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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문 교양(사서삼경, 제자백가) 135

심경心經 심경 번역, 심경 해설, 심경 찬, 심경 서문

序 儒者의 定規敎科書로 치는 書를 들추자면 四書와 三經이요, 그 다음으로《近思錄》과《心經》을 드는데,《近思錄》은 朱子와 呂東萊가 함께 編輯한 冊이고,《心經》은 宋의 理宗朝人 眞西山의 所編이다. 西山의 名은 德秀이고, 字는 景元이며, 建州人으로 諡號가 文忠公이다. 本姓은 愼인데 宋孝宗의 諱를 避하여 眞으로 改姓을 했다고 하며, 學德이 높아 朝野에 聲望이 드러났다. 聖賢의 格言 至論을 摭取하여 本《心經》一篇을 만들었으니,《書經》에 舜이 禹에게 일러준 人心惟危, 道心惟微, 惟精惟一, 允執厥中을 起頭로 하여 經傳 및 宋朝 賢人들의 말을 引錄하고, 끝에 가서 朱子의 尊德性銘으로 結末을 하고 있다. 이 編을 一言으로 要約해서 말하자면 ‘活心의 經’으로서 利欲과 妄念과 邪思를 다스리고 本心의 天眞함을 되찾고 涵養 致..

충무공전서 李忠武公全書 이순신 충무공문집 이순신 문집 이순신장군 이순신장군 글

충무공전서_16권 목록_0001a 李忠武公全書續編卷之十六目錄 附錄 同義錄 충무공전서_16권 목록_0001b 李忠武公全書續編卷之十六目錄 충무공전서_16권 본문_0001a 李忠武公全書續編卷之十六 附錄 同義錄 柳珩字士溫號石潭晉州人也祖判書辰仝父府使溶嘉靖丙寅生性度 骯髒習好弓馬不喜治經治産早孤不逮庭訓母夫人泣而責人果以孝 心特異仍從命就學奄成篤行士也旣而嘆曰親老在堂苟得祿養文武 何擇朝射暮讀間論古今奇功偉績感慨激烈常有大志矣己丑丁母憂 廬墓三年哀與禮盡服闋翌年卽壬辰也倡義使金千鎰起兵駐江華公 仗劒從之癸巳詣 行在所白衣勤 王拜宣傳官出使李統制陣李公 一見心許矣甲午武科復拜參宣一日 宣廟召試入直武臣見珩相貌 目屬之一發正中鵠 上召問家世賜馬諭之曰勉力國事母忝乃祖乃 父珩感激泣曰吾以世臣義固效忠況當亂世猥承 恩敎誓以馬革裏 충무공전서_16권 본문_0001b 尸遂背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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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공전서_15권 목록_0001a 李忠武公全書續編卷之十五目錄 綸音 正廟御製 賜祭文 觀音浦 賜祭文 忠烈祠 賜祭文 墓所 賜祭文 詩 贈別朴三谷慶新嶺伯遞歸[二] 陣中吟[三] 和陳都督璘韻[二] 陳都督次[二] 無題[二] 충무공전서_15권 목록_0001b 書 與相三谷[四] 與玄監役健[三] 與玄正郞[二] 答玄持平德升 雜著 約束軍中辭 題興陽縣監崔希亮書目 祭死亡軍卒文 附錄 次忠武李將軍閑山島詩韻[十七] 足成一絶 충무공전서_15권 목록_0002a 忠武李公 李忠武公墓 弔李忠武公遺廟 贈上相仍神道碑 親製下[二] 忠武李公 統制營患烈祠[二] 制勝堂[二] 雙劒銘 祭墓所文 祭忠烈祠文 江漢樓上樑文 忠武公家乘續編序 충무공전서_15권 목록_0002b 祠院錄 名將傳 觀音浦遺墟碑 統制營忠烈祠重修記 戰勝臺碑閣重修記 制勝堂遺墟碑 露梁忠烈祠守護記 紀實..

