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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덕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 전등록 번역, 불경, 불교경전, 선문답, 화두

일이삼선생 2023. 6. 29.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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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 제1권



  7불佛과 천축天竺의 조사祖師

7불佛

비바시불毘婆尸佛
시기불尸棄佛
비사부불毘舍浮佛
구류손불拘留孫佛
구나함모니불拘那含牟尼佛
가섭불迦葉佛
석가모니불釋迦牟尼佛

천축의 15조사祖師[이 가운데 한 조사는 방계로서 기록이 없음]

제1조 마하가섭摩訶迦葉 
제2조 아난阿難[말전저가末田底迦가 방계임]
제3조 상나화수商那和修
제4조 우파국다優波毱多
제5조 제다가提多迦
제6조 미차가彌遮迦
제7조 바수밀婆須蜜
제8조 불타난제佛陀難提
제9조 복타밀다伏馱蜜多
제10조 협脇 존자尊者
제11조 부나야사富那夜奢
제12조 마명馬鳴 대사大士
제13조 가비마라迦毘摩羅
제14조 용수龍樹 대사大士


7불佛

옛 부처님께서 세상에 감응하심은 면면히 이어져서 무궁한지라, 두루 다 헤아릴 수 없는 노릇이다. 이 때문에 비근한 현겁賢劫만을 말해도 천千 분의 여래如來께서 계시지만, 여기서는 다만 석가모니불까지의 7불佛만을 기록한다.
󰡔장아함경長阿含經󰡕에서는 “7불께서 정진의 힘으로 광명을 놓아서 어둠을 멸하시고는, 저마다 나무 밑에 앉으신 가운데 정각正覺을 이루셨다”고 말하였다. 또 만수실리曼殊室利가 7불의 조사가 되고, 금화金華 선혜善慧 대사가 송산松山 정상에 올라서 도를 행할 때 7불께서 앞을 인도하시고 유마維摩가 뒤를 따름에 감응하였으나, 지금의 찬술은 7불 이하에서부터 끊는다.
비바시불毘婆尸佛[과거 장엄겁莊嚴劫의 제998尊]의          게송

몸은 모습 없는 가운데서 태어나니
마치 허깨비로 온갖 형상을 내는 것과 같도다.
허깨비 사람의 심식心識은 본래 없는 것이니 
죄와 복도 모두 공하여 머물 곳이 없도다.
身從無相中受生  猶如幻出諸形象
幻人心識本來無  罪福皆空無所住

󰡔장아함경󰡕에서 말하였다.
“인간의 수명이 8만 세일 때에 이 부처님께서 세상에 출현하셨는데, 종족[種]은 찰제리[刹利]요, 성姓은 구리야拘利若며, 아버지는 반두槃頭요, 어머니는 반두바제槃頭婆提이다. 반두바제성槃頭婆提城에 계실 때에 파파라波波羅나무 밑에서 세 차례 설법하셔서 34만 8천 사람을 제도하셨다. 제자가 두 사람이니, 하나는 건다騫茶요, 또 하나는 제사提舍이다. 시자侍者는 무우無憂이고, 아들은 방응方膺이다.” 


시기불尸棄佛[과거 장엄겁의 제999존尊]의 게송

온갖 착한 법을 일으켜도 본래가 허깨비요
온갖 악한 업을 짓는 것도 또한 허깨비이로다.
몸은 물거품과 같고 마음은 바람과 같은 것이니
허깨비가 내는 것이라서 뿌리도 없고 실다운 성품도 없네.
起諸善法本是幻    造諸惡業亦是幻
身如聚沫心如風    幻出無根無實性

󰡔장아함경󰡕에서 말하였다. 
“인간의 수명이 7만 세일 때에 이 부처님께서 세상에 나셨는데, 종족은 찰제리요, 성은 구리야며, 아버지는 명상明相이요, 어머니는 광요光耀이다. 광상성光相城에 계실 때에 분타리수分陀利樹 밑에 앉아서 세 차례의 설법으로 25만 사람을 제도하셨다. 제자가 두 사람이니, 하나는 아비부阿毗浮이고, 또 하나는 바바婆婆이다. 시자는 인행忍行이요, 아들은 무량無量이다.” 


비사부불毘舍浮佛[장엄겁의 1천 번째 존尊]의 게송

몸은 4대大를 빌려 이루어지고
마음은 본래 생겨남이 없으나 경계로 인해 있을 뿐이니
앞의 경계가 없다면 마음도 없을 것이요
죄와 복도 허깨비처럼 일어났다 또한 멸할 뿐이로다.
假借四大以爲身    心本無生因境有
前境若無心亦無    罪福如幻起亦滅

󰡔장아함경󰡕에서 말하였다. 
“인간의 수명이 6만 세일 때에 이 부처님께서 세상에 나셨는데, 종족은 찰제리요, 성은 구리야며, 아버지는 선등善燈이요, 어머니는 칭계稱戒이다. 무유성無喩城에 계실 때에 바라수婆羅樹 밑에 앉아서 두 차례 설법으로 13만 사람을 제도하셨다. 제자가 두 사람이니, 하나는 부유扶遊이고, 또 하나는 울다마欝多摩이다. 시자는 적멸寂滅이요, 아들은 묘각妙覺이다.”


구류손불拘留孫佛[현재 현겁賢劫의 첫 번째 존尊]의         게송

몸에 실다움이 없음을 보는 것이 바로 부처의 몸이요,
마음이 환幻 같음을 요달하는 것이 바로 부처의 환幻이다.
몸과 마음의 본성本性이 공함을 요달하게 된다면
이 사람은 부처님과 더불어 무엇이 다르겠는가.
見身無實是佛身    了心如幻是佛幻
了得身心本性空    斯人與佛何殊別

󰡔장아함경󰡕에서 말하였다.
“인간의 수명이 4만 세일 때에 이 부처님께서 세상에 나셨는데, 종족은 바라문婆羅門이요, 성은 가섭迦葉이며, 아버지는 예득禮得이요, 어머니는 선지善枝이다. 안화성安和城에 계실 때에 시리사수尸利沙樹 밑에 앉아서 한 차례의 설법으로 4만 사람을 제도하셨다. 제자가 두 사람이니, 하나는 살니薩尼요, 다른 하나는 비루毘樓이다. 시자는 선각善覺이요, 아들은 상승上勝이다.”


구나함모니불拘那含牟尼佛[현겁賢劫의 두 번째 존尊]          의 게송

부처는 몸을 보이지 않는다는 그 앎이 부처이니
만약 그 앎이 실답다면 따로 부처도 없다.
지혜로운 이는 죄의 성품이 공함을 능히 알아서
탁 트인 마음으로 생사를 두려워하지 않네.
佛不見身知是佛    若實有知別無佛
智者能知罪性空    坦然不怖於生死

󰡔장아함경󰡕에서 말하였다. 
“인간의 수명이 3만 세일 때에 이 부처님께서 세상에 나셨는데, 종족은 바라문이요, 성은 가섭이며, 아버지는 대덕大德이요, 어머니는 선승善勝이다. 청정성淸淨城에 계실 때에 오잠바라문수烏暫婆羅門樹 밑에 앉아서 한 차례의 설법으로 3만 사람을 제도하셨다. 제자가 두 사람이니, 하나는 서반나舒槃那요, 다른 하나는 울다루鬱多樓이다. 시자는 안화安和요, 아들은 도사道師이다.”


가섭불迦葉佛[현겁賢劫의 세 번째 존尊]의 게송

일체의 중생은 성품이 청정해서
본래부터 남도 없고 멸함도 없네.
이러한 몸과 마음 바로 요술에서 났으니
요술 속에는 죄와 복이 없도다. 
一切衆生性淸淨    從本無生無可滅
卽此身心是幻生    幻化之中無罪福

󰡔장아함경󰡕에서 말하였다. 
“인간의 수명이 2만 세일 때에 이 부처님께서 세상에 나셨는데, 종족은 바라문이요, 성은 가섭이며, 아버지는 범덕梵德이요, 어머니는 재주財主이다. 바라내성波羅柰城에 계실 때에 니구율수尼拘律樹 밑에 앉아서 한 차례의 설법으로 2만 사람을 제도하셨다. 제자가 두 사람이니, 하나는 제사提舍요, 다른 하나는 바라바婆羅婆이다. 시자는 선우善友요, 아들은 집군集軍이다.”


석가모니불釋迦牟尼佛[현겁賢劫의 네 번째 존尊]

종족[姓]은 찰제리刹帝利요, 아버지는 정반천淨飯天이요, 어머니는 대청정묘大淸淨妙이다. 보처補處의 지위에 올라 도솔천兜率天에 태어나셨을 때에는 승선勝善 천인天人, 혹은 호명護明 대사大士라고 불렸는데, 여러 하늘 무리들을 제도하기 위하여 보처補處의 수행을 연설하셨고, 또 시방세계에 몸을 나타내어서 설법하셨다.
󰡔보요경普耀經󰡕에서는 이렇게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처음 찰제리왕의 집에 탄생하실 때에 큰 지혜의 광명을 놓아서 시방세계를 비추시자, 땅에서 황금 연꽃이 솟아나와 자연히 두 발을 받들었다. 동서남북 사방으로 각각 일곱 걸음을 걸으시고, 두 손을 나누어 각각 하늘과 땅을 가리키면서 사자후師子吼를 하시되, ‘위아래와 네 간방에서 능히 나보다 존귀한 것은 없다[上下及四維無能尊我者]’고 하셨다.” 
이때는 바로 주周 소왕昭王 24년 갑인년甲寅年 4월 8일이다. 42년 2월 8일에 이르러 나이 19세가 되자, 집을 나가고 싶어 하면서 스스로 이렇게 생각하셨다. 
‘무엇을 만나게 될까?’
그리고는 곧 네 문[四門]을 돌아다니면서 네 가지 일을 보시자, 마음속에 기쁨과 슬픔이 생겨서 이렇게 생각하셨다. 
“이 늙음과 병듦과 죽음[老病死]은 반드시 여의어야 할 것이다.”
그날 밤, 자시子時에 정거淨居라고 불리는 천인天人이 창 밖에서 손을 모으고 태자께 아뢰었다. 
“출가하실 때가 되었으니 떠나십시오.”
태자는 이 말을 듣고 마음으로 기뻐하면서 성을 넘어 떠난 뒤에 단특산檀特山에서 도를 닦으셨다. 처음에는 아람가람阿藍迦藍에게 가서 3년 동안 불용처정不用處定을 배웠으나, 옳지 못한 것임을 알고 버리셨다. 다음으로는 울두람불鬱頭藍弗에게로 가서 3년 동안 비비상정非非想定을 배웠으나, 역시 옳지 못한 줄 알고 버리셨다. 다시 상두산象頭山으로 가서 외도들과 똑같이 날마다 삼씨와 보리[麻麥]를 잡수시면서 6년을 지내셨다. 그래서 경에서 말하기를, “마음과 뜻도 없고 받아 행함도 없이 외도들을 모두 항복시켰다”고 하였으니, 먼저 삿된 법을 내리 시험하면서 온갖 방편을 보이시고, 온갖 이견異見을 일으켜서 모두 보리에 이르게 하셨다.
그러므로『보집경普集經󰡕에서 말하기를, “보살이 2월 8일, 샛별이 뜰 때 부처를 이루시니, 명호를 천인사天人師라 한다”고 하였으니, 그때의 나이는 30세로서 바로 주周나라의 목왕穆王 3년 계미년癸未年이었다. 
그리고 나서 녹야원鹿野苑에서 교진여憍陳如 등 다섯 사람에게 4제諦의 법 수레를 굴리면서 도과道果를 논하셨고, 이어서 49년 동안 세상에 계시면서 설법하셨다. 마지막에는 제자인 마하가섭摩訶迦葉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청정한 법안法眼으로 열반의 묘한 마음과 실다운 모습은 모습 없음[實相無相]이라는 미묘한 바른 법을 그대에게 부촉하니, 그대는 마땅히 잘 간직하라.”
아울러 아난에게도 “전법 교화를 잘 도와서 끊이지 않게 하라”고 분부하시고는 게송을 말씀하셨다. 

법은 본래 법이라 할 법이 없으니
법이 없다는 법도 또한 법일 뿐이네.
이제 법 없음을 부촉할 때에도
법을 법이라 하나 어찌 법인 적이 있으랴.
法本法無法    無法法亦法
今付無法時    法法何曾法

그때 세존께서 이 게송을 말씀하신 뒤에 다시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이제 금란가사[金縷僧伽梨]를 그대에게 전해서 보처補處에게 전수轉授하나니, 자씨불慈氏佛이 세상에 나시기까지 파손시키지 말라.”
가섭이 게송을 듣고 머리를 숙여 발에 예배하면서 말했다. 
“훌륭하고, 훌륭하십니다. 제가 마땅히 분부대로 하겠사오니, 부처님을 공경하고 순종하기 때문이옵니다.”
그때 세존께서 구시나성拘尸那城에 가셔서 대중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지금 등이 아프니, 열반에 들고자 하노라.”
그리고는 곧 희련하(熙連河:尼連河) 곁에 있는 사라쌍수娑羅雙樹 밑으로 가셔서 오른 겨드랑이를 땅에 대고 발을 포갠 채 담담히 열반에 드셨다. 
그리고 다시 관棺에서 일어나셔서 어머님을 위하여 설법해 주시고, 특별히 두 발을 보여서 바기(婆耆:마지막 제자)를 제도하시면서 아울러 무상게無常偈를 말씀하셨다.

  모든 행行은 무상하니
이는 바로 생멸의 법이다.
생멸이 멸하고 나면
적멸함이 곧 즐거움이 되리라.
諸行無常    是生滅法
生滅滅已    寂滅爲樂

그때 제자들이 향과 장작을 갖고서 앞을 다투어 다비茶毘를 거행하였으나, 불이 다 탄 뒤에도 금관金棺은 여전하였다. 그러자 대중들은 부처님 앞에서 게송으로 찬탄하였다.

범속한 모든 맹렬한 불길이
어찌 불에 타시게 할 수 있겠습니까?
청컨대 세존께서는 삼매의 불[三昧火]로써
황금 빛깔의 몸을 사르옵소서.
凡俗諸猛熾    何能致火爇
請尊三昧火    闍維金色身

그때 금관이 놓여 있던 자리에서 일곱 다라수多羅樹 높이만큼 솟아올라서 허공을 오락가락하다가 삼매의 불로 변하더니, 잠깐 사이에 재로 변하면서 8섬 4말의 사리舍利를 얻었다. 이때가 곧 주나라 목왕穆王 52년 임신년壬申年 2월 15일이었다.
세존께서 입멸하신 지 1,017년 만에 교법이 중국으로 전해지니, 후한後漢의 영평永平 10년 무진년戊辰年이었다. 


천축天竺의 15조사祖師

제1조 마하가섭摩訶迦葉 

그는 마갈타국摩竭陀國 사람으로 종성은 바라문이며, 아버지는 음택飮澤이요, 어머니는 향지香志이다. 그는 옛적에 단금사(鍛金師:금을 다루는 기술자)였는데, 금의 성질을 잘 알아서 그것을 능숙하게 다루는 재주가 있었다. 󰡔부법전付法傳󰡕에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아주 오랜 옛날, 비바시불毘婆尸佛께서 열반에 드신 뒤에 네 무리[四衆] 비구, 비구니, 청신사, 청신녀의 사부대중을 말한다.
가 탑을 세웠는데, 탑 안에 모신 불상의 얼굴에 금색金色이 조금 훼손되어 있었다. 이때에 어떤 가난한 여자가 금 구슬을 가지고 단금사의 처소에 가서 불상의 얼굴을 장식해 달라고 청하였다. 그리고는 함께 서원을 세우기를, ‘우리 두 사람은 육체관계[姻]가 없는 부부가 되기를 바랍니다’고 하였다. 이 인연으로 인해서 단금사는 91겁 동안 몸이 모두 금빛이었고, 뒤에 범천梵天에 태어났다가 범천의 수명이 다한 뒤에는, 중천축(中天竺:중인도)의 마갈타국摩竭陀國에 있는 바라문婆羅門의 집에 태어났다.” 
그의 이름은 가섭파迦葉波이니, 이것을 한문으로 번역하면 음광승존飮光勝尊인데, 금빛[金色]으로 명호를 삼은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출가의 뜻을 내서 유정有情을 제도하길 바랐는데, 부처님께서 “어서 오라, 비구여”라고 하시자, 머리카락과 수염이 저절로 깎이고 가사가 몸에 입혀졌다. 그는 항상 대중 가운데서 제일이라는 칭찬을 받았다. 
부처님께서 다시 말씀하셨다. 
“내가 청정한 법안을 그대에게 부촉하나니, 그대는 잘 퍼뜨려서 끊이지 않게 하라.”
또『열반경󰡕에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그때 세존께서 열반에 드시려고 할 때에 가섭이 모임에 있지 않았다. 부처님께서 큰 제자들에게 말씀하시되, ‘가섭이 오면 정법안장正法眼藏을 드날리게 할 수 있다’고 하셨다.”
그때 가섭이 기사굴산耆闍堀山의 빈발라굴賓鉢羅窟에 있다가 수승한 광명을 보자, 즉시 삼매에 들어가 청정한 천안天眼으로 세존을 살펴보니, 니련선하 곁에서 열반[般涅槃]에 들고 계셨다. 그는 곧 그의 제자들에게 말하였다. 
“여래의 열반이 어찌 이다지도 갑작스러운가?”
그리고는 곧 사라쌍수 사이로 가서 슬피 우니, 부처님께서 금관金棺 안에서 두 발을 내보이셨다.
그때에 가섭이 비구들에게 말하였다.
“부처님께서는 이미 다비를 마치셨다. 금강사리金剛舍利는 우리들의 일이 아니다. 우리들은 마땅히 법안法眼을 결집結集해서 끊이지 않게 하여야 한다.”
그리고는 게송을 말하였다.

여래의 제자들이여,
또한 열반에 들려고 하지 말고
신통을 얻은 이는
결집하는 자리로 오시오.
如來弟子    且莫涅槃
得神通者    當赴結集

이에 신통을 증득한 이는 모두가 왕사성 기사굴산耆闍堀山의 빈발라굴賓鉢羅窟에 모였다. 당시 아난은 번뇌[漏]가 아직 다하지 못했으므로 모임에 들지 못하다가 나중에 아라한과阿羅漢果를 증득하고 나서야 들어가게 되었다.
이때 가섭이 대중에게 말했다.
“이 아난 비구는 많이 배우고 총명하게 지녀서 큰 지혜가 있습니다. 항상 여래를 수행하면서 청정한 범행梵行을 닦았고, 부처님께 들은 법문을 그릇에 물을 옮기듯이 하나도 빠뜨리지 않았으므로 부처님께서 항상 총명함이 제일이라 하셨으니, 이제 그를 청해서 수다라장修多羅藏을 결집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대중이 모두 잠자코 있었다.
그러자 가섭이 아난에게 말했다.
“그대는 지금 법안法眼을 선포하시오.”
아난이 그 말을 듣고 승낙한 뒤에 대중의 마음을 관찰하면서 게송으로 선포했다.

비구 등 모든 권속들은
부처를 떠나서는 장엄하지 못하니
마치 허공 속에 있는 뭇 별들이
달을 여읜 것과 같다네.
比丘諸眷屬    離佛不莊嚴
猶如虛空中    衆星之無月

이 게송을 말한 뒤에 뭇 스님의 발에 예배하고는, 법좌法座에 올라서 말하였다.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아무 곳에 계시면서 아무 경經을 말씀하셨고, 내지 인간과 하늘들이 예를 드리고는 받들어 행하였다.”
그때 가섭이 여러 비구들에게 물었다.
“아난의 말이 틀리지 않는가?”
모두가 대답했다.
“세존의 말씀과 다르지 않습니다.”
가섭이 또 아난에게 말했다.
“내 나이가 많아서 오래 머무르지 못하겠으니, 이제 바른 법을 그대에게 부촉하노라. 그대는 잘 지켜 보호하도록 하라. 그리고 나의 게송을 들어라.”

법을 법답게 하는 본래의 법은
법도 없고 법 아닌 것도 없음이니
어찌 하나의 법 가운데
법도 있고 법 아닌 것도 있으랴. 
法法本來法    無法無非法
何於一法中    有法有不法

이 게송을 마친 뒤에 곧 금란가사를 가지고 계족산鷄足山에 들어가서 자씨불께서 하생下生하시기를 기다리니, 이때는 곧 주周나라의 효왕孝王 5년 병진년丙辰年이었다.[5년은 마땅히 4년으로 써야 한다. 이때로부터 제13 조사 가비마라迦毘摩羅에 이르기까지 연수年數에 착오가 있으므로, 여기에서는 모두『사기史記󰡕 연표에 의거해 육갑六甲을 고쳐 바로잡았다.]


제2조 아난阿難 

그는 왕사성王舍城 사람이니, 종성은 찰제리이고, 아버지는 곡반왕斛飯王으로서 석가모니부처님[實佛]의 종제從弟이다. 범어의 아난타阿難陀는 이곳 말로는 경희慶喜 또는 환희歡喜라 번역하니, 여래께서 성도成道하신 날 밤에 태어났으므로 그런 이름을 지은 것이다. 배운 것이 많고 박학다식해서 지혜가 막힘이 없으므로 세존께서도 총지總持에는 제일이라고 칭찬하셨다. 더구나 전생에 큰 공덕이 있어서 법장法藏을 받아 지니되 마치 물을 다른 그릇에 전하듯이 하므로 부처님께서 시자侍者로 임명하셨다.
후에 아사세왕阿闍世王이 아난에게 말했다.
“존자여, 여래와 가섭과 같은 존귀하고 수승하신 두 스승이 모두 열반에 드셨지만, 저는 일이 많아서 모두 뵙지를 못했습니다. 그러하니 존자께서 반열반에 드실 때에는 알려 주시기 바랍니다.”
아난은 이를 허락하였다. 그리고 나중에 생각하기를 ‘내 몸은 위태하고 연약한 것이 마치 물거품과 같다. 게다가 늙고 쇠약했으니, 어찌 오래도록 견딜 수 있겠는가?’라고 하였고, 또 생각하기를 ‘아사세왕과 나는 약속을 했다’고 하고는, 곧 왕궁으로 가서 고했다.
“내가 열반에 들고자 해서 하직하러 왔다.”
문지기가 말하였다.
“왕께서 주무시니, 아뢸 수 없습니다.”
아난이 말했다. 
“왕께서 깨어나시거든 내 말을 전하라.”
그때 아사세왕이 꿈을 꾸면서 일곱 가지 보배[七寶]로 장식된 한 보배 일산을 보았는데, 천만억 대중이 둘러싸서 우러러보고 있을 때 갑자기 비바람이 불어서 그 자루가 부러지고 진기한 보배와 영락瓔珞이 모두 땅에 흩어지는 것을 보고는 몹시 놀라서 꿈에서 깨어났다. 문지기가 와서 앞서 있었던 일을 자세히 아뢰자, 왕이 그 말을 듣고 소리 높여 통곡을 하니, 그 슬픔에 천지가 감동하였다. 즉시 비사리성毘舍離城으로 가니, 아난이 항하의 중류中流에서 가부좌跏趺坐하고 앉아 있는 모습이 보였다. 왕은 절을 하고서 게송으로 말했다.

삼계의 어른에게 머리 조아려 예배하오니
저를 버리고서 여기까지 이르셨네.
잠깐이라도 자비의 원력願力을 드리워
반열반에 들지 말아 주소서.
稽首三界尊    棄我而至此
暫憑悲願力    且莫般涅槃

그때 비사리의 왕도 강가에 있다가 게송을 말했다.

존자여, 어찌하여 이다지 빨리 
적멸의 도량으로 돌아가시려 하나이까.
원컨대 잠시만이라도 더 머무시면서
저의 공양을 받아 주소서.
尊者一何速    而歸寂滅場
願住須臾間    而受於供養

그때 아난이 두 왕이 모두 와서 권청勸請하는 것을 보고 게송을 말했다.

두 왕이여, 부디 잘 계시어서
애타게 슬퍼하거나 그리워하지 마시오.
열반은 나[我]의 청정함[淨]이니[구본舊本에는 정靜으로 되어 있으나, 여기에서는 󰡔보림전寶林傳󰡕, 󰡔정종기正宗記󰡕에 의거해서 이 한 자를 바꾸어 기재하였다.]
바로 온갖 유有가 없기 때문이라오.
二王善嚴住    勿爲苦悲戀
涅槃當我淨    而無諸有故

아난이 다시 생각하였다. 
‘내가 한 나라만을 향해서 반열반에 든다면, 여러 나라에서 싸움이 일어날 것이니 옳지 못하다. 마땅히 평등함으로 모든 유정을 제도해야 마땅하리라.’
그리고는 마침내 항하의 중류에서 그대로 열반에 들려고 하는데, 그때 산하대지山河大地가 여섯 가지로 진동하였다. 설산雪山에 있던 5백 명의 선인仙人이 이런 상서로운 감응을 보자, 허공을 날아와서 아난의 발에 예배하고 꿇어앉아서 아뢰었다.
“저는 장로長老에게서 불법을 증득하려 하오니, 바라옵건대 큰 자비를 드리우셔서 저희들을 제도해 주소서.”
아난이 잠자코 그 청을 받아들여서 즉시 항하를 온통 황금의 땅으로 변화시킨 뒤에, 그 선인들에게 모든 대법大法을 설해 주었다. 아난은 다시 생각하였다. 
‘먼저 제도를 받아 해탈한 제자들이 응당 와서 모이리라.’
그러자 잠깐 사이에 5백 아라한阿羅漢이 허공에서 내려와서 여러 선인들에게 출가하는 구족계를 주었다.
그 선인들 가운데 두 아라한이 있었으니, 한 명은 상나화수商那和修요, 또 한 명은 말전지가末田底迦였다. 아난은 그들이 법기法器 법을 담는 그릇이란 뜻이니, 법을 이어받을 자격이 있는 이를 말한다.
임을 알고서 말했다.
“옛적에 여래께서 위대한 법안法眼을 대가섭大迦葉에게 부촉하셨고, 가섭께서는 선정에 들면서 나에게 부촉하셨다. 나도 이제 열반에 들려고 하여 그대들에게 부촉하노니, 그대들은 나의 가르침을 받으려면 마땅히 나의 게송을 들어라.”

본래 ‘법이 있다’고 부촉하지만
부촉해 마치면 ‘법이 없다’고 말하네.
모름지기 저마다 스스로 깨달아야 하나니
깨달아 마치면 ‘법 없음’도 없다네.
本來付有法    付了言無法
各各須自悟    悟了無無法

아난은 법안장法眼藏을 부촉하고 나자, 몸을 허공으로 솟구쳐 열여덟 가지 변화를 지은 뒤에, 풍분신삼매風奮迅三昧에 들어가 몸을 네 몫으로 나누었다. 한 몫은 도리천忉利天에 봉안하고, 또 한 몫은 사갈라娑竭羅 용궁에 봉안하고, 또 한 몫은 비사리毘舍離[구본舊本에는 비사리용왕毘舍離龍王으로 되어 있으나, 여기서는 󰡔보림전󰡕, 󰡔정종기󰡕에 의거해 ‘용龍’자를 삭제하였다.]의 왕에게 봉안하고, 또 한 몫은 아사세왕에게 봉안하였는데, 저마다 보배 탑을 세워서 공양하였다. 이때는 주나라의 여왕厲王 12년 계사년癸巳年이었다.[10년이라고 써야 맞다.]


제3조 상나화수商那和修[󰡔정종기正宗記󰡕에는 “범어는 상낙가商諾迦이며, 이곳 말로는 자연복自然服이라 한다. 태어나면서부터 몸에 저절로 옷이 입혀져 있었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홍각범지림洪覺範志林󰡕에서는 “승가리의僧伽梨衣는 운암雲巖과 같은 것이다”라고 하였고, 󰡔전등록󰡕에서는 “자연복이란 곧 서역의 구지수九枝秀라는 풀이름이다”라고 하였는데, 이름은 미상이다.]
그는 마돌라국摩突羅國 사람으로 또한 사나바사舍那婆斯라고도 한다. 성姓은 비사다毘舍多이고, 아버지는 임승林勝이요, 어머니는 교사야憍奢耶인데, 태胎에 있은 지 6년 만에 태어났다. 
범어의 상낙가商諾迦는 이곳 말[漢譯]로 자연복自然服이니, 곧 인도에서 나는 구지수九枝秀라는 풀의 이름이다. 가령 아라한과 같은 성인이 강생降生하면 이 풀이 정결한 땅에 난다고 하는데, 상나화수가 태어날 때에도 이 상서로운 풀의 감응이 있었다.
옛적에 여래께서 교화를 다니시다가 마돌라국에 이르렀을 때 어느 푸른 숲에 가지와 잎이 무성한 것을 보시고는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이 숲의 지명은 우류다優留茶라 하는데, 내가 열반에 들고 나서 백 년 만에 상나화수라는 비구가 묘한 법 수레를 굴릴 것이다.”
과연 백 년 뒤에 상나화수가 탄생해서 출가하여 도를 증득한 뒤에 아난 존자의 법안法眼을 받아서 유정들을 교화하였다. 그러다가 이 숲에 머물면서 두 화룡火龍을 항복시켜서 불법에 귀의하게 하였고, 그로 인하여 용이 그 땅을 보시하여서 범궁梵宮을 세웠다.
존자가 교화를 편 지 오래되자 정법을 부촉할 것을 생각하였다. 그리하여 타리국吒利國에서 우파국다優波毱多를 만나 시자로 삼고는 그에게 물었다. 
“그대의 나이는 몇 살인가?” 
우파국다가 대답하였다. 
“제 나이는 열일곱 살입니다.” 
스님이 말했다.
“너의 몸이 열일곱 살인가, 성품이 열일곱 살인가?” 
“스님의 머리털이 이미 희신데, 머리가 흰 것입니까, 마음이 희신 것입니까?” 
“나는 단지 머리털이 흴 뿐이지 마음이 희지는 않다.” 
우파국다가 말하였다.
“저도 몸이 열일곱 살일 뿐 성품이 열일곱 살은 아닙니다.” 
상나화수는 그가 법기法器임을 알고서 그 뒤 3년 만에 머리를 깎고 구족계를 주면서 이렇게 말했다.
“옛적에 여래께서 위없는 정법안장을 가섭에게 전하신 이래로 차례차례 전해져서 나에게 이르렀는데, 내가 이제 다시 그대에게 부촉하노니 끊어지지 않도록 하라. 그대는 나의 가르침을 받고, 또 나의 게송을 들어라.” 

법도 아니고 또한 마음도 아니니[구본舊本에는 “비법非法 또한 비법非法이다”라고 하였는데, 여기서는 󰡔보림전寶林傳󰡕, 󰡔정종기正宗記󰡕에 의거해 “법도 아니요, 마음도 아니다<非法亦非心>”라고 고쳐 기재하였다.]
마음도 없고 또한 법도 없다네.
이 심법心法을 설할 때에도
그 법은 심법이 아니네.
非法亦非心    無心亦無法
說是心法時    是法非心法

이 게송을 마치고는 곧 계빈국罽賓國 남쪽에 있는 상백산象白山에 가서 은거했다. 나중에 삼매에 들어 살펴보니, 제자인 우파국다가 5백 명의 제자를 거느리고서 항상 게으름을 부리고 있었다. 존자는 곧 그들에게 가서 용분신삼매龍奮迅三昧를 나타내어 조복시키고는 게송을 말해 주었다.
통달하면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니 
지극한 성스러움에는 길고 짧음이 없다네.
너희들이 경솔하고 교만한 뜻을 버리면
빨리 아라한을 얻게 되리라.
通達非彼此    至聖無長短
汝除輕慢意    疾得阿羅漢

5백 명의 비구들은 이 게송을 듣고는 가르침에 의거해 받들어 행함으로써 모두가 무루無漏를 얻었다. 그리고 존자가 열여덟 가지 변화를 부리고 화광삼매火光三昧로써 자신의 몸을 사르니, 우파국다가 사리를 거두어서 범가라산梵迦羅山에 장사지냈다. 5백 명의 비구도 제각기 깃발 하나씩을 들고 영도迎導하여 그리로 가서 탑을 세우고 공양하니, 주나라 선왕宣王 23년 을미년乙未年이었다.[22년이라야 맞다.] 


제4조 우파국다優波毱多

그는 타리국吒利國 사람으로서 우파굴다優波崛多라고도 하고, 오파국다鄔波毱多라고도 한다. 성은 수타首陀이고, 아버지는 선의善意이다. 17세에 출가하여 20세에 과果를 증득하고서 사방으로 교화를 행하였다.
마돌라국摩突羅國에 이르렀을 때에는 제도된 사람이 매우 많았는데, 이 까닭에 악마의 궁전이 진동하자 파순波旬은 근심스러워서 마침내 마魔의 힘을 다해 바른 법[正法]을 해치려고 하였다. 존자가 즉시 삼매에 들어가 그 까닭을 관찰하는데, 파순이 다시 틈을 보다가 은밀히 영락瓔珞을 가지고 와서 존자의 목에 걸어 두었다. 존자가 선정에서 나와 이내 사람과 개와 뱀 등의 세 송장을 가져다 꽃 족두리로 변화시키고는 부드러운 말로 파순을 위로했다.
“그대가 나에게 매우 진기하고 묘한 영락을 주었으니, 내가 이 꽃 족두리로써 보답하겠다.”
파순이 매우 기뻐하면서 목을 내밀어 받았는데, 곧 냄새나는 세 가지 시체로 변하면서 구더기가 우글거렸다. 파순은 역겨워하고 매우 괴로워하면서 자기의 신력神力을 다하였으나 옮길 수가 없었다. 그래서 욕계의 6천天에 올라가서 천주天主에게 고하고, 또 범왕에게 가서 풀어 주기를 바랐으나, 그들은 모두가 이렇게 말했다.
“10력力을 가진 제자가 부린 신통변화이거늘 우리들 같은 범속한 무리가 어찌 그것을 풀 수 있겠는가?”
파순이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어찌해야 좋을까요?”
범왕이 대답했다.
“그대가 만일 존자에게 마음을 다해 귀의할 수 있다면, 곧 제거할 수 있으리라.”
그리고는 게송을 설해서 그의 마음을 돌리게 하였다.

