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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덕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 전등록 번역, 불경, 불교경전, 선문답, 화두 (4)

일이삼선생 2023. 6. 29.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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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 제12권






회양懷讓 선사의 제4세 12인

홍주洪州 황벽산黃檗山 희운希運 선사의 법손 12인
진주鎭州 임제臨濟 의현義玄 선사
목주睦州 용흥사龍興寺 진陳 존숙尊宿
항주杭州 천경산千頃山 초남楚南 선사
복주福州 오석산烏石山 영관靈觀 선사
항주杭州 나한羅漢 종철宗徹 선사
상국相國 배휴裵休 
  [이상 6인은 기록에 보임]
양주楊州 육합六合 덕원德元 선사
사문士門 찬讚 선사
양주襄州 정政 선사
오문산吳門山 홍선弘宣 선사
유주幽州 초超 선사
소주蘇州 헌憲 선사 
  [이상 6인은 기연機緣할 어구語句가 없으므로 기록하지 않음]

제5세 51인

원주袁州 앙산仰山 혜적慧寂 선사의 법손 10인
원주袁州 앙산仰山 서탑西塔 광목光穆 선사
진주晉州 곽산霍山 경통景通 선사
항주杭州 용천龍泉 문희文喜 선사
신라국新羅國 순지順支 선사
원주袁州 앙산仰山 남탑南塔 광용光涌 선사
원주袁州 앙산仰山 동탑東塔 화상
  [이상 6인은 기록에 보임]
홍주洪州 관음觀音 상견常蠲 대사
복주福州 동선東禪 혜무慧茂 대사
복주福州 명월산明月山 도숭道崇 대사
처주處州 수창遂昌 선사
  [이상 4인은 기연할 어구가 없으므로 기록하지 않음]

진주鎭州 임제臨濟 의현義玄 선사의 법손 22인
악주鄂州 관계灌谿 지한志閑 선사
유주幽州 담공譚空 화상
진주鎭州 보수寶壽 소沼 화상
진주鎭州 삼성三聖 혜연慧然 선사
위부魏府 대각大覺 선사
위부魏府 흥화興化 존장存獎 선사
정주定州 선최善崔 선사
진주鎭州 만세萬歲 화상
운산雲山 화상
동봉桐峰 암주菴主
삼양杉洋 암주
탁주涿州 급의級衣 화상
호계虎谿 암주
복분覆盆 암주
양주襄州 역촌歷村 화상
창주滄州 미창米倉 화상
  [이상 16인은 기록에 보임]
제용齊聳 대사
탁주涿州 수秀 선사
절서浙西 선권善權 철徹 선사
금사金沙 선사
윤성允誠 선사
신라국新羅國 지리산智異山 화상 
  [이상 6인은 기연할 어구가 없으므로 기록하지 않음]

목주睦州 진陳 존숙尊宿의 법손 2인
목주睦州 자사刺史 진조陳操 
  [1인은 기록에 보임]
목주睦州 엄릉嚴陵 균대鈞臺 화상 
  [1인은 기연할 어구가 없으므로 기록하지 않음]


등주鄧州 향엄香嚴 지한智閑 선사의 법손 12인
길주吉州 지관止觀 화상
수주壽州 소종紹宗 선사
양주襄州 연경延慶 법단法端 선사
  [11권에 이미 위산潙山 영우靈祐 선사의 밑에 수록됨]
익주益州 남선南禪 무염無染 선사
익주益州 장평산長平山 화상
익주益州 숭복崇福 연교演敎 대사大師
안주安州 대안산大安山 청간淸幹 선사
종남산終南山 풍덕사豊德寺 화상
균주均州 무당산武當山 불암佛巖 휘暉 선사
강주江州 쌍계雙谿 전田 도자道者 
  [이상 10인은 기록에 보임]
익주益州 조각사照覺寺 화상
목주睦州 동선東禪 화상 
  [이상 2인은 기연할 어구가 없으므로 기록하지 않음]

복주福州 쌍봉雙峰 화상의 법손 1인
쌍봉雙峰 고古 선사
  [1인은 기록에 보임]

항주杭州 경산徑山 홍인洪諲 선사의 법손 4인
홍주洪州 미령米嶺 화상 
  [1인은 기록에 보임]
여주廬州 서현사棲賢寺 적寂 선사
임천臨川 의직義直 선사
항주杭州 공신원功臣院 영도令道 선사
  [이상 3인은 기연할 어구가 없으므로 기록하지 않음]

양주揚州 광효원光孝院 혜각慧覺 선사의 법손 1인
승주昇州 장경長慶 도헌道巘 선사
  [1인은 기록에 보임]

제6세 19인

원주袁州 앙산仰山 남탑南塔 광용光涌 선사의 법손 5인
월주越州 청화淸化 전부全付 선사
영주郢州 파초산芭蕉山 혜청慧淸 선사
소주韶州 황련산黃連山 의초義初 선사
소주韶州 혜림慧林 홍구鴻究 선사 
  [이상 4인은 기록에 보임]
홍주洪州 황룡산黃龍山 충忠 화상 
  [1인은 기연할 어구가 없으므로 기록하지 않음]

원주袁州 앙산仰山 서탑西塔 광목光穆 선사의 법손 1인
길주吉州 자복資福 여보如寶 선사 
  [1인은 기록에 보임]

관계灌谿 지한志閑 선사의 법손 1인
지주池州 노조산魯祖山 교敎 화상 
  [1인은 기록에 보임]


위부魏府 흥화興化 존장存獎 선사의 법손 2인
여주汝州 보응寶應 화상 
  [1인은 기록에 보이니 곧 남원옹南院顒임]
위부魏府 천발天鉢 화상 
  [1인은 기연할 어구가 없으므로 기록하지 않음]

진주鎭州 보수寶壽 소沼 선사의 법손 2인
여주汝州 서원西院 사명思明 선사
제2세 보수寶壽 화상 
  [이상 2인은 기록에 보임]

탁주涿州 지의紙衣 화상의 법손 1인
진주鎭州 담공譚空 화상 
  [1인은 기연할 어구가 없으므로 기록하지 않음]

진주鎭州 삼성三聖 혜연慧然 선사의 법손 2인
진주鎭州 대비大悲 화상
치주淄州 수륙水陸 화상 
  [2인은 기록에 보임]

위부魏府 대각大覺 화상의 법손 4인
여주廬州 대각大覺 화상
여주廬州 징심澄心 민덕旻德 선사 
여주汝州 남원南院 화상 
  [이상 3인은 기록에 보임]
송주宋州 법화法華 화상 
  [1인은 기연할 어구가 없으므로 기록하지 않음]
금릉金陵 도헌道巘 선사의 법손 1인
금릉金陵 광효원廣孝院 처미處微 선사 
  [1인은 기연할 어구가 없으므로 기록하지 않음]


회양懷讓 선사의 제4세 법손

앞의 홍주洪州 황벽산黃蘗山 희운希運 선사의 법손

진주鎭州 임제臨濟 의현義玄 선사
그는 조주曹州 남화南華 사람으로서 성은 형邢씨이다. 어려서부터 세간을 벗어날 뜻을 품고 있다가, 드디어 머리를 깎고 구족계를 받고 나서, 바로 선종禪宗을 흠모하였다.
처음에는 황벽에 있으면서 대중을 따라 모시면서 배웠는데, 이때 제1좌座가 질문을 하라고 권고하자, 대사가 물었다.
“어떤 것이 조사께서 서쪽에서 오신 적적的的한 뜻입니까?”
그러자 황벽이 곧바로 때렸다. 이렇게 세 차례 묻다가 세 차례 모두 얻어맞자, 대사는 제1좌에게 떠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일찍이 질문을 하라고 강력히 권고하시는 말씀을 따랐을 뿐인데, 오로지 화상의 몽둥이를 맞을 뿐이었습니다. 저의 우둔함을 한탄할 따름이니, 제방諸方으로 행각이나 떠나겠습니다.”
상좌上座가 황벽에게 가서 고했다.
“의현義玄이 비록 후생後生이지만 매우 기특한 바가 있으니, 하직을 하러 오거든 화상께서 다시 잘 이끌어 주십시오.”
이튿날 황벽에게 하직인사를 아뢰니, 황벽이 대우大愚에게 가라고 지시했다. 대사가 대우를 찾아가 뵙자, 대우가 물었다.
“어디서 오는가?”
“황벽에게서 왔습니다.”
“황벽이 뭐라고 가르쳐 주던가?”
“제가 불법佛法의 적적的的한 뜻을 직접 물었다가 화상께 매만 맞았습니다. 이렇게 세 번 묻다가 세 번 매를 맞았는데, 저의 허물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대우가 말했다.
“황벽이 그렇게 그대를 위해 노파심老婆心으로 애를 썼는데, 아직도 허물을 찾고 있는가?”
대사가 이 말끝에 크게 깨닫고서 말했다.
“원래 황벽의 불법에는 별 것이 없구나.”
대우가 대사의 옷깃을 거머잡고 물었다.
“이 오줌싸개야, 아까는 모르겠다고 하다가 지금은 황벽의 불법에는 별 것이 없다고 말하니, 이게 무슨 짓이냐?”
대사가 대우의 갈비뼈 밑을 주먹으로 한 대 갈기니, 대우가 탁 놓으면서 말했다.
“그대의 스승은 황벽이다. 나와는 관계가 없다.”
대사가 대우를 하직하고 황벽에게 돌아오자, 황벽이 물었다.
“그대는 어찌하여 이리도 빨리 돌아왔는가?”
“너무 노파심이 간절했기 때문입니다.”
“그 대우 늙은이를 보게 되면 아프도록 한 대 갈기겠다.” 
“보게 될 때를 기다릴 필요가 있겠습니까? 지금 당장 갈기시죠.”
그리고는 황벽을 한 대 갈기자, 황벽이 헛헛하고 크게 웃었다.
어느 날 황벽이 울력으로 율미[薏穀] 밭을 매러 가는데, 대사가 뒤를 따르게 되었다. 황벽이 고개를 돌려서 대사가 맨손인 것을 보자 이내 물었다.
“호미는 어디에 있는가?”
“누군가 가지고 갔습니다.”
“가까이 오라. 그대와 함께 의논할 일이 있다.”
대사가 앞으로 다가가서 합장하고 서 있자, 황벽이 호미를 번쩍 들면서 말했다.
“나의 이것은 천하 사람이 다 들려 해도 들지 못한다. 누가 이것을 들 사람이 있겠는가?” 
대사가 얼른 빼앗아서 번쩍 들고 말했다.
“이것이 어떻게 저[義玄]의 손아귀에 들어왔을까요?”
“오늘날 스스로 울력하는 사람이 있구나.”
그리고는 방장으로 돌아갔다.[위산潙山에게 앙산仰山이 모시고 섰을 때 이 이야기를 했는데, 채 마치기도 전에 앙산이 다시 물었다. “호미가 황벽의 손에 있었는데 어찌하여 임제에게 빼앗겼습니까?” 위산이 말하였다. “도적이 소인小人이기는 하나 지혜는 군자를 뛰어넘는다.”]

어느 날 황벽이 울력으로 차밭을 매러 가는데, 황벽이 나중에 도착했다. 대사가 인사를 하고 괭이를 짚고 섰으니, 황벽이 말했다.
“고단하지 않은가?”
“이제 겨우 파기 시작했는데 어찌 고단하다고 하겠습니까?”
황벽이 주장자를 들어서 때리니, 대사가 주장자를 빼앗고 황벽[和尙]을 밀쳐서 쓰러뜨렸다. 황벽이 소리쳐서 유나維那를 불렀다.
“유나야, 나를 좀 일으켜라.”
유나가 일으키면서 말했다.
“화상께서 어찌 저 미친놈의 무례함을 용납하십니까?”
황벽은 얼른 유나를 때렸다. 대사는 스스로 땅을 파면서 말했다.
“모든 지역에서는 화장火葬을 하지만, 나는 차라리 이 속에다 산 채로 매장을 해야겠다.”[위산潙山이 앙산仰山에게 묻기를 “황벽과 임제의 이때의 뜻이 무엇이겠는가?” 하니, 앙산이 대답하기를 “도적놈은 달아나고, 도적을 잡는 순라군이 도리어 매를 맞았습니다”라고 하였다. 그러자 위산이 말하기를 “그렇다”고 하였다.]

어느 날 대사가 황벽의 승당(僧堂:큰방)에서 졸고 있는데, 황벽이 들어와서 보고 주장자로 평상의 귀퉁이를 세 차례 내려쳤다. 대사가 고개를 들어 화상인 것을 보고는 다시 조니, 황벽이 자리를 세 번 두드리고 나갔다.
상간上間 윗자리를 말한다.
에서 제1좌를 보고서 황벽이 말했다.
“이 잠에 취한 놈아, 어찌하여 하간下間의 선객禪客이 좌선하는 것을 모르는가? 너는 그저 졸음과 싸울 뿐이다.”
상좌가 말했다.
“늙은 화상이 미쳤나?”
황벽이 그를 때렸다.[위산이 앙산에게 묻기를 “황벽의 뜻이 무엇이었겠는가?”라고 하니, 앙산이 대답하기를 “하나의 예단을 두 곳에 선사하는군요”라고 하였다.] 
대사가 황벽과 함께 삼나무[杉]를 재배하는데, 황벽이 물었다.
“깊은 산에다 이처럼 많은 나무를 심어서 무엇 하겠는가?”
대사가 말했다.  
“후인들에게 예언을 하려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삽으로 땅을 두 차례 내리쳤다. 황벽이 주장자를 번쩍 들고서 말했다.
“그대는 나의 방망이를 맞았다.”
대사가 “허허噓噓”라고 소리를 내니, 황벽이 말했다.
“나의 종지宗旨는 그대에 이르러서 세상에 크게 흥기하리라.”[위산潙山이 앙산仰山에게 묻기를 “황벽黃蘗의 뒷말은 임제臨濟에 한정된 예언인가, 다른 뜻이 있는가?” 하니, 앙산이 말하기를 “임제의 일이기도 하고 뒷일이기도 합니다”라고 하였다. 위산이 다시 묻기를 “뒷일이란 어떤 것인가?”라고 하니, 앙산이 말하기를 “한 사람이 남쪽을 가리키니 오월吳越의 군령이 시행됩니다”라고 하였다. 남탑南塔 화상和尙이 주注를 내기를 “홀로 앉아서 위엄을 떨쳐야 이 예언이 맞으리라”고 하였다. 또 말하기를 “만일 큰 풍화를 만나면 이 예언이 비로소 맞으리라”고 하니, 위산이 말하기를 “그렇다, 그렇다”라고 하였다.]

대사가 하안거 중반쯤에 황벽산에 왔다가 화상(황벽)이 경을 읽는 것을 보고서 말했다.
“내 이런 사람인 줄 알았더니, 원래 검은콩[黑豆:경전의 글귀]을 우물거리는 늙은 화상이구나.”
며칠 있다가 하직 인사를 하자, 황벽이 말했다.
“그대는 하안거 중반쯤에 왔으면서 하안거도 마치지 않고 가는가?”
“저는 잠시 화상을 문안하러 왔을 뿐입니다.”
그러자 황벽이 때려서 쫓아 버렸다. 대사가 몇 리쯤 가다가 이 일이 의심이 나서 다시 돌아와 하안거를 마쳤다.

어느 날 대사가 황벽에게 하직을 아뢰니, 황벽이 말했다.
“어디를 가려는가?”
“하남河南 아니면 하북河北으로 가겠습니다.”
황벽이 주장자를 들어서 때리니, 대사가 주장자를 잡아 멈추게 하고서 말했다.
“이 노장아, 눈먼 방망이로 앞으로는 사람을 잘못 때리지 마시오.”
황벽이 시자를 불러 돌아가신 백장 선사의 궤안几案과 선판禪板을 가져오라고 하자, 대사가 말했다.
“시자야, 불을 가지고 오너라.”
황벽이 말했다. 
“그러지 말고 그대가 가져가라. 이후에는 앉아서 천하 사람의 혀끝을 끊으리라.”
대사는 곧 떠났다.

대사가 웅이탑熊耳塔에 이르자, 탑주塔主가 물었다.
“부처님께 먼저 절을 하시겠습니까, 조사께 먼저 절을 하시겠습니까?”
“조사께도 부처님께도 모두 절을 하지 않겠다.”
“장로는 조사와 부처님께 무슨 원한이 있기에 모두 절을 하지 않습니까?”
대사가 대답이 없었다.[또 다른 책에 이르기를 “대사가 탑주에게 묻기를 ‘부처님께 먼저 절을 할까, 조사에게 먼저 절을 할까?’라고 하니, 탑주가 말하기를 ‘조사와 부처는 누구의 제자입니까?’라고 하자, 대사가 소매를 흔들고 떠났다”고 하였다.]

나중에 대사가 고향에 돌아왔다가 조인趙人의 청에 따라 성城의 남쪽에 있는 임제선원臨濟禪苑에 살았는데, 배우는 자들이 구름같이 모였다. 어느 날 상당하여 이렇게 말했다. 
“그대들, 여러분의 붉은 살덩이 위에 하나의 무위진인(無位眞人:佛性)이 있어서 항상 그대들의 면문面門으로 출입한다. 그대들이 알아채지 못했다면 단지 노승에게 물어라.”
어떤 스님이 나서서 물었다.
“어떤 것이 무위진인입니까?”
대사는 곧 그를 때리면서 말했다.
“무위진인이라니, 무슨 마른 똥 막대기[乾屎橛] 같은 소리냐?[나중에 설봉雪峰이 듣고 말하기를 “임제는 마치 날강도[白拈賊] 같구나”라고 하였다.]

대사가 낙보樂普에게 물었다.
“전부터 한 사람은 방망이질을 하고 한 사람은 할喝을 하는데, 어느 쪽이 더 친근한가?”
“모두 친근하지 않습니다.”
“친근한 곳이 어디인가?”
낙보가 할을 하니, 대사가 곧 때렸다.

대사가 목구木口 화상에게 물었다.
“어떤 것이 노지백우(露地白牛:佛性)인가?”
목구가 “훔[吽]” 하니, 대사는 “아啞” 하였다. 이어 목구가 말했다.
“노형老兄은 어떠시오?”
“이 축생아.”

대각大覺이 와서 뵈니, 대사가 불자拂子를 들었다. 대각이 방석을 펴니, 대사가 불자를 던졌다. 대각이 방석을 거두어 가지고 승당으로 들어갔다. 이에 대중이 말했다.
“저 스님이 화상의 친구가 아닐까? 절도 하지 않고, 방망이도 맞지 않는구나.”
대사가 이 말을 듣고 새로 온 스님을 부르게 하니, 대각이 나왔다. 그러자 대사가 말했다.
“대중들이 말하기를 그대는 장로께 인사를 하지 않는다고 하더라.”
그러자 대각이 “안녕하십니까?” 하고는 대중 속으로 돌아갔다.

마곡麻谷[제2세]이 뵈러 와서 방석을 펴고 물었다.
“십이면관세음十二面觀世音은 어느 것이 바른 얼굴입니까?”
대사가 승상繩床에서 내려와 한 손으로는 방석을 걷고, 한 손으로는 마곡을 거머잡고 말했다.
“십이면관세음이 어디로 갔는가?”
마곡이 몸을 돌려 승상에 앉으려 하자, 대사가 주장자를 들어서 때렸다. 마곡이 주장자를 막고서 맞붙잡고 방장으로 들어갔다.

대사가 상당하여 말했다.
“대중들이여, 법을 위하는 이는 신명身命을 잃는 것을 피하지 말아야 한다. 내가 돌아가신 황벽 화상의 처소에 있을 때에 세 번 그의 방망이를 맞았는데, 마치 쑥대[蒿枝]로 살짝 쓰다듬는 것과 같았다. 지금도 한 방망이 맞고 싶은데, 누가 나를 위해 손을 써 주겠는가?”
이때에 어떤 스님이 나서서 말했다.
“제가 손을 대겠습니다. 화상께서는 얼마나 맞으시겠습니까?” 
대사가 주장자를 주자 그 스님이 받으려 하였는데, 대사가 스님을 곧바로 때렸다.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제1구句입니까?”
“삼요三要의 도장[印]이 찍히니 붉은색이 선명해서 망설이고 따져서 빈주賓主를 나눌 길이 없다.”
“어떤 것이 제2구입니까?”
“묘해(妙解:문수)가 어찌 무착 선사의 질문을 용납했으리오마는 방편문으로는 뛰어난 근기를 저버릴 수 없었을 것이다.”
“어떤 것이 제3구입니까?”
“무대 위의 허수아비 놀음을 보라. 밀치고 당기는 것이 전적으로 그 속에 있는 사람에게 달렸다.”
대사가 또 말했다.
“무릇 한 구절의 말에 모름지기 3현문玄門을 갖추어야 하고, 하나의 현문玄門에 모름지기 3요要를 갖추어서 방편도 있고 실다움도 있고 비춤도 있고 작용이 있어야 한다. 그대들 모두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당의 함통咸通 7년 병술丙戌 4월 10일에 곧 임종하려고 할 때 전법게傳法偈를 설했다.

흐름을 따라 그치지 않음이 무엇인지 묻는다면
참된 비춤은 끝이 없다고 그에게 말하리라.
모습도 여의고 이름도 여의어서 본래 없던 것과 같나니
취모검[吹毛]을 다 썼으면 급히 갈아 두어라.
沿流不止問如何    眞照無邊說似他
離相離名如不稟    吹毛用了急須磨

말을 마치고는 단정히 앉아서 입적하니, 시호는 혜조慧照 대사라 하고 탑호는 징령澄靈이라 하였다.

목주睦州 진陳 존숙尊宿
처음에는 목주睦州 용흥사龍興寺에 머물면서 정체를 숨기고 항상 짚신만을 삼아서 은밀히 길에다 놔두었다. 오랫동안 그렇게 하자 사람들이 차츰 알게 되어서 진포혜陳蒲鞋 신발의 이름이다.
라는 호칭까지 생겼다.
당시 학인들이 자주 도를 물으러 오면 물음에 따라 바로 대답해 주었는데, 그 말의 내용이 드높고 거칠어서 전철을 밟지 않았다. 때문에 근기가 낮은 무리는 왕왕 비웃었지만 오직 현묘한 배움으로 성품이 민첩한 자는 흔연히 감복하였다. 이로 말미암아 여러 지역에서 몰려들어 흠모하면서 진陳 존숙尊宿이라 불렀다.
대사가 만참晩參 때에 대중에게 말했다.
“그대들 여러 사람은 아직 들어갈 곳을 얻지 못했거든 들어갈 곳을 찾아라. 만약 들어갈 곳을 얻은 이후라면 노승을 저버리지 말라.”
이때에 어떤 스님이 나와서 절을 하고 말했다.
“저는 끝내 화상을 저버리지 않겠습니다.”
“벌써 나를 저버렸다.”
대사가 또 말했다.
“노승이 여기에 주지를 시작한 이래로 아직까지 일 없는 사람[無事人]이 온 것을 본 적이 없다. 그대들은 어째서 가까이 오지 않는가?”
이때에 어떤 스님이 막 앞으로 다가가려고 하자, 대사가 말했다.
“유나維那가 없으니, 그대 스스로 삼문三門 밖으로 나가서 자신에게 20방망이를 때려라.”
“저의 허물이 어디에 있습니까?”
“칼[枷]에다 족쇄까지 찼구나.”
대사는 항상 납자衲子가 오는 것을 보면 문을 닫고, 강사[講僧]가 오는 것을 보면 “좌주여” 하고 불러서 그 스님이 대답하면 “이 외통수[擔板漢]야”라고 하거나 “이 안에 물통이 있으니 내게 물을 떠다 주게”라고 하였다.

어느 날 대사가 복도의 섬돌 위에 서 있는데, 어떤 스님이 와서 물었다.
“진 존숙의 방이 어디입니까?”
대사가 짚신을 벗어서 머리를 치니, 그 스님이 얼른 달아났다. 대사가 “대덕이여” 하고 부르니, 그 스님이 고개를 돌렸다. 이에 대사가 그를 가리키면서 말했다.
“그래도 그쪽을 쫓아서 가는구나.”

어떤 스님이 문을 두드리니, 대사가 물었다.
“누구요?”
“아무개올시다.”
“진秦나라 시대의 탁락찬鐸落鑽 진시황이 만리장성을 쌓을 때에 쓰던 기구로, 그 뒤에는 너무 커서 쓸 수가 없었기에 후세에 아무 쓸 곳 없는 큰 물건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하였다. 종문宗門에서는 한갓 말솜씨만이 지나치게 날카로울 뿐, 진실한 경계를 얻지 못한 사람을 평하는 말로 사용한다.
이구나.”

어느 날 천자의 사신이 와서 물었다.
“3문門이 모두 열리면 어느 문으로 들어갑니까?”
대사가 “상서尙書여” 하고 부르자, 천자의 사신이 “네” 하고 대답하니, 대사가 “믿음의 문으로 드시오”라고 하였다.
천자의 사신이 또 벽화壁畵를 보면서 물었다.
“저 두 존자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까?”
대사가 돌기둥[露柱]을 후려치며 말했다.
“3신身 가운데 어느 것이 법을 설하지 않으랴?”

대사가 좌주座主에게 물었다.
“그대는 유식唯識을 강의하지 않았는가?”
“그렇습니다.”
대사가 말했다.
“5계戒도 지키지 못하는구나.”

대사가 어떤 장로에게 물었다.
“요달하면 털끝에서 대해大海를 삼키니, 비로소 대지大地가 하나의 티끌임을 안다고 했는데, 장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누구에게 물으셨습니까?”
“장로에게 물었소.”
“왜 말을 알아듣지 못하십니까?”
“그대가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가, 내가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가?”

대사가 스님이 오는 것을 보고서 말했다.
“공안公案을 이루는 것을 본다면 그대에게 30대[棒]를 때리리라.”
“저는 이렇습니다[如是].”
“삼문三門 밖의 금강金剛은 왜 주먹을 쳐들고 있는가?”
“금강도 오히려 이러할 뿐입니다.”
대사가 갑자기 때렸다.
“어떤 것이 위로 향하는 한 길[向上一路]입니까?”
“말하는 데 어떤 어려움이 있는가?”
“스님께서 말해 주십시오.”
“처음은 31이요, 중간은 9요, 아래는 7이니라.” 옛사람이 외출할 때에 출행 날을 받는 방법을 말한다.

“한 겹[一重]으로 한 겹을 제거하는 것은 묻지 않겠습니다. 한 겹으로 한 겹을 제거하지 않을 때에는 어떠합니까?”
“어제 아침에는 가지[茄子]를 심었고, 오늘 아침에는 동아[冬瓜]를 심었다.”
“어떤 것이 조계曹谿의 적적的的한 뜻입니까?”
“노승은 성내기는 좋아해도 기뻐하기는 좋아하지 않는다.”
“어째서 그렇습니까?”
“길에서 검객劍客을 만나면 모름지기 검을 뺄 것이요, 시인詩人이 아니거든 시를 말하지 말라.”

어떤 스님이 와서 뵙자, 대사가 물었다.
“어디서 왔는가?”
“유양瀏陽에서 왔습니다.”
“그 고장의 노장들은 불법의 대의大意에 대해 대답할 때에 뭐라 하던가?”
“온 천지를 다녀도 길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노장들이 분명 그렇게 말하던가?”
“예 확실합니다.”
대사가 주장자를 들어 때리면서 말했다.
“이 남의 말이나 기억하는 놈아.”

대사가 어떤 장로에게 물었다.
“만일 학인[兄弟]들이 오면 뭐라 대답하시겠소?”
“그들이 와 봐야 합니다.”
“왜 지금 말하지 못하시오?”
“화상께서 바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제발 이러쿵저러쿵 번거롭게 하지나 마시오.”
어떤 스님이 와서 뵈니, 대사가 말했다.
“그대는 행각하는 스님이 아닌가?”
“그렇습니다.”
“부처님께 절을 했는가?”
“그 흙덩이에다 절을 해서 무엇 합니까?”
“스스로 나가라.”
스님이 물었다.
“제가 강의도 하고 행각도 했지만 불교의 뜻을 모를 때는 어찌해야 합니까?”
“진실한 말은 반드시 참회가 되느니라.”
“스님께서 지시해 주십시오.”
“그대가 만일 모른다면, 나는 입을 봉하고 말을 않겠다.”
“말씀해 주십시오.”
“마음으로 사람을 저버리지 않으면 얼굴에 부끄러운 기색이 없느니라.”
“한 구절로 말을 다하여 남음이 없는 때는 어떠합니까?”
“뜻[義]에 떨어졌구나.”
“어느 곳이 학인이 뜻에 떨어진 곳입니까?”
“30방망이를 누구더러 맞으라 하는가?”
“교리의 뜻과 조사의 뜻이 같습니까, 다릅니까?”
“청산靑山은 제 스스로 청산이고, 백운白雲은 제 스스로 백운이니라.”
“어떤 것이 청산입니까?”
“나에게 한 방울의 비를 뿌려 주느니라.”
“말하지 못하겠으니, 스님께서 말씀해 주십시오.”
“법화法華의 칼날로 앞에 진陣을 쳤고, 열반의 구절은 뒤를 거두었다.”

대사가 어떤 스님에게 물었다.
“올 여름은 어디서 지냈는가?”
“화상께서 계신 곳을 알게 되면 말씀드리겠습니다.”
“여우는 사자의 종류가 아니고, 등불은 일월日月의 광명이 아니니라.”

대사가 처음 온 스님에게 물었다.
“어디서 왔는가?”
스님이 눈을 부릅뜨고 보자, 대사가 말했다.
“당나귀보다는 앞서고 말보다는 뒤진 놈이구나.”
“스님께서 감정해 주십시오.”
“당나귀보다 앞서고, 말보다 뒤진 놈아, 한마디 말해 보라.”
그 스님이 대답이 없었다.

대사가 경을 보는데 상서尙書인 진조陳操가 와서 물었다.
“화상께서는 무슨 경을 보십니까?”
“󰡔금강경󰡕을 보고 있소.”
“6조朝 시대에 번역되었는데, 이는 몇 번째 번역이 됩니까?”
대사가 경을 쳐들고서 말했다.
“온갖 유위有爲의 법은 꿈이나 허깨비․거품․그림자와 같소.”

또 대사가 󰡔열반경󰡕을 보는데, 어떤 스님이 와서 물었다.
“화상께서는 무슨 경을 보십니까?”
대사가 경을 쳐들고 말했다.
“이는 「다비품茶毘品」의 가장 마지막이니라.”

새로 온 스님에게 대사가 물었다.
“올 여름을 어디서 지냈는가?”
“경산徑山에서 지냈습니다.”
“몇 사람이나 지냈는가?”
“4백 명이었습니다.”
“이 밤참이나 축내는 놈들아.”
“존숙尊宿들의 총림을 어째서 밤참이나 축내는 놈들이라 하십니까?”
대사가 몽둥이로 때려서 내쫓았다.

어떤 장로[老宿]가 가까이하기 어렵다는 말을 듣고, 대사가 몸소 찾아갔다. 장로는 대사가 오는 것을 보자 방장으로 들어가서 문득 할을 했다. 대사가 손바닥을 세우고서 말했다.
“두 겹의 공안公案이구나.”
“허물이 어디에 있소?”
“이 들여우의 혼령아, 썩 물러가라.”

대사가 어떤 스님에게 물었다.
“최근에 어디서 떠났는가?”
“강서江西에서 떠났습니다.”
“짚신이 얼마나 해졌는가?”
스님은 대답이 없었다.

대사가 어떤 강승講僧과 차를 마시다가 말했다.
“나는 그대를 구원하지 못하겠다.”
“저는 밝지가 못하니, 스님께서 잘 지시해 주십시오.”
대사가 기름떡[油餠]을 들어 보이면서 말했다.
“이것은 무엇인가?”
“색법色法입니다.”
“이 기름 가마에 튀길 놈아.”

어떤 자의紫衣 대덕大德이 와서 절을 하니, 대사가 모자 끈을 들어 보이면서 말했다.
“이것을 무엇이라 부르는가?”
“조천모朝天帽라 합니다.”
“그렇다면 나는 벗지 않아야겠다.”
대사가 다시 물었다.
“어떤 업을 익혔는가?”
“유식唯識을 익혔습니다.”
“뭐라고 설했는가?”
“삼계三界가 오직 마음뿐이요, 만법萬法은 오직 식識이라 했습니다.”
대사가 문짝을 가리키면서 물었다.
“저것은 무엇인가?”
“색법色法입니다.”
“발[簾] 앞에서 자의紫衣를 받고는 황제에게 경전을 설하는 이가 어찌하여 5계도 지키지 않는가?”
스님은 대답이 없었다.

어떤 스님이 물었다.
“저는 총림에 갓 들어왔습니다. 스님께서 지도해 주십시오.”
“그대는 묻는 법을 모르는구나.”
“화상께서는 어찌하시겠습니까?”
“그대에게 30방망이를 때리리니, 스스로 나가라.”
“교리의 뜻에 대해 스님께서 요점을 보여 주십시오.”
“묻기만 하라. 말해 주리라.”
“화상께서 말씀해 주십시오.”
“불전 안에서 향을 피우고, 삼문三門 밖에서 합장을 한다.”
“어떤 것이 펼쳐 보이는 말입니까?”
“재량에 따라 직책을 주느니라.”
“어찌하여야 펼쳐 연설하는 말에 떨어지지 않겠습니까?”
“복유상향伏惟尙饗 내가 엎드려 제사를 올린다는 뜻이므로, 곧 상대방이 죽은 사람이라는 뜻이다.
이로다.”

대사가 초산焦山을 가까이 오라 부르고, 또 동자에게 도끼를 가져오라고 하니, 동자가 도끼를 가지고 와서 말했다.
“목줄이 없으니, 거칠게나마 쪼개겠습니다.”
대사가 할을 하였다. 그리고 다시 동자를 불러서 말했다.
“어느 것이 네 도끼냐?”
동자가 쪼개는 시늉을 하니, 대사가 말했다.
“네 아버지 머리는 쪼개지 못하리라.”

어떤 이가 물었다.
“어떤 것이 한 줄기 길을 놓는 것입니까?”
“재주에 따라 직책을 주는 것이니라.”
“어떤 것이 한 줄기 길을 놓지 않는 것입니까?”
“복유상향이로다.”

새로 온 스님이 와서 뵙자, 대사가 물었다.
“그대가 새로 왔는가?”
“그렇습니다.”
“그럼 갈등葛藤을 내려놓게나. 알겠는가?”
“모르겠습니다.”
“칼[枷]을 메고 죄상을 진술한 뒤에 스스로 나가거라.”
그 스님이 나가니, 대사가 말했다.
“오라. 내가 진실한 말로 물으리라.”
그리고 물었다.
“그대는 어디서 왔는가?”
“강서江西에서 왔습니다.”
“늑담泐潭 화상이 그대의 배후에 있으면서 그대가 어지러이 지껄이는 것을 두려워하는데, 보았는가?”
스님은 대답이 없었다.
어떤 스님이 물었다.
“절 문 앞의 금강이 건곤과 대지는 들어 올리면서 터럭 끝 하나는 들어 올리지 못하여 만나지 못했을 때는 어떠하겠습니까?”
“훔훔[吽吽]. 귀신을 쫓는 소리이다.
 나는 아직도 그렇게 묻는 이를 보지 못했는데, 먼저 3천을 뛰었다가 다시 8백을 물러섰으니, 그대는 어찌하겠는가?”
그 스님이 “네” 하고 대답하자, 대사가 말했다.
“먼저 조서 한 장에다 죄상을 따지는 게 좋겠다.”
그리고는 얼른 때렸다. 그 스님이 나가려고 하자, 대사가 말했다.
“오라. 그대와 이야기를 나누리라. 열리면 곧 건곤과 대지라고 하니, 그대는 동정호洞庭湖 속의 물이 얼마나 깊은지 말해 보라.”
“헤아려 본 적이 없습니다.”
“동정호는 또한 어떠한가?”
“그저 지금[今時]이 될 뿐입니다.”
“이런 이야기도 오히려 이해하지 못하는구나.”
그리고는 때렸다.

어떤 이가 물었다.
“어떤 것이 가는 곳마다 막히지 않는 구절입니까?”
“나는 그렇게 말하지 않겠다.”
“스님은 어떻게 말하시겠습니까?”
“화살이 서천西天 10만 리를 지나서 대당국大唐國을 향해 문안을 한다.”
어떤 스님이 와서 문을 두드리니, 대사가 물었다.
“무슨 일인가?”
“자기 일[己事]을 아직 밝히지 못했으니, 스님께서 지시해 주십시오.”
“여기서는 다만 방망이만 있으면, 문을 열 수 있다.”
그 스님이 물으려 하자, 대사가 그 스님의 입을 움켜쥐고서 물었다.
“이以자로도 이뤄지지 않고, 팔八자도 아니니, 이게 무슨 구절인가?”
대사가 손가락을 한번 튀기고서 말했다.
“알겠는가?”
“모르겠습니다.”
“예로부터 한량없는 수승한 인因을 표현해서 찬탄했으니, 두꺼비는 범천梵天에 뛰어오르고 지렁이는 동해를 달려서 지나간다.”

서봉西峰 장로가 와서 뵙자, 대사가 다과茶果를 장만하여 자리를 권하고 물었다.
“장로께서는 올 여름 어디서 안거를 하였소?”
“난계蘭谿에서 지냈습니다.”
“몇 사람이나 지냈소?”
“70명이었습니다.”
“날마다 무엇으로 무리들에게 훈시를 하였소?”
장로가 감자甘子를 번쩍 들어 보이면서 말했다.
“이미 마쳤습니다.”
“왜 그리 성질이 급한가?”
어느 날 어떤 스님이 새로 찾아와 뵈면서 막 절을 하려고 하자, 대사가 꾸짖었다.
“사리闍梨여, 어째서 상주물常住物인 과자를 훔쳐 먹는가?”
“학인이 이제 방금 왔건만, 화상께서는 어째서 과자를 훔쳐 먹는다고 하십니까?”
“훔친 물건이 보이는구나.”
대사가 스님에게 물었다.
“최근에 어디서 떠났는가?”
“앙산仰山에서 떠났습니다.”
“5계戒도 지니지 않는구나.”
“제 말이 어디가 거짓말입니까?”
“여기서는 사미沙彌를 키우지 않는다.”

항주杭州 천경산千頃山 초남楚南 선사
그는 민중閩中 사람으로서 성은 장張씨이다. 어릴 적에 개원사開元寺의 담애曇藹 선사에 의해 출가하였다가 스무 살이 되자 머리를 깎았고, 오대산에 가서 구족계를 받은 뒤에는 조군趙郡에 가서 율부律部를 배우다가 상도上都에 가서 󰡔정명경淨名經󰡕을 들었다. 그리하여 법의 이치를 정밀하게 연구했으나 현묘한 기틀을 요달하지 못했다. 
마침내 부용芙蓉을 뵈러 가니, 부용이 그를 보고서 말했다.
“나는 그대의 스승이 아니다. 그대의 스승은 강 밖의 황벽黃蘗이다.”
대사가 절하고 물러나서 황벽에게 가니, 황벽이 물었다.
“그대가 아직 삼계에 그림자[影像]를 나타내지 않았을 때에는 어떠한가?”
대사가 대답했다.
“바로 지금[卽今]을 어찌 있다고 하겠습니까?”
“있고 없음은 그만두고, 바로 지금은 어떠한가?”
“지금도 아니고 옛날도 아닙니다.”
“나의 법안法眼은 이미 그대에게 있구나.”
대사가 입실하여 시봉을 하면서 조석으로 법을 묻다가 당 무종武宗 때 불교를 폐하는 사태를 만나자, 깊은 산 속에 숨었다.
대중大中 초에 상공相公인 배휴裵休가 완릉宛陵을 순무巡撫하러 나왔다가 황벽 화상에게 산에서 나오기를 청하였는데, 대사도 따라서 나갔다. 이로 말미암아 고소姑蘇의 보은사報恩寺로 가서 부지런히 선정을 닦았는데, 20여 년 동안 문턱을 나서지 않았다. 이때 갑자기 군수의 청을 받아서 보림원寶林院에 살다가 오래지 않아 다시 지형산支硎山에 살라는 청을 받았고, 또 천경산千頃山 자운원慈雲院에서 황벽의 현풍玄風을 크게 드날렸다.
어느 날 대사가 상당하여 말했다.
“여러분이 설사 3세 부처님의 가르침을 병에서 물을 따르듯이 이해하고, 또 백천 가지 삼매를 얻었다 하여도, 일념一念으로 무루無漏의 도를 닦아서 인간과 하늘의 인과의 속박에서 벗어나는 것만 못하리라.”
이때에 어떤 스님이 물었다.
“무루의 도는 어떻게 닦습니까?”
“그대가 아직 있지 않을 때 체득해 버렸다.”
“제가 아직 있지도 않았을 때인데 누가 체득했겠습니까?”
“체득한다는 것도 또한 없느니라.”
“어떤 것이 쉬운 일입니까?”
“옷 입고 밥을 먹을 뿐 경전을 읽거나 가르침을 살피는 일을 하지 않고, 도를 행한다거나 절을 한다거나 몸을 태운다거나 하는 일을 하지 않는다면, 어찌 쉽지 않겠는가?”
“그런 것이 쉽다면 어떤 것이 어렵습니까?”
“미미하게라도 생각이 나면 문득 5음陰과 삼계三界가 갖추어지나니, 생사에 윤회하는 것이 모두 그대의 일념에서 난 것이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 보살들에게 가르치시기를 ‘부처님께 호념護念하는 바’라고 하였느니라.”
대사는 비록 근기에 응하여 가르치는 것을 게을리 하지 않으면서도, 항상 엄연히 선정에 처해서 혹은 한 달을 넘기도 하고 혹은 열흘을 지나기도 하였다.
광계光啓 3년에 전왕錢王의 청으로 산을 내려가 공양을 받았고, 소종昭宗이 그의 도덕을 듣고는 자의紫衣를 하사하였다. 
문덕文德 원년 5월에 무리를 하직하고 엄숙히 열반에 드니, 수명은 76세이고 법랍은 56세였다. 탑은 선원의 서쪽 모퉁이에다 옮겨다 세웠다. 경복景福 원년[어떤 책에는 대순大順 2년이라 하였다.] 임자壬子 2월에 선주宣州의 손유孫儒가 전당錢塘을 침노했을 때 병사들이 탑을 열었는데, 전신이 흩어지지 않고 손톱과 모발이 자란 것을 보고, 죄를 뉘우치면서 떠나갔다. 대사가 생전에 저술한 것으로는 󰡔반야경품송게般若經品頌偈󰡕 1권과 󰡔파사론破邪論󰡕 1권이 세상에 남아 있다.

복주福州 오석산烏石山 영관靈觀 선사[본산本山의 설로봉薛老峰      또는 정묘산丁墓山이라고도 하는 곳에 살았다. 당시의 사람들이      노관老觀 화상이라 불렀다.] 
평상시에는 문을 잠그고 있어서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았으나, 오직 신사信士 하나가 때마다 음식을 보낼 때만 문을 열었다.
어느 날 설봉雪峰이 기회를 엿보다가 문을 두드리니 대사가 문을 열고 나왔다. 설봉이 갑자기 멱살을 잡고서 다그쳤다.
“범부인가, 성현인가?”
대사가 침을 탁 뱉으면서 말했다.
“이 들여우의 혼령아.”
그리고 설봉을 밀어내고는 문을 닫아 버리자, 설봉이 말했다.
“노형老兄을 알고 싶었을 뿐이오.”

대사가 풀을 깎다가 어떤 스님에게 물었다.
“그대는 어디를 가는가?”
“서원西院의 안安 화상을 참례하러 갑니다.”
이때 대나무 위에 푸른 뱀 한 마리가 있었는데, 대사가 그 뱀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서원의 늙은 들여우 혼령을 알고자 하는가? 저것이 바로 그다.”

어느 날 대사가 서원의 안 화상에게 물었다.
“이 한 조각 땅에다 무엇을 하면 좋겠습니까?”
“모습 없는 부처를 모시면 좋겠습니다.”
“좋은 한 조각 땅인데 사형의 똥으로 더럽혀지는군요.”

어느 날 대사가 물을 끌어다 대고 있는데 어떤 스님이 와서 참례하자, 대사가 물대는 막대기를 가로 메어 보이니 그 스님이 가 버렸다. 저녁이 되자 대사가 사미에게 물었다.
“아까 왔던 스님은 어디에 있는가?”
“떠났습니다.”
“겨우 말뚝 하나를 얻어 갔구나.”[현각玄覺이 말하기를 “어디가 작대기 하나가 모자라는 곳인가?”라고 하였다.]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부처입니까?”
대사가 혀를 내어 보였다. 그 스님이 절을 하고 물러가니, 대사가 말했다.
“잠시 기다려라. 그대는 무엇을 보았기에 절을 하는가?”
“화상께서 자비를 베푸시어 혀를 내어 보이신 일을 감사드립니다.”
“내가 요즘 혀에 종기가 났느니라.”

어떤 스님이 와서 문을 두드리니, 행자가 나가서 문을 열고는 문득 나가 버렸다. 그 스님이 들어와서 절을 하고 물었다.
“어떤 것이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아까 나간 사람이 누구인가?”
그 스님이 가까이 다가서려는데 대사가 버럭 밀쳐내고 문을 닫았다.

조산曹山이 행각行脚을 다닐 때에 대사에게 와서 물었다. 
“어떤 것이 비로자나불의 스승이며 법신法身의 주인입니까?”
“내가 그대에 말한다면, 그 즉시 따로 있는[別有] 것이 된다.”
조산이 동산에서 가서 이야기하니, 동산이 말했다.
“좋은 화두話頭인데, 다만 결점은 그 다음 진행된 말이구나. 다시 가서 ‘무엇 때문에 말하지 못하시오’라고 하라.”
조산이 다시 돌아와서 앞의 말로 물으니, 대사가 말했다.
“만일 내가 말하지 않았다고 하면 내 입을 막는 것이요, 내가 말했다고 하면 내 혀를 곧게 한 것이다.”
조산이 돌아와서 다시 동산에게 말하니, 동산이 깊이 수긍하였다.

항주杭州 나한원羅漢院 종철宗徹 선사
그는 호주湖州 오흥현吳興縣 사람이니, 성은 오吳씨이다. 어릴 때에 출가하였다가 나이가 차게 되자, 구족계를 받고 사방으로 참례參禮하던 끝에 황벽黃蘗 희운希運의 법회에 의지하였다. 황벽이 첫눈에 깊이 법기法器임을 알아서 입실하여 종지를 알게 하였다.
나중에 항주에 갔는데, 목사牧師인 유언劉彦이 그의 도덕을 흠모하여 서쪽에다 절을 짓고 나한원이라 부르니 3백 명의 무리를 거느리게 되었다.
어느 때 대사가 상당하자,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뼈가 부서졌다.” 네가 내 뼈를 미련하게 부러뜨렸기 때문에 대답할 수 없다는 뜻이다. 
[대사는 남의 물음에 답할 때에는 흔히 이 말을 했으므로 사람들은 골좌骨剉 화상이라 불렀다.]
“어떤 것이 남종南宗과 북종北宗입니까?”
“마음이 종宗이니라.”
“교리[敎]도 보아야 합니까?”
“교리도 마음이니라.”
“성품의 땅[性地]에 어두움이 많은데, 어찌하여야 깨닫습니까?”
“번뇌의 구름이 바람에 걷히니, 태허太虛가 텅 트여서 맑으니라.”
“어찌하여야 밝힐 수 있겠습니까?”
“보름달이 희고 맑으니, 만 리에 빛을 비추느니라.”
나중에 대사가 병든 모습을 보이다가 열반에 드니, 문인들이 선원의 북쪽 귀퉁이에다 탑을 세웠다. 양梁의 정명貞明 5년에 전왕錢王이 그 선원을 넓혀서 안국나한사安國羅漢寺라 하고, 대사의 탑을 대자산大慈山 중턱으로 옮겨다 세우니, 절과 탑이 지금도 남아 있다.

배휴裵休
자字는 공미公美이고, 하동河東의 문희聞喜 사람이다.[당나라 때에 지어져 전하는 책에는 맹주孟州 제원濟源 사람이라 되어 있다.] 신안新安 군수로 갔을 때에 때마침 황벽黃蘗 선사가 황벽산에서 대중을 버리고 대안정사大安精舍에 들어가서 정체를 감추고 대중에 섞인 채 전당殿堂을 청소하고 있었다. 공(公:배휴)이 절을 찾아가 향을 피우자 지객[主事]이 접대하였는데, 배휴가 벽화壁畵를 보다가 물었다. 
“저건 어떤 그림인가요?”
지객이 대답했다.
“고승高僧의 초상입니다.”
“초상은 볼 수 있지만 고승은 어디에 있소?”
스님들이 아무도 대답을 못했다. 이때에 공이 물었다.
“여기에는 참선하는 스님이 없소?”
“요즈음 어떤 스님이 왔기에 절의 일을 시켰는데, 그가 참선하는 스님 같습니다.”
“그를 청해서 얻은 바가 있는지 물어볼 수 있을까요?”
이에 갑자기 황벽 희운 대사를 찾아오니, 공이 첫눈에 보고 기뻐하면서 말했다. 
“제가 아까 한 가지 질문을 했는데, 여러 스님들은 대답을 아끼셨습니다. 이제 상인上人께서 그들을 대신하여 한 말씀 해주시겠습니까?”
“상공의 마음대로 물으시오.”
공이 앞의 말을 되풀이해서 물으니, 대사가 소리를 높여 외쳤다.
“배휴여.”
공이 “네” 하고 대답하니, 대사가 말했다.
“어디에 있는가?”
공이 당장 종지를 깨달은 것이 마치 상투 속의 구슬[髻珠]을 얻은 것과 같았다. 공이 말했다.
“나의 스승은 참된 선지식이십니다. 사람에게 이렇게 분명하게 지적하시거늘 어째서 이런 곳에 눌러 계십니까?”
이때 절의 대중들은 깜짝 놀랐다. 
이때부터 배휴가 고을로 맞아들여서 제자의 예로 공양하였으나, 여러 번 사양해 마지않았다. 그래서 다시 황벽산에 살면서 조사의 가르침을 펴기를 강력히 요청하고는 틈만 있으면 몸소 산꼭대기에 올라서 뵙기도 하고, 현묘한 말씀을 듣고 싶으면 고을로 맞아들이기도 하였다.
공은 이미 조사의 마음을 훤히 통달하고는 다시 뭇 교리를 열람하였으므로, 모든 곳에서 선을 배우는 자들이 모두 말하기를 “배휴는 황벽의 문을 함부로 나오지 않았다”고 하였다.
선성현宣城縣으로 벼슬자리를 옮기고서도 뵙고 싶은 생각이 나서 또 절을 짓고 맞아다 살기를 청하였다.[당의 신안군新安郡은 곧 흡주歙州인데, 당사唐史의 배상본전裵相本傳에는 군수를 지냈다는 분명한 말이 없다. 비록 흡주 태수를 지내지 않은 것은 아니더라도 󰡔전심법요傳心法要󰡕 서序를 보건대 처음에 희운希運을 안 것은 홍주洪州이고, 두 번째 본 것은 선주宣州인데, 모두가 청해온 것일 뿐 우연히 만난 것은 아니다. 그런데 이제 서술된 고승의 초상을 물었다는 대목은 분명히 잘못 되었을 것이다. 진실로 흡주에 있었다면 󰡔전심법요󰡕 서序에서 어찌 말하지 않았겠는가? 󰡔광등록廣燈錄󰡕에 의하면 균주筠州에 있었다고 했고, 󰡔사가록四家錄󰡕에는 또 홍주에 있었다고 했는데, 모두가 옳지 못하다. 당사唐史에 의하건대 무덕武德 때에 홍주 고안현高安縣을 정주靖州에 두어 균주筠州라 하였고, 다시 그것을 폐했다가 남당南唐에 이르러서는 이경李景이 다시 두었다 했으니 중간에 어찌 군수가 있을 수 있었겠는가? 이것으로 보건대 󰡔광등록󰡕의 잘못을 알겠다. 또 󰡔전심법요󰡕 서序를 보건대 내가 회창會昌 2년에 종릉鐘陵을 지키러 나갔다가 산에서 고을로 모셔다가 용흥사龍興寺에 계시게 했다 하니, 이것으로 보건대 󰡔사가록󰡕도 틀렸음을 알 수 있다. 그 밖의 일은 황벽장黃蘗章에서 자세히 말했다.] 비록 규봉圭峰이 선禪과 교敎를 해박하게 통달해서 배휴의 존중을 받았으나, 황벽에게 마음을 귀의해서 진심으로 복종하는 것과는 같을 수 없었다. 또 규봉의 비碑를 지었는데, 거기에 말하되 “나와 스님은 법으로는 형제요, 의리義理로는 벗이요, 은혜로는 선지식이요, 교리에 있어서는 안팎의 수호자였다”고 하였으니, 이것으로도 알 수 있다.
그리하여 황벽의 어록을 모은 뒤에 손수 서문을 지어서 책머리에 붙여 산문山門에 남겨 두었다. 또 대장경 5백 함函의 제목을 손수 썼는데 지금껏 보존되어 있다. 또 규봉 선사가 󰡔선원제전禪源諸詮󰡕과 󰡔원인론原人論󰡕과 󰡔원각경소주圓覺經疏注󰡕와 󰡔법계관法界觀󰡕을 지었는데, 공이 모두 서문을 지어 붙였다.
공의 아버지는 이름이 숙肅이요, 자는 중명中明이었다. 월주越州의 관찰사觀察使로 임명되었을 때 3백 년의 예언에 응해서 용흥사龍興寺의 큰 법당을 다시 짓고는 손수 비명碑銘을 지었다.[이에 앞서 월주越州에 담언曇彦이라는 사문이 있었는데 키가 다섯 자요, 눈썹이 두어 치나 되었다. 이때에 이름을 허순許詢, 자는 현도玄度라는 단월과 함께 벽돌과 나무로 두 곳에 탑을 세웠다. 담언은 신통이 많아서 하늘에서 바퀴 형상이 내리기도 하고 해를 멈추어서 일을 곱절이나 하기도 하였다. 다시 땅에서 쌓아 올려 탑 정수리에까지 이르렀다가 탑을 다 이룩하기 전에 죽었다. 
담언 대사는 나이가 120세가 되도록 허순이 다시 몸을 받아 악양왕岳陽王이 되어 월주를 다스리러 나오기를 기다리니 원력 때문이었다. 담언이 문인들에게 말하기를 “허현도許玄度가 왔다”라고 하니 제자들은 모두가 말하기를 “노스님은 망령이 드셨구나. 허현도는 이미 30년 전에 죽었는데 어찌 다시 오겠는가?”라고 하였다. 이때에 악양왕은 벌써 지공誌公의 은밀한 계시를 받고 고을에 이르자 바로 절로 와서 찾아뵈었다. 담언 대사가 문밖에 나서서 기다리다가 멀리서 바라보고 말하기를 “허현도는 어째서 이렇게 늦게 오는가? 옛날의 탑이 아직도 이렇다”라고 하니, 악양왕이 말하기를 “제자의 성은 소蕭씨요, 이름은 찰察인데, 스님은 어째서 허현도라 하십니까?”라고 하였다. 담언이 말하기를 “숙명을 깨닫지 못하면 어찌 알겠는가?”라고 손을 잡고 방으로 들어가서 자리를 권한 뒤에 담언이 삼매의 힘을 악양왕에게 불어 넣으니, 전생에 탑을 짓던 일이 새록새록 오늘의 일과 같았다. 이 까닭에 두 탑이 더욱 장엄하게 되었다. 
이때에 용흥사 대전大殿이 무너지니 무리가 담언에게 “중수하라”고 했으나, 담언은 말하기를 “내 힘으로 될 일이 아니다. 이후 3백 년 뒤에 비의(非衣:‘裵’字의 破字) 공덕주가 나타나서 이 절을 고치고 불사를 크게 일으키리라”고 하니, 이 일을 절의 대중이 돌에다 기록해 두었는데 기한이 되자, 배裵 태수가 부임하여 삼보를 일으키고 자기의 봉급을 털어 대전을 수리하니, 담언 대사의 예언이 틀리지 않음을 알게 되었다.]
공은 드디어 내전(內典:불교 경전)을 독실하게 믿어서 법회法會에 깊이 들었다. 그의 발원문發願文이 세상에 전한다.


