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한도찬집羅漢圖讃集
석가모니 부처님
제2장 33조사
제1조 마하가섭존자
마하가섭존자의 성은 바라문이다. 아주 오랜 옛날 여기(이에 앞서)에 사부대중이 비바시불을 위하여 탑을 조성하였는데 먼저 탑 안에 모신 불상의 얼굴에 금빛이 조금 어그러지고 파괴되었다. 그때 어떤 가난한 여인이 금으로 된 구슬을 가지고 연금술사에게 가서 불상의 얼굴을 장식해 달라고 하였다. 이 인연으로 인하여 함께 발원하길, 원하옵건데 우리 두 사람은 혼인 없는 부부가 되어 지이다]라고 발원했다. 이 인연으로 말미암아서 91겁 동안에 몸이 모두 금색이었다. 후에 중천축 마갈타국 바라문 가정에 태어나 이름을 가섭파(迦葉波)라고 했는데, 이를 번역하면 음광승존(飮光勝尊)이라 한다. 금색에 덮여 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또한 이런 연유로 출가하여 모든 중생을 제도하길 바라는 뜻을 구하였다. 세존에게 청정법안을 받고, 일찍이 빈발라국(賓鉢羅國)의 기사굴산(耆 山)에서 처음 결집할 때, 아난비구(阿難比丘)는 많이 들어 다 기억하여 지혜가 있기 때문에 이에 게송으로써 그에게 전수하노라고 했다.
법이라는 법의 본래 법은
법도 없고 법 아닌 것도 없네!
어찌 한 법 가운데
법이 있고 법 아닌 것 있으랴!
게송을 설해 마치고, 이내 승가리의(僧伽梨衣)를 가지고 계족산(鷄足山)에 들어가 자씨(慈氏)께서 하생하시길 기다리니, 때는 주나라 효왕(孝王) 5년이다.
제2조 아난존자존자
아난존자는 왕사성 사람이다. 성은 찰제리(刹帝利)요, 백반왕(白飯王)의 아들이며, 석가여래의 종제(從弟=사촌 동생)이다. 성명은 아난타(阿難陀)인데, 이를 번역하면 경희(慶喜) 또한 이름하여 환희(歡喜)라고 한다. 부처님께 투신(投身)하여 출가(出家)하니 많이 들어 널리 통달하였고 지혜가 걸림이 없거늘 세존께서 이에 명하여 시자(侍者)로 삼았다. 이에 이르러 드리워 열반에 드시려 할 때에 긍가하( 伽河)에 이르니 5백 라한(羅漢)이 허공으로부터 내려왔다. 그 중에 두 라한(羅漢)이 있었는데 한 라한은 상나화수(商那和修)요, 한 라한은 말저가(末底伽)라. 존자가 그들이 다 큰 법기(法器)임을 알고서 그들에게 명하여 말씀하시기를, 옛적에 (세존께서) 정법안장(正法眼藏)을 대가섭(大迦葉)에게 부촉했었다. (대가섭께서) 입정에 들면서 나에게 부촉하셨으니 내가 이제 장차 입멸하려 하니 너희들에게 법을 전한다. 마땅히 게송으로 말하는 것을 들으라.
본래 있는 법을 전하였는데
전한 뒤에는 없는 법이라 하네!
각각 스스로가 깨달아라
깨달으면 없는 법도 없다네!
설해 마치고 존자가 몸을 허공에 솟구처서 열 여덟 가지 변화를 나타내어 풍분신삼매(風奮迅三昧)에 드시니 각각 사리(舍利)를 나누어 보배 탑을 지어 탑에 공양하였다. 이때가 주이왕(周夷王) 시절이다.
제3조 상나화수존자
상나화수존자의 성은 비사다이다. 어머니의 태 속에서 6년만에 태어났다. 옛날에 부처님께서 교화하실 때 마공라국(摩空羅國)에 이르셔서 한 번 청림(靑林)의 가지와 잎이 무성함을 보시고 아난에게 말씀하시기를 [이 땅에 백년 후에 마땅히 비구 훌륭한 사람이 있어서 여기서 미묘한 법륜을 굴리리라]라고 하셨다. 그 후 백년만에 과연 상나화수가 태어나서 출가하여 도(道)를 증득하더니 어느날 타리국( 利國)을 유행하다가 우바국다(憂婆國多)를 얻어 시자로 삼아 묻기를 [너의 나이가 몇이냐]하고 묻자, 답하길 [저의 나이는 열 일곱입니다]라고 했다. 스님이 묻기를 [너의 몸이 열 일곱이냐 본성이 열 일 곱이냐]라고 묻자, 답하길 [스님의 머리가 이미 희어졌는데 머리가 희어진 것입니까 마음이 희어진 것입니까]라고 되물었다. 스님께서 답하시길 [나는 다만 머리가 힐뿐 마음이 흰 것이 아니다]라고 하자, 답하길 [저의 나이가 열 일곱이지 본성이 열 일곱이 아닙니다]라고 했다. 그러자 스님이 법기(法器)임을 알고 마침내 게송을 주어 이르시기를,
법이 아니오 또한 마음도 아니며,
마음이 없고 또한 법도 없음이로다.
이 마음의 법을 말할 때에,
이 법은 마음의 법이 아니로다.
이에 화광삼매(火光三昧)로 변화해서 그 몸을 사르니, 그 때가 주나라 선왕 23년이었다.
제4조 우바국다존자
우바국다존자는 성이 수타(首陀)이시다. 17세에 출가하여 20세에 증과(證果)하였다. 마왕파순이 그 마력을 다하여 불법을 해치려 함에 어느 날 존자께서 선정에 들어서 이를 엿보니, 비밀히 영락을 가지고 와서 그것을 목에 얽어매 주거늘, 존자가 이에 사람과 개와 뱀의 세 시체를 취해서 변화시켜 꽃 영락을 만들어 말씀하시길 [너에게 나의 영락을 주어 내가 꽃다발로 서로 갚은 것이다.] 했다. 파순이 목을 끌어 꽃다발을 받으니 곧 변해서 세 가지 악취 나는 시신이 되었다. 자기의 신력을 다했음에도 불구하고 해탈할 수가 없었다. 존자가 말씀하시길 [너는 삼보(三寶)에 귀의할 수 있는가]라고 하자. 마왕이 합장하고 세 번 불음에 꽃 영락이 다 제거되었다. 존자가 세상에 있을 적에 교화하여 인도함이 가장 많았다. 매번 한 사람을 제도할 적에 하나의 산가지를 석실에 두었는데 그 석실이 다 가득 찼다고 한다. 게송으로서 향중(香衆=제다가)에게 주어 말씀하시길,
마음은 본래부터 마음이니,
본래의 마음은 법이 있는 것이 아니다.
법이 있고 본래의 마음이 있다면,
마음도 아니며 본래의 법도 아니다.
설해 마치고 이에 몸을 허공에 솟구쳐 18변화를 나타낸 후에 가부좌하고서 갔다고 한다. 때는 평왕 31년이었다.
제5조 제다가존자
제다가(提多迦)존자는 마가타국 사람이다. 그의 성은 자세하지 않다. 최초의 이름은 향중(香衆)이니 범어로 제다가(提多迦)라 한다. 처음에 우바국다(憂婆國多)존자로부터 출가를 구할 때에 우바국다존자가 말씀하시길 [너의 몸이 출가하느냐 마음이 출가하느냐]하고 묻자. 향중이 답하길 [내가 와서 출가하려 한 것은 몸과 마음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라고 했다. 우바국다존자가 기뻐하면서 곧 삭발하여 구족계를 주었다. 행화(行化)하여 중인도(中印度)에 이르니 위대한 선자(仙者) 8천명이 있었다. 상수자 [미차가(彌遮迦)]가 대중을 거느리고 존자에게 이르러서 출가를 구하거늘 존자가 말씀하시길 [옛적에 여래께서 위대한 법안을 비밀히 대가섭에게 부촉하시어 전하고 전하여 나에게 이르렀다. 내가 이제 너에게 부촉하노라.]했다. 드디어 게송을 펴서 말씀하시길,
본래의 마음 법을 통달하면,
법도 아니오 법 아님도 없다네.
깨닫고 난 뒤엔 깨닫지 못함과 같으니,
마음도 없고 또 법도 없다네.
게송을 마치고 존자께서 몸을 일으켜 허공에 18가지 변화를 일으켜 화광삼매(火光三昧)를 써서 스스로 몸을 사르니, 그 사리(舍利)를 거두어 탑을 건립하여 공양했다고 한다. 이때가 주나라 장왕(莊王) 치세시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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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외별전(敎外別傳)의 의미와 삼처전심(三處傳心)에 대해서
서산대사는 {선가구감(禪家龜鑑)}에서 교외별전(敎外別傳)의 선지(禪旨)를 나타낸 부분을 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말없는 곳으로부터 말없는데 이르는 것이 선(禪)이다. 이 말없는 것이란 언어를 떠난 마음을 가리키는 것이므로 마음이 곧 선법(禪法)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만약 누구나 입으로 잘못 말하게 되면 부처님이 꽃을 들어 보이자 가섭존자가 빙그레 웃는 것이 모두 교(敎)의 자취가 될 것이며, 만약 마음에서 얻게 되면 세상의 온갖 잡담이라도 모두가 교외별전(敎外別傳)의 선지(禪旨)가 된다.
