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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덕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 전등록 번역, 불경, 불교경전, 선문답, 화두 (2)

일이삼선생 2023. 6. 29.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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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덕전등록 제6권






남악南嶽 회양懷讓 선사의 법손

제1세 9인

강서江西 도일道一 선사[1인은 기록에 보임. 성이 마馬씨이므로 당    시에 마조馬祖라 불렸음.]
남악南嶽 상호常浩 선사
지달智達 선사
탄연坦然 선사
조주潮州 신조神照 선사
양주揚州 대명사大明寺 엄준嚴峻 선사
신라국新羅國 본여本如 선사
현성玄晟 선사
동무산東霧山 법공法空 선사
    [이상의 8인은 기연機緣할 어구語句가 없으므로 기록하지 않음]

제2세 37인[마조馬祖의 법손]

월주越州 대주大珠 혜해慧海 선사
홍주洪州 늑담산泐潭山 법회法會 선사
지주池州 삼산杉山 지견智堅 선사
홍주洪州 늑담泐潭 유건惟建 선사
예주澧州 명계茗谿 도행道行 선사
무주撫州 석공石鞏 혜장慧藏 선사
당주唐州 자옥산紫玉山 도통道通 선사
강서江西 북란北蘭 양讓 선사
낙경洛京 불광佛光 여만如滿 선사
원주袁州 남원南源 도명道明 선사
흔주忻州 역촌酈村 자만自滿 선사
낭주朗州 중읍中邑 홍은洪恩 선사
홍주洪州 백장산百丈山 회해懷海 선사[선문규식禪門規式에 부록한    이상의 13인은 기록에 보임]
호영鎬英 선사
숭태崇泰 선사
왕모산王姥山 소연翛然 선사
화주華州 복서사伏棲寺 책策 선사
예주澧州 송자탑松滋塔 지총智聰 선사
당주唐州 운수산雲秀山 신감神鑒 선사
양주揚州 서영사棲靈寺 지통智通 선사
항주坑州 지장智藏 선사
경조京兆 회도懷韜 선사
처주處州 법장法藏 선사
하중부河中府 회칙懷則 선사
상주常州 명간明幹 선사
악주鄂州 홍담洪潭 선사
상원象原 회탄懷坦 선사
노부潞府 청련靑蓮 원례元禮 선사
하중부河中府 보경保慶 선사
감천甘泉 지현志賢 선사
대회산大會山 도오道晤 선사
노부潞府 법유法柔 선사
경조京兆 함통사咸通寺 각평覺平 선사
의흥義興 승변勝辯 선사
해릉海陵 경운慶雲 선사
홍주洪州 개원사開元寺 현허玄虛 선사
    [이상의 23인은 기연할 어구가 없으므로 기록하지 않음]


회양懷讓 선사의 제1세

강서江西 도일道一 선사

그는 한주漢州의 십방什邡 사람으로서 성은 마馬씨이다. 용모가 기이하고, 행동은 소같이 느긋하였고 판단은 호랑이같이 날카로웠으며[牛行虎視], 혀를 내밀면 코를 덮고, 발바닥에는 두 개의 바퀴 무늬가 있었다. 어릴 때에 자주資州의 당唐 화상和尙에 의하여 스님이 되었고, 유주渝州의 원圓 율사律師에게 구족계를 받았다.
당나라 개원開元 때에 형악衡嶽의 전법원傳法院에서 선정을 익히다가 회양懷讓 화상을 만났는데, 같이 공부하는 아홉 사람 가운데서 대사만이 은밀히 심인心印을 이어받았다.[회양懷讓 밑의 도일道一은 마치 행사行思 밑의 희천希遷과 같으니, 같은 근원에서 다른 갈래로 퍼졌다. 그러므로 선법의 전성기가 두 대사에게서 시작되었다. 유가劉軻가 말하기를 “강서江西의 주인 대적大寂과 호남湖南의 주인 석두石頭가 서로 왕래하면서 아슬아슬하게 만나지 못한 것은, 두 대사가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인도의 반야다라般若多羅가 달마에게 예언하기를 “진단震旦이 넓어도 다른 길이 없고, 반드시 조카와 손자들이 발밑으로 지나갈 것이다. 금닭이 쌀 한 톨을 물어올 줄 알아서 시방의 아라한들에게 공양하리라”라고 하였다. 6조가 회양에게 예언하기를 “이후의 불법은 그대로부터 시작하여 망아지가 천하 사람을 다 밟아 죽이리라”고 하였는데, 당시 사람들이 마조馬祖라 불렀다.]
처음에는 건양현建陽縣의 불적령佛迹嶺에서 임천臨川으로 옮겨 왔다. 다음은 다시 남강南康의 공공산龔公山으로 왔다가 대력大歷 때에는 개원정사開元精舍에다 이름을 걸었다.
당시 대장군[連帥]인 노사공路嗣恭이 덕화를 전해 듣고 사모하다가 몸소 와서 종지를 받으니, 이로 말미암아서 사방의 학자들이 구름같이 그의 법좌 밑으로 모여들었다.
하루는 대중에게 말했다.
“여러분, 제각기 자기 마음이 부처임을 믿어라. 이 마음이 곧 부처의 마음이다. 달마 대사께서 남천축국南天竺國으로부터 몸소 중국에 오셔서 상승上乘인 일심의 법을 전하여서 그대들로 하여금 깨닫게 하셨고, 또 󰡔능가경楞伽經󰡕의 경문을 인용하여 중생의 심지心地를 인印하시니, 그대들이 뒤바뀌어서[顚倒] 스스로를 믿지 않을까 걱정했기 때문이다. 이 마음의 법은 제각기 갖고 있으니, 이 때문에 󰡔능가경󰡕에 말하기를 ‘부처님의 말씀은 마음을 종지[宗]로 삼고 문이 없음을 법문法門으로 삼는다’고 한 것이다.” 
또 말하였다. 
“무릇 법을 구하는 이는 마땅히 구하는 바가 없어야 한다. 마음 밖에 따로 부처가 없고, 부처 밖에 따로 마음이 없나니, 선을 취하지도 말고 악을 버리지도 말라. 더러움과 깨끗함의 양쪽에 모두 의존하지 않아서 죄의 성품이 본래 공함을 요달하면, 생각 생각마다 찾을 수 없나니, 자체의 성품이 본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삼계三界는 오직 마음뿐이요, 삼라만상森羅萬象은 한 법이 찍어낸[印] 바이다. 무릇 보이는 색色은 모두 그것을 보는 마음의 작용이지만, 마음 스스로 마음이라 하지 못하고 색色을 말미암기 때문에 마음이 있는 것이다. 그대들은 다만 때에 따라 말할지니, 그대로가 사事이고 그대로가 이理여서 결코 걸리는 바가 없다. 보리의 도과道果도 이와 마찬가지니, 마음에서 생겨난 것을 이름하여 색色이라 하는데, 색이 본래 공함을 알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 곧 생기는 것이 아니다. 만일 이 마음을 요달하면, 때에 따라 옷을 입고 밥을 먹으면서도 성인의 태胎를 기르면서 운運에 맡겨 세월을 보내게 되리니, 그밖에 다시 무슨 일이 있으랴? 그대들은 나의 가르침을 잘 받아들여라. 그리고 나의 게송을 들어라.”

심지心地에서 때에 따라 말하니
보리菩提도 또한 편안할 뿐이네.
사事와 이理에 둘 다 걸림이 없으면
생겨남에 당면해도 곧 생겨남이 아니네.
心地隨時說    菩提亦只寧
事理俱無礙    當生卽不生

어떤 스님이 물었다.
“화상은 어찌하여 마음이 곧 부처라 하십니까?”
대사가 대답했다.
“아기의 울음을 그치게 하기 위해서이니라.”
“울음을 그쳤을 때는 어찌합니까?”
“마음도 아니고 부처도 아니니라.”
“이 두 가지를 제외한 사람이 오면 어떻게 지시합니까?”
“그에게 물건도 아니라고 말하리라.”
“홀연히 그 속의 사람을 만나서 올 때는 어떠합니까?”
“그로 하여금 대도大道를 체득했다 하리라.”
“어떤 것이 조사가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바로 지금 그대의 뜻은 어떠한가?”

방龐 거사居士가 물었다.
“가령 물[水]은 뼈도 힘줄도 없는데 만 곡斛의 배를 감당할 수 있나니, 그 이치가 어떠합니까?”
“이 속에는 물도 없고 배도 없는데, 무슨 힘줄과 뼈를 말하는가?”

하루는 상당上堂하여 양구良久 ‘양구부대良久不對’의 줄임말로서 한참 동안 대답을 하지 않는다는 뜻. 즉 말없음으로 대답을 대신한다는 것이다.
를 하자, 백장百丈이 자리 앞의 방석을 거두었다. 대사는 문득 법당에서 내려왔다.
백장이 물었다.
“어떤 것이 불법의 취지趣旨입니까?”
“바로 그대의 몸과 목숨을 버릴 곳이다.”
대사가 다시 백장에게 물었다.
“그대는 어떤 법으로 사람들에게 보이는가?”
백장이 불자拂子를 번쩍 세우자, 대사가 말했다.
“그것뿐인가, 그밖에 또 있는가?”
백장이 불자를 던져 버렸다.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찌하여야 도에 합할 수 있습니까?”
대사가 대답했다.
“나는 일찍이 도에 합하지 않았다.”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조사가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그러자 대사는 문득 때리면서 말했다.
“내가 너를 때리지 않으면, 제방諸方에서 나를 비웃는다.”

어떤 젊은 스님이 행각行脚 길에서 돌아와 대사 앞에서 원상圓相을 그리고는 그 위에서 절을 하고 섰다. 대사가 말했다.
“너는 부처가 되고 싶은 것이 아니냐?”
그 스님이 대답했다.
“저는 눈을 비빌 줄 모릅니다.” 눈을 비비면 안구眼球에 자국이 가서 허공에 꽃이 보인다. 그러므로 선문답禪問答에서는 흔히 실實답지 못한 것을 비유할 때에 쓴다.

대사가 말하였다. 
“나는 너만 못하다.” 
젊은 스님이 대답을 못했다.

등은봉鄧隱峰이 대사를 하직하니, 대사가 물었다.
“어디로 가려는가?”
“석두石頭로 가겠습니다.”
“석두의 길은 미끄러우니라.”
“장대 하나를 지니고 다니다가 마당[場]을 만나면 한바탕 놀아보지요.”
그리고는 문득 떠났다. 석두에게 이르자, 선상禪床을 한 바퀴 돌고 석장을 한 번 흔들어 소리를 낸 뒤에 말했다.
“이게 무슨 종지요?”
석두가 말하였다.
“아이고[蒼天 슬프다고 통곡하는 소리로서 ‘아이고’라고 하는 의성어이다.
], 아이고.”
은봉이 말없이 바로 대사에게 돌아와서 이 사실을 이야기하니, 대사가 말했다.
“그대는 다시 가서 그가 ‘아이고’라고 말하는 것을 보거든, 그대는 얼른 ‘허허噓噓’ 하라.”
은봉이 다시 석두로 가서 앞서와 같이 물었다.
“이게 무슨 종지인 줄 알겠소?” 
그러자 석두가 먼저 “허허” 하고 말았다. 은봉은 또 말을 못하고 돌아오니, 대사가 말했다.
“그대에게 이미 석두의 길이 미끄럽다고 말했느니라.”

어떤 스님이 대사의 앞에다 네 획畫을 긋는데, 위의 하나는 길게 그리고 아래의 셋은 짧게 그리고서 물었다.
“하나는 길고 셋은 짧다 하지 말고, 이 네 글자를 여의고서 화상의 대답을 청합니다.”
그러자 대사가 땅에 한 획을 긋고 말했다.
“길다거나 짧다거나 말하지 말지니, 이것으로 그대에게 대답을 마친다.”[충忠 국사國師가 이 말을 듣고 따로 말하기를 “어찌 나에게 와서 묻지 않았을까?”라고 하였다.]

어떤 강사가 와서 물었다.
“선종에서는 어떤 법을 전해 갖습니까?”
대사가 도리어 물었다.
“좌주(坐主:講師의 尊稱)는 어떤 법을 전해 받아 지녔는가?”
강사가 대답했다.
“20여 부의 경전과 논서를 강의합니다.”
“그렇다면 스님은 사자아師子兒가 아니겠소?”
“외람됩니다.”
대사가 “허허” 하면서 소리를 내자, 그가 말했다.
“그것이 법法입니다.”
“무슨 법인가?”
“사자師子가 굴에서 나오는 법입니다.”
대사가 이내 잠자코 있으니, 그가 말했다.
“그것도 법입니다.”
“무슨 법인가?”
“사자가 굴속에 있는 법입니다.”
“나오지도 않고 들어가지도 않는 것은 무슨 법인가?”
그가 대답을 하지 못했다.[백장百丈이 대신 말하기를 “보셨소?”라고 하였다.] 마침내 하직하고 문을 나서는데, 대사가 “좌주여” 하고 불렀다. 그가 머리를 휙 돌리자, 대사가 물었다.
“그것은 무엇인가?”
그가 또 대답을 못하니, 대사가 말했다.
“이 우둔한 대사야.”

홍주洪州 염사廉使가 물었다.
“제자는 술과 고기를 먹어야 하겠습니까, 먹지 않아야 하겠습니까?”
대사가 말했다.
“먹는다면 정승[中丞]의 녹祿이요, 먹지 않는다면 정승의 복福이다.”
대사에게 입실한 제자가 139명인데, 제각기 한 지방에서 종주宗主가 되어서 한량없는 교화를 폈다.

정원貞元 4년 정월에 건창建昌의 석문산石門山에 올라가서 숲 속을 거닐다가 골짜기의 평탄한 곳을 보고는, 시자에게 말하였다. 
“나의 썩을 몸이 다음 달에 이곳에 귀속하리라.” 
말을 마치고는 이내 돌아왔는데, 2월 4일이 되자 과연 가벼운 질병이 생기더니, 목욕을 마치고는 가부좌를 틀고 앉아 열반에 들었다. 원화元和 때에 대적大寂 선사라는 시호를 추증하였고, 탑호塔號를 대장엄大莊嚴이라 하였는데, 지금도 해혼현海昏縣에 영당影堂이 있다.[󰡔고승전󰡕에는 대각大覺 선사라 하였다. 권덕여權德輿가 지은 탑비명塔碑銘에 “마조는 개원사開元寺에서 열반에 들었다. 석문石門에서 다비를 한 뒤에 탑을 세웠다. 회창사태會昌沙汰가 지나간 뒤 대중大中 4년 7월에 선종宣宗이 강서江西 관찰사 배휴裵休에게 조칙을 내려 탑과 비를 다시 짓게 하고, 절 이름을 보봉寶峰이라 했다”라고 하였다.]


회양懷讓 선사의 제2세 ①-마조馬祖의 법손

월주越州 대주사大珠寺 혜해慧海 선사

그는 건주建州 사람으로서 성은 주朱씨인데, 월주越州 대운사大雲寺의 도지道智 화상에게 업을 받았다.
처음에 강서江西로 가서 마조馬祖를 뵈었는데, 마조가 물었다.
“어디서 왔는가?”
“월주 대운사에서 왔습니다.”
“여기 와서 무엇을 구하려는가?”
“불법佛法을 구하러 왔습니다.”
“자기 집안의 보배 창고는 돌아보지 않고 집을 버린 채 사방을 다니면서 무엇을 하려는가? 나에게는 한 물건도 없는데 어찌 불법을 구하겠는가?”
대사가 드디어 절을 하고 물었다.
“어떤 것이 혜해慧海의 자기 집안의 보배 창고입니까?”
마조가 대답했다.
“바로 지금 나에게 묻는 것이 그대의 보배 창고이다. 온갖 것이 구족하여 조금도 모자람이 없어서 자유로이 사용할 수 있으니, 어찌하여 밖에서 구하려 하는가?” 
대사가 그 말끝에 근본 마음은 앎이나 지각을 말미암지 않음을 바로 알아채고는, 뛸 듯이 기뻐하면서 절하고 사례하였다. 그리하여 대사는 6년 동안 시봉을 한 후에 업을 받았다. 
은사의 나이가 연로하자 급히 돌아가서 봉양했는데, 활동의 자취를 감춘 채 겉으로는 바보인 척하면서 스스로 󰡔돈오입도요문론頓悟入道要門論󰡕 한 권을 지었다. 그러나 그것을 조카 상좌인 현안玄晏이 훔쳐다가 마조에게 갖다 바치니, 마조가 보고 나서 대중에게 말했다.
“월주에 큰 구슬[大珠]이 있는데, 둥글고 밝은 광명이 자유로이 비추어서 막히는 곳이 없다.”
무리 가운데 대사의 성이 주朱씨임을 아는 자가 있었는데 이로 인해 서로 알게 되어서, 도반을 지어 가지고 앞을 다투어 월주로 가서 의지하고 따르려고 했다.[이때에 대주大珠 화상이라 불렀다는데, 마조가 대중에게 한 말에 의한 것이다.] 이에 대사가 말했다.
“선객禪客들이여, 나는 선禪을 모릅니다. 따라서 한 법도 남에게 보일 만한 것이 없으니, 그대들 너무 오래 서서 헛수고를 마시오. 자, 각자 쉬어 가기나 하시오.”
당시 배우는 자들이 점점 늘어서 밤낮으로 간절하게 법을 물으니, 마지못하여 물음에 따라 대답을 하였는데 그 변재辯才가 막힘이 없었다.[자세한 내용은 다른 권에 나온다.]
이때에 법사 몇 사람이 와서 뵙고 말했다.
“한 가지 묻겠는데 대답해 주시겠습니까?”
대사가 대답했다.
“깊은 못에 달그림자를 마음대로 건져라.”
“어떤 것이 부처입니까?”
“맑은 못에 얼굴을 비추어 보라. 그것이 부처가 아니고 무엇이랴?”
대중들이 모두 망연했다.[법안法眼이 말하기를 “이는 상대할 수가 없구나”라고 하였다.] 
한참 묵묵히 있다가 그 스님이 또 물었다.
“스님은 어떤 법으로 사람들을 제도하십니까?”
“나는 일찍이 어떤 법으로도 사람을 제도한 적이 없다.”
“선사들은 모두가 이렇게 흐리멍덩하군요.”
대사가 도리어 물었다.
“대덕大德은 어떤 법으로 사람을 제도하는가?”
그 스님이 대답했다.
“󰡔금강반야경󰡕을 강의합니다.”
“몇 번이나 강했는가?”
“20여 번이나 강했습니다.”
“그 경은 누가 말한 것인가?”
그 스님이 소리를 높여 말했다.
“선사는 사람을 조롱하는 것이오? 어찌 부처님의 말씀인 줄 모른단 말이오?”
대사가 말했다.
“만일 여래가 설한 법이 있다고 말한다면 이는 부처를 비방하는 것이니, 이 사람은 내가 설한 뜻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그러나 이 경을 부처님의 말씀이 아니라고 해도 이는 경을 비방하는 것이다. 대덕은 말을 해보라.”
그 스님이 대답이 없었다. 조금 있다가 대사가 물었다.
“경에 말하기를 ‘만일 빛깔로써 나를 찾거나 음성으로 나를 구하면, 이 사람은 삿된 도를 행하는 것이라서 여래를 볼 수가 없다’고 하였으니, 대덕은 말해 보라. 어느 것이 여래인가?”
그 스님이 대답했다.
“저는 이 부분에 대해서는 오히려 잘 모르겠습니다.”
“본래부터 깨닫지도 못했거늘, 무엇을 오히려 잘 모르겠다고 하는가?”
그 스님이 다시 청했다.
“선사께서 자세히 설명해 주십시오.”
대사가 말했다.
“대덕은 󰡔반야경󰡕을 20여 회나 강했다면서 아직도 여래를 모르다니.”
그 스님이 다시 절을 하면서 설명해 주기를 청하자, 대사가 말했다.
“여래라는 것은 모든 법의 여실한 이치라 했는데, 어찌하여 잊었는가?”
“그렇습니다. 모든 법의 여실한 이치입니다.” 
“대덕이 그렇다는 것은 그렇지가 않다.”
“경문이 분명히 그렇거늘 어찌 그렇지 않습니까?”
“대덕은 그러한가[如]?”
“예, 그러합니다.”
“목석木石도 그러한가?”
“그러합니다.”
“대덕의 그러함은 목석의 그러함과 동일한가?”
“다름이 없습니다.”
“대덕과 목석은 어떻게 구별하는가?”
그 스님이 대답이 없었다. 한참 있다가 선뜻 물었다.
“어찌하여야 대열반을 증득합니까?”
“생사의 업을 짓지 말아야 한다.”
“어떤 것이 생사의 업입니까?”
“큰 열반을 구하는 것이 생사의 업이며, 더러움을 버리고 깨끗함을 취하는 것이 생사의 업이며, 얻음도 있고 증명함도 있는 것이 생사의 업이며, 대치문對治門 수행해서 번뇌를 없애려는 것을 말한다.
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 생사의 업이니라.”
“어찌하여야 해탈을 얻겠습니까?”
“본래 스스로 속박이 없으니 해탈을 구할 필요가 없다. 곧바로 사용하고 곧바로 행함이 바로 무등등無等等의 경지이다.”
그 스님이 말했다.
“선사 같은 화상은 실로 드무신 분입니다.”
그리고는 절을 하고 물러갔다.

어떤 행자가 물었다.
“마음이 곧 부처라 하였는데, 어떤 것이 부처입니까?”
대사가 대답했다.
“그대는 어느 것이 부처가 아니라고 의심하는가? 지적해 보라.”
그가 대답이 없으니, 대사가 말했다.
“통달하면 전체 경계가 이러하고, 깨닫지 못하면 영원히 어긋난다.”

법명法明이라는 율사가 와서 대사에게 말했다.
“선사들은 공空에 떨어지는 경우가 많더군요.”
대사가 말했다.
“도리어 좌주坐主들이 공에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
법명이 깜짝 놀라서 말했다.
“어째서 공에 떨어졌다고 하십니까?”
대사가 말했다.
“경전과 논서는 종이와 먹으로 된 문자이다. 종이와 먹, 문자는 모두가 공하나니, 소리 위에다 이름[名]과 구절[句] 따위를 건립한 것이라서 공이 아닌 것이 없다. 좌주들은 그러한 교체(敎體:글자와 문구)에 집착하고 있으니, 어찌 공에 떨어지지 않겠는가?”
“선사는 공에 떨어지지 않았습니까?”
“공에 떨어지지 않았다.”
“어째서 공에 떨어지지 않았습니까?”
“문자 따위는 모두가 지혜에서 생기니, 이처럼 대용(大用:활용)이 나타났거늘 어찌 공에 떨어졌다 하겠는가?”
법명이 말했다.
“그러므로 한 법이라도 통달치 못한 것이 있으면 실달悉達이라 하지 못합니다.”
대사가 말했다.
“율사는 공에 떨어졌을 뿐만 아니라, 낱말과 언어도 잘못 쓰고 있구나.”
법명이 정색을 하면서 물었다. 
“어디가 틀렸습니까?” 
대사가 다시 말했다.
“율사는 중국과 인도의 말을 분별하지도 못하거늘, 어찌 율문을 강의했는가?”
“선사께서 법명의 잘못된 곳을 지적해 주십시오.”
“실달悉達이라는 말이 범어梵語인 줄 모르는가?”
율사가 속으로는 잘못을 깨달았으나, 오히려 분한 생각이 남아서[범어梵語로 살바갈랄타실타薩婆曷剌他悉陀이고, 중국말로는 ‘모든 뜻이 이루어짐<一切義成>’이라고 한다. 구본에는 실달다悉達多라 했다. 여기에 쓰인 실달悉達은 잘못 생략된 범어이다.] 다시 물었다.
“경ㆍ율ㆍ논은 부처님의 말씀이건만, 읽고 외우고 가르침에 의지하고 받들어 행하는 이들이 어찌하여 성품을 보지 못하겠습니까?”
대사가 대답했다.
“미친개는 흙덩이를 쫓지만 사자는 사람을 무는 것과 같나니, 경ㆍ율ㆍ논은 자성自性의 작용이요, 읽고 외우는 것은 성품의 법일 뿐이다.”
법명이 다시 물었다.
“아미타불阿彌陀佛도 부모와 성姓이 있습니까?”
“아미타의 성은 교시가憍尸迦요, 아버지의 이름은 월상月上이요, 어머니의 이름은 수승묘안殊勝妙顔이다.”
“어떤 경전에 있는 말입니까?”
“다라니집陀羅尼集에 있다.”
법명이 절을 하고는 찬탄하면서 물러갔다.
어떤 삼장三藏 법사가 와서 물었다.
“진여眞如에도 변역變易이 있습니까?”
대사가 대답했다.
“변역이 있고 말고.”
삼장이 말했다.
“선사는 잘못 알고 계시는군요.”
대사가 도리어 삼장에게 물었다.
“진여가 있는가?”
“있지요.”
“만약 변역이 없다고 한다면, 그는 반드시 평범한 승려일 것이다. 듣지 못했는가? 선지식은 3독毒을 돌이켜 3취정계聚淨戒로 삼고, 6식識을 돌이켜 6신통神通으로 삼고, 번뇌를 돌이켜 보리를 이루고, 무명을 돌이켜 대지大智로 삼는다. 만약 진여에 변역이 없다면, 삼장은 진실로 자연외도自然外道 모든 현상은 어떠한 원인이 있어 이루어지지 아니하고 저절로 생긴다는 삿된 견해를 가진 외도外道를 말한다. 
로다.”
삼장이 말했다.
“그렇다면 진여에 변역이 있습니까?”
대사가 대답했다.
“진여에 변역이 있다고 집착하면, 그것도 외도이니라.”
“선사는 아까는 진여에 변역이 있다고 하시더니, 지금은 또 변역이 없다고 하시니, 어떤 것이 확실한 말씀입니까?”
“만일 똑똑히 성품을 본 이라면 마니주摩尼珠에 빛깔이 나타나는 것과 같아서 변한다고 해도 무방하고 변하지 않는다고 하여도 맞지만, 성품을 보지 못한 사람은 진여가 변한다는 말을 들으면 문득 변한다는 견해를 짓고, 변하지 않는다는 말을 들으면 문득 변하지 않는다는 견해를 짓는다.”
삼장이 말했다.
“남종南宗은 진실로 헤아릴 수 없다는 것을 이제야 알겠구나.”

어떤 도류(道流:도교 사람)가 와서 물었다.
“세간에 자연自然보다 더한 법이 있습니까?”
대사가 대답했다.
“있다.”
“어떤 법이 더합니까?”
“능히 자연을 아는 것이니라.”
“그러면 원기元氣가 도입니까?”
“원기는 원기이고, 도는 도이니라.”
“만약 그렇다면 마땅히 두 길이 있겠습니다.”
“앎에는 두 사람이 없다.”
그가 또 물었다.
“어떤 것이 삿됨이고, 어떤 것이 올바름입니까?”
대사가 대답했다.
“마음이 물건을 따르면 삿됨이요, 물건이 마음을 따르면 올바름이다.”

원源 율사律師라는 이가 와서 물었다.
“화상께서도 도를 닦으실 때 공력을 쓰십니까?”
“공력을 쓴다.”
“어떻게 공력을 쓰십니까?”
“배고프면 밥을 먹고, 피곤하면 잠을 잔다.”
“모든 사람들이 다 그러하니, 스님과 똑같이 공력을 쓴다고 하겠습니다.”
“똑같지 않다.”
“왜 똑같지 않습니까?”
“그들은 밥을 먹을 때도 그냥 밥을 먹지 않고 온갖 분별을 따지며, 잠을 잘 때도 그냥 잠을 자지 않고 갖가지 계교計校를 일으키기 때문에, 똑같지 않은 것이다.”
율사가 말문이 막혔다.