회양懷讓 선사의 제5세

앞의 원주袁州 앙산仰山 혜적慧寂 선사의 법손

앙산仰山 서탑西塔 광목光穆 선사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바른 들음[正聞]입니까?”
“귀로 듣지 않는 것이니라.”
“어째서 그렇습니까?”
“들었는가?”

어떤 스님이 물었다.
“교리의 뜻과 조사의 뜻은 같은 것입니까, 다른 것입니까?”
“같고 다른 것은 그만두고, 그대는 병 주둥이에서 무엇이 들락날락한다고 여기는가?”
“어떤 것이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그대는 불성이 없구나.”
“어떤 것이 돈頓입니까?”
대사가 원상圓相을 그려 보였다. 그가 또 물었다.
“어떤 것이 점漸입니까?”
대사가 손으로 허공에 세 점을 찍었다.

진주晋州 곽산霍山 경통景通 선사
처음에 앙산仰山을 뵈러 갔는데, 앙산이 눈을 감고 앉았다. 이에 대사가 말했다.
“이러하고 이러하네. 서천西天의 28조祖도 이러하고, 중국의 6조도 이러하고, 화상도 이러하고, 경통景通도 이러하다.”
이렇게 말하고는 오른쪽으로 돌고 한 발을 들고 섰으니, 앙산이 일어나서 등나무 주장자로 네 차례 때렸다. 이로 인해 대사는 스스로 집운봉集雲峰 밑에서 등나무 주장자로 네 번 맞은 천하의 대선불大禪佛이라 자칭하였다.[귀종歸宗의 밑에도 대선불大禪佛이라는 이가 있었는데, 이름은 지통智通이요, 임종은 오대산五臺山에서 했다.]

나중에 곽산霍山에 살았는데, 어떤 행자가 물었다.
“어떤 것이 불법의 대의입니까?”
대사가 절을 하자, 행자가 물었다.
“화상은 어찌하여 속인에게 절을 하십니까?”
“그대는 제자를 존중한다는 말을 듣지 못했는가?”

어떤 스님에게 물었다.
“어디서 왔는가?”
스님이 방석을 번쩍 드니, 대사가 말했다.
“용두사미龍頭蛇尾로구나.”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부처입니까?”
대사가 때리자, 스님도 대사를 때렸다. 대사가 말했다.
“그대가 나를 때린 것은 도리가 있지만, 내가 그대를 때린 것은 도리가 없다.”
스님이 대답이 없자, 대사가 때려서 내쫓았다.

세상 인연이 다할 무렵에 먼저 장작을 교외의 들에다 준비시키고, 여러 단월들에게 두루 하직한 뒤에 공양을 끝내자, 장작 있는 곳에 가서 제자들에게 말했다.
“해가 한낮이 되거든 와서 알려라.”
한낮이 되자, 대사는 손수 촛불을 들고 장작더미 위로 올라가서 삿갓을 벗어 머리 뒤에다 세워서 원광圓光같이 하고, 손으로는 주장자를 들어 항마저降魔杵의 형세를 짓고서 선 채로 불길 속에서 임종했다.

항주杭州 문희文喜 선사
그는 가화嘉禾의 어아蓹兒 사람으로서 성은 주朱씨이다. 일곱 살에 출가하여, 당나라 개성開成 2년에 조군趙郡에서 구족계를 받았다. 처음에는 󰡔사분율四分律󰡕을 익혔는데, 때마침 회창會昌의 폐교廢敎 사태를 만나자, 법복을 반납하고 자취를 감추었다. 그러다가 대중大中 초에 법에 따라 다시 스님이 되어 염관鹽官의 제봉사齊峰寺에서 득도하였다.
나중에 대자산大慈山의 성공性空 선사를 뵈었는데, 성공이 말했다.
“그대는 어찌하여 두루 참례參禮하지 않는가?”
함통咸通 3년에 홍주洪州의 관음원觀音院에 가서 앙산仰山을 보았을 때 말끝에 단박에 요달해서 마음이 계합하였다. 앙산이 그에게 전좌典座 소임을 맡겼는데, 어느 날 이상한 스님이 와서 밥을 달라 하자, 대사는 자기 몫을 나누어서 먹였다. 앙산이 미리 알고서도 짐짓 물었다.
“아까 과위果位를 얻은 사람이 왔었는데, 그대는 밥을 주었는가?”
“제 것을 그에게 베풀어 주었습니다.”
앙산이 말했다.
“그대는 큰 이익을 얻었다.”
7년에 절우浙右로 가서 천경산千頃山에 머무르며 초막을 짓고 살았는데, 때마침 황소黃巢의 난리를 만나자, 호주湖州로 피난을 가서 인왕원仁王院에 살았다.

광계光啓 3년에 전왕錢王이 용천龍泉의 공청[廨署][지금의 자광원慈光院이다.]에 살라는 청을 받았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열반의 모습입니까?”
대사가 말했다.
“향과 연기가 다한 곳에서 증험하라.”
“어떤 것이 불법의 대의입니까?”
“원주院主를 불러 오라. 이 스님이 미쳤구나.”
“어떤 것이 자기自己입니까?”
대사가 잠자코 있으니, 그 스님은 어리둥절하여 다시 물었다. 대사가 대답했다.
“푸른 하늘이 어두워도 달 있는 쪽을 향해 날지 않는다.”
대순大順 원년에 전왕이 자의紫衣 스님들의 최고 품계를 상징한다.
를 하사할 것을 품신하였고, 건녕乾寧 4년에 또 대사의 호를 무착無著이라 주청하였다.

광화光化 3년에 병이 났는데, 12월 27일 자시子時에 대중에게 이렇게 말했다.
“삼계의 마음이 다하면 그것이 열반이니라.”
말을 마치고 곧 가부좌를 맺은 채 임종하니, 수명은 80세이고 법랍은 60세였다. 임종할 때에 방장에서 하얀 광채가 발하였는데, 대나무가 같은 색깔로 변하였다. 11월 22일에 영은산靈隱山 서쪽 언덕으로 탑을 옮겨다 세웠다.[천우天祐 2년에 선성宣城의 원수<帥> 전군田頵이 항주 장수인 허사許思의 반란을 진압할 때에 허사가 많은 군사를 풀어 노략질하면서 대사의 탑을 파헤친 것을 보았는데, 몸이 무너지지 않고 머리털이 자라고 있었다. 무숙왕武肅王이 기이하게 여겨 비장裨將인 소지邵志를 보내 탑을 다시 세워 안치하도록 하였다.]

신라新羅 오관산五觀山 순지順支 대사
본국(本國:신라)에 있을 때의 법호는 요오了悟 대사였다.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대사 순지가 불자를 세우자, 스님이 말했다.
“그것만으로 옳다고 할 수 없지 않겠습니까?”
대사가 불자를 던져 버렸다.
“이以자로도 이루어지지 않고 팔八자로도 아니라면, 그것이 무엇입니까?”
대사가 원상을 그려 보였다.
어떤 스님이 대사 앞에서 다섯 고리의 원상을 그리니, 대사가 지워 버리고 따로 원상 하나만을 그렸다.

앙산仰山 남탑南塔 광용光涌 선사
스님이 물었다.
“문수는 7불佛의 스승인데, 문수도 스승이 있습니까?”
“인연을 만나면 있다.”
“어떤 것이 문수의 스승입니까?”
대사가 불자를 세워 보이니, 그 스님이 말했다.
“그것만으로 옳다고 할 수 없지 않겠습니까?”
대사가 불자를 던지고 합장을 하였다.
“어떤 것이 묘한 작용[妙用]의 한 구절입니까?”
“물이 이르러서 개울을 이루느니라.”
“참 부처님은 어디에 계십니까?”
“말끝에 모습이 없을 뿐이니, 다른 곳에 있지 않다.”

앙산仰山 동탑東塔 화상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군왕君王의 검劍입니까?”
“새끼[纜]를 끊고도 공功을 구하지 않느니라.” 물에서 전쟁을 할 때에 물속에 줄을 쳐서 적을 막는데, 그 줄을 끊고 온 이는 큰 공을 차지한다. 이를 낙람의 공[落纜之功]이라 한다.

“쓰는 이는 어떠합니까?”
“요즘 사람의 손에 떨어지지 않느니라.”
“법왕法王과 군왕君王이 만날 때는 어떠합니까?”
“두 손바닥에 사사로움[私]이 없느니라.”
“만난 뒤에는 어떠합니까?”
“중간에 상像이 끊겼느니라.”

앞의 임제臨濟 의현義玄 선사의 법손

관계灌谿 지한志閑 선사
그는 위부魏府 관도館陶 사람으로서 성은 사史씨이다. 어려서 백암柏巖 선사에 의해 머리를 깎았다가 20세에 구족계를 받았다.
나중에 임제臨濟 화상을 뵙자, 화상이 붙들고 있다가 한참만에야 놓아주었다. 이에 대사가 말했다.
“알았습니다.”
그 뒤에 대중에게 말했다.
“내가 임제를 보고 말이 없었는데, 지금까지도 배가 불러서 배고픈 줄 모른다.”
“스님에게 빌리지 않은 것[不借] 설법을 뜻한다.
을 청합니다.”
“내가 입에 가득 빌리지 않음을 말했느니라.”
대사가 또 말했다.
“대유령大庾嶺 마루에서는 부처를 만나지 못하고, 황매산黃梅山 길에는 중생이 없다.”

대사의 회상會上에 있던 어떤 스님이 석상石霜에게 가니, 석상이 물었다.
“어디서 오는 길인가?”
“관계에서 왔습니다.”
“내가 북산北山에 머무는 것이 그가 남산南山에 머무는 것만 못하구나.”
스님은 대답이 없었다. 대사가 이 말을 전해 듣고 말했다.
“그저 열반당涅槃堂을 다 수리해 놓았다고 말할 것이지.”

어떤 스님이 물었다.
“오랫동안 관계(灌谿:흐르는 시냇물)의 소문을 들었지만, 와서 보니 옹달샘뿐이구나.”
“그대는 옹달샘만 보고, 관계는 보지 못하는구나.”
“어떤 것이 관계입니까?”
“쏜살같이 급하도다.”[뒷사람이 현사玄沙에게 이 이야기를 하니, “다시 30년을 배워도 선법을 알지 못하리라” 하였다.]

어떤 이가 물었다.
“어떤 것이 옛사람의 뼈입니까?”
“안치安置할 수 없느니라.”
“어째서 안치할 수 없습니까?”
“금 까마귀[金烏:해]를 어떻게 푸른 하늘에서 내려오게 하겠는가?”
“황금 사슬[金鎖:열반에 대한 집착]이 끊어진 뒤에는 어떠합니까?”
“그대가 바로 본받을 곳이니라.”
“어떤 것이 미세함입니까?”
“돌이켜 바꾸면서도[迴換] 돌이켜 바꾸지 않느니라.” 돌이킨다 함은 거친 데서 미세한 곳으로 가는 것이요, 돌이키지 않는다는 것은 곱고 거친 경지에 빠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마지막 일이 어떠합니까?”
“장육丈六 화신의 입[口]도 꺼리느니라.”
“어떤 것이 한 빛깔[一色]입니까?”
“따르지 않느니라.”
“한 빛깔 후에는 어떠합니까?”
“사리(闍梨:그대)가 이것을 알아들을 분수가 있는가?”
“오늘의 한 모임은 누구를 대적한 것입니까?”
“범부도 성현도 위하지 않느니라.”
“한 구절이란 무엇입니까?”
“천 성인의 근기에도 떨어지지 않느니라.”
“어떤 것이 동정호의 물입니까?”
“사람을 씻지 않느니라.”

대사가 당나라 건녕乾寧 2년 을묘乙卯 5월 29일에 시자에게 물었다.
“앉아서 죽은 이가 누군가?”
“승가僧伽입니다.”
“서서 죽은 이는 누군가?”
“승회僧會입니다.”
그리하여 여섯, 일곱 걸음을 걷다가 손을 드리운 채 서거했다.

유주幽州 담공譚空 화상
어떤 비구니가 법당을 열어 설법을 하려고 하자, 대사(담공)가 말했다.
“비구니는 법당을 열 필요가 없다.”
비구니가 말했다.
“용녀龍女가 여덟 살에 부처를 이룬 것은 또 어떠한가?”
“용녀는 열여덟 가지 변화를 부렸다. 그대도 내 앞에서 한 가지 변화를 부려 보라.”
“변화를 부리는 것은 또한 들여우 혼령의 짓거리요.” 
대사가 때려서 내쫓았다.

보수寶壽 화상이 물었다.
“중근기와 상근기 이외의 사람이 오면, 사형師兄께서는 어찌하겠습니까?”
“그대는 아까부터 잘못 이야기했다.”
“사형께서도 허물이 없을 수 없습니다.”
“그대가 도리어 나의 사형이 되라.”
보수가 손바닥을 세우면서 “이 늙은 도적아”라고 말했다.


진주鎭州 보수寶壽 소沼 화상[제1세 주지]
어떤 스님이 물었다.
“만 가지 경계가 와서 침노할 때에는 어찌하겠습니까?”
“관계치 말라.”
스님이 절을 하자, 대사(보수)가 말했다.
“움직이지 말라. 움직이면 그대의 허리를 꺾어 버리겠다.”

조주趙州 종심從諗 화상이 왔는데, 대사는 선상禪床을 등지고 앉았다. 조주가 방석을 펴고 절을 하자, 대사는 일어나서 방장으로 들어갔고, 조주는 방석을 거두어서 나갔다.

대사가 어떤 스님에게 물었다.
“어디서 왔는가?”
“서산에서 왔습니다.”
“원숭이 떼를 보았는가?”
“보았습니다.”
“어떠한 재주를 부리던가?”
“저를 보더니, 한 가지 재주도 부리지 못했습니다.”
그러자 대사가 그를 때렸다.

호정교胡釘鉸 성명이지만 한자로 풀면 못이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가 오니, 대사가 물었다.
“그대가 호정교胡釘鉸인가?”
“그렇기는 합니다.”
“허공에도 못을 칠 수 있겠는가?”
“화상은 제가 박은 못을 뽑아 보십시오.”
대사가 주장자로 때리니, 호정교가 말했다.
“화상은 저를 잘못 때리지 마십시오.”
“뒷날에 입바른 종사가 나서 그대를 점검해 주리라.”[조주趙州가 말하기를 “이 한 땀<縫>도 어쩌지 못하리라”고 하였다. 그리고는 대신 말하기를 “이 한 땀이나 꿰매 보라”고 하였다.]
“만 리에 조각구름도 없을 때는 어떠합니까?”
“푸른 하늘도 방망이를 맞아야 한다.”

대사가 세상을 떠나려 할 때에 문인들에게 말했다.
“너희들은 나의 행적을 아느냐?”
“화상께서는 일생 동안 밤에도 눕지 않고 앉아서 정진하셨습니다[長坐不臥].”
문인들을 가까이 다가오라고 해서 문인들이 다가오자, 대사는 이렇게 말했다.
“가거라. 내 권속이 아니구나.”
말을 마치고는 열반에 들었다.

진주鎭州 삼성원三聖院 혜연慧然 선사
임제臨濟에게서 깊은 가르침 받은 뒤에 총림을 두루 다니다가 앙산仰山에게 가니, 앙산이 물었다.
“그대의 이름이 무엇인가?”
“혜적慧寂입니다.”
“혜적이라면 내 이름인데.”
“그렇다면 제 이름을 혜연慧然으로 하겠습니다.”
앙산이 껄껄 웃고 말았다.

대사가 향엄香嚴에게 가자, 향엄이 물었다.
“어디서 왔는가?”
“임제에게서 왔습니다.”
“임제의 칼을 가지고 왔는가?”
대사가 날쌔게 방석을 들어서 입을 때리고는 떠나갔다.

대사가 덕산德山에게 가서 막 방석을 펴려는데, 덕산이 말했다.
“밥 짓는 수건을 펴지 말라. 여기에는 남은 밥이 없다.”
“설사 있다 하여도 손댈 곳이 없습니다.”
덕산이 주장자로 대사를 때리자, 대사가 딱 붙잡고서 덕산을 선상 위로 밀쳤다. 이에 덕산이 껄껄 웃으니, 대사는 “아이고[蒼天], 아이고”라고 곡을 하면서 떠났다.

대사가 설봉雪峰에 있을 때에 설봉이 설법을 하였다.
“사람마다 다 일면一面의 옛 거울이 있고, 저 원숭이도 일면의 옛 거울이 있다.”
이때에 대사가 나서서 물었다.
“여러 겁을 지나도록 이름이 없었거늘, 화상께서는 어찌하여 옛 거울이라는 이름을 지으십니까?”[어떤 책에는 “이름을 드러냅니까?”라고 하였다.]
“흠집이 났구나.”
대사가 꾸짖으면서 말했다.
“저 노화상이 말귀도 알아듣지 못하는구나.”
설봉이 말했다.
“노승(老僧:나)의 주지 일이 많은 것이 잘못이지.”

대사가 보수寶壽 화상이 개당開堂한 것을 보고, 한 스님을 보수의 앞으로 밀어서 세우니, 보수가 그 스님을 때렸다.
이때에 대사가 말했다.
“저 장로가 저런 식으로 사람을 위하다가는 온 진주성 사람들의 눈을 온통 멀게 하리라.”[법안法眼이 말하기를 “어디가 남의 눈을 멀게 하는 곳인가?”라고 하였다.]

위부魏府 대각大覺 선사
흥화興化 존장存獎 선사가 원주로 있었을 때, 어느 날 대사가 물었다.
“내가 항상 듣건대, 그대가 말하기를 남쪽으로 한 바퀴 다녀왔어도 주장자 끝에 불법 아는 사람을 하나도 만나지 못했다 하니, 무슨 도리에 의하여 그런 말을 했는가?”
흥화가 할을 하자, 대사가 때렸다. 흥화가 다시 할을 하자, 대사가 또 때렸다.
이튿날 흥화가 법당 앞을 지나는데, 대사가 불러 세우고서 말했다.
“원주야, 나는 어제 그대가 한 할을 아직까지 풀지 못하고 있으니, 나에게 말해다오.”
흥화가 말했다.
“저[存獎]는 평생 동안 삼성三聖에게 배운 것을 몽땅 화상에게 꺾여 버리고 말았으니, 바라건대 저에게 안락安樂의 법문을 일러 주십시오.”
대사가 대답했다.
“저 눈먼 당나귀가 와서 저렇게 허물을 드러내는구나. 웃옷을 벗고 통쾌하게 한 대 맞아라.”
흥화가 이 말끝에 종지를 이해했다. 그리하여 비록 같이 임제의 뒤를 이었으나, 항상 대사를 깨우쳐 주는 벗으로 여겼다. 

대사는 임종할 때에 대중에게 말했다.
“내게 화살 하나가 있는데 누군가에게 전하고자 한다.”
이때에 한 스님이 나서서 말했다.
“화상의 화살을 주십시오.”
“그대는 무엇을 화살이라 하는가?”
그 스님이 할을 하자, 대사가 몇 차례 때리고는 방장으로 돌아갔다. 그리고는 또 그 스님을 불러들여서 물었다.
“그대는 아까 일을 알겠는가?”
“잘 모르겠습니다.”
대사가 또 몇 차례 때리고는 주장자를 던지면서 말했다.
“이후에 눈 밝은 사람을 만나거든 분명히 말하라.”
그리고는 문득 열반에 들었다.

위부魏府 흥화興化 존장存獎 선사
스님에게 물었다.
“어디서 왔는가?”
“최崔 선사 처소에서 왔습니다.”
“최 선사의 할을 가져왔는가?”
“가져오지 못했습니다.”
“그러면 최 선사로부터 오지 않은 것이로구나.”
스님이 할을 하니, 대사가 때렸다.

대사가 대중에게 말했다.
“나는 그저 복도에서도 할을 하고, 뒷마루에서도 할을 하는 것을 들어왔다. 여러분, 그대들은 맹목적인 할이나 혼란스런 할은 하지 말라. 설사 흥화(나)에게 할을 해서 하늘 중간에 머무르게 하고, 다시 두드려 떨어뜨려서 기절을 시키고 싶더라도, 흥화가 소생하면 그대들에게 도가 없다고 하리라. 무슨 까닭인가? 나는 자주 비단 장막 안에서 진주眞珠를 그대들에게 뿌려본 적이 없기 때문이니, 허공 속에서 혼란스럽게 할을 한들 무슨 소용이 있으랴?”

대사가 유나維那 극빈克賓에게 말했다.
“그대는 오래지 않아 도를 제창하는 스승이 되리라.”
극빈이 대답했다.
“그러한 보임의 무리[保社]에는 들어가지 않겠습니다.”
“알고서 들어가지 않는 것인가, 알지 못해서 들어가지 못하는 것인가?”
“전혀 그런 것과 상관없습니다.”
대사가 문득 때리고서 말했다.
“극빈 유나는 법의 싸움[法戰]에서 이기지 못했으니, 벌금 5관貫과 한 대중에게 음식을 베풀라.”
이튿날 대사가 손수 대중에게 말했다.
“극빈 유나는 법의 싸움에서 이기질 못해서 벌금 5관貫을 물고 대중에게 음식을 베풀 것이오. 그러므로 음식을 먹지 못할 것 같으면 얼른 절 밖으로 나가시오.”

어떤 스님이 물었다.
“국사國師가 시자를 부르신 뜻이 무엇입니까?”
“한 소경이 뭇 소경을 이끌고 가는 것이니라.”

대사는 가끔 “아무개야” 하고 스님을 불러서, 그 스님이 “네” 하고 대답하면, 이렇게 말했다.
“점고[點]하면 도달하지 못한다.” 그대가 거기 있다고 점고(인정)하면 “나와 그대는 완연히 다르므로 그대는 나에게 이르지 않았다”고 하였다.

또 따로 한 스님을 불러서 그 스님이 “네”라고 대답하면, 대사는 이렇게 말했다.
“도달했으면 점고하지 말라.”

대사는 나중에 후당後唐의 장종莊宗의 스승이 되었는데, 어느 날 장종이 대사에게 말했다.
“짐朕이 대량大梁을 손에 넣으면서 값으로 따질 수 없는 밝은 구슬을 하나 얻었는데, 아무도 값을 정하지 못하오.”
대사가 말했다.
“폐하시여, 구슬을 보여 주십시오.” 
황제가 손으로 복두(幞頭:머리에 쓰는 관) 끈을 풀었다. 대사가 말했다.
“군왕의 보배를 누가 감히 값을 매기겠습니까?”[현각玄覺이 말하기를 “흥화는 동광(同光:장종 때의 연호)을 수긍한 것인가, 동광을 수긍하지 않은 것인가? 수긍했다면 흥화의 안목은 어디에 있었을까? 만일 수긍하지 않았다면 허물이 어디에 있었으랴?”라고 하였다.]
대사가 입멸한 뒤에 광제廣濟 대사라 시호를 내렸고, 탑호는 통적通寂이라 하였다.

정주定州 선최善崔 선사
고을의 장수[州將]인 왕공王公이 관아에다 자리를 펴고 대사(선최)에게 설법을 청하니, 대사가 법좌에 올라서 한참 있다가 대중에게 말했다.
“나와도 때리고 나오지 않아도 때리겠다.”
이때에 담공譚空 화상이 나서면서 말했다.
“최 선사여, 적聻.” 적聻은 귀신을 쫓는 진언眞言이다.

대사가 말했다.
“오래 서 있었군요. 태위太尉여, 진중珍重하시오.”
그리고는 내려갔다.

진주鎭州 만세萬歲 화상
스님이 물었다.
“대중이 법당에 모였습니다. 무엇을 말씀하시겠습니까?”
“서품序品 제일이니라.”
“승가의 구경究竟은 무엇입니까?”
“본래는 단지 재를 부는 법[吹灰法:외도의 종류]이었는데, 어느새 여울가로 가서 옷을 벗는다.” 개울에서 옷을 벗는 것은 외도의 법을 버리고 몸을 씻고 불법에 귀의한다는 뜻이다.


대사가 보수寶壽를 방문해서 처음 보자마자 방석을 폈는데, 보수가 즉시 선상禪床에서 내려왔다. 대사가 얼른 그의 선상에 앉으니, 보수는 달음질로 방장으로 들어갔다. 조금 있다가 지사(知事:知客)가 대사에게 아뢰었다.
“당두(堂頭:住持) 화상이 벌써 문을 닫았으니, 화상은 고두庫頭에 가서 차나 마시십시오.”
대사는 이내 선원으로 돌아왔다. 이튿날 보수가 와서 다시 뵈니, 대사는 선상禪床에 걸터앉아 있었다. 보수가 방석을 펴니, 대사도 자리에서 내려왔다. 보수가 또 대사의 선상에 앉으니, 대사는 방장으로 들어가서 문을 닫았다. 보수는 시자료侍者寮 안으로 들어가서 재[灰]를 갖다가 방장 앞에다 세 줄을 두르고는 물러갔다. 재를 뿌리는 것은 시체가 있는 곳임을 표시하는 방법이다.


운산雲山 화상
어떤 스님이 서경西京에서 오니, 대사가 물었다.
“서경 주인의 서신이라도 가지고 왔는가?”
“감히 망령되게 소식을 통할 수 없습니다.”
“작가(作家:宗師)가 될 스님은 천연天然으로 존재하는구나.”
“남은 국과 나물은 누가 먹겠습니까?”
“그대만이 즐겨 먹지 않는구나.”
그 스님이 토하는 시늉을 하자, 대사가 시자를 불러서 말했다.
“저 병들은 스님을 부축해서 나가라.”
그 스님은 얼른 나가 버렸다.

동봉桐峰 암주菴主
스님이 물었다.
“화상께서는 이 속에서 갑자기 범을 만나면 어찌하시겠습니까?”
대사가 으르렁거리는 소리를 내니, 그 스님이 두려워하는 시늉을 했다. 대사가 크게 웃자, 그 스님이 말했다.
“이 늙은 도적놈아.”
“이 늙은 스님을 어찌하겠는가?”

어떤 스님이 암자 앞에 왔다가 그대로 가자, 대사가 불렀다.
“사리여, 사리여.”
그 스님이 고개를 돌리면서 문득 할을 하자, 대사가 한참 동안 가만히 있었다. 이에 그 스님이 말했다.
“이 늙은이가 죽었구나.”
대사가 때리니, 스님은 말이 없었다. 이에 대사가 껄껄 웃었다.

어떤 스님이 암자에 들어와서 대사를 꼭 잡으니, 대사가 소리를 질렀다.
“사람 죽인다. 사람 죽인다.”
그 스님이 탁 밀치면서 말했다.
“소리는 왜 지르시오?”
“누가?”
그 스님이 할을 하자, 대사가 그를 때렸다. 스님이 나가면서 고개를 돌리고 말했다.
“기다리시오, 기다리시오.”
대사가 크게 웃었다.

삼양杉洋 암주
어떤 스님이 와서 뵈니, 대사가 물었다.
“누군가?”
“삼양杉洋 암주올시다.”
“그건 나다.”
그 스님이 문득 할을 하자, 대사가 헛기침을 했다. 스님이 말했다.
“오히려 방망이가 필요하겠군.”
대사가 얼른 때렸다. 

어떤 스님이 물었다.
“암주께서는 어떤 도리를 얻었기에 이 산에서 사십니까?”
“소식을 통하고자 하는 것이며, 또 남의 점검을 받을까 두려워서이다.”
“어떻게 면하시겠습니까?”
대사가 할을 하니, 그 스님이 말했다.
“비슷하군요.”
대사가 또 때리니, 그 스님이 껄껄 웃으면서 나갔다. 이에 대사가 말했다.
“오늘은 크게 졌구나, 크게 졌어.”

탁주涿州 지의紙衣 화상
처음에 임제臨濟를 뵙고 이렇게 물었다.
“어떤 것이 사람은 빼앗고 경계는 빼앗지 않는 것입니까?”
임제가 대답했다.
“봄볕이 돋으니 땅에다 비단을 깐 듯하고, 어린 아기가 머리를 푸니 하얗기가 실과 같구나.”
“어떤 것이 경계는 빼앗고 사람은 빼앗지 않는 것입니까?”
“왕의 명령이 이미 행해져서 천하에 두루 퍼지고, 장군이 변방 밖에 있으니 전쟁이 벌어지지 않느니라.”
“무엇이 사람과 경계를 모두 빼앗지 않는 것입니까?”
“왕이 보좌에 오르니, 농부는 태평가를 부르느니라.”
“무엇이 사람과 경계를 모두 빼앗는 것입니까?”
“병주幷州와 분주汾州의 소식이 끊기니, 홀로 한쪽[一方]에 처했느니라.”
대사(지의)가 말끝에 깨닫고서 3현玄․3요要․4구句의 법문에 깊이 들어가서 교화에 크게 도움이 되었다.

호계虎谿 암주
스님이 와서 방석을 들고 뵙기를 청했으나, 대사는 돌아보지도 않았다. 그 스님이 말했다.
“암주菴主에게 이런 기봉機鋒이 있는 줄은 알았소.”
대사가 손가락을 한 번 튀겨서 소리를 내니, 스님이 물었다.
“그게 무슨 종지宗旨입니까?”
대사가 갑자기 때리니, 스님이 말했다.
“오늘 인간의 편의에 떨어진 줄로 압니다.”
대사가 말했다.
“아직 방망이가 필요하구나.”

어떤 스님이 막 문으로 들어오는데, 대사가 문득 할을 했다. 스님이 잠자코 있었다. 이에 대사가 때리니, 스님이 또 할을 하였다. 대사가 말했다.
“참한 좀도적이구나.”
그 스님이 들어와서 안부를 여쭙자, 대사가 말했다.
“누구인가?”
스님이 할을 하니, 대사가 말했다.
“그렇다면 손님과 주인이 없겠군.”
“아직도 두 번째 할이 남아 있습니다.”
이제는 대사가 할을 하였다. 

어떤 스님이 물었다.
“화상은 어디 사람이십니까?”
“농서隴西 사람이다.”
“듣건대 농서에는 앵무새가 있다는데, 사실입니까?”
“그렇다.”
“화상은 앵무새가 아니시겠죠?”
대사가 앵무새 소리를 내자, 스님이 말했다.
“멋진 앵무새로구나.”
대사가 얼른 때렸다.
복분覆盆 암주
어떤 스님에게 물었다.
“어디서 왔는가?”
“복분산覆盆山 밑에서 왔습니다.”
“암주를 보았는가?”
스님이 할을 하였다. 대사가 얼른 때리니, 스님이 말했다.
“왜 그러십니까?” 
대사가 또 할을 하였다.

어느 날 어떤 스님이 산 밑에서부터 곡을 하며 올라오자, 대사가 절 문을 닫았다. 스님이 문에다 원월상圓月相 하나를 그려 놓으니, 대사는 뒷문으로 빠져나가 산 밑으로 가서 곡을 하면서 올라왔다. 이에 그 스님이 할을 하면서 말했다.
“아직도 그런 짓을 하는구려.”
대사가 손을 바꾸어 가슴을 치면서 말했다.
“선사先師를 이 한 마당에 묻다니, 애석한 일이로다.”
“괴롭고, 괴롭습니다.”
“암주가 속았을 뿐이다.”

양주襄州 역촌歷村 화상
차를 달이는데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조사께서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대사가 차 숟가락을 번쩍 들자, 스님이 말했다.
“단지 그것만으로 마땅하다고 하겠습니까?”
대사가 다시 불 속에다 던졌다.
“어떤 것이 그 음성을 관觀하여 해탈을 얻는 것입니까?”
대사가 부젓가락으로 부목[柴頭]을 때리면서 물었다.
“그대는 들었는가?”
“들었습니다.”
“누가 해탈을 얻지 못했더냐?”

창주滄州 미창米倉 화상
군수가 대사와 보수寶壽 화상을 관청으로 초청해서 공양을 올리고자 하였다. 그래서 사람을 보내 이렇게 말했다.
“바라건대 두 장로께서 불법을 담론해 주십시오.”
보수가 말했다.
“사형께서 회답을 하십시오.”
대사가 할을 하니, 보수가 따졌다.
“제가 아직 묻지도 않았는데, 왜 할을 먼저 하십니까?”
대사가 말했다.
“그래도 약간 모자람이 있다.”
보수가 되레 할을 하였다.

목주睦州 진陳 존숙尊宿의 법손

목주睦州 자사刺史 진조陳操
스님들과 더불어 공양을 하다가 떡 하나를 들면서 스님에게 물었다.
“강서江西나 호남湖南에도 이런 것이 있습니까?”
스님이 대답했다.
“상서尙書는 아까 무엇을 잡수셨습니까?”
자사刺史가 말했다.
“종을 치니 메아리가 울리는구나.”
어느 날 또 대중들과 공양을 하는데 몸소 떡을 돌렸다. 어떤 스님이 손을 펴서 받으려 하자 자사가 손을 거두었다. 스님이 말이 없자, 자사가 말했다.
“과연, 과연일세.”

다른 날 스님에게 물었다.
“어떤 일이 생겼는데, 상좌와 상의를 할 수 있겠습니까?”
스님이 말했다.
“개 주둥이를 다물어라.”
자사가 제 가슴을 치면서 말했다.
“진조陳操의 잘못이오.”
스님이 말했다.
“허물을 알면 반드시 고쳐야 한다.”
자사가 말했다.
“그렇다면 상좌의 입을 빌어서 밥을 먹어야겠군요.”

또 대중에게 공양을 하여 손수 밥을 돌리다가 말했다.
“상좌께서 시식施食을 하십시오.”
상좌上坐가 대답했다.
“3덕德과 6미味로다.”
“틀렸습니다.”
상좌가 대답이 없었다.
또 관속들과 누각에 오르는데 몇 명의 스님이 오고 있었다. 관리 하나가 말했다.
“저기 오는 이들은 모두 행각하는 스님이지요?”
자사가 말했다.
“아니다.”
“어떻게 아닌 줄 아십니까?”
“가까이 오거든 물어보자.”
스님들이 누각 앞을 지날 때에 자사가 갑자기 “상좌여” 하고 부르니, 스님들이 모두 돌아보았다. 이에 자사가 관리들에게 말했다.
“내 말이 맞지 않느냐?”
또 참선하는 이에게 게송을 주었다.

참선하는 이는 현묘한 기틀이 있지만
현묘한 기틀이라 하면 또한 잘못이네.
기틀 이전의 종지를 요달하고자 하지만
모두가 언구言口 아래에서 어긋나고 있구나.
禪者有玄機    機玄是復非
欲了機前旨    咸於句下違

앞의 향엄香嚴 지한智閑 선사의 법손

길주吉州 지관止觀 화상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비로자나의 스승입니까?”
대사가 멱살을 잡고 한 대 갈겼다.
“어떤 것이 돈頓입니까?”
“양梁이나 진陳은 아니다.” 돈은 돈오頓悟라는 뜻인데 어떤 것이 돈오냐고 물으니 그를 묵살하기 위하여 땅 이름에 쓰이는 돈주頓州․양주梁州․진주陳州를 들어서 말했다.


수주壽州 소종紹宗 선사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좋은 일은 문밖을 나가지 않고, 나쁜 일은 천 리까지 전해진다.”

어떤 관원이 대사에게 말했다.
“강서江西는 종지를 세우지 않는다고 말들 하더군요.”
“인연을 만나면 세운다.”
“인연을 만나면 세우는 것이 무엇입니까?”
“강서는 종지를 세우지 않는다.”

양주襄州 연경延慶 법단法端 소진紹眞 대사
어떤 관원이 물었다.
“지렁이를 두 토막으로 끊으면 두 토막이 모두 움직이는데, 불성은 어느 쪽에 있습니까?” 
대사가 두 손을 쫙 폈다.[동산洞山이 말하기를 “지금 묻는 것은 어느 쪽을 말하는가?”라고 하였다. 이것이 11권의 위산潙山의 전기에도 있으니 어찌 된 일인가.]
익주益州 남선南禪 무염無染 대사
어떤 이가 물었다.
“구절 없는 구절을 스님께서는 대답하실 수 있습니까?”
“종래로 오직 이 일만을 밝혔다.”
“끝내 어떠합니까?”
“또 물어보아라.”

익주益州 장평산長平山 화상
어떤 이가 물었다.
“눈을 깜박여도 미치지 못하는 곳은 어떠합니까?”
“나는 눈을 부릅떴어도 공부는 하지 않았느니라.”
“어떤 것이 조사의 뜻입니까?”
“서천西天에서 왔다가 당토唐土에서 떠났느니라.”

익주益州 숭복崇福 연교演敎 대사
어떤 이가 물었다.
“어떤 것이 너그럽고 확 트인 말입니까?”
“입으로는 말할 수 없다.”
“어떤 것이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오늘과 내일이니라.”

안주安州 대안산大安山 청간淸幹 선사
어떤 이가 물었다.
“예로부터 성인들은 무엇으로부터 증득했습니까?”
대사가 이마를 두드렸다.
“어떤 것이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부채[羊頭車子]로 밝은 달을 밀치느니라.”

종남산終南山 풍덕사豊德寺 화상
어떤 이가 물었다.
“어떤 것이 화상의 가풍입니까?”
“일에 닿으면 벽에 직면한 듯한다.”
“어떤 것이 본래의 일입니까?”
“끝내 다시는 남에게 묻지 말아야 한다.”

균주均州 무당산武當山 불암佛巖 휘暉 선사
어떤 이가 말했다.
“근년에 병이 났다가 다시 약에 중독되었습니다. 화상께서 고쳐 주십시오.”
“이의탕二宜湯 한 사발을 먹어라.”
“어떤 것이 부처님의 위로 향하는 일[向上事]입니까?”
“소라 상투[螺髻子]이니라.”

강서江西 여산廬山 쌍계雙谿 전田 도자道者
어떤 이가 물었다.
“어떤 것이 줄탁啐啄의 기틀입니까?” 닭이 알을 품어서 병아리가 다 되었을 때에 밖의 어미와 안의 새끼가 동시에 쪼아서 병아리가 나오는 것을 돕는 것. 스승과 제자의 사이를 말한다.

대사가 손으로 쪼는 시늉을 하였다.
“어떤 것이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어디서 그렇게 묻는 법을 배웠는가?”

앞의 복주福州 쌍봉雙峰 화상의 법손

쌍봉雙峰 고古 선사[제2세 주지]
본래 경전을 강의하였는데, 쌍봉에 올라가서 뵙고 절을 하자, 쌍봉이 물었다.
“대덕은 어디에 사는가?”
“성안[城內]에 삽니다.”
“평소에도 나를 생각했는가?”
“항상 화상을 생각했으나 뵈올 기회가 없었습니다.”
“다만 그 생각함이 바로 대덕大德이다.”
대사가 이로부터 깨닫고 본래 있던 절로 돌아가서 거처를 버리고 강의까지 그만두고는 산으로 들어와서 몇 해 동안 시봉을 하였다.
나중에 석상石霜에 가서 그저 대중 생활을 따를 뿐 전혀 묻는 일이 없으니, 대중들이 모두 말하기를 “고古 시자侍者는 일찍이 쌍봉의 인가를 받았다”고 하였는데, 종종 석상의 귀에까지 들렸다. 석상이 그의 깨달은 바를 시험해 보고자 했으나 짬을 얻지 못했는데, 대사가 석상께 하직을 고할 때에 석상이 불자를 들고 문밖에까지 전송을 나왔다가 불렀다. 
“고 시자여.”
대사가 고개를 돌리자, 석상이 말했다.
“망설이면 어긋나고, 옳다고 단정해도 어긋난다. 망설이지도 않고 옳다고 단정치도 않는다는 알음알이조차 짓지 말라. 그릇됨을 없애면 앎이 있지만, 그것을 능히 안다고 하지는 말라. 잘 가라. 잘 가라.”
대사가 대답하고서 그 길로 돌아오니, 때마침 쌍봉이 입적하였으므로 대사가 대를 이어서 주지가 되었다.
어떤 스님이 물었다.
“화상이 당시 석상에게 대답하셨을 때에 석상이 그렇게 말했는데, 그 뜻이 무엇입니까?󰡓
“그저 날더러 시비에 집착하지 말라는 것이었느니라.”[현각玄覺이 말하기를 “보라. 그가 석상의 뜻을 알겠는가?”라고 하였다.]

앞의 경산徑山 제3세 홍인洪諲 선사의 법손

홍주洪州 미령米嶺 화상
평상시에 이렇게 말하였다.
“이를 능가하는 것이 없다.”
어떤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이를 능가하는 것이 없다는 것입니까?”
“이것에서 나오지 못한다.”[그 스님이 나중에 장경長慶에게 묻기를 “어째서 그것보다 뛰어날 것이 없습니까?”라고 하니, 장경이 말하기를 “그대는 이것을 무엇이라 불러야 한다고 여기느냐?”라고 하였다.]

앞의 양주揚州 광효원光孝院 혜각慧覺 화상의 법손

도헌道巘 선사
그는 여주廬州 사람으로서 성은 유劉씨이다. 처음에 혜각慧覺 화상을 뵙고 모시다가 미묘한 말씀을 깨닫고는 즉시 호남湖南의 대광산大光山에서 머리를 깎았다. 덕의 교화가 널리 퍼지게 되자, 청을 받아 승주昇州의 장경선원長慶禪苑에서 살았다. 
어느 날 상당하여 대중에게 말했다.
“미륵세존께서 아침에 절에 들어왔다가 저녁에 정각을 이루었다. 그리고는 이러한 게송을 말씀하셨다.

삼계의 위와 아래의 법을
나는 모두 마음이라고 하노니
온갖 마음의 법들을 여의고는
다시 얻을 수 있는 것은 없다.
三界上下法    我說皆是心
離於諸心法    更無有可得

그가 이렇게 말한 것을 살펴보건대 너무나 성성惺惺하지만, 가령 우리 무리와 견준다면 역시 우둔한 이였다. 왜냐하면 일념에 도를 보아서 3세의 정情이 다한 것이 마치 도장을 진흙에 찍는 것과 같아서 다시는 앞과 뒤가 없기 때문이다.
여러분들, 생사生死의 일이 너무나 신속하니, 모름지기 잘 가려내서 등한시하지 말라. 업식業識이 아득해지는 것은 대체로 자기를 미혹하고 사물을 쫓기 때문이니라. 세존께서 열반에 드시려 할 때에 문수가 부처님께 다시 법륜法輪을 굴릴 것을 요청하자, 부처님께서 문수를 꾸짖으시면서 ‘내가 49년 동안 세상에 머물면서 일찍이 한 글자도 사람들에게 준 일이 없다. 그런데 이제 네가 나에게 다시 법륜을 굴리라고 청하는 것은 바로 내가 일찍이 법륜을 굴린 적이 있다고 말하는 것과 같으니, 지금 이 대중 속에서 손님과 주인을 설정하여 문답을 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로서 초심자를 위했을 뿐이다’라고 하셨다.”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장경長慶의 경계입니까?”
“그대가 밝혀 보라.”
“어떤 것이 불법의 대의입니까?”
“옛사람이 말하지 않았는가? 오늘이 3월 3일이구나.”
“학인은 잘 모르겠습니다.”
“그만두라. 말하지 않겠다. 내 법은 묘하여 생각하기 어려우니라.”
그리고는 문득 법좌에서 내려왔다. 함평咸平 2년에 입적하였다.


회양懷讓 선사의 제6세 

앞의 앙산仰山 남탑南塔 광용光涌 선사의 제자

월주越州 청화淸化 전부全付 선사
그는 오군吳郡 곤산崑山 사람이니, 아버지는 장사꾼이었다. 대사가 그를 따라 예장豫章에 갔다가 선원의 성대한 모임이 있다는 말을 듣고 출가할 뜻을 아뢰었다.
그는 곧 강하江夏로 가서 청평淸平 대사에게 귀의하니, 청평이 물었다.
“그대는 무엇을 구하러 왔는가?”
“법을 구합니다.”
청평이 기특하게 여겨서 받아들이니, 이어서 계를 받고 더욱 부지런히 시봉을 하였다. 그러다가 어느 날 혼자 생각하였다.
‘배움에는 일정한 스승이 없거늘, 어찌 여기에서만 만족하게 여겨서 묶여 있으랴?’
그리고는 곧 하직하고 떠나서 앙산仰山으로 가서 남탑南塔의 광용光涌 화상을 뵈었는데, 광용이 물었다.
“어디서 왔는가?”
“악주鄂州에서 왔습니다.”
“악주의 군수는 이름이 무엇인가?”
“신분이 워낙 미천하여 감히 만나 보질 못했습니다.”
“이곳에서는 전혀 두려워할 것이 없다.”
“대장부가 어찌 반드시 시험을 치러야 하겠습니까?”
광용이 흔연히 웃었다. 
드디어 인가를 받고 여릉廬陵 안복安福으로 갔는데, 그 현縣의 원님이 그를 위해 응국선원應國禪苑을 지어준 뒤에 맞아들여서 그 고을의 무리를 모으게 하였다. 황제께 상주하여 청화원淸化院이란 이름을 하사하였다.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화상께서 급하고 간절하게 사람을 위하시는 곳입니까?”
“아침에는 동남을 보고, 저녁에는 서북을 보느니라.”
“잘 모르겠습니다.”
“헛되이 동쪽 햇볕의 손님임을 자랑하면서, 서쪽 햇볕의 진귀함은 모르는구나.”
“어떤 것이 정법의 안목입니까?”
“청천백일靑天白日에 오줌을 싸지 말라.”
나중에 고향에서 온 스님의 권고에 의하여 고국으로 돌아가니, 전씨錢氏 문목왕文穆王이 특별히 대우하고 소중히 여겼다. 진晋의 천복天福 2년 정유丁酉에 전錢씨의 변방 장수가 운봉산雲峰山에 선원을 짓고 또 청화淸化라 이름하니, 법려法侶들이 모여들었다.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불법의 대의입니까?”
“화표주華表柱 꼭대기에 나무 학[木鶴]이 나느니라.”
“길에서 도를 통달한 이를 만났을 때에 말이나 침묵으로 대하지 않는다면, 무엇으로 상대하겠습니까?”
“눈동자에 비친 사람이 호루라기[叫子]를 부느니라.”
“화상의 나이는 얼마입니까?”
“비로소 지난 해 9월 9일임을 보았는데, 이제 또 가을 낙엽이 누런 것을 보겠다.”
“그렇다면 헤아릴 수 없습니다.”
“낙엽을 취해서 물어보라.”
“필경의 일은 어떠합니까?”
“여섯 쪽의 골패[骰子:주사위]가 동이[盆] 가득 붉으니라.”
“죽은 스님이 천화遷化하면 어디로 갑니까?”
“긴 강은 끊임이 없고, 물거품은 바람 따라 나부끼느니라.”
“제사를 받습니까?”
“제사라면 없지 않다.”
“어떻게 제사를 지냅니까?”
“뱃노래에 돛을 다니, 골짜기에 소리가 들린다.”
충헌왕忠獻王 대에 이르러 자색 방포方袍를 하사했으나, 대사가 받지 않았다. 그러자 왕은 납의衲衣로 고쳐서 하사하고, 그 호칭을 순일純一 대사라 하였다. 이에 대사가 말했다.
“내가 일부러 꾸며서 사양한 것이 아니다. 뒷사람이 나를 흉내 내어 욕심을 부릴까 걱정되는구나.”
개운開運 4년 정미丁未 7월에 병이 나더니, 편안히 앉아서 입적하였는데, 큰 바람이 휘몰아쳐서 나무를 부러뜨렸다. 수명은 66세이고, 법랍은 45세였다.

영주郢州 파초산芭蕉山 혜청慧淸 선사
그는 신라新羅 사람이다. 어떤 이가 물었다.
“어떤 것이 파초수芭蕉水입니까?”
“겨울에는 따사롭고 여름에는 서늘하니라.”
“어떤 것이 취모검吹毛劍입니까?”
“세 걸음 앞으로 나가라.”
“쓰는 자는 어떠합니까?”
“세 걸음 뒤로 물러나라.”
“어떤 것이 화상께서 사람을 위하는 한 구절입니까?”
“오로지 그대가 묻지 않을까 걱정할 뿐이다.”

대사가 상당하여 대중에게 말했다.
“알겠는가? 아는 이가 별로 없어 진중하구나.”
“말을 하지 않고 물음이 있을 때에는 어떠합니까?”
“삼문三門을 나서지도 않았는데 천 리 길을 갔다.”
“어떤 것이 자기입니까?”
“남쪽을 향하여 북두北斗를 본다.”
“광명과 경계가 모두 없어지면 다시 어떤 물건입니까?”
“앎[知].”
“앎이 무엇입니까?”
“건주建州의 구랑九郞이니라.”
“어떤 것이 제바종提婆宗입니까?”
“붉은 깃발이 왼쪽에 있는 것이니라.”

대사가 어느 스님에게 물었다.
“요새 어디서 떠났는가?”
“스님께서 말씀해 보십시오.”
“배 위의 장사꾼인 줄 알았더니, 원래 당주當州의 작은 손[小客]이구나.”
“두 머리, 세 머리는 묻지 않겠으니, 스님께서 본래의 면목을 곧바로 가리켜 주십시오.”
대사는 묵묵히 정좌正坐하였다.
“도적이 오면 때려야 하고, 손님이 오면 맞아야 하는데, 갑자기 손님과 도적이 함께 올 때에는 어찌해야 합니까?”
“집 안에 떨어진 짚신 한 켤레가 있느니라.”
“그 떨어진 짚신도 쓸 수가 있습니까?”
“만일 그대가 가져간다면 먼저는 흉하고 나중에는 불길하리라.”
“북두에 몸을 숨긴다는 뜻이 무엇입니까?”
“9․9는 81이니라.”
대사는 이어서 말했다.
“알겠는가?”
“잘 모르겠습니다.”
“1․2․3․4․5니라.”
“옛 부처님께서 나시기 전에는 어떠합니까?”
“천년 묵은 가지의 뿌리이니라.”
“나오신 뒤에는 어떠합니까?”
“금강이 힘을 쓰니 눈알이 나온다.”

대사가 상당하여 잠자코 있다가 말했다.
“크게 욕을 보셨소. 잘 있으시오.”

소주韶州 창락현昌樂縣 황련산黃連山 의초義初 선사
그의 호는 명미明微 대사이다. 어떤 이가 물었다.
“3승乘 12분교分敎는 묻지 않겠지만, 입을 열고서도 대답하지 않는 말을 스님께 청합니다.”
“보화대寶華臺 위에서 고금古今을 정하느니라.”
“어떤 것이 보화대 위에서 고금을 정하는 것입니까?”
“먹물 한 점이 몸을 바꾸어도 옮기지 않았다.” 스님 현고玄高의 일이다. 그가 죽으려 할 때에 그의 어머니에게 말하기를 “나는 조종趙宗의 집안에 큰 인연이 있으니 내생에는 그 집안에 태어나겠다”라고 하고 그 표시로 오른쪽 겨드랑이에 먹을 찍었는데, 조씨네 집에 태어난 아기가 과연 그 자리에 먹이 있었다는 고사이다.