땅을 인하여 넘어진 자는
다시 땅을 인하여 일어나야 한다.
땅을 여의고서 일어나길 바란다면
끝끝내 그런 이치는 없느니라.
若因地倒    還因地起
離地求起    終無其理

파순이 가르침을 받자마자 천궁에서 내려와 존자의 발에 예배하고 슬프게 울면서 참회하였다. 우파국다가 그에게 물었다.
“너는 지금부터는 여래의 바른 법을 방해하지 않겠느냐?”
파순이 대답했다.
“저는 맹세코 불도에 회향迴向하여 영원히 악[不善]을 끊겠습니다.”
우파국다가 말했다.
“만일 그렇다면 네 입으로 스스로 ‘삼보三寶에 귀의합니다’라고 외쳐라.”
마왕 파순이 합장한 채 세 차례 외치자, 꽃 족두리가 모두 없어졌다. 그는 뛸 듯이 기뻐하면서 존자께 예배하고는 게송을 말했다.

삼매의 어른이자 10력을 가진 
성스러운 제자께 머리를 조아립니다.
제가 이제 불도에 회향하길 바라나니
열등함과 나약함이 없게 하소서.
稽首三昧尊    十力聖弟子
我今願迴向    勿令有劣弱

존자가 세상에 사는 동안 교화를 받고 도과道果를 증득한 이가 가장 많았는데, 매번 한 사람을 제도할 때마다 산가지[籌] 하나씩을 석실石室에 넣었다. 그 석실은 세로가 18주肘이고 너비가 12주인데, 그 안에 산가지가 가득하였다.
마지막으로 향중香衆이라는 한 장자의 아들이 있었는데, 존자에게 와서 절하면서 출가하기를 간절히 바랐다. 존자가 물었다.
“그대의 몸이 출가하는 것인가, 마음이 출가하는 것인가?”
향중이 대답했다.
“저의 출가는 몸과 마음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존자가 말했다.
“몸과 마음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면 또 무엇이 출가하는 것인가?”
“무릇 출가라 함은 나[我]도 없고 나의 연고緣故도 없는 것이니, 나도 없고 나의 연고도 없음이 바로 마음이 생하거나 멸하지 않는 것이며, 마음이 생하거나 멸하지 않음이 바로 항상한 도[常道]입니다. 모든 부처님들도 또한 항상해서 마음에 형상이 없고 그 본체도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그대는 장차 크게 깨달아서 마음이 스스로 통달하리니, 마땅히 불․법․승에 의거하여 성스러운 종자[聖種]를 이어가도록 하라.” 
그리고는 곧 머리를 깎고 구족계를 주면서 그에게 다시 말했다. 
“그대의 아버지가 꿈에 황금빛 해를 보고 그대를 낳았으니, 이름을 제다가提多迦라고 하라.”
그리고는 다시 말하였다.
“여래께서 위대한 정법안장을 차례차례 전하여서 나에게 이르렀는데, 이제 다시 그대에게 부촉하나니 나의 게송을 들어라.”

마음 자체가 본래의 마음이니
본래의 마음은 법이 있는[有法] 것이 아니다.
법이 있고 본래의 마음이 있다면
마음도 아니고 본래의 법도 아니다.
心自本來心    本心非有法
有法有本心    非心非本法

법을 부촉한 뒤에 허공으로 몸을 솟구쳐서 열여덟 가지 변화를 나타냈다. 그리고는 다시 본래의 자리로 돌아와서 가부좌를 틀고 앉아서 열반하였다. 제다가가 석실에 있던 산가지를 가지고 그의 몸을 사른 뒤에 사리를 거두고 탑을 세워서 공양하니, 바로 주나라 평왕平王 31년 경자년庚子年이었다.[30년이라야 맞다.]


제5조 제다가提多迦

그는 마가타국摩伽陀國 사람이다. 그가 태어날 때에 아버지가 꿈을 꾸었는데, 황금빛 해가 집에서 솟아 나와 천지를 비추자, 앞쪽에 있는 큰 산은 온갖 보배로 장식되었고, 산마루에서는 샘이 솟아 사방으로 철철 흘렀다고 한다. 이후에 우파국다 존자를 만났는데 그것을 풀이해 주었다. 
“보배의 산은 내 몸이요, 샘이 솟은 것은 법이 다함이 없는 것이요, 해가 집에서 솟은 것은 그대가 지금 도道에 들어가는 모습이요, 천지를 비춘 것은 그대의 지혜가 초월하리라는 것이다.” 
존자의 본래 이름은 향중香衆이었는데, 스승이 지금의 이름으로 바꾸었다. 범어의 제다가는 이곳 말로는 통진량通眞量이라 한다.
제다가는 스승의 설명을 듣자 뛸 듯이 기뻐하면서 게송을 읊었다.
높고 높은 7보의 산에서
항상 지혜의 샘이 솟아나니
이를 참된 법의 맛으로 돌이켜서
인연 있는 무리들을 제도하리라.
巍巍七寶山    常出智慧泉
迴爲眞法味    能度諸有緣

우파국다 존자도 게송을 설했다.

나의 법을 그대에게 전하니
장차 큰 지혜가 나타나리라.
마치 황금빛 해가 집에서 솟아나
천지를 비추듯이 하리라.
我法傳於汝    當現大智慧
金日從屋出    照耀於天地

제다가가 스승의 묘한 게송을 듣고는, 예를 갖추어서 받들어 지녔다. 후에 중인도中印度에 갔는데, 그 나라에 있는 8천 선인 중에서 미차가彌遮迦가 으뜸이었다. 그는 존자가 왔다는 말을 듣고 대중을 이끌고 와서 예배한 뒤에 존자에게 말하였다. 
“옛날에 스님과 함께 범천梵天에 났었는데, 저는 아사타阿私陀 선인을 만나서 선법僊法을 배웠고, 스님은 10력力의 제자를 만나서 선정을 닦아 익혔습니다. 이때부터 과보가 갈리면서 이미 여섯 겁이 지났습니다.” 
존자가 말하였다. 
“여러 겁 동안 헤어졌다는 말이 진실로 허망치 않으니, 이제 삿됨을 버리고 바른 길로 돌아와서 불승佛乘에 들어오시오.”
미차가가 말했다.
“옛적에 아사타 선인이 저에게 수기를 주면서 ‘그대는 앞으로 여섯 겁이 지나면 동학同學을 만나서 무루無漏의 과果를 얻을 것이다’라고 하셨는데, 이제야 서로 만나게 되었으니 숙세의 인연[宿緣]이 아니겠습니까? 바라옵건대 스승께서는 자비로써 저를 해탈케 하옵소서.”
존자는 곧 그를 제자로 승낙하고는, 거룩한 율사에게 명하여 계를 주게 하였다. 이때 다른 선인들이 교만한 생각을 내기 시작하므로 존자가 큰 신통을 보였는데, 그러자 다 함께 보리菩提의 마음을 일으키면서 일시에 출가하였다. 그런 뒤에 미차가에게 말하였다. 
“옛적에 여래께서 위대한 정법안장을 가섭에게 은밀히 부촉하신 이래로 차례대로 전하여서 나에게까지 왔는데, 내 이제 그대에게 부촉하나니 마땅히 잘 호념護念해야 하느니라.”
그리고는 게송을 설했다.

본래의 법과 마음을 통달하면
법도 없고 법 아님도 없네.
깨달아 마침은 아직 깨닫지 못함과 같나니
마음도 없고 법도 없다네.
通達本法心    無法無非法
悟了同未悟    無心亦無法

게송을 마치고는 몸을 허공으로 솟구쳐서 열여덟 가지 변화를 짓고, 화광삼매火光三昧로써 스스로 그 몸을 태웠다. 미차가가 8천 명의 비구들과 함께 사리를 거두어서 반다산班茶山에 탑을 세워 공양하니, 주나라 장왕莊王 7년 기축년己丑年이었다.[5년이라야 맞다.]


제6조 미차가彌遮迦

그는 중인도中印度 사람이다. 법을 전수 받은 뒤에 교화를 행하면서 북천축국北天竺國까지 왔다가 망루[雉堞] 위에 황금빛 상서로운 구름이 있는 것을 보고서 찬탄하여 말했다.
“이는 도인의 기운이다. 반드시 대사大士가 있어서 나의 법을 이을 것이다.”
그리하여 성으로 들어가자, 떠드는 사람들 사이에서 어떤 사람이 손에 술병을 든 채 맞이하면서 물었다.
“스님은 어디서 오셨으며, 어디로 가시려는 것이오?”
스님이 대답했다.
“스스로의 마음으로부터 와서 무無의 처소로 가려고 하오.”
다시 물었다.
“내 손에 있는 물건을 알 수 있겠소?”
스님이 대답했다.
“그것은 접촉된 그릇으로서 청정함을 등진 것이오.”
“스님은 나[我]를 아시겠소?”
“나라는 것은 곧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요, 인식했다면 곧 내가 아닐 것이오.”
그리고는 다시 그에게 말했다.
“그대는 한번 자신의 이름이나 말해 보시오. 그 다음에는 나도 본래의 인연을 말하겠소.”
그 사람은 게송으로 대답하였다.

나는 한량없는 겁을 지나
이 나라에 태어나게 되었으니
성은 바라타頗羅墮라 하고
이름은 바수밀婆須蜜이라 하오.
我從無量劫    至于生此國
本姓頗羅墮    名字婆須蜜

스님이 말했다.
“나의 스승인 제다가께서 말씀하셨소. ‘세존께서 북인도를 유행遊行하시다가 아난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이 나라에서 열반에 든 지 3백 년 후에 성은 파라타이고 이름은 바수밀이라 하는 성인이 이 나라에 태어나서 선맥禪脈의 일곱째 조사가 될 것이다>라고 하셨다.’ 세존께서는 그대에게 수기하신 것이니, 그대는 마땅히 출가해야 하오.”
그는 곧 술그릇을 놓고 절을 한 뒤에 스님의 곁에 서서 말했다.
“제가 지난 겁의 일을 생각하니, 어느 때 한 시주[檀那]의 몸으로서 어떤 여래께 보배 좌석[寶坐]을 바쳤는데, 그 부처님께서 저에게 수기를 주시길 ‘그대는 현겁이 되면 석가의 법을 통해 지극한 가르침을 전파하리라’라고 하셨습니다. 지금 스님의 말씀과 부합이 되니, 바라건대 저를 제도해 주십시오.”
그러자 스님은 즉시 머리를 깎아 주고 계상戒相을 다시 원만히 한 뒤에 그에게 말했다.
“정법안장을 이제 그대에게 부촉하노니, 끊이지 않게 하라.”
그리고는 게송을 말했다.

마음이 없으면 얻을 것도 없으니 
얻음을 설해도 법이라고 이름 짓지 못하네.
만약 마음이 마음 아닌[非心] 줄 요달하면
비로소 마음과 마음의 법[心法]을 요달하리라.
無心無可得    說得不名法
若了心非心    始解心心法

존자가 이 게송을 말한 뒤에 사자분신삼매師子奮迅三昧에 들어 일곱 다라수多羅樹 높이까지 몸을 허공에 솟구쳤다가 다시 본래의 자리로 돌아와 삼매의 불로 스스로를 태웠다. 바수밀이 사리[靈骨]를 거두어 7보의 함에 담아서 부도浮圖를 세워 가장 위에 넣어두었으니, 이때가 양왕襄王 17년 갑신년甲申年이었다.[15년이라야 맞다.] 


제7조 바수밀婆須蜜

그는 북천축국北天竺國 사람으로서 성은 파라타頗羅墮이다. 항상 깨끗한 옷을 입고 손에는 술병을 든 채 이리저리 마을을 다니면서 중얼거리거나 소리를 질렀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를 미쳤다고 하였다. 그러다가 미차가 존자를 만나서 여래께서 선언한 예언을 듣고는, 스스로 전생의 인연을 살펴서 술병을 버리고 출가하였다.
법을 받은 뒤에 교화를 행하면서 가마라국迦摩羅國에 이르러 불사佛事를 널리 일으켰는데, 법좌法座 본문에는 ‘좌坐’로 표기되어 있으나 문의로 보아 ‘좌座’가 합당하므로 고쳐 바로잡았다.
 앞에 있던 한 슬기로운 사람이 스스로 칭하기를, “나의 이름은 불타난제佛陀難提인데, 이제 스님과 이치[義]를 논하고자 합니다”라고 했다. 바수밀이 대답했다.
“그대가 논할 수 있다면 곧 이치가 아니고, 이치라면 곧 논하지 못한다. 만일 이치를 헤아려서 논한다면, 결국 이치를 논한 것이 아니다.”
불타난제는 스승의 뜻이 더 수승함을 알고 충심으로 흠복欽伏하여 말했다.
“저는 도를 구하여 감로甘露의 맛에 젖고 싶습니다.”
존자는 마침내 그의 머리를 깎아 주고 구족계를 준 뒤에 다시 말했다.
“여래의 정법안장을 내가 지금 그대에게 부촉하나니, 그대는 마땅히 잘 수호해서 지녀야 한다.”
그리고는 게송을 설했다.

마음은 허공계虛空界와 똑같아서
허공과 동등한 법을 보인다네.
허공을 증득하고 나면
옳은 법도 없고 그른 법도 없네.
心同虛空界    示等虛空法
證得虛空時    無是無非法

존자가 바로 자심삼매慈心三昧에 들어가자, 그때 범왕․제석과 여러 하늘들이 함께 와서 절을 하고는 게송을 읊었다.

현겁賢劫의 거룩한 조사들 가운데
일곱째 어른에 해당하시는
존자여, 저희들을 가엾이 여기시어
부디 부처의 경지를 말씀해 주소서.
賢劫衆聖祖    而當第七位
尊者哀念我    請爲宣佛地

존자가 삼매에서 일어나 대중에게 설법을 하였다.
“내가 얻은 법은 유有가 아닌 까닭에 만일 부처의 경지를 안다면, 그것은 유有와 무無를 여의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 말씀을 말하고 다시 삼매에 들어가서 열반의 모습을 보였다. 불타난제는 즉시 그 자리에다 7보의 탑을 세우고 전신全身을 봉안하니, 정왕定王 19년 신미년辛未年이었다.[17년이라야 맞다.] 


제8조 불타난제佛陀難提

그는 가마라국迦摩羅國 사람으로서 성은 구담瞿曇이다. 정수리에 육계肉髻 머리 위 정수리에 솟은 살덩어리이다. 혹 모양으로 부처님만이 지니고 있는 신체身體상의 특징 가운데 하나이다.
가 있고, 말솜씨가 뛰어나 막힘이 없었다. 처음에 바수밀 존자를 만나서 출가하여 가르침을 받았는데, 이윽고 무리를 거느리고 교화를 행하다가 제가국提伽國의 성城에 있는 비사라毘舍羅의 집에 이르렀을 때 집 위에 흰 광명이 위로 솟는 것이 보였다. 그가 제자들에게 말했다.
“이 집에는 반드시 성인이 있을 것이다. 입으로 말은 못하나 참으로 대승의 그릇이요, 사방의 거리를 다니지는 못해도 부정한 것에 더러워짐은 분별할 것이다.”
말을 마치자마자, 장자가 나와 인사를 드리면서 물었다. 
“무엇을 필요로 하십니까?” 
존자가 대답했다.
“나는 시자侍者를 구합니다.”
장자가 말했다.
“나에게 복타밀다伏馱蜜多라고 하는 외아들이 있는데, 나이가 이미 50살이지만 입으로 말한 적이 없고 두 발로 걸은 적이 없습니다.”
존자가 말했다.
“그대가 말한 대로라면, 참으로 그가 나의 제자요.”
존자가 그를 보자, 그는 벌떡 일어나 절을 하면서 게송을 말했다.

부모도 나와 친한 이가 아니니
누가 가장 친한 이인가.
모든 부처님도 나의 도가 아니니
누가 가장 거룩한 도인가.
父母非我親    誰是最親者
諸佛非我道    誰爲最道者
존자가 게송으로 대답했다.

그대의 말이 마음과 친하면
부모도 견줄 수가 없으며
그대의 행이 도와 합하면
모든 부처님의 마음도 바로 그러하다.
汝言與心親    父母非可比
汝行與道合    諸佛心卽是

밖으로 형상 있는 부처를 구하면
그대와는 비슷하지도 않으니
그대의 근본 마음을 알고 싶다면
합하지도 않고 여의지도 않아야 하네.
外求有相佛    與汝不相似
欲識汝本心    非合亦非離

복타밀다가 존자의 묘한 게송을 듣고 문득 일곱 걸음을 걸었다. 존자가 말했다. 
“이 사람은 옛적에 부처님을 만난 적이 있었소. 그때 자비의 서원이 광대하였건만, 부모의 애정을 저버리기 어려웠기 때문에 말도 하지 않고 걷지도 않았던 것이오.”
마침내 장자는 아들을 놓아 주어서 출가케 하였고, 존자도 이어서 구족계를 주고는 다시 말했다.
“내가 이제 여래의 정법안장을 그대에게 부촉하나니, 끊이지 않고 이어가도록 하라.”
그리고는 게송을 말했다.
허공은 안팎이 없나니
마음의 법[心法]도 그러하네.
만일 허공을 요달하기만 하면
이것이 진여의 이치를 요달한 것이네.
虛空無內外    心法亦如此
若了虛空故    是達眞如理

복타밀다가 스승의 부촉을 받고 나서 게송으로 찬탄하였다.

나의 스승은 선맥禪脈의 조사 중에서
여덟째 지위를 차지하시고
법으로 한량없는 무리를 교화해서
모두 다 아라한을 얻게 하셨네.
我師禪祖中    當得爲第八
法化衆無量    悉獲阿羅漢

이때 불타난제 존자가 신통변화를 나타내었다가 다시 본래의 자리로 돌아와서 고요하게 열반에 드니, 대중이 보탑寶塔을 세워 그 전신全身을 봉안하니, 이때가 경왕景王 12년 병인년丙寅年이었다.[10년이라야 맞다.]

제9조 복타밀타伏馱蜜多

그는 제가국提伽國 사람으로서 성은 비사라毘舍羅이다. 불타난제의 부촉을 받은 뒤에 중인도中印度에 가서 교화를 행했는데, 당시 향개香蓋라는 장자가 외아들의 손을 잡고 와서 존자에게 예배하고 말했다.
“이 아이가 뱃속에 60년이나 있었기 때문에 그 명칭을 난생難生이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일찍이 한 선인을 만난 적이 있는데, 이 아이를 보고서 ‘범상치 않으니, 반드시 법기法器가 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존자를 만났으니 출가를 시키겠습니다.”
그리하여 존자가 곧 머리를 깎아 주고 또 계를 주었는데, 갈마羯磨 일반적으로 계를 받거나 참회할 때의 작법作法을 뜻한다.
할 때에 상서로운 광명이 법좌를 비추었고, 그 감응으로 사리 30개[어떤 책에는 7이라 하였다.]가 현전現前하였다. 이때부터 피로를 잊고 부지런히 정진하였는데, 오래지 않아서 스승이 말했다.
“여래의 위대한 정법안장을 이제 그대에게 부촉하나니, 그대는 그것을 잘 호념護念하여라.”
그리고는 게송을 말했다.

진리는 본래 이름이 없으나
이름으로 인해서 진리가 드러나네.
진실의 법을 받게 되면
참도 아니고 거짓도 아니네.
眞理本無名    因名顯眞理
受得眞實法    非眞亦非僞

존자가 법을 부촉하고 나서 즉시 멸진삼매滅盡三昧에 들어가 반열반하니, 대중이 향유香油와 전단旃檀으로 진체眞體를 화장하고 사리를 모아서 나란타사那爛陀寺에 탑을 세웠다. 이때는 경왕敬王 35년 갑인년甲寅年이었다.[33년이라야 맞다.]
제10조 협脇 존자尊者

그는 중인도 사람으로 본래의 이름은 난생難生이다. 존자가 탄생할 때에 그의 아버지가 꿈에서 한 마리 흰 코끼리를 보았는데, 등에는 보배 좌석이 있고 좌석 위에는 밝은 구슬 하나가 놓여 있었으며, 문을 통해 들어오자 광채가 사방의 무리들을 비추었다. 이런 꿈에서 깨고 나서 마침내 존자를 낳았다. 나중에 복타밀다 존자를 만나 곁에서 시중을 들면서도 잠을 잔 적이 없어서 ‘겨드랑이를 바닥에 댄 적이 없다’고 말하는데, 이 때문에 협 존자라 불리게 되었다. 
처음 화씨국華氏國에 이르렀을 때 어느 나무 밑에서 쉬다가 오른손으로 땅을 가리키면서 대중들에게 말했다.
“이 땅이 금빛으로 변하면, 성인이 이 모임에 들어오리라.”
이 말을 마치자, 땅이 금빛으로 변하면서 부나야사富那夜奢라는 장자의 아들이 합장하고서 그 앞에 섰다. 존자가 물었다.
“그대는 어디서 왔느냐?”
부나야사가 대답했다.
“제 마음은 가지 않습니다.”
“그대는 어디에 사는가?”
“제 마음은 머물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그대는 정해지지 않았는가?”
“모든 부처님들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대는 모든 부처가 아니다.”
“모든 부처님들도 역시 존자가 아닙니다.”
존자가 이로 인해 게송을 말했다.
이 땅이 금빛으로 변하니
성인이 이르심을 미리 알리네.
장차 보리수 밑에 앉아서
깨달음의 꽃을 피울 것임을.
此地變金色    預知於聖至
當坐菩提樹    覺華而成已

부나야사도 다시 게송을 말했다.

스승께서 금빛 땅에 앉아서
항상 진실한 뜻을 말씀하시고
빛을 돌이켜 나를 비추어서
삼마제三摩諦에 들게 하시네.
師坐金色地    常說眞實義
迴光而照我    令入三摩諦

존자가 그 뜻을 알고는 곧 제자로 삼고서 구족계를 주었다. 그리고 다시 분부했다.
“여래의 위대한 정법안장을 이제 그대에게 부촉하나니, 그대는 잘 호념護念하거라.”
그리고는 이어서 게송을 말했다.

진체眞體는 스스로 진실한 것이니
진실을 의지하여 이치[理]가 있음을 설하네.
진실한 법을 진실하게 깨닫게 되면
행함[行]도 없고 그침[止]도 없다네.
眞體自然眞    因眞說有理
領得眞眞法    無行亦無止

존자가 법을 부촉하고는 즉시 신통 변화를 나타냈다가 열반에 드니, 삼매의 불이 스스로를 태웠다. 사부대중은 제각기 옷자락에다 사리를 담아다가 곳곳마다 탑을 세워서 공양하니, 이때가 정왕貞王 22년 기해년己亥年이었다.[27년이라야 맞다.]


제11조 부나야사富那夜奢

그는 화씨국華氏國 사람인데, 성씨는 구담瞿曇이고, 아버지는 보신寶身이다. 협 존자의 법을 전해 받은 뒤에 바라내국波羅柰國에 가니, 마명馬鳴 대사大士라는 이가 마중을 나와서 예배하고 물었다. 
“저는 어떤 것이 부처인지 알고 싶은데 어떤 것입니까?”
존자가 대답했다.
“그대가 부처를 알고자 하지만 알지 못하는 그것이 바로 그것이니라.”
“부처도 이미 알지 못하거늘 어찌 그것인 줄 압니까?”
“이미 부처를 알지 못하는데, 어찌 그것이 아닌 줄은 아는가?”
“이는 톱[鋸]의 이치입니다.”
“나의 말은 나무의 이치이다.”
그리고는 다시 물었다.
“톱의 이치란 어떤 것인가?”
“스님과 더불어 평등하게 나옵니다.”
다시금 존자에게 물었다.
“나무의 이치란 무엇입니까?”
“그대가 나에게 쪼개진 것이다.”
마명이 활연豁然히 깨닫고는 머리를 숙이면서 귀의하였다. 마침내 부나야사가 머리를 깎게 한 뒤에 제도하고서 대중을 향해 말했다.
“이 대사大士는 옛날에 비사리국毘舍離國의 왕이었다. 그 나라에 말처럼 생긴 사람이 하나 있었는데 벌거벗고 있었다. 왕이 분신分身의 신통력을 부려서 누에[蠶]가 되어, 그는 옷을 입게 되었다. 왕은 나중에 다시 중인도에 태어났는데, 말 같은 사람이 감응하여 슬프게 울었으므로 마명馬鳴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그리고 여래께서 수기하시기를, ‘내가 열반에 들고 나서 6백 년 후에 마명이라는 어진 이가 나타나 바라내국에서 외도를 굴복시키고 한량없는 사람을 제도함으로써 내가 전한 교화를 계승하리라’고 하셨는데, 지금이 바로 그때이다.”
그리고는 마명에게 분부했다.
“여래의 위대한 정법안장을 지금 그대에게 부촉하노라.”
그리고 즉시 게송을 설했다.

미혹과 깨달음은 마치 숨음과 드러남과 같아서
밝음과 어두움이 서로 여의지를 않네.
이제 숨음과 드러남의 법을 부촉하나니
하나도 아니고 또한 둘도 아니네.  
迷悟如隱顯    明暗不相離
今付隱顯法    非一亦非二
존자가 법을 부촉한 뒤에 즉시 신통변화를 나타내고는 조용히 원적圓寂에 드니, 대중이 보배 탑을 세워서 전신을 봉안했다. 이때가 곧 안왕安王 14년 무술년戊戌年이었다.[19년이라야 맞다.] 


제12조 마명馬鳴 대사大士

그는 바라내국波羅柰國 사람으로서 공승功勝이라고도 부르는데, 작위[作]가 있거나 작위가 없는 온갖 공덕이 가장 수승하였기 때문에 그렇게 불린 것이다. 부나야사 존자에게 법을 받은 뒤에 화씨국에서 묘한 법륜法輪을 굴렸는데, 당시 어떤 노인이 홀연히 법좌 앞에서 땅에 엎어졌다. 대사가 대중에게 말했다. 
“이는 예사로운 무리가 아니니, 반드시 기이한 현상이 있을 것이다.”
말을 마치자마자, 그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가 갑자기 땅에서 금빛 나는 사람 하나가 솟아 나왔다가 다시 여자로 변하면서 오른손으로 마명을 가리키며 게송을 말했다.

장로이신 존자께 머리를 조아립니다.
여래의 수기를 받으시고는
지금 이 땅에서
제일가는 이치를 선포하시네.
稽首長老尊    當受如來記
今於此地上    宣通第一義

게송을 마치자 홀연히 보이지 않았다. 마명이 다시 대중에게 말했다.
“장차 악마[魔]가 와서 나와 힘을 겨루리라.”
조금 있으니 비바람이 사납게 불면서 천지가 어두워졌다. 마명이 말했다.
“정말로 악마가 왔구나. 내가 마땅히 제거하리라.”
그리고는 곧 공중을 가리키니, 하나의 큰 금룡金龍이 나타나서 위신력을 발휘하자 산천이 진동하였다. 그러나 마명이 법좌에 태연히 앉아 있자, 악마의 일도 그로부터 소멸되었다. 7일이 지나서 메뚜기만한 작은 벌레가 법좌 밑으로 몸을 숨기자, 대사大師가 손으로 잡아내어 대중에 보이면서 말했다.
“이것은 악마가 변화한 것인데, 나의 법을 몰래 들으러 왔다.”
그리고는 놓아 주어서 가게 하였으나, 악마가 움직이질 못했다. 대사가 그에게 말했다.
“네가 삼보에 귀의하기만 하면 곧 신통을 얻으리라.”
마침내 악마가 본래의 형태를 회복하고는 절을 하면서 참회하니, 대사가 물었다.
“네 이름은 무엇이고 권속은 얼마나 되느냐?”
“제 이름은 가비마라迦毘摩羅요, 권속은 3천 명입니다.”
“네가 신통력을 다 부리면 그 변화가 어느 정도인가?”
“저는 큰 바다를 변화시켜서 아주 작은 물로 만듭니다.”
“너는 본성의 바다[性海:眞如]도 변화시킬 수 있겠느냐?”
“무엇을 본성의 바다라고 합니까? 저는 알지 못하는 말입니다.”
대사가 즉시 그에게 본성의 바다에 대해 말하여 주었다.
“산하대지山河大地가 다 그것에 의하여 건립되고, 삼매와 6통通[구본에는 6신통神通으로 되어 있으나, 󰡔정종기正宗記󰡕에 의거해 ‘신神’자를 없앴다.]이 그것으로 말미암아 발현한다.”
가비마라는 이 말을 듣자, 마침내 신심을 내어서 그의 권속 3천 명을 데리고 함께 머리를 깎고 출가하기를 원했다. 그러자 대사는 5백 명의 아라한을 불러서 구족계를 주게 하고는, 다시 그에게 분부했다.
“여래의 위대한 정법안장을 이제 그대에게 부촉하나니, 그대는 나의 게송을 들어라.”

숨거나 드러남이 본래의 법이요
밝음과 어둠도 원래 둘이 아니네.
이제 깨달은 법을 부촉하나니
취할 것도 아니고 여읠 것도 아니네.
隱顯卽本法    明暗元不二
今付悟了法    非取亦非離
법을 부촉하고는 바로 용분신삼매龍奮迅三昧에 들어가서 마치 태양의 모습처럼 몸을 공중에 솟구쳤다가 그 다음에 멸도滅度를 보였다. 사부대중이 진체眞體를 용감(龍龕:닷집) 안에 봉안하니, 이때가 현왕顯王 37년 갑오년甲午年이었다.[42년이라야 맞다.]


제13조 가비마라迦毘摩羅

그는 화씨국華氏國 사람이다. 처음에는 외도外道가 되어서 3천 명의 제자를 거느리고 온갖 외도의 이론을 통달하였다. 뒤에 마명 존자에게 법을 받고서는 무리를 거느리고 서인도西印度로 갔다. 그곳에는 운자재雲自在라는 태자가 있었는데, 존자의 명성을 흠모해서 궁중으로 청하여 공양하려고 하였다. 존자가 그에게 말했다.
“여래의 가르침에서 사문은 국왕․대신이나 권세 있는 집을 가까이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태자가 말했다.
“지금 저의 나라 수도의 북쪽에 큰 산이 있는데, 산 속에는 석굴 하나가 있습니다. 스님께서 그곳을 선적禪寂의 장소로 삼을 수 없겠습니까?”
존자가 대답했다.
“좋습니다.”
그리고는 즉시 그 산으로 들어가서 몇 리를 가다가 커다란 구렁이 하나를 만났는데, 존자가 곧바로 가면서 돌아보지도 않자, 드디어 존자의 몸을 칭칭 감았다. 이에 존자가 삼귀의三歸依를 일러 주자 뱀이 다 듣고 나서 떠나갔다. 존자가 석굴에 이르렀을 때에 어떤 노인이 소복素服을 하고 나와서 합장한 채 문안을 하자, 존자가 물었다.
“그대는 어디에 사는가?”
노인이 대답했다.
“저는 옛적에 비구였는데 고요한 것[寂靜]을 몹시 좋아하였습니다. 그래서 처음 배우는 비구가 자주 찾아와서 물었는데도 저는 그에게 대답하기 귀찮아서 성내고 원망하는 생각을 내었죠. 그랬더니 목숨이 다한 뒤에 구렁이가 되어 이 굴 속에서 산 지가 이미 천년입니다. 이제 마침 존자를 만나서 계법戒法을 듣게 되었으므로 사례하러 왔습니다.”
존자가 물었다.
“이 산에 또 어떤 사람이 사는가?”
“북쪽으로 10리를 가면 큰 나무가 있는데, 5백 마리의 큰 용에게 그늘을 드리우고 있습니다. 그 나무 왕의 이름은 용수龍樹라 하는데, 항상 용들에게 법을 설하고 있으며 저도 법문을 들었습니다.”
존자가 무리를 거느리고 그곳으로 가니, 용수가 존자를 맞이하면서 말했다.
“깊은 산은 외롭고 적적하여 용이나 뱀이 사는 곳인데, 대덕의 지극히 높으신 몸으로 어찌하여 왕림하셨습니까?”
존자가 대답했다.
“나는 지극히 높은 이가 아니요, 현자賢者를 보러 왔을 뿐이오.”
용수가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이 스님은 결정된 성품[決定性]을 얻어서 도의 눈[道眼]이 밝아졌을까? 대성大聖의 진승眞乘을 이어받았을까?’
존자가 말했다.
“그대가 마음속으로 말을 한다 해도 나는 이미 그 생각을 알고 있소. 오로지 출가할 결심이나 하지, 어찌 내가 성인이 아닐까 의심하고 있는가?”
용수가 이 말을 듣고 뉘우치며 사과하니, 존자가 곧 출가를 시켰고, 5백 용龍들에게도 구족계를 주었다. 그리고 다시 용수에게 말했다.
“이제 여래의 위대한 정법안장을 그대에게 부촉하나니, 주의하여 게송을 들어라.”

숨지도 않고 드러나지도 않은 법은
진실한 경지를 말하는 것이니
이 숨음과 드러남의 법을 깨달으면
어리석지도 않고 지혜롭지도 않느니라.
非隱非顯法    說是眞實際
悟此隱顯法    非愚亦非智

법을 전한 뒤에 곧 신통변화를 나타내어서 삼매의 불로 몸을 태우니, 용수가 오색五色 사리를 거두어 탑을 세우고 모셨다. 이때가 난왕赧王 41년 임진년壬辰年이었다.[46년이라야 맞다.]