온광韞光 대덕大德이라는 이가 와서 물었다.
“선사께서는 내생에 태어날 곳을 스스로 알고 계십니까?”
대사가 대답했다.
“아직 죽지도 않았는데, 어찌 태어남을 논할 필요가 있겠는가? 생겨남이 곧 생겨남이 없는 법인 줄 알면, 생겨남을 여읜 법에는 ‘생겨남이 없다’고 설할 수 없느니라. 조사께서도 말씀하시기를 ‘생겨남에 당면하여 곧 생겨나지 않은 것이다’라고 하셨다.”
“성품을 보지 못한 이도 그럴 수 있습니까?”
“스스로 성품을 보지 못한 것이지 성품이 없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보는 것이 곧 성품이요, 성품이 없으면 능히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식識이 곧 성품이기 때문에 이름하여 식識의 성품이라 하고, 요달하는 것이 곧 성품이므로 요달하는 성품이라 부르고, 만법을 능히 내므로 법의 성품이라 부르고 또는 법신法身이라 이름하기도 한다. 마명馬鳴 조사祖師께서 말씀하시기를 ‘법이라 함은 중생심衆生心을 말함이다’라고 했으니, 마음이 생겨나기 때문에 온갖 법이 생겨나고, 마음이 생겨나지 않으면 온갖 법도 그에 따라 생겨남이 없고 또한 이름조차도 없다. 그러나 미혹한 사람은 법신이 본래 사상事象이 없으나 사물에 감응하여 형상을 나타내는 것을 모르기 때문에, 마침내 푸르디푸른 대숲을 보고는 모두 법신이라 부르고, 울창하고 울창한 황화黃華는 반야 아님이 없다고 한다. 황화가 반야라면 반야는 곧 무정물과 같을 것이요, 푸른 대가 법신이라면 법신은 곧 초목과 같을 것이다. 가령 어떤 사람이 죽순竹筍을 먹으면 결국 법신을 먹는 것이라고 해야 하리니, 이런 말을 어찌 들어둘 필요가 있겠는가? 마주 대하고서도 부처를 미혹해서 오랜 겁에 걸쳐 희구希求하고, 전체의 법[全體法] 속에서 미혹하여 밖으로 향하여 찾는구나. 그러므로 도를 아는 이는 다니나 앉으나 누우나 모두가 도요, 법을 깨달은 이는 가로 세로 자유로이 하여도 법 아님이 없다.”
대덕이 또 물었다.
“허공이 능히 신령한 지혜[靈智]를 내는 것입니까? 참 마음[眞心]은 선과 악에 반연됩니까? 탐욕을 부리는 사람도 도입니까? 옳고 그름에 집착하는 사람도 나중에 마음이 통하겠습니까? 경계에 저촉하여 마음을 내는 사람에게도 선정이 있습니까? 적막에 머무는 사람에게 지혜가 있습니까? 남에게 오만한 생각을 품은 사람에게 내[我]가 있습니까? 공空과 유有에 집착한 사람에게 지혜가 있습니까? 글귀를 따지면서 증득하기를 구하는 사람, 고행으로 부처를 구하는 사람, 마음을 여의고 부처를 구하는 사람, 마음에 집착함이 부처라고 하는 사람, 이런 사람들의 지혜도 도道라고 하겠습니까? 선사께서 낱낱이 말씀해 주십시오.”
대사가 대답했다.
“허공은 신령한 지혜를 내지 못하고, 참 마음은 선과 악을 반연하지 않고, 탐욕이 깊은 이는 근기가 얕고, 시비를 다투는 이는 미처 통하지 못하고, 경계에 저촉하여 마음을 내는 자는 선정이 적고, 적막에 빠져서 기틀을 잊은 자는 지혜가 침체되고, 남에게 오만하여 도도한 생각을 품는 이는 나라는 생각이 강하고, 공과 유를 집착하는 이는 모두 어리석고, 글귀를 따져서 증득하려고 하는 이는 더욱 막히고, 고행으로 부처를 구하는 이는 모두 미혹하고, 마음을 여의고서 부처를 구하는 이는 외도이고, 마음을 집착하여 부처라 하는 이는 마귀이다.”
대덕이 다시 말했다.
“그렇다면 필경에는 있는 바가 없겠습니다.”
대사가 말했다.
“필경에는 그렇다. 그러나 대덕에게는 필경 있는 바가 없는 것이 아니리라.”
대덕이 뛸 듯이 기뻐하면서 절하고 물러갔다.[구본舊本에는 이  다음에 홍주洪州 백장산百丈山 유정惟政 선사의 전기가 있었는데, 여기서는 제9권 백장산 회해懷海 화상 밑으로 옮겨 기록한다.]

홍주洪州 늑담泐潭 법회法會 선사

마조馬祖에게 이렇게 물었다.
“어떤 것이 조사께서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마조가 대답했다.
“소리를 낮춘 채 앞으로 다가 오라.”
대사(법회)가 문득 앞으로 다가가자, 마조가 주먹으로 한 대를 치면서 말했다.
“귀가 여섯이어서 함께 모의를 할 수 없으니, 내일 오라.”
이튿날 대사가 여전히 법당으로 찾아가서 말했다.
“스님, 말씀해 주십시오.”
마조가 말했다.
“그냥 갔다가 이 늙은이가 법상에 오르거든 나와라. 그대에게 증명해 주리라.”
이 말끝에 깨닫고 말했다.
“대중 스님들께서 증명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는 법당을 한 번 돌고서 물러갔다.

지주池州 삼산杉山 지견智堅 선사

처음에는 귀종歸宗, 남전南泉과 더불어 행각을 하다가 길에서 호랑이를 만났다. 제각기 호랑이 곁을 지나가는데, 남전이 귀종에게 물었다.
“아까 본 호랑이가 무엇 같던가요?”
귀종이 말했다.
“마치 고양이 같더군요.”
그리고는 귀종이 다시 대사(지견)에게 물으니, 대사가 대답했다.
“마치 개 같더군요.”
귀종이 또 남전에게 물으니, 남전이 대답했다.
“내가 보기에는 큰 벌레 같았습니다.”

대사가 밥을 먹으려는데, 남전이 생반生飯을 거두면서 “생겼다[生]”고 하니, 대사가 말했다.
“생겨남이 없소[無生].”
남전이 말했다.
“생겨남이 없다 해도 여전히 끄트머리[末]오.”
그리고 남전이 몇 걸음 걸어가자, 대사가 불렀다.
“스님, 스님.” 
남전이 고개를 돌리면서 말했다.
“왜 그러시오?” 
대사가 말했다.
“끄트머리라고도 하지 마시오.”

어느 날 울력[普請]으로 고사리나물을 다듬다가 남전이 한 가닥을 치켜들면서 말했다. 
“이거 아주 좋은 공양거리로구나.”
대사가 말했다.
“그것뿐 아니라 백미진수百味珍羞라도 그는 돌아보지 않습니다.”
남전이 말했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하나하나 맛을 보아야 그가 비로소 얻는다.”[현각玄覺이 말하기를 “이것이 서로 보고서 한 말인가, 서로 보지 않고 한 말인가?”라고 하였다.]

어떤 스님이 와서 물었다.
“어떤 것이 본래의 몸입니까?”
대사가 대답했다.
“온 세상에 비슷한 것이 없다.”

홍주洪州 늑담泐潭 유건惟建 선사

어느 날 마조馬祖의 법당 뒤에서 좌선을 하는데, 마조가 보고는 대사(유건)의 귀를 두 번 불었다. 대사가 선정에서 깨어나 화상인 줄 알자 다시 선정에 들었다. 마조가 방장실로 돌아가서 시자를 시켜 차 한 잔을 대사에게 보냈는데, 대사는 돌아보지도 않고 문득 법당으로 돌아갔다.

예주澧州 명계茗谿 도행道行 선사

어느 때 대사(도행)가 말했다.
“나에게 큰 병이 있는데, 세상의 의사는 고칠 수 없다.”
나중에 어떤 스님이 우선 조산曹山에게 물었다.
“듣건대 옛사람이 말하기를 ‘나에게 큰 병이 있으니, 세상 의원들은 고치지 못한다’고 하였다는데, 그것이 무슨 병입니까?”
조산曹山이 말했다.
“약이나 수술로는 고치지 못하는 것이니라.”
“온갖 중생들도 모두 이 병이 있습니까?”
“사람마다 다 있느니라.”
“화상도 이런 병이 있습니까?”
“일어난 곳을 바로 찾았지만 찾을 수가 없다.”
“어찌하여 온갖 중생들은 병이 있는데도 아파하지 않습니까?”
“중생들이 아파한다면 중생이 아니니라.”
“그렇다면 부처님들도 이런 병이 있습니까?”
“있다.”
“있다면 어찌하여 병을 앓지 않습니까?”
“그가 또랑또랑하기 때문이니라.”
어떤 스님이 와서 물었다.
“어떻게 수행해야 합니까?”
대사가 말했다.
“이 어진 대사야, 공연한 짓을 말라[莫客作].”
“끝내 어찌 됩니까?”
“그대로 두면 곧 감당하지 못하게 된다.”

또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올바른 수행의 길입니까?”
대사가 대답했다.
“열반 뒤의 유有이다.”
“어떤 것이 열반 뒤의 유有입니까?”
“얼굴을 닦지 않는 것이니라.”
“학인은 알지 못하겠습니다.”
“닦을 얼굴이 없느니라.”



무주撫州 석공石鞏 혜장慧藏 선사

그는 본래 사냥[弋獵]으로 업을 삼으면서 사문沙門을 몹시 미워하고 있었다. 하루는 사슴 떼를 쫓아서 마조馬祖의 암자 앞을 지나게 되었다.
마조가 맞이하자, 사냥꾼이 물었다.
“화상께서는 사슴이 지나는 것을 보셨습니까?”
마조가 도리어 물었다.
“그대는 무엇 하는 사람인가?”
“사냥꾼입니다.”
“활을 쏠 줄 아는가?”
“쏠 줄 압니다.”
“화살 하나로 몇 마리나 맞추는가?”
“화살 하나로 한 마리를 맞춥니다.”
“그렇다면 그대는 활을 쏠 줄 모른다.”
“그러면 화상께서는 활을 쏠 줄 아십니까?”
“쏠 줄 안다.”
“스님은 화살 하나로 몇 마리나 맞추십니까?”
“화살 하나로 한 무리[一群]를 다 맞힌다.”
“이쪽이나 저쪽이나 모두 생명인데, 한 무리를 쏠 필요가 있겠습니까?”
“그대가 이미 그런 줄 안다면, 어찌하여 스스로를 쏘지 않는가?”
“저로 하여금 스스로를 쏘라고 하시면, 손을 댈 곳이 없습니다.”
“이 사내의 광겁曠劫에 걸친 무명 번뇌가 오늘에야 단박에 쉬었구나.”
혜장慧藏이 즉시 활과 화살을 부숴 버리고 자기 손으로 머리를 깎아 마조의 제자가 되었다.
하루는 부엌에서 일을 하는데, 마조가 와서 물었다.
“무엇을 하는가?”
“소를 먹입니다.”
“소를 어떻게 먹이는가?”
“한 번 풀밭으로 들어가면 얼른 콧구멍을 잡아서 끌어옵니다.”
“그대는 참으로 소를 잘 먹이는구나.”
대사는 문득 쉬었다. 대사가 주석한 후에는 항상 활과 살을 가지고 여러 학인들을 지도하였다[接機].[삼평화상장三平和尙章에서 말한 것과 같다.]

대사가 서당西堂에게 물었다.
“그대는 허공을 잡을 줄 아는가?”
서당이 대답했다.
“잡을 수 있습니다.”
“어떻게 잡는가?”
서당이 손으로 허공을 더듬으니, 대사가 물었다.
“그런 식으로 어떻게 허공을 잡겠는가?”
서당이 도리어 물었다.
“사형師兄은 어떻게 잡으시렵니까?”
대사가 서당의 콧구멍을 잡아끄니, 서당이 아파하는 소리를 내면서 말했다.
“아이코 죽겠소. 남의 콧구멍을 잡아당겨서 빠지게 할 작정이시오?”
대사가 말했다.
“바로 이렇게 허공을 잡아야 된다.”

여러 스님들이 뵈러 왔을 때에 대사가 말했다.
“아까 왔던 것이 어디로 갔는가?”
어떤 스님이 말했다.
“있습니다.”
대사가 말했다.
“어디에 있는가?”
그 스님이 손가락을 한 번 튀겼다.
어떤 스님이 와서 절을 하자, 대사가 말했다.
“그것을 가지고 왔는가?”
그 스님이 대답했다.
“가지고 왔습니다.”
“어디에 있는가?”
그 스님이 손가락을 세 번 튀기고는 물었다.
“어찌하여야 생사를 면하겠습니까?”
“면해서 무엇 하려는가?”
“어떻게 해야 면하겠습니까?”
“이것은 태어나지도 죽지도 않는다.”

당주唐州 자옥산紫玉山 도통道通 선사

그는 여강廬江 사람으로서 성은 하何씨이다. 어릴 때에 아버지의 벼슬길을 따라 천주泉州의 남안현南安縣에 갔다가 출가하였다.
당唐나라 천보天寶 때에 마조馬祖가 건양建陽에서 교화를 펴면서 불적암佛迹巖에 살았는데, 대사(도통)가 찾아가서 뵈었고, 이어서 남강南康의 공공산龔公山으로 옮기자 대사도 따라갔다.
정원貞元 4년 2월 초에 마조가 열반에 들려고 하면서 대사에게 말하였다. 
“옥석玉石이 윤택하고 산이 수려하면 그대의 도업道業을 이롭게 하리니, 만나거든 거기서 살아라.” 
그러나 대사는 그 말을 이해하지 못하였다.
그 해 가을에 복우산伏牛山의 자재自在 선사와 함께 낙양洛陽에 갔다가 다시 당주唐州로 돌아와서 서쪽의 어느 산을 보니, 사방이 깎아지른 듯하고 봉우리가 매우 수려해서 마을 사람에게 물어보니 자옥산紫玉山이라 하였다. 대사가 산봉우리에 올라가 보니, 네모반듯한 돌이 있었는데 자줏빛이 환하게 비치고 있었다. 대사가 찬탄하면서 “이것이 그 자옥紫玉이구나”라고 하면서, 비로소 선사先師의 말씀이 무엇을 예언하였는지 알았다. 그리하여 풀 덩굴을 베어 버리고 초막을 지어서 살기 시작하니, 나중에 배우는 무리들이 사방에서 모여들었다.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찌하여야 삼계를 벗어나겠습니까?”
대사가 대답했다.
“그대가 그 속에 얼마나 있었는가?”
그 스님이 다시 물었다.
“어떻게 벗어나겠습니까?”
“청산은 흰 구름이 날아가는 것을 막지 않는다.”

우적于頔 상공相公이 물었다.
“어떤 것이 심한 바람이 선박船舶을 불어 날려서 나찰 귀신의 나라에 떨어지게 하는 것입니까?”
대사가 대답했다.
“객지에서 헤매는 우적이여, 그런 일은 물어서 무엇 하리오?”
우적이 깜짝 놀라니, 대사가 그를 가리키면서 말했다.
“이것이 문득 나찰의 귀신 나라에 빠지는 것이다.”
우적이 다시 물었다.
“어떤 것이 부처입니까?”
대사가 우적을 부르자, 우적이 “네” 하고 대답을 했다. 이에 대사가 말했다.
“다시는 다른 것을 구하지 말라.”[어떤 스님이 약산藥山에게 이 일을 이야기하니, 약산이 말하기를 “그 승려를 죽여 버렸어야 한다”라고 하였다. 그 스님이 말하기를 “화상께서는 어찌하시겠습니까?”라고 하니, 약산이 그 스님을 불렀고, 그 스님이 대답하니 “그것이 무엇인가?”라고 하였다.]

원화元和 8년에 제자인 금장金藏이 백장百丈 화상에게 갔다가 돌아와서 뵈니, 대사가 말했다.
“그대가 왔으니, 이 산에도 주인이 생겼구나.”
그리고는 금장에게 부촉하고 나서 지팡이를 짚고 길을 나서니, 양주襄州의 승속이 모두 환영하였다. 7월 15일이 되자 병 없이 임종하니, 수명은 83세였다.


강서江西 북란北蘭 양讓 선사

호당湖塘의 양亮 장로長老가 물었다.
“듣건대 사형師兄께서 선사先師의 참모습을 그대로 그려냈다고 하던데, 잠시 뵈옵게 해주십시오.”
대사가 두 손으로 가슴을 헤치고 드러내 보이자, 양 장로가 문득 절을 하였다. 대사가 말했다.
“절하지 말라, 절하지 말라.”
양 장로가 말했다.
“사형, 잘못 아셨습니다. 저는 사형께 절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대사가 말했다.
“그대는 선사의 참모습에 절을 한 것이 아닌가?”
“그런데 어째서 저더러 절을 하지 말라고 하십니까?”
“언제 틀렸다고 했는가?”

낙경洛京 불광佛光 여만如滿 선사[과거에 오대산五臺山          금각사金閣寺에 산 적이 있었다.]

당唐의 순종順宗이 물었다.
“부처님께서는 어디서 오셨으며, 멸진滅盡하면 어디로 가십니까? 항상 세간에 머문다고 말한다면, 부처님께서는 지금 어디에 계시오?”
대사가 대답했다.
“부처는 무위無爲로부터 오고, 멸진하면 무위를 향해 갑니다. 법신은 허공과 같아서 항상 무심한 곳에 존재하며, 유념有念은 무념無念으로 돌아가고 유주有住는 무주無住로 돌아가며, 오는 것도 중생을 위하여 오고 가는 것도 중생을 위해 갑니다. 청정한 진여의 바다는 담연湛然해서 체體가 항상 머무르니, 지혜로운 이는 잘 생각해서 다시는 의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황제가 또 물었다.
“부처님께서는 왕궁에서 태어나셨고 쌍림雙林에서 열반에 드셨으며, 세상에는 49년을 머무셨다 하였고, 또 법을 설한 적이 없다고 말씀하셨소. 산하山河와 대해大海와 천지天地와 일월日月도 때가 되면 모두 다 사라지니, 누군들 생멸하지 않는다고 말하겠소? 의혹의 망정이 이와 같으니, 지혜로운 분께서 잘 분별해 주시오.”
대사가 대답했다.
“부처의 체體는 본래 무위이지만 미혹한 정情이 망령되게 분별하며, 법신은 허공과 같아서 일찍이 생멸한 적이 없습니다. 인연이 있으면 부처는 세간에 나타나고, 인연이 없으면 부처는 열반에 드나니, 곳곳에서 중생을 교화함이 마치 물속의 달과 같습니다. 따라서 항상하지도 않고 단멸斷滅하지도 않고, 생겨나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나니, 생겨나도 일찍이 생겨난 적이 없고 멸해도 일찍이 멸한 적이 없습니다. 무심無心의 경지를 완전히 깨달으면, 자연히 법을 설함도 없습니다.”
황제가 이 말을 듣고 매우 기뻐하여 선종禪宗을 더욱 소중히 여겼다.

원주袁州 남원南源 도명道明 선사

상당上堂하여 말했다.
“빨리 달리는 말은 한 번의 채찍으로 알고, 명민한 사람은 한마디의 말로 깨닫는다. 일이 있으면 어찌 머리를 내밀지 않는 것이며, 일이 없으면 제각기 스스로 진중珍重 헤어질 때 쓰는 인사말이다.
하라.”
그리고는 법당에서 내려왔다.
어떤 스님이 물었다.
“한마디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대사(도명)가 곧 혀를 내밀면서 말했다.
“나에게 광장설상廣長舌相이 생기기를 기다렸다가 그대에게 말해 주리라.”

동산洞山이 뵈러 와서 바야흐로 법당으로 들어오려는데, 대사가 말했다.
“이미 다 보았다.”
동산이 문득 내려가 버렸다. 이튿날 다시 법당에 올라와서 물었다.
“어제는 화상의 자비를 입었습니다만, 어느 곳이 저와 더불어 이미 다 본 곳인지를 모르겠습니다.”
대사가 대답했다.
“마음 마음에 간단間斷이 없으면 성품의 바다로 흘러 들어간다.”
동산이 말했다. 
“하마터면 놓칠 뻔하였습니다.” 
동산이 하직을 하자, 대사가 말했다.
“불법을 많이 배워서 이로운 일을 많이 하라.”
“불법을 많이 배운다는 것은 묻지 않겠으나, 어떤 것이 이로운 일을 많이 하는 것입니까?”
“한 물건도 어기지 않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부처입니까?”
“그대에게 말할 수 없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흔주忻州 역촌酈村 자만自滿 선사

상당上堂하여 말했다.
“예나 지금[古今]이나 다름없이 본래 그대로 변함없으니[法爾如然], 다시 무엇 하겠는가? 비록 그렇다고는 하나 이 일이 커서 사람들은 어쩔 줄을 모른다.”
이때에 어떤 스님이 물었다.
“예와 지금에 떨어지지 않는 도리를 스님께서는 곧바로 말씀해 주십시오.”
대사가 대답했다.
“마음속으로 그대가 어쩔 줄 모른다고 여겼느니라.”
그 스님이 다시 뭐라 말을 하려고 하자, 대사가 말했다.
“내가 고금古今에 떨어졌다고 여기겠구나.”
“어찌하여야 되겠습니까?”
“물고기가 은하수까지는 뛰어올랐으나 셋째 계급은 오르기 어려우니라.”
“어찌하여야 그런 허물을 면합니까?”
“만약 용의 형상이라면, 어찌 높고 낮음을 논하겠는가?”
그 스님이 절을 하니, 대사가 말했다.
“괴롭고도 욕되기가 어느 누가 나와 비슷하랴?”

대사가 하루는 대중에게 말했다.
“낮에는 밝고 밤에 어둡다는 것을 제외하고 다시 무엇을 말해야 되겠는가? 진중珍重하게나.”
그때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다툼 없는 구절입니까?”
대사가 대답했다.
“천지를 시끄럽게 하는 것이니라.”

낭주朗州 중읍中邑 홍은洪恩 선사

앙산仰山이 처음으로 계를 받고 사계(謝戒:계를 받고 은사께 드리는 인사 의식)의 예를 드리러 왔는데, 대사(홍은)는 그가 오는 것을 보고 선상禪床 위에서 손뼉을 치며 말했다. 
“화화(和和:어린애같이 연약한 사람)야.” 
앙산이 즉시 동쪽 편에 섰다가 다시 서쪽 편에 서고, 또 중앙에서 섰다. 그런 뒤에야 사계의 예를 드리고 난 후에 물러나 서 있었다.
대사가 물었다.
“어디서 그런 삼매를 얻었는가?”
앙산이 대답했다.
“조계曹谿의 인가를 벗어난 이에게서 배웠습니다.”
“그대는 조계께서 이런 삼매로 어떤 사람을 제접했다고 여기는가?”
“일숙각一宿覺을 제접할 때에 이런 삼매를 썼다고 합니다.”
그리고는 앙산이 도리어 물었다.
“화상께서는 어디서 이런 삼매를 얻으셨습니까?”
“나는 마조 대사의 처소에서 이 삼매를 배웠다.”
“어찌하여야 성품을 봅니까?”
“가령 어떤 집이 있다고 비유하자. 그 집에 창문이 여섯 개가 있고, 그 안에는 원숭이 하나가 있는데, 동쪽에서 ‘산산(山山:원숭이를 부르는 소리)아, 산산아’ 하면 원숭이가 이에 반응을 하니, 이와 같이 여섯 창문에 부를 때마다 모두 응하는 것과 같다.”
앙산이 절하고 일어나면서 말했다.
“화상의 비유를 들으니 요달해 알지 못함이 없지만, 다시 한 가지 일이 있습니다. 가령 안의 원숭이가 피곤하여 잠이 들었는데, 밖의 원숭이가 만나고자 하면 어찌해야 합니까?”
대사가 승상繩床에서 내려와 앙산의 손을 잡고 춤을 추면서 말했다.
“산산山山아, 이제야 너를 만났구나. 마치 하루살이가 모기 눈썹에다 집을 짓고 네거리에 나서서 ‘땅은 광활한데 사람은 드무니, 상봉하는 자가 적구나’라고 외치는 것과 같도다.”[운거雲居 석錫이 말하기를 “중읍中邑이 그때에 앙산仰山의 그 한마디를 듣지 못했었다면 어디에 중읍의 말이 남아 있으리오?”라고 하였다. 숭수崇壽 조稠가 말하기를 “어떤 사람이 이 도리를 결정지을 수 있겠는가? 만일 결정지을 수 없다면 이는 한갓 혼백을 희롱하는 수단일 뿐이니 불성의 이치가 어디에 있으랴?”라고 하였다. 현각玄覺이 말하기를 “만일 앙산이 아니었다면 어찌 중읍을 알아 볼 수 있었겠는가? 말해 보라. 어디가 앙산이 중읍을 볼 수 있었던 곳이겠는가?”라고 하였다.]

홍주洪州 백장산百丈山 회해懷海 선사

그는 복주福州의 장락현長樂縣 사람이니, 어릴 때에 이미 속세를 떠나 3학學을 두루 연마하였다. 때마침 대적(大寂:마조의 법호)이 남강南康에서 교화한다는 말을 듣고 마음을 기울여 의지하였다. 서당西堂 지장智藏 선사와 같이 입실入室하였는데, 당시 이 두 대사가 두각을 나타내었다.
어느 날 저녁에 두 대사가 마조馬祖를 모시고 달구경[翫月]을 하는데, 마조가 말했다.
“바로 이럴 때는 어떠한가?”
서당이 말했다.
“바로 공양하기 좋습니다.”
대사(백장 회해)가 말했다.
“바로 수행하기 좋습니다.”
남전은 소매를 떨치면서 문득 가 버렸다.
마조가 말했다.
“경전은 창고[藏:서당 지장을 말함]로 들어가고, 선禪은 바다[海:회해를 가리킴]로 들어가고, 오직 보원(남전)만이 홀로 사물 밖으로 초월했다.”
하루는 마조가 법당에 오르자 대중이 구름처럼 모였다. 바야흐로 법좌에 올라서 양구良久했는데, 대사가 이내 면전面前의 절하는 자리를 걷어 버리니, 마조는 문득 법당에서 내려왔다.
어느 날 대사가 다시 마조를 뵈었다. 마조는 대사가 오는 것을 보자, 법상 귀퉁이에서 불자拂子를 잡아서 곧추 세웠다. 대사가 말했다.
“그것뿐입니까? 또 다른 것이 있습니까?”
마조가 불자를 원래 자리에다 놓고는 말했다.
“그대는 무엇을 가지고서 어떻게 사람을 위하려 하는가?”
대사가 얼른 불자를 들어서 보이니, 마조가 다시 물었다.
“그것뿐인가? 그밖에 또 있는가?”
대사가 불자를 본래의 자리에다 꽂아 두고 공손히 서 있으니, 마조가 소리를 질렀다. 
이로부터 우레와 같은 명성이 진동해서 단월들이 홍주의 신오계新吳界로 청해서 대웅산大雄山에 머무르게 하니, 그 거처에 산봉우리가 험악하기 때문에 백장산百丈山이라 불렀다. 거기에 있기 시작한 지 한 달이 채 못 되어서 현묘한 진리를 참구하려는 선객들이 사방에서 모여들었는데, 위산潙山과 황벽黃蘗이 그 으뜸의 자리에 있었다.
하루는 대사가 대중에게 말했다.
“불법은 사소한 일이 아니다. 내가 지난날에 마조 대사를 두 번 참례했는데, 대사의 일할(一喝)을 듣고는 곧장 3일 동안 귀가 먹고 눈이 캄캄하였다.”
그때 황벽이 이를 듣고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혀를 내밀어 말했다.
“저는 원래 마조를 모르지만 앞으로도 마조를 뵙지 않겠습니다.”
대사가 말했다.
“그대는 앞으로 마조의 법맥을 계승해야 한다.”
“저는 마조의 법맥을 잇지 않겠습니다.”
“왜 그런가?”
“앞으로 저의 자손들을 상실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자기가 백장百丈의 법문을 듣고 깨달을 때에 한층 뛰어넘어서 마조의 제자가 된다면 뒷날에 자기의 법을 듣고 깨달은 이들이 모두 마조나 백장에게로 뛰어올라 법을 잇게 되리니, 이것을 일러서 뒷날 자기의 권속을 없애는 일이라 하였다.

대사가 말했다.
“그렇고, 그렇도다.”

하루는 어떤 스님이 곡을 하면서 법당에 들어오자, 대사가 물었다.
“무슨 일인가?”
“부모가 모두 돌아가셨으니, 스님께서 날짜를 잡아 주십시오.”
대사가 대답했다.
“내일 오라. 한꺼번에 매장하도록 하자.”

대사가 상당하여 말했다.
“목구멍과 입술을 모두 닫아 버리고 빨리 말해 보라.”
위산潙山이 말했다.
“저는 말하지 못하겠으니, 화상께서 말씀해 주십시오.”
대사가 대답했다.
“그대에게 말해 주는 것은 사양하지 않겠다만, 오랜 후에 나의 자손을 잃게 되리라.”
오봉五峰이 말했다.
“화상께서도 목구멍과 입술을 닫아 버려야 합니다.”
“아무도 없는 곳에서 골을 갈아 그대에게 보여 주리라.”
운암雲巖이 말했다.
“제가 말할 곳이 있으니, 화상께서 거들어 주십시오.”
대사가 대답했다.
“목구멍과 입술을 모두 닫아 버리고 빨리 말해 보라.”
“스님은 지금 (입술 따위가) 있으십니다.”
“나의 자손을 죽이는구나.”