“학인은 전체全體를 알지 못하겠으니, 스님께서 말씀해 주십시오.”
“신령한 자각[靈覺]은 비록 구르더라도 허공 꽃은 떨어지지 않는다.”
“옛길에 자취가 없으니, 어떻게 나아가겠습니까?”
“해[金烏]가 수미산을 돌아도, 원래 겁劫과 더불어 동시同時이다.”
“그렇다면 피안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황하黃河는 3천 년에 한 차례 맑아지느니라.”

광남廣南 유劉씨가 대사의 덕화를 듣고 고을로 청해서 설법케 했는데, 어떤 스님이 물었다.
“인왕人王과 법왕法王이 만날 때에는 어떠합니까?”
“두 거울이 서로 비추니, 만상萬象이 역력하니라.”
“법왕의 심요心要를 달마가 서쪽으로 전하고, 5조는 이를 조계의 6조에 전한 뒤에 다시는 의발을 전하지 않았다고 하는데, 모르겠습니다만 벽옥의 섬돌 앞에서는 무엇을 부촉하시렵니까?”
“돌염소[石羊]가 물위를 다니고, 나무말[木馬]이 밤에 어린 망아지로 변했다.”
“그렇다면 우리 국왕이 위덕이 있어서 만국이 조공을 바치러 오겠습니다.”
“당시 사람이 모두 태평가太平歌를 부른다.”
“어떤 것이 부처입니까?”
“가슴에 만卍자를 쓰고 등에는 원광圓光을 지고 있느니라.”
“어떤 것이 도입니까?”
대사가 두 손을 펴서 보이니, 스님이 다시 물었다.
“부처와 도의 거리는 얼마나 됩니까?”
“물[水]인 듯 물결[波]인 듯하니라.”


소주韶州 혜림慧林 홍구鴻究 선사 
호는 묘제妙濟 대사이다. 
어떤 스님이 물었다.
“천 성인이 항상 이 길을 걸었다고 하는데, 어떤 것이 이 길입니까?”
“과연 보지 못하는구나.”
“노조魯祖 화상이 벽을 향해 앉은 뜻이 무엇입니까?”
“어디에 씻을 곳이 있는가?”
“어떤 것이 급하고 간절한 일입니까?”
“둔한 놈이로구나.”
“어떤 것이 화상의 가풍입니까?”
“제방諸方의 사례[例]가 크니라.”
“선정과 지혜를 균등히 배워서 이理의 성품을 분명히 보는 것은 어떠합니까?”
“절[梵宇]을 새로 짓는 일이다.”

앞의 앙산仰山 서탑西塔 광목光穆 선사의 법손

길주吉州 자복資福 여보如寶 선사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근기에 감응하는 구절입니까?”
대사(여보)가 잠자코 있으니, 또 물었다.
“어떤 것이 현묘한 종지입니까?”
“그대는 나를 위해 문을 닫아 주게.”
“노조魯祖 화상이 벽을 향해 앉은 뜻이 무엇입니까?”
“전혀 관련이 없느니라.”
“어떤 것이 위로부터 전하는 참되고 바른 안목입니까?”
대사가 가슴을 치면서 말했다.
“아이고, 아이고.”
“여쭈어 본들 무슨 해로움이 있겠습니까?”
“곤하다.”
“그것도 배움을 받아들입니까?”
“땅에다 괭이질을 해서 허공을 가꾼 적은 없노라.”
“어떤 것이 납승衲僧의 급하고 절박한 곳입니까?”
“이 질문을 지나치지 않는다.”
“학인이 묻기 전에 스님께서 말씀해 주십시오.”
“흥.”
“제방諸方에서 모두가 묘한 작용을 하는데, 화상께서는 여기서 어찌하십니까?”
“흥.”
“옛사람은 망치를 쳐들거나 불자를 세웠는데, 그 이치가 무엇입니까?”
“아瘂.”
“어떤 것이 열반문涅槃門으로 통한 외길입니까?”
대사가 손가락을 한 차례 튀기고 또 두 손을 벌려 보이자, 스님이 말했다.
“어떻게 이해하오리까?”
“가을 달이 밝거늘 그대 스스로 8, 9일에 설치고 다니는 것이 아닌가?”
“어떤 것이 화상의 가풍입니까?”
“밥 먹은 뒤에 차 석 잔이니라.”

어느 날 대사가 방석[蒲團]을 번쩍 들고 대중에게 보이면서 말했다.
“불보살들과 이理에 들어간 성인들이 모두가 이 속에서 나왔다.”
그리고는 내동댕이치고 가슴을 헤치면서 말했다.
“어떤가?”
대중들이 아무도 대답하지 못했다.

어떤 스님이 물었다.
“학인이 처음으로 총림에 들어와서 여름도 다 끝나 가는데 화상의 가르침을 받지 못하였으니, 바라옵건대 손을 잡아서 건져 주십시오.”
대사가 그 스님을 때리면서 말했다.
“나도 주지를 한 이래로 한 스님의 눈도 멀게 한 적이 없다.”

어느 때 대사가 앉아서 한참 동안 가만히 있다가 좌우를 돌아보면서 말했다.
“알겠는가?” 
대중이 말했다.
“모릅니다.”
“모른다면 그대들을 속였구나.”

어느 날 대사가 방석을 머리에 얹고서 말했다.
“그대들은 이런 때에 함께 이야기하기 어렵다.”
대중이 아무도 대답하지 못했다. 대사는 앉으려 하다가 얼른 말했다.
“그래도 비슷할 뿐이다.”

앞의 관계灌谿 지한志閑 선사의 법손

지주池州 노조산魯祖山 교敎 화상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눈앞의 일입니까?”
“실같이 가는 대나무[絲竹]로는 아직 악기를 만들지 못하고, 시렁 위의 호리병박[葫蘆]도 역시 거두어 쓰지 못한다.”
“어떤 것이 쌍림雙林의 나무입니까?”
“모습 있는 몸속[有相身中]의 모습 없는 몸[無相身]이니라.”
“어떤 것이 모습 있는 몸속의 모습 없는 몸입니까?”
“금향산金香山 밑의 철곤륜鐵崑崙이니라.”
“어떤 것이 높은 봉우리에서 혼자 사는 사람입니까?”
“한밤중에 해가 밝고, 한낮에 3경更의 종을 치느니라.”
“어떤 것이 격格 밖의 일입니까?”
“교화의 인연이 끝난 뒤의 허공 저쪽이니라.”
“나가려 해도 문이 없을 때에는 어찌합니까?”
“이 둔한 친구야.”
“둔한 근기는 아니라 해도 당장 나아가려는데 문이 없을 때에는 어찌합니까?”
“신령스런 근기는 변제邊際를 의논하지 않고, 법을 끝없이 집착하는 이는 어둠 속에 있다.”
“어떤 것이 학인이 힘을 써야 할 곳입니까?”
“봄이 오면 풀은 스스로 푸르고, 달이 뜨니 이미 하늘이 밝았구나.”
“어떤 것이 힘을 쓰지 않을 곳입니까?”
“무너지는 산에서 돌덩이가 떨어지고, 평평한 개울에서 타오르는 불길이 흘러간다.”

위부魏府 흥화興化 존장存獎 선사의 법손

여주汝州 보응寶應 화상[또는 남원南院 제1세 주지. 즉 혜옹慧      顒 선사라고도 한다.]
상당하여 대중에게 말했다.
“붉은 살덩이 위에 천길 벽이 서 있다.”
이때에 어떤 스님이 물었다.
“붉은 살덩이 위에 천길 벽이 서 있다 함은 어찌 화상의 도가 아니겠습니까?”
“그렇다.”
그 스님이 선상을 흔들자, 대사가 “이 눈먼 나귀 놈[瞎驢]아” 하면서 때렸다.

대사가 어떤 스님에게 물었다.
“최근에 이디서 떠나왔는가?”
“장수長水에서 왔습니다.”
“동쪽으로 흐르는가, 서쪽으로 흐르는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왜 그런가?”
스님이 하직을 고하자, 대사가 때려서 법당에서 쫓아냈다.

어떤 스님이 와서 뵙자, 대사가 불자를 들었다. 이에 스님이 말했다.
“오늘 실례했습니다.”
대사가 불자를 놓아 버리니, 스님이 말했다.
“아직도 그런 것이 있네요.”
대사가 방망이로 때렸다.

대사가 어떤 스님에게 물었다.
“요즈음 어디서 떠나왔는가?”
“근래에 양주襄州에서 왔습니다.”
“무엇 하러 왔는가?”
“화상께 예배하려고 특별히 왔습니다.”
“때마침 보응寶應 노장이 없을 때에 왔군.”
그 스님이 할을 하자, 대사가 말했다.
“그대에게 있지 않다고 말했거늘 할을 해서 무엇 하겠는가?”
그 스님이 또 할을 하니, 대사가 때렸다. 그 스님이 절을 하자, 대사가 말했다.
“이 방망이의 본분은 그대가 나를 때리면 나도 그대를 때리기를 셋, 다섯 방망이 계속해서 이 이야기가 크게 행해지길 기대한 것이다.”

사명思明 화상이 서원西院에 살기 전에 뵈러 와서 절을 한 뒤에 아뢰었다.
“별로 좋은 선물이 없기에 허주許州에서 강서江西의 체도剃刀 하나를 사 가지고 와서 화상께 바칩니다.”
“그대가 허주에서 왔다면서 어떻게 강서의 체도를 구했는가?”
사명이 대사의 손을 한 차례 당기자, 대사가 말했다.
“시자야, 거두어들여라.”
사명이 소매를 떨치고 떠나자, 대사가 이렇게 말했다.
“아랄랄阿剌剌.”

어느 날 대사가 상당하여 말했다.
“제방에는 다만 줄탁동시(啐啄同時:안에서 쪼고 밖에서 쪼는 것을 동시에 함)의 안목만 갖추었지, 줄탁동시의 기용機用은 갖추지 못했다.”
이때에 어떤 스님이 불쑥 물었다. 
“어떤 것이 줄탁동시의 기용입니까?”
“작가作家를 만나면 줄탁하지 말지니, 줄탁동시를 잃게 된다.”
“이것도 아직 제가 물은 것에 대한 대답은 아닙니다.”
“그대가 물은 곳이란 또 무엇인가?”
“잃었습니다.”
대사가 때리자, 그 스님이 수긍하지 않았다. 그리고 나중에 운문雲門의 회상에서 두 스님이 앞의 일을 이야기하다가 한 스님이 말하기를 “당시에 남원의 방망이가 부러졌겠군” 하니, 그 스님이 이 말을 듣고 홀연히 크게 깨닫고는 남원이 대답한 말의 뜻을 비로소 알았다. 그 스님이 다시 여주로 문안을 오니, 대사가 이미 원적(圓寂:涅槃)한 뒤였다. 이어 풍혈風穴 화상을 참례하였다. 풍혈이 알아차리고 곧 물었다.
“상좌는 당시 남원 선사에게 줄탁에 관한 이야기를 물었던가?”
“그렇습니다.”
“알았는가?”
“이미 알았습니다.”
“그대는 어떻게 알고 있는가?”
“저는 당시 등불의 그림자 속을 걷고 있는 듯하여 비추고 있으면서도 드러내지 못했습니다.”
“그대는 알았다.”

앞의 보수寶壽 소沼 화상의 법손

여주汝州 서원西院 사명思明 선사
어떤 사람이 물었다.
“어떤 것이 가람伽藍입니까?”
“가시덤불의 총림이니라[荊棘叢林].”
“어떤 것이 가람 속의 사람입니까?”
“너구리[獾兒]와 오소리[狢子]니라.”
“어떤 것이 임제의 한 할[一喝]입니까?”
“천千 균鈞의 큰 활로는 다람쥐를 향해 쏘지 않는다.”
“화상의 자비는 어디에 있습니까?”
대사가 때렸다.

종의從漪라는 스님이 방부를 들인 지 10일 만에야 입을 열었다.
“불법을 이해한 사람이라고 말하지 마십시오. 화두를 든 사람을 찾았습니까?”
대사가 듣고서 잠자코 있었다. 종의가 다른 날 법당에 올라왔는데, 대사가 “종의여” 하고 부르니, 종의가 고개를 들었다. 이에 대사가 말했다.
“틀렸다.”
종의가 다시 세 걸음을 걸으니, 대사가 또 말했다.
“틀렸다.”
종의가 다시 가까이 다가가자, 대사가 말했다.
“아까 두 차례 틀렸다고 한 것은 상좌 쪽의 잘못인가, 아니면 사명 노장 쪽의 잘못인가?”
“종의의 잘못입니다.”
대사가 말했다.
“틀렸다.”
그리고는 이어서 말했다.
“상좌여, 여기서 여름을 지내라. 그대와 함께 이 두 가지 잘못을 헤아려 주리라.”
종의가 수긍하지 않고 떠났다. 나중에 상주相州의 천평산天平山에 살면서 앞의 이야기를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내가 행각을 할 때는 모진 바람에 휩쓸려서 여주로 갔는데, 서원西院 장로라는 이가 나를 감정하면서 연달아 세 번 틀렸다는 말을 하였고, 이어서 날더러 여름을 함께 지내면서 헤아려 보자고 하였다. 그러나 나는 그때 틀렸다고 여기지 않았기에 그곳을 떠났는데, 남쪽으로 가는 도중에야 문득 틀린 줄을 알았다.”[수산首山 성념省念 화상이 말하기를 “천평天平의 그런 말에 의하건대 꿈에도 서원을 보지 못했다. 무엇 때문에 나중 이야기가 있는가?”라고 하였다.]

보수寶壽 화상[제2세 주지]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조사입니까?”
“얼굴은 검고, 눈동자는 희니라.”
“화성化城을 차서 쓰러뜨릴 때는 어떠합니까?”
“죽은 사람은 베지 않는다.”
“베었다.”
대사가 이내 때렸다.

앞의 삼성三聖 혜연慧然 선사의 법손

진주鎭州 대비大悲 화상
어떤 스님이 물었다.
“위도 제거하고 아래도 없애고서 스님께서 곧바로 말씀해 주십시오.”
“내가 입을 열면 틀린다.”
“참으로 학인의 스승이십니다.”
“오늘 제자의 손에서 죽었구나.”

치주淄州 수륙水陸 화상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학인들이 마음을 쓸 곳입니까?”
“마음을 쓰면 틀린다.”
“한 생각[一念]도 일으키지 않을 때에는 어떠합니까?”
“쓸모없는 놈이로구나.”
“이 일을 어떻게 보임保任하리까?”
“제발 그러지 마라.”
“어떤 것이 최초의 한 구절입니까?”
대사가 문득 할을 했다.
“좁은 길에서 만날 때에는 어떠합니까?”
대사가 가슴을 움켜쥐고 한 번 때렸다.

앞의 위부魏府 대각大覺 화상의 법손

여주廬州 대각大覺 화상
어떤 이가 물었다.
“우두牛頭가 4조를 보기 전에는 어째서 새와 짐승이 꽃을 물고 왔습니까?”
“그러한 축생이 있었기 때문이니라.”
“4조를 본 뒤에는 어째서 꽃을 물고 오지 않았습니까?”
“그러한 축생이 없어졌기 때문이니라.”

여주廬州 징심원澄心院 민덕旻德 화상
흥화興化에 있을 때에 흥화 화상이 이런 설법을 하였다.
“만일 작가作家인 장수이거든 단도직입單刀直入해야지 다시는 망설이지 말라.”
이때 대사(민덕)가 나가서 절하고 일어나면서 할을 하니, 흥화도 할을 하였다. 대사가 또 할을 하니, 흥화도 다시 할을 하였다. 대사가 절을 하고는 무리 속으로 돌아가니, 흥화가 말했다.
“민덕이 오늘밤 흥화의 20방망이를 면했다. 비록 그렇다 하더라도 저 민덕이 알았더라면, 민덕은 그런 할을 하지 않았으리라.”

여주汝州 남원南院 화상
어떤 이가 물었다.
“필마匹馬와 단창單槍으로 올 때에는 어찌합니까?”
“내가 방망이를 깎기를 기다려라.”
“상상근기上上根器의 사람도 제접提接하십니까?”
“제접한다.”
“스님께서 제접해 주십시오.”
“평교(平交:벗)로 트자.”

대사가 새로 온 스님에게 물었다.
“근래에 어디서 떠났는가?”
“한상漢上에서 떠났습니다.”
“너도 잘못했고, 나도 잘못했구나.”
스님은 대답이 없었다.

대사가 새로 온 스님을 보자, 꼭 붙들고 말했다.
“어찌하겠는가, 어찌하겠는가?”
스님이 대답이 없으니, 대사가 말했다.
“30년 말타기를 했는데, 오늘 당나귀에게 차였다.”[어디서는 “말재주<馬伎>를 배웠다”라고도 했고, 어디서는 “말 타는 재주를 배웠다”라고도 하였다.]

어떤 스님이 새로 오자, 대사가 말하였다. 
“졌다.”
그리고는 주장자를 던졌다. 이에 스님이 말했다.
“그렇게 말을 하시다니요.”
대사가 문득 때렸다. 신수대장경에 의하면 이 부분에 제12권의 앞머리에서 나온 회양懷讓 선사의 제4세 법손 가운데 홍주洪州 황벽산黃蘗山 희운 선사의 법손인 진주鎭州 임제臨濟 의현義玄 선사까지의 내용이 중복되어 나오고 있으므로 다시 해석을 하지 않았다.




경덕전등록 제13권






회양懷讓 선사와 조계曹溪에서 따로 나온 이가 모두 77인이    다.[회양懷讓 선사의 제7세에서 제9세까지이고, 조계曹溪의 별출別出    제2세에서 제6세까지이다.]

회양懷讓 선사의 제7세 11인[7세를 혹 9세라고도 함]

영주郢州 파초산芭蕉山 혜청慧淸 선사의 법손 4인
영주郢州 흥양興陽 청양淸讓 선사
홍주洪州 유곡산幽谷山 법만法滿 선사
  [이상 2인은 기록에 보임]
영주郢州 흥양興陽 의심義深 선사
파초산芭蕉山의 제2세 주우住遇 선사
  [이상 2인은 기연할 어구가 없으므로 기록하지 않음]


길주吉州 자복資福 여보如寶 선사의 법손 4인
길주吉州 자복資福 정수貞邃 선사
길주吉州 복수福壽 화상
담주潭州 녹원鹿苑 화상
  [이상 3인은 기록에 보임]
담주潭州 보자報慈 덕소德韶 대사
  [1인은 기연할 어구가 없으므로 기록하지 않음]

여주汝州 보응寶應 화상의 법손 1인[곧 남원옹南院顒임]
여주汝州 풍혈風穴 연소延沼 선사

여주汝州 서원西院 사명思明 선사의 법손 1인은 기록에 보인다.
영주郢州 흥양興陽 귀정歸靜 선사

소주韶州 혜림慧林 홍구鴻究 선사의 법손 1인은 기록에 보인다.
소주韶州 영서靈瑞 화상

회양懷讓 선사의 제8세 6인

여주汝州 풍혈風穴 연소延沼 선사의 법손 4인
여주汝州 광혜廣慧 진眞 선사
여주汝州 수산首山 성념省念 선사 
  [이상 2인은 기록에 보임]
봉상鳳翔 장흥長興 화상
담주潭州 영천靈泉 화상
  [이상 2인은 기연할 어구가 없으므로 기록하지 않음]

담주潭州 보자報慈 귀진歸眞 대사 덕소德韶의 법손 2인
기주蘄州 삼각산三角山 지겸志謙 선사
영주郢州 흥양興陽 사탁詞鐸 선사
  [이상 2인은 기록에 보임]

회양懷讓 선사의 제9세 1인

여주汝州 수산首山 성념省念 선사의 법손 1인은 기록에 보인다.
분주汾州 선소善昭 선사
  [1인은 기록에 보이며, 찬송讚頌 권말卷末에 덧붙임] 

조계曹谿에서 따로 나온 제2세 30인

나부산羅浮山 정진定眞 화상의 법손 1인
나부산羅浮山 영운靈運 선사 
  [1인은 기연할 어구가 없으므로 기록하지 않음]

제공산制空山 도진道進 화상의 법손
형주荊州 현각玄覺 선사 
  [1인은 기연할 어구가 없으므로 기록하지 않음]

소주韶州 하회전下回田 선쾌善快 화상의 법손 1인
선오善悟 선사
  [1인은 기연할 어구가 없으므로 기록하지 않음]

사공산司空山 본정本淨 화상의 법손 1인
중사中使 양광정楊光庭 
  [1인은 기연할 어구가 없으므로 기록하지 않음]

연소緣素 화상의 법손 2인
소주韶州 소도진小道進 선사
소주韶州 유적遊寂 선사 
  [이상 2인은 기연할 어구가 없으므로 기록하지 않음]

기타祇陀 화상의 법손 1인
형주衡州 도천道倩 선사 
  [1인은 기연할 어구가 없으므로 기록하지 않음]

남양南陽 혜충慧忠 국사의 법손 5인[1인은 기록에 보임]
길주吉州 탐원산耽源山 진응眞應 선사[1인은 기록에 보임]
당唐 숙종肅宗 황제皇帝
당唐 대종代宗 황제
개봉開封 손지고孫知古
등주鄧州 향엄香嚴 유계惟戒 선사 
  [이상 4인은 기연할 어구가 없으므로 기록하지 않음]

낙양洛陽 하택荷澤 신회神會 대사의 법손 18인
황주黃州 대석산大石山 복림福琳 선사
기수沂水 몽산蒙山 광보光寶 선사
  [이상 2인은 기록에 보임]
자주磁州 법여法如 선사
회안군懷安郡 서은산西隱山 진평進平 선사
예양澧陽 혜연慧演 선사
하양河陽 회공懷空 선사
남양南陽 원진圓震 선사
의춘宜春 광부廣敷 선사
강릉江陵 행각行覺 선사
오대산五臺山 신영神英 선사
오대산五臺山 무명無名 선사
남악南嶽 호옥皓玉 선사
선주宣州 지만志滿 선사
부주涪州 낭朗 선사
광릉廣陵 영탄靈坦 선사
영주寧州 통은通隱 선사
익주益州 남인南印 선사
하남윤河南尹 이상李常
  [이상 16인은 기연할 어구가 없으므로 기록하지 않음]

조계曹谿에서 따로 나온 제3세 9인

하회전下回田 선오善悟 선사의 법손
담주潭州 무학無學 선사
  [1인은 기연할 어구가 없으므로 기록하지 않음]

형주衡州 도천道倩 화상의 법손
호남湖南 여보如寶 선사 
  [1인은 기연할 어구가 없으므로 기록하지 않음]

탐원산耽源山 진응眞應 화상의 법손
길주吉州 정수貞遂 선사 
  [1인은 기연할 어구가 없으므로 기록하지 않음]

자주磁州 법여法如 화상의 법손
형남荊南 유충惟忠 선사 
  [1인은 기연할 어구가 없으므로 기록하지 않음]

하양河陽 회공懷空 화상의 법손
채주蔡州 도명道明 선사 
  [1인은 기연할 어구가 없으므로 기록하지 않음]

오아산烏牙山 원진圓震 선사의 법손
오吳 두타頭陀
사면산四面山 법지法智 선사 
  [이상 2인은 기연할 어구가 없으므로 기록하지 않음]

오대산五臺山 무명無名 선사의 법손 1인
오대五臺 화엄華嚴 징관澄觀 대사 
  [1인은 기연할 어구가 없으므로 기록하지 않음]

익주益州 남인南印 화상의 법손 1인
의면義俛 선사 
  [1인은 기연할 어구가 없으므로 기록하지 않음]

조계曹谿에서 따로 나온 제4세 5인

형남荊南 유충惟忠 선사의 법손 4인[충忠 선사를 남인南印으로도 부    름]
도원道圓 선사
익주益州 여일如一 선사
봉국奉國 신조神照 선사
여산廬山 동림東林 아雅 선사 
  [이상 4인은 기연할 어구가 없으므로 기록하지 않음]

오吳 두타頭陀의 법손 1인
현고玄固 선사 
  [1인은 기연할 어구가 없으므로 기록하지 않음]

조계曹谿에서 따로 나온 제5세 4인

수주遂州 도원道圓 선사의 법손 1인은 기록에 보인다.
종남산終南山 규봉圭峰 종밀宗密 선사

봉국奉國 신조神照 선사의 법손
진주鎭州 상일常一 선사
활주滑州 지원智遠 선사
녹대鹿臺 현수玄邃 선사 
  [이상 3인은 기연할 어구가 없으므로 기록하지 않음]

조계曹谿에서 따로 나온 제6세 11인

규봉圭峰 종밀宗密 선사의 법손
규봉圭峰 온溫 선사
자은사慈恩寺 태공太恭 선사
흥선사興善寺 태석太錫 선사
만승사萬乘寺 종宗 선사
서성사瑞聖寺 각覺 선사
화도사化度寺 인유仁瑜 선사 
  [이상 6인은 기연할 어구가 없으므로 기록하지 않음]

녹대鹿臺 현수玄邃 선사의 법손
용흥龍興 염念 선사 
  [1인은 기연할 어구가 없으므로 기록하지 않음]

활주滑州 지원智遠 선사의 법손
팽문彭門 심용審用 선사
원소圓紹 선사
상방上方 진眞 선사
동경東京 법지法志 선사 
  [이상 4인은 기연할 어구가 없으므로 기록하지 않음]


회양懷讓 선사의 제7세

앞의 영주郢州 파초산芭蕉山 혜청慧淸 선사의 법손

영주郢州 흥양산興陽山 청양淸讓 선사
어떤 스님이 물었다.
“대통지승불大通智勝佛이 10겁을 도량에 앉았어도 불법이 현전하지 않아서 불도를 이루지 못했을 때는 어떠합니까?”
대사가 대답했다. 
“그 질문이 매우 지당하니라.”
“이미 도량에 앉았는데 어째서 불도를 이루지 못했습니까?”
“그가 부처가 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홍주洪州 유곡산幽谷山 법만法滿 선사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도입니까?”
대사가 잠자코 있다가 말했다. 
“알겠는가?”
“학인은 잘 모르겠습니다.”
“도를 이야기할 때는 말끝에 소리 없이 심오한 종지를 거양擧揚하니, 정녕 선의 요체를 바로 지금 알아들어야지 넋 놓고 따로 나중을 기약해서는 안 된다.”

앞의 길주吉州 자복資福 여보如寶 선사의 법손

길주吉州 자복資福 정수貞邃 선사[제2세 주지]
어떤 스님이 물었다.
“화상께서 고인古人을 보았을 때에 어떤 뜻을 얻었기에 문득 쉬셨습니까?”
대사가 원상圓相을 그려 보였다.
“어떤 것이 고인의 노래입니까?”
대사가 또 원상을 그려 보였다.
“어떤 것이 최초의 한 구절입니까?”
“세계가 아직 갖추어지기 전에 그대[闍梨]도 여기에 있었느니라.”
“백장百丈이 자리를 걷은 뜻이 무엇입니까?”
대사가 잠자코 있었다.
또 물었다.
“고인이 말하기를 전삼삼前三三 후삼삼後三三이라 한 뜻이 무엇입니까?”
“그대의 이름은 무엇인가?”
“아무개입니다.”
“차나 마시거라.”

대사가 대중에게 말했다.
“강江을 사이에 두고 자복資福의 찰간刹竿을 보고서 문득 돌아가더라도 그의 발꿈치에 30방망이를 때려야 하거늘, 하물며 강을 건너온 때이겠는가?”
그때 어떤 스님이 나서려고 하자, 대사가 말했다.
“함께 이야기할 만하지 못하다.”
“어떤 것이 옛 부처님의 마음입니까?”
“산하대지山河大地이니라.”

길주吉州 복수福壽 화상
어떤 스님이 물었다.
“조사의 뜻과 교리의 뜻이 같습니까, 다릅니까?”
대사가 손을 벌렸다.
“문수는 사자를 타고 보현은 코끼리를 탔는데, 석가는 무엇을 탑니까?”
대사가 손을 들고 말했다.
“사사邪邪.”
담주潭州 녹원鹿苑 화상
어떤 스님이 물었다.
“다른 국토에서 부처를 이루면 달리 이름이 있습니까?”
대사가 원상을 그려 보였다.
“어떤 것이 녹원의 한 길입니까?”
“길료吉嘹 새의 이름이다.
의 혀끝으로 물어라.”
“어떤 것이 문을 닫고 수레를 만드는 것입니까?”
“남악南嶽의 돌다리이니라.”
“어떤 것이 문을 나서서 바퀴 자국과 합하는 것입니까?”
“주장자 끝에 짚신이 걸렸느니라.”

대사가 상당하여 손을 벌리고 말했다.
“천하의 노화상과 여러분들의 목숨이 모두 이 손안에 있다.”
어떤 스님이 나서서 말했다.
“거둘 수 있습니까?”
“천태산天台山의 오른쪽 돌다리이니라.”
“저는 그렇지 않습니다.”
“복유상향伏惟尙饗.”
“어떤 것이 세존께서 설함 없이 설한 것입니까?”
“수미산이 거꾸러졌다.”
“어떤 것이 가섭의 들음 없는 들음입니까?”
“대해大海가 다 말랐느니라.”

앞의 여주汝州 보응寶應 화상의 법손[남원南院이라고도        한다.]

여주汝州 풍혈風穴 연소延沼 선사
그는 여항餘杭사람이니, 처음에 월주越州 경청鏡淸 순덕順德 대사에게 출가하였다. 그러나 깊은 경지에 이르지 못하다가 이윽고 양주襄州의 화엄원華嚴院에 가서 수랑守廊 상좌를 만나니, 그가 곧 여주汝州 남원南院의 시자侍者였다. 그리하여 남원의 종지를 은밀히 탐구하게 되었다. 
처음 남원을 뵐 때는 절도 하지 않은 채 불쑥 물었다.
“입문入門해서는 모름지기 주인[主]를 가려내야 하는데, 그 참된 뜻을 스님께서 분별해 주십시오.”
남원이 왼손으로 무릎을 만지자, 대사가 할을 하였다. 남원이 다시 오른손으로 무릎을 만지자, 대사가 또 할을 하였다. 이에 남원이 왼손을 들면서 말했다.
“이것은 그대를 따르겠지만.”
남원이 다시 오른손을 들면서 말했다.
“이것은 또 어찌하겠는가?”
대사가 말했다.
“눈멀었구나.”
남원이 주장자를 들려는데, 대사가 말했다.
“무엇을 하려고요? 주장자를 뺏어서 노화상을 때려도 말하지 못했다고 하지 마십시오.”
남원이 말했다.
“30년 주지를 지냈으나, 오늘에야 누런 얼굴의 절강성 사람이 문턱에 와서 비단 짜는 꼴을 보았다.”
“화상은 마치 발우도 얻지 못한 이가 거짓으로 시장하지도 않다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그대는 언제 남원에 왔는가?”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노승이 분명한 일을 그대에게 물었느니라.”
“그래도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우선 앉아서 차나 마셔라.”
대사가 비로소 제자의 예를 올렸다. 이후부터 위산潙山과 앙산仰山의 예언에 따라 세상에 드러나서 무리를 모으니, 남원의 법이 이로 말미암아 모든 지역에서 크게 떨쳤다. 
대사가 상당하여 대중에게 말했다.
“무릇 현묘한 법을 배우는 안목은 근기에 따라서 적절하게 곧바로 대용大用이 나타나는 것이니, 사소한 절차에 스스로 구애되어서는 안 된다. 설사 말하기 전에 깨달았다 해도 껍질에 걸리고 경계에 미혹하는 것이요, 비록 말한 뒤에 정밀하게 통한다 하여도 가는 곳마다 미친 소견[狂見]을 면치 못한다. 그대들 여러 사람을 관찰하건대 전부터 남으로 인해 앎을 일으키느라, 밝고 어두운 두 갈래 길로 미혹했지만, 이제는 이것을 일시에 쓸어버리고 낱낱의 사람마다 큰 사자가 땅에 버티고 선 채 외마디 포효하면서 천 길 벼랑 위에 서 있는 것처럼 하리니, 누가 감히 똑바로 바라보겠는가? 만일 쳐다보는 이가 있으면 당장에 그의 눈을 멀게 하리라.”
대사는 또 정주郢州 관아[衙]에 가서 자리에 올라 대중에게 보였다.
“조사祖師의 심인心印은 마치 무쇠 소의 기용[鐵牛之機]과 같아서 
가면 도장 문채가 머물고, 머무르면 도장 문채가 깨진다. 만일 가지도 머물지도 않는다면, 도장 문채를 찍는 것이 옳은가, 찍지 않는 것이 옳은가. 대중들 중에서 말할 수 있는 자가 있는가?”
이때 노피盧陂 장로가 물었다.
“학인에게는 무쇠 소의 기용이 있으니, 스님께서는 도장을 그냥 두지 마십시오.”
대사가 말했다.
“원래 고래를 잡기 위해서 맑고 큰 물에 들어가야 하는데, 안타깝게도 개구리 걸음을 하며 진흙 모래 위를 헤매는구나.”[󰡔경공사원卿公事苑󰡕에서 말하기를 “와蛙는 마땅히 와(洼:개울)로 써야 한다”고 하였으니, 이른바 말<馬>이 진흙 개울<渥洼水>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풍혈風穴이 말한 뜻은 훌륭한 말이 맑은 물에서 나왔으나 도리어 진흙 개울에서 뒹군다고 한 것이 그 뜻이다. 이 책에서 ‘와蛙’라 함은 청개구리<蝦蟆>이니, 어찌 말 걸음을 하고서 뒹굴 수 있겠는가? 전은 장張과 선扇의 반절이다.]
노피가 가만히 생각하고 있으니, 대사가 할을 하고서 말했다. 
“장로는 어째서 말을 하지 않는가?”
노피가 나아가 말하려고 하는데, 대사가 불자로 입을 때리며 말했다.
“앞의 말을 기억하는가? 말해 보라.”
노피가 입을 열려고 하는데, 대사가 불자로 또 한 번 때렸다. 그러자 목주(牧主:군수)가 말했다.
“불법佛法과 왕법王法은 똑같군요.”
“어떤 도리를 보았는가?”
“끊어야 할 것을 끊지 않으면, 도리어 재앙을 불러들이게 됩니다.”
대사가 자리에서 내려왔다.

대사가 상당하니, 어떤 스님이 물었다.
“스님께서는 어떤 가풍의 곡조를 노래하고, 누구의 종풍宗風을 이으셨습니까?”
“초연히 위음威音부처님 밖을 멀리 벗어났거늘, 부질없이 한 다리를 쳐들고서 저사底沙부처님을 찬탄하는구나.”[󰡔본생경本生經󰡕에서 말하기를 “아주 오랜 옛날에 저사底沙라는 부처님께서 계셨고, 이때에 두 보살이 있었는데 하나는 석가이고, 하나는 미륵이었다. 그 부처님께서 관찰하니 석가보살만이 홀로 마음이 아직 익지 않았을 뿐, 다른 제자들의 마음은 이미 익고 있었다. 이에 생각하기를 ‘한 사람의 마음은 교화하기 쉽고 뭇 사람의 마음은 빨리 다스리기 어렵다’ 하고, 바로 설산에 올라가서 보굴寶窟 속에 들어 큰 선정에 들었다. 이때에 석가보살이 외도 선인의 몸으로 있으면서 약을 캐러 산에 올라왔다가 저사부처님을 보았다. 부처님을 뵙고는 기뻐하며 공경하는 마음을 내어 한 발을 들고 합장하고서 부처님을 향하여 일심으로 우러러 뵙되 잠시도 눈을 깜빡이지 않았다. 이렇게 7일 낮과 7일 밤을 지니면서 게송으로 부처님을 찬탄하기를 ‘하늘 위나 하늘 아래에 부처님과 같을 이가 없고, 시방세계에도 견줄 이가 없나이다. 세계에 있는 것을 내가 두루 보았지만 모두가 부처님과 같은 이가 없나이다’라고 하였다. 이 까닭에 9겁劫의 수행을 초월하여 91겁 만에 아뇩보리阿耨菩提를 이루었다”라고 하였다.]
“옛 곡조에 음률이 없는데 어찌해야 화합해서 가지런해질 수 있겠습니까?”
“나무 닭이 밤중에 울고, 풀로 만든 개가 대낮에 짖는다.”
“어떤 것이 나무불南無佛을 한 번 부르는 것입니까?”
“봉시등鳳翅燈이 이어져서 집 앞을 비추고, 달그림자가 아미산[娥眉]에 걸려서 얼굴을 기울이며[䫌] 본다.”[비䫌자는 필匹과 미迷의 반절이다. 고개를 갸우뚱한다는 뜻이다.]
“어떤 것이 부처입니까?”
“어떤 것이 부처가 아닌가?”
“현묘한 말씀을 깨닫지 못하겠으니, 스님께서 직접 말씀해 주십시오.”
“집이 해문주海門洲에 있으니, 동쪽에서 돋은 해가 가장 먼저 비춘다.”
“둥근 달이 중천에 떴을 때는 어떠합니까?”
“하늘에서 굴러온 적이 없으니, 마음대로 땅에다 그 스님이 스스로를 둥근 달에 견주었으므로 제지한 말이다.
 묻어라.”
“어떤 것이 부처입니까?”
“바람결에 우짖는 나무말에게는 굴레를 씌울 수 없고, 등에 뿔이 솟은 진흙 소에게는 아프게 채찍질을 한다.”
“어떤 것이 광혜廣慧의 검입니까?”
“죽은 놈은 베지 않는다.”
“옛 거울을 아직 갈지 않았을 때는 어떠합니까?”
“천마天魔의 간담이 찢어지느니라.”
“검을 간 뒤에는 어떠합니까?”
“헌원軒轅의 도가 없어졌느니라.”
“둥근 달이 중천에 닿았을 때는 어떠합니까?”
“둥근 하늘[團天][또는 원천圓天이라고도 한다.]에만 있지 않고 마을 집에도 거처하느니라.”
“창과 방패[矛盾]를 처음 만든 것은 걱정을 서로서로 막은 것이지만, 제망帝網의 밝은 구슬은 그 일이 어떠합니까?”
“산을 만든 것은 아홉 길 높이에 오르기 위함이요, 한 줌의 흙은 천 근의 무게를 누른다.” 
“어떠합니까?”
“어떠한가?”
“간목(干木:周의 名士)이 문후(文侯:魏의 왕)를 받들 때에 그 마음을 아는 이가 몇이나 됩니까?”
“소년 시절에는 용사龍蛇의 진陣을 부수기도 했는데, 늙어서는 도리어 나무꾼들의 노래나 듣는다.”
“어떤 것이 청량산淸涼山 안의 주인입니까?”
“한 구절이 무착의 물음에도 미치지 못하여, 아직껏 촌스런 중으로 남아 있다.”
“언구言句가 근기에 맞지 않을 때에는 어떻게 도를 드러냅니까?”
“대묘大昴 서쪽에 뜨는 샛별을 말한다.
가 설사 하늘과 똑같더라도 해는 정오에 이르지 않는다.”
“어떤 것이 화상의 가풍입니까?”
“학鶴이 구고(九皐:매우 으슥하고 깊은 곳)에 있지만 날개를 펼쳐서 날기가 어렵고, 말은 천 리를 멀다 않지만 바람을 쫓기란 아득하구나.”
“어떤 것이 부처입니까?”
“다른 사람이 듣지 못하게 하라.”
“아직까지 있은 적이 없는 말을 스님께서 말씀해 주십시오.”
“저자에 들어서서는 긴 휘파람을 불다가 집에 돌아가서는 짧은 옷을 입는다.”
“여름이 끝난 오늘에 스님의 뜻은 어떠하십니까?”
“거위[鵝]를 보호한 눈[雪] 같은 계행은 연민하지 않으나, 법랍[蠟]을 받은 이의 얼음 같은 계행은 기뻐한다.”
“고향에 돌아갈 길이 없을 때는 어떠합니까?”
“붉게 부어오른 자리를 찬찬히 엿보아라. 그대의 평생을 빛내게 하려 할 뿐이었다.” 어머니의 은혜를 찬양함이니 고향에 돌아가라는 뜻이다.


대사가 고을 관아의 청을 받아서 상당하였는데, 어떤 스님이 물었다.
“인왕人王과 법왕法王이 마주 볼 때는 어떠합니까?”
“크게 춤추면서 임천林泉을 도니, 세간에는 기쁨도 근심도 없다.”
스님이 말했다.
“함께 무슨 일을 이야기하겠습니까?” 
“호표암虎豹巖 앞에 일찍이 연좌宴坐했다가, 송골매 깃발[隼旟] 군사의 전진을 알리는 깃발이다.
의 광채 속에서 참다운 종풍을 드날린다.”
“잎을 따고 가지를 찾는 일은 묻지 않겠습니다. 어떤 것이 근원根源을 바로 끊는 것입니까?”
“공양을 받기 위해 새벽에 들어가고, 집[堂][또는 당(塘:못․제방)이라고 쓴 곳도 있다.]에 갔다가 비를 맞으면서 돌아온다.”
“온갖 물음은 모두가 억지로 꾸민 것이니, 스님께서 바로 근원을 가리켜 주십시오.”
“귀가 뚫린 나그네[穿耳客]는 만나기 드물지만, 배에다 표시를 하는 이[刻舟人]는 만나기 쉽더라.”
“바로 이런 때를 당해서는 어떠합니까?”
“눈먼 거북이 나무를 만나니 편하기는 하지만, 고목 나무에 꽃이 피는 격이니 만물 밖의 봄이다.”
“어떤 것이 비밀한 방[密室] 안의 일입니까?”
“팔짱을 끼고 고금을 논하는데, 얼굴을 돌린 채 눈썹을 찡그린다.”
“흑룡[驪龍]의 턱 밑에 있는 여의주를 어떻게 얻습니까?”
“일찍이 바닷가에서 마른 대[竹]로 찔렸는데, 지금까지 거문고를 치고만 있구나.” 이는 󰡔방편경方便經󰡕의 이야기이니, 아우가 형의 눈을 빼고 보물을 빼앗앗는데, 형은 거문고에 능해서 그 거문고 소리로 인해 보물을 되찾는다는 이야기이다. 

“큰 배가 허공에 흔들릴 때에는 어떻게 돛을 답니까?”
“스스로 가슴을 치지 말아야 하니, 온 집안이 보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바람을 쫓아도 잡기 어려우니, 앞길이 어떠하겠습니까?”
“파사(波斯:페르시아) 사람의 옷이 벗겨졌다.”
“왕자로 탄생한 이도 급제를 빌려야 합니까?”
“한 구절로 선객의 물음을 빛내려 하나, 삼함三緘으로 고인의 기틀을 등질까 걱정이다.”
“인연을 따라 변치 않는 이가 갑자기 뜻을 아는 사람을 만날 때에는 어떠합니까?”
“망사를 입고 삿갓을 비켜 쓰니 1천 봉우리 속이요, 물을 끌어 채소밭에 대니 오로봉五老峰 앞이다.”
“배[舟]에다 표시를 해서 찾아도 얻지 못하니, 당체當體의 일을 어찌해야 합니까?”
“큰 공훈은 상을 타지 않으니, 사립문 앞은 풀이 절로 깊구나.”
“예로부터 고인古人들은 도장[印]과 도장이 서로 계합한다고 했는데, 어떤 것이 도장의 안목입니까?”
“경솔하게 말하는 이가 기틀의 변화를 아니, 젖은 영혼에게 눈물을 닦는 수건을 준다.”
“여름 동안[九夏] 수고한 이에게 상을 주고자 하니, 스님께서 천거해 보십시오.”
“굴에서 벗어나 열어젖히니 용동龍洞의 비이고, 물결에 뜬 스님이 솟아나니 발우와 바랑의 꽃이다.”
“가장 처음의 자자일[自恣]인데 어떤 사람을 상대하리까?”
“한 줌의 향기로운 풀을 들었다가 아직 내려놓지 않았는데, 육환장六環杖의 방울[金錫] 소리가 허공을 뒤흔든다.”
“조사께서 전해 오신 것을 스님께서 분명하게 말씀해 주십시오.”
“개 한 마리는 헛되이 짖으나, 원숭이[猱] 천 마리는 실제로 싸운다[啀].”[노猱는 마땅히 노㺜라고 써야 한다. 노㺜는 노奴와 도刀의 반절이다. 긴 털을 가진 사나운 개다. 노猱는 원숭이<猴>이니, 맞는 뜻이 아니다. 애啀의 음은 애崖이며, 개가 싸운다는 뜻이다.] 
“왕도王道와 불도佛道의 거리는 얼마나 됩니까?”
“풀로 만든 개가 짖을 때에 천지가 합하고, 나무 닭이 운 뒤에는 조사의 등불이 빛난다.”
“조사의 심인心印을 스님께서 지워 주십시오.”
“조사의 달이 허공을 넘으매 거룩한 지혜가 원만하니, 어느 산의 소나무인들 푸르디푸르지 않으리오?”
“대중이 다 모였으니, 스님께서 설법을 해주십시오.”
“맨발인 사람이 토끼를 쫓았는데, 나막신을 신은 사람이 고기를 먹는다.”
“공왕空王의 교법을 널리 살핀 적이 없으니, 대략이나마 현묘한 이치에 의지해서 말씀해 주십시오.”
“백옥에 흠이 없는데도 변화卞和는 발꿈치가 끊겼다.”
“어떤 것이 무위無爲의 구절입니까?”
“보배 촛불이 바로 난간에 드러나니, 붉은 광채가 태허太虛를 비춘다.”
“어떤 것이 기틀에 응하는 한 구절입니까?”
“바람을 이용하여 불을 피우니, 큰 힘이 들지 않는다.”
“맨 얼굴이 서로 드러날 때는 어떠합니까?”
“얼굴을 가리는 비단을 들어라.”
“어떤 것이 납승衲僧의 기질[氣息]입니까?”
“무릎으로 다니고 팔꿈치로 기는 것을 대중은 보았다.”
“‘붉은 국화가 반쯤 피어서 이미 가을이 오니, 달이 둥글어 창문을 비추네’라는 말의 뜻은 무엇입니까?”
“봉래도[蓬島]에 달이 뜬 것 누구나 바라보지만, 지난밤에 서리가 내린 것은 그대는 모르는가?”
“어떤 것이 곧바로 끊는 한 길[一路]입니까?”
“곧바로 끊음이 우회하는 것이니라.”
“어떤 것이 사자후입니까?”
“누가 그대에게 승냥이[野干]의 울음을 하라던가?”
“어떤 것이 진리[諦實]의 말입니까?”
“마음이 벽 위에 걸린 것이니라.”
“마음으로도 능히 반연하지 못하고, 입으로도 말할 수 없을 때는 어떠합니까?”
“사람을 만나거든 단지 그렇게만 말하라.”
“용이 맑은 못에 숨었을 때는 어떠합니까?”
“이마에 도장을 찍히고 꼬리를 잡혔구나.”
“성품에 맡겨 떴다 잠겼다 할 때는 어떠합니까?”
“소를 끌어다 난간에 들이지 않느니라.”
“있고 없음이 모두 갈 곳이 없을 때는 어떠합니까?”
“3월에 한가롭게 꽃 사이로 길을 노니는데, 한 집안이 근심스럽게 빗속에 문을 닫는구나.”
“말하고 침묵하는 것은 이離와 미微에 상관하니[조肇 법사法師의 󰡔보장론寶藏論󰡕 「이미체정품離微體淨品」에서 말하기를 “들어가면 이離요 나오면 미微이니, 들어가는 이를 알면 바깥 경계가 의지할 바 없고, 나오는 미를 알면 안의 마음이 할 바가 없다. 안의 마음이 할 바가 없으면 온갖 소견이 옮기지 않고, 바깥 경계가 의지할 바가 없으면 만유萬有가 일어나지 않는다. 만유가 일어나지 않으면 생각들이 흩어지지 않고, 온갖 소견이 옮기지 않으면 적멸하여 부사의하니, 이른바 본래 맑은 본체는 이미離微하다고 하리라. 들어감에 의하여 이離라 하고, 작용에 의하여 미微라 하였으니, 혼동하면 하나의 이미 없음이 되어서 본체가 맑아 물듦이 없으므로 맑음도 없다. 본체가 미묘하여 있다고 할 수 없고, 있지 않으므로 없음도 없다”고 하였다.] 어떻게 해야 통하면서 범함이 없겠습니까?”
“항상 강남의 3월을 생각하니, 자고새[鷓鴣] 우는 곳에 들꽃이 향기롭다.”
“백을 알고 천을 감당할 때는 어떠합니까?”
“밤에 다니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니 밝거든 오라.”
“몸 둘 곳이 없을 때는 어떠합니까?”
“웅이탑熊耳塔이 열리니 두드리는 나그네가 없더라.”
“어찌해야 좋습니까?”
“속히 끊어 버려라.” 어찌해야 좋을까 하는 마음 자체를 끊으라고 한 것이다.

“온 땅 위의 사람이 와서 일시에 물으면 어떻게 대답하시겠습니까?”
“백아伯牙[혹은 자기子期라고도 한다.]의 거문고 소리를 아는 이가 별로 없다.”
“앙굴마라[央堀]가 부처님을 핍박할 때는 어떠합니까?”
“여러분이 보호하라.”
만회감萬迴憨이 물었다.
“심인心印을 아직 밝히지 못했으니, 어찌하여야 들어갈 수 있겠습니까?”
“유수酉帥가 항복했다는 말은 들었으나, 염소를 끌고 구슬을 바치러 오는 이는 아직 보지 못했다.”
“어떤 것이 임제 휘하의 일입니까?”
“걸(桀:暴君)이 키우는 개는 요(堯:聖君)를 보고도 짖는다.”
“어떤 것이 화살촉을 무는 일입니까?”[󰡔태평광기太平廣記󰡕에서 말하였다. “수隋의 말엽에 독군모督君謨라는 이가 있었다. 눈을 감고도 활을 잘 쏘았는데, 그가 눈에다 조준을 하면 눈에 맞고 입에다 조준을 하면 입에 맞았다. 이때에 왕영지王靈智라는 이가 독군모에게 활쏘기를 배워서 그 묘함이 극진했다. 그리하여 독군모를 죽이고 자기가 명성을 독차지하려 하니, 독군모가 단도短刀 하나를 들고 화살이 날아오는 대로 칼로 끊어 버렸다. 그 가운데 화살 하나만은 독군모가 입을 벌려 받고는 그 촉을 씹고 웃으면서 말하기를 ‘네가 3년 동안 배웠지만 화살촉 무는 법은 가르치지 않았다’고 하였다.”]
“맹랑하게도 언사를 빌려서 말의 뿔[馬角]을 이야기하는구나.”
“선정과 지혜를 닦지 않았거늘, 어찌하여 부처를 이루는 것을 의심하지 않습니까?”
“황금 닭은 오로지 새벽을 알리는데, 칠통漆桶에서는 검은빛을 뿜는구나.”
“한 생각이 만년萬年일 때는 어떻습니까?”
“바위 위를 털다가 선인의 옷[仙衣]이 해어졌다.”
“큰 종을 치기 전에는 어떠합니까?”
“대천세계에 음률이 퍼지지 않은 곳이 없지만, 묘하게 그윽한 운치를 머금은 것을 어찌 분별할 수 있으랴?”
“종을 친 뒤에는 어떠합니까?”
“석벽石壁과 산하山河에도 걸림이 없으니, 가림이 없어져서 열린 뒤에는 엿듣는 것을 좋아한다.”
“어떤 것이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산과 물이 다함을 찾으나 산은 다함이 없다.”
“대인의 모습[大人相]을 어째서 갖추지 못하는 것입니까?”
“올빼미가 밤중에 새매를 속인다.”
“예전과 지금이 자못 나뉘었으니, 스님께서 은밀한 요체를 가리켜 주십시오.”
“겹겹으로 겹친 혀를 끊어라.”
“어떤 것이 대인大人의 모습입니까?”
“홀딱 발가벗었느니라.”
“화상께서의 두 때[二時] 아침과 낮을 말한다.
는 어떠합니까?” 
“머루 넝쿨을 휘어잡고, 지팡이를 끄느니라.”
“어떤 것이 손님 가운데 주인입니까?”
“저자에 들어가서 두 눈동자가 멀었느니라.”
“어떤 것이 주인 가운데 손님입니까?”
“천자의 수레를 타고 돌아오는 길에 일월의 광명[兩曜]이 새로우니라.”
“어떤 것이 손님 가운데 손님입니까?”
“눈썹을 찡그리면서 흰 구름에 앉는다.”
“어떤 것이 주인 가운데 주인입니까?”
“삼척검[三尺]의 칼날을 갈아서 불평하는 사람을 벤다.”
“어떤 것이 괭이 끝의 뜻입니까?”
“산 앞이 한 조각 푸름이니라.”
“어떤 것이 부처입니까?” 
“장림산杖林山 밑의 대[竹] 뿌리 채찍이니라.”[󰡔서역기西域記󰡕에서 말하기를 “옛적에 마갈타국摩竭陀國에 바라문이 있었는데, 석가모니부처님의 신장이 장육(丈六:16자)이란 말을 듣고 믿지 않았다. 그리하여 16자 되는 대 지팡이로 부처님의 신장을 재려 하였으나, 항상 지팡이 높이보다 16자 위로 솟았다. 이리하여 차츰 높아지므로 실제 키를 끝내 재지 못하고 드디어 지팡이를 던지고 가 버렸는데, 그 뿌리에서 대밭<竹林>이 생겨 지금도 울창한 대나무가 산골짜기를 덮고 있다”고 하였다.]
대사는 대송大宋 개보(開寶, 973) 6년 계유癸酉 8월 1일에 법상에 올라 게송을 말하고, 15일에 가부좌를 맺은 상태로 열반하였다. 떠나기 하루 전에 손수 글을 써서 단월들에게 이별을 알리니, 수명은 87세이고 법랍은 59세였다.