법(法)은 이름이 없는 것이므로 말로서 이를 수 없고, 법(法)은 모양이 없는 것이므로 마음으로도 미칠 수 없다. 어떤 것을 말해 보려고 한다면 근본 심왕(心王)을 잃게 되며 심왕을 잃게 되면 부처님이 꽃을 드신 것이나 가섭존자가 웃은 것이 모두 묵은 소리에 떨어져서 마침내 죽은 물건이 되고 말 것이다. 마음에서 얻게 되면 거리의 잡담이라도 참으로 요긴하고 훌륭한 설법이 될 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새 소리에까지라도 실상(實相)을 깊게 통달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보적선사(寶積禪師)는 통곡 소리를 듣고 깨달아서 기쁨에 신심(身心)을 뛰놀았으며, 보수선사(寶壽禪師)는 싸움질하는 것을 보고 진명목(眞面目)을 활연히 깨친 것과 같은 것이 이런 것이다."라고 설명을 덧붙이고 있다. 즉, 아무리 훌륭하고 근본적인 선지(禪旨)라 할지라도 함부로 말로 표현하게 되면, 이는 아무 소용없는 썩은 말에 지나지 않지만, 마음으로 체득하게 되면 세상의 온갖 잡담뿐 아니라 새소리와 짐승 울음에 이르기까지도 모두 진실한 설법이 되며 참 모습을 본 것처럼 말을 떠난 마음의 체득, 이것이 경전의 가르침 외에 따로 전하 참다운 선의 근본 된 의미라고 하여 선(禪)과 교(敎)를 구별하여 밝히고 있다.
다음은 {선교결(禪敎訣)}에서 "교외별전(敎外別傳)이란 배우지 않아도 알고 생각하여 얻는 것이다. 모름지기 심로(心路)를 궁구(窮究)하여 끊은 후에야 비로소 알 수 있으며, 스스로 긍정하여 끄덕인 후에야 비로소 얻을 수 있다."라고 하였다. 그리고 또 {심법요초(心法要抄)}에서 "경외선지(格外禪旨, 敎外別傳)는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에 수록되지 않은 것이 향상일로(向上一路, 보다 높고 깊고 넓은 세계로의 지향하는 하나의 여로)이며, 삼천(三千)의 옛 부처님의 설법이 미치지 않은 것이 격외선지(格外禪旨)이다." 즉 선지(禪旨)의 향상일로(向上一路)는 대장경에도 없어서 부처님의 말씀으로도 미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삼전(三傳)에 대해서 서산대사는 '삼처전심(三處傳心)'에 대해서 "세 곳(三處)이란 다자탑(多子塔) 앞에서 자리를 반으로 나눈 것이 하나요, 영취산 법회(靈山會相)에서 꽃을 잡아들어 보인 것이(擧拈花) 두 번째이다. 사라쌍수(雙樹) 아래에서 무여열반(無餘涅槃)에 드시어 관 밖으로 두 발을 내어 보인 것(槨示雙趺)이 세 번째이다"이라 하였다. 이것이 선종에서 말하는 교외별전(敎外別傳)의 전거(典據)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는 학자들 간에 그 진위(眞僞)에 대한 논란이 회자되고 있다. 하여튼 이 진위(眞僞)를 떠나서 진리 자체를 전한다는 것은 시간과 공간이 마주친 그 시점 밖에는 없다는 것이다.
제6조 미차가존자
미차가존자는 중인도 사람이다. 성씨는 자세하지 않다. 어느 날 북천축국에 이르니 시장 가운데에 한 사람이 술잔을 가지고 조사를 맞이하여 말하길 [존자께서는 나의 손 가운데 물건을 아시겠습니까]하고 물었다. 조사께서 말씀하시길 {이것은 바로 더러운 그릇으로서 청정함을 등진 것이다}, 또 말씀하시길 [그대는 자기의 성씨를 말할 수 있는가]라고 하자. 그 사람이 마침내 게송을 설하여 말하길 [내가 지금 이 나라에 태어났으나, 다시 옛적 시일을 기억해보니, 본성은 바라타(頗羅墮)요 이름은 바수밀(婆須密)이었다.]라고 했다. 마침내 섭수하여 삭발시키고 득도케하여 계덕을 두렷이 했다. 간곡하게 그에게 명하여 말씀하시길 [내가 장차 반열반(般涅槃)하려 하니, 여래의 정법안장(正法眼藏)을 이제 너에게 부촉하노니 나의 게송을 들으라]하시고 말씀하시길,
마음이 없음으로 얻을 수 없고,
말로 얻으려하면 법이란 이름도 아니네.
만약 마음이 마음 아닌 줄 알면,
비로소 마음과 마음의 법을 알리라.
게송을 마치고 존자는 곧 사자분신삼매(師子奮迅三昧)에 들어서 몸을 허공에 떠올려 일곱 다라수(多羅樹)까지 높이고 다시 본래의 자리로 돌아오니 변화한 불이 저절로 생기어 몸을 태웠다. 바수밀(婆須密)이 영골사리를 거두어서 칠보의 함에 담아 탑을 건립하여 공양하니 이때가 주나라 양왕의 치세시기였다.
제7조 바수밀존자
바수밀존자는 성이 바라타(頗羅墮)이다. 항상 깨끗한 옷을 입고서 술그릇을 가지고 마을을 유행(遊行)하며, 혹은 걷으며 혹은 휘파람을 불면서 중얼중얼하니, 사람들이 그를 일러 미쳤다고 했다. 급기야 미차가존자를 만나 여래께서 지난 과거에 예언하신 것을 선설(宣說)하였다. 드디어 술그릇을 내던지고 출가하여 법을 받고 교화를 행하면서 가마라국(迦摩羅國)에 이르러 한 지혜로운 사람을 만나니, 스스로 일컫기를 [저의 이름은 불타란제(佛陀難提) 이옵니다. 이제 스승과 더불어 의(義)를 논하고저 합니다.]했다. 스님께서 말씀하시길 [仁者여 논(論)은 곧 의(義)가 아니오, 의(義)는 곧 논(論)이 아니니라. 만약 논(論)과 의(義)를 헤아리려 한다면 마침내 의(義)도 논(論)도 아니니라.] 불타란제존자가 흠복(欽伏)하고 곧 말하길 [저는 불도를 구해서 감로의 맛에 젖기를 원하나이다.]하니, 스님께서 마침내 여래의 정법안장을 주고 이내 게송을 설하여 말씀하시기를.
마음은 허공계와 같으므로,
허공과 같은 법을 보이노라.
허공을 증득할 때에,
옳고 그름도 없으며 법도 없느니라.
설해 마치고 곧 자심삼매(慈心三昧)에 드셔서 열반상을 나투셨다. 이때는 정왕(定王) 17년이었다.
제8조 불타란제존자
불타란제존자는 성이 구담(瞿曇)씨이다. 정수리에 육계(肉 )가 있었고 변재(辯才)가 걸림이 없었다. 교화를 행할 적에 제가국(提伽國)의 성에 비사라(毘舍羅)의 집에 이르러 한 장노를 만나니, 나와 예를 극진히 하여 묻기를 [무엇을 구하십니까] 하자. 존자께서 말씀하시기를 [나는 시자(侍者)를 구하노라] 하자. 장노가 말하길 [저에게는 한 자식이 있는데 이름이 복타밀다(伏馱密多)입니다. 나이가 이미 50이되었건만 입으로 말도 못하고 발로 걷지도 못합니다.]라고 했다. 존자가 말씀하시길 [이 아들이 옛적에 일찍이 부처님을 만나 비원(悲願)이 광대하였는데 부모의 애정을 버리기 어려울까 염려하여 말도 하지 않고 걷지도 않았을 뿐이다.]라고 하자. 그 아들이 말을 듣고 갑자기 일어나서 예배하자. 이에 계(戒)를 주어 출가하게 하고 스님께서 여래의 정법안장을 부촉(付囑)하여 수지(受持)하게 하고 또한 게송을 주어 이르시기를,
허공은 안팎이 없으니,
마음의 법도 또한 그러하네.
만약 허공의 연유를 깨달으면,
이것이 진여(眞如)의 이치를 통달한 것이라네.
설해 마치고 곧 신통변화를 나타내시어 도리어 다시 본래의 자리에 앉아 엄연히 연적(宴寂)하시니 경왕(景王) 10년이었다.
