고, 또한 그 일을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구익아, 마땅히 알아야 하니 적은 중생이 3존을 믿을 뿐이며 이 가운데서도 적은 수의 중생이 뜻을 일으켜 벽지불도에 이르며 이 가운데서 다시 적은 수의 중생이 보살도를 행하며, 비록 아주 적은 중생이 보살도를 행하지만 아뇩다라삼야삼보에 이르려고 하는 자는 아주 적을 뿐이다.
구익아, 나는 이 사이에서 불안(佛眼)으로써 시방의 헤아릴 수 없는 아승기의 중생들이 아뇩다라삼야삼보를 행하는 것을 보았는데, 반야바라밀과 구화구사라(漚惒拘舍羅)를 여의지 않은 한두 사람이 아유월치지(阿惟越致地)에 머물러 있을 뿐이고 대부분은 나한․벽지불도에 떨어져 있으니, 반야바라밀과 구화구사라를 여의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구익아, 선남자․선여인이 뜻을 일으켜 아뇩다라삼야삼보에 이르려고 하면 마땅히 반야바라밀을 받아 지녀야 하고, 마땅히 외우고 독송하며, 마땅히 생각하고 익히고 지키며 행하여 가져야 한다. 이 반야바라밀을 서사한 후에는 향․꽃․당번․비단 화개로써 공양해야 한다. 모든 나머지 공덕도 반야바라밀에 들어가니, 마땅히 받아 지니고 또한 마땅히 외우고 생각하고 지키고 행해야 한다.
어떤 공덕이 반야바라밀에 들어가는 것인가? 이른바 보시․지계․인욕․정진․일심(一心)과 내외공․소유공․무소유공과 모든 삼매문․다린니문․37품․부처님의 18법․대자대비 등이다. 나머지 무량한 불법이 모두 반야바라밀에 들어가니, 또한 마땅히 배우고 받아 지니고 외우고 지키고 행하며 그 중의 일들을 생각해야 한다. 왜냐하면 구익아, 이 선남자․선여인은 마땅히 이와 같이 지을 줄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모든 여래께서 본래 보살도를 행할 때 또한 반야바라밀을 배웠고, 또한 선(禪)바라밀․유체(惟逮)바라밀․찬(羼)바라밀․시(尸)바라밀․단(檀)바라밀을 행하였으며, 내외공에서부터 유무공․모든 삼매문․다린니문에 이르기까지 나아가 부처님의 18법․대자대비와 나머지 한량없는 모든 불법을 행하였다. 우리들은 모두 마땅히 배워야 하며, 우리들은 반야바라밀과 모든 불법을 존경해야 하니, 모두 다 모든 부처님 여래의 가르침이기 때문이다. 벽지불․아라한․아나함․사다함․수다원과 살운야의 가르침에 이르기까지 모두 다 반야바라밀 가운데서 배워 이루어서 차안(此岸)을 건너 피안(彼岸)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구익아, 선남자․선여인은 여래께서 세상에 계시거나 반니원하시거나 간에 모두 마땅히 6바라밀을 공경하고 예로 섬겨야 하며, 또한 마땅히 예로 살운야를 섬겨야 한다. 왜냐하면 이 반야바라밀은 모든 보살․성문․벽지불이 세상에서 옹호해야 할 것이며, 사람들과 모든 천이 모두 이 반야바라밀에 의지하여 안온함을 얻기 때문이다.
구익아, 만약 선남자․선여인이 부처님께서 반니원하신 후에 사리를 취하여 높이 40리(里)의 칠보탑을 세우고 그 수명이 다하도록 스스로 귀의하여 받들어 섬기며, 하늘의 꽃․하늘의 향․하늘의 도향(擣香)․하늘의 비단 화개․하늘의 옷․하늘의 장막으로 공양한다면, 그 복이 진실로 많겠느냐?”
석제환인이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심히 많고 심히 많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렇지 않다. 선남자․선여인이 반야바라밀을 지니고 행하며 경권을 서사하여 가지고 외우고 독송하여 지니고 처음부터 살운야의 뜻을 여의지 않고, 다시 이름난 꽃․도향․택향․잡향․당번․회개로써 공양하면 그 복이 배로 많아서 헤아릴 수 없다.
또한 구익아, 하나의 칠보탑은 그만두고 만약 선남자․선여인이 사리를 취하여 칠보탑을 한 염부제(閻浮提)에 가득 세우니 또한 높이가 40리였으며 하늘의 꽃․하늘의 향․하늘의 도향․하늘의 비단 화개․하늘의 옷․하늘의 장막으로 공양한다면, 그 복이 진실로 많겠느냐?”
석제환인이 아뢰었다.
“심히 많고 심히 많습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렇지 않다. 선남자․선여인이 반야바라밀을 공양한다면, 그 복은 배(倍)나 증가한다. 또한 구익아, 염부제에 탑을 세우는 것은 그만두고, 만약 선남자․선여인이 사리를 취하여 사천하에 가득 칠보탑을 세우고 전과 같이 공양을 해도 선남자․선여인이 반야바라밀을 공양하면 그 복이 배나 많아지는 것과 같지 않다. 사천하는 그만두고 구익아, 만약 선남자․선여인이 사리를 취하여 칠보탑을 소천(小千)국토에 가득 세우고 공양을 전과 같이 해도, 또 소천국토에 칠보탑을 세우는 것은 그만두고 만약 선남자․선여인이 사리를 취하여 칠보탑을 중천(中千)국토에 가득 세우고 공양을 전과 같이 해도, 또 중천국토에 칠보탑을 세우는 것은 그만두고 만약 선남자․선여인이 사리를 취하여 칠보탑을 삼천대천국토에 가득 세우고 공양을 위와 같이 해도 선남자․선여인이 반야바라밀을 공양하면, 그 복이 배나 많아지는 것과 같지 않다.
구익아, 삼천대천국토에 칠보탑을 세우는 것은 그만두고 만약 삼천대천국토 가운데 가득한 한 사람 한 사람이 각각 칠보탑을 세우고, 위와 같이 공양해도 선남자․선여인이 반야바라밀을 공양하면, 그 복이 배나 많아지는 것과 같지 않다.”
석제환인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이와 같고 이와 같습니다. 세존이시여, 반야바라밀을 공양하는 것은 과거․미래․현재의 모든 부처님 여래께 공양한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가령 동방의 갠지스강의 모래 수처럼 많은 국토에 가득한 중생들 한 사람 한 사람이 부처님께서 니원하신 후에 사리를 취하여 칠보탑을 수미[彌]에 가득 세우고 그 가운데서 공양을 위와 같이 하여 겁(劫)에서 겁에 이르며, 다시 1겁을 지나 그 수명이 다하면, 어떠한가? 구익아, 그 사람이 심은 복이 참으로 많겠느냐?”
석제환인이 아뢰었다.
“심히 많고 심히 많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렇지 않다. 선남자․선여인이 반야바라밀을 공양하며 경을 베껴 써서 외우고 독송하고 익히고 이름난 향․택향․잡향․비단 화개로 공양하면 그 복을 얻음이 많다. 왜냐하면 구익아, 일체 모든 선법이 모두 반야바라밀 가운데 있기 때문이다. 무엇을 선법이라고 하는가? 5계(戒)․10선(善)․4선(禪)․4등(等)․4공정(空定)․37품․3탈문․4제(諦)․6통․8유무․9차제선․6바라밀․내외공에서부터 유무공에 이르기까지, 모든 삼매문․다린니문․부처님의 10종력․4무소외․4무애혜․대자대비․도(道)의 일․살운야의 일 등이다. 이것이 모든 여래․무소착․등정각의 법의 가르침이다. 모든 나한․벽지불과 과거․미래․현재의 모든 여래께서는 모두 반야바라밀 가운데서 배워 이루어서 피안으로 건너가는 것이다.”
34. 공양품(供養品)
부처님께서 석제환인에게 말씀하셨다.
“이와 같이 구익아, 선남자․선여인이 반야바라밀을 공양하고, 경권을 써서 지니고 배우고 외우고 생각하고 익히고 지키고 행하고 만약 능히 온 힘을 다하여 이름난 꽃․도향․백향․잡향․비단 화개․소유한 당번(幢幡)으로 공양하면 얻는 공덕은 헤아릴 수 없으며, 생각할 수 없으며, 칭량할 수 없다. 이 선남자․선여인이 얻는 바가 이와 같다. 왜냐하면 모든 여래․무소착․등정각께서는 모두 반야바라밀 가운데서 출생하고, 살운야와 다섯 바라밀도 모두 반야바라밀에서 출생하고, 내외공에서부터 유무공에 이르기까지도 모두 반야바라밀 가운데서 출생하고, 37품․부처님의 18법․여래의 5안(眼)․중생을 가르치는 것․불국토를 청정하게 하는 것․도혜(道慧)․살운야혜가 모두 다 반야바라밀에서 출생하고, 성문․벽지불․불승(佛乘)․무상등정각도(無上等正覺道)가 모두 다 반야바라밀 중에서 출생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구익아, 만약 선남자․선여인이 반야바라밀을 서사하여 경권을 지니고 배우며 외우고 생각하며 지키고 익히며 행하고 또 이름난 꽃․도향․비단․번개(幡蓋)로써 공양하면 공덕의 복이 전에 사리를 둔 칠보탑에 공양하는 것보다도 백천만 배․거억만(巨億萬) 배나 더 많고 헤아려도 미치지 못하고 무엇으로도 비유할 수 없다. 왜냐하면 반야바라밀이 세상에 있으면 삼보가 끝내 단절될 때가 없으며, 반야바라밀이 세상에 있지 않으면 삼보가 곧 단절된다. 반야바라밀이 세상에 머물면 곧 10계(戒) 공덕․4등(等)․4선․4공정(空定)․6바라밀․37품․부처님의 18법․살운야혜가 있는 줄 알며, 곧 찰리종․바라문종․대성 장자종이 있는 줄을 알며, 곧 사천왕과 아가니타천이 있는 줄을 알며, 수다원도에서부터 나한․벽지불도에 이르기까지도 있는 줄을 알며, 곧 보살마하살의 경로(徑路)가 있는 줄을 알며, 곧 위없는 부처님의 지혜가 있는 줄을 알며, 곧 법륜을 굴리는 것이 있음을 알며, 곧 중생을 교화하고 불국토을 청정하게 함을 알 수 있다.”
35. 지품(持品)
이때 삼천대천국토의 모든 사천왕과 모든 아가니타천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천자들이 석제환인에게 말하였다.
“인자여, 마땅히 반야바라밀을 받아 지니고 외우고 익히고 생각하고 지키고 행해야 합니다. 반야바라밀을 공양하고 외우고 독송하고 생각하면 모든 나머지 악법이 빠짐없이 마땅히 소멸되며, 모든 선한 공덕은 마땅히 구족하여 생겨날 것입니다. 반야바라밀을 받아 지니면 모든 천의 무리들이 증익되고 아수륜(阿須倫)의 무리가 줄어들며, 삼보의 법은 끝내 단절되지 않을 것입니다. 불법이 단절되지 않기 때문에 세간에 마땅히 6바라밀․37품․부처님의 18법이 있으며 모두 마땅히 세간에 나타나게 되고 보살도를 행함이 있으며 곧 삼승의 가르침이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구익에게 말씀하셨다.
“그대는 마땅히 반야바라밀을 받아 지니고 외우고 독송하고 익히고 지키고 행해야 한다. 왜냐하면 만약 아수륜이 모든 대중들이 모인 곳에서 악한 뜻을 일으켜 모든 도리천과 함께 싸우려고 할 때 구익아, 그대는 마땅히 반야바라밀을 외우고 생각해야 한다. 그러면 아수륜은 이 뜻이 생기는 즉시 멸해서 궁극에는 얻지 못할 것이다. 구익아, 도리천상에서 모든 천자나 모든 천녀가 만약 복이 이미 다하여 수명을 마치려고 할 때, 혹은 마땅히 떨어지게 되면 그대는 마땅히 반야바라밀을 외우고 설해야 하니, 이 모든 천인과 천녀는 나머지 악취에 이르지 않고 도리어 도리천상에 태어나게 될 것이다. 반야바라밀의 음성의 공덕이기 때문이다. 이 모든 천인들은 다시 본처에 태어나고 다시는 떨어지지 않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반야바라밀의 음성은 그 공덕이 크기 때문이다. 구익아, 만약 선남자․선여인과 모든 천자들이나 모든 천녀들이 이 반야바라밀의 음성을 들어 귀로 한 번 지나갈 때 곧 귀를 스쳐 간 공덕 때문에 그 사람은 오랜 후에 마땅히 아뇩다라삼야삼보를 얻게 될 것이며, 끝내 다시는 의심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구익아, 과거 시방의 모든 여래․무소착․등정각과 많은 제자들은 모두 다 이 반야바라밀 가운데서 무여니원에 들고 반니원에 들었기 때문이다. 미래와 지금 현재 시방의 모든 여래께서도 모두 반야바라밀 가운데서 아뇩다라삼야삼보를 얻을 것이다. 왜냐하면 모든 37품은 모두 반야바라밀 가운데서부터 출생하며, 성문․벽지불의 법과 보살법과 불법도 모두 반야바라밀 가운데서부터 출생하기 때문이다.”
석제환인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이 반야바라밀은 지극히 큰 주술이며, 반야바라밀은 위없는 주술이며, 반야바라밀은 비할 바가 없는 주술입니다. 왜냐하면 세존이시여, 이 반야바라밀은 이미 모든 선하지 못한 법을 버렸고 모든 선의 근본을 모두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부처님께서 석제환인에게 말씀하셨다.
“그러하다. 구익아, 이 반야바라밀은 지극히 큰 주술이며 위없고 비할 바 없는 주술이다. 왜냐하면 과거의 모든 여래․무소착․등정각께서는 모두 이 주술로 말미암아 아뇩다라삼야삼불을 얻었으며, 미래와 지금 현재의 모든 부처님도 또한 마땅히 이 주술로 말미암아 아뇩다라삼야삼불을 얻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 주술로 말미암아 세간에 10선(善)의 덕․4선(禪)․4등․4공정․6바라밀․37품․부처님의 18법이 있음을 알며, 법성․법위(法位)․진제가 있음을 알며, 여여함이 있음을 알며, 5안(眼)이 있음을 알며, 수다원도가 있음을 알며, 나한․벽지불의 도가 있음을 알며, 보살과 부처님의 도가 있음을 알며, 살운야와 살운야 지혜가 있음을 안다. 보살이 있음으로 말미암아 10선의 덕이 세간에 나타나고, 나아가 여래와 살운야도 세간에 현현하는 것이다. 모두 다 보살이 내왕(來往)한 인연이 있음으로 인해서 세상에 나타나는 것이다.
구익아, 비유하면 달이 가고 오는 인연으로 세상에 어둠이 사라지고 별들이 비추는 것과 같은 것이다. 이와 같이 구익아, 보살은 선행 등을 행함으로써 생겨나는 것이며, 10선의 공덕으로부터 생겨나는 것이며, 살운야의 지혜로부터 생겨나는 것이고, 생함이 없는 법[無所從生法]에서부터 생겨나는 것이다. 구익아, 마땅히 알아야 하니, 모든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에서 출생하고 모든 보살이 행한 다섯 바라밀과 내외공에서 유무공에 이르기까지 37품․부처님의 18법, 또한 성문․벽지불지 가운데서 증득을 취하지 아니함, 중생을 가르치는 것, 불국토를 청정하게 하는 것, 불토를 성취하려고 하고, 보살을 성취하려고 하고 살운야를 깨달음을 성취하려고 하는 것 모두 다 반야바라밀에서 출생한 것이다.
또한 구익아, 만약 선남자․선여인이 반야바라밀을 받아 지니고 외우고 독송하고 익히고 그 일을 행하면 곧 현세의 덕을 얻고 또한 마땅히 세상을 제도하는 덕도 얻게 된다.”
석제환인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선남자․선여인은 어떤 현세의 덕을 얻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반야바라밀을 봉행하면 끝내 중도에 독(毒)으로 죽지 않고, 끝내 수화(水火) 가운데서 그릇되게 횡사(橫死)하지 않으며, 모두 마땅히 그 수명을 다하게 된다.
만약 현관(縣官)에 일이 있어서 현관에 가더라도 끝내 해칠 틈이 없게 된다. 왜냐하면 이 반야바라밀을 외운 위신력이 있기 때문이다. 만약 선남자․선여인이 국왕의 처소나 태자나 군신의 처소에 이르러 말을 하면 국왕이나 태자나 모든 군신들에 이르기까지 기뻐하지 않는 자가 없다. 왜냐하면 선남자․선여인이 대자대비를 행하고, 4등(等)의 뜻으로 중생을 향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현세의 덕이다.”
“무엇이 세상을 제도할 수 있는 덕을 구족하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일찍이 이 10선의 공덕을 여의지 않았고 또한 일찍이 4선․4등․4공정․6바라밀․37품․부처님의 18법을 여의지 않았고, 처음부터 이 법을 여의지 않아서 끝내 3악취에 태어나지 않고, 완전하게 모든 감관을 구족한 몸을 받고, 끝내 빈궁한 집에 태어나지 않고, 끝내 기술공[工師]의 집에 태어나지 않고, 또한 범품(凡品)의 집에 태어나지 않고, 항상 마땅히 32가지 대사의 상(相)을 구족하며, 모든 불국토에 태어나되 항상 마땅히 화생(化生)하며, 끝내 보살의 신통한 원(願)을 여의지 않으며, 한 불국토에서 다른 한 불국토에 이르기까지 모든 부처님 세존을 공경하고 예로써 섬기며, 항상 모든 부처님의 상법(上法)을 들으며, 중생을 교화하여 불국토를 청정하게 한다. 그러므로 구익아, 선남자․선여인은 반야바라밀을 받아 지니고 외우고 독송하고 생각하고 지키고 익히고 행해야 하며, 살운야의 뜻을 여의지 않아야 하며 아뇩다라삼야삼보를 이룰 때까지 처음부터 단절되지 않는다. 이것이 후세에 세상을 제도하는 덕이다.”
36. 견이도사품(遣異道士品)
이때 이도사(異道士)가 부처님께서 계신 처소에 와서 부처님의 허물을 찾으려고 하였다. 이에 석제환인이 마음속으로 생각하였다.
‘오늘 모든 이도사들이 부처님을 비방하려고 하고, 반야바라밀을 중도에서 단절하려고 한다. 나는 부처님의 처소에서 지니고 있는 반야바라밀을 마땅히 외우고 생각해야겠다.’
석제환인이 곧 반야바라밀을 외우니, 모든 이도사들이 와서 반야바라밀을 무너뜨리려고 하였다가 멀리 둥글게 부처님을 한 바퀴 돈 후 가버렸다. 그때 사리불이 마음속으로 생각하였다.
‘어째서 이 모든 이도사들이 멀리 부처님을 한 바퀴 돈 후에 길을 바꿔 가버렸을까?’
부처님께서는 사리불이 생각하는 뜻을 아시고,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석제환인이 반야바라밀을 외웠기 때문에 이도사들이 부처님을 한 바퀴 돈 후 길을 되돌아간 것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이도사들에게는 하나의 선한 뜻도 없었으며, 부처님의 처소에 와서 다만 부처님의 장․단점만을 찾으려는 뜻을 지녔다.”
부처님께서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만약 반야바라밀을 외울 때 하늘이나 세간 사람이나 사문이나 바라문이나 이학사(異學士)들이 나쁜 뜻을 지니고 와서 장․단점을 구하려고 해도 마침내 능히 그 기회를 얻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이 삼천대천국토의 모든 사천왕과 모든 천자 나아가 아가니타천의 모든 천자에 이르기까지와 모든 제자와 모든 보살들이 반야바라밀을 받아 지녔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이것은 또한 모두 반야바라밀 가운데서 출생했기 때문이다.
또한 사리불이여, 동방의 갠지스강의 모래 수처럼 많은 나라 가운데 모든 여래․제자들․벽지불․보살․천․용․귀신 등의 무리들이 모두 반야바라밀을 받아 지니니, 왜냐하면 이것은 모두 반야바라밀에서 출생했기 때문이다.”
마왕 파순이 속으로 생각하였다.
‘지금 부처님과 모든 네 무리의 제자들과 모든 욕계의 천자들과 모든 색계의 천자들이 함께 모였다. 그 가운데 마땅히 보살의 수기를 받은 자가 있어 반드시 아뇩다라삼야삼불을 이룰 것이다. 지금 내가 차라리 부처님의 처소에 가서 그 도를 중도에서 끊어야겠다.’
그리하여 파순은 네 종류의 병사로 변화하여 부처님의 처소로 갔다. 그때 석제환인이 속으로 생각하였다.
‘오늘 마군의 장수와 네 종류의 병사들이 부처님의 처소에 이르려고 한다. 이 마군이 변화로 만들어 낸 네 종류의 병사들의 장엄한 모습은 병사왕(洴沙王)에게도 없는 것이며, 사위국왕에게도 또한 없는 것이며, 모든 석종(釋種)에게도 또한 없는 것이며, 수야리(隨耶利)의 모든 장자들에게도 또한 없는 것이다. 이와 같이 마군이 변화로 만들어낸 네 종류의 병사인 것이다. 이 마군 파순은 긴 밤 동안 항상 부처님의 단점만을 찾았고, 중생을 요란하게 한다. 내가 이제 참으로 반야바라밀을 말없이 외우리라.’
석제환인이 곧 선정의 뜻[定意]으로 차츰차츰 반야바라밀을 염송하니, 그때 마군 파순이 또한 점점 멀리 되돌아갔다. 그때 사천왕의 모든 천자들과 아가니타천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천자들이 허공에서 천화(天花)를 만들어 부처님 위에 뿌렸다. 이때 모든 천자들이 동시에 찬탄하였다.
“반야바라밀을 염부제에 오래 머물게 해 주십시오. 염부제의 사람에게 항상 반야바라밀을 받아 지니게 하여 반야바라밀에 오래 머물게 되면, 부처님도 또한 오래 머물게 되어 멸할 때가 없으며, 부처님께서 오래 머물게 되면 법도 또한 마땅히 오래 머물게 됩니다. 이처럼 법이 오래 머물게 되면 비구승도 항상 세간에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이와 같이 삼보는 마침내 단절될 때가 없을 것입니다. 반야바라밀도 또한 마땅한 삼천대천찰토에 오래 머물 것입니다. 시방의 갠지스강의 모래 수처럼 많은 국토도 마땅히 이와 같을 것입니다. 반야바라밀은 이 보살마하살의 온갖 행 가운데 최상의 것입니다. 선남자․선여인이 반야바라밀을 받아 지니고, 경권을 베껴 쓰면 그 방면의 처소는 가장 존귀하게 되니, 곧 광명을 비추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 처소는 이미 어둠을 여의어서 이 모든 처소 가운데 가장 존귀한 곳임을 마땅히 알아야 합니다.”
부처님께서 석제환인에게 말씀하셨다.
“이와 같이 구익아, 이곳이 여러 곳 가운데 존귀함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또한 구익아, 이 반야바라밀은 단지 인간이 있는 곳에서만 가장 존귀한 것이 아니고 천상에 있어서도 그곳은 가장 존귀한 곳이다.”
이때 모든 천자들이 천화(天花)를 만들어 부처님 위에 뿌리면서 모두 동시에 말하였다.
“만약 선남자․선여인이 반야바라밀을 받아 지니고 외우고 독송하면 마군과 마천(魔天)은 끝내 능히 그 틈을 얻지 못할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저희들은 또한 마땅히 이 선남자․선여인을 옹호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저희들이 이 선남자․선여인 보기를 세존을 뵙는 것과 같이 하기 때문입니다.”
석제환인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이 선남자․선여인은 한량없는 선의 근본[善本]을 지었기 때문에 반야바라밀을 외우고 받아 지니는 것입니다. 과거의 부처님께서 계신 때에 공덕을 지은 까닭이며, 이 선남자․선여인이 이미 무량한 모든 부처님을 뵌 까닭이며, 선지식을 따른 까닭입니다. 무슨 뜻인가 하면 살운야를 얻으려면 마땅히 반야바라밀에서 찾아야 하고, 반야바라밀을 얻으려고 하면 또한 마땅히 살운야에서 구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반야바라밀은 곧 살운야이며, 살운야는 곧 이 반야바라밀입니다. 이것은 하나이며 둘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부처님께서 석제환인에게 말씀하셨다.
“이와 같이 구익아, 살운야와 모든 여래․무소착․등정각께서는 모두 반야바라밀에서 출생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구익아, 살운야와 반야바라밀은 한 법일 뿐이며 둘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37. 무이품(無二品)
이때 현자 아난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처음 설법하실 때 다섯 가지의 바라밀을 칭찬하지 않고, 또한 부처님의 18법도 칭찬하지 않고, 다만 반야바라밀을 칭찬하셨습니다. 어째서입니까?”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반야바라밀은 다섯 가지의 바라밀과 부처님의 18법 중에서 가장 높은 것이다. 어떠하냐? 아난아, 살운야로써 하지 않은 보시를 참으로 단바라밀이라고 칭찬할 수 있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살운야로써 하지 않은 지계․인욕․정진․일심․지혜를 참으로 반야바라밀이라고 칭찬할 수 있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아난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어째서 보시가 살운야가 되며 단바라밀이 되는 것이며, 반야바라밀에 이르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보시에는 둘이 있는 것이 아니므로 살운야가 단바라밀이 되는 것이며, 생하는 바도 없어야 하며, 의지할 바도 없어야 한다. 보시이면서 살운야인 것이 단바라밀이며 생하는 바도 없어야 하며, 의지하려는 생각도 없어야 한다. 살운야에 둘이 있는 것이 아니며, 이것이 반야바라밀이다.”
아난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어째서 보시와 살운야에 둘이 없다고 생각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5음에 둘이 있는 것이 아니고, 도에 이르기까지도 또한 둘이 있는 것이 아니다.”
“어째서 5음에 둘이 있는 것이 아니며, 도에 이르기까지도 또한 둘이 있는 것이 아닙니까?”
“5음은 5음이 스스로 공하다. 왜냐하면 5음과 모든 바라밀은 하나의 법일 뿐이며, 두 가지의 법이 있는 것이 아니며, 저 도에도 또한 하나의 법일 뿐이며, 둘이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아난아, 반야바라밀은 다섯 가지의 바라밀 가운데 가장 존귀한 것이며, 나아가 살운야에 이르기까지도 또한 그 가운데서 가장 존귀한 것이다. 비유하면 대지에 오곡의 씨앗을 심으면 뿌린 것 가운데서 때를 따라 생겨나는 것과 같다. 반야바라밀은 땅이며 모든 바라밀과 37품과 살운야에 이르기까지가 모두 그 가운데서 출생하고, 살운야는 반야바라밀로 인해서 출생하고, 다섯 가지의 바라밀도 또한 살운야로 인해서 출생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난아, 반야바라밀이 이 다섯 가지의 바라밀을 인도하며, 나아가 다섯 가지의 바라밀에서부터 부처님의 18법에 이르기까지 모두 이를 따라서 생하는 것이다.”
석제환인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께서 반야바라밀의 공덕을 찬탄하신 것은 미진합니다. 선남자․선여인이 반야바라밀을 받아 지니고 외우고 독송하고 익히고 생각하고 지키고 행하고 존경하고 봉행하고 공양하는 공덕도 또한 미진합니다. 반야바라밀을 받들어 지니므로 10선이 세간에 나타나는 것이며, 4선․4등․4공정에서 부처님의 18법에 이르기까지 모두 세간에 나타나는 것입니다. 반야바라밀을 봉행하므로 곧 찰리․범지․장자 대성종(大姓種)이 있음을 알며, 곧 사천왕과 위로 아가니타천에 이르기까지가 있음을 알며, 곧 수다원도에서 위로 나한․벽지불도에 이르기까지, 보살에서 불도에 이르기까지를 압니다.”
부처님께서 구익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말한 선남자․선여인이 반야바라밀을 받아 지니고 외우고 행하고 공양하면 그 공덕은 끝이 없는 것이며, 반야바라밀을 받아 지니고 외우고 행하고 공양하는 공덕은 헤아릴 수 없으며, 한정할 수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선남자․선여인이 반야바라밀을 봉행하면 마땅히 무량계성(無量戒性)을 얻을 것이며, 무량삼매성․지혜성․해탈성․견해탈혜성(見解脫慧性)의 뜻을 얻을 것이다. 끝내 살운야의 뜻을 여의지 않으면 이 선남자․선여인은 모두 다 헤아릴 수 없는 모든 공덕을 얻게 될 것이다.
구익아, 선남자․선여인이 반야바라밀을 봉행하면 불제자됨을 이어서 끝내 살운야를 여의지 않음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구익아, 성문․벽지불이 소유한 계성(戒性)․삼매․지혜․해탈․견해탈혜의 이 다섯 가지 성품은 선남자․선여인의 5사성(事性)과 비교하면 그 공덕의 백 배․천 배․거억만 배에도 미치지 못한다. 그 공덕이 가장 존귀하여 능히 비유할 만한 것이 없다. 왜냐하면 구익아, 이 선남자․선여인의 뜻은 이미 나한․벽지불을 여의어서 처음부터 나한․벽지불을 보는 것은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구익아, 반야바라밀을 만약 서사하여 지니고 배우고 외우고 생각하고 화향(華香)과 비단 일산으로 공양하면, 나는 항상 이 선남자․선여인이 얻는 금세와 후세와 구경에 이르기까지의 덕을 찬탄하리라.”
석제환인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저도 또한 마땅히 항상 이 선남자․선여인을 옹호하여 반야바라밀을 봉행하고 뜻이 살운야의 뜻을 여의지 않게 할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석제환인에게 말씀하셨다.
“이 선남자․선여인이 반야바라밀을 외우고 설할 때 한량없는 백천의 모든 천이 모두 이 선남자․선여인의 처소에 와서 빠짐없이 합장한 채 반야바라밀을 듣고 받아 지닐 것이다. 모든 천자들이 이 선남자․선여인에게 위신을 더해 주어서 빨리 열어 알게 하고 식변(識辯)을 더해 줄 것이다. 이것이 선남자․선여인이 현세의 덕을 얻는 것이다.
또한 구익아, 이 선남자․선여인이 네 무리의 제자들 가운데서 반야바라밀을 설할 때 마침내 피곤하거나 게으른 마음이 없으며, 끝내 형식(形識)도 없는데, 하물며 가볍게 여기고 훼손하려고 하겠는가? 왜냐하면 반야바라밀에 의해서 옹호되기 때문이며, 반야바라밀은 모든 법을 분별하기 때문이다. 무엇을 분별이라 말하는 것인가? 이것은 도(道)이고, 이것은 속(俗)이며, 이것은 선하고 이것은 선하지 않으며, 이것은 무루(無漏)이고, 이것은 유루(有漏)이며, 이것은 구족이고, 이것은 구족한 것이 아니며, 이것은 성문법이고, 이것은 벽지불법이고, 이것은 불법이라고 하는데 이것이 분별이다. 왜냐하면 이 선남자․선여인은 이미 내외공과 유무공에 머물렀기 때문이다. 반야바라밀에 단점이 없기 때문에 또한 반야바라밀의 단점을 볼 수 없는 것이다. 이와 같이 반야바라밀을 받들어 지니면 해칠 틈을 얻지 못할 것이다.
또한 구익아, 선남자․선여인이 반야바라밀을 이와 같이 지니고 이와 같이 행하면 뜻에 끝내 게으름이 없으며, 끝내 공포가 없게 된다. 왜냐하면 이 선남자․선여인에게서 끝내 공포와 게으름의 징조를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이것이 선남자․선여인의 현세의 복덕이 되는 것이다. 또한 구익아, 만약 선남자․선여인이 반야바라밀을 받아 지니고 향․꽃․당번․비단 일산으로 공양하면 이 선남자․선여인은 부모로부터 경애받으며, 형제․종친․친구․선지식들이 모두 공경하며, 시방의 모든 나한․벽지불과 모든 보살과 모든 부처님께서 모두 함께 애경하며, 모든 천․아수륜으로부터 또한 애경받는다. 6바라밀을 행하되, 단절될 때가 없으며 끝내 내외공과 유무공을 여읠 때가 없으며, 끝내 37품과 부처님의 18법을 여의지 않으며, 끝내 모든 삼매문과 다린니문을 여의지 않으며, 끝내 보살의 신통을 여의지 않으며, 중생을 교화하고 불국토를 청정하게 하는 것이 끝내 단절될 때가 없다. 그 힘을 감당하여 외부의 비방으로부터 항복받을 수 있다.