앞의 여주汝州 서원西院 사명思明 선사의 법손

정주郢州 흥양興陽 귀정歸靜 선사
처음 서원西院에 가서 선사를 뵙고 물었다.
“물으려다가 묻지 않는 때는 어떠합니까?”
서원이 얼른 때렸다. 대사(귀정)가 한참동안 가만히 있으니, 서원이 이렇게 말했다.
“만일 방망이라 부르면 눈썹과 수염이 몽땅 빠지리라.”
대사가 이 말끝에 크게 깨달았다.

어떤 스님이 물었다.
“스님은 어느 가풍의 곡조를 부르며, 종풍宗風은 누구를 이었습니까?”
“소실산小室山 앞에 다른 길이 있지 않느니라.”

앞의 소주韶州 혜림慧林 홍구鴻究 선사의 법손

소주韶州 영서靈瑞 화상
어떤 사람이 물었다.
“어떤 것이 부처입니까?”
대사가 할喝을 하면서 말했다.
“그대는 촌사람이구나.”
“어떤 것이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10만 8천 리이니라.”
“어떤 것이 본래의 마음입니까?”
“비로자나의 정수리에 앉아서 태허太虛 속을 들락거리는구나.”

앞의 풍혈風穴 연소延沼 선사의 법손

여주汝州 광혜廣慧 진眞 선사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광혜廣慧의 경계입니까?”
“소사小寺의 앞이요, 자경資慶의 뒤이니라.”
“어떤 것이 화상의 가풍입니까?”
“가래 자루와 괭이이니라[杴爬钁子].”

여주汝州 수산首山 성념省念 선사
그는 내주萊州 사람으로서 성은 적狄씨이다. 고향의 남선원南禪院에서 공부를 하다가 풍혈風穴에게 법을 얻었다.
처음에 수산에 머물면서 제1세 주지가 되었는데, 개당開堂하는 날에 어떤 스님이 물었다.
“스님은 어느 집안의 곡조를 노래하며, 종풍은 누구의 것을 이어받았습니까?”
“소실少室의 바위 앞에서 직접 손바닥을 보아라.”
“다시 큰 소리로 한마디 화답을 주시기 바랍니다.”
“지금도 여러 사람이 알기를 바라고 있다.”

대사가 대중에게 말했다.
“불법을 국왕과 대신, 힘 있는 단월에게 부촉하여 등불과 등불이 이어지듯이 끊임없이 상속하여 오늘에 이르게 하였다. 대중은 말해 보라. 상속한 것이 무엇인가?”
대사가 잠자코 있다가 말했다.
“오늘 일은 모름지기 가섭迦葉 사형師兄이라야 되겠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화상의 가풍입니까?”
“한마디로 1천 강江의 입을 절단하니, 만 길 봉우리 앞에서 비로소 현묘함을 얻는다.”
“어떤 것이 수산首山의 경계입니까?”
“한결같이 뭇 사람이 보는 데 맡겨둔다.”
“어떤 것이 경계 속의 사람입니까?”
“방망이를 맞아보겠는가?”
스님이 절을 하자, 대사가 말했다.
“또한 다른 때를 기다려라.”
“어떤 것이 조사께서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바람이 불고 햇볕이 비춘다.”
“위로부터의 여러 성인들은 어디를 향해 밟아 나갔습니까?”
“쟁기를 끌고 가래질을 했느니라.”
“옛사람이 방망이를 들거나 불자를 세운 뜻이 무엇입니까?”
“외로운 봉우리에는 투숙객이 없느니라.”
“그것이 무슨 뜻입니까?”
“그루터기를 지키는 사람은 아니겠지.”
“어떤 것이 보리菩提의 길입니까?”
“여기서 양현襄縣까지는 5리里이니라.”
“위로 향하는 일은 어떠합니까?”
“왕래하기가 쉽지 않으니라.”
“여러 성인들이 다 말하지 못한 곳을 스님께서 말씀해 주십시오.”
“만 리의 신령한 광명도 몽땅 하나의 비춤이니, 누가 감히 해와 같이 가지런할 수 있으랴?”
“한 나무도 또한 꽃이 피겠습니까?”
“꽃이 핀 지 오래니라.”
“모르겠습니다만 열매도 맺었습니까?”
“지난밤에 서리를 맞았다.”
“임제臨濟의 할과 덕산德山의 방망이는 어떤 일을 밝힌 것입니까?”
“그대가 말해 보라.”
스님이 할을 하니, 대사가 말했다.
“눈먼 놈아.”
스님이 다시 할을 하니, 대사가 말했다.
“이 눈먼 놈아, 이렇게 시끄럽게 할을 해서 무엇 하겠는가?”
스님이 절을 하니, 대사가 문득 때렸다.

어떤 이가 물었다.
“사부대중이 둘러쌌는데, 대사께서는 어떤 법을 말씀하시렵니까?”
“풀을 치면 뱀이 놀라기 마련이다.”
“어떻게 손을 써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아까는 거의 상신실명喪身失命할 뻔했다.”
“두 용이 여의주를 다투는데 어느 쪽이 얻습니까?”
“얻은 자는 잃는다.”
“얻지 못한 쪽은 어찌됩니까?”
“여의주가 어디에 있던가?”

어떤 이가 물었다.
“유마維摩가 침묵하자 문수가 찬탄했는데, 그 뜻이 무엇입니까?”
“그 당시의 청중廳衆은 반드시 이렇지는 않았으리라.”
“유마가 침묵한 뜻은 무엇입니까?”
“은혜를 아는 이는 적고 은혜를 저버리는 이는 많구나.”
“온갖 부처님이 모두 이 경에서 나왔다고 하는데, 어떤 것이 이 경입니까?”
“소리를 낮추어라, 소리를 낮춰.”
“어떻게 받아 지니오리까?”
“절대로 더럽히지 말라.”
“세존께서 입멸하신 뒤에 법은 누구에게 전해졌습니까?”
“좋은 물음인데 대답할 사람이 없구나.”

어떤 이가 물었다.
“색色을 보면 문득 마음을 본다고 하지만, 모든 법은 형상이 없거늘 무엇을 가지고 보겠습니까?”
“한 집에 일이 생기면 백 집이 바쁘니라.”
“학인은 잘 모르겠습니다. 스님께서 다시 가르쳐 주십시오.”
“사흘 뒤에 살펴보라.”

어떤 이가 물었다.
“어떤 사람이 수도에 들어가서 거룩한 임금을 뵈어야 하는데, 겨우 당관潼關 낙양에서 수도인 장안으로 향하는 곳에 있는 고을 이름이다.
에 왔다가 돌아가는 때는 어떠합니까?”
“여전히 둔한 놈이로구나.”
“길에서 도를 통달한 사람을 만났을 때 말이나 침묵으로 대하지 않으면, 무엇으로 대합니까?”
“깜짝할 사이에 삼천 세계가 있느니라.”
“한 구절을 분명히 요달하면 백억百億을 초월한다고 하는데, 어떤 것이 한 구절입니까?”
“가는 곳마다 사람들에게 이야기하라.”
“궁극의 일[畢竟事]이 어떠합니까?”
“다만 이렇게 말함을 알라.”
“어떤 것이 옛 부처의 마음입니까?”
“진주鎭州의 나복(蘿蔔:무)의 무게가 세 근이더라.”
“허공은 무엇을 체體로 삼습니까?” 
“내가 그대의 다리 밑에 있구나.”
“화상께서 어찌하여 저의 다리 밑에 계십니까?”
“그대가 당달봉사임을 알기 때문이다.”
“어떤 것이 현묘함 속의 명백함입니까?”
“할 말이 있거든 말해야 한다.”
“이 뜻이 무엇입니까?”
“말이 없는 귀신도 성을 낸다.”
“어떤 것이 납승衲僧의 안목입니까?”
“그 물음도 여전히 합당치 않다.”
“합당한 뒤에는 어찌하시겠습니까?”
“무엇을 감당하겠는가?”
“어찌하여야 뭇 인연을 여의겠습니까?”
“천년에 한 차례 만나느니라.”
“여의지 않을 때에는 어떠합니까?”
“뭇 사람의 앞에 서 있구나.”
“어떤 것이 크게 안락한 사람입니까?”
“한 법도 보지 않는 것이다.”
“무엇으로 사람들을 지도하십니까?”
“그대가 말을 알아들어서 고맙다.”
“무엇이 항상 존재하는 사람입니까?”
“어지러이 달려서 무엇 하는가?”
“하나의 털도 나기 전에는 어떠합니까?”
“길에서 귀를 뚫은 나그네를 만난다.”
“난 뒤에는 어떠합니까?”
“다시 망설일 필요가 없느니라.”
“줄 없는 거문고를 뜯어보십시오.”
대사가 잠자코 있다가 말했다.
“들었는가?”
“듣지 못했습니다.”
“왜 큰 소리를 듣지 못하는가?”
“학인이 오랫동안 미혹함에 빠져 있었으니, 스님께서 한 차례 지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노승에게는 그러한 부질없는 공부가 없다.”
“화상께서는 어찌 그러하십니까?”
“다니고자 하면 다니고, 앉고자 하면 앉기 때문이다.”
“어떤 것이 범부와 성현을 떠난 구절입니까?”
“숭산嵩山의 안安 화상이니라.”
“그것이 화상의 극치의 경지가 아니겠습니까?”
“남악南岳의 회양懷讓 선사이니라.”
“학인은 총림에 막 들어왔으니, 스님께서 가르침을 내려주십시오.”
“그대가 여기에 온 지 얼마나 되는가?”
“이미 겨울과 여름을 겪었습니다.”
“남들에게 잘못 이야기하지 말라.”
“어떤 사람이 탕진蕩盡하고 온다면, 스님께서 지도해 주시겠습니까?”
“탕진하는 일이야 없지 않겠지만, 그게 누구인가?”

어떤 스님이 말했다.
“오늘은 바람은 드세고 달빛은 찹니다.”
대사가 말했다.
“승당僧堂에 몇 사람이나 앉고 누웠느냐?”
스님이 대답이 없으니, 대사가 말했다.
“나를 속이는구나.”
“어떤 것이 범음상梵音相입니까?”
“나귀의 울음과 개 짖는 소리니라.”
“어떤 것이 곧바로 질러가는 외길입니까?”
“산간山間에 있기도 하고 나무 밑에 있기도 하느니라.”
“조계曹谿의 한 구절을 천하의 사람이 들었다는데, 화상의 한 구절은 어떤 사람이 듣습니까?”
“삼문三門 밖을 나서지 않았느니라.”
“어째서 삼문 밖을 나서지 않습니까?”
“천하의 사람에게 이야기하라.”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화상께서 사람을 속이지 않는 안목입니까?”
“조심하라. 겨울이 닥쳐 온다.”
“끝내는 어찌 되겠습니까?”
“곧 봄바람이 오겠지.”
“멀리서 듣건대 화상께서는 실 한 오라기도 걸치지 않았다고 하던데, 와서 보건대 어째서 지켜야 할 산이 있습니까?”
“무슨 말을 하는가?”
스님이 할을 하였다. 대사도 할을 하니, 스님이 얼른 절을 하였다. 이에 대사가 말했다.
“그대에게 20방망이를 때려야겠다.”
대사는 다음에 보안산寶安山 광교원廣敎院에 살았는데, 거기서도 제1세 주지였다. 나중에 대중의 청에 따라 성에 들어와서 보응원寶應院[곧 남원南院의 제3세 주지였다.]에 사니, 세 곳의 법석에는 항상 바다와 같은 대중이 모였다.
순화(淳化, 992) 3년 12월 4일 오시午時에 상당하여 이런 게송을 대중에게 보였다.

올해 나이 67세이니
늙고 병든 채 인연에 따라 세월을 보낸네.
금년에 내년 일을 예언하나니
내년에는 오늘 아침 해를 기억하리라.
今年六十七        老病隨緣且遣日 
今年記却來年事    來年記著今朝日

순화 4년의 어느 달 어느 날에 이르자, 앞의 예언과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상당하여 대중을 하직하고 게송을 말했다.

백은白銀의 세계에 금색金色의 몸이니
유정과 무정이 함께 하나의 참[一眞]이네.
밝음과 어둠이 다할 때 둘 다 비추지 않으니
해가 기운 오후에야 온몸[全身]이리라.
白銀世界金色身    情與非情共一眞
明暗盡時俱不照    日輪午後見全身

말을 마치자 편안히 앉았다가 해가 기울 무렵에 열반에 드니, 수명은 68세였다. 다비를 마친 뒤에 사리를 거두었다.

앞의 담주潭州 보자報慈 귀진歸眞 대사 덕소德韶의 법손

기주蘄州 삼각산三角山 지겸志謙 선사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부처입니까?”
대사(지겸)가 대답했다.
“속히 절을 세 번 하라.”

영주郢州 흥양興陽 사탁詞鐸 선사[제3세 주지]
스님이 물었다.
“부처님의 세계와 중생의 세계의 거리가 얼마입니까?”
“말할 수 없다.”
“참[眞]이 어떤 것입니까?”
“비슷한 것이 있다.”
“일산日傘의 덮개가 홀연히 보배 좌대 앞에 이르렀는데, 스님은 지금 까치둥지의 시절과 무엇이 다릅니까?”
“말할 수 없다.”
“바로 지금이군요.”
“그대에게 불법 하나를 보냈구나.”

앞의 여주汝州 수산首山 성념省念 선사의 법손

분주汾州 선소善昭 선사
상당하여 대중에게 말했다.
“무릇 한 구절의 말에는 반드시 세 가지 현묘한 문[三玄門]을 갖추어야 하고, 현묘한 문 하나마다 세 가지 요체[三要]를 갖추어야 한다. 비춤도 있고 작용도 있어야 하는데, 혹은 먼저 비추고 나중에 작용하며, 혹은 먼저 작용하고 나중에 비추며, 혹은 비춤과 작용이 동시이며, 혹은 비춤과 작용이 동시가 아니다. 먼저 비추고 나중에 작용함은 그대들과 함께 헤아리는 것이 필요하지만, 먼저 작용하고 나중에 비춤은 그대들도 모름지기 그러한 사람이라야 한다. 비춤과 작용이 동시이면 그대는 어떻게 대항하겠으며, 또 비춤과 작용이 동시가 아니라면 어떻게 정박하겠는가?”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대도大道의 근원입니까?”
“땅을 파 들어가면서 푸른 하늘을 찾는구나.”
“어째서 그렇습니까?”
“그윽한 현지玄旨를 알아채야 한다.”
“어떤 것이 손님 가운데의 손님입니까?”
“합장한 채 암자 앞에서 세존께 묻는다.”
“어떤 것이 손님 가운데의 주인입니까?”
“대면해도 짝이 없다.”
“어떤 것이 주인 가운데의 손님입니까?”
“구름이 피어오르면서 바다 위를 가로지르고, 칼을 뽑아서 용문龍門을 뒤흔든다.”
“어떤 것이 주인 가운데의 주인입니까?”
“삼두육비三頭六臂가 천지를 놀라게 하고, 성난 나타那吒 비사문천왕毘沙門天王의 태자이니, 머리가 셋이요, 팔이 여섯이라 한다.
가 제석천의 종을 친다.”


조계曹谿에서 따로 나온 제2세

앞의 남양南陽 혜충慧忠 국사의 법손

길주吉州 탐원산耽源山 진응眞應 선사
혜충慧忠 국사의 시자로 있었을 때다. 어느 날 국사가 법당 안에 있는데, 대사가 들어오자 국사가 한쪽 발을 내려놓았다. 대사가 이를 보고서 얼른 나가더니, 한참 있다가 다시 돌아왔다. 이에 국사가 말했다.
“아까는 어떤 생각을 했었느냐?”
“누구에게 말해야 합니까?”
“나는 그대에게 물었다.”
“어디서 저를 보셨습니까?”
대사는 또 물었다.
“백 년 후에 어떤 이가 극칙極則의 일을 물으면 어찌하시겠습니까?”
“딱하기도 하구나. 호신부護身符는 찾아서 무엇 하려고 하느냐?”
다른 날, 대사가 광주리를 들고 방장으로 돌아가자, 국사가 물었다.
“광주리에 무엇이 있는가?”
“청매靑梅입니다.”
“장차 무엇에 쓰려는가?”
“공양에 쓸 것입니다.”
“푸른 것을 어떻게 공양에 쓰겠느냐?”
“이것으로써 성의를 표시합니다.”
“부처님께서는 공양을 받지 않으신다.”
“저는 다만 이렇습니다만, 화상께서는 어찌하시겠습니까?”
“나는 공양하지 않겠다.”
“왜 공양하지 않으십니까?”
“나에게는 과일이 없기 때문이다.”

백장百丈 회해懷海 화상이 늑담산泐潭山에서 수레를 끄는데, 대사가 말했다.
“수레는 여기에 있는데 소는 어디에 있소?”
백장이 이마를 때리니, 눈을 비비고 자세히 보았다. 

마곡麻谷이 물었다.
“십이면관음十二面觀音이 어찌 성인이 아니겠소?”
“그렇소.”
마곡이 대사를 한 차례 때리니, 대사가 말했다.
“그대는 아직 이 경지에 도달하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국사의 제삿날에 재齋를 차리는데, 어떤 스님이 물었다.
“국사께서 오실까요?”
“아직 타심통他心通을 갖추지 못했다.”
“또 재는 차려서 무엇 하겠습니까?”
“세제世諦를 단절하지 않기 위해서이다.”



낙양洛陽 하택荷澤 신회神會 대사의 법손

황주黃州 대석산大石山 복림福琳 선사
그는 형주荊州 사람으로서 성은 원元씨이다. 본래 유교의 집안에 태어나서 어릴 적에 불교에 귀의하였고, 현정사玄靜寺의 겸저謙著 선사에게 머리를 깎고 계를 받았다. 
행각을 다니다가 하택荷澤 선사를 만나서 무념無念의 영지靈知는 인연을 따라 있지 않다는 말을 듣고는 환하게 진제眞諦를 보았다. 나중에 황주黃州의 대석산大石山에 가서 암자를 짓고 머무니, 사방에서 좌선하는 무리가 매우 많이 와서 의지했다. 
당나라 흥원興元 2년(786)에 입멸하니, 수명은 82세였다.

기수沂水 몽산蒙山 광보光寶 선사
그는 병주幷州 사람으로서 성은 주周씨이다. 처음에 하택 화상을 뵙고 곁에서 부지런히 시봉을 하였는데, 어느 날 하택이 이런 말을 했다.
“그대의 이름이 광보光寶라 하는데, 정定의 체體로써 이름 지은 것이다. 보배는 자기에게 있는 것이고, 광명은 밖에서 구하는 것이 아니니, 그대의 뜻대로 사용하여도 조금도 모자람이 없고, 오랜 세월 비춤을 받아도 잠시도 쉬는 적이 없다. 그대가 이를 믿는가?”
대사(광보)가 대답했다.
“믿기는 믿습니다만 광명과 보배는 같습니까, 다릅니까?”
“광명이 곧 보배요 보배가 곧 광명이니, 어찌 같고 다름의 이름이 있을 수 있겠는가?”
“눈과 귀도 소리와 색을 반연할 때에 같이 움직이는 것입니까, 아니면 따로 도는 것입니까?”
“따로 행하거나 어울린다고 하는 것은 그만두고, 그대는 어떤 법을 보고 소리와 색의 체體라고 하는 것인가?”
“스님의 말씀처럼 소리와 색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
하택이 이어 말했다.
“만일 그대가 소리와 색의 체體가 공한 것을 요달하며, 또한 눈과 귀 따위의 여러 감관과 범성凡聖이 평등해서 허깨비 같은 줄도 믿으면, 맞서서 행한다거나 서로 어울린다는 그 이치가 분명하게 드러나리라.”
대사가 이 말에 깨닫고는 절을 하고 물러가, 기수沂水의 몽산蒙山에 숨어 살았다. 
당나라 원화元和 2년(807)에 입적하니, 수명은 90세였다. 


조계曹谿에서 따로 나온 제5세

앞의 수주遂州 도원道圓 선사의 법손

종남산終南山 규봉圭峰 종밀宗密 선사
그는 과주果州의 서충西充 사람으로서 성은 하何씨이다. 집안이 본래 크고 번성하였으므로 어릴 적부터 유서儒書에 정통하였고, 20세쯤부터는 불교의 경전을 탐구하였다. 
당나라 원화元和 2년에 과거를 보러 가는 길에 조원造圓 화상의 법석法席에 잠시 들렀는데, 흔연히 뜻이 맞아서 머리를 깎아 달라 하였고 그 해에 구족계를 받았다.
어느 날 승가대중을 따라 고을 아전인 임관任灌의 집에 재齋를 올리러 갔다가 맨 아랫자리에서 차례에 따라 경을 받을 때에 󰡔원각경圓覺經󰡕 12장章을 얻었는데, 그 경을 다 보기 전에 감격하여 눈물을 흘리고는 돌아와서 깨달은 취지를 조원에게 고했다. 이에 조원이 그를 어루만지면서 말했다.
“그대는 장차 원돈圓頓의 교법을 크게 펴리라. 이는 모든 부처님들이 그대에게 주신 것이다. 떠나라. 이 한 구석에 막혀 있지 말라.”
대사(규봉)가 눈물을 흘리면서 명을 받들어 하직하고 떠났다. 그리하여 형남荊南의 장張 선사[남인南印]를 뵈었는데, 장 선사가 말했다.
“교법을 전할 사람이니, 마땅히 수도에 가서 불교를 펴라.”
대사는 다시 낙양洛陽에 가서 조照 선사[봉국奉國 신조神照]를 뵈었는데, 신조가 말했다. 
“보살인 줄을 누가 알아채겠는가?”
이윽고 양한襄漢으로 가니, 어떤 병든 스님이 󰡔화엄소華嚴疏󰡕 한 질을 주었는데, 바로 수도에 있는 징관(澄觀:청량) 대사가 저술한 것이었다. 대사는 일찍이 이것을 익힌 바가 없었지만 한 번 보고서도 강의를 하였다. 그는 스스로 󰡔화엄소󰡕를 만난 것을 기뻐하면서 말했다.
“예전에 여러 스님들이 저술한 것은 그 종지를 궁구한 것이 드물어서 이 소疏의 언사言辭의 연원이 유창하고 그윽하며 심오한 진리를 밝힌 것만 못하다. 나는 선법은 남종南宗을 만났고, 교법은 󰡔원각경󰡕을 만나서 한마디에 마음 바탕[心地]이 트이고 한 권 안에서 의리義理의 하늘이 밝아졌는데, 이제 또 이렇게 절세의 소를 얻어서 내 정성을 모두 쏟게 되었도다.”
강을 마치고 나서 소疏를 쓴 사람을 한 번 보고자 하였지만, 때마침 문인門人인 태공太恭이 팔을 끊어서 은혜를 보답하였으므로 우선 글로써 소를 쓴 사람에게 보내어 멀리서 제자의 예를 올리면서 몇 차례 서신을 주고받았다. 이윽고 태공의 상처가 나으니, 그때서야 비로소 수도로 가서 제자의 예로 뵈었다. 징관이 그에게 말했다.
“비로자나의 화장세계華藏世界에서 나를 따라 거닐 이는 오직 그대뿐이다.”
대사는 징관에게 입실한 뒤에 날마다 그 덕을 새롭게 하여서, 방편[筌]을 인정하고 형상에 집착하는 허물을 영원히 여의었다.
북쪽에 있는 청량산淸凉山을 갔다가 다시 악현鄂縣의 초당사草堂寺로 돌아와서 살았고, 오래지 않아  다시 절 남쪽에 있는 규봉난야圭峰蘭若로 들어가서 살았다.
대화大和 때에 어명을 받고서 대궐에 들어가자 자색가사[紫衣]를 하사받았으니, 황제가 자주 법의 요체를 물었고 조정의 선비가 모두 그를 흠모하였다. 특히 상국(相國:정승)인 배휴裵休는 진리의 전당에 깊숙이 들어와 교법을 전해 받고 훌륭한 외호자外護者가 되었다.
대사는 선학자禪學者와 교학자敎學者가 서로 헐뜯고 다투는 것을 보고 마침내 󰡔선원제전禪源諸詮󰡕을 저술하였다. 즉 여러 사람이 서술한 것을 필사로 채록해서 선문의 근원이 되는 도리를 드러냈으니, 문자와 게송들로 1장藏[혹은 100권]을 만들어 후손들에게 물려주었다.
그는 서문[都序]에서 이렇게 말했다.
“선禪은 인도의 말로서, 갖추어 말하면 선나禪那이다. 한역하면 사유수思惟修, 또는 정려靜慮라 하니, 모두가 선정과 지혜를 통틀어 부른 말이다. 원源이라 함은 모든 중생들의 본각本覺인 참 성품으로서, 불성佛性이라고도 하고 심지心地라고도 한다. 깨달으면 지혜[慧]라 하고 닦으면 선정[定]이라 하는데, 선정[定]과 지혜[慧]를 통틀어서 선禪이라 하니, 이 성품이 선의 근원이므로 선원禪源이라 말한 것이다.
또는 선나이행禪那理行이라고도 하는데, 이것의 본원本源은 선의 이치[禪理]이고 정념情念을 잊고 계합하는 것은 선의 행[禪行]이기 때문에 이행理行이라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 수집한 여러 사람의 저술은 선의 이치를 담론한 것은 많으나 선의 행을 말한 것은 적기 때문에 선원禪源으로 제목을 붙인 것이다.
요즈음 참 성품[眞性]만을 지목하여 선이라 하는 이가 있는데, 이는 이행理行의 지취旨趣를 요달하지 못한 것이고, 또 중국과 인도의 말을 분별하지 못한 것이다. 그러나 참 성품을 여의고 따로 선의 체體가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중생들이 참[眞]을 미혹해서 티끌에 계합하는 것을 이름하여 산란散亂이라 하고, 티끌을 등지고 참에 계합하는 것을 선정이라 할 뿐이다. 만일 본래의 성품을 곧바로 논한다면 진眞도 아니고 망妄도 아니며, 등짐도 아니고 합하는 것도 아니며, 선정도 아니고 산란도 아니거늘 무엇을 선禪이라 말하겠는가? 하물며 이 참 성품은 선문의 근원일 뿐만 아니라 만법의 근원이기 때문에 법성法性이라 이름하고, 중생들이 미혹하고 깨치는 근원이기 때문에 여래장식如來藏識[󰡔능가경楞伽經󰡕에 나온다.]이라 이름하고, 모든 부처님들의 만 공덕의 근원이기 때문에 불성佛性[󰡔열반경涅槃經󰡕 등에 나온다.]이라 하고, 보살들의 만행의 근원이므로 심지心地라고도 하는 것이다.[󰡔범망경梵網經󰡕 「심지법문품心地法門品」에 말하기를 “이것이 여러 부처님의 본원이요, 행해야 할 보살도의 근본이며, 이는 대중의 여러 불자들의 근본이다”라고 하였다.]
만행萬行이 6바라밀波羅蜜을 벗어나지 않나니, 선문禪門은 다만 그 여섯 바라밀 가운데 하나로서 다섯째에 해당하거늘, 어찌 참 성품을 모두 지목해서 하나의 선행禪行이라 하겠는가? 그러나 선정의 한 가지 행行이 가장 뛰어나고 묘해서 능히 성품 위의 무루지혜無漏智慧를 일으킬 수 있나니, 온갖 묘한 작용과 만행萬行과 만덕萬德과 나아가 신통과 광명이 모두 선정에서 일어난다. 그러므로 3승乘의 학인이 거룩한 도를 구하고자 하면 반드시 선을 닦아야 하니, 이것을 여의고서는 문門이 없고, 이것을 여의고서는 길이 없다. 심지어는 염불을 하여 정토에 태어나기를 구하는 것도 16관觀의 선법이나 염불삼매念佛三昧나 반주삼주般舟三昧를 닦아야 한다.
또 참 성품은 더럽지도 않고 깨끗하지도 않은 것이라서 범부와 성인의 차이가 없지만, 선에는 깊기도 하고 얕기도 한 계급의 차이가 있다. 이른바 다른 계교를 품은 채 위를 좋아하고 아래를 싫어하면서 닦는 것은 외도선外道禪이요, 인과를 올바로 믿고는 있지만 역시 좋아하고 싫어함으로써 닦는 것은 범부선凡夫禪이요, 나[我]의 공함이란 치우친 진리만을 깨닫고서 닦는 것은 소승선小乘禪이요, 나[我]와 법法이 둘 다 공하여 참 이치를 나타낸 바를 깨닫고서 닦는 것은 대승선大乘禪이다.[앞의 네 가지에는 모두 4색계色界와 4무색계無色界의 차이가 있다.] 만일 스스로의 마음이 본래 청정하여 원래 번뇌가 없고, 무루 지혜의 성품이 본래 구족함을 단박에 깨달아서 이 마음이 궁극적으로 부처와 차이가 없다는 데 의지해 닦는 것은 최상승선最上乘禪이며, 또한 여래청정선如來淸淨禪이라고도 하고, 일행삼매一行三昧라고도 하고, 진여삼매眞如三昧라고도 한다. 이는 온갖 삼매의 근본이니, 만약 생각 생각마다 닦아 익히면 자연히 점차적으로 백천 삼매를 얻게 된다. 달마達磨의 문하에서 차례차례 전하는 것이 이 선법이다.
달마가 오기 전에 옛날 여러 사람이 이해한 것은 모두가 예전의 4선禪․8정定이니, 여러 고승들이 그것을 닦아서 모두 공용功用을 얻었다. 남악南嶽과 천태天台는 3제諦의 이치에 의지해서 3지止와 3관觀을 닦게 하였으니, 교의가 가장 원만하고 묘하기는 하나 들어가는 문호門戶와 차례는 역시 앞의 여러 선법의 행상行相과 같았다. 오직 달마가 전한 것만이 단박에 불체佛體와 동등해서 여러 다른 종문과 크게 다르니, 이 때문에 종宗을 익힌 자는 그 취지를 얻기가 어렵다. 얻으면 속히 성스러움을 이루어서 조속히 보리를 증득하지만, 잃으면 삿됨을 이루어서 신속히 도탄塗炭에 빠진다.
선조先祖들은 우매함을 고치고 잃는 것을 막기 위하여 한 사람이 한 사람씩에게 전했지만, 후대에 와서는 이미 의지할 것이 생겼으므로 천 등불에 맡겨 천 곳을 비추게 하였다. 그러나 법이 오래되어 폐단을 이루면서 잘못 아는 이가 많아져, 경론經論을 배우는 학인들의 의혹이나 비방도 많아졌다. 원래 부처님께서는 돈교頓敎와 점교漸敎를 말씀하셨고, 선법에는 돈문頓門과 점문漸門을 열었는데, 두 교법과 두 선법은 각기 서로가 부합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요즈음 강의하는 자는 점문의 뜻만을 치우치게 드러내고, 선禪하는 이는 돈문의 종지만을 치우치게 전파하니, 선사와 강사가 서로 호월胡越의 거리만큼 멀리 벌어지게 되었다.
나[宗密]는 전생에 어떤 업을 지어서 이 마음을 익혔는지는 모르겠지만, 스스로도 해탈치 못하고서 남의 속박을 풀어 주려고 하는가? 법을 위해서는 몸과 목숨을 잊었고, 남을 연민하는 것은 감정과 정신에 사무쳤기 때문이다.[󰡔정명경淨名經󰡕에서 말하기를 “자기에게 속박이 있으면서 남의 속박을 풀어 준다고 함은 옳지 못하다. 그러나 그만두려 해도 그칠 수 없으니 이는 전생의 습기[宿習]를 고치기 어렵기 때문임을 알겠다”라고 하였다.]
매번 법과 사람이 어긋나서 법이 사람의 병이 됨을 한탄하였으므로 따로 경과 율과 논과 소를 지어서 계戒와 정定과 혜慧의 문을 크게 열었다. 돈오를 드러내어 점수에 자량資糧을 주어서 조사의 말이 부처님의 뜻에 부합됨을 증명하였다. 뜻은 이미 본말을 자세히 보였지만, 글이 많고 방대하여서 찾기 어려운 탓에 배우는 이는 많으나 뜻[志]을 얻은 이는 적었다. 하물며 자취가 이름[名]과 모습[相]에 걸렸으니, 어찌 금과 놋쇠를 구별하리오? 헛되이 수고할 뿐 근기의 감응은 아직 보지 못했다.
비록 부처님께서 중생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더욱 늘리는 것도 하나의 수행이라고 설하셨으나, 스스로 애견愛見을 막기 어려울 것이 염려되었기 때문에 마침내 대중을 버리고 산에 들어가 선정과 지혜를 균등히 익혀서 앞과 뒤로 생각을 쉰 것이 무릇 10년이었다.[앞뒤라 함은 중간에 조칙을 받고 대궐에 들어가서 성안에 2년을 살다가 청을 올리고서야 다시 산으로 돌아온 것을 이른다.] 미세한 습기와 감정의 일고 꺼짐이 고요한 지혜에 밝게 드러나고, 차별법의 뜻이 벌려져서 공심空心에 나타나서 마치 빈틈으로 비추는 햇빛에 가는 티끌이 아물거리고 맑은 못 밑의 그림자가 분명한 것과 같아졌으니, 어찌 공연히 침묵을 지키는 어리석은 선법이나 글줄만을 찾는 미친 지혜에다 견주겠는가?
그러나 본래부터 스스로의 마음을 요달해서 모든 교법을 분별했기 때문에 심종心宗에 마음이 간절했고, 또 모든 교법을 분별해서 마음 닦는 법을 이해했기 때문에 교의敎義에 더욱 정성을 다하였다. 교리[敎]라 함은 부처님과 보살들이 남기신 경론이요, 선禪이라 함은 여러 선지식들이 서술하신 어구와 게송이니라. 다만 불경은 펼쳐서 대천세계의 팔부대중을 망라하였고, 선의 게송은 간략하여서 이곳의 한 종류 근기에만 나아갔으니, 대중을 망라하면 드넓어서 의지하기 어렵고, 한 근기에 나아가면 핵심을 가리켜서 쓰기가 쉬우니, 이제 찬술하여 모으는 뜻이 바로 여기에 있다.”
배휴裵休는 서문에서 이렇게 말했다.
“여러 종파의 문하에는 모두 통달한 사람[達人]이 있다. 그러나 제각기 익힌 바에 안주해서, 통달한 이는 적고 국집하는 이는 많게 되었다. 수십 년 이래로 조사의 법이 더욱 파괴되어서 이어받은 것으로 문호를 삼아 제각기 벌여 놓은 채 경과 논을 무기로 삼아서 서로 서로가 공격을 일삼는다. 감정이 갑옷[函]을 만드는 사람과 화살을 만드는 사람에 따라 변천하고,[󰡔주례周禮󰡕에 말하기를 “함인函人은 갑옷을 만드는 사람이다”라고 하였고, 󰡔맹자孟子󰡕에 말하기를 “화살 만드는 사람이 갑옷 만드는 사람보다는 어찌 어질지 못하겠는가? 하지만 화살 만드는 사람은 사람이 상하지 않을 것을 걱정하고, 갑옷 만드는 사람은 사람이 상할까 걱정한다”라고 하였으니, 모두가 익히는 술법이 그렇게 만든 것이다. 지금의 학자들은 다만 종도宗徒를 따라 피차 서로 비난할 뿐이다.] 법은 나와 너를 따라서 높고 낮아지니, 시비가 분분히 일어나서 판가름을 할 수가 없게 되었다. 그렇다면 지난날 세존과 보살과 제방의 종파의 교종敎宗이 충분히 뒷사람들로 하여금 논쟁을 일으키게 하여 번뇌의 병만 더하게 할 뿐이니, 무슨 이익이 있으랴?
이에 규산圭山 대사가 오래 탄식하다가 말하기를 ‘내가 이때를 당하여 침묵하고만 있을 수 없다’고 하였다. 그리하여 여래의 세 가지 교의로써 선종의 세 가지 법문을 인증하니, 병․소반․비녀․팔찌를 녹여 하나의 금으로 만들고, 소락酥酪과 제호醍醐를 섞어서 한 맛이 되게 하는 것과 같고, 벼리[綱]와 옷깃[領]을 잡으면 들리는 것이 모두가 순조롭고,[󰡔순자荀子󰡕가 말하기를 “마치 갑옷의 옷깃을 들 때에 다섯 손가락을 구부리기만 하여도 끌려오는 것처럼 순조롭게 되는 것이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고 하였다.] 도회지를 의거하여 오는 자가 모두 같은 곳에 이르게 되는 것과 같다.[󰡔주역약례周易略例󰡕에 말하기를 “도회지를 의거해서 사방에서 오는 이를 보면 천지사방<六合>으로부터 아무리 많이 와도 많은 것이 아니다”라고 하였으니, 󰡔도서都序󰡕가 원교圓敎에 의하여 모든 종취宗趣를 감정하면 아무리 백가百家의 학설이라도 총괄하지 못할 것이 없으리라.] 오히려 배우는 자들이 밝히기 어려울까 걱정해서 다시 근본과 근원의 본말本末과 진망眞妄의 화합과 공종空宗과 성종性宗의 숨고 드러남과 법法과 의義의 차별됨과 돈점頓漸의 같고 다름과 차전遮詮과 표전表詮의 엇바뀜[迴互]과 권교權敎와 실교實敎의 깊고 얕음과 통달함과 국집함의 시비是非를 곧바로 보셨다.
우리 스승 같은 분은 부처[佛日]를 받들어서 간곡히 돌이켜 비추어서 의혹에 가린 마음을 모두 제거하고, 부처의 마음[佛心]에 순응하여 큰 자비를 널리 펴서 겁이 다하도록 이익을 받게 하였으니, 그렇다면 세존께서는 교리를 펴신 주인이요, 우리 스승은 교리를 회통 시킨 사람이니, 본말이 서로 부합하고 멀고 가까움이 서로 비추어서 일대시교一代時敎의 장한 일을 마쳤다고 할 수 있으리라.[세존께서 가르침을 펴신 이래로 오늘날까지 그것을 회통하니 “가히 장한 일을 마쳤다”라고 한 것이다.] 
혹 어떤 이가 묻기를 ‘여래로부터 아직까지 통틀어서 회통한 적이 없었는데, 이제 하루아침에 종취宗趣를 어겨서 지키지 않나니, 관방關防을 폐지하여 의거하지 않은 것과 같으니, 이는 비밀히 갈무리하고 은밀히 계합하는 도를 어기는 것이 아니겠는가?’라고 하니, 이에 대답하되 ‘여래께서 처음에는 3승을 따로따로 말씀하셨지만 나중에는 하나의 도로 회통하였느니라’ 하였다.[30년 전에는 소승을 말씀하시기도 하고, 공교空敎를 말씀하시기도 하고, 상교相敎를 말씀하시기도 하고, 성교性敎를 말씀하시기도 해서 듣는 이가 제각기 성품에 따라 깨달았으나 서로 통하여 알지 않았다. 하지만 40년 뒤에는 영취산에 앉아서 3승을 희통하고 구시拘尸에 가서 한 성품을 드러내셨으니, 이것이 전후의 일정한 궤칙軌則이었다.]
그러므로 󰡔열반경涅槃經󰡕에서 가섭보살이 찬탄하기를 ‘모든 부처님들은 비밀스런 말씀[密語]은 있어도 비밀스런 창고[密藏]는 없습니다’라고 하니, 세존께서 칭찬하시기를 ‘여래의 말은 열려 있고 드러나고 청정하고 가림이 없거늘, 어리석은 사람들은 이를 알지 못하고서 비밀스런 창고라고 하지만 지혜로운 이는 요달하여서 창고라고 이름하지 않는다’고 하셨으니, 이것이 그 증거이다. 그러므로 왕도王道가 흥왕하면 밖의 문을 닫지 않아도 도적이 지켜지고, 불도가 갖추어지면 모든 법을 총체적으로 지니면서도 마군과 외도는 막아진다.[열반의 원교圓敎에서 모든 법을 화합하여 회통하되, 악마의 교설과 외도 논사의 삿된 교설만은 분명히 가려내었다.] 그러니 다시는 망정에 집착해서 팔을 그 사이에 흔들지 말라.”[대사는 또 󰡔원각경󰡕의 대소大小 두 소초疏鈔를 지었고, 󰡔법계관문法界觀門󰡕과 󰡔원인론原人論󰡕을 지었는데 모두 배휴裵休가 서문을 지었으니, 세상에 성행하였다.]
대사는 회창會昌 원년(元年, 841) 정월 6일에 흥복사興福寺 탑원塔院에 앉아서 입멸하니, 그 달 22일에 도속道俗들이 시신을 규봉圭峰에다 모셨다가, 2월 12일에 화장을 하여 밝고 크고 윤택한 사리를 얻었다. 나중에 문인들이 울면서 구하니, 모두가 타고남은 재 속에서 얻었는데 다 석실石室 속에 봉안하였다. 그의 수명은 62세이고, 법랍은 34세였다.
대사는 유언하기를 “시체를 메다가 새와 짐승에게 보시하고, 뼈는 태워서 흩뿌려라. 슬퍼하고 사모하다가 선관禪觀을 어지럽히지 말 것이며, 매년 청명淸明 때에는 산에 올라가서 7일 동안 살림[講道]을 하라. 그 밖의 주지하는 법은 계율에 맞출 것이며, 어기는 자는 나의 제자가 아니다”라고 하였다.
상복을 입은 사부대중, 수천 백 명이 슬피 울면서 들판을 뒤덮었는데, 선종宣宗이 다시 불교를 세우게 되면서 정혜定慧 선사라는 시호를 추가로 하사하고, 탑호는 청련靑蓮이라 하였다.

상공相公인 소면蕭俛이 자기의 견해를 바치고, 선사에게 주석注釋하여 주기를 다음과 같이 청했다.
“하택荷澤 선사가 말하기를 ‘모든 삼매에서 청정한 본체를 보면, 8만 4천의 온갖 바라밀문도 모두가 소견을 통해 한 때 일어나 작용하는 것일 뿐이니, 이를 이름하여 혜안慧眼이라 한다. 만약 진여와 상응할 때를 당當한다면[선악善惡을 생각하지 않고, 공유空有를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만 가지 변화가 적멸하니[만법이 모두 생각과 반연에서 생겨 모두가 허공인 까닭에 변화라 한다. 이미 한 생각도 나지 않는다면, 만법이 전혀 일어나지 않겠기에 없애지 않아도 자연히 적멸하게 된다.] 이때에는 다시 보는 바가 없고,[비추는 본체가 홀로 섰고 꿈과 지혜에는 계급이 없어진다.] 삼매의 온갖 바라밀문도 일시에 공적해서 다시 얻을 바가 없다’[산란散亂과 삼매三昧, 이 언덕과 저 언덕은 마주 대하여 물리치는 말인데, 마음에 망념이 없고 성품에 생멸이 없음을 알면 선정과 어지러움, 참과 허망이 일시에 적멸해지니, 따라서 얻은 바가 없다.]고 하니, 이것이 소견에 의해 일시에 일어나 작용하는 것입니까?[그러나 소견의 성품이 원명圓明하고 이치는 형상을 여의었으니, 형상을 끊으면 묘한 작용이 되고, 형상에 머무르면 집착하는 정이 된다. 8만 법문이 모두가 그러하여서 한 법이 있으면 하나의 티끌이요, 한 법이 공하면 하나의 작용이다. 그러므로 말하기를 “소견의 청정한 본체는 일시적으로 일어난 작용이다”라고 하였다.] 바라건대 이후에 저에게 대답을 보내 주십시오.”

사史 산인山人의 열 가지 물음에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문답問答마다 각각 한 권이므로 이를 참작해서 필사한다.]
첫 번째 물음:어떤 것이 도이며, 어떻게 닦습니까? 반드시 닦아서 이루어야 합니까, 아니면 공용功用을 빌리지 않는 것입니까?
답변:걸림 없음이 도이고 허망을 깨닫는 것이 수행이다. 도는 본래부터 원만하나 허망하게 일어남이 허물이니, 허망한 생각이 몽땅 다하면 그것이 바로 닦아 이루는 것이다.
두 번째 물음:만일 도가 닦아서 이루어진다면 이는 조작造作하는 것이라서, 세간법이 허망해서 실답지 않으므로 이루어졌다가 다시 무너지는 것과 똑같으리니, 어찌 세간을 벗어난 법이라 이름하겠습니까?
답변:조작이란 업業을 짓는 것이니, 이름하여 거짓된 세간[虛偽世間]이다. 조작 없음이 바로 수행이니, 곧 진실인 출세간이다.
세 번째 물음:그 닦는 바라는 것은 돈수頓修입니까, 점수漸修입니까? 점수라면 앞의 것을 잊고 뒤의 것을 잃으리니, 어떻게 모아서 이루겠습니까? 돈수라면 만행의 길이 많거늘 어찌 일시에 원만하겠습니까?
답변:참 이치[眞理]는 즉각 깨달음으로써 단박에 원만해지고, 망령된 정情은 그 정을 쉼으로써 점차적으로 다한다. 단박에 원만함은 마치 갓 태어난 아기가 일시에 팔다리가 이미 온전한 것과 같고, 점차적으로 닦음은 마치 오래 길러서 어른이 되어서야 의지와 기상이 서는 것과 같다.
네 번째 물음:무릇 심지心地를 닦는 법은 마음을 깨달으면 곧 요달하는 것입니까, 아니면 따로 행문行門이 있습니까? 만약 따로 행문이 있다면 무엇을 남종南宗의 돈오의 종지라 이름하며, 만약 깨닫는 즉시 모든 부처님과 같다면 어찌 신통 광명을 발하지 않습니까?
답변:얼음이 언 연못이 전부 물인 줄 알지만 햇볕을 빌어야 녹고, 범부인 채로 참[眞]이란 것을 깨달아도 법력法力을 빌어야 닦아 익힌다. 얼음이 녹으면 물의 흐름이 원활해져서 바야흐로 관개의 공功을 드러내고, 허망이 다하면 심령이 통하여 비로소 신통 광명의 감응을 발휘한다. 그러니 마음을 닦는 이외에 다른 행문行門은 없다.
다섯 번째 물음:만일 마음을 닦기만 하여도 부처를 이룬다면, 무슨 까닭에 모든 경전에서는 “불국토를 장엄하고 중생을 교화하여야 비로소 도를 이루었다고 한다”고 설하였습니까?
답변:거울이 밝으니 그림자에 천 가지 차별이 있고, 마음이 맑으니 신통이 만 가지로 감응한다. 그림자는 불국토를 장엄하는 것을 비유하고, 신통은 중생을 교화하는 것을 비유했다. 그러나 장엄이면서도 곧 장엄이 아니고, 그림자이지만 또한 색色이면서 색이 아니다.
여섯 번째 물음:여러 경에서 말하기를 “중생을 제도하라”고 하였으나, 중생은 곧 중생이 아니거늘 무엇 때문에 다시 수고롭게 제도하여 해탈케 해야 합니까?
답변:만일 중생이 실답다면 제도하기가 수고롭겠지만, 이미 스스로 말하기를 “곧 중생이 아니다”라고 하였으니 어찌 제도하되 제도함이 없음을 예시한 것이 아니겠는가?
일곱 번째 물음:여러 경에서 말하기를 “부처님께서는 상주常住하신다”고 하고, 혹은 “부처님께서는 열반에 드신다”고 하였는데, 상주하시면 열반에 들지 않을 것이요, 열반에 들면 상주하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이 어찌 서로 어기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답변:온갖 모습을 여읜 것을 이름하여 모든 부처라 하니, 어찌 세상에 나오거나 열반에 드는 실체가 있으랴? 태어나고 소멸하는 것은 기연機緣에 달려 있는 것이니, 기연이 감응하면 보리수 밑에 나타나시고, 기연이 다하면 사라娑羅 숲 사이에서 열반에 드신다. 마치 맑은 물이 무심해서 나타내지 못하는 영상이 없는 것과 같나니, 영상은 나의 것이 아니라 외적인 껍데기[外質]가 가고 오는 것일 뿐이다. 모습은 부처의 몸이 아니거늘 어찌 여래께서 출몰함이 있으랴?
여덟 번째 물음:부처님께서는 변화로 해서 태어나셨는데, 나도 그렇게 태어났다고 하는 것은 무슨 이유입니까? 부처님께서는 이미 생겨남이 없으니[無生], 그렇다면 생겨남[生]이란 무슨 뜻입니까? 만일 마음이 생기면 법도 생겨나고 마음이 멸하면 법도 멸한다고 한다면, 어떻게 무생법인無生法忍을 얻겠습니까?
답변:이미 변화한 것과 같다고 했으니, 변화함[化]은 곧 공空이다. 공은 바로 무생이거늘 어찌 생겨남의 뜻을 따지는가? 생멸이 멸하고 나면 적멸이 참[眞]이 되니, 이 법의 무생을 인가忍可한 것을 이름하여 무생법인이라고 한다.
아홉 번째 물음:모든 부처님들께서 도를 이루시고 설법을 한 것은 다만 중생을 제도하시기 위함이라고 했는데, 중생은 이미 여섯 갈래 길[六道]에 모두 있는데 부처님께서는 어째서 인간 세계에서만 나타나서 머무르십니까? 또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신 뒤에 가섭에게 법을 부촉해서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하시고, 나아가 중국에 이르러서 7조祖도 매양 한 사람에게만 전하였으니, 이미 “온갖 중생에게 모두 외아들의 지위를 얻게 한다”고 하고서 어찌하여 두루 전해 주지 않았습니까?
답변:해와 달이 하늘에 떠서 6합合을 함께 비춰도 소경은 보지 못하고, 엎어진 동이 밑은 밝히지 못하는 법이다. 하지만 이것은 해가 두루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장애물의 탓이다. 제도하는 것과 제도하지 않은 것은 그 뜻이 이처럼 유사하니, 인간과 천상에만 국집해서 귀신과 축생을 가려내지 말아야 한다. 다만 인도人道에서만 경전을 능히 결집해서 끊임없이 전했기 때문에 부처님께서 인간에만 나타나는 것을 알아야 한다.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신 뒤에 가섭에게 부촉해서 차례차례 한 사람씩만 이어받은 것은 그 당시의 교주敎主를 말한 것이어서, 마치 한 나라에 두 임금이 있을 수 없는 것과 같은 것이니, 실제로 제도를 받은 이가 그것뿐인 것은 아니다.
열 번째 물음:화상은 무엇을 인하여 발심했으며, 어떤 법을 사모해서 출가했으며, 지금은 어떻게 수행하며, 어떤 법의 맛을 얻었으며, 수행한 바가 어떤 지위에 이르렀습니까? 지금은 마음을 머물고 있습니까, 아니면 마음을 닦으십니까? 마음을 머물게 한다면 마음 닦는 일에 방해가 될 것이요, 마음을 닦는다면 생각이 움직여서 편안치 못할 것이거늘, 어찌 도를 배운다고 하겠습니까? 또 마음을 편안히 해서 하나로 정해지면, 어찌 성품이 결정된 무리와 다르겠습니까? 바라건대 대덕께서 대자대비를 베푸시어 이치대로 여여如如하게 차례차례 대답해 주십시오.
답변:4대大가 허깨비 같음을 자각하고, 6진塵이 허공의 꽃 같음을 통달하며, 자기의 마음이 부처의 마음임을 깨닫고, 본 성품이 법성임을 보면 이것이 발심發心이요, 마음이 머무를 바 없음을 알면 그것이 바로 수행이요, 머무를 바 없는데도 알면 그것이 바로 법의 맛[法味]이다. 법에 머물러 집착하면 그것이 생각이 움직이기 때문이니, 마치 어떤 사람이 어두운 곳에 들어가면 보이지 않는 것과 같고, 이제 머무는 바가 없으면 물들지 않고 집착하지 않기 때문이니, 마치 어떤 사람이 눈이 있고 태양의 광명이 있으면 갖가지 법을 보는 것과 같다. 어찌 까닭 없이 결정된 성품의 무리라 하겠는가? 이미 머물러 집착하는 바가 없다면 어찌 장소를 논하겠는가?