제9조 복타밀다존자
복타밀다존자는 성이 비사라(毘舍羅)이시다. 이미 불타란제존자에게 부촉을 받고 마침내 중인도에 이르러 교화를 행하실 때에 장자 향개(香盖)가 있었는데 한 아들을 끌고 와서 존자에게 예를 올리고 말하길 [이 자식은 태중에 60년이나 처(處)해 있었습니다. 그래서 난생(難生)이라 이름하였는데 일찍이 한 선자(仙者)를 만나니 이 아이에 대해서 이르기를 마땅히 법기(法器)가 되리라 했습니다. 이제 존자를 만나서 출가시키고자 합니다.]하였다.
존자가 곧 삭발해 주고 수계(受戒)하는 갈마( 磨)를 할쯤에 상서로운 빛이 좌중에 가득하고 이어 사리(舍利) 35과립이 현전(現前)함을 감득(感得)했다. 이로부터 피로를 잊고 정진하니 스님께서 이에 여래의 정법안장을 부촉하시고 또한 게송을 주어 말씀하시었다.
진리는 본래 이름이 없으나,
이름으로 인하여 진리가 나타나네.
진실한 법을 받아 터득하면,
참도 없고 또한 거짓도 없다네.
법을 부촉해 마치고 곧 멸진삼매(滅盡三昧)에 들거늘 대중이 향유(香油)와 전단향( 檀香)으로써 진체(眞體)를 화장하고 사리를 거두어 나란타사(那爛陀寺)에 탑을 건립하니 곧 경왕(敬王) 33년이었다.
제10조 협존자
협존자는 본명이 난생(難生)이다. 후에 복타밀다존자를 만나 집심(執心)하여 좌우에서 모시면서 언제나 잠을 자지 않았다. 이른바 옆구리를 자리에 대지 않았기 때문에 마침내 이름을 협존자라 했다.
장자 탄생할 때에 아버지의 꿈에 한 마리 흰 코끼리가 등에 보좌(寶座)를 하고 좌석 위에 한 명주(明珠)를 안착(安着)하고 문으로부터 들어가니 빛이 사부대중을 비추었다. 이미 꿈을 깸에 마침내 탄생했다. 후에 법을 받고 교화를 행할 때에 화씨국(華氏國)에 으르러 한 나무 아래에 휴식할 때에 한 장자에게 아들이 있었는데, 이름은 부나야사(富那夜奢)였다. 합장하고 앞에 서자 존자가 물었다. [그대는 어디서 왔는고]하자. 답하길 [저의 마음은 가지 않습니다.]했다. 존자가 묻길 [그대는 어느 곳에 머무르는고]하자. 답하길 [저의 마음은 머무르지 않습니다.]했다. 존자께서 묻길 [그대는 머무르지 아니 하는가?]하자. 답하길 [제불도 또한 그러합니다.]라고 했다. 존자가 묻기를 [그대는 제불(諸佛)이 아니다]했다. 답하길 [제불(諸佛)도 또한 아닙니다.]라고 하자. 존자께서 이에 말씀하시길 [그대여, 오라 위대한 정법안장을 이제 그대에게 부촉하노라.]하면서 게송을 주어 말씀하시었다.
참다운 본체는 자연히 참되니,
참됨으로 인하여 진리가 있다고 말하네.
참으로 참된 법을 깨달으면,
행할 것도 없고 또한 머무를 것도 없다네.
정법안장을 부촉해 마치고 곧 열반에 들어서 불을 화하여 스스로 사르니 그때가 정왕(貞王) 27년이었다.
제11조 부나야사존자
부나야사존자는 화씨국(華氏國) 사람이며, 성은 구담(瞿曇)씨요, 아버지는 보신(寶身)이었다. 이미 협존자에게 법을 얻어 바라나국(波羅奈國)에 이르니 마명대사(馬鳴大師)가 있었는데, 귀의(歸依)하여 영원히 제도해 주기를 바랬다.
조사께서 대중에게 이르시기를 [이 대사는 옛적에 비사리국(毘舍利國)의 왕이었다. 그 나라에 한 종류의 사람이 말과 같이 벌거벗고 있었다. 왕은 소매를 움직(運用하)여 두루 몸을 나누어 누에가 되니, 그는 이내 옷을 얻게 되었다. 후에 다시 중인도에 태어나 (말 같은)사람이 되어 연모의 정감으로 슬피 울었으므로 그로 인하여 이름을 마명(馬鳴)이라 하게 되었다.]
그로 인하여 마명대사에게 이르시기를 [여래께서 예언하시기를 "내가 멸도한 뒤 6백년에 마땅히 현자 마명이 있어 바라나국에서 외도를 꺾어 굴복시키고 한량없는 사람들을 제도하여 나의 법을 계승하여 전하고 교화하리라"라고 하였다. 지금이 바로 이러한 때이다.]라고 했다. 곧 마명대사에게 말씀하시길 [여래의 위대한 정법안장을 이제 그대에게 부촉하노니 나의 게송을 들으라]라고 말씀하셨다.
미혹과 깨달음 숨고 나타남과 같이,
밝음과 어둠 서로 여의지 않는다네.
이제 숨음과 드러남의 법을 전하지만,
하나도 아니고 또한 둘도 아니라네.
정법안장을 부촉해 마치고 곧 신통변화를 나타내어 조용히 원적(圓寂)하시니 보배 탑을 건립하여 장례(葬禮)를 치렀다. 이 때가 주나라 안왕(安王)의 치세 시였다.
제12존 마명존자
마명존자가 이미 부나야사존자에게 법을 받았는데, 어떤 마왕이 와서 더불어 신력(神力)을 겨루려 했다. 공중에 홀연히 한 마리 큰 금용을 나타내어 위신(威神)을 분발(奮發)하니 산악(山岳)이 진동했다. 스님께서 태연히 앉아 있으니 마(魔)의 장난이 따라서 사라졌다. 7일이 지나서 어떤 한 마리 조그만 벌레가 형체를 자리 아래에 감추고 있었다.
스님께서 말씀하시길 [이것은 이내 마(魔)가 변화한 것이다. 나의 법을 훔쳐 들으려 했을 뿐이다.]라고 하고, 그에게 말씀하시길 [그대의 이름이 무엇인가? 무슨 신력이 있는가?]하자. 답하길 [저의 이름은 가비마라(迦毘摩羅)입니다. 능히 큰 바다를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라고 했다. 스님께서 말씀하시길 [그대는 능히 성품의 바다를 변화시킬 수 있겠는가? 산하대지와 삼매(三昧), 육신통이 다 이로 말미암아 발현하느니라.]했다. 가비마라(迦毘摩羅)가 이 말을 듣고 마음을 깨달아 드디어 삭발하고 득도하길 구하니 스님께서 이에 게송을 보여 말씀하시었다.
숨거나 나타남이 곧 본래의 법이요,
밝음과 어두움이 원래 둘이 없다네.
오늘 깨달은 법 부촉(咐囑)하여도,
취할 것도 아니오 또한 버릴 것도 아니라네.
게송을 마치고 몸을 공중에 솟구치니 마치 해(日輪)의 형상과 같았다. 그러한 연후에 적멸을 보이니 곧 현왕(顯王) 42년이었다.
제13조 가비마라존자
가비마라존자가 마명존자에게 법을 얻은 후에 서인도 국에 이르렀다. 도성 북쪽의 큰산의 한 석실로 가는 도중에 한 마리 큰 이무기를 만나 둥글게 스님의 몸을 감으니, 스님께서 이로 인하여 삼귀의(三歸依)를 주고받으니 이무기가 듣고서 갔다.
마침내 석실에 이르러 한 노인을 만나니, "제가 옛적에 비구가 되어서 스스로 진한심(嗔恨心)을 일으킴으로 인하여 떨어져 이무기의 몸이 되었습니다. 마침내 존자의 법계(法戒)를 들었기 때문에 와서 감사를 드릴뿐입니다."라고 했다. 큰 나무숲에 5백 마리의 용을 덮고 있습니다. 그 나무 왕의 이름을 [용수(龍樹)]라고 합니다. 했다. 항상 용들을 위하여 설법을 했었는데, 존자를 보고 묵묵히 생각하기를 [이 스님이 결정된 성품을 얻었을까? 도안(道眼)이 밝아졌을까? 이분이 대성의 참된 법(一乘)을 계승했을까?]라고 하니, 스님이 말씀하시길 [다만 출가할 것만을 생각해야지, 어찌 성인이 아님을 근심하느냐?] 이로 인하여 게송을 말씀하여 주시었다.
숨지도 않고 드러나지도 않는 법은,
바로 진실한 법을 설하는 것이라네.
이렇게 숨고 드러난 법 깨달으면,
어리석음 아니오 또한 지혜도 아니라네.
법을 부촉해 마치고 곧 신통변화를 나투어 불을 화해서 몸을 사르니 그때는 난왕( 王) 42년이었다.