坡平尹氏淵源工房 坡平尹氏淵源書 파평윤씨연원서 파평윤씨 윤씨연원서

009 坡平尹氏淵源工房 우리나라가 地方三千里에 不過하는 小國이건만 禮義東邦이라는 아름다운 이름을 들어왔었고 우리坡平尹氏가 人口百萬에 不過하는 稀姓이건만 李朝五百年동안에 軍隊에도 아니 가고 四月雜役도 아니하던 자긍할만한 氏族이던 것이 그 原因은 先祖文肅公의 蔭德이었었다. 우리나라에서 爲國功蹟이 높으신 분들을 高句麗 때 乙支文德 新羅때 金與信 高麗때 姜蒼 李朝때 李舜臣을 屈指하지만 그 분들은 우리나라를 侵犯해 오는 敵軍을 물리쳐서 國土를 安保하신 保國功臣이셨고 우리先祖 文肅公께서는 女眞國을 소탕하고 滿洲까지 國土를 확장하신 拓地功臣이심으로 高麗朝의 功臣이오 千年前 일이건만 李朝에 와서도 公의 빗蹟을 찬양하기 爲해서 文宗 成宗 宣祖 肅宗 英祖 다섯임금께서 傳敎을 내 려서 尹文肅公의 子孫들은 猶派와 庶派를 가리..

간재집 추담별집추담집 원문

秋潭別集 李斯文 學純。却金自盡 題金博士 根培 行狀後 奉鎭國妻宜人沈氏。早寡有卓行。夷餽之銀。却不受。見迫自縊死。 宋心石 秉珣。被日酋授以講師僞帖。不受而自盡。 秋潭別集目錄 秋潭別集券之一 疏 因變亂疏 乙巳十一月七日 伏以自古帝王。維持國家。遭遇變亂。莫不以綱常爲本。夫綱常者。天地之棟樑。人民之質幹。故綱常立。則國家安。皇室尊。綱常壞。則國家危。皇室隳。以近日之變觀之。可以視諸掌矣。彼日虜之於我。前後有萬世必報之讐。而國綱不立。兵力不振。縱未及燬其都而滅其種矣。然 君臣上下。何嘗一刻而忘諸心哉。况今虜使所請。直是臣妾我也。猶謂之平和永遠。 皇室尊嚴。此雖三尺童子。亦知其紿我耳。臣愚以爲棄吾禮義之正。而藉彼讐敵之力。則平和決不可永遠。 皇室決不可尊嚴。此 陛下所以再三峻拒。而至謂寧殉 宗社。決不認許者也。於乎偉哉。此實天下古今直上直下之正理也。遠近士民之聞者。莫不奮氣鼔勇。以爲..

사자단종생四字斷終生, 역술, 사주, 사자평, 운명감정, 사주팔자, 육십갑자

사주팔자, 생년월일을 육효에 기반하여 육십갑자로 변환하고, 변화에 따라서 간결한 글자로 운명을 판별한 책이다. 甲甲 (震) 天貴星 甲子 快風快雨 (解) 命運亨通,並得貴人相助。 甲寅 披風對月 (解) 先逆後順,老來漸入佳境。 金鶴星 甲辰 叢林采新 (解) 生長富貴之家,結果平平。 甲午 牛眠荒蕪 (解) 才大力大,惜乎孤立無助。 金鸞星 甲申 石皂遇雨 (解) 立誌堅定,終久不致窮困。 甲戌 月出樓臺 (解) 清高自在,一生無憂無慮。 甲乙(恒) 紫氣星 乙丑 楊花化萍(解) 根基雖薄,幸有好人相逢。 己卯 病龍行雨(解) 久處厄境,終有升騰之日。 龍高星 乙巳 緣木求魚(解) 雖勞,一無所獲。 乙未 披沙取金(解) 一生辛苦,所得甚微。 天破星 乙酉 破扇搖秋(解) 作事無恒,動輒被人輕棄。 乙亥 金畔堆石(解) 屢敗屢興,到底不致破家。 甲丙(豐) 天滯星 丙..

성적전도聖迹全圖, 공자의 일생을 그림으로 표현한 책.