구익아, 선남자․선여인이 반야바라밀을 지니고 행하면 금세와 후세에 덕을 얻는다. 구익아, 선남자․선여인이 반야바라밀을 서사하여 경권을 지니고 외운다면 삼천대천찰토 가운데 모든 사천왕이 모두 이 선남자․선여인의 처소에 가서 반야바라밀을 듣고 지니며 예를 갖추어 공경한 후에 돌아간다. 도리천상에서부터 위로 아가니타천에 이르기까지 이 모든 천인들 가운데 보살도를 행하는 자는 모두 이 선남자․선여인의 처소에 와서 반야바라밀을 듣고 지니며 받들어 섬기고 공경하며, 예를 갖춘 후에는 돌아간다. 시방의 모든 사천왕과 모든 아가니타천 나아가 모든 용신․모든 열차(閱叉:야차)․건답화(揵沓惒:건달바)․아수륜․가루라․진타라(眞陀羅:긴나라)․마후륵(摩睺勒)이 모두 와서 반야바라밀을 보며, 예를 갖추고 공양하며, 받들어 섬기고 공양한다. 이 선남자․선여인은 마땅히 이와 같이 알아야 하니, 이것이 법시(法施)가 되는 것이다. 이 삼천대천찰토 가운데와 시방 모든 국토 가운데 이르기까지 모든 사천왕과 천자들 위로 아가니타천의 모든 천자들에 이르기까지 보살도를 행하는 자가 모두 함께 이 선남자․선여인을 옹호하므로 반야바라밀을 행하여 모든 사악한 이들이 해칠 틈을 얻지 못할 것이며, 숙명(宿命)의 빚도 없어질 것이다.
이와 같이 구익아, 선남자․선여인은 현세의 복을 얻을 것이다. 모든 천자들이 선남자․선여인의 처소에 와서 아뇩다라삼야삼불을 이루려고 하며, 중생을 구호하여 중생을 안온하게 하려고 하며, 중생을 안락하게 하려고 한다.”
그때 석제환인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이 선남자․선여인은 마땅히 어떻게 시방의 모든 사천왕과 모든 아가니타천의 모든 천에 이르기까지 모두 반야바라밀의 처소에 오는 것을 알며, 공경하고 받아 지니고 예를 갖추는 것을 이 선남자․선여인은 마땅히 어떻게 알겠습니까?”
부처님께서 석제환인에게 말씀하셨다.
“이 선남자․선여인이 만약 다른 색[異色]의 청정한 광명을 보게 된다면, 모든 천인들이 와서 반야바라밀을 듣고 지니고 예를 갖추어 공경하고 있는 때인 줄 알아야 한다.
구익아, 이 선남자․선여인이 이 일찍이 맡지 못했던 향기와 특이하고 미묘한 향기를 맡으면 마땅히 모든 대존천(大尊天)이 와서 반야바라밀을 듣고 지니고 공경하고 예를 갖추는 때인 줄 알아야 한다. 구익아, 이 선남자․선여인은 항상 마땅히 청정하고 깨끗이 하여 스스로 기뻐해야 한다. 청정하고 깨끗하여 스스로 기뻐하므로 모든 천자들이 모두 크게 환희하여 이 선남자․선여인의 처소에 와서 반야바라밀을 듣고 지니며 받들어 섬기고 예를 갖춘다. 이 대존천이 왔을 때 이 사이에 보잘것없이 적은 위신을 가진 모든 천과 귀신의 무리는 모두 빠짐없이 사라지니 존천의 위신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모든 존천의 신이 찾아오므로 이 선남자․선여인은 온갖 어려움을 여읜다. 이 선남자․선여인이 머무는 곳은 항상 마땅히 청정하고 깨끗하도록 등을 밝히고 향을 피우며 비단 화개와 무량한 장식을 매달아서 항상 청정하고 깨끗하게 공양한다. 이 선남자․선여인은 끝내 피곤하고 싫어하는 마음이 없으며, 신식(身識)이 경쾌하고 가벼우며 항상 안온을 얻어 눕거나 일어서거나 또한 편안하여 마침내 악몽이 없고 다른 꿈을 꾸지 않는다. 다만 꿈에서 부처님을 뵐 뿐이며, 다만 꿈에서 법을 들을 뿐이며, 다만 비구승을 볼 뿐이며, 다만 32상(相)과 80종호(種好)를 볼 뿐이며, 다만 모든 제자와 권속에게 둘러싸여 설법하는 것을 볼 뿐이다. 다만 6바라밀을 듣고 묻는 것을 볼 뿐이며, 다만 37품과 부처님의 18법을 볼 뿐이며, 다만 6바라밀을 발견하여 그 뜻이 구족함을 볼 뿐이며, 다만 불수(佛樹) 아래에 앉음을 볼 뿐이며, 다만 모든 보살이 불수에 이르러 아뇩다라삼야삼불을 이루는 때를 볼 뿐이며, 다만 이미 아유삼불을 이루어 법륜을 굴리는 것을 볼 뿐이며, 다만 무량한 백천의 모든 보살들을 볼 뿐이다. 다만 마땅히 이와 같이 살운야혜를 지어 받음을 볼 뿐이며, 다만 중생을 교화하고 불국토를 청정하게 함을 볼 뿐이며, 다만 시방의 무량한 모든 부처님의 음성을 들을 뿐이며, 다만 어느 방향․어느 나라․어느 부처님이라는 글자와 대략 백천의 보살과 제자들의 권속에 둘러싸여 설법함을 볼 뿐이다. 다만 시방의 약간의 모든 부처님의 반니원을 볼 뿐이며, 다만 이미 반니원한 후에 그 사리를 취하여 칠보탑을 세우고 이름난 꽃과 향으로써 탑을 공양하는 것을 볼 뿐이다.
구익아, 이 선남자․선여인의 꿈은 이와 같아서 다만 특이하고, 미묘한 상(像)을 볼 뿐이다. 이 선남자․선여인은 누워도 편안하고 일어서도 편안하며, 신체도 또한 편안하고 정결하고 경쾌하다. 음식을 탐하지도 않고 의복을 탐하지도 않고 모든 공양에 대하여 희망하는 바도 없다. 구익아, 비유하면 익히고 행하는 비구는 뜻이 선식(禪息)에 있고 음식을 탐하지 않고 선(禪)으로써 족함을 안다. 왜냐하면 모든 천과 귀신이 온갖 맛의 정기(精氣)를 취하여 가지고 와서 그 기운을 더하기 때문이다. 시방의 모든 불국토의 모든 천과 귀신도 모두 온갖 음식의 정기를 가지고 와서 또한 그 기운을 더한다.”
부처님께서 구익에게 말씀하셨다.
“만약 선남자․선여인이 현세의 공덕을 얻으려고 한다면, 마땅히 이 반야바라밀을 받아 배우고 서사하여 지니고 외우며, 그 뜻은 끝내 살운야를 여의지 않아야 한다. 바로 이 선남자․선여인으로 하여금 능히 반야바라밀을 받아 지니게 하지 못하고 능히 외우고 그 가운데서 일을 행하지 못해도 다만 서사하여 경권을 지니며 공경하고 받들어 섬기고 향화․당번․일산으로 공양하고 스스로 귀의한다면 그 공덕을 헤아릴 수 없다. 여기에 다시 반야바라밀을 받아 배우고 외우며 수호하고 행하여 뜻이 끝내 살운야를 여의지 않는다면, 그 공덕은 시방의 갠지스강의 모래 수처럼 많은 모든 나라의 모든 부처님을 공양한 공덕보다 뛰어날 것이다. 만약 어떤 사람이 시방의 현재의 모든 부처님을 공양하고, 그 형상의 수명이 다하도록 향․꽃․비단 화개․당번․장식․의복․발우로 공양하거나 만약 부처님께서 반니원하신 후에 사리를 취하여 칠보탑을 세우고 공양을 전과 같이 하여도 선남자․선여인이 반야바라밀을 받아 지니고 외우고 배우고 익히고 그 가운데 일을 생각하는 것만 못한다. 공덕을 얻는 것이 저 공양보다 백 배․천 배․거억만 배나 더 나은 것이다.”
38. 사리품(舍利品)
부처님께서 석제환인에게 말씀하셨다.
“구익아, 부처님의 전신사리가 한 염부제에 가득 차 있는데 그 가운데 한 부분을 가지는 것과 반야바라밀을 서사하여 경권을 지니되 그 가운데서 한 부분을 짓는 것, 이 둘 가운데 어떤 것을 취하겠느냐?”
석제환인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저는 차라리 반야바라밀을 취하겠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사리에 대해서 감히 교만한 뜻이 있지 않고, 감히 공경하지 않는 것도 아니고 공양하고 싶지 않은 것도 아니지만 모든 부처님의 몸이 모두 반야바라밀에서 출생하기 때문입니다. 모든 부처님 여래의 사리도 모두 반야바라밀의 인연에 의하기 때문에 공양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사리불이 석제환인에게 말하였다.
“구익아, 이 반야바라밀은 가장 제일인 것으로 형상이 없고, 호지할 수도 없고, 볼 수도 없고, 장애되는 한 가지 모양[一相]도 없으니, 한 가지 모양이란 곧 모양이 없는 것[無相]이다. 어떻게 받아 지니려 하는가? 반야바라밀을 지니는 것은 또한 생하는 곳에 머무는 것도 아니며, 또한 늘어나고 줄어드는 곳에 머무는 것도 아니며, 또한 희망이 있는 곳에 머무는 것도 아니며, 또한 희망이 없는 곳에 머무는 것도 아니며, 또한 전처[轉處]에 머무는 것도 아니며, 또한 집착하고 단절된 곳에 머무는 것도 아니며, 또한 불법을 지녀서 주는 것이 있는 것도 아니며, 또한 범인(凡人)의 법을 버리는 것도 아니며, 또한 성문․벽지불의 계법을 지녀서 주는 것이 있는 것도 아니며, 또한 범인의 법을 버리는 것도 아니며, 또한 무위법을 지녀서 주는 것이 있는 것도 아니며, 또한 유위법을 버리는 것도 아니며, 또한 내외공과 유위공을 지녀서 주는 것이 없는 것도 아니며, 또한 37품과 부처님의 18법과 살운야를 지녀서 주는 것이 있는 것도 아닌데 어떻게 받아 지니려고 하는가?”
석제환인이 말하였다.
“이와 같고, 이와 같습니다. 사리불이여, 어떤 이가 반야바라밀은 불법에 주는 것이 없으며 범부법에 버리는 것이 없음을 알아서 이와 같이 알면 이것이 반야바라밀을 염하며 행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6바라밀에 두 가지 입(入)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에 세존께서 석제환인을 찬탄하였다.
“훌륭하고, 훌륭하다. 그대가 말한 것처럼 6바라밀에는 두 가지 입(入)이 없다. 왜냐하면 6바라밀에는 두 가지 일이 없기 때문이다. 구익아, 반야바라밀과 법성에는 또한 둘이 있는 것이 아니며, 6바라밀과 진제(眞際)는 헤아릴 수 없으며, 또한 둘이 있는 것이 아니다.”
석제환인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모든 천과 세간 사람들은 마땅히 반야바라밀을 위해서 예를 갖추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 가운데서 아유삼불을 이루었기 때문입니다. 세존이시여, 비유하면 저와 모든 천자들이 함께 쾌락하고 평등한 정전(正殿)에 모여 있으면 모든 천자들이 와서 저에게 예를 갖춥니다. 만약 제가 자리에 없으면 모든 천자들은 모두 저의 자리에 예를 갖출 것입니다. 가르침을 받는 처소이기 때문에 한 바퀴를 돈 뒤에 각각 자기 처소로 돌아갑니다. 만약 선남자․선여인이 반야바라밀을 서사하여 지니고 타인을 위해 그 뜻을 해설할 때에는 시방의 모든 천․용․귀신․아수륜․건답화․가루라․견타라․마후륵이 모두 반야바라밀의 처소에 예를 갖추고 돈 뒤에 돌아갑니다. 왜냐하면 모든 부처님 여래께서 모두 이 가운데서 나시고, 모든 세간인들의 안온과 쾌락이 모두 이 가운데서 생하기 때문입니다. 모든 부처님의 사리와 모든 보살행은 모두 살운야 가운데 들어가며, 모두 살운야로 인해서 가르침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존이시여, 두 가지 중에서 저는 반야바라밀을 받아 지니고 독송하는 것을 취하는 것입니다. 제가 반야바라밀을 받아 지니고 만약 법이 다하도록 할때 저는 또한 무서워하지도 두려워하지도 않을 것이며, 처음부터 이러한 상념(相念)이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반야바라밀은 모양[相]이 없고, 형상[形]도 없으며, 또한 얻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6바라밀에서부터 위로 살운야에 이르기까지 모두 모양이 없으며, 행이 없으며, 형상도 없으며, 또한 볼 수도 없는 것입니다. 이 반야바라밀은 모양이 없는 법입니다. 그러므로 여래․무소착․등정각은 행함도 없고, 얻을 것도 없으며, 모양이 없는 법 가운데서 아뇩다라삼야삼불을 이루어 얻는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반야바라밀은 모양이 없으므로 제자를 위해 설법하는 것도 또한 모양도 없으며 얻을 것도 없으며, 행할 것도 없어야 아뇩다라삼야삼불을 이루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상 사람과 모든 천의 귀신과 용들은 모두 마땅히 받들어 섬기고 공경하고, 이름난 꽃․이름난 향․비단․당번․화개로 반야바라밀을 공양해야 합니다. 세존이시여, 만약 반야바라밀을 받아 지니고 외우고 익히고 행하거나 모든 경권을 서사하여 지니고 향화로 공양한다면 이 무리의 사람들은 끝내 3악취에 떨어지지 않을 것이며, 또한 나한․벽지불도에 떨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아뇩다라삼야삼불을 이룰 때까지 또한 어려움이 있는 곳에 태어나지 않을 것이며, 항상 부처님을 친견하고, 모든 불국토를 여의지 않을 것입니다. 한 불국토에서 다른 한 불국토에 이르기까지 향․꽃․보배로 장식하여 모든 부처님 세존에 공양합니다. 바로 삼천대천국토에 사리가 가득 찬다고 해도 두 가지 보배 중에서 저는 마땅한 반야바라밀을 취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세존이시여, 이 사리는 반야바라밀 가운데서 출생했기 때문에 공양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선남자․선여인은 이 공양으로 인하여 3악취가 끊어지고 천상의 사람으로 태어나는 복을 얻으며, 삼승법에서 그 원하는 바대로 각각 해탈을 얻습니다.
세존이시여, 반야바라밀을 서사한 후 그 경권을 보는 것은 부처님을 친견하는 것과 동등하여 다름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세존이시여, 여래와 반야바라밀은 동등하여 둘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세존께서 3사교(事敎) 대보적경에서 나온 것으로 신정계(身淨戒)․언정계(言淨戒)․의정계(意淨戒)를 말한다.
와 12부경(部經)으로 하시는 것처럼 만약 선남자․선여인이 반야바라밀을 서사하여 그 경권을 지니고 다시 사람들을 가르치는 것은 부처님의 가르침과 동등하며 다름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세존이시여, 부처님의 세 가지 법의 가르침[三法敎]과 12부경은 모두 다 반야바라밀 가운데서 출생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세존과 시방의 모든 부처님께서 3사교와 12부경을 지니는 것과 선남자․선여인이 반야바라밀의 경권으로 사람들을 가르치는 그 복은 동등하여 다름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시방 모든 부처님의 12부경과 3사교는 모두 반야바라밀 가운데서 출생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세존이시여, 만약 선남자․선여인이 시방의 갠지스강의 모래 수처럼 많은 모든 부처님께 진월(眞越:臥具)과 의복과 소유하고 있는 이름난 꽃으로 공양을 드리고 장엄하거나 만약 반야바라밀을 공양하거나 하면, 그 공덕과 복은 저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시방의 모든 여래․무소착․등정각께서는 모두 반야바라밀 가운데서 출생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세존이시여, 만약 선남자․선여인이 반야바라밀을 수학하고 외우고 독송하고 지니고 익히고 그 가운데 일을 행한다면 이 사람은 끝내 3악취에는 떨어지지 않을 것이며, 또한 나한․벽지불도의 지위에도 떨어지지 않을 것이며, 바로 아유월치지에 머물게 됩니다. 왜냐하면 세존이시여, 반야바라밀은 온갖 병을 멀리 여의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세존이시여, 만약 선남자․선여인이 반야바라밀을 서사하여 지니고 수학하고 외우고 그 가운데 일을 지키고 행하고 여기에다 이름난 꽃․도향․비단 화개․당번으로 공양을 더한다면 이 선남자․선여인은 이미 모든 공포를 여의었음을 마땅히 알아야 합니다. 세존이시여, 비유하면 빚진 사람은 항상 공포에 떨다가 왕과 가까이 알게 되면 다시 공포에 떨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왜냐하면 존귀함에 의지했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세존이시여, 사리는 반야바라밀 가운데서 얻어서 이루었기 때문에 공양을 받는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이 반야바라밀은 왕과 같으며, 여래의 사리는 빚진 사람과 같다는 것을 마땅히 알아야 합니다. 반야바라밀에 의지하여 안온을 얻기 때문입니다. 세존이시여, 살운야의 지혜는 모든 반야바라밀로 얻어서 이루어짐을 마땅히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저는 두 가지 보배 가운데 반야바라밀을 취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여래의 몸은 반야바라밀 가운데서 출생하기 때문입니다. 대사의 32상․부처님의 10종력․4무소외․부처님의 18법․대자대비가 모두 반야바라밀에서 출생하며, 다섯 가지 바라밀도 또한 반야바라밀에서 출생하며, 각각 이름을 얻은 것과 여래께서 얻은 살운야혜도 모두 반야바라밀 가운데서 출생합니다.
세존이시여, 삼천대천찰토에 반야바라밀을 받아 지니고 외우고 배우고 향화로 공양을 드리고 받들어 섬기고 예배를 드린다면 사람이거나 사람이 아니거나 간에 끝내 능히 해칠 틈을 얻지 못할 것입니다. 이 중생들은 후에 모두 마땅히 니원의 법을 얻을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반야바라밀은 큰 위신력이 있어서 삼천대천세계의 중생으로 하여금 모두 불사를 이루게 합니다. 세존이시여, 반야바라밀이 머무는 곳은 이미 부처님께서 계시던 곳임을 마땅히 알아야 합니다. 비유하면 세간에 값을 헤아릴 수 없는 마니(摩尼)보배가 있는 곳은 사람이나 사람이 아니거나 간에 능히 그 해칠 기회를 얻지 못할 것입니다. 사람 아닌 것이 무언가 가지려고 할 때 만약 남자나 여인이 마니보배를 가지고 가면 그 위신력을 감당하지 못하여 곧 스스로 가게 됩니다. 만약 남자나 여인이 냉병이나 열병에 걸렸을 때 마니보배를 가지고 보게 되면, 그 병은 곧 낫게 되며, 만약 마니보배를 가지고 어두운 곳에 가면 곧 밝아지게 되며, 더울 때 마니보배를 지니고 그곳에 가면 곧 서늘해지며, 추울 때 마니보배를 가지고 그곳에 가게 되면 곧 따뜻해집니다. 마니보배를 둔 곳에는 모든 사악한 독이 모두 다 없어지며, 만약 남자나 여인이 뱀이나 독사에게 물리더라도 마니보배를 보면 그 독이 곧 없어지고 상처가 곧 낫습니다. 세존이시여, 마니보배의 그 덕은 이와 같습니다. 만약 남자나 여인이 눈이 어둡거나, 눈이 아프거나, 몸에 종기가 나거나, 종창[瘡]이 있더라도 마니보배를 보면 모든 종창과 모든 병이 모두 다 없어져서 낫게 됩니다. 세존이시여, 이 마니보배의 덕은 이와 같습니다. 만약 물 속에 있으면 물이 곧 마니보배색으로 됩니다. 세존이시여, 만약 온갖 색을 띤 어떤 종류의 비단 속에 넣어서 물 속에 넣으면 물은 마니보배의 색으로 변하며, 물이 탁하면 곧 맑아집니다. 마니보배의 그 덕은 이와 같습니다.”
이때 아난이 석제환인에게 말하였다.
“구익이 말하는 것은 천상의 마니보배인가, 세간의 보배인가?”
석제환인이 아난에게 대답하였다.
“제가 말하는 것은 천상의 보배입니다. 세간에도 마니보배가 있지만 천상의 보배에 미치지 못하며, 그 덕을 구족하지 못하여 천상의 보배만 같지 못하며, 그 덕은 비유로써 비교할 수 없습니다. 제가 말하는 보배는 함(函) 속에 있거나 대죽상자 안에 있어도 그 광명은 뚜렷하게 비쳐 나가며 바로 마니보주를 들어서 그곳에 가게 되면 밝음은 이와 같습니다. 만약 반야바라밀을 서사하여 지니고 배우면 그곳에는 곧 온갖 환난(患難)이 없어지며, 그곳이 존귀한 것은 비유하면 마니주가 있는 곳과 같습니다. 마땅히 알아야 하니, 반야바라밀은 마니주와 같으며, 그 덕은 한량없어서 다섯 가지 바라밀의 덕과 살운야에 이르기까지와 내외공에서 유무공․37품․부처님의 18법에 이르기까지와 법성․여여함․진제․헤아릴 수 없는 살운야혜의 덕입니다. 부처님께서 반니원하신 후에 사리를 얻어 받들어 섬기고 공양하는 것은 살운야혜가 모든 습기의 실마리[習緖]를 다 없애서 항상 수호하여 법을 잊지 않습니다. 살운야는 모든 법의 그릇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여래․무소착․등정각께서는 사리를 얻어 존경하고 공양하는 것입니다. 사리는 이 반야바라밀의 보기(寶器)여서 단절도 없고 집착도 없는 바라밀이며, 생함도 없고 멸함도 없는 바라밀이며, 또한 집착하지도 않고 또한 집착하지 않는 것도 아닌 바라밀이며, 생함도 없고 멸함도 없는 바라밀이며, 또한 상응하지도 않고 또한 상응하지 않는 것도 아닌 바라밀이며, 또한 위로 들지도 않고 아래로 내리지도 않는 바라밀이며, 또한 오는 것도 아니고 또한 가는 것도 아니고 또한 머무는 것도 아닌 바라밀입니다. 그러므로 여래․무소착․등정각께서는 사리를 얻어 공양하는 것입니다. 사리는 이 모든 법과 바라밀의 보기(寶器)인데, 모든 법과 바라밀이 합하여 이루어졌으므로 사리를 공양하는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삼천대천찰토에 있는 여래의 사리는 그만두고라도 갠지스강의 모래 수처럼 많은 국토에 사리가 가득 차 있더라도 저는 반야바라밀을 취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여래의 사리는 모두 이 가운데서 나오기 때문에 공양하는 것입니다. 만약 선남자․선여인이 사리를 공양하고 공경하고 받들어 섬기면 천상과 세간의 복을 얻고, 찰리(刹利)․범지(梵志)․장자(長者) 대성가(大姓家)에 출생함을 얻으며, 제1 사천왕(四天王)에 태어남을 얻으며, 제6 천상의 공덕과 복을 얻으며, 이 복을 받은 후에는 모든 선본(善本)으로 인하여 반드시 모든 고통으로부터 제도됩니다. 만약 이 반야바라밀을 지니고 공양하고 받들어 섬기면 곧 다섯 가지의 바라밀․37품․부처님의 18법을 구족하여 나한․벽지불지에서 제도되어 보살의 덕에 머물게 됩니다. 문득 신통을 얻어서 한 불국토에서 다른 불국토에 이르기까지 그 응하는 바를 따라서 교화하며, 각각으로 하여금 처소를 얻게 하니 혹은 차가월라(遮迦越羅)를 지으며, 혹은 찰제리․범지를 지으며, 혹은 장자 대성을 지으며, 그 습속을 따라서 가르쳐 줍니다. 그러므로 세존이시여, 제가 교만하여 공경하고 받들어 섬기지 않는 것이 아니며 사리를 받아 지니려고 하지 않는 것도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만약 선남자․선여인이 반야바라밀을 공경하고 받들어 섬기는 것은 곧 모든 여래․무소착․등정각의 사리를 공양하는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만약 시방 현재의 무량한 모든 부처님을 친견하려고 하면 마땅히 반야바라밀을 봉행하고 염송하고 받아 지니고 사람들에게 익히고 행하고 공양하도록 해야 합니다. 그런 후에 선남자․선여인은 곧 시방 현재의 무량한 모든 부처님을 뵐 수 있으며, 이 선남자․선여인은 반야바라밀을 공양했기 때문에 곧 모든 불법을 얻게 됩니다. 세존이시여, 모든 부처님․여래․무소착․등정각을 친견하려고 하면 이 선남자․선여인은 마땅히 반야바라밀을 받아 지녀야 합니다. 세존이시여, 두 가지 법이 있습니다. 무엇이 두 가지인가 하면 이른바 유위법의 법과 무위법의 법을 말합니다. 어떤 것이 유위법의 법인가 하면 내외공의 지혜에서부터 유무공의 지혜에 이르기까지와, 37품․4무애혜․4무소의․부처님의 10종력․18법에 이르기까지와 악법․선법의 지혜, 유루․무루의 지혜, 속법․도법의 지혜입니다. 이것을 유위법의 법이라고 이름합니다. 어떤 것이 무위법의 법인가 하면 이른바 불생불멸의 법이며, 또한 머무는 것도 아니고 머물러 다름이 있는 것도 아니며, 또한 집착하지도 않고, 또한 단절되지도 않고, 또한 늘어나지도 않고, 또한 줄어들지도 않는 모든 법의 진(眞)입니다. 어떤 것을 모든 법의 진이라고 하는가 하면 소유함이 없는 것이 이 법의 진입니다. 이것을 무위법의 법이라고 이름합니다.”
부처님께서 석제환인에게 말씀하셨다.
“그러하다, 그러하다. 과거의 모든 여래․무소착․등정각께서는 모두 반야바라밀로 말미암아 아유삼불을 이루었으며, 모든 제자들도 또한 각각 그것을 얻어서 수다원에서 나한․벽지불에 이르기까지를 이루었다. 미래와 지금 현재의 모든 여래․무소착․등정각도 또한 마땅히 반야바라밀로 말미암아 아유삼불을 이룰 것이며, 모든 제자들도 또한 각각 그것을 얻어서 수다원에서 나한․벽지불에 이르기까지를 이룰 것이다. 왜냐하면 이 삼승법은 모두 반야바라밀 가운데서 출생하기 때문이다. 비록 삼승에서 나왔으나 또한 생하는 바도 없으며, 또한 상념도 없으며, 또한 집착도 없으며, 또한 끊어짐도 없으며, 또한 소유도 없으며, 또한 상응하지 않는 것도 아니며, 또한 움직이지도 않으며, 또한 움직이지 않는 것도 아니며, 또한 취하지도 않으며, 또한 버리지도 않는다. 다만 속수(俗數)로써 가장 요긴한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반야바라밀은 또한 여기에 있지도 않고 또한 저기에 있지도 않으며, 또한 중류(中流)도 아니며, 또한 가까운 언덕[近岸]도 아니며, 또한 짝도 아니며, 또한 쌍(雙)도 아니며, 또한 모양도 아니며, 또한 모양 아닌 것도 아니며, 또한 도(道)도 아니며, 또한 속(俗)도 아니며, 또한 유위도 아니며, 또한 무위도 아니며, 또한 선도 아니며, 또한 악도 아니며, 또한 과거․미래․현재도 아니다. 왜냐하면 구익아, 반야바라밀은 또한 불법을 지니지 않으며 또한 성문․벽지불의 법도 지니지 않으며 또한 범인의 법을 버리지도 않는다.”
석제환인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반야바라밀은 대도(大度) 중의 도(度)입니다.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해서 일체 중생들의 뜻을 다 알아도 또한 중생과 지견처(知見處)가 있지 않으며, 또한 5음을 보지 않으며, 또한 6정(情)을 보지 않으며, 또한 6쇠(衰)가 있지도 않으며, 또한 연기(緣起)도 아니며, 또한 37품과 부처님의 18법이 있지도 않습니다. 또한 도(道)도 보지 않으며, 또한 도법이 있는 것도 아니며, 또한 부처님을 뵙지도 않으며, 또한 불법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왜냐하면 반야바라밀은 또한 의지하여 머무를 바가 없기 때문입니다. 무슨 뜻인가 하면 반야바라밀은 형상이 없으며 볼 수도 없는데 하물며 어떻게 의지할 바를 보겠습니까?”
부처님께서 석제환인에게 말씀하셨다.
“구익이 말한 것처럼 보살마하살은 긴 밤 동안 반야바라밀을 행해도 오히려 도를 보지 못했는데, 하물며 어떻게 보살의 행할 법에 미치겠는가?”
석제환인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어째서 보살마하살은 단지 반야바라밀을 행하고, 나머지 바라밀은 행하지 않습니까?”
부처님께서 석제환인에게 말씀하셨다.
“보살은 6바라밀을 모두 행하니 또한 의지함이 없어서 베풂도 있지 않고 받는 자도 있지 않고 주는 자도 있지 않다. 계(戒)가 있는 것도 아니며, 또한 범함이 있는 것도 아니며, 또한 인욕이 있는 것도 아니며, 또한 성냄이 있는 것도 아니며, 또한 정진이 있는 것도 아니며, 또한 게으름이 있는 것도 아니며, 또한 선(禪)이 있는 것도 아니며, 또한 어지러운 뜻이 있는 것도 아니며, 또한 지혜가 있는 것도 아니며, 또한 어지석음이 있는 것도 아니다. 반야바라밀은 보살의 제일행이며, 반야바라밀에는 보시․지계․인욕․정진․일심(一心)이 포함된다. 다섯 가지 바라밀을 구족하려고 하므로 보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하는 것이다. 모든 법에 의지할 바 없음을 관하려고 하므로 5음에서 살운야에 이르기까지 모든 법에 의지할 바가 없는 것이다. 비유하면 염부제의 온갖 미묘한 나무에 약간 정도의 색깔․약간 정도의 나뭇잎․약간 정도의 꽃․약간 정도의 과실들의 색이 각기 다르지만 온갖 줄기․마디․가지․잎․꽃․열매가 그늘 면에서는 다름이 없고 차별이 없는 것처럼 구익아, 반야바라밀은 다섯 가지 바라밀과 살운야에 이르기까지를 포함한다. 또한 약간 차별이 없는 것도 아니니, 또한 의지할 바가 없기 때문이다.”
석제환인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반야바라밀은 모든 공덕을 다 구족하여 충만해 있습니다. 세존이시여, 반야바라밀은 무앙수의 한량없는 공덕을 모두 빠짐없이 구족합니다. 세존이시여, 반야바라밀은 일체 모든 법의 공덕을 포함하며 모두 구족합니다. 세존이시여, 만약 선남자․선여인이 반야바라밀을 받아 지니고 그 경권을 서사하고 꽃․도향․비단 화개․당번으로 공양하고 그 가운데 일을 행하는 것과 만약 어떤 사람이 반야바라밀을 서사하여 경권을 다시 다른 사람에게 주는 것 가운데는 어느 쪽에 복이 더 많겠습니까?”
부처님께서 석제환인에게 말씀하셨다.
“나에게 지금 그대가 질문한 것에 따라서 대답해 보아라. 만약 선남자․선여인이 전신사리를 공양하는 것과 만약 다시 겨자씨만큼의 적은 양으로 타인에게 공양한다면 그 복이 어느 쪽에 더 많겠느냐?”
석제환인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제가 부처님의 처소에서 들은 법대로라면 선남자․선여인이 사리를 공양하는 것이나 만약 겨자씨만큼의 적은 양을 타인에게 주면 그 복은 굉장히 많습니다. 세존이시여, 제가 진중하게 그 뜻을 살피건대, 여래는 금강삼매에 머물러서 스스로 그 몸을 부수어 겨자씨처럼 작은 사리가 되어 이것을 공양하는 것이니, 지극한 복을 받으며 모든 고통을 받는 기간을 단절시킵니다.”