제14조 용수존자
용수존자는 가비마라존자에게 법을 받고 후에 남인도에 이르러 대중이 존자의 설법을 듣고 사사로이 서로들 수근거리길 [수고롭게 불성(佛性)을 말하나 누가 그것을 볼 수 있겠는가?]라고들 했다. 존자께서 이에 지상에 백련좌대(白蓮座臺)를 솟게(湧出)하고 자재신(自在身)을 나타내니 둥근 달과 같았다. 한 장자가 있었는데 이름은 가나제바(迦那提婆)였다. 대중에게 이르기를 [이 형상을 알겠는가?]했다.
이것은 바로 존자께서 불성의 본체와 형상을 나타내어 우리에게 보이시고, 더욱이 무상삼매(無相三昧)로써 형상이 둥근 달과 같이 불성의 의미가 확연히 비고 밝음을 나타낸 것이다.]라고 말을 마치자. 둥근 달 같은 형상이 곧 사그라지니, 저 대중이 감득하여 깨닫고 다 출가하길 원하거늘 존자께서 곧 삭발하여 계를 주시고 최후에 제자 가나제바(迦那提婆)에게 이르시기를 [여래의 위대한 법을 이제 마땅히 그대에게 부촉하노니, 나의 게송을 들어라.]했다.
숨고 드러난 법을 밝히기 위하여,
바야흐로 해탈의 이치를 말한다면,
법에 있어 마음으로 증득하려 아니하면,
성냄이 없고 또한 기쁨도 없다네.
법을 부촉해 마치고 곧 월륜삼매(月輪三昧)에 들어서 응연(凝然)히 원적(圓寂)하시니 때는 진시황(秦始皇) 35년이었다.
제15조 가나제바존자
가나제바(迦那提婆)대사는 남천축국 사람이요, 성은 비사라갈(毘舍羅竭)이시다. 용수존자께서 먼저 발우에 물을 가득히 담아 자리 앞에 두니, 가나제바존자가 한 개의 바늘을 발우에 던져 넣었다. 흔연히 뜻이 계합되었다. 가비라국에 이르니, 어떤 장자, 범마정덕(梵摩淨德)이 말하길 [동산 나무에 귀와 같은 버섯이 나서 취함에 따라서 따라 나옵니다.]라고 하고 장자가 버섯의 유래(自來)에 대해서 물으니, 조사께서 대답하시길 [그대의 집에서 일찍이 한 비구를 공양하였는데 도안(道眼)이 밝지 못하여 헛되이 신도의 시주물에 적시어서 보답으로 나무의 버섯이 되었다.] 이에 게송으로 말씀하시길,
도문(道門)에 들었으나 이치를 통달하지 못하면
몸을 바꾸어 신도의 시물(施物)을 갚는 것이로다.
그대의 나이 81세에, 그 나무에 (버섯이)나지 않으리라.
장자의 나이 81세에 나무에 과연 버섯이 나지 않았다. 장자가 둘째 아들 라후라다(羅候羅多)로 하여금 조사를 따라 출가케 하니, 게송으로써 부촉하여 말씀하시길,
법을 전하는 사람에 대한 근본에는
해탈의 이치를 설하기 위함이로다.
법에는 실제로 증득할 것이 없고,
마침이 없고 또한 시작도 없다네.
마치고서 분신삼매(奮迅三昧)에 들어서 적멸에 나아가니 대중이 탑을 일으켜 장례를 치렀다. 이때가 한나라 문제(文帝) 19년의 치세시(治世時)였다.
제16조 라후라다존자
라후라다존자는 가나제바존자께 수법(授法)하시고 행화(行化)에 시라벌성(室羅筏城)에 이르니, 강물이 있었는데 이름을 '황금수'라고 했다. 중류(中流)에서 문득 다섯 부처님의 영상을 보고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니 승가난제(僧伽難提)가 편안히 앉아 선정(禪定)에 들어 있는 것을 보고, 존자께서 묻기를, [그대의 몸이 정(定)에 드는가? 마음이 정(定)에 드는가?]라고 했다. 답하길 [몸과 마음이 함께 정(定)에 듭니다.]하니, 존자께서 묻기를 [몸과 마음이 함께 정(定)에 든다면 어떻게 나고 들겠는가?], 말하길 [비록 나고 듦이 있으나 정상(定相)을 잃지 않습니다.]라고 하니, 승가난제(僧伽難提)의 마음과 뜻이 훤해져서 곧 해탈을 구하거늘, 존자께서 말씀하시길 [그대의 마음이 자재(自在)하니 내게 얽힌 것이 아니다.]하고 말을 마치고 곧 정법안장을 부촉하고 게송으로서 말씀하시되,
법에는 진실로 증득할 것이 없으니,
취할 것도 또한 여읠 것도 아니라네.
법에는 유상(有相)도 무상(無相)도 아니거늘,
안팎이 어떻게 일어나겠는가?
게송을 설한 후에 편안히 앉아 적멸로 돌아가시니, 곧 한나라 무제(武帝) 28년이었다.
제17조 승가난제존자
승가난제존자는 시라벌국의 왕자였다. 태어나면서 말을 하고 7세에 곧 풍류적인 일을 싫어해서 간곡히 출가하길 구하니, 이에 선리다(禪利多)에게 귀명(歸命)하여 스승을 삼았다. 하루 저녁에 천광이 내리 비치는데 한 갈래 평탄한 길을 보고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서서히 약 10리쯤 가서 한 커다란 바위 앞에 이르니 석굴이 있었다. 마침내 편안하고 고요히 10년을 지났다. 행화(行化)하여 마제국(摩提國)에 이르러 산 암자에 한 동자가 둥근 거울을 가지고 바로 존자 앞에 세우는 것을 보았다.
존자께서 묻기를 [그대의 수중에 거울이 표하는 바가 무엇인고?]했다. 답하길 [제불의 크고 둥근 거울이니 안팎에 티끌과 가릴 것이 없습니다. 두 사람이 얻는 견해가 같아서 심안(心眼)이 다 비슷했다.] 존자가 말씀하시길 [나의 도(道)를 이을 자가 그대가 아니고 누구이겠는가?]하고 정법안장(正法眼藏)을 부촉하고 게송을 읊으시길,
심법(心法)이 본래 남이 없으나,
원인의 땅에 반연(攀緣)따라 일어나나니.
반연과 종자가 서로 방해치 않듯,
꽃과 열매도 또한 다시 그러하니라.
게송을 설해 미치고 곧 나무를 반연(攀緣)하여 천화(遷化)하니 때는 한나라 소제(昭帝) 13년의 치세였다.
제18조 가야사다존자
가야사다(伽倻舍多)존자는 성이 울두람(鬱頭藍)이시다. 처음에 그 어머니가 대신장이 거울을 가지고 있는 것을 꿈꾸었는데, 그로 인하여 아이를 배어 무릇 칠일이 지나서 태어나니, 기체(肌體)가 밝기가 유리 같아서 아직 씻기지도 않았는데 자연히 향기로우며 청결하였다. 어려서 깨끗함을 좋아해서 일찍이 거울을 가지고 놀러 나갔다가 우연히 승가난제존자를 만나 득도(得度)했다. 무리를 거느리고 대월씨국(大月氏國)에 이르러 바라문의 집에 신이(神異)한 기운이 있는 것을 보고 존자가 직접 들어가니 집주인 구마라다(鳩摩羅多)가 묻되, "이분들은 무엇하시는 대중이요"라고 했다. 존자가 답하시기를 "이분들은 부처님의 제자들이로다." 가야사다(伽倻舍多)가 부처님의 명호를 듣고 심신(心神)이 두려워서 즉시 문을 닫았다. 존자가 스스로 그 문을 두드리니, 구마라다가 말하길 "이 집에는 사람이 없소이다."라고 하자. 가야사다(伽倻舍多)존자께서 묻기를 "없다고 답하는 자는 누구인가?"라고 했다. 구마라다가 신이한 사람임을 알고 마침내 빗장을 열고 연접(延接)하였다. 존자가 그로 인하여 법을 주시고 게송으로 이르시기를,
종자가 있고 마음의 땅도 있으면,
인연에 의하여 싹이 발하나니
인연이 서로 장애 되지 않으면,
날 때에 나는 것은 나는 것이 아니로다.
정법안장을 부촉해 마치고 몸을 허공에 솟구쳐 화광삼매(火光三昧)로 변화하여 스스로 그 몸을 사르니 이때가 한나라 성제(成帝) 20년이었다.