제14조 용수龍樹 존자尊者

그는 서천축국西天竺國 사람으로서 용승龍勝이라고도 부른다. 처음 가비마라迦毘摩羅 존자에게 법을 받고 나중에 남인도南印度로 갔다. 그 나라 사람들은 복업福業을 많이 믿었는데, 존자가 묘한 법을 설하는 것을 듣고는 서로 수군거렸다. 
“사람에게 복업이 있는 것이 세간에서 제일이다. 헛되이 불성佛性을 믿으라 말하지만 누가 그것을 볼 수 있겠는가?”
존자가 말했다.
“너희들이 불성을 보고자 하면, 먼저 아만我慢부터 없애라.”
그들이 말했다.
“불성은 큰가, 작은가?”
존자가 대답했다.
“크지도 않고 작지도 않으며, 넓지도 않고 좁지도 않으며, 복도 없고 과보도 없으며, 죽지도 않고 나지도 않는다.”
그들이 수승한 이치를 듣고서 모두 초심初心을 돌이켰다. 존자가 다시 법좌에서 보름달 같은 자재한 몸[自在身]을 나타내니, 모든 대중이 오직 법문의 소리만 들을 뿐 존자의 모습은 보지 못했다. 그 대중 가운데 가나제바迦那提婆라는 장자의 아들이 있었는데, 그가 대중에게 말했다.
“이런 모습을 알겠는가?”
대중이 말했다.
“눈으로도 보이지 않거늘 어찌 가려내어 알 수 있겠는가?”
제바가 말했다.
“이것은 존자께서 불성의 본체[體]와 형상[相]을 나타내셔서 우리들에게 보이신 것이다. 어떻게 그런 줄 아는가? 대체로 무상삼매無相三昧는 형체가 보름달 같으니, 불성의 뜻이 탁 트여서 비고 밝기 때문이다.”
말을 마치자, 보름달 같은 형상은 곧 숨겨지고 다시 본래의 법좌에 머물면서 게송을 말했다.

몸이 둥근 달과 같은 모습을 나타내니
이는 모든 부처님의 본체를 표현한 것이라.
법을 설해도 그 형상이 없으니
이로써 소리와 빛이 아님을 알 수 있으리.
身現圓月相    以表諸佛體
說法無其形    用辨非聲色

그 무리들이 게송을 듣자 단박에 무생법인無生法忍 불생불명의 진여眞如에 안주해서 움직이지 않는 것을 말한다.
을 깨닫고서 모두가 출가하여 해탈을 구하기를 원했다. 존자는 곧 머리를 깎아 주고는 여러 성자들에게 명하여 구족계를 주게 하였다.
그 나라에는 본래부터 5천여 명의 외도가 있어서 큰 요술을 부리므로 사람들이 모두 우러러보았는데, 존자가 모두 교화해서 삼보에 귀의케 하였다. 또한 󰡔대지도론大智度論󰡕․󰡔중론中論󰡕․󰡔십이문론十二門論󰡕을 지어서 후세에 전하였다. 
나중에 상수上首 제자인 가나제바에게 분부하였다.
“여래의 위대한 정법안장을 지금 그대에게 부촉하나니, 나의 게송을 들어라.”

숨은 것과 드러난 법을 밝히기 위해
이제 해탈의 이치를 말하노라.
마음이 법을 증득하지 않으면
성냄도 없고 기쁨도 없노라.
爲明隱顯法    方說解脫理
於法心不證    無瞋亦無喜

법을 부촉한 뒤에 월륜삼매月輪三昧에 들어가서 널리 신통변화를 나타내었다가 다시 본래의 법좌에 나아가서 응연凝然히 열반에 드니, 가나제바가 사부대중과 함께 보배 탑을 세우고 장사를 지냈다. 이때가 진시황秦始皇 35년 기축년己丑年이었다.



경덕전등록 제2권






천축天竺의 35조[13조祖가 기록에 보이며, 방계에서 나온 22조는    기록이 없음] 신수대장경에 있는 것은 명본明本의 목록인데, 지금의 명明의 목록과는 약간의 다른 점이 있으므로 중복 게재하고 있다. 그 다른 점을 지적하기 위하여 지금은 그 두 가지를 각각 실었다. 따라서 다음의 천축 35조祖는 명의 목록이다. 그리고 이 가운데 13조는 기록에 나타나 있다고 원주에 나와 있다.


제15조 가나제바迦那提婆
제16조 라후라다羅睺羅多 
제17조 승가난제僧伽難提
제18조 가야사다伽耶 대장경 원문에는 ‘사邪’자로 되어 있으나 이는 서천西天의 제28조 중의 제18조인 가야사다伽耶舍多를 의미하므로 ‘야耶’로 써야 옳을 듯하여 고쳐 기재하였다. 
舍多
제19조 구마라다鳩摩羅多
제20조 사야다闍夜多
제21조 바수반두婆修盤頭
제22조 마나라摩拏羅
제23조 학륵나鶴勒那
제24조 사자師子 존자尊者
달마달達磨達[사자 존자에서 방계로 나옴]
인다라因陀羅[달마달에서 방계로 나온 2인의 조사]
구라기리바瞿羅忌利婆
달마시리제達磨尸利帝[인다라에서 방계로 나온 4인의 조사]
나가난제那伽難提
파루구다라破樓求多羅
파라바제波羅婆提
파라발마波羅跋摩[구라기리바에서 방계로 나온 2인의 조사]
승가라차僧伽羅叉 
마제예피라摩帝隸披羅[달마시리제에서 방계로 나온 2인의 조사]
가리발무訶利跋茂
화수반두和修盤頭[파루구다라에서 방계로 나온 3인의 조사]
달마가제達摩訶帝
전타라다旃陀羅多
늑나다라勒那多羅[파라발마에서 방계로 나온 3인의 조사]
반두다라盤頭多羅
바라바다婆羅婆多
비사야다라毘舍也多羅[승가라차에서 방계로 나온 5인의 조사]
비루라다마毘樓羅多摩
비율추다라毘栗芻多羅
우파전타優波羶馱
바난제다婆難提多
[이상 방계에서 나온 22인의 조사에 대해서는 어구語句가 없으     므로 기록하지 않음]
제25조 바사사다婆舍斯多
제26조 불여밀다不如蜜多
제27조 반야다라般若多羅


천축天竺의 35조[13조祖가 기록에 보임] 이는 명본明本의 목록으로서, 앞의 목록과는 다른 점이 있으므로 실었다.


제15조 가나제바迦那提婆
제16조 라후라다羅睺羅多 
제17조 승가난제僧伽難提
제18조 가야사다伽耶舍多
제19조 구마라다鳩摩羅多
제20조 사야다闍夜多
제21조 바수반두婆修盤頭
제22조 마나라摩拏羅
제23조 학륵나鶴勒那
제24조 사자師子 존자尊者
제25조 바사사다婆舍斯多
제26조 불여밀다不如密多
제27조 반야다라般若多羅
사자師子 존자尊者의 방계에서 나온 달마달과 달마달에서 나온 2    인의 조사
  ① 인다라因陀羅
  ② 구라기리바瞿羅忌利婆

인다라에서 방출된 4인의 조사
  ① 달마시리제達磨尸利帝
  ② 나가난제那伽難提
  ③ 파루구다라破樓求多羅
  ④ 파라바제波羅婆提

구라기리바瞿羅忌利婆에서 방출된 2인의 조사
  ① 파라발마波羅跋摩
  ② 승가라차僧伽羅叉

달마시리제達磨尸利帝에서 방출된 2인의 조사
  ① 마제예발라摩帝隸拔羅
  ② 가리발무訶利跋茂

파루구다라破樓求多羅에서 방출된 3인의 조사
  ① 화수반두和修盤頭
  ② 달마가제達摩訶帝
  ③ 전타라다旃陀羅多

파라발마波羅跋摩에서 방출된 3인의 조사
  ① 늑나다라勒那多羅
  ② 반두다라盤頭多羅
  ③ 바라바다婆羅婆多

승가라차僧伽羅叉에서 방출된 5인의 조사
  ① 비사야다라毘舍也多羅
  ② 비루라다마毘樓羅多摩
  ③ 비율추다라毘栗芻多羅
  ④ 우파전타優波羶馱
  ⑤ 바난제다婆難提多
    [이상의 방출된 22조사는 기연할 어구가 없으므로 기록하          지 않음] 이 22조사는 달마달 이하를 말한다.



제15조 가나제바迦那提婆

그는 남천축국南天竺國 사람으로서 성은 비사라毘舍羅이다. 처음에는 복업福業을 구하고 논쟁을 일삼았다. 훗날 용수龍樹 대사大士를 뵈러 갔는데, 문을 지나려고 할 적에 용수는 그가 지혜로운 사람임을 알고서, 먼저 시자를 시켜 발우에 가득히 물을 떠다가 법좌 앞에 놓게 하였다. 존자(尊者:迦那提婆)가 이를 보자 즉시 바늘 하나를 던지고서 나아가니, 뜻에 맞아 기뻐했다. 용수는 곧 그에게 법을 설하면서 법좌에서 일어나지 않은 채 둥근 달 모양을 나타내니, 그의 소리만 들릴 뿐 그의 형체는 볼 수 없었다. 
존자가 대중에게 말했다.
“지금의 이 상서로움은 스승께서 불성佛性을 나타내어서 법을 설함이 소리와 빛깔이 아님을 보이신 것이다.”
존자가 용수의 법을 받은 뒤에 비라국毘羅國에 갔다. 그곳에는 범마정덕梵摩淨德이라는 장자가 살고 있었는데, 하루는 후원의 나무에 큰 버섯이 돋았다. 맛이 매우 좋았으나, 장자와 둘째 아들인 라후라다羅睺羅多만이 따다 먹을 수 있었다. 따고 나면 다시 자라고, 다하면 다시 돋아나고 하였으나, 다른 친족들은 아무도 보지 못하였다.
이때 존자가 그의 전생 인연을 알고서 그의 집으로 갔다. 장자가 그 까닭을 물으니, 존자가 대답했다.
“그대들은 전생에 어떤 비구를 공양하였다. 그러나 그 비구는 도의 눈이 아직 밝지 않은데도 헛되이 남의 시주를 받았다. 이 때문에 나무의 버섯이 되어서 갚는 것인데, 오직 그대와 아들[󰡔정종기正宗記󰡕에는 “둘째 아들<次子>과 함께”라고 기록되어 있다.]만이 정성껏 공양해서 누릴 수 있을 뿐 다른 사람은 누리지 못한다.”
다시 물었다.
“장자의 연세는 얼마나 되십니까?”
대답하였다.
“79살입니다.”
그러자 존자가 게송을 말했다.

도에 들었지만 진리를 통달하지 못했으므로
몸을 바꾸어서 시주의 물건을 갚은 것이니
그대의 나이 여든한 살이 되면
이 나무에서 버섯은 더 이상 나지 않으리.
入道不通理    復身還信施
汝年八十一    此樹不生耳
장자는 게송을 듣자 더욱 탄복해 마지않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제자는 노쇠하여 스승을 섬기지 못하겠으나, 둘째 아들을 드려 스승을 따라 출가하기를 바라옵니다.”
존자가 말했다.
“옛날에 여래께서 이 아들에 대하여 수기하시기를 ‘두 번째 5백 년에 위대한 교주敎主가 되리라’고 하셨는데, 지금 만나게 되니 전생의 인연과 부합되오.”
그리고는 곧 머리를 깎아 주고서 시중을 들게 하였다. 
존자가 파련불성巴連弗城에 이르렀을 때 여러 외도外道들이 불법을 방해하려고 계획을 세운 지 오래되었다는 말을 들었다. 존자가 긴 깃발[旛]을 들고서 그 무리들 속으로 들어가니, 그들이 존자에게 물었다.
“그대는 왜 앞서지 않는가?”
존자가 말했다.
“그대는 왜 뒤에 있지 않는가?”
“그대는 좀 천한 사람[賤人] 같구나.”
존자가 말했다.
“그대는 훌륭한 사람[良人] 같도다.”
“그대는 어떤 법을 알고 있는가?”
존자가 말했다.
“그대는 어떤 것도 알지 못하는구나.”
“나는 부처를 얻고자 한다.”
존자가 말했다.
“나는 분명히 부처를 얻었다.”
“그대는 반드시 얻지 못했을 것이다.”
존자가 말했다.
“원래의 도를 나는 얻었지만, 그대는 진실로 얻지 못했다.”
“그대는 얻지 못했는데 어찌하여 얻었다 하는가?”
존자가 말했다.
“그대는 나[我]라는 것이 있기 때문에 얻지 못했지만, 나는 나라는 것이 없기 때문에 나 스스로 응당히 얻은 것이다.”
그는 끝내 말이 막히자 존자에게 물었다.
“당신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존자가 대답했다.
“나의 이름은 가나제바迦那提婆이다.”
그들은 존자의 명성을 진작부터 들었으므로 허물을 뉘우치고 사죄하였다.
이때에 대중 가운데 서로 토론[問難]이 일어났는데, 존자가 걸림 없는 변재辯才로써 분명하게 밝혀주자 이로 인해 모두가 복종하면서 귀의하였다. 이어서 상수 제자[上足]인 라후라다羅睺羅多에게 법안法眼을 부촉하면서 게송을 말했다.

본래 법을 전한 사람을 대하고서
해탈의 이치를 말하기는 하지만
법에는 실제로 증득함이 없으니
끝도 없고 또한 시작도 없노라.
本對傳法人    爲說解脫理
於法實無證    無終亦無始

존자가 게송을 말한 뒤에 분신삼매[奮迅定]에 들어가서 몸으로 여덟 가지 광명을 놓아 열반에 드니, 배우던 무리들이 탑을 세워서 그를 공양하였다. 이때가 곧 전한前漢의 문제文帝 19년 경진년庚辰年이었다.


제16조 라후라다羅睺羅多

그는 가비라국迦毘羅國 사람이다. 교화를 행하면서 실라벌성室羅筏城에 이르렀을 때에 금수金水라는 강을 만났는데, 그 맛이 아주 좋고 강 복판에는 또 다섯 부처님의 그림자가 나타나 있었다. 존자가 대중에게 말했다.
“이 강의 원류源流 쪽으로 5백 리쯤 가면 승가난제僧伽難提라는 성자가 그곳에 살고 있는데, 부처님께서 예언하시기를 ‘천년 후에 거룩한 지위를 계승하리라’고 하셨다.”
말을 마치고 나서 배우는 무리들을 거느리고 물을 거슬러 올라가서 그곳에 이르니, 승가난제가 단정히 앉아서 선정에 들어 있었다. 존자가 대중과 함께 지켜봤는데, 21일이 지나서야 비로소 선정에서 일어났다.
존자가 물었다.
“그대는 몸이 선정[定]에 드는가, 마음이 선정에 드는가?”
그가 대답했다.
“몸과 마음이 함께 선정에 듭니다.”
존자가 말했다.
“몸과 마음이 함께 선정에 든다면, 어찌 들어가고 나감이 있겠는가?”
“비록 들어가고 나감이 있지만 선정의 모습을 잃지는 않습니다. 마치 금金이 우물 안에 있어도 금의 본체가 항상 그대로인 것과 같습니다.”
“금이 우물에 있든 금이 우물에서 나왔든 금에는 움직임이나 고요함이 없는데, 어떤 물건이 들어가고 나가겠는가?”
“금의 움직임이나 고요함을 말한들 어떤 물건이 들어가고 나가겠습니까? 금의 들어가고 나감을 인정해도 금은 움직이거나 고요한 것이 아닙니다.”
“만약 금이 우물에 있다면 나간 것은 어떤 금이고, 만약 금이 우물에서 나갔다면 우물에 있는 것은 어떤 물건인가?”
“금이 만약 우물에서 나갔다면 안에 있는 것은 금이 아니고, 금이 만약 우물에 있다면 나간 것은 물건이 아닙니다.”
존자가 말했다.
“그 뜻은 그렇지가 않다.”
“그대의 주장은 확실하지 않습니다.”
“그 뜻은 무너져야 한다.”
“그대의 뜻은 성립되지 않습니다.”
존자가 말했다.
“그대의 뜻은 성립하지 않아도 나의 뜻은 성립한다.”
“나의 뜻이라 하지만 법은 내가 아니기[非我] 때문입니다.”
“나의 뜻이 이미 성취되었으니, 나는 곧 나 없음[無我]이기 때문이다.”
“내가 나 없음이기 때문이라면, 다시 어떤 뜻이 성립됩니까?”
“내가 나 없음이기 때문에 그대의 뜻도 성립된다.”
“당신은 어떤 성인을 스승으로 섬기었기에 이와 같은 나 없음[無我]을 얻었습니까?”
존자가 말했다.
“나는 가나제바 존자를 스승으로 삼아서 이와 같은 나 없음을 증득했다.” 
“당신보다 뛰어나신 가나제바 존자에게 머리를 조아립니다. 또 당신도 나 없음을 얻었으므로 나는 당신을 스승으로 삼고자 합니다.”
“나는 이미 내가 없기 때문에 그대는 모름지기 나의 본래 나를 보아야 한다. 그대가 만일 나를 스승으로 섬긴다면, 그 나는 내가 아닌 나임을 알아야 한다.”
승가난제는 마음과 뜻이 활짝 열리면서 곧바로 출가하기를 원하니, 존자가 그에게 말했다.
“그대의 마음은 자재自在하니, 나에게 매인 것이 아니다.”
말을 마치자 곧 오른손으로 황금 발우를 받쳐 들고 범궁梵宮에 가서 그곳의 향기로운 음식을 취하여 대중들과 식사를 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대중들은 갑자기 싫어하는 마음을 내었다. 존자가 말했다. 
“나의 허물이 아니라 그대들 스스로의 업業이다.”
그리고는 곧 승가난제에게 명하여 자리를 나눈 뒤에 함께 먹으니, 대중은 또 의심을 했다. 존자가 말했다.
“너희들이 먹지 못하는 것은 모두가 이 때문일 것이나, 나와 자리를 나눈 사람은 바로 과거의 사라수왕여래娑羅樹王如來인데 중생들을 가엾이 여겨서 강림하셨음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너희들도 과거 장엄겁에 이미 셋째 과위에 이르렀으나 무루無漏를 증득하지는 못했었다.”
대중이 말했다.
“우리 스승의 신통력은 믿을 수 있지만, 그가 과거의 부처라는 말은 자못 의심스럽습니다.”
승가난제는 대중이 교만한 생각을 냈음을 알고는 그들에게 말했다.
“세존께서 생존해 계실 때에는 세계가 평평하고 반듯해서 언덕․강․개울 따위가 없고, 물은 모두가 단 맛이고, 초목이 무성하고, 온 나라가 풍요로웠고, 여덟 가지 괴로움이 없고, 열 가지 착한 일을 행하였다. 그러나 세존께서 사라쌍수에서 멸도滅度를 보이신 이래로 8백여 년이 지난 오늘에는 세계에 언덕이 생기고, 수목은 마르고, 사람들은 지극한 믿음이 없어지고, 정념正念은 가볍고 미약해지며, 진여를 믿지 않고 오직 신통만을 좋아하게 되었다.”
말을 마치자 오른손으로 차츰 차츰 땅을 헤쳐서 금강륜金剛輪 땅 밑에 있다고 전하는 금의 단층 바퀴를 말한다.
에까지 가서 유리그릇에다 감로수甘露水를 떠다가 모여 있는 장소에 갖고 갔다. 대중들이 이를 보자 즉시 흠모하면서 뉘우치고는 절을 하였다. 그러자 라후라다 존자는 승가난제를 불러 법안을 부촉하면서 게송을 읊었다.

법에는 실제로 증득함이 없으니
취하지도 못하고 여의지도 못한다.
법은 있음과 없음의 모습이 아니니
안팎으로 무슨 일이 일어났다고 하리오.
於法實無證    不取亦不離
法非有無相    內外云何起

존자가 법을 부촉한 뒤에 단정히 앉아서 열반에 드니, 사부대중이 탑을 세웠다. 이때는 곧 전한前漢의 무제武帝 28년 무진년戊辰年이었다.


제17조 승가난제僧伽難提

그는 실라벌성室羅閥城의 보장엄왕寶莊嚴王의 아들이다. 나면서부터 말을 할 수 있어서 항상 불사佛事를 찬미하였고, 일곱 살에는 세속의 쾌락을 싫어하여 게송으로써 그의 부모에게 아뢰었다.

크게 자비로운 아버님께 경례하오며
낳아주신 어머님께 합장합니다.
저는 이제 출가하고자 하오니
바라건대 저의 소원을 들어 주소서.
稽首大慈父    和南骨血母
我今欲出家    幸願哀愍故

부모는 한사코 말렸으나 종일토록 먹지 않자, 이에 재가在家에서의 출가를 허락하였으니, 그 명호는 승가난제였다. 또 선리다禪利多라는 사문을 스승으로 삼았는데, 19년 동안 물러서거나 게으른 적이 없었다. 존자는 늘 스스로 이렇게 생각했다. 
‘몸이 왕궁에 있으니, 어찌 출가라 하겠는가?’
어느 날 저녁, 하늘의 광명이 내리 비춤에 한 줄기 곧게 뻗은 길이 평탄하게 뚫린 것이 보였다. 존자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길을 따라 10리쯤을 천천히 걸어서 큰 바위 앞에 이르렀는데, 거기에 석굴이 있어서 그 안에서 조용히 지냈다. 부왕은 아들을 잃었으므로 선리다를 나라 밖으로 쫓아내서 아들을 찾게 하였으나 있는 곳을 알지 못했다. 
10년이 지나서 존자가 법을 깨달아 수기를 받은 뒤에 교화를 행하다가 마제국摩提國에 이르렀는데, 그때 홀연히 시원한 바람이 대중에게 불어와서 몸과 마음이 매우 상쾌해졌지만, 그 까닭을 알지는 못했다. 존자가 말했다.
“이는 도덕道德의 바람이다. 곧 거룩한 이가 세상에 나와서 조사의 등불을 잇게 될 것이다.”
말을 마치고는 곧 신통으로 여러 대중들을 거느리고서 산과 골짜기를 두루 다니다가, 잠시 후에 한 봉우리 밑에 이르러 대중에게 말했다.
“이 봉우리 정상에 자줏빛 구름이 일산처럼 덮였으니, 성인이 여기에 살 것이다.”
그리하여 대중과 함께 오래 배회하였는데, 한 초막[山舍]에서 어떤 동자가 둥근 거울을 갖고 곧바로 존자 앞으로 오는 것이 보였다. 존자가 물었다.
“너는 몇 살인가?”
동자가 대답했다.
“백 살이오.”
“너는 나이가 아직 어려 보이는데, 어찌 백 살이라고 하느냐?”
“나는 이치는 모르겠습니다만 정확히 백 살입니다.”
“그대는 좋은 근기[機]인가?”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가령 백 살의 인생을 살아도 모든 부처님의 근기를 알지 못하면, 하루를 살더라도 분명히 아는 것만 못하다’고 하셨습니다.”
“네 손에 가진 것은 무엇을 표현한 것이냐?”
동자가 대답하였다.
“모든 부처님들의 크고 둥근 거울은 안팎으로 티와 가림이 없다는 것을 표시합니다.”
두 사람은 마음의 눈[心眼]이 서로 비슷함을 똑같이 알게 되었는데, 그의 부모가 아들의 말소리를 듣고는 곧 놓아 주어서 출가케 하였다. 존자는 그를 본래 있던 곳으로 데리고 가서 구족계를 주고는 가야사다伽耶舍多라고 이름을 지어 주었다.
다른 날, 바람이 불어서 풍경 울리는 소리가 들렸다. 존자가 가야사다에게 물었다.
“풍경이 우는가, 바람이 우는가?”
가야사다가 대답했다.
“바람도 아니고 풍경도 아니니, 오직 제 마음이 울 뿐입니다.”
존자가 말했다.
“마음은 또 무엇이냐?”
“모두가 고요하기 때문입니다.”
“훌륭하고 훌륭하구나. 나의 도를 이을 자가 그대가 아니면 누구이겠는가?”
그리고는 법을 부촉하면서 게송을 말했다.

마음의 본바탕에는 본래 남[生]이 없으나
땅을 인因하고 연緣에 따라서 일어나는 것이네.
연緣과 종자가 서로 방해하지 않으니
꽃과 열매도 또한 마찬가지이니라.
心地本無生    因地從緣起
緣種不相妨    華果亦復爾

존자가 법을 부촉한 뒤에 오른손으로 나뭇가지를 잡고서 열반에 드니, 대중이 의논하기를 “존자께서 나무 아래에서 열반에 드시니, 그 그늘이 후손들에게 드리울 것이다”라고 하였다. 시신을 고원高原으로 옮겨 모시고 탑을 세우려는데, 대중의 힘으로는 움직일 수 없어서 나무 밑에다 그대로 탑을 세웠다. 이때가 전한 소제昭帝 13년 정미년丁未年이었다.  


제18조 가야사다伽耶舍多

그는 마제국摩提國 사람이니, 성은 울두람鬱頭藍이며, 아버지는 천개天蓋요, 어머니는 방성方聖이다. 일찍이 커다란 신장神將이 거울을 들고 있는 것을 꿈에서 보고 태기가 있었는데 7일 만에 낳았다. 살과 몸이 유리같이 비쳐서 한 번도 씻지 않아도 자연히 향기롭고 깨끗했다. 어렸을 때에 조용한 곳을 좋아하고 말하는 것이 예사 아이와 다르더니, 거울을 가지고 놀러 나갔다가 승가난제僧伽難提 존자를 만나서 출가하게 되었다.
무리들을 거느리고 대월지국大月氏國에 갔다가 한 바라문의 집에 기이한 기운이 서린 것을 발견했다. 존자가 그 집에 들어가려고 하자, 집주인인 구마라다鳩摩羅多가 물었다.
“웬 사람들이오?”
존자가 대답했다.
“우린 부처님의 제자들이오.”
그는 부처님의 명호를 듣자 정신이 아찔해서 이내 문을 닫았다. 존자가 한참 있다가 다시 그 문을 두드리니, 구마라다가 응답했다.
“이 집에는 아무도 없소.”
존자가 거듭 물었다.
“아무도 없다고 대답하는 이는 누구인가?”
구마라다가 이 말을 듣자 이인異人임을 알고서 급히 문을 열어 맞이하였다.
존자가 그에게 말했다.
“옛날에 세존께서 수기하시기를 ‘내가 열반에 들고 나서 천년 뒤에 월지국에 대사가 나타나서 현묘한 교화를 이으리라’고 하셨는데, 이제 그대가 나를 만난 것이 이 멋진 운명에 응한 것이다.”
그리하여 구마라다는 숙명지宿命智를 발하여서 정성을 기울여 출가해서 계를 받았다. 존자가 그에게 법을 부촉하며 게송을 말했다.

종자도 있고 마음 바탕도 있으면
인연으로 능히 싹이 솟나니
연緣이 서로 가로막지 않으면
마땅히 생겨나겠지만 생겨남도 생겨남이 아니네.
有種有心地    因緣能發萌
於緣不相礙    當生生不生
존자가 법을 부촉한 뒤에 허공으로 몸을 솟구쳐서 열여덟 가지 신통변화를 나타냈다가 화광삼매火光三昧로 화하여 스스로의 몸을 태우니, 대중이 사리를 모아서 탑을 세웠다. 이때는 바로 전한前漢의 성제成帝 20년 무신년戊申年이었다.


제19조 구마라다鳩摩羅多

그는 대월지국大月氏國에 사는 바라문의 아들이었다. 전생에 자재천自在天[욕계欲界의 제6천天이다.]의 천인이었는데, 보살의 영락瓔珞을 보고 문득 애착하는 마음을 내는 바람에 도리천忉利天[욕계의 제2천이다.]으로 떨어져 태어났고, 거기서 교시가憍尸迦가 반야바라밀다般若波羅蜜多를 설하는 것을 듣고는, 수승한 법의 힘 때문에 범천梵天[색계色界이다.]에 태어났다. 그는 근기가 날카로워 법의 요체를 잘 설했으므로 모든 하늘이 존경하여 도사導師로 삼았고, 또 조사의 법을 계승할 때가 되자 대월지국에 탄생하였다. 
뒤에 중천축국에 갔는데, 사야다闍夜多라는 대사大士가 물었다.
“우리 부모들은 평소 삼보를 믿고 섬겼지만 항상 병을 앓을 뿐만 아니라 하는 일이 모두 뜻대로 되지 않았는데, 우리 이웃집은 오랫동안 전타라旃陀羅 노릇을 하면서도 몸은 언제나 건장하고 하는 일은 모두 잘 풀리니, 그들은 어찌하여 그렇게 행운이 있는 것이며 우리는 어찌하여 이렇게 불행합니까?”
존자가 대답했다.
“그것이 어찌 의심할 바이겠는가? 또 선과 악의 과보는 세 때[三時]에 걸쳐 나타난다. 범속한 사람들은 항상 어진 이가 단명하고 포악한 이가 장수하며, 거스르는 이가 길하고 의로운 이가 흉한 것만을 보고는, 문득 인과가 없고 죄와 복이 허망하다고 여기고서, 그림자와 메아리가 따르듯이 털끝만치도 어김이 없이 백천만 겁을 지나도 마멸磨滅되지 않는 것임을 전혀 알지 못한다.”
사야다가 이 말을 듣고 단박에 의심이 모두 풀렸다. 존자가 다시 말했다.
“네가 비록 삼보를 믿게 되었으나, 아직도 업이 미혹으로부터 생기고, 미혹은 알음알이[識]로 인하여 있고, 알음알이는 불각不覺에 의지하고, 불각은 마음에 의지하고, 마음은 본래 청정하여 생멸生滅도 없고 조작造作도 없고 보응報應도 없고 승부勝負도 없어서 고요하고 신령스럽다는 것을 밝히지 못하고 있다. 네가 만일 이 법문에 들어온다면, 모든 부처님들과 동등할 수 있으니, 온갖 선악과 유위有爲와 무위無爲는 모두 꿈이나 허깨비와 같은 것이니라.”
사야다가 이 말을 듣고 지취旨趣를 깨달아서 즉각 숙세의 지혜를 발하여 출가할 뜻을 간곡히 구했다. 존자는 구족계를 준 뒤에 그에게 말했다.
“나는 이제 열반에 들 때가 왔다. 그대가 마땅히 교화의 자취를 계승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는 법안法眼을 부촉한 뒤에 게송을 말했다.

성품에는 본래 남[生]이 없지만
구하는 사람을 대하여 말해 주는 것이다.
법에 대해서 이미 얻을 바가 없다면
어찌 깨치고 깨치지 못함을 걱정하랴.
性上本無生    爲對求人說
於法旣無得    何懷決不決

존자가 다시 말했다.
“이는 묘음여래妙音如來께서 성품의 청정함을 밝힌 구절이니, 그대는 후학들에게 잘 전해야 한다.”
말을 마치고는 법좌에서 손톱으로 얼굴을 할퀴니, 마치 홍련紅蓮이 피어나듯 하면서 큰 광명이 나와 사부대중을 비춘 뒤에 열반에 들었다. 사야다가 탑을 세우니, 이때가 신실新室의 14년 임오년壬午年이었다.


제20조 사야다闍夜多

그는 북천축국北天竺國 사람인데, 지혜가 연못처럼 깊어서 교화한 이가 한량이 없었다. 
뒤에 나열성羅閱城에 이르러 돈교頓敎를 드날렸는데, 그곳의 배우는 무리들은 오직 변론만을 숭상하였다. 그 중 우두머리가 되는 이를 바수반두婆修盤頭[이 나라 말로는 변행遍行이다.]라 하였는데, 항상 한 끼니만 먹고 눕지도 않은 채 하루에 여섯 차례 예불하며, 청정하고 욕심이 없으므로 대중의 귀의를 받았다. 존자가 그를 제도하고자 해서 우선 그 무리들에게 물었다.
“이 변행(遍行:婆修盤頭) 두타가 능히 범행梵行을 닦은들, 불도를 얻을 수 있겠는가?”
그 무리들이 대답했다.
“우리 스승께서는 정진하고 계시거늘 어찌하여 옳지 못하다고 하는가?”
존자가 말했다.
“그대들의 스승은 불도와는 거리가 멀다. 설사 티끌같이 많은 겁 동안 고행을 했더라도 모두 근본적으로 허망한 것이다.”
“그러면 존자께서는 어떤 덕행을 쌓았기에 우리 스승을 비난하십니까?”
“나는 도를 구하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거스르지도[顚倒] 않으며, 나는 부처에게 예배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업신여기지도 않으며, 나는 오래 앉아 있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게으르지도 않으며, 나는 한 끼니만 먹지 않지만 그렇다고 아무렇게나 먹지 않으며, 나는 만족함을 알지 못하지만 그렇다고 탐욕을 부리지 않나니, 마음에 희구하는 바가 없는 것을 이름하여 도道라 한다.”
이때 변행 두타가 이 말을 듣고 무루의 지혜[無漏智]를 일으키면서 환희하며 찬탄하였다. 존자는 다시 그 무리들에게 말했다.
“나의 말을 이해하겠는가? 내가 그렇게 한 까닭은 그대들이 도를 구하는 마음이 마치 활시위가 너무 팽팽하면 끊어지듯 절박하기에 나는 그것을 찬성하지 않아서, 그대들로 하여금 안락한 경지에 머물게 하여 모든 부처의 지혜에 들게 하기 위함이다.” 
그리고는 다시 변행 두타에게 말했다.
“내가 마침 대중 앞에서 그대를 억누르는 말을 했는데, 마음속에 괴로움이 없었는가?”
변행 두타가 대답했다.
“저의 기억으로 7겁 전에는 항상 안락국安樂國에 태어났습니다. 그때 스님은 지자智者 월정月淨으로서 저에게 수기하시기를 ‘오래지 않아서 사다함과斯陀含果를 증득하리라’고 하셨습니다. 
당시 대광명보살大光明菩薩께서 세상에 나오셨는데, 저는 너무 늙은 탓에 지팡이를 짚고 가서 알현했습니다. 그러자 스님께서 저를 꾸짖으셨습니다. 
‘자식을 소중히 여기고 아비는 가벼이 여기니, 어쩌면 그다지도 못났는가?’ 
그때 저는 스스로 잘못이 없다고 생각해서 스님께 저의 잘못을 지적해달라고 청했는데, 스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대가 대광명보살께 예배할 때에 벽에 그린 부처님 얼굴에 지팡이를 기대었는데, 이 교만으로 인한 허물 때문에 결국 2과果를 잃었다.’ 
그리하여 저는 스스로를 질책하면서 잘못을 뉘우쳤습니다. 그 이후로는 온갖 나쁜 말을 들어도 바람이나 메아리처럼 여겼거늘, 하물며 이제 위없는 감로甘露를 마셨는데 어찌 성을 내겠습니까? 바라옵건대 대자대비大慈大悲를 베푸시어 묘한 도로써 가르침을 내려 주옵소서.”
존자가 말했다.
“그대는 오래전부터 온갖 공덕을 심었으니, 마땅히 나의 종지宗旨를 계승해야 한다. 나의 게송을 들어라.”