대사가 대중에게 말했다.
“내가 누구 한 사람을 서당西堂에게 보내서 말을 전해야겠는데, 누가 가겠는가?”
오봉五峰이 대답했다.
“제가 가겠습니다.”
“네가 어떻게 말을 전하겠는가?”
“서당 스님을 만나기를 기다렸다가 즉시 말을 하겠습니다.”
“뭐라 하겠느냐?”
“돌아와서 화상께 아뢰겠습니다.”
대사가 위산潙山과 함께 일을 하다가 대사가 물었다.
“불이 있는가?”
위산이 대답했다.
“있습니다.”
“어디에 있는가?”
위산이 나무 한 개비를 들어 두세 번 불고는 대사에게 건네주니, 대사가 말했다.
“마치 벌레가 나무를 좀먹는 것과 같구나.”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부처입니까?”
대사가 말했다.
“그대는 누구인가?”
“저는 아무개입니다.”
“그대가 나를 아는가?”
“분명히 압니다.”
대사가 불자를 번쩍 들고서 말했다.
“그대가 보는가?”
“봅니다.”
대사는 그만 입을 다물고 말았다.

울력으로 땅을 파는데, 홀연히 어떤 스님이 식사 때를 알리는 북소리를 듣고는 괭이자루를 번쩍 들고 껄껄 웃다가 식당으로 들어가 버리니, 대사가 말했다.
“시원스럽다. 이것이 관음보살이 진리에 들어간 문이다.”
대사가 방장에 돌아와서 그 스님을 불러놓고 물었다.
“아까 무슨 도리를 보았기에 그러하였는가?”
“아까 북소리가 나는 것을 들었기에 밥을 먹으러 갔을 뿐입니다.”
대사가 빙그레 웃자, 그가 물었다.
“‘경전에 의지하여 뜻을 이해하는 것은 3세世 부처님의 원수요, 경전을 여의고서는 한 글자라도 마귀의 말과 같다’ 하였으니, 어떠하십니까?”
대사가 대답했다.
“움직이는 작용을 고수固守하면 3세 부처님의 원수요, 이밖에 따로 구하는 것은 곧 마귀의 말과 같으니라.”

어떤 스님이 서당에게 물었다. 
“물음이 있으면 대답이 있고, 묻지 않으면 대답하지 않는 때는 어떠합니까?”
서당이 대답하였다. 
“놀라서 썩은들 무엇 하겠는가?” 
이 얘기를 듣고 대사가 말했다.
“원래 이 노형老兄을 의심하였다.”

어떤 스님이 말했다.
“화상께서 말씀해 주십시오.”
대사가 대답했다.
“일합상一合相을 얻을 수 없다.”
어느 날 대사가 대중에게 말했다.
“어느 한 사람은 영구히 밥을 먹지 않고도 배고프다는 말을 않고, 어느 한 사람은 종일 밥을 먹으면서도 배부르다는 말을 않는다.”
대중이 아무도 대답하지 않자, 운암雲巖이 물었다.
“화상은 매일 구구하게 누구를 위하십니까?”
대사가 대답했다.
“어느 한 사람이 요구한다.”
“어찌하여 그로 하여금 스스로 하게 하시지 않습니까?”
“그는 집안 살림이 없느니라.”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대승의 돈오법문頓悟法門입니까?”
대사가 대답했다.
“그대들은 먼저 모든 반연을 쉬어라. 만 가지 일을 쉬고, 착하거나 악한 일, 세간世間과 출세간出世間의 온갖 법을 기억하지도 말고 반연하여 생각하지도 말라. 몸과 마음을 탁 놓아서 자유롭게 하고, 마음은 목석처럼 분별하는 것이 없게 하라. 마음이 행하는 바가 없어서 마음의 바탕[心地]이 허공과 같이 되면 지혜의 태양이 스스로 나타나니, 마치 구름이 흩어지면 태양이 드러나는 것과 같으리라. 분별망상[相似]도 모두 쉬고, 온갖 반연과 탐욕ㆍ성냄ㆍ애욕의 더럽고 깨끗한 망정이 다하면, 5욕欲이나 8풍風을 대하여도 보고 듣고 깨달아서 앎에 속박되지 않고, 모든 경계에 미혹되지도 않아서 자연히 신통묘용神通妙用을 구족한다.
이와 같이 해탈한 사람은 온갖 경계를 대하여도 마음에 고요함과 어지러움이 없고, 마음을 거두지도 않고 흩뜨리지도 않고, 온갖 소리와 색을 투사하여도 걸리거나 막힘이 없으리니, 이를 이름하여 도인道人이라 한다. 다만 온갖 선과 악, 더럽고 깨끗함, 유위有爲의 세간의 복과 지혜에 얽매이지 않는 것을 이름하여 부처의 지혜[佛慧]라 하고, 옳고 그름, 좋고 나쁨, 옳은 이치와 그른 이치 등의 모든 소견이 모두 다하여 속박을 받지 않아서 마음의 자재함에 처하면 처음 발심한 보살이라 하니, 곧 부처 경지[佛地]에 오르게 된다.
일체의 온갖 법은 본래 스스로 공하지도 않고, 스스로 색色이라 말하지도 않고, 옳고 그름, 더럽고 깨끗함을 말하지도 않고, 또 사람을 얽어맬 마음도 없다. 다만 사람들이 스스로 허망하게 계교하고 집착해서 갖가지 견해를 일으키고 갖가지 지견知見을 일으킬 뿐이다. 만일 더럽고 깨끗한 마음이 다하여 얽매임에도 머무르지 않고 해탈에도 머무르지 않아서 일체의 유위와 무위의 견해가 없고, 평등한 심량心量으로 생사에 처해서도 그 마음이 자재하고, 끝내 허환虛幻의 경계인 5온蘊, 18계界와 생사의 모든 이끌림에 화합하지 않고, 확연하게 의지함이 없어져서 일체에 구애됨이 없고 가고 머무는 데 장애가 없으면, 생사를 오고 감이 마치 열린 문으로 출입하는 것과 비슷하리라.
만일 갖가지 괴로움과 즐거움 등 뜻에 맞지 않는 일을 만난다면, 물러서거나 굴복하는 마음이 없어야 하고, 명예나 의식衣食을 생각하지 않아야 하며, 온갖 공덕과 이익을 탐내지 말아야 하며, 세간법에 이끌리지 말아야 한다. 마음이 비록 고통이나 즐거움을 직접 받아들여도 속마음[懷]에는 관여치 않고, 거친 음식으로 목숨을 연명하고 누더기 옷으로 추위를 막더라도 올올兀兀히 어리석은 듯하고 귀먹은 듯해야 비슷해지면서 점점 가까워지는 분수分數가 있으리라.
나고 죽는 길에서 널리 지해知解를 배워서 복을 구하고 지혜를 구하는 것은, 이理에 이익이 없고 도리어 앎[解]이라는 경계의 바람에 나부끼어서 생사의 바다 속으로 돌아간다. 부처는 구하는 것이 없는 사람이니 구하면 어긋나고, 이치[理]는 구할 것이 없는 이치이니 구하면 곧 상실한다. 만일 구할 것이 없는 것을 취하면 도리어 구함이 있는 것과 같게 되나니, 이 법은 진실함도 허망함도 없다. 만일 일생 동안 마음을 목석과 비슷하게 할 수 있어서 5음陰ㆍ18계界ㆍ5욕欲ㆍ8풍風 따위에 표류하거나 빠지지 않는다면, 곧 생사의 원인이 끊어져서 가고 머무는 데 자유롭고 온갖 유위법의 인과에 속박되지 않아서 훗날 도리어 속박 없는 몸으로서 똑같이 사물을 이롭게 하고, 속박 없는 마음으로 일체의 마음에 응하고, 속박 없는 지혜로 일체의 속박을 풀며 또는 병에 맞추어 약을 줄 수 있으리라.”

어떤 스님이 물었다.
“가령 지금 계를 받아서 몸과 입이 청정해지고 나서 온갖 선善을 구족했다면 해탈을 얻겠습니까?”
대사가 대답했다.
“조금은 해탈하였다고 할 수 있지만, 마음의 해탈은 얻지 못하며 일체의 해탈도 얻지 못하느니라.”
“어떤 것이 마음의 해탈입니까?”
“부처도 구하지 않고 지해知解도 구하지 않아서, 더럽다느니 깨끗하다느니 하는 망정이 다하고, 이 구함이 없는 것을 옳다고 여기는 것도 지키지 않으며, 멸진滅盡한 곳에 머무르지도 않고, 지옥의 속박을 두려워하지도 않고, 천당의 쾌락을 애착하지도 않고, 온갖 법에 구애되지 않으면, 비로소 그 이름을 해탈하여 걸림이 없다고 하니, 곧 몸과 마음과 일체에 걸림이 없는 것을 해탈이라 한다. 
그대들은 조그마한 계와 선행으로써 장차 문득 요달할 것이라고 함부로 말하지 말라. 항하의 모래와 같은 무루의 계와 선정과 지혜의 문이 있어도 도무지 털끝만큼도 교섭하지 못했다. 노력과 맹렬한 작용으로 빨리 관여하려면, 귀먹고 눈멀고 머리가 희고 얼굴이 쭈그러들기를 기다리지 말라. 늙음의 고통이 몸에 비치고, 눈에서 눈물이 나고, 마음속에 걱정이 생기면 갈 곳이 없으니, 이럴 때를 당하면 손발조차도 제대로 할 수 없다. 설사 복과 지혜와 많은 배움이 있더라도 도무지 구할 수 없으니, 마음의 눈이 아직 열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직 온갖 경계에 생각을 반연할 뿐 반조返照할 줄 모르기 때문에 다시 불도佛道를 보지 못한 채 일생 동안 지은 악업이 모두 앞에 나타나는데, 혹은 기뻐하고 혹은 두려워하게 된다. 6도道와 5온蘊이 모두 앞에 나타나서 다 보여, 훌륭하게 장엄한 집과 배와 수레가 환하게 광명을 놓는 것은, 스스로의 마음이 방종하여 탐욕을 부렸기 때문이니, 보이는 것이 다 변해서 좋은 경계가 되는 것일 뿐이다. 보이는 바의 업이 무거운 것을 따라서 태어나게 되지만, 도무지 자유가 없나니, 용ㆍ짐승ㆍ양반ㆍ천민 어느 것이 될지 전혀 결정하지 못한다.”
“어찌하여야 자유를 얻을 수 있습니까?”
“가령 지금 5욕과 8풍을 대하여도 취하고 버리는 정견情見이 없으면, 더러움과 청정함이 모두 소멸하리니, 마치 일월이 허공에 있으면서 반연하지 않고 비추는 것과 같다. 마음이 목석과 같고, 또한 향기로운 코끼리가 물을 가로질러 건너는 것과도 같아서 다시는 의심이나 걸림이 없으리니, 이 사람은 천당과 지옥에 포섭되지 않으리라. 또 경을 읽거나 교리를 보는 대로 신수대장경에는 “부독경간교不讀經看教”라고 되어 있으나, 명본明本에는 “여독경간교如讀經看教”로 되어 있다. 여기서는 후자에 의거하여 번역하였다.
 그 내용이 모두 막힘없이 옮겨져 자기에게 돌아가니, 다만 일체의 언교言敎는 오로지 지금처럼 자기의 본성을 깨닫기 위한 방편임을 알아서, 일체의 있고 없는 모든 법의 경계에는 빠지지 않으리라. 이런 도사導師는 능히 일체의 있고 없는 경계의 법을 비추어 깨뜨리나니, 이러한 금강金剛 같은 지위에는 바로 스스로 말미암고 홀로 서는[自由獨立] 분수가 있다. 
만일 이를 터득할 수 없다면, 설사 12위타韋陀 경전을 다 외울지라도 오직 증상만增上慢을 더할 뿐이어서, 도리어 부처를 비방하는 일이지 올바른 수행이 아니다. 경을 읽고 교리를 배우는 일은 세간의 측면에서 볼 때 훌륭한 일이기는 하나, 진리를 밝히는 사람의 관점에서 본다면 옹색한 사람일 뿐이다. 10지地에 오른 사람들도 벗어나지 못하고 생사의 흐름으로 빠져드나니, 알음알이[知解]로 언구의 뜻을 찾으려고 하지 말라. 
알음알이는 탐욕에 속하고 탐욕은 변해서 병이 되나니, 지금이라도 온갖 유무有無의 법들을 여의기만 하면 세 구[三句] 밖으로 투과透過해서 자연히 부처와 차이가 없으리라. 이미 스스로가 부처라면, 어찌 부처가 말을 이해하지 못할까 걱정하랴? 다만 부처가 아니라고 여겨서 있고 없는 모든 법에 이끌리게 되어서 스스로 말미암지 못하게 될까 걱정이다. 그러므로 이理가 아직 서지 못했는데 먼저 복과 지혜를 싣고 가는 것은, 마치 천한 자가 귀한 자를 부리는 것과 같아서 이理를 먼저 세우고 나중에 복과 지혜가 있는 것만 못하다. 그리하니 때[時]에 임해서 짓게 되면, 흙을 모아서 금을 이루고, 바닷물을 바꾸어서 소락酥酪을 만들고, 수미산을 깨뜨려서 미진微塵을 만드는 것과 같이, 하나의 뜻[一義]에서 무량한 뜻을 이루고 무량한 뜻에서 하나의 뜻을 이루게 되느니라.”

대사는 가끔 설법을 마치고 나서 대중이 흩어지면 곧 그들을 불렀다. 대중이 고개를 돌리면 대사가 말했다. 
“이것이 무엇인가?”[약산藥山은 이것을 두고 백장百丈의 하당下堂 법문이라 하였다.] 
당나라 원화元和 9년 정월 17일에 열반에 드니 수명은 95세였다. 장경長慶 원년에 대지大智 선사라는 시호를 하사받았고, 탑호는 대보승륜大寶勝輪이라 하였다.


선문규식禪門規式

백장百丈 대지大智 선사禪師는 선종이 달마에서 시작하여 조계曹谿에 이르기까지 대체로 율종 사찰에 살았는데, 비록 선원과 율원이 다르지만, 설법과 주지하는 법이 법규에 맞지 않으므로 항상 마음에 걸려서 말했다.
“조사의 도를 널리 펴고 미래에까지 끊이지 않게 하고 싶다면, 어찌 여러 부문의 아급마阿笈摩[옛 범어로는 아함阿含이요, 새 범어로는 아급마阿笈摩니, 즉 소승교小乘敎를 말한다.]의 교리를 따라서 수행하랴?”
어떤 이가 물었다.
“󰡔유가론瑜伽論󰡕과 󰡔영락경瓔珞經󰡕은 대승의 계율인데, 어찌 그에 의지해서 수행하지 않습니까?”
대사가 대답했다.
“내가 종지로 삼는 바는 대승이나 소승에 국한하지도 않고, 대승이나 소승에 차별을 두지 않으니, 두루 섭렵하고 요약하여 이것을 절충하여서, 마땅한 규범을 설정하여 힘쓰게 하려는 것이다. 그리하여 새로운 뜻으로 따로 선禪의 근거를 세운 것이다.” 
무릇 도안道眼을 갖추어서 존경할 만한 덕이 있는 이를 장로長老라 하나니, 마치 인도에서 도가 높고 나이가 많은 이를 수보리須菩提라 부르는 것 등과 같다. 
이미 한 지방의 화주(化主:住持)가 되어 방장方丈에 거처한다면, 유마 거사[淨名]의 방과 같이 할 것이지 개인의 침실과 같이 해서는 안 된다. 불전佛殿을 세우지 않고 오직 법당만을 두는 것은 불조佛祖에게 친히 전해 받아서 당대의 존중받을 곳임을 표시하는 것이다. 
수용하는 학자들은 많건 적건, 높건 낮건 모두가 승당僧堂에 들어가서 법랍[夏]의 차례에 따라 앉고, 긴 평상과 선반을 설치하여 도구를 걸어 두고, 누울 때는 반드시 비스듬히 평상 귀에 기댄다. 오른쪽 겨드랑이로 누워서 길상수吉祥睡를 하는 것은 좌선을 너무 오래하였기에 잠깐 누워서 쉴 때뿐이니, 평소에는 네 가지 위의威儀를 갖추어야 한다. 조실祖室에 들어와서 법을 물을 때를 제외하고는 부지런히 하건 게으르게 하건 배우는 자들에게 맡기고, 위가 되건 아래가 되건 일정한 규정으로 구속하지 않는다.
온 집안의 대중은 아침에 묻고 저녁에 모여야 하고, 장로가 법당에 올라 설법을 할 때에 일을 관장하는 이나 대중이나 모두 줄지어 앉아서 귀를 기울여 들어야 하고, 손님과 주인이 문답을 계속하여 종지를 격양하는 것은 모두가 법에 의해 산다는 것을 표시한다.
죽이건 밥이건 두 때에 골고루 나누는 것은 절약과 검소함에 힘쓰는 것이고, 법과 음식을 함께 운행함을 표시한다. 울력[普請]을 하는 법은 위와 아래가 힘을 균등히 합치는 것이요, 열 가지 소임을 두는 곳을 요사寮舍라고 하는데, 늘 한 사람의 우두머리를 두어서 많은 사람을 관장하여 일을 경영함으로써 제각기 자기의 맡은 바를 다하게 한다.[밥 짓는 이를 반두飯頭라 하고, 나물 맡은 이를 채두菜頭라고 하는데, 나머지도 이와 같다.]
혹 어떤 이가 거짓 탈을 쓰고 청정한 무리 속에 스며들거나 혹은 소란을 피우면, 즉시 유나維那가 붙잡아 끌어내려서 본래의 자리에 앉히거나 절 밖으로 몰아내는 것은 청정한 대중을 편안케 하기 위함이요, 어떤 이가 죄를 범하거든 주장자로 때리거나 대중을 모아 놓고 의발과 도구를 태우거나 샛문으로 쫓아내는 것은 부끄러움을 주기 위한 것이다.
이 한 가지 제도를 자세히 살피건대 네 가지 이익이 있다. 
첫째는 청정한 대중을 더럽히지 않고 공손한 믿음을 내는 것이다.[3업業이 바르지 않으면 같이 살지 못한다. 율문에 의하건대 율법에 의하여 다스려서 쫓아내야 한다. 청정한 대중이 편해지면 공손한 믿음이 생긴다.]
둘째는 스님의 형상을 잃지 않아서 부처님의 제도에 맞게 되는 것이다.[적당히 징계하여 법복만을 남겨 두면 뒤에는 반드시 뉘우치게 된다.] 
셋째는 공문公門이 소란하지 않아서 시비가 줄어드는 것이다. 
넷째는 (허물이) 밖으로 새지 않고 종문의 기강이 잘 보호되는 까닭이다.[사방에서 모인 무리가 같이 사는데 범부와 성인을 누가 판단하겠는가? 여래께서 세상에 계실 때에도 삿된 여섯 무리의 비구<六群比丘>가 있었는데, 지금은 말법이니 어찌 전혀 없을 수 있겠는가? 한 스님이 허물이 있는 것을 보면 잇달아서 비방을 부르나니, 대중을 가볍게 여기고 법칙을 무너뜨리면 그 손실이 크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이다. 지금 선문에서 예사로 방해가 없다고 여길 일이라도 마땅히 백장百丈 선사의 총림叢林 격식에 따라 일을 분별하고 구분해야 한다. 그리하여 법칙을 세워 잘못을 미연에 방지해야 한다. 현사賢士인양 여기고 있지 말아야 한다. 차라리 격식을 세워 범하는 이가 없게 할지언정 범하는 이가 있는데 가르침이 없게 해서는 안 된다. 백장 선사가 법을 보호한 이익은 실로 크다고 할 수 있다.] 
선문禪門에서만 시행되는 것은 백장百丈에서 비롯했으니, 이제 그 대략을 서술하여 후대의 배우는 자에게 두루 보이는 뜻은 근본을 잊지 않게 하기 위함이니, 그 모든 궤칙은 산문山門에 갖추어 있다.


경덕전등록 제7권






회양懷讓 선사의 제2세 중 45인[마조馬祖의 법손]

담주潭州 삼각산三角山 총인總印 선사
지주池州 노조산魯祖山 보운寶雲 선사
홍주洪州 늑담泐潭 상흥常興 선사
건주虔州 서당西堂 지장智藏 선사
경조京兆 장경사章敬寺 회운懷惲 선사
정주定州 백암柏巖 명철明哲 선사
신주信州 아호鵝湖 대의大義 선사
복우산伏牛山 자재自在 선사
유주幽州 반산盤山 보적寶積 선사
비릉毘陵 부용산芙蓉山 태육太毓 선사
포주蒲州 마곡산麻谷山 보철寶徹 선사
항주杭州 염관鹽官 제안齊安 선사
무주婺州 오설산吾洩山 영묵靈黙 선사
명주明州 대매산大梅山 법상法常 선사
경조京兆 전선典善 유관惟寬 선사
호남湖南 여회如會 선사
악주鄂州 무등無等 선사
여산廬山 귀종사歸宗寺 지상智常 선사
  [이상 18명이 기록에 보임]
소주韶州 저경산渚涇山 청하淸賀 선사
자음산紫陰山 유건惟建 선사
봉산封山 홍준洪濬 선사   
연산練山 신완神翫 선사
굴산崛山 도원道圓 선사
옥대玉臺 유연惟然 선사
지주池州 회산灰山 담기曇覬 선사
형주荊州 신사新寺 보적寶積 선사
하중부河中府 법장法藏 선사
한남漢南 자비사慈悲寺 양진良津 선사
경조부京兆府 숭崇 선사
남악南嶽 지주智周 선사
백호白虎 법선法宣 선사
금굴金窟 유직惟直 선사
태주台州 백암柏巖 상철常徹 선사
건원乾元 휘暉 선사
제주齊州 도암道巖 선사
양주襄州 상견常堅 선사
형남荊南 보정寶貞 선사
운수雲水 정종靖宗 선사
형주荊州 영태사永泰寺 영단靈湍 선사
담주潭州 용아산龍牙山 원창圓暢 선사
홍주洪州 쌍령雙嶺 도방道方 선사
나부산羅浮山 수광修廣 선사
현산峴山 정경定慶 선사
월주越州 동천洞泉 유헌惟獻 선사
광명光明 보만普滿 선사
  [이상 27인은 기연할 어구가 없으므로 기록하지 않음]


회양懷讓 선사의 제2세 ②

담주潭州 삼각산三角山 총인總印 선사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삼보三寶입니까?”
대사가 대답했다.
“벼ㆍ보리ㆍ콩이니라.”
“학인學人이 잘 모르겠습니다.”
“대중은 기꺼이 받들어 지닌다.”

대사가 상당하여 말했다.
“만일에 이 일을 의논하되 눈썹을 위로 찡긋해도 이미 어긋났다.”
마곡麻谷이 얼른 물었다.
“눈썹을 위로 찡그리는 일은 묻지 않겠습니다. 어떤 것이 이 일입니까?”
대사가 대답했다.
“어긋났다.”
마곡이 선상禪床을 흔들자, 대사가 그를 때렸다. 마곡은 아무 말이 없었다.[장경長慶이 대신 말하되 “불쌍하구나<悄然>”라고 하였다.]

지주池州 노조산魯祖山 보운寶雲 선사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모든 부처님입니까?”
대사가 대답했다.
“머리 위에 보배 관冠을 쓴 이는 아니다.”
스님이 물었다.
“어찌하여야 옳습니까?”
대사가 대답했다.
“머리 위에 보배 관이 없다.”

동산洞山이 뵈러 와서 절을 하고는 모시고 섰다. 그리고 잠시 후에 나갔다가 다시 들어왔다. 대사가 그에게 말했다.
“다만 그렇고 그러한 까닭이 이렇구나.”
동산이 말했다.
“많은 사람들이 수긍하지 않습니다.”
대사가 말했다.
“내가 어찌하여야 그대의 말재주를 감당하겠는가?”
동산이 몇 달 동안 시봉을 하였다.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말하면서 말하지 않는 것입니까?”
대사가 대답했다.
“그대의 입은 어디에 있는가?”
“입이 없습니다.”
“무엇을 가지고 밥을 먹는가?”
그 스님이 대답이 없었다.[동산洞山이 대신 말하기를 “그는 시장하지 않거늘 먹어서 무엇 하랴?”라고 하였다.]

대사는 항상 스님이 오는 것을 보면 얼른 벽을 향했다. 남전南泉이 이 말을 듣고 말했다.
“내가 항상 스님들에게 말하기를 ‘부처님께서 세상에 나오기 전에 알았다 해도 오히려 하나의 반도 얻지 못했다’고 했는데, 그가 이런 경지라면, 당나귀 해[驢年]에나 될 것이다.”[현각玄覺이 말하기를 “이것에 대해 한 말은 긍정하는 말인가, 부정하는 말인가?”라고 하였다. 보복保福이 장경長慶에게 묻기를 “노조의 자취가 어디에 있었기에 남전이 이러한 말을 하였는가?”라고 하였다. 장경이 대답하기를 “자기가 물러서고 남에게 양보하는 이는 만에 하나도 없다”라고 하였다. 나산羅山이 말하기를 “진陳 노사老師를 당시에 보았더라면 등에다가 뜸 다섯 방을 떠주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가 놓을 줄만 알고 걷을 줄을 모르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운거雲居 석錫이 말하기를 “나산과 현사가 그렇게 말한 것이 같은가 다른가의 도리를 가려낼 수 있다면 상좌의 불법이 거의 되었다고 허락하리라”고 하였다. 현각이 말하기를 “말해 보라. 현사가 다섯 방을 뜬다는 말이 그를 바로 때린 것인가, 아닌가?”라고 하였다.]

홍주洪州 늑담泐潭 상흥常興 선사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조계문하曹谿門下의 나그네입니까?”
대사가 대답했다.
“남쪽에서 온 제비니라.”
“학인은 잘 모르겠습니다.”
“깃[羽]을 길러서 가을바람을 기다리는 것이니라.”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종승宗乘의 극칙사極則事입니까?”
대사가 대답했다.
“가을비에 풀밭이 흐트러진 것이니라.”

또 남전이 왔다가 대사가 벽을 향해 앉은 것을 보고 등을 문지르니, 대사가 물었다.
“누구요?”
남전이 대답했다.
“보원普願입니다.”
“어떠한가?”
“그저 그렇습니다.”
대사가 말했다.
“그대는 어찌하여 일이 많은가?”

건주虔州 서당西堂 지장智藏 선사

그는 건화虔化 사람으로서 성은 요廖씨이다. 여덟 살에 출가하였고[從師], 25세에 구족계具足戒를 받았는데, 어떤 관상가가 그의 특이한 모습을 보고 말했다.
“스님의 기골氣骨이 비범하시니, 반드시 법왕의 보좌輔佐가 되겠습니다.”
대사는 마침내 불적암佛迹巖으로 가서 대적(大寂:馬祖)에게 참문하고, 백장百丈 회해懷海 선사와 함께 입실하였는데, 모두 인가를 받았다.
하루는 대적이 대사에게 글을 주어 장안長安의 혜충慧忠 국사國師에게 전하라고 해서 갔다. 국사가 물었다.
“그대의 스승은 어떤 법을 설하는가?”
대사가 동쪽에서 서쪽으로 가서 서니, 국사가 말했다.
“그것뿐인가? 그밖에 또 있는가?”
대사가 다시 동쪽으로 가서 서니, 국사가 물었다.
“그것은 마조 대사의 것이니, 그대의 것은 무엇인가?”
대사가 대답했다.
“벌써 화상께 바쳤습니다.”
얼마 후에 경산徑山 국일國一 선사[이 말은 국일장國一章에도 나왔다.]에게도 글을 전하였다. 

이때 대장군[連帥]인 노사공路嗣恭이 대적을 초청하여 담당 고을[府]에 머물게 함으로써 장차 성대한 교화를 기약하려고 했다. 대사가 고을로 돌아오니, 대적이 마납가사摩納袈裟를 그에게 주면서 배우는 자들로 하여금 가까이하게 하였다. 
어떤 스님이 마조에게 물었다.
“청컨대 화상께서 네 구절[四句]을 여의고 백 가지 부정[百非]을 끊은 채 조사께서 서쪽에서 오신 뜻을 곧바로 저에게 말씀해 주십시오.”
마조가 대답했다.
“나는 오늘 생각[心情]이 없으니, 그대는 지장에게 가서 물어라.”
그 스님이 대사에게 와서 물으니, 대사가 대답했다.
“그대는 왜 화상께 묻지 않는가?”
그 스님이 말했다.
“화상께서 저에게 말씀하시기를 ‘상좌上坐에게 물어라’고 하셨습니다.”
대사가 손으로 머리를 만지면서 말했다.
“오늘은 머리가 아프니, 회해懷海 사형에게 가서 물어라.”
그 스님이 다시 회해(百丈 화상)에게 가서 물으니, 회해가 말했다.
“나는 그러한 것에 대해 도리어 알지 못한다.”
그 스님이 마조에게 가서 이야기하니, 마조가 말했다.
“지장의 머리는 희고, 회해의 머리는 검다.”

마조가 어느 날 대사에게 물었다.
“그대는 왜 경전을 보지 않는가?”
대사가 말했다.
“경전인들 어찌 다르겠습니까?”
“그렇기는 하지만 그대가 뒷날 남을 위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하다.”
“저[智藏]는 병이 나서 스스로를 감당하기도 급급한데, 감히 남을 위하라고 하십니까?”
“그대가 말년(末年:貞觀의 末年)께는 반드시 세상에서 흥기하리라.”