또 산남山南의 온조溫造 상서尙書가 물었다.
“이理를 깨닫고 망상을 쉰 사람은 업을 짓지 않는데, 한 번 받은 수명이 다한 뒤에는 영성靈性은 어디에 의지합니까?”
“온갖 중생은 깨달음의 성품[覺性]을 갖추지 않은 이가 없으니, 신령스럽게 밝고 공적함이 부처와 다름이 없다. 다만 비롯함이 없는 겁 이래로 아직까지 깨닫지를 못하고 허망하게 몸을 집착하여 나의 모습이라 여긴다. 그러므로 사랑과 미움 따위의 정情을 일으키고, 그 정에 따라 업을 짓고, 업에 따라 생․노․병․사의 과보를 받아서 오랜 겁 동안 윤회한다. 그러나 몸 안에 있는 깨달음의 성품[覺性]은 일찍이 태어나거나 죽은 적이 없으니, 마치 어떤 사람이 꿈속에서 남에게 이끌려 수고를 했지만 본래의 몸은 한가하고, 물이 얼음이 되었지만 습기의 성품은 바뀌지 않는 것과 같다.
만일 이 성품이 곧 법신임을 깨달으면 본래 스스로 무생이니, 어디에 의탁할 곳이 있으랴? 신령스럽고 신령스러워서 어둡지 않고 명료하고 명료해서 항상 알고 있으니, 좇아서 온 곳도 없고 또한 간 곳도 없다.
그러나 많은 이가 허망한 집착을 내고 습기習氣로 성품을 이루어서 기쁨․성냄․슬픔․즐거움이 미세하게 흘러든다. 참된 이치는 비록 단박에 깨달았으나 이 망령된 정은 갑자기 제거하기 어려우므로 모름지기 오래오래 각찰覺察해서 덜고 또 덜어야 한다. 마치 바람이 단박에 그쳐도 물결은 차츰차츰 멈추는 것과 같나니, 어찌 일생 동안 닦은 것이 모든 부처님들의 역용力用과 같을 수 있으랴?
다만 공적空寂으로써 스스로의 체體를 삼을지언정 색신色身을 인정하지 말 것이며, 신령스런 앎으로 스스로의 마음을 삼을지언정 허망한 생각[妄念]을 인정하지 말라. 허망한 생각이 일어나도 전혀 따르지 않으면, 목숨이 다할 때에는 자연히 업業이 속박하지 못할 것이니, 비록 중음신[中陰]이 있다 하여도 향하는 바가 자유로워서 천상이든 인간이든 뜻대로 의탁하리라.
만일 사랑하고 미워하는 생각이 이미 없어지면 분단신(分段身:몸)을 받지 않아서 스스로 짧은 것을 길게 바꿀 수 있고, 거친 것을 묘한 것으로 바꿀 수 있다. 만일 미세한 흐름이 모두 적멸해지면 오직 원각圓覺의 큰 지혜만이 환해져서 홀로 존재하리니, 이것이 곧 기연의 감응에 따라 천백 억의 몸을 나타내어 인연 있는 중생을 제도하는 것으로서 이름하여 부처라 한다.
삼가 대조하여 해석하건대, 마명보살馬鳴菩薩이 백 가지 대승경大乘經의 종지를 모아서 󰡔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을 짓고, 그 논서 안에서 종지를 세우되 ‘온갖 중생의 마음에는 깨달음의 뜻과 깨닫지 못함의 뜻이 있는데, 깨달음에 다시 본각本覺의 뜻과 시각始覺의 뜻이 있다’고 하였는데, 위에서 서술한 바는 비록 이치를 비추고 마음을 관찰하는 곳에서만 말했으나, 법의 뜻은 도리어 저 󰡔기신론󰡕과 같다.
이른바 처음에서부터 ‘부처님과 다름이 없다’고 한 곳까지는 본각本覺이요, ‘다만 비롯함이 없는’ 이하는 불각不覺이요, ‘만일 이 일을 능히 깨달으면’부터는 시각始覺이다. 시각 중에도 돈오와 점수가 있으니, 이로부터 다음에 ‘가는 곳도 없다’는 데까지는 돈오요, ‘그러나 많은 이가 허망한 집착을 낸다’ 이하부터는 점수이다.
점수 중에도 처음 발심에서부터 부처를 이루기까지 세 지위의 자재함이 있으니, 이로부터 ‘뜻대로 의탁한다’는 곳까지는 생을 받는[受生] 자재함이요, ‘만약 사랑하고 미워하는 생각’ 이하는 변역變易의 자재함이요, ‘만약 미세한 흐름’ 이하는 구경究竟의 자재함이다. 또 ‘다만 공적空寂을 스스로의 체體로 삼을 수 있다’에서부터 ‘자연히 업이 속박하지 못하리라’에 이르기까지는 바로 이理를 깨달은 사람이 조석으로 마음을 행하고 지관止觀을 닦아 익히는 요긴한 대목이다.
내[宗密]가 먼저 여덟 구절의 게송으로 이 뜻을 드러내어 일찍이 상서의 처소에서 읊고서 명命을 받들어 해석하였다. 이제 여기에 다음과 같이 삼가 주석注釋을 하니, 게송과 주석은 다음과 같다.”

뜻[義] 있는 일을 하면 깨달은 마음이요
[뜻<義>이라 함은 의리義理를 말함이지, 인의仁義나 은의恩義를 말한 것은 아니다. 뜻인즉 대체로 작위作爲한 바를 밝힌 것으로서 먼저 이해利害를 상세히 하였는데, 이로써 도리에 맞는 바가 있은 뒤에 행해야만 바야흐로 똑같이 취하고 미친 사람을 면하게 된다. 불법佛法에 나아가는 세 가지 뜻이 있으니, 이는 곧 행할 만한 것이다. 첫째는 색신色身을 자량資糧하는 일로서 옷․음식․의약품․ 방사房舍 등 세간의 뜻이요, 둘째는 법신을 자량하는 일로서 이른바 계․정․혜․6바라밀다 등의 제1의第一義요, 셋째는 바른 법을 널리 펴서 뭇 중생을 이롭게 하고 구제하는 것이다. 나아가 법을 위하는 온갖 반연의 일은 세간과 출세간에 다 통한다.]
뜻이 없는 일을 하면 미친 마음이니
[이른바 대체로 작위하는 바가 위의 세 가지 일을 반연치 않으면 곧 뜻 없다<無義>고 한다. 미친 사람이라고 하는 것은 가령 세간의 취하고 미친 사람이 어디를 가든 처소를 분간하지 못하고, 하는 일마다 시비를 가리지 못하는 것이다. 지금은 이미 어떤 뜻과 이로움이 있는지 분간하지를 못한 채 다만 정情과 망념을 따라 하고자 하면 그대로 하기 때문에 미친 것 같다고 한 것이다. 위의 4구句는 업인業因을 서술한 것이며, 아래의 4구는 과보를 받음을 말한 것이다.]
광란狂亂으로 정념情念을 따르면 임종할 때 업에 이끌리고
[이미 망념에 따라서 하고 싶으면 곧 할 뿐이지 이理를 깨달은 지혜로 시비를 가리지 못하니, 마치 미친 사람과 같다. 이 때문에 임종할 때에 업의 길에서 업에 이끌리게 되어서 미래의 과보를 받는다. 그러므로 󰡔열반경󰡕에 말하기를 “무명의 서방님과 탐애貪愛의 마왕이 몸과 마음을 부리기를 종을 구박하듯 한다”고 한 것이다.]
또렷하게 깨달아서 정情을 말미암지 않으면 임종할 때에 업을 바꿀 수 있다.
[정情 속에 작위하고 싶어도 이理를 살펴서 감응하지 않거든 즉시 멈추어야 하고, 정情 속에 작위하고 싶지 않아도 이치에 비추어서 상응하면 즉시 해야 한다. 다만 시비의 이理를 말미암아야지 사랑과 미움의 감정을 말미암지 않는다면, 임종할 때에 업이 능히 속박할 수 없고 하늘과 인간을 뜻대로 자재하게 된다. 결론지어 말하건대, 아침저녁에 하는 일이 망정의 티끌에 이끌리면 임종할 때에 업에 이끌려서 태어남을 받게 되고, 만약 작위하는 바가 자각의 지혜를 말미암고 망정의 티끌을 말미암지 않으면 임종할 때에 내 마음대로 자유롭게 태어남을 받아서 업을 말미암지 않는다. 그러므로 시험 삼아 임종할 때 태어남을 받는 것이 자재로운가, 자재롭지 못한가를 알고 싶다면, 다만 티끌 경계에 대한 평소의 행심行心이 자유로운가 자유롭지 못한가를 시험해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선사가 상당上堂해서 말했다. 신수대장경 주註에 의하면, 이 부분부터 13권 끝까지는 명본明本과 원본元本의 내용이 다르기 때문에 부기附記해 놓은 것이라고 서술되어 있다. 이 내용은 앞의 여주汝州 풍혈風穴 연소延沼 선사에 나온다.

“조사의 심인(心印:마음 도장)을 오늘 온전히 제시하겠다. 가면 심인이 머물겠지만, 머물면 심인이 파괴되리라. 다만 가지도 않고 머물지도 않는다면, 인印을 쳐야 옳은가, 치지 말아야 옳은가? 대중 속에서 말할 수 있는 자가 있는가?”
그때 노피盧陂 장로가 물었다.
“학인學人에게는 무쇠 소의 기용이 있으니, 바라건대 스님께서는 도장을 그냥 두지 마십시오.”
대사가 말했다.  
“원래 고래를 잡기 위해서 맑고 큰 물에 들어가야 하는데, 안타깝게도 달팽이 걸음을 하며 진흙 모래 위를 헤매는구나.”
노피가 우물쭈물하고 있자, 대사가 불자로 입을 때리면서 말하였다.
“앞서 한 말을 기억하는가?”
노피가 말했다.
“기억합니다.”
대사가 말했다.
“말하여 보라.”
노피가 입을 열려고 하자, 대사가 또 한 번 불자로 때렸다.

대사가 상당하여 대중에게 말하였다. 
“대개 참학參學하는 안목이라면, 모름지기 기용에 임해서 곧바로 대용大用이 현전해야지 소소한 예절에 스스로 구애받지 말아야 한다. 설사 말 이전에 얻었다 해도 오히려 껍질에 막히고 미혹된 것이며, 비록 언구 아래 정밀히 통했다 해도 길에 이르러서는 미친 견해를 면하지 못한다. 여러분들을 살펴보건대, 예전에 남에 의지해 배우고 이해한 것으로 양 갈래 길에서 헤매고 있으니, 이제 여러분과 함께 일제히 쓸어버리리라. 그리하여 저마다 큰 사자가 되어 땅에 버티고 선 채 외마디 포효하고서 천 길 벼랑에 서면, 누가 감히 정안正眼으로 엿보겠는가? 만약 엿본다면 당장 그의 눈을 멀게 하리라.”

어떤 스님이 물었다.
“스님께서는 어느 집안의 곡조를 노래하시며, 종풍宗風은 누구를 이으셨습니까?”
스님이 말했다.
“위음왕불 밖으로 아득히 초연하게 벗어났거늘, 공연히 발돋움하고 서서 수고롭게 저사底沙를 찬탄하는구나.”



경덕전등록 제14권






길주吉州 청원산靑原山 행사行思 선사의 법손

제1세 1인

남악南嶽 석두石頭 희천希遷 대사[1인은 기록에 보임]

제2세 21인

남악南嶽 석두石頭 희천希遷 대사의 법손 21인
형주荊州 천황사天皇寺 도오道悟 선사
경조京兆 시리尸利 선사
등주鄧州 단하산丹霞山 천연天然 선사
담주潭州 초제사招提寺 혜랑慧朗 선사
장사長沙 흥국사興國寺 진랑振朗 선사
예주澧州 약산藥山 유엄惟儼 선사
담주潭州 대천大川 화상和尙
분주汾州 석루石樓 화상
봉상鳳翔 법문사法門寺 불타佛陀 화상
담주潭州 화림華林 화상
조주潮州 대전大顚 화상
담주潭州 장자長髭 광曠 선사
수공水空 화상
  [이상 13인은 기록에 보임]
보통寶通 선사
해릉海陵 대변大辯 선사
저경渚涇 화상
형주衡州 도선道詵 선사
한주漢州 상청常淸 선사
복주福州 쇄석碎石 화상
상주商州 상령商嶺 화상
상주常州 의흥義興 화상
  [이상 8인은 기연할 어구가 없으므로 기록하지 않음]

제3세 23인

형주荊州 천황天皇 도오道悟 선사의 법손 1인
예주澧州 용담龍潭 숭신崇信 선사
  [1인은 기록에 보임]

등주鄧州 단하산丹霞山 천연天然 선사의 법손 7인
경조京兆 취미翠微 무학無學 선사
단하산丹霞山 의안義安 선사
길주吉州 성공性空 선사
본동本童 화상
미창米倉 화상
  [이상 5인은 기록에 보임]
양주揚州 육합六合 대은大隱 선사
단하산丹霞山 혜근慧勤 선사
  [이상 2인은 기연할 어구가 없으므로 기록하지 않음]

약산藥山 유엄惟儼 화상의 법손 10인
담주潭州 도오산道吾山 원지圓智 선사
담주潭州 운암雲巖 담성曇晟 선사
화정華亭 선자船子 덕성德誠 선사
선주宣州 비수椑樹 혜성慧省 선사
약산藥山 고高 사미沙彌
악주鄂州 백안百顔 명철明哲 선사 
  [이상 6인은 기록에 보임]
영주郢州 경원산涇源山 광복光虙 선사
약산藥山 기夔 선사
선주宣州 낙하落霞 화상
낭주朗州 자사刺史 이고李翶 
  [이상 4인은 기연할 어구가 없으므로 기록하지 않음]

담주潭州 장자長髭 광曠 선사의 법손 1인
담주潭州 석실石室 선도善道 화상
  [1인은 기록에 보임]

조주潮州 대전大顚 화상의 법손 2인
장주漳州 삼평산三平山 의충義忠 선사
  [1인은 기록에 보임]
길주吉州 서산薯山 화상
  [1인은 기연할 어구가 없으므로 기록하지 않음]

담주潭州 대천大川 화상의 법손 2인
선천僊天 화상
복주福州 보광普光 화상 
  [이상 2인은 기록에 보임]


행사行思 선사의 제1세

석두石頭 희천希遷 대사

그는 단주端州의 고요高要 사람으로서 성은 진陳씨이다. 처음 어머니가 태기가 있을 때에 마늘이나 파 따위를 좋아하지 않았고, 대사는 어릴 적부터 보모保母를 번거롭게 하지 않았으며, 약관弱冠의 나이가 되었을 때는 이미 의젓한 모습을 갖추었다. 마을 사람들이 귀신을 두려워해서 자주 굿을 하면서 늘 소를 잡고 술을 빚는 일을 하자, 대사는 달려가서 사당을 허물고 소를 빼앗아 가지고 돌아오기를 몇 십 년을 계속하니, 마을 장로들도 막지를 못했다.
나중에 곧장 조계曹谿로 가자, 6조 대사가 제도하여 제자를 삼았으나, 구족계를 받기 전에 조사가 열반에 들었다. 그리하여 그의 유언에 따라 여릉廬陵의 청원산靑原山 행사行思 선사를 뵙고 정성을 다하여 그를 따랐다.[만남과 관련된 내용은 행사선사장行思禪師章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어느 날 행사 선사가 대사(석두)에게 물었다.
“어떤 사람이 영남嶺南에 소식消息이 있었다고 말하는구나.”
“어떤 사람은 그런 식으로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대승장경[大藏]과 소승장경[小藏]은 어디로부터 나왔는가?”
“모두가 이 속으로부터 나갔지만, 끝내 조금도 다른 일은 없습니다.”
행사가 매우 가상히 여겼다.

대사는 당나라 천보天寶 초에 형산衡山의 남사南寺로 추천되었다. 절 동쪽에 좌대 모양의 돌이 있어서 그 위에 암자를 짓고 사니, 당시 사람들이 그를 일러 석두石頭 화상이라 하였다.
어느 날 대사가 상당하여 이렇게 말하였다.
“나의 법문은 선대로부터 부처님께서 전해 주신 것이니, 선정과 정진에 걸림 없이 오직 부처의 지견知見을 통달하면, 마음 그대로가 부처이다. 마음과 부처와 중생, 보리와 번뇌는 이름은 다르나 본체는 하나일 뿐이다.
그대들은 반드시 알아야 한다. 자기 심령의 본체는 단견과 상견[斷常]을 여읜 것으로서 성품은 더럽거나 깨끗한 것이 아니니, 담연하고 원만해서 범부와 성인이 가지런하고, 감응하여 작용하는 데 일정한 방향이 없어서 심의식心意識을 여의었다. 삼계三界와 6도道는 오직 자기의 마음으로부터 나타난 것일 뿐이니, 물속의 달과 거울에 비친 영상이 어찌 생멸이 있겠는가? 그대들이 능히 알 수만 있다면 갖추지 못한 바가 없느니라.”

당시 도오道悟라는 문인門人이 물었다.
“조계의 뜻을 누가 얻었습니까?”
“불법을 아는 사람이 얻었다.”
“스님께서도 얻으셨습니까?”
“나는 불법을 모른다.”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해탈입니까?”
“누가 그대를 속박이라도 했는가?”
“어떤 것이 정토淨土입니까?”
“누가 그대를 더럽히기라도 했는가?”
“어떤 것이 열반입니까?”
“누가 그대에게 생사生死를 주기라도 했던가?”

대사가 새로 온 스님에게 물었다.
“어디서 왔는가?”
“강서에서 왔습니다.”
“마馬 대사大師를 보았는가?”
“보았습니다.”
대사가 마른나무 토막 하나를 가리키면서 물었다.
“마 대사와 저것이 서로 어떠한가?”
스님이 대답을 못하고 돌아가서 마 대사에게 말하니, 마 대사가 말했다.
“그대는 그 나무토막이 얼마나 크게 보이던가?”
“굉장히 컸습니다.”
“그대는 매우 힘이 세구나.”
“왜 그렇습니까?”
“그대가 남악에서 나무토막 하나를 지고 여기까지 왔으니, 어찌 힘이 세지 않은가?”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서쪽에서 온 뜻입니까?”
“돌기둥에게 물어보라.”
“학인은 잘 모르겠습니다.”
“나는 더욱 모르겠다.”

대전大顚이 대사에게 물었다.
“옛사람이 말하기를 ‘있다거나 없다거나 하면 두 가지 비방이 된다’고 했으니, 스님께서 제거해 주십시오.”
“한 물건도 없는데 무엇을 제거하랴?”
대사가 도리어 물었다.
“목구멍과 입술을 막고 말해 보겠느냐?”
대전이 대답했다.
“그런 것은 없소.”
“그렇다면 그대는 입문入門한 것이다.”
도오가 물었다.
“어떤 것이 불법의 대의입니까?”
“몰라서는 안 될 일이지.”
“위로 향하는 길에도 다시 몸을 돌릴 곳이 있습니까?”
“넓은 하늘은 흰 구름이 나는 것을 막지 않는다.”
“어떤 것이 선禪입니까?”
“벽돌이니라.”
“어떤 것이 도道입니까?”
“나무토막이니라.”
이 밖에도 문도들에게 지취旨趣를 깨닫게 한 온갖 문답은 각각 본장本章 그 사람마다의 전기를 말한다.
에 나와 있다. 대사가 참동계參同契 한 편을 지었는데, 문장이 깊고 부드러워서 그에 대한 주석이 나오면서 세상에 널리 퍼졌다.
남악南嶽의 귀신 대부분이 자취를 나타내서 법을 들었는데, 대사가 모두 계를 주었다. 광덕廣德 2년에 문인들이 양단梁端에 내려오기를 청하자 현묘한 교화를 널리 드날렸다. 이때 강서의 주인은 대적大寂이요, 호남湖南의 주인은 석두石頭였으니, 학도들이 두 대사의 문하를 왕래하면서 정성껏 물었다.
정원貞元 6년 경오庚午 12월 25일에 세상을 뜨니, 수명은 91세이고 법랍은 63세였다. 문인들이 동령東嶺에다 탑을 세웠는데, 장경長慶 때에 무제無際 대사라 시호를 내렸고, 탑호는 견상見相이라 하였다.

행사行思 선사의 제2세

앞의 석두石頭 희천希遷의 법손

형주荊州 천황天皇 도오道悟 선사
그는 무주婺州 동양東陽 사람으로서 성은 장張씨이다. 생김새가 남달리 뛰어났으며[挺異], 어릴 적에는 타고난 지혜가 있었고[生知], 자라서는 온갖 빼어난 재주를 갖추었다[神俊]. 나이 14세에 출가할 뜻을 간절히 말했으나, 부모가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에 맹세의 뜻을 세워서 음식을 줄여 하루에 겨우 한 끼니만을 먹었다. 몸이 몹시 쇠약해지자 부모가 마지못해 허락을 하니, 명주明州 대덕에 의해 머리를 깎았다.
25세 항주杭州의 죽림사竹林寺에서 구족계를 받고 정성껏 범행梵行을 닦으니, 당시 사람들이 용맹勇猛하다고 추앙하였다. 어떤 때는 바람 불고 비오는 밤에 무덤 사이에서 좌선하면서도 몸과 마음이 편안하고 고요하여 온갖 두려움을 여의었다.
어느 날 여항餘杭에 갔다가 먼저 경산徑山 국일國一 선사를 뵙고, 마음의 법을 받은 뒤에 다섯 해 동안 부지런히 섬겼고, 당나라 대력大歷 때에 종릉鐘陵에 가서 마조 대사를 뵙고, 먼저 이해한 바를 거듭 인가 받으니, 법에 이설異說이 없었다.
거기서 다시 2년을 살다가 석두石頭 희천希遷 대사를 뵙고 이렇게 물었다.
“정혜定慧를 여의고서 어떤 법으로 사람들을 가르치십니까?”
석두가 대답했다.
“나의 이 속에는 사내종․계집종이 없거늘, 무엇을 여의겠는가?”
“어찌해야 밝게 터득합니까?”
“그대는 허공을 붙잡을 수 있겠는가?”
“그렇게 되면 오늘부터 시작할 것이 없겠습니다.”
“그대는 언제 거기서 왔는가?”
“저[道悟]는 그쪽 사람이 아닙니다.”
“나는 벌써 그대가 온 곳을 알고 있다.”
“대사는 어째서 사람을 속이십니까?”
“그대의 몸이 현실에 있지 않는가?”
“그렇더라도 궁극적으로 어떻게 뒷사람들에게 보이십니까?”
“그대는 누구를 뒷사람이라 하는가?”
대사가 이로부터 단박에 깨닫고 나니, 앞의 두 종사의 말 아래서 얻은 마음이 자취도 없이 사라졌다. 나중에 형주荊州 당양當陽의 시자산柴紫山[5백 나한이 넘나드는 지역이다.]에 자리를 잡으니, 학도學徒들이 끊임없이 따랐고, 고을의 남녀가 바람에 쏠리듯 모여들었다. 당시 숭업사崇業寺의 상수上首가 서류를 갖추어서 도원수[連帥]에게 보고하니, 그가 고을로 맞아들였다. 

성의 왼쪽에 천황사天皇寺라는 유명한 가람이 있었는데, 화재로 인하여 없어졌다. 주지인 영감靈鑒이란 스님이 복구할 생각을 하면서 말했다.
‘만일 도오道悟 선사가 화주化主가 되어 주신다면 내 소원[福]은 반드시 이루어지리라.’
그리고는 밤중에 숨어 들어가서 애달피 청한 뒤에 업고서 오니, 이로 인해 천황사에 살게 되었다.
이때 강릉江陵 군수이자 우복야右僕射인 배공裵公이 머리를 조아리고 법을 물었는데, 정성이 매우 지극하였다. 대사는 본디 맞이하고 전송하는 일이 없어서 귀한 손님이든 천한 손님이든 모두 앉아서 읍揖을 하니, 배공이 더욱 소중히 여겼다. 이 까닭에 석두의 법문이 이 법석에서 성황을 이루었다.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현묘한 설법입니까?”
대사가 대답했다.
“내가 불법을 풀어달라고 말하지 말라.”
“그렇지만 학인의 의문이 풀리지 않으니 어쩌겠습니까?”
“왜 노승(老僧:나)에게 묻지 않는가?”
“이미 물었습니다.”
“가거라. 그대가 머물 곳이 아니다.”

대사는 원화元和 정해丁亥 4월에 병이 나자 제자들에게 임종할 것을 알렸는데, 그믐날이 되어서 대중이 문병을 갔을 때에 갑자기 전좌典座를 불렀다. 전좌가 가까이 다가서니, 대사가 말했다.
“알겠는가?”
“모르겠습니다.”
대사가 베개를 들어서 땅 위에다 던지고 즉시 임종하니, 수명은 60세이고 법랍은 35세였다. 그해 8월 5일에 고을 동쪽에다 탑을 세웠다.[적음寂音 존자尊者가 말하기를 “형주荊州 천황사의 도오道悟 선사는 󰡔전등록󰡕의 기록에 의하건대, 도오는 석두石頭에게 법을 얻었고 그가 살던 절은 천황이다. 무주婺州의 동양東陽 사람으로서 성은 장張씨이다. 14세에 출가해서 명주明州 대덕에 의하여 머리를 깎았고, 25세에 항주抗州의 죽림사竹林寺에서 구족계를 받았다. 먼저 경산徑山의 국일國一 선사를 뵙고 5년 동안 부지런히 모시다가, 대력大曆 때에 종릉鍾陵에 가서 마조馬祖 대사를 뵙고 2년 동안을 지낸 뒤에 다시 석두에게로 갔다. 원화元和 정해년丁亥年 4월에 병이 나니, 수명은 60세이고, 법랍은 35세였다. 그런데 달관達觀 영潁 선사가 편집한 󰡔오가종파五家宗派󰡕를 보건대, ‘도오는 마조의 법을 이었다’ 하였고, 당의 구현소丘玄素가 지은 비문 몇 천 마디 말을 인용하여 그 대략을 말하면 이렇다. ‘대사의 호는 도오道悟이니 저궁渚宮 사람이다. 성은 최崔씨이니 자옥子玉의 후손이었다. 나이 15세에 장사사長沙寺의 담저曇翥 율사에 의해 출가했다가, 23세에 숭산嵩山의 율덕律德을 뵙고 계법<尸羅>을 얻었다. 석두를 뵙고 2년 동안 적멸의 법을 물었으나, 깨달은 바가 없어서 바로 장안長安에 들어가 충忠 국사國師를 뵈었다. 34세에 시자侍者인 응진應眞과 함께 남쪽으로 돌아와서 마 대사를 뵙고 그 말끝에 크게 깨달으니, 그를 축하하면서 훗날 옛 자리를 여의지 말라 하였므로 다시 저궁渚宮으로 돌아왔다. 원화元和 13년 무술戊戌 4월 초순에 병이 나서 13일에 입적하니, 수명은 82세이고 법랍은 63세였다’라 하였다. 이렇게 전기를 상고하건대, 도오가 두 사람인 듯하다. 그리고 현소玄素의 말에 의하건대 ‘법을 전해 받은 이는 숭신崇信 선사이니, 예주澧州의 용담龍潭에 살았다. 당나라 때의 유명한 사람인 귀등歸登이 지은 남악南岳 회양懷讓 선사의 비에 법손 몇 사람을 끝에다 열거했는데 도오라는 이름이 있고, 규봉圭峰이 배상국에게 종취를 대답하는 편지에서 마조의 법손 여섯 사람을 열거했는데 맨 첫머리에 강릉의 도오라 하였고, 그 밑의 주에 겸하여 경산의 법을 받았다고 했는데, 이제 까닭 없이 운문雲門과 임제臨濟 두 종파가 다투는 것은 우스꽝스럽다’ 하였다”라고 하였다. 위의 내용은 모두 󰡔임간록林間錄󰡕의 말이다. 
그리고 각몽당覺夢堂의 󰡔중교오가종파重校五家宗派󰡕 서문에 말하기를 “경덕景德 때의 오吳 지방의 스님인 도원道原이 󰡔전등록傳燈錄󰡕 30권을 지었는데, 조계曹溪 이하를 두 파로 간추려 놓았으니 하나는 남악 회양으로서 회양에서 마 대사가 나왔고, 또 하나는 청원靑原 행사行思로서 행사에서 석두石頭 희천希遷이 나왔다. 두 파 밑에서 다시 5종宗이 나뉘어지는데, 마 대사 밑에서 84인의 선지식이 나왔다. 그 중에 백장百丈 회해懷海가 있고, 회해에게서 황벽黃檗 희운希運과 위산潙山 영우靈祐 두 사람이 나왔고, 황벽에게서 임제 의현이 나오니 그런 까닭에 임제종臨濟宗이라 한 것이다. 위산 영우 밑에서 앙산仰山 혜적慧寂이 나왔으므로 위앙종潙仰宗이라 했다. 84인 가운데에 또 천황天皇 도오道悟가 있는데, 도오는 용담龍潭 신信을 얻었고, 용담은 덕산德山 감鑒을 얻었고, 덕산은 설봉雪峰 존存을 얻었고, 설봉에서 운문雲門 언偃을 얻어서 운문종雲門宗이라 했다. 다음은 현사玄沙 사비師備가 있었는데, 현사에게서 지장地藏 계침桂琛이 나왔고, 지장 밑에 청량淸凉 익益이 나와서 법안종法眼宗이라 하였다. 다음에 석두 희천 밑에서 약산藥山 유엄惟儼과 천황天皇 도오道悟 두 사람이 나왔고, 도오 밑에서 혜진慧眞이 나왔고, 혜진 밑에서 유한幽閑이 나왔고, 유한 밑에서 문분文賁이 나왔는데 3대 만에 뒤가 끊겼다. 그러나 약산만은 운암雲巖 성晟을 얻었고, 운암 성은 동산洞山 양개良价를 얻었고, 동산은 조산曹山 장章을 얻어서 조동종曹洞宗이다. 지금 󰡔전등록󰡕에서 운문종과 법안종을 석두 밑에다 둔 것은 착오가 아닌가 생각한다. 같은 시대에 도오가 두 사람 있었으니, 하나는 강릉江陵 성서城西의 천왕사天王寺 도오道悟로 저궁渚宮 사람이다. 그는 최자옥崔子玉의 후손으로 마조의 법을 이었으며 원화 13년 4월 13일에 입적하였다. 정의대부正議大夫 구현소丘玄素가 지은 탑명塔銘이 몇천 마디인데, 그것을 대략적으로 말하건대, 마조가 축하하면서 ‘훗날에 옛자리를 여의지 말라고 하였으므로 다시 저궁으로 돌아왔다’고 했다. 또 하나는 강릉 성동城東의 천황사天皇寺 도오道悟이니, 무주婺州 동양東陽 사람으로서 성은 장張씨이다. 석두石頭의 법을 이었고, 원화 2년 정해丁亥에 입적하였다. 협률랑協律郎 부재符載가 탑명을 지었는데, 두 비의 기록에 태어난 인연과 태어난 곳이 분명하건만, 도원이 󰡔전등록󰡕을 편집할 때에 낱낱이 직접 가서 상고하지 않고 그저 사람들에게 부탁해서 자료를 얻은 데 불과했으므로 이렇게 잘못 되었을 것이다. 경덕 이후로 지금까지 천하와 사해에서 오직 󰡔전등록󰡕으로 근거를 삼을 뿐, 여러 절에서 상당한 지위를 차지하고 종지를 세우는 이까지도 아무런 연구를 하지 않았다. 오직 승상丞相인 무진無盡 거사居士 장공張公과 여하경呂夏卿, 두 군자만이 매번 모여 종문宗門의 일을 의논할 때마다 ‘석두는 약산을 얻고, 약산은 조동을 얻어 한 종파의 교리행과敎理行果와 말씀이 퍼지게 되었다. 또 천왕 도오 밑에서는 주금강周金剛이 나와서 바람을 꾸짖고 비를 나무라면서 비록 불조佛祖라도 칼끝을 감당할 수 없다 했으니 아마도 천황으로부터 틀렸는가 생각된다’고 논했다. 적음寂音 존자도 의심하기를 ‘도오가 두 사람이 있는 것 같다’고 하였고, 무진 거사도 나중에 달관 영 선사에게서 당唐의 부재符載가 지은 천황 도오의 탑기塔記를 얻고, 또 구현소가 지은 천황 도오의 탑기도 얻어서 이를 싸가지고 제방으로 두루 다니면서 ‘내가 일찍이 덕산德山과 동산洞山이 모두가 석두 밑에서 나온 것을 의심했으니, 그들이 손을 쓰는 곳마다 살활殺活이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제 구丘씨와 부符씨의 두 기록으로써 증험하건대, 분명하고 명백해서 내가 사람을 시험하고 법을 가리는 눈이 틀리지 않은 줄을 확신하겠다’ 하였다. 그리고 적음 존자가 말하기를 ‘규봉이 배상국에게 종취를 대답하는 편지에서 마조의 법손 여섯 사람을 열거하였는데, 첫머리에 강릉 도오라 하였고, 그 밑에 주를 내되 겸하여 경산에게 물었다고 했거늘 이제 허망하게 운문과 임제 두 종파가 다투는 것은 한바탕 웃을 일이다’라고 하였다. 대요를 간략히 써서 전하니, 밝게 통달한 이로 하여금 5가家의 정파正派가 이와 같은 줄 알게 할 뿐이다”라고 하였다.] 

경조京兆 시리尸利 선사
처음에 석두石頭에게 물었다.
“어떤 것이 학인의 본분사本分事입니까?”
석두가 대답했다.
“그대는 그것을 어찌 나에게서 찾는가?”
“스님으로부터 찾지 않으면 어떻게 얻겠습니까?”
“그대가 잃은 적이 있던가?”
대사가 이내 그 뜻을 깨달았다.

등주鄧州 단하丹霞 천연天然 선사
어느 곳의 사람인지 모른다. 처음에는 유교를 배워서 과거를 보러 장안으로 들어갔는데, 여관에서 쉬다가 홀연히 흰 광명이 방 안에 가득한 꿈을 꾸었다. 이에 점치는 사람이 공空을 터득할 상서로움이라 해석하니, 때마침 어떤 선객禪客이 나서서 물었다.
“당신은 어디로 가십니까?”
“관리로 뽑히기 위해서 과거 보러 갑니다.”
“관리로 뽑히는 것이 부처로 뽑히는 것만 하겠습니까?”
“부처로 뽑히려면 어디로 가야 합니까?”
선객이 대답했다.
“지금 강서江西에는 마 대사가 세상에 나타나셨는데, 거기가 부처를 뽑는 도량입니다. 당신도 그리로 가시오.”
그 길로 강서로 가서 마 대사를 보자마자 손으로 복두幞頭의 이마 부분을 치니, 마 대사가 돌아보면서 양구良久하다가 말했다.
“남악南嶽의 석두가 그대의 스승이다.”
바로 남악에 가서 앞의 뜻으로써 귀의하니 석두가 말했다.
“방앗간에나 가거라.”
대사가 절을 하고 물러나서 행자들의 방으로 들어가서는, 절차에 따라 부엌일을 3년 동안 계속했다. 
어느 날 석두가 홀연히 대중에게 말했다.
“내일은 불전佛殿 앞의 풀을 깎자.”
이튿날, 대중과 아이들까지 제각기 낫을 가지고 풀을 깎았으나, 대사만은 대야에다 물을 떠서 머리를 감고 화상 앞에 꿇어앉았다. 석두가 이를 보고 웃으면서 머리를 깎아 주고, 또한 계법戒法을 설명해 주려고 하자 대사가 귀를 막고 나가 버렸다. 그리고는 강서로 가서 다시 마 대사를 뵈었는데, 절을 하기 전에 바로 승당僧堂으로 들어가서 성승聖僧 승당 안에 모셔 놓은 본존상을 말한다.
의 목을 타고 앉았다. 대중들이 깜짝 놀라서 마 대사에게 알리자, 마 대사가 몸소 승당에 들어와 보고서 말했다.
“나의 제자로다. 천연天然스럽기 그지없구나.”
대사가 얼른 내려와 절을 하면서 말했다.
“스님께서 이름[法號]을 내려 주시니 감사합니다.”
이로 인해 천연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마 대사가 물었다.
“어디서 왔는가?”
“석두에서 왔습니다.”
“석두의 길이 미끄러운데 넘어지지는 않았는가?”
“넘어졌다면 오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리고는 지팡이를 짚고 사방을 다니다가 천태산天台山의 화정봉華頂峰에서 3년을 머문 뒤에 여항餘杭의 경산徑山에 가서 국일國一 선사를 뵈었다. 당나라 원화元和 때에는 낙경洛京의 용문龍門 향산香山에 가서 복우伏牛 화상과 막역한 벗이 되었다. 

나중에 혜림사慧林寺에 있을 때 날씨가 몹시 추웠는데, 대사가 목불(木佛:나무 불상)을 패서 땔감으로 쓰자 사람들이 비난을 하였다. 이에 대사가 말했다.
“나는 태워서 사리를 얻으려고 했다.”
사람들이 말했다.
“나무 불상에 어찌 사리가 있겠는가?”
“그렇다면 어찌 나를 꾸짖는가?”

어느 날 대사가 충忠 국사를 뵈러 가서 먼저 시자侍者에게 물었다.
“국사께서 계시는가?”
“계시기는 하나 손님을 만나시지 않습니다.”
“너무 깊고 먼 사람이군.”
“부처의 눈으로 엿보아도 보이지 않습니다.”
“용은 용의 새끼를 낳고, 봉은 봉의 새끼를 낳는구나.”
국사가 잠에서 깨어나자 시자는 앞에 있었던 일을 보고했는데, 국사가 시자에게 20방망이를 때려서 쫓아냈다. 나중에 단하가 이 말을 듣고 말했다.
“남양 국사란 이름이 헛되지 않았구나.”
이튿날 절을 하러 가서 국사를 보고는 방석을 펴니, 국사가 말했다.
“필요치 않다. 필요치 않다.”
대사가 물러서니, 국사가 말했다.
“그렇다, 그렇다.”
대사가 다시 앞으로 다가서니, 국사가 말했다.
“그렇지 않다. 그렇지 않다.”
대사가 국사를 한 바퀴 돌고 나가 버리자, 국사가 말했다.
“성인과의 거리가 점점 멀어져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게을러지니, 30년 뒤에는 이런 사람도 만나기 어려우리라.”

대사가 방龐 거사居士를 찾아갔다가, 그의 딸이 나물 캐는 것을 보고서 물었다.
“거사께서 계시는가?”
딸이 광주리를 놓고 손을 모으고 섰다. 대사가 또 물었다.
“거사께서 계시는가?”
딸이 다시 광주리를 들고 떠났다.

원화元和 3년에 천진교天津橋 위에 누웠는데, 때마침 유수留守인 정공鄭公이 나왔다가 그를 꾸짖었지만 일어나지 않았다. 관리가 그 까닭을 물으니, 대사는 느릿느릿 말했다.
“일 없는 중이외다.”
유수가 기이하게 여겨서 비단 피륙과 옷 두 벌을 받들어 올리고, 날마다 쌀과 밀을 바치니, 이로부터 서울 장안이 흔연히 귀의했다.
원화 15년 봄이 되자, 문인들에게 고했다.
“나는 이제 산속[林泉]에서 여생을 마칠까 하노라.”
이때에 문인인 영제令齊와 정방靜方이 남양의 단하산丹霞山을 점찍어서 암자를 짓고 섬기니, 3년 동안 학인들이 3백 명이나 모여서 큰 선원을 이루었다.
대사가 상당하여 말했다.
“그대들이여, 집안의 하나의 신령스런 물건을 절실히 보호하라. 그대들이 이름을 짓거나 모양을 그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니, 다시 어찌 천거되고 천거되지 못함을 말하겠는가? 내가 지난 날 석두 화상을 뵈었더니, 그도 역시 이 일을 잘 보호하라고 가르치셨으나, 이 일은 말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대들은 제각기 하나의 앉을 자리가 있거늘, 다시 무엇을 의심하랴? 참선은 그대들이 알 수 있는 것이라 하겠지만, 부처야 어찌 이룰 수 있겠는가? 부처라는 한 글자는 영원히 듣고 싶지 않다. 그대들은 잘 살펴보라. 선교방편善巧方便과 자慈․비悲․희喜․사捨는 밖으로부터 얻는 것도 아니고, 마음에 집착할 것도 아니다. 선교는 문수文殊이고 방편은 보현普賢인데, 그대들은 또 무엇을 찾아 헤매는가? 경經에 의존하지도 말고, 공空에 떨어지지도 말라. 요사이의 학자들이 소란하게 구는 것은 모두가 참선하고 도를 묻고 따지는 일이지만, 나의 이곳에는 닦을 도도 없고 증득할 법도 없다. 한 번 마시고 한 번 먹음에 각기 스스로의 분수가 있으니 더 이상 의심하지 말라. 곳곳마다 이러함이 있으니, 만약 알아채기만 한다면 석가 그대로가 범부이리라. 그대들 스스로가 잘 살필 것이니, 한 소경이 뭇 소경을 이끌고 불구덩이로 들어가며, 말판 색깔도 구분하지 못하는 어두운 한밤중에 주사위 놀이[雙陸]를 하는 것과 같은 짓을 하지 말라. 어찌 하여야 무사하겠는가. 진중하라.”

어떤 스님이 참문하러 왔다가 산 밑에서 대사를 보고 물었다.
“단하산은 어디로 갑니까?”
대사가 산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새파랗게 아득한 곳이다.”
“단지 그것이면 되지 않겠습니까?”
“진정한 사자의 새끼라면 한번 건드림에 얼른 움직인다.”

대사가 어느 스님에게 물었다.
“어디서 잤는가?”
“산 밑에서 잤습니다.”
“어디서 밥을 먹었는가?”
“산 밑에서 먹었습니다.”
“그대에게 밥을 주는 사리闍梨가 눈을 갖추고 있던가?”
스님은 대답이 없었다.[장경長慶이 보복保福에게 이야기하고 묻기를 “밥을 주어 먹이면 감사를 받을 분수가 있거늘, 어째서 눈을 감추지 못했을까?”라고 하니, 보복이 말하기를 “준 놈이나 받을 놈이 모두 당달봉사로세”라고 하였다. 장경이 말하기를 “그 기용機用을 다할 때에는 어찌하겠는가?”라고 하니, 보복이 말하기를 “나를 눈멀게 할 수 있다는 말인가?”라고 하였다. 현각은 말하기를 “말해 보라. 장경은 단하의 뜻을 밝혔는가, 아니면 자기살림을 활용했는가?”라고 하였다.]

대사가 장경長慶 4년 6월 23일에 문인들에게 말하였다. 
“목욕물을 데워라. 나는 떠나야 한다.”
그리고는 삿갓을 쓰고 지팡이를 짚고 신을 신은 뒤에 한 발을 내딛었는데, 발이 미쳐 땅에 닿기도 전에 입적하니 수명은 86세였다. 문인들이 돌을 다듬어서 탑을 세우니, 시호를 지통智通 선사라 하고 탑호를 묘각妙覺이라 하였다.

담주潭州 초제招提 혜랑慧朗 선사
그는 시흥始興의 곡강曲江 사람으로서 성은 구양씨歐陽氏이다. 13세에 등림사鄧林寺의 모模 선사에 의해 머리를 깎고, 17세에 남악南嶽에 갔다가 20세에 그곳 남악의 절에서 구족계를 받은 뒤에 건주虔州의 공공산龔公山으로 가서 대적大寂을 뵈었다. 
대적이 그에게 물었다.
“그대는 무엇을 구하러 왔는가?”
“부처의 지견知見을 구하러 왔습니다.”
“부처는 지견이 없으니, 지견은 바로 마군[魔]의 경계이다. 그대는 남악에서 왔으면서도 석두의 󰡔조계심요曹谿心要󰡕를 보지 못한 모양이구나. 그대는 도로 돌아가라.”
대사(혜랑)가 분부를 받고는 남악으로 돌아와서 석두를 찾아가 물었다.
“어떤 것이 부처입니까?”
석두가 대답했다.
“그대는 불성이 없다.”
“꼬물거리는 생령[含靈]들은 어떻습니까?”
“꼬물거리는 생령들은 오히려 불성이 있다.”
“어째서 저[慧朗]에게는 없습니까?”
“그대가 기꺼이 받아들여 감당하지 못하기 때문이니라.”
대사가 이 말끝에 깊이 믿음이 생겼다.
나중에 양단梁端의 초제사招提寺에서 살았는데, 30여 년 동안 문밖을 나서지 않으면서 학자들이 오기만 하면 언제나 이렇게 말했다.
“가거라, 가거라. 그대에게는 불성이 없다.”
그가 기근機根을 제접하는 방법이 대략 이러하였다.[당시 사람들이 대랑大朗 선사라 불렀다.]

장사長沙 흥국사興國寺 진랑振朗 선사
처음에는 석두를 뵙고 이렇게 물었다.
“어떤 것이 조사가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석두가 대답했다.
“돌기둥에게 물어라.”
“진랑은 모르겠습니다.”
“나도 모르겠다.”
이에 대사가 문득 깨달았다. 
거기 머문 뒤로는 어떤 스님이 와서 참문할 경우 대사는 늘 “상좌야”라고 불러서 스님이 “네” 하고 대답하면 이렇게 말했다.
“홀로 저버리는구나.”
“스님께서는 왜 비추지 않으십니까?”
대사가 눈을 닦고 들여다보니, 스님은 말이 없었다.[당시 사람들이 소랑小朗 선사라 불렀다.]

예주澧州 약산藥山 유엄惟儼 선사 
그는 강주絳州 사람으로서 성은 한韓씨이다. 17세에 조양潮陽 서산西山의 혜조慧照 선사에 의해서 출가하였고, 당나라 대력大歷 8년에 형악衡嶽의 희조希操 율사에게 구족계를 받고서 말했다.
“대장부가 마땅히 법을 여의어서 스스로 청정할지언정, 어찌 사소한 일로 세행細行을 일삼겠는가?”
그리고는 바로 석두를 뵙고서 비밀히 현묘한 종지를 깨달았다.
어느 날 대사가 앉았는데 석두가 보고서 물었다.
“그대는 거기서 무엇을 하는가?”
“전혀 하는 것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한가롭게 앉은 것이군.”
“한가롭게 앉았다면, 그것마저도 하는 것입니다.”
“그대는 하지 않는다고 말하는데, 하지 않는다는 것이 무엇인가?”
“천 명의 성인도 알아채지 못합니다.”
석두가 게송으로 찬탄하였다.

지금까지 함께 머물면서도 이름을 모르고
운運에 맡겨 서로 거느리면서 그렇게 가는구나.
예로부터의 뛰어난 성현도 알아채질 못하는데
예사로운 범부들이 잠깐 사이에 어찌 밝힐 수 있으랴.
從來共住不知名    任運相將只麽行
自古上賢猶不識    造次凡流豈可明

어느 날 석두가 이렇게 말했다.
“언어와 동작으로는 교섭하지 말라.”
대사가 대답했다.
“언어와 동작이 아닌 것으로도 교섭하지 마십시오.”
“이 속은 바늘로 찔러도 들어가지 않는다.”
“이 속은 돌 위에다 꽃을 심은 것과 같습니다.”
석두가 옳다고 여겼다.

나중에 대사가 예주의 약산에 머무니, 대중이 구름같이 모였다.[자세한 어록은 다른 책에 있다.]
어느 날 대사가 경을 보는데, 백암柏巖이 말했다.
“화상은 원숭이 놀음을 쉬게 하실 수 있습니까?”
대사가 경을 탁 덮으면서 말했다.
“해가 어디쯤인가?”
“바로 정오입니다.”
“아직도 그런 문채文彩가 남았느냐?”
“저에게는 없다는 것도 없습니다.”
“그대는 몹시도 총명하구나.”
“저는 그렇거니와 화상의 높으신 뜻은 어떠하십니까?”
“나는 절름거리고 비틀거리는 등 백천 가지 추태를 부리면서 세월을 보낸다.”

대사가 도오道吾와 이야기를 할 때에 이런 말을 했다.
“명계(茗谿:道行 禪師)는 전생[上世]에 절찰(節察:순사)이었나 보다.”
도오가 물었다.
“화상께서는 전생에 무엇을 하셨습니까?”
“나는 뒤틀리고 여윈 채로 그럭저럭 살았다.”
“왜 그랬습니까?”
“나는 일찍이 다른 책을 편 적이 없기 때문이다.”[석상石霜이 따로 말하기를 “책은 일찍이 펼친 적이 없었다”라고 하였다.]

원주가 와서 아뢰었다.
“종을 쳤습니다. 화상께서는 법당에 오르십시오.”
대사가 말했다.
“그대는 내 발우를 좀 들어다오.”
“화상께서는 손 없이 지낸 지가 얼마나 되셨습니까?”
“그대는 그저 가사를 헛되이 걸쳤을 뿐이구나.”
“저는 그렇거니와 화상께서는 어떠하십니까?”
“나는 그러한 권속이 두지 않는다.”

대사는 원두(園頭:밭을 관리하는 스님)가 나물 키우는 것을 보고 말했다.
“키우는 것은 막지 않겠다만 뿌리가 나지 않게 하라.”
“뿌리가 나지 않게 하라고 하시면 대중은 무엇을 먹습니까?”
“그대도 입이 있는가?”
그 스님은 대답이 없었다.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찌하여야 모든 경계에 미혹되지 않습니까?”
“듣게나. 그것이 어찌 그대를 장애하겠는가?”
“잘 모르겠습니다.”
“어떤 경계가 그대를 미혹시키던가?”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길 가운데 놓인 지극한 보배입니까?”
“아첨하거나 왜곡하지 말라.”
“아첨하거나 왜곡하지 않을 때에는 어떠합니까?”
“나라가 기운다 해도 바꾸지 않는다.”

어떤 스님이 두 번째 와서 의탁하기를 청하자, 대사가 물었다.
“누군가?”
“상탄常坦입니다.”
대사가 꾸짖었다.
“먼저도 상탄이더니, 나중에도 상탄인가?”

어느 날 원주院主가 대사에게 상당上堂을 청했다. 대중이 다 모였는데도 대사는 잠자코 있더니만, 그대로 방장으로 돌아가서 문을 닫았다. 원주가 뒤를 따라가서 말했다.
“화상께서 저에게 상당법문을 허락하시고서 어찌 방장으로 돌아가십니까?”
대사가 말했다.
“원주야, 경에는 경사經師가 있고, 논에는 논사論師가 있고, 율에는 율사律師가 있는데, 어찌 나를 이상하게 여기는가?”

대사가 운암雲巖에게 물었다.
“무엇을 하는가?”
“똥을 풉니다.”
“그것은?”
“있습니다[在].”
“그대는 무엇 때문에 왔다갔다하는가?”
“다른 것과 바꾸려고요.”
“어찌하여 한꺼번에 하지 않는가?”
“화상은 사람을 비방하지 마십시오.”
“그렇게 말하지 않아야 하는데.”
“어떻게 말하리까?”
“짊어진 적이 있기는 한가?”

대사가 앉았는데 어떤 스님이 물었다.
“오뚝하게 앉아서 무엇을 사량思量하십니까?”
“사량하지 않는 것을 사량한다.”
“사량하지 않는 것을 어떻게 사량한단 말입니까?”
“사량에 얽매이지 않기 때문이니라[非思量].”

어떤 스님이 물었다.
“학인이 고향에 돌아가고자 할 때 어찌해야 합니까?”
“그대의 부모는 온몸이 붉게 부어서 가시덤불 숲에 누웠거늘, 그대는 어디로 돌아간다 하는가?”
“그렇다면 돌아가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그대는 고향으로 가야 한다. 만일 그대가 고향으로 돌아간다면 나는 그대에게 음식을 끊는 법을 일러 주겠다.”
“말씀해 주십시오.”
“두 차례씩 상당하였으나 쌀 한 톨도 깨물어 터뜨리지 못했다.”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열반입니까?”
“그대가 입을 열기 전을 무엇이라 부르는가?”

대사가 준포납遵布衲이 불상을 씻는 것을 보고서 물었다.
“이것은 그대가 씻고 있지만, 저것도 씻을 수 있는가?”
준포납이 말했다.
“저것을 잡아서 가져오십시오.”
대사가 그만두었다.[장경長慶이 말하기를 “삿된 법은 유지하기가 어렵구나”라고 하였다. 현각玄覺이 말하기를 “말해 보라. 장경이 그렇게 말한 것이 손님 쪽에 있는가, 주인 쪽에 있는가? 대중 가운데에서는 이를 부처를 씻는 말이라고도 하고 겸해서 하는 말이라고도 하는데 결론적으로 선한 말인가, 결론적으로 선하지 못한 말인가?”라고 하였다.]

어떤 스님이 물었다.
“학인이 의심이 있으니, 스님께서 풀어 주십시오.”
“상당했을 때에 오라. 그대를 위해 의심을 풀어 주리라.”
저녁이 되어 상당했다. 대중이 모여서 좌정坐定하자, 대사가 말했다.
“오늘 의심을 풀어 달라고 청한 상좌가 지금 어디에 있는가?”
그 스님이 대중 앞에 나와서 서니, 대사가 선상에서 내려와 붙들고서 말했다.
“대중아, 이 스님이 의심이 있단다.”
그리고는 놓아 버리고 방장으로 돌아갔다.[현각이 말하기를 “그에게 의심을 풀어 준 것인가? 풀어 주었다면 어디가 푼 곳인가? 의심을 풀지 않았다면 상당할 때에 의심을 풀어 주겠다고 하지 않았던가?”라고 하였다.]

대사가 반두(飯頭:공양을 담당하는 스님)에게 물었다.
“여기에 얼마나 있었는가?”
“3년 있었습니다.”
“나는 전혀 그대를 모르겠는데…….”
반두가 어쩔 줄을 모르다가 화를 내고 떠났다.

어떤 스님이 물었다.
“몸과 목숨이 급한 곳이 어디입니까?”
“잡종雜種을 심지 말라.”
“무엇으로 공양하오리까?”
“물건이라 할 것이 없다.”

대사가 공양주供養主를 시켜 교화 다니는 스님을 조사하게 하였다. 감甘 행자가 스님에게 물었다.
“어디서 오셨습니까?”
그 스님이 대답했다.
“약산藥山에서 왔습니다.”
“무엇 때문에 오셨습니까?”
“교화하러 왔습니다.”
“약을 가지고 오셨습니까?”
“행자께 무슨 병이라도 있으십니까?”
감 행자가 은전 두 냥을 던지면서 말했다.
“만약 사람이 있으면 돌려보낼 것이고, 사람이 없으면 그냥 두십시오.”
대사가 스님이 너무 빨리 돌아온 것을 괴이하게 여기니, 그 스님이 말했다.
“불법佛法을 물어서 은전 두 냥을 얻었습니다.”
대사가 그 스님에게 그 이야기를 다시 하게 하였다. 그 스님이 말을 마치자, 대사는 그 스님에게 빨리 행자의 집으로 돌려주게 하였다. 행자는 스님이 돌아온 것을 보고서 말했다.
“스님이 오셨으니, 은을 보태서 시주하겠습니다.”[동안同安이 대신 말하기를 “그런 물음을 알고 있었다. 끝내 약산에서 왔다고는 말하지 않으리라”고 하였다.]