말이 끝나자마자 무생無生에 합하면
법계의 성품과 더불어 동일하니
만일에 이와 같이 이해할 수 있다면
이理와 사事를 통달해 마치리라.
言下合無生    同於法界性
若能如是解    通達事理竟
존자가 법을 부촉한 뒤에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고 돌연 열반에 드니, 화장하고 사리를 거두어서 탑을 세웠다. 이때가 후한後漢의 명제明帝 17년 갑술년甲戌年이었다.


제21조 바수반두婆修盤頭

그는 나열성羅閱城 사람으로서 성은 비사거毘舍佉이며, 아버지는 광개光蓋요, 어머니는 엄일嚴一이다. 집은 부유하였지만 아들이 없었으므로 부모가 불탑에 기도해서 자손을 구했는데, 어느 날 저녁에 그의 어머니가 밝은 구슬과 어두운 구슬 두 개를 삼키는 꿈을 꾸었다. 꿈을 깬 뒤에 태기가 있었는데, 7일이 지났을 때 현중賢衆이라는 아라한이 그 집에 왔다. 광개가 절을 드리자 현중이 단정히 앉아서 받았는데, 엄일이 나와서 절을 할 때에는 현중이 자리를 피하면서 말했다.
“도리어 법신法身 대사에게 예배합니다.”
광개가 그 까닭을 알 길이 없자, 마침내 꿇어앉아 보배 구슬 하나를 현중에게 바치면서 그 진위眞僞를 시험했다. 그런데 현중은 그것을 얼른 받으면서 특별히 겸양하거나 사양하지 않았다. 이에 광개가 더 이상 참을 수 없어서 물었다.
“나는 장부인데 절을 하여도 돌아보지도 않더니, 나의 아내는 어떤 공덕이 있기에 존자께서 피하십니까?”
현중이 말했다.
“내가 절을 받고 구슬을 받아들이는 것은 그대를 귀하고 복되게 할 뿐이다. 그대의 아내는 거룩한 이를 잉태하였는데, 출생하면 반드시 세상의 등불인 지혜의 태양이 될 것이므로 내가 피한 것이니, 여인을 중히 여겨서가 아니다.” 
그리고는 현중이 다시 말했다. 
“그대의 아내가 두 아들을 낳을 터인데, 첫째의 이름은 바수반두婆修盤頭로서 지금 내가 존경하는 사람이요, 둘째는 추니芻尼[한역하면 까치<野鵲子>이다.]라 하리라. 옛날에 여래께서 설산雪山에서 도를 닦으실 때에 까치[芻尼]가 정수리 위에다 둥지를 틀었다. 부처님께서 도를 이루신 뒤에 까치는 과보를 받아서 나제국那提國의 왕이 되었는데, 부처님께서 그에게 수기를 주시기를 ‘그대는 두 번째 5백 년이 되면 나열성의 비사거毘舍佉 가문에 태어나되 성인과 같은 태胎에 들리라’고 하셨는데, 지금 어김이 없다.”
그 뒤 한 달 만에 과연 아들을 낳았는데, 존자 바수반두는 열다섯 살이 되자 광도나한光度羅漢에 의하여 출가하고, 비바하毘婆訶 보살이 계를 주는 감응을 받았다.
교화에 나서 나제국那提國에 이르렀을 때에 그 나라의 왕 상자재常自在에게 두 아들이 있었는데, 하나는 마하라摩訶羅라 하고, 또 하나는 마나라摩拏羅라고 하였다. 그 왕이 존자에게 물었다.
“나열성의 풍토는 여기와 어떻게 다릅니까[同異]?”[구본舊本 여기서 구본은 명본明本을 말한다.
에는 “어떻게 다릅니까<作何>?”라고 되어 있다.]
존자가 대답했다. 
“그 국토에는 일찍이 세 부처님께서 세상에 나신 적이 있고, 지금 대왕의 국토에는 두 스승이 교화하여 이끄십니다.”
“두 스승이란 누구인가?”
“부처님께서 수기하시기를 ‘두 번째 5백 년에 한 명의 신통력 있는 대사가 출가하여 성인의 법을 이으리라’ 하셨으니, 왕의 둘째 아들인 마나라摩拏羅가 그 하나이고, 제가 비록 덕은 없으나 그 다른 하나에 해당합니다.”
왕이 말했다.
“존자의 말씀이 사실이라면 이 아들을 놓아 보내서 출가케 하겠소.”
“장하십니다. 대왕이여, 부처님의 종지宗旨를 능히 따르시다니.”
그리고는 구족계를 주고 법을 부촉한 후에 게송을 말했다. 

거품과 허깨비는 똑같이 걸림이 없거늘
어째서 깨달아 마치지 못하는가.
법이 그 속에 있음을 깨달으면
지금도 아니고 또한 옛날도 아니네. 
泡幻同無礙    如何不了悟
達法在其中    非今亦非古

존자가 법을 부촉한 뒤에 반 유순 높이로 몸을 솟구쳐 홀연히 머무르자, 사부대중이 우러러보면서 간곡히 청하니 자리로 다시 돌아와서 결가부좌하고 열반에 들었다. 화장을 하고 사리를 거두어서 탑을 세우니, 이때가 후한의 상제殤帝 12년 정사년丁巳年이었다.[마땅히 안제安帝 11년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상제殤帝 재위 기간은 모두 해야 1년밖에 되지 않는다.]


제22조 마나라摩拏羅

그는 나제국那提國의 상자재왕常自在王의 아들이다. 나이 30세가 되었을 때에 바수(婆修:婆修盤頭) 조사를 만나서 출가하여 법을 전해 받았다. 
그 후 서인도西印度에 갔는데, 그 나라의 왕은 이름이 득도得度이며 구담瞿曇 종족으로서, 불승佛乘에 귀의하여 부지런히 정진하였다. 하루는 길을 가다가 하나의 조그마한 탑을 발견했는데, 공양하기 위해 취하고자 하였으나 대중들 중에는 아무도 이것을 드는 이가 없었다. 왕은 곧 범행梵行을 닦는 자와 선관禪觀을 행하는 자와 주술呪術을 하는 자 등의 세 무리를 모아 놓고 의심나는 바를 물으려고 하였다. 당시 존자도 이 모임에 갔는데, 이 세 무리가 전혀 변론치 못하므로 존자가 왕에게 탑이 이루어진 원인[아육왕阿育王이 탑을 조성한 이야기로서 여기서는 번거로워 기록하지 않았다.]을 자세히 말하면서 지금 나타난 현상은 왕의 복력福力으로 인해 생긴 것이라고 일러주었다.
왕이 이 말을 듣고 말했다.
“지극히 뛰어난 성인은 만나기 어렵고, 세상의 쾌락은 오래가지 못한다.”
그리고는 즉시 태자에게 왕위를 물려주는 조사에게 출가해서 7일 만에 4과果를 증득했다. 이에 존자가 깊이 위로하면서 말했다.
“그대는 이 나라에 있으면서 사람들을 잘 제도하라. 지금 다른 지역에 큰 법기法器가 있으니, 내가 가서 득도得度케 하리라.”
“스승께서 시방에 감응하는 자취는 생각을 움직이는 대로 이르거늘, 정말로 수고롭게 가시려고 합니까?”
“그렇다.”
그리고는 향을 사르면서 멀리 월지국에 있는 학륵나鶴勒那 비구에게 말했다.
“그대는 그 나라에서 학鶴의 무리를 교화하여 제도하였으므로 도과道果를 곧 증득할 것임을 마땅히 스스로 알아야 한다.”
그때 학륵나는 그 나라의 국왕 보인寶印에게 경전의 게송을 설하다가 홀연히 기이한 향이 타오르는 것을 보았다. 왕이 물었다.
“이게 무슨 상서로움인가?”
학륵나가 대답했다.
“이는 서인도에서 부처님의 심인心印을 전해 받은 마나라摩拏羅 존자가 오시기 전에, 먼저 강림한 믿음의 향[信香]입니다.”
“그 스승의 신통력이 어떠하오?”
“그 스승은 멀리 부처님의 수기를 받아서 지금 이 땅에서 현묘한 교화[玄化]를 널리 전파하고 있습니다.”
이때 왕과 학륵나가 함께 멀리서 절을 하니, 존자가 알아채고서 즉시 득도 비구의 곁을 떠나 월지국으로 가서 왕과 학륵나의 공양을 받았다.
나중에 학륵나가 존자에게 물었다.
“제가 숲 속에 머문 지 어언 아홉 해[九白][인도에서는 1년을 1백白이라 한다.]가 되었습니다. 용자龍子라는 제자가 어리지만 총명하고 슬기로운데, 저는 3세世를 미루어 궁구해 보아도 그의 근본을 알 수가 없었습니다.”
존자가 대답했다.
“이 아이는 다섯째 겁에 묘희국妙喜國의 바라문 집에 태어났었는데, 일찍이 전단旃檀 Candana의 음사音寫. 향나무의 일종. 나무에 향기가 있어서 조각도 하고 향이나 향유로 만들어 쓰기도 한다.
을 절에 보시하여 망치를 만들어서 종을 치게 했다. 그 과보로 총명하고 명민해서 대중의 추앙을 받는 것이다.”
“저는 무슨 인연이 있어서 학鶴의 무리에 감응합니까?”
“그대는 넷째 겁에 비구가 되어서 용궁에 공양을 받으러 가려고 했는데, 그대의 제자들도 모두 다 따라가려고 하였다. 그러나 그대가 관찰해 보니, 5백 명 제자 중에서 한 사람도 묘한 공양을 받을 만한 이가 없었다. 그때 제자들이 말했다. 
‘스님께서 항상 설법하시기를 <음식에 동등하면 법에도 동등하다>고 하셨는데, 이제 그렇지 않다고 하신다면 어찌 성인이라 하겠습니까?’
그래서 그대는 그들을 데리고 갔는데, 이 까닭에 죽고 태어나면서 여러 나라를 다니며 교화하는 동안에도 그 5백 명의 제자들은 복이 미약하고 덕이 얇아서 새의 종족으로 태어났고, 지금도 그대의 은혜에 감동되었기 때문에 학의 무리가 되어서 따르는 것이다.”
학륵나가 듣고서 말했다.
“어떤 방편을 써야 그들을 해탈케 하겠습니까?”
“나에게 위없는 법보法寶가 있으니, 그대는 잘 들었다가 미래의 중생을 교화하라. 나의 게송을 들어라.”

마음이 만 가지 경계를 따라 구르나
구르는 곳마다 실로 능히 아득하다네.
아득한 흐름에 따라 성품을 깨달으면
기쁨도 없고 다시 근심도 없으리라.
心隨萬境轉    轉處實能幽
隨流認得性    無喜復無憂

이때 학의 무리들이 이 게송을 듣고 울면서 날아갔다. 존자가 가부좌를 틀고서 조용히 열반에 드시니, 학륵나와 보인왕이 탑을 세웠다. 이때가 후한의 환제桓帝 19년 을사년乙巳年이었다.


제23조 학륵나鶴勒那[‘늑나’는 산스크리트이고, ‘학’          은 한문의 음이다. 이 존자가 세상에 나왔을 때 항          상 학의 무리들이 감응해서 연모했기 때문에 생긴           이름이다.]

그는 월지국月氏國 사람으로서 종성은 바라문이고, 아버지는 천승千勝이요, 어머니는 금광金光이다. 그들은 아들이 없어서 7불佛의 금당金幢에 빌었는데, 어머니의 꿈에 수미산 정상에서 한 신동神童이 금가락지[金環]를 들고 와서 “내가 왔소”라고 말하는 것을 듣고 깨어나 태기가 있었다. 나이 일곱 살이 되었을 때에 마을을 놀러 다니다가 동네 사람들이 굿[淫祀]을 하는 것을 보고 곧 당집[廟]으로 들어가서 꾸짖었다.
“너는 화禍와 복福을 허망하게 일으켜서 허깨비로 세상 사람을 현혹시키며, 해마다 짐승을 희생하여 소비하니 살생이 어찌 이리도 심한가.”
말을 마치자 당집[廟貌]이 홀연히 무너지니, 이로 인해 마을 사람들이 그를 ‘성자聖子’라고 불렀다. 나이 22세에 출가하여 30세에 마나라摩拏羅 존자를 만나서 정법안장正法眼藏을 부촉 받았다.
교화를 행하다가 중인도中印度에 이르렀는데, 그 나라 왕의 이름은 무외해無畏海였다. 그는 불법을 착실히 믿었으므로 존자가 그에게 정법의 차제次第를 설해 주었는데, 왕의 눈에 홀연히 두 사람이 소복을 입고 존자에게 예배하는 모습이 보였다. 왕이 물었다.
“이는 누구인가요?”
존자가 대답했다.
“이들은 일월천자日月天子인데, 제가 옛적에 법을 설한 적이 있기 때문에 예배하러 온 것입니다.”
그렇게 한참 있다가 모습이 보이지 않더니 기이한 향기만이 남았다. 왕이 물었다.
“일월日月의 국토는 얼마나 되는가요?”
“천 분의 석가부처님께서 교화하시는 세계에 제각기 백억의 수미산과 일월이 있으니, 제가 자세히 말하려고 해도 다할 수 없습니다.”
왕이 이 말을 듣고 몹시 기뻐하였다.
당시 존자는 위없는 도를 연설해서 인연 있는 중생을 제도하셨는데, 수제자[上足]인 용자龍子가 요절夭折하였다. 그의 형 사자師子는 널리 통하고 많이 알았으나 바라문을 섬겼는데, 그의 스승도 죽었던 차에 동생마저 죽자 존자에게 귀의하면서 물었다.
“제가 도를 구하고자 하는데 어떻게 마음을 써야 하겠습니까?”
존자가 대답했다.
“네가 도를 구하고자 하면 마음을 쓸 것이 없느니라.”
“이미 마음을 쓸 것이 없다면, 누가 불사佛事를 짓습니까?”
“네가 만일 쓰임[用]이 있다면 공덕이 아니요, 네가 만일 지음[作]이 없다면 그것이 불사이니라. 경에 말하기를 ‘내가 지은 공덕이라고 해서 내 것[我所]이랄 것이 없다’고 하였기 때문이니라.”
사자가 이 말을 듣고서 곧 부처의 지혜에 들어갔다. 이때에 존자가 홀연히 동북쪽을 가리키면서 물었다.
“기상氣象이 어떻게 보이는가?”
사자가 대답했다.
“제가 보기에는 흰 무지개와 같은 기운이 천지를 관통하는 것 같습니다.”
다시 검은 기운이 다섯 갈래로 뻗쳐서 그 가운데를 흐르니, 존자가 물었다.
“저 징조는 무엇이겠는가?”
“모르겠습니다.”
“내가 입멸하고서 50년 후에 북천축국에서 환란이 일어나서 그대의 몸에도 미칠 것이다. 나는 곧 열반에 들겠으니, 이제 정법안장을 그대에게 부촉한다. 잘 수호해서 지녀라.”
그리고는 게송을 설하였다.

마음의 성품을 깨달아 알 때는
부사의不思議라고 말할 수 있으나
완전히 깨달으면 말할 수조차 없나니
말할 수 있다면 안다고 말하지 마라.
認得心性時    可說不思議
了了無可得    得時不說知

사자師子 비구는 게송을 듣고 기뻐했지만, 장차 어떤 환란을 당할지는 깨닫지 못했다. 존자가 비밀리에 보여 주고, 말을 마치고는 열여덟 가지 변화를 나타낸 뒤에 열반에 들었다. 화장을 마친 뒤에 사리를 나누어서 제각기 탑을 세우려 하니, 존자가 다시 공중에 나타나서 게송을 말했다.
 
한 법이 일체 법이니
일체가 한 법에 포섭되네.
내 몸은 있지도 없지도 않거늘
어찌하여 일체의 탑을 나누려 하는가?
一法一切法    一切一法攝
吾身非有無    何分一切塔

대중이 게송을 듣고는 탑을 나누지 않고, 사리가 나온 자리에다 탑을 세웠다. 이때가 후한後漢 헌제獻帝 20년 기축년己丑年이었다.


제24조 사자師子 비구比丘

그는 중인도 사람으로서 종성은 바라문이었다. 법을 얻고서 사방을 유행遊行하다가 계빈국罽賓國에 이르렀다. 그때 파리가波利迦라는 자가 본래 선관禪觀을 익혔기 때문에 선정禪定의 무리, 지견知見의 무리, 형상에 집착하는[執相] 무리, 형상을 버리는[捨相] 무리, 말을 하지 않는[不語] 무리 등 다섯 무리가 있었다. 존자가 그들을 꾸짖어서 교화하자 네 무리는 모두 묵묵히 마음으로부터 복종하였으나, 오직 선정의 스승인 달마달達磨達이라는 사람만이 네 무리가 질책을 받았다는 말을 듣고 분개해서 달려왔다. 
존자가 물었다.
“그대는 선정을 익히면서 어찌하여 여기에 왔는가? 이미 여기까지 왔다면 어찌하여 선정을 익힌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달마달이 대답했다.
“제가 비록 여기까지 왔으나 마음은 어지럽지 않습니다. 선정은 사람을 따라 익히는 것이니, 어찌 처소處所가 있겠습니까?”
“그대가 이미 왔으므로 그 익힘도 또한 왔을 것이며, 이미 처소가 없다면 어찌 사람이 익히는 데 있다고 하겠는가?”
“선정이 사람을 익히기 때문이지, 사람이 선정을 익히는 것은 아닙니다. 제가 비록 여기에 왔으나, 그 선정을 항상 익히고 있습니다.”
존자가 말했다.
“사람이 선정을 익히는 것이 아니고 선정이 사람을 익히기 때문이라면, 스스로 왔을 때에는 그 선정을 누가 익히는가?”
“맑고 밝은 구슬이 안팎에 티가 없듯이, 선정을 통달하면 반드시 그와 같을 것입니다.”
“선정을 통달하면 한결같이 밝은 구슬과 같으리라. 하지만 지금 그대를 보건대 그와 같은 구슬의 무리는 아니다.”
“그 구슬이 밝게 사무치면 안팎이 다 정定인 것처럼, 제 마음의 어지럽지 않음도 그와 같이 맑습니다.”
“이 구슬은 안팎이 없는데, 그대는 어찌하여 능히 정定하다고 말하는가? 더러운 것들이 요동치 않을 뿐이니, 이 정定은 청정하지 않다.”
달마달은 존자의 깨우침을 받고서 심지心地가 환하게 밝아졌다. 존자는 다섯 무리를 거두어 그 명성이 가깝고 먼 곳에 퍼졌다. 그리하여 바야흐로 제자를 구하게 되었는데, 어느 장자가 아들을 데리고 와서 존자에게 물었다.
“이 아이의 이름은 사다斯多인데, 태어날 때부터 왼손을 쥐고 있습니다. 이제 장성했건만 끝내 펴질 않고 있으니, 바라옵건대 존자께서 전생의 인연을 보여 주십시오.”
존자가 그를 보자 즉시 손으로 어루만지면서 말했다.
“내 구슬을 돌려다오.”
동자가 갑자기 손을 펴고 구슬을 받들어 올리니, 대중이 모두 깜짝 놀랐다. 존자가 말했다. 
“내가 전생에 스님이었을 때 바사婆舍라는 동자가 있었다. 당시 내가 서해 용왕의 재齋에 갔다가 구슬 보시를 받아서 그에게 맡겼었는데, 이제 내 구슬을 돌려주는 것이 이치에 맞지 않은가?”
장자가 드디어 그 아들을 놓아 주어 출가케 하니, 존자가 곧 구족계를 주고는 전생의 인연에 따라서 바사사다婆舍斯多라고 이름을 지었다. 존자는 이어서 그에게 분부하였다.
“나의 스승이 비밀히 예언하신 바가 있으니, 오래지 않아서 재난을 겪으리라. 이제 그대에게 여래의 정법안장正法眼藏을 부촉하나니, 그대는 잘 보호하여서 미래의 유정들을 두루 구제하라.”
이어서 게송을 말했다.

올바로 지견知見을 설할 때에
지견은 모두가 마음이다.
당장의 마음이 곧 지견이요
지견은 곧 지금이다.
正說知見時    知見俱是心
當心卽知見    知見卽于今

존자가 게송을 말한 뒤에 승가리(僧伽梨:袈裟)를 사다에게 비밀히 전해 주고는, 다른 나라에 가서 기연機緣에 따라 교화를 베풀라고 하였다. 사다는 분부를 받고서 곧바로 남천축南天竺으로 갔다.
그러나 존자는 ‘환난을 구차하게 면하려는 것은 옳지 못하다’고 생각하고는 홀로 계빈국에 머물렀다. 당시 그 나라에는 두 외도가 있었는데, 하나는 마목다摩目多이고, 또 하나는 도락차都落遮로서 온갖 요술[幻法]을 배워 가지고 함께 혼란을 일으키려 하였다. 그리하여 거짓으로 스님의 형상을 꾸미고는 왕궁으로 잠입하면서 말했다.
“성공하지 못하면 죄를 스님에게로 돌리자.”
요망한 짓을 스스로 조작하고 나니, 재앙이 잇달아 일어나 일을 완전히 그르치게 되었다. 그러자 왕은 과연 성을 내었다.
“내가 본래 마음으로부터 삼보에 귀의했는데, 어쩌면 이다지도 한결같이 나를 해치려고 하는가?”
그리고 그는 곧 가람伽藍을 파괴하고 불자佛子들을 모두 죽이라는 명을 내렸다. 그리고는 자기 자신은 손수 칼을 들고 존자의 처소로 가서 따졌다.
“스님은 5온蘊이 공함을 깨달았소?”
존자가 대답했다.
“이미 5온의 공함을 깨달았습니다.”
“생사를 여의었소?”
“이미 생사를 여의었습니다.”
“이미 생사를 여의었다면 나에게 머리를 줄 수 있겠군.”
“몸도 내 것이 아니거늘 어찌 머리를 아끼겠습니까?”
왕이 즉시 칼을 휘둘러서 존자의 머리를 끊으니, 흰 젖[白乳]이 몇 척이나 치솟았고, 왕의 오른팔도 땅에 떨어졌다가 7일 만에 죽었다.
태자 광수光首가 탄식하였다. 
“우리 아버지는 무엇 때문에 스스로 재앙을 부르셨단 말인가?” 
이때 어떤 상백산象白山 선인이 인과에 깊이 밝아서 즉시 광수에게 전생의 인연을 자세히 설명해 줌으로써 그가 지녔던 의심의 그물을 풀게 하였다.[자세한 내용은 󰡔성주집聖冑集󰡕․󰡔보림전寶林傳󰡕에 기재되어 있다.] 
그리하여 사자 존자의 시체를 거두어 탑을 세우게 하였으니, 이때가 위魏의 제왕齊王 20년 기묘년己卯年이었다.[고귀향공高貴鄕公 6년으로 써야 한다. 제齊나라 왕인 방芳은 왕에 오른 지 모두 15년 만에 폐위되었다. 󰡔정종기󰡕에서는 “󰡔보림전󰡕에는 기묘己卯라고 잘못 기재되어 있으니, 제왕齊王 방芳은 정묘년丁卯年이다. 그러면 이것은 곧 8년이 된다”라고 하였다.]
사자 존자가 바사사다에게 심법心法을 부촉할 때 옷을 신표信標로 하여 정통 후계자로 삼았고, 이외에 방계로 나온 달마달 이하 4세에 이르는 22인의 조사가 있다. 


제25조 바사사다婆舍斯多

그는 계빈국罽賓國 사람으로서 성姓은 바라문婆羅門이요, 아버지는 적행寂行이고 어머니는 상안락常安樂이다. 애초에 어머니가 신검神劍을 얻는 꿈을 꾸었는데, 이로 인해 태기가 있었다. 탄생한 뒤에는 왼손을 쥐고 있었는데, 사자 존자를 만나서 숙세의 인因이 발하여서 심인心印 마음과 마음으로 법을 주고받는 법法을 말한다.
을 비밀히 전수 받았다.
나중에 남천축南天竺으로 가는 길에 중인도中印度에 이르렀는데, 그 나라의 왕王인 가승迦勝이 예를 갖추어서 공양하였다. 당시 무아존無我尊이라는 외도가 예전부터 왕의 존중을 받았는데, 그는 조사(바사사다)가 온 것을 질투했다. 그리하여 진리의 뜻에 관한 논쟁을 일으켜서 그를 이겨 자신의 입지를 확고히 하길 원했다. 그가 왕의 앞에서 조사에게 말했다. 
“나는 침묵의 논의[默論]를 이해하므로 말을 빌리지 않습니다.”
조사가 대답했다.
“누가 이기고 지는 것을 압니까?”
“이기고 짐을 다투는 것이 아니라, 다만 그 뜻[義]만을 취합니다.”
“그대는 무엇을 뜻으로 삼습니까?”
“무심無心을 뜻으로 삼습니다.”
“그대가 이미 무심이라 했거늘, 어찌 뜻을 얻겠습니까?”
“제가 설한 무심은 이름[名]에 해당할 뿐 뜻[義]이 아닙니다.”
“그대가 설한 무심은 이름에 해당할 뿐 뜻이 아니라고 하지만, 내가 설한 비심非心은 뜻에 해당하지 이름이 아닙니다.”
“뜻에 해당하지 이름이 아니라고 하는데, 누가 능히 뜻을 판단합니까?”
“그대는 이름일 뿐 뜻이 아니라고 했는데, 이 이름은 무엇을 이름한 것입니까?”
“뜻이 아님을 판단하기 때문에 이 이름은 이름이 없습니다.”
“이름이 이미 이름이 아니라면 뜻도 또한 뜻이 아니리니, 판단하는 이는 누구이며 판단되는 대상은 어떤 것입니까?”
이와 같이 59번을 주고받으면서 따지니, 외도가 말문이 막히면서 항복하였다. 이때에 조사가 홀연히 북쪽을 향해 합장하고는 길게 탄식하였다.
“나의 스승, 사자 존자께서 오늘 환난을 당하셨으니, 참으로 슬픈 일이구나.”
그리고는 곧 왕을 하직하고 남쪽으로 떠나서 남천축에 이르러 산골짜기에 은둔하였다.
당시 그 나라의 왕은 천덕天德이라 하였는데, 조사를 맞이하면서 공양을 청하였다. 왕에게는 두 아들이 있었는데, 한 명은 흉악하고 난폭하며 힘[色力]도 매우 세었으나, 또 한 명은 성품이 부드럽고 온화하며 항상 병에 시달렸다. 조사가 그 일에 대하여 인과를 설명해 주니, 왕은 단박에 의심하던 바가 모두 풀렸다.
또 어떤 주술사呪術師가 조사의 도를 시기하여 남몰래 독약을 음식에 넣었다. 조사는 알면서도 그 음식을 먹었는데, 도리어 그가 화를 당하자, 결국 조사에게 출가해서 구족계를 받았다.
그로부터 60년 뒤에 태자 득승得勝이 왕위에 올랐는데, 다시 외도를 믿으면서 조사에게 환난이 미쳤다. 태자 불여밀다不如密多가 간하다가 갇혔는데, 왕이 갑자기 조사에게 물었다. 
“내 나라에는 본래 요망함이 끊겼는데, 대사께서 전하는 것은 어떤 종지인가요?”
조사가 대답했다.
“대왕의 나라에는 예로부터 진실로 삿된 법이 없습니다. 내가 얻은 것은 부처님의 종지입니다.”
왕이 말했다.
“부처님께서 열반하신 지 이미 1,200년이 넘었는데, 대사께서는 누구에게서 받았습니까?”
“가섭[飮光] 대사께서 직접 부처님의 심인을 전해 받으신 뒤에 차례차례 이어져서 24세世인 사자 존자에 이르렀는데, 저는 그 분에게서 받았습니다.”
“제가 듣건대 사자 비구는 참수 당하는 형벌을 면치 못했다는데, 어찌 뒷사람에게 법을 전할 수 있단 말이오?”
“나의 스승은 환난이 일어나기 전에 은밀히 나에게 옷과 법게(法偈)를 신표로 전해 줌으로써 스승과 제자의 전승을 드러내었습니다.”
“그 옷이 어디에 있습니까?”
조사가 곧 바랑[囊]에서 옷을 꺼내어 보이자, 왕은 태워 버리라고 명령하였다. 그러나 가사는 오색이 선명해지면서 나무가 다 탄 뒤에도 여전히 그대로였다. 이에 왕은 즉시 뉘우치면서 사자 존자께 예를 다하였고, 조사가 참으로 법을 이은 것이 분명하자, 태자를 풀어 주었다.
태자는 마침내 출가하기를 원하였는데, 조사祖師가 태자에게 물었다.
“그대가 출가하려는 것은 무엇을 하기 위함인가?”
불여밀다가 대답했다.
“제가 출가한다면 그 일을 하지 않겠습니다.”
“어떤 일을 하지 않으려는가?”
“세속의 일을 하지 않겠습니다.”
“그러면 어떤 일을 하려는가?”
“부처의 일을 하겠습니다.”
“태자는 지혜가 하늘에까지 이르니, 반드시 여러 성인들이 강림하신 몸이 틀림없다.”
그리고 즉시 출가를 허락하니, 6년을 시봉하였다. 그 뒤에 왕궁에서 구족계를 받고 의식[羯磨]을 진행할 때에 땅이 진동하는 등 자못 영험하고 기이한 일이 많이 있었다.
그리하여 조사가 그에게 분부를 내렸다.
“나는 이미 늙었으니 어찌 오래 머물 수 있으랴? 그대는 마땅히 정법안장을 잘 지켜서 유정有情을 널리 제도하라. 나의 게송을 들어라.”

성인이 설하는 지견知見은
경계에 대해 시비가 없네.
내 이제 참다운 성품을 깨달으니
도道도 없고 또한 이치[理]도 없네.
聖人說知見    當境無是非
我今悟眞性    無道亦無理

불여밀다가 게송을 듣고 다시 조사에게 물었다.
“법의法衣를 계속해서 전하오리까?”
조사가 대답했다.
“이 법의는 환난 때문에 임시로 증명을 삼은 것이다. 그대의 몸에는 환난이 없거늘, 어찌 법의에 가탁假託하겠는가? 덕화가 시방에 퍼지면 사람들이 자연히 믿고 향해 오리라.” 
불여밀다가 이 말씀을 듣고는 절하고서 물러갔다. 조사가 신통변화를 나타낸 뒤에 삼매의 불로 스스로의 몸을 태우니, 평지에 쌓인 사리가 한 자[尺]나 되었다. 득승왕이 부도浮圖를 세워서 봉안하니, 이때가 동진東晋의 명제明帝 태녕太寧 3년 을유년乙酉年이었다. 


제26조 불여밀다不如密多

그는 남인도南印度 득승왕得勝王의 태자였다. 제도 받아 법을 전해 얻은 뒤에 동인도東印度에 이르렀는데, 그 나라의 왕 견고堅固는 외도의 스승인 장조長爪 범지梵志를 받들고 있었다.
존자가 그 나라에 막 이르렀을 때 왕과 범지는 모두 흰 상서로운 기운이 위아래로 뻗은 것을 보았다. 왕이 말했다. 
“이것은 어떤 상서로움이오?” 
범지는 존자가 국경에 들어왔음을 이미 알았으나, 왕의 마음이 불법佛法으로 옮겨갈까 걱정이 되어서 거짓으로 대답했다.
“악마가 나타날 징조일 뿐입니다. 무슨 상서로움이 있겠습니까?”
그리고는 자기의 무리를 규합해서 의논하였다.
“불여밀다가 도성都城에 들어온다면 누가 그를 꺾을 수 있겠는가?”
제자들이 모두 말했다.
“저희들은 제각기 주술呪術이 있어서 천지를 움직이고 물과 불에도 들어갈 수 있는데, 어찌하여 걱정하십니까?”
존자가 도착해서 먼저 성의 담 위에 검은 기운이 서린 것을 보고는 말하였다. 
“조그마한 환난이 있겠구나.”
그리고 곧바로 왕에게로 가니, 왕이 말했다.
“대사는 무엇 때문에 오셨소?”
존자가 대답했다.
“중생을 제도하려 합니다.”
“어떤 법으로 제도하시겠소?”
“각자의 부류에 맞는 법으로 제도합니다.”
이때 범지가 이 말을 듣고 분함을 이기지 못한 나머지 즉시 환술幻術로써 큰 산을 변화시켜 존자의 정수리 위에 얹어 두었다. 그러나 존자가 손가락으로 가리키자, 홀연히 그들의 머리 위로 옮아갔다. 범지들은 겁이 나서 모두 존자에게 귀의하니, 존자가 그들의 어리석은 미혹을 가엾이 여겨서 다시 가리키자 허깨비 산은 즉시 사라졌다. 그리고는 왕에게 법의 요체를 말해 주어서 그로 하여금 진승眞乘에 나아가게 하였다. 또 그는 왕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 나라에 성인이 나서 나의 법을 이을 것입니다.”
당시 바라문의 아들로서 스무 살쯤 된 동자가 있었는데, 어려서 부모를 잃었으므로 이름도 성도 몰랐다. 혹 스스로가 영락瓔珞이라 말했기 때문에 영락 동자라 불렸다. 그는 마을로 다니며 걸식을 하면서 세월을 보냈는데, 마치 상불경常不輕 󰡔법화경󰡕에 나오는 보살의 이름. 재가자․출가자를 가리지 않고 사람을 만날 때마다 절을 하면서 “내가 당신들을 공경해서 가벼이 여기지 않으니, 그대들은 마땅히 보살도를 수행해서 반드시 성불하리라”고 하였다.
의 부류처럼 누가 “너는 어찌하여 걸음이 급한가?”라고 물으면, “그대는 어찌하여 걸음이 느린가?”라고 대답했으며, 혹 “성姓이 무엇인가?”라고 물으면, “그대의 성과 같다”고 대답하니, 아무도 그 까닭을 알지 못했다.
뒤에 왕과 존자가 같은 수레를 타고 나오는데, 영락 동자가 그 앞에 와서 머리를 조아렸다.
존자가 물었다.
“너는 지난 일을 기억하겠느냐?”
동자가 대답했다.
“제가 생각하건대 아득히 먼 겁에 스님과 같이 살았는데, 스님은 마하반야摩訶般若를 연설하셨고, 저는 매우 깊은 수다라修多羅를 읽었습니다. 아마도 오늘의 일이 옛 인因과 계합하는가 싶습니다.”
존자가 다시 왕에게 말했다.
“이 동자는 다른 이가 아니라 대세지보살大勢至菩薩입니다. 이 성인의 뒤에 다시 두 사람이 나올 터인데, 하나는 남인도를 교화할 것이고, 하나는 진단(震旦:中國)에 인연이 있으나 4․5년 안에 다시 이리로 돌아올 것입니다.”
그리하여 옛 인연에 따라 반야다라般若多羅라 이름을 짓고 정법안장을 전해 주었으며, 아울러 게송을 말했다.