대사는 마조가 열반에 든 뒤, 정원貞元 7년에 대중의 청에 의하여 개당(開堂:敎化를 시작)을 하였다. 상서尙書인 이고李翶라는 이가 일찍이 어떤 스님에게 물었다. 
“마 대사가 어떤 설법을 하였는가?” 
스님이 대답하였다. 
“대사께서는 어떤 때는 마음이 곧 부처라 하기도 하고, 어떤 때는 마음도 부처도 아니라고 하셨소.” 
이고가 말하였다. 
“모두가 그쯤이구나.” 
그리고 다시 대사에게 와서 물었다.
“마 대사께서는 무어라고 설법하셨습니까?”
대사가 이고를 불렀다. 이고가 대답하자, 대사가 말했다.
“북과 고동 소리가 나는구나.”

제공制空 선사가 대사에게 말했다.
“해가 너무 일찍 뜨는군요.”
대사가 말했다.
“바로 이때이다.”

대사가 서당사西堂寺에 살기 시작한 뒤에 어떤 속인 선비가 와서 물었다.
“천당과 지옥이 있습니까?”
대사가 말했다.
“있다.”
“불보佛寶ㆍ법보法寶ㆍ승보僧寶는 있습니까?”
“있다.”
그밖에 여러 가지를 물었으나, 모두 있다고 대답했다.
“화상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이 잘못이 아닙니까?”
“그대가 일찍이 어떤 존숙尊宿을 만난 적이 있는가?”
“제가 경산徑山 화상을 뵙고 왔습니다.”
“경산이 그대에게 무어라 하던가?”
“일체가 모두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대에게 아내가 있는가?”
“있습니다.”
“경산 화상도 아내가 있는가?”
“없습니다.”
“경산 화상이 없다고 한 것이 맞는구나.”
속인 선비가 절하고서 물러갔다.
대사가 원화元和 9년 4월 8일에 열반에 드니, 수명은 80세이고 법랍은 55세였다. 헌종憲宗이 대선교大宣敎 선사라는 시호를 하사하고, 탑호를 원화증진元和證眞이라 하였다. 그 뒤 목종穆宗 때에 이르러 다시 대각大覺 선사라는 시호를 하사하였다.
경조부京兆府 장경사章敬寺 회운懷惲 선사

그는 천주泉州 동안同安 사람으로서 성은 사謝씨이다. 대적(大寂:마조)의 법[心印]을 받고 처음에는 정주定州의 백암柏巖에 살다가 나중에 중조산中條山에서 살았다. 당의 원화元和 초기에 헌종憲宗의 조칙에 의하여 상현사上玄寺에 사니, 배우려는 자들이 모여들었다.
어느 날 대사가 상당하여 대중에게 말했다.
“지극한 이치[理]는 말을 잊었거늘 요즘 사람이 알지를 못하고 억지로 딴 일을 익히는 것으로 공능功能을 삼는다. 그리하여 제 성품이 원래 티끌 경계가 아니라 바로 미묘한 큰 해탈문이고, 갖추고 있는 비추어 깨달음[鑒覺]은 본래 물들거나 걸리지도 않는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이러한 광명은 일찍이 쉬거나 폐廢한 적이 없으니, 지난 겁부터 지금까지 진실로 변함이 없는 것이 마치 해가 멀고 가까운 곳을 비추어서 온갖 빛깔에 미치면서도 일체와 더불어 섞이지 않는 것과 같다. 신령스런 빛[靈燭]은 묘하게 밝아서 단련鍛鍊을 빌리지 않거늘 이를 요달하지 못하기 때문에 물상物象을 취하는데, 이는 마치 눈을 비벼 허공 꽃이 망령되게 일어나는 것과 같아서 헛되이 수고롭게 여러 겁을 지낼 뿐이다. 만일 능히 반조返照해서 두 번째 사람[第二人]이 없다면, 들고 놓는 온갖 동작이 실상을 어기지 않는다.”

어떤 스님이 물었다.
“마음과 법이 아울러 없어지면 어디로 돌아갑니까?”
대사가 대답했다.
“영인郢人은 티가 묻지 않았거늘 쓸데없이 도끼만을 흔드는구나.”
“대사시여, 돌이키지 못하는 말[不返之言:본분]을 말씀해 주십시오.”
대사가 대답했다.
“그대로가 돌이킴이 없는 구절이니라.”[뒷사람이 동산洞山에게 말하니, 동산이 말하기를 “말하기는 어렵지 않으나 작가作家를 만나기 힘들다”고 하였다.]

백장百丈 화상이 한 스님을 시켜서 대사가 상당上堂하는 기회를 엿보다가 방석을 펴고 절을 하게 하고, 일어나서는 신 한 짝을 벗어 들고 장삼소매로 먼지를 털어서 신을 아래로 향해 뒤집어 놓게 하니, 대사가 말했다.
“노승老僧이 죄를 지었구나.”

어떤 이가 물었다.
“조사들이 전하시는 심지법문心地法門은 진여眞如의 마음입니까, 망상妄想의 마음입니까, 진眞도 아니고 망妄도 아닌 마음입니까, 3승교의 밖에 따로 세운 마음입니까?”
대사가 말했다.
“그대는 눈앞의 허공을 보는가?”
“항상 눈앞에 있다는 것을 믿고 알지만 사람들이 스스로 보지 못합니다.”
“그대가 그림자를 잘못 안 것이 아닌가.”
“화상께서는 어찌하시겠습니까?”
대사가 손으로 허공을 세 번 튀기자, 그가 말했다.
“어찌하여야 옳습니까?”
“그대는 뒤에 차차 알게 되리라.”

어떤 스님이 와서 대사를 세 번 돌고 석장을 구른 뒤에 서자, 대사가 말했다.
“그렇다, 그렇다.”[장경長慶이 대신 말하기를 “화상의 불법佛法의 신심身心이 어디에 있을까?”라고 하였다.]
그 스님이 다시 남전에게 가서 역시 남전을 세 번 돌고 나서 석장을 구르고 서자, 남전이 말했다.
“틀렸다, 틀렸다. 이는 바람의 힘으로 굴려지는 것이라서 처음부터 끝까지 이루어지고 무너진다.”
그 스님이 말했다.
“장경은 옳다고 하였는데, 화상은 어찌하여 틀렸다고 하십니까?”
남전이 말했다.
“장경이 옳다고 한 것이 그대에게는 옳지 못하다.”[장경長慶이 대신 말하기를 “화상은 그 무슨 마음씨입니까?라고 했을 것을……”이라고 하였다. 운거雲居 석錫이 말하기를 “장경도 꼭 옳다고 하지는 않았고, 남전도 꼭 틀렸다고 하지는 않았다”라고 하였다. 또 말하기를 “그 스님이 애초에 석장을 들고 나갔더라면 좋았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젊은 스님 하나가 행각行脚을 하고 돌아오자, 대사가 물었다.
“그대가 여기를 떠난 지 몇 해나 되었는가?”
그 스님이 대답했다.
“화상의 곁을 떠난 지 8년이 되었습니다.”
“무엇을 얻었는가?”
젊은 스님은 땅에다 하나의 동그라미[一圓相]를 그리자, 대사가 물었다.
“그것뿐인가? 또 무엇이 있는가?”
그 스님이 동그라미를 지워 버리고 절을 한 뒤에 물었다.
“4대大와 5온蘊의 몸에서 어떤 것이 본래의 불성佛性입니까?”
대사가 그 스님의 이름을 부르니, 그 스님이 대답을 했다. 대사가 양구良久하다가 말했다.
“그대는 불성이 없다.”
당나라 원화元和 13년 12월 22일에 열반에 들었다. 탑을 패수灞水에 세웠는데, 시호를 대각大覺 선사라 하고, 탑호를 대보상大寶相이라 하였다.

정주定州 백암柏巖 명철明哲 선사

일찍이 약산藥山 화상이 경전을 읽는 것을 보고서 말했다.
“화상은 사람의 흉내를 내지 않으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약산이 경전을 놓으면서 물었다.
“해가 어디쯤에 있는가?”
대사가 대답했다.
“정오正午입니다.”
약산이 말했다.
“아직도 문채文采를 두고 있구나.”
“저라는 자체도 없습니다.”
“노형老兄은 몹시도 총명하구나.”
“저는 이러합니다만 화상은 어떠하십니까?”
“절름거리면서 온갖 추하고 졸렬한 꼴로 그럭저럭 세월을 보낸다.”

신주信州 아호鵝湖 대의大義 선사

그는 구주衢州의 수강須江 사람으로서 성은 서徐씨이다.
언젠가 이고李翶가 이렇게 물은 적이 있다.
“대비하신 관세음보살께서는 천 개의 눈과 천 개의 손으로 무엇을 합니까?”
대사가 대답했다.
“임금[今上]께서 그대를 기용한 뜻이 무엇이겠소?”

어떤 스님이 탑을 세우기 위한 법문을 청하자, 상서尙書인 이고李翶가 물었다.
“교리에 말씀하시기를 ‘시체를 가지고 탑 밑을 지나는 것은 허락하지 않는다’고 하였는데, 어찌하겠소?”
그 스님이 대답을 못했다. 그래서 다음 날 다시 대사에게 와서 물으니, 대사가 대답했다.
“그는 대천제大闡提 성불할 능력이 없는 무리의 별칭이다.
가 되었다.”

당나라 헌종憲宗이 조서를 보내 대궐로 청해서 인덕전麟德殿에서 강의를 들었는데, 어떤 법사가 물었다.
“어떤 것이 4제諦입니까?”
대사가 대답했다.
“성상聖上이 1제帝 제諦와 제帝가 음이 같음을 인용한 말이다.
이나 나머지 3제帝는 어디에 있는가?”
또 물었다.
“욕계欲界에는 선정이 없고 색계色界에나 선정이 있거늘, 이 땅에서 무엇을 의지하여 선禪을 세웠습니까?”
대사가 대답했다.
“법사는 욕계에 선정 없는 것만 알고, 선계禪界에는 욕망이 없는 것은 모른다.”
“어떤 것이 선禪입니까?”
대사가 손으로 허공에 점을 치니, 법사는 대답이 없었다. 이때에 황제가 말했다.
“법사는 무궁한 경론經論을 강설하였지만, 저 한 점은 어찌하지 못하는구나.”
대사가 얼른 여러 석덕碩德에게 물었다.
“다니고 멈추고 앉고 누울 때에 필경 무엇으로 도道를 삼는가?”
어떤 이가 대답했다.
“아는 것이 도입니다.” 
대사가 말했다.
“지혜로도 알 수 없고 의식으로도 인식할 수 없거늘, 어찌 아는 것을 도라고 하겠는가?”
어떤 이가 분별없음이 도라고 대답하자, 대사가 대답했다.
“모든 법의 모습을 잘 분별할 수 있지만 제일의제第一義諦에서 요동하지 않는다고 하셨거늘, 어찌 분별없음을 도라 하겠는가?”
어떤 이가 4선禪 8정定이 도라고 하자, 대사가 말했다.
“부처의 몸은 무위無爲라 온갖 수數에 떨어지지 않거늘, 어찌 4선 8정에 있겠는가?”
대중은 모두가 말문이 막혔다. 대사는 또 순종順宗이 시리尸利 선사에게 ‘온 누리의 중생이 어찌해야 성품을 보아서 부처를 이루겠는가?’라고 질문했을 때, 시리 선사가 ‘불성은 물속의 달과 같아서 볼 수는 있으나 잡을 수는 없습니다’라고 대답한 것을 인용하면서 황제에게 말했다.
“불성은 보는 것이 아니니, 마음이 볼 뿐입니다. 물속의 달을 어떻게 건지겠습니까?”
황제가 물었다.
“어떤 것이 불성이오?”
“폐하께서 물으신 바를 여의지 않습니다.”
황제가 참된 종지에 묵묵히 계합하면서 더욱 공경하였다. 
대사는 원화元和 13년 정월 7일에 열반에 들었다. 수명은 74세이고, 시호를 혜각慧覺 선사 견성見性의 탑이라 하였다.

이궐伊闕 복우산伏牛山 자재自在 선사

그는 오흥吳興 사람으로서 성은 이李씨이다. 처음에는 경산徑山의 국일國一 선사에게 구족계를 받았고, 나중에 남강南康에서 대적大寂을 뵙고서 심지心地를 발명發明하였다. 
어느 날 마조의 심부름으로 혜충慧忠 국사國師에게 서신을 전하게 되었는데, 국사가 물었다.
“마馬 대사가 대중에게 어떤 법을 보이던가?”
대사가 대답했다.
“마음이 곧 부처라 하였습니다.”
“그게 무슨 말인가?”
대사가 양구良久하자, 국사가 또 물었다.
“그것 외에 다시 무슨 말이 있는가?”
대사가 대답했다.
“마음도 아니고 부처도 아니라 하기도 하고, 혹은 마음도 아니고 부처도 아니고 물건도 아니라고 합니다.”
“그래도 (본분사本分事를) 약간은 헤아렸구나.”
“마 대사는 그렇다 치고, 화상께서는 어떠하십니까?”
국사가 말했다.
“석 점點은 흐르는 물과 같은데, 굽은 것이 벼를 베는 낫과 같다.” ‘심자心字’를 의미한다.


대사가 뒷날에 복우산에 숨어 살았는데, 하루는 대중에게 말했다.
“마음이 곧 부처라 함은 병病이 없는데도 병을 찾는 구절이요, 마음도 아니고 부처도 아니라 함은 그 병을 약藥으로 다스리는 구절이다.”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말끔하게 해탈한[脫灑] 구절입니까?”
대사가 말했다.
“복우산 밑에서 예나 이제나 전해진다.” 개울을 가리킨다.

대사가 뒷날에 수주隨州 개원사開元寺에서 열반에 드니, 수명은 81세였다.

유주幽州 반산盤山 보적寶積 선사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도입니까?”
대사가 대답했다.
“나왔구나[出].”
“학인은 잘 모르겠습니다.”
“갔구나[去].”

대사가 상당하여 무리들에게 말했다.
“마음에 일이 없다면 만상萬象이 나지 못했을 것이요, 뜻이 현묘한 이치조차 끊어 없애면 가는 티끌인들 어디에 서랴? 도는 본래 체體가 없거늘 도를 인하여 이름[名]을 세우고, 도는 본래 이름이 없거늘 이름을 인하여 호칭[號]이 생긴다. 만약 마음이 곧 부처라고 말한다면 지금 현묘한 진리[玄微]에 들지 못하고, 만약 마음도 아니고 부처도 아니라고 말한다면 여전히 자취를 가리키는 극칙極則일 뿐이다. 위로 향하는 한 길[向上一路]은 천 명의 성현도 전하지 못하거늘, 배우는 자가 형체를 수고롭게 하는 것은 마치 원숭이가 그림자를 잡으려는 것과 같다. 무릇 대도大道는 중간도 없거늘 무엇이 앞이며 무엇이 나중이랴? 아득한 허공은 경계[際]를 끊었으니 무엇으로써 측량을 하겠으며, 허공이 이미 그와 같다면 도는 다시 어떻게 설하겠는가? 마음 달이 홀로 둥근데 그 광명은 만상을 삼키니, 광명이 경계를 비추는 것도 아니고, 경계 또한 존재하지 않는다. 광명과 경계가 모두 없어지면 다시 이 무슨 물건인가?
선덕禪德이여, 마치 칼을 들어 허공을 치는 것과 같이 미치고 미치지 못함을 논하지 말라. 이는 바로 허공 바퀴에 자취가 없고, 칼의 날에 이지러짐이 없는 것과 같다. 만약 이와 같을 수 있다면 마음 마음이 앎이 없나니, 온 마음[全心]이 곧 부처요, 온 부처[全佛]가 곧 사람이다. 사람과 부처가 다르지 않아야 비로소 도라 할 수 있다.
선덕이여, 이 속에서 도를 배울 수 있다면, 마치 땅이 산을 받들고 있되 산의 높고 험함을 모르는 것과 같고, 돌이 옥을 머금고 있되 옥에 티가 없음을 모르는 것과 같으니, 이와 같이 하면 비로소 출가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도사導師께서 말씀하시기를 ‘법이 본래 서로 장애하지 않고, 3제際 또한 마찬가지다’고 하셨으나, 함이 없고 일이 없는 사람[無爲無事人]에게는 오히려 금 부스러기의 환난과 같다. 그러므로 신령스런 근원이 홀로 비추어서 도가 무생無生을 초절超絶하면, 큰 지혜는 밝음이 아니고 참다운 공은 자취가 없어서 진여眞如나 범부와 성인은 모두 잠꼬대이고, 부처와 열반도 아울러 말일 뿐이다. 
선덕이여, 스스로가 잘 관찰할지니, 아무도 그대를 대신하지 못한다. 삼계에 법이 없거늘 어디서 마음을 구하며, 4대가 본래 공하거늘 부처인들 어디에 의지해 머무르랴? 밝은 구슬[璿機:本分]은 움직임 없이 적멸해서 말이 없나니, 면전에서 드러나 있을 뿐 다시 다른 일이 있지 않다. 진중珍重하라.”

대사가 세상을 뜨려고 할 때 대중에게 말했다.
“누가 나의 얼굴을 그릴 수 있겠는가?”
대중이 모두 대사의 초상을 그려다가 바쳤는데, 대사는 그것들 모두를 인정하지 않았다. 이때 제자인 보화普化가 나서서 말했다.
“제가 스님의 진영眞影을 그렸습니다.”
대사가 말했다.
“그렇다면 왜 노승老僧에게 바치지 않는가?”
보화가 물구나무[筋斗]를 서서 나가니, 대사가 말했다.
“저놈은 훗날 미친 듯이 사람을 교화하리라.”
대사가 떠난 뒤에 시호를 응적凝寂 대사 진제眞際의 탑이라 하였다.

비릉毘陵 부용산芙蓉山 태육太毓 선사

그는 금릉金陵 사람으로서 성은 범范씨이다. 12세에 우두산牛頭山 제6세인 충忠 선사에 의해 스님이 되었고, 23세에 경조京兆 안국사安國寺에서 구족계具足戒를 받았다. 나중에 대적大寂을 만나 조사의 밀의密意를 전해 받았다.
당나라 원화元和 13년에 비릉毘陵 의흥義興의 부용산芙蓉山에 살았는데, 어느 날 밥을 나누어 주다가 방龐 거사居士 앞에 이르렀다. 거사가 밥을 받자, 대사가 말했다.
“마음을 내어서 보시를 받는 일은 정명(淨名:유마힐)이 이미 비난한 적이 있다. 이 하나의 기틀도 떠나서 거사는 또한 달게 받겠는가?”
거사가 대답했다.
“그 당시의 선현善現이야말로 어찌 작가作家 눈 밝은 종사를 말한다.
가 아니었겠소?”
“그의 일을 관계하는 것이 아니오.”
“밥이 입가에 왔어도 그에게 몽땅 빼앗기겠소.”
대사가 밥을 놓으니, 거사가 말했다.
“한 구절도 소멸하지 못했소.”
거사가 또 대사에게 물었다.
“마 대사께서 착실히 남을 위한 곳을 스님께도 분부하셨습니까?”
대사가 대답했다.
“나는 아직도 그를 보지도 못했거늘, 그의 착실한 곳을 어찌 알겠소?”
거사가 말했다.
“이 본다느니, 안다느니 하는 것도 따질 곳이 없소.”
“거사도 한 방향[一向]의 언설言說은 얻지 못했소.”
“한 방향의 말로도 스님께서는 또 종지를 잃는데, 만약 두 방향[兩向]ㆍ세 방향[三向]의 말을 한다면 스님께서 입을 열 수 있겠습니까?”
“다만 입을 열지 못하게 될 것 같으면 진실하다고 할 수 있겠군.”
거사가 손뼉을 치면서 나가 버렸다. 
보력寶曆 때에 제운齊雲으로 돌아가서 열반에 드니, 수명은 80세이고 법랍은 58세였다. 대화大和 2년에 대보大寶 선사 능가의 탑[楞伽之塔]이라는 시호를 추증하였다.

포주蒲州 마곡산麻谷山 보철寶徹 선사

어느 날 마조馬祖를 따라 가다가 물었다.
“어떤 것이 큰 열반입니까?”
마조가 대답했다.
“급하구나.”
대사가 말했다.
“급한 것이 무엇입니까?”
“물을 살펴라.”

대사가 단하丹霞와 함께 산길을 가다가 물속의 고기를 보고 손으로 가리켰다. 단하가 말하였다. 
“천연天然, 천연天然이로다.” 
이튿날 대사가 다시 단하에게 물었다.
“어제는 무슨 뜻이었소?”
단하가 몸을 던져 누워 버리는 시늉을 하자, 대사가 말했다.
“아이고!”
또 대사가 단하와 함께 마곡산麻谷山에 가서 말했다.
“나는 여기서 살아야겠소.”
단하가 말했다.
“살겠다면 또한 따르겠지만, 어딘들 없겠소?”
대사가 말했다.
“진중珍重하시오.”

어떤 스님이 물었다.
“12분교는 제가 의심치 않거니와 어떤 것이 조사께서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대사가 일어서서 주장자로 몸을 한 바퀴 돌리고, 한 발을 들고서 말했다.
“알겠는가?”
그 스님이 대답이 없으니, 대사가 때렸다.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불법의 대의大意입니까?”
대사가 잠자코 있었다.[그 스님이 다시 석상石霜에게 묻기를 “이 이치가 어떠합니까?” 하니, 석상이 답하기를 “주인이 너무 부지런히 힘쓰다 보니 그대<闍梨>를 진흙탕에 끌어들이고 물에 빠트렸군”이라 하였다.]
탐원耽源이 물었다.
“12면面 관세음보살이 범부입니까, 성인입니까?”
대사가 말했다.
“성인이다.”
탐원이 대사를 한 주먹 때리자, 대사가 말했다.
“그대가 그 경계에 도달하지 못했음을 알겠구나.”


항주杭州 염관鹽官 진국鎭國 해창원海昌院 제안齊安 선사

그는 해문군海門郡 사람으로서 성은 이李씨이다. 태어날 때에 신령스러운 광명이 방을 비추었고, 또 이상한 스님이 와서 그를 두고 말했다. 
“더할 수 없이 뛰어난 깃대[無勝幢]를 세우고, 부처의 태양[佛日]을 돌이켜 비추게 할 자가 어찌 그대가 아니겠는가?”
마침내 그 고을의 운종雲琮 선사에 의해 스님이 되어서 구족계까지 받았는데, 나중에 대적大寂이 공공산龔公山에서 교화를 편다는 말을 듣고 길을 떠나 찾아갔다. 대사는 모습이 기이하였기 때문에 대적은 그를 한 번 보자, 그가 매우 뛰어난 인재임을 알아서, 곧 입실入室을 명하여 바른 법을 은밀히 보여 주었다.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본래의 몸[本身]인 노사나불盧舍那佛입니까?”
대사가 말했다.
“저 구리 병을 내게 갖다 주게나.”
그 스님이 깨끗한 병을 가지고 오자, 대사가 말했다.
“본래의 자리로 갖다 두어라.”
그 스님이 본래의 자리에 가져다 두고 와서 다시 앞의 말을 물으니, 대사가 말했다.
“옛 부처님은 지나가신 지 오래다.”

어떤 강講하는 스님이 와서 뵙자, 대사가 물었다. 
“좌주坐主는 어떤 사업事業을 쌓았는가?”
“󰡔화엄경華嚴經󰡕을 강하였습니다.”
“경전 속에서 몇 가지 법계가 있다고 하였는가?”
“자세히 말하면 겹겹이 다함이 없고[重重無盡], 간략히 말하면 네 가지 법계가 있습니다.”
대사가 불자를 세우면서 말했다.
“이것은 몇 번째 법계인가?”
좌주가 골똘히 궁리하면서 천천히 그에 대한 답변을 생각하자, 대사가 말했다.
“생각해서 알거나 따져서 이해하는 것은 귀신 집안의 살림살이요, 햇볕 아래의 외로운 등불이니 결과적으로 비춤을 잃으리라.”[보복保福이 듣고 말하기를 “저는 화상을 번거롭게 하려는 것이 아니니 괴이하게 여기지 마십시오”라고 하였다. 법안法眼이 대신 손뼉을 세차게 쳤다.]

어떤 스님이 대매大梅에게 물었다. 
“어떤 것이 조사께서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대매가 대답했다. 
“서쪽에서 온 것에는 뜻이 없다.” 
대사가 이 말을 듣고서 말했다.
“관棺은 하나인데 시체가 둘이구나.”[현사玄沙가 말하기를 “염관이야말로 작가作家로구나”라고 하였다.]

대사가 시자를 불러서 말했다. 
“물소 부채[犀牛扇子]를 가져 오라.” 
시자가 대답하였다. 
“망가졌습니다.” 
대사가 말했다.
“부채가 망가졌다면 내게 물소나 돌려다오.”
시자가 대답이 없었다.[투자投子가 대신 말하기를 “가져오기는 어렵지 않으나, 머리와 뿔이 온전치 않을까 걱정입니다”라고 하였다. 자복資福이 대신 동그라미를 그리고 그 복판에다가 ‘우牛’자를 썼다. 석상石霜이 대신 말하기를 “화상께 돌려 드린다면 없을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보복保福이 말하기를 “화상께서는 연세가 높으시니 따로 사람을 청하시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대사가 어느 날 대중에게 말했다.
“허공으로 북을 삼고 수미산으로 망치를 삼는다. 누가 치겠는가?”
아무도 대답이 없었다.[어떤 사람이 남전南泉에게 말하니 남전이 말하기를 “왕王 노사老師는 그런 깨진 북을 치지 않는다”라고 하였다. 법안法眼이 따로 말하기를 “왕 노사는 치지 않는다”라고 하였다.]
법공法空이라는 선사가 와서 경전의 온갖 뜻을 물으니, 대사가 낱낱이 대답하고 나서 말했다.
“선사가 온 뒤로부터 나는 전혀 주인 노릇을 못했다.”
법공이 말했다.
“화상께서 다시 주인이 되십시오.”
대사가 말했다.
“오늘밤에는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서 머물러 있다가 내일 다시 오시오.”
법공이 물러갔다. 이튿날 아침에 대사가 사미를 시켜 법공 선사를 불러오라고 했다. 법공이 오자 대사가 사미를 돌아보면서 말했다.
“쯧쯧, 이 사미가 일을 요달하지 못했구나. 법공 선사를 모셔 오라고 했는데, 이 당堂을 지키는 집안사람만을 데리고 왔구나.”
법공이 말이 없었다.

원주院主인 법흔法昕이 와서 뵙자, 대사가 물었다.
“너는 누구냐?”
“법흔입니다.”
“나는 너를 모르겠다.”
법흔은 말이 없었다.
그 뒤에 대사는 병 없이 연좌宴坐한 채로 열반에 드니, 오공悟空 선사라는 시호를 내렸다.

무주婺州 오설산五洩山 영묵靈黙 선사

그는 비릉毘陵 사람으로서 성은 선宣씨이다. 처음에 예장豫章의 마馬 대사를 뵈었는데, 마 대사가 그를 받아들여서 스님이 되게 하고 구족계를 주었다. 
나중에 처음 석두石頭 희천希遷 화상을 뵈었을 때 속으로 작정하기를 ‘한마디에 계합하면 나는 여기에 살겠지만 그렇지 못하면 떠나리라’고 하였는데, 석두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자, 대사가 문득 나가 버렸다. 석두가 뒤를 따라 문밖까지 나서면서 “사리闍梨여”하고 불렀다. 대사가 고개를 돌리자, 석두가 말했다.
“날 때부터 늙을 때까지 단지 그 놈뿐이다. 다시 다른 곳에서 구하지 말라.”
대사가 이 말끝에 홀연히 크게 깨달았다. 그리하여 주장자를 밟아 꺾어 버리고 나서 그대로 머물렀다.[동산洞山이 말하기를 “그때에 오설五洩 선사가 아니었더라면 감당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렇기는 하지만 여전히 도중에 있다”라고 하였다. 장경長慶은 말하기를 “험하구나”라고 하였다. 현각玄覺이 말하기를 “그가 세 치<三寸> 도중에서 알았으므로 길에 있다 하겠습니다”라고 하였다. 현각이 말하기를 “스스로를 알았는가? 세 치를 알았는가? 만일 자기를 알았다면 어찌하여 세 치를 이루었으며, 만일 세 치라면 어째서 깨달았겠는가? 어지럽게 말하지 말고 자세히 관찰하라”고 하였다.]
당나라 정원貞元 초에 천태산天台山에 들어가서 백사도량白沙道場에 살다가 다시 오설산으로 왔다.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떤 물건이 천지보다 큽니까?”
대사가 대답했다.
“아무도 알아챌 수 없느니라.”
“쪼아서 새길 수는 없습니까?”
“그대가 시험 삼아 손을 써 보라.”