부처님께서 석제환인에게 말씀하셨다.
“그러하다. 구익아, 만약 어떤 사람이 반야바라밀을 공양하고 서사하여 경권을 지니고 다시 다른 사람에게 준다면 그 복덕은 매우 많고 매우 많다. 구익아, 만약 반야바라밀을 가져서 점점 다른 사람에게 가르쳐 주어 그 가운데 지혜를 깨닫게 하고 일마다 분별하게 한다면 이 선남자․선여인이 얻는 복덕은 전에 공양한 것을 들은 것보다 더 많은 것이다. 이 반야바라밀의 그 존귀함이 모든 현성의 위에 있음을 마땅히 알아야 하며, 이 사람 보기를 세존과 같이하여 다름이 없어야 한다. 왜냐하면 반야바라밀을 보는 것은 곧 세존을 보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세존께서는 곧 반야바라밀이며 반야바라밀은 곧 세존이다. 왜냐하면 과거․미래․현재의 모든 여래․무소착․등정각께서는 모두 반야바라밀 가운데서 출생하여 아유삼불을 이루었기 때문이다. 모든 현성의 지혜와 아유월치의 보살에 이르기까지 모두 이 반야바라밀 가운데서 출생하여 아유삼불을 이루었다. 모든 성문들도 또한 그 가운데서 나한을 얻었으며, 벽지불도 각각의 처소를 얻었으며, 보살의 뜻을 발한 자도 모두 여기에서 모든 보살의 덕을 얻은 것이다. 그러므로 구익아, 만약 선남자․선여인이 현재의 모든 부처님을 친견하고 받들어 섬기고 공양하려고 하면 마땅히 반야바라밀을 공양해야 한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반야바라밀을 위해서 이와 같이 받들어 지니고 공양하여 스스로 아유삼불을 이루었으므로 그 가운데서 가장 존귀하니 누가 다시 존귀하여 공양하겠으며, 천상에서 세간에 이르기까지 모든 삼계를 지나도록 다시 존귀한 자가 없다. 어떤 이가 스스로 생각하기를 ‘나는 본래 반야바라밀에서 스스로 삼야삼불에 이르렀으므로 반야바라밀은 곧 내가 존귀하게 여기는 바이다. 그러므로 내가 지금 마땅히 반야바라밀을 공양하는 것이며, 응하는 바에도 공경할 것이다’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구익아, 나는 스스로 이 반야바라밀을 공양하고 받들어 섬기며, 처음부터 멀리 여의지 않는다. 내가 지은 것은 모두 반야바라밀로 인해서 행한 것이다. 만약 선남자․선여인이 아뇩다라삼야삼불을 얻으려고 하면, 마땅히 반야바라밀을 공양하고 받아 지니고 봉행해야 한다. 왜냐하면 모든 보살마하살은 모두 반야바라밀에서 출생하기 때문이다. 모든 부처님 세존도 모두 보살마하살에서 출생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구익아, 만약 선남자․선여인이 삼승법을 행한다면 모두 마땅히 반야바라밀을 공양해야 하며, 서사하여 받아 지니고 수학하기를 또한 마땅히 이와 같이 해야 한다.”
방광반야경 제8권
서진 우전국 무라차 한역
39. 공덕품(功德品)
부처님께서 석제환인에게 말씀하셨다.
“만약 선남자․선여인이 한 염부제를 가르쳐서 그 가운데 중생들로 하여금 10선(善)을 세우게 한다면 구익아, 어떻게 생각하느냐? 그 복이 참으로 많겠느냐?”
석제환인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매우 많고 많습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구익아, 이 선남자․선여인이 반야바라밀 경권을 가져서 타인에게 가르쳐 주고 서사하여 받아 지니고 염송하고 그 안에 있는 내용을 해석하는 것만 같지 못하니, 그 공덕을 얻는 것으로 말한다면 배나 더 많은 것이다. 왜냐하면 이 반야바라밀 가운데서 널리 무루(無漏)의 법을 설하기 때문이다. 모든 선남자․선여인으로 하여금 모두 얻게 하고 배우게 하며, 미래에도 또한 배워서 도에 이를 것이며, 나한․벽지불도를 구하는 자도 모두 얻게 하며, 미래에도 또한 그것을 얻을 것이며, 보살도를 구하는 것도 모두 이 가운데서 얻게 하며, 미래에도 이르면 모두 빠짐없이 마땅히 그 가운데서 얻을 것이다. 이미 아유삼불(阿惟三佛)을 이루었으면 모두 이 가운데서 얻었으며, 미래에 아유삼불을 구하는 사람도 또한 마땅히 이 가운데서 얻을 것이다. 구익아, 어떤 것을 무루의 법이라고 하는가? 이른바 37품이 공한 것에서 3해탈문․4제(諦)에 이르기까지 내외공에서 유무공(有無空)․부처님의 10종력(種力)․무량한 불법(佛法)을 말한다. 선남자․선여인으로 하여금 아유삼불을 얻어 이루게 하니, 미래에 구하려고 하는 자도 또한 마땅히 아유삼불을 이루게 될 것이다.
구익아, 한 염부제의 중생들을 가르쳐서 모두 10선을 세우게 해도 한 사람으로 하여금 수다원도를 얻게 한 것만 같지 못하다. 왜냐하면 비록 한 염부제의 중생들을 가르쳐서 10선을 행하게 해도 3악취를 벗어나지 못하지만, 한 사람을 가르쳐서 수다원을 얻게 하면 이미 3악취를 여의었기 때문이다. 구익아, 만약 한 염부제 가운데 있는 중생들로 하여금 10선을 행하게 하여 수다원을 얻게 해도, 한 사람을 가르쳐서 벽지불을 얻게 하여 얻는 복이 매우 많음에는 미치지 못한다. 구익아, 한 염부제의 사람들을 가르쳐서 10선을 세우게 하고 모두에게 수다원․사다함․아라한․벽지불을 얻게 해도, 한 사람을 가르쳐서 아뇩다라삼야삼보의 뜻을 일으키게 한 공덕이 많은 것에는 미치지 못한다. 왜냐하면 한 사람으로 하여금 아뇩다라삼야삼보의 뜻을 일으키게 하여 부처님의 종자를 잇게 하고, 부처님의 종자를 끊어지지 않게 하기 때문이다.
구익아, 수다원에서 벽지불 및 부처님에 이르기까지 모두 보살에서 출생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야 하니, 선남자․선여인이 반야바라밀의 경권을 가져서 타인에게 가르쳐 주면 얻는 바가 매우 많다. 왜냐하면 모든 광대한 법은 모두 반야바라밀 가운데로 들어오기 때문이다. 이것으로 인해서 곧 찰리(刹利)․범지(梵志)․장자대성이 있음을 알며, 이것으로 인해서 사천왕에서 위로 무사상무사상혜천(無思想無思想慧天)에 이르기까지 있음을 알며, 이것으로 인해서 37품과 살운야에 이르기까지가 있음을 알며, 수다원에서 위로 삼야삼불을 이르기까지가 있음을 아는 것이다. 구익아, 한 염부제의 중생들은 그만두고라도 사천하에서 소천(小千)천하․중천(中千)천하․삼천대천국토에 이르기까지 갠지스강의 모래 수처럼 많은 국토에 가득한 중생들을 모두 가르쳐서 10선을 세우게 해도, 선남자․선여인이 반야바라밀을 서사하여 받아 지니고 타인을 가르쳐서 경권을 서사하여 지니게 하고 염송하고 그 뜻을 해설하여 얻는 공덕이 매우 많음에는 미치지 못한다.
또한 구익아, 선남자․선여인이 한 염부제에 가득한 중생들을 가르쳐서 4선(禪)․4등(等)․4공정(空定)을 세우게 하고, 5신통(神通)을 얻게 하면 그 사람이 얻은 복은 참으로 많겠느냐?”
석제환인의 부처님께 아뢰었다.
“매우 많고 많습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러나 이 선남자․선여인이 반야바라밀을 써서 지니고 타인을 가르쳐서 경권을 써서 지니고 염송하게 하고 그 뜻을 해설해서 얻는 복이 많은 것만 같지 못하다. 왜냐하면 구익아, 반야바라밀은 지극히 광대하고 영원한 것을 설하기 때문이다.”
구익아, 한 염부제는 그만두고라도 사천하에서 소천국토․중천국토․삼천대천국토에 이르기까지 시방의 갠지스강의 모래 수처럼 많은 국토에 가득한 중생들을 빠짐없이 가르쳐서 4선․4등․4공정을 얻게 하고 5신통을 얻게 하면 그 공덕이 참으로 많겠느냐?”
석제환인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매우 많고 많습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러나 이 선남자․선여인이 반야바라밀을 써서 지니고 타인에게 가르쳐주고 그들로 하여금 써서 지니고 외우고 그 안의 내용을 해설하게 하여 얻는 공덕이 매우 많고 많은 것만 못하다.
또한 구익아, 반야바라밀을 받아 지니는 것은 두 가지 일에 의하는 것이 아니고 또한 두 가지가 아닌 것도 아니다. 다섯 가지 바라밀을 수행하는 것은 또한 두 가지 방법에 의하는 것도 아니고, 또한 두 가지가 아닌 것도 아니다. 또한 두 가지 일에 의하여 내외공과 유무공에 이르기까지를 생각하지 않으며, 또한 두 가지 일과 방법에 의해서 37품을 행하지 않으며, 또한 두 가지 일과 방법에 의해서 살운야를 행하지 않는다.
또한 구익아, 만약 선남자․선여인이 무량한 방편을 써서 반야바라밀을 지니고 중생을 교화하여 중생으로 하여금 배우고 받아 지니고 염송하게 하고 그 뜻을 널리 연설하고 해설에 준다면 두 가지 일에 의하여 반야바라밀을 관하지 않는다. 또한 모양[相]에 의하지도 않고 또한 모양이 없는 것에 의하지도 않으며, 또한 합하지도 않고 또한 흩어지지도 않으며, 또한 상응하지도 않고 상응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 또한 들어올리는 것도 아니고 또한 내려놓는 것도 아니며, 또한 집착하지도 않고 또한 끊어지지도 않으며, 또한 생하지도 않고 또한 멸하지도 않는다. 또한 지니지도 않고 지니지 않는 것도 아니며, 또한 처하지도 않고 처하지 않는 것도 아니며, 또한 진실도 아니고 또한 거짓도 아니다. 또한 더러운 것도 아니고 또한 청정한 것도 아니며, 또한 믿는 것도 아니고, 믿지 않는 것도 아니며, 또한 법이 아니고 법이 아닌 것도 아니며, 또한 여여한 것도 아니고 또한 여여함이 아닌 것도 아니며, 또한 진제(眞際)도 아니고 진제가 아닌 것도 아니다.
이와 같이 구익아, 선남자․선여인이 반야바라밀을 받아 지니고 타인에게 가르쳐주고 그들로 하여금 염송하게 하고 배우게 하고 일마다 분별하고 그 뜻을 해설해 주어서 문장과 구절을 분명하게 해주면, 가르쳐 준 사람이 얻는 공덕은 자기가 염송하고 수행하고 그 일을 행한 것보다 훨씬 수승하다. 만약 선남자․선여인이 스스로 반야바라밀을 배워 독송하고 해설하고 몸소 스스로 공양하며 또 타인을 가르쳐서 외우게 하고 배우게 하고 그 안의 뜻을 분별하여 해설하여 주고 그 지혜를 명료하고 구족하게 하면, 이 선남자․선여인이 얻는 공덕은 가장 크며 이익이 배나 많다.”
석제환인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이 선남자․선여인은 반야바라밀을 수학하고 마땅히 그 구절의 뜻을 해설하여 수용하는 것을 구족합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이와 같고 이와 같도다. 구익아, 선남자․선여인은 반야바라밀을 수학하고 마땅히 그 구절의 뜻을 해설하여 수용함을 구족해야 한다. 이와 같이 배운 선남자․선여인은 한량없고 헤아릴 수 없는 선의 근본[善本]의 덕을 얻을 것이다. 만약 선남자․선여인이 그 형상의 수명이 다하도록 시방의 모든 부처님 여래를 공양하는데 그 즐거워하는 바에 따른다면, 그 사람이 심은 복은 참으로 많겠느냐?”
석제환인이 아뢰었다.
“매우 많고 많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러나 이 선남자․선여인이 무량한 수의 방편으로써 반야바라밀을 수지하고, 타인에게 가르쳐 주고 배우게 하고 지키고 행하게 하고 그 구절의 뜻을 해설하고 분명하게 알게 해주어서 얻은 공덕과 복이 가장 많은 것에 미치지 못한다. 왜냐하면 과거․미래․현재의 모든 부처님께서는 본래 보살도를 행할 때 모두 다 반야바라밀 가운데서 배워 아유삼불을 이루었기 때문이다. 그것을 배우는 자가 있다면, 또한 마땅히 다시 아유삼불을 이룰 것이다.
또한 구익아, 선남자․선여인이 아승기겁 동안 단(檀)바라밀을 행했다고 해도 이 선남자․선여인이 반야바라밀을 받아 지니고 널리 중생을 가르쳐 주는 것만 같지 못하니, 의지할 바가 없기 때문이다. 구익아, 보살이 단바라밀을 행하되, 만약 의지함이 있어 ‘나는 그들에게 베풀어 주었다’고 생각한다면 이와 같이 하는 보시에 머물게 되니 단바라밀을 이루지 못한다. ‘나는 계를 지키니 이것이 나의 계이다’라고 말하면 곧 계에 머물게 되니, 시(尸)바라밀을 이루지 못한다. ‘나는 인욕을 했으므로 이것이 인욕이다’라고 말한다면 곧 인욕에 머물게 되니, 찬(羼)바라밀을 이루지 못한다. ‘나는 정진을 하였으니 나아감이 있다’고 말한다면 곧 정진에 머물게 되니, 유체(惟逮)바라밀을 이루지 못한다. ‘나는 선을 행하니 선을 했다’고 말하면 곧 선에 머물게 되니, 선(禪)바라밀을 이루지 못한다. ‘나는 지혜를 행한다’고 말하면 곧 이 지혜에 대하여 생각하고 이 지혜에 머물게 되니, 반야바라밀을 이루지 못한다. 구익아, 선남자․선여인이 이와 같이 행하면 6바라밀을 이루지 못한다.”
석제환인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보살마하살이 어떻게 행해야 마땅히 6바라밀을 이룰 수 있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석제환인에게 말씀하셨다.
“보살이 보시를 할 때 또한 자신도 있지 않으며, 또한 베풀어 줌도 있지 않으며 또한 받는 자도 있지 않으니, 이것이 단바라밀을 행하는 것이다. 반야바라밀에 이르기까지도 또한 있는 것도 아니며, 또한 얻는 것도 아니다. 이것이 보살이 6바라밀을 구족하여 행하는 것이다. 구익아, 선남자․선여인은 6바라밀을 행하고 그 뜻을 이해해서 마땅히 이와 같이 지을 줄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이후 미래세에 마땅히 선남자․선여인이 아뇩다라삼야삼보를 얻으려는 뜻을 일으키고 반야바라밀에 머물러도 반야바라밀을 듣고 그 뜻을 깨닫는 것을 구족하지 못한다면 혹은 아뇩다라삼야삼보를 이루지 못한다. 그러므로 마땅히 그 무리의 사람들을 위해서 반야바라밀 가운데 지혜를 구족하게 해설해 주어야 한다.”
석제환인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어떤 것이 사람을 위해서 반야바라밀을 설하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석제환인에게 말씀하셨다.
“선남자․선여인이 반야바라밀을 설하며, 설한 후에도 마땅히 다시 설하는 것이다.”
석제환인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어떻게 하는 것이 선남자․선여인이 반야바라밀을 설하는 것이며, 설한 후에 마땅히 다시 설하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석제환인에게 말씀하셨다.
“만약 선남자․선여인이 새로이 반야바라밀에 들어가고자 하면 마땅히 반야바라밀을 설해야 하며, 설한 후에도 마땅히 다시 설해야 한다. 새로 들어가고자 하는 자를 위해서 색(色)이 무상(無常)함을 설하며, 마땅히 이와 같이 설해야 한다. 이와 같이 행하는 것이 반야바라밀을 행하는 것이며, 이와 같이 설하는 것이 5음이 무상함을 생각하는 것이다. 선남자․선여인은 이와 같이 5음이 무상함을 설하는 것이 처음부터 반야바라밀을 행함으로 향해 가는 것이다. 12쇠(衰)가 무상하고 고(苦)이고 공함을 설하는 것이 6바라밀을 행하는 것이다. 18성(性)이 무상하고 고이고 공함을 설하는 것이 6바라밀을 행하는 것이다. 5음(陰)이 고이고 공함을 설하는 것이 6바라밀을 행하는 것이다. 4선․4등․4공정이 무상하고 고이고 공함을 설하는 것이 6바라밀을 행하는 것이다. 37품과 18법 나아가 살운야에 이르기까지를 설하며, 무상하고 가르침이 항상하지 않으며 고이고 공함을 설한다. 이와 같이 설해야 하며, 이와 같이 해석해야 한다. 이것이 새로 뜻을 일으킨 자를 가르쳐서 6바라밀을 행하게 하는 것이다. 구익아, 새롭게 처음 뜻을 발하여 배우려고 하는 자는 마땅히 이와 같이 행해야 한다.
또한 구익아, 만약 선남자․선여인으로서 깊이 들어가 배운 사람은 반야바라밀을 설할 때 마땅히 새롭게 처음 뜻을 발하여 배우려고 하는 자에게 ‘그대는 마땅히 6바라밀을 받아들여 생각해야 한다. 받아들인 후에는 마땅히 제1 보살지(菩薩地)에 머물 것이고, 제1에서 제2에 이르고 10주(住)에 이를 것이다’ 라고 말한다. 이와 같은 생각을 지으면 집착하는 생각이 있고 의지하는 생각이 있게 된다. 이렇게 반야바라밀을 생각하는 것이 구익아, 새롭게 뜻을 발하여 반야바라밀을 행하는 것이다.
또한 구익아, 이 선남자․선여인이 다시 이와 같은 가르침을 지어 ‘그대는 마땅히 반야바라밀을 생각해야 한다. 생각한 후에는 나한․벽지불에서 벗어날 것이다’라고 말한다. 이것이 새롭게 뜻을 발한 자가 행하는 것이다. 또한 구익아, 보살도를 행하는 자는 마땅히 새로 배우는 자에게 ‘그대는 마땅히 반야바라밀을 받아들여야 하니, 그러면 무소종생법인(無所從生法忍)을 얻고 법인[忍]을 얻은 후에는 곧 신통에 머물러 한 불국토에서 다른 한 불국토에 이르기까지 모든 부처님 세존을 예로 받들어 섬기며 공경하게 된다’고 말한다. 또한 구익아, 깊이 들어가 배운 사람은 마땅히 새로 배워 처음 뜻을 발하려고 하는 자에게 ‘선남자․선여인아, 그대들은 마땅히 이와 같이 반야바라밀을 수학해야 한다. 이 같은 생각을 가져야 하고, 이렇게 생각한 후에 그대는 곧 마땅히 헤아릴 수 없는 무량한 공덕과 선한 복을 얻게 될 것이다’라고 말한다. 이것이 새로 뜻을 발한 자가 행해야 할 것을 가르치는 것이다. 또한 구익아, 깊이 들어가 배운 사람은 마땅히 새로 배우는 자를 가르치며 ‘선남자야, 그대는 마땅히 과거․미래․현재의 모든 부처님께서 행하신 선의 근본과 지으신 공덕을 배워야 하며, 마땅히 일심(一心)으로 아뇩다라삼야삼불을 얻을 때까지 염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것이 새로 배우는 자가 행해야 할 것을 가르치는 것이다.”
석제환인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이 같은 생각을 하고, 설한 후에는 마땅히 다시 어떻게 새로 배우는 자를 가르쳐야 합니까?”
부처님께서 석제환인에게 말씀하셨다.
“깊이 들어가 배운 사람은 마땅히 다시 새로 배우는 자를 가르치며 ‘선남자야, 마땅히 반야바라밀을 생각해야 한다. 반야바라밀을 생각하면서 5음이 무상하다고 관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5음의 소유는 스스로 공하며, 5음의 소유는 소유가 없기 때문이다. 소유가 없는 것은 5음이 아니다. 반야바라밀 가운데 5음에는 유상(有常)과 무상(無常)이 없다. 반야바라밀 가운데서 오히려 5음을 보지 못하는데 하물며 어떻게 유상과 무상이 있겠느냐’라고 말한다. 구익아, 선남자․선여인이 이와 같이 설하는 것은 새로 배우는 자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다. 마땅히 다시 새로 배우는 자를 가르치며 ‘그대는 마땅히 반야바라밀만을 생각해야 한다. 모든 법에서 반야바라밀을 생각하는 것을 벗어날 수 없으며, 머물 수도 없다. 왜냐하면 반야바라밀에는 또한 법이 가히 벗어남도 없으며, 머무름도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법은 스스로 공하기 때문이다. 공하다는 것은 소유가 없는 것이다. 소유가 없는 것이 반야바라밀이다. 반야바라밀 가운데는 법이 가히 상응함도 상응하지 않음도 없다. 또 생하고 생하지 않는 법도 없다’고 말한다. 선남자․선여인이 이와 같이 설하는 것이 새로 배우는 자를 가르치는 것은 아니다. 구익아, 선남자․선여인은 반야바라밀 가운데 뜻이 마땅히 이와 같음을 설해야 한다. 선남자․선여인아, 이와 같이 가르쳐서 얻는 공덕은 전보다 많은 것이다. 또한 구익아, 선남자․선여인이 한 염부제의 중생들을 가르쳐서 수다원도를 얻게 하면 그 복이 많겠느냐?”
석제환인이 아뢰었다.
“매우 많고 많습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러나 선남자․선여인이 반야바라밀로써 타인에게 주어서 배우게 하고 서사하여 지니게 하고 그 뜻을 해설하여 주어 얻는 공덕이 매우 많고 많은 것에 미치지 못한다. 이 선남자․선여인은 반야바라밀을 가르쳐서 그 위에 배워 익히고 지키고 행하는 것을 따르게 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모든 수다원도 모두 반야바라밀에서 출생하기 때문이다.
또한 구익아, 염부제는 그만두고라도 모든 사천하와 나아가 삼천대천국토와 동방의 갠지스강의 모래 수처럼 많은 국토에 가득 찬 중생들로 하여금 모두 수다원도를 얻게 한다면 그 복이 참으로 많겠느냐?”
석제환인이 아뢰었다.
“매우 많고 많습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러나 선남자․선여인이 반야바라밀로써 타인에게 가르쳐 주고 배우게 하고 서사하여 지니고 외우고 익히고 수행하게 하고 그 뜻을 해설해 주어서 얻는 공덕이 매우 많고 많은 것에는 미치지 못한다. 왜냐하면 수다원도 모두 반야바라밀에서 출생하기 때문이다.
또한 구익아, 만약 염부제에 가득 찬 중생들을 모두 가르쳐서 수다원․사다함․아나함․아라한을 얻게 하면 그 복이 참으로 많겠느냐?”
석제환인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매우 많고 많습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이는 선남자․선여인이 반야바라밀로써 타인에게 가르쳐 주고 배우게 하고 서사하여 수지하게 하고 외우고 받들어 수행하게 하고, 그 가운데 지혜의 뜻을 해설하여 주어서 얻는 공덕이 매우 많고 많은 것에 미치지 못한다. 왜냐하면 수다원도에서 아라한에 이르기까지가 모두 다 반야바라밀에서 출생하기 때문이다.
또한 구익아, 한 염부제는 그만두고라도 삼천대천국토와 갠지스강의 모래 수처럼 많은 국토에 이르기까지 그 가운데 가득 찬 중생들로 하여금 모두 수다원도에서 아라한도에 이르게 한다면, 그 복이 많겠느냐?”
석제환인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매우 많고 많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이는 선남자․선여인이 반야바라밀로써 타인에게 가르쳐 주고 배우게 하고 서사하고 외우고 받들어 행하게 하고 그 안의 가르침을 따라 지혜의 뜻을 해설해 주어서 얻는 공덕이 매우 많고 많은 것에는 미치지 못한다.
또한 구익아, 한 염부제에 가득 찬 중생들로 하여금 벽지불도를 얻게 한다면 그 복이 많겠느냐?”
석제환인이 아뢰었다.
“매우 많고 많습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이는 선남자․선여인이 반야바라밀로써 타인에게 가르쳐 주고 배우게 하고 서사하여 수지하고 외우고 받들어 섬기게 하며 그 안의 가르침을 따라서 지혜의 뜻을 해설해 주어서 얻는 공덕이 매우 많고 많은 것에는 미치지 못한다. 왜냐하면 모든 벽지불은 모두 반야바라밀에서 출생하기 때문이다.
또한 구익아, 이 염부제는 그만두고라도 삼천대천국토와 갠지스강의 모래 수처럼 많은 국토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중생들을 가르쳐서 벽지불도를 얻게 한다면 복이 많겠느냐?”
석제환인이 아뢰었다.
“매우 많고 많습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이는 선남자․선여인이 반야바라밀로써 타인에게 가르쳐 주고 배우게 하고 서사하고 외우고 받들어 섬기게 하고 그 안의 가르침을 따라서 지혜의 뜻을 해설해 주어서 얻는 공덕이 매우 많고 많은 것에는 미치지 못한다. 왜냐하면 모든 벽지불은 다 반야바라밀 가운데서 출생하기 때문이다.
또한 구익아, 만약 선남자․선여인이 한 염부제와 갠지스강의 모래 수처럼 가득 찬 중생들이 아뇩다라삼야삼보의 뜻을 발하도록 권하여 도와주어도 선남자․선여인이 반야바라밀로써 타인에게 가르쳐 주고 배우게 하고 서사하고 외우고 받들어 섬기게 하며, 지혜의 뜻을 해설해 주어서 얻는 덕이 매우 많은 것에는 미치지 못한다. 그 사람은 ‘반야바라밀을 받아서 마땅히 그 안의 가르침을 따르며 이 가르침을 따른 후에는 마땅히 살운야의 이익을 얻게 된다. 이 이익을 얻은 후에는 곧 반야바라밀을 구족하게 된다. 그대는 곧 마땅히 아뇩다라삼야삼보를 이룰 것이다’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처음 뜻을 발한 보살은 모두 반야바라밀에서 출생하기 때문이다.
또한 구익아, 만약 선남자․선여인이 한 염부제와 나아가 갠지스강의 모래 수처럼 가득 찬 그 안의 중생들을 가르쳐서 아유월치에 서게 한다면 그 복이 참으로 많겠느냐?”
석제환인이 아뢰었다.
“매우 많고 많습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구익아, 선남자․선여인이 반야바라밀의 경권을 가지고 타인에게 가르쳐주고, 그 안의 내용을 해석하고 그 지혜의 뜻을 알게 하여 그것을 행하게 한 것에는 미치지 못한다. 그 사람은 ‘반야바라밀의 경권을 수지하고 위에서 가르친 대로 모두 익히고 봉행한다면 그대는 곧 마땅히 모든 법의 이익을 얻게 될 것이며, 아뇩다라삼야삼보를 얻는 데 이를 것이다’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보살마하살과 아유월치지는 모두 다 반야바라밀에서 출생하기 때문이다.
또한 구익아, 한 염부제가 다하도록 그 안의 중생들이 다 아뇩다라삼야삼보로 마음을 전환하지 못하는데 만약 선남자․선여인이 이 무리를 위하여 반야바라밀과 나아가 그 뜻을 모든 이에게 설해 준다고 하자. 그러면 어떤 한 사람이 ‘나는 속히 아뇩다라삼야삼보를 이루고 싶다’고 말한다. 만약 선남자․선여인이 이 한 사람을 위해서 반야바라밀을 설해 주고 구족하게 그 뜻을 분별하여 해설해 주면 복이 가장 많다.”
석제환인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보살마하살이 힘써 아뇩다라삼야삼보를 이루려고 하면 힘써 마땅히 이 보살을 가르쳐서 6바라밀을 행하게 하며, 마땅히 내외공과 유무공에 이르기까지 37품․부처님의 10종력․4무소외․4무애혜․부처님의 18법을 가르쳐야 합니다. 마땅히 이 법으로써 이 무리의 사람들을 가르치고 그들이 필요로 하는 바에 따라 의복․진월(眞越:臥具)을 공양합니다. 이 두 가지 법으로써 이 무리의 보살들에게 함께 공양한다면 세존이시여, 이 선남자․선여인이 얻는 복은 가장 존귀하며 전에 지은 것보다 뛰어납니다. 왜냐하면 세존이시여, 보살마하살이 사람을 가르쳐서 6바라밀을 행하게 하고 마땅히 이와 같이 사람을 가르쳐서 내외공과 유무공․37품, 나아가 부처님의 18법에 이르기까지를 행하게 하고, 또한 마땅히 이와 같기 때문입니다.”
수보리가 석제환인에게 말하였다.
“훌륭하고 훌륭하다. 구익아, 이것이 선남자․선여인에게 보살도를 구하도록 권하고 도와주는 것이며, 이에 그들은 부처를 위하여 현인 제자의 법을 지어서 마땅히 보살마하살에게 이익되게 할 것이며, 법시(法施)와 공양으로써 보살을 보호하고 봉양하며, 아뇩다라삼야삼보를 이루도록 권하고 도와준다. 왜냐하면 모든 부처님과 제자들은 다 이 두 가지의 보시 가운데서 나오기 때문이다. 만약 보살이 아뇩다라삼야삼보의 뜻을 일으키지 않았다면, 이 보살은 끝내 6바라밀과 부처님의 18법을 베풀 수 없다. 만약 보살이 6바라밀과 부처님의 18법을 배우지 못했다면 끝내 아뇩다라삼야삼보를 이루지 못할 것이며, 또한 나한․벽지불이 있는 것도 알지 못할 것이다. 보살이 6바라밀과 부처님의 18법을 배우기 때문에 아뇩다라삼야삼보를 이루며, 3악취가 곧 끊어지고, 세간에는 찰리․범지․장자대성종이 있음을 알며, 곧 사천왕과 나아가 무사상무사상혜천(無思想無思想慧天)이 있음을 알며, 곧 6바라밀과 내외공에서 유무공․37품․부처님의 18법에 이르기까지가 있음을 알며, 세간에 성문․벽지불승이 있음을 안다.”
40. 권조품(勸助品)
이때 미륵보살마하살이 수보리에게 말하였다.
“보살마하살이 권조(勸助)한 복우(福祐)의 상(像)을 중생들과 함께 하여 아뇩다라삼야삼보를 이루니, 희망하는 바가 없어서 중생들보다 낫습니다. 모든 성문․벽지불이 권조한 복우는 일체 중생보다 뛰어납니다. 성문․벽지불승을 일으킨 사람이 보시한 복우의 상과 계를 지켜 스스로를 지키고 일심(一心)으로 지은 복상(福像)은, 이 보살마하살이 권조의 복을 중생과 함께 하여 아뇩다라삼야삼보를 이루게 하는 것만 같지 못합니다. 그 복은 가장 높고 가장 제일이어서 모두 구족하여 이보다 뛰어난 것이 없습니다. 권조하여 모두 중생을 위해서 아뇩다라삼야삼보를 이루게 하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나한․벽지불이 지은 보시의 복은 계를 지키되 스스로만 지키고 다만 자기만을 조어하려고 하며, 다만 자기만 청정하려고 하며, 다만 스스로만 제도하려고 합니다. 37품을 염하며 3해탈문을 염하는데, 다만 자기만을 조복하려 하고 자신만을 제도하려고 합니다. 보살은 다만 중생을 조어하려고 하며, 중생을 청정하게 하려고 하며, 중생을 제도하려고 하며, 중생을 권조하여 아뇩다라삼야삼보를 얻게 합니다.”
수보리가 미륵보살마하살에게 아뢰었다.