제19조 구마라다존자
구마라다존자는 바라문의 아들이었다. 득도(得道)하고 행화(行化)할 때에 중천축국에 이르니, 사야다( 夜多)가 묻기를 "우리 집에서는 평소 삼보(三寶)를 믿어서 일찍이 채질( 疾)을 앓았고, 이웃집에서는 오랫동안 전타라( 陀羅) 행을 하면서 살았으나 몸이 항상 용맹하고 건강합니다. 그들은 어찌해서 행복하고 우리는 어찌해서 죄가 있습니까?"라고 하자. 존께서 말씀하시길 "선악의 과보가 삼시(三時)에 있으니 비록 천백만 겁을 지날지라도 또한 마멸치 않느니라." 사야다( 夜多)가 말을 듣고 이에 의심되는 것이 풀렸다. 존자께서 또 말씀하시길 "그대는 비록 이미 삼업(三業)을 믿으나 아직 업(業)이 미혹을 따라 나고, 미혹은 의식으로 인하여 있으며, 의식은 마음을 따라 일어남을 알지 못함이로다. 마음은 본래 청정하야 생멸이 없고 조작이 없으며, 응보(應報)가 없고 일체 선악과 유위(有爲, 현상세계)와 무위(無爲, 본질의 세계)가 다 몽환과 같은 것이다." 사야다가 뜻을 깨닫고 간곡히 출가를 구하니, 존자께서 이에 게송을 주시어 말씀하시길,
성품에는 본래 남이 없으나,
구하는 사람을 대하여 설함이로다.
법은 이미 얻을 것이 없으니,
어찌 깨치고 깨치지 못함을 걱정하리요.
말을 마치고 곧 손톱으로 얼굴을 할퀴니 연화와 같이 대광명을 방출하면서 적멸에 드시니 이때가 신실(新室) 14년이었다.
제20조 사야다존자
사야다존자는 북천축국의 사람이니 지혜가 깊고 충만하여 교화하고 인도하는 이가 헤아릴 수 없었다. 바수반두(婆修盤頭)를 장차 제도하고자 했다.
이내 그 대중에게 물어 말씀하시기를 "이렇게 두루 두타(頭陀)를 행하는 것이 가히 불도를 얻을 수 있겠는가? 고행을 진겁(塵劫)을 지나도록 할지라도 모두 근본에는 허망할 뿐이로다."하자. 대중이 말하기를 "존자께서는 무슨 덕행을 쌓으셨기에 우리 스승을 헐뜯으십니까?"라고 했다. 존자께서 말씀하시기를 "나는 도를 구하지는 않지만 또한 그릇된 행도 하지(顚倒) 않는다. 나는 부처님께 예배를 드리지 않지만 경솔하고 교만하지도 않는다. 나는 만족을 알지 못하지만 탐내고 욕심부리지 않는다. 마음에 바라는 바가 없는 것 이를 이름하여 도라고 하느니라."라고 했다. 그때 두루 두타를 행하는 이들이 이 말을 듣고 기뻐하며 찬탄하였다. 존자께서 말씀하시기를 "그대는 오랫동안 많은 덕을 심었으니 마땅히 나의 종지를 계승하리로다. 나의 게송을 들을 지어다."
언하(言下, 말하자마자)에 무생법인(無生法忍)에 계합하면,
법계의 성품과 같다네!
만약 능히 이와 같이 알면,
사(事, 현상)와 이(理, 본체)의 구경을 통달하리라.
말을 마치고 문득 적멸하시니, 그때는 후한(後漢)의 명제(明帝) 17년이었다.
제21조 바수반두존자
바수반두(婆修盤頭)대사는 라열국(羅閱國)사람이며, 성은 비사카(毘舍 )요, 아버지는 광개(光盖)요, 어머니는 엄일(嚴一)이었다. 광도라한(光度羅漢)을 참례하고 출가하여 계를 받았는데, 사야다대사께서 찾아와 만나서 대지혜를 격발(激發)하고 이에 법을 부촉 받았다. 행화(行化)하여 나제국(那提國)에 이르니 그 나라 왕의 이름이 상자재(常自在)라 했다. 왕의 둘째 아들이 있었는데 이름은 마노라(摩拏羅)였다. 왕이 아들을 버려 출가하게 하였다.
조사께서 말씀하시기를 "훌륭하십니다. 대왕이시여! 능히 그 아들을 버리셨습니다." 즉시 구족계를 주어 법을 부촉하시고 게송을 말씀하시기를,
물거품과 허깨비는 함께 장애가 없거늘,
어찌하여 깨닫지 못하는가!
진리를 통달하는 것이 그 가운데 있으니,
지금이 아니오 또한 예도 아니로다.
조사께서 법을 부촉해 마치시고 몸을 높이 반유순을 솟구쳐서 우뚝하게 머무르니 4부대중이 우러러 경건히 청하기를 다시 자리에 가부좌를 하고서 가셨다. 다비하여 사리를 얻어 탑을 건립하니, 이때가 후한 안제(安帝) 시였다.
제22조 마노라존자
마노라대사는 제다국의 상자재왕의 아들이니 나이 30세에 바수반두대사를 만나서 출가하였다. 서인도 왕이 한 작은 탑을 보고 대중에게 제거하지 말라하였다.
조사께서 말씀하시기를 "이는 아육왕(阿育王)이 조성한 부처님의 사리탑이다. 네 면의 상호를 보니 모두 이것은 석가세존께서 과거에 수도한 자취이다. 지금의 왕과 인연이 있으므로 출현하였을 따름이다."라고 하였다. 말을 마치고 그것을 들었다. 조사가 월씨국(月氏國)으로 가니 학륵나(鶴勒那)가 조사에게 묻기를, "우리가 무슨 인연이 있기에 할의 무리가 우리를 따릅니까?"하였다. 조사께서 답하시길, "그대가 옛날에 (제자들을)모아 용궁에 갔을 때 그대의 제자들이 따라갔으나 복이 빈약하고 덕이 미세하여 우족(羽族)에 떨어졌었다. 이제 이미 다섯 겁(劫) 지났으나 전전(轉轉)하여 학의 몸을 받았다."고 대답하자. 또 묻기를, "어떠한 방편으로써 그들을 해탈하게 할 수 있습니까?"하자. 조사께서 게송을 설하여 말씀하시기를,
마음은 온갖 경계를 따라 가나,
가는 곳마다 능히 그윽하구나!
그윽한 흐름 따라 본성을 깨달으면,
기쁨도 없고 또한 근심도 없다네!
학의 무리가 게송을 듣고 울며 날아가니 조사가 가부좌하고서 학륵나(鶴勒那)가 그를 화장하여 사리를 거두어 탑을 일으키어 공양 올리니, 후한(後漢)환제(桓帝) 연희(延熹) 8년이었다.
제23조 학륵나존자
학륵나존자는 성이 바라문이다. 나이 7세에 마을을 놀러갔다가 사람들 사이에서의 음사(淫祠, 굿)하는 것을 보고 그것을 꾸짖어 말하기를, "그대가 허망하게 재앙과 복을 일으켜서 환술로 이 백성들을 현혹하니 상처를 주고 해로움이 실로 많구나."하였다. 말을 마치자 묘당(廟堂)의 형태가 무너졌다. 교화하여 중인도에 이르러 존자가 정법을 차례로 설하자 홀연히 두 사람이 붉은 명주옷을 가지고 와서 예배하였다. (왕이 그 연유를 묻자)존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이들은 바로 일월천자(日月天子)인데 내가 먼저 옛날에 설법을 해준 인연으로 와서 사례하는 것이다."하였다. 그때 사자(師子)가 있었는데 존자에게 귀의(歸依)하면서 묻기를, "제가 도를 구하고자 하는데 마땅히 어떻게 마음을 써야하겠습니까?"하고 물었다. 존자께서 답하시기를, "쓸 마음이 없다."하자. 또 묻기를, "이미 쓸 마음이 없다면 누가 불사(佛事)를 합니까?"하였다. 존자께서 답하시기를, "그대가 만약 (마음)쓴다면 곧 이것이 부처님의 일이다."하였다. 사자존자가 이 말을 듣고 깨달았다. 존자께서 이에 정법안장(正法眼藏)을 부촉(付囑)하여 호지(護持)케 하고 또 게송으로서 말씀하시기를,
마음의 본성을 바로 알 때에,
부사의(不思議)라 말할 수 있으나
깨닫고 나면 얻을 수 없나니,
얻을 때는 말하지 않아도 알아지네!
말을 마치고 열 여덟 가지 신통변화를 나타내어 적멸(寂滅)하시니 그때가 후한(後漢) 헌제(獻帝) 건안(建安) 14년이었다.