다시 어떤 스님이 물었다.
“이 문중의 처음과 마지막 일이 어떠합니까?”
대사가 대답했다.
“그대가 말해 보라. 눈앞의 이루어진 것이 얼마나 된다고 여기는가?”
“학인은 잘 이해하지 못하겠습니다.”
“나의 이 짬[間]에는 그대의 물음이 없다.”
“화상께서는 어찌하여 사람을 제접하신 곳이 없다 하십니까?”
“그대가 제접해 주기를 요구하길 기다렸다가 나는 곧 제접해 준다.”
“화상께서 제접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대는 부족한 것이 무엇인가?”
“어찌하여야 무심無心이 됩니까?”
“산이 무너지고 바다가 뒤집혀도 태연히 고요하고, 땅이 흔들려도 편안히 잠드는데 어찌 그를 캐내겠는가?”

대사는 원화元和 13년 3월 23일에 목욕하고 향을 피우고 단정히 앉아서 대중에게 말했다.
“법신은 원만하고 적멸하건만 오고 감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천 명의 성현은 동일한 근원이고 만 가지 영靈이 하나로 돌아가니, 내가 이제 거품으로 흩어진다 해서 어찌 슬픈 생각을 내겠는가? 스스로 정신을 수고롭게 하지 말고 모름지기 정념正念을 간직하라. 만일 이 명命을 준수하면 참으로 나의 은혜를 갚는 일이요, 나의 말을 어기면 나의 제자가 아니다.”
그때에 어떤 스님이 물었다.
“화상께서는 어디로 가시겠습니까?”
대사가 대답했다.
“어떤 곳으로도 가지 않는다.”
“저는 어째서 보지 못합니까?”
“눈으로 볼 바가 아니니라.”[동산洞山이 말하기를 “작가로구나”라고 하였다.]
말을 마치자 조용히 세상을 떠나니, 수명은 72세이고 법랍은 41세였다.

명주明州 대매산大梅山 법상法常 선사

그는 양양襄陽 사람으로서 성은 정鄭씨이다. 어릴 때에 형주荊州 옥천사玉泉寺에서 스님이 되었는데, 처음 대적大寂을 뵙고 물었다. 
“어떤 것이 부처입니까?”
대적이 대답했다.
“마음이 곧 부처이니라.”
대사는 즉석에서 크게 깨달았다. 
당나라 정원貞元 때에 천태산天台山 여요餘姚의 남쪽 70리에 있는 매자진梅子眞이 옛적에 은거하던 자리에 살았다. 당시 염관鹽官 스님 밑에 있던 어떤 스님이 이 산에 와서 주장자 감을 베다가 길을 잃고 암자까지 와서 물었다.
“화상께서 얼마 동안 이 산에 계셨습니까?”
대사가 대답했다.
“사방의 산이 푸르렀다 누레졌다 하는 것을 보았을 뿐이다.”
“산을 벗어나는 길은 어느 쪽에 있습니까?”
“냇물을 따라가라.”
그 스님이 돌아와서 염관에게 말하니, 염관이 말했다.
“내가 강서江西에 있을 때에 어떤 스님 하나를 만났지만, 그 뒤로는 소식을 몰랐는데 그 스님이 아닐까?”
그리하여 스님을 보내서 대사를 나오라고 청하자, 대사가 게송으로 대답했다.
앙상한 고목이 차가운 숲에 의지했으니
몇 차례 봄을 만나도 마음이 변하질 않네.
나무꾼이 보고도 본체만체 하거늘
영인郢人 능숙한 목수를 말한다.
은 무엇 하러 애써서 찾는가?
摧殘枯木倚寒林    幾度逢春不變心
樵客遇之猶不顧    郢人那得苦追尋

대적이 대사가 산에 산다는 것을 듣고서 한 명의 스님을 보내어 이렇게 묻게 하였다.
“화상께서 마조를 뵙고서 무엇을 얻었기에 이 산에 사십니까?”
대사가 대답했다.
“마조께서는 나에게 이르시기를 마음이 곧 부처라 하시기에 나는 여기에 와서 산다.”
그 스님이 말했다.
“마조 대사의 요즈음 불법은 또 다릅니다.”
“어떻게 다른가?”
“요즘은 또 마음도 아니고 부처도 아니라고 하십니다.”
대사가 말했다.
“그 늙은이가 사람 속이기를 그칠 날이 없구나. 자기 멋대로 마음도 부처도 아니라고 하는데, 나는 다만 마음이 곧 부처라고 하리라.”
그 스님이 돌아가 마조에게 말하자, 마조가 듣고 말했다.
“대중이여, 매실[梅子:法常]이 익었구나.”[어떤 스님이 화산禾山에게 묻기를 “대매大梅가 그렇게 말한 뜻이 무엇입니까?”라고 하니, 화산이 대답하기를 “참으로 사자 새끼였지”라고 하였다.]
이로부터 배우는 자들이 차츰 늘어서 대사의 도가 더욱 드러났다. 어느 날 대사가 상당하여 대중에게 말했다.
“그대들 모두가 제각기 스스로 마음을 돌이켜서 근본을 통달할지언정 말단을 쫓지는 말라. 다만 근본을 얻기만 하면 말단은 저절로 이른다. 만일 근본을 인식하고자 하면 오직 스스로의 마음을 요달할 뿐이다. 이 마음은 원래 일체 세간과 출세간법의 근본이기 때문에 마음이 나면 갖가지 법이 나고 마음이 멸하면 갖가지 법이 멸한다. 마음은 다만 일체 선악에 의지하지 않고 생기며, 만법은 본래 스스로 여여如如하다.”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불법의 대의입니까?”
대사가 대답했다.
“장포 꽃ㆍ버들 솜ㆍ대 바늘ㆍ삼실이니라.”

협산夾山과 정산定山이 같이 가면서 말을 하던 차에 정산이 말하였다. 
“생사 가운데에 부처가 없으면 생사가 아니다.”
정산이 말하였다. 
“생사 가운데 부처가 있으면 생사를 미혹하지 않는다.”
두 사람이 같이 대사를 찾아와서 절한 뒤에 앞의 이야기를 들면서 다음과 같이 물었다.
“두 사람의 견해에서 어느 쪽이 옳습니까?”
대사가 대답했다.
“하나는 친하고[親], 하나는 성글다[疎].”
협산이 다시 물었다.
“어느 쪽이 친합니까?”
대사가 대답했다.
“갔다가 내일 오너라.”
협산이 이튿날 다시 와서 대사에게 물으니, 대사가 대답했다.
“친한 이는 묻지 않고, 묻는 이는 친하지 않다.”[협산夾山이 그 뒤에 혼잣말로 말하되, “그때에 한쪽 눈을 잃었다”라고 하였다.]

어느 날 홀연히 대중에게 말했다.
“오는 이를 막지 말고, 가는 이를 쫓지 말라.”
잠시 멈춘 사이에 날다람쥐 소리가 들리자, 대사가 말했다.
“이 물건 그대로이지 다른 물건이 아니다. 그대들 모두가 잘 보호해 지녀라. 나는 이제 떠난다.”
말을 마치자 조용히 떠나니, 수명은 88세이고 법랍은 69세였다. 연수延壽 지각智覺 선사가 이렇게 찬탄하였다.

대사께서 처음에 도를 깨치실 땐
마음이 그대로 부처라 하시더니
마지막에 무리에게 보이실 때에는
그 물건이 다른 물건 아니라 하시네.
師初得道    卽心是佛    
最後示徒    物非他物

만법의 근원을 궁진窮盡하시고
1천 성인의 골수까지 꿰뚫으셨네.
참된 덕화는 옮김이 없는 것이니
들어오고 나감에 무슨 방해가 있으랴.
窮萬法源    徹千聖骨    
眞化不移    何妨出沒

경조京兆 흥선사興善寺 유관惟寬 선사

그는 구주衢州의 신안信安 사람으로서 성은 축祝씨이다. 13세에 살생하는 이를 보고 애처로워서 차마 그 고기를 먹지 못하더니, 끝내 출가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계율[毘尼]을 익히고 지관止觀을 닦았는데, 나중에 대적大寂을 뵙고서 마음의 요체를 얻었다.
당나라 정원貞元 6년에 처음으로 오월吳越 지방에서 교화를 시작해서 8년에 파양鄱陽으로 가니, 산신山神이 8계戒를 받기를 요구해 왔었고, 13년에는 숭산嵩山의 소림사少林寺로 가서 살았다.
어떤 스님이 와서 물었다.
“어떤 것이 도입니까?”
대사가 대답했다.
“매우 좋은 산이다.”
“학인은 도를 물었는데 스님께서는 어찌하여 좋은 산이라 하십니까?”
“그대는 다만 좋은 산만을 의식하니, 어찌 일찍이 도에 도달했겠는가?”
그 스님이 다시 물었다.
“개에게도 불성이 있습니까?”
“있다.”
“화상께도 있습니까?”
“나에게는 없다.”
“온갖 중생이 모두 불성이 있는데, 화상만은 어찌하여 홀로 없으십니까?”
“나는 온갖 중생이 아니기 때문이다.”
“중생이 아니라면 부처입니까?”
“부처도 아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어떤 물건이란 말입니까?”
“물건도 아니다.”
“보거나 생각할 수 있습니까?”
“생각으로도 미치지 못하고, 논의로도 얻을 수도 없다. 그러므로 불가사의不可思議라고 말하는 것이다.”

원화元和 4년에 조칙을 받고 황제에게 나아가니, 백거이白居易가 대사에게 와서 물었다.
“선사라 하면서 어찌하여 설법을 하십니까?”
대사가 대답했다.
“위없는 보리[無上菩提]라는 것은 몸에 덮이면 계율이 되고, 입으로 말하면 법이 되고, 마음으로 행하면 참선이 되니, 감응하여 쓰는 것은 셋이나 그 이치는 하나이다. 비유하건대 강江과 하河와 회淮와 한漢은 곳에 따라 이름을 세운 것인데, 이름은 비록 하나가 아니지만 물의 성품은 둘이 아닌 것과 같으니, 계율이 곧 법이고 법은 선禪을 여의지 않는다. 어찌하여 그 가운데서 허망하게 분별을 일으키는가?”
“분별이 없다면 어떻게 마음을 닦습니까?”
“마음은 본래 손상된 바가 없거늘 이理를 닦을 필요가 어디에 있으랴? 더러움과 깨끗함을 막론하고 일체 생각[念]을 일으키지 말라.”
“더러움이야 생각지 않아야 하겠지만, 깨끗함이야 어찌 생각지 않겠습니까?”
“가령 사람의 눈동자에는 한 물건도 머무를 수 없으니, 금 부스러기가 아무리 귀한 보배라도 눈에 들어가면 병이 되는 것과 같다.”
“닦음도 없고 생각함도 없으면 범부와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범부는 무명이고 2승은 집착이니, 이 두 가지 병을 여의어야 참 수행이라고 말한다. 참 수행이란 애쓰지도 말고 잊지도 말아야 하나니, 애쓰면 집착에 가깝고 잊으면 무명에 떨어진다. 이것이 마음의 요체라고 말할 수 있다.”

어떤 스님이 물었다.
“도가 어디에 있습니까?”
대사가 대답했다.
“다만 눈앞에 있을 뿐이다.”
“저는 어찌하여 보지 못합니까?”
“그대는 ‘나[我]’가 있기 때문에 보지 못한다.”
“제가 ‘나[我]’가 있기 때문에 보지 못한다면, 화상께서는 보십니까?”
“‘그대’가 있고 ‘나’가 있으면 더욱 더 보지 못한다.”
“‘나’도 없고 ‘그대’도 없으면 보입니까?”
“그대도 없고 나도 없으면, 누가 보기를 구한단 말인가?”
원화元和 12년 2월 그믐날에 법상에 올라 설법을 마치고 열반에 드니, 수명은 63세이고 법랍은 39세였다. 파릉灞陵의 서쪽 언덕에 장사지내니, 시호를 대철大徹 선사 원화정진元和正眞의 탑이라 하였다.

호남湖南 동사東寺 여회如會 선사

그는 시흥始興 곡강曲江 사람이니, 처음에는 경산徑山을 알현했다가 나중에 대적大寂을 참문했다.
배우는 무리들이 많이 모여 승당僧堂 안의 상탑床榻이 부러지자, 당시 사람들은 절상회(折床會:평상이 부러진 모임)라고 불렀다. 대적이 세상을 떠난 뒤에 대사는 항상 문도門徒들이 마음이 곧 부처라는 말만을 끊임없이 외우고, 또 부처님이 어디에 머무는가 하는 말에는 마음[卽心]이라 대답하고, 마음은 화가[畫師]와 같으니 바로 부처를 말한다고 하는 것을 걱정하여 무리들에게 말했다.
“마음은 부처가 아니고, 지혜는 도가 아니다. 칼을 잃어버린 지 오래인데, 이제야 뱃전에다 표시를 하는가?”

당시 동사東寺를 선굴禪窟이라 불렀는데, 상국相國인 최공崔公이 호남湖南 관찰사로 나왔다가 대사를 보고 물었다.
“스님은 어떻게 얻었습니까?”
대사가 대답했다.
“성품을 봄으로써 얻었소.”
이때 대사가 눈병을 앓고 있었는데, 상국이 이를 보고 비꼬는 말을 했다.
“성품은 보았다지만 눈이야 어쩌지 못하는군요.”
“성품을 보는 것은 눈이 아니니, 눈병이 무슨 방해가 되랴?”
상공相公이 머리를 조아리고 사과하였다.[법안法眼이 말하기를 “이는 상공의 눈이구나”라고 하였다.]

대사가 남전南泉에게 물었다.
“최근에 어디서 떠나 왔는가?”
“강서江西에서 왔습니다.”
“마조馬祖 대사의 진영眞影을 가지고 왔는가?”
“이것뿐입니다.”
“뒤쪽의 것이구나.”
남전이 대답이 없었다.[장경長慶이 대신 말하기를 “흡사 모르는 사람 짓 같구나”라고 하였다. 운거雲居 석錫이 말하기를 “이 두 존숙尊宿은 모두가 뒷모습을 붙들었는데, 남전이 그만두고 간 것은 앞모습을 붙든 것인가, 뒷모습을 붙든 것인가?”라고 하였다.]

최崔 상공相公이 절에 왔다가 불상 머리 위에 참새들이 똥을 싸는 것을 보고 대사에게 물었다.
“참새들이 불성이 있습니까?”
대사가 대답했다.
“있소.”
“그렇다면 어찌하여 불상 위에다 똥을 쌉니까?”
“그대는 어찌하여 새매 대가리에다 똥을 싸지 않소?”

앙산仰山이 와서 뵙자, 대사가 말했다.
“벌써 인사를 받았다. 다시 올라올 필요가 없다.”
앙산이 말했다.
“그렇게 뵈면 너무 부당하지 않겠습니까?”
대사는 그만 방장실로 돌아가서 문을 닫아 버렸다. 앙산도 돌아가서 위산潙山에게 이 사실을 말하자, 위산이 말했다.
“혜적(慧寂:앙산)아, 그게 무슨 심행心行인가?”
앙산이 말했다.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어찌 그를 알아볼 수가 있겠습니까?”

어떤 사람이 대사에게 물었다.
“제가 화상에게 개당開堂을 청하려는데 가능하겠습니까?”
대사가 대답했다.
“그대가 가진 물건으로 석두石頭를 싸서 따뜻해지면 될 수 있다.”
그가 말이 없었다.[약산藥山이 대신 말하기를 “석두石頭가 따뜻해졌다”라고 하였다.]
당나라 장경長慶 계묘년癸卯年 8월 19일에 열반에 드니, 수명은 80세이다. 시호는 전명傳明 대사요, 탑호는 영제永際라 하였다.


악주鄂州 무등無等 선사

그는 위씨尉氏 사람으로 성은 이李씨이다. 처음에 출가하여 공공산龔公山에서 대적大寂을 뵈었는데, 남몰래 마음의 요체를 전해 받았다.
나중에 수주隨州 토문土門으로 가서 군수[州牧]인 왕王 상시常侍를 보러 갔었다. 대사가 그를 만나 보고 문을 나서는데, 왕 상시가 뒤를 따라 나오면서 “스님[和尙]” 하고 불렀다. 대사가 뒤를 돌아보니, 왕씨가 기둥을 세 차례 쳤다. 대사가 손으로 동그라미를 만들었다가 다시 세 번 튀기고는 문득 가 버렸다.
그 뒤에 무창武昌의 대적사大寂寺에 가서 살았는데, 어느 날 대중이 저녁문안을 드렸다. 대사는 대중들이 모두 자기 앞에 와서 “안녕하십니까[不審]” 하는 것을 보고는, 곧 대중들에게 말했다.
“대중이여, 아까 나던 소리는 어디로 갔는가?”
어떤 스님이 손가락 끝을 곧추 세우자, 대사가 말했다.
“진중珍重하라.”
그 스님이 다음날 문안차 들어왔을 때 대사가 몸을 돌려 벽을 향해 누워서 거짓으로 앓는 소리를 내면서 말했다.
“노승이 2, 3일 사이에 몸이 매우 불편한데, 대덕 주변에 어떤 약이 있거든 조금만 나에게 주시오.”
그 스님이 손으로 정병淨缾을 치면서 말했다.
“이 정병, 어디서 구했습니까?”
“그것은 바로 노승이니, 대덕은 어디에 있는가?”
그 스님이 말했다.
“화상이기도 하고 저이기도 합니다.”
당나라 대화大和 4년 10월에 열반에 드니, 세속 수명은 82세였다.

여산廬山 귀종사歸宗寺 지상智常 선사

상당上堂하여 말했다. 
“예로부터 여러 고덕古德들은 지해知解가 없지 않았고, 고상한 선비들은 예사 무리와 같지 않았지만, 요새 사람들은 스스로 이루거나 스스로 서지 못하면서 헛되이 세월을 보내니, 그대들은 마음을 잘못 쓰지 말라. 아무도 그대들을 대신해줄 이가 없고, 또한 그대들이 마음을 쓸 곳도 없으니, 다른 곳에서 찾지 말라. 예전의 것은 단지 의타依他의 견해라서 말을 발發하면 모두 막히게 된다. 광명이 투철하게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눈앞에 물건이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어떤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현묘한 종지[玄旨]입니까?”
“아무도 이해할 수 없다.”
“향하는 자는 어떻습니까?”
“향함이 있으면 곧 어긋난다.”
“향하지 않는 자는 어떻습니까?”
“누가 현묘한 종지를 구하겠는가?”
또 말했다.
“가라. 그대의 마음 쓸 곳이 없다.”
“어찌하여 방편문으로 학인을 깨달아 들게 하지 않습니까?” 
“관세음보살의 묘한 지혜의 힘이 능히 세간의 고통을 구하느니라.”
“무엇이 관세음보살의 묘한 지혜의 힘입니까?”
대사가 솥뚜껑을 세 번 두드리고 말했다.
“들리는가?”
“들립니다.”
“나는 어찌하여 듣지 못하는가?”
그 스님이 말이 없으니, 대사가 방망이로 때려서 쫓았다.

대사가 남전과 동행한 적이 있는데, 나중에 홀연히 서로 헤어지게 되어서 차를 달이는데 남전이 물었다.
“전부터 사형과 함께 상량商量하던 언구들은 이것이든 저것이든 이미 알았지만, 이후에 어떤 사람이 필경畢竟의 일을 물으면 어찌하리까?”
대사가 대답했다.
“이 한 조각 땅이 크고 좋은 암자로구나.”
“좋은 암자는 그만두고, 필경의 일은 어떻습니까?”
대사가 차 그릇을 치면서 벌떡 일어서자, 남전이 말했다.
“사형은 이미 차를 마셨지만, 저는 아직 차를 마시지 못했습니다.”
“그런 말을 하면 물 한 방울도 녹이기 어려우리라.”

어떤 스님이 물었다.
“이 일은 아득히 멀고 긴데, 어떻게 마음을 써야 합니까?”
대사가 대답했다.
“쇠가죽으로 노주(露柱:맨 땅에 세운 기둥)를 묶어서 끄니, 노주가 처량하게 울부짖는구나. 범상한 귀로는 들어도 들리지 않고, 모든 성인들은 껄껄 웃는다.”

대사는 속세의 관원이 오는 것을 보고 모자의 양쪽 끈을 들어 올리면서 말했다.
“알겠는가?”
“모르겠소.”
“노승을 괴이하게 여기지 말라. 머리에 풍기風氣가 있어서 모자를 벗지 않았다.”

대사가 채소밭에 들어가서 나물을 뜯었는데, 동그라미를 그려서 어느 한 포기를 둘러싸고는 대중에게 말했다.
“아무도 이것을 건드리지 말라.”
대중들은 감히 건드리지 못했는데, 조금 있다가 대사가 다시 와서 그 채소가 여전히 있는 것을 보고는 문득 방망이로 대중을 때려 쫓으면서 말했다.
“이 패거리 안에 지혜 있는 놈이 하나도 없구나.”

대사가 새로 온 스님에게 물었다.
“어디서 왔는가?”
“봉상鳳翔에서 왔습니다.”
“그것을 가지고 왔는가?”
“가지고 왔습니다.”
“어디에 있는가?”
그 스님이 손을 정수리 위로 올려 바치는 시늉을 하니, 대사가 그것을 받는 자세를 취했다가 등 뒤로 던져 버렸다. 그 스님이 말이 없으니, 대사가 말했다.
“이 들여우야.”

대사가 풀을 깎는데 강講하는 스님이 와서 뵈었다. 마침 대사가 호미로 풀을 매는데, 때마침 뱀이 스쳐가자 호미로 끊었다. 스님이 말하였다. 
“귀종歸宗의 명성은 들은 지 오래인데, 와서 보니 행실이 거친 사문이로군.”  
“좌주여, 찻방에 가서 차나 마시게.”

운암雲巖이 와서 보니 대사가 활을 당기는 시늉을 했다. 운암은 조금 있다가 칼을 뽑는 시늉을 하니, 대사가 말했다.
“어서 오게. 게으름뱅이야.” 

어떤 스님이 하직하고 물러가자, 대사가 불러서 말했다.
“앞으로 가까이 오게나. 내가 그대를 위해 불법을 말해 주리라.”
그 스님이 앞으로 다가오자, 대사가 말했다.
“그대와 모든 사람들이 다 일이 있을 터이니, 그대는 다른 때에 오라. 이 속에서는 아무도 그대를 알아채지 못하리라. 날씨가 추우니 길 조심해 가라.”

대사가 상당하여 말했다.
“내가 이제 선禪을 설하고자 하니, 여러분은 모두 앞으로 다가 오라.”
대중이 앞으로 나오자, 대사가 말했다.
“그대들은 관음觀音의 행을 들어라. 온갖 방향과 처소[方所]에 잘 감응한다.”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관음의 행입니까?”
대사가 손가락을 튀기면서 말했다.
“사람들이여, 듣는가?”
“듣습니다.”
대사가 말했다.
“한 패거리가 이 속에서 무엇을 찾는가?”
그리고는 몽둥이로 때려 쫓고 껄껄 웃으면서 방장方丈으로 돌아갔다.

어떤 스님이 물었다.
“처음 발심한 이가 어찌하여야 들어갈 곳을 얻겠습니까?”
대사가 솥뚜껑을 세 번 두드리고서 말했다.
“들었는가?”
그 스님이 대답했다.
“들었습니다.”
대사가 말했다.
“나는 어째서 듣지 못하는가?”
대사가 다시 세 번 두드리고서 물었다.
“들었는가?”
“듣지 못합니다.”
대사가 말했다.
“나는 어째서 듣는가?”
그 스님이 대답하지 못하자, 대사가 말했다.
“관음의 묘한 지혜의 힘은 능히 세간의 고통을 구원한다.”

강주江州 자사刺史 이발李渤이 대사에게 물었다.
“불경에 말하기를 ‘수미산 안에 겨자씨를 넣는다’고 한 것은 의심치 않지만, ‘겨자씨 속에 수미산을 넣는다’ 함은 거짓말이 아니겠습니까?”
대사가 대답했다.
“사람들이 말하기를 사군(使君:이발을 가리킴)께서는 만 권의 책을 읽었다는데 사실이오?”
이발이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대사가 말했다.
“정수리로부터 발꿈치까지 다 해봐야 야자나무[椰子]만한 크기인데, 만 권의 서적이 어디에 들어 있단 말이오?”
이발이 머리를 숙이고 섰을 뿐이었다. 
다른 날, 이발이 또 물었다.
“대장교(大藏敎:팔만대장경의 가르침)에서 어떤 일을 밝혔습니까?”
대사가 주먹을 들어 보이면서 말했다.
“알겠소?”
이발이 말했다.
“모르겠습니다.”
대사가 말했다.
“이 서생 나부랭이가 주먹도 모르는구나.”
“스님께서 잘 설명해 주십시오.”
“사람을 만나면 길을 가는 중에라도 전해 주지만, 만나지 못하면 세속 진리만이 퍼진다.”
대사는 눈이 겹 눈동자[重瞳]였는데, 약 묻은 손으로 비볐다가 눈알이 모두 붉어진 탓에 세상에서 붉은 눈의 귀종[赤眼歸宗]이라고 불렀다. 나중에 열반에 드니, 지진至眞 선사라는 시호를 내렸다.



경덕전등록 제8권






회양懷讓 선사의 제2세 밑의 56인[마조馬祖의 법손]

분주汾州 무업無業 선사
예주澧州 대동大同 광징廣澄 선사
지주池州 남전南泉 보원普願 선사
오대五臺 등은봉鄧隱峰 선사
온주溫州 불오佛㠗 화상
오구烏臼 화상
담주潭州 석상산石霜山 대선大善 화상
석구石臼 화상
본계本谿 화상
석림石林 화상
홍주洪州 서산西山 양亮 좌주坐主
흑안黑眼 화상
미령米嶺 화상
제봉齊峰 화상
대양大陽 화상
홍라산紅螺山 화상
천주泉州 귀양龜洋 무료無了 선사
이산利山 화상
소주韶州 유원乳源 화상
송산松山 화상
칙천則川 화상
남악南嶽 서원西園 담장曇藏 선사
백령百靈 화상
진주鎭州 금우金牛 화상
동안洞安 화상
흔주忻州 타지打地 화상
담주潭州 수계秀谿 화상
자주磁州 마두봉馬頭峰 신장神藏 선사
담주潭州 화림華林 선각善覺 선사
정주汀州 수당水塘 화상
고사古寺 화상
강서江西 비수椑樹 화상
경조京兆 초당草堂 화상
원주袁州 양기산陽岐山 견숙甄叔 선사
몽계濛谿 화상
낙경洛京 흑간黑澗 화상
경조京兆 흥평興平 화상
소요逍遙 화상
복계福谿 화상
홍주洪州 수로水老 화상
부배浮杯 화상
담주潭州 용산龍山 화상
양주襄州 거사居士 방온龐蘊
  [이상 43인은 기록에 보임]
천목산天目山 명각明覺 선사
왕옥산王屋山 행명行明 선사
경조京兆 지장智藏 선사
대양산大陽山 희정希頂 선사
소주蘇州 곤산崑山 정각定覺 선사
수주隨州 홍산洪山 대사
연주連州 원제元堤 선사
천주泉州 무료無了 선사
천주泉州 혜충慧忠 선사
안풍산安豊山 회공懷空 선사
나부산羅浮山 도행道行 선사
여산廬山 법장法藏 선사
여후산呂后山 영분寧賁 선사
  [이상 13명은 기연할 어구가 없으므로 기록하지 않음]


회양懷讓의 선사의 제2세 ③

분주汾州 무업無業 선사

그는 상주商州의 상락上洛 사람으로서 성은 두杜씨이다. 당초에 어머니가 “잠시 쉬어 갑시다” 하는 공중의 소리를 들었는데, 곧 이어 태기가 있었으며, 탄생하는 날 저녁에는 신령스런 광명이 방에 가득하였다.
귀밑머리를 딸 때가 되자, 다닐 때에는 반드시 앞만을 보고, 앉을 때에는 가부좌를 틀었다. 아홉 살이 되어서는 개원사開元寺의 지본志本 선사에게 대승경大乘經을 배웠는데, 다섯 줄을 동시에 읽고, 외운 것은 빠짐이 없었다. 12세에 머리를 깎고 20세에는 양주襄州의 유幽 율사律師에게 구족계를 받았으며, 이어서 󰡔사분율소四分律疏󰡕를 익혔는데 끝낸 뒤는 바로 강의할 수 있었다. 항상 대중 스님들에게 󰡔대열반경大涅槃經󰡕을 강의하였으니, 여름이건 겨울이건 중단한 적이 없었다. 
나중에 마馬 대사의 선문禪門이 번창한다는 소문을 듣고 특별히 가서 절하고 뵈었다. 마조는 그의 용모가 진기하고 음성이 종소리 같은 것을 보고서 말했다.
“우뚝한 불당佛堂이지만, 그 안에 부처는 없구나.”
대사가 절을 하고 꿇어앉아서 물었다.
“3승의 가르침은 대충이나마 그 취지를 궁구해 보았습니다. 그러나 항상 선문에서는 마음이 곧 부처라 한다고 들었는데, 진실로 이직까지도 요달하지를 못했습니다.”
마조가 말했다.
“다만 그 요달하지 못했다는 마음이 바로 그것이며, 다시 다른 것은 없다.”
“어떤 것이 조사께서 서쪽에서 오셔서 비밀히 전하신 심인心印입니까?”
“대덕의 마음이 지금 매우 산만해 보이니, 갔다가 다른 때에 오라.”
대사가 막 물러나려 하는데, 마조가 갑자기 불렀다.
“대덕이여.”
대사가 머리를 돌리자, 마조가 말했다.
“이게 무엇인고?”
대사가 문득 깨닫고 절을 하자, 마조가 말했다.
“이 둔한 친구야, 절은 해서 무엇 하겠는가?”[운거雲居 석錫이 들어 말하기를 “어느 것이 분주汾州의 정체인가?”라고 하였다.]