“이 보살마하살은 동방의 무량한 모든 불국토에 계시는 무량한 반니원불이 뜻을 일으킬 때부터 아뇩다라삼야삼보에 이를 때까지, 반니원에서 나아가 법이 멸하여 다할 때까지 그 가운데 지은 선의 근본으로 6바라밀에 상응하고, 모든 성문․연각이 지은 보시 공덕․지계․자수(自守)에 이르기까지, 모든 무루(無漏)의 계에 이르기까지, 계를 행하는 것에서부터 계가 없는 선본(無戒善本)에 이르기까지, 나아가 모든 불정계(佛淨戒)의 복․삼매의 복․지혜의 복․해탈의 복․견해탈혜(見解脫慧)의 복과 대자대비․무량한 아승기의 부처님께서 설하신 법에 이르기까지, 그 법 가운데서 듣고 받아서 수다원을 얻고 나아가 아라한․벽지불을 얻고 위로 보살과 모든 반니원하신 부처님께서 지은 공덕에 이르기까지를 모두 헤아리고 합해도, 권조하는 것이 가장 존귀하며 위업이 존귀하며 구족한 것이 됩니다. 나도 또한 이 공덕을 가지고 이와 같이 권조한 공덕과 복을 아뇩다라삼야삼보 가운데서 지니는 데 권조합니다. 이것이 곧 아뇩다라삼야삼보를 이루는 것입니다.
선남자․선여인이 보살도를 행하면서 혹은 마땅히 생각하기를 ‘과거의 모든 부처님 세존께서 지으신 공덕이 나로 하여금 이 뜻을 얻게 한 것이며, 나로 하여금 일으킨 뜻을 행하게 하며, 나로 하여금 이 상념을 얻게 하였다’고 합니다.”
미륵보살이 수보리에게 말하였다.
“선남자․선여인이 보살의 뜻을 일으키는 것은 아뇩다라삼야삼보에 대하여 이러한 인연으로써 하지 않으며, 이러한 상(像)으로써 하지 않으며, 이러한 생각을 짓지 않는 것입니다.”
수보리가 미륵보살에게 아뢰었다.
“만약 이것으로써 얻지 않고 이것에 인연하지 않는다면 모든 부처님 세존은 무슨 까닭으로 시방세계에서 시방 부처님께서 처음 뜻을 일으킬 때부터 법이 다할 때까지 모든 선의 근본과 성문승을 발함을 생각하는 것입니까? 내가 계를 지킬 때부터 계가 없을 때까지의 공덕을 모두 다 헤아리고 합해서 아뇩다라삼야삼보를 구하되 응당 생각이 없어야 하고 장차 전도된 생각(顚倒想)을 짓지 않아야 합니다. 무상(無常)을 유상(有常)이라고 하는 것은 생각이 전도된 것이며, 뜻이 전도된 것이며, 견해가 전도된 것입니다. 부정한 것을 청정하다고 말하며, 고(苦)를 즐거움이라고 말하며, 아(我)가 없는 것을 아(我)라고 말하는 것은 생각이 전도된 것이며, 뜻이 전도된 것이며, 견해가 전도된 것입니다. 그 일은 허공과 같으며, 또한 인연도 그러합니다. 도의 뜻은 그러한 것이며, 6바라밀도 또한 그러합니다. 나아가 18법도 또한 그러합니다. 만약 일이 있다면 또한 이와 같습니다. 도의(道意)․6바라밀도 또한 이와 같으며, 5음(陰)․6정(情)도 또한 이와 같으며, 내외공과 유무공․37품․10종력․부처님의 18법도 이와 같습니다. 무엇이 일이 되며, 무엇이 인연이 되며, 무엇이 도(道)가 되며, 무엇이 모든 선의 근본이 되며, 무엇이 권조의 뜻이 되며, 무엇이 권조에 대하는 뜻이 되는 것입니까? 어떻게 아뇩다라삼야삼보를 구할 수 있는 것입니까?”
미륵보살이 수보리에게 말하였다.
“만약 보살이 6바라밀을 행하고 과거의 부처님을 뵙고 모든 부처님을 받들어 섬기며 공양하고 선지식과 함께 하고 이미 스스로 몸[身]이 공함을 배우면, 이 무리의 사람들은 사상(事像)을 취하지 않고 인연도 취하지 않고 부처님의 선본(善本)의 상(相)도 취하지 않고 권조의 공덕도 취하지 않고 모든 복을 짓는 생각도 취하지 않고 아뇩다라삼야삼보를 구하는 것입니다. 마땅히 다시 이 뜻을 지어 구해야 합니다. 두 가지 법에 떨어져서도 안 되며, 또한 둘이 아닌 것도 아니며, 또한 생각을 취하는 것도 아니며, 무상(無想)을 취하는 것도 아니니, 또한 의지할 것도 없으며 또한 의지하지 않는 것도 아닙니다. 또한 집착을 취하는 것도 아니며 또한 단절을 취하는 것도 아니며, 또한 생함을 취하는 것도 아니며, 또한 멸함을 취하는 것도 아닙니다. 만약 보살이 6바라밀을 배우지 않고 모든 부처님을 받들어 섬기지 않고 모든 선의 근본이 없고 선지식을 얻지 못하고 스스로 공함을 배우지 않는다면, 곧 이 일을 취하며 이 인연을 취하며 이 권조의 공덕을 취하며 모든 일이 일어나게 된 생각을 취해서 아뇩다라삼야삼보를 구합니다. 그러므로 수보리여, 처음 뜻을 발한 보살에게 앞에서 설한 6바라밀을 설해서는 안 됩니다. 나아가 내외공․유무공에 이르기까지, 제법공에 이르기까지를 새로 배우는 보살에게 설해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만약 새로 배우는 사람이 혹은 믿음을 잃고 혹은 즐거워할 것을 잃고 공경하고 있는 것을 모두 다 잃고, 곧 모든 선의 근본이 무너지기 때문입니다. 마땅히 아유월치지의 보살마하살에게 설해 주어야 합니다. 만약 오래도록 선지식과 함께하고 따르던 사람에게도 또한 설해 줄 수 있습니다. 예전에 과거의 모든 부처님께 공덕을 지은 자라면 마땅히 이 무리의 사람들에게 공상(空相)의 법을 설해 주어야 합니다. 이 사람은 이 법문을 듣고 두려워하지도 않고 또한 무서워하지도 않습니다. 보살마하살은 마땅히 이와 같이 권조해야 하나 권조의 뜻이 있어야 하며, 아뇩다라삼야삼보를 구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 뜻은 이미 멸진(滅盡)해서 다시 소유할 것이 없으며, 지을 수 있는 것과 모든 인연으로 지은 공덕도 또한 다시 멸진한다면 무엇이 권조의 뜻이며, 무엇이 온갖 일이며, 무엇이 인연이며, 무엇이 선한 근본의 공덕입니까? 아뇩다라삼야삼보를 구하려는 사람은 구하려는 뜻을 지닐 수 있습니까? 뜻에는 두 가지로 대립된 것이 없으며, 여여한 뜻의 성품으로 구하는 바가 없는 것입니다. 만약 보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는 6바라밀에 이르기까지도 또한 무소유이며, 5음에 이르기까지도 무소유이며, 도(道)에 이르기까지도 또한 무소유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만약 보살이 아뇩다라삼야삼보를 구하려고 한다면 마땅히 이와 같이 알아야 하며, 마땅히 이와 같이 구해야 하며, 마땅히 이렇게 권조해야 하며, 마땅히 선의 근본을 지어야 합니다. 이와 같이 구하는 것이 아뇩다라삼야삼보를 구하는 것입니다.”
미륵보살이 장로 수보리에게 말하였다.
“새로 배우는 보살이 이를 듣고서 장차 공포가 없겠습니까? 마땅히 어떻게 모든 선의 근본[善本]의 공덕을 지어서 구하는 것이며, 어떻게 권조하고 나아가 모든 공덕을 지녀서 아뇩다라삼야삼보를 짓는 것입니까?”
수보리가 미륵보살에게 말하였다.
“새로 배우는 보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하려면 6바라밀을 받아 지니되 의지할 바가 없어야 하며, 생각하는 바가 없어야 합니다. 마땅히 내외공과 유무공을 알아야 하며, 37품과 부처님의 18법을 알아야 합니다. 항상 선지식과 함께하고 따라야 하며, 6바라밀과 그 뜻을 가르쳐서 6바라밀을 여의지 않게 하며, 보살도를 얻을 때까지 불법을 여의지 않아야 하며, 마군의 일을 말하고 마군의 일을 듣고서도 늘어나지도 않고 줄어들지도 않습니다. 왜냐하면 보살도를 얻을 때까지 항상 모든 법을 생각하고 모든 부처님을 여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가운데서 공덕을 지어서 모든 보살종(菩薩宗)을 수지하고 아뇩다라삼야삼보를 얻을 때까지 이 공덕을 여의지 않습니다. 새로 배우는 보살은 모든 시방의 무앙수의 부처님 여래․무소착․등정각과 모든 제자들이 지은 공덕에 이르기까지, 모든 찰리․범지대성과 사천왕과 수타회의 모든 천(天)이 지은 공덕에 이르기까지 모두 권조해야 하며, 이 권조한 공덕을 가지고 아뇩다라삼야삼보를 구하면, 그 공덕은 최상이어서 이를 능가할 것이 없습니다.”
이때 미륵보살이 수보리에게 말하였다.
“만약 새로 배우는 보살이 모든 부처님과 제자들이 소유하고 있는 권조의 공덕을 생각한다면 위없고 비교할 데 없는 권조이며 무량한 권조의 공덕으로 아뇩다라삼야삼보를 구하니, 상(想)․염(念)․견(見)이 전도되지 않아야 합니다.”
수보리가 말하였다.
“비록 모든 부처님과 제자들을 생각한다고 하나, 이 가운데서 부처라는 상(想)이 없어야 하며, 또한 제자들이라는 상도 없어야 하며, 또한 모든 선의 근본이라는 상도 없어야 하며, 구할 바가 있어도 생각이라는 상[意想]이 없어야 합니다. 보살이 이와 같이 지어서 구하면 상이 전도된 것이 아니며, 염(念)이 전도된 것이 아니며, 견해가 전도된 것이 아닙니다. 만약 보살이 모든 부처님과 여러 스님의 공덕을 생각하고, 지은 선의 근본을 생각하고, 이 생각을 가지고 아뇩다라삼야삼보를 구한다면, 이것은 보살의 상(想)이 전도된 것이며, 염(念)이 전도된 것이며, 견해가 전도된 것입니다. 만약 보살이 비록 이러한 생각을 가지고 있지만 부처님과 대중을 생각하며 모든 선의 근본을 생각한다면 비록 이러한 생각이 있지만, 이 생각은 다 멸하여 소유가 없으며 모든 멸하는 것은 구할 바가 없다는 것을 마땅히 알아야 합니다. 뜻[意]에 구함이 있다면 뜻의 법이며, 구할 수 있는 법은 또한 그 법입니다. 비록 이와 같이 구하더라도 이것은 바르게 구하는 것이며, 그릇되게 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보살마하살은 마땅히 이와 같이 구해야 합니다. 과거․미래․현재의 모든 부처님과 모든 제자들이 지은 공덕에 이르기까지, 아래로 범부가 지은 공덕에 이르기까지, 듣고 받아 지닌 법으로 모든 천․아수륜․진타라(眞陀羅)․마후륵(摩睺勒)이 지은 공덕에 이르기까지, 모든 찰리․범지대성․장자가 지은 공덕에 이르기까지, 사천왕에서 위로 수타회천이 지은 공덕에 이르기까지, 법을 듣고서 뜻을 발하여 아뇩다라삼야삼보를 구하는 것을 모두 합하고 모으고 헤아리고 재서 지은 공덕으로 모두 권조하며 권조의 공덕을 가지고 아뇩다라삼야삼보를 구합니다. 이 법은 이미 다했고 이미 멸했음을 마땅히 알아야 합니다. 다시 소유하고 구할 수 있는 법은 없으며 또한 다 공한 것입니다. 만약 이와 같이 구하여 아뇩다라삼야삼보를 구한다면 마땅히 법을 아는 것이며 법을 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모든 법은 다 스스로 공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구하는 것이 아뇩다라삼야삼보를 구하는 것입니다. 보살이 이와 같이 6바라밀을 행한다면 상(想)이 전도된 것이 아니며, 염과 견해 또한 전도된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구할 바에 들어가지 않기 때문이며, 모든 선의 근본과 그 도의 뜻이 마땅히 들어가는 처소를 보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보살의 위없는 구함인 것입니다.
보살마하살은 모든 공덕에 대해서 적정하니 생함이 없습니다. 5음․18성 나아가 6쇠(衰)에서 6바라밀에 이르기까지도 적정하니 생함이 없습니다. 내외공과 유무공․부처님의 18법도 적정하니 아는 바가 없습니다. 보살은 이와 같이 적정해서 얻을 것이 없음을 알아서 아뇩다라삼야삼보를 구해야 합니다. 만약 보살마하살이 권조의 공덕을 안다면, 권조의 공덕은 적정해서 생한 바가 없어야 합니다. 부처도 적정하고, 불사(佛事)도 적정하며, 모든 선한 근본의 일은 선한 근본이 일이 적정하며, 모든 도의(道意)의 일은 도의의 일이 적정하며, 모든 구하는 일은 구하는 일이 적정하며, 모든 보살의 일은 보살의 일이 적정하며, 6바라밀의 일은 6바라밀의 일이 적정하며, 나아가 부처님의 18법은 부처님의 18법이 적정한 것입니다. 이와 같이 보살은 마땅히 적정하고 청정하게 반야바라밀을 행해야 합니다. 이것이 보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하는 것입니다. 모든 과거의 부처님께서 지으신 선의 근본을 찾고 구해서 반니원하신 이후에도 보살마하살은 또한 마땅히 이것을 구해야 합니다. 지은 선한 근본과 구하는 것은 마땅히 열반과 같아야 합니다. 뜻에 찾을 것이 있는 것과 뜻에 구하는 바는 동등하여 다름이 없으므로 이와 같이 지어서 구해야 하며, 이와 같이 알아야 합니다. 이것이 아뇩다라삼야삼보를 구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구하는 것은 상이 전도된 것이 아니며, 염이 전도된 것이 아니며, 견해가 전도된 것이 아닙니다. 만약 보살이 이 상으로써 반야바라밀을 행하고 상으로써 모든 부처님의 공덕을 생각한다면, 이것은 아뇩다라삼야삼보를 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과거의 모든 부처님께는 또한 상이 있지 않았으며, 또한 상이 없는 것도 아닙니다. 또 생각하거나 상을 지으면 이것은 아뇩다라삼야삼보를 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상이 전도된 것이며, 염이 전도된 것이며, 견해가 전도된 것입니다. 만약 다시 모든 부처님의 선한 근본과 모두 소유한 뜻을 발하는 것을 생각하지 않고 또한 지을 줄도 알지 못하고, 또한 상도 짓지 않는다면 이것이 곧 아뇩다라삼야삼보를 구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보살의 상(想)이 전도된 것이 아니며, 염견(念見)이 전도된 것이 아닙니다.”
미륵보살이 수보리에게 말하였다.
“어떻게 해야 보살이 구함이 있되 상이 없는 것입니까?”
수보리가 말하였다.
“보살이 구화구사라를 얻으려고 하면, 마땅히 반야바라밀 가운데서 반야바라밀을 구하지 못하며, 끝내 모든 선의 근본의 공덕을 얻지 못하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왜냐하면 모든 부처님 세존께서도 또한 반야바라밀 가운데서 나타나는 것이 아니며, 모든 선의 근본에서 또한 온갖 일을 보지 못하며, 또한 뜻도 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아뇩다라삼야삼보를 지었다고 하면, 지은 바는 이미 멸하고 많은 일도 또한 멸합니다. 나는 다만 스스로 모든 상(想)과 모든 선의 공덕과 모든 발한 뜻을 일으킵니다. 모든 부처님 세존도 또한 구하는 생각이 없으며, 또한 권조함도 없으며, 또한 아는 것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생각을 구해도 얻을 바가 없기 때문입니다. 만약 생각에 얻을 것이 있다고 하면, 나와 모든 부처님께서 지으신 분별상은 마땅히 얻을 바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보살의 공덕은 보살이 구하는 바가 있어도 또한 마땅히 상을 짓지 않으며, 또한 마땅히 의지함이 없는 것입니다. 모든 부처님 세존께서는 칭찬하고 기리고 의지하는 상을 구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상을 구하는 것은 잡독(雜毒)이 되기 때문입니다. 비유하면 정결한 미식(美食)이 독을 갖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색이 비록 향기롭고 아름답지만 잡독이 있습니다. 만약 어리석은 사람이 이것을 먹으려고 하면 비록 당시에는 색이 좋고 향기롭지만 입에 넣어 오래되면 그 몸이 불편하게 됩니다. 이와 같이 받아들이는 것은 자세히 관하지 못한 것이며, 자세히 알지 못한 것이며, 염송함을 알지 못한 것으로 그 안의 뜻을 전도되게 알아서 스스로 능히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타인을 위해서 말하기를 ‘선남자여, 과거․미래․현재의 부처님께서 뜻을 일으킨 이래 아뇩다라삼야삼보를 얻을 때까지, 유여니원에서 무여니원에 이르기까지, 나아가 법이 멸하기까지의 그 중간에서 반야바라밀을 행하여 지은 공덕이 있다. 6바라밀을 행할 때 37품․4선․4등․4공정․10종력․18법을 행하여 지은 선의 근본이 있다. 불국을 청정하게 하고 중생을 가르치고 모든 부처님의 계품․삼매품․지혜품․해탈품․견해탈혜품․살운야혜로써 법을 잊지 않고 항상 성문 가운데서 행하여 지은 공덕이 있다. 모든 부처님 세존께서 벽지불이 되리라고 수기를 한 자들인 모든 천의 존귀한 신․아수륜․가루라․진타라․마후륵이 지은 공덕이 있다. 이러한 모든 공덕을 합하고 모으고 취해서 아뇩다라삼야삼보를 구한다’고 합니다. 상(想)에 의지하여 삼야삼불을 구하는 것을 비유하면 잡독의 음식과 같습니다. 의지하는 상이 있으면 끝내 이룰 바가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의지함이 있고 상이 있고, 형모(形貌)가 있으면 잡독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구하는 것은 여래를 비방하는 것이고, 또한 여래의 가르침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고, 법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입니다. 선남자․선여인이 보살도를 행하려면 마땅히 이 생각을 지어야 합니다. 과거․미래․현재의 모든 부처님 세존께서는 뜻을 발한 이후로 부처를 얻을 때까지 어떻게 지어서 구해야 하는 것입니까? 모든 제자에서 살운야에 이르기까지 그 안에서 지은 일은 위와 같고 또한 이와 같다면 마땅히 어떻게 지어서 아뇩다라삼야삼보를 구하는 것입니까? 선남자․선여인이 보살도를 구하려면 여래를 높이거나 내리면 안 되며, 마땅히 이와 같이 구해야 합니다. 모든 부처님 세존이 아는 것과 같아야 하며 변재혜와 모든 선의 근본의 상(想)과 법의 상(相)이 상응해야 합니다. 내가 이 권조의 뜻을 지니는 것과 내가 아뇩다라삼야삼보를 구하는 것은 모두 모든 부처님께서 아는 것입니다.
모든 선남자․선여인이 보살도를 구하려면 모든 선의 근본의 공덕에 의지하지 않고, 아뇩다라삼야삼보를 구해야 합니다. 이와 같이 구하는 것은 여래를 높이거나 내리는 것이 아니며, 이것이 부처님을 믿고 법과 보살을 믿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행하는 것은 잡독이 되지 않으며, 구하는 것에는 독이 없습니다. 만약 선남자․선여인이 보살도를 구하려고 하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의 공덕을 마땅히 이와 같이 지어서 구해야 합니다. 5음에도 집착하지 않으며, 욕계․색계․무색계에도 또한 집착하지 않으며, 과거․미래․현재의 6바라밀에도 또한 집착하지 않으며, 삼계에도 집착하지 않습니다. 과거․미래․현재의 내외공에서 유무공에 이르기까지와 37품․부처님의 10종력․18법에도 또한 집착하지 않으며 삼계에도 또한 집착하지 않습니다. 과거․미래․지금의 여여함과 나아가 법이 생함․법이 멸함․진제․부사의성(不思議性)․계(戒)․인(忍)․지(智)․해탈․해탈견․살운야․없어지지 않는 법[無所亡法]․항상 평등하게 행함에도 또한 집착하지 않으며, 삼계에 집착하지 않습니다. 삼계에는 또한 과거․미래․현재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들어갈 바가 없기 때문입니다. 구할 바가 있다는 것은 또한 들어갈 바가 없는 것입니다. 법을 구하되 또한 집착함이 없어야 하며, 이 사람에게도 또한 다시 집착함이 없어야 하며, 모두 부처님 세존께도 다시 집착함이 없어야 하며, 모든 그 밖의 다른 선의 근본에도 또한 집착함이 없어야 하며, 성문․벽지불의 선의 근본에도 또한 집착함이 없어야 합니다. 모든 집착함이 없다는 것에도 또한 과거․미래․현재가 없습니다. 만약 보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하려면 5음에 집착할 것이 없음을 알아야 하며, 삼계는 또한 과거․미래․현재가 아니며, 또한 의지하는 상(想)으로 해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생할 바가 있음을 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모든 생하는 바가 없음은 또한 소유할 것이 없는 것이며, 소유가 없음도 능히 하는 바가 없는 것입니다. 6바라밀 나아가 없어짐이 없는 법과 항상 평등하게 행함에도 또한 집착하지 않으며, 삼계는 또한 과거․미래․현재가 아닙니다. 과거․미래․현재가 아니라는 것은 또한 의지하는 상(想)을 쓰거나, 하는 바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생하는 것은 얻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이 생한다고 하는 것은 소유가 없는 것이고, 소유가 없다는 것은 또한 능히 하는 바가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보살이 잡독을 구하지 않는 것입니다.
만약 선남자․선여인이 보살도를 구하는데 의지하는 상(想)이 있다면, 곧 그릇되게 구하는 것입니다. 지은 선의 근본을 의지하는 상으로 구한다면 이것은 그릇되게 구하는 것입니다. 모든 것에 그릇되게 구함이 있다는 것은 모든 부처님 세존께서 기리고 칭찬할 바가 되지 못합니다. 부처님께서 기리고 칭찬할 바가 되지 못한다는 것은 6바라밀을 구족하지 못한 것입니다. 6바라밀을 구족하지 못하면 곧 37품을 구족하지 못하고, 곧 내외공․유무공․부처님의 10종력도 구족하지 못하며, 부처님의 18법도 구족하지 못합니다. 18법을 구족하지 못하면 곧 불국토를 청정하게 할 수 없으며, 곧 능히 중생을 가르칠 수 없으며, 끝내 아뇩다라삼야삼보를 이루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잡독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하려면 마땅히 이러한 생각을 지어야 합니다.
‘모든 부처님께서 아시는 선의 근본과 공덕법을 구해야 하며, 이와 같이 구하는 것이 아뇩다라삼야삼보를 구하는 것이다. 나는 또한 마땅히 이 법으로써 아뇩다라삼야삼보를 구할 것이다.’”
이때 부처님께서 수보리를 찬탄하여 말씀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다. 수보리여, 이는 세존의 행을 짓는 것이며, 능히 모든 보살들을 위해서 할 바와 구할 바의 법을 설하는 것이다. 생각도 없고 의지할 바도 없고 나옴도 없고 또한 단절되지도 않고, 또한 집착하지도 않고, 또한 유(有)도 아니며, 또한 무(無)도 아니다. 공상(空相)에 상응해야 하며 법성(法性)에 상응해야 하며 여여한 행에 상응해야 한다.”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가령 삼천대천찰토 가운데 있는 중생들이 모두 다 10선의 이익을 얻고 빠짐없이 4선․4등․4공정을 얻고 나아가 다섯 가지 신통을 다 얻는다면 수보리여, 어떻게 생각하느냐? 이 중생이 얻는 복이 참으로 많겠느냐?”
수보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매우 많고 많습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선여인이 모든 선의 근본에 대하여 생할 바가 없고, 집착할 바가 없음으로써 아뇩다라삼야삼보를 위하는 것에는 미치지 못한다. 이 공덕은 최상이며 존화(尊化)이며 위없는 정진(正眞)의 교화이며 구족한 교화인 것이다.
또한 수보리여, 만약 삼천대천찰토 가운데 있는 중생들이 모두 수다원을 얻고 위로 나한․벽지불을 얻고, 만약 어떤 선남자․선여인이 그 수명이 다하도록 이 무리의 나한․벽지불에게 그 편안한 바에 따라서 음식․의복․침구․병을 낫게 하는 의약품과 소유한 것을 다 공양하고 공경하고 살핀다면 수보리여, 어떻게 생각하느냐? 그 복이 참으로 많겠느냐?”
수보리가 아뢰었다.
“매우 많고 많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이 선남자․선여인이 생할 바가 없고 집착할 바가 없음에 머무는 것만 같지 못하다. 선의 근본의 덕을 구할 바가 없기 때문이다. 그 복은 가장 존귀하고 최상이다.
또한 수보리여, 가령 삼천대천찰토에 있는 중생들이 모두 아뇩다라삼야삼보를 일으키고, 시방의 갠지스강의 모래 수처럼 많은 찰토 가운데 있는 중생들 한 사람 한 사람이 보살에게 갠지스강의 모래 수처럼 많은 겁이 다하도록 공양하고, 그 편안한 바에 따라서 음식․의복․침구․의약품을 드리고 우러러보고 공경하여 받들어 섬긴다면 수보리여, 어떻게 생각하느냐? 그 복이 참으로 많겠느냐?”
수보리가 아뢰었다.
“매우 많고 많습니다. 세존이시여, 그 복은 많아서 헤아릴 수 없으며, 셀 수 없으며, 비유로써 비교할 바가 없습니다. 만약 복덕에 형상이 있다면 시방의 허공도 능히 수용하지 못할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비록 지은 복덕이 그렇게 많더라도 이 선남자․선여인이 지은 선의 근본에 생한 바가 없고 집착할 바가 없는 것에는 미치지 못한다. 선의 근본의 덕에 구함이 없기 때문이다. 이 선남자․선여인의 공덕은 가장 존귀하고 가장 높으며, 비교할 수 없으며, 위없는 교화가 되는 것이다. 생할 바가 없고 집착할 바가 없는 공덕에 앞의 공덕은 백․천․억․만 배로도 비교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 선남자․선여인은 의지함이 있고 상(想)이 있으면서 10선의 일과 4선․4등․4공정․5통을 모두 구족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이 선남자․선여인은 상(想)에 의지해서 모든 성문․벽지불과 위로 보살에 이르기까지를 공양했기 때문이다.”
이때 사왕천상의 2만 명의 천자들이 모두 합장하고 부처님 발에 예배드리면서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보살이 베푸는 구화구사라는 매우 훌륭하고 쾌락합니다. 지은 후에는 의지할 바 없고 집착할 바가 없는 데 상응하며, 공(空)․무상(無相)에 상응해야만 합니다. 베푼 선의 근본이 아뇩다라삼야삼보가 되는 것입니다. 베푼 것은 두 가지에 들어가지 않습니다.”
이때 석제환인과 무앙수 도리천의 모든 천과 모든 천자들이 하늘의 여러 가지 꽃․향․도향․택향․비단 화개․하늘 옷․하늘의 장막․여러 색의 당번(幢幡)․하늘의 음악을 가지고 부처님의 처소에 이르러 부처님께 공양드리고 뿌리면서 모두 찬탄하여 말하였다.
“보살이 베푼 구화구사라는 매우 훌륭하며 쾌락한 것입니다. 지은 후에는 의지함이 없고 집착함이 없는 데 상응하며, 공하여 생각이 없는 데 상응하므로 베푼 선의 근본이 아뇩다라삼야삼보가 되는 것입니다. 베푼 것은 두 가지에 들어가지 않습니다.”
위로 범가이천(梵迦夷天)에 이르는 무앙수 백천이 또한 다시 보살의 구화구사라를 찬탄했다. 모두 다시 이와 같이 아가니타천의 무앙수 억 백천의 모든 천이 부처님의 처소에 이르러서 부처님께 예를 올리며, 함께 큰 음성으로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매우 기이하고 큽니다. 반야바라밀에서 구화구사라를 행하면, 지은 바 선의 근본과 그 공덕은 예전에 과거의 선남자․선여인이 지은 행위보다 뛰어납니다.”
이에 부처님께서 사천왕과 아가니타천에 이르기까지 모든 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가령 삼천대천찰토에 있는 중생들이 모두 다 아뇩다라삼야삼보를 짓고, 다시 과거․미래․현재의 모든 여래․무소착․등정각을 대신하여 그 환희를 대신한다. 많은 제자들이 처음 뜻을 발할 때부터 반니원에 이르기까지, 나아가 법이 다하도록 그 중간에서 지은 모든 선의 근본으로 그 환희를 대신하며, 성문․벽지불이 지은 모든 선의 근본으로 그 환희를 대신하며, 나아가 중생이 지은 모든 선의 근본으로 단바라밀을 행하여 반야바라밀에 이르도록 그 환희를 대신한다. 모든 현성(賢聖)이 소유한 계품․삼매품․지혜품․해탈품․해탈견혜품으로 그 환희를 대신한다. 그 밖의 다른 무량한 불법을 모두 모으고 합하여 이상의 모든 공덕으로 모두 그 환희를 대신한다. 이 환희를 대신하는 공덕에 의지하여 아뇩다라삼야삼보를 위한다. 만약 다시 선남자․선여인이 아뇩다라삼야삼보를 일으키려고 하면 과거․미래․현재의 모든 여래․무소착․등정각과 나한․벽지불을 대신하여 뜻을 일으킬 때부터 아뇩다라삼야삼보를 이룰 때까지 그 중간에 6바라밀을 행하며, 다른 무량수 불법의 공덕을 행하므로 그 환희를 대신한다. 그리고 희망하는 바가 없어 또한 둘이 아닌 데 들어간다. 이미 상(相)이 없는 데 상응하였고, 집착할 바가 없는 데 상응하였고, 공에 상응하였다. 이것은 가장 제일대(第一代)의 환희가 되는 것이며, 무상대(無上代)의 환희가 되는 것이다. 이 대환희공덕(大歡喜功德)을 가지는 것이 아뇩다라삼야삼보가 되는 것이니, 의지할 바가 없어야 한다. 그 공덕의 복우는 앞의 선남자․선여인의 대환희보다 뛰어난 것이다. 그 공덕에 비하면 백 배․천 배․거억만 배나 된다. 이것이 보살마하살의 최상대(最上代) 환희가 되는 것이다.”
이때 수보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께서 설하신 것처럼 선남자․선여인의 공덕을 합집한 것은 모두 공덕 가운데 초과할 수 없는 대환희(代歡喜)이며, 대환희의 덕은 이 덕을 지나갈 수 없는 것입니다.”
수보리가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무엇이 최상이 되는 것이며, 무엇이 최존(最尊)이 되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만약 선남자․선여인이 미래․과거․현재의 법에서 취할 바가 없으며, 또한 버릴 바도 없으며, 또한 스스로 높이지 않아야 하며, 또한 스스로 높이지 않는 것뿐만 아니라 또한 의지할 바도 없어야 하며, 의지할 바가 없어야 한다는 것도 없어야 한다. 그러므로 법에는 또한 생하는 것도 없으며 멸하는 것도 없으며 집착도 없으며 끊음도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법 가운데서 또한 늘어남을 볼 수도 없으며, 또한 줄어듦을 볼 수도 없는 것이다. 또한 가는 것도 없으며 또한 돌이킬 것도 없으며, 또한 도(道)도 아니며, 또한 속(俗)도 아니다. 과거․미래․현재의 법과 같으며, 반이법(反爾法)․머무는 바의 법․멸하는 바의 법과 같다. 나는 또한 이 환희를 대신하여 환희 공덕을 가진 것이며, 아뇩다라삼야삼보가 되는 것이다. 보살마하살의 보시는 이와 같은 보시이며 그 환희를 대신하는 것이며 가장 제일이 되는 것이다. 이 환희를 대신하는 것보다 뛰어난 것은 없다. 수보리여, 이와 같이 대환희를 짓는 것은 그 밖의 다른 대환희의 덕에 비하면 백 배․천 배․거억만 배나 되며, 이 대환희에 미치지 못한다.