제24조 사자존자
사자비구존자는 성이 바라문이시다. 파리가(波利迦)라는 이가 있었는데 본래 선정(禪定)만을 익혔다. 와서 존자를 배알하니 존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인자(仁者)여 선정을 익히면서 어찌하여 여기에 왔는가? 이미 여기에 이르렀으면 어찌 선정을 닦는다 하겠는가? 파리가가 말을 듣고 존자에게 굴복하여 바야흐로 법사(法嗣, 제자)가 되기를 구하옵니다." 하였다. 또 어떤 장자가 있었는데, 한 아들을 끌고 와서 묻기를, 이 아들의 이름은 사다(斯多)이옵니다. 태어날 때에 문득 오른 손 주먹을 쥐고 있습니다. 이제 장성했는데 (주먹을)펴지 못합니다. 바라옵건대 존자께서는 그 숙세의 인연을 보여 주소서!라고 하였다. 존자께서 곧 손을 어루만지면서 말씀하시길, "가련(可憐)하다 나의 구슬을 돌려다오."하였다. 동자가 갑자기 손을 펴서 구슬을 받들어 올리니 대중들이 모두 놀라워했다. 장자가 마침내 그 아들을 출가케하니 존자가 곧 구족계를 주고 또한 게송을 나투어 이르시기를,
바야흐로 지견(知見)을 설하는 때에,
지견은 모두가 이 마음이다.
마땅히 마음이 곧 지견이니,
지견은 곧 현재에 있는 것이로다.
게송을 설해 마치고 이에 승가리(僧伽梨, 가사)를 비밀히 바사사다(婆舍斯多)에게 부촉하시고 편안히 입적하시니, 그때는 위나라 제왕 27년이었다.
제25조 바사사다존자
바사사다존자는 계빈국( 賓國)의 사람이며 성은 바라문이시다. 아버지는 적행(寂行)이요 어머니는 상안락(常安樂)이라는 뛰어나 분이었다. 사자존자로부터 출가하여 중천축국에 이르니, (왕이)"이 동산에 샘이 있는데 열기로 찾을 수가 없으니 원컨대 그것을 결택(決擇, 가리어)하여 주소서!" 했다. 그러자 조사께서 말씀하시길, "이는 끓는 샘이다. 세 가지 연유에서 이루어진 것이 있는데 첫 번째는 신업(神業)이요, 두 번째는 귀업(鬼業)이며, 세 번째는 열석(熱石)입니다."라고 설명한다. 왕이, "존경하오니 존자께서는 그것을 증험(證驗)하여 주십시오. 세 가지에서 연유한 이러한 결과가 어떠한 것이 여기에 다다른 것입니까?"하고 물었다. 존자께서 이르시길, "이는 신업(神業)의 이른 것입니다."하였다. 곧 열향(熱香)에게 명하여 물을 다스리게 하고 참회(懺悔)하였는데, 물가에 한 장인이 나타나서 존자께 예를 올리고 말하길, "제가 미미한 도움 받을 것이 있어서 존자를 만나 뵙고자 곧 사람 가운데 태어난 연고로 사례하러 왔을 뿐입니다."하고 마치고 돌아가 마침내 숨었다. 칠일 후에 그 물이 과연 깨끗하고 차가워 저서 평소의 샘물이 되었다. 그러한 후에 신통변화(神通變化)를 나타내어 삼매(三昧)의 불을 내어 스스로 그 몸을 사르니, 천덕왕(天德王)이 부도(浮圖)를 창건하여 그것을 숨기니 그때는 동진(東晉) 명제(明帝) 태녕(泰寧) 3년의 치세(治世)시였다.
성인이 지견(知見)을 말하나
그 경계는 옳고 그릇됨이 없다.
내 이제 참 성품을 깨달으니
도(道)도 없고 이치(理致)도 없다.
제26조 불여밀다존자
불여밀다(不如密多)존자는 남인도 천덕왕(天德王)의 둘째 아들이니 불여밀다(不如密多)이다. 바사사다(婆舍斯多)를 따라 출가하여 왕궁에서 구족계를 받았다. 갈마( 磨)할 때에 천지가 진동하여 바사사다존자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어찌 오래 머무를 수 있겠는가? 그대는 마땅히 잘 정법안장(正法眼藏)을 호지(護持)해서 두루 여러 유정을 구제할 것이며 나의 게송을 들어라. 게송을 말씀하시기를,
성인께서 지견(知見)을 설하셨으나,
경계를 당하여 그르고 옳음이 없네.
내가 이제 참된 성품을 깨달으니,
도(道)도 없고 이치(理致)도 없구나.
처음에 바사사다가 사자비구에게 법의(法衣)를 받으시더니 불여밀다(不如密多)의 게송을 듣고서 가르쳐 묻기를, "법의(法衣)를 마땅히 전수(傳授)할까요?" 이르시기를, "이 법의(法衣)는 환란(患難) 때문에 거짓으로 증표(證票)로 삼았으나 그대의 몸이 환란(患難)이 없으니 무엇하러 거짓으로 그 법의를 빌릴 것인가? 교화가 시방에 퍼지면 사람들이 스스로 믿고 향하리라."하였다. 그런 후에 적멸을 보이시고 사유( 維, 다비)하는 저녁에 사리(舍利)가 수 없이 많았다. 이때가 동진 효무제(孝武帝) 13년이었다.
제27조 반야다라존자
반야다라존자는 동인도 사람이다. 行化하여 남인도에 이르렀는데 그 나라 왕이 무가보주(無價寶珠)를 주시하면서 묻기를 "이 보주(寶珠)가 둥글고 밝으니 능히 미칠 수 있는 것이 있겠는가?"라고 했다. 보리다라(菩提多羅)가 사뢰길, "이것은 바로 세간의 보배이므로 최상이 되지 못합니다. 모든 보배 가운데 법의 보배가 최상의 보배입니다. 이것은 바로 세상을 비추는데 최상이 되어 부족할 것이 없습니다. 모든 광명 가운데 지혜의 광명이 최상이 됩니다." 왕이 말씀하시길, "만약 이 보배에 대해서 밝히자면 보배는 저절로 보배가 아니요, 만약 이 구슬을 변별하자면 구슬이 스스로 구슬이 아니다."하자. 존자가 그 변별하는 지혜를 찬탄하면서 이에 다시 묻기를, "모든 물건 가운데 어떤 물건이 무상(無相)입니까?"하자. 답하길, "모든 물건 가운데 무상(無相)을 일으키지 않습니다."했다. 존자께서 이에 여래의 정법안장(正法眼藏)을 부촉하고 또 한 게송을 보여 이르시기를,
마음의 경지에 모든 종자가 생기고,
현실로 인하여 다시 이치가 난다.
결과가 원만하면 보리(菩提)의 열매가 원만해지고,
꽃이 피니 세계가 일어난다.
법을 부촉해 마치고 곧 자리 위에서 좌우의 손을 펴서 각각 광명을 놓아 27도(道)을 밝히고서 불을 화해서 스스로 사르니 사리가 비오 듯 했다. 때는 송(宋)의 효무제(孝武帝) 대명(大明) 원년이었다.
제28조 보리달마존자
성은 찰제리(刹帝利)요 본명은 보리다라(菩提多羅)이다. 후에 반야다라존자를 만나서 이름을 달마(達磨)라 고쳤다. 본국에서 교화를 펴니 원근(遠近)의 학자가 따라 오는 것이 바람을 향하는 듯 하였다. 그때 이견왕(異見王)을 만났는데, 삼보(三寶)를 가볍게 여기고 훼손하였다. 스님께서 왕을 위해 전의 그릇됨을 참회케 하니 왕이 그로 인하여 울면서 사죄하였다. 스님의 가르침을 받고 삼보(三寶)를 흠앙(欽仰)하고 존숭(尊崇)하였다. 어느 날 스님께서 생각하기를 행화(行化)할 때가 이르렀다 하고, 거듭 바다에 떠서 무릇 세 번의 한서(寒暑)를 지나서 남해에 도달하니 실제로 양(梁) 보통(普通) 8년이었다.
양무제(梁武帝)가 묻기를 "무엇이 참된 공덕입니까?"라고 했다.
스님께서 답하시길, "청정한 지혜는 미묘하고 뚜렷해서 본체가 저절로 공적해져서 이러한 공덕은 세상에서도 구하지 못합니다."하였다.
스님께서 근기(根機)가 계합(契合)하지 못함을 알고 몰래 강북으로 돌아서 숭산(崇山) 소림사(少林寺)에 머무르고 면벽(面壁)하면서 좌선으로 종일(終日) 묵연(默然)하니 사람들이 이것을 헤아릴 수 없어서 그것을 일러 벽관(壁觀)이라 하였다.
그때에 어떤 승려 신광(神光)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많은 책을 두루 열람하고 현묘(玄妙)한 이치를 잘 이야기했는데 스님께서 소림에 머문다는 소문을 듣고 이에 몸소 가서 스님께 참례하였는데 종일 면벽(面壁)만 하고 말이 없었다.