참 성품이 심지心地에 갈무리되어 있으니
처음[頭]도 없고 또한 끝[尾]도 없네.
인연에 감응해서 사물을 교화하니
방편으로 지혜라고 부를 뿐이네.
眞性心地藏    無頭亦無尾
應緣而化物    方便呼爲智

존자가 법을 전한 뒤에 왕에게 하직하였다.
“저는 교화의 인연이 이미 다하여서 열반에 들려고 합니다. 바라건대 대왕께서는 최상승(最上乘:佛法)을 외호外護하는 일을 잊지 마옵소서.”
그리고는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서 가부좌를 틀고 열반에 드시니, 삼매의 불이 일어나서 스스로 태웠다. 왕이 사리를 거두어서 탑을 세우고 봉안하였는데, 이때가 동진東晋의 효무제孝武帝 태원太元 13년 무자년戊子年이었다.


제27조 반야다라般若多羅

그는 동인도東印度 사람이다. 법을 얻은 뒤에 교화를 행하면서 남인도에 이르렀는데, 그 나라의 왕 향지香至가 불법을 몹시 숭상해서 공양을 존중하고 헤매는 무리들을 구제해 주었으며, 아울러 값으로 따질 수 없는 보배구슬을 보시하였다. 당시 왕에게는 세 아들이 있었는데 그 막내가 총명하였다. 존자가 그들의 얻은 바(지혜)를 시험코자 해서 보시 받은 구슬을 가지고 세 왕자에게 물었다.
“이 구슬이 둥글고 밝은데, 이에 미칠 것이 있는가?”
첫째 왕자 목정다라目淨多羅와 둘째 왕자 공덕다라功德多羅는 모두가 똑같이 대답했다.
“이 구슬은 7보 중에서도 존귀한 것이라서 이보다 더한 것이 없습니다. 존자의 도력이 아니라면 누가 그것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셋째 왕자 보리다라菩提多羅는 이렇게 대답했다.
“이는 세상의 보배이긴 하지만 최상의 것은 되지 못합니다. 모든 보배 중에서는 법의 보배가 으뜸입니다. 또 이 구슬의 빛은 세간의 빛이라서 최상의 것이 아니니, 모든 빛 중에서는 지혜의 빛이 최상입니다. 또 이 구슬의 밝음은 세간의 밝음이라서 최상의 것이 못되니, 모든 밝음 중에서는 마음의 밝음이 최상입니다. 이 구슬의 광명은 능히 스스로 비추지를 못하고 반드시 지혜의 광명을 빌려야만 그 광명으로 이것을 분별합니다. 이미 이것을 분별하고 나면 구슬인 줄 알게 되고, 이미 구슬인 줄 알게 되면 그것이 보배임을 밝히게 되니, 만약 보배임을 밝혔다면 보배는 스스로 보배가 아니고, 만약 구슬임을 분별했다면 구슬은 스스로 구슬이 아닙니다. 구슬이 스스로 구슬이 되지 못한다는 것은 반드시 지혜의 구슬을 빌려서 세간의 구슬을 분별한다는 것이고, 보배가 스스로 보배가 되지 못한다는 것은 반드시 지혜의 보배를 빌려서 법의 보배를 밝힌다는 것입니다. 그런즉 대사께서 그런 도가 있으면 그런 보배가 즉시 나타나듯이, 중생들에게도 도가 있으면 마음의 보배가 역시 그렇게 나타납니다.”
존자가 그의 변설과 지혜에 탄복하고서 다시 물었다.
“모든 물건 가운데 어떤 물건이 모습이 없는가?”
“모든 물건 가운데서 일어나지 않음[不起]이 모습이 없습니다.”
“모든 물건 가운데서 어떤 물건이 가장 높은가?”
“모든 물건 가운데서 남[人]과 내[我]가 가장 높습니다.”
또 물었다.
“모든 물건 가운데서 어떤 물건이 가장 큰가?”
“모든 물건 가운데서 법성法性이 가장 큽니다.”
존자는 그가 법을 계승할 자임을 알았으나 때가 아직 이르지 않았으므로, 말없이 그를 인정하였다. 
뒤에 향지왕이 세상을 떠날 때에 다른 이들은 모두 통곡을 하는데, 셋째 왕자 보리다라만이 영구靈柩 앞에서 선정에 들었다가 7일 만에 나와서 출가하겠다고 하였다. 존자가 구족계를 주고 나서 그에게 분부했다.
“여래께서 정법안장을 대가섭에게 부촉했고, 그런 식으로 차례차례 전해지면서 나에게 이르렀다. 내가 이제 그대에게 부촉하나니, 나의 게송을 들어라.”

마음 바탕에서 온갖 종자가 생기고
현실로 인해 다시 이치가 생겨나네.
결과가 가득 차면 보리가 원만해지고
꽃이 피니 세계가 일어나도다.
心地生諸種    因事復生理
果滿菩提圓    華開世界起

존자가 법을 부촉한 뒤에 바로 그 자리에서 일어나 좌우의 손을 펴서 각각 광명을 놓으니, 스물일곱 줄기로 뻗으면서 오색이 찬란하였다. 그리고 몸을 허공으로 일곱 다라수多羅樹만큼 솟구치고는 삼매의 불로 스스로를 태우니, 허공에서 사리가 비 오듯이 하였다. 사리를 거두어서 탑을 세우니, 이때가 송宋의 효무제孝武帝 대명大明 원년元年 정유년丁酉年이었다.[󰡔정종기󰡕에서는 “송나라 효무제 때이다”라고 하였다. 또 그 주注에서는 “달마達磨 67년으로 계산했을 때 당시는 송나라 효무제 건원建元 원년 갑오甲午이다”라고 하였다.] 


경덕전등록 제3권






중화中華의 다섯 조사와 방계로 나온 존숙尊宿 25인

제28조 보리달마菩提達磨
도육道育 선사禪師[보리달마에서 방계로 나온 3인]
도부道副 선사
니총지尼總持
  [이상 3인은 기연機緣할 어구語句가 없으므로 기록하지 않음]

제29조 혜가慧可 대사大師
승나僧那 선사[혜가 대사에서 방계로 나온 7세世 총 17인]
향向 거사居士
상주相州 혜만慧滿 선사
  [이상 3인은 기록에 보임]
현산峴山 신정神定 선사
보월寶月 선사
화한華閑 거사居士
대사大士 화공化公
화공和公
요寥 거사
담수曇邃[화한華閑 거사에서 나옴]
연릉延陵 혜간慧簡[담수曇邃에서 나온 2인]
팽성彭城 혜차慧瑳
정림사定林寺 혜강慧綱
육합六合 대각大覺[혜강慧綱에서 나옴]
고우高郵 담영曇影[대각大覺에서 나옴] 
태산泰山 명련明練[담영曇影에서 나옴]
양주揚州 정태靜泰[명련明練에서 나옴]
  [이상 14인은 기연할 어구가 없으므로 기록하지 않음]

제30조 승찬僧璨 대사大師
제31조 도신道信 대사[방계로 나온 76인이 제4권에 보임]
제32조 홍인弘忍 대사[방계로 나온 107인이 제5권에 보임]


중화中華의 다섯 조사와 방계로 나온 존숙尊宿 25인 이는 명본明本의 목록으로 앞의 목록과는 다른 점이 있으므로 실었다.


제28조 보리달마菩提達磨
방계로 나온 3인
  ① 도육道育 선사禪師
  ② 도부道副 선사
  ③ 니총지尼總持
    [이상 3인은 기연할 어구가 없으므로 기록하지 않음]

제29조 혜가慧可 대사大師[방계로 나온 6세世 총 17인의 조사.     3인은 기록에 보임]
승나僧那 선사
향向 거사居士
상주相州 혜만慧滿 선사
현산峴山 신정神定 선사
보월寶月 선사
화한華閑 거사居士
대사大士 화공化公
화공和公
요寥 거사
화한華閑 거사에서 나온 1인
  담수曇邃
담수曇邃에서 나온 3인
  ① 연릉延陵 혜간慧簡
  ② 팽성彭城 혜차慧瑳
  ③ 정림사定林寺 혜강慧綱
혜강慧綱에서 나온 1인
  육합六合 대각大覺
대각大覺에서 나온 1인 
  고우高郵 담영曇影 
담영曇影에서 나온 1인
  태산太山 명련明練
명련明練에서 나온 1인
  양주揚州 정태靜泰
  [이상 14인은 기연할 어구가 없으므로 기록하지 않음] 

제30조 승찬僧璨 대사大師
제31조 도신道信 대사[방계로 나온 76인이 제4권에 보임]
제32조 홍인弘忍 대사[방계로 나온 107인이 제4권에 보임]


제28조 보리달마菩提達磨

그는 남천축국南天竺國 향지왕香至王의 셋째 아들이니, 종성은 찰제리刹帝利요, 본래의 이름은 보리다라菩提多羅이다.
나중에 제27조 반야다라般若多羅가 본국에 돌아와서 왕의 공양을 받은 일이 있었는데, 반야다라는 보리다라의 비밀스런 자취를 알았기 때문에 두 형과 함께 보시 받은 보배 구슬을 판별케 함으로써 심요心要를 밝히게 하였다. 조금 있다가 존자(반야다라)가 말했다.
“그대는 이미 모든 법을 통달했다. 무릇 달마達磨라 함은 통달하고 크다는 뜻이니, 마땅히 이름을 달마라 하라.”
그리하여 보리달마菩提達磨라고 이름을 고치고 나서 대사는 곧 존자에게 여쭈었다.
“제가 이미 법을 얻었습니다만, 어느 나라로 가서 불사佛事를 지으리까? 바라옵건대 일러 주옵소서.” 
존자가 대답했다.
“그대가 비록 법을 깨달았다고 해도 멀리 유행하지는 말라. 우선 남천축에 머물렀다가, 내가 열반에 들고 나서 67년 뒤에 중국[震旦]으로 가서 큰 법약法藥을 마련해 놓고 곧바로 상근기[上根]들을 접하라. 행여 너무 빨리 가지는 마라. 하루아침에 쇠락하게 될 것이니라.”
대사가 다시 여쭈었다.
“그 국토에 법기法器가 될 만한 대사大士가 있습니까? 천년 뒤의 재난을 남겨 두지 않겠습니까?”
“그대가 교화할 지역에서 보리를 얻는 이가 셀 수 없을 것이다. 내가 열반에 든 지 60여 년 뒤에 그 나라에 재난이 있으리니, 수중문포水中文布 물속에 물결이 퍼져 나간다. 즉 보리류지菩提流支의 유지流支를 비유한 것으로, 동토에서 달마를 해칠 사람은 보리류지임을 예언한 것이다. 
를 스스로 잘 항복시켜라. 그대가 갔을 때 남쪽에는 머물지 말지니, 거기에는 유위有爲의 공덕만을 좋아하는 사람만 있어서 부처의 이치[佛理]를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또 설사 그곳에 갔더라도 오래 머물지는 말라. 나의 게송을 들어라.”

길을 가고 물을 건너다가 행行자 가운데 수水자를 끼우는 파자법破字法을 써서 연衍자를 만든 것으로서 양梁의 소연蕭衍을 예언한 것이다.
 다시 양을 만나니 여기서 양羊은 양陽과 같은 것으로서 낙양洛陽에 이른다는 것을 예언한 것이다.

혼자서 쓸쓸하게 강을 건넌다. 양梁 무제武帝와 헤어져 양자강楊子江을 건너는 것을 예언한 것이다.

두 쌍의 코끼리와 말은 두 마리의 코끼리와 말에서 두 마리의 코끼리는 두 임금이요, 두 마리의 말은 보리류지菩提流志와 광통光統 두 스님이다. 
 햇볕 아래서 애처로운데
두 그루의 계수나무는 오랫동안 무성하리라. 두 그루의 계수나무란 소림少林이요, 오랜만이라는 ‘구久’자는 구九과 같은 것으로서 9년 만에야 그대의 법이 비로소 번성하리라는 것이다.

路行跨水復逢羊    獨自悽悽暗度江
日下可憐雙象馬    二株嫩桂久昌昌

그리고 다시 여덟 게송을 읊었는데, 모두가 불교의 흥망성쇠를 예언한 것이다.[자세한 내용은 󰡔보림전󰡕․󰡔성주집󰡕에 기재되어 있다.]
대사가 공손히 가르침을 받으면서 곁에서 40년을 모셨는데, 잠시도 소홀한 적이 없었다. 존자가 세상을 떠난 뒤에 본국에서 교화를 폈다.

당시 두 법사가 있었으니, 하나는 불대선佛大先이고, 또 하나는 불대승다佛大勝多라 하는데, 본래 대사와 함께 불타발타佛陀跋陀의 소승선관小乘禪觀을 배웠었다. 불대선이 반야다라 존자를 만나서 소승을 버리고 대승으로 나아가 스승과 함께 교화를 펴니, 그때의 사람들이 두 감로문甘露門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불대승다의 가르침은 다시 갈래가 나누어지면서 여섯 종宗이 되었는데, 첫째는 유상종有相宗이요, 둘째는 무상종無相宗이요, 셋째는 정혜종定慧宗이요, 넷째는 계행종戒行宗이요, 다섯째는 무득종無得宗이요, 여섯째는 적정종寂靜宗이었다. 이들은 제각기 자기의 견해를 고집하여 따로 따로 교화의 원천을 펼쳤는데, 마을 곳곳마다 무리가 매우 번성하였다.
달마 대사가 한숨지어 탄식하면서 말했다.
“저 한 스승이 자신도 이미 소의 발자국에 빠졌거늘, 더구나 어지럽게 번성하여 여섯 종파로 나누어졌구나. 내가 없애 주지 않으면 영원히 삿된 소견에 얽매일 것이다.”
이렇게 말하고는 은미隱微하게 신력神力을 나타내어서 첫째의 유상종有相宗에 가서 물었다.
“일체의 모든 법에서 어떤 것을 실상實相이라 이름하는가?”
그 무리 가운데 어른인 살바라薩婆羅라는 이가 대답했다.
“모든 모습 속에서 모든 모습을 섞지 않는 것 모든 형상 외에 따로 실상을 취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을 실상이라고 이름합니다.”
대사가 말했다.
“일체의 모습이면서도 섞지 않는 것을 실상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어떻게 정定해진 것인가?”
“모든 모습 가운데는 진실로 정해져 있는 것이 없습니다. 만일 모든 모습이 정해졌다면 어찌 진실이라고 이름하겠습니까?”
“모든 모습을 정하지 못함을 문득 실상이라고 이름한다면, 그대는 지금 정하지 못한 것을 어떻게 얻었는가?”
“내가 정하지 못한다고 한 것은 모든 모습을 말한 것이 아니니, 모든 모습을 설할 때에도 그 뜻은 마찬가지입니다.”
“그대는 정해지지 않음이 마땅히 실상이라고 말하지만, 정해지지 않음을 정했기 때문에 곧 실상이 아니다.”
“정해지지 않은 것을 정했으므로 실상이 아니라 하나, 나의 잘못을 아는 까닭에 정한 것도 아니고 변한 것도 아닙니다.”
“그대가 지금 변한 것도 아니라고 한 것을 어찌 실상이라 하겠는가? 이미 변했고 이미 지나간 그 뜻이 또한 그러하다.”
“변치 않는 것은 마땅히 존재하는 것이고, 존재하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不在] 것이니, 이 때문에 실상이 변화해서 그 뜻을 정하는 것입니다.”
“실상은 변치 않는 것이고 변하면 실답지 않으니, 있음과 없음 가운데서 어느 것을 실상이라 하겠는가?”
살바라가 마음속으로 거룩한 대사임을 알자 얽매여 있던 지견이 트여 잠잠히 요달하고, 손으로 허공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이 세간은 상相이 있는 것이지만 또한 능히 공하기도 한 것입니다. 나의 이 몸도 그와 같습니까?” 
대사가 말했다.
“만일 실상을 이해하면 형상 아님[非相]을 보게 되고, 형상 아님을 요달하면 그 색色도 마찬가지로 요달하리니, 색色 속에 있으면서 색의 본체를 잃지 않고 형상 아님 가운데서 형상 있음에 걸리지 않기 때문이다. 만일 이와 같이 이해하면 이것이 실상이라 이름한다.”
그 무리들이 듣고 나서 마음과 뜻이 활짝 트이자 흠모하여 절을 하면서 믿고 받아들였다.
대사는 다시 눈 깜짝하는 사이에 몸을 숨겨서 둘째의 무상종無相宗에 가서 물었다.
“그대가 말한 무상無相은 어떻게 증득하는가?”
그 무리 가운데 바라제波羅提라는 지혜 있는 이가 대답했다.
“내가 무상을 밝히는 것은 마음이 나타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대사가 물었다.
“그대의 마음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어떻게 그것을 밝힌다고 하는가?”
“내가 무상을 밝힘은 마음으로 취하거나 버리지 않는 것이며, 또 밝힐 때를 당해서도 그에 해당하는 자가 없습니다.”
“온갖 있음과 없음에 대해서 마음으로 취하거나 버리지 않고, 또 그에 해당하는 자도 없다는 것은 모든 밝음도 없기 때문이다.”
“부처님의 삼매에 들면 오히려 얻을 바가 없거늘, 하물며 무상이라고 한들 알고자 하겠습니까?”
“모습을 이미 알지 못하는데 누가 있음과 없음을 말하겠으며, 얻을 바도 없는데 어찌 삼매라 하겠는가?”
“내가 증득하지 않는다 함은 증득할 바 없음을 증득하는 것이며, 삼매가 아니기 때문에 내가 삼매라고 말한 것입니다.”
“삼매가 아니라고 하면서 어떻게 그것을 삼매라고 이름하며, 그대가 이미 증득하지 않았다면 증득함이 아닌 것을 어찌 증득한다 하는가?”
바라제는 대사의 변론과 분석을 듣자, 곧 본래 마음을 깨닫고는 대사에게 절하면서 지난 잘못을 참회하였다. 대사는 그에게 수기를 주면서 말했다.
“그대는 마땅히 과果를 얻어서 오래지 않아 증득할 것이며, 이 나라에 악마가 있는데 오래지 않아서 항복시킬 것이다.”
말을 마치자 홀연히 사라져서 셋째인 정혜종定慧宗에 가서 물었다.
“그대들이 배운 정혜定慧는 하나인가, 둘인가?”
그 무리 가운데 바란타婆蘭陀라는 이가 있다가 대답했다.
“우리들의 이 정혜는 하나도 아니요, 둘도 아닙니다.”
“이미 하나도 둘도 아니라면 어찌 정혜라고 하는가?”
“정(定:禪定)에 있어서는 정定이 아니고, 혜慧에 처해서는 혜가 아니니, 하나가 곧 하나가 아니고 둘 또한 둘이 아닙니다.”
“하나에 당當해서 하나가 아니고 둘에 당해서 둘이 아니라면, 이미 정혜가 아닌데 무엇을 가리켜 정혜라 하는가?”
“하나도 아니고 둘도 아니지만 정과 혜는 능히 알 수 있으며, 정도 아니고 혜도 아닌 것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혜가 정을 말미암지 않는다면 그것을 어찌 알겠는가? 하나도 아니고 둘도 아니라면, 정은 무엇이고 혜는 무엇인가?”
바란타가 듣고서 마음의 의혹이 얼음 녹듯이 풀렸다.
대사는 다시 넷째 계행종戒行宗에 가서 물었다.
“무엇을 계라 이름하고, 무엇을 행이라 이름하는가? 이 계행은 하나인가, 둘인가?”
그 무리 가운데 한 사람의 현자賢者가 대답했다
“하나이면서 둘이고, 둘이면서 하나인 것이 모두 거기서 나온 바입니다. 교법에 의거하되 물듦이 없으면, 이것을 이름하여 계행이라고 합니다.”
대사가 다시 물었다. 
“그대가 말한 교법에 의거함이 바로 물듦이 있는 것이다. 하나든 둘이든 모두 타파되었는데, 어찌 교법에 의거한다고 말하겠는가? 이 두 가지가 서로 어긋나서 행에 미치질 못하여 안과 밖이 분명하지 않거늘, 어찌 계라 이름하겠는가?”
“나에게 안과 밖이 있는 것을 저[彼:戒行]는 이미 압니다.[절본浙本에는 ‘기己’자가 ‘이已’자로 되어 있는데, 󰡔광등록廣燈錄󰡕에 의한 것이다. 소본邵本에는 ‘기己’자가 없는데 󰡔보림전󰡕에 의한 것이며, 구본舊本에는 ‘이已’자가 널리 쓰이고 있다. 그러나 󰡔정종기󰡕에는 ‘이以’자로 되어 있어서 어느 것이 옳은지는 미상이다.] 이미 통달한 뒤에는 그것이 곧 계행이니, 만일 서로 어겼다고 말한다면 둘 다 옳기도 하고 둘 다 그르기도 합니다. 말이 청정함에 미치면 바로 계이고 바로 행입니다.”
“둘 다 옳기도 하고 둘 다 그르기도 하다면 어찌 청정이라 하겠으며, 이미 통달했기 때문이라면 어찌 안팎을 말하겠는가?”
현자가 이 말을 듣고 스스로 부끄러워하면서 복종하였다.
대사는 다시 다섯째 무득종無得宗에 가서 물었다.
“그대가 무득無得이라 하는데, 무득은 어떤 얻음인가? 이미 얻은 바가 없다면 얻음 없음[無得]을 얻은 것이다.”
그 무리 가운데 보정寶靜이라는 이가 대답했다.
“내가 말한 무득은 얻음 없음을 얻은 것이 아닙니다. 마땅히 얻을 것을 얻는다고 설해야 하지만 얻음 없음[無得]도 얻음입니다.”
“얻음이 이미 얻지 못함이라면, 그 얻음은 또한 얻음이 아니다. 이미 얻은 것을 얻었다고 말하는데, 얻을 것을 얻었다 함은 무엇을 얻음인가?”
“얻음을 보면 얻음이 아니고, 얻음이 아니라야 얻음이니, 만일 얻지 않음을 보면 이름하여 얻을 것을 얻는다고 합니다.”
“얻음은 이미 얻음이 아니고, 얻을 것을 얻음도 얻음이 없으니, 이미 얻는 바가 없다면 무엇으로써 얻을 것을 얻는다고 해야 하는가?”
보정이 듣고 의혹의 그물이 단박에 제거되었다.
대사는 다시 여섯째 적정종寂靜宗에 가서 물었다.
“무엇을 적정이라 이름하는가? 이 법 가운데서 무엇을 고요[靜]하다고 하며 무엇을 적멸[寂]하다고 하는가?”
그곳에 있는 어떤 존자가 대답했다.
“이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 것을 적멸이라 이름하고, 법에 물들지 않는 것을 고요하다고 이름합니다.”
대사가 다시 물었다. 
“본래 마음이 적멸하지 않다면 적멸과 고요함을 빌릴 필요가 있겠지만, 본래 적멸하므로 어찌 적멸과 고요함을 이용하리오?”
“모든 법이 본래 공空해서 공도 공하기 때문이니, 그 공의 공함 때문에 이름하여 적멸과 고요함[寂靜]이라 합니다.”
“공의 공함도 이미 공했고 모든 법도 마찬가지라서 적멸하고 고요하여 모습이 없거늘, 무엇이 고요하고 무엇이 적멸하겠는가?”
그 존자는 대사의 가르침을 받고 활연히 깨달았다. 
이리하여 여섯 무리가 모두 맹세하고 귀의하니, 이 까닭에 교화가 남천축에 퍼지고 명성이 인도 전역[五印度]에 알려졌으며, 멀고 가까운 곳의 학자들이 바람결에 쏠리듯이 모여들었다. 이렇게 60년을 지나면서 한량없는 무리를 제도하였다.

후에 이견왕異見王을 만났을 때 그가 삼보를 경멸하면서 매양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들었다.
“나의 조상들은 모두가 불법을 믿었으나, 삿된 소견에 빠져서 수명이 길지 못하고 그 타고난 복도 짧았다. 또 내 몸이 곧 부처인데, 어찌 밖에서 구하리오? 선악의 과보는 모두가 꾀가 많은 자들이 멋대로 그 설을 꾸며낸 것이다.”
그리하여 나라 안의 선왕[前王]의 존경을 받던 원로들은 모두가 쫓겨 나갔다. 대사는 이런 사실을 알고 탄식하였다.
‘저 박덕한 사람을 어떻게 해야 구제하겠는가?’
또 이런 생각을 하였다.
‘무상종의 두 우두머리 가운데 하나는 바라제波羅提인데 왕과 인연이 있고 장차 그 과果를 증득할 것이다. 또 하나는 종승宗勝인데 변재가 좋고 박식博識하지만 숙세宿世의 인연이 없구나.’
그때 여섯 종파의 무리들도 제각기 이런 생각을 하였다.
‘불법에 재난이 생겼는데, 스승님은 어찌 혼자만 편히 계실까?’
대사가 멀리서 대중의 뜻을 알고는 손가락을 튀겨서 응답하자, 여섯 무리들이 듣고서 말하였다. 
“이는 우리 스승인 달마 대사께서 우리들에게 신호하는 소리이다. 마땅히 빨리 가서 분부를 받들어야 한다.”
그리고는 곧 대사에게 가서 예배하고 문안하였다. 대사가 물었다.
“지금 잎사귀 하나가 허공을 가렸는데, 누가 베어 버리겠는가?”
종승이 대답했다.
“제가 비록 천박淺薄하지만 감히 그 일을 해 보이겠습니다.”
“그대는 비록 말재주와 지혜가 있기는 하나, 아직 도력道力이 온전치 못하다.”
종승은 이 말을 듣고 속으로 생각하였다.
‘스승께서는 내가 왕을 뵈옵고 큰 불사를 하면 나의 명예는 드러나고 자신의 위신이 깎일까 두려워하시는구나. 설사 그가 복덕과 지혜로써 왕이 되었다 하여도 나는 사문으로서 부처님의 교지敎旨를 받은 사람인데, 어찌 그를 대적하기 어렵겠는가?’
그리고는 몰래 왕의 처소로 가서 법의 요체와 세계의 고락, 인간이나 하늘의 선과 악 등의 일을 자세히 설하였다. 왕은 그와 상대하여 토론을 거듭하는 사이에 모든 이치를 알아챘다.
왕이 물었다.
“그대가 지금 알고 있는 그 법法은 어디에 있소?”
종승이 대답했다.
“왕께서 다스리고 교화하는 그 모든 도에 다 있습니다. 대왕께서 소유한 도는 어디에 있습니까?”
“내가 소유한 도는 장차 삿된 법을 없애겠지만, 그대가 소유한 법은 장차 누구를 항복시키기 위한 것인가?”
대사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고도 종승의 말이 막힌 것을 알았다. 그리하여 급히 바라제에게 말했다.
“종승이 나의 가르침을 받지 않고 몰래 왕을 교화하려다가 잠깐 사이에 굴복하고 말았다. 그대는 빨리 가서 그를 구해 줘라.”
바라제가 공손히 대사의 분부를 받고서 말했다.
“바라옵건대 신력神力을 빌려 주소서.”
말을 마치자 발밑에 구름이 생기더니 왕의 앞에 이르러 잠자코 머물렀다.
이때 왕은 바야흐로 종승에게 물으려 하였으나, 홀연 바라제가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보자 깜짝 놀라면서 문답하던 것을 까맣게 잊고는 이렇게 말했다.
“허공을 타고 온 자가 바른가[正], 삿된가[邪]?”
바라제가 대답했다.
“나는 사邪와 정正이 아니면서도 정正과 사邪로 옵니다. 대왕의 마음이 만약 바르다면 저에게도 삿됨과 바름은 없습니다.”
왕은 비록 깜짝 놀랐으나 교만한 생각이 치솟아서 즉각 종승을 쫓아내니, 바라제가 말했다.
“대왕께서는 이미 도가 있는데, 어찌하여 사문을 내치십니까? 제가 비록 아는 것은 없으나 대왕께서 물어 주시기를 바랍니다.”
왕이 성을 내면서 물었다.
“어떤 것이 부처인가?”
바라제가 대답했다.
“본성을 봄[見性]이 부처입니다.”
“대사는 본성을 보았는가?”
“저는 불성佛性을 보았습니다.”
“본성은 어디에 있는가?”
“본성은 작용作用에 있습니다.”
“어떤 작용이기에 지금 나에게는 보이지 않는가?”
“지금 작용을 보고 있지만, 왕 스스로 보지 못할 뿐입니다.”
“나에게도 있는가, 없는가?”
“대왕께서 만약 작용한다면 그렇지 않음이 없지만, 왕이 만약 작용하지 않는다면 그 체體는 스스로 보기 어렵습니다.”
“만약 작용할 때라면 몇 곳에서 출현하는가?” 
“만약 출현할 때라면 마땅히 여덟 가지가 있습니다.”
“그 여덟 가지 출현을 나에게 말해 주시오.”
바라제가 즉시 게송으로 대답했다.

태에 있으면 몸이 되고
세상에 처하면 사람이라 이름하고
눈에 있으면 본다고 말하고
귀에 있으면 듣는다고 말하고
在胎爲身    處世名人
在眼曰見    在耳曰聞
코에 있으면 냄새를 분별하고
입에 있으면 담론을 하고
손에 있으면 움켜잡고
발에 있으면 운반하고 옮기네.
在鼻辨香    在口談論
在手執捉    在足運奔

두루 나타나서는 모래 수의 세계를 덮고
거두어들이면 하나의 티끌 속에 드네.
아는 이는 이것이 불성인 줄 알지만
알지 못하는 이는 정혼精魂이라 부르네.
遍現俱該沙界    收攝在一微塵
識者知是佛性    不識喚作精魂

왕이 이 게송을 듣고 마음이 열려서 앞서의 허물을 뉘우쳤다. 그리고는 법의 요체를 물으면서 아침저녁으로 피로를 잊은 채 90세까지 이르렀다.
이때 배척을 당해서 쫓겨난 종승은 깊은 산 속으로 들어가 숨어서 생각하였다.
“내 이제 백 살인데 80년은 그르쳤고, 20년 동안만 불도에 귀의했다. 비록 성품이 어리석고 둔하지만 행에는 결코 흠이 없었는데, 이 재난을 막지 못했으니 살아 있어도 죽은 것만 못하다.”
생각을 마치자 곧 벼랑에서 떨어졌는데, 어떤 신인神人 하나가 손으로 받아서 바위 위에 놓으니 조금도 다친 곳이 없었다.
종승이 말했다.
“나는 사문이 되어서 마땅히 정법의 주체가 되어야 했는데도 국왕의 잘못을 억누르지를 못했다. 그래서 몸을 벼랑에 던져서 자책하려는 것인데, 어찌하여 신인께서는 이렇게 나를 도와주셨소? 원컨대 한 말씀 베풀어 주셔서 남은 생애를 보존케 하여 주시오.”
그러자 신인이 곧 게송을 말하였다.