또한 수보리여, 선남자․선여인이 보살도를 행하면 과거․미래․현재의 모든 부처님과 성문․벽지불을 대신하여 처음 뜻을 일으킬 때부터 성불에 이르기까지 그 중간에서 모든 선의 근본을 지어야 하며, 6바라밀을 행하고 나머지 무수한 불법에서 선의 근본을 지어야 한다. 만약 대환희를 짓고자 하면, 다시 일체 중생들을 대신해서 선의 근본을 지어야 한다. 마땅히 대환희를 지었다면, 이것이 대환희이며 최등(最等)이 되는 것이다. 6바라밀과 해탈은 동등하며, 해탈과 5음은 동등하며, 그 해탈의 일[事]과 내외공은 동등하며, 해탈의 일과 유무공은 동등하며, 37품과 해탈은 동등하며, 10력과 해탈은 동등하며, 해탈과 해탈 견해는 동등하며, 과거․미래․현재의 법과 해탈은 동등하다. 해탈은 곧 과거․미래․현재이며, 해탈은 모든 부처님 세존께서 베풀어서 하는 일과 같은 것이다. 해탈은 모든 불제자와 같으며, 모든 불제자는 또한 해탈과 같은 것이다. 해탈은 성문․벽지불․니원과 동등한 것이며, 해탈의 일과 모든 부처님 세존의 법은 동등한 것이다. 해탈은 또한 나한․벽지불과 같은 것이며, 해탈은 또한 모든 법의 법과 같은 것이다. 나는 이 속박도 없고 해탈도 없는 법에서 집착도 없으며, 더러움과 청정의 법도 없는 것과 같다. 생하는 것도 아니며 생할 바도 없으며, 멸하는 것도 아니며 멸할 바의 법도 없다. 내가 베푼 것이 아뇩다라삼야삼보를 위한다는 것 또한 위의 모든 법은 속박할 법도 없으며, 패할 법도 없으며, 무너질 법도 없다고 한 것과 같다.”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이것이 보살마하살의 위없는 대환희이며, 가장 제일이 되는 것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보살마하살이 이와 같이 환희를 대신하여 짓는 것은 속히 아뇩다라삼야삼보와 아유삼불을 얻기 위해서이다.
또한 수보리여, 만약 선남자․선여인이 보살도를 행하려고 한다면 그 형상의 수명이 다하도록 시방의 갠지스강의 모래 수처럼 많은 부처님과 수많은 제자들에게 공양을 하되, 그 편안한 바에 따라서 음식․의복․침구․의약을 드린다. 모든 부처님의 수명이 다하여 반니원하신 이후에는 밤낮으로 사리를 섬기며, 당번․화개․음악으로 공양을 드리며, 항상 6바라밀 행할 것을 생각하고 의지한다.
또 선남자․선여인이 아뇩다라삼야삼보를 이루려고 하면 6바라밀과 구화구사라를 행하되, 의지할 바가 없어야 한다. 이 공덕을 가지되 아뇩다라삼야삼보에서는 희망하는 바가 없어야 한다. 그 선의 근본과 공덕에 비하면 백 배․천 배․거억만 배나 되며, 대환희복덕이 가장 존귀하며 가장 제일인 것에 미치지 못한다.
수보리여, 보살마하살이 6바라밀을 행하되 구화구사라로써 하면 의지할 바가 공덕이 없으며, 아뇩다라삼야삼보를 위하되 의지할 바가 없는 것이다.”
방광반야경 제9권
서진 우전국 무라차 한역
41. 조명품(照明品)
사리불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이것이 반야바라밀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러하다, 사리불이여.”
사리불이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반야바라밀은 조명(照明)을 짓기 때문이며, 세존이시여, 반야바라밀은 구경에는 청정에 이르기 때문입니다. 세존이시여, 반야바라밀은 명자(名字)가 있는 것이며, 세존이시여, 반야바라밀은 삼계에서 더러움[沾汚]이 없는 것이며, 세존이시여, 반야바라밀은 모든 번뇌[垢]와 어둠을 제거합니다. 세존이시여, 반야바라밀은 37품에서 가장 존귀하며 최상이며, 세존이시여, 반야바라밀은 모든 재앙과 공포에서 안온하게 해주니, 세존이시여, 반야바라밀은 다섯 가지 혼란함에 덮여 있을 때 광명을 짓기 때문입니다. 세존이시여, 반야바라밀은 한없는 중생들이 삿된 길로 들어설 때 바르게 인도하는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반야바라밀은 살운야이므로 능히 모든 습서(習緖)를 제거할 수 있습니다. 세존이시여, 반야바라밀은 보살의 어머니이니 모든 불법(佛法)을 생하기 때문입니다. 세존이시여, 반야바라밀은 생하는 것도 아니며 멸하는 것도 아니니, 이름이 있을 때부터 구경에 이르기까지 공하기 때문입니다. 세존이시여, 반야바라밀은 생사를 여의며 또한 멸할 것도 없으니, 근본도 짓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세존이시여, 반야바라밀은 모든 고독하고 빈궁한 이에게 보배를 지어서 베풀기 때문이며, 세존이시여, 반야바라밀을 구족하여 처음부터 능히 항복시킬 자가 없는 것이며, 세존이시여, 반야바라밀은 3전(轉)12사(事)로 법륜을 굴리니 또한 능히 굴릴 자가 없으며, 굴린 바는 마침내 움직이거나 돌아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세존이시여, 반야바라밀은 온갖 근본을 나타내니, 소유․무소유가 공하기 때문입니다. 세존이시여, 마땅히 어떻게 반야바라밀에 머물러야 합니까?”
세존께서 대답하셨다.
“마땅히 세존께서 머무는 것과 같이 머물러야 한다. 사리불이여, 반야바라밀에 예배하기를 마땅히 세존께 예배하는 것과 같이 해야 한다. 왜냐하면 반야바라밀이 바로 세존이며, 세존과 반야바라밀은 차별이 있지 않기 때문이다. 반야바라밀이 바로 세존이며, 세존이 바로 반야바라밀이다. 모든 부처님 세존께서는 반야바라밀로 인해서 명자(名字)를 얻으며, 보살․벽지불․아라한 나아가 수다원은 모두 반야바라밀로 인해서 그 명자를 얻으며, 10선(善)․4선(禪)․4등(等)․4공정(空定)․5통(通)․내외공(內外空)․유무공(有無空)․37품․부처님의 10종력․18법 나아가 살운야(薩云若)가 모두 반야바라밀로 인해서 출생하는 것이다.”
이에 석제환인이 속으로 ‘무슨 이유로 존자 사리불이 이러한 질문을 하는가?’라고 생각하였다. 석제환인이 곧 사리불에게 물었다.
“존자시여, 무슨 인연으로 이러한 질문을 하시는 것이며, 어떤 일로 인하여 이러한 질문을 하시는 것입니까?”
사리불이 대답하였다.
“구익아, 보살마하살의 구화구사라는 반야바라밀을 호지(護持)하기 위함이며, 모든 과거․미래․현재의 모든 부처님 세존께서 처음 뜻을 일으킨 이후로 법이 멸할 때까지 그 중간에 지은 선의 근본[善本]으로 모두 살운야를 지어서 가지는 것이다. 구익아, 그러므로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를 지니는 것은 다섯 가지 바라밀보다 뛰어난 것이다. 구익아, 비유하면 눈 먼 사람이 백 명이나, 천 명이나, 혹은 만 명이 있어 성(城)에 이르려고 해도 인도하는 사람이 없으면 마침내 들어갈 수 없는 것과 같다. 구익아, 이 다섯 가지 바라밀은 눈 먼 자와 같으며 반야바라밀을 여의면 눈 먼 자에게 인도하는 이가 없는 것과 같다. 또한 능히 구족하게 도(道)에 이를 수 없으며, 또한 살운야도 이룰 수 없다. 다섯 가지 바라밀은 반야바라밀이 보호하는 것이며, 눈 먼 사람이 눈을 얻은 것과 같다. 반야바라밀은 다섯 가지 바라밀을 보호해서 다섯 가지 바라밀로 하여금 각각 이름을 얻게 한다.”
석제환인이 사리불에게 말하였다.
“말씀하신 바로는 다섯 가지 바라밀은 반야바라밀로 인해서 이름을 얻는다고 하셨는데, 다섯 가지 바라밀은 다만 이름만 있을 뿐이고 바라밀이 없는 것입니까?”
사리불이 말하였다.
“이와 같다. 구익아, 다섯 가지 바라밀은 반야바라밀로 인해서 이름을 얻으며, 다섯 가지 바라밀은 다만 이름만 있을 뿐이고 바라밀은 없는 것이다. 보살이 반야바라밀에 머무는 것은 이미 다섯 가지 바라밀을 구족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반야바라밀은 다섯 가지 바라밀에서 최상화(最上化)이며 묘화(妙化)이며 비할 수 없는 화[無比之化]이다.”
사리불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마땅히 어떻게 해야 반야바라밀 가운데 들어갈 수 있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5음(陰)에 들어가되 마땅히 반야바라밀에 들어가는 것과 같이 해야 하며, 다섯 가지 바라밀에 들어가되 마땅히 반야바라밀에 들어가는 것과 같이 해야 한다. 내외공․유무공에 들어가는 것과 37품․부처님의 10종력․18법에 들어가는 것과 살운야에 들어가는 것과 모든 법에 들어가는 것도 마땅히 반야바라밀에 들어가는 것과 같이 해야 한다.”
사리불이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어떻게 5음에 들어가되 반야바라밀에 들어가는 것과 같이 하며 어떻게 모든 법에 들어가되 반야바라밀에 들어가는 것과 같이 하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5음은 생하는 바가 없으며, 얻을 바도 없으며, 취할 것도 없으며, 버릴 것도 없으며, 무너질 것도 없으므로 마땅히 반야바라밀에 들어가는 것과 같이해야 한다. 모든 법은 생하는 바도 없으며 얻을 바도 없으며, 취할 것도 없으며 버릴 것도 없으며, 또한 무너질 것도 없는 것이다. 이것이 반야바라밀에 들어가는 것이다.”
사리불이 아뢰었다.
“이와 같이 반야바라밀에 들어가는 것은 어떤 법에 미치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모든 법은 미치는 바가 없으므로 이것이 반야바라밀의 명호가 되는 것이다.”
“세존이시여, 어떤 법을 체득하지 못하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법을 체득하는 것도 아니며, 또한 악법을 체득하는 것도 아니다. 또한 도법(道法)을 체득하는 것도 아니며, 또한 속법(俗法)을 체득하는 것도 아니다. 또한 유루․무루법을 체득하는 것도 아니며, 또한 유위(有爲)․무위법을 체득하는 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반야바라밀을 일어나게 해야 하지만 또한 일어나기를 희망해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모든 법에는 미치는 바도 없으며 얻을 바도 없는 것이다.”
석제환인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어째서 반야바라밀은 살운야를 체득하지 못하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이와 같이 구익아, 반야바라밀은 살운야를 체득하지 못하며, 또한 체득하지 못함도 존재하지 않는다.”
“세존이시여, 무엇이 또한 체득하지도 못하는 것이며, 또한 존재하지도 않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반야바라밀은 또한 문자를 쓰는 것도 아니며, 또한 생각[想]을 쓰는 것도 아니며, 또한 생사(生死)를 쓰는 것도 아니다.”
석제환인이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또한 문자를 쓰는 것도 아니며, 또한 생각을 쓰는 것도 아니며, 또한 생사를 쓰는 것도 아닌데 어떻게 체득할 수 있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들어가는 것도 아니며, 또한 수용하는 것도 아니며, 또한 버리는 것도 아니며 또한 머무는 것도 아닌 것과 같이 해야 한다. 이와 같이 다다르되 다다르지 않는 것과 같이 해야 한다. 구익아, 반야바라밀은 이와 같이 모든 법을 체득하되 체득할 바가 없는 것과 같다.”
석제환인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반야바라밀이 일어나는 것은 매우 기이하고 매우 특이합니다. 모든 법은 생하는 것도 아니며 소유도 없으며 의지할 바도 없으며 무너지는 것도 없습니다.”
수보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만약 보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 모든 법을 체득하였다고 하면 모든 법을 체득한 것이 아니며, 보살은 이것을 듣고 혹은 두려워하고 혹은 무서워해서 곧 반야바라밀을 여읠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이와 같이 보살은 이를 듣고 아마도 두려워하게 될 것이다. 만약 반야바라밀을 행하는 보살이 혹은 ‘반야바라밀은 공하고 반야바라밀은 견고함이 없어서 반야바라밀은 사람을 속이는 것이다’라고 이렇게 생각한다면, 곧 능히 반야바라밀을 멀리 여읠 것이다. 이러한 인연으로써 보살은 곧 반야바라밀을 멀리 여의는 것이다.”
수보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반야바라밀을 믿는 것은 어떤 법을 믿지 않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반야바라밀을 믿으면 색을 믿지 않고, 통(痛)․상(想)․행(行)․식(識)을 믿지 않고, 6정(情)을 믿지 않고, 색․성․향․미․세활(細滑)․법을 믿지 않는다. 18성(性)․12인연 나아가 다섯 가지 바라밀을 믿지 않고, 또한 내외공과 유무공을 믿지 않고, 또한 37품과 18법․부처님의 10종력도 믿지 않고, 수다원에서 나한․벽지불에 이르기까지도 믿지 않고, 또한 아뇩다라삼야삼보도 믿지 않고, 또한 살운야도 믿지 않는다.”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만약 5음과 살운야가 있지 않다면, 반야바라밀을 믿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수보리여, 반야바라밀을 믿는 것은 5음․모든 법 및 살운야를 믿지 않는 것이다. 만약 5음 및 모든 법이 있지 않다면, 반야바라밀을 믿지 않아도 된다. 반야바라밀을 믿는 것도 법을 믿지 않는 것이다.”
수보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반야바라밀은 대도(大度)가 되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이렇게 생각하느냐? 어떻게 반야바라밀이 대도인 줄을 알겠느냐?”
수보리가 아뢰었다.
“반야바라밀은 또한 5음을 크게 하는 것도 아니며 또한 5음을 작게 하는 것도 아니며, 또한 다섯 가지 바라밀을 크게 하는 것도 아니며, 또한 다섯 가지 바라밀을 작게 하는 것도 아닙니다. 내외공에서 유무공에서 이르기까지도 또한 크게 하는 것도 아니며 또한 작게 하는 것도 아닙니다. 37품과 부처님의 18법도 또한 크게 하는 것도 아니며 또한 작게 하는 것도 아닙니다. 도(道)에서 불법(佛法)에 이르기까지도 또한 크게 하는 것도 아니며, 또한 작게 하는 것도 아닙니다. 또한 5음은 모이는 것도 아니며, 또한 5음은 흩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나아가 불법도 또한 모이는 것도 아니며, 또한 흩어지는 것도 아니며, 또한 평상(平相)도 아닙니다. 5음은 또한 평상 아닌 것도 아니며, 나아가 불법도 또한 평상이 아니며, 또한 평상 아닌 것도 아닙니다. 또한 5음은 넓은 것도 아니며, 또한 5음은 협소한 것도 아닙니다. 나아가 불법은 또한 넓은 것도 아니며, 또한 협소한 것도 아니며, 또한 5음은 강하게 하는 것도 아니며, 또한 약하게 하는 것도 아닙니다. 나아가 불법은 또한 강한 것도 아니고, 또한 약한 것도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므로 반야바라밀은 보살의 대도(大度)인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만약 새로 뜻을 일으킨 보살이 6바라밀을 아직 익히지 못하고 5음과 6바라밀에 늘어나고 줄어듦이 없으며, 넓고 좁음이 없다는 것을 듣는다면, 이러한 말을 들은 자는 아마도 능히 반야바라밀을 행하지 못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반야바라밀로써 하지 않았기 때문에 5음과 불법은 크고 작음이 있습니다. 반야바라밀로써 하지 않았기 때문에 5음과 불법은 강하고 약함이 있습니다.
세존이시여,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 5음의 크고 작음을 구하려고 하고 불법의 강하고 약함을 구하려고 한다면, 이것은 큰 허물[累]이 됩니다. 왜냐하면 도는 처음부터 누상(累想)이 없기 때문입니다. 왜 그런가 하면 중생이 생하지 않으면 반야바라밀도 생하지 않습니다. 마땅히 이와 같이 보아야 하며, 마땅히 이와 같이 알아야 합니다. 5음은 또한 생하는 것도 아니며, 불법도 또한 생하는 것이 아닙니다. 마땅히 이와 같이 관해야 합니다. 반야바라밀의 소유를 관하되 중생의 소유를 관하는 것과 같이 해야 하며, 반야바라밀의 소유를 관하되 마땅히 5음의 소유를 관하는 것과 같이 해야 합니다. 부처님의 소유를 관하되 마땅히 반야바라밀의 소유를 관하는 것과 같이 해야 합니다. 반야바라밀의 무소유를 관하되 부처님의 무소유를 관하는 것과 같이 해야 하며, 반야바라밀의 무소유를 관하되 또한 중생의 무소유를 관하는 것과 같이 해야 합니다. 반야바라밀의 적정함을 관하듯이 중생도 또한 적정함을 관하며, 반야바라밀의 적정함을 관하듯이 불법도 또한 적정함을 관하며, 5음이 또한 적정함을 관하듯이 반야바라밀도 또한 적정함을 관해야 합니다. 반야바라밀이 또한 서두[緖]가 없음을 관하며, 중생도 또한 서두가 없음을 마땅히 알아야 합니다. 5음 및 불법이 또한 서두가 없듯이 반야바라밀도 또한 서두가 없습니다. 반야바라밀이 불가사의하므로 중생도 또한 불가사의하며, 5음도 또한 불가사의하며, 나아가 불법도 또한 불가사의함을 마땅히 알아야 합니다. 무너지지 않으므로 반야바라밀도 또한 무너지는 것이 아님을 마땅히 알아야 합니다. 중생이 아유삼불을 체득하지 못하므로 반야바라밀도 또한 아유삼불을 체득하지 못함을 마땅히 알아야 합니다. 5음도 또한 아유삼불을 체득하지 못하며, 부처님도 또한 아유삼불을 체득하지 못함을 마땅히 알아야 합니다. 중생의 힘이 구족하지 못하였으므로 반야바라밀의 힘도 구족하지 못한 것이며, 5음의 힘도 구족하지 못한 것이며, 부처님의 힘도 또한 구족하지 못한 것임을 마땅히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세존이여, 대도(大度)는 보살마하살의 반야바라밀입니다.”
42. 니리품(泥犁品)
사리불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반야바라밀을 아는 보살마하살은 어느 곳으로부터 와서 이 세간에 태어났으며, 아뇩다라삼야삼보를 일으킨 지 얼마간의 시간이 지났으며, 다시 몇 분의 여래를 뵙고 공양했으며, 6바라밀은 어느 때에 행했으며, 어떻게 해야 반야바라밀을 이해하여 깊은 뜻에 인도하여 들어갈 수 있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이 보살마하살은 시방 모든 여래․무소착․등정각을 공양하여 그곳에서 와서 이 세간에 태어나는 것이다. 보살이 뜻을 일으킨 지가 아승기겁으로 헤아릴 수 없으며, 6바라밀을 행한 지도 또한 헤아릴 수 없으며, 그리하여 이 세간에 도달한 것이다. 이 이후로도 다시 헤아릴 수 없다. 항상 모든 부처님을 공양함으로써 이 세간에 태어난 것이다. 이러한 보살의 무리는 반야바라밀을 볼 때 세존을 본 것과 다름이 없다. 만약 반야바라밀을 들을 때에도 세존의 설법을 듣는 것과 같이 또한 다름이 없다. 이것이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이해하여 깊은 뜻에 들어가는 것을 인도하는 것이다. 생각으로써 들어가는 것도 아니며, 두 가지에 들어가는 것도 아니며, 의지할 바도 없어야 한다.”
수보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반야바라밀은 보고 들을 수 있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보고 들을 수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수보리여, 반야바라밀은 또한 볼 수 있는 일도 아니며, 또한 들을 수 있는 일도 아니기 때문이다. 반야바라밀은 또한 들을 바도 없으며 또한 볼 바도 없으니, 모든 법은 어둡기 때문이다. 다섯 가지 바라밀도 또한 보는 것도 아니며 또한 듣는 것도 아니니, 모든 법은 어둡기 때문이다. 내외공과 유무공은 들을 바도 없으며 볼 바도 없으니, 모든 법은 어둡기 때문이다. 37품․10종력․18법은 볼 바도 없으며 들을 바도 없으니, 모든 법은 어둡기 때문이다. 수보리여, 도(道)와 부처님도 또한 볼 바도 없으며 들을 바도 없으며, 법은 귀가 먹은 것과 같기 때문이다.”
수보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배우려면 오랫동안 반야바라밀과 더불어 상응해야 합니까?”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이 일은 응당 분별해야만 한다. 수보리여, 인연이 보살로 하여금 뜻을 일으키게 하면 곧 깊은 반야바라밀에 상응하며, 구화구사라로써 모든 법의 영예를 바라보지 않는다. 마침내는 비방도 하지 않으며, 마침내 6바라밀을 여의지 않으며, 마침내 모든 부처님 세존을 여의지 않는다. 만약 다시 모든 선의 근본을 지어서 모든 부처님 세존을 공양하고 받들어 섬기려고 하면 곧 뜻대로 한 불국토에서 다른 한 불국토에 이르기까지 이루게 될 것이다. 마침내 다시는 어머니의 모태에 태어나지 않을 것이며, 마침내 5통(通)을 여의지 않으며 모든 번뇌[垢]를 가까이 하지 않으며, 또한 성문․벽지불을 가까이하지 않으면서 중생을 교화하고 불국토를 청정하게 한다. 보살이 이와 같이 행하면 깊이 반야바라밀에 상응하는 것이다. 수보리여, 다시 어떤 선남자․선여인이 보살도를 행하여 무량하고 헤아릴 수 없는 아승기의 모든 부처님을 친견한다. 그러나 6바라밀을 행하되, 의지하는 바가 있고 깊은 반야바라밀을 설하는 것을 들으면 곧 버리려고 한다. 이와 같은 보살은 다시 교만한 뜻을 일으키므로 곧 모든 부처님 세존을 여의게 되며, 곧 깊은 반야바라밀을 듣지 못하게 된다.”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깊은 반야바라밀을 즐겁게 듣지 않는 자가 지금 이 모임 가운데도 앉아 있다. 왜냐하면 이 선남자․선여인은 보살도를 행할 때 본래부터 깊은 반야바라밀을 듣고도 즐거워하지 않고 버렸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지금 깊은 반야바라밀을 듣고도 즐거워하지 않고 다시 버리려고 하는 것이다. 신(身)․구(口)․의(意)와 더불어 화합하지 못하고 총명하지 않은 죄가 쌓였고, 죄가 중하기 때문에 깊은 반야바라밀을 거역하는 것이다. 깊은 반야바라밀을 거역하는 것은 과거․미래․현재의 모든 부처님의 살운야를 거역하는 것이다. 이미 살운야를 거역한 죄가 있으므로 살운야가 끊어지게 된다. 살운야가 끊어진 죄로써 마땅히 니리(泥犁:지옥) 가운데 들어가서 삶아지는 것을 보며, 무앙수 백천 세(歲) 동안 한 니리에서 나와 다른 한 니리에 이르게 된다. 겁이 다하여 불이 타오를 때 마땅히 다시 타방의 대니리 가운데 이르게 되고, 타방의 겁이 다하면 마땅히 다시 타방의 한 니리 가운데서 다시 타방의 한 니리 가운데 이르게 된다. 이와 같이 모든 타방의 니리를 두루 거치게 된다. 법을 끊은 죄가 있기 때문에 마땅히 다시 미래에 세간의 니리 가운데 태어날 것이며, 마땅히 니리에서 극통(劇痛)의 죄를 받을 것이다. 겁이 다하면 마땅히 타방의 축생 가운데 떨어지게 될 것이며 이와 같이 전전(展轉)하여 두루 시방의 모든 축생 가운데 떨어지게 된다. 축생 가운데서 나와서 마땅히 불꽃 누대[炎樓]로 태어나게 되고, 벽려(薛荔:아귀)의 형상을 받아서 지극히 심한 고통을 치른다. 이와 같이 오래 지나고 난 후에 겨우 사람을 얻게 되지만 태어나는 곳마다 항상 마땅히 맹인의 집에 태어나고, 혹은 살인한 집에 태어나며, 혹은 고기잡고 수렵하는 집과 도살(屠殺)하는 집에 태어나며, 혹은 하천하고 빌어먹는 집에 태어나게 되며, 혹은 눈이 멀고 혹은 귀가 먹고 혹은 수족이 없으며, 혹은 벙어리가 되어서 말을 못하게 된다. 이러한 죄를 받고 난 후에도 마땅히 다시 변방에 태어나는데 부처님도 없고 법도 없으며 제자도 없는 곳이다. 이처럼 법을 끊은 자는 모두 마땅히 이상의 죄를 구족하게 받는다.”
사리불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이 법을 끊은 자는 5무간죄(無間罪)에 들어가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이와 같이 법을 끊은 죄는 다 갖추어 말을 할 수 없다. 반야바라밀을 설할 때 만약 타인에게 ‘이것은 율(律)이 아니며, 이것은 존귀한 가르침이 아니며, 이것은 여래․무소착․등정각의 가르침이 아니다’라고 끊어서 말한다면 자신도 수학(修學)하는 것이 아니며, 다시 타인으로 하여금 이것을 멀리 여의게 하는 것이며, 스스로 뜻을 상하는 것이고 다시 타인의 뜻을 상하게 하며, 자기의 뜻을 해롭게 하고 다시 타인의 뜻도 해롭게 한다. 스스로 잊어버리고 다시 타인도 잊어버리게 하며, 스스로 깊은 반야바라밀을 알지 못해서 버리고 또 타인으로 하여금 멀리 여의게 한다. 사리불이여, 이러한 무리의 사람들은 오히려 응당 그 음성을 들으려고도 하지 않는데, 하물며 어떻게 마땅히 함께 종사하며 같은 장소에서 앉고 일어설 수 있겠는가? 왜냐하면 마땅히 알아야 하니, 이 무리의 사람들은 법 가운데서 큰 우환[患]이 되기 때문이다. 마땅히 이 사람은 쇠하여 명부에 떨어지게 됨을 알아야 한다. 만약 이러한 무리가 설한 바를 듣고 믿는 자가 있다면 또한 마땅히 다시 헤아리기 어려운 죄를 받을 것이다. 사리불이여, 반야바라밀을 끊은 사람은 법 가운데서 큰 병이 됨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사리불이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법을 비방한 사람이 태어나는 곳에서 받는 몸의 형상에 대해서 말할 수 있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법을 비방한 사람이 태어날 때 받는 형상에 대해서는 그만두어야 한다. 왜냐하면 이 사람이 만약 그 몸에 대해서 듣는다면 뜨거운 피를 입에서 토하거나 그 사람은 우수(憂愁)에 잠기고 혹은 병들고 혹은 죽으며 혹은 누렇게 뜨고 아프게 되기 때문이다. 누군가 이 고통을 받게 하고 몸이 부서져 죽음에 이르게 하는 죄이다. 만약 이 무리에게 죄가 없다면 세존께서는 마침내 사리불에게 이 질문을 하게 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와 같이 받은 몸의 형상으로 아픔이 있으므로 여래께서는 사리불에게 설하지 않는 것이다.”
사리불이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마땅히 법을 끊은 사람이 받는 몸의 형상에 대해서 말씀해 주십시오. 세존께서 설하신 것은 마땅히 후세에 대명(大明)을 지을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설한 것을 비방하고 법을 단절시키면 죄를 받을 것이며, 다시 니리에서 겁수(劫數)가 다하도록 전전(展轉)하게 되며, 축생의 몸을 받기도 하고, 벽려의 형상을 받기도 한다. 다시 겁수가 다하면 사람 몸을 받기도 하지만 눈이 멀고 귀가 먹고 벙어리가 되며, 하천하거나 거지나 흉악한 사람이 된다. 다시 이와 같이 설명하는 것은 곧 후세에 큰 광명을 짓기 위해서이다. 이미 이러한 가르침을 들은 자는 감히 다시 법을 끊고 비방하지 않는다.”
사리불이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선남자․선여인은 각각 마땅히 스스로 ‘나는 이 말을 듣고 그 마음으로 공포하며, 나는 마침내 감히 이러한 무리의 일은 하지 않을 것이며, 나의 신체와 목숨이 다하도록 끝내 감히 법을 끊어 비방하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내가 만약 비방을 하면 혹 악처(惡處)에 떨어져서 엄청난 고통을 받음이 이와 같을 것이다’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수보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선남자․선여인은 항상 마땅히 신․구․의를 섭수하여 행하고, 뜻으로 응당 ‘우리들은 마땅히 법을 무너뜨린 죄는 받지 말아야 할 것이다. 여래를 볼 수 없고 법을 볼 수 없고 여러 스님들을 볼 수 없을 것이다. 혹은 부처님께서 안 계신 데 태어나고, 혹은 가난한 집에 떨어지기도 하고, 혹은 법을 듣지 못하는 곳에 처하게 된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수보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입으로 행했기 때문에 곧 법을 무너뜨린 무거운 죄를 받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이와 같이 입의 허물이 있으므로 곧 법을 무너뜨린 무거운 죄를 받는 것이다. 수보리여, 미래세에 혹 어떤 어리석은 사람은 착한 법으로 가르쳐서 내가 사문으로 만들어도 도리어 깊은 반야바라밀을 비방하고 멀리 여읠 것이다. 깊은 반야바라밀을 비방하고 멀리 여의는 것은 이미 모든 여래․무소착․등정각의 도를 비방한 것이다. 이미 여래의 도를 비방했다는 것은 곧 과거․미래․현재의 모든 부처님 살운야를 비방하고 멀리 여의는 것이다. 이미 살운야를 비방했다는 것은 바로 법을 멀리 여의는 것이다. 이미 법을 멀리 여의었다는 것은 바로 스님을 멀리 여의는 것이다. 이미 스님을 멀리 여의었다는 것은 바로 세간의 정견(正見)을 멀리 여의는 것이다. 이미 정견을 멀리 여의었다는 것은 바로 37품과 살운야를 멀리 여의는 것이다. 이미 살운야를 여의었다는 것은 곧 헤아릴 수 없는 아승기겁 동안 죄의 몸을 받게 되는 것이다. 죄의 몸을 받는다는 것은 곧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아승기겁 동안의 근심[愁]과 슬픔[悲]과 고뇌(苦惱)를 받는 것이다.”
수보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어리석은 사람이 깊은 반야바라밀을 멀리 여의는 데 몇 가지 일이 있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네 가지 일이 있다. 어떤 것이 네 가지 일인가? 첫째는 마군에게 홀리게 되는 것이다. 둘째는 깊은 법을 믿지 않고, 알지 못하고 좋아하지 않고, 즐거워하지 않는 것이다. 셋째는 악지식(惡智識)을 얻어서 순행(順行)에 상응하지 못하고, 5음에 들어가는 것이다. 이 세 가지 일로써 깊은 법을 멀리 여의는 것이다. 넷째는 어리석은 사람이 성냄을 많이 행하고 스스로 높이기를 좋아하고 타인을 업신여기는 것이다. 이 네 가지 일로써 어리석은 사람은 깊은 반야바라밀을 멀리 여의는 것이다.”
수보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깊은 반야바라밀을 알기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이해해도 수순하지 못하며, 선의 근본에 상응하지 못해서 악한 법을 알게 되기 때문입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수보리여, 이와 같이 그대가 말한 바와 같다.”
수보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어째서 깊은 반야바라밀은 깨닫기 어렵고 알기 어려운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대답하셨다.
“수보리여, 5음은 속박된 것도 아니며 풀어놓은 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색(色)은 색 스스로 성품[性]이 있으며, 통(痛)은 통 스스로 성품이 있으며, 상(想)은 상 스스로 성품이 있으며, 행(行)은 행 스스로 성품이 있으며, 식(識)은 식 스스로 성품이 있기 때문이다. 6바라밀은 또한 속박된 것도 아니며 풀어놓은 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6바라밀의 소유는 무소유이기 때문이다. 내공․외공․유무공도 또한 속박된 것도 아니며, 또한 풀어놓은 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내외공도 또한 무소유이기 때문이다. 수보리여, 37품․18법 나아가 살운야․살운야의 일도 또한 속박된 것도 아니며, 풀어놓은 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소유는 모두 소유가 아니기 때문이다. 과거의 5음은 또한 속박된 것이 아니며, 또한 풀어놓은 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모든 과거의 음(陰)은 공하며, 과거도 공하기 때문이다. 수보리여, 나아가 과거의 살운야는 또한 속박된 것도 아니며 또한 풀어놓은 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과거의 살운야는 공하기 때문이다. 수보리여, 미래의 5음도 또한 속박된 것도 아니며, 또한 풀어 놓은 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미래의 5음이 공하기 때문이며, 나아가 살운야도 또한 다시 이와 같다. 현재의 5음도 또한 속박된 것도 아니며, 또한 풀어 놓은 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현재의 5음이 공하기 때문이며, 나아가 살운야도 또한 다시 이와 같은 것이다.”