어느 날 밤에 하늘에서 눈비가 내리는데도 신광(神光)이 굳게 서서 움직이지 않았다. 동틀 무렵에 쌓인 눈이 무릎을 지났다. 스님께서 연민히 여겨 위로하면서 그에게 물었으나 그러나 끝내 가르치는 말이 없어서 신광(神光)이 이에 잠심(潛心)하다가 날카로운 칼을 취해서 스스로 왼팔을 끊어 스님의 앞에 놓으니 스님이 이 사람이 법기(法器)임을 알고 그로 인해서 이름을 바꾸어 주면서 말씀하시기를 혜가(慧可)라 하였다. 스님께서 소림에 기거하신지 9년에 서쪽의 천축(天竺)으로 돌아가고자 해서 이에 여래의 정법안장(正法眼藏)을 혜가(慧可)에게 부촉해 주시고 게송을 보여 이르시기를,
내가 본래 이 땅에 온 것은 교법을 전하여
미혹한 중생 구하고자 함이로다.
한 송이 꽃에 다섯 꽃잎이 피면
결과가 자연히 이루어지리라.
설해 마치고 단정히 앉아서 가셨으니 곧 후위(後魏) 효명제(孝明帝) 대화(大和) 19년이었다.
제29조 태조혜가대사
혜가대사는 성이 희씨이다. 그의 어머니가 신이(神異)한 광명이 실내를 비추는 것을 느끼고서 그로 인하여 회임(懷姙)하였는데, 마침내 신광(神光)이라고 했다. 어릴 때부터 널리 삼승(三乘)의 유서(遺書)를 열람하고 산수에 유람하길 좋아하였다. 향산(香山)의 보정선사(寶靜禪師)에게 계를 받고 어느 날 홀연히 한 신인이 나타나 말하길 대도(大道)는 소요(逍遙)하는 것이 아니니 그대는 남쪽으로 가라."하였다.
다음날 신광이 깨었을 때 두통이 가시가 찌른 것 같아 그의 스님이 이를 치료하고자 하는데 허공에서 소리가 있어서 말하길, "이는 뼈를 바꾸었을 뿐이다."하였다. 스님이 그의 정수리를 보니 과연 다섯 개의 빼어난 것과 같았다. 그로 인하여 이르기를, "신인이 그대가 남쪽으로 가서 그 곳 소림의 달마대사에게 가라고 하였다."
신광이 마침내 조그마한 가옥을 짓고 그로 인해서 법을 얻어 법의를 받고 소림사에서 법을 강설하니 천녀가 그를 위하여 꽃을 뿌렸다. 널리 법사(法嗣)를 구하니 어떤 한 거사가 있었는데 스님에게 묻기를, "무엇이 불법입니까?"
스님이 답하시길, "이 마음이 바로 부처요 이 마음이 바로 법이다. 불법이 둘이 없으니 승보(僧寶)도 역시 그러하다"하였다. 거사가 깨달으니 스님이 말씀하시길, "이것이 나의 보배이다."하였다. 베풀어 이름을 승찬(僧璨)이라 하고 그로 인하여 정법안장을 그에게 주고 또한 한 게송으로 이르시길,
본래 반연(攀緣)의 땅이 있어서,
땅에 종자를 심음으로 인하여 꽃이 핀다.
본래 종자도 있는 것이 아니니,
꽃 또한 일찍이 피어난 것이 아니니라.
법을 부촉해 마치고 곧 위순(委順, 인연에 맡겨 따름)하니 그때는 수나라 문제 13년이었다.
제30조 감지승찬대사
승찬대사는 처음에 속세인(白衣)으로서 이조를 배알하고 이미 제도를 받아 법을 전하여 마침내 서주(舒州)의 환공산( 公山)에 숨어 십여 년을 지내니 그때 사람들이 아는 자가 없었다. 수나라 개황(開皇) 연간에 이르러 사미 도신(道信)이라는 자가 있었는데, 나이가 바야흐로 14세였다. 내방(來訪)하여 스님께 예를 올리고 묻기를, "원컨대 화상께서는 자비로 해탈법문을 해주시길 빕니다."하였다. 스님께서 말씀하시길, "누가 그대를 결박했는가?" 하자. 답하길 "결박한 사람이 없습니다."했다. 스님께서 이르시길 "이미 결박한 사람이 없다면 어찌하여 다시 해탈을 구하는가?"하셨다. 도신(道信)이 언하(言下)에 대오(大悟)하고 굴복하여 9년을 시봉(侍奉)하였다. 스님께서 자주 현묘(玄妙)하고 미묘(微妙)한 법으로 시험해 보고서 그 반연이 순숙해졌음을 알고 이내 법의(法衣)를 부촉하면서 또한 게송을 주어 이르시기를,
꽃과 종자가 비록 땅으로 인하고
땅으로부터 종자와 꽃이 나지만
만약 사람이 종자를 심지 않으면
꽃과 땅이 다하여도 나지 않는다.
게송을 주어 마치고 다시 나부산(羅浮山)에 이르러서 넉넉히 2년을 유람하다가 도리어 옛터로 돌아가니 달을 넘기니 사민(士民)이 분추(奔趨)하여 크게 시주를 베풀거늘 스님이 사부대중을 위하여 널리 심요(心要)를 선설(宣說)해 마치고 법회하는 큰 나무 아래에 합장하고 임종하니 곧 수(隋) 나라 양제(煬帝) 대업(大業) 2년이었다.
제31조 대의도신대사
도신대사는 성이 사마씨이다. 태어나서 초출(超出)하고 신이(神異)해서 어려서 공종(空宗, 불교)을 연모(戀慕)했다. 이미 조사의 법을 이어 마음을 섭수(攝受)하여 잠이 없어서 옆구리를 자리에 대지 않는지 60년이었다. 파두산(破頭山)에 머무르니 학승이 구름처럼 모여들었다. 어느 날 황매(黃梅)로 가다가 길에서 한 어린아이를 만났는데, 골상(骨相)이 기이하고 빼어나거늘 스님이 이를 기이하게 여겨서 물으시길, "자네의 성(姓)이 무엇인가?"하고 물었다.
대답하길, "이것이 불성(佛性)입니다."하였다.
스님께서 다시 묻길, "그대는 성(姓)이 없는가?"하자.
답하길 "성품(性品)이 공(空)한 까닭입니다."하였다.
스님이 이 사람이 법기(法器)임을 알고 곧 그 부모의 처소로 가서 출가하길 빌어서 스님은 이내 법의를 그에게 주었다. 후에 정관(貞觀) 년간 중에 태종(太宗)이 스님의 도미(道味)를 흠향(欽嚮)하여 서울로 올라오길 소청(召請)하거늘 스님이 상표(上表)로서 겸손하게 거절(遜謝)하니 전후 세법을 반복하였다. 마침내 속히 오라는 말을 황제가 다시 사신에게 명하여 이르기를, "만일 일어나지 않으면 곧 목을 취해 오라 하였다." 스님이 이에 목을 끌어 칼로 베라하면서 안색이 변함이 없으니 사신이 이것을 신이(神異)하게 여겨서 도리어 현상을 설명하여 들려주니 임금이 이에 진귀한 그림(珍繪)을 하사하면서 그 뜻을 따랐다. 마침내 고종(高宗) 때에 이르러 어느 날 홀연히 문인에게 일러 말씀하시기를, "그대들은 각각 스스로 호념(護念)해서 장래에 (중생을) 교화하라." 말을 마치고 단정히 앉아서 서거(逝去)하니 이때가 당 나라 고종(高宗) 영휘(永徽) 신해 2년이었다.
제32조 대만홍인대사
홍인대사는 성이 주씨(周氏)이다. 태어나면서 뛰어나게 영리(岐 )하더니 도신대사(道信大師)를 만나 법을 얻었다. 함형(咸亨) 년간에 한 거사가 있었는데, 성(姓)은 노씨요 이름이 혜능(慧能)이었다. 혜능이 와서 참예하여 배알(拜謁)하니 스님이 말씀하시길 "영남사람은 불성이 없는데 어찌 법을 얻을 수 있겠는가?"하였다. 말하길, "사람에게는 남북이 있으나 불성은 어찌 다르겠습니까?" 스님이 그 신이(神異)함을 알았다. 그때 상좌(上座) 신수(神秀)가 있었는데 한 게송을 지어 말하기를 "몸은 바로 보리(菩提)의 나무요, 마음은 밝은 거울의 경대이다. 때때로 부지런히 털고 닦아서 하여금 먼지가 끼지 않게 하라."하였다. 혜능스님이 이르기를 "보리(菩提)는 본래 나무가 없고 밝은 거울도 또한 경대가 없는 것이다. 본래 한 물건도 없는데 어느 곳에 티끌이 끼일 것인가!"하였다. 대사가 혜능을 불러 말하기를 "위없는 정법안장을 내가 이제 그대에게 전수(傳授)하나니 나의 게송을 들어라." 말씀하시기를,
유정이 와 종자를 심으니
원인의 땅에서 결과가 도리어 난다.
무정(無情)은 이미 종자가 없으니
성품도 없고 또한 남도 없어라.