대사가 어떤 스님에게 물었다.
“그대가 허虛와 실實을 헤아릴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을 보았네.”
“외람스럽습니다.”
“시험 삼아 나를 헤아려 보라.”
스님은 대답이 없었다.[운암雲巖이 나중에 동산에게 묻기를 “그대는 어찌 생각하는가?”라고 하니, 동산이 대답하기를 “화상의 생일을 말씀해 주십시오”라고 하였다.]

대사가 불佛자를 써 놓고 도오道吾에게 물었다.
“이것이 무슨 글자인가?”
도오가 말했다.
“불佛자입니다.”
“말 많은 중이구나.”
어떤 스님이 물었다.
“자기 일을 아직 밝히지 못했으니, 화상께서 가르쳐 주십시오.”
대사가 잠자코 있다가 말했다.
“내가 지금 그대에게 한마디 하기는 어렵지 않다. 다만 그대들이 말끝에 즉각 알아야 한다. 그렇다면 약간은 견주겠지만, 만일 다시 사량思量이 끼어든다면 도리어 나의 죄가 된다. 그러니 우선 입을 다물고 서로 누를 끼치는 것을 면하는 것만 못하다.”

대중이 밤에 뵈러 왔을 때에 등불을 켜지 않고 대사가 말했다.
“내게 한 마디[一句]가 있는데, 특별히 송아지가 새끼를 낳아야 그대들에게 말하리라.”
이때에 어떤 스님이 말했다.
“송아지가 새끼를 낳았는데, 스님께서는 왜 말씀하시지 않습니까?”
“시자야, 등불을 가져 오라.” 
그 스님이 물러나 대중 속으로 들어갔다.[운암이 나중에 동산에게 이야기하니, 동산이 말하기를 “그 스님이 알기는 했지만 그저 절을 하지 않았을 뿐이다”라고 하였다.]

어떤 스님이 물었다.
“달마 조사께서 오시기 전에도 이 국토에 조사의 뜻이 있었습니까?”
“있었다.”
“이미 조사의 뜻이 있었다면 어찌하여 또 오셨습니까?”
“다만 있다고 하기 때문에 오셨을 뿐이다.”
대사가 경을 보는데, 어떤 스님이 물었다.
“스님께서는 평소에 남들에게는 경을 보지 말라고 하시더니, 어째서 스님께서는 보십니까?”
“나는 그저 눈을 가리려는 것이다.”
“제가 화상을 본받아도 되겠습니까?”
“만일 그렇다면 그대는 쇠가죽도 꿰뚫어 보아야 하리라.”[장경長慶이 말하기를 “눈이 무슨 허물이 있는가?”라고 하였다. 현각玄覺이 말하기를 “말해 보라. 장경은 약산의 뜻을 알았을까, 몰랐을까?”라고 하였다.]

낭주郎州 자사刺史 이고李翶가 대사의 현묘한 교화를 멀리서 듣고 자주 청했으나, 끝내 일어나지 않으므로 몸소 산에 들어가서 뵈었다. 그러나 대사는 경을 보면서 돌아보지도 않았다. 이에 시자가 아뢰었다.
“태수太守가 오셨습니다.”
이고는 성질이 급해서 이렇게 말했다.
“얼굴을 보는 것이 이름을 듣는 것만 못하구나.”
대사가 태수를 부르니, 이고가 대답했다. 이에 대사가 말했다.
“어째서 귀만 귀하게 여기고 눈은 천하게 여기는가?”
이고가 손을 모으고 사죄하면서 물었다.
“어떤 것이 도입니까?”
대사가 손으로 위와 아래를 가리키면서 말했다.
“알겠는가?”
“모르겠습니다.”
“구름은 하늘에 있고, 물은 병에 있다.”
이고는 기쁘고 부끄러운 마음으로 절을 하고는 게송 하나를 읊었다.

몸의 형상을 단련한 것이 학의 형상과 같고
1천 그루 소나무 밑에 두 함函의 경일세.
내가 와서 도를 물으니 다른 말은 없고
구름은 푸른 하늘에 있고 물은 병에 있다고 하네.
練得身形似鶴形    千株松下兩函經
我來問道無餘說    雲在靑天水在缾
[현각玄覺이 말하기를 “말해 보라. 이李 태수太守는 그를 찬탄한 말인가, 그를 밝혀준 말인가? 행각行脚한 안목을 갖춘 이라야 비로소 되리라”고 하였다.]

이고가 다시 물었다.
“어떤 것이 계戒․정定․혜慧입니까?”
“나의 이 속에는 그러한 쓸모없는 가구家具가 없다.”
이고가 현묘한 취지를 헤아리지 못하자, 대사가 말했다.
“태수께서 이 일을 보전해 지니시려면, 바로 높고 높은 산꼭대기에 가서 앉고, 깊고 깊은 바다 밑을 다녀야 하오. 규합閨閤 안의 물건은 버릴 수 없으니 그대로 새어 버리게 하오.”

어느 날 밤에 대사가 산에 올라 거닐다가 홀연히 구름이 걷히면서 달이 나타나는 것을 보자 크게 웃으니, 그 소리가 예양澧陽 동쪽의 90리까지 들렸다. 마을 사람들 모두가 동쪽 집에서 나는 소리라 여겨서 이튿날 아침 차츰차츰 물어서 약산까지 와서 물으니, 약산의 대중들이 대답했다.
“지난밤에 화상께서 산꼭대기에서 크게 웃으셨다.”
이고가 이 말을 듣고 다시 시를 바쳤다.

그윽한 거처를 잡아서 야정野情에 흡족한지 
해가 끝나도 맞이하지도 않고 보내지도 않네.
때로는 외로운 봉우리 정상에 곧바로 올라서
달 아래 구름이 걷히자 한바탕 크게 웃네.
選得幽居愜野情    終年無送亦無迎
有時直上孤峰頂    月下披雲笑一聲

대화大和 8년 2월에 임종하기 직전에 외쳤다.
“법당이 쓰러진다. 법당이 쓰러진다.”
대중이 모두 기둥을 잡고 지탱하니, 대사가 손을 흔들면서 말했다.
“그대들은 나의 뜻을 모른다.”
그리고는 입적하니, 수명은 84세이고 법랍은 60세였다. 입실한 제자 중에 충허沖虛라는 이가 선원의 동쪽에다 탑을 세우니, 시호는 홍도弘道 대사라 하였고 탑호는 화성化城이라 하였다.

담주潭州 대천大川 화상[대호大湖라고도 한다.] 
강릉江陵에서 어떤 스님이 새로 와서 절을 하고 한쪽에 서 있자, 대사가 말했다.
“강릉을 떠난 지 얼마나 되는가?”
스님이 방석을 들어 올리자, 대사가 말했다.
“그대가 멀리 온 것이 고맙다. 내려가라.”
스님이 얼른 나가니, 대사가 말했다.
“만일 그렇지 않았다면, 어찌 안목이 분명했음을 알 수 있었으랴?”
스님이 손바닥을 비비면서 말했다.
“하마터면 제방의 노숙老宿들을 잘못 판단할 뻔한 것이 괴로울 따름입니다.”
대사가 수긍하였다.[어떤 스님이 단하丹霞에게 이야기하니, 단하가 말하기를 “대천의 법에는 말하기만 하면 되지만 나의 여기에는 그렇지 않다”라고 하였다. 스님이 말하기를 “여기는 어떻습니까?”라고 하니, 단하가 말하기를 “대천에게 세 걸음쯤 비슷해졌다”라고 하였다. 그리고 그 스님이 절을 하니, 단하가 말하기를 “여러 지역의 장로들을 잘못 판단하는 이가 매우 많다”라고 하였다. 동산이 이 말을 듣고 말하기를 “단하가 아니면 옥과 돌을 가리기 어려웠으리라”고 하였다.]

분주汾州 석루石樓 화상
대사가 상당上堂하니, 어떤 스님이 나와서 물었다.
“전생의 일을 알지 못하겠으니, 스님께서 방편으로 가르쳐 주십시오.”
대사가 대답했다.
“석루는 귓바퀴[耳朶]가 없다.”
“저는 스스로 그른 줄 알고 있습니다.”
“내게도 허물이 있던가?”
“화상의 허물이 어디에 있습니까?”
“그대가 그르다고 하는 곳에 허물이 있다.”
스님이 절을 하니, 대사가 때렸다.

대사가 어떤 스님에게 물었다.
“요즈음 어디서 떠났는가?”
“한漢나라에서 떠났습니다.”
“한나라의 천자도 불법을 소중히 여기던가?”
“애달프고도 애달픕니다. 저에게 물었기에 다행이지, 다른 사람에게 물었더라면 큰 화禍가 생길 뻔했습니다.”
“왜 그런가?”
“사람도 볼 수 없는데 무슨 중시할 만한 불법이 있겠습니까?”
“그대는 계를 받은 지 얼마나 되는가?”
“30년입니다.”
“아무도 보지를 않아서 아주 좋겠구나.”
그리고는 때렸다.

봉상부鳳翔府 법문사法門寺 불타佛陀 화상
항상 염주 하나를 들고 염주 알을 세면서 세 가지 명호를 염念했다.
“첫째는 석가釋迦요, 둘째는 원화元和요, 셋째는 불타佛陀이니, 그 밖의 것이야 모두 완달구椀躂丘 개의 생식기를 말한다.
이다.”
이렇게 계속해서 되풀이하여 그 행적이 기이하였는데, 당시 사람들은 헤아릴 수 없었다.

담주潭州 화림華林 화상
스님이 뵈러 와서 바야흐로 방석을 펴는데, 대사가 말했다.
“천천히 하라.”
스님이 말했다.
“화상께서는 무엇을 보셨습니까?”
“아깝게도 종루鐘樓가 주저앉았구나.”
그러자 그 스님은 크게 깨달았다.

조주潮州 대전大顚 화상
처음에 석두石頭를 뵈니, 석두가 대사에게 물었다.
“어느 것이 그대의 마음인가?”
“말하는 이것입니다.”
문득 석두에게 할을 당하고 쫓겨났다. 십여 일이 지나자, 대사가 다시 물었다.
“먼저의 대답이 틀렸다면, 이를 제외하고 어떤 것이 마음입니까?”
석두가 대답했다.
“눈썹을 치키거나 눈을 깜박이는 일을 제외하고서 마음을 가져 오라.”
“가져올 마음이 없습니다.”
“원래 마음이 있거늘 어째서 마음이 없다고 하는가? 마음이 없다고 하면 모두가 비방하는 말이 된다.”
대사가 이 말끝에 크게 깨달았다. 
훗날 시봉하면서 서 있는데, 석두가 물었다.
“그대는 참선하는 승려인가, 고을로 돌아다니는 승려인가?”
“참선하는 승려입니다.”
“어떤 것이 선인가?”
“눈썹을 치키고 눈을 깜박이는 것입니다.”
“눈썹을 치키고 눈을 깜박이는 일을 제외하고, 그대의 본래면목을 갖다 바쳐라.”
“화상께서 눈썹을 치키고 눈을 깜박이는 일을 제외하고 저에게 보여 주십시오.”
“나는 제거해 버렸다.”
“저도 이미 화상께 바쳤습니다.”
“그대가 이미 바쳤다니, 내 마음은 어떠한가?”
“화상과 다르지 않습니다.”
“그대의 일에는 관계하지 않는다.”
“본래 물건이 없습니다.”
“그대도 물건이 없다.”
“이미 물건이 없다면 곧 참 물건이겠습니다.”
“참 물건은 얻을 수 없다. 그대 마음의 현량(見量:正體)과 의취意趣가 이러하니, 부디 잘 보호해 지녀라.”

대사가 나중에 그곳을 떠나서 조주 영산靈山에 은거하니, 배우려는 자들이 사방에서 모였다.
대사가 상당하여 말했다.
“도를 배우는 사람은 모름지기 자가自家의 본심을 알려고 하므로 마음을 가지고 보여 주면 바야흐로 도를 볼 수 있다. 요즘 사람들이 단지 눈썹을 치키거나 눈을 굴리거나 한 번 말하고 한 번 침묵하는 것을 인정해서 곧바로 인가하는 것을 심요心要라고 여기는 사람들이 많은데 실제로는 아직 요달하지 못한 것이다. 내가 이제 그대들에게 분명히 말해 주겠으니, 제각기 자세히 들어라. 다만 온갖 망상과 헤아리는 소견을 버리면 바로 그대의 참 마음이니, 이 마음은 티끌 경계에 응할 때든 고요한 침묵을 지키면서 인정할 때든 전혀 교섭이 없다.
마음 그대로가 부처이니, 닦고 다스릴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근기에 응하는 데 따라 비추면서 차디차게 스스로 작용하지만, 그 작용하는 곳을 궁구해도 끝내 얻을 수 없다. 묘한 작용이라 부르려 하지만 바로 본래의 마음일 뿐이니, 부디 잘 보호해 지니면서 경솔히 여기지 말라.”

어떤 스님이 물었다.
“그 속의 사람끼리 서로 볼 때는 어떠합니까?”
“벌써 그 속이 아니다.”
“그 속이란 것은 어떠합니까?”
“그런 물음을 하지 말라.”
“괴로움의 바다에 파도가 깊으니, 무엇으로 배나 뗏목을 삼으리까?”
“나무로 배나 뗏목을 만들라.”
“그러면 건넙니까?”
“장님은 여전히 장님이요, 벙어리는 여전히 벙어리다.”

담주潭州 유현攸縣 장자長髭 광曠 선사
처음에 조계에 가서 6조의 탑에 예배하고 돌아오는 길에 석두石頭를 뵈니, 석두가 물었다.
“어디서 오는 길인가?”
“영남에서 왔습니다.”
“영嶺 마루턱의 한 존자尊者는 공덕을 이루었던가?”
“성취한지 오랩니다만 아직 점안點眼을 못했습니다.”
“점안해 주기를 바라는가?”
“청하옵니다.”
석두가 한 발을 드니, 대사가 절을 하였다. 이에 석두가 말했다.
“그대는 어떤 도리를 보았기에 절을 하는가?”
“제가 보건대, 커다란 화롯불 위에 한 점의 눈송이가 내린 것 같습니다.”[현각玄覺이 말하기를 “말해 보라. 장자는 안목을 갖추고서 대답했는가, 안목을 갖추지 못하고 대답했는가? 안목을 갖추었다면 왜 눈을 떼어 달라 했을까? 안목을 갖추지 못했다면 또 도를 성취한 지가 오래라고 한 말은 어찌 풀이해야 할까?”라고 하였다. 그러자 법등法燈이 대신 말하기를 “화상은 눈이 어두우시군요”라고 하였다.]

수공水空 화상
어느 날 복도에서 한 스님을 만나자 이렇게 물었다.
“하루의 일이 어떠한가?”
스님이 그저 가만히 있자, 대사(수공)가 다시 물었다.
“그렇게만 하면 되는가?”
“머리 위에다 머리를 붙이는군요.”
대사가 때리면서 말했다.
“가거라, 가. 이후로는 남의 집 남녀들을 홀리겠구나.”


행사行思 선사의 제3세

앞의 형주荊州 천황天皇 도오道悟 선사의 법손

예주澧州 용담龍潭 숭신崇信 선사
본래는 저궁渚宮의 떡 장수 자손으로서 성씨는 알 수 없지만, 어렸을 때부터 매우 영리하였다.
처음에 도오 화상이 영감靈鑒의 은밀한 청을 받아 천황사天皇寺에 거처하였지만 아무도 아는 이가 없었다. 이때 대사의 집은 절 밑의 마을에 있었는데, 날마다 떡 열 개를 보내서 공양시키고 있었다. 도오는 매번 받아서 다 먹고 나서는 항상 떡 하나를 남기며 말했다.
“내가 그대에게 주어서 자손들에게 음덕蔭德이 내리게 하리라.”
어느 날 대사가 생각하였다.
“내가 떡을 가지고 가면, 어찌하여 나에게 돌려주는 것일까? 무슨 뜻이 있는가 보다.”
그리하여 곧장 찾아가서 물으니, 도오가 대답했다.
“그대가 가져온 것을 그대에게 돌려주는 것이 무엇이 이상한가?”
대사가 이 말을 듣고 자못 현묘한 뜻이 밝아졌다. 그리하여 출가를 청하여 말하니, 도오가 말했다.
“그대는 옛적에 복福과 선善을 숭상하고 지금은 내 말을 믿으니, 이름을 숭신崇信이라 부르자.”
이로부터 곁에서 부지런히 시봉을 하였는데, 어느 날 물었다.
“제가 여기에 온 뒤로 아직껏 마음의 요체[心要]를 가리켜[指示] 주시는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나는 그대가 온 뒤로 그대 마음의 요체를 가리키지 않은 적이 없었다.” 
“어디서 가리켜 주셨습니까?”
“그대가 차를 끓여 오면 나는 너를 위해 받았고, 밥을 갖다 주면 너를 위해 받아먹었고, 그대가 합장을 하면 나 역시 고개를 숙였다. 어딘들 마음의 요체를 가리키지 않았단 말인가?”
대사가 머리를 숙이고 잠자코 앉았으니, 도오가 말했다.
“보려면 당장에 보아야지 생각으로 헤아리려면 바로 어긋난다.”
대사는 이 말에 견해가 열렸다. 그리하여 다시 물었다.
“어떻게 보호해 지니오리까?”
“성품에 맡겨서 그대로 자유롭게 두고, 연緣에 따르되 놓아 버려 비워라. 오직 범부의 마음만을 다할 뿐이지 따로 수승한 견해가 없느니라.”

대사가 나중에 예양澧陽의 용담사龍潭寺에 가서 사는데 어떤 스님이 와서 물었다.
“상투 안의 구슬[髻中珠]을 누가 얻습니까?”
“즐겨 구경하지 않는 이가 얻는다.”
“어느 곳에 안착安著합니까?”
“처소가 있느니라.”
“처소가 있으면 말해 주십시오.”

비구니 대중이 물었다.
“어찌하여야 스님이 되겠습니까?”
“비구니가 된 지 얼마나 되는가?”
“스님이 될 때가 있기는 하겠습니까?”
“그대는 지금 무엇이란 말인가?”
“현재는 비구니의 신분이니, 어찌 모른다 하십니까?”
“누가 그대를 알겠는가?”

이고李翶가 대사에게 물었다.
“어떤 것이 진여의 반야입니까?”
“나에게는 진여의 반야가 없다.”
“화상을 만난 것이 다행입니다.”
“이것도 분수 밖의 말이다.”

덕산德山이 물었다.
“용담龍潭의 소문을 들은 지 오래인데, 와서 보니 못도 보이지 않고 용도 나타나지 않네요.”
대사가 말했다.
“그대는 직접 용담에 와 보기는 했는가?.”
그러자 덕산이 그만두었다.[현각玄覺이 말하기를 “말해 보라. 덕산이 용담을 수긍했는가, 수긍하지 않았는가? 수긍했다면 덕산의 안목이 어디에 있는가? 수긍하지 않았다면 어째서 대를 이어가는가?”라고 하였다.]

등주鄧州 단하산丹霞山 천연天然 선사의 법손

경조京兆 종남산終南山 취미翠微 무학無學 선사
처음에 단하丹霞에게 물었다.
“어떤 것이 부처님들의 스승입니까?”
단하가 꾸짖으면서 말했다.
“이 딱한 중생아, 수건과 빗자루[巾箒]를 잡아서 무엇을 하려 하는가?”
대사가 세 걸음 물러서자, 단하가 말했다.
“틀렸다.”
대사가 앞으로 나서자, 단하가 말했다.
“틀렸다, 틀렸어.”
대사가 한 발을 들고, 몸을 한 바퀴 돌린 뒤에 나가니 단하가 말했다.
“얻기는 얻었으나 다른 부처님들을 홀로 저버렸구나.”
대사가 이로 인해 현묘한 뜻을 깨닫고 취미翠微에 살기 시작했다. 

투자投子가 물었다.
“2조祖가 처음으로 달마를 보았을 때에 무엇을 얻었습니까?”
대사가 대답했다.
“그대는 지금 나를 보고 무엇을 얻었는가?”

어느 날 대사가 법당 안에서 거니는데, 투자가 앞으로 나서서 절을 하고 물었다.
“서쪽에서 온 비밀한 뜻을 화상께서는 어찌하여 남에게 보이십니까?”
대사가 잠시 걸음을 멈추자, 투자가 또 말했다.
“스님께서 가르쳐 주십시오.”
“더러운 물을 한 바가지 더해서 어찌하려는가?”
투자가 절을 하고 물러가니, 대사가 말했다.
“파묻히지 말라.”
투자가 대답했다.
“때가 되면 뿌리와 싹이 저절로 납니다.”

대사가 나한에게 공양을 올리는데, 어떤 스님이 물었다.
“단하 스님은 나무부처를 태웠는데, 화상께서는 어찌하여 나한께 공양을 올리십니까?”
“태워도 태워지지 않으니, 공양 역시 마음대로 공양하느니라.”
“나한께 공양하면 나한이 오십니까?”
“그대는 매일 먹었는가?”
스님이 대답이 없으니, 대사가 말했다.
“영리한 사람이 드물구나.”

단하산丹霞山 의안義安 선사[제2세 주지]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부처입니까?”
대사(의안)가 대답했다.
“어떤 것이 그대[上坐]인가?”
“그렇다면 다를 것이 없겠습니다.”
“그대에게 할 말이다.”

길주吉州 성공性空 선사
어떤 스님이 와서 참문하자, 대사가 손을 벌려 보였다. 스님이 앞으로 다가섰다가 다시 물러서니, 대사가 말했다.
“부모가 모두 죽었는데도 전혀 슬퍼하지 않는구나.”
그 스님이 깔깔 웃으니, 대사가 말했다.
“잠시 그대와 더불어 슬퍼하마.”
그 스님이 곤두박질을 치면서 나가니, 대사가 말했다.
“아이고, 아이고.”

본동本童 화상
문하의 스님들이 대사의 초상화를 그려 바치니, 대사가 말했다.
“이것이 나라면 다시 누구에게 바쳐야 하는가?”
스님이 말했다.
“어찌 분수 밖의 일이겠습니까?”
“만일 분수 밖의 것이 아니라면, 그대가 오히려 그것을 거두어라.”
그 스님이 거두려 하자, 대사가 얼른 때리면서 말했다.
“진짜 분수 밖인데 억지를 쓰는구나.”
“그렇다면 꼭 스님께 바쳐야겠군요.”
“거두어라, 거두어라.”

미창米倉 화상
어떤 스님이 새로 참례하러 와서 대사를 세 번 돌고, 선상禪床을 두드리면서 말했다.
“주인 늙은이가 보이지 않으니, 끝내 참선하는 무리 속에 끼지는 않겠다.”
대사(미창)가 말했다.
“어느 곳의 정식情識이 왔다갔다하느냐?” 
“과연 있지 않구나.”
대사가 주장자로 한 차례 때리니, 그 스님이 말했다.
“하마터면 정식情識에 떨어질 뻔하였습니다.”
그러면서 껄껄 웃자, 대사가 말했다.
“시골 풀밭을 걷다가 하나 걸려들었을 뿐인데, 무슨 말이 있겠느냐?”
“그럼 대중에 들어가서 참구해야겠군요.”

앞의 약산藥山 유엄惟儼 선사의 법손

담주潭州 도오산道吾山 원지圓智 선사
대사는 예장豫章 해혼海昏 사람으로서 성은 장張씨이다. 어릴 적에 반槃 화상에게 계를 받고, 약산의 법회에 가서 심인心印을 깨달았다. 
어느 날 약산이 물었다.
“그대는 어디를 갔었는가?”
“산을 돌고 왔습니다.”
“이 방을 여의지 말고, 빨리 말해 보라.”
“산 위의 까마귀 새끼는 눈과 같이 희고, 시냇물 속의 노는 고기는 바빠서 멈추지 않습니다.”

대사가 운암과 함께 모시고 섰는데, 약산이 말했다.
“지혜가 이르지 못하는 곳은 절대로 말하지 말라. 말하면 곧 머리에서 뿔이 난다. 원지圓智 두타頭陀는 어찌하겠는가?”
대사가 나가 버리니, 운암이 약산에게 물었다.
“원지 사형은 어째서 화상의 말씀에 대답하지 않습니까?”
약산이 대답했다.
“나는 오늘 등이 아프다. 이 일은 그가 알 것이니, 그대가 가서 물어보아라.”
운암이 다시 와서 대사에게 물었다.
“아까 사형은 왜 화상의 말씀에 대답을 하지 않았습니까?”
대사가 말했다.
“그대는 화상에게 가서 물어보아라.”[어떤 스님이 운거雲居에게 묻기를 “절대로 말하지 말라는 뜻이 무엇입니까?”라고 하니, 운거가 말하기를 “이 말은 가장 독기가 있다”라고 하였다. 스님이 다시 묻기를 “어떤 것이 독기 있는 말입니까?”라고 하니, 운거가 말하기를 “용과 뱀을 한 몽둥이로 때려죽인다”라고 하였다.]
운암이 임종할 때에 하직하는 편지를 써서 사람을 시켜 대사에게 보내 왔는데, 대사가 펴서 읽어보고 말했다.
“운암은 당시에 그에게 말하지 않았던 것을 아직도 뉘우칠 줄 모르는구나. 그러나 비록 그렇더라도 약산의 제자임에는 틀림이 없다.”[현각玄覺이 말하기를 “옛사람이 그렇게 말한 것이 까닭이 있을까?”라고 하였다. 또 말하기를 “운암이 당시에 몰랐다 하니 어디가 그가 알지 못한 곳인지 말해 보라”고 하였다.] 

약산이 상당하여 말했다.
“나에게 한마디 말이 있는데 아직 아무에게도 말한 적이 없다.”
대사가 나서면서 말했다.
“서로 따릅니다.”
어떤 스님이 약산에게 말했다.
“한마디를 어떻게 설명합니까?”
약산이 대답했다.
“언설이 아니니라.”
대사가 말했다.
“벌써 언설이 되었습니다.”

대사가 누웠는데 비수椑樹 화상이 와서 말했다.
“무엇을 하시오?”
“이불을 덮었소.”
“누웠소, 앉았소?”
“그 두 가지에 있지 않소.”
“그럼 어찌하여 덮었다고 했소?”
“어지럽게 말하지 마오.”
대사가 비수 화상이 앉아 있는 모습을 보고 말했다.
“무엇을 하시오?”
비수가 대답했다.
“안녕하십니까?[和南]”
대사가 말했다.
“멀리 떨어진 지 얼마나 되었소?”
비수가 “비슷하군” 하고는 소매를 흔들면서 나갔다.

대사가 삿갓을 들고 나가는데 운암이 말했다.
“무엇을 하렵니까?”
“쓸 곳이 있소.”
“비바람이 닥치면 어찌하렵니까?”
“덮어쓰죠.”
“그도 덮어씌울 수 있습니까?”
“비록 그렇다 해도 새지는 않습니다.”

위산潙山이 운암雲巖에게 물었다.
“보리菩提는 무엇을 자리[坐]로 삼습니까?”
운암이 대답했다.
“무위無爲로써 자리를 삼습니다.”
그리고는 운암이 다시 위산에게 물으니, 위산이 말했다.
“모든 법의 공함을 자리로 삼습니다.”
그리고는 위산이 대사에게 물으니, 대사가 말했다.
“앉으려면 알아서 앉고, 누우라면 알아서 눕겠지만, 한 사람만은 앉지도 눕지도 않나니, 속히 말해 보시오.”
위산이 대사에게 물었다.
“어디를 갔다 오시오?”
“병자를 돌보고 옵니다.”
“몇 사람이나 병이 났습니까?”
“병든 이도 있고 병들지 않은 이도 있습니다.”
“병들지 않은 이라 함은 원지 두타가 아니겠소?”
“병들거나 병들지 않거나 그 일과는 전혀 관계가 없으니, 속히 말해 보시오.”

어떤 스님이 물었다.
“만 리에 구름이 없어도 본래의 하늘은 아니리니, 어떤 것이 본래의 하늘입니까?”
“오늘은 햇볕이 좋으니 보리[麥]를 말려라.”
“신통도 없는 보살의 발자국을 어째서 찾기 어렵습니까?”
“도가 같아야 비로소 안다.”
“화상께서는 아십니까?”
“모른다.”
“어째서 모르십니까?”
“그대는 내 말뜻을 모르는구나.”

운암이 물었다.
“사형의 가풍은 무엇입니까?”
“그대로 하여금 가리키게 한 것을 감히 무엇이라 하겠는가?”
“그것 없던 지가 얼마나 되었습니까?”
“어금니 뿌리에서 여전히 떫은맛이 난다.”
“어떤 것이 지금 힘을 쓸 곳입니까?”
“천 사람이 불러도 고개도 돌리지 않아야 비로소 약간이나마 분수가 있다.”
“홀연히 불이 났을 때에는 어떠합니까?”
“대지를 능히 태운다.”

대사가 어떤 스님에게 물었다.
“별과 불길을 제외하고는 어느 것이 불이던가?”
“불이 아닙니다.”
다른 스님이 곁에 있다가 물었다.
“스님께서는 불을 보셨습니까?”
“보았다.”
“어디서 일어납니까?”
“다니고, 머물고, 앉고, 눕는 일을 떠나서 다시 한 번 물어라.”

남전南泉이 대중에게 보였다.
“법신法身에도 4대大가 갖추어져 있는가? 대답하는 이에게는 잠방이 한 벌을 주리라.”
이에 대사가 나서서 말했다.
“성품의 땅[性地]은 공空이 아니고 공은 성품의 땅이 아니니, 이것이 지대地大입니다. 나머지 3대大[어느 본에는 4대大로 되어 있다.]도 또한 그러합니다.”
남전이 앞의 약속을 어기지 않고 잠방이 한 벌을 대사에게 주었다.

운암雲巖이 병이 들자, 대사가 문병을 가서 말했다.
“이 껍질을 여의고 어디서 다시 만날까?”
운암이 말했다.
“나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는 곳에서 만납시다.”
“어찌 나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는 곳에서도 만나기를 바라지 않는다고 말하지 않으시오?”

대사가 운암이 신을 깁는 것을 보고 물었다.
“무엇을 하는가?”
“부서진 것으로 부서진 것을 꿰매오.”
“어찌 부서진 것 그대로가 부서지지 않은 것이라고 말하지 않는가?”

어떤 스님이 󰡔유마경維摩經󰡕에 “8천 보살과 5백 성문이 모두 문수사리 대사를 따르고 싶어했다”는 부분을 읽는 것을 대사가 듣고서 물었다.
“어디로 가는가?”
그 스님이 대답이 없으니, 대사가 때렸다.
나중에 어떤 스님이 화산禾山에게 물으니, 화산이 대신 대답하였다.
“시중을 드는 자는 알고 있습니다.”

대사가 산을 내려와 오봉五峰에게 가니, 오봉이 물었다.
“약산藥山 노숙老宿을 알고 있습니까?”
“모르오.”
“왜 모르십니까?”
“모른다. 몰라.”

어떤 이가 물었다.
“어떤 것이 화상의 가풍입니까?”
대사가 선상에서 내려와 여인의 절을 하면서 말했다.
“그대가 멀리서 와서 고맙긴 하나 도무지 대꾸할 것이 없구나.”
“어떤 것이 조사께서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동토東土에서는 만난 적이 없느니라.”
“선사先師의 제사를 차렸는데, 과연 선사께서 오시겠습니까?”
“그대들, 이 재齋는 차려서 무엇 하겠는가?”
“머리 위에 보배 관[寶蓋]이 생겨도 내가 옳다고 말하지 않는다면 어떠합니까?”
“그의 뜻을 허락한다.”
“화상께서는 어떠하십니까?”
“내게는 그런 것이 없다.”

석상石霜이 대사에게 물었다.
“백 년 뒤에 어떤 사람이 극칙極則의 일을 물으면, 어떻게 대답하시겠습니까?”
대사가 사미를 부르자, 사미가 대답했다. 대사가 그에게 말했다.
“깨끗한 병에 물을 넣어 가지고 오너라.”
그리고는 잠자코 있다가 도리어 석상에게 물었다.
“아까 무엇을 물었던가?”
석상이 다시 이야기하니, 대사는 얼른 일어나서 가 버렸다.
다른 날, 석상이 또 물었다.
“화상의 한 조각 뼈를 두드려서 구리 같은 소리가 날 때에는 어디로 가시겠습니까?”
대사가 시자를 부르자, 시자가 대답했다. 대사가 그에게 말했다.
“당나귀 해[驢年:영원히 오지 않는 해]에나 가겠구나.”

당나라 대화大和 9년 을묘乙卯 9월에 병을 얻어 괴로워하므로 대중이 문안을 갔더니, 이렇게 말했다.
“받기만 하고 갚지 않는 것을 그대들은 알겠는가?”
그러자 대중이 모두 슬퍼하였다. 11일에 떠나려 하다가 대중에게 말했다.
“나는 마땅히 서쪽으로 가겠다. 동쪽으로 옮길 까닭이 없다.”
말을 마치자 입적하니, 수명은 67세였다. 화장한 뒤에 사리 몇 개를 얻어 석상산石霜山의 남쪽에다 탑을 세워 안치하였다. 시호는 수일修一 대사이고, 탑호는 보상寶相이라 하였다.

담주潭州 운암雲巖 담성曇晟 선사
그는 종릉鍾陵 건창建昌 사람으로서 성은 왕王씨이다. 어릴 때에 석문사石門寺에서 출가하였다. 처음에는 백장百丈 회해懷海 선사를 뵈었으나, 현묘한 이치를 깨닫지 못한 채 20년 동안을 곁에서 모시고 있었다. 백장이 열반에 들자, 대사는 약산藥山을 뵈러 가서 한마디에 계합하였다.[자세한 내용은 약산장藥山章에 있다.]
어느 날 약산이 물었다.
“그대가 백장에 있던 것 이외에 어디를 다녔는가?”
“일찍이 광남廣南까지 갔다 왔습니다.”
“듣건대 광주성의 동문 밖에 하나의 둥근 돌이 있는데, 군수가 옮기려 했다고 하던데 사실인가?”
“군수뿐이 아니라 온 나라 사람이 옮기려 해도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약산이 다시 물었다.
“듣건대 그대는 사자師子를 부릴 줄 안다는데 사실인가?”
“사실입니다.”
“몇 가지 재주나 부리는가?”
“여섯 가지 재주를 부립니다.”
“나도 사자를 부린다.”
“화상께서는 몇 가지 재주나 부리십니까?”
“나는 한 가지 재주만 부린다.”
“하나가 곧 여섯이요, 여섯이 곧 하나입니다.”
대사가 나중에 위산에 갔었는데, 위산이 물었다.
“듣건대 장로는 약산에 있으면서 사자를 부렸다는데 사실인가?”
대사가 대답했다.
“사실입니다.”
“영구히 부리는가, 그칠 때도 있는가?”
“부리려면 부리고, 그치려면 그칩니다.”
“그칠 때에는 사자가 어디에 있소?”
“그쳤소. 그쳤어.”

어떤 이가 물었다.
“위로부터의 모든 성인이 모두 어디로 갔습니까?”
대사가 잠자코 있다가 말했다.
“무엇이라 했는가?”
“잠시도 있지 않아서 마치 죽은 사람과 같을 때에는 어찌합니까?”
“묻어 버리는 것이 좋겠다.”
“크게 보임保任하는 사람은 그것과 하나입니까, 둘입니까?”
“한 베틀에서 짠 비단이 한 끝인가, 두 끝인가?”
동산洞山이 이 말을 듣고 말했다.
“마치 사람이 나무를 접하는 것과 같구나.”

대사가 차를 달이는데 도오가 물었다.
“차를 달여서 누구에게 주려는가?”
“어느 한 사람이 요구합니다.”
“왜 그더러 몸소 달이라 하지 않는가?”
“다행히 제가 있으니까요.”

대사가 석상에게 물었다.
“어디서 왔는가요?”
석상이 대답했다.
“위산에서 왔습니다.”
“거기서 얼마나 있었죠?”
“어영부영 여름과 겨울을 지냈습니다.”
“그러시면 산의 어른이 됐겠군요.”
“비록 거기에 있었지만 모릅니다.”
“그도 알 것이 아니요, 인식할 것도 아니오.”
석상이 대답이 없었다. 나중에 도오가 이 말을 듣고 말했다.
“그렇게도 불법에 인연이 없을까.”

나중에 대사가 담주潭州 유현攸縣에 있는 운암산雲巖山에 살았는데, 어느 날 대중에게 이렇게 말했다.
“어떤 집 아들이 와서 묻더라도 대답치 못할 것이 없노라.”
동산洞山이 물었다.
“그 집안에 서적들이 얼마나 있습니까?”
“한 글자도 없다.”
“그런데 어찌 그리 많이 압니까?”
“밤낮으로 잔 적이 없기 때문이니라.”
“한 조각의 일이라도 얻을 수 있습니까?”
“대답하는 것이 도리어 대답하지 못하는 것이니라.”

어떤 스님에게 물었다.
“어디서 오는가?”
“향을 피우고 옵니다.”
“부처님을 보았는가?”
“보았습니다.”
“어디서 보았는가?”
“아래 세계[下界]에서 보았습니다.”
“옛 부처로구나. 옛 부처야.”

도오가 물었다.
“대비보살은 천 개의 눈과 천 개의 손을 가졌다는데, 어느 것이 바른 눈[正眼]입니까?”
“가령 등불이 없을 때에 목침을 잡았다면 어떻겠는가?”
“알았소이다. 알았소이다.”
“어떻게 알았는가?”
“온몸[通身]이 눈이군요.”

대사가 마당을 쓰는데 위산이 말했다.
“퍽 분주하군.”
“모름지기 분주하지 않은 놈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하죠.”
“그렇다면 곧 둘째 달이 있는 것이군.”
대사가 빗자루를 세우고서 말했다.
“이것은 몇째 달인가요?”
그러자 위산潙山 본문에는 대사[師]로 되어 있으나, 이로 할 경우 앞뒤 화자가 맞지 않는다. 그러나 명본明本에는 위산潙山으로 되어 있고, 이것이 문맥의 의미에 합당하므로 위산으로 번역하였다.
이 머리를 숙이고 떠나 버렸다.[현사玄沙가 말하기를 “이것이야말로 둘째 달이구나”라고 하였다.]

대사가 어떤 스님에게 물었다.
“어디서 왔는가?”
“돌 위에서 이야기를 하다가 옵니다.”
“돌이 고개를 끄덕이던가?”
스님이 대답하지 못하자, 대사가 말했다.
“묻기 전에 고개를 끄덕였다고 하라.”

대사가 신을 삼는데 동산이 물었다.
“스님께 눈동자를 얻으러 왔는데 주시겠습니까?”
“그대의 것은 누구에게 주었는가?”
“저[良价:동산]는 그것이 없습니다.”
“본래 있던 것을 그대는 어디에다 두었는가?”
동산이 말이 없으니, 대사가 말했다.
“눈동자를 달라는 것이 눈인가?”
“눈이 아닙니다.”
대사는 그를 꾸짖었다.

대사가 비구니들에게 물었다.
“그대들은 아버지가 있는가?”
“계십니다.”
“나이가 얼마나 되는가?”
“80세입니다.”
“그대들에게 80세가 되지 않는 아버지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가?”
“이렇게 온 것이 바로 그가 아니겠습니까?”
“역시 아이들이구나.”[동산이 말하기를 “설사 그렇게 오지 않았어도 역시 아이들이다”라고 하였다.]

어떤 스님이 물었다.
“한 생각[一念]이 별안간 일어나서 문득 마魔의 세계에 빠질 때는 어떠합니까?”
“그대는 무엇 때문에 부처의 세계에서 왔는가?”
스님이 대답이 없자, 대사가 말했다.
“알겠는가?”
“모르겠습니다.”
“체득하지 못했다고 말하지 말라. 설사 체득했다 하여도 그저 갈팡질팡할 뿐이다.”

대사가 어떤 스님에게 물었다.
“그대가 점을 칠 줄 안다니 사실인가?”
“그렇습니다.”
“내 점을 좀 쳐보게나.”
스님이 대답이 없었다.[동산洞山이 대신 말하기를 “화상의 생일을 말씀해 주십시오”라고 하였다.]

당나라 회창會昌 원년 신유辛酉 10월에 병이 나서 26일에 목욕을 마치고, 일 보는 스님[主事僧]에게 분부하되 “내일 어떤 상좌가 떠나니, 재를 차려라”고 하였는데, 27일에 아무도 떠나는 이가 없었다. 그런데 밤이 되자 대사가 입적하니, 수명은 60세였다. 다비를 한 뒤에 사리 1천여 개를 얻어서 돌무덤 속에 갈무리했으며, 시호는 무주無住 대사이고 탑호는 정승淨勝이었다.

화정華亭 선자船子 화상
이름은 덕성德誠이니, 약산의 법을 이어받았다. 일찍이 화정華亭의 오강吳江에 조그마한 배 하나를 띄워 놓고 지냈기 때문에 사람들이 선자(船子:뱃사공) 화상이라 하였다.
대사가 일찍이 동학同學인 도오道吾에게 말했다.
“이 뒤에 영리한 좌주가 하나 오거든 내게로 보내 주오.”
나중에 도오가 경구京口 화상 선회善會를 권유해서 대사를 참례參禮하게 했는데, 대사가 선회에게 물었다.
“좌주는 어느 절에 있었는가?”
선회가 말했다.
“절이라면 곧 머물지 않음이요, 머문다면 닮지 않습니다.”
“닮지 않았다니, 닮는다 함은 무엇인가?”
“눈앞에는 비슷한 것[相似]이 없습니다.”
“어디서 배운 것인가?”
“귀와 눈이 이르지 않는 곳입니다.”
대사가 웃으면서 말했다.
“한마디 딱 들어맞는 말이 만 겁의 당나귀를 묶어두는 말뚝이로다. 1천 자[尺]나 되는 실을 드리우는 것은 깊은 못 속에 뜻이 있으니, 세 치 갈고리를 여의고 속히 말하라, 속히 말하라.”
선회가 입을 벌리려고 하자, 대사가 삿대[篙]로 밀어서 물속에 빠뜨려 버렸는데, 이로 인해 크게 깨달았다.
대사는 그 자리에서 배를 버리고 떠나갔는데, 그의 마지막이 어떤지는 알 수 없다.

선주宣州 비수椑樹 혜성慧省 선사
동산洞山이 대사를 참문하자, 대사가 물었다.
“무엇 하러 왔는가?”
“화상을 가까이하려고 왔습니다.”
“가까이하려고 왔다면서 입술 조각은 왜 놀리는가?”
동산이 대답이 없었다.[조산曹山이 나중에 이 말을 듣고 말하기를 “외아들이 친견하게 되었구나”라고 하였다.]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부처입니까?”
“고양이 등 위에 돌기둥이니라.”
“학인은 잘 모르겠습니다.”
“돌기둥에게 물어라.”

고高 사미沙彌[약산藥山의 암자에 살았다.]
처음에 약산藥山을 찾아가 뵈니, 약산이 물었다.
“어디서 오는가?”
“남악南嶽에서 왔습니다.”
“어디로 가는가?”
“강릉으로 계를 받으러 갑니다.”
“계는 받아서 무엇을 하려는가?”
“생사生死를 면하려고 합니다.”
“어떤 사람은 계를 받지 않고도 생사를 면하는데 그대는 아는가?”
“그렇다면 부처님의 계율은 무엇에 쓰겠습니까?”
“아직도 입술에 걸려 있구나.”
그리고는 유나維那를 불러서 말했다.
“저 절름발이 사미에게 스님의 소임을 주지 말고, 뒤에 있는 암자에다 안배해라.”
그리고는 다시 운암雲巖과 도오道吾에게 말했다.
“아까 온 사미 하나가 뜻밖에 총명하더라.”
도오가 말했다.
“아직 완전히 믿을 수 없으니 더 검증해 보아야 합니다.”
이에 약산이 다시 대사(사미)를 불러서 물었다.
“듣건대 장안長安은 더 시끄럽다는데 사실인가?”
대사가 대답했다.
“내 나라는 편안합니다.”[법안法眼이 따로 말하기를 “누구의 말을 들으셨습니까?”라고 하였다.]
약산이 다시 물었다.
“그대는 경을 보아 얻었는가, 법문을 물어서 얻었는가?”
“경을 보고 얻은 것도 아니고, 법문을 청해서 얻은 것도 아닙니다.”
“대부분의 사람들도 경을 보지 않고 법문도 묻지 않는데, 어찌하여 얻지 못하는가?”
“그들이 없다고 말할 것이 아니니, 다만 그들이 기꺼이 수긍하지 않을 뿐입니다.”
대사가 곧 약산을 하직하고 암자로 살러 가려고 하니, 약산이 말했다.
“생사의 일이 큰데 어째서 계를 받지 않는가?”
“그 일인 줄 아는데 어찌하여 계를 받습니까?”
약산이 꾸짖으면서 말했다.
“이 사미가 말이 많구나. 들어와서 가까운 암자에 살다가 때때로 다시 만나자꾸나.”
대사가 암자에 살다가 비오는 날 뵈러 가니, 약산이 말했다.
“그대가 왔구나.”
“그렇습니다.”
“몹시 젖었구나.”
“이번에는 북 치고 피리 불지 마십시오.”
운암이 말했다.
“가죽도 없는데 무슨 북을 치리오?”
도오가 말했다.
“북도 없는데 무슨 가죽을 치리오?”
약산이 말했다.
“오늘의 곡조가 퍽 좋구나.”

어떤 스님이 물었다.
“한 구절[一句]로도 다 도달하지 못하는 경지가 있습니까?”
“세상에 순응하지 않는다.”

재齋를 차리자 약산이 손수 북을 쳤다. 고 사미가 발우를 들고 춤을 추면서 방으로 들어가니, 약산이 북을 던지면서 말했다.
“이것은 몇 번째의 화답[和]인가?”
“둘째 화답입니다.”
“그러면 어떤 것이 첫째 화답인가?”
대사가 통 안에서 밥을 한 주걱 퍼 가지고 나가 버렸다.

악주鄂州 백안百顔 명철明哲 선사
동산洞山이 밀密 사백師伯과 함께 와서 뵈니, 대사가 물었다.
“그대들은 최근에 어디로부터 떠나왔는가?”
동산이 말했다.
“호남湖南에서 왔습니다.”
“관찰사觀察使의 성명이 무엇인가?”
“성姓을 모릅니다.”
“이름은 무엇인가?”
“이름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일을 보든가?”
“그저 막사[郞幕]에 머물러 있을 뿐입니다.”
“출입이야 하지 않겠는가?”
동산이 소매를 털었다.
이튿날 대사가 승당에 들어가서 물었다.
“어제 두 스님[闍梨]를 대했어도 한 마디[一轉語]도 여물게 하지 못했다. 이제 두 스님에게 청하나니, 말해 보라. 만일 말할 수 있으면 내가 죽과 밥을 나누어서 여름을 같이 지내리라. 빨리 말하라. 빨리 말하라.”
동산이 말했다.
“너무나 존귀한 분이군요.”
대사가 죽과 밥을 내어서 한 여름을 같이 지냈다.

담주潭州 장자長髭 광曠 선사의 법손

담주潭州 석실石室 선도善道 화상
유현攸縣의 장자長髭 광曠 선사의 법을 이어받았는데, 사미였을 때에 장자가 계를 받으러 보내면서 말했다.
“그대가 돌아오는 날에 반드시 석두에게 가서 참례하라.”
대사가 계를 받고 난 후에 돌아오다가 석두를 뵈었다. 어느 날 석두를 따라 산을 도는데 석두가 말했다.
“그대는 나와 함께 내 앞을 가로막는 면전의 나무를 베야 한다.”
대사가 대답했다.
“칼을 가지고 오지 않았습니다.”
석두가 칼을 뽑아서 대사에게 거꾸로 주니, 대사가 말했다.
“그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대는 그것으로 무엇을 하려는가?”
대사가 이 말에 크게 깨닫고서 곧 돌아왔다. 장자가 그에게 물었다.
“석두에게 갔었는가?”
“가기는 갔으나 성명을 통하지 않았습니다.”
“계는 누구에게 받았는가?”
“남에게 의지하지 않았습니다.”
“거기서는 그렇게 했다 처도 내게 와서는 어찌할 것인가?”
“위배되지 않습니다.”
“아주 도도한 놈이군.”
“혀끝을 댄 적이 없습니다.”
석두가 꾸짖으면서 말했다.
“사미야, 나가라.”
대사가 나와 버리니, 장자가 말했다.
“어찌하여 사람을 만나지 못했는가?”

대사는 이윽고 사태沙汰를 만났는데, 행자의 행색으로 석실石室에서 살면서 매번 스님을 보면 지팡이를 세우고 말했다.
“3세世의 부처님들이 모두 이로 말미암았다.”
그러나 상대하는 이들 중에는 이 은밀한 뜻을 알아채는 이가 없었다. 장사長沙가 이 말을 듣고 말했다.
“만일 내가 보았더라면 지팡이를 던지게 하고 따로 소식을 통하게 했을 것이다.”
삼성三聖이 이 말을 가지고 석실로 와서 대꾸를 하려다가 대사에게 그것이 장사의 말임을 들켰다. 행산杏山은 삼성이 기회를 놓쳤다는 말을 듣고서 다시 직접 석실로 오자, 대사는 행산의 대중 스님들이 따라온 것을 보고 슬쩍 방앗간으로 갔다.
행산이 말했다.
“행자도 쉽지 않고, 나도 어렵군요.”
“무심無心의 그릇에다 가득히 담아 와서 꿰맨 자국이 없는 소반에다 담아 가는 것을 무엇을 어렵다고 말하리오?”
행산이 그만두었다.

앙산仰山이 물었다.
“부처와 도의 거리가 얼마입니까?”
“도는 손을 편 것 같고, 부처는 주먹을 쥔 것 같다.”
“결국 어떻게 믿고 어떻게 의지해야 합니까?”
대사가 손으로 허공을 두세 번 튀기면서 말했다.
“그런 일이 없다. 그런 일이 없어.” 
“그러면 경전의 가르침을 빌려야 합니까?”
“3승乘 12분교分敎는 분수 밖의 일이다. 만일 그와 상대를 이룬다면 마음과 경계의 두 법이고 능能과 소所의 쌍행雙行인지라 갖가지 견해가 생기게 되리니, 이 또한 미친 지혜일 뿐이라서 족히 도라고 하지 못한다. 만일 그와 상대를 이루지 않는다면 하나의 일도 없으니, 이 때문에 조사께서 말씀하시기를 ‘본래 한 물건도 없다’고 한 것이다. 그대는 어린 아기가 태胎에서 갓 나올 때를 보지 못했는가? ‘내가 경전을 본다거나 경전을 보지 못한다’고 하던가? 갓 나왔을 때에는 불성이 있다는 뜻이건 불성이 없다는 뜻이건 알지 못하다가 차츰 자라면서 갖가지 지식을 배우면 ‘내가 유능하고 내가 안다’고 말하지만 그것이 객진客塵번뇌임을 알지 못한다.
16행行 가운데서 어린이의 행이 으뜸이니, 치치화화哆哆和和 어린아이가 말을 배우기 시작할 무렵 의미 없이 중얼거리는 옹알이를 말한다.
할 때를 도를 배우는 사람이 분별과 취사取捨의 마음을 여읜 것에 비유한다. 이 때문에 어린이를 찬미하기도 하는데, 하물며 비유로 취하는 것이랴? 그러나 만일 어린이를 도라고 한다면 당장에 잘못 안 것이다.”

대사가 어느 날 저녁에 앙산과 함께 달구경을 하는데, 앙산이 물었다.
“저 달이 둥글 때에는 뾰족한 모습이 어디로 갔으며, 뾰족할 때에는 둥근 모습이 어디로 갔습니까?”
“뾰족할 때에는 둥근 모습이 숨고, 둥근 때에는 뾰족한 모습이 숨는다.”[운암雲巖이 말하기를 “뾰족할 때에는 둥근 모습이 있지만 둥근 때에는 뾰족한 모습이 없다”라고 하였다. 도오道吾는 말하기를 “뾰족할 때에도 없어지지 않았고 둥근 때에도 없어지지 않았다”라고 하였다.]
앙상이 하직하니, 대사가 문밖까지 전송을 나왔다가 “사리여” 하고 불렀다. 앙산이 “네” 하고 대답을 하자, 대사가 말했다.
“한 방향으로 가지만 말고, 이쪽으로도 돌아오게나.”

어떤 스님이 물었다.
“스님께서는 오대산五臺山에 가보셨습니까?”
“갔었다.”
“문수를 보셨습니까?”
“보았다.”
“문수가 행자께 뭐라 하셨습니까?”
“문수가 말하기를 ‘그대의 부모가 시골의 풀 속에 살고 있다’고 하더라.”