스님의 나이 백 살에
80년은 그릇된 일을 했으나
지존至尊을 가까이한 까닭에
훈습熏習의 수행으로 도에 들었네.
師壽於百歲    八十而造非
爲近至尊故    熏修而入道

비록 조그마한 지혜를 갖추었다 해도
나[我]와 너[彼]의 차별이 많으므로
여러 현성賢聖들을 보아도
공경하는 마음을 내지 않았네.
雖具少智慧    而多有彼我
所見諸賢等    未嘗生珍敬

20년의 공덕이 있는데도
그 마음이 담박하고 고요하지 않으니
바로 총명함과 교만함 때문에
끝내 이 지경에 이른 것이네.
二十年功德    其心未恬靜
聰明輕慢故    而獲至於此

국왕이 공경하지 않은 것도
마땅히 과보의 감응으로 그런 것이니
지금부터라도 게을리 하지 않으면
오래지 않아 뛰어난 지혜를 이루리라.
성인들도 모두 마음을 두고 계시며
여래도 또한 마찬가지라오.
得王不敬者    當感果如是
自今不疎怠    不久成奇智
諸聖悉存心    如來亦復爾

종승이 게송을 듣고 매우 기뻐하면서 바위 사이에 조용히 앉았다.
이때 이견왕異見王이 다시 바라제에게 물었다.
“그대는 지혜롭고 변재가 있는데, 스승은 누구시오?”
바라제가 대답했다.
“저는 사라사娑羅寺에서 출가하여 오사바烏沙婆 삼장三藏에게 수학하였으나, 출세간出世間의 스승은 대왕의 숙부이신 보리달마 대사입니다.”
왕은 대사의 이름을 듣게 되자, 깜짝 놀라서 한참 있다가 입을 열었다.
“못난 내가 외람되이 왕위에 올라서 바른 길을 등지고 삿된 길로 드는 바람에 나의 숙부를 잊을 뻔하였소.”
그리하여 급히 가까운 신하에게 명을 내려서 대사를 특별히 청해 오도록 했다. 대사가 곧 사신을 따라와서 왕으로 하여금 지나간 잘못을 뉘우치게 하자, 왕은 훈계하는 말을 듣고는 울면서 대사에게 참회하였다. 또 종승을 본국으로 귀국시키라고 명하자 대신이 아뢰었다.
“종승은 배척을 받고서 벼랑에 떨어졌으니, 지금쯤 죽었을 것입니다.”
왕이 대사에게 말했다.
“종승이 죽은 것은 모두가 내 잘못이니, 대자대비를 베푸시어 이 죄를 면하게 하여 주십시오.”
대사가 대답했다.
“종승은 지금 바위틈에 조용히 앉아 있으니, 사신을 보내서 부르기만 하면 곧 올 것입니다.”
왕이 곧 사신을 보냈다. 사신이 산에 들어가니 과연 종승이 단정히 앉아 선정에 든 것이 보였다. 종승은 왕의 소명召命을 받고서 말했다.
“대왕의 뜻에 너무나 부끄럽지만 빈도貧道는 바위틈과 샘 곁에 살기로 하였소. 또 대왕의 나라에서는 어진 대덕이 숲처럼 많으니, 달마 대사는 대왕의 숙부이자 여섯 무리의 스승이고, 바라제는 불법 안의 용상(龍象:으뜸)입니다. 대왕께서는 이 두 성인을 숭앙함으로써 황제의 근간이 되는 업業을 복되게 하기를 바랍니다.”
사자使者는 오지 않겠다는 종승의 뜻을 보고했다. 그러자 대사가 왕에게 말했다.
“종승을 오게 하는 법을 아십니까?”
왕이 대답했다.
“모릅니다.”
대사가 말했다.
“한번 청해서 오지 않았지만, 두 번째 청하면 반드시 올 것입니다.”
조금 있다가 사자가 돌아왔는데 과연 대사의 말과 같았다. 대사는 마침내 왕을 하직하면서 말했다.
“덕을 잘 닦으시오. 오래지 않아 병이 생길 것입니다. 나는 이제 떠납니다.”
7일이 지나자 왕에게 병이 생겼다. 국의國醫가 아무리 치료해도 병환은 심해질 뿐 낫지 않았다. 친척과 대신들은 전날 대사의 예언을 기억하고는, 급히 사자를 대사에게 보내어 말했다.
“대왕의 병환이 자못 위급하니, 바라건대 자비를 베푸시어 왕림하여서 구원해 주십시오.”
대사는 곧 왕의 처소로 가서 그의 병환을 위로하였다. 당시 종승은 두 번째로 왕의 부름을 받고서 바위틈의 생활을 하직하였고, 바라제도 오랫동안 국왕의 은혜를 입었으므로 왕의 병환을 위문하러 와 있었다.
바라제가 말했다.
“어떤 조치를 베풀어야 왕의 고통을 면하게 할 수 있을까요?”
대사는 곧 태자로 하여금 왕이 되게 하고, 죄인들을 놓아 주어서 은혜를 베풀고, 승보僧寶를 숭배하고 받들게 하였다. 또 왕에게는 “죄의 소멸을 바라나이다” 하면서 참회하도록 했는데, 이렇게 세 차례 거듭하자, 왕의 병환이 금방 나았다. 
대사는 마음으로 생각했다. 
“중국[震旦]과의 인연이 익어서 교화를 행할 때가 되었구나.” 
그리하여 먼저 조사의 탑에 하직하고, 다음은 동학同學과 작별한 뒤에 왕에게 가서 위로하고 격려하였다.
“맑은 업을 부지런히 닦고 삼보三寶를 잘 보호하시오. 내가 가더라도 오래 있지는 않을 것이니, 19년이면 돌아올 것입니다.”
왕이 대사의 말을 듣고는 눈물을 흘리면서 말했다.
“이 나라는 무슨 죄가 있고 저 나라에는 무슨 상서로움이 있습니까? 숙부께서 이미 인연이 있으시다니 내가 말릴 수는 없으나, 부디 부모의 나라를 잊지 마시고 일을 마치거든 곧 돌아와 주십시오.”
왕은 곧 큰 배를 마련해서 많은 보배를 싣게 하고는 몸소 신하들을 인솔하여 바닷가에 나와 전송하였다. 

대사는 바다[重溟]를 통해 건너가 3년이 지나서야 남해南海에 다다르니, 이때가 양梁의 보통普通 8년 정미년丁未年 9월 21일이었다. 광주廣州 자사刺史 소앙蕭昻이 주인의 예를 갖추어서 영접하고는 무제武帝에게 표表를 올려서 보고했다. 무제는 보고를 받고는 사자에게 조서詔書를 주어서 맞아들이니, 10월 1일에 금릉金陵에 도착하였다.[숭嵩 선사는 양梁나라 스님 보창寶唱의 󰡔속법기續法記󰡕를 근거로 삼아 󰡔정종기正宗記󰡕를 지으면서 말하기를 “달마 대사는 양나라 무제武帝 보통普通 원년 경자(庚子, 520)에 이 나라에 들어왔다. 그러나 그 해는 곧 후위後魏 효명제孝明帝 정광正光 원년(520)이다”라고 하였다. 가령 이 기록과 같다면 나중에 입멸入滅하고 무덤을 열어본 일 따위의 연도와 서로 꼭 맞는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말한 보통普通 8년 정미(丁未, 527) 9월 21일에 남해南海에 이르렀고, 10월 1일에 금릉金陵에 이르렀다고 하는 것은 매우 잘못된 말이다. 보통 8년 3월에 이미 연호를 대통大通 원년으로 고쳤으니, 그렇다면 9개월의 차이가 있으므로 보통普通 8년이라고 말하는 것은 옳지 않다. 남해南海는 지금의 광주廣州로 금릉과의 거리는 수천 리나 된다. 그런데 자사刺史가 주청하여 보고하고 무제가 조서를 내려 달마를 맞이한 기간이 불과 10일 동안이었으니, 그 먼 금릉까지 어떻게 10일 동안에 갈 수 있다는 말인가? 또 남사南史 소앙蕭昻의 본전本傳에 의하면, 소앙이 광주廣州 자사刺史를 역임했다는 말이 없고, 단지 왕무王茂의 전기 끝부분에 광주 장사(長史:刺史) 소앙蕭昻이란 말이 있을 뿐이다. 그러나 어느 해에 광주 자사로 있었는지 알 수가 없으므로 여기에서는 말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 다만 ‘남해에 이른 때는 양나라 보통普通 원년이었다. 광주 자사가 예를 갖추어 영접하였으며, 표를 올려 무제에게 아뢰자 무제가 표를 읽고는 사신을 보내 조서를 가지고 가서 영접하게 하였는데 10월 1일에 금릉에 이르렀다’고만 해두는 것이 좋겠다.]
무제가 대사에게 물었다.
“짐朕이 왕위에 오른 이래로 절을 짓고, 경전을 쓰고, 스님을 양성한 것이 셀 수 없는데, 어떤 공덕이 있소?”
대사가 대답했다.
“아무 공덕도 없습니다.”
“어찌하여 공덕이 없소?”
“이는 다만 인간과 하늘의 작은 과보를 받는 유루有漏의 원인일 뿐이니, 마치 그림자가 형상을 따르는 것과 같아서 있는 듯하나 실답지가 않습니다.”
“어떤 것이 진실한 공덕이오?”
“청정한 지혜는 묘하고 원만해서 체體가 스스로 비고 적멸하니, 이러한 공덕은 세상 법으로는 구하지 못합니다.”
무제가 다시 물었다.
“어떤 것이 성제聖諦의 제일가는 뜻[第一義]이오?”
“확연廓然하여 거룩함[聖]도 없습니다.”
“짐을 대하고 있는 이는 누구요?”
“모릅니다.”
무제가 알아듣지 못하자, 대사는 근기가 계합하지 않음을 알았다. 그 달 19일에 몰래 강북江北을 돌아서[迴][󰡔광등록󰡕에서는 ‘회迴’자를 ‘과過’자로 썼다.] 11월 23일에 낙양洛陽에 이르니, 이때가 후위後魏의 효명제孝明帝 태화太和 10년이었다.[후위後魏 효명孝明 정광正光 원년元年이라고 해야 옳다. 만일 태화 10년이 후위後魏의 문제文帝 때일 것 같으면, 이 해는 바로 남제南齊 무제武帝 영명永明 4년 병인년丙寅年이어야 한다.]

그 후 숭산嵩山의 소림사少林寺에 머물렀는데, 벽을 대면하여 앉아서는 종일토록 침묵을 지키니, 아무도 그 연유를 아는 이가 없어서 그를 일러 벽을 보는 바라문[壁觀婆羅門]이라 하였다.
당시 신광神光이라는 활달한 스님이 있었다. 그는 오랫동안 낙양洛陽에 살면서 온갖 서적을 많이 읽고 현묘한 이치[玄理]를 잘 이야기하곤 하였다. 그는 늘 이렇게 탄식하였다.
“공자와 노자의 가르침은 예절[禮]․술수[術]․풍류[風]․법규[規]뿐이요, 장자와 󰡔주역周易󰡕 따위의 글은 묘한 이치를 다하지 못했다. 요사이 듣건대 달마 대사가 소림사에 계시면서 찾아가는 사람을 맞이하지 않고, 현묘한 경지를 이룬다고 했다.”
그리하여 달마 대사에게 가서 아침저녁으로 섬기고 물었으나, 대사는 늘 단정히 앉아서 벽을 바라볼 뿐이어서 아무런 가르침도 듣지 못했다. 신광은 스스로 이렇게 생각하였다. 
‘옛사람이 도를 구할 때에는 뼈를 깨뜨려서 골수를 빼내고, 피를 뽑아서 주린 이를 구제하고, 머리털을 펴서 진흙땅을 덮고, 벼랑에서 떨어져 굶주린 호랑이를 먹였다. 옛사람도 이러하였거늘 나는 또 어떤 사람이란 말인가?’ 
그 해 12월 9일 밤에 하늘에서 큰 눈이 왔다. 신광은 꼼짝도 않고 서 있었는데, 새벽녘에는 눈이 무릎 너머까지 쌓였다.
대사가 불쌍히 생각해서 물었다.
“그대는 오랫동안 눈 속에 서서, 무엇을 구하려고 하는가?”
신광이 슬피 울면서 말했다.
“바라옵건대 화상께서는 자비를 베푸시어 감로甘露의 문을 열어서 온갖 중생들을 널리 제도해 주소서.”
대사가 대답했다.
“부처님들의 위없는 묘한 도는 오랜 겁을 부지런히 정진하면서 행하기 어려운 일을 행하고 참기 어려운 일을 참아야 하거늘, 어찌 작은 공덕과 작은 지혜와 경솔한 마음과 교만한 마음으로 진승眞乘을 바라는가? 헛수고를 할 뿐이다.”
신광이 달마 대사의 훈계를 듣자 슬며시 칼을 뽑아 자신의 왼쪽 팔을 끊어서 대사의 앞에 놓으니, 대사는 비로소 그가 법기法器인 줄 알고서 말했다.
“부처님들이 처음 도를 구하실 때는 법을 위해 몸을 잊었다. 네가 이제 내 앞에서 팔을 끊으니, 법을 구할 만하구나.”
마침내 대사가 그의 이름을 혜가慧可라고 바꿔 주자, 신광이 말했다.
“모든 부처님들의 법인法印을 들을 수 있습니까?”
대사가 대답했다.
“부처님들의 법인은 남에게 얻는 것이 아니니라.”
“제 마음이 아직 편안치 못하오니, 스님께서 편안케 해주소서.”
“마음을 가지고 오너라. 너를 편안케 해주리라.”
“마음을 찾아도 끝내 얻을 수 없습니다.”
“내가 이미 네 마음을 편안케 했다.”
뒤에 효명제孝明帝가 대사의 기이한 행적을 듣고 사자와 조서를 보내서 부르기를 세 차례나 하였지만, 대사는 끝내 소림사少林寺를 떠나지 않았다. 황제는 더욱 더 흠모를 하면서 마납摩衲 가사 두 벌과 황금 발우․은 물병․비단 등을 하사했으나, 대사는 굳게 사양하면서 세 번이나 돌려보냈다. 그러나 황제의 뜻이 더욱 단호해지자 대사는 그때서야 비로소 받았다. 그때 이후로 스님과 속인[緇白]의 무리가 갑절이나 더 믿고 귀의하였다. 

다시 9년이 지나자, 대사는 서쪽의 천축으로 돌아가고자 해서 문인門人들에게 말했다.
“때가 되었다. 너희들은 어찌하여 각기 얻은 바를 말하지 않는가?”
이때 문인인 도부道副가 대답했다.
“제가 본 바로는 문자에 집착하지도 않고 문자를 여의지도 않는 것으로 도의 작용을 삼는 것입니다.”
대사가 말했다.
“너는 나의 가죽을 얻었다.”
총지總持 비구니가 말했다.
“제가 지금 이해한 바로는 아난이 아촉불국阿閦佛國을 보았을 때처럼 한 번 보고는 다시 보지 않은 것입니다.”
“너는 나의 살을 얻었다.”
도육道育이 말했다.
“4대大가 본래 공하고 5온이 있지 않으니, 제가 보기에는 한 법도 얻을 것이 없습니다.”
“너는 나의 뼈를 얻었다.”
마지막에 혜가가 절을 한 뒤에 제자리에 서 있자, 대사가 말했다.
“너는 나의 골수를 얻었다.”
그리고는 다시 혜가를 돌아보면서 말했다.
“옛날에 여래께서 정법안장을 가섭 대사에게 전했는데, 차례차례 부촉해서 나에게까지 이르렀다. 내가 이제 그대에게 부촉하나니, 그대는 잘 수호해서 지켜야 한다. 그리고 너에게 가사를 전해서 법의 신표로 삼나니, 제각기 표시하는 바가 있음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혜가가 말했다.
“스승께서 자세히 설명해 주십시오.”
대사가 대답했다.
“안으로 법인法印을 전해서 깨달은 마음[證心]과 계합하고, 밖으로 가사를 부촉해서 종지宗旨를 확정한다. 후세 사람들이 얄팍하게 갖가지 의심을 다투어 일으키면서, ‘나는 인도 사람이고 그대는 이곳 사람인데, 무엇으로써 법을 증득했다는 것을 증명하리오?’라고 할 것이니, 그대가 지금 이 옷과 법을 받아 두었다가 뒤에 환난이 생기거든 이 옷과 내 법의 게송만을 내놓아서 증명을 삼으면 교화하는 일에 지장이 없으리라. 내가 열반에 든 지 2백 년 뒤에 옷은 더 이상 전해지지 않겠지만, 법은 항하의 모래같이 많은 세계에 두루하리라. 그래서 도를 밝힌 이는 많아도 도를 행하는 이는 적으며, 이치[理]를 설하는 자는 많아도 이치에 통한 자는 적을 것이다. 하지만 잠잠히 부합하고 비밀히 증득하는 이가 천만이 넘으리니, 그대는 도를 드날릴 때에도 깨닫지 못한 이를 가벼이 여기지 말라. 한 생각[一念]으로 근기를 돌이키면 문득 본래 깨달은 것[本得]과 같으리라. 나의 게송을 들어라.”

내가 본래 이 땅에 온 것은
법을 전해 미혹한 유정을 구하는 것이니
한 송이의 꽃에 다섯 잎이 열리면
열매는 자연히 이루어지리라.
吾本來茲土    傳法救迷情
一華開五葉    結果自然成

대사가 다시 말했다.
“나에게 󰡔능가경楞伽經󰡕 네 권이 있는데, 이 역시 그대에게 부촉한다.[이것들은 모두 󰡔보림전寶林傳󰡕에 설해져 있다. 상고하건대 도선 율사 󰡔속고승전󰡕 「가대사전可大師傳」에 “처음에 달마가 혜가 대사에게 󰡔능가경󰡕을 주면서 말하기를 ‘내가 한漢의 땅을 보니 오직 이 경전이 있을 뿐이라. 그대는 이것에 의지해 수행하면 자연히 세상을 제도하리라’고 하였다”고 하였으니, 만일 이 전의 말대로라면 2조祖가 아직 법을 얻기 전에 달마가 󰡔능가경󰡕을 주어서 보게 했음이 틀림없다. 󰡔전등록󰡕에서는 법을 부촉하고 옷을 전한 후에 혜가 대사에게 “나에게 󰡔능가경󰡕 네 권이 있으니 또한 너에게 주겠다”라고 한 것은 잘못된 것이리라. 또한 “나에게 󰡔능가경󰡕이 있다”고 한다면 세상에는 없는 것같이 되어 버리니 이것은 다만 마조馬祖의 말을 의거한 것이다. 또 󰡔능가경󰡕의 “중생의 마음 바탕으로 인印친다”라는 말을 인용한 것은 이치에 해害가 없을 듯하다.] 이것은 여래께서 마음의 본바탕[心地]을 가르치신 요긴한 법문으로서 중생들로 하여금 깨달아 들도록 열어 보이신 것이다. 내가 여기에 온 뒤에 다섯 차례나 독毒에 맞았는데, 내가 항상 스스로 꺼내서 시험해 본 결과 돌에다 놓으면 돌이 깨졌었다. 내가 본래 남인도를 떠나서 이 동쪽 땅에 왔을 때에 적현赤縣 신주神州에 대승大乘의 기상이 있음을 보고는 바다를 건너고 사막을 지나서 법 전해 줄 사람을 구했지만, 매번 만날 때마다 계합되지 않음이 마치 어리석은 자와 같고 말더듬이와 같더니, 이제 그대를 만나서 전해 주었으므로 나의 뜻은 끝이 났다.”[별기別記에서 말하기를 “대사는 처음에 소림사에서 9년을 머무시면서 제2조에게 법을 설하고 가르쳐 말하기를 ‘바깥의 모든 연緣을 쉬고 안으로 헐떡이는 마음이 없고 마음이 벽 같아야 도에 든다’라고 하였으니, 혜가慧可가 갖가지로 마음 성품의 이치를 말했으나 모두 계합하지 못했다. 대사는 다만 그의 잘못만을 막을 뿐 무념無念의 본체는 지적하지 않으니, 혜가가 말하기를 ‘저는 이미 모든 인연을 쉬었습니다’라고 하였다. 대사가 묻기를 ‘단멸이 되지는 않았는가?’라고 하니, 혜가가 대답하기를 ‘단멸이 되지는 않았습니다’라고 하였다. 대사가 다시 묻기를 ‘어찌하여 단멸이 아닌 줄 아는가?’라고 하니, 혜가가 대답하기를 ‘요료了了하게 항상 알기 때문에 말로는 미치지 못합니다’라고 하였다. 그러자 대사가 말하기를 ‘이것이 여러 부처님들께서 전하신 심체心體이니 다시는 의심치 말라’”고 하였다.]
말을 마치고는 무리들을 거느리고 우문禹門의 천성사千聖寺로 가서 사흘을 묵었다. 

며칠 후에 그 고을 태수 양현지楊衒之가 일찍부터 불법을 사모했다고 하면서 대사에게 물었다.
“서역의 천축에서는 스승의 법을 전해 받으면 조사라고 한다는데, 그 도가 어떤 것입니까?”
대사가 대답했다.
“불심佛心의 종지宗旨를 밝혀서 행行과 해解가 서로 응하는 것을 조사라고 하오.”
“그밖에는 어떠합니까?”
“모름지기 다른 이의 마음을 밝히고, 그 고금古今을 알고, 있음과 없음을 싫어하지 않고, 법을 취함이 없으며, 현명하지도 어리석지도 않고, 미혹도 깨달음도 없나니, 이렇게 이해할 수 있기 때문에 조사라고 칭하오.”
“제자가 삼보에 귀의한 지도 몇 해가 되건만, 지혜가 혼몽昏蒙하여 오히려 진리를 미혹하고 있었는데, 이제 스님의 말씀을 들으니 어찌할 바를 모르겠습니다. 바라옵건대 스님께서 자비로써 종지를 열어 보여 주소서.”
대사는 그의 정성이 간절함을 알고 즉시 게송을 말했다.

악을 보고서도 싫다는 생각을 내지 않고
선을 보고서도 부지런히 하려고 하지 않으며
지혜를 버리고서 어리석음에 다가가지도 않고
미혹을 버리고 깨달음에 나아가지도 않네.
亦不覩惡而生嫌    亦不觀善而勤措
亦不捨智而近愚    亦不抛迷而就悟

대도大道를 통달함이여, 한량을 초월하고
부처의 마음을 통달함이여, 한도를 넘어서네.
범부에도 성인에도 똑같이 얽매이지 않고
초연한 것을 이름하여 조사라 하네.
達大道兮過量    通佛心兮出度
不與凡聖同躔    超然名之曰祖

양현지가 게송을 듣고 슬픔과 기쁨이 뒤섞여서 말했다.
“바라옵건대 대사께서 세간에 오래 머무시면서 뭇 유정들을 교화해 인도하소서.”
대사가 대답했다.
“나는 가야 하니, 오래 머물 수 없다. 근성根性이 만 가지 차이가 있으므로 많은 환난을 만날 것이다.”
“누구이옵니까? 제자가 스님을 위해서 제거해 드리겠습니다.”
“나는 부처님의 비밀을 전해서 어리석은 무리를 이롭게 할 뿐이니, 남을 해치고 자신의 편하고자 함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
“만일 스님께서 말씀하시지 않으면, 스님의 신통변화와 관조觀照의 힘을 어떻게 표현하겠습니까?”
대사는 그때서야 부득이 예언을 말했다.

강의 돛대가 옥 같은 물결을 가르고 옥 같은 물결을 가른다고 하는 말은 보리류지菩提流支를 가리키는 말이다.

통 속의 횃불은 쇠고리를 여네. 광통光統을 가리키는 말이다.

오五자와 구口자 오五자와 구口자는 ‘나[吾]’라는 의미이다.
는 서로 함께 행하고
구九자와 십十자에는 구九자와 십十자는 ‘끝끝내’라는 의미이다.
 나와 남이 없네.
江槎分玉浪    管炬開金鎖
五口相共行    九十無彼我

양현지가 이 말을 듣자 그 까닭을 몰라서 잠자코 마음에 새겨둔 채 하직 인사를 하고 물러갔다. 대사의 예언은 비록 당시에는 헤아리지 못했지만 뒤에는 모두가 부합했다. 
당시 위씨(魏氏:魏王族)가 불법을 받들어서 고명한 스님들이 숲처럼 많았는데, 광통光統 율사律師와 보리류지菩提流支  삼장三藏은 스님들 가운데 봉황[鳳]이고 난조[鸞]였다. 그러나 그들은 대사가 도를 연설할 때에 형상을 배척하고 바로 마음을 지적하는 것을 보고 매양 대사와 토론을 벌여서 시비가 일어났다. 대사가 현묘한 교화의 바람을 멀리 떨치고 법의 비를 두루 뿌리자, 그들의 치우치고 옹색한 마음으로는 감당할 수 없음을 깨닫고서, 앞 다투어 해치려는 마음을 일으켜 자주 독약을 음식에 넣었다. 그 일이 여섯 차례에 이르렀을 때 이미 교화의 인연도 다하였고 법 전할 사람도 만났으므로, 더 이상 독약에서 벗어나지 않고 단정히 앉아서 열반하니, 이때가 후위後魏의 효명제孝明帝 태화太和 19년 병진년丙辰年 10월 5일이었다.[󰡔속법기續法記󰡕에 의하면 10월 5일은 곧 효孝의 장제莊帝 영안永安 원년元年이다. 즉 양梁의 대통大通 2년 무신戊申의 해이다. 그 해는 또 명제明帝 무태武泰 원년이다. 2월에 명제는 붕어崩御하고 4월에 장제가 즉위하여 건의建義로 연호를 고쳤다. 뒤에 말하기를 “그대의 임금이 세상을 버렸다. 이 해에 명제가 붕어하였다”라고 하였다. 󰡔전등록󰡕에 의거하여 말하면, 병진丙辰은 즉 동위東魏 문제文帝의 대통大統 2년, 서위西魏 정제靜帝의 천평天平 3년, 양梁의 대동大同 2년으로서, 이때 세상을 버렸다고 하는 말은 전혀 맞지 않는다. 또 태화太和 19년은 곧 후위後魏의 문제文帝 때이며, 남제南齊의 명제明帝 건무建武 2년 을해년乙亥年이다.]
그 해 12월 28일, 웅이산熊耳山에 장사지내고 정림사定林寺에 탑을 세웠다. 그 뒤 3년 후에 위魏나라의 송운宋雲이라는 이가 서역에 사신으로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총령葱嶺에서 대사를 만났는데, 손에 신 한 짝을 들고 훌훌히 혼자 가고 계셨다. 송운이 물었다. 
“스님, 어디를 가십니까?” 
대사가 대답했다.
“나는 서역으로 돌아가오.” 
그리고는 다시 송운에게 말했다. 
“그대의 군주가 이미 세상을 뜨셨소.” 
송운은 이 말을 듣고 아찔함을 느꼈다. 대사와 작별하고 동쪽으로 나아가서 복명復命하려고 했는데, 과연 명제明帝는 이미 승하하고 효장제孝莊帝가 즉위하였다.
송운이 위의 사실을 자세히 보고하므로 황제가 대사의 무덤[壙]을 열어 보게 하니, 빈 관 속에는 신 한 짝만이 남아 있었다.[󰡔속법기󰡕에 의하면, 그 뒤로 3년(대사의 장례를 치룬 지 3년이 지난 해)은 장제莊帝의 영안永安 3년 경술庚戌로서, 양나라 무제의 대통大通 2년이 된다. 그 해 12월에 장제가 승하했으니 봉사(奉使:사신)가 돌아올 때에는 장제가 아직 살아 있었을 것이다. 󰡔전등록󰡕에 의하건대 그 뒤로 3년은 기미己未로서 서위西魏 문제文帝 대통大統 5년이요, 동위東魏 정제靜帝 흥화興化 원년元年이며, 양梁 무제 대동大同 5년이다. 그렇다면 어찌 효장제孝莊帝가 있을 수 있겠는가? 또 말하기를 송운宋雲이 대사를 총령葱嶺에서 만났다 하니 더욱 잘못이다. 송운이 서역에 갔다가 돌아올 때는 벌써 위魏의 명제明帝 정광正光 때였다. 그러면 대사를 총령에서 만난 것은 위魏의 말엽에 따로 보냈던 어떤 사신이 돌아오던 길에 만났다는 말일 것이다. 그러니 여기서는 다음과 같이 고쳐 말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 뒤로 3년에 위魏의 사신이 서역에 갔다 오다가 대사를 총령에서 만났는데, 손에는 신 한 짝을 들고 훌훌히 혼자 가고 있었다. 사자가 묻기를 ‘스님, 어디로 가십니까?’라고  하자, 대사가 대답하기를 ‘서천으로 간다. 그리고 그대의 임금은 벌써 세상을 뜨셨다’라고 하였다. 사신이 이 말을 듣고 아찔하여 부지런히 동으로 가서 국왕께 복명하니, 명제明帝는 이미 승하하고 효장제가 등극해 있었다. 봉사奉使가 위의 사실을 자세히 아뢰니, 황제가 무덤을 열어 보게 했는데, 빈 관에 신 한 짝만이 남아 있었다.”]  
온 조정이 경탄한 나머지 황제의 명에 따라 남은 신을 가져다가 소림사少林寺에서 공양하였다. 당唐의 개원開元 15년 정묘년丁卯年에 도를 믿는 이들을 위하여 오대산五臺山 화엄사華嚴寺에 은밀히 모셨다고 하는데, 지금은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
처음에 양 무제가 대사를 만났을 때에는 인연이 맞지 않았는데, 그가 위나라에서 교화를 편다는 말을 듣고는 손수 대사의 비碑를 지으려 하였으나 그럴 겨를이 없었다가, 나중에 송운의 일을 듣고서야 비로소 이루었다.
대종代宗 당나라 제8대 왕이다.
이 원각圓覺 대사大師라는 시호諡號를 내리고 탑호는 공관空觀이라 하였다. 대사가 위魏나라의 병진년丙辰年에 입적하신 해로부터 송宋의 경덕景德 원년 갑진년甲辰年까지는 467년이 된다.[위魏의 경자년庚子年에 입적한 이후 송宋의 경덕景德 원년 갑진년甲辰年까지는 475년이다. 대개 이 연대에 차이가 있다. 이는 모두 󰡔보림전寶林傳󰡕의 잘못된 기록을 양문공楊文公이 다시 고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제29조 혜가慧可 대사大師

그는 무뢰武牢 사람이니, 성은 희姬씨이고 아버지는 적寂이다. 그의 아버지는 자식이 없었을 때 항상 스스로 이렇게 생각했다. 
‘우리 집이 항상 착한 일을 받들어 행하였는데, 어찌 아들이 없는가?’ 
그리하여 오래 기도를 하던 중 어느 날 저녁 이상한 광채가 방으로 드는 것을 느꼈는데, 어머니가 그로 인해 태기가 있었다.
태어난 뒤에는 방을 비춘 상서로움으로 인하여 이름을 광光이라 하였다. 어릴 때부터 의지와 기상이 특출 나서 뭇 시서詩書를 두루 보았을 뿐만 아니라 특히 현묘한 이치에 밝았으며, 집안 살림을 좋아하지 않고 산천에 놀기를 좋아하였다. 
나중에 불서佛書를 보다가 초연히 얻은 바가 있어서 즉시 낙양洛陽 용문산에 있는 향산사香山寺에 가서 보정寶靜 선사에 의해 출가하여 구족계를 받았고, 영목사永穆寺 부유浮游 강사講師에게 대․소승의 교법을 두루 배우다가 32세가 되는 해에 다시 향산으로 돌아와서 종일토록 조용히 앉아 있었다. 
그로부터 8년이 지난 어느 날, 적멸의 침묵 속에서 한 신인神人을 만났는데, 그가 이렇게 말했다.
“과果를 얻고자 한다면 어찌 여기에만 머물러 있는가? 대도大道는 먼 곳에 있지 않으니, 그대는 남쪽으로 가라.”
광光은 신의 도움임을 깨닫고서 그로 인해 이름을 신광神光이라 고쳤다. 그 이튿날 머리가 쑤시는 듯이 아팠는데, 그의 스승이 고치려 하자 공중에서 소리가 들렸다. 
“이는 뼈를 바꾸는 것이니, 예사 아픔이 아니다.” 
신광이 드디어 신을 본 사실을 스승에게 고백하자, 그 스승이 정수리 뼈를 살펴보니 과연 다섯 봉우리가 솟아난 것 같았다. 그가 말했다.
“네 상호가 길상吉祥하니, 반드시 증득하는 바가 있을 것이다. 신인이 너를 남쪽으로 가라고 한 것은 필경 소림사의 달마 대사를 너의 스승으로 삼으라는 뜻이다.”
신광은 가르침을 받고서 바로 소실봉少室峰에 갔다. 그가 법을 받고 옷을 얻은 사적事迹은 앞의 달마장達磨章에서 이미 말하였다. 

달마 대사가 소림에서 교화를 부탁하고 서쪽으로 돌아간 뒤에 혜가 대사가 계승하여 현풍(玄風:불법)을 드날리면서 법 전할 사람을 널리 구하였는데, 북제北齊의 천평天平 2년에 이르자,[천보天保 2년, 즉 신미년辛未年이어야 맞다. 천평天平은 동위東魏의 연호로 2년은 을묘乙卯이다.] 40살이 넘어 보이는 어떤 거사 하나가 성명도 밝히지 않은 채 불쑥 와서 절을 하고 물었다.
“제자의 몸은 풍병[風恙]에 걸렸으니, 화상께서 죄를 참회케 하여 주소서.”
대사가 말했다.
“죄를 가지고 오라. 참회시켜 주리라.”
거사가 한참 있다가 말했다.
“죄를 찾아도 찾을 수 없습니다.”
“나는 그대의 죄를 다 참회시켜 주었다. 앞으로는 불․법․승에 의거해서 살도록 하라.”
“지금 화상을 뵙고 나니, 승보僧寶는 알겠습니다만, 어떤 것을 불보佛寶․법보法寶라고 합니까?”
“이 마음이 부처이고, 이 마음이 법이다. 법과 부처는 둘이 아니니, 승보도 마찬가지이니라.”
“오늘에야 비로소 죄의 성품이 안에도 밖에도 중간에도 있지 않음을 알았으니, 마음이 그러하듯이 불보와 법보도 둘이 아니옵니다.”
대사가 깊이 법기法器라고 여겨서 곧 머리를 깎아 주고는 말했다.
“너는 나의 보배이니, 이름을 승찬僧璨이라 하라.”
그해 3월 18일 광복사光福寺에서 구족계를 받으니, 그로부터 병이 차츰 나아져서 2년 동안 시봉을 할 수 있었다. 어느 날 대사가 분부하였다.
“보리달마菩提達磨[구본舊本에서는 달마보리達磨菩提라고 하였다.]께서 멀리 천축으로부터 와서 정법안장을 은밀히 나에게 부촉하셨다. 내가 이제 달마께서 신표로 주신 옷과 법을 아울러 그대에게 주나니, 그대는 잘 수호해서 끊이지 않게 하라. 나의 게송을 들어라.”

본래 땅이 있음을 연緣하니
그 땅을 인하여 종자에서 꽃이 피네.
하지만 본래 종자가 있는 것은 아니니
꽃도 역시 생겨난 적이 없네.
本來緣有地    因地種華生
本來無有種    華亦不曾生

대사가 옷과 법을 부촉한 뒤에 다시 말했다.
“그대가 내 가르침을 받은 뒤에 깊은 산 속에 들어가서 교화에 나서지 말라. 머지않아 국난國難이 있으리라.”
승찬이 물었다.
“스승께서는 미리 아시니, 바라건대 가르침을 내려 주소서.”
“내가 아는 것이 아니다. 이는 달마 대사께서 반야다라 존자의 예언을 전하시기를 ‘마음속은 길하나 겉모양은 흉하다’고 한 것인데, 내가 햇수를 따져 보니 요즈음에 해당한다. 마땅히 앞에 한 말을 잘 생각해서 세상의 재난에 걸리지 않게 하라. 하지만 나 역시 전생의 허물이 있어서 지금 갚아야 한다. 잘 가고 잘 행하다가 때를 기다려 전해 주어라.”