스스로 종지를 깨닫고 나서는 조계를 찾아가서 6조의 탑에 절하고, 여악廬嶽과 천태天台 등 성스러운 자취를 두루 돌아다녔다. 낙양으로부터 옹주에 가서 서명사西明寺에 이르러 쉬는데, 스님들이 양가대덕兩街大德으로 천거하니, 대사가 말했다.
“나의 본뜻이 아니니라.”
나중에 상당上黨 지명地名이니, 지금의 산서성 지방이다. 
에 갔는데 절도사節度使 이포진李抱眞이 대사의 고명한 행적을 중시해서 아침저녁으로 받들어 섬겼지만, 대사는 항상 괴로운 기색으로 사람들에게 말했다.
“내가 본래 상국(上國:서울)의 번거로움을 피했는데, 이제 다시 번거로이 군후君侯의 대접을 받으니, 이것이 어찌 나의 마음이리오?”
그리고는 포복산抱腹山으로 갔다가 오래지 않아서 다시 청량산 금각사金閣寺로 가서 다시 대장경을 열람하기 시작하여 여덟 해 만에 끝냈다.
그리고는 다시 남쪽으로 내려와 서하西河에 이르자, 자사刺史인 동숙전董叔纏이 대사를 개원정사開元精舍에 머물길 청하므로 대사가 말했다.
“나의 인연이 여기에 있구나.”
그리하여 큰 법비를 두루 뿌리기를 20여 년을 계속하니[자세한 내용은 별록에 실려 있다.] 병주幷州와 분주汾州 지방의 스님과 속인들이 감화를 받지 않은 이가 없었다. 무릇 배우는 자들이 와서 물으면, 대사는 흔히 “망상을 부리지 말라[莫妄想]”고 대답하였다.

당나라 헌종憲宗이 자주 사자를 보내서 불렀으나, 대사는 모두 병을 핑계로 나아가지 않았다. 목종穆宗이 즉위하자 꼭 한번 뵙기를 소원해서 양가승록兩街僧錄인 영부靈阜 등에게 명하여 “조서를 가지고 가서 맞이해 오라”고 하였다. 그들이 그에게 가서 절을 하고 말했다.
“황상皇上께서 이번에 부르시는 뜻은 평상시와 같지 않으시니, 화상께서는 병을 핑계대지 마시고 천자의 마음에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대사가 빙그레 웃으면서 말했다.
“내가 무슨 덕이 있다고 누차 세상의 주인(황제)을 번거롭게 하겠소? 먼저 가시오. 나는 다른 길을 따라서 곧 가겠소.”
그리고는 목욕을 하고 머리를 깎은 후에 밤중이 되자 제자인 혜음惠愔 등에게 말했다.
“그대들의 보고 듣고 깨닫고 아는 성품은 허공의 수명과 같은 것이라서 생겨나지도 않고 소멸하지도 않는다. 온갖 경계는 본래 스스로 공적하여 한 법도 얻을 수가 없지만, 미혹한 이는 요달하지 못한 채 바로 경계에 미혹되며, 한 번 경계에 미혹되면 끝없이 유전流轉한다. 그대들은 잘 알아야 한다. 심성은 본래 스스로 있는 것이니, 조작을 인因하지 않은 것이 마치 금강을 파괴할 수 없는 것과 같다. 온갖 법은 그림자와 같고 메아리와 같아서 진실함이 없나니, 그러므로 경에 말하기를 ‘오직 하나의 사실만 있을 뿐 나머지 둘은 참이 아니다’고 하였다. 항상 일체의 공함을 요달해서 한 물건도 정情에 해당하지 않으면, 이것이 모든 부처님들의 마음 쓰는 곳이다. 그대들은 모쪼록 부지런히 수행하라.”
말을 마치자 가부좌를 맺고 열반하였는데, 다비하는 날에는 상서로운 구름이 오색으로 아롱지고 기이한 향기가 사방에 가득하였다. 얻어진 사리는 구슬같이 찬란하였는데 제자들이 금관金棺에 넣어 봉안하였다. 그러다가 장경長慶 3년 12월 21일에 석탑石塔에 안치하여 장사지내니, 수명은 62세이고 법랍은 42세였다. 시호는 대달大達 국사國師이고, 탑호는 징원澄源이었다.

예주澧州 대동大同 광징廣澄 선사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6근根의 소멸입니까?”
대사가 대답했다.
“윤검輪劍을 허공에 던져도[다른 책에는 구름<雲>이라 되어 있다.] 물건을 다치지는 않는다.”
“어떤 것이 본래의 사람입니까?”
“함께 앉아서도 알아채지 못하는구나.”
“그렇다면 학인은 절하고 물러가겠습니다.”
“애타는 간장을 가만히 묘사해서 누구에게 주려는가?”

지주池州 남전南泉 보원普願 선사

그는 정주鄭州의 신정新鄭 사람으로서 성은 왕王씨이다. 당나라 지덕至德 2년에 대외산大隗山의 대혜大慧 선사에게 배우다가 30세에 숭악嵩嶽에 가서 계를 받았다. 처음에는 상부相部 법려法礪 율사律師가 살던 곳이 상주常住이므로 그의 저서를 상부라고도 하고, 구장舊章이라고도 한다.
의 구장舊章을 익혀 계율[毘尼]의 편篇과 취聚 비구ㆍ비구니가 지켜야 하는 구족계를 두 종류로 나눈 것으로서 편문篇門과 취문聚門이 있다. 편문은 결성結成한 죄과와 긴요한 뜻을 따라 5편으로 구별한 것이고, 취문은 그 죄성罪性과 인죄因罪에 의하여 종류로 모아서 6취ㆍ7취로 나눈 것이다.
를 궁구하였고, 다음에는 여러 강석講席을 다니면서 󰡔능가경楞伽經󰡕과 󰡔화엄경華嚴經󰡕 등의 경전을 듣다가 󰡔중론中論󰡕ㆍ󰡔백론百論󰡕ㆍ󰡔십이문론十二門論󰡕의 관법에 들어가서는 현묘한 이치를 더욱 연마하였고, 나중에는 대적大寂의 방을 두드려서 단박에 통발을 잊고서 유희삼매遊戲三昧를 얻었다.
하루는 대중 스님들에게 죽을 돌리는데 마 대사가 물었다.
“통 속에 있는 것이 무엇인가?”
대사가 대답했다.
“이 늙은이가 입을 다물 것이지 이 따위 말을 하는구나.”
그로부터 같이 배우는 무리가 감히 따지고 묻는 이가 없었다. 

정원貞元 11년에 지양池陽에 머물면서 스스로 선실[禪齋] 하나를 짓고 30여 년 동안 남전산을 내려가지 않았다. 대화大和 초년에 선성宣城의 염사廉使인 육긍陸亘이 대사의 도풍道風을 흠모하여 감군監軍 벼슬의 이름이다.
과 함께 산에서 내려오기를 청하면서 제자의 예를 갖추었다. 그리하여 현묘한 진리[玄綱]를 크게 떨치니, 이로부터 배우는 무리들이 항상 수백 명이 넘었고, 말씀이 곳곳에 자자하게 퍼져서 영장郢匠 능숙한 목수를 말하니, 즉 선리禪理에 밝은 선덕禪德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라 불렸다.
하루는 대사가 대중에게 훈시하였다.
“여여如如하다고 말할지라도 벌써 변하였다. 지금의 종사[師僧]들은 모름지기 이류異類 속에서 행해야 한다.”
귀종歸宗이 말했다.
“비록 축생의 행을 행하더라도 축생의 과보를 받지는 않으리라.”
대사가 말했다.
“맹팔랑孟八郞 맹씨 집안의 여덟째 아들이라는 뜻이니 용맹한 사람이라는 별칭이다.
도 또한 그렇게 한다.”

대사가 어느 때 이렇게 말했다.
“문수ㆍ보현을 지난 밤 3경更에 각각 20방망이씩 때려서 내쫓았느니라.”
조주趙州가 말했다.
“화상의 방망이를 누구더러 맞으라고 하십니까?”
대사가 말했다.
“그렇다면 왕王 노사老師의 허물이 어디에 있는지 말하라.”
조주가 절을 하고 나갔다.[현각玄覺이 말하기를 “말해 보라. 조주趙州가 그만두고 간 것이 남전을 긍정한 것인가, 긍정하지 않은 것인가?”라고 하였다.]

대사가 하루는 농장[莊舍]에 가리라 생각했는데, 그날 밤에 토지신土地神이 미리 장주莊主에게 알려 주어서 장주가 미리 준비를 끝냈다. 대사가 도착하여 장주에게 물었다.
“어떻게 내가 올 줄 알고 이와 같이 마련했는가?”
장주가 대답했다.
“지난밤에 토지신이 말하기를 ‘화상께서 오늘 오신다’고 보고했습니다.”
대사가 말했다.
“왕 노사의 수행이 힘이 없어서 귀신들에게 들켰구나.”
어떤 스님이 갑자기 물었다.
“화상은 선지식인데 어찌하여 귀신들에게 들켰습니까?”
대사가 대답했다.
“토지신 앞에 밥 한 몫을 더 놓아라.”[현각玄覺이 말하기를 “어디가 토지신 앞에 밥 한 몫 더 놓는 소식인가?”라고 하였다. 운거雲居 석錫은 말하기를 “이는 상을 주는 말인가, 벌을 주는 말인가? 그 토지신이 본 것이 남전인가, 남전이 아닌가?”라고 하였다.]

대사가 어떤 때에 말했다.
“강서江西의 마조는 말하기를 ‘마음이 곧 부처’라고 하지만, 왕 노사는 그렇게 말하지 않고 ‘마음도 아니고, 부처도 아니고, 물건도 아니다’고 하니, 이렇게 말해도 허물이 있겠는가?”
조주가 절을 하고 나갔다. 그러자 어떤 스님이 조주를 따라 나와서 그에게 물었다.
“상좌上座께서 절을 하고서 나오신 뜻이 무엇입니까?”
조주가 대답했다.
“그대는 화상께 가서 물어라.”
그 스님이 올라와서 물었다.
“지금 종심(從諗:趙州) 상좌가 절을 한 뜻은 무엇입니까?”
대사가 대답했다.
“그는 나의 뜻을 알아 차렸기 때문이다.”

대사가 어느 날 발우를 들고 법당에 올라가니, 황벽黃檗 화상이 첫째 자리에 앉았다가 대사를 보고도 일어나지 않았다. 대사가 물었다.
“장로長老는 몇 해 동안이나 도를 행했소?”
황벽이 대답했다.
“공왕불空王佛 때부터였소.”
“그래도 여전히 왕 노사의 손자뻘이니, 저 밑으로 내려가오.”
대사가 어느 날 황벽에게 물었다.
“황금으로 세계를 이루고, 백은白銀으로 벽을 꾸민 집이 있으니, 이는 누구의 거처인가?”
“성인의 거처입니다.”
“다시 한 사람이 있는데 어느 국토에 사는가?”
황벽이 손을 모으고 서 있자, 대사가 말했다.
“말할 수 없다면, 어찌하여 왕 노사에게 묻지 않는가?”
황벽이 얼른 물었다.
“다시 한 사람이 있는데 어떤 국토에 삽니까?”
대사가 대답했다.
“애석한지고.”
대사가 다른 때에 황벽에게 물었다.
“선정과 지혜를 균등히 배운다고 했는데, 이 이치가 어떠한가?”
황벽이 대답했다.
“12시時 가운데에 한 물건에도 기대지 않습니다.”
“그것은 장로가 본 경지가 아닌가?”
“외람됩니다만…….”
“장수漿水 값은 그만두고 짚신 값은 누구에게 갚게 할 것인가?”

대사가 어떤 스님이 장작 패는 것을 보고 나무를 세 번 치니, 그 스님이 도끼를 던지고 승당僧堂으로 돌아갔다. 대사도 법당으로 돌아갔다가 잠시 후에 다시 승당으로 들어왔는데, 아까 그 스님이 의발衣鉢 밑에 앉아 있는 것을 보았다. 대사가 그에게 말했다.
“사람을 속이는군.”
그 스님이 물었다.
“스님께서 방장실로 돌아오셨으니, 어떤 지침[指南]을 갖고 오셨습니까?”
대사가 대답했다.
“지난밤 3경에는 소를 잃었고, 날이 밝을 무렵에는 불도 잃었다.”

동서東西 양당兩堂에서 고양이 하나를 두고 싸움이 벌어졌는데, 대사가 고양이를 잡고서 대중에게 외쳤다.
“말할 수 있으면 고양이를 살리겠지만, 말하지 못하면 목을 베리라.”
대중이 아무도 대답치 못하니, 대사는 곧 목을 베었다. 때마침 조주가 밖에서 돌아왔는데 대사가 앞의 일을 들어 이야기하니, 조주는 신을 벗어서 머리에 이고 나아갔다. 대사가 이를 보고 말했다.  
“아까 그대가 있었더라면 고양이를 구했을 텐데…….”

대사가 방장에서 삼산杉山과 함께 불을 쪼이다가 말했다.
“동쪽을 가리키거나 서쪽을 가리킬 필요는 없고 곧바로 본분사本分事를 말해 보라.”
삼산이 부젓가락을 꽂고 손을 모으고 섰으니, 대사가 말했다.
“비록 그렇더라도 여전히 왕 노사의 한 가닥 도와 비슷할 뿐이다.”

어떤 스님이 문안을 드리고 합장하고 서 있자, 대사가 말했다.
“너무 속인답구나.”
그 스님이 얼른 합장을 하자, 대사가 말했다.
“너무 중답구나.”
그러자 그 스님이 대답이 없었다.

어떤 스님이 발우를 씻는데 대사가 발우를 뺐었다. 그 스님이 빈손으로 서 있자, 대사가 말했다.
“발우는 내 손 안에 있는데, 그대 입으로만 중얼중얼한들 무슨 소용 있으랴?”
그 스님은 대답이 없었다.

대사가 채소밭에 갔다가 스님 한 명을 보고는 기와 조각을 던져서 그 스님을 맞혔다. 그 스님이 고개를 돌리자 대사가 한 발을 들고 섰다. 그 스님은 말이 없었다. 대사가 바로 방장으로 들어가니, 그 스님이 뒤를 따라가서 절을 하고 물었다.
“화상께서 아까 기와 조각을 던져서 저를 맞히신 것이 어찌 저를 깨우쳐 주시려 함이 아니겠습니까?”
대사가 말했다.
“한 발을 든 일은 또 어떠한가?”
그 스님이 대답이 없었다.[나중에 어떤 스님이 석상石霜에게 묻기를 “남전이 한 발을 든 뜻이 무엇이었을까요?”라고 하니, 석상이 손을 들고 말하기를 “이런 것이 아니었을까?”라고 하였다.]

대사가 대중에게 훈시하였다.
“왕 노사가 몸을 팔려 하는데 누가 사려는가?”
어떤 스님이 나와서 말했다.
“제가 사겠습니다.”
“비싸지도 않고 싸지도 않게 받으련다. 그대는 얼마에 사겠나?”
그 스님은 대답이 없었다.[와룡臥龍이 대신 말하기를 “저에게 속해버렸습니다”라고 하였다. 미산未山이 대신 말하기를 “이게 무슨 도리요?”라고 하였다. 조주가 대신 말하기를 “명년에 와서 화상의 베 장삼을 기워 드리리라”고 하였다.]

대사가 귀종歸宗ㆍ마곡麻谷과 함께 남양南陽 국사國師를 뵈러 갔는데, 대사가 먼저 길에다 동그라미 하나를 그려 놓고서 말하였다. 
“말할 수 있으면 갈 것이다.” 
그러자 귀종은 문득 동그라미 안에 앉았고, 마곡은 여인의 절[女人拜]을 하였는데, 대사가 말했다.
“그렇게 하면 가지 못한다.”
귀종이 말했다.
“이게 무슨 심행心行인가?”
대사는 곧 서로의 이름을 부르며 돌아가, 끝내 국사를 뵈러 가지 않았다.[현각玄覺이 말하기를 “남전이 그렇게 말한 것이 수긍하는 말인가, 부정하는 말인가?”라고 하였다. 운거雲居 석錫이 말하기를 “아까는 국사께 절을 하러 가다가 왜 소리를 지르면서 돌아왔을까 말해 보라. 옛사람의 뜻하는 바가 무엇이었으랴?”라고 하였다.]

대사가 신산神山에게 물었다.
“무엇을 하는가?”
신산이 대답했다.
“채[羅:비단으로 만든 고운 채]를 치고 있습니다.”
“손으로 치는가, 발로 치는가?”
“화상께서 말씀해 주십시오.”
대사가 말했다.
“분명히 기억해 두었다가 작가作家를 만나거든 말해라.”[동산洞山이 따로 말하기를 “손발이 없는 이라야 채를 칠 줄 알리라”고 하였다.]

어떤 좌주가 대사에게 하직을 고하자, 대사가 물었다.
“어디로 가려는가?”
“산 밑으로 가겠습니다.”
“무엇보다도 왕 노사를 비방하지는 말라.”
“어찌 감히 화상을 비방하겠습니까?”
대사가 그에게 물을 뿜고서 말했다.
“얼마나 되는가?”
좌주가 문득 나가 버렸다.[앞의 운거雲居가 말하기를 “대사의 본뜻이 아니다”라고 하였다. 앞의 조산曹山이 말하기를 “믿음직하다”라고 하였다. 석상石霜이 말하기를 “남의 시험을 받지 말아야 한다”라고 하였다. 장경長慶이 말하기를 “말을 알아 들어보라”고 하였다. 운거 석이 말하기를 “좌주坐主가 나간 것은 안 것인가, 모른 것인가?”라고 하였다.]

대사가 하루는 방장의 문을 닫고 재[灰]를 문밖에 둘러치고는 말했다.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즉시 열어 주리라.”
여러 사람들이 대답은 했지만 모두가 대사의 뜻에 맞지 않았는데, 조주가 말하였다. 
“아이고, 아이고.” 
그러자 대사가 문득 문을 열었다.

대사가 달구경을 하는데,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얼마동안 이와 같을 수 있었습니까?”
대사가 대답했다.
“왕 노사는 20년 전에도 이러했느니라.”
그 스님이 물었다.
“지금은 어떠하십니까?”
대사는 문득 방장으로 돌아갔다.

육긍陸亘 대부大夫가 물었다. 
“제자가 육합(六合:고을 이름)에서 왔는데, 거기에도 몸이 있겠습니까?”
대사가 대답했다.
“분명히 기억해 두었다가 작가를 만나거든 이야기하라.”
육긍 대부가 또 말했다.
“화상은 매우 불가사의하십니다. 이르는 곳마다 세계가 성취되는군요.”
대사가 말했다.
“그것들이 모두 대부大夫의 분수 위에 있는 일이오.”
다른 날 육긍 대부가 또 물었다.
“제자도 불법을 약간은 알고 있습니다.”
대사가 물었다.
“대부는 12시 가운데서 어떻게 하는가?”
“한 치의 실오라기도 걸치지 않습니다.”
“여전히 섬돌 밑의 사람이군.”
대사가 이어서 말했다.
“듣지 못했는가? 도가 있는 군왕은 지혜 있는 신하를 용납하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대사가 상당하였을 때에 육긍 대부가 말했다.
“화상이시여, 대중에게 설법을 해주십시오.”
대사가 대답했다.
“노승더러 무슨 말을 하라는 것인가?”
“화상께서 어찌 방편이 없으시겠습니까?”
“저들에게는 무엇이 부족하다는 말인가?”
육긍이 다시 물었다.
“어찌하여 6도道와 4생生이 있습니까?”
대사가 대답했다.
“노승이 그런 것은 가르치지 않는다.”
육긍 대부가 대사와 함께 쌍륙雙陸 노는 것을 구경하다가 투자骰子 골패의 일종이다.
하나를 들고 말했다.
“이렇건 이렇지 않건 다만 문채[彩] 골패 쪽에 새겨진 골이다.
에 맡겨 버릴 때는 어떠합니까?”
대사도 투자 하나를 들고 말했다.
“냄새나는 뼈다귀가 열여덟 쪽이구나.”
또 물었다.
“제자의 집에 한 조각 돌이 있는데, 어떤 때는 앉고 어떤 때는 눕습니다. 지금 그것을 새겨서 불상을 만들까 하는데 되겠습니까?”
대사가 대답했다.
“된다.”
대부가 다시 물었다.
“되지 않는 것이 아닐까요?”
대사가 말했다.
“안 된다. 안 돼.”[운암雲巖이 말하기를 “앉으면 부처요, 앉지 못하면 부처가 아니다”라고 하였다.]

조주가 물었다.
“도는 사물 밖이 아니고, 사물 밖은 도가 아닌데, 무엇이 사물 밖의 도입니까?”
대사가 문득 때리자, 조주가 방망이를 잡고서 말했다.
“이후로는 사람을 잘못 때리지 마십시오.”
대사가 대답했다.
“용과 뱀은 가리기 쉽지만 납자衲子는 속이기 어렵구나.”

대사가 원주院主를 부르자, 원주가 대답했다. 대사가 말했다.
“부처님께서 90일 동안 도리천忉利天에 계시면서 어머니에게 설법을 하셨는데, 당시 우전왕優塡王이 부처님을 생각하여 목건련目犍連에게 청하니, 목건련이 세 차례 신통을 부려 장인匠人을 거두어 도리천에 가서 불상을 조각하게 하였는데, 다만 31상相만을 조각했다. 어찌하여 범음상梵音相은 조각하지 못했는가?”
원주가 도리어 물었다.
“어떤 것이 범음상입니까?”
대사가 대답했다.
“사람을 속이는구나.”

대사가 유나維那에게 물었다.
“오늘의 울력은 무엇인가?”
“맷돌질을 할 것입니다.”
대사가 말했다.
“맷돌은 네가 돌리는 대로 하되 맷돌 중심의 수자樹子는 움직이지 말라.”
유나가 말이 없었다.[보복保福이 대신 말하기를 “그때부터 하던 맷돌질이 아직도 이루어지지 못했구나”라고 하였다. 법안法眼이 대신 말하기를 “그렇게 되면 맷돌질을 하지 않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어느 날 어떤 대덕이 물었다.
“마음 그대로 부처라고 해도 안 되고, 마음도 아니고 부처도 아니라 해도 안 되니, 스님의 뜻은 어떠하십니까?”
대사가 말했다.
“대덕이여, 마음이 그대로 부처라는 것을 믿으면 문득 요달하는데, 다시 되고 안 되는 것을 말해서 무엇 하겠는가? 마치 대덕이 밥을 먹고 나면 동쪽 복도 위에서 서쪽 복도까지 오가면서 사람들에게 되는가 안 되는가를 물을 필요가 없는 것과 같다.”

대사가 암자에 있었는데, 어떤 스님이 암자에 왔다. 대사가 그에게 말했다.
“내가 산에 올라가겠으니, 밥 때가 되거든 그대가 먼저 먹고 한 몫을 산으로 보내주게.”
조금 있다가 그 스님은 혼자 밥을 먹고는 한꺼번에 집안일을 걷어치운 뒤에 자리에 가서 누워 버렸다. 대사가 아무리 기다려도 밥을 가지고 오는 것을 볼 수 없자 얼른 암자로 돌아오니, 그 스님이 누워 있는 것이 보였다. 대사도 한쪽에 가서 누우니, 그 스님이 벌떡 일어나서 가 버렸다. 대사가 혼자 남아서 중얼거렸다.
“내가 전부터 암자에 살기 시작한 이래로 영리한 수도자가 있었지만, 곧바로 지금처럼 이른 자는 보지 못했다.”

대사가 털로 만든 공[毬子]을 들고서 스님에게 물었다.
“이것이 그것과 얼마나 닮았는가?”
그 스님이 대답했다.
“닮지 않았습니다.”
“어디서 그것을 보았기에 닮지 않았다 하는가?”
그 스님이 말했다.
“제가 본 곳을 물으시려면, 화상께서는 손에 드신 것을 놓으십시오.”
“그대가 외눈[一隻眼]을 갖추었다고 인정하노라.”

육긍 대부가 대사에게 말했다.
“조肇 법사는 매우 기괴하군요. 만물이 같은 근원이고, 옳고 그름이 동체同體라고 하니까요.”
대사가 뜰 앞의 모란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대부여, 요즘 사람들은 이 한 포기의 꽃을 꿈속에서처럼 보고 있소.”
육긍은 문득 아득해져서 다시 물었다.
“천왕天王은 어느 지위地位에서 거처하십니까?”
“천왕이라면 지위에 있지 않아야 하지 않겠는가?”
“제자가 듣기에는 천왕은 초지(初地:10지의 제1위)에 거처한다고 들었습니다.”
대사가 말했다.
“마땅히 천왕의 몸으로 제도될 자는 곧 천왕의 몸을 나타내어서 법을 설하게 된다오.”
육긍이 하직하고서 부임지인 선성宣城으로 떠나려 하자, 대사가 물었다.
“대부가 거기로 가면 무엇으로 백성을 다스리겠소?”
“지혜로 백성을 다스리겠습니다.”
대사가 말했다.
“그러면 그곳의 생령生靈은 모두 도탄塗炭에 빠지겠군.”
대사가 선주宣州에 들어갔을 때 육긍 대부가 나와서 맞이했는데, 성문城門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사람들 모두가 이것을 옹문甕門이라 하는데, 화상께서는 무슨 문이라 하시겠습니까?”
대사가 대답했다.
“노승이 말을 하면 대부의 풍속 교화를 욕되게 할까 걱정이오.”
“홀연히 도적이 올 때에는 어찌합니까?”
“그것은 왕 노사의 허물이오.”
육긍이 또 물었다.
“대비보살은 수많은 눈과 손으로써 무엇을 합니까?”
“국가에서는 대부를 기용해서 무엇을 하오?”

대사가 마조 대사를 위하여 재齋를 차리고 대중에게 물었다.
“마 대사가 오셨는가?”
대중이 대답이 없자, 동산洞山이 말했다.
“도반이 있기를 기다렸다가 오시겠지요.”
대사가 말했다.
“그대는 비록 후생後生이지만 가히 다듬을 만하다.”
동산이 말했다.
“화상은 양민을 탄압해서 천민으로 만들지 마십시오.”
대사가 빨래를 하는데, 어떤 스님이 와서 물었다.
“화상에게 아직도 그런 것이 남았습니까?”
대사가 옷을 쳐들면서 말했다.
“그렇지만 저것이야 어찌하겠는가?”[현각玄覺이 말하기를 “말해 보라. 이는 한 개인가, 반 개인가?”라고 하였다.]

대사가 양흠良欽이라는 스님에게 물었다.
“공겁空劫 이 세상에 아직 아무것도 없는 오랜 옛적을 말한다.
에도 부처님께서 계셨겠는가?”
“계셨습니다.”
“누구라 하는 분인가?”
“양흠입니다.”
“어떤 국토에 사시는가?”
그 스님은 말이 없었다.

어떤 스님이 물었다.
“조사에서 조사로 서로 전해졌다는데 어떤 일을 전하였습니까?”
대사가 대답했다.
“일ㆍ이ㆍ삼ㆍ사ㆍ오이니라.”
“어떤 것이 옛사람의 것입니까?”
“있게 되거든 말하리라.”

어떤 스님이 말했다.
“화상께서는 어찌하여 거짓말을 하십니까?”
대사가 대답했다.
“내가 거짓말을 한 것이 아니다. 노 행자(盧行者:六祖)가 거짓말을 하였다.”
“12시 가운데서 무엇으로 경계[境]를 삼습니까?”
“왜 왕 노사에게 묻지 않는가?”
“물었습니다.”
“그래, 그대의 경계가 된 적이 있는가?”