혜능이 호궤(互 )하고 그것을 받으니 스님께 이르시길, "그대는 마땅히 멀리 숨어서 회(懷)자를 만나면 머무르고 회(會)자를 만나면 또한 숨을 지니라."하였다. 혜능이 발에 예를 올리고서 나왔다.
제33조 대감혜능대사
혜능대사는 성이 노(盧)씨요 그의 선친은 범양(汎陽)사람이다. 중종(中宗)이 내시 설간( 簡)을 보내어 속히 청을 받아들이기를 소청하여 묻기를, "무엇이 밝은 도입니까?" 스님이 답하시기를, "도(道)는 명암(明暗)이 없으니 밝음과 어두움도 또한 이를 대신하면서 물러난다(代謝)는 뜻이다."하자.
설간(薛簡)이 말하길, "밝음은 지혜에 비유하고 어두움은 번뇌에 비유하니, 진실로 지혜로써 비추어 번뇌를 깨뜨리지 못하면, 비롯함이 없는 생사의 물길에서 어떻게 벗어날 것인가?"했다.
스님께서 이르시기를, "지혜로써 번뇌를 비춘다는 이것은 바로 이승(二乘)이라는 것이다."라고 했다.
설간(薛簡)이 말하기를, "무엇이 이 대승의 견해입니까?"했다.
스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명(明)과 더불어 무명(無明)은 그 성품은 둘이 없으니 둘이 없는 성품은 곧 이것이 진실한 성품이다. 성품(性品)이라는 것은 범부의 어리석음에 처해서 다함이 없으며 현성(賢聖)에 있어서 더함이 없는 것이요. 번뇌에 머물러서 산란(散亂)이 없으며, 선정(禪定)에 머물어서 적정(寂靜)하지 않고, 끊어지지도 않고 영원하지도 않으며, 오지도 않고 가지도 않으며, 중간에 있지도 않으며 내외(內外)에 있지도 않으며, 나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으며, 성품과 형상이 여여(如如)하여 항상 머물어 옮기지 않는 것을 이를 이름하여 도(道)라고 한다."하였다.
설간이 갑자기 환히 트이어 크게 깨달았다. 스님께서 열반하길 적에 기이한 향기가 사람들에게 엄습하였고, 무지개가 땅에 이어졌다. 때는 선천(先天) 2년이었다.
선도 생각하지 말고,
악도 생각하지 말라.
선과 악을 모두 함께 생각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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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차만별의 응화신을 나투는 것이
부처이기에 십신(十身)이라고 하며
말을 잘 훈련시키는 듯이 자유자재로
중생들을 제도하는 의미로 조어장부
천지에 온갖 몸 나투어 중생을 제도하는 모습이 십의 나툼이어라
蜀金水張氏,畫十八大阿羅漢。軾謫居儋耳,得之民間。海南荒陋,不類人世,此畫何自至哉!久逃空谷,如見師友,乃命過躬易其裝標,設燈塗香果以禮之。張氏以畫羅漢有名,唐末蓋世擅其藝,今成都僧敏行,其玄孫也。梵相奇古,學術淵博,蜀人皆曰:「此羅漢化生其家也。」軾外祖父程公少時遊京師,還遇蜀亂,絕糧不能歸,因臥旅舍。有僧十六人往見之,曰:「我,公之邑人也。」各以錢二百貸之,公以是得歸,竟不知僧所在。公曰:「此阿羅漢也。」歲設大供四。公年九十,凡設二百餘供。今軾雖不親睹至人,而困厄九死之餘,鳥言卉服之間,獲此奇勝,豈非希闊之遇也哉?乃各即其體像,而窮其思致,以為之頌。
-第一尊者,結跏正坐,蠻奴側立。有鬼使者,稽顙於前,侍者取其書通之。頌曰
月明星稀,孰在孰亡。煌煌東方,惟有啟明。咨爾上座,及阿闍黎。代佛出世,惟大弟子。
-第二尊者,合掌趺坐,蠻奴捧牘於前。老人發之。中有琉璃器,貯舍利十數。頌曰
佛無滅生,通塞在人。墻壁瓦礫,誰非法身。尊者斂手,不起於坐。示有敬耳,起心則那。
-第三尊者,抹烏木養和。正坐。下有白沐猴獻果,侍者執盤受之。頌曰
我非標人,人莫吾識。是雪衣者,豈具眼隻。方食知獻,何愧於猿。為語柳子,勿憎王孫。
-第四尊者,側坐屈三指,答胡人之問。下有蠻奴捧函,童子戲捕龜者。頌曰
彼問雲何,計數以對。為三為七,莫有知者。雷動風行,屈信指間。汝觀明月,在我指端。
-第五尊者,臨淵濤,抱膝而坐。神女出水中,蠻奴受其書。頌曰
形與道一,道無不在。天宮鬼府,奚往而礙。婉彼奇女,躍於濤瀧。神馬凥輿,攝衣從之。
-第六尊者,右手支頤,左手拊稚師子。顧視侍者,擇瓜而剖之。頌曰
手拊雛猊,目視瓜獻。甘芳之意,若達於面。六塵並入,心亦遍知。即此知者,為大摩尼。
-第七尊者,臨水側坐。有龍出焉,吐珠其手中。胡人持短錫杖,蠻奴捧缽而立。頌曰
我以道眼,為傳法宗。爾以願力,為護法龍。道成願滿,見佛不怍。盡取玉函,以畀思邈。
-第八尊者,並膝而坐,加肘其上。侍者汲水過前,有神人湧出於地,捧盤獻寶。頌曰
爾以舍來,我以慈受。各獲其心,寶則誰有。視我如爾,取與則同。我爾福德,如四方空。
-第九尊者,食已袱缽,持數珠,誦咒而坐。下有童子,構火具茶,又有埋筒注水蓮池中者。頌曰
飯食已異,袱缽而坐。童子茗供,吹龠發火。我作佛事,淵乎妙哉。空山無人,水流花開。
-第十尊者,執經正坐。有仙人侍女焚香於前,頌曰
飛仙玉潔,侍女雲眇。稽首炷香,敢問至道。我道大同,有覺無修。豈不長生?非我所求。
-第十一尊者,趺坐焚香。侍者拱手,胡人捧函而立。頌曰
前聖後聖,相喻以言,口如布谷,而意莫傳。鼻觀寂如,諸根自例。孰知此香,一炷千偈。
-第十二尊者,正坐入定枯木中,其神騰出於上,有大蟒出其下。頌曰
默坐者形,空飛者神。二俱非是,孰為此身?佛子何為?懷毒不已。願解此相,問誰縛爾。
-第十三尊者,倚杖垂足側坐。侍者捧函而立,有虎過前,有童子怖匿而竊窺之。頌曰
是與我同,不噬其妃。一念之差,墮此髬髵。導師悲湣,為爾顰嘆。以爾猛烈,復性不難。
-第十四尊者,持鈴杵,正坐誦咒。侍者整衣於右,胡人橫短錫跪坐於左。有虬一角,若仰訴者。頌曰
彼髯而虬,長跪自言。特角亦來,身移怨存。以無言音,誦無說法。風止火滅,無相仇者。
-第十五尊者,須眉皆白,袖手趺坐。胡人拜伏於前,蠻奴手持拄杖,侍者合掌而立。頌曰
聞法最先,事佛亦久。耄然眾中,是大長老。薪水井臼,老矣不能。摧伏魔軍,不戰而勝。
-第十六尊者,橫如意趺坐。下有童子發香篆,侍者註水花盆中。頌曰
盆花浮紅,篆煙繚青。無問無答,如意自橫。點瑟既希,昭琴不鼓。此間有曲,可歌可舞。
-第十七尊者,臨水側坐,仰觀飛鶴。其一既下集矣,侍者以手拊之。有童子提竹籃,取果實投水中。頌曰
引之浩茫,與鶴皆翔。藏之幽深,與魚皆沈。大阿羅漢,入佛三昧。俯仰之間,再拊海外。
-第十八尊者,植拂支頤,瞪目而坐。下有二童子,破石榴以獻。頌曰
植拂支頤,寂然跏趺。尊者所遊,物之初耶。聞之於佛,及吾子思。名不用處,是未發時。
-跋尾
佛滅度後,閻浮提眾生剛狠自用,莫肯信入。故諸賢聖皆隱不現,獨以像設遺言,提引未悟而峨眉、五臺、廬山、天台猶出光景變異,使人了然見之。軾家藏十六羅漢像,每設茶供,則化為白乳,或凝為雪花桃李芍藥,僅可指名。或云:羅漢慈悲深重,急於接物,故多現神變。倘其然乎?今於海南得此十八羅漢像,以授子由弟,使以時修敬,遇夫婦生日,輒設供以祈年集福,並以前所作頌寄之。子由以二月二十日生,其婦德陽郡夫人史氏,以十一月十七日生。是歲中元日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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