대사가 법을 부촉한 뒤에 업도鄴都에서 형편에 따라 설법을 하는데, 일음一音으로 연설하매 사부대중이 귀의하였다. 이와 같이 34년을 지내고는 드디어 빛을 감추고 자취를 감추고서 겉모양을 바꾸어 술집에도 들기도 하고, 고깃간을 지나기도 하고, 거리의 잡담을 익히기도 하고, 품팔이를 하기도 하니, 사람들이 이상히 생각하여 이렇게 물었다.
“스님은 도인이신데, 어찌하여 이런 짓을 하십니까?”
대사가 대답했다.
“내는 스스로 마음을 조복調伏하였으니, 어찌 너희들과 같이 일에 걸림이 있겠는가?”
또 대사가 관성현筦城縣 광구사匡救寺의 삼문三門 밑에서 위없는 도를 이야기하자, 듣는 이가 숲처럼 많았다. 이때 변화辯和 법사法師라는 이가 그 절에서 󰡔열반경涅槃經󰡕 강의를 하였는데, 그의 학도들이 대사가 천양하는 법을 듣고 차츰 차츰 옮겨가자, 변화는 분함을 참지 못하여 고을의 수령인 적중간翟仲侃에게 무고하였다. 적중간은 그의 삿된 말에 속아서 대사에게 그릇된 법으로 가하였고, 대사는 태연히 목숨을 마치니, 진실을 아는 이는 옛 빚을 갚았다고 하였다. 당시의 나이는 107세였고, 그때는 수隋의 문제文帝 개황開皇 13년 계축년癸丑年 3월 16일이었다.[호월晧月 공봉供奉이 장사長沙 잠岑 화상和尙에게 물었다. “고덕古德이 말하기를 ‘깨달으면 업장業障이 본래 공空하나 깨닫지 못하면 마땅히 진 빚을 갚아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지금 2조 대사는 어찌하여 빚을 갚은 것입니까?”라고 하니, 장사가 말하기를, “대덕大德이여, 알지 못함<不識>도 본래공本來空이다”라고 하였다. 그가 말하기를, “무엇이 본래공입니까?”라고 하자, 장사가 말하기를, “업장業障이다”라고 하였다. 또 묻기를, “가유假有가 본래 비유非有라 함은 무엇입니까?”라고 하자, 장사가 말하기를, “본래공이다”라고 하며, 그는 아무런 말도 없었다. 장사가 다시 하나의 게송을 읊어 가리켰다. “가유假有는 본래 비유非有요/ 가멸假滅도 또한 비무非無라./ 열반은 빚을 갚는다는 뜻이니/ 일성一性일 뿐 다시 다름이 없네.”]
뒤에 자주磁州 부양현滏陽縣 동북쪽 70리에 장사를 지내니, 당나라 덕종德宗이 대조大祖 선사라 시호를 내렸다. 대사가 천화(遷化:入寂)하신 해로부터 송나라 경덕景德 원년 갑진년甲辰年에 이르기까지는 413년이 된다.[12년이라야 맞다.]

승나僧那 선사

그의 성은 마馬씨이니, 어릴 적부터 총명하여 많은 전적에 통달하였다. 나이 21세에 동해東海에서 󰡔예기禮記󰡕와 󰡔주역周易󰡕을 강의하니, 듣는 자가 저자를 이루듯 하였다.
그가 남쪽으로 떠나려 할 때에 상부相部의 학인學人들이 따라왔는데, 때마침 2조祖가 법을 설하는 회상에 참석해서 동반들 18인과 함께 2조에게 출가하였다. 그때부터 다시는 손에 붓을 잡지 않고 세속의 경전을 영원히 버린 채 오직 옷 한 벌과 발우 하나로 한 자리에 앉고 한 끼니만 먹는 두타행頭陀行을 하였다.
2조를 오랫동안 받들어 모신 뒤에 제자 혜만慧滿에게 말했다.
“조사의 심인心印은 고행에만 전념하는 것이 아니니, 고행은 단지 수행의 한 방편일 뿐이다. 만일 본심에 계합하여 뜻대로 참 광명의 작용을 발휘하면, 고행은 흙을 뭉쳐서 금을 이루는 것과 같으니라. 만약 고행에만 힘쓰고 본심을 밝히지 못한 채 사랑과 미움에만 얽매인다면, 고행은 그믐밤에 험한 길을 가는 것과 같을 것이다. 
네가 본심을 밝히고자 하거든 자세히 살피고 관찰하라. 빛깔을 만나고 소리를 만나도 각관覺觀을 일으키지 않을 때에 마음은 어디를 향하는가? 그것은 있음인가, 없음인가? 이미 있음에도 없음에도 떨어지지 않는다면, 마음 구슬[心珠]이 오롯이 밝아서 항상 세간을 비추되 한 티끌만한 간격도 없고 한 찰나 사이의 끊고 이어지는 모습도 없다. 그러므로 우리 초조初祖께서 󰡔능가경楞伽經󰡕 4권을 겸하여 부촉하면서 나의 스승인 2조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진단震旦을 관찰하건대, 오직 이 경전만 있으면 마음을 인印칠 수 있다[印心]. 그대가 의지하여 수행하면, 스스로 깨우쳐서 세상을 제도하리라.’ 
또 2조께서 매양 설법을 마치시고는 말씀하시기를 ‘이 경전이 4세世 뒤에는 이름과 모습이 변하리라’고 하셨으니, 참으로 슬픈 일이다. 내가 이제 그대에게 부촉하나니, 잘 간직하여서 그릇된 사람에게는 전하지 말라.”
이렇게 부촉하고 나서 대사는 교화를 떠났는데, 그의 임종은 알 수 없다.

향向 거사居士

그는 숲과 들에 살면서 나무 열매와 풀을 먹고 시냇물로 목을 축였다. 북제北齊의 천보天保 초년에 2조祖의 교화가 번성한다는 소식을 듣자, 곧 다음과 같은 서신을 보내서 교제를 열었다.
“그림자는 형상을 말미암아서 일어나고 메아리는 소리를 따라 생겨나는데, 그림자를 희롱하여 형상을 수고롭게 하는 것은 형상이 그림자의 근본임을 모르기 때문이요, 소리를 내면서 메아리를 그치려 하는 것은 소리가 메아리의 뿌리임을 모르기 때문이니, 번뇌를 없애서 열반에 나아가려는 것은 형상을 없애고 그림자를 찾는 것과 같고, 중생을 여의고 불과佛果를 구하려는 것은 소리를 내지 않고 메아리를 찾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알아야 하니, 미혹함과 깨달음이 한 길이고 어리석음과 지혜로움이 다르지 않습니다. 이름이 없는데 이름을 짓는 것이니, 그 이름으로 인하여 시비가 생기고, 이치가 없는데 이치를 짓는 것이니, 그 이치로 인하여 논쟁이 일어납니다. 
그러나 환화幻化는 참되지 않거늘 누가 옳고 누가 그르며, 허망은 실답지 않거늘 무엇이 없고 무엇이 있겠습니까? 얻어도 얻은 바가 없고 잃어도 잃은 바가 없음을 알고자 하나, 나아가 뵈올 겨를이 없어서 겨우 이렇게 글을 올리니, 부디 회답해 주소서.”[본문에서 ‘그림자를 희롱하다<弄影>’고 했는데, ‘그림자를 버리다<棄影>’고 해야 맞을 것이다. 아마 당시에 잘못 쓴 것인 듯하다. 제30권에서 진국鎭國 대사大師가 황태자의 심요心要에 관한 물음에 답하기를 “참<眞>을 구하고 망妄을 버림은, 마치 그림자를 버리려고 몸을 수고롭게 하는 것과 같으며, 망妄을 체득함이 그대로 참<眞>이라 여기는 것은 마치 응달에 처하여서 그림자를 없애는 것과 같다”고 하였다. 이것은 󰡔장자莊子󰡕에서 말한 “몸을 수고롭게 하다<勞形>”는 말을 차용한 것이니, 그 뜻은 ‘달려서 그림자가 쫓아오지 못하게 피한다’는 것이다].
2조 대사는 필생筆生에게 분부하여 이렇게 답장을 썼다. 
“보내온 글의 뜻을 자세히 살피니 모두가 실다워서 참되고 그윽한 이치가 조금도 다르지 않다. 본래 마니주摩尼珠를 잘못 알아 기와나 자갈이라고 하였으나, 활연하게 자각하면 바로 참다운 구슬이다. 무명과 지혜가 평등해서 차이가 없으니, 만법萬法도 모두 그러한 줄 알아야 한다. 상대적인 견해를 지닌 무리를 가엾이 여겨서, 부르는 말을 쓰게 하여 이 글을 짓나니, 몸과 부처가 다르지 않음을 관찰하면, 어찌 다시 남음 없는 열반[無餘涅槃]을 찾겠는가?”
거사가 2조의 게송을 받아서 절을 한 뒤에 펴 보고, 2조의 인가를 은밀히 받았다.

상주相州 융화사隆化寺 혜만慧滿 선사

그는 형양滎陽 사람으로 성은 장張씨이다. 처음 본사(本寺:隆化寺)에서 승나僧那 선사의 가르침을 받았다. 검약儉約에다 뜻을 두어서, 바늘 두 개만을 갖고 다니면서 겨울에는 걸식하고 누더기 깁기를 하다가 여름이 되면 그것을 버렸다.
그는 스스로 이렇게 말했다. 
“평생 동안 마음에는 두려움이 없고, 몸에는 이[虱]나 벼룩이 없고, 잘 때에는 꿈을 꾸지 않으며, 항상 걸식을 행하고, 같은 장소에서 두 번 숙박하지 않고, 가는 절마다 장작을 패고 신을 삼았다.”
정관貞觀 16년, 낙양의 회선사會善寺 옆에 있는 옛 무덤 틈에서 자다가 큰 눈[大雪]을 만났으므로, 새벽에 절에 들어가서 담광曇曠 법사法師를 만났다. 담광 법사가 그가 어디서 왔는지 이상하게 생각하자, 대사가 말했다.
“법이 온 곳이 있는가?”
담광 법사가 사람을 보내서 그가 온 곳을 찾았더니, 사방에는 눈이 다섯 자쯤이나 쌓였다. 광 법사는 “헤아릴 수 없는 일이다”라고 말하였다. 
그 뒤에 괄록사括錄事 불법佛法의 환란을 말한다.
가 있다는 말이 들렸다. 여러 스님들이 모두 도망해서 숨었지만, 대사만은 발우를 들고 마을을 두루 돌아다니면서 걸림이 없었으니, 얻으면 얻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항상 담담하고 한가로웠다. 어떤 이가 공양이나 숙소를 제공하면 대답하기를 “천하에 스님이 없어야 내가 그 청을 받으리라”고 하였다.
또 언젠가는 사람들에게 이런 법문을 하였다.
“부처님들께서 마음을 말씀하신 것은 마음의 모습이 허망함을 알게 하기 위함인데, 이제 마음의 모습을 거듭 보태니 부처님의 뜻을 깊이 어긴 것이고, 또 논의를 더 보태니 자못 큰 이치[大理]를 어긴 것이다. 그러므로 항상 󰡔능가경󰡕 4권을 갖고 다니면서 마음의 요체로 삼고 그 말씀대로 행하라.”
이는 대체로 대대로 법을 전하는 법칙에 따른 것이다. 나중에 후학들을 교화[陶冶]하는 도중에 질병 없이 앉은 채로 입적하니, 수명은 70세 정도였다.

제30조 승찬僧璨 대사大師

그는 어떤 사람인지 모르지만, 처음에는 재가자의 몸으로 2조를 뵈었다. 비구가 된 뒤에 법을 전해 받고는 서주舒州의 환공산皖公山에 숨었다. 그러다가 후주後周의 무제武帝가 불법을 파괴하자, 대사는 태호현太湖縣의 사공산司空山을 오가면서 일정한 거처 없이 10년을 살았는데, 당시 사람 중에 그를 아는 이가 아무도 없었다.
수隋나라 개황開皇 12년 임자년壬子年이 되었을 때, 겨우 열네 살에 불과한 도신道信이라는 사미가 찾아와서 대사에게 절하면서 말했다.
“바라건대 화상께서 자비를 베풀어 해탈의 법문을 일러 주소서.”
대사가 대답했다.
“누가 너를 속박했느냐?”
“아무도 속박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어찌하여 다시 해탈을 구하는가?”
도신이 그 말끝에 크게 깨달아서 9년을 힘껏 모셨다.
뒤에 길주吉州에서 계戒를 받고 시봉을 더욱 열심히 했는데, 대사는 자주 현묘하고 미묘한 법으로써 그를 시험해 보다가 인연이 익었음을 알자, 곧 옷과 법을 부촉하고서 게송을 읊었다.

꽃과 종자는 비록 땅을 인因하고
땅으로부터 종자와 꽃이 생기지만
만약 종자를 뿌리는 이가 없다면
꽃도 땅도 다하여서 생겨남이 없노라.
華種雖因地    從地種華生
若無人下種    華地盡無生

대사가 다시 말했다.
“옛날에 혜가 대사는 나에게 법을 부촉한 후에 바로 업도鄴都로 가서 30년 동안 교화하다가 입적하였는데, 나는 이제 그대를 만나 법을 전했거늘 어찌 여기에 묵고 있으랴?”
그리고는 곧 나부산羅浮山으로 가서 2년 동안 유행하다가 다시 옛터로 돌아왔는데, 한 달이 지나자 선비와 백성들이 모여와서 크게 단檀을 마련하고 공양을 베풀었다. 
대사는 사부대중에게 마음의 요체를 널리 연설하고 나서 법회를 하던 큰 나무 밑에서 합장한 채로 서서 임종하니, 이때가 수隋나라 양제煬帝 대업大業 2년 병인년丙寅年 10월 15일이었다. 당나라 현종玄宗이 감지鑑智 선사라 시호[謚]를 내리고, 탑호塔號를 각적覺寂이라 하였다. 송나라 경덕景德 원년元年 갑진년까지는 무릇 4백 년이 된다.

처음에 당나라의 하남윤河南尹 이상李常이 본래 조사의 가풍을 흠모해서 현묘한 종지를 깊이 터득했는데, 천보天寶 을유년乙酉年에 이르러 하택荷澤 신회神會를 만나서 물었다.
“3조 대사는 어디에다 장사를 지냈습니까? 듣건대 나부산에 들어가서 돌아오지 않았다고 하기도 하고, 혹은 산곡사山谷寺에서 임종했다고 하니, 어느 것이 옳은지 모르겠습니다.”
신회가 대답했다.
“승찬 대사는 나부산에서 산곡사로 돌아가신 지 한 달 남짓해서 열반에 드셨으니, 지금 서주舒州에 가면 3조의 묘를 볼 수 있소.”
이상李常이 믿지 못했는데, 때마침 서주舒州 별가別駕로 좌천이 되어서 가게 되자, 산곡사의 대중들에게 물었다.
“듣건대 절 뒤에 3조의 묘소가 있다 하는데 사실인가?”
그때 상좌 혜관慧觀이 대답했다. 
“있습니다.”
이상李常이 기뻐하면서 측근[寮佐] 수행하는 관리를 말한다.
들을 데리고 함께 가서 예배하였고, 또 무덤[壙]을 열어 시체[眞儀]를 꺼내어 화장해서 오색五色 사리 3백 알을 얻었다. 그 중에서 백 알을 꺼내어 탑을 세웠고, 백 알은 하택荷澤 신회神會에게 보내어 앞의 말을 증명하였고, 남은 백 알은 몸에 지니고 다니다가 나중에 낙양으로 돌아왔을 때에 자기 집에 재齋를 마련하면서 그것으로 경하했다.
당시 서역에서 온 건나犍那라는 삼장이 모임 속에 있었는데, 이상이 그 삼장에게 물었다.
“천축의 선문禪門에는 조사가 몇 분입니까?”
건나 삼장이 대답했다.
“가섭으로부터 반야다라에 이르기까지 27분의 조사가 계시오. 만일 사자 존자의 방계傍系인 달마달達磨達 이하 4세의 22인을 합치면 모두 49분의 조사가 계시오. 만일 7불佛로부터 승찬 대사에 이르기까지 곁가지를 치지 않으면, 37분의 조사가 계시오.”
이상은 또 모임에 있는 장로들에게 물었다.
“예전에 조도(祖圖:조사의 계보도)를 본 적이 있는데, 혹은 50여 분의 조사를 인용하기도 하여 곁가지가 들쭉날쭉해서 종족宗族이 일정치 않으며, 혹은 헛되이 이름만 있을 뿐이니, 무엇으로 증거를 삼겠습니까?”
그때 6조의 문인인 지본智本 선사라는 이가 대답했다.
“그것은 바로 후위後魏 초기에 불법이 침체했을 때, 당시 담요曇曜라는 사문이 어지러움 속에서도 흰 비단에다 조사의 이름을 단순히 기록했기 때문이니, 어떤 경우에는 차례를 잊은 채로 써서 그냥 옷깃 속에 넣고 바위굴에 숨었소. 그로부터 35년이 지나서야 문성제文成帝가 왕위에 올라 불법이 다시 중흥했는데, 담요는 명성과 행이 모두 높아져서 마침내 승통僧統 스님의 최고 지위를 말한다.
이 되었소. 그는 여러 사문들을 모아서 거듭 거듭 상의하여 결집結集했는데, 그 제목을 󰡔부법장전付法藏傳󰡕이라고 하였소. 그 사이에 약간의 어긋남이 있는 것은 담요가 기록할 때에 두려움에 쫓겼기 때문이오.
그로부터 13년이 지나서, 황제가 국자박사國子博士 황원진黃元眞과 북천축北天竺의 삼장 불타선다佛陀扇多와 길불연吉弗煙 등에게 명령하여 범본梵本을 거듭 탐구하고 종지宗旨를 분명히 구별해서 스승과 제자의 전승을 차례대로 서술케 하니 어긋남이 없게 되었소.”


제31조 도신道信 대사大師

그의 성은 사마司馬씨이니, 대대로 하남河南 지방에 살다가 나중에 기주蘄州의 광제현廣濟縣으로 이사했다. 
대사는 날 때부터 특이하였고, 어릴 때부터 이미 불법[空宗]의 온갖 해탈문을 흠모하니, 완연히 전생에 익힌 것 같았다. 조사의 가풍을 이어받고서는, 마음을 굳게 지녀 졸지 않았으니, 거의 60년 동안 겨드랑이를 바닥에 대지 않았다.
수隋나라 대업大業 13년에 무리들을 이끌고 길주吉州로 가다가 도적떼를 만났는데, 성을 둘러싸고 79일 동안이나 풀어주지 않아서 대중이 모두 겁에 질려 있었다. 대사는 그들을 가엾게 생각해서 마하반야摩訶般若를 염念하게 하였다. 이때 도적들이 성벽 위를 바라보자 마치 신병神兵이 있는 듯했으므로 서로 “이 성안에 반드시 이인異人이 있으니 공격하지 말자”고 하고는 슬금슬금 물러갔다.

당나라 무덕武德 갑신년甲申年에 대사는 다시 기춘蘄春으로 돌아와서 파두산破頭山에 머무르니, 배우는 무리들이 구름같이 모여들었다. 하루는 황매현黃梅縣으로 가는 길에 한 어린아이를 만났는데, 골격이 기이하고 수려한 것이 다른 아이들과는 매우 달랐다. 대사가 물었다.
“성姓이 무엇이냐?”
동자가 대답했다.
“성姓은 있으나 항상된 성은 아닙니다.”
“(항상된 성姓이란) 어떤 성인가?”
“부처의 성性입니다.”
“그대는 성性이 없는가?”
“성性이 공하기 때문입니다.”
대사는 묵연히 그가 법기法器임을 알아채고서, 시자를 시켜 그 집의 부모에게 가서 출가시키기를 요구케 하였다. 그 부모는 전생의 인연 때문에 어려운 기색 없이 아들을 놓아 주어서 제자가 되게 하니, 이름을 홍인弘忍이라고 하였다.[구본에는 ‘명왈홍인名曰弘忍’의 네 자가 없는데 지금에서야 삽입한 것이다. 만약 이름을 말하지 않았다고 하면 법과 의발衣鉢을 전해 받은 사람이 누구이겠는가? 또 뒤에 ‘인왈忍曰’이라는 두 글자가 있는데 역시 불명확하게 된다.] 법을 부촉하고 옷을 전한 뒤에 게송을 말했다.

꽃과 종자는 나는 성품이 있어서
땅을 인하여 꽃이 피고 자라나지만
큰 인연과 믿음이 합할 때에는
그 나고 자라남은 본래 남이 없는 것이네.
華種有生性    因地華生生
大緣與信合    當生生不生

그리하여 학도들을 그에게 맡기고 하루는 대중에게 말했다.
“내가 무덕武德 때에 여산廬山을 유행하다가 정상에 올라가서 파두산破頭山을 바라보니, 자줏빛 구름이 일산같이 덮여 있고 그 아래로 흰 기운이 여섯 갈래로 나뉘어 펼쳐져 있는 것을 보았는데, 그대들은 알 수 있겠는가?”
대중이 모두 잠자코 있자, 홍인이 대답했다.
“화상께서 뒷날에 한 가닥의 불법을 따로 내실 것이 아니겠습니까?”
대사가 말했다.
“바로 알았다.”

뒤에 정관貞觀 계묘년癸卯年이 되자, 태종太宗이 대사의 도풍을 듣고 그 풍채風彩를 보고자 해서 조서를 내려 서울로 불렀지만, 표를 올려서 사양하였다. 이렇게 하기를 전후 세 차례나 반복하였지만 끝내 병을 핑계로 사양하였다. 네 번째에는 사자에게 이렇게 명령했다. 
“만약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거든 목을 베어 오라.”
사자가 산으로 가서 조서를 전하니, 대사는 목을 뽑아 칼날로 가져가면서도 얼굴빛이 태연하였다. 사자가 이상히 여겨서 그대로 돌아가 장계狀啓를 올리니, 황제는 더욱 흠모하는 마음을 내어 진기한 비단을 하사함으로써 그의 뜻을 이루게 해주었다.

고종高宗 영휘永徽 신해년辛亥年 윤9월 4일에 홀연히 문인들에게 훈계를 내렸다. 
“일체의 법은 모두가 해탈이니, 너희들은 제각기 호념護念해서 미래의 유정들을 교화하라.”  
말을 마치자 평안히 앉아서 세상을 하직하니, 수명은 72세였다. 탑은 본산本山에 세웠다. 이듬해 4월 8일에 탑의 문이 까닭 없이 저절로 열렸는데, 시체의 모습이 산 것 같았다. 그 이후 문인들은 감히 닫지 못했다. 대종代宗이 대의大醫 선사라 시호를 내리고서 자운의 탑[慈雲之塔]이라고 불렀다. 대사가 입적한 뒤로부터 송나라의 경덕景德 원년元年 갑진년甲辰年에 이르기까지는 대체로 356년이 된다.[356년은 354년이라야 맞다.]


제32조 홍인弘忍 대사大師

그는 기주蘄州 황매현黃梅縣 사람으로서 성은 주周씨이다. 나면서부터 재능이 매우 뛰어났다. 어려서 놀다가 한 지자智者를 만났는데, 그가 이렇게 탄복했다. 
“이 아기는 일곱 가지 상호가 모자라서 여래에 미치지 못한다.”
나중에 도신道信 대사大師를 만나서 법을 받은 뒤에는 파두산에서 교화를 폈다. 

함형咸亨 연간에 성은 노盧이고, 이름은 혜능慧能이라는 한 거사가 신주新州[구본에는 ‘기蘄’자로 잘못 기록되었다.]로부터 찾아와서 대사[弘忍]께 절하자, 대사가 물었다.
“그대는 어디서 왔는가?”
혜능이 대답했다.
“영남嶺南에서 왔습니다.”
“무엇을 하고 싶은가?”
“오직 부처가 되고 싶습니다.”
“영남 사람은 불성佛性이 없는데, 어찌 부처가 되겠는가?”
“사람에게 남북이 있겠지만, 불성이야 어찌 그렇겠습니까?”
대사는 특별한 사람임을 알았지만 버럭 꾸짖었다.
“방앗간에나 가거라.”
혜능은 대사의 발 앞에 절한 뒤에 물러갔다. 그리고는 방앗간으로 들어가서 밤낮으로 쉬지 않고 여덟 달 동안 방아 찧는 일을 하였다. 대사는 법을 부촉할 때가 된 것을 알고 마침내 대중에게 고했다.
“바른 법은 이해하기 어려우니, 나의 말이나 기억해 지니는 것으로써 할 일을 했다고 여기지 말라. 그대들은 각자 뜻대로 게송 하나씩을 지어라. 만일 게송의 뜻이 그윽이 부합되면 옷과 법을 모두 부촉하리라.”
그때 모임에 있던 7백여 명 스님의 상좌上座인 신수神秀라는 이는 그 배움이 안팎을 통달해서 무리의 추앙을 받고 있었다. 모두가 다 추정하기를 “신수 존자가 아니면 누가 감당하리오”라고 하였는데, 신수는 대중이 모두 자기를 칭찬하는 것을 남몰래 듣자, 다시 생각하지 않고 게송 하나를 복도 벽에다 써 놓았다.

몸은 보리수菩提樹요
마음은 명경대明鏡臺와 같으니
때때로 부지런히 털고 닦아서
티끌과 때가 끼지 않도록 하라.
身是菩提樹    心如明鏡臺
時時勤拂拭    莫遣有塵埃

대사가 경행經行을 하다가 홀연히 이 게송을 보고서 신수의 서술임을 알고 찬탄하였다.
“후대 사람들이 이에 의거해 수행하면 그들도 훌륭한 과果를 얻으리라.”
그 벽은 본래 노진盧珍이라는 거사가 능가변상도楞伽變相圖 󰡔능가경󰡕을 주제로 한 불화佛畵이다. 
를 그려야 할 자리였는데, 그는 벽에 게송이 있는 것을 보자, 그림 그리기를 그만두고 각자 외우게 하였다.
혜능이 방앗간에서 일을 하다가 게송 외우는 소리를 듣자 동학同學에게 물었다. 
“저것이 무슨 구절입니까?” 
동학이 대답했다.
“그대는 모를 것이오. 화상께서 법제자를 구하기 위해서 각자 마음의 게송을 지으라고 하셨는데, 이 게송은 신수 상좌께서 지으신 것이오. 화상께서 깊이 칭찬하셨으므로 필경 그에게 법을 부촉하고 옷을 전하실 것이오.”
혜능이 물었다.
“그 게송은 어떤 내용입니까?”
동학들이 외워 주자, 혜능은 한참 침묵을 지키다가 말했다.
“좋기는 좋으나, 아직 요달하지는 못했소.”
동학들이 꾸짖었다.
“못난이가 무엇을 아는가? 미친 소리 하지를 말라.”
혜능이 말했다.
“그대들은 내 말을 믿지 않는가? 내가 게송 하나로 화답하겠소.”
동학들은 대답도 않고 서로 쳐다보면서 웃었다. 혜능은 밤이 되자 은밀히 한 동자를 데리고 복도로 갔다. 그리고는 스스로 촛불을 잡고 서서 동자에게 신수의 게송 옆에다 다음과 같은 게송 하나를 쓰게 했다.

보리는 본래 나무가 아니고
심경心鏡 또한 대臺가 아니네.
본래 한 물건도 없거늘
어찌 먼지를 털 필요가 있으랴.
菩提本非樹    心鏡亦非臺
本來無一物    何假拂塵埃

대사가 나중에 이 게송을 보고서 물었다.
“이건 누가 지은 것인가? 역시 본성을 깨닫지 못했도다.”
대중들이 대사의 말을 듣고서 아무도 다시는 돌아보지 않았다. 밤이 되자 남몰래 사람을 방앗간에 보내어 혜능 행자行者를 방으로 불러오게 하고서 말했다.
“모든 부처님께서 세상에 출현하심은 하나의 큰 일[一大事]을 위함이다. 그리하여 근기의 크고 작음에 따라 인도하셔서 10지地와 3승乘과 돈점頓漸 따위의 종지로써 교문敎門을 이루었지만, 위없는 비밀하고 미묘하며 원명圓明하고 진실한 정법안장은 상수제자上首弟子인 대가섭 존자에게 부촉하셨다. 차례차례 28대를 전수하여 달마 대사에 이르러서는 중국으로 오셔서 혜가 대사에게 전하신 것이 나에게까지 전해 왔다. 이제 나는 법보와 전해 받은 가사袈裟를 그대에게 부촉하나니, 스스로 잘 보호해서 끊이지 않게 하라. 나의 게송을 들어라.”

유정有情이 와서 씨를 뿌리면
땅을 인因하여 과果가 되돌아 나지만
무정無情은 이미 종자가 없으매
성품도 없고 또한 생겨남도 없네.
有情來下種    因地果還生
無情旣無種    無性亦無生

혜능 거사가 꿇어앉아서 옷과 법을 받고 아뢰었다.
“법은 이미 받았지만, 옷은 누구에게 전해야 하겠습니까?”
대사가 대답했다.
“옛날에 달마가 처음 왔을 때에는 사람들이 아무도 믿지 않으므로 옷을 전함으로써 법을 얻었음을 증명했지만, 이제는 신심이 이미 성숙했고 옷은 다툼의 실마리가 될 수 있으므로, 그대에게서 그치고 더 전하지는 말라. 또 멀리 가서 숨었다가 때를 기다려서 교화하라. 이른바 옷을 받은 사람의 목숨이 실에 매달린 것과 같다고들 한다.”
혜능 거사가 물었다.
“어디에 가서 숨어야 하겠습니까?”
“회懷를 만나면 머물고[止], 회會를 만나면 숨어라[藏].”
혜능이 발에다 절을 하고 나서 옷을 들고 나갔다. 그리고 그 날 밤 남쪽을 향해 떠났으나, 대중은 아무도 알지 못했다.
홍인 대사는 이로부터 다시는 법당에 오르지 않았다. 3일 만에 대중이 의심이 나서 묻자, 홍인 조사가 대답했다.
“나의 도는 떠났으니, 더 이상 물을 필요가 없다.”
“옷과 법은 누가 얻었습니까?”
“능能이라는 이가 얻었다.”
그래서 대중은 노 행자의 이름이 능能임을 생각해 내고서 그를 찾아보았지만 이미 없었다. 그가 법과 옷을 받은 것이 분명한 줄 알게 되자, 모두가 뒤를 쫓았다.

홍인 대사가 옷과 법을 부촉한 뒤 다시 4년이 지나자, 상원上元 2년 을해년乙亥年[을해년, 즉 당의 고종高宗 때이다. 숙종肅宗 때에 이르러 또 상원上元의 연호가 있다. 그 해는 신축년辛丑年이다.]에 홀연히 대중에게 고하였다. 
“나는 이제 할 일을 마쳤으니 떠날 때이다.” 
그리고는 방에 들어가서 단정히 앉아서 입적하니, 수명은 74세였다. 황매현 동쪽 산에 탑을 세우니, 대종代宗 황제가 대만 선사 법우의 탑[大滿禪師法雨之塔]이라는 시호를 내렸다. 대사가 열반에 든 해로부터 송宋나라 경덕景德 원년元年 갑진년甲辰年까지는 330년이 된다.



경덕전등록 제4권






제31조 도신道信 대사에서 방계로 나온 법손[法嗣]은 9세世    로서 모두 76인임. 명본明本의 목록인데 지금의 목록과는 다른 점이 있으므로 앞에 싣는다.


금릉金陵 우두산牛頭山 6세의 조종祖宗
제1세 법융法融 선사禪師
제2세 지암智巖 선사
제3세 혜방慧方 선사
제4세 법지法持 선사
제5세 지위智威 선사
제6세 혜충慧忠 선사
  [이상 6인은 기록에 보임]
앞의 6세 조종祖宗의 법손은 모두 70인임.