수보리가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알면서도 수순하지 못하여 선의 근본이 없고 악한 벗과 어울리고, 게으른 사람은 지혜롭게 나아갈 수 없으며, 뜻을 어지럽게 하기를 좋아합니다. 이러한 무리의 사람들은 능히 깊은 반야바라밀을 알 수 없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대가 말한 바와 같다. 이 무리의 사람들은 깊은 반야바라밀을 알 수 없다.
수보리여, 5음이 청정하면 도가 또한 청정하다. 도가 청정하므로 얻을 바의 과보도 청정하다, 수보리여, 5음이 청정하면 반야바라밀도 청정하며, 반야바라밀이 청정하면 5음이 청정하다. 5음이 청정하면 살운야도 청정하며, 살운야가 청정하면 5음이 청정하다. 5음과 살운야는 하나여서 둘이 있지 않다. 또한 파괴하는 것도 아니며 무너지는 것도 아니다. 수보리여, 5음은 둘이 없어 청정한 것이며, 살운야도 둘이 없어 청정하며, 한 법[一法]에는 둘이 없는 것이다. 중생․지견(知見)․수명도 또한 청정하며, 중생도 또한 청정하며, 살운야도 청정하며 하나같이 청정하여 둘이 없는 것이다.
수보리여, 자아가 청정하며, 살운야가 청정하며, 지견과 수명이 청정하며, 5음과 살운야가 하나같이 청정해서 둘이 없다. 또한 끊어지는 것도 아니며, 또한 파괴되는 것도 아니다. 수보리여, 음욕․성냄․어리석음과 5음과 살운야가 청정하며 하나같이 청정하여 둘이 없다.
수보리여, 어리석음이 청정하며, 이미 어리석음이 청정하면 행(行)이 청정하고, 이미 행이 청정하면 식(識)이 청정하다. 이미 식이 청정하면 명색(名色)이 청정하고, 이미 명색이 청정하면, 6입(入)이 청정하고, 이미 6입이 청정하면 재(栽:觸)가 청정하고, 이미 재가 청정하면 각(覺)이 청정하고, 이미 각이 청정하면 애(愛)가 청정하고, 이미 애가 청정하면 수(受)가 청정하고, 이미 수가 청정하면 유(有)가 청정하다. 이미 유가 청정하면 생(生)이 청정하고, 이미 생이 청정하면 사(死)가 청정하다. 이미 사가 청정하면, 6바라밀이 청정하고, 이미 6바라밀이 청정하면 내외공과 유무공이 청정하다. 이미 유무공이 청정하면 37품이 청정하고, 이미 37품이 청정하면 살운야가 청정하다. 살운야가 청정하면, 하나같이 청정해서 둘이 없다. 또한 파괴하는 것도 아니며, 또한 단절하는 것도 아니다.
수보리여, 반야바라밀이 청정하면 5음이 청정하며 살운야가 청정하다. 하나같이 깨끗해서 둘이 없는 청정함이다. 다섯 가지 바라밀이 청정하면 살운야가 청정하며, 내외공과 유무공이 청정하며 살운야도 청정하다. 37품이 청정하면 살운야가 청정하다. 18법이 청정하면 살운야가 청정하다.
수보리여, 살운야가 청정하면 나아가 반야바라밀이 청정하고 평등하여 다름이 없다. 수보리여, 유위(有爲)도 청정하고 무위(無爲)도 청정해서 하나같이 청정하여 둘이 없다. 수보리여, 과거가 청정하면 미래도 청정하고 현재도 청정하다. 과거․미래․현재가 청정한 것이 하나이므로 둘이 없으며, 또한 무너지는 것도 아니고 끊어지는 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청정함이 되는 것이다.”
43. 명정품(明淨品)
사리불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청정함은 매우 깊은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항상 청정한 것이다.”
사리불이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무슨 까닭으로 항상 청정한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5음이 청정하므로 항상 청정한 것이다. 사리불이여, 37품․10종력․18법의 도가 청정하고 부처님께서 청정하고 살운야․살운야의 일이 청정하므로 청정함이 매우 깊다고 한 것이다.”
사리불이 말하였다.
“명(明)은 청정한 것입니까?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항상 청정하기 때문이다.”
사리불이 말하였다.
“무슨 까닭에 명이 청정한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6바라밀이 청정하고 살운야가 청정하기 때문에 명이 청정한 것이다.”
사리불이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니원도 청정한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항상 청정하다.”
“세존이시여, 무슨 까닭으로 니원이 청정한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5음의 끝이 없는 복이므로 또한 옴도 없으며 감도 없기 때문이다. 살운야도 끝이 없는 복이므로 또한 오는 것도 없으며 또한 가는 것도 없기 때문이다.”
사리불이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청정한 것은 집착하는 바가 없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항상 청정하다.”
“세존이시여, 어떤 것이 집착할 바가 없는 청정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5음(陰)의 성품이 용맹하되 집착할 것이 없으므로 항상 청정한 것이다. 나아가 살운야의 성품이 용맹하되 집착할 바가 없으므로 항상 청정한 것이다.”
“세존이시여, 깨달을 바도 없고 얻을 것도 없음은 청정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항상 청정한 것이다.”
“세존이시여, 무슨 까닭으로 깨달을 바도 없고 얻을 것도 없음이 청정한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5음은 깨달을 것도 없고 얻을 바도 없으므로 청정한 것이며, 나아가 살운야도 깨달을 바도 없고 얻을 것도 없으므로 청정한 것이다.”
“세존이시여, 생하는 바가 없음은 청정한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항상 청정하다.”
“세존이시여, 무슨 까닭으로 생할 것이 없는데 생할 바가 없는 것이 청정한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생할 것이 없음은 생할 것이 없는 청정이며, 살운야에 이르러도 생하는 바가 없으며 생하는 것이 없으므로 청정한 것이다.”
사리불이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삼계는 생겨나지 않기 때문에 청정한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항상 청정하다.”
“세존이시여, 무슨 까닭으로 삼계가 생하지 않는 것을 청정하다고 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삼계의 소유가 있지 않기 때문에 생하지 않음이 청정한 것이다.”
“세존이시여, 아는 것이 없음이 청정한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항상 청정하다.”
“세존이시여, 무슨 까닭으로 아는 바 없는 것이 청정한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모든 법은 귀가 먹었기 때문에 아는 바가 없음이 청정한 것이다.”
“세존이시여, 아는 것이 청정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항상 청정하다.”
“세존이시여, 어째서 5음이 아는 바가 없으므로 청정한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5음의 상(相)이 공하므로 아는 바가 없음이 청정한 것이다.”
“세존이시여, 모든 법은 모두 청정한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항상 청정하다.”
“세존이시여, 어째서 모든 법이 청정하기 때문에 청정한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모든 법은 얻을 바가 없으므로 모든 법은 청정한 것이다.”
사리불이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반야바라밀은 살운야에서 또한 증가하는 일도 짓지 않고 감소하는 일도 짓지 않으므로 청정한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항상 청정하다.”
“세존이시여, 무슨 까닭으로 반야바라밀은 살운야에서 증가하고 감소하는 일이 없어 청정한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법은 상주(常住)하기 때문이다.”
“세존이시여, 반야바라밀은 청정하므로 모든 법에 취할 바가 없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항상 청정하다.”
“세존이시여, 무슨 까닭으로 반야바라밀은 청정해서 모든 법은 취할 것이 없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법성은 움직이지 않기 때문이다.”
수보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우리의 자아[我]와 5음은 청정한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항상 청정하다.”
수보리가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무슨 까닭으로 우리의 자아가 청정하고 5음이 청정한 것입니까? 어째서 항상 청정한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우리의 자아가 무소유이고 5음이 무소유이기 때문에 항상 청정하다.”
수보리가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자아가 청정하면 6바라밀이 청정하며, 37품이 청정하며, 자아가 청정하면 10력이 청정하며, 18법이 청정한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항상 청정하다.”
수보리가 말씀드렸다.
“무슨 까닭으로 우리의 자아가 청정하며, 나아가 18법이 청정한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우리의 자아가 무소유이며, 나아가 부처님의 18법이 무소유이기 때문에 청정한 것이다.”
“세존이시여, 우리의 자아가 청정하면 수다원이 청정하며, 나아가 나한․벽지불이 청정하며, 우리의 자아가 청정하면 도(道)가 또한 청정한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항상 청정하다.”
“세존이시여, 무슨 까닭으로 우리의 자아가 청정하면 성문․벽지불이 청정하며, 나아가 도와 불도가 또한 청정한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모든 법상(法相)이 공해서 청정하다.”
“세존이시여, 우리의 자아가 청정하면 살운야가 청정한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항상 청정하다.”
“세존이시여, 무슨 까닭으로 우리의 자아가 청정하면 살운야가 청정한 것이며, 항상 청정한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모양이 없고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수보리가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둘이 청정한 것은 얻을 바도 없으며, 체득할 바도 없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항상 청정하다.”
“세존이시여, 무슨 까닭으로 둘이 청정한 것은 체득할 것도 없으며, 얻을 것도 없어 항상 청정한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집착하지 않고 끊지 않기 때문이다.”
“세존이시여, 우리의 자아가 청정하면 함닉(陷溺)하는 바가 없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생(生)하는 것이 없어 청정한 것이다.”
수보리가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어째서 우리의 자아와 5음(陰)이 청정하여 생하는 바가 없어 항상 청정한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공은 변제(邊際)가 없기 때문이다.”
수보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만약 보살마하살이 이와 같이 안다면 이것이 반야바라밀을 행하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항상 청정하다.”
“세존이시여, 어째서 이와 같이 아는 것이 반야바라밀을 행하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도(道)의 일을 알기 때문이다.”
수보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가령 보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 구화구사라로써 ‘색은 또한 색을 알지 못하며, 통․상․행․식도 또한 식(識)을 알지 못하며, 과거법은 과거법을 알지 못하며, 미래법은 또한 미래법을 알지 못하며, 현재법은 또한 현재법을 알지 못한다’고 생각합니까?”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반야바라밀을 얻고 구화구사라를 행하는 보살은 이러한 생각을 하지 않는다. 6바라밀을 행하되, ‘내가 보시를 했으니 이 보시를 지니는 것이 보시를 행하는 것이다’라고 말하지 않으며, 반야바라밀에 이르기까지 다시 또한 이와 같다. 또한 ‘내가 공덕을 지었으므로 나에게 공덕이 있다’고 말하지 않으며, 또한 ‘나는 마땅히 보살도를 얻을 것이다’라고 말하지 않으며, 또한 ‘나는 중생을 교화하고 불국토를 청정하게 해야 한다’고 말하지 않으며, 또한 ‘나는 살운야를 체득해야 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모든 반야바라밀과 구화구사라를 행하였다 해도 또한 이러한 생각이 있지 않아야 한다. 내공․외공 나아가 유무공(有無空)에 이르기까지 이러한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수보리여, 이것이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하는 것이며, 구화구사라에 집착하는 바가 없는 것이다.”
석제환인이 수보리에게 물었다.
“선남자․선여인이 보살도를 행하는 데 무엇이 집착이 되는 것입니까?”
대답하였다.
“구익아, 보살도를 행하는 사람은 의상(意想)이 있으며, 베푸는 상[施想]이 있으며, 6바라밀의 상(想)이 있으며, 내공․외공 및 유무공의 상이 있으며, 37품의 상이 있으며, 18법의 상이 있으며, 10력의 상이 있으며, 모든 부처님 여래의 상이 있으며, 모든 부처님을 공양한 공덕의 상이 있다. 이것을 모두 헤아리고 합하여 이러한 생각을 갖고 아뇩다라삼야삼보를 이루려고 한다면 구익아, 선남자가 보살도를 행한다 해도 집착이 되어서 걸림 없는 지혜를 얻어 반야바라밀을 능히 행할 수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5음의 성품은 뜻으로 지어서 설정하는 것이 아니며, 나아가 살운야의 성품도 또한 뜻으로 지어서 설정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구익아, 보살마하살이 하는 것은 아뇩다라삼야삼보이며, 모든 중생들을 위해서 중생들을 권조하며 중생을 위해서 단바라밀을 행한다. 중생을 생각하므로 또한 다시 타인을 권조(勸助)하며 중생으로 하여금 단바라밀을 행하게 한다. 마땅히 6바라밀을 행하였다는 생각을 하지 않아야 하며, 또한 마땅히 내공․외공 및 유무공을 행하였다는 생각을 하지 않아야 하며, 또한 마땅히 37품을 행하였다는 생각을 하지 않아야 하며, 또한 마땅히 도를 행하였다는 생각을 하지 않아야 한다. 선남자․선여인은 이와 같이 행해야 하며, 다시 타인을 권조하여 아뇩다라삼야삼보를 얻게 해야 한다. 이와 같이 권조하는 자는 스스로 타락하지 않으며 또한 타인으로 하여금 모든 부처님의 권조를 여의지 않게 한다. 이와 같은 선남자․선여인은 모든 제(際:과거․현재․미래)의 집착을 여의게 될 것이다.”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다. 모든 보살들로 하여금 모든 제(際)의 집착을 여의게 하였다. 수보리여, 자세히 듣고 자세히 들어 잘 생각하여라. 마땅히 다시 그대를 위하여 미묘한 집착을 설하리라.”
수보리가 합장한 채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즐겁게 듣기를 원하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선여인이 아뇩다라삼야삼보의 상을 발하여 여래를 생각한다면 수보리여, 뜻에 상념(想念)이 있어서 곧 모든 여래에 집착한다. 뜻을 일으킬 때부터 법이 다함에 이르도록 그 중간에 지은 공덕은 모두 상념으로 지은 것이다. 이와 같은 상념으로 아뇩다라삼야삼보를 구하고 그 상념을 따른다면 모든 부처님에 집착하는 것이 된다. 제자들과 모든 중생들이 지은 공덕으로 이 상념으로 가지고 아뇩다라삼야삼보를 짓는다면 이와 같이 생각하고 이와 같이 집착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마땅히 모든 부처님의 공덕을 상념하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다.”
수보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반야바라밀은 매우 깊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모든 법의 성품[性]이 공적하기 때문이다.”
수보리가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반야바라밀은 크며 명자(名字)가 있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반야바라밀은 작자(作者)가 있는 것이 아니며, 이루는 자가 있는 것이 아니다. 얻을 자도 없으며, 또한 능히 체득할 자도 없으며, 능히 깨달을 자도 없는 것이다.”
수보리가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일체 모든 법은 능히 체득할 자가 없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법성은 둘이 없는 것이다. 수보리여, 모든 법성은 약간의 한 성품[一性]도 없다. 한 성품이란 곧 성품이 아니다. 성품이 아니라는 것은 지음이 없는 것이다. 지음이 없다는 것은 또한 만드는 것이 아니다. 수보리여, 법성은 하나이며 조작(造作)하는 것이 아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보살마하살은 일체 법은 짓는 것도 아니며 만든 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또한 일체 제(際)의 집착을 버려야 한다.”
수보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반야바라밀은 깨닫기 어렵고 알기 어렵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아는 것도 없으며, 또한 볼 것도 없으며, 또한 얻을 것도 없으며, 인식할 것도 없으며, 깨달을 것도 없는 것이다.”
수보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반야바라밀은 불가사의한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또한 뜻에서 생(生)하는 것도 아니며, 또한 5음에서 생하는 것도 아니며, 또한 37품에서 생하는 것도 아니며, 또한 10력․18법에서 생하는 것도 아니다.”
44. 무작품(無作品)
수보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반야바라밀은 지을 바가 없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지을 것이 없으므로 수보리여, 모든 법에 이르기까지 소유할 것이 없는 것이다.”
“세존이시여,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하려면 마땅히 어떻게 행해야 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보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하려면 색(色)을 행하지 않고 반야바라밀을 행해야 한다. 통․상․행․식을 행하지 않고 반야바라밀을 행해야 하며, 나아가 살운야에도 행하는 바 없이 반야바라밀을 행해야 한다. 5음에서 유상(有常)․무상(無常)을 생각하지 않고 반야바라밀을 행해야 하며, 나아가 살운야에서도 또한 유상․무상을 생각하지 않고 반야바라밀을 행해야 한다. 5음에 괴로움도 없고 즐거움도 없이 반야바라밀을 행해야 하며, 나아가 살운야에도 또한 괴로움도 없고 즐거움도 없이 반야바라밀을 행해야 한다. 5음에 유아(有我)․무아(無我)가 없이 반야바라밀을 행해야 하며, 나아가 살운야에도 또한 유아․무아가 없이 반야바라밀을 행해야 한다. 5음에 청정함이 없고 청정하지 않음이 없어야 반야바라밀을 행하는 것이며, 나아가 살운야에도 또한 청정함도 없고 청정하지 않음이 없어야 반야바라밀을 행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5음에서 또한 유상․무상도 볼 수 없으며, 또한 괴로움이 있고 즐거움이 있고, 유아․무아와 좋고 나쁨을 볼 수 없으며, 나아가 살운야도 또한 다시 이와 같기 때문이다.
또한 수보리여, 보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하려면 5음을 구족하게 행하지 않아야 반야바라밀을 행하는 것이며, 나아가 살운야도 구족하게 행하지 않아야 반야바라밀을 행하는 것이다. 왜 그런가? 5음을 구족하지 못했으면 5음이 아니므로 이와 같이 행하지 않아야 반야바라밀을 행하는 것이다. 나아가 살운야를 구족하지 못하면 살운야가 아니므로 이와 같이 행하지 않아야 반야바라밀을 행하는 것이다.”
수보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매우 기이하고 특이합니다. 보살도를 행하는 자를 위해서 보살의 집착을 잘 말씀해 주셨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이와 같으며 이와 같다. 여래․무소착․등정각께서는 보살이 집착하는 일과 집착하지 않는 일을 잘 말씀하셨다. 또한 수보리여, 보살은 5음에 집착하지 않아야 반야바라밀을 행하는 것이며, 안․이․비․설․신․의인 6정(情)에 집착하지 않아야 반야바라밀을 행하는 것이다. 6바라밀에 집착이 없어야 반야바라밀을 행하는 것이며, 나아가 살운야에도 집착하지 않아야 반야바라밀을 행하는 것이다. 수보리여, 보살이 이와 같이 행하면 곧 5음에 집착하고 집착하지 않음을 알며, 또한 다시 살운야에 집착하고 집착하지 않음을 알며, 수다원도에 집착하고 집착하지 않음을 알며, 성문․벽지불 도에 집착하고 집착하지 않음을 알며, 삼야삼불도에도 집착하고 집착하지 않음을 안다.”
수보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매우 기이하고 매우 기특합니다. 법이 매우 깊은 것이 이와 같습니다. 설해도 늘어나는 것도 없으며 줄어드는 것도 없으며, 설하지 않아도 또한 늘어나는 것도 아니며, 또한 줄어드는 것도 아닙니다.”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이와 같고 이와 같다. 그대가 말한 것과 같다. 수보리여, 비유하면 모든 여래․무소착․등정각께서 수명이 다하도록 허공을 칭찬해도 또한 늘어나지 않으며 허공을 비방해도 또한 줄어들지 않는 것과 같다. 비유하면 환인(幻人)을 칭찬해도 또한 늘어나지 않으며 환인을 비방해도 또한 줄어들지 않는 것과 같다. 선함을 들어도 또한 기뻐하지 않으며, 악함을 들어도 또한 성내지 않는다. 수보리여, 모든 법의 법도 또한 다시 이와 같다. 설하거나 설하지 않거나 또한 늘어나지도 않고 줄어들지도 않는다.”
수보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보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 반야바라밀을 생각하는 것은 매우 어렵고 어렵습니다. 세존이시여, 보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 두려워하지 않고 겁내지 않아야 하며, 아뇩다라삼야삼보에 상응해서 움직이지 않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세존이시여, 반야바라밀을 생각하는 것은 허공을 생각하고자 하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허공에는 또한 6바라밀이 없으며, 허공에는 또한 5음이 없으며, 또한 내외공과 유무공이 없으며, 또한 37품이 없으며, 또한 10력이 없으며, 또한 4무소외(無所畏)가 없으며, 또한 18법도 없습니다. 또한 수다원도도 없으며, 또한 사다함도도 없으며, 또한 아나함도도 없으며, 또한 아라한도도 없으며, 또한 벽지불도도 없으며, 허공에는 또한 삼야삼불도 없습니다.
세존이시여, 보살마하살이 승나승녈(僧那僧涅)을 지으려면 마땅히 예를 갖추어야 합니다. 세존이시여, 중생을 위해서 정진하고, 중생을 위해서 힘을 내며, 중생을 위하여 싸우며, 중생을 위하여 서원을 세우는 것은 허공에서 정진하는 것이며, 허공에서 서원을 세우는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중생을 위하여 서원을 세우는 것은 허공을 제도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보살이 대서원을 세우는 것은 허공과 같은 중생을 위하여 대서원을 세우는 것입니다. 허공을 들어 올리려고 해도 허공 가운데 취착해 있는 것과 같이 모든 보살마하살은 아뇩다라삼야삼보의 뜻을 일으켜 큰 정진력을 세우는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보살이 중생을 위해서 아뇩다라삼야삼보의 뜻을 일으키는 것은 이미 대서원을 건립한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이 보살마하살은 대용맹으로 허공과 같은 중생들에게 아뇩다라삼야삼보를 일으키게 합니다. 무슨 뜻인가 하면 세존이시여, 가령 삼천대천찰토 가운데 여래께서 계시는 것이 비유하면 총림․사탕수수․대죽․갈대․벼․삼․초목․약초․과일․모든 나무들만큼 여래가 많으신데 한 분 한 분의 모든 부처님께서 각각 경법을 설하시니, 혹 1겁을 지나면 다시 1겁을 지나갑니다. 한 분 한 분의 여래께서 각각 제도하신 중생들은 무량한 수로써 헤아릴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중생의 성품은 늘어나지도 줄어들지도 않습니다. 왜냐하면 중생은 소유가 없어 적정하기 때문입니다. 세존이시여, 삼천대천국토는 그만두고라도 시방 갠지스강의 모래 한 알 한 알이 하나의 불국토가 되고, 그러한 불국토 가운데 있는 것이 모두 여래가 되어 교화한 중생이 헤아릴 수 없으며, 셀 수 없어도 중생의 성품은 늘어나는 것도 없으며 줄어드는 것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일체 중생들이 다 공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중생은 시작도 없고 마침도 없으며, 허공과 같은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므로 제가 이와 같이 설하여 중생을 제도하고자 하는 것도 허공을 제도하려고 하는 것일 뿐입니다. 어떤 다른 비구가 뜻으로 ‘마땅히 반야바라밀은 문자로 만들어진 것이다. 반야바라밀 가운데는 또한 법이 생하지 않으며 또한 법이 멸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이 가운데 계성(戒性)․삼매성(三昧性)․지혜성․해탈성․견해탈혜성이 있으며 그 가운데 나타난다. 수다원․사다함․아나함․아라한․벽지불․삼야삼불이 있으며, 삼보가 있으며, 법륜을 굴림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에 석제환인이 수보리에게 말하였다.
“보살이 반야바라밀을 익히려면 어떤 것을 익혀야 합니까?”
기년(耆年) 수보리가 석제환인에게 대답하였다.
“반야바라밀을 배운다는 것은 공을 익히는 것이다.”
석제환인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만약 선남자․선여인이 반야바라밀을 수지하고 외우고 독송하고 그 안의 일을 익히고 행한다면 세존이시여, 제가 마땅히 어떻게 보호해야 하겠습니까?”
수보리가 석제환인에게 말하였다.
“구익아, 너는 법에 보호할 것이 있다고 보느냐?”
“존자시여, 실로 법에 보호할 것이 있다고 보지 않습니다.”
수보리가 말하였다.
“구익아, 선남자․선여인이 반야바라밀의 가르침에 머무는 것이 곧 이미 보호함을 얻은 것이며, 반야바라밀의 가르침을 여의지 않은 것이다. 사람이거나 사람이 아니거나 끝내 해칠 틈을 얻지 못할 것이다. 반야바라밀의 가르침에 머물면 이 선남자․선여인은 끝내 반야바라밀을 여의지 않음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만약 어떤 사람이 ‘나는 보살마하살을 보호하고자 한다’고 말하면 이 사람은 허공을 보호하는 것임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구익아, 실로 능히 꿈․아지랑이․환화(幻化)․그림자․메아리를 보호할 수 있겠느냐? 능히 이러한 일들을 막을 수 있겠느냐?“
석제환인이 말하였다.
“능히 보호할 수 없습니다.”
“구익아, 보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하는 것도 또한 이와 같다. 구익아, 참으로 능히 부처님과 부처님의 변화를 보호할 수 있겠느냐?”
석제환인이 말하였다.
“할 수 없습니다. 보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하는 것도 또한 능히 보호할 수 없습니다.”
“구익아, 법성․진제(眞際)를 보호하는 것은 불가사의한데 능히 보호할 수 있겠느냐?”
“수보리여, 할 수 없습니다. 보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하는 것도 또한 이와 같아서 능히 보호할 수 없습니다.”
석제환인이 수보리에게 물었다.
“보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 마땅히 어떻게 꿈의 법․환법(幻法)․아지랑이의 법[炎法]․메아리의 법[響法]․변화의 법[化法]을 깨달아 알 수 있으며, 그리고 높이지 않는 것입니까?”
수보리가 말하였다.
“구익아, 보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 5음을 생각하지 않고 5음을 높이지도 않는다. 나아가 살운야에 이르기까지 또한 생각하지도 않고 높이지도 않는다. 꿈의 법 나아가 변화에도 또한 생각하지도 않고 또한 높이지도 않아야 한다. 부처님의 위신력으로 삼천대천국토의 모든 사천왕과 나아가 수타회천에 이르기까지 각각 천상의 가루 전단향을 가지고 멀리서 부처님 앞에 뿌렸으며, 뿌린 후에는 부처님 처소에 나아가서 머리를 땅에 대고 부처님께 예를 드리고 물러가서 한 곳에 머물렀다. 이때 모든 사천왕․석제환인․범천왕․수타회천이 부처님의 위신력을 입어 각각 뜻으로 ‘지금 우리들은 마땅히 시방 면(面)의 각 천 분의 부처님을 청하여 반야바라밀품을 전하도록 하겠다’고 생각하였다. 모든 사천왕․제석․범천과 모든 존천(尊天)이 이처럼 생각하자 시방 면의 각 천 분의 부처님께서 이때 응하셨으며, 이에 응하여 모두 출현하셔서 반야바라밀품을 설하셨다. 그 제자들은 또한 수보리와 같은 자들이었다. 그 어려운 질문을 한 자는 모두 석제환인과 같았으며, 또한 질문도 이와 같았다. 석가모니부처님께서 반야바라밀 등을 설하는 것과 동등하여 특별한 차이가 없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미륵보살마하살은 또한 마땅히 이곳에서 아뇩다라삼야삼보를 이룰 것이며, 아유삼불을 이룰 것이다. 또한 마땅히 이곳에서 반야바라밀을 설할 것이며, 현겁(賢劫) 중에 미래의 모든 부처님께서도 또한 마땅히 이곳에서 아뇩다라삼야삼불을 이룰 것이며, 또한 마땅히 이곳에서 반야바라밀을 설할 것이다.”
수보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어떤 일로써, 어떤 모습으로써, 어떤 뜻으로써 미륵보살마하살이 아뇩다라삼야삼불을 이루며, 반야바라밀을 설합니까?”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미륵보살마하살은 부처를 이룰 때에 또한 5음의 유상․무상을 설하지 않으며, 또한 5음에 괴로움이 있고 즐거움이 있고 청정과 청정하지 않음이 있고 유아(有我)․무아(無我)와 좋고 나쁜 것을 설하지 않을 것이다. 또한 5음은 속박되었다고도 풀어놓았다고도 설하지 않으며, 또한 5음에 과거․미래․현재가 있다고 설하지 않을 것이다. 5음은 항상 청정하므로 마땅히 5음이 항상 청정함을 설하며, 나아가 살운야도 항상 청정하므로 마땅히 살운야가 항상 청정함을 설할 것이다.”
수보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반야바라밀은 청정한 것입니까?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5음이 청정하므로 반야바라밀도 청정하다.”
“세존이시여, 어째서 5음이 청정하므로 반야바라밀이 청정한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5음은 또한 생하지도 않고 또한 멸하지도 않고 또한 집착하지도 않고, 또한 단절되지도 않는다. 그러므로 5음은 항상 청정하다. 수보리여, 허공이 청정하므로 반야바라밀이 청정한 것이다.”
“세존이시여, 어째서 허공이 청정하므로 반야바라밀이 청정한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허공은 생하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으며, 무소유이므로 허공은 청정한 것이다.”
“세존이시여, 어째서 허공이 무소유이므로 반야바라밀이 청정한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허공은 호지(護持)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반야바라밀이 청정한 것은 허공의 일과 같으므로 반야바라밀은 청정하다.”
“세존이시여, 어째서 허공의 일과 같으므로 반야바라밀이 청정한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허공이 둘이 없는 것과 같아서 적정하기 때문이다. 이런 일을 이유로 반야바라밀은 청정한 것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허공이 행함이 없는 것처럼 반야바라밀은 항상 청정하다.”
“세존이시여, 어째서 허공은 행함이 없으므로 반야바라밀이 청정한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허공은 행함이 없으므로 반야바라밀이 청정한 것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허공은 의지할 것이 없으므로 반야바라밀이 청정하다.”
“세존이시여, 어째서 허공이 의지할 것이 없으므로 반야바라밀이 청정한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허공이 허물이 없는 것과 같아서 반야바라밀이 청정한 것이다. 수보리여, 모든 법은 생하지도 않으며, 멸하지도 않으며, 집착하지도 않으며, 단절하지도 않으므로 반야바라밀은 청정한 것이다.”
“세존이시여, 어째서 모든 법은 생하지도 않으며 멸하지도 않고, 집착하지도 않고 단절되지도 않아 반야바라밀이 청정한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모든 법은 항상 청정하기 때문에 반야바라밀이 청정한 것이다.”
수보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만약 선남자․선여인이 반야바라밀을 수지하고 외우고 독송하고 이 안의 일을 행하면 이 선남자․선여인은 끝내 눈이 병들지 않으며, 귀․코에 병이 없을 것입니다. 비록 몸이 늙어도 끝내 오랫동안 쇠약하지 않고 수명을 마칠 것입니다. 끝내 임종시에 몸과 마음이 안온하여 어지럽지 않을 것이며, 끝내 독으로 병들거나 잘못 허망하고 나쁘게 죽는[誤妄惡死] 일은 없을 것입니다. 항상 모든 하늘[諸天]이 따라다니며 모시고 옹호하며, 모든 사천왕과 수타회천에 이르기까지 항상 모두 수호할 것입니다.