성적전도聖迹全圖는 풀이하면, 성인의 행적으로 그림으로 모두 표현한 책이란 뜻이다. 이 책은 춘추전국시대의 공자의 탄생으로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전 과정을 그림으로 표현한 책이다. 매우 상세히 기록이 되어있고, 공자가어와 논어의 내용을 연대기에 따라 편집해 놓았다.

皇淸職貢圖, 황청직공도, 직공도, 조선시대 세계인의 패션은? 옛 사람들의 의복과 풍속, 직공도 원문

[000-2a] 累洽重熙四海春 皇淸職貢萬方均書文車 軌誰能外方趾圓顱莫不 親那許防風仍後至早聞 干吕已咸賓塗山玉帛千 秋述商室共球百祿臻詎 是索疆恢此日亦惟 謨烈賴 前人唐家右相堪依例畫院名流命寫眞西鰈東鶼覲 王會南蠻北狄秉元辰丹靑非爲誇聲敎保泰承庥慎 拊循 乾隆辛巳秋日 [000-1a] 乾隆十六年六月初一日大學士忠勇公臣/傅恒 奉 上諭我朝統一區宇内外苗夷輸誠向化其衣冠狀貌 各有不同著沿邉各督撫於所屬苗猺黎獞以及外 夷畨衆仿其服飾繪圖送軍機處彚齊呈覽以昭王 會之盛各該督撫於接壤處俟公務徃來乗便圖冩 不必特派専員可於奏事之便傳諭知之欽此 [000-3a] 恭和詩 臣/劉統勲恭和 梯航環望 帝京春翊戴遙歡 聖澤均端爲 王猷昭赫濯盡敎海宇識 尊親充庭玉帛三重陛殊製冠裳九列賓揚 烈覲 [000-3b] 光功徳溥遠來近悦後先臻竒厖共訝新增部安樂渾 忘異地人名未耳聞身已到形因目睹繪偏眞 江..

명심보감(明心寶鑑), 명심보감 원문과 번역문 한자와 한글 해설

《명심보감(明心寶鑑)》을 우리말로 풀이하면 “마음을 밝혀주는 보배로운 거울”이라는 뜻이다. 아동의 학습을 위하여 고전(古典)에 나온 좋은 말과 글귀를 편집해 만든 책으로, 고려말과 조선시대 서당과 민간에서 아동들의 기본 교재로 많이 사용되었다. 저자는 고려 충렬왕 때의 추적(秋適, 1246~1317)이라는 설과 중국 명(明)나라 학자 범립본(范立本)이 1393년에 저술했다는 두 가지의 설이 있는데, 명확하지 않다. 명심보감은 여러 판본이 존재하고 그에 따라 편수와 내용도 조금씩 차이가 있는데, 19편으로 이루어진 판본이 가장 널리 사용되었다. 내용에 있어서는 유가(儒家) 및 도가(道家)의 교훈적 이야기가 다수를 이루고 있는데, 자연의 이치와 국가 통치 이념부터 자신을 반성하고 양심을 지키는 방법 등 인격..

역대군신도歷代君臣圖, 군신도 하권, 중국 영웅, 전설,

역대군신도歷代君臣圖 이 책은 조선시대 중종(中宗)이 이행(李荇)에게 명하여 중국의 역대 군신(君臣)의 도상(圖像)들을 수집하고 정리하여 출간한 상하 2권의 서책이다. 2권 2책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제1권은 중국의 역대 임금을, 제2권은 신하를 정리해 놓았다. 상권인 군권(君卷)에는 40명, 하권인 신권(臣卷)에는 68명, 총 108명이 수록되어 있다. 서두에는 역대군신도상서(歷代君臣圖像序), 제성현상(題聖賢像), 속간성현도서(續刊聖賢圖序)의 순으로 세 서문이 있고, 간략한 목차가 있다. 본문에는 각 인물마다 목판 형식의 초상화가 있으며, 그림 옆에 인물의 행적과 공적을 기록해 놓았고 시찬(詩贊)을 지어 붙였다. 중종(1488~1544)은 신하와 백성의 정신 교육을 위해 이행(李荇, 1478~1534)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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