조주潮州 대전大顚 화상의 법손

장주漳州 삼평三平 의충義忠 선사 
그는 복주福州 사람으로서 성은 양楊씨이다. 처음에는 석공石鞏을 뵙고 배웠는데, 석공은 항상 활에다 화살을 메우고 학인을 기다렸다. 
대사(의충)가 법석法席에 이르니, 석공이 소리쳤다.
“화살을 보라.”
대사가 가슴을 벌리면서 말했다.
“이것은 사람을 죽이는 화살입니까, 사람을 살리는 화살입니까?”
석공이 이내 활줄을 세 번 내리치자, 대사가 문득 절을 하였다. 석공이 말했다.
“30년을 활 하나를 당기고 화살을 메우고 있었지만, 겨우 반쪽 성인을 쏘게 되었구나.”  
그리고는 활과 화살을 꺾어 버렸다. 나중에 대사가 대전大顚에게 이야기하니, 대전이 말했다.
“이미 사람을 살리는 화살이라면 어째서 활줄 위에서 설명했겠는가?”
대사가 대답이 없었다. 이에 대전이 말했다.
“30년 뒤에 어떤 사람에게 이 이야기를 시키기도 어려우리라.”
그후 대전을 참문하고 장주漳州에 가서 삼평산三平山에 살았다. 
어느 날 대중에게 이렇게 말했다.
“요즘 사람들은 모두 조급히 구하는 것만을 배움으로써 자기의 안목이라고 여기지만, 어찌 그것이 합당하겠는가? 그대들은 배우고 싶은가? 다른 것은 전혀 필요치 않다. 그대들에게 제각기 본분의 일이 있거늘, 어째서 체득하지 않고 이렇듯 마음은 시끌시끌하고 입은 우물우물하니 무슨 이익이 있으랴?
분명히 말하나니, 만일 수행의 길이나 여러 성인들이 건립한 교화의 문을 요구한다면, 그것은 바로 대장경의 글에 있다. 하지만 만일 선종의 일이라면, 그대들은 절대로 마음을 잘못 쓰지 말아야 한다.”
이때에 어떤 스님이 나서서 물었다.
“배움의 길이 있습니까?”
“외길이 있는데 미끄럽기가 이끼와 같으니라.”
“학인이 밟을 수 있겠습니까?”
“마음을 헤아리지 말고 그대 스스로 살펴라.”

어떤 사람이 물었다.
“검은콩이 싹 트지 않았을 때는 어떠합니까?”
“부처님도 모르신다.”
어떤 강사가 와서 물었다.
“3승 12분교는 제가 의심이 없는데, 어떤 것이 조사가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거북이 털로 만든 불자拂子와 토끼 뿔로 된 지팡이를 대덕은 어디에 두겠는가?”
“거북이 털과 토끼의 뿔이 어찌 있겠습니까?”
“살덩이 무게는 천 근이나 되면서도 지혜는 한 푼의 무게도 없구나.”

대사가 또 대중에게 말했다.
“여러분이 아직도 선지식을 보지 못했다면 옳지 않은 것이다. 만일 일찍이 작자作者를 본 적이 있다면, 문득 바탕을 합하고 그 의도를 취해서 바위 계곡 사이에 들어가서 나무껍질을 먹고 풀잎 옷을 입어야 한다. 그렇게 하면 비로소 조금이나마 상응하겠지만, 만일 조급히 지식과 구절의 뜻만을 구한다면, 곧 만 리 밖에서 고향의 관문만을 바라보게 되리라. 진중하게나.”

담주潭州 대천大川 화상의 법손

선천僊天 화상
신라新羅의 스님이 뵈러 와서 방석을 펴고 절을 하려는데, 대사가 꼭 붙들고 말했다.
“본국을 떠나기 전에 한 마디 말하라.”
그 스님이 말이 없으니, 대사가 버럭 밀치면서 말했다.
“그대에게 한 마디를 물었더니 두 마디를 말하는구나.”

또 어떤 스님이 와서 절을 하려고 하자, 대사가 말했다.
“이 들여우 귀신아, 무엇을 보았기에 절을 하려고 하느냐?”
그 스님이 말했다.
“늙은 까까머리야, 무엇을 보았기에 그렇게 묻는가?”
대사가 말했다.
“괴롭고 괴롭다. 선천이 오늘 앞을 잊고 뒤도 잃는구나.”
“얻기를 바랄 때는 끝내 잃은 것을 보충하지 못합니다.”
“어찌 그렇지 않겠는가?”
“누가요?”
“하하. 멀기는 멀구나.”

복주福州 보광普光 화상
어떤 스님이 서 있는데, 대사가 손으로 가슴을 풀어헤치면서 말했다.
“노승老僧의 일을 맡아 주겠는가?”
스님이 대꾸했다.
“아직도 그런 것이 있습니까?”
대사가 다시 가슴을 가리면서 말했다.
“활짝 드러내는 것을 방해하지 않는구나.”
스님이 물었다.
“회피할 곳이 어디에 있습니까?”
“분명히 피할 곳이란 없다.”
“바로 지금은 어떻습니까?”
대사가 때렸다.



경덕전등록 제15권






길주吉州 청원산靑原山 행사行思 선사의 법손 

제4세 17인

예주澧州 용담龍潭 숭신崇信 선사의 법손 2인
낭주朗州 덕산德山 선감宣鑒 선사
홍주洪州 늑담泐潭 보봉寶峰 화상 
  [이상 2인은 기록에 보임]

길주吉州 성공性空 선사의 법손 2인
흡주歙州 무원茂源 화상
조산棗山 광인光仁 선사 
  [이상 2인은 기록에 보임]

경조京兆 취미翠微 무학無學 선사의 법손 5인
악주鄂州 청평산淸平山 영준令遵 선사
서주舒州 투자산投子山 대동大同 선사
호주湖州 도량산道場山 여눌如訥 선사
건주建州 백운白雲 약約 선사 
  [이상 4인은 기록에 보임]
복우산伏牛山 원통元通 선사 
  [1인은 기연할 어구가 없으므로 기록하지 않음]

담주潭州 도오산道吾山 원지圓智 선사의 법손 3인
담주潭州 석상산石霜山 경제慶諸 선사
담주潭州 점원漸源 중흥仲興 선사
녹청祿淸 화상
  [이상 3인은 기록에 보임]

담주潭州 운암雲巖 담성曇晟 선사의 법손 4인
균주筠州 동산洞山 양개良价 선사
탁주涿州 행산杏山 감홍鑒洪 선사
담주潭州 신산神山 승밀僧密 선사
유계幽谿 화상 
  [이상 4인은 기록에 보임]

화정華亭 선자船子 덕성德誠 선사의 법손 1인
예주澧州 협산夾山 선회善會 선사 
  [이상 1인은 기록에 보임]

제5세 14인

서주舒州 투자산投子山 대동大同 선사의 법손 13인
제2세世 투자投子 온溫 선사
복주福州 우두牛頭 미微 선사
서천西川 향산香山 징조澄照 대사
협부陿府 천복天福 화상
호주濠州 사명思明 화상
봉상부鳳翔府 초복招福 화상
흥원興元 중량산中梁山 준고遵古 선사
양주襄州 곡은谷隱 화상
안주安州 구종산九嵕山 화상
유주幽州 반산盤山 제2세  화상
구종산九嵕山 경혜敬慧 선사
동경東京 관음원觀音院 암준巖俊 선사 
  [이상 12인은 기록에 보임]
계양桂陽 용복龍福 진眞 선사
  [1인은 기연할 어구가 없으므로 기록하지 않음]

악주鄂州 청평산淸平山 영준令遵 선사의 법손 1인
기주蘄州 삼각산三角山 영규令珪 선사 
  [1인은 기록에 보임]


행사行思 선사의 제4세

앞의 예주澧州 용담龍潭 숭신崇信 선사의 법손

낭주朗州 덕산德山 선감宣鑒 선사
그는 검남劍南 사람으로서 성은 주周씨이다. 어린 나이에 출가했다가 나이가 차면서 구족계를 받았고, 율장律藏을 정밀하게 연구하였다. 또 성종性宗과 상종相宗의 여러 경전의 깊은 뜻을 두루 통달한 뒤에 항상 󰡔금강반야경金剛般若經󰡕을 강하였으므로, 당시 사람들이 그를 주금강周金剛이라 불렀다.
그 뒤 선종을 찾아가는 길에 동학同學들에게 말했다.
“한 가닥의 털이 바다를 삼켜도 바다의 성품은 이지러지지 않고, 겨자씨를 칼끝에 던져도 칼끝의 날카로움은 움직이지 않나니, 배움[學]과 배우지 않음[無學]은 오직 나만이 안다.”
그리고는 용담龍潭 숭신崇信 선사를 찾아가서 문답한 것은 단지 한마디뿐이었다.[자세한 내용은 앞에 나왔다.] 대사는 곧 하직하고 떠나려 했지만 용담이 만류하기에 하룻밤을 방 밖에서 잠자코 앉아 있었다. 이에 용담이 물었다.
“왜 들어오지 않는가?”
“어둡군요.”
용담이 촛불을 켜서 대사에게 주었는데, 대사가 받으려는 찰나에 용담이 얼른 불어서 껐다. 이에 대사가 절을 하니, 용담이 물었다.
“무엇을 보았는가?”
“지금부터는 천하 노화상들의 혀끝에 미혹되지 않겠습니다.”
이튿날 떠나 버린 뒤에 용담이 대중에게 말했다.
“어떤 사람이 하나 있는데 어금니는 검수劍樹와 같고, 입은 피사발[血盆]과 같다. 한 방망이를 때려도 고개도 돌리지 않으니, 훗날 외로운 봉우리 정상에서 나의 도를 세우리라.”

대사는 위산으로 가서 법당 서쪽에서 동쪽으로 지나면서 방장을 돌아보았는데, 위산은 말이 없었다. 그러자 대사가 말했다.
“없구나. 없다.”
그리고는 뛰쳐나와 승당僧堂 앞으로 가서 말하기를 “비록 그렇더라도 경솔할 수는 없구나”라고 한 뒤에 위의威儀를 갖추고 다시 뵈었다. 대사는 문턱을 들어서자마자 방석을 번쩍 들면서 말했다.
“화상.”
위산이 불자를 잡으려 하자, 대사가 할을 하고는 뛰쳐나갔다.
저녁이 되자 위산이 대중에게 물었다.
“오늘 새로 온 스님이 어디에 있는가?”
대중이 대답했다.
“그 스님은 화상을 뵙고 나서 다시 승당도 돌아보지도 않고 떠나 버렸습니다.”
“그 스님이 누구인줄 아는가?”
“모릅니다.”
“그가 뒷날에 주인 노릇[把茅蓋頭]을 하게 되면 부처도 조사도 모두 꾸짖어 버릴 사람이다.”

대사가 30년 동안 예양에 살다가 당나라 무종武宗의 법난法難을 만나자, 독부산獨浮山의 석실石室로 피난을 갔다. 대중大中 초에 무릉武陵 태수太守 설정망薛廷望이 덕산정사德山精舍를 다시 수리하여 고덕선원古德禪院이라 부르고,[상국相國 배휴裵休가 쓴 변액이 지금까지 전해져 남아 있다.] 밝은 종사를 구해 주지로 삼으려는 끝에 대사의 덕행을 듣고 자주 청했으나, 대사는 끝내 산에서 내려가지 않았다. 이에 설정망이 거짓 계교를 써서 아전을 보내 차와 소금의 법을 범했다 하면서 대사를 데리고 오게 하였다. 그리고는 대사를 뵙고 예배한 뒤에 간절히 머물기를 청하니, 이에 종풍을 크게 드날리게 되었다.[총인總印 선사가 처음 선원을 세웠으니 덕산은 제2세 주지가 된다.]
대사가 상당하여 대중에게 말했다.
“자기에게 일이 없으면 망령되이 구하지 말라. 망령되이 구해서 얻은 것은 얻은 것이 아니다. 그대들은 다만 마음에 일이 없고 일에 마음이 없으면[無事於心無心於事] 비어 있으면서도 신령스럽고 공적하면서도 묘하겠지만, 만일 털끝만치라도 근본과 끝이 있다고 말하면 모두 스스로를 속이는 것이 된다. 털끝만치라도 생각에 얽매이면 3악도[三塗]의 업인業因이요, 잠깐이라도 정情을 낳으면 만 겁의 굴레이니라. 범부와 성인이란 말이 온통 허망한 소리이고, 특출한 모습이든 열등한 모습이든 모두 허깨비 빛깔[幻色]이거늘, 그대들이 이를 구하려 한다면 어찌 허물이 아니겠는가? 더구나 그것을 싫어하면 또 하나의 큰 병통을 이루니 끝내 무익할 뿐이다.”

대사가 상당하여 말했다.
“오늘 저녁에는 묻지 말라. 말을 거는 자는 30방망이를 때리겠다.”
이때에 어떤 스님이 나서서 절을 하려는데 대사가 얼른 때리니, 스님이 말했다.
“저는 아직 아무 말도 묻지 않았는데, 화상께서는 어찌하여 저를 때리십니까?”
“그대는 어느 곳 사람인가?”
“신라국 사람입니다.”
“그대가 배에 채 오르기 전에 30방망이를 때렸어야 했다.”[법안法眼은 말하기를 “딱한 덕산德山이 말을 두 가닥으로 했구나”라고 하였고, 현각玄覺은 말하기를 “총림에서 남을 낮추는 말을 하는 것은 그렇다 치고, 덕산이 말하기를 묻는 자는 30방망이를 때려 주겠다고 한 뜻은 무엇이었는가?”라고 하였다.]

어떤 스님이 와서 뵙자, 대사가 유나에게 물었다.
“오늘 몇 사람이나 새로 왔는가?”
“여덟 사람입니다.”
“데리고 와서 한꺼번에 조서를 꾸며라.”

용아龍牙가 물었다.
“학인이 막야검鏌鎁劍을 짚고 와서 스님의 목을 끊으려 하면 어찌하시겠습니까?”
대사가 목을 늘이자,[법안法眼이 따로 대답하기를 “그대는 어디에다 손을 대겠는가?”라고 하였다.] 용아가 말했다.
“머리가 떨어졌습니다.”
대사가 빙그레 웃었다.
나중에 용아가 동산洞山에게 가서 앞의 이야기를 하니, 동산이 말했다.
“덕산이 뭐라 하던가?”
“덕산은 아무 말이 없습니다.”
“말없다는 소리는 그만두고, 덕산의 떨어진 머리를 주워 노승에게 바쳐라.”
용아가 허물을 뉘우치고 사죄했다. 어떤 사람이 이 일을 대사에게 이야기하니, 대사가 말했다.
“동산 노인은 좋고 나쁜 것도 모른다. 그 놈은 죽은 지가 언제인데 구원해서 무슨 쓸모가 있겠는가?”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보살입니까?”
대사가 때리면서 말했다.
“그 속에다 똥을 누지 말고 나가라.”
“어떤 것이 부처입니까?”
“부처란 바로 서천西天의 늙은 비구이니라.”

설봉雪峰이 물었다.
“위로부터 내려온 종풍宗風은 어떤 법을 사람에게 제시합니까?”
“나의 종지에는 어구語句가 없다. 진실로 한 법도 남에게 전해 줄 것이 없다.”
암두巖頭가 듣고서 말했다.
“덕산 노인의 한 줄기 척량골(脊梁骨:등골뼈)이 쇠처럼 강해서 휘어도 꺾이지 않는다. 그러나 교법을 제창하는 부문에서는 아직도 비슷할 뿐이다.”[보복保福이 들어 초경招慶에게 묻기를 “암두巖頭가 세상에 나와서 어떤 말을 한 것이 덕산보다 낫기에 그렇게 말합니까?”라고 하니, 초경이 대답하기를 “그대는 보지 못했는가? 암두가 말하기를 ‘사람이 활쏘기를 배우되 오래오래 하면 맞는다’고 하지 않았는가?”라고 하였다. 이에 보복이 다시 묻기를 “맞은 뒤에는 어떠합니까?”라고 하니, 초경이 대답하기를 “전 사리(展闍黎:보복의 이름)는 감각이 없는 이가 아니오”라고 하였다. 이에 보복이 또 말하기를 “화상은 오늘 말로만 할 뿐이 아니시군요”라고 하니, 초경이 대답하기를 “전 사리는 오늘 무슨 마음씨인고?”라고 하였다. 이때에 명소明昭가 말하기를 “초라한 초경이 말을 잘못하는구나”라고 하였다.]

대사는 평상시에 스님이 와서 물으면 매번 주장자로 때렸다. 임제臨濟가 이 말을 듣고 시자를 보내어 뵙게 하면서 “덕산이 그대를 때리거든 다만 주장자를 빼앗아서 가슴을 한 대 때려라”고 하였다. 시자가 그 말대로 찾아가서 절을 하려는데 대사가 때렸다. 그러자 시자는 주장자를 빼앗아서 한 대 때리니, 대사가 방장으로 돌아갔다. 시자가 돌아와서 임제에게 이야기하니, 임제가 말했다.
“전부터 그를 의심했었다.”[암두巖頭가 말하기를 “덕산 노인은 항상 눈앞의 주장자 하나를 믿고 부처가 와도 때리고 조사가 와도 때렸지만 비슷할 뿐이니 어찌하랴?”라고 하였다. 동선東禪 제齊가 말하기를 “임제가 말하기를 내가 처음부터 그를 의심했었다고 한 것은 그를 긍정한 말인가, 부정한 말인가? 그 밖에 다른 도리가 있는가 판단해 보라”고 하였다.]

대사가 상당하여 말했다.
“물으면 허물이 있고, 묻지 않아도 어긋난다.”
어떤 스님이 나와서 절을 하자, 대사가 때렸다. 이에 그 스님이 말했다.
“저는 겨우 절을 했을 뿐인데 왜 때리십니까?”
“네가 입을 열도록 기다려서 무엇 하랴?”

대사가 시자를 시켜 설봉雪峰을 불러오게 하였다. 의존義存[설봉의 이름]이 오자, 대사가 말했다.
“나는 의존을 불렀는데, 네가 와서 무엇 하겠는가?”
설봉이 대답이 없었다.

어떤 스님이 오는 것을 보고 대사가 문을 닫았다. 그 스님이 와서 문을 두드리니, 대사가 물었다.
“누구인가?”
“사자 새끼입니다.”
대사가 문을 열어 주니, 그 스님이 절을 하였다. 이에 대사가 그의 목에 올라타면서 말했다.
“이 짐승아, 어디를 갔다 왔느냐?”

설봉이 물었다.
“옛사람이 고양이 새끼의 목을 끊은 뜻이 무엇입니까?”
대사가 때려서 내쫓았다가 다시 “대사여” 하고 부르면서 말했다.
“알겠는가?”
“모르겠습니다.”
“내가 이렇게 간절히 마음을 다했는데도 모르겠는가?”

어떤 스님이 물었다.
“범부와 성인의 거리가 얼마입니까?”
대사가 할을 하였다.

대사가 병이 났는데 어떤 스님이 물었다.
“병이 나지 않는 자가 있습니까?”
“있다.”
“어떤 이가 병들지 않는 자입니까?”
“아야, 아야.”
대사가 다시 대중에게 말했다.
“허공을 더듬고 메아리를 쫓으니, 그대의 마음과 정신이 수고롭구나. 꿈도 깨달음도 모두 아님을 깨달으면, 끝내 무슨 일이 있겠는가?”
말을 마치고는 편안히 앉아서 열반에 드니, 때는 당나라 함통咸通 6년 을유乙酉 12월 3일이다. 수명은 86세이고 법랍은 65세이며, 시호는 견성見性 대사였다.

홍주洪州 늑담泐潭 보봉寶峰 화상
어떤 스님이 새로 왔는데 대사(보봉)가 그에게 말했다.
“그 속의 일은 말하기 쉽지만, 그 속에 떨어지지 않는 일은 시종일관 말하기 어렵다.”
그 스님이 대꾸했다.
“제가 행각을 하고 있을 때에 그런 물음이 있을 줄 알았습니다.”
“다시 20년쯤 행각을 해도 많다고 하지 못하겠구나.”
“화상의 뜻과 계합하지 않음이 있습니까?”
“쓴 참외로 어찌 손님 대접을 하리오?”

대사가 스님에게 물었다.
“옛사람에게는 후진後進의 초심자를 제접하는 외길[一路]이 있었는데, 그대는 알겠는가?”
“스님께서 옛사람의 외길을 가르쳐 주십시오.”
“그렇다면 그대도 안 것이니라.”
“머리 위에다 다시 머리를 붙이시는군요.”
“보봉이 그대에게 묻는 것은 합당치 않다.”
“물은들 무슨 방해로움이 있겠습니까?”
“이 속에서는 어느 누구도 도리를 어지러이 지껄인 적이 없다. 나가라.”

앞의 길주吉州 성공性空 선사의 법손

흡주歙州 무원茂源 화상
평전平田이 참문하러 오자, 대사가 몸을 일으키려고 했다. 그러자 평전이 붙들고 말했다.
“입을 열어도 잃고 입을 다물어도 잃으니, 이런 시절을 떠나서 스님께서 말씀해 주십시오.”
대사는 손으로 귀를 가리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자 평전이 손을 놓으면서 말했다.
“한 걸음은 쉽더니, 두 걸음은 어렵구나.”
“무엇이 그리 다급했는가?”
평전이 혼잣말로 말했다.
“이 스님이 아니었다면 제방의 점검點檢을 면치 못했을 것이다.”

조산棗山 광인光仁 선사
상당上堂할 때에 대중이 모였다. 대사(광인)는 방장에서 나와 선상禪床으로 가는 도중에 대중에게 말했다.
“평생에 행각한 안목을 저버리지 않고서 질문을 하라. 그런 이가 있겠는가?”
그리고는 법당에 올라가 앉으려는데, 어떤 스님이 나와서 절을 하였다. 대사가 말했다.
“나를 저버리지 않으면서 또한 대중을 따르는 것이 무엇인가?”
그리고는 방장으로 돌아갔다. 
이튿날 다른 스님이 앞서 말한 의지意旨가 무엇인지 설명해 달라고 하자, 대사가 말했다.
“밥 때에 밥이 있으니 그대가 먹을 것이요, 밤에는 침상이 있으니 그대가 자면 되거늘, 오로지 나만을 졸라서 무엇 하겠는가?”
스님이 절을 하니, 대사가 말했다.
“괴롭다, 괴롭다.”
스님이 말했다.
“스님께서 곧바로 가리켜 주십시오.”
그러자 대사가 곧 발을 드리우면서 말했다.
“펴건 오므리건 내 마음대로이다.”

앞의 경조京兆 취미翠微 무학無學 선사의 법손

악주鄂州 청평산淸平山 영준令遵 선사
그는 동평東平 사람으로서 성은 왕王씨이다. 어릴 때에 고향의 북보리사北菩提寺에 의지해 있다가 당나라 함통咸通 6년에 머리를 깎고, 나중에 활주滑州 개원사開元寺에 가서 구족계를 받고 율장을 전공하였다.
어느 날 동료들에게 말했다.
“사문은 마땅히 생사를 결연히 벗어나고, 불법의 이치를 그윽이 통해야 하는데, 만일 책장에 얽매여서 문자에만 걸려 있다면 모두가 바다의 모래를 세는 것이라서 헛되이 마음만을 괴롭힐 뿐이다.”
그리고는 하던 일을 치우고 멀리 선원을 찾아서 강릉의 백마사白馬寺로 가니, 큰방에 혜근慧勤이라는 노숙老宿이 있었다. 대사가 그를 가까이 섬기면서 물으니, 혜근이 말했다.
“내가 오랫동안 단하丹霞를 모셨다. 이제는 늙어서 후학을 지도하기 어려우니, 그대는 취미翠微를 찾아가 뵈어라. 그는 나와 도반[同參]이다.”
대사는 그를 하직하고 바로 취미에게 가서 물었다.
“어떤 것이 서쪽에서 오신 분명하고 확실한 뜻입니까?”
취미가 대답했다.
“사람이 없기를 기다렸다가 그대에게 말해 주리라.”
대사가 잠자코 있다가 말했다.
“사람이 없으니, 스님께서 말씀해 주십시오.”
취미가 선상에서 내려와 대사를 데리고 대나무 밭으로 들어갔다. 이에 대사가 또 말했다.
“사람이 없으니, 스님께서 말씀해 주십시오.”
취미가 대나무를 가리키면서 말했다.
“이 대나무는 이렇게 길고, 저 대나무는 저렇게 짧구나.”
대사가 비록 그 미묘한 말을 알아듣기는 하였으나, 아직도 현묘한 뜻은 사무치지 못했다. 
문덕文德 원년에 상채上蔡에 가니, 때마침 주장州將이 불법을 중시해서 대통선원大通禪苑을 짓고 대사에게 종지의 요체를 펴 달라고 하였다. 이에 대사는 처음 취미를 만나던 이야기를 하면서 대중에게 말했다.
“선사先師께서 물에도 들어가고 진흙에도 들어가면서 나를 가르쳤지만, 나 스스로가 좋고 나쁨을 알아채지 못했을 뿐이다.”
대사는 이로부터 교화하기 10년, 광화光化 때에는 권속 1백여 명을 거느리고 악주로 가서 절도사節度使인 두홍杜洪의 청에 따라 청평산 안락원安樂院에 머물렀다.
상당하여 대중에게 말했다.
“여러 상좌들이여, 출가한 사람은 불법의 뜻을 알아야 한다. 부처의 뜻을 아는 데는 승속僧俗과 남녀와 귀천에 있지 않다. 다만 집안의 풍부함과 검소함에 따라서 안락하기만 하면 된다. 여러 상좌들은 모두 오랫동안 총림에 있으면서 여러 존숙尊宿을 두루 참배한 사람들이니, 부처의 뜻을 어떻게 알고 있는가? 나와서 여럿이 토론해 볼 것이지 공연히 기고만장하지 말라. 나중이 되어서 하나의 일도 이루지 못하면 일생을 헛되이 보내는 것뿐이다. 만일 불법의 뜻을 알지 못하면, 설사 머리 위로 물을 내뿜고, 발밑에서는 불을 내고, 몸을 태우고 팔을 지지며, 총명하여 변재가 좋고, 권속을 1천 명, 2천 명 모으며, 설법을 구름처럼 비처럼 하고, 강의할 때 하늘에서 꽃이 어지러이 떨어지더라도, 다만 삿된 말을 이루어 시비를 다툴 뿐이라서 불법과는 거리가 너무 멀다. 그대들은 다행히 색신色身이 건강하여 온갖 어려움을 만나지 않았으니, 이 공부를 가까이하는 데 무슨 방해가 있겠는가? 불법의 뜻을 체득하는 데 좋다고 할 것이다.”
이때에 어떤 스님이 나서서 물었다.
“어떤 것이 대승大乘입니까?”
“삼베 노끈[麻索]이니라.”
“어떤 것이 소승小乘입니까?”
“돈 꾸러미이니라.”
“어떤 것이 청평淸平의 가풍입니까?”
“한 말의 가루로 세 개의 전병을 만든다.”
“어떤 것이 선禪입니까?”
“원숭이가 나무에 오르다가 꼬리를 걸고 거꾸러졌느니라.”
“어떤 것이 유루有漏입니까?”
“조리笊籬이니라.”
“어떤 것이 무루無漏입니까?”
“표주박이니라.”
“얼굴을 맞대고 서로 드러낼 때에는 어떠합니까?”
“전좌典坐에게 주라고 분부했다.”
그밖에 근기에 맞는 방편은 그때의 상황에 순응하였으니, 거스르고 따르고 펼치고 말아 들이는 말이 격식을 초월하였다.
천우天祐 16년 정월 25일 오시午時에 입적하니 수명은 75세였다. 주周나라 현덕顯德 6년에 시호를 법희法喜 선사라 하였고, 탑호를 선응善應이라 하였다.

서주舒州 투자산投子山 대동大同 선사
그는 본주(本州:舒州) 회녕懷寧 사람으로서 성은 유劉씨이다. 어릴 때에 낙하洛下 보당保唐의 만滿 선사에 의해 출가하였는데, 처음에는 안반관(安般觀:數息觀)을 익혔으나, 그 후 󰡔화엄경華嚴經󰡕을 보고서 성품의 실체[性海]를 깨달았다. 그러다가 다시 취미산翠微山의 법회에 가서 선종의 종지를 단박에 깨달았다.[취미장翠微章에 보인다.] 이로부터 그저 발 닿는 대로 두루 다니다가 고향으로 돌아와서 투자산投子山에 은거하여 초막을 짓고 살았다.
어느 날 조주趙州 종심從諗 화상이 동성현桐城縣에 온다기에 대사도 산을 내려가 도중에서 만났으나 서로 알아보지 못했다. 조주가 속인들에게 몰래 물어서 투자임을 알고 거슬러 와서 물었다.
“투자산의 주인이 아니십니까?”
“용돈[茶鹽錢]이나 한 푼 주시오.”
조주가 먼저 암자에 와서 앉았는데, 대사가 나중에 기름 한 병을 들고 암자로 돌아왔다. 이에 조주가 말했다.
“투자의 소문을 들은 지 오래인데, 이제 와서 보니 한낱 기름 장수 늙은이로군.”
“그대는 기름 장수 늙은이만 보았지 투자는 모르는군요.”
“어떤 것이 투자입니까?”
“기름이요, 기름.”
조주가 다시 물었다.
“죽음 속에서 삶을 얻는 때는 어떠합니까?”
“밤에 다니는 것은 허락하지 않나니 밝거든 오시오.”
“나는 일찍이 후백侯白이라 여겼더니, 다시 후흑侯黑이 있구나.”[대동大同과 조주趙州 두 사람이 서로 문답한 것은 각각 본집本集에 있는데, 그 말이 간결하고 웅건하며 뜻이 깊고 높으므로, 사람들이 “조주와 투자投子는 빼어난 묘용妙用을 얻었다”라고 하였다.]
이로부터 대사의 이름이 천하에 퍼지니, 행각을 하는 스님[雲水]들이 다투어 모여들었다. 
대사가 대중에게 말했다.
“그대들은 여기에 와서 신선한 어구語句나, 잘 다듬어지고 화려한 사륙四六의 문체나, 입에 담을 만한 희귀한 말을 찾으려고 하지만, 늙은 나는 기력이 부치고 입술과 혀가 둔하다. 만일 그대들이 나에게 무엇을 묻는다면 나는 그저 물음에 따라 대답하겠지만, 그대들에게 전해 줄 현묘함 따위는 없다. 또 그대들로 하여금 뿌리를 내리라 하지도 않고, 끝내 향상向上과 향하向下, 부처 있음과 법의 있음, 범부와 성인이 있다고 설하지도 않고, 또 그저 앉아서 그대들을 속박하지도 않겠다. 그대들 모두가 천변만화의 변화를 부린다고 하여도 그것 모두는 그대들 각자의 알음알이로부터 생겨난 것일 뿐이니, 스스로의 짐을 지고 와서 스스로가 짓고 스스로가 받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그대들에게 줄 만한 것이 없고, 감히 그대를 속일 수도 없고, 그대들에게 설할 만한 겉도 없고 속도 없다. 그대들은 알겠는가?”
이때에 어떤 스님이 물었다.
“겉과 속[表裏]을 거두지 않을 때에는 어떠합니까?”
“그대는 그 속에서 뿌리를 박으려 하는가?”
“대장경[大藏敎] 속에도 기특한 일이 있습니까?”
“대장경을 연출演出하느니라.”
“어떤 것이 눈이 열리지 않았을 때의 일입니까?”
“눈이 맑고 길고 넓어서 마치 청련靑蓮 같으니라.”
“온갖 부처와 불법이 모두 이 경에서 나왔다니, 어떤 것이 이 경입니까?”
“그러한 이름[名字]으로 그대들은 마땅히 받들어 지녀야 한다.”
“마른나무 속에도 또한 용의 울음이 있습니까?”
“나는 해골 속에서도 사자의 울부짖음이 있다고 하겠노라.”
“한 법이 온갖 중생을 두루 적신다고 하는데, 어떤 것이 한 법입니까?”
“비가 내리는구나.”
“한 티끌이 법계를 머금을 때는 어떠합니까?”
“벌써 몇 티끌을 이루었구나.”
“황금 사슬이 열리지 않을 때는 어떠합니까?”
“열렸다.”
“학인이 수행을 하고자 할 때는 어찌합니까?”
“허공은 무너진 적이 없느니라.”

설봉雪峰이 모시고 섰는데, 대사가 암자 앞의 돌덩어리 하나를 가리키면서 말했다.
“3세의 부처님께서 모두 저 속에 있느니라.”
“저 속에 있지 않는 것도 알아야 합니다.”
대사는 그대로 암자로 돌아가서 좌정하였다.

어느 날 설봉이 대사를 따라 용면龍眠 암주庵主를 찾아갔다. 설봉이 물었다.
“용면으로 가는 길은 어디로 갑니까?”
대사가 주장자로 앞쪽을 가리키자, 설봉이 말했다.
“동쪽으로 갈까요, 서쪽으로 갈까요?”
“칠통漆桶이구나.”
다른 날에 설봉이 또 물었다.
“한 망치로 문득 이루었을 때는 어떠합니까?”
“성질이 조급한 사람이 아닐까?”
“한 망치도 빌리지 않을 때는 어떠합니까?”
“칠통이구나.”

어느 날 대사가 암자에 앉았는데 설봉이 물었다.
“화상이시여, 여기에도 뵈러 오는 이가 있습니까?”
대사가 평상 밑에서 괭이를 들어 면전에다 던지자, 설봉이 말했다.
“그렇다면 한번 파헤쳐 보아야 하겠습니다.”
“칠통이 불쾌하구나.”
설봉이 하직하고 떠나는데, 대사가 문까지 전송을 나와서 갑자기 “도자道者여” 하고 불렀다. 설봉이 고개를 돌리면서 “네” 하고 대답하니, 대사가 말했다.
“먼 길에 조심하라.”

어떤 스님이 물었다.
“묵은해는 가고 새해가 오고 있는데, 이 두 길에 간섭하지 않는 것이 있습니까?”
“있다.”
“어떤 것이 이 두 길에 간섭하지 않는 것입니까?”
“설날 아침이 상서로움을 여니, 만물이 새롭구나.”
“의지해 바라는 것이 반달과 같고, 비슷한 형상이 삼성三星과 같은 것은 건곤乾坤도 거두지 못하는데, 스님은 어디를 밝히시겠습니까?”
“무슨 소리를 하는가?”
“생각하건대 스님께서는 다만 조용한 물의 물결은 있어도 하늘까지 찌르는 파도는 없군요.”
“부질없는 소리로구나.”
“같은 종류에서 왔을 때에는 어떠합니까?”
“인간의 종류에서 왔는가, 말의 종류에서 왔는가?”
“부처와 부처가 손수 전하고, 조사와 조사가 서로 전했다고 하는데, 전한 것이 무슨 법입니까?”
“나는 부질없는 말은 모른다.”
“어떤 것이 문을 나서서 부처를 보지 못한 것입니까?”
“볼 바가 없느니라.”
“어떤 것이 방에 들어와서 부모와 이별하는 것입니까?”
“생겨난 바가 없느니라.”
“어떤 것이 불길 속에 몸을 숨기는 것입니까?”
“어디 가릴 곳이 있던가?”
“어떤 것이 숯 더미 속에 몸을 숨기는 것입니까?”
“나는 그대가 옻[漆]같이 검다고 하노라.”
“적적的的하면서도 밝히지 못할 때는 어떠합니까?”
“밝다.”
“어떤 것이 마지막의 한 구절입니까?”
“최초를 밝힐 수 없다.”
“싹으로부터 땅을 변별하고, 말을 인因해서 사람을 알아채는데, 무엇이 변별하고 알아채는 것입니까?”
“당겨도 당겨지지 않는다.”
“선원 안에 있는 3백 명 가운데 수효에 들지 않은 사람도 있습니까?”
“100년 전이나 50년 뒤에 살펴라.”

대사가 어떤 스님에게 물었다.
“소산疎山의 생강[薑]을 들은 지 오래인데, 이것이 아닌가?”
대답이 없었다.[법안法眼이 대신 말하기를 “화상의 중重하심은 들은  지 오랩니다”라고 하였다.]

어떤 스님이 물었다.
“다듬지 않은 옥돌[璞玉]을 안고 스님께 귀의하오니, 스님께서 잘 조각해 주십시오.”
“기둥이나 대들보 감은 못된다.”
“그렇다면 변화卞和 전국 시대 때 매우 진귀한 옥돌을 지니고 있었던 초楚나라 사람의 이름이다.
는 몸을 뺄 곳이 없겠습니다.”
“짊어지고 다니려면 절룩거리면서 고생께나 하겠구나.”
“짊어지고 다니지 않을 때에는 어떠합니까?”
“그대로 하여금 ‘다듬지 않은 옥돌을 안고 스님께 귀의하오니 잘 조각해 주십시오’라고 하게 하지는 않을 것이다.”
“나타那吒 태자가 뼈를 쪼개서 아버지께 바치고, 살은 베어서 어머니께 돌렸다는데, 어떤 것이 나타 태자의 본래의 몸입니까?”
대사가 손에 들었던 주장자를 놓아 버렸다.
또 물었다.
“불법佛法이란 두 글자의 청탁淸濁을 어떻게 가려야 합니까?”
“불법이 청탁이니라.”
“학인은 잘 모르겠습니다.”
“그대는 아까 무엇을 물었는가?”
“모두가 같은 물인데 왜 바닷물은 짜고 강물은 싱겁습니까?”
“하늘에는 별이요, 땅에는 나무이니라.”[법안法眼이 따로 말하기를 “많이 어긋나는 것 같구나”라고 하였다.]
“어떤 것이 조사의 뜻입니까?”
“미륵이 수기한 곳을 찾아도 찾지 못했다.”
“화상께서 여기에 살기 시작한 이래로 어떤 경계가 있습니까?”
“귀밑머리를 딴 계집아이의 머리가 실같이 희다.”
“어떤 것이 무정설법無情說法입니까?”
“악惡.”
“어떤 것이 비로자나입니까?”
“이미 이름이 생겼구나.”
“어떤 것이 비로자나의 스승입니까?”
“비로자나가 있기 전에 이미 알았다.”
“분명하게 떨어지는 한마디를 말씀해 주십시오.”
“호好.”
“네 산의 모습이 핍박할 때에는 어떠합니까?”
“5온蘊이 모두 공했다.”
“한 생각도 나기 전에는 어떠합니까?”
“참으로 부질없는 말이구나.”
“범부와 성인의 거리가 얼마입니까?”
대사가 선상에서 내려갔다.
“학인이 하나를 물으면 즉시 화상께서는 대답하시는데, 만일 천만 가지를 물으면 어찌하겠습니까?”
“닭이 알을 품은 것과 같으니라.”
“하늘 위와 하늘 아래서 내[我]가 가장 높다는데, 어떤 것이 나입니까?”
“그 늙은이[老胡] 부처님을 의미하는 말이다.
를 넘어뜨린들 무슨 허물이 있겠는가?”
“어떤 것이 화상입니까?”
“맞이해도 그 머리를 보지 못하고, 따르면서도 그 형상을 보지 못한다.”
“상像을 조성하다가 채 이루지 못했을 때에 몸은 어디에 있습니까?”
“함부로 조작하지 말라.”
“그렇지만 나타나면서도 나타나지 않는 것을 어찌해야 합니까?”
“어디에 숨었는가?”
“눈 없는 사람은 어떻게 나아갑니까?”
“시방에 두루하느니라.”
“눈이 없는데 어찌 시방에 두루합니까?”
“눈을 얻는 데 집착함이 아닌가?”
“어떤 것이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꺼리지 않는다.”
“달이 둥글지 않을 때에는 어떠합니까?”
“2, 3개를 삼켜 버렸다.”
“둥근 뒤에는 어떠합니까?”
“7, 8개를 토해 버렸다.”
“해와 달이 밝기 전에 부처와 중생이 어디에 있었습니까?”
“내가 성내는 것을 보거든 성낸다고 하고, 내가 기뻐하는 것을 보거든 기뻐한다고 하라.”

대사가 어떤 스님에게 물었다.
“어디서 왔는가?”
“동서산東西山에 가서 조사께 예배하고 옵니다.”
“조사는 동서산에 있지 않다.”
스님은 대답이 없었다.[법안이 대신 말하기를 “화상은 조사를 아시는군요”라고 하였다.]
또 물었다.
“어떤 것이 현묘함 속의 과녁[的]입니까?”
“그대 입 속의 말로는 도달하지 못한다.”
“우두牛頭가 4조祖를 보기 전에는 어떠합니까?”
“남의 스승이 되어 주느니라.”
“본 뒤에는 어떠합니까?”
“남의 스승이 되어 주지 않는다.”
“부처님들께서 세상에 출현하신 것은 오직 일대사一大事의 인연인데, 어떤 것이 일대사의 인연입니까?”
“윤尹 사공司空이 나에게 개당開堂을 청했다.”
“어떤 것이 부처입니까?”
“허깨비는 구할 수 없느니라.”
“천 리를 걸어 스승을 찾아왔으니, 스님께서 한 번 가르쳐 주십시오.”
“오늘은 내가 허리가 아프다.”

채두菜頭가 방장에 들어와서 법을 물으니, 대사가 말했다.
“갔다가 아무도 없는 때에 오면 그대를 위해 말해 주리라.”
이튿날 채두가 아무도 없는 틈을 타서 다시 대사를 찾아와 말해 달라고 청하니, 대사가 말했다.
“가까이 오너라.”
채두가 가까이 다가오자, 대사가 말했다.
“함부로 남에게 이야기하지 말라.”
“목구멍과 입술을 다물고서 말씀해 주십시오.”
“그대는 다만 내가 말을 못하기를 바라는구나.”
“달마가 오기 전에는 어떠합니까?”
“하늘과 땅에 두루했느니라.”
“온 뒤에는 어떠합니까?”
“덮어도 덮을 수 없느니라.”
“화상께서 선사先師를 뵙기 전에는 어떠했습니까?”
“온몸[通身]은 어찌하지 못한다.”
“선사를 본 뒤에는 어떠합니까?”
“온몸을 두드려도 부서지지 않는다.”
“스승에게 얻은 것이 있습니까?”
“끝내 서로 저버리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스승으로부터 얻으신 것이군요.”
“스스로 분명한 눈이라야 나아가 얻는다.”
“그렇다면 선사를 저버리신 것입니다.”
“선사만을 저버린 것이 아니라 나 자신도 저버렸다.”
“7불佛은 문수의 제자인데, 문수에게도 스승이 있습니까?”
“아까부터 그렇게 말한 것이 흡사 자기를 굽혀서 남에게 미룬 것과 같구나.”
“황금 닭이 울기 전에는 어떠합니까?”
“그런 소리가 없었겠지.”
“운 뒤에는 어떠합니까?”
“제각기 때[時]를 안다.”
“사자는 짐승의 왕인데, 어찌하여 6진塵에 삼켜집니까?”
“4대大에 인상人相과 아상我相이 없음을 짓지 않기 때문이다.”   대사가 투자산投子山에 산 지 30여 년 동안, 왕래하면서 깨우침을 받고 배우는 이가 항상 방에 가득하였다. 대사는 그들을 받아들여서 두려움 없는 변재로 물음에 따라 즉석에서 대답해 주니, 안팎에서 동시에 쪼아주고 쪼는[啐啄同時] 미묘한 말이 퍽 많으나, 이제 조금이나마 기록해 둔다.

당나라 중화中和 때에 황소黃巢의 난이 일어나서 천하가 어지러워졌을 때에 미친 무리가 칼을 들고 산으로 올라와서 대사에게 물었다.
“여기에 살면서 무엇을 하는가?”
대사가 알맞게 설법해 주니, 두목이 듣고서 굴복되어 절을 하였다. 그리고는 몸에 입었던 옷을 벗어서 베풀고는 떠났다.
대사는 건화乾化 후양后梁 태조 때의 연호이니 서기 914년, 당의 애제哀帝 11년이다.
 4년 갑술甲戌 4월 6일에 병이 났는데, 대중이 의원을 청하자 대사가 말했다.
“4대의 움직임은 모였다 흩어졌다 함이 예사이니, 그대들은 걱정을 말라. 내가 알아서 잘 보전하리라.”
말을 마치자 가부좌를 맺고 앉아서 입멸하니, 수명은 96세였다. 시호는 자제慈濟 대사이고, 탑호는 진적眞寂이라 하였다.

호주湖州 도량산道場山 여눌如訥 선사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교리의 뜻입니까?”
대사가 대답했다.
“그대 스스로 살펴보라.”
스님이 절을 하니, 대사가 말했다.
“밝은 달이 밤하늘에 비추니, 산천의 형세가 스스로 분명하다.”
“어찌하여야 듣는 성품이 연緣을 따르지 않을 수 있습니까?”
“그대가 잘 들어보라.”
스님이 절을 하니, 대사가 말했다.
“귀머거리라면 피리[胡笳調]를 불면서도 좋고 나쁨과 높고 낮음을 자기는 듣지 못한다.”
“그렇다면 듣는 성품이 분명하군요.”
“돌이 허공에 떠 있고, 불이 물속에서 탄다.”
“허공도 끝이 있습니까?”
“그대는 너무 아는 것이 많다.”
스님이 절을 하니, 대사가 말했다.
“3척 지팡이 끝에 해와 달을 달고, 한 티끌이 일어나서 멋대로 하늘을 막는다.”
“어떤 것이 도인입니까?”
“다니고 움직임에 자취가 없고, 앉고 섬에 아는 이가 없다.”
“어찌하여야 됩니까?”
“세 개의 도가니에 힘이 다하니 연기도 불꽃도 없고, 만경萬頃의 평평한 밭에는 물이 흐르지 않는다.”
“한 생각[一念]도 나지 않을 때는 어떠합니까?”
“무엇에 쓰겠는가?”
스님이 대답이 없자, 대사가 다시 말했다.
“용문龍門을 뚫고 올라가니 비와 구름이 합치고, 산천과 대지가 들어가도 자취가 없다.”

대사는 눈에 중동(重瞳:겹 눈동자)이 있고, 손을 내리면 무릎을 지났다. 취미에게 비결을 받은 뒤에 도량산道場山에 머물면서 풀을 베어 암자를 세우니, 배우는 무리가 사방에서 모여들어 마침내 선원禪苑을 이루어서 교화를 널리 펴게 되었다. 남긴 물건으로는 해진 납의衲衣 세 벌과 개산開山할 때의 주장자와 나막신이 지금도 영당影堂에 남아 있다.[탑명塔銘에 의하면 대사의 성은 허許씨이며, 오흥吳興 사람이다. 7세에 속세를 떠나 오돈烏墩의 광복사光福寺에 살다가 8년 만에 서울에 가서 구족계를 받고, 이어 예장豫章에 가서 취미에게 인가를 받았다. 나중에 도량산에다 초암을 짓고 사니 사납던 짐승들도 길이 들어 마치 가르침을 받드는 것 같았다.]

건주建州 백운白雲 약約 선사[일찍이 강주江州의 동선원東禪院      에 살았다.] 
어떤 스님이 물었다.
“공空에 치우친 집에도 앉지 않고, 무학無學의 지위에도 머물지 않으면, 이런 사람은 어떤 곳에 안치安置해야 합당하겠습니까?”
“맑은 하늘에는 번개 불빛이 없다.”

천태산天台山의 덕소德韶 선사가 뵈러 오자, 대사가 물었다.
“어디서 오는가?”
“강북江北에서 옵니다.”
“배로 왔는가, 육지로 왔는가?”
“배로 왔습니다.”
“물고기와 자라들을 만나 보았겠군.”
“간혹 만났습니다.”
“만났을 때 어찌하였는가?”
덕소가 “돌咄” 하고 머리를 움츠리고 물러가니, 대사가 껄껄 웃었다.

앞의 담주潭州 도오산道吾山 원지圓智 선사의 법손

담주潭州 석상산石霜山 경제慶諸 선사 
그는 여릉廬陵 신감新淦 사람으로서 성은 진陳씨이다. 13세에 홍정洪井 서산西山 소란紹鑾 선사에 의해 머리를 깎고, 23세에 숭악嵩嶽에 가서 구족계를 받고, 낙하洛下에 가서 율장의 교리를 배웠다. 그리하여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분별하여 알기는 했으나 이는 결국 점종漸宗의 일임을 깨닫고, 다시 대위산(大潙山:영우)의 법회에 가서 미두(米頭:양곡 관리)의 소임을 맡았다.
어느 날 쌀광에서 쌀을 까부는데 위산이 와서 말했다.
“시주물施主物을 흘리지 말라.”
“흘리지 않습니다.”
위산이 땅바닥에서 쌀 한 톨을 주워 들고서 말했다.
“너는 흘리지 않는다고 말했는데, 그렇다면 이건 어디서 났는가?”
대사가 대답이 없었다. 이에 위산이 다시 말했다.
“이 한 톨을 속이지 말라. 백천 톨이 모두 이 한 톨에서 나온다.”
“백천 톨은 이 한 톨에서 난다지만, 이 한 톨은 어디서 났습니까?”
위산이 껄껄 웃으면서 방장으로 돌아갔다가 저녁에 상당하여 말했다.
“대중들이여, 쌀 속에 벌레가 있다.”

대사가 나중에 도오를 뵙고 물었다.
“어떤 것이 눈에 닿는 것마다 보리입니까?”
도오가 “사미야” 하고 불러 사미가 “네” 하고 대답하니, 도오가 말했다.
“깨끗한 병에다 물을 더 부어라.”
도오가 다시 대사에게 물었다.
“그대는 아까 무엇을 물었지?”
대사가 앞의 말을 다시 하면서 물으니, 도오가 문득 일어나서 갔는데, 대사가 여기서 깨달은 바가 있었다.

도오가 물었다.
“내가 병이 나서 머지않아 세상을 떠날 것이다. 마음속에 물건이 있은 지 오래되어서 병이 되었는데, 누가 없앨 수 있겠는가?”
대사가 말했다.
“마음도 물건도 모두 아니니, 없애려고 들면 더욱 병이 됩니다.”
도오가 말했다.
“현명하구나, 현명해.”

이때 대사는 이제 막 두 여름을 지낸 스님이 되었지만, 세상을 피해 장사성長沙城 유양현瀏陽縣에 있는 도가방陶家坊에서 세속 사람과 섞여 사니, 아침저녁으로 만나는 사람도 알지 못했다. 나중에 동산洞山 양개良价 화상이 스님을 보내 찾아 나섰기 때문에 정체가 드러나서 동산의 추천으로 석상산에 살게 되었다.
훗날 도오가 대중을 버리고 세상을 떠나려 할 때에 대사를 맏제자로 삼고 몸소 석상산에 와서 살았다. 대사는 날마다 부지런히 모시면서 스승에 대한 예를 다하였다. 도오가 입적한 후에는 학인[學侶]이 구름같이 모여서 5백 명이 되었다.[보다 자세한 말은 다른 권에 있다.]
어느 날 대중에게 말했다.
“일대시교一代時敎는 당시 사람들의 손과 발을 묶어 놓는다. 그 까닭은 모두가 금시今時에 떨어졌기 때문이다. 설사 법신의 경지에 이르렀어도 법신이 아니라 함은 바로 교가敎家의 극칙이기 때문이니, 우리 사문들은 전혀 긍정할 수 없는 일이다. 만약 나눈다면 어긋나고 ,나누지 않는다면 흙탕물에 박혀 있게 되리니, 그 까닭은 오직 마음과 뜻에 의하여 망령되게 지껄이고, 보고 듣고 하기 때문이다.”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대사가 대답했다.
“공중에 한 조각돌이니라.”
스님이 절을 하자, 대사가 말했다.
“알겠는가?” 
“모르겠습니다.”
“모르는 것이 다행이다. 알았다면 그대의 머리를 부쉈을 것이다.”
“어떤 것이 화상의 본분의 일입니까?”
“돌 머리에서도 땀이 나던가?”
“이 속에 이르러서는 어째서 말하지를 못한다고 합니까?”
“발바닥에 입이 붙었으니까.”
“참 몸[眞身]도 세상에 나옵니까?”
“세상에 나오지 않는다.”
“그렇다면 어떻게 참 몸이라 합니까?”
“유리병의 주둥이로다.”

대사가 방장에 계시는데, 어떤 스님이 창문 밖에서 물었다.
“지척 사이인데 어째서 스님의 얼굴이 보이지 않습니까?”
“나는 온 세계에 두루하여 본래 숨은 일이 없노라.”
그 스님이 설봉雪峰에게 가서 물었다.
“온 세계에 두루하여 숨지 않는다는 뜻이 무엇입니까?”
설봉이 대답했다.
“어디가 석상 아닌 곳인가?”
그 스님이 다시 대사에게 와서 설봉의 말을 전하니, 대사가 말했다.
“노장이 어찌 그리 방정스러울까?”[동선東禪 제齊가 말하기를 “설봉은 석상의 뜻을 알았을까, 석상의 뜻을 몰랐을까? 알았다면 어째서 방정스런 노장이라 했으며, 알지 못했다면 어찌 되겠는가? 설봉이 어찌 모를 수 있으랴? 그러나 법은 다르지 않지만 이어받음이 같지 않고 아는 견해가 다르니 어찌하랴? 그가 말한, 온 누리에 두루하여 숨기지 않는다는 말은 배운 이라야 안다. 함부로 지껄이면 안 된다”라고 하였다.]
운개雲蓋가 물었다.
“만호萬戶의 문이 모두 닫힌 것은 묻지 않겠지만 만호의 문이 모두 열린 때는 어떠합니까?”
“당堂 안의 일은 어떠한가?”
“아무도 그를 제접할 사람이 없습니다.”
“이르기는 퍽 잘 일렀다만 겨우 8, 9할 정도를 일렀다.”
“화상께서는 어떻게 이르시겠습니까?”
“아무도 그를 알아차릴 사람이 없다.”[동선東禪 제齊가 말하기를 “석상의 뜻이 무엇이겠는가? 동일하다면 앞서는 어째서 허락하지 않았을까? 다른 도리가 있다면 그저 말만 한 번 더하는 것이다. 말해 보라. 옛사람들의 뜻이 무엇이랴?”라고 하였다.]

어떤 이가 물었다.
“불성佛性이 허공과 같다 함이 무엇입니까?”
“누웠을 때에는 있고, 앉았을 때에는 없는 것이다.”
“한 발 거두는 것을 잊었을 때는 어떠합니까?”
“그대와 함께 즐기지 못하겠다.”
“바람이 불어 파도가 생길 때는 어떠합니까?”
“호남湖南의 성안이 대단히 시끄러워서 사람들은 강서江西로 가려 하지 않는다.”