선남자․선여인이 법사가 되어 매월 14일․15일에 반야바라밀을 설할 때 모두 하늘이 다 이 모임에 올 것입니다. 선남자․선여인이 이와 같이 반야바라밀을 설할 때 얻는 공덕은 헤아릴 수 없으며, 칭량(稱量)할 수 없으며, 불가사의합니다.”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선남자․선여인이 6재일(齋日)에 반야바라밀을 설할 때 모든 하늘이 이 모임에 오면 얻는 공덕은 헤아릴 수 없다. 왜냐하면 반야바라밀은 지극히 큰 보배이기 때문이다. 수보리여, 반야바라밀의 진보(珍寶) 가운데는 3악취가 끊어지고 사람 안의 빈곤이 끊어지고 베푼 사람은 천도(天道)․인도(人道)의 일체 사람들로 하여금 대성(大姓) 범지․장자의 집에 태어나게 하며, 사왕천에서 위로 삼십삼천에 태어나게 한다. 베푼 사람은 수다원의 도와 사다함․아나함․아라한․벽지불의 도에 이르며, 베푼 사람은 아뇩다라삼야삼보의 도를 이룰 것이다. 왜냐하면 반야바라밀 가운데서 널리 10선(善)의 일을 설하기 때문이다. 이 안에서 배운 후에는 곧 찰리․범지 대성․장자가 있음을 알며, 곧 사천왕에서 위로 삼십삼천에 이르기까지가 있음을 알며, 곧 수다원도와 성문․벽지불도가 있음을 알며, 곧 삼야삼불도가 있음을 알며, 곧 4선․4등․4공정(空定)․37품․부처님의 10종력․18법․4무소외가 있음을 알며, 곧 6바라밀이 있음을 알며, 내외공과 유무공이 있음을 알며, 곧 살운야가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진보(珍寶)의 바라밀이라고 이름하는 것이며, 반야바라밀이라고 이름하는 것이다. 이 진보의 바라밀 가운데는 또한 생하는 것도 없으며, 또한 멸하는 것도 없으며, 또한 집착하는 것도 없으며, 또한 끊어지는 것도 없으며, 또한 취하는 것도 없으며, 또한 버리는 것도 없다. 왜냐하면 또한 법에는 생멸이 있지 않고 집착과 끊임이 있지 않고 취함과 놓음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수보리여, 반야바라밀에는 선한 법도 없으며, 악한 법도 없으며, 또한 도법(道法)도 없으며, 또한 속법(俗法)도 없으며, 또한 번뇌와 번뇌 아닌 것도 없으며, 또한 유위법도 없으며, 또한 무위법도 없다. 그러므로 수보리여, 진보의 반야바라밀에는 의지할 것이 없다. 이 진보의 반야바라밀에는 어떤 법도 능히 물들일 것이 없으며, 어떤 법도 능히 체득할 것이 없다. 왜냐하면 어떤 법도 서로 가까이하여 얻을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능히 물들일 것이 없는 것이다.”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만약 보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 이와 같이 알지 않아야 하며, 이와 같은 생각을 하지 않아야 하며, 이와 같이 의지하지도 않아야 하며, 이와 같은 희론도 하지 않아야 하니, 이것이 반야바라밀을 행하는 것이며, 반야바라밀을 생각하는 것이며, 모든 여래․무소착․등정각께 예를 올리고 불국토에서 불국토에 이르도록 모든 부처님을 공양하고 받들어 섬기고 예경드리고 중생을 교화하고 불국토을 청정하게 하는 것이다. 수보리여, 이 반야바라밀은 법에 있어서 가히 볼 것이 없으며, 보지 못할 것도 없으며, 또한 취할 것도 없으며, 또한 놓을 것도 없으며, 또한 생할 것도 없으며, 또한 멸할 것도 없으며, 또한 집착할 것도 없으며, 또한 끊을 것도 없으며, 또한 늘어나는 것도 아니며, 또한 멸하는 것도 아니며, 또한 과거․미래․현재도 아니다. 또한 욕계(欲界)를 지나는 것도 아니고 또한 머무는 것도 아니며, 또한 형계(形界)를 지나가는 것도 아니고 또한 머무는 것도 아니며, 또한 무형계(無形界)를 지나가는 것도 아니고, 또한 머무는 것도 아니다. 또한 사람에게 6바라밀을 주는 것도 아니고, 또한 사람에게 버리도록 하는 것도 아니며, 또한 사람에게 내외공과 유무공을 주는 것도 아니며 또한 버리는 것도 아니며, 또한 사람에게 37품을 주는 것도 아니고 또한 버리는 것도 아니며, 또한 10력과 18법을 주는 것도 아니고, 또한 버리는 것도 아니다. 또한 성문․벽지불에서 위로 살운야에 이르기까지를 수지하는 것도 아니며, 주는 것이 있지 않으며 또한 버리는 것도 있지 않다.
또한 수보리여, 반야바라밀은 또한 나한법을 가져서 주는 것도 아니며, 또한 범인법(凡人法)을 버리는 것도 아니며, 또한 벽지불법을 수지하여 주는 것도 아니며, 또한 나한법을 버리는 것도 아니며, 또한 불법을 수지하여 주는 것도 아니며, 또한 벽지불법을 버리는 것도 아니다. 또한 불법에는 줄 것도 있지 않고 버릴 것이 있지 않다.
수보리여, 반야바라밀은 또한 무위법을 수지하지 않으며 또한 유위법을 버리지 않는다. 왜냐하면 부처님이 계시든 부처님이 안 계시든 법성은 여여함에 머물기 때문이다. 법성은 곧 이 법신(法身)이며, 또한 잊어버림으로 머물러서는 안 되며, 또한 손실되게 머물러서도 안 된다.”
이때 모든 하늘 대중들이 허공에서 환희하고 뛰어오르며 크게 미소지으며 하늘의 우발라화(憂鉢羅華)․구물투화(拘勿投華)․분타리화(分陀利華)를 가지고 부처님 앞에 뿌리면서 함께 소리를 내어 말하였다.
“저희들은 지금 염부제에서 다시 법륜을 굴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왜냐하면 무앙수 천자들이 허공 가운데서 무소종생법인(無所從生法忍)을 얻었기 때문이다.”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법륜을 굴리는 것은 또한 둘이 아니며, 또한 하나도 아니다. 반야바라밀은 또한 법을 굴리기 위한 것도 아니며, 또한 굴리지 않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유무공이기 때문이다.”
수보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어째서 유무공이므로 반야바라밀를 굴리기도 하고 체득하기도 하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6바라밀은 공한 것이며 6바라밀이 공하다는 것도 공하기 때문이다. 내외공은 내외공으로써 공하며, 나아가 유무공은 유무공으로써 공하며, 37품공은 37품공으로써 공하며, 10력공은 10력공으로써 공하며, 부처님의 18법공은 18법공으로써 공하며, 성문․벽지불공은 성문․벽지불공으로써 공하며, 살운야공은 살운야공으로써 공하다.”
수보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반야바라밀은 공하며 이것은 보살의 대도(大度)입니다. 보살은 반야바라밀을 지니고 일체가 공하므로 아뇩다라삼야삼보와 아유삼불을 이루는 것입니다. 또한 깨달을 것도 없으며, 법륜을 굴리되 또한 법을 가히 굴릴 것도 없으며, 또한 다시 전환(轉還)할 것도 없으며, 또한 법을 보아서도 안 됩니다. 왜냐하면 법을 찾아도 굴리는 것을 얻을 수 없으며, 모든 법은 항상 무소유이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공․무상․무원은 또한 굴릴 것도 없으며, 또한 돌아올 것도 없기 때문입니다. 반야바라밀에는 이러한 교설(敎說)이 있으며, 이러한 시설(施設)이 있으며, 이러한 분별분부(分別分部)가 있으며, 분류(分流)로 베풀어 보임이 있는 것입니다. 반야바라밀에 가르침이 있다고 하는 것은 이와 같이 크게 청정한 가르침이 있기 때문입니다. 반야바라밀의 가르침은 또한 설하는 자도 없으며, 또한 받는 자도 없으며, 또한 취하여 증득한 자도 없습니다. 만약 설할 것도 없으며, 받을 것도 없으며, 증득할 것도 없다면 이와 같아서 반니원도 없습니다. 만약 반니원이 없다면 이 교법 가운데는 또한 존우복전(尊祐福田)도 있지 않습니다.”
방광반야경 제10권
서진 우전국 무라차 한역
45. 등품(等品)
수보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이 반야바라밀은 바닥[底]이 없습니까?”
대답하셨다.
“허공은 끝[際]이 없기 때문이다.”
“세존이시여, 바라밀은 평등한 것입니까?”
대답하셨다.
“모든 법은 평등하기 때문이다.”
“세존이시여, 바라밀은 적정한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항상 공하기 때문이다.”
“세존이시여, 바라밀을 능히 굴복시킬 것은 없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모든 법은 소유가 없기 때문이다.”
“세존이시여, 갖가지 바라밀은 공한 것입니까?”
대답하셨다.
“또한 문자도 없으며 또한 몸도 없기 때문이다.”
“세존이시여, 바라밀은 공한 것입니까?”
대답하셨다.
“호흡이 출입하는 것은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세존이시여, 바라밀에는 행하는 일이 없습니까?”
대답하셨다.
“깨달은 것이 없고 행할 바가 없기 때문이다.”
“세존이시여, 바라밀은 문자가 있지 않습니까?”
대답하셨다.
“통(痛)․상(想)․염(念)은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세존이시여, 바라밀에는 가는 것이 없습니까?”
대답하셨다.
“모든 법은 오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세존이시여, 바라밀은 평등함이 없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모든 법은 취할 것이 없기 때문이다.”
“세존이시여, 바라밀은 녹이는 것입니까?”
대답하셨다.
“모든 법은 항상 다하기 때문이다.”
“세존이시여, 바라밀은 생겨나지 않는 것입니까?”
대답하셨다.
“모든 법은 생함이 없기 때문이다.”
“세존이시여, 바라밀은 하는 바가 없습니까?”
대답하셨다.
“짓는 자가 없기 때문이다.”
“세존이시여, 바라밀은 지혜가 있지 않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지혜는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세존이시여, 바라밀은 초월할 것이 없습니까?”
대답하셨다.
“생사는 찾아봐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세존이시여, 바라밀은 패할 바가 없습니까?”
대답하셨다.
“모든 법은 무너짐이 없기 때문이다.”
“세존이시여, 바라밀은 꿈과 같습니까?”
대답하셨다.
“꿈 가운데서 소유를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세존이시여, 바라밀은 메아리와 같습니까?”
대답하셨다.
“소리를 들음이 없기 때문이다.”
“세존이시여, 바라밀은 빛의 그림자와 같습니까?”
대답하셨다.
“면상(面像)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세존이시여, 바라밀은 불꽃과 같습니까?”
대답하셨다.
“물이 흘러가는 것은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세존이시여, 바라밀은 환(幻)과 같습니까?”
대답하셨다.
“술사(術事)는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세존이시여, 바라밀은 집착이 없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시작[緖]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세존이시여, 바라밀은 끊어짐이 없는 것입니까?”
대답하셨다.
“시작이 없기 때문이다.”
“세존이시여, 바라밀은 나오는 것이 아닙니까?”
대답하셨다.
“굴(窟)이 없기 때문이다.”
“세존이시여, 바라밀은 회론이 아닙니까?”
대답하셨다.
“모든 회론이 이미 멸했기 때문이다.”
“세존이시여, 바라밀은 높이 받드는 것이 없는 것입니까?”
대답하셨다.
“모든 높이 받드는 아만은 이미 멸했기 때문이다.”
“세존이시여, 바라밀은 움직여 전전하지[動轉] 않는 것입니까?”
대답하셨다.
“법성(法性)은 머무는 것이기 때문이다.”
“세존이시여, 바라밀은 머묾이 없는 것입니까?”
대답하셨다.
“모든 법이 심히 그러해서 평등하기 때문이다.”
“세존이시여, 바라밀은 머물러 안립하는 바가 없습니까?”
대답하셨다.
“모든 법은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세존이시여, 바라밀은 적정한 것입니까?”
대답하셨다.
“모든 법은 상행(想行)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세존이시여, 바라밀은 음욕이 없습니까?”
대답하셨다.
“음욕은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세존이시여, 바라밀은 성냄[恚]이 없는 것입니까?”
대답하셨다.
“성냄은 없어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세존이시여, 바라밀은 어리석지 않은 것입니까?”
대답하셨다.
“모든 어둠을 멸했기 때문이다.”
“세존이시여, 바라밀은 번뇌[垢]가 없습니까?”
대답하셨다.
“여우처럼 의심함이 없기 때문이다.”
“세존이시여, 바라밀은 중생이 아닙니까?”
대답하셨다.
“중생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세존이시여, 바라밀은 제거할 바가 없는 것입니까?”
대답하셨다.
“모든 법은 처할 곳이 없기 때문이다.”
“세존이시여, 바라밀은 양제(兩際)를 멸하지 않는 것입니까?”
대답하셨다.
“제(際)를 여의었기 때문이다.”
“세존이시여, 바라밀은 파괴되지 않는 것입니까?”
대답하셨다.
“모든 법은 받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세존이시여, 바라밀은 비평이 없는 것입니까?”
대답하셨다.
“모든 성문․벽지불지를 제도했기 때문이다.”
“세존이시여, 바라밀은 분별하는 것이 없는 것입니까?”
대답하셨다.
“모든 법은 선택함이 없기 때문이다.”
“세존이시여, 바라밀은 한계가 없습니까?”
대답하셨다.
“모든 법은 평등한 모양[平相]이 아니기 때문이다.”
“세존이시여, 바라밀은 허공입니까?”
대답하셨다.
“모든 법은 헤아릴 수 없기 때문이다.”
“세존이시여, 바라밀은 무상(無常)한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모든 법은 무너지기 때문이다.”
“세존이시여, 바라밀은 괴로움입니까?”
대답하셨다.
“모든 법은 당(黨)과 사자전(師子戰)이 없기 때문이다.”
“세존이시여, 바라밀은 나[我]가 없습니까?”
대답하셨다.
“모든 법은 들어가는 곳이 없기 때문이다.”
“세존이시여, 바라밀은 공한 것입니까?”
대답하셨다.
“모든 법은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세존이시여, 바라밀은 생각[想]이 없는 것입니까?”
대답하셨다.
“모든 법은 출생하는 바가 없기 때문이다.”
“세존이시여, 바라밀은 내공(內空)입니까?”
대답하셨다.
“내공은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세존이시여, 바라밀은 외공(外空)입니까?”
대답하셨다.
“외공법은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세존이시여, 바라밀은 내외공입니까?”
대답하셨다.
“내외공은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세존이시여, 바라밀은 공공(空空)입니까?”
대답하셨다.
“공공은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세존이시여, 바라밀은 대공(大空)입니까?”
대답하셨다.
“모든 법은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세존이시여, 바라밀은 지경공(至竟空)입니까?”
대답하셨다.
“무위법은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세존이시여, 바라밀은 유위공(有爲空)입니까?”
대답하셨다.
“유위법은 공하여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세존이시여, 바라밀은 항상 공한 것입니까?”
대답하셨다.
“항상 공하여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세존이시여, 바라밀은 끝이 없는 공[無有際空]입니까?”
대답하셨다.
“끝[際]이 없는 것은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세존이시여, 바라밀은 짓는 바 일이 공한 것입니까?”
대답하셨다.
“짓는 일은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세존이시여, 바라밀은 성공(性空)입니까?”
대답하셨다.
“유위성(有爲性)의 법은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세존이시여, 바라밀은 제법공(諸法空)입니까?”
대답하셨다.
“내외공은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세존이시여, 바라밀은 자상공(自相空)입니까?”
대답하셨다.
“자상(自相)은 고요하기 때문이다.”
“세존이시여, 바라밀은 유무공공(有無空空)입니까?”
대답하셨다.
“유무공은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세존이시여, 4의지(意止)는 바라밀입니까?”
대답하셨다.
“신(身)․통(痛)․의(意)․법(法)은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세존이시여, 4의단(意斷)은 바라밀입니까?”
대답하셨다.
“선악법은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세존이시여, 신통은 바라밀입니까?”
대답하셨다.
“4신족(神足)은 볼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세존이시여, 5근(根)은 바라밀입니까?”
대답하셨다.
“5근은 볼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세존이시여, 바라밀은 힘[力]입니까?”
대답하셨다.
“5력은 볼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세존이시여, 바라밀은 깨닫는 것[覺]입니까?”
대답하셨다.
“7각의(覺意)는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세존이시여, 바라밀은 도(道)입니까?”
대답하셨다.
“팔자(八字)는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세존이시여, 바라밀은 원(願)이 없는 것입니까?”
대답하셨다.
“원은 볼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세존이시여, 바라밀은 공합니까?”
대답하셨다.
“공의 일은 적정해서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세존이시여, 바라밀은 모양이 없는 것입니까?”
대답하셨다.
“고요한 일은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세존이시여, 바라밀은 해탈입니까?”
대답하셨다.
“8유무(惟無)는 볼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세존이시여, 바라밀은 선정[定]입니까?”
대답하셨다.
“9차제선(次第禪)은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세존이시여, 바라밀은 단(檀)입니까?”
대답하셨다.
“질투는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세존이시여, 바라밀은 계(戒)입니까?”
대답하셨다.
“악한 계는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세존이시여, 바라밀은 찬(羼:인욕)입니까?”
대답하셨다.
“인욕[忍]은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세존이시여, 바라밀은 유체(惟逮)입니까?”
대답하셨다.
“정진(精進)과 게으름[懈怠]은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세존이시여, 바라밀은 선(禪)입니까?”
대답하셨다.
“선정[定]과 어지러움은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세존이시여, 바라밀은 지혜[慧]입니까?”
대답하셨다.
“악한 지(智)와 혜(慧)는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세존이시여, 바라밀은 10력입니까?”
대답하셨다.
“모든 법은 복종할 것이 없기 때문이다.”
“세존이시여, 바라밀은 용감한 것입니까?”
대답하셨다.
“일에 통한 지혜는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세존이시여, 바라밀은 분별지(分別智)입니까?”
대답하셨다.
“모든 지혜는 걸림이 없기 때문이다.”
“세존이시여, 불법은 바라밀입니까?”
대답하셨다.
“모든 법을 넘어서기 때문이다.”
“세존이시여, 여래는 바라밀입니까?”
대답하셨다.
“설한 것은 다름이 없기 때문이다.”
“세존이시여, 바라밀은 자연(自然)입니까?”
대답하셨다.
“반야바라밀은 자연이니 모든 법 가운데서 자재하기 때문이다.”
“세존이시여, 불법은 바라밀입니까?”
대답하셨다.
“모든 법은 아유삼불이기 때문이다.”
46. 진지식품(眞知識品)
이때 석제환인이 속으로 생각하였다.
‘선남자․선여인이 반야바라밀을 들어 귓전에 스치더라도 모두 과거 부처님 때에 공덕을 지은 사람이며 이미 진실한 선지식(善知識)을 얻은 것인데, 하물며 외우고 독송하고 그 안의 일을 설하고 행하는 자이겠는가? 이 사람은 이미 약간의 모든 부처님을 공양한 것이고, 능히 사람들을 위해서 질문하고 능히 사람을 위해서 해설해 준 자이다. 지금 다시 반야바라밀을 수지하여 그 안의 가르침을 행하는 선남자․선여인은 반야바라밀을 들어도 두려워하지 않고 공포에 떨지 않는다. 이 사람은 이미 약간의 백천 겁 동안 6바라밀을 행하였으므로 이 일에 이른 것이다.’
사리불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만약 선남자․선여인이 깊은 반야바라밀을 듣고 두려워하지도 않고 공포에 떨지도 않고 겁먹지도 않고 무서워하지도 않고 들은 후에는 곧 능히 수지하고 외우고 그 안의 일을 행한다면 마땅히 이 무리의 보살은 아유월치의 보살과 같다고 보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반야바라밀은 매우 깊기 때문입니다. 아직 6바라밀을 행하지 못한 자는 끝내 알지 못할 것입니다. 이와 같이 세존이시여, 만약 선남자․선여인이 반야바라밀을 훼방하려고 한다면 그 사람은 본래 반야바라밀을 가볍게 본 자입니다. 왜냐하면 깊은 반야바라밀이 설해짐을 듣고도 즐겁게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일찍이 부처님과 제자들로부터 6바라밀을 행하는 것을 듣지 못한 소치이며, 내외공과 유무공을 듣지 못한 소치이며, 37품․부처님의 10종력․18법을 듣지 못한 소치입니다.”
석제환인이 사리불에게 물었다.
“반야바라밀에 어떤 기특한 것이 있습니까? 새로 배우는 보살이 깊은 반야바라밀을 들으면 어떻게 6바라밀을 알며, 어떻게 내외공과 유무공을 알며, 어떻게 37품․10종력․18법을 아는 것입니까?”
석제환인이 사리불에게 말하였다.
“반야바라밀은 큰 명칭(名稱)이 있는 것입니까? 반야바라밀을 모두 공경하지 않는 것이 살운야를 공경하지 않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석제환인에게 말씀하셨다.
“이와 같다. 구익아, 반야바라밀을 공경하지 않는 것은 살운야를 공경하지 않는 것이다. 왜냐하면 모든 부처님 여래의 살운야는 모두 이 가운데서 나오기 때문이다. 구익아, 선남자․선여인이 살운야에 머물려고 하면 마땅히 반야바라밀에 머물러야 한다. 도혜(道慧)를 일으키고자 하면 마땅히 반야바라밀을 익히고 행해야 하며, 모든 부처님의 법륜을 굴리려고 하면 마땅히 반야바라밀을 익히고 행해야 한다. 선남자․선여인이 수다원․사다함․아나함․아라한․벽지불도와 삼야삼보의 불도를 얻으려고 하면 마땅히 반야바라밀을 익히고 행해야 한다. 비구승을 총지(摠持)하려고 하면 마땅히 반야바라밀을 익히고 행해야 한다.”
석제환인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보살은 어떻게 6바라밀에 머물러야 하며, 어떻게 6바라밀을 익혀야 하며, 어떻게 반야바라밀을 행하고 내외공과 유무공을 익혀야 하며, 어떻게 37품․4무소외․18법을 행해야 합니까?”
부처님께서 석제환인에게 말씀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다. 구익아, 부처님의 위신력을 이어받아 능히 여래․무소착․등정각께 여쭌 것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보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 5음에 머물지 않아야 하니, 이처럼 5음에 머물지 않는 것이 5음을 익히는 것이다. 안․이․비․설․신․의에 머물지 않아야 하며, 색․성․향․미․세활․법에 머물지 않아야 한다. 12쇠(衰)에 머물지 않는 것이 12쇠를 익히는 것이다. 6바라밀에 머물지 않는 것이 6바라밀을 익히는 것이다. 내외공과 유무공에 머물지 않는 것이 내외공과 유무공을 익히는 것이다. 37품․4무소외․10력․18법에 머물지 않는 것이 18법을 익히는 것이다. 왜냐하면 5음에 머물 것과 익힐 것이 있음을 보지 못하고, 나아가 18법에도 또한 머물 것과 익힐 것이 있음을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또한 구익아, 보살은 5음에 합하지 않으면서 5음을 익혀야 하며, 나아가 부처님의 18법에 합하지 않는 것이 부처님의 18법을 익히는 것이다. 왜냐하면 보살이 과거의 5음을 찾아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미래의 5음도 볼 수 없기 때문이며, 현재의 5음도 또한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나아가 부처님의 18법도 또한 이와 같은 것이다.”
사리불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반야바라밀은 매우 깊은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5음도 이와 같아 또한 매우 깊은 것이다. 사리불이여, 나아가 18법도 이와 같아 또한 매우 깊은 것이다.”
“세존이시여, 반야바라밀은 매우 깊어 지니기 어렵고 수용하기 어렵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5음이 지니기 어렵고 수용하기 어렵기 때문에 반야바라밀도 지니기 어렵고 수용하기 어려운 것이다. 나아가 18법도 지니기 어렵고 수용하기 어렵기 때문에 반야바라밀도 지니기 어렵고 수용하기 어려운 것이다.”
“세존이시여, 반야바라밀은 평상(平相)한 것이 아닙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5음은 평상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반야바라밀도 평상한 것이 아니다. 나아가 18법도 평상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반야바라밀도 평상한 것이 아니다.”
부처님께서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만약 보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 깊이 5음을 행하지 않아야 반야바라밀을 행하는 것이다. 나아가 18법도 깊이 행하지 않아야 반야바라밀을 행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5음이 깊으면 5음이 아니며, 나아가 18법도 매우 깊으면 18법이 아니기 때문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만약 보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 5음은 지니기 어렵고 수용하기 어려움에서 행하지 않아야 반야바라밀을 행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만약 5음은 지니기 어렵고 수용하기 어렵다고 한다면 5음이 아니며, 만약 18법이 지니기 어렵고 수용하기 어렵다고 한다면 18법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리불이여, 보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 5음은 평상(平相)한 것이 아니므로 행하지 않아야 반야바라밀을 행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만약 5음이 평상한 것이 아니라고 한다면 5음이 아니며, 나아가 부처님의 18법도 평상한 것이 아니라고 한다면 18법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리불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반야바라밀은 매우 깊고 평상한 것이 아니므로 알기 어려운 것입니다. 새로 배우는 보살은 앞에 설한 깊은 반야바라밀을 감당하지 못합니다. 이것을 들으면 혹은 두려워하고 혹은 공포에 떨고 여우같이 의심하며 장애를 지으며 믿지 않고 즐거워하지 않습니다. 마땅히 아유월치의 보살마하살이 이 깊은 반야바라밀을 설한 것을 들으면 끝내 공포에 떨지도 않고 끝내 의심하지 않으며, 들으면 곧 신해(信解)하게 되는 것입니다.”
석제환인이 사리불에게 물었다.
“바로 새로 배우는 보살 앞에서 깊은 반야바라밀을 설하게 한다면 어떤 허물이 있는 것입니까?”
사리불이 석제환인에게 말하였다.
“만약 새로 배우는 보살 앞에서 설한다면 곧 두려워하며, 능히 비방하며, 곧 해탈도 얻지 못하며, 곧 극악의 죄를 받게 될 것이다. 또 아주 오랫동안 아뇩다라삼야삼보를 이루기 어려울 것이다.”
석제환인이 사리불에게 물었다.
“아직 수기를 받지 못한 보살이 이 깊은 반야바라밀을 들으면 두려워하지 않으며 무서워하지도 않습니까?”
사리불이 말하였다.
“이 바라밀을 듣고 두려워하지도 않고 무서워하지도 않으면 이제 오래지 않아 수기를 받을 것이니, 곧 한 부처님이나 두 부처님을 뵙는 것을 넘기지 않고 곧 수기를 받을 것이다.”
이때 세존께서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이와 같고 이와 같도다. 만약 깊은 반야바라밀을 듣고도 두려워하지 않고 무서워하지 않는다면 마땅히 알아야 한다. 이러한 무리의 보살들은 뜻을 일으킨 사람으로 이미 오랫동안 6바라밀을 행하였고, 이미 오랫동안 모든 부처님을 공양했고, 소행이 천천히 근본에서 나온 것이며 들은 것과 행한 것이 위에 있다.”
사리불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설법하신 것을 제가 이미 알았습니다. 세존이시여, 만약 선남자․선여인이 보살의 뜻을 일으켜 꿈속에서 6바라밀을 행하고 부처님의 자리에 앉는다면 마땅히 알아야 합니다. 이 선남자․선여인은 오래지 않아 아뇩다라삼야삼보에 가까이할 것이며, 모두 꿈속에서도 이와 같이 지을 것입니다. 마땅히 오래지 않아 아뇩다라삼야삼보에 가까워지는데, 하물며 6바라밀을 행하고 아뇩다라삼야삼보를 구하고 속히 삼야삼불을 이루는 것이겠습니까? 선남자․선여인이 이 깊은 반야바라밀을 듣고 능히 받들어 행한다면 선의 근본[善本] 공덕을 이미 성취한 것이며, 이미 과거의 무량한 수의 모든 부처님을 공양한 것이며, 진실한 선지식을 얻은 것입니다. 반야바라밀을 수지하고 외우면 오래지 않아 아뇩다라삼야삼보의 수기를 받을 것입니다. 마땅히 알아야 하니, 이 보살은 아뇩다라삼야삼보에서 움직이지 않을 것입니다. 이제 현재의 신자(信者)도 또한 마땅히 이와 같으며, 미래의 신자도 또한 이와 같을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비유하면 어떤 사람이 백 유순을 가거나 2백 유순․4백 유순에 이르기까지 지나가는 곳마다 기근(饑饉)․도적․극심한 어려움이 있었는데 멀리서 수목이나 방목지(放牧地)를 보고 사람이 기거하는 집이 멀지 않았음을 아는 것과 같습니다. 곧 스스로 환희하여 ‘이제 나는 이 모든 어려움에서 벗어났으며 다시는 두려워하지도 않을 것이고 다시 무서워하지도 않을 것이며, 굶지도 않을 것이다’라고 합니다. 깊은 반야바라밀을 수지하면 이 보살은 이미 수기를 받은 것이며, 오래지 않아 아뇩다라삼야삼보를 이룰 것임을 마땅히 알아야 합니다. 이 보살은 마땅히 나한․벽지불에 떨어질 것을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며, 이것이 곧 보살마하살을 이룰 징조인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그대가 설한 변재(辯才)는 모두 불사(佛事)이다.”
사리불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비유하면 어떤 사람이 큰 바다를 보고자 하여 곧 큰 바다로 나아가려는 뜻을 일으켜 게으르거나 멈추지 않고 갈 때, 또한 나무도 보이지 않고 또한 산도 보이지 않는다면, 곧 ‘이제 오래지 않아 큰 바다에 가까워질 것이다’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비록 큰 바다를 보지 못했으나, 이 가운데서 ‘내가 보는 모습으로는 이제 나는 오래지 않아 바다에 도달할 것이다’라고 생각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보살마하살은 마땅히 이와 같이 알아야 하니, 반야바라밀을 듣고 받아 지니고 외우고 읽으면 비록 모든 여래․무소착․등정각의 앞에서 아뇩다라삼야삼보의 겁수에 대한 수기를 받지 못했더라도 스스로 오래지 않아 삼야삼불을 이룰 것임을 압니다. 왜냐하면 이미 반야바라밀을 수지하고 외우며 독송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세존이시여, 비유하면 어떤 사람이 봄에 모든 나무에서 새싹이 나오려고 기운을 품고 있는 것을 보면 이 나무 가지에서 장차 오래지 않아 잎․꽃․열매가 나올 것을 아는 것과 같습니다. 왜냐하면 이 나무는 먼저 서응(瑞應)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염부제의 사람들이 이 상서로움을 보면 기뻐하지 않는 자가 없을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보살이 반야바라밀을 보고 듣고, 들은 후에는 받아 지니고 외우고 독송하고 이 안의 일을 행하고 익혔다면 이 보살의 공덕은 이미 가득 찬 것이고, 이미 약간의 백천 모든 부처님을 공양한 것임을 마땅히 알아야 합니다. 또 예전의 공덕 받은 것과 연결되어 곧 아뇩다라삼야삼보를 이룰 것입니다. 천상의 모든 하늘로써 일찍이 모든 부처님을 뵌 자는 모두 환희심을 내어 ‘예전 과거의 모든 보살들이 받은 수기와 서응도 모두 또한 이와 같았다’고 말합니다.
세존이시여, 비유하면 어머니가 임신을 하여 배가 점점 불러 앉고 일어나는 행동이 편안하지 못하여 편리함이 없어서 기력이 점차 쇠하고 식음이 감소해집니다. 눕고 일어나는 것이 편하지 않으며 점점 고통을 느끼게 됩니다. 본래 익힌 것을 싫어하며 모든 고뇌를 다 받습니다. 다른 어머니가 이 서응을 보면, 이 부인이 이제 오래지 않아 해산할 것을 아는 것과 같습니다. 보살마하살이 이미 선의 근본을 짓고 약간의 백천 모든 부처님을 공양하고 오래도록 이렇게 행하고 항상 진실한 선지식과 함께 하는 공덕을 얻었다면 보살마하살은 모든 공덕을 행하였으므로 곧 반야바라밀을 얻는 것입니다. 곧 받아 지니고 외우고 독송하고 이 안의 일을 수행하였다면 법에 머무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이 보살마하살은 마침내 다시 오래지 않아 아뇩다라삼야삼보의 수기를 받게 될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도다. 사리불이여, 그대가 이에 질문을 한 것은 모두 불사(佛事)이다.”