어떤 스님이 물었다.
“청련靑蓮이 바람과 불을 따라 흩어지지 않을 때에는 어떠합니까?”
대사가 말했다.
“바람과 불을 따르지 않음이 없을 때는 어떠한가?”
스님이 대답이 없자, 대사가 또다시 물었다.
“선善도 생각지 말고 악惡도 생각지 말라. 생각이 전혀 나지 않을 때에 비로소 나의 본래면목을 돌려 다오.”
스님이 대답했다.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동산洞山이 말하기를 “일찍이 경계로서 사람에게 보인 일이 있는가?”라고 하였다.]

대사가 어떤 좌주에게 물었다.
“그대는 나에게 경전을 강의해 줄 수 있겠는가?”
“제가 화상께 경전을 강의해 드리면, 화상은 저에게 선법을 말씀해 주셔야 합니다.”
“금탄자金彈子를 갖고서 은탄자銀彈子로 바꾸려 하지 말라.”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대는 공중에 떠 있는 한 조각구름이 소복소복 쌓였다고 하겠는가, 아니면 얼기설기 붙었다고 하겠는가?”

어떤 스님이 물었다.
“허공 속에 하나의 구슬이 있는데, 어찌하여야 가질 수 있겠습니까?”
“대나무를 쪼개어 사다리를 만들어서 허공 속에서 취하라.”
“어떻게 허공에다 사다리를 놓겠습니까?”
“그대는 어째서 취할 수 있다고 여기는가?”

어떤 스님이 하직 인사를 하면서 물었다.
“학인이 제방諸方에 이르렀을 때에 어떤 사람이 화상의 요즘 생활을 물으면 무엇이라 대답하리까?”
“그저 그에게 요즈음은 씨름[相撲]을 이해했다고 말해라.”
“무슨 뜻입니까?”
“한 번 치면 쌍으로 소멸한다.”
“부모에게서 태어나기 전에 제 콧구멍은 어디에 있습니까?”
“부모에게서 태어난 뒤에는 콧구멍이 어디에 있는가?”

대사가 세상을 뜨려 할 때에 제1 상좌가 물었다.
“화상께서 세상을 뜨신[百年] 후에는 어디로 가시렵니까?”
“산 밑으로 가서 한 마리 검정 암소[水牯牛]가 되련다.”
“제가 화상을 따라가고자 하는데 되겠습니까?”
“그대가 나를 따르려면 모름지기 한 줄기 풀을 입에다 물어야 한다.”
대사가 병든 모양을 나타내다가, 대화大和 8년 갑인甲寅 12월 25일 첫 새벽에 문인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별․그림자ㆍ등불․허깨비가 오래도 견디었다. 내가 가거나 온다고 여기지 말라.”
말을 마치고 눈을 감으니, 수명은 87세이고 법랍은 58세였다. 이듬해 봄에 탑에 안치하였다.

오대산五臺山 은봉隱峰 선사

그는 복건福建의 소무邵武 사람이니, 성은 등鄧씨이다.[당시 사람들이 그를 등은봉鄧隱峰이라 하였다.] 어릴 때에는 지혜롭지 못한 듯했다. 부모가 출가를 허락하자, 처음에는 마조의 문하에 유행했으나 오묘한 진리를 보지 못하고는 다시 석두石頭에게로 갔다. 이렇게 왕래하기를 두세 번 거듭했으나 모두 깨닫지 못했는데[자세한 이야기는 마조장馬祖章에 있다.] 끝내 마조의 가르침 아래서 계합契合하였다.
대사가 석두에게 있을 때에 물었다.
“어찌하여야 도에 계합하겠습니까?”
“나도 도에 계합하지 못했다.”
“필경에는 어떠합니까?”
“그대가 그것을 얻게 된 것이 얼마만인가?”

어느 날 석두 화상이 풀을 깎는데 대사가 그 왼쪽 곁에서 손을 모으고 서 있었다. 석두가 낫 끝을 대사 앞으로 휘두르면서 풀 한 포기를 깎았다. 이때에 대사가 말했다.
“화상은 겨우 이것만을 깎으시고 저것은 깎지 못하셨습니다.”
석두가 낫을 들어 올리자, 대사가 낫을 받아서 베는 시늉을 하였다. 이를 보고 석두가 말했다.
“그대는 겨우 그것만을 베고 이것은 벨 줄 모르는구나.”
대사가 대답을 못했다.[동산洞山이 대신 말하기를 “풀 더미가 이루어졌던가?”라고 하였다.]

어느 날 대사가 손수레[推土車]를 끄는데, 마馬 대사가 길바닥에 다리를 뻗고 앉아 있었다. 대사가 그를 보고 말했다.
“다리를 오므리십시오.”
마 대사가 말했다.
“편 것을 오므리지 못하겠다.”
“이미 나아간 수레라서 물러날 수도 없습니다.”
그리하여 그대로 수레를 밀고 지나가니, 마 대사의 정강이가 상했다. 그는 법당으로 돌아가서 도끼를 들고서 말했다.
“아까 내 다리를 다치게 한 놈은 나와라.”
대사가 거침없이 나가서 마 대사 앞에 목을 쭉 뽑으니, 마 대사는 도끼를 놓아 버렸다.

대사가 남전南泉에 갔을 때 스님들이 참례하러 온 것을 보았는데, 남전은 정병淨缾을 가리키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구리 병은 경계이고 병 속에는 물이 있으니, 경계를 요동시키지 말고 나에게 물만 갖다 달라.”
대사가 정병을 번쩍 들어서 남전 앞에다 부으니, 남전이 그만두었다.

나중에 대사가 위산潙山에게 갔다가 상좌上座의 머리 위에다 옷과 발우를 풀어 놓았다. 위산은 사숙(師叔:은봉)이 왔다는 말을 듣자, 먼저 위의를 갖추어서 승당으로 내려왔다. 대사는 그가 오는 것을 보자, 벌렁 쓰러져서 자는 시늉을 하였다. 위산이 문득 방장으로 돌아가자, 대사는 그 길로 일어나서 떠나 버렸다. 조금 있다가 위산이 시자에게 물었다.
“사숙께서 아직 계시느냐?”
“이미 떠나셨습니다.”
“가실 때에 무슨 말이 없더냐?”
“아무 말씀도 없었습니다.”
“말이 없었다 하지 말라. 그 소리가 우레와 같았도다.”
대사는 겨울을 형악衡嶽에서 지내고, 여름을 청량淸凉에서 머물렀다. 

당나라 원화元和 때에 다시 오대산으로 가는 길에 회서淮西를 지나게 되었는데, 때마침 오원제吳元濟가 군사를 일으켜 왕명을 거역함으로써 관군官軍과 역적이 서로 칼끝을 겨누면서 승부를 가리지 못하고 있었다. 이때에 대사가 말했다.
“내가 가서 그 환난을 해결하리라.”
그리고는 주장자를 허공으로 던져서 몸을 날려 지나가니, 양쪽 군대의 장수와 병사들이 우러러보고는, 간밤의 꿈과 맞는다고 탄복하면서 싸울 마음이 단박에 식어 버렸다. 대사가 이미 신통을 나타냈지만 도리어 무리를 미혹시킬까 걱정이 되어서 마침내 오대산으로 들어갔다. 

금강굴 앞에서 열반에 들려고 하면서 먼저 대중에게 물었다.
“제방諸方의 선사들이 죽을 때에 앉아서도 가고 누워서도 가는 것은 내가 본 적이 있다. 그러나 서서 가는 이도 있었던가?”
“있습니다.”
“그러면 거꾸로 서서 죽은 이도 있었던가?”
“아직 보지 못했습니다.”
이에 대사가 거꾸로 서서 열반에 드니, 옷자락이 아래로 처지지 않고 고스란히 몸에 붙어 있었다. 당시 대중들이 논의하여 화장터로 운구하려고 했으나 꿈쩍도 하지 않으니, 원근의 사람들이 우러러보면서 탄복해 마지않았다.
당시 대사의 누이동생이 비구니였는데, 그때 그녀가 곁으로 허리를 굽히고 다가가서 혀를 찼다.
“오라버니는 살아서도 법률을 지키지 않더니, 죽어서도 사람들을 속이는구려.”
그리고 손으로 슬쩍 밀자, 시체가 덜컥 쓰러졌다. 결국 사유소闍維所로 옮겨서 사리를 거두어 탑에 안치하였다.

온주溫州 불오佛㠗 화상

언제나 사람이 오는 것을 보면 주장자를 땅에다 세우면서 말했다.
“앞의 부처님도 이러하고, 뒤의 부처님도 이러하다.”
어떤 스님이 물었다.
“바로 이러할 때에는 어찌하겠습니까?”
대사가 동그라미를 하나 크게 그렸다. 그 스님이 여인의 절을 하자, 대사가 곧 그를 때렸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불법의 대의입니까?”
대사가 대답했다.
“도둑이야, 도둑이야.”
“어떤 것이 다른 종류[異類] 중생이라는 뜻이니 종사가 중생제도를 위해 다른 종류의 몸을 받는 것을 말한다.
입니까?”
대사가 차 종지를 치면서 말했다.
“야옹아[花奴], 야옹아[花奴]. 밥이나 먹어라.”

오구烏臼 화상

현玄과 소紹, 두 상좌上座가 강서江西 지방에서 대사를 뵈러 오니, 대사가 물었다.
“두 선사는 어디서 오셨소?”
그 스님이 대답했다.
“강서에서 왔습니다.”
대사가 주장자로 때리자, 현玄이 말했다.
“화상에게 이런 묘한 재주[機要]가 있는 줄은 익히 알고 있었습니다.”
“너는 알지 못했다. 뒤에 서 있는 중이 말해 보라.”
뒤에 서 있던 스님이 앞으로 다가서려고 하자, 대사가 문득 때리면서 말했다.
“같은 구덩이 안에 다른 땅이 없는 줄이야 진작 알았다. 승당으로 가서 더 공부하라.”

담주潭州 석상石霜[용龍이라 하기도 한다.] 대선大善 화상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불법의 대의입니까?”
대사가 대답했다.
“봄날에 닭이 우는 것이다.”
“학인은 잘 모르겠습니다.”
“가을날에 개 짖는 소리이다.”

대사가 상당하여 이렇게 말했다.
“대중아, 나서라, 나서. 노승에게 법의 요체가 있는데, 백 년 뒤에도 그대들에게 누를 끼치지 않으리라.”
대중이 말했다.
“화상께서 말씀해 주십시오.”
“한 무더기의 불을 끄지 않는다.”

동산洞山이 물었다.
“책상 앞에 있던 한 동자가 일을 잘 요달했는데, 지금은 보이지 않으니 어디로 갔습니까?”
대사가 대답했다.
“불꽃 위에 머무를 수 없어서 청량세계淸凉世界로 돌아갔다.”

석구石臼 화상

처음에 마조馬祖를 뵈었는데, 마조가 물었다.
“어디서 왔는가?”
대사가 대답했다.
“오구烏臼에서 왔습니다.”
“오구가 요사이 무어라 하던가?”
“숱한 사람이 이에 대해서 망연茫然합니다.”
“망연한 것은 그만두고 산뜻한 한 구절이 무엇인가?”
대사가 앞으로 세 걸음을 나서자, 마조가 말했다.
“내가 오구를 일곱 방망이 때릴 일이 있는데, 그대가 달게 받겠는가?”
“화상께서 먼저 맞으신 뒤에 제가 달게 맞겠습니다.”
그리고는 다시 오구로 돌아갔다.

본계本谿 화상

방龐 거사居士가 물었다.
“단하丹霞가 시자를 때린 뜻이 무엇입니까?”
“늙은이가 남의 장단점을 보기 때문이다.”
거사가 다시 말했다.
“스님은 나와 같이 마조에게 배웠으므로 감히 묻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처음부터 자세히 들어 보라. 우리 함께 헤아려 보자.”
“늙은 노인이 스님과 함께 남의 잘잘못을 따지려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 늙은이의 나이를 생각하라.”
“제가 잘못했습니다.”

석림石林 화상

어느 날 방龐 거사居士가 오니, 대사가 불자拂子를 세우고 말했다.
“단하丹霞의 근기[機]에 떨어지지 않고서 한 구절을 말해 보시오.”
거사가 곧 불자를 빼앗고서 도리어 주먹을 세우니, 대사가 말했다.
“바로 단하의 근기로구나.”
“나를 거기에 빠지지 않게 해보시오.”
“단하는 벙어리이고, 방 거사는 귀머거리이네.”
“좋습니다. 좋아요.”
대사가 말이 없자, 거사가 말했다.
“아까 말한 것은 우연히 그렇게 된 것입니다.”
대사가 여전히 말이 없었다.
또 어느 날 대사가 거사에게 물었다.
“내가 물을 것이 있으니, 거사는 말하기를 꺼리지 마시오.”
거사가 대답했다.
“말해 보시오.”
“원래 말을 아끼는군요.”
“이런 신문訊問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다른 편의에 빠지게 됩니다.”
대사가 귀를 가리고만 있자, 거사가 말했다.
“과연 작가作家 여기서는 본분 종사라는 뜻이다.
로군, 작가야.”

양亮 좌주座主[홍주洪州 서산西山] 

그는 본래 촉군蜀郡 사람이다. 경론을 강의하다가 마조를 뵈었는데, 마조가 물었다. 
“듣자 하니 좌주座主는 경론을 많이 강의한다는데 사실인가?”
양亮 좌주가 말했다.
“감히 그렇다 하기가 외람됩니다.”
“무엇을 가지고 강의하였소?”
“마음을 가지고 강의하였습니다.”
“마음은 재주 있는 광대와 같고 뜻은 광대를 부리는 자와 같거늘, 어떻게 경전을 강설하겠는가?”
양 좌주가 소리를 지르면서 말했다.
“마음이 강의를 못한다면 허공이 강의를 한다는 말입니까?”
“허공은 강설할 수 있다.”
양 좌주가 수긍하지 못하고 문득 나가서 계단을 내려가는데, 마조가 불렀다.
“좌주여.”
양 좌주가 머리를 돌리자, 마조가 말했다.
“무엇인가?”
양 좌주가 활연대오豁然大悟하고서 절을 하자, 마조가 말했다.
“이 둔한 좌주여, 절은 해서 무엇 하겠는가?”
양 좌주가 절로 돌아가서 대중에게 말했다.
“내가 경론의 강의로는 아무도 미칠 이가 없다고 여겼는데, 오늘 마 대사의 질문 하나를 받고서는 평생의 공부가 얼음처럼 녹아 버렸다.”
그리고는 서산에 숨어서 다시는 소식이 없었다.

흑안黑眼 화상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세상에 나오지 않는 스승입니까?”
대사(흑안)이 대답했다.
“선재善財의 주장자다.”
“어떤 것이 불법의 대의입니까?”
“10년 동안 숯장사를 하고도 아직도 저울눈을 모르는가?”

미령米嶺 화상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납의衲衣 아래의 일입니까?”
대사가 대답했다.
“누추하다면 그대 멋대로 싫어하되, 구름이나 노을의 경계에 마음을 두지 마시오.”
대사가 열반에 들기 전에 게송 하나를 남겨 놓았다.

모든 조사는 부사의不思議해서
영구히 세상에 머무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대중은 자세히 사유해 볼지니
끝끝내 단지 이것뿐이라네.
祖祖不思議    不許常住世
大衆審思惟    畢竟只遮是

제봉齊峰 화상

어느 날 방龐 거사가 절에 들어오니, 대사가 말했다.
“속인이 자주 절에 출입해서 무엇을 따지려는가?”
거사가 양쪽을 두리번거리면서 말했다.
“누가 이렇게 말하는가, 누가 이렇게 말하는가?”
대사가 소리를 지르니, 거사가 말했다.
“여기서 그랬구나.”
“볕바른 곳에서 한 말이 아닌가?”
“등 뒤에서 했군요.”
대사가 고개를 돌리면서 말했다.
“살피고 살피시오.” 
거사가 외쳤다.
“좀도둑이 쫓긴다. 좀도둑이 쫓긴다.”
대사가 말이 없었다.
거사가 또 물었다.
“여기서 봉우리까지는 몇 리나 됩니까?”
대사가 말했다.
“어디를 가려는가?”
“높고 험한 것이 두려워서 물을 수도 없군요.”
대사가 다시 말했다.
“얼마나 되는가?”
“1ㆍ2ㆍ3입니다.”
“4ㆍ5ㆍ6이다.”
“어찌하여 7은 말하지 않습니까?”
“자못 7을 말하면 문득 8이 있으니까.”
“맞습니다, 맞아요.”
“멋대로 보태는군.”
거사가 호통을 치면서 물러가자, 대사도 뒤를 따라가면서 호통을 쳤다.

대양大陽 화상

이伊 선사가 문안을 드리자, 대사가 말했다.
“이 선사여, 요사이의 일반 선사들은 눈앞을 향하여 사람들을 가르치고, 눈앞의 일을 다 취해서 이렇게 사람을 위한다. 하지만 도리어 문채의 조짐이 아직 나타나지 않았을 때를 알겠는가?”
이 선사가 대답했다.
“그 속을 향해서 한 가지 질문이 있는데, 화상에게 물어도 좋은지 여부를 알 수 없습니다.”
“이미 그대에게 대답해 버렸으니 가부可否를 말할 필요도 없다.”
“눈앞의 것을 알아챌 수 있겠습니까?”
“눈앞의 것을 어떻게 알겠는가?”
“남의 점검點檢을 받아야 합니다.”
“그게 누구인가?” 
“저입니다.”
대사가 얼른 꾸짖으니, 이 선사가 물러나서 섰다. 그러자 대사가 말했다.
“그대는 앞만 쳐다볼 줄은 알지만 뒤를 돌아볼 줄은 모르는구나.”
이 선사가 말했다.
“설상가상雪上加霜이군요.”
“그대나 나나 마땅함이 없다.”

홍라紅螺 화상

유주幽州에 있을 때에 게송으로 문인들에게 보였다.

홍라산이 변방의 오랑캐에 가까워서
스님들의 태반은 오랑캐[奚]로구나.
마주 앉아 말을 해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불쌍하게도, 단지 나사기那斯祁 이 산이 변두리에 있으므로 중국 본토 사람이 이 지방 사람을 해족奚族이라 한다. 그들의 성이 보통 나사기那斯祁이므로 마주 앉아 이야기를 해도 못 알아듣고 나사기만을 안다고 한 것이다.
만 이해하네.
紅螺山子近邊夷    度得之流半是奚
共語問醻全不會    可憐只解那斯祁

천주泉州 구양산龜洋山 무료無了 선사

그는 포전현莆田縣 호공壺公 횡당橫塘 사람으로서 성은 심沈씨이다. 일곱 살 때에 아버지가 손을 잡고 백중원白重院에 데리고 갔는데, 마치 자기 집 같은 생각이 들어서 그대로 출가하였다. 18세가 되자 머리를 깎고 영암사靈巖寺에 가서 구족계를 받았다. 나중에 대적(大寂:마조) 선사를 뵙고서 조사의 심인을 깨닫자 즉시 본원本院으로 돌아왔다.
절 북쪽으로 난 나무꾼의 길이 막혔는데, 어느 날 대사가 지팡이로 덤불을 헤치면서 가다가 여섯 개의 눈을 가진 거북을 만났지만 잠깐 사이에 다시 없어졌다. 그리하여 그 봉우리에다 암자를 세우니, 이로 인해 구양龜洋 화상이라 부르게 되었다. 어느 날 호랑이가 사슴을 쫓아서 암자에 들어오자, 대사가 지팡이로 범을 쫓아내어 사슴의 목숨을 구하였다. 
임종하실 무렵에 이런 게송을 읊었다.

80년 동안 동과 서를 가렸는데
이제는 백발노인이 필요치 않구나. 80년 동안 본분 도리를 알지 못했으므로 동서를 따졌는데, 이제는 조사 노인의 뜻을 알았으니 백발노인이 필요치 않다 한 것이다.

길지도 짧지도 크지도 작지도 않지만
돌이키면 온갖 사람의 성품이나 형상과 같으며
오지도 가지도 않고 머물지도 않지만
요달하면 본래 스스로의 성품이 공하다.
八十年來辨西東    如今不要白頭翁
非長非短非大小    還與諸人性相同
無來無去兼無住    了却本來自性空

게송을 마치고 태연히 입적하니, 본전[正堂]에다 빈소를 차려 놓고 20년을 지냈다. 
하루는 계곡의 물이 넘쳐서 문인들이 탑을 열어보니, 온몸이 물속에 떠 있었다. 민왕閩王이 이 말을 듣고 사자를 보내 궁중으로 모셔다가 공양을 올리는데, 홀연히 지독한 냄새가 멀리 진동하였다. 왕이 향을 피우고 축원하되 “구양산의 옛터로 옮겨서 탑을 세우겠습니다”라고 했는데, 말을 마치자 기이한 향기가 두루 퍼져서 온 성안의 사람이 다 우러러보았다. 본도本道의 관리가 이 사실을 아뢰어서 진적眞寂 대사라는 시호가 하사되었고, 탑호는 영각靈覺이라 하였다.
나중에 혜충慧忠이라는 제자가 징태(澄汰:法難)를 만나게 되어 속인의 몸으로 생을 마쳤는데, 탑의 동쪽 2백 보의 거리에다 장사를 지내고는 동탑東塔이라 불렀다. 지금도 구양산의 두 진신眞身은 선비나 백성들의 의지할 곳이 되고 있으니, 마치 승가난제僧伽難提의 전법과 같다. 혜충이 초암草庵 화상에게 법을 받은 것은 본장本章에 서술되어 있는 것과 같다.

이산利山 화상

어떤 스님이 물었다.
“온갖 색色은 허공으로 돌아가지만, 허공은 어디로 돌아갑니까?”
대사가 말했다.
“혀가 입 밖에 나오지 않는다.”
“어째서 입 밖에 나오지 않습니까?”
“안팎이 한결같기 때문이다.”

어떤 스님이 물었다.
“아승기겁을 지나지 않고도 법신法身을 얻는다 하시니, 스님께서 곧바로 보여 주십시오.”
“아들이 아버지의 업業을 이어받는다.” 
“어찌하여야 알겠습니까?”
“아끼고 절약해서 베풀지 않느니라.”
“그렇다면 대중도 덕을 보겠군요.”
“대중은 그만두고 어떤 것이 법신인가?”
스님이 대답을 못하자, 대사가 말했다.
“그대가 물어라. 내가 그대에게 말해 주리라.”
그 스님이 도리어 물었다.
“어떤 것이 법신입니까?”
“허공 꽃이고 아지랑이니라.”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어떤 것인지 보지 못했다.”
“왜 그렇습니까?”
“다만 그러할 뿐이다.”

소주韶州 유원乳源 화상

상당上堂하여 말했다.
“서쪽에서 오신 분명[的的]한 뜻은 말하기 어렵지 않으니, 대중들 중에서 말할 수 있는 자가 없는가? 나와서 말해 보라.”
그러자 어떤 스님이 나와서 조심스레 절을 했는데, 대사가 문득 때리면서 말했다.
“지금이 어느 때라고 나서는가?”[어떤 사람이 장경長慶에게 말하니, 장경이 말하기를 “괜찮아, 괜찮아”라고 하였다. 자복資福이 대신 말하기를 “화상을 위해 몸을 아끼지 않습니다”라고 하였다.]

대사가 앙산仰山이 사미일 때 경 읽는 것을 보았는데, 그때 이렇게 흉을 보았다.
“저 사미가 경 읽는 것은 마치 곡하는 소리와 같다.”
앙산이 말했다.
“저의 경 읽는 소리가 곡하는 소리 같다면 스님[和尙]의 것은 어떠하십니까?”
대사는 이에 돌아볼 뿐이었다.

송산松山 화상

어느 날 방龐 거사居士를 불러 차를 마시는데, 거사가 차 쟁반을 들고 말했다.
“사람마다 다 분수分數가 있는데, 왜 얻지 못한다고 합니까?”
대사가 말했다.
“다만 사람마다 다 있기 때문에 얻지 못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사형은 어째서 얻었다고 하십니까?”
“말이 없을 수는 없다.”
“분명하십니다, 분명해요.”
대사가 냉큼 차를 마셔 버리자, 거사가 말했다.
“사형은 차를 마시면서, 어찌하여 손님을 대접하지 않으십니까?”
“누구를?”
“방씨 노인이요.”
“무엇 하러 다시 접대해야 하는가?”
나중에 단하丹霞가 이 말을 듣고 말했다.
“만일 송산松山이 아니었더라면 그 늙은이의 장난에 속을 뻔했구나.”
거사가 이 말을 듣고는 곧 사람을 시켜서 단하에게 이런 말을 전하게 했다.
“차 쟁반을 들어 올릴 때는 어째서 모르시는가?”

칙천則川 화상

방龐 거사가 대사를 보살필 때, 대사가 물었다.
“처음에 석두石頭를 만났을 때의 도리를 기억하겠소?”
거사가 대답했다.
“오히려 스님이 거듭 이야기해 주시네요.”
“오래 묵은 이[久參]가 거만한 줄은 정情으로는 알고 있었소.”
“나뿐만이 아니라 스님도 늙었군요.”
“둘이 서로 동갑인데 다툰들 얼마나 되겠소?”
“나, 방 거사가 스님보다 조금 더 건강하군요.”
“나보다 나은 것이 아니오. 다만 당신에게는 복두건幞頭巾 하나가 없을 뿐이오.”
“흡사 스님과 같은데요.” 
대사는 크게 웃을 뿐이었다.

대사가 차밭[荼園]에 들어가서 차를 따는데, 방 거사가 물었다.
“온 법계에 몸 둘 곳이 없는데, 스님은 나를 보시는가요?”
“노사老師가 그대의 물음에 대답할 것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오?”
“묻는 말에 대답하는 것은 예사로운 일입니다.”
대사는 차를 따면서 들은 척하지도 않았다. 거사가 다시 말했다.
“아까 너무 경솔히 물은 것을 괴이하게 여기지 마십시오.”
대사가 여전히 돌아보지도 않자, 거사가 소리를 질렀다.
“이 무례한 늙은 중아, 내가 눈 밝은 사람을 만나거든 낱낱이 이야기하겠다.”
대사는 차 광주리를 버리고, 문득 방장으로 들어갔다.

남악南嶽 서원난야西園蘭若 담장曇藏 선사

본래 대적大寂 선사에게 심인心印을 받고, 나중에 석두石頭 희천希遷 화상을 만나 환하게 깨쳤다.
당나라 정원貞元 2년에 형악衡嶽의 정상을 두루 다녔지만 찾아오는 사람이 드물었다. 이윽고 다리에 병이 나자 서원난야西園蘭若로 옮겨서 사니, 스님들이 매우 많이 모여들었다.
어느 날 대사(담장)가 손수 목욕물을 준비하는데, 어떤 스님이 물었다.
“왜 사미를 시키지 않습니까?”
대사가 손뼉을 세 번 쳤다.[동산洞山이 말하기를 “첫째는 시절과 인연인데 그 중에서도 서원의 것이 가장 정묘精妙하구나”라고 하였다. 스님이 조산曹山에게 묻기를 “옛사람이 손뼉을 친 것이 어찌 사미의 할 일을 몰랐겠습니까?”라고 하니, 조산이 말하기를 “어떤 것이 위를 향하는 일인가?”라고 하였다. 그 스님이 대답을 못하니, 조산이 말하기를 “이 사미야”라고 하였다.]

대사가 영특한 개 한 마리를 길렀다. 밤에 경행經行을 하다가 그 개가 대사의 옷을 물면, 대사는 곧 방으로 돌아갔다. 또 문 곁에 착 엎드려서 짖기도 하고, 몸을 솟구쳐 사납게 물 기세를 취하기도 하였다. 어느 날 새벽에 동주(東廚:부엌)에 큰 구렁이 하나가 나타났다. 길이가 몇 길[丈]이나 되었는데, 입을 벌려서 어금니를 드러내어 독기를 뿜었다. 시자가 피하라고 하자, 대사가 말했다.
“죽음을 피하겠는가? 그가 독을 가지고 오면 나는 자비로써 받아들이리라. 독이란 실다운 성품이 없어서 격발하면 강해지지만, 자비가 진실로 반연함이 없으면 원수와 친한 이가 하나이다.”
이 말을 마치니, 그 구렁이가 머리를 숙이고 천천히 기어가더니 이내 보이지 않았다.
또 어느 날 저녁에 도적 떼가 왔는데, 개가 또 대사의 옷자락을 물어 당겼다. 대사가 도적들에게 말했다.
“오막살이에서 마음에 드는 것이 있거든 마음대로 가져가라. 조금도 아깝지 않다.”
도적들이 그 말에 감동되어 모두가 머리를 조아리고 흩어졌다.