어떤 스님이 와서 동산이 만참에 설법한 내용을 대사에게 들어 말했다.
“여러분, 초가을 여름 막바지에 혹은 동쪽으로 가고 서쪽으로 가는데, 곧장 만 리 밖에 한 치의 풀도 없는 곳으로 가야 하니, 만 리 밖에 한 치의 풀도 없는 곳을 어떻게 가겠는가?”
대사가 이 말을 듣고 말했다.
“문을 나서면 문득 풀이다.”
그 스님이 동산에게 이야기하니, 동산이 말했다.
“대당국大唐國 안에 몇 사람이나 있을까?”[동선東禪 제齊가 듣고 말하기를 “말해 보라. 석상은 동산의 뜻을 알았을까? 만일 알았다면 여러 상좌들이 매일같이 굴신하고 맞고 보내는데 그들이 길에서 떨어져 풀밭에 드는가? 아니면 낱낱이 궤도에 맞던가? 만일 동산의 뜻을 몰랐다면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으랴? 알 도리가 있겠는가? 상좌들은 어디로 가려는가? 만일 이 일을 밝힌다면 가히 환향곡還鄕曲이라 하리라. 보지 못했는가? 일찍이 그가 말하기를 ‘그러면 가지 않는 것입니다’라고 하였느니라”고 하였다.]

대사가 석상산에 있은 지 20년 동안에 배우는 무리 가운데 장좌불와長坐不臥하는 이들이 있었는데, 마치 나무그루처럼 우뚝해서 사람들이 고목대중枯木大衆이라 불렀다. 당나라 희종僖宗이 대사의 명성을 듣고 사신을 보내 자의紫衣를 하사했으나, 대사는 끝내 사양하고 받지 않았다.
광계光啓 4년 무신(戊申,888) 2월 20일 기해己亥에 병으로 입멸하니, 수명은 82세이고 법랍은 59세였다. 그해 3월 15일에 선원의 서북 모퉁이에서 장사를 지내니, 시호는 보회普會 대사이고 탑호는 견상見相이었다.

담주潭州 점원漸源 중흥仲興 선사
도오道吾의 회상에서 전좌典座의 일을 맡아 보았는데, 어느 날 도오를 따라 단월檀越 집에 조상弔喪을 갔다가 손으로 관을 문지르면서 말했다.
“살았는가, 죽었는가?”
도오가 말했다.
“살았어도 말하지 못하고, 죽었어도 말하지 못하리라.”
“어째서 말하지 못합니까?”
“말하지 못한다. 말하지 못해.” 
조문을 마치고 함께 돌아오다가 대사가 말했다.
“화상은 오늘 반드시 중흥에게 말하셔야 합니다. 만일 여전히 말하지 못하면 때리겠습니다.”
“때리려면 멋대로 때려라. 살았어도 말하지 못하고, 죽었어도 말하지 못한다.”
대사가 드디어 몇 차례 주먹으로 도오를 때렸다. 절에 돌아와서 도오가 말했다.
“다른 곳으로 가라. 조금 있다가 일을 관장하는 스님이 알면 그대를 때릴 것이다.”
대사가 하직하고 석상에게 가서 앞의 이야기와 사실을 말하고 화상께서 말씀해 주시기 바란다고 하였다. 이에 석상이 말했다.
“그대는 도오가 살았어도 말하지 못하고, 죽었어도 말하지 못한다고 한 것을 듣지 못했는가?”
대사가 즉시 크게 깨닫고는 재齋를 마련해서 참회하였다.
어느 날 대사가 괭이를 들고 법당으로 올라가서 동쪽에서 서쪽으로, 서쪽에서 동쪽으로 가자, 석상이 물었다.
“무엇을 하려는가?”
“선사先師들의 사리를 찾습니다.”
석상이 말했다.
“커다란 물결이 넓고 아득하고, 흰 파도가 하늘까지 넘실거리는데, 무슨 사리를 찾는단 말인가?”
“정말 힘을 잘 쓰는군요.”
“이 속은 바늘을 찔러도 들어가지 않거늘, 무슨 힘을 쓴다고 하는가?”[태원太原 부孚 상좌가 대신 말하기를 “선사의 사리가 아직도 있습니다”라고 하였다.]

녹청祿淸 화상
어떤 스님이 물었다.
“도오道吾의 기틀에 떨어지지 않는 법을 스님께서 말씀해 주십시오.”
대사가 대답했다.
“뜰 앞의 홍현紅莧 나무가 잎은 났으나 꽃은 피지 않는다.”
그리고는 잠자코 있다가 다시 말했다.
“알겠는가?”
“잘 모르겠습니다.”
“이것이 바로 도오의 기틀이거늘 어째서 모르는가?”
스님이 절을 하니, 대사가 때리면서 말했다.
“내가 그대를 때려야 되겠구나.”

앞의 담주潭州 운암雲巖 담성曇晟 선사의 법손

균주筠州 동산洞山 양개良价 선사
그는 회계會稽 사람으로서 성은 유兪씨이다. 어릴 적에 스승을 따라 절에 가서 󰡔반야심경般若心經󰡕을 외우다가 근根과 진塵이 없는 이치를 물으니, 그 스승이 깜짝 놀라면서 말했다.
“나는 그대의 스승이 아니다.”
그리하여 바로 오설산五洩山에 가서 묵黙 선사에게 귀의하고 머리를 깎았다. 21세에 숭산嵩山에 가서 구족계를 받고, 사방을 유행하면서 먼저 남전南泉을 뵈었는데, 때마침 마조馬祖의 제삿날이어서 재를 마련하다가 남전이 대중에게 물었다.
“내일 마馬 대사의 제사를 지내는데, 마 대사가 오시겠는가?”
대중이 아무도 대답하지 못하자 대사가 나서서 말했다.
“도반이 있기를 기다렸다가 오십니다.”
남전이 이 말을 듣고 칭찬하였다.
“이 사람이 후생後生이기는 하지만 꽤 다듬을[雕琢] 만하구나.”
대사가 말했다.
“화상은 양민良民을 억압하여 천민으로 만들지 마십시오.”

다음에는 위산潙山에게 가서 물었다.
“전에 충忠 국사國師께서 무정설법無情說法을 하셨다고 들었는데, 저는 그 미묘한 이치를 아직 궁구하지 못했습니다.”
위산이 말했다.
“나에게도 있지만, 다만 그런 사람을 얻기 어려울 뿐이었다.”
“스님께서 저에게 일러 주십시오.”
“부모가 낳아준 입으로는 끝내 말할 수 없다.”
“스님과 함께 동시에 도를 사모한 분이 계십니까?”
“여기서 석실石室 쪽으로 가면 운암雲巖 도인이 있다. 만약 풀을 헤치고 바람을 거스르면서 찾아가면, 반드시 그대가 존중할 만한 사람일 것이다.”
운암에게 이르러 물었다.
“무정설법은 어떤 사람이 듣습니까?”
운암이 대답했다.
“무정설법은 정이 없는 사람이라야 듣는다.”
“화상께서는 들으셨습니까?”
“내가 들었다면, 그대는 나의 설법을 듣지 못하게 된다.”
“그렇다면 양개良价는 화상의 설법을 듣지 못하겠습니다.”
“그대는 나의 설법도 듣지 못하거늘 하물며 무정설법이겠는가?”
대사가 게송을 지어 운암에게 바쳤다.

신기하고도 신기하여라.
무정설법의 부사의不思議함이여,
만약 귀로써 들으려면 끝내 알기 어려우니
눈으로 소리를 들어야 바야흐로 알게 된다네.
也大奇  也大奇    無情解說不思議
若將耳聽聲不現    眼處聞聲方可知

마침내 운암을 하직하니, 운암이 물었다.
“어디로 가는가?”
“화상의 곁을 떠나기는 하나 있을 곳을 정하지는 않았습니다.”
“호남湖南으로 가지 말라.”
“안 갑니다.”
“고향으로 가지 말라.”
“안 갑니다.”
“조만간 돌아오라.”
“화상께서 머무시는 곳이 생기면 곧 오겠습니다.”
“이렇게 한 번 떠나면 다시 보기가 어렵겠군.”
“다시 보지 않는 것도 어렵습니다.”
그리고는 도리어 운암에게 물었다.
“화상께서 별세[百年]하신 뒤에 어떤 사람이 스승의 참된 모습을 그릴 수 있느냐고 물으면 어떻게 대답해야 하겠습니까?”
“그저 그에게 ‘다만 그러하다’고 말하라.”
대사가 잠자코 한참 있자, 운암이 말했다.
“이 일을 수긍하려면 크게 세밀해야 한다.”
대사는 그래도 엷은 의심이 풀리지 않다가 나중에 물을 건너다가 물속의 그림자를 보고 앞의 종지를 크게 깨닫고 게송을 읊었다.

절대로 남에게 구하지 말아야 하나니
아득하고 아득하게 나와는 성글어진다.
내 이제 홀로 스스로 가지만
곳곳에서 그를 만나는구나.
切忌從他覓    迢迢與我疎
我今獨自往    處處得逢渠

그가 바로 지금의 나이지만
나는 지금 그가 아니니
마땅히 이렇게 알아야만
바야흐로 여여如如함에 계합하리라.
渠今正是我    我今不是渠
應須恁麽會    方得契如如

훗날 운암의 영정[眞影]에 공양하는데 어떤 스님이 물었다.
“선사께서 말씀하시기를 ‘다만 그러하다’고 하셨다는데 사실입니까?”
“그렇다.”
“그 뜻이 어떠합니까?” 
“그 당시에 자칫했으면 선사의 말씀을 잘못 이해할 뻔하였다.”
“선사께서도 알고 있으셨습니까?”
“만일 알고 있지 못했다면 어찌 이런 말을 이해하겠는가? 만일 알고 있다면 어찌 이런 말을 긍정했으리오?”[장경長慶 능陵이 말하기를 “있음을 알았다면 왜 그렇게 말했으리오?”라고 하였다. 또 말하기를 “자식을 길러야 부모의 은혜를 안다”고 하였다.]

대사가 늑담泐潭에 있을 때에 초初 상좌가 대중들에게 설법을 하는 것을 보았다.
“매우 신기하구나, 매우 신기하구나. 부처의 경계와 도의 경계는 부사의하구나.”
대사가 말했다.
“부처의 경계와 도의 경계는 묻지 않겠지만, 부처의 경계와 도의 경계를 말하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한마디만 말씀해 주시오.”
초 상좌가 잠자코 대답이 없으니, 대사가 말했다.
“왜 얼른 말하지 못하시오?”
초 상좌가 말했다.
“다투면 안 됩니다.”
“말해도 말한 적이 없는데, 어째서 다투면 안 된다고 하시오?”
초 상좌가 대답이 없으니, 대사가 말했다.
“부처와 도는 단지 이름일 뿐인데, 어째서 교리의 말씀도 인용하지 못하는가?”
“교리에서는 무엇이라 했습니까?”
“뜻을 얻었거든 말은 잊어라.”
“그렇지만 교리의 뜻으로 마음 머리에 병을 만드는 것입니다.”
“부처의 경계와 도의 경계라는 병이 얼마나 큰지 말하시오.”
초 상좌는 이로 인하여 세상을 떠났다.
 
대사는 당나라 대중大中 말년이 되자 신풍산新豊山에서 학도學徒들을 지도하기 시작했으며, 그 후 예장豫章의 고안高安에 있는 동산洞山[지금의 균주筠州를 말한다.]에서 교화를 크게 드날렸다.
어느 날 운암의 제삿날에 재를 차리는데, 어떤 스님이 물었다.
“화상은 선사의 처소에서 어떤 지시를 받았습니까?”
대사가 대답했다.
“비록 거기에 있기는 했으나 아무런 지시도 받지 못했다.”
“아무런 지시도 받지 못했다면 제사는 차려서 무엇 합니까?”
“아무리 그렇지만 어찌 감히 그를 거스르겠는가?”

어떤 스님이 물었다.
“화상은 처음에 남전을 뵙고 발심을 하셨는데, 왜 운암의 제사를 지내십니까?”
대사가 대답했다.
“나는 선사의 도와 덕을 중시하지도 않고, 불법을 위하지도 않는다. 오직 나에게 설파說破 알기 전에 말하는 것이다.
하지 않은 것을 중시할 뿐이다.”

또 기재일忌齋日에 제사를 차리는데, 어떤 스님이 물었다.
“화상은 선사를 위해 제사를 지내시는데, 선사를 긍정하시는 것입니까?”
대사가 대답했다.
“반은 긍정하고, 반은 긍정하지 않는다.”
“어째서 완전히 긍정하지 않습니까?”
“만일 완전히 긍정하면 선사를 저버리는 것이다.”

어떤 스님이 물었다.
“화상의 본래 스승을 뵙고자 하는데, 어찌하여야 뵙겠습니까?”
“나이가 비슷하니 막힐 것이 없다.”
스님이 의심되는 바를 다시 물으니, 대사가 말했다.
“앞사람의 발꿈치만을 따르지 말고, 다시 한 가지 질문을 청하라.”
스님이 대답이 없었다. 이에 운거雲居가 대신 말했다.
“그렇다면 저는 화상의 본래 스승을 뵙지 못하겠습니다.”[나중에 교皎 상좌上坐가 이 일을 들어 장경에게 묻기를 “어떤 것이 나이가 비슷한 것인가?”라고 하니, 장경이 대답하기를 “옛사람이 그렇게 말한 것을 교 상좌는 다시 거기서 무엇을 찾는가?”라고 하였다.]
대사가 또 말했다.
“4은恩과 3유(有:三界의 業種)를 갚지 않을 이가 있겠는가? 만일 이 뜻을 체득하지 못하면 어찌 처음부터 끝까지 근심을 초탈하리오? 다만 마음과 마음이 사물에 저촉하지 않고, 걸음걸음이 처소가 없어야만 항상 간단間斷이 없어서 점점 상응하게 되리라.”

대사가 어떤 스님에게 물었다.
“어디서 왔는가?”
그 스님이 대답했다.
“산을 유람하고 옵니다.”
“정상까지 갔던가?”
“갔습니다.”
“정상에도 사람이 있던가?”
“사람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그대는 정상에 도달하지 못했네.”
“정상까지 가지 않았다면 어찌 사람 없는 줄을 알았겠습니까?”
“왜 그대는 거기에 머물지 않았는가?”
“제가 머무는 것을 사양하지는 않으나, 서천西天의 어느 사람도 긍정하지 않습니다.”

대사가 태太 장로에게 물었다.
“어떤 물건 하나가 위로는 하늘을 버티고 아래로는 땅을 버텼는데, 항상 움직이는 작용 속에 있으면서 검기가 옻칠과 같다. 허물이 어디에 있는가?”
태 장로가 대답했다.
“움직여 쓰는 데 허물이 있습니다.”[동안同安 현顯이 따로 말하기를 “모릅니다”라고 하였다.]
대사는 꾸짖으면서 “나가라”고 하였다.

어떤 이가 물었다.
“어떤 것이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대사가 대답했다.
“마치 해계서(駭雞犀:물소 뿔)와 같다.”

대사가 설봉에게 물었다.
“어디서 오는가?”
“천태산天台山에서 옵니다.”
“지자智者 대사를 보았는가?”
“제가 무쇠 방망이를 맞을 일이 생겼군요.”

어떤 스님이 물었다.
“뱀이 두꺼비를 삼키는데 구해야 합니까, 구하지 말아야 합니까?”
대사가 대답했다.
“구하면 두 눈으로 보지 못하고, 구하지 않으면 형체와 그림자가 드러나지 않는다.”

대사가 밤에 등불을 켜지 않고 있었는데, 어떤 스님이 나와서 물어 말했다. 그가 물러간 뒤에 대사가 시자를 시켜서 등불을 켜게 하고 아까 와서 질문한 스님을 나오라고 불렀다. 그 스님이 앞으로 다가서니, 대사가 말했다.
“밀가루 세 냥을 가져다가 이 상좌에게 주어라.”
그 스님이 소매를 흔들면서 물러갔다.
그는 이로부터 현묘한 지취旨趣를 깨닫고, 마침내 옷과 도구를 팔아서 공양하다가 3년 후에 대사를 떠났다. 대사는 그에게 “잘 가라”고 전송을 했다.
설봉이 모시고 섰다가 물었다.
“저 스님이 떠났다가 언제 다시 돌아옵니까?”
대사가 대답했다.
“그는 오직 한 길로 갈 줄만 알았지 다시 올 줄은 모른다.”
그 스님이 큰방으로 가서 의발衣鉢 밑에 앉아서 열반에 들었다. 설봉이 올라와서 대사에게 보고하니, 대사가 말했다.
“아무리 그렇지만 그래도 나의 3생生과는 비교된다.”

설봉이 올라와서 문안을 드리니, 대사가 말했다.
“문에 들어와서 말해야 하며, 벌써 들어왔다는 따위의 말은 말라.”
설봉이 대답했다.
“저는 입이 없습니다.”
“입이 없는 것은 그만두고, 내 눈이나 돌려다오.”
설봉은 말이 없었다.[운거雲居 응膺이 따로 말하기를 “제가 입이 생기거든 말하지요”라고 하였다. 장경長慶 능稜이 따로 말하기를 “그렇다면 저는 물러나겠습니다”라고 하였다.]

대사가 어떤 스님에게 물었다.
“어디서 왔는가?”
“3조祖의 탑 앞에서 옵니다.”
“조사 계신 곳에서 왔다면 다시 나를 만나 무엇 하리오?”
“조사는 구별되지만, 학인과 화상은 구별되지 않습니다.”
“내가 그대의 본래의 스승을 뵙고자 하는데 되겠는가?”
“역시 화상 스스로가 나서기를 기다려야만 비로소 가능하겠습니다.”
“내가 아까는 잠시 여기에 있지 않았다[不在].”

운거가 물었다.
“어떤 것이 조사께서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대사가 대답했다.
“그대[闍梨]가 앞으로 주인노릇[把茅蓋頭]을 할 때에 어떤 사람이 그대에게 물으면 그대는 그에게 무엇이라 하겠는가?”

어떤 관원[官人]이 물었다.
“수행修行해야 할 사람이 있습니까?”
대사가 대답했다.
“공公이 남자가 되거든 수행하라.”

어떤 스님이 물었다.
“옛사람이 말하기를 서로 만나서 드러내 보인 일이 없는데도 뜻하는 바를 선뜻 안다고 하는데, 이런 때는 어떠합니까?”
대사가 합장정대合掌頂戴를 하였다.

대사가 덕산德山의 시자에게 물었다.
“어디서 오는가?”
“덕산에서 왔습니다.”
“왜 왔는가?”
“화상께 공경을 다하러 왔습니다.”
“세간에서는 무엇이 가장 공경스러운가?”
시자가 대답이 없었다.

언젠가 대사가 이렇게 말했다.
“부처님의 향상사向上事를 체득해야 비로소 그나마 이야기를 나눌 자격[分]이 있다.”
어떤 스님이 벌떡 일어나서 물었다.
“어떤 것이 이야기입니까?”
“이야기할 때 그대는 듣지 못했구나.”
“화상께서는 들으셨습니까?”
“내가 이야기하지 않을 때에는 듣는다.”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바르게 묻고 바르게 대답하는 것입니까?”
대사가 대답했다.
“입으로 말하지 못한다.”
“누군가가 묻는다면 스님께서 대답하시겠습니까?”
“아직도 묻지 못하는구나.”
“어떤 것이 문門으로 들어온 것은 보배가 아니라는 것입니까?”
“그만두어라, 그만두어라.”

대사가 󰡔유마경維摩經󰡕을 강의하는 스님에게 물었다.
“지혜로써 알 수 없고 의식으로 인식하지 못한다고 하니, 무엇을 뜻한 말인가?”
“법신法身을 찬탄한 말입니다.”
“법신이란 말이 이미 찬탄인데, 어찌하여 다시 찬탄하는가?”

어느 때 대사가 이렇게 설했다.
“곧은 도는 본래 한 물건도 없어서 발우 주머니 하나도 수용하지 못한다.”
이에 어떤 스님이 선뜻 물었다.
“어떤 사람이 이에 계합할 수 있습니까?”
“문에 들지 않은 이라야 한다.”
“오직 문에 들지 않은 이라면 계합할 수 있습니까?”
“비록 그렇다 해도 그에게 주지 않을 수 없다.”
대사가 또 말했다.
“곧은 도는 본래 한 물건도 없어서 다른 의발도 수용하지 못하지만, 그 속에서 합치하는 한 마디[一轉語]를 얻어야 한다. 어떠한 말을 해야 하는가?”
어떤 상좌가 96회나 말을 했으나 모두가 대사의 뜻에 맞지 않다가 마지막 한마디가 대사의 뜻에 맞았다. 이에 대사가 말했다.
“그대는 왜 진작 그렇게 말하지 않았는가?”
어떤 스님이 이 소식을 듣고 이야기해 달라고 청하면서 수건과 물병의 시봉을 3년 동안 했으나, 끝내 이야기를 듣지 못한 채 상좌가 병이 났다. 이에 그 스님이 말했다.
“제가 이렇게 3년 동안 시봉을 하면서 앞의 말을 이야기해 달라고 했는데, 아직껏 화상의 자비를 입지 못했습니다. 선의로 얻으려다 안 되니 악으로라도 얻어야겠습니다.”
그리고는 칼을 들고 마주 서서 말했다.
“만일 나에게 이야기를 해 주지 않으면 즉시 상좌를 죽이겠소.”
상좌가 겁이 나서 말했다.
“스님, 잠깐 기다리시오. 내가 이야기하겠소.”
그리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설사 가지고 왔다 하여도 둘 곳이 없소.”
그 스님은 절을 하고 사죄하였다.

어떤 스님이 물었다.
“스님은 평상시에 학인들에게 새의 길[鳥道]을 행하라고 가르치는데, 새의 길이란 무엇입니까?”
대사가 대답했다.
“한 사람도 만나지 않는다.”
“어떻게 행합니까?”
“발바닥에 실오라기도 없이 가야 한다.”
“오직 새의 길을 행하기만 하면 그것이 본래면목이 아니겠습니까?”
“그대는 어째서 뒤바뀐 소리를 하는가?”
“어느 곳에서 학인이 뒤바뀌었습니까?”
“뒤바뀌지 않았다면 어째서 종을 상전으로 여기는가?”
“어떤 것이 본래의 면목입니까?”
“새의 길을 행하지 않는 것이다.”

어느 날 대사가 대중에게 말했다.
“부처님의 위로 향하는 사람[佛向上人]이 있음을 알아야 비로소 이야기를 나눌 자격이 있다.”
이때에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부처님의 위로 향하는 사람입니까?”
대사가 대답했다.
“일반적인 것이 아니다[非常].”[보복保福이 따로 말하기를 “부처는 아니다”라고 하였고, 법안法眼이 따로 말하기를 “임시방편으로 부처라 한다”라고 하였다.]

대사가 어떤 스님에게 물었다.
“어디를 갔다 오는가?”
스님이 대답했다.
“신을 삼다가 왔습니다.”
“스스로 이해했는가, 남에게 의지했는가?”
“남에게 의지했습니다.”
“그가 그대에게 가르쳐 주던가?”
“진실하면 어김이 없습니다.”

어떤 스님이 와서 이런 이야기를 했다.
“제가 수유茱萸에게 묻되 ‘어떤 것이 사문의 행[沙門行]입니까?’라고 하니, 수유가 대답하되 ‘행이라면 없지 않지만 사람이 깨달았다면 곧 어긋난다’고 하였습니다.”
대사가 이 말을 듣자 다시 그 스님을 수유에게 보내 이렇게 물으라고 하였다.
“무슨 행行입니까?”
수유가 대답했다.
“부처의 행이다, 부처의 행이야.”
그 스님이 돌아와서 대사에게 말하니, 대사가 말했다.
“유주幽州는 그래도 비슷하다고 할 만한데, 가장 괴로운 것은 신라新羅다.”[동선東禪 제齊가 이 말을 들어 말하기를 “이 말에 의혹이 있는가? 있으면 어디가 틀렸는가? 없다면 그가 말하기를 ‘가장 괴로운 것은 신라다’라고 했으니, 어찌할까 잘 살펴보라. 그가 말하기를 ‘행은 없지 않으나 사람이 깨닫는다면 어긋난다’고 하니, 대사가 다시 가서 ‘이것은 무슨 행인가?’라고 하게 하였을 때에는 부처의 행이라 했는데, 그 스님은 알면서 물었는가, 모르면서 물었는가 잘 판단해 보라”고 하였다.]
그 스님이 도리어 대사에게 물었다.
“어떤 것이 사문의 행입니까?”
대사가 대답했다.
“머리의 길이는 세 척이요, 목의 길이는 두 치니라.”[어떤 스님이 이 일을 들어 귀종歸宗 권權 화상에게 묻기를 “동산의 뜻이 무엇이겠습니까?”라고 하니, 권權이 대답하되 “겉껍질의 두께가 두 치니라”라고 하였다.]
대사는 유幽 상좌가 오는 것을 보고 얼른 일어나서 선상禪床 뒤에 숨었다. 이에 유 상좌가 와서 말했다.
“화상은 어찌하여 학인을 회피하십니까?”
“나는 그대가 나를 찾는 줄 알았다.”
“어떤 것이 현묘함 속의 현묘함입니까?”
“죽은 사람의 혓바닥과 같다.”
대사가 발우를 씻다가 새 두 마리가 개구리 하나를 두고 다투는 것을 보았는데, 어떤 스님이 문득 물었다.
“저것이 어찌하여 저 지경에 이르렀습니까?”
“오직 그대 때문이다.”
“어떤 것이 비로자나의 스승이며, 법신의 주인입니까?”
“벼 줄기와 조 이삭이니라.”
“3신身 가운데에서 어느 몸이 대중의 수에 떨어지지 않습니까?”
“나도 항상 그에 대하여 간절했다.”[어떤 스님이 조산曹山에게 묻기를 “선사께서 말씀하시기를 ‘나도 항상 그에 대하여 간절했다’고 하신 뜻이 무엇입니까?”라고 하니, 조산이 대답하기를 “내 머리가 필요하거든 베어 가라”라고 하였다. 또 설봉雪峰에게 물으니 설봉이 주장자를 그에 비기면서 말하기를 “나도 일찍이 동산洞山에게 갔다 왔노라”고 하였다.]

대사가 볏논[稻田]을 지키는데 낭朗 상좌上坐가 소를 끌고 왔다. 이에 대사가 말했다.
“그 소를 잘 지키시오. 벼를 먹을까 걱정이오.”
낭 상좌가 대꾸했다.
“좋은 소라면 마땅히 벼를 먹지 않습니다.”

대사가 어떤 스님에게 물었다.
“세간에서 어떤 것이 가장 괴로운가?”
그 스님이 대답했다.
“지옥의 고통이 가장 괴롭습니다.”
“그렇지 않다.”
“스님의 뜻은 어떠하십니까?”
“이 법의法衣 아래서 큰 일[大事]을 밝히지 못하는 것이 가장 괴로우니라.”

대사가 어떤 스님에게 물었다.
“이름이 무엇인가?”
“아무개입니다.”
“어느 것이 그대[闍梨]의 주인공인가?”
그 스님이 ‘보는 것’이라고 대답하려는데, 대사가 탄식하였다.
“괴롭다, 괴로워. 요새 사람은 거의가 이와 같구나. 당나귀 앞이나 말 뒤에서 종노릇이나 하는 놈[驢前馬後]을 잘못 알아 자기라고 여기니, 불법이 쇠퇴한다는 것이 이를 가리킨 말이구나. 손님 가운데서 주인을 가리기도 아직 분명하지 않은데, 어떻게 주인 가운데의 주인을 가려내겠는가?”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주인 가운데의 주인입니까?”
대사가 대답했다.
“그대가 대답해 보라.”
“제가 말하면 그것은 이미 손님 가운데의 주인이니, 어떤 것이 주인 가운데의 주인입니까?”
“그렇게 말하기는 쉬우나 상속相續하기는 매우 어려우니라.”[운거雲居가 따로 말하기를 “저는 말할 수 있되, 나그네 가운데의 주인은 아닙니다”라고 하였다.]

대사가 병이 나자 사미를 운거雲居에게 보내서 소식을 전하게 했다. 그리고는 덧붙였다.
“그가 갑자기 그대에게 ‘화상께서 무슨 말씀이 있던가?’라고 묻거든, 그저 ‘운암雲巖의 길이 끊어지려고 합니다’라고 하라. 그대는 이 말만을 하고 멀리 서 있어라. 그가 그대를 때릴까 걱정해서다.”
사미가 분부를 받고 가서 말을 마치기도 전에 운거에게 한 방망이를 맞았다. 이에 사미는 아무 말이 없었다.[동안同安 현顯이 대신 말하기를 “그렇다면 운암의 한 가지가 떨어지지 않겠다”라고 하였다. 나중에 운거雲居 석錫이 말하기를 “상좌여, 말해 보라. 운암의 길이 끊겼는가, 끊이지 않았는가?”라고 하였다. 숭수崇壽 조稠가 말하기를 “옛사람이 이 한 방망이를 때린 뜻이 무엇이겠는가?”라고 하였다.]

대사가 입적할 무렵에 대중에게 말했다.
“나는 부질없는 이름을 세상에 남겼다. 누가 나를 위해 없애 주겠는가?”
대중이 아무도 대답하지 못하자, 이때 사미가 나서서 말했다.
“화상의 법호를 말씀해 주십시오.”
대사가 말했다.
“나의 이름이 이미 없어졌구나.”[석상石霜이 말하기를 “아무도 그를 긍정할 사람이 없다”라고 하였다. 운거雲居가 말하기를 “부질없는 이름이 있으면 나의 선사가 아니다”라고 하였다. 조산曹山이 말하기를 “예부터 지금까지 아무도 그를 설명하지 못했다”라고 하였다. 소산疎山이 말하기를 “용이 물에서 뛰어오를 근기가 있건만 아무도 짐작하는 이가 없다”라고 하였다.]

어떤 스님이 물었다.
“화상께서 병이 드셨다는데 병들지 않는 자도 있습니까?”
대사가 대답했다.
“있다.”
“병들지 않는 자가 화상을 간호해 줍니까?”
“내가 그를 간호할 분수는 있다.”
“화상께서 어떻게 그를 간호하시겠습니까?”
“내가 간호할 때는 병이 보이지 않는다.”
대사가 또 말했다.
“이 껍데기를 여의고는 어디서 나와 서로 만날꼬?”
대중이 아무도 대답하지 못했다. 

당나라 함통咸通 10년 3월에 문인들을 시켜서 머리를 깎고, 옷을 갈아입고, 종을 치게 한 뒤에 엄숙히 앉아서 세상을 떠났다. 이때 대중이 슬피 울다가 해가 기울었는데, 대사가 홀연히 눈을 뜨고 일어나서 말했다.
“출가한 사람의 참된 수행이란, 마음이 사물에 붙지 않아야 하니, 살면 수고롭고 죽으면 쉬는데 어찌 슬픔이 있겠는가?”
그리고는 일을 담당하는 스님을 불러서 우치재愚癡齋 원문에는 “우치제愚癡齊”로 되어 있다. 우치재愚癡齋는 반야般若를 얻지 못하고 세정世情에 끌려서 사람의 죽음을 슬퍼하는 이를 위로하기 위하여 베푸는 재齋를 말한다. 
를 한바탕 지내게 하니, 대체로 그 연연하는 정을 꾸짖는 것이었다. 대중이 여전히 연모하기를 그치지 않자, 7일을 더 지내다가 공양 때가 되자 대사도 대중을 따라 재齋를 마치고 말했다.
“스님의 집에는 일이 없어야 하는데, 대체로 떠날 때가 되면 이처럼 수선을 떤다.”
그리고는 8일째 되는 날 목욕을 마치고 단정히 앉아서 입적하니, 수명은 63세이고 법랍은 42세이다. 시호는 오본悟本 대사요, 탑호는 혜각慧覺이었다.[대사가 예전에 늑담泐潭에 있을 때에 대장경을 번역해 내고, 󰡔대승경요大乘經要󰡕 1권을 편찬하니 대체로 승속을 격려하는 게송과 훈계로서, 세상에 널리 퍼졌다.]

탁주涿州 행산杏山 감홍鑒洪 선사
임제가 물었다.
“어떤 것이 맨 땅의 흰 소[露地白牛]입니까?”
대사가 대답했다.
“훔[吽].”
“행산의 입은 벙어리로군.”
“노형老兄은 어떠시오?”
“이 축생아.”
대사가 그만두었다.[석실石室과의 문답과 같으니 그의 전기에 나왔다.]
대사의 다섯 가지 읊음[詠]과 열 가지 빼어남[秀]이 모두 현묘한 가풍을 드날렸다. 입멸한 뒤에 다비를 해서 오색 사리를 거두었다.

담주潭州 신산神山 승밀僧密 선사
남전南泉의 회상에 있을 때에 팽이치기[打羅]를 하는데 남전이 물었다.
“무엇을 하는가?”
“팽이치기를 합니다.”
“그대는 손으로 치는가, 다리로 치는가?”
대사(승밀)가 말했다.
“화상께서 말씀해 주십시오.”
“똑똑히 기억해 두었다가 나중에 눈 밝은 작가作家를 만나거든 단지 그렇게만 말하라.”[운암雲巖이 대신 말하기를 “손발이 없는 이라야 비로소 치겠구나”라고 하였다.]

대사가 동산洞山과 함께 물을 건너는데 동산이 말했다.
“발을 잘못 딛지 마시오.”
“잘못 디디면 건너지를 못합니다.”
“잘못 되지 않는 일이 어떤 것이오?”
“장로와 함께 물을 건너시오.”

어느 날 동산과 함께 차밭[茶園]을 매는데, 동산이 호미를 던지면서 말했다.
“나는 오늘 고단해서 기력이 하나도 없소.”
“기력이 없다면 어떻게 그렇게 말할 수 있단 말이오?”
동산이 다시 말했다.
“그대가 기력이 있다고 여긴 것이 이것입니다.”

배裵 대부大夫가 어떤 스님에게 물었다.
“부처님께 공양하면 잡수십니까?”
그 스님이 대답했다.
“마치 대부가 집에서 신령에게 제사하는 것과 같습니다.”
대부가 운암에게 이야기하니, 운암이 대신 대답했다.
“몇 가지 음식이나 있는지 일시에 내려 주기나 하시오.”
그리고는 운암이 대사에게 물었다.
“일시에 내린 뒤에는 어찌하겠소?”
대사가 대답했다.
“발우를 찾는 것이 옳겠습니다.”
운암이 긍정하였다.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듣는 바 없는 자가 경을 듣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입니까?”
대사가 대답했다.
“알고자 하는가?”
“알고 싶습니다.”
“아직 경을 들을 줄 모르는구나.”

어떤 이가 물었다.
“첫 지위에서는 둘째 지위를 보지 못한다 하니 어떤 것입니까?”
“그대가 잘못 알지 않았는가? 그대는 어느 지위인가?”

어떤 행자가 물었다.
“생사生死의 일에 대해 스님께서 한 말씀 해주십시오.”
“그대는 어느 때 나고 죽고 오고 가는가?”
“저는 잘 모릅니다. 스님께서 말씀해 주십시오.”
“모르겠거든 한바탕 죽어 보라.”
유계幽谿 화상
어떤 스님이 물었다.
“큰 작용[大用]이 현전해서 궤칙軌則이 존재하지 않을 때에는 어떠합니까?”
대사(유계)가 일어나서 선상을 한 바퀴 돌고 앉았다. 스님이 무엇인가 말을 하려 하니, 대사가 한 번 걷어찼다. 이에 그 스님이 제자리로 돌아가서 섰으니, 대사가 말했다.
“그대는 그렇지만 나는 그렇지 않고, 그대는 그렇지 않지만 나는 그렇다.”
스님이 다시 무슨 말을 하려고 하자, 대사가 다시 한번 차면서 말했다.
“30년 뒤에는 나의 도가 크게 행하리라.”

앞의 화정華亭 선자船子 덕성德誠 선사의 법손

예주澧州 협산夾山 선회善會 선사
그는 광주廣州와 현정峴亭 사람으로서 성은 요廖씨이다. 아홉 살 때에 담주潭州의 용아산龍牙山에서 출가하여서 나이가 차자 계를 받았으며, 강릉江陵으로 가서 경론經論을 익힌 뒤에는 3학學에 두루 통달하였다. 그러다가 마침내 선회禪會를 찾아가서 힘껏 묻고 배웠다. 
처음에는 경구京口에 살았는데, 어느 날 저녁 도오道吾가 지팡이를 끌고 찾아왔다. 때마침 대사가 상당하였는데,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법신法身입니까?”
대사가 대답했다.
“법신은 모습이 없다.”
“어떤 것이 법안法眼입니까?”
“법안은 티가 없다.”
대사는 거듭 입을 열었다.
“눈앞에 법이 없다는 것은 ‘눈앞’이라는 것에 뜻을 둔 말일 뿐, 눈앞의 법에 눈과 귀가 미치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다.”
도오가 이 말을 듣고 깔깔 웃으니, 대사는 의심이 생겨 도오에게 물었다.
“왜 웃으시오?”
도오가 말했다.
“화상은 뛰어난 근기를 가지고 세상에 나왔건만, 아직 스승을 만나지 못했군요. 제중淛中의 화정현華亭縣으로 가서 선자船子 화상을 찾아뵈시오.”
“찾아뵈면 만나 주시나요?”
“그 스님은 위로는 기와조각 하나 덮지 않았고, 아래로는 송곳 하나 세울 땅이 없습니다.”
대사는 드디어 옷을 갈아입고 화정으로 가니, 때마침 선자 화상이 뱃전을 두드리면서 왔다. 이에 스승과 제자의 도가 계합하여 미묘한 차이도 남기지 않았다.[자세한 말은 선자장船子章에 보인다.]
그 뒤 대사는 세상을 피하고 세속의 욕심을 잊었으나, 이내 배우는 자들이 모여들어 여실廬室에 가득하게 늘어서서 아침저녁으로 뵙고 물었다. 당나라 함통咸通 11년 경인庚寅에 바다와 같은 대중이 협산夾山에 자리를 잡으니, 마침내 선원이 이루어졌다.
대사가 상당上堂하여 대중에게 보여 말했다.
“조사가 다녀가신 뒤로 많은 사람이 잘못 알고 이어받았다. 지금도 불조佛祖들의 어구로써 남의 스승이 되는 이가 있으니, 이렇게 되면 도리어 미친 사람이 될 뿐 지혜로운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들은 다만 그대들에게 지시하기를 ‘법이 없는 것이 본래 도이니, 도에는 한 법도 없어서 이룰 만한 부처도 없고, 얻을 만한 도도 없고, 버릴 만한 법도 없다’고 한다. 그래서 ‘눈앞에 법이 없다는 것은 눈앞에 뜻이 있는 것일 뿐, 그것이 눈앞의 법은 아니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만일 불조佛祖의 지말적인 학문을 향하는 이 같은 사람은 바른 안목이 없기 때문에 모두 의지한 바의 법에 속해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본래는 다만 생사가 되는 망망한 식識의 성품이 스스로 말미암을 분수가 없으니, 천리만리를 가서 선지식을 찾더라도 모름지기 바른 안목이 있어야 한다. 허망하고 그른 소견을 영원히 벗어나야만 눈앞의 생사가 실제로 있다고 해야 할지, 실제로 없다고 해야 할지를 단정할 수 있으리라. 만일 누군가가 단정할 수 있다면 그대의 벗어남을 허락하리니, 상근기의 사람은 말이 떨어지는 즉시 도를 밝히고, 중간과 하층의 근기는 물결을 따라 헤매기만 한다. 어찌하여 생사 속에 들어가서 단정하여 취하지 않고, 어디서 다시 부처와 조사가 그대의 생사를 대신해 줄까 의심하는가? 지혜 있는 사람이 그대를 비웃으리라.”
그리고는 게송을 읊었다.

생사의 법을 수고롭게 지닌 채
오직 부처의 변두리만을 향해서 구하니
눈앞에서 바른 이치[理]를 미혹하는 것이라서
불을 휘저으면서 거품을 찾는 것과 같구나.
勞持生死法    唯向佛邊求
目前迷正理    撥火覓浮漚

어떤 스님이 물었다.
“예부터 조사의 뜻과 교리의 뜻을 세웠는데, 화상은 이 과정을 어찌하여 없다고 하십니까?”
대사가 대답했다.
“3년 동안 밥을 먹지 않았는데, 눈앞에 주린 사람이 없다.”
“주린 사람이 없다면 저는 왜 깨닫지 못합니까?”
“오직 깨달음이 그대를 미혹할 뿐이다.”
그리고는 게송을 말했다.

분명하고도 분명해서 깨달을 법이 없나니
법을 깨달으면 도리어 미혹한 사람이다.
두 다리를 쭉 뻗고서 잘지니
거짓도 없고 또한 참도 없노라.
明明無悟法    悟法却迷人
長舒兩脚睡    無僞亦無眞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도입니까?”
“태양은 눈[目]에 가득하니, 만 리에 조각구름도 걸리지 않았다.”
“어찌하여야 알 수 있습니까?”
“맑고 맑은 물에서 헤엄치는 고기가 스스로 미혹한다.”
“어떤 것이 근본입니까?”
“물을 마시노라면 근원을 미혹하지 않는다.”
“옛사람이 머리카락을 진흙땅에 편 것은 무엇을 위해서였습니까?”
“까마귀 아홉 마리는 다 쏘았으나 하나의 가림이 아직도 남았으며, 화살 하나가 땅에 떨어진다 해도 천하가 어둡지는 않느니라.”
“조사의 뜻과 교리의 뜻이 같습니까, 다릅니까?”
“바람이 연꽃잎에 부니 연못 가득 푸름이요, 10리를 가는 행인들은 대체로 같은 길이다.”

대사에게 오랜 세월 시봉한 제자가 하나 있었는데, 주지가 된 후에 그를 행각을 보냈다. 그는 사방의 선원을 찾아다녔으나 아무런 관심 없이 지내다가 대사가 대중을 모으고 도덕이 다른 지방까지 미친다는 소문을 듣고는 돌아와서 뵙고 물었다.
“화상에게 이렇게 대단한 일이 있으면서도 왜 진작 저에게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대사가 대답했다.
“그대가 밥을 지으면 내가 불을 땠고, 그대가 밥을 돌리면 내가 발우를 펼쳤는데, 어디가 그대를 저버린 곳인가?”
제자가 이 말에 깨달았다.

어느 날 대사가 차를 마시고 나서 다시 손수 차를 달여다가 시자에게 주었다. 시자가 받으려 하자, 대사가 손을 움츠리면서 말했다.
“이것이 무엇인가?”
시자가 대답이 없었다.

어떤 대덕이 와서 물었다.
“교리의 뜻이라면 제가 의심치 않지만, 선문禪門의 일이라면 어떠합니까?”
대사가 대답했다.
“나는 그저 설은 것을 익게 바꾸는 것만을 알고 있다.”
“어떤 것이 실제의 이치입니까?”
“돌 위에는 뿌리 없는 나무이고, 산은 움직임 없는 구름을 머금었다.”
“어떤 것이 굴 밖에 나선 사자師子입니까?”
“허공에는 영상影象이 없는데, 발밑에서 구름이 생긴다.”

서천西川 수좌首座가 제방을 다니다가 백마白馬에게 이르렀을 때 󰡔화엄경󰡕의 말씀을 들어서 물었다.
“하나의 티끌이 법계의 끝없음을 머금을 때는 어떠합니까?”
백마가 대답했다.
“새의 두 날개와 같고, 수레의 두 바퀴와 같다.”
수좌가 말했다.
“선문에는 특별히 기특한 일이 있다고 여겼더니, 원래 교리의 부문을 벗어나지 않는구나.”
그리하여 본고장으로 돌아갔다가 이윽고 협산夾山의 성대한 법회 소식을 듣고는 제자를 보내서 앞의 말로 대사에게 묻게 하였다. 대사가 대답했다.
“모래에 조각을 해도 옥이라는 말은 없고, 풀을 맺어서 도인의 생각을 어그러뜨린다.”
제자가 돌아와서 수좌에게 말하니, 수좌가 찬탄했다.
“선문과 교문의 뜻이 다르지 않다고 여겼는데, 원래 기특한 일이 있구나.”
그리고는 협산에게 물었다.
“어떤 것이 협산의 경계입니까?”
“원숭이가 새끼를 안고 푸른 봉우리 속으로 돌아가고, 새는 꽃을 물고 푸른 바위 앞으로 날아 내린다.”
대사가 현묘한 법을 다시 펴기를 1기紀 1기紀는 20년의 기간을 말한다.
 동안 계속하다가 당나라 중화中和 원년 신축辛丑 11월 7일에 소임을 보는 스님을 불러서 말했다.
“내가 대중에게 여러 해 동안 불법을 이야기해 주었으니, 불법의 깊은 뜻에 대해서는 여러분 스스로 잘 알았을 것이다. 나는 이제 허깨비 형질[幻質:몸]의 때가 다해서 떠나게 되었다. 그대들은 내가 살아 있을 때처럼 잘 보호할 것이며, 세상 사람들처럼 덩달아 슬퍼하지 말라.”
말을 마치고 밤중이 되자 태연히 떠났다. 그 달 29일에 본산本山에 탑을 세우니, 수명은 77세이고 법랍은 57세였다. 시호는 전명傳明 대사이고, 탑호는 영제永濟였다.


행사行思 선사의 제5세 ①

앞의 서주舒州 투자산投子山 대동大同 선사의 법손

투자投子 감온感溫 선사[제2세 주지]
어떤 스님이 물었다.
“스님께서는 보배 법상에 오르시어 어떻게 사람을 지도해 주십니까?”
“달이 1천 개울에 비치는 것과 같으니라.”
“그렇다면 땅에 가득하여 이지러짐이 없겠습니다.”
“그렇게 말하지 말라.”

어떤 스님이 물었다.
“투자投子란 자식을 던진다는 뜻인데, 왜 아버지는 던지지 않고 아들만을 던집니까?”
“어찌 다른 사람 집의 일이겠는가?”
“아버지와 자식이 모두 공功에 속합니까?”
“속하지 않는다.”
“공功에 속하지 않는 것은 어째서 입니까?”
“아버지와 자식이 제각기 스스로 벗어나기 때문이다.”
“왜 그렇습니까?”
“그대가 나에게 가르쳐다오.”

대사가 산을 돌다가 매미가 껍질을 벗어 놓은 것을 보았다. 이에 시자가 물었다.
“껍질은 여기에 있는데 매미는 어디로 갔습니까?”
대사가 껍질을 들어 귓가에다 대고 서너 차례 흔든 뒤에 매미 소리를 하니, 그 스님이 깨달았다.

복주福州 우두牛頭 미微 선사
대사가 상당하여 대중에게 말했다.
“3세의 부처님들이 한 가지 기량도 부리지 못하고, 천하의 노화상의 입이 광주리 같거늘, 여러분은 어찌하여 그다지 용이하지 못한가? 오직 아는 이가 아니면 알지 못한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화상의 가풍입니까?”
대사가 대답했다.
“산에 있는 전답의 좁쌀 밥이요, 야채의 누런 시래기이니라.”
“홀연히 점잖은 손님이 오면 어찌하십니까?”
“먹으려면 마음대로 먹게 하고, 먹지 않으면 동서로 마음대로 가라 한다.”
“검은 용의 턱 밑에 있는 여의주는 묻지 않겠습니다만, 어떻게 집안의 보배를 알아챕니까?”
“바쁜 가운데 어찌 한가한 사람이 되겠는가?”

서천西川 청성靑城 향산香山 징조澄照 대사
어떤 스님이 물었다.
“부처님들은 어려움이 있으면 불꽃 속에 들어가서 몸을 숨기지만, 스님에게 어려움이 있으면 어느 곳에다 몸을 숨깁니까?”
“수정水精 항아리 속에 파사波斯 인도인의 초상肖像 조각彫刻을 말한다.
를 새긴다.”
“어떤 것이 초승달입니까?”
“대부분의 사람이 보지 못하는 것이다.”


협부陜府 천복天福 화상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불법의 대의입니까?”
“황하黃河에 물방울이 없고, 화악華嶽이 몽땅 평평해졌다.”

호주濠州 사명思明 화상
투자投子의 회상에 있을 때에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상좌 사미沙彌의 동진행童眞行입니까?”
대사가 대답했다. 
“예.”
“어떤 것이 청정법신淸淨法身입니까?”
“똥 속에 구더기가 들락날락하느니라.”

봉상부鳳翔府 초복招福 화상
스님이 물었다.
“동아東牙도 오아烏牙도 모두 대열에 나서는데, 화상은 어째서 대열에 나서지 않습니까?”
“주지하는 법이 같지 않거늘, 그대는 무엇을 괴이하게 생각하는가?”

흥원부興元府 중량산中梁山 준고遵古 선사
어떤 이가 물었다.
“공겁空劫 때에는 능히 법을 묻는 이가 없지만, 지금은 물을 법이 어디에 있습니까?”
“대비보살이 항아리 속에 앉았다.”
“어떤 것이 조사께서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도사道士가 새는 동이를 메고 간다.”

양주襄州 곡은谷隱 화상
어느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백운白雲의 기틀을 건드리지 않은 것입니까?”
대사가 말하였다.
“학의 띠[鶴帶]와 갈까마귀의 얼굴[鵶顏]에 덧없는 인생을 버리지 않음이다.”

안주安州 구종산九嵕山 화상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부처입니까?”
“바로 그대이다.”
“멀리서 9종嵕의 소문을 들었는데, 와서 보니 1종嵕만이 보이는군요.”
“그대는 1종만을 보고 9종은 보지 못하는구나.”
“어떤 것이 9종입니까?”
“물이 급해서 물거품이 거칠다.”

반산盤山 화상[유주幽州의 제2세 주지이다.]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찌하여야 삼계를 벗어나겠습니까?”
대사가 대답했다.
“그 속에 있은 지 얼마나 되는가?”
“어떻게 벗어나겠습니까?”
“청산靑山은 백운白雲이 떠가는 것을 막지 않는다.”

어떤 이가 물었다.
“경전에 말하기를 ‘허깨비 사람[化人]의 번뇌와 같고, 석녀石女의 아기 같다’고 하는데, 그것이 무슨 이치입니까?”
“그대가 마치 석녀의 아기 같구나.”

안주安州 구종산九嵕山 경혜敬慧 선사[제2세 주지]
어떤 스님이 물었다.
“깊은 구덩이에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통과해야 합니까?”
대사가 대답했다.
“통과할 것을 구하지 말라.”
“어떻게 지나가야 합니까?”
“통과를 구하는 것도 잘못이다.”

동경東京 관음원觀音院 암준巖俊 선사
그는 형대邢臺 사람으로서 성은 염廉씨이다. 처음에는 조사들의 법석을 찾아서 형산[衡]․여산[廬]․민岷․촉蜀 지방을 두루 다녔는데, 봉림鳳林의 깊은 골짜기를 지나다가 홀연히 진기한 보배를 보았다. 동료들이 서로 돌아보면서 가지려고 하자, 대사가 말했다.
“옛사람은 호미 끝에 황금이 닿아도 기와처럼 여겼다. 내가 주인 노릇[菅茆覆頂]을 하게 되거든, 이것으로 사방의 스님들에게 공양하자.”
이렇게 말하고는 버리고 떠나가서 투자 화상을 뵈었다. 투자가 물었다.
“그대는 지난 밤 어디에서 잤는가?”
“움직이지 않는 도량에서 잤습니다.”
“움직이지 않는다면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가?”
“여기까지 온 것이 어찌 움직임이겠습니까?”
“원래 집착하지 않는 곳에서 자야 한다.”
그러면서도 투자는 묵묵히 대사를 인정했다. 
대사가 이어 동경東京으로 가니, 때마침 양梁의 소보(少保:태자의 스승)인 이자李鄑는 곧 하양河陽 절도사節度使인 이한李罕의 형으로서 불경을 독실하게 믿었으며, 더구나 대사를 존중히 여겨서 자기 집을 내놓아 절을 만들고 관음명성觀音明聖이라 한 뒤에 대사에게 와서 살기를 청했다.
후주後周의 고조高祖와 세종世宗 두 임금이 동궁에 있을 때에 매번 방장에 와서 무릎을 꿇고 절을 했으며, 왕위에 오른 뒤에는 특별히 자의紫衣를 하사하면서 정계淨戒 대사라 호칭하니, 무리가 항상 백 사람에 이르렀다. 
건덕乾德 병인(丙寅, 606) 3월에 병이 나서 문인들에게 훈계를 내리고, 편안한 얼굴인 채로 합장하고 입멸하니, 수명은 85세이고 법랍은 65세였다. 그해 4월 8일에 동교東郊의 풍대촌豊臺村에 탑을 세웠다.

앞의 악주鄂州 청평산淸平山 영준令遵 선사의 법손

기주蘄州 삼각산三角山 영규令珪 선사
처음에 청평淸平 화상을 뵈었는데, 청평이 물었다.
“무엇 하러 왔는가?”
“예배하러 왔습니다.”
“누구에게 예배를 하려는가?”
“특히 화상께 예배하렵니다.”
청평이 꾸짖었다. 
“이 둔한 중아.”
대사가 절을 하니, 청평이 대사의 목을 손날로 한번 내려쳤다. 대사가 이로부터 제자의 예로 섬겨서 종지를 은밀히 이어받았다.
나중에 대사가 주지가 된 뒤에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부처입니까?”
대사가 대답했다.
“내일 오라. 아직까지 말하지 못하던 것을 그대에게 말해 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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