수보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매우 기이하고 특이합니다. 세존이시여, 보살이 응하는 바를 다 미리 알 수 있습니까?”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보살마하살이 아뇩다라삼야삼보를 일으키는 것은 중생을 이익되게 하고 일체의 하늘[天]과 사람을 편안하게 하기 위해서이며, 네 가지의 일[四事]로써 보살도를 지니고 행하기 위해서이다. 무엇이 네 가지인가? 첫째는 보시[施與]이고, 둘째는 인애(仁愛)이며, 셋째는 사람을 이롭게 하는 것[利人]이며, 넷째는 뜻이 같은 것[同義]이다. 다른 이에게 권하여 10선(善)을 행하게 하며, 스스로도 4선(禪)․4공정(空定)을 행하고 다른 이에게도 권하여 4선․4공정을 행하게 한다. 스스로 6바라밀을 행하고 다른 이에게도 6바라밀을 행하게 하며, 다른 이에게 반야바라밀로써 권하여 수다원도를 얻게 하되 자신은 안에서 행하지 않는다. 타인에게 권하여 나한․벽지불도를 행하게 하되 자신은 안에서 행하지 않아서 나한․벽지불의 증득함을 받지 않는다. 무량한 수의 억백천 보살들에게 권조하여 6바라밀을 행하게 하고, 스스로는 아유월치지를 경과하되 다른 이에게는 권하여 아유월치지에 머물게 한다. 스스로 불국토를 청정하게 하고 다른 이에게도 권하여 불국토를 청정하게 하며, 스스로 신통을 구족하고 다른 이에게도 신통을 닦게 하며, 스스로 다린니문을 청정하게 하고 다른 이에게도 권하여 다린니를 청정하게 한다. 자기도 변재를 구족하게 행하고 다른 이에게도 권하여 변재를 행하게 하며, 자기도 신상(身相)을 성취하고 다른 이에게도 권하여 신상을 이루게 한다. 자기도 동진지(童眞地)를 이루며, 다른 이에게도 권하여 정결행지(淨潔行地)를 닦게 해야 하며, 자기도 부처님의 10력을 얻고 다른 이에게도 권하여 10력을 행하게 한다. 스스로 살운야를 건립하고 다른 이에게도 권하여 살운야를 건립하게 하며, 스스로 모든 습서(習緖)를 여의고 다른 이에게도 권하여 습서를 여의게 하며, 스스로 법륜을 굴리고 다른 이에게도 권하여 법륜을 굴리게 해야 한다.”
수보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매우 기이하고 매우 특이합니다. 보살마하살이 중생을 위해서 널리 구족하게 공덕을 짓고 반야바라밀을 행하여 아뇩다라삼야삼보를 구한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생각하려면 마땅히 어떻게 구족해야 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 또한 5음에 늘어남이 있고 줄어듦이 있음을 보지 않아야 한다. 그러므로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 생각을 구족하는 것이다. 나아가 살운야에도 또한 늘어남이 있고 줄어듦이 있음을 보지 않아야 한다. 이것이 보살이 생각을 구족하게 얻는 것이다. 또한 수보리여, 반야바라밀을 행하는 보살은 또한 옳은 법도 보지 않아야 하고, 또한 그릇된 법도 보지 않아야 하며, 또한 과거․미래․현재의 악법과 선법도 보지 않아야 한다. 또한 수기 받는 것도 보지 않아야 하고 또한 받지 않는 것도 보지 않아야 하며, 또한 유위법도 보지 않아야 하고, 또한 무위법도 보지 않아야 하며, 또한 삼계도 보지 않아야 하며, 또한 6바라밀도 보지 않아야 한다. 나아가 살운야도 또한 보는 바가 없어야 한다. 그러므로 보살은 반야바라밀을 구족하게 얻는 생각을 가지는 것이다. 왜냐하면 모든 법과 법의 상법(相法)은 무너지지 않는 공이어서 견고하여 침광(侵誑)의 모양이 없기 때문이며, 법은 또한 생하는 것도 없고, 수(壽)도 없으며, 명(命)도 없기 때문이다.”
수보리가 아뢰었다.
“세존께서 말씀하신 것은 불가사의합니다.”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5음이 불가사의하기 때문에 설한 바도 불가사의하며, 6바라밀 나아가 살운야가 불가사의하므로 설한 바도 불가사의한 것이다. 수보리여, 만약 보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 5음이 불가사의한 것을 알면 곧 반야바라밀과 나아가 살운야가 구족한 줄을 아는 것이며, 불가사의한 것을 알면 반야바라밀을 구족하게 아는 것이다.”
수보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깊은 반야바라밀은 누가 마땅히 신해(信解)할 수 있겠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보살이 오래도록 6바라밀을 많이 행하고 모든 선의 근본을 짓고 이미 과거의 무량한 수의 모든 부처님을 공양하였고 이미 진실한 선지식과 함께 하고 따랐다면, 이러한 보살들은 이에 깊은 반야바라밀을 신해할 수 있는 것이다.”
수보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이 보살이 6바라밀을 행하고 모든 선의 근본을 지은 이래로 얼마나 많은 때에 약간의 부처님과 진실한 선지식을 공양하였습니까?”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보살마하살은 5음의 명칭이 있지도 않으며 5음을 분별하지도 않는다. 또한 생각으로써 이름을 붙여 5음을 분별하지 않으며, 이름을 붙여 5음에 실체가 있다고 분별하지 않으며, 나아가 모든 6정(情)과 삼계를 분별하지 않는다. 6바라밀․내외공․유무공․37품․부처님의 18법․도혜(道慧)․살운야도 이름을 붙여 분별하지 않으며, 또한 생각으로써 이름을 붙여 허(虛)가 있고 실(實)이 있다고 분별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수보리여, 5음은 불가사의하기 때문이며, 나아가 살운야도 또한 불가사의하기 때문이다. 이런 까닭으로 보살마하살은 오래도록 6바라밀을 행하였으며, 모든 선의 근본을 많이 지었고 진실한 선지식과 함께 한다.”
수보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반야바라밀은 매우 깊은 것입니다. 5음이 매우 깊으므로 반야바라밀이 매우 깊은 것입니다. 살운야가 매우 깊으므로 반야바라밀은 매우 깊은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반야바라밀은 진보(珍寶)가 쌓여 모인 것입니다. 이 수다원과 나한․벽지불의 보배가 쌓여서 모인 것이며, 또한 아뇩다라삼야삼보의 보배가 쌓여서 모인 것이며, 또한 10력․4무소외․4등․4무애혜․4공정․5신통․37품․부처님의 18법과 살운야, 나아가 모든 법보가 쌓여서 모인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반야바라밀은 청정한 것이 쌓여 모인 것입니다. 5음이 청정하므로 나아가 살운야도 청정한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깊은 반야바라밀은 매우 기이합니다. 그런데 이 가운데는 어떤 어려움이 머물 수 있겠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이와 같은 어려움이 있다. 선남자․선여인이 이 반야바라밀을 쓰려고 하면 마땅히 속히 써야 한다. 수지하려고 하거나 외우려고 하거나 지키고 행하려고 하면 또한 마땅히 속히 해야 한다. 왜냐하면 아직 지니고 서사하고 행하지 않은 잠깐 동안에도 능히 어려움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선남자․선여인이 만약 능히 한 달 동안 써서 이루려고 하거나, 두 달․세 달․네 달․다섯 달․일 년 동안에 이르려고 한다면 마땅히 쓰고 지니고 외우고 학습해야 한다. 만약 한 달 동안 쓰고 이루어 수지하고 배우려고 한다면 또한 마땅히 마쳐야 한다. 만약 일 년에 이르러도 또한 마땅히 마쳐야 한다. 왜냐하면 흔히 진귀한 보배 가운데는 모든 인연이 일어나 어려움이 있기 때문이다.”
수보리가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이 깊은 반야바라밀을 서사하고 배우고 외우고 이 안의 일을 생각하고 수행하는 자가 있다면 모든 마군 파순이 항상 끊으려 생각하고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바로 파순으로 하여금 끊게 하려고 해도 단절시킬 수 없으며, 지키고 행하며 서사하고 배우지 않게 할 수 없는 것이다.”
사리불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이것은 어느 누구의 은혜로 마군 파순이 깊은 반야바라밀을 배우는 것을 단절시킬 수 없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이것은 부처님의 일이다. 마군 파순으로 하여금 능히 단절시키지 못하게 하며, 또한 다시 시방 모든 부처님의 은혜로 이 보살을 옹호하므로 반야바라밀을 받아 지니는 것을 마군 파순이 능히 단절시키지 못한다. 왜 그런가? 사리불이여, 보살이 반야바라밀을 받아 지니면 부처님께서 호지(護持)하셔서 천마(天魔) 파순도 끝내 능히 단절시키지 못하고 어려움에 머물게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사리불이여, 모든 보살이 반야바라밀을 서사하여 지니고 배우고 생각하고 외우면 모든 부처님의 법이 마땅히 이를 옹호하여 마군 파순이 능히 중도에서 훼방하지 못하게 하므로 어려움에 머물게 되는 것이다. 사리불이여, 이 선남자․선여인은 마땅히 ‘내가 지금 반야바라밀을 서사하여 가지고 수학하는 것은 모두 다 부처님의 일이다’라고 생각해야 한다.”
사리불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만약 선남자․선여인이 반야바라밀을 서사하여 지니고 배운다면 모두 부처님의 은혜로 호지를 받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이와 같고 이와 같은 것이다.”
사리불이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시방 현재의 모든 여래․무소착․등정각께서는 참으로 이 선남자․선여인이 반야바라밀을 서사하여 지니고 배우고 생각하고 외우는 것을 아십니까? 참으로 불안(佛眼)을 가지고 볼 수 있으며, 참으로 알 수 있으며 참으로 볼 수 있습니까?”
부처님께서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반야바라밀을 서사하여 지니고 배우고 외우고 행하는 모든 사람을 시방의 모든 여래․무소착․등정각께서는 이미 보셨고 이미 아신다. 모든 선남자․선여인이 보살도를 행하고 반야바라밀을 서사하여 지니고 배우고 외우고 행한다면, 이 사람은 이제 오래지 않아 아뇩다라삼야삼보에 가까워질 것임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사리불이여, 만약 다시 선남자․선여인이 보살도를 행하고, 반야바라밀을 서사하여 지니고 수학하고 외우며 이 안의 일을 익히고 행하며 즐거운 마음으로 반야바라밀을 공양하되, 이름난 꽃․도향(擣香)․택향(澤香)․잡향(雜香)․비단 화개(花蓋)․번당(幡幢)으로 공양을 드리면 모든 부처님께서 천안(天眼)으로 이 선남자․선여인을 다 보신다. 이 선남자․선여인이 반야바라밀을 서사하여 지니고 받들어 행하고 배우면 가장 큰 복을 얻을 것이며, 대공덕을 얻을 것이며, 가장 뛰어난 행을 얻을 것이다. 선남자․선여인이 선의 근본의 공덕을 가지면 끝내 악취에 떨어지지 않고 아유월치지에 이르기까지 끝내 모든 부처님을 여의지 않을 것이며, 6바라밀시(波羅蜜時)에 끝내 내외공과 유무공시를 여의지 않을 것이며, 아뇩다라삼야삼보에 이르기까지 끝내 37품과 부처님의 18법시를 여의지 않을 것이다.
사리불이여, 여래가 가신 후에 이 반야바라밀은 항상 남방에 있으며, 남방의 모든 비구․비구니․우바새․우바이가 또한 마땅히 깊은 반야바라밀을 수학하고 서사하여 지니고 이 공덕을 지니면 끝내 악취에 이르지 않고, 천상인(天上人) 가운데의 복을 받는다. 6바라밀을 받들어 행함으로 6바라밀을 밝히고는 마땅히 다시 모든 부처님을 공양하고 받들어 섬기며 받들어 섬긴 후에는 마땅히 삼승으로써 해탈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사리불이여, 반야바라밀이 있는 방면이나 이르는 곳마다 네 무리 학사(學士)들은 또한 마땅히 깊은 반야바라밀을 받아 지니고 쓰고 외워야 하며, 이 공덕을 가지면 악취에 이르지 않고 천상인 가운데의 복을 받는다. 또한 마땅히 다시 6바라밀을 받들어 행하여 6바라밀을 밝혀야 하며, 마땅히 모든 부처님을 받들어 섬기며 공양하고, 받들어 섬긴 후에는 삼승법으로써 제도하여 해탈을 얻게 해야 한다.
사리불이여, 이 반야바라밀은 마땅히 북으로 전하여 가니, 북방의 네 무리들도 또한 마땅히 다시 깊은 반야바라밀을 쓰고 외우며 수행해야 하며, 이 공덕을 가지게 되면 3악취에 태어나지 않고 2도(道)의 복을 받는다. 또한 마땅히 6바라밀을 받들어 섬기며, 또한 마땅히 모든 부처님 세존을 받들어 섬긴다. 다시 삼승으로써 해탈을 얻게 해야 한다. 사리불이여, 깊은 반야바라밀은 이때에 마땅히 불사를 행할 것이다. 왜냐하면 사리불이여, 내가 니원한 후에 법이 다하려고 할 때에 나는 이미 미리 이 선남자․선여인이 깊은 반야바라밀을 받아 지닌 것을 알며, 나는 다시 이 선남자․선여인이 뜻을 다하여 반야바라밀을 공양하되, 이름난 향과 비단 화개로써 공양할 것을 안다. 이 공덕을 지니면 3악취에 떨어지지 않고, 2지(地)의 선한 복을 받을 수 있다. 6바라밀을 행하고 모든 부처님을 공양하며, 삼승법으로써 해탈을 얻는다. 왜냐하면 사리불이여, 여래께서는 이 무리의 사람들을 이미 보았으며, 이미 이 사람들을 칭찬하셨기 때문이다. 나는 이 사람이 있는 곳을 보며, 시방 현재의 모든 부처님께서도 또한 칭찬하며 또한 이 사람을 보면 또한 이 사람의 자리를 마련해 둔다.”
사리불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이 반야바라밀은 후에 응당 널리 북방에 있겠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대가 말한 바와 같다. 이 후세에 선남자․선여인이 반야바라밀을 지니고 배우고 서사하여 가지면 이 사람은 오래도록 대승의 뜻을 일으켰고 다시 약간의 모든 부처님을 공양하여 모든 선의 근본을 지었음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사리불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후에 북방면에 마땅히 몇 사람의 선남자․선여인이 보살도를 행하고 반야바라밀을 수지하여 외우고 해설하겠습니까?”
부처님께서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후에 북방시대에 비록 선남자․선여인은 많겠으나 반야바라밀을 받아 지녀서 대승을 이루는 자는 적을 것이다. 사리불이여, 이 선남자․선여인은 보살도를 행하였으므로 깊은 반야바라밀을 설하는 것을 들어도 어려워하지 않고, 싫어하지도 않고, 두려워하며 떨지도 않는다. 왜냐하면 선남자․선여인은 이미 부처님을 뵈었으며, 이미 모든 부처님으로부터 깊은 법을 들었기 때문이다. 어째서인가? 이 선남자․선여인은 이미 6바라밀을 구족했으며, 이미 내공․외공․유무공을 구족했으며, 이미 부처님의 18법과 37품을 구족한 것이다. 이 선남자․선여인은 모든 공덕을 많이 지어서 아뇩다라삼야삼보를 일으켰는데 일체 중생들을 위했기 때문이다.
사리불이여, 나는 이 선남자․선여인을 위하여 살운야의 지혜를 설하며, 과거의 모든 여래․무소착․등정각께서도 또한 다시 살운야의 지혜에 상응해서 설할 것이다. 모든 아뇩다라삼야삼보를 구하는 자는 다 생․노․병․사가 있기 때문에 또한 다시 그들을 위해서 아뇩다라삼야삼보와 모든 지혜의 일을 설할 것이다. 이 선남자․선여인은 어릴 때부터 죽을 때까지 아뇩다라삼야삼보를 구하니, 마(魔)와 마천(魔天)도 끝내 능히 무너뜨리지 못하였는데 하물며 그 나머지 악한 행으로 깊은 반야바라밀을 비방할 수 있겠느냐? 사리불이여, 이 선남자․선여인이 깊은 반야바라밀을 들으면 곧 가장 미묘한 환희를 얻을 것이며, 많은 사람에게 아뇩다라삼야삼보를 세우게 할 것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보살이 되었을 때에 또한 서원을 세우기를 ‘우리들은 또한 마땅히 무량한 수의 중생들을 권하여 보살도를 행하게 하며, 우리들은 또한 마땅히 아뇩다라삼야삼보의 동하지 않는 수기[不動轉記]를 받게 하리라’고 하였다. 만약 어떤 보살이 뜻을 일으키면 나는 대신 환희할 것이며, 모든 사람에게 권하여 아뇩다라삼야삼보를 일으키게 한다면 나는 대신 환희할 것이다. 선남자․선여인이 반야바라밀을 행하는 것은 이미 과거에 모든 부처님 앞에서 서원을 세웠기 때문이다. 이제 다시 내가 중생 앞에서 서원하기를 ‘나는 마땅히 중생들을 이익되게 하고 안온하게 할 것이며, 나는 마땅히 일체 중생들을 권조하여 아뇩다라삼야삼보의 뜻에 서서 움직이지 않게 할 것이다’라고 하였다. 왜냐하면 과거의 모든 부처님께서도 또한 다시 모든 뜻을 일으킨 보살을 대신하여 이 서원을 세우는 것을 대신 환희할 것이다.
사리불이여, 내가 환희를 대신한다는 것은 선남자․선여인이 또한 다시 일체를 편안하게 하기 위해서이며, 중생에게 권조하여 아뇩다라삼야삼보에 서게 하는 것이다. 6쇠(衰)를 여의어서 깨끗한 묘행(妙行)을 얻는다면 이미 스스로 청정한 것이며, 다시 청정한 보시를 행한다. 깨끗하고 미묘한 보시를 하였으면, 곧 청정하고 미묘한 공덕의 복을 받는다. 이미 청정하고 미묘한 복을 받았으면, 다시 중생을 위하므로 내외의 소유를 분별해서 중생으로 하여금 깨끗하고 미묘한 복을 얻게 해야 한다. 이 공덕을 수지했으면 두루 시방의 모든 불국토에 이르러 반야바라밀을 설하는 곳에서 듣게 됨을 얻을 것이다. 들은 후에는 또한 다시 저 중생들을 권조하여 일으켜 아뇩다라삼야삼보의 뜻을 세우게 해야 한다.”
사리불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매우 기이하고 특이합니다. 세존이시여, 여래․무소착․등정각께서는 과거․미래․현재의 법에 대하여 알지 못하는 바가 없으며, 중생의 행하는 일에 대해서도 알지 못하는 것이 없습니다. 이에 다시 모든 미래․과거․현재의 부처님 일과 여러 스님의 일도 알 것입니다. 혹은 선남자․선여인이 6바라밀을 얻어 외우고 수지하였는데, 혹은 뜻에 진퇴가 있으면 곧 능히 6바라밀을 배우지 못하는 것입니다. 만약 선남자․선여인이 6바라밀의 뜻을 구한다면 진퇴가 없어야 합니다. 정진하여 게으르지 않으면 곧 능히 일시에 6바라밀을 구족할 것입니다.”
사리불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선남자․선여인이 이와 같이 행하였다면 곧 깊은 경을 얻은 것이며, 반야바라밀에 상응하게 되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이와 같이 깊은 경을 얻은 자는 반야바라밀에 상응하게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능히 권조(勸助)하여 중생을 안립하여 아뇩다라삼야삼보를 일으키게 하였기 때문이다. 사리불이여, 이 선남자․선여인은 6바라밀에서 생․노병․사를 버리지 않으며, 정진하여 게으르지 않는 것이 마치 반야바라밀의 가르침과 같으며, 불국토를 청정하게 하며 중생을 교화하고 아뇩다라삼야삼보의 뜻을 세우게 하여 끝내 게으르지 않게 해야 한다.”
47. 각마품(覺魔品)
수보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이 선남자․선여인은 아뇩다라삼야삼보를 일으키고 6바라밀을 행하고 불국토를 섭취(攝取)하여 중생을 교화하는 덕을 찬탄하여 설했습니다. 이 선남자․선여인은 어떻게 어려움에 머무는 것을 단절시키고 나아갈 수 있습니까?”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변재가 즉시 나오지 않으면 마군의 일임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수보리가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어떻게 보살의 변재가 즉시 나오지 않으면 마군의 일인 줄 아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보살은 6바라밀을 행하며, 6바라밀을 오래오래 구족하면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보살이 변재가 즉시 나오지 못한다면 마군의 일임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수보리여, 보살의 변재가 갑자기 일어나도 또한 마군의 일이다.
“세존이시여, 어째서 변재가 갑자기 일어나도 또한 마군의 일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이 보살이 6바라밀을 행할 때 갑자기 변사(辯事)가 일어난다. 왜냐하면 배움에는 본말(本末)이 없기 때문이다. 변재가 크게 일어나도 마침내 구경(究竟)이 아니므로 마군의 일임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보살이 이 경을 쓸 때 형상이 웃게 되고 뜻이 어지러워져 안정되지 않고 온갖 뜻이 화합하지 못하면, 이와 같은 보살의 일은 마군의 일인 것이다. 이 경을 쓸 때 뜻으로 ‘나는 이 경 가운데서 자미(滋味)를 얻지 못했으니 곧 버려야 한다’고 생각하면, 이는 마군의 일임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수보리여, 이 경을 설할 때 만약 수지하여 아만을 부리고 꾸미는 말[綺語]로 타인을 속인다면 마군의 일이다. 이 경을 외우고 수지하고 배울 때 각각 스스로 아만을 부리고 점점 그런 모양으로 비웃으면 보살은 이것이 마군의 일임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수보리여, 이 경을 받을 때 각각 뜻이 어지럽고 뜻이 화합하여 같지 않으면 이것이 보살의 마군의 일이 됨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수보리가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어째서 경 가운데서 자미를 얻지 못하여 문득 버리면 마땅히 마군의 일인 줄 깨닫게 되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이러한 무리의 보살은 일찍이 6바라밀을 익히고 행하지 않았으며, 반야바라밀을 듣지 못하여 스스로 ‘나는 6바라밀에서 수기가 없었다. 그러므로 반야바라밀을 들어도 희락(喜樂)하여 기뻐하지 않고 곧 버리는 것이다’라고 생각한다면 이것이 보살의 마군의 일임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세존이시여, 어째서 보살은 ‘나는 수기가 없으므로 즐거워하지 않고 곧 버린다’고 말하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아직 보살도를 얻지 못한 자는 끝내 아뇩다라삼야삼보의 수기를 얻지 못한다. 그러므로 ‘나는 6바라밀에서 수기가 없었으므로 곧 버린다’고 말하는 것이 보살의 마군의 일임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만약 어떤 보살이 속으로 ‘나는 향리(鄕里)에서 반야바라밀을 듣지 못했으며, 태어나는 곳마다 또한 이것을 듣지 못하였다’고 생각하며 다시 버리고 다시 반야바라밀을 배우려고 하지 않으면 뜻을 돌리면 일념(一念)이 즉시 1겁을 뒤로 가게 하며 그 뜻에 다소의 수(數)를 굴림에 따라서 응당 다시 이만큼의 겁이 흘러간다. 마땅히 다시 후에 다른 경을 배우면 살운야에 머물지 못하여 살운야에 이르지 못한다. 이러한 무리의 보살들은 그 뿌리는 버리면서도 가지에만 반연하는 것과 같으니, 이것이 보살의 마군의 일임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수보리가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어떤 경이 살운야 가운데서 나오지 않은 것이며, 다른 경을 외우고 배우려고 하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성문이 상응하는 바인 37품과 3해탈문에 선남자․선여인이 이 가운데 머물고 수다원의 도와 사다함․아나함․아라한의 도를 취하여 구하며 살운야를 취하지 않으면 자연히 스스로 장애를 짓는 것이다. 수보리여, 이것이 뿌리는 버리고 가지에만 반연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 보살은 또한 반야바라밀 가운데서 출생하며, 반야바라밀은 또한 도법․속법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보살이 반야바라밀을 배울 때 또한 마땅히 도법을 배워야 하며, 또한 마땅히 속법을 배워야 한다. 비유하면 어떤 개가 대가(大家)에서 주는 음식을 즐거이 먹지 않고 다른 사람의 음식을 먹는 것과 같다. 수보리여, 미래에 보살도를 배우는 자가 깊은 반야바라밀을 얻었는데 다시 버리면 가지에만 반연하는 것이다. 수보리여, 이것이 보살의 마군의 일임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또한 수보리여, 비유하면 어떤 사람이 코끼리를 보려고 하는데 코끼리를 얻으면 버리고 코끼리의 자취만 구하는 것과 같다. 어떻게 생각하느냐? 이 보살은 총명한 것이냐?”
수보리가 아뢰었다.
“총명하지 못합니다.”
“미래에 보살도를 행하는 자도 깊은 반야바라밀을 얻었지만 그것을 버리고 도리어 성문․벽지불의 경법을 배운다. 어떻게 생각하느냐? 이 보살은 총명한 것이냐?”
수보리가 아뢰었다.
“총명하지 못합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이 보살은 마땅히 이것이 마군의 일인 줄을 깨달아야 한다. 수보리여, 비유하면 어떤 사람이 큰 바다를 보려고 하면서 이미 본 것을 버리고 도리어 소 발자국에 고인 물을 보고, 곧 ‘바다의 크고 작음은 이것보다 더 나은 것인가?’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어떻게 생각하느냐? 이 사람은 총명한 것이냐?”
수보리가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총명하지 못합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미래에 보살도를 배우는 자가 깊은 반야바라밀을 얻었지만 곧 버리고 반대로 성문․벽지불의 경법(經法)을 배우면서 이 안에서 외우고 수학한다. 수보리여, 이러한 무리의 보살은 마땅히 마군의 일인 줄을 깨달아야 한다. 수보리여, 비유하면 어떤 공장(工匠)이 일월(日月) 궁전[殿舍]의 형상을 살펴보고 측량하여 제석의 궁전을 세우려고 하는 것과 같다. 어떻게 생각하느냐? 저 공인(工人)이 비록 재주가 있다고 하지만 참으로 능히 지을 수 있겠느냐?”
수보리가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이 일은 매우 어렵습니다. 이것은 범부나 세상의 어리석은 선비로서는 능히 지을 수 없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미래세에 보살도를 행하는 사람이 깊은 반야바라밀을 배우려고 하면서 중도에서 버리고 다시 성문․벽지불의 경법을 배우는 가운데 살운야와 살운야의 일을 구족하려고 한다면 어떻게 생각하느냐? 이 사람은 참으로 능히 살운야를 이룰 수 있겠느냐?”
수보리가 아뢰었다.
“이룰 수 없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이 보살은 마땅히 마군의 일인 줄을 깨달아야 한다. 수보리여, 비유하면 어떤 사람이 전륜성왕을 보려고 하여 본 후에는 반대로 소왕(小王)을 자세히 보고 ‘성왕의 신체와 이것은 어떻게 다른가?’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이 사람은 총명한 것이냐?”
수보리가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총명하지 못합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미래에 어떤 소덕(小德)의 사람이 보살도를 배우려고 하여 깊은 반야바라밀을 듣고 배우고 수행하는 중도에 버리고 다시 나한․벽지불의 경법을 배우면서 ‘나는 마땅히 이 가운데서 살운야를 구족할 것이다’라고 말한다면, 어떻게 생각하느냐? 이 보살은 총명한 것이냐?”
수보리가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총명하지 못합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이것이 보살의 마군의 일이 되는 것이다. 비유하면 굶주린 사람이 백 가지 맛[百味]의 음식을 얻고서 다시 60가지 맛의 음식을 얻으려는 생각을 하고 백 가지 맛을 버리고 60가지 맛의 음식을 먹는다면, 어떻게 생각하느냐? 이것은 총명한 것이냐?”
수보리가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총명하지 못합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미래에 보살도를 배우는 사람이 깊은 반야바라밀을 얻었지만 버리고 나서 다시 성문․벽지불의 경법 가운데서 살운야를 구한다면 이 보살은 총명한 것이냐?”
수보리가 아뢰었다.
“총명하지 못합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이것이 보살의 마군의 일이 되는 것이다. 비유하면 사대부[士夫]가 값으로 헤아릴 수 없는 마니(摩尼) 보주를 얻고 나서 반대로 수정(水精)에 비교한다면 어떻게 생각하느냐? 이것은 총명한 것이냐?”
수보리가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총명하지 못합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미래에 보살도를 배우는 자가 깊은 반야바라밀을 얻고 나서 다시 버리고 반대로 성문․벽지불의 경법과 비교하고 성문․벽지불의 경법 가운데서 살운야를 얻으려고 한다면 참으로 총명한 것이냐?”
수보리가 아뢰었다.
“총명하지 못합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이것이 보살의 마군의 일이 되는 것이다. 또한 수보리여, 만약 선남자․선여인이 반야바라밀을 서사한 후 안의 다른 인연이 일어나 곧 쓸 수 없게 되거나, 혹은 다시 색․성․향․미․세활․법으로 인한 어려움에 머물거나 혹은 다시 단바라밀에 어려움이 머물거나 시바라밀에 어려움이 머물거나 찬제바라밀에 어려움이 머물거나 유체바라밀에 어려움이 머물거나 선바라밀에 어려움이 머물기도 한다. 나아가 아뇩다라삼야삼보에도 모두 어려움이 머무는 것이다. 왜냐하면 수보리여, 반야바라밀은 이 어려움이 머무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불가사의한 것은 또한 선택하는 것이 아니며, 생하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고, 집착하지도 않고, 단절되지도 않으며 걸림도 없으며, 보는 것도 아니며, 행하는 것도 아니며 의지함도 아니다. 왜냐하면 수보리여, 반야바라밀은 상법(象法)이 없기 때문이다. 만약 보살이 이 경을 쓸 때 이러한 종류의 어려움에 머문다고 한다면 이것은 마군의 일임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수보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반야바라밀은 쓸 수 있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아니다. 왜냐하면 반야바라밀은 실제로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단바라밀에 이르기까지도 실은 볼 수 없으며, 나아가 살운야에 이르기까지도 또한 볼 수 없으며 모든 소유도 모두 볼 수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소유가 없기 때문이다. 소유가 없다는 것은 쓸 것이 없다는 것이다. 수보리여, 선남자․선여인이 보살도를 행할 때 ‘이 깊은 반야바라밀은 소유가 없는 것이다’라고 생각하면 이것이 보살의 마군의 일이다.”
수보리가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모든 보살도를 행하는 자는 깊은 반야바라밀경의 글자를 쓰고서 이 글자 안에 들어가서 곧 ‘나는 반야바라밀을 서사하였다’고 말합니다. 세존이시여, 이 6바라밀은 문자법이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6바라밀은 문자가 없으며, 5음도 또한 문자가 없기 때문입니다. 나아가 살운야도 또한 문자가 없는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선남자․선여인이 보살도를 행하는데 6바라밀에서 나아가 일체 지혜에 이르기까지 문자 없음을 지어서 반야바라밀에 들어가는 것도 또한 이 보살의 마군의 일입니다.”
“수보리여, 선남자․선여인이 보살도를 행하고 반야바라밀을 쓸 때에 만약 군(郡)․국(國)․현(縣)․구(丘)․모여 있는 촌락에 대하여 상념을 일으키거나 혹은 부모를 존경하는 소리를 듣거나 부모를 생각하거나 형제 자매를 생각하거나, 병적(兵賊)과 음욕의 일을 생각하거나 이러한 생각을 지으면서 다시 그 밖의 생각을 낸다면 마왕 파순이 다시 그 생각을 더하게 하여 어려움에 머물게 되고 중단하게 하고 쓰지 못하게 한다. 수보리여, 이것이 보살의 마군의 일이 되는 것이다. 만약 선남자․선여인이 보살도를 행하고 반야바라밀을 서사하여 지닐 때 의복․재물․음식․침구․병을 낫게 하는 의약으로 공양받으면 ‘나는 반야바라밀을 썼으므로 공양을 받을 수 있다’고 말하고 그것을 좋아한다면, 마땅히 마군의 일인 줄 깨달아야 한다. 수보리여, 이 경을 쓸 때 마왕 파순이 보살 앞에서 갖가지 다른 깊은 경의 일을 설한다면, 보살은 구화구사라가 있어서 마군의 설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 경은 능히 사람으로 하여금 살운야에 이르게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수보리여, 만약 이 구화구사라의 뜻이 없는 보살이 깊은 반야바라밀을 들으면, 곧 버리려고 할 것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널리 모든 보살을 위해서 구화구사라의 일을 설하였다. 구화구사라의 일을 얻으려고 하면 마땅히 깊은 반야바라밀 중에서 찾아야 한다. 수보리여, 선남자․선여인이 보살승을 구하는데 깊은 반야바라밀을 버리고 성문․벽지불의 경법 가운데서 구화구사라를 구하려고 한다면 수보리여, 이것이 보살의 마군의 일임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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