백령百靈 화상

어느 날 방龐 거사居士를 길에서 만나자, 대사가 물었다.
“지난날 거사께서 남악南嶽에서 얻으신 소식을 남에게 이야기한 적이 있는가?”
“이야기했었습니다.”
“누구에게 이야기했는가?”
거사가 손으로 자기를 가리키면서 말했다.
“방 노인입니다.”
대사가 말했다.
“설사 묘덕(妙德:문수)이나 공생(空生:수보리)이라도 거사를 찬탄하는 일은 다하지 못할 것이다.”
이때 거사가 도리어 물었다.
“스님께서 힘을 얻으신 구절[句]은 누가 알고 있습니까?”
대사가 삿갓을 쓰고 떠나자, 거사가 말했다.
“길 조심하십시오.”
대사는 떠나면서 다시는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진주鎭州 금우金牛 화상

대사가 공양주가 되어서 대중 스님들을 공양했는데, 매번 식사 때가 되면 밥통을 메고 승당 앞에 와서 춤을 추면서 말했다. 
“보살들이여, 밥을 잡수시오.”
그리고는 손뼉을 치며 크게 웃었는데, 이를 날마다 계속하였다.[어떤 스님이 장경長慶에게 묻기를 “옛사람이 손뼉을 치면서 스님들에게 밥을 먹으라고 한 뜻이 무엇입니까?”라고 하니, 장경이 대답하기를 “마치 재齋 끝에 축원하는 것 같다”라고 하였다. 또 어떤 스님이 대광大光에게 묻기를 “축원한 내용이 무엇이겠습니까?”라고 하니, 대광이 춤을 추었다. 그 스님이 절을 하니, 대광이 꾸짖기를 “저 불여우야”라고 하였다. 동선東禪 제齊가 말하기를 “옛사람이 손수 밥을 지어다 놓고 춤을 춘 뒤에 대중을 불러 먹으라 한 뜻이 무엇이겠는가? 알겠는가? 장경과 대광은 옛사람의 뜻을 밝힌 것인가? 따로 도리를 분석한 것인가? 이제 상좌들에게 묻나니 매일 발우를 들고 놓을 때와 사람을 맞이하고 보낼 때에 옛사람과 같은가? 다른 도리가 있던가? 다르다면 어떻게 차이가 나는가? 같다면 그가 춤을 추듯 해야 하겠다. 또 불여우라는 꾸지람을 받았는데 알겠는가? 만일 모르겠다면 행각한 안목이 어디에 있는가?”라고 하였다. 어떤 스님이 조산曹山에게 묻기를 “옛사람이 그렇게 한 것이 종<奴兒婢子>의 것이 아니겠습니까?”라고 하니, 조산이 말하기를 “그렇다”라고 하였다. 스님이 말하기를 “위로 향하는 일을 스님께서 말씀해 주십시오”라고 하니, 조산이 말하기를 “이 종놈아, 종놈아”라고 하였다.] 

동안洞安 화상

어떤 스님이 하직을 고하자, 대사가 물었다.
“어디로 가려는가?”
스님이 말했다.
“본래 갈 곳이 없습니다.”
“스님[闍梨] 도리 노릇 잘 하는군.”
“외람되고 외람된 말씀입니다.”
“제방諸方에 가거든 분명하게 이야기하라.”

어떤 스님이 모시고 섰는데, 대사가 물었다.
“오늘이 며칠인가?”
“모르겠습니다.”
“나는 기억한다.”
“오늘이 며칠입니까?”
“오늘은 깜깜한 그믐이다.”

흔주忻州 타지打地 화상

강서江西에서 법을 깨친 뒤로 스스로 그 이름을 감추고 있었는데, 일반 배우는 자들이 와서 물으면 오직 몽둥이로 땅을 두드렸으므로 당시 사람들이 타지打地 화상이라 불렀다.
어느 날 어떤 스님이 몽둥이를 숨겨 버리고 와서 물으니, 대사는 입만 벌리고 있었다. 그러자 스님이 그의 문인門人에게 물었다.
“화상께서 누구나 와서 물으면 몽둥이로 땅을 치는 뜻이 무엇인가?”
문인이 즉시 부엌에 가서 장작 하나를 가져다가 솥 안에 던졌다.



담주潭州 수계秀谿 화상

어느 날 곡산谷山이 물었다.
“소리와 빛깔이 순수하고 참된데, 어떤 것이 도입니까?”
“어지럽게 지껄여서 무엇 하랴?”
곡산이 동쪽에서 서쪽으로 가서 서니, 대사가 말했다.
“만일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위험했을 뻔했다.”
곡산이 다시 동쪽으로 가니, 대사가 선상에서 내려와서 두 걸음을 걸었다. 곡산이 멱살을 잡고 물었다.
“소리와 빛깔의 순수하고 참된 일이 무엇이오?”
대사가 문득 곡산의 뺨을 때리니, 곡산이 이렇게 말했다.
“10년 뒤에는 차 심부름 해줄 사람도 없으리라.”
대사가 말했다.
“곡산 늙은이를 무엇에 쓰겠는가?”
곡산이 껄껄거리면서 크게 세 차례 웃었다.

자주磁州 마두봉馬頭峰 신장神藏 선사

상당하여 대중에게 말했다.
“알면서도 앎이 없는 것은 알지 못하면서 알지 못한다고 설명하는 것이 아니다.”[남전南泉이 말하기를 “이렇게 말하여야 겨우 하나의 반을 이야기한 것이다”고 하였다. 황벽黃檗이 말하기를 “남전이 아니었더라면 그는 앞의 말을 더 채우려 했으리라”고 하였다.]


담주潭州 화림華林 선각善覺 선사

항상 석장錫杖을 짚고 다녔는데, 밤에 산기슭으로 나가면 일곱 걸음에 석장을 한 번 굴리고는 관세음보살을 한 번 불렀다. 협산夾山 선회善會가 암자에 왔다가 물었다.
“멀리서 듣건대 화상께서는 관세음보살을 염念하신다고 하는데 사실입니까?”
“그렇소.”
“화상의 머리에 올라타면 어찌하시겠습니까?” 
“머리가 나오면 그대 마음대로 타도 되지만, 머리가 나오지 않으면 무엇을 타겠소?”

어떤 스님이 뵈러 와서 막 방석을 펴려는데, 대사가 말했다.
“느릿느릿 하라.”
스님이 말했다.
“화상께서는 무엇을 보셨습니까?”
“아깝게도 종루鐘樓가 주저앉았구나.”
그 스님은 이 말에 깨달았다. 

어느 날 관찰사觀察使인 배휴裵休가 찾아와서 물었다.
“스님도 시자가 있으십니까?”
“한 쌍이 있소.”
“어디에 있습니까?”
대사(선각)가 “대공大空아, 소공小空아” 하고 부르자, 호랑이 두 마리가 암자 뒤에서 튀어나왔다. 배휴가 보고서 겁을 내니, 대사가 두 호랑이에게 말했다.
“손님이 계시니, 가 있거라.”
두 호랑이가 으르렁거리면서 갔다. 배휴가 물었다.
“스님께서는 어떤 업을 닦았기에 이러한 신통을 부리십니까?”
대사가 한참동안 잠자코 있다가 말했다.
“알겠는가?”
“모르겠습니다.”
“산승山僧은 항상 관음觀音을 생각했소.”

정주汀州 수당水塘 화상

대사가 귀종歸宗에게 물었다.
“어디 사람인가?”
“진주陳州 사람입니다.”
“몇 살인가?”
“스물두 살입니다.”
“사리(闍梨:수당 화상을 가리킴)가 아직 태어나지 않았을 때 노승老僧이 오고 갔다.”
“화상께서는 몇 살이십니까?”
대사가 불자를 세우니, 귀종이 말했다.
“이것이 어찌 난 적이 있겠습니까?”
“바로 알면 태어남이 없다.”
“모르겠습니다.”
대사가 잠자코 있었다.

고사古寺 화상

단하丹霞가 대사를 뵈러 왔다가 밤을 지내고 새벽이 되었다. 아침에 죽을 끓여서 다 익으니, 행자가 한 그릇만 떠다가 대사에게 주고, 또 한 그릇은 떠다가 자기가 먹으면서 단하는 전혀 돌아보지도 않았다. 단하가 몸소 나가서 죽을 퍼다 먹으니, 행자가 말했다.
“5경更 새벽을 무릅쓰고 일어났는데, 또한 밤도둑[夜行人]이 있었구나.”
단하가 대사에게 물었다.
“어째서 저 행자를 가르치지 않아서 저토록 무례하게 굴도록 합니까?”
대사가 대답했다.
“깨끗한 땅에서는 남의 집 아들․딸을 더럽힐 필요가 없소.”
단하가 다시 말했다.
“하마터면 이 늙은이의 허물을 묻지 않을 뻔했군.”

강서江西 비수椑樹 화상

잠시 누웠는데 도오道吾가 곁에 와서 이불을 끌어다 덮어 주었다. 대사가 말했다.
“무엇인가?”
도오가 대답했다.
“이불을 덮었습니다.”
“누운 것인가, 앉은 것인가?”
“그 두 곳에 있지 않습니다.”
“이불을 덮은 것은 어찌하겠는가?”
“함부로 지껄이지 마십시오.”

대사가 불을 쪼이는데 도오가 와서 물었다.
“무엇을 하십니까?”
“화합한다.”
“그렇다면 당두當頭에서 벗어났겠군요.”
“그대는 얼마나 떨어져 있었는가?”
도오가 옷소매를 떨치면서 가 버렸다.

어느 날 도오가 밖에서 돌아오자, 대사가 물었다.
“어디를 갔다 오는가?”
“스님을 뵈러 옵니다.”
“두 쪽 입술을 까불러서 무엇을 하는가?”
“빌린 것입니다.” 본분本分이 있음은 위의 문답에서 밝혀졌지만 그래도 더 이야기를 해야 하는 까닭은 신훈新薰을 빌려야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것이 있다면 그대 뜻대로 빌리겠지만, 없다면 어찌하겠는가?”
“다만 있다고 하기에 빌린 것입니다.”

경조京兆 초당草堂 화상

스스로 대적大寂을 참례하기를 그만두고 해창海昌으로 유행하니, 해창 화상이 물었다.
“어디서 왔는가?”
대사(초당)가 대답했다.
“도량道場에서 옵니다.”
“그것이 어디인가?”
“도적은 가난한 집을 털지 않습니다.”
“한 법이 아직 있지 않을 때 이 몸이 어디에 있는가?”
대사가 동그라미를 그리고 그 안에다 신身자를 썼다.

원주袁州 양기산陽岐山 견숙甄叔 선사

상당하여 대중에게 말했다.
“뭇 영靈의 한 근원을 명칭을 빌려서 부처라 하는데, 몸과 형상이 다하여도 소멸하지 않고, 쇳물이 흘러내려 흩어져도 항상 존재한다. 성품의 바다에는 바람이 없어도 황금물결이 스스로 용솟음치고, 마음의 영靈은 징조를 끊었어도 만상萬象이 일제히 환하니, 이러한 이치를 체득한 이는 말하지 않아도 항하의 모래같이 많은 세계를 두루 다니고, 작용하지 않아도 공功이 현묘한 덕화를 더하거늘, 어찌하여 깨달음을 등지고 도리어 번뇌[塵勞]에 합하여서 5음陰ㆍ18계界 속에 망령되이 스스로 갇혀서 집착하는가?”
대사가 처음 이 산에 올라서 자리를 잡고 선원禪院을 이루어 무리를 모아 놓고 40여 년 동안 법을 폈다.
당나라 원화元和 15년 정월 13일에 입적하니, 화장한 뒤에 사리 7백 개를 얻어서 동쪽 봉우리 밑에다 탑을 세워 안치했다.

몽계濛谿 화상

어떤 스님이 물었다.
“한 생각도 나지 않을 때에는 어떻습니까?”
대사가 한참을 가만히 있자, 스님이 문득 절을 하였다. 대사가 말했다.
“그대는 어찌 이해하는가?”
“저는 끝내 부끄러움이 없을 수 없습니다.”
“그대는 믿음이 미칠 수 있겠는가?”
“본분의 일을 어떻게 체득할 수 있습니까?”
“그대는 왜 묻지 않는가?”
“스님께서 대답해 주십시오.”
“그대가 잘 물었구나.”
그 스님이 껄껄 웃고 나가니, 대사가 말했다.
“저 승려는 다만 영리靈利함만 있구나.”

어떤 스님이 밖에서 왔는데 대사가 할喝을 하니, 스님이 말했다.
“좋은 연유[來由]이군요.”
“아직도 몽둥이가 필요하구나.”
“안녕히 계십시오.”
그리고는 곧 나가 버리니, 대사가 말했다.
“능히 자재自在하구나.”



낙경洛京 흑간黑澗 화상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비밀한 방[密室]입니까?”
대사가 대답했다.
“귀를 절단하고 거리에 누워라.”
“어떤 것이 밀실 속의 사람입니까?”
대사가 팔을 굽혀 가슴을 두드렸다.

경조京兆 흥평興平 화상

동산洞山이 와서 절을 하니, 대사가 말했다.
“늙어 빠진 것에게 절하지 말라.”
동산이 말했다.
“늙어 빠지지 않는 것에 절하는 것입니다.”
“늙어 빠지지 않는 것은 절을 받지 않느니라.”
“그는 또한 절하는 것을 막지도 않습니다.”

동산이 물었다.
“어떤 것이 옛 부처의 마음입니까?”
대사가 말했다.
“그대의 마음이 바로 그것이다.”
“아무리 그렇다 하여도 여전히 제가 의심하는 곳입니다.”
“그렇다면 목인木人에게 물어보거라.”
동산이 이어서 말했다.
“저에게 한 구절이 있는데, 여러 성인의 입을 빌리지 않습니다.”
대사가 말했다.
“그대가 시험 삼아 말해 보라.”
“저는 아닙니다.”

동산이 하직을 고하니, 대사가 물었다.
“어디로 가는가?”
“흐름을 따라 정처 없이 갑니다.”
“법신法身이 흐름을 따르는가, 보신報身이 흐름을 따르는가?”
“그런 견해를 전혀 짓지 않습니다.”
대사가 이내 손뼉을 쳤다.[보복保福이 말하기를 “동산洞山이 따로 일가一家를 이루었구나”라고 하였다. 그리고는 말하기를 “몇 사람이나 만날 수 있었으랴”라고 하였다.]

소요逍遙 화상

어느 날 선상禪床에 앉았는데, 녹서鹿西라는 스님이 와서 물었다.
“생각 생각마다 반연하면서도 마음과 마음은 영원히 적멸합니다.”
대사(소요)가 말했다.
“어제 저녁에도 어떤 사람이 그렇게 말하더군.”
“뭐라 했습니까?”
“모르겠다.”
“말씀해 주십시오.”
대사가 불자로 주둥이를 때리니, 녹서가 바로 나갔다. 대사가 대중에게 말했다.
“정수리 위에 붙어 있는 외눈이니라.”

복계福谿 화상

어떤 스님이 물었다.
“옛 거울[古鏡]에 티가 없을 때에 어떠합니까?”
대사가 한참을 묵묵히 있자, 그 스님이 다시 물었다.
“스님의 뜻은 어떠하십니까?”
“산승山僧의 귀가 먹었다.”
그 스님이 앞의 일을 다시 물으니, 대사가 말했다.
“아직도 계교할 뿐이구나.”
그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자기自己입니까?”
“그대는 무엇을 물은 것인가?”
“어찌 방편이 없으시겠습니까?”
“그대는 아까 무엇을 물었지?”
“그렇게 헷갈리십니까?”
“오늘은 이 산승山僧 손의 방망이를 맞아야 하겠구나.”

어떤 스님이 물었다.
“인연이 흩어져서 공空으로 돌아가면, 공은 어디로 돌아갑니까?”
대사가 말했다.
“아무개야.”
그 스님이 “네” 하고 대답을 하자, 대사가 말했다.
“공이 어디에 있는가?”
“스님께서 말씀해 주십시오.”
“파사波斯 남방 오랑캐를 말한다.
가 호초胡椒를 먹는다.”

홍주洪州 수로水老 화상

처음에 마조馬祖에게 물었다.
“어떤 것이 조사께서 서쪽으로부터 오신 분명한 뜻입니까?”
마조가 가슴을 차서 넘어뜨리니, 이에 대사는 크게 깨달았다. 그래서 벌떡 일어나 손뼉을 치면서 껄껄 웃고 말했다.
“몹시도 기이하구나. 백천 삼매와 한량없는 묘한 이치를 단지 한 털끝에서 문득 깊이 깨달았다.”
그리고는 절을 하고 물러났다.
대사는 그 후 주석하고서는 대중에게 말했다.
“한번 마조의 발길을 맞은 뒤로 지금까지 웃음이 그치지 않는다.”

어떤 스님이 동그라미를 만들어서 손으로 대사(수로)의 몸에 뿌리니, 대사가 세 번 튀기고는 다시 동그라미를 그려서 그 스님을 가리켰다. 그 스님이 절을 하자, 대사가 때리면서 말했다.
“이 허풍선이야.”
그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사문沙門의 행입니까?”
“움직이면 그림자가 나타나고, 자각하면 얼음이 생긴다.”
“어떤 것이 불법의 대의입니까?”
대사가 손뼉을 치면서 껄껄 웃었다. 그는 대중을 제접할 때에 보통 이러하였다.

부배浮盃 화상

능행파凌行婆라는 노파老婆가 와서 절을 하고는 대사(부배)와 마주 앉아 차를 마시다가 물었다.
“힘을 다해도 말할 수 없는 구절이 누구에게 전해졌습니까?”
대사가 말했다.
“부배는 군말을 하지 않소.”
노파가 말했다.
“저는 그렇게 말하지 않겠습니다.”
대사가 다시 앞의 말로써 노파에게 물으니, 노파가 목을 놓아 곡을 하면서 말하였다. 
“슬픔 속에다 다시 원통한 고통을 더했구나.”
대사가 말이 없었다.
노파가 말했다.
“말로는 치우침과 올바름을 알지 못하고 이치로는 뒤바뀐 삿됨을 알아채지 못하면서 남을 가르치면, 참으로 위험한 일입니다.”
나중에 어떤 스님이 남전南泉에게 고하니, 남전이 말했다.
“가엾구나, 부배여. 노파에게 꺾이다니.”
나중에 노파가 남전의 이 말을 전해 듣고 웃으면서 말했다.
“왕王 노사老師가 아직도 기관機關이 적구나.”

유주幽州에 징일澄一이라는 선객이 있었는데, 길에서 능행파를 만나 이렇게 물었다.
“어째서 남전이 그렇게 말한 것을 기관이 적다고 했는가?”
노파가 통곡을 하면서 말하였다. 
“슬프고 애통하구나.” 
선객이 어리둥절해 하자, 노파가 다시 물었다.
“아시겠소?”
선객이 합장하고 물러나니, 노파가 말했다.
“저 따위 죽은 선객은 삼대와 같고 좁쌀과 같다.”
나중에 징일澄一이 조주趙州에게 이야기하니, 조주가 말했다.
“내가 만일 그 냄새나는 노파를 보았더라면 따지고 물어서 벙어리를 만들 것이다.”
징일이 조주에게 물었다.
“화상께서는 그 노파에게 어떻게 묻겠습니까?”
조주가 몽둥이로 때리면서 말했다.
“이 따위 죽은 놈을 때리지 않으면 언제 때리겠는가?”
그리고는 몇 차례를 거듭 때렸다. 나중에 노파가 또 조주의 이 말을 듣고 말했다.
“조주야말로 스스로 내 손의 몽둥이를 맞아야겠다.”
나중에 어떤 스님이 조주에게 이야기하니, 조주가 통곡을 하면서 말했다.
“슬프고 애통하구나.”
노파가 다시 조주의 이 말을 듣고 합장하며 탄복했다.
“조주가 눈에서 광명을 놓아 사천하를 비추었구나.”
나중에 조주가 스님에게 시켜 노파에게 묻기를 “어떤 것이 조주의 눈인가?” 하니, 노파가 곧 주먹을 곤두 세웠다. 조주가 이 말을 듣고 게송 하나를 지어서 능행파에게 보냈다.

근기에 따라 직면해서 이끄니
직면하여 근기에 따름이 빠르구나.
그대, 능행파에게 전하노니
통곡 소리는 어떻게 얻고 잃는가?
當機直面提    直面當機疾
報爾凌行婆    哭聲何得失

노파가 게송으로 조주에게 대답했다.

통곡 소리는 스님이 이미 밝혔으니
이미 밝혔다면 다시 누가 알겠습니까?
부처님 당시의 마갈타국에서도
눈앞의 근기를 얼마나 잃었겠습니까?
哭聲師已曉    已曉復誰知
當時摩竭國    幾喪目前機

담주潭州 용산龍山 화상[은산隱山이라고도 한다.]

어떤 스님에게 물었다.
“어디서 오는가?”
“노스님의 처소에서 옵니다.”
“노스님께서 무슨 말씀이 있던가?”
“말을 하자면 천 구절 만 구절이요, 말을 안 하자면 한 글자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파리가 알을 낳은 것이군.
그 스님이 절을 하자, 대사가 문득 때렸다.

동산洞山 양개良价 화상이 행각行脚할 때 길을 잃어서 용산에 이르렀는데, 이로 인해 대사를 뵈었다. 대사가 물었다.
“이 산에는 길이 없는데, 사리(闍梨:그대)는 어디로 오셨소?”
동산이 말했다.
“길이 없는 것은 그만두고, 화상께서 어디로부터 들어오셨습니까?”
“나는 본래 떠도는 탁발승[雲水]이 아니오.”
동산이 다시 물었다.
“화상께서 이 산에 계신 지가 얼마나 됩니까?”
“세월은 상관하지 않소.”
“이 산이 먼저 머물렀습니까, 화상께서 먼저 머물렀습니까?”
“모르겠소.”
“왜 모르시나요?”
“나는 인간과 하늘을 위해 오지 않았소.”
동산이 다시 물었다.
“어떤 것이 손님 가운데의 주인입니까?”
“오랜 세월 문지방을 나서지 않는 것이오.”
“어떤 것이 주인 가운데의 손님입니까?”
“푸른 하늘에 흰 구름이 덮인 것이오.”
“손님과 주인과의 거리는 얼마입니까?”
“끝없는 강 위의 물결이다.”
“손님과 주인이 만나면 무슨 말을 합니까?”
“맑은 바람이 밝은 달에 산들거린다.”
동산이 다시 물었다.
“화상께서는 어떤 도리를 보셨기에 이 산에서 사십니까?”
“나는 두 진흙 소가 싸우면서 바다로 들어가는 것을 보았는데, 아직까지도 아무런 소식이 없소.”
대사는 이어서 게송을 읊었다.

세 칸 초가집에서 예전부터 사노라니
한 줄기 신령한 빛이 온갖 경계에 한가롭다.
옳고 그름을 가지고 나와 따지려 하지 말라.
부평초 같은 중생의 천착은 상관하지 않노라.
三間茅屋從來住    一道神光萬境閑
莫作是非來辨我    浮生穿鑿不相關

양주襄州 방온龐蘊 거사

그는 충주衝州 형양衡陽 사람으로서 자字는 도현道玄이다. 대대로 유도儒道로 업을 삼았으나, 거사는 어릴 적에 번뇌를 깨닫고 참된 진리를 구할 뜻을 가졌다.
당나라 정원貞元 초에 석두石頭 화상을 뵙고는 말을 잊으면서 종지를 이해했고, 다시 단하丹霞 선사와 도반이 되었다.
어느 날 석두가 이렇게 물었다.
“그대가 나를 만난 뒤에 날마다 하는 일[日用事]이 무엇인가?”
“날마다 하는 일을 물으신다면 입을 열 곳이 없습니다.”
그리고는 다시 게송을 지어 석두에게 바쳤다.

날마다 하는 일에 별다른 것 없으니
오직 나 스스로 짝과 조화할 뿐이네.
가지가지마다 취하고 버리지 않으니
곳곳에서 벌리거나 떼어 놓지 마십시오.
日用事無別    唯吾自偶諧
頭頭非取捨    處處勿張乖

붉은 빛과 자줏빛을 어느 누가 호칭했나?
언덕이든 산이든 한 점 티끌마저 끊어졌네.
신통과 묘한 작용이라는 것은
그저 물 긷고 나무하는 일뿐입니다.
朱紫誰爲號    丘山絶點埃
神通幷妙用    運水及般柴

석두가 옳다고 여기면서 말했다.
“그대는 스님이 되겠는가, 속인으로 있겠는가?”
거사가 대답했다.
“사모하는 바를 따르고 싶습니다.”
그리고는 끝내 머리를 깎지 않았다.

나중에 강서江西에 가서 마조馬祖를 뵙고서 물었다.
“만법과도 반려가 되지 않는 자는 어떤 사람입니까?”
“그대가 한 입에 서강西江 물을 다 마시기를 기다렸다가 그대에게 말해 주리라.”
거사가 그 말끝에 단박에 현묘한 요체를 깨달았다. 그리하여 곁에 머물면서 섬기고 배우기를 2년 동안 했다. 이때에 게송을 지은 것이 있다.

남자는 장가를 들지 않고
여자는 시집을 가지 않았는데
온 집안이 단란하게 앉아서
함께 무생無生의 이야기를 설하네.
有男不婚      有女不嫁
大家團欒頭    共說無生話

이때부터 기지와 변재가 민첩해져서 모든 곳에 알려졌다. 

일찍이 강원을 찾아다니면서 󰡔금강경󰡕을 좋아했는데, ‘나도 없고 남도 없다[無我無人]’는 대목에 이르자, 강사에게 물었다.
“좌주座主여, 이미 나도 없고 남도 없다면, 누가 강의하고 누가 듣습니까?”
좌주가 대답하지 못하자, 거사가 말했다.
“내가 비록 속인이지만 거칠게나마 갈피를 압니다.”
“그러면 거사의 뜻은 어떠하시오?”
거사가 이내 하나의 게송을 지어서 보였다.

나도 없고 다시 남도 없는데
어찌 친하고 소원함이 있으리.
그대에게 권하나니, 앉아 있지만 말지니
곧바로 참됨을 구하는 것만 못하다.
無我復無人    作麽有疎親
勸君休歷坐    不似直求眞

금강반야金剛般若의 성품
밖에는 가는 티끌 하나 없나니
내가 듣고 아울러 믿고 받아들인 것은
몽땅 거짓 이름을 늘어놓은 것일세.
金剛般若性    外絶一纖塵
我聞幷信受    總是假名陳

좌주가 게송을 듣고 흔연히 탄복하였다. 거사는 이르는 곳마다 노숙老宿들과 주로 문답을 주고받았는데, 모두 근기에 따라 상응할 뿐 격식이나 규칙 따위에는 얽매이지 않았다.

원화元和 때에 북쪽으로 양한襄漢 지방에 노닐면서 아무 곳에나 살았으니, 혹은 봉령鳳嶺이나 녹문鹿門에 살거나 혹은 저자나 마을에도 살았다. 처음에는 동암東巖에 살다가 나중에 곽서郭西의 오막살이에 살았는데, 영조靈照라는 딸 하나가 항상 따라다니면서 대나무로 조리를 엮어다가 팔아서 끼니를 이었다. 그가 이런 게송을 지었다.

마음이 여여如如하니 경계도 여여해서
실다움도 없고 또한 허망함도 없구나.
있음[有]에도 관계하지 않고
없음[無]에도 머물지 않으니
心如境亦如    無實亦無虛
有亦不管    無亦不居

현인이나 성인이 아니고
일을 마친 범부일 뿐이네.
쉽고도 쉽구나.
바로 이 5온蘊이 참 지혜인 것을.
不是賢聖    了事凡夫
易復易     卽此五蘊有眞智

시방세계가 동일한 1승乘이니
모습 없는 법신이 어찌 둘이 있으랴.
번뇌를 버려야 보리에 들어간다고 하면
어디에 부처의 경지가 있는 줄 모르는 것일세.
十方世界一乘同    無相法身豈有二
若捨煩惱入菩提    不知何方有佛地

거사가 열반에 들려고 할 때에 딸 영조에게 해가 어느 때쯤 되었는지 보고 오라고 했다. 딸이 들어와서 급히 말했다. 
“해가 중앙에 있는데, 일식이 일어나고 있어요.”
거사가 문을 열고 나와서 살피는 틈에 영조가 즉시 아버지의 자리에 앉아서 합장한 채 열반에 들었다. 그러자 거사가 웃으면서 말했다.
“나의 딸이 퍽 영리하구나.”
그리하여 다시 7일을 연기하였는데, 주목州牧 우공于公이 문병을 오자 거사가 그에게 말했다.
“다만 온갖 있는 것[所有]을 비우기를 바랄지언정 온갖 없는 것[所無]을 실답다고 하지 말아야 하오. 세간에 즐겨 머무는 것은 모두 메아리나 그림자와 같은 것이오.”
말을 마치자 공의 무릎을 베고서 열반하였다. 유언에 따라 시체를 태워서 버리니, 강호江湖의 승속이 모두 애도하면서 말하였다. 
“선문禪門에 방 거사가 있는 것은 마치 비야리성毘耶離城에 유마維摩 거사가 있는 것과 같다.” 
그의 시게詩偈 3백여 편이 세상에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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