법융法融 선사 밑의 3세世에서 방계로 나온 12인
금릉金陵 종산鍾山 담최曇璀 선사
  [1인은 기록에 보임]
형주荊州 대소大素 선사
유서幽棲 월공月空 선사
백마白馬 도연道演 선사
신안新安 정장定莊 선사
팽성彭城 지차智瑳 선사
광주廣州 도수道樹 선사
호주湖州 지상智爽 선사
신주新州 두묵杜黙 선사
상원上元 지성智誠 선사
정진定眞 선사[지성智誠 선사에서 나옴]
여도如度 선사[정진定眞 선사에서 나옴]
  [이상 11인은 기연機緣할 어구語句가 없으므로 기록하지 않음]

지암智巖 선사 밑에서 방계로 나온 8인
동도東都 경담鏡潭 선사
양주襄州 지장志長 선사
호주湖州 의진義眞 선사
익주益州 단복端伏 선사
용광龍光 구인龜仁 선사
양양襄陽 변재辯才 선사
한남漢南 법준法俊 선사
서주西州 민고敏古 선사
  [이상 8인은 기연機緣할 어구語句가 없으므로 기록하지 않음]

법지法持 선사 밑에서 방계로 나온 2인
우두산牛頭山 현소玄素 선사
천주天柱 홍인弘仁 선사
  [이상 2인은 기연할 어구가 없으므로 기록하지 않음]

지위智威 선사 밑의 4세世에서 방계로 나온 12인
선주宣州 안국사安國寺 현정玄挺 대사[지위智威 선사에서 나온 3인] 
윤주潤州 학림鶴林 현소玄素 선사
서주舒州 천주산天柱山 숭혜崇慧 선사
항주杭州 경산徑山 도흠道欽 선사[현소玄素 선사에서 나옴]
항주杭州 조과鳥窠 도림道林 선사[도흠道欽 선사에서 나옴]
항주 초현사招賢寺 회통會通 선사[조과鳥窠 선사에서 나옴]
  [이상 6인은 기록에 보임]
영암靈巖 보관寶觀 선사[지위智威 선사에서 나옴]
금화산金華山 담익曇益 선사[현소玄素 선사에서 나온 2인] 
오문吳門 원경圓鏡 선사
목저산木渚山 오悟 선사[경산徑山 도흠道欽 선사의 방계에서 나온 3     인]
청양靑陽 광부廣敷 선사
항주杭州 건자산巾子山 숭혜崇慧 선사
  [이상 6인은 기연할 어구가 없으므로 기록하지 않음]
이상은, 구본舊本에 기록된 세대와 차례[世次]가 불분명하므로 여기서는 본장本章의 내용을 따라 법손[法嗣]을 첨주添注하여서, 모두 4세世로 하였다.
혜충慧忠 선사 밑의 두 대[兩世]에서 방계로 나온 36인[천태산天    台山 운거雲居 지智 선사와 윤주潤州 서하사棲霞寺의 청원淸源 선사 2인    을 제외한 나머지 선사는 모두 충忠 선사에서 나옴]
천태산天台山 불굴암佛窟巖 유칙惟則 선사
천태산 운거雲居 지智 선사[유칙惟則 선사에서 나옴]
  [이상 2인은 기록에 보임]
우두산牛頭山 도성道性 선사
강녕江寧 지등智燈 선사
해현解縣 회신懷信 선사
학림鶴林 전全 선사
북산北山 회고懷古 선사
명주明州 관종觀宗 선사
우두산牛頭山 대지大智 선사
백마白馬 선도善道 선사
우두산牛頭山 지진智眞 선사
우두산牛頭山 담옹譚顒 선사 
우두산牛頭山 운도雲韜 선사
우두산牛頭山 응凝 선사
우두산牛頭山 법량法粱 선사
강녕江寧 행응行應 선사
우두산牛頭山 혜량惠良 선사
흥선興善 도융道融 선사
장산蔣山 조명照明 선사
우두산牛頭山 법등法燈 선사
우두산牛頭山 정공定空 선사
우두산牛頭山 혜섭慧涉 선사
유서幽棲 도우道遇 선사
우두산牛頭山 응공凝空 선사
장산蔣山 도초道初 선사
유서幽棲 장藏 선사
우두산牛頭山 영휘靈暉 선사
유서幽棲 도영道穎 선사
우두산牛頭山 거영巨英 선사
석산釋山 법상法常 선사
용문龍門 응적凝寂 선사
장엄莊嚴 원遠 선사
양주襄州 도견道堅 선사
이명오尼明悟
거사居士 은정이殷淨已
윤주潤州 서하사棲霞寺 청원淸源 선사[혜섭慧涉 선사에서 나옴]
  [이상 34인은 기연할 어구가 없으므로 기록하지 않음]

제32조 홍인弘忍 대사大師의 5세에서 방계로 나온 107인

제1세 13인

북종北宗 신수神秀 선사
숭악嵩嶽 혜안慧安 국사
원주袁州 몽산蒙山 도명道明 선사
    [이상 3인은 기록에 보임]
양주楊州 봉법사奉法寺 담광曇光 선사
수주隋州 선조禪慥 선사
금주金州 법지法持 선사
자주資州 지선智侁 선사
서주舒州 법조法照 선사
월주越州 의방義方 선사
지강枝江 도준道俊 선사
상주常州 현색玄賾 선사
월주越州 승달僧達 선사
백송산白松山 유劉 주부主簿
    [이상 10인은 기연할 어구가 없으므로 기록하지 않음]
  
제2세 37인

북종北宗 신수神秀 선사의 법손 19인
오대산五臺山 거방巨方 선사
하중부河中府 중조산中條山 지봉智封 선사
연주兗州 항마降魔 장藏 선사
수주壽州 도수道樹 선사
회남도淮南都 양산梁山 전식全植 선사
  [이상 5인은 기록에 보임]
형주荊州 사랑辭朗 선사
숭산嵩山 보적普寂 선사
대불산大佛山 향육香育 선사
서경西京 의복義福 선사
홀뢰忽雷 징澄 선사
동경東京 일日 선사
태원太原 변정遍淨 선사
남악南嶽 원관元觀 선사
여남汝南 두杜 선사
숭산嵩山 경敬 선사
경조京兆 소복小福 선사
진주晋州 곽산霍山 관觀 선사
윤주潤州 모산茅山 숭규崇珪 선사
안육安陸 회공懷空 선사
  [이상 14인은 기연할 어구가 없으므로 기록하지 않음]

앞의 숭악嵩嶽 혜안慧安 국사 등의 법손 18인
낙경洛京 복선사福先寺의 인검仁儉 선사[혜안慧安 국사에서 나온 6     인] 낙경洛京 복선사福先寺의 인검仁儉 선사禪師에서 서경西京 도량道亮 선사까지의 6인을 말한다.

숭악嵩嶽 파조타破竈墮 화상和尙
숭악嵩嶽 원규元珪 선사
  [이상 3인은 기록에 보임]
상산常山 탄연坦然 선사
업도鄴都 원적圓寂 선사
서경西京 도량道亮 선사
양주楊州 대총관大總管 이효일李孝逸[도량道亮 선사에서 방계로 나     온 5인]
공부상서工部尙書 장석張錫
국자좨주國子祭酒 최융崔融
비서감祕書監 하지장賀知章
목주睦州 자사刺史 강선康詵
정수正壽 선사[수주隋州 신조神慥 선사에서 나옴]
홍주洪州 숭적崇寂 선사[몽산蒙山 도명道明 선사에서 나온 3인]
강서江西 괴瓌 선사
무주撫州 신정神貞 선사
자주資州 처적處寂 선사[자주資州 지선智詵 선사에서 나옴]
의흥義興 신비神斐 선사[현색玄賾 선사에서 나온 2인]
호주湖州 창暢 선사
  [이상 15인은 기연할 어구가 없으므로 기록하지 않음]

제3세 49인

앞의 형주荊州 사랑辭朗 선사의 법손 3인
자금紫金 현종玄宗 선사
명주明州 대매산大梅山 차車 선사
전계塼界 신휘愼徽 선사
  [이상 3인은 기연할 어구가 없으므로 기록하지 않음]

앞의 숭산嵩山 보적普寂 선사 등의 법손 46인
종남산終南山 유정惟政 선사[보적 선사에서 나온 24인. 1인은 기록    에 보임.]
광복廣福 혜공慧空 선사
상월常越 선사
양주襄州 협석산夾石山 사思 선사
명찬明瓚 선사
경애사敬愛寺 진眞 선사
연주兗州 수현守賢 선사
정주定州 석장石藏 선사
남악南嶽 징심澄心 선사
남악南嶽 일조日照 선사
낙경洛京 동덕사同德寺 간幹 선사
소주蘇州 진량眞亮 선사
와관사瓦棺寺 준濬 선사
익양弋陽 법융法融 선사
광릉廣陵 연演 선사
협주陜州 혜공慧空 선사
낙경洛京 진량眞亮 선사
택주澤州 긍월亘月 선사
박주亳州 담진曇眞 선사
도량산都粱山 숭연崇演 선사
경조京兆 장경사章敬寺 징澄 선사
숭양사嵩陽寺 일행一行 선사
경조산京兆山 북사北寺 융融 선사
조주曹州 정도定陶 정丁 거사居士
대웅大雄 맹猛 선사[서경西京 의복義福 선사에서 나온 8인]
서경西京 대진동大震動 선사
신비神斐 선사
서경西京 대비광大悲光 선사
서경西京 대은大隱 선사
정경定境 선사 
도파道播 선사 
현증玄證 선사
서경西京 적만寂滿 선사[항마降魔 장藏 선사에서 나온 3인] 
서경西京 정장定莊 선사 
남악南嶽 혜은慧隱 선사
신조神照 선사[남악南嶽 원관元觀 선사에서 나옴]
경조京兆 남전藍田 심적深寂 선사[소복小福 선사에서 나온 3인] 
태백산太白山 일몰日沒 운雲 선사 
동백산東白山 법초法超 선사
현산峴山 유幽 선사[곽산霍山 관觀 선사에서 나옴]
익주益州 무상無相 선사[자주資州 처적處寂 선사에서 나온 4인]
익주益州 장송산長松山 마馬 선사
초超 선사
재주梓州 효료曉了 선사
서경西京 지유智游 선사[의흥義興 비斐 선사에서 나온 2인] 
동도東都 지심智深 선사
  [이상 45인은 기연할 어구가 없으므로 기록하지 않음]

제4세 7인

앞의 흥선興善 유정惟政 선사의 법손 2인
형주衡州 정심定心 선사 
경애사敬愛寺 지진志眞 선사
  [이상 2인은 기연할 어구가 없으므로 기록하지 않음]

앞의 익주益州 무상無相 선사 등의 법손 5인
익주益州 보당사保唐寺 무주無住 선사[무상無相 선사에서 나온 4인.    1인이 기록에 보임.]
형주荊州 명월산明月山 융融 선사
한주漢州 운정산雲頂山 왕王 두타頭陀
익주益州 정중사淨衆寺 신회神會 선사
무계武誡 선사[전계塼界 신휘愼徽 선사에서 나옴]
  [이상 4명은 기연할 어구가 없으므로 기록하지 않음]

제5세 1인

앞의 경애사敬愛寺 지진志眞 선사의 법손 1인
숭산嵩山 조照 선사
  [1인은 기연할 어구가 없으므로 기록하지 않음]


제31조 도신道信 대사 휘하에서 나온 법손 총183인과 그 방    계 76인 이는 명본明本의 목록目錄이다.


금릉金陵 우두산牛頭山 6세世 조종祖宗은 기록에 나타남.
제1세 법융法融 선사
제2세 지암智巖 선사
제3세 혜방慧方 선사
제4세 법지法持 선사
제5세 지위智威 선사
제6세 혜충慧忠 선사
앞의 6세 조종의 법손은 모두 80인 제4권 도입부에는 같은 제목의 조사 숫자가 70인으로 되어 있고, 현 본문에는 80인으로 되어 있는데, 제목으로 비추어 볼 때 6인의 조사와 법손[法嗣] 70인이 되어야 총 76인의 조사 숫자가 나오므로 본문의 80인은 70이어야 맞을 듯하다.
이다.

법융法融 선사 밑의 3세에서 방계로 나온 12인[1인은 기록에 보    임]
금릉金陵 종산鍾山 담최曇璀 선사 이 한 사람만이 기록에 보인다.

형주荊州 대소大素 선사
유서幽棲 월공月空 선사
백마白馬 도연道演 선사
신안新安 정장定莊 선사
팽성彭城 지차智瑳 선사
광주廣州 도수道樹 선사
호주湖州 지상智爽 선사
신주新州 두묵杜黙 선사
상원上元 지성智誠 선사
지성智誠 선사에서 나온 1인 - 정진定眞 선사
정진定眞 선사에서 나온 1인 - 여도如度 선사
  [이상 11인은 기연할 어구가 없으므로 기록하지 않음]
지암智巖 선사 밑에서 방계로 나옴.
동도東都 경담鏡潭 선사
양주襄州 지장志長 선사
호주湖州 의진義眞 선사
익주益州 단복端伏 선사
용광龍光 구인龜仁 선사
양양襄陽 변재辯才 선사
한남漢南 법준法俊 선사
서주西州 신수대장경 원문에는 ‘서천西川’으로 되어 있는데, ‘서주西州’로 해야 맞다.
 민고敏古 선사
  [이상 8인은 기연할 어구가 없으므로 기록하지 않음]

법지法持 선사 밑에서 방계로 나옴.
우두산牛頭山 현소玄素 선사
천주天柱 홍인弘仁 선사
  [이상 2명은 기연할 어구가 없으므로 기록하지 않음]

지위智威 선사 밑의 3세世에서 방계로 나온 12인[6인은 기록에    보임]
선주宣州 안국사安國寺 현정玄挺 대사 
윤주潤州 학림사鶴林寺 현소玄素 선사
서주舒州 천주산天柱山 숭혜崇慧 선사
항주杭州 경산徑山 도흠道欽 선사
항주杭州 조과鳥窠 도림道林 선사
항주杭州 초현사招賢寺 회통會通 선사
현소玄素 선사에서 다시 2인이 나옴.
  ① 금화金華 담익曇益 선사
  ② 오문吳門 원경圓鏡 선사

도흠道欽 선사에서 다시 3인이 나옴.
  ① 목저산木渚山 오悟 선사
  ② 청양靑陽 광부廣敷 선사
  ③ 항주杭州 중자산中子山 숭혜崇慧 선사

도림道林 선사에서 다시 1인이 나옴.
영암靈巖 보관寶觀 선사
  [이상 6인은 기연할 어구가 없으므로 기록하지 않음]

혜충慧忠 선사 밑의 두 대[兩世]에서 방계로 나온 36인[2인은 기    록에 보임]
천태산天台山 불굴암佛窟巖 유칙惟則 선사[천태산天台山 운거雲居가    방계로 나옴]
천태산天台山 운거雲居 지智 선사
우두산牛頭山 도성道性 선사
강녕江寧 지등智燈 선사
해현解縣 회신懷信 선사
학림鶴林 전全 선사
북산北山 회고懷古 선사
명주明州 관종觀宗 선사
우두산牛頭山 대지大智 선사
백마白馬 선도善道 선사
우두산牛頭山 지진智眞 선사
우두산牛頭山 담옹譚顒 선사
우두산牛頭山 운도雲韜 선사
우두산牛頭山 응凝 선사
우두산牛頭山 법량法梁 선사
강녕江寧 행응行應 선사
우두산牛頭山 혜량惠良 선사
흥선興善 도융道融 선사
장산蔣山 조명照明 선사
우두산牛頭山 법등法燈 선사
우두산牛頭山 정공定空 선사
우두산牛頭山 혜섭慧涉 선사
유서幽棲 도우道遇 선사
우두산牛頭山 응공凝空 선사
장산蔣山 도초道初 선사
유서幽棲 장藏 선사
우두산牛頭山 영휘靈暉 선사
유서幽棲 도영道穎 선사
우두산牛頭山 거영巨英 선사
석산釋山 법상法常 선사
용문龍門 응적凝寂 선사
장엄莊嚴 원遠 선사
양주襄州 도견道堅 선사
이명오尼明悟
거사居士 은정이殷淨已
앞의 혜섭慧涉 선사에서 다시 1인이 나옴.
윤주潤州 서하사棲霞寺 청원淸源 선사
  [이상 34인은 기연할 어구가 없으므로 기록하지 않음]

제32조 홍인弘忍 대사의 5세에서 방계로 나온 107인

제1세 13인

북종北宗 신수神秀 선사
숭악嵩嶽 혜안慧安 국사
원주袁州 몽산蒙山 도명道明 선사
    [이상 3인은 기록에 보임]
양주揚州 봉법사奉法寺 담광曇光 선사
수주隨州 선조禪慥 선사
금주金州 법지法持 선사
자주資州 지선智侁 선사
서주舒州 법조法照 선사
월주越州 의방義方 선사
지강枝江 도준道俊 선사
상주常州 현색玄賾 선사
월주越州 승달僧達 선사
백송산白松山 유劉 주부主簿
    [이상 10인은 기연할 어구가 없으므로 기록하지 않음]

제2세 37인

북종北宗 신수神秀 선사의 법손 19인
오대산五臺山 거방巨方 선사
하중부河中府 중조산中條山 지봉智封 선사
연주兗州 항마降魔 장藏 선사
수주壽州 도수道樹 선사
회남도淮南都 양산梁山 전식全植 선사
  [이상 5인은 기록에 보임]
형주荊州 사랑辭朗 선사
숭산嵩山 보적普寂 선사
대불산大佛山 향육香育 선사
서경西京 의복義福 선사
홀뢰忽雷 징澄 선사
동경東京 일日 선사
대원大原 변정遍淨 선사
남악南嶽 원관元觀 선사
여남汝南 두杜 선사
숭산嵩山 경敬 선사
경조京兆 소복小福 선사
진주晋州 곽산霍山 관觀 선사
윤주潤州 모산茅山 숭규崇珪 선사
안육安陸 회공懷空 선사
  [이상 14인은 기연할 어구가 없으므로 기록하지 않음]

앞의 숭악嵩嶽 혜안慧安 국사 등의 법손 18인
낙경洛京 복선사福先寺 인검仁儉 선사
숭악嵩嶽 파조타破竈墮 화상和尙
숭악嵩嶽 원규元珪 선사
  [이상 3인은 기록에 보임]
상산常山 탄연坦然 선사
업도鄴都 원적圓寂 선사
서경西京 도량道亮 선사

도량道亮 선사에서 다시 5인이 나옴.
  ① 양주揚州 대총관大總管 이효일李孝逸
  ② 공부상서工部尙書 장석張錫
  ③ 국자좨주國子祭酒 최융崔融
  ④ 비서감袐書監 하지장賀知章
  ⑤ 목주睦州 자사刺史 강선康詵

앞의 수주隨州 신조神慥 선사에서 다시 1인이 나옴.
정수正壽 선사

앞의 몽산蒙山 도명道明 선사에서 다시 3인이 나옴.
  ① 홍주洪州 숭적崇寂 선사
  ② 강서江西 괴瓌 선사
  ③ 무주撫州 신정神貞 선사

앞의 자주資州 지신智侁 선사에서 다시 1인이 나옴.
자주資州 처적處寂 선사

앞의 현색玄賾 선사에서 다시 2인이 나옴.
  ① 의흥義興 신비神斐 선사
  ② 호주湖州 창暢 선사
  [이상 15인은 기연할 어구가 없으므로 기록하지 않음]

제3세 49인

앞의 형주荊州 사랑辭朗 선사의 법손
자금紫金 현종玄宗 선사
명주明州 대매산大梅山 상常 선사
전계塼界 신휘愼徽 선사
  [이상 3인은 기연할 어구가 없으므로 기록하지 않음]

앞의 숭산嵩山 보적普寂 선사 등의 법손 46인[1인은 기록에 보임]
종남산終南山 유정惟政 선사
광복廣福 혜공慧空 선사
상월常越 선사
양주襄州 협석산夾石山 사思 선사
명찬明瓚 선사
경애사敬愛寺 진眞 선사
연주兗州 수현守賢 선사
정주定州 석장石藏 선사
남악南嶽 징심澄心 선사
남악南嶽 일조日照 선사
낙경洛京 동덕사同德寺 간幹 선사
소주蘇州 진량眞亮 선사
와관사瓦棺寺 준濬 선사
익양弋陽 법융法融 선사
광릉廣陵 연演 선사
협주陜州 혜공慧空 선사
낙경洛京 진량眞亮 선사
택주澤州 긍월亘月 선사
박주亳州 담진曇眞 선사
도량산都梁山 숭연崇演 선사
경조京兆 장경사章敬寺 징澄 선사
숭양사嵩陽寺 일행一行 선사
경조산京兆山 북사北寺 융融 선사
진주晋州 정도定陶 정丁 거사

앞의 서경西京 의복義福 선사에서 다시 8인이 나옴.
대웅大雄 맹猛 선사
서경西京 대진동大震動 선사
신비神斐 선사
서경西京 대비광大悲光 선사
서경西京 대은大隱 선사
정경定境 선사 
도파道播 선사 
현증玄證 선사 

앞의 항마降魔 장藏 선사에서 다시 3인이 나옴.
서경西京 적만寂滿 선사 
서경西京 정장定莊 선사 
남악南嶽 혜은慧隱 선사

앞의 남악南嶽 원관元觀 선사에서 다시 1인이 나옴.
신조神照 선사

앞의 소복小福 선사에서 다시 3인이 나옴.
경조京兆 남전藍田 심적深寂 선사 
태백산太白山 일몰日沒 운雲 선사 
동백산東白山 법초法超 선사 

앞의 곽산霍山 관觀 선사에서 다시 1인이 나옴.
현산峴山 유幽 선사

앞의 자주資州 처적處寂 선사에서 다시 4인이 나옴.
익주益州 무상無相 선사
익주益州 장송산長松山 마馬 선사
초超 선사
재주梓州 효료曉了 선사 

앞의 의흥義興 비斐 선사에서 다시 2인이 나옴.
서경西京 지유智游 선사
동도東都 지심智深 선사
  [이상 45인은 기연할 어구가 없으므로 기록하지 않음]

제4세 7인

앞의 흥선興善 유정惟政 선사의 법손
형주衡州 정심定心 선사 
경애사敬愛寺 지진志眞 선사
  [이상 2인은 기연할 어구가 없으므로 기록하지 않음]

앞의 익주益州 무상無相 선사 등의 법손 5인[1인은 기록에 보임]
익주益州 보당사保唐寺 무주無住 선사
형주荊州 명월산明月山 융融 선사
한주漢州 운정산雲頂山 왕王 두타頭陀
익주益州 정중사淨衆寺 신회神會 선사

앞의 전계塼界 신휘愼徽 선사에서 다시 1인이 나옴.
무계武誡 선사
  [이상 4명은 기연할 어구가 없으므로 기록하지 않음]

제5세 1인

앞의 경애사敬愛寺 지진志眞 선사의 법손
숭산嵩山 조照 선사
  [기연할 어구가 없으므로 기록하지 않음]


제31조 도신道信 대사 휘하에서 방계로 나온 법         손[法嗣]

금릉金陵 우두산牛頭山 6세의 조종祖宗

제1세 법융法融 선사
그는 윤주潤州 연릉延陵 사람으로서 성은 위韋씨이다. 나이 19살에 경사經史를 두루 배우고, 대부반야大部般若를 열람하다가 진공眞空을 밝게 통달하였다. 그러다가 어느 날 홀연히 탄식하였다.
“유도儒道는 세간의 경전으로서 궁극의 법이 아니고, 반야의 바른 관[正觀]이야말로 세간을 벗어난 배[舟航]로다.”
그는 드디어 모산茅山에 은둔해서 스승에게 귀의하여 머리를 깎았다. 나중에 우두산牛頭山에 있는 유서사幽棲寺 북쪽의 바위굴로 들어갔는데, 온갖 새들이 꽃을 물어오는 이적異蹟이 있었다.

당唐나라 정관貞觀 때에 4조가 멀리서 기상氣象을 관찰하고는 그 산에 기이한 사람이 있음을 알고 몸소 찾아가서 그 절의 스님에게 물었다. 
“여기에 도인이 있는가?”
그 스님이 대답했다.
“출가한 사람치고 도인이 아닌 자가 있습니까?”
조사가 다시 물었다.
“누가 도인인가?”
그 스님이 대답하지 못하자, 다른 스님이 말했다.
“여기서 산 속으로 10리쯤 들어가면 게으름뱅이가 하나 있는데, 사람을 보아도 일어나지 않고 합장도 하지 않습니다. 그가 도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도신道信 조사가 산으로 들어갔는데, 그는 도신을 보고도 태연자약하게 단정히 앉아서 돌아보지도 않았다. 조사가 물었다.
“여기서 무엇을 하는가?”
대사가 대답했다. 
“마음을 관觀합니다.”
“관하는 것은 누구이며, 마음은 어떤 물건인가?”
대사가 대답하지 못하고 벌떡 일어나서 절을 하고 말했다.
“대덕께서는 어디에 계시는 어른이신지오?”
조사가 대답했다.
“빈도貧道는 일정하게 사는 곳이 없이 동東으로 서西로 다니오.”
“그렇다면 도신 선사를 아십니까?”
“어째서 그를 물으시오?”
“오랫동안 그 덕에 대해 들었으므로 한번 뵈옵기를 바랍니다.”
“도신 선사는 바로 빈도요.”
“어떻게 여기까지 강림하셨습니까?”
“특별히 방문하러 왔소. 편하게 쉴 만한 곳이 또 없소?”
법융法融이 뒤쪽을 가리키면서 말하였다. 
“따로 작은 암자가 있습니다.” 
그리고는 조사를 이끌고 암자로 가니, 암자 주위에는 오직 호랑이와 이리와 같은 짐승만이 있었다. 조사가 두 손을 들면서 두려워하는 몸짓을 하자, 법융이 물었다. 
“아직도 그런 것이 남았습니까?”
조사가 되물었다.
“지금 무엇을 보았는가?”
대사가 대답하지 못했다. 조금 있다가 조사가 대사의 참선하는 돌 위에다 부처 불佛자 하나를 쓰자, 대사가 이를 보고 송구하게 생각하였다. 조사가 물었다.
“아직도 그런 것이 남았는가?”
대사가 깨닫지 못하고 머리를 숙이면서 참다운 요체를 설해 주기를 청했다.
조사가 대답했다.  
“무릇 백천 가지 법문이 똑같이 마음[方寸]으로 돌아가고, 항하의 모래같이 많은 묘한 공덕이 몽땅 마음 근원[心源]에 있다. 일체의 계율․선정․지혜․신통변화가 모두 스스로 구족해서 그대의 마음을 여의지 않으며, 일체의 번뇌와 업장이 본래 공적하고 일체의 인과가 모두 꿈이나 허깨비 같으니, 삼계를 벗어날 것도 없고 보리를 구할 것도 없다. 사람과 사람 아닌 것이 성품과 형상에서 평등하며, 대도大道는 텅 비어서 사려가 끊어졌으니, 이러한 법을 지금 그대는 이미 얻었다. 조금도 모자람이 없으니 부처와 무엇이 다르겠는가? 다시 다른 법이 없으니, 그대는 그저 마음에 맡겨 자재自在하라. 관행觀行을 짓지도 말고, 마음을 깨끗이 하고자 하지도 말고, 탐욕과 성냄을 일으키지도 말고, 근심과 걱정을 품지도 말고, 탕탕蕩蕩하게 걸림 없이 뜻대로 종횡縱橫하면서 선善을 짓지도 말고 악惡을 짓지도 말라. 다니고 멈추고 앉고 누우며[行住坐臥] 눈에 부딪치고 만나는 연緣이 모두 부처의 묘한 작용으로서 즐거워 근심이 없나니, 그런 까닭에 이름하여 부처라 하는 것이다.”
대사가 물었다.
“마음에 이미 구족되어 있다면, 어떤 것이 부처이며, 어떤 것이 마음입니까?”
조사가 대답했다.
“마음이 아니면 부처를 묻지 못하고, 부처를 묻는 것은 마음 아님이 없다.”
“관행을 짓지 말라고 하셨는데, 그렇다면 경계가 일어날 때에 어떻게 대치해야 하겠습니까?”
“경계의 연緣은 좋고 나쁨이 없고 좋고 나쁨은 마음에서 일어나니, 마음이 억지로 이름을 짓지 않는다면 망정忘情이 어디로부터 일어나겠는가? 망정이 이미 일어나지 않으면 참 마음[眞心]이 두루 아나니, 그대는 다만 마음 따라 자재할 뿐 더 이상 대치하지 않으면, 그것을 이름하여 변함없는 상주법신常住法身이라고 하니 변이變異가 없다. 내가 승찬 대사에게 받은 돈교법문頓敎法門 마음을 깨치면 곧 부처라 하는 교리.
을 이제 그대에게 부촉하나니, 그대는 지금 내 말을 잘 듣고 오직 이 산에만 머물라. 앞으로 다섯 사람의 달자達者가 나타나서 그대의 현묘한 덕화[玄化]를 계승하리라.”[규봉圭峰이 이를 민절무기종泯絶無寄宗이라 단정하고 파상교破相敎의 학설을 인용하여 증명했다. 어떤 스님이 남전南泉에게 묻기를 “우두牛頭가 4조祖를 만나기 전에 어찌하여 새들이 꽃과 과일을 물어다 공양했는가?” 하니, 남전이 대답하기를 “다만 그가 걸음마다 부처 되는 길을 밟았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동산洞山은 대답하기를 “손바닥의 구슬을 보는 것같이 잠시도 마음을 놓지 않았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그 스님이 다시 묻기를 “만난 뒤에 어찌하여 새들이 오지 않았습니까?”라고 하니, 남전이 대답하기를 “설사 오지 않았더라도 왕王 노사老師의 한 줄기 도만은 드러냈느니라”고 하였다. 동산은 대답하기를 “온몸이 갔느니라<通身去也>”고 하였다. 또 어떤 존숙尊宿이 위 두 물음을 합쳐 대답하기를 “도적은 가난한 집 아이를 때리지 않는다”고 하였다. 어떤 스님이 존숙에게 묻기를 “우두가 4조를 만나기 전에는 어떠합니까?”라고 하니, 대답하기를 “실로써 잎사귀를 꿰는 것 같다”고 하였다. 그 스님이 다시 묻기를 “만난 뒤에는 어떠합니까?”라고 하니, 대답하기를 “가을밤이 뒤숭숭하구나”라고 하였다. 또 어떤 스님이 오월吳越의 영명사永明寺 잠潛 선사에게 묻기를 “우두가 4조를 만나기 전에는 어떠합니까?”라고 하니, 잠이 대답하기를 “우두였지”라고 하였다. 또 묻기를 “만난 뒤에는 어떠합니까?”라고 하니, 잠이 대답하기를 “우두였지”라고 하였다. 이와 같이 제방諸方에서 거양擧揚한 일은 이루 다 기록할 수 없다.]
조사는 법을 전한 뒤에 다시 쌍봉산雙峰山으로 돌아가서 생애를 마쳤다.

대사는 이때부터 법석法席이 크게 번성하였는데, 당唐의 영휘永徽 때에 대중들이 먹을 양식이 떨어지자, 대사는 단양丹陽에 가서 시주를 받았다. 산길 80리를 쌀 한 섬 여덟 말을 직접 지고서 아침에 갔다가 저녁에 돌아와 3백 명의 두 때 공양을 빠트리지 않기를 3년을 계속했다.
당시 고을의 수령인 소원선蕭元善이 건초사建初寺에서 󰡔대반야경大般若經󰡕을 강하기를 청하니, 듣는 이가 구름같이 모였다. 「멸정품滅靜品」에 이르렀을 때에는 땅이 진동하였기 때문에 강의를 그만두고 산으로 돌아갔다.
박릉왕博陵王이 대사에게 물었다.
“경계가 색色을 반연하여 발할 때에 색을 반연하여 일어난다고 말하지 않거늘, 어떻게 연緣임을 알아서 그 일어남을 쉬게 할 수 있습니까?”
대사가 대답했다.
“경계와 색이 처음 발할 때에 색과 경계의 두 성품이 공하니, 본래 연緣을 아는 자가 없다. 마음의 헤아림[心量]은 앎[知]과 더불어 똑같으니, 본래 발함이 아닌 줄 비추면, 이때는 일어남이 스스로 쉰다. 어둠을 안으며 연緣을 자각하는 마음을 낳을 때도 연緣은 쫓지를 않으니, 마치 낳기 전과 같게 되어서 색色과 마음이 양육한 것이 아니다. 공空으로부터는 본래 생각[念]이 없고 표상작용[想]과 느낌[受]이 생각을 낳는다고 말하지만, 일어나는 법은 일찍이 일어난 적이 없으니, 어찌 부처님의 가르침[敎令]이 필요하겠는가?”
박릉왕이 물었다.
“눈을 감으면 색色이 보이지 않아도 경계의 사념思念은 더욱 많아집니다. 색色이 이미 마음과 관계하지 않는다면, 경계는 어느 곳으로부터 발합니까?”
대사가 대답했다.
“눈을 감으면 색色이 보이지 않으나 내심內心의 움직이는 사념이 많으니, 이는 허깨비 같은 의식이 거짓으로 작용을 이루는 것이라서 명칭을 일으켜도 끝내 허물이 아니다. 색色을 아는 것이 마음과 관련되지 않고, 마음 또한 사람과 관계하지 않으니, 행을 따라 모습[相]을 굴림이 있는 것은 마치 새가 허공을 날아간 자취와 같다.”
박릉왕이 물었다.
“경계의 발發함은 처소가 없고, 인연의 자각은 낳음[生]을 요달해 아는 것입니다. 경계가 물러가도 자각은 도리어 구르면서 그 자각이 곧 경계로 변합니다. 만일 마음으로 마음을 이끌면 도리어 자각할 대상을 자각하게 되는 것이니, 그 자각을 따름을 좇으면서 따라가게 되면 생멸의 경계[際]를 여의지 못합니다.”
대사가 대답했다.
“색과 마음의 앞과 뒤와 중간에도 진실로 연기緣起의 경계가 없으니, 한 생각[一念]이 스스로 응결하여 잊으면, 누가 움직임과 고요함을 능히 헤아리겠는가? 이 앎은 스스로 앎이 없어서 앎과 앎의 연緣이 만나지 못하니, 마땅히 스스로 본래의 형상을 단속할 뿐 어찌 역외域外에서 구할 필요가 있겠는가? 눈앞의 경계[前境]는 변하여 물러가는 것이 아니고, 뒤 생각[後念]도 지금 도래한 것이 아니니, 달을 찾는 이가 달의 그림자에 집착하고 날아간 새를 쫓는 이가 자취를 더듬는 것과 같다. 마음의 본 성품을 알고자 하면 마치 꿈속을 보는 것과 같나니, 비유하면 6월의 얼음처럼 어디서도 얻을 수 없는 것이다. 허공[空]을 피하려고 해도 끝내 벗어나지 못하고, 허공을 구하려 해도 다시 이루어지지 않으니, 시험 삼아 묻나니 거울 속의 그림자인 마음이 어디로부터 생기겠는가?”
박릉왕이 다시 물었다.
“딱 맞게 마음을 쓸 때는 안온하고 좋다고 하겠습니까?”
대사가 대답했다.
“딱 맞게 마음을 쓸 때는 딱 맞게 무심無心을 쓰는 것이니, 구구 절절한 담론은 명상名相만이 수고로울 뿐이지만, 곧바로 설하는 것은 번거로움이 없다. 무심을 딱 맞게 쓰는 것은 항상 딱 맞게 무無를 쓰는 것이니, 이제 무심을 설하는 처소는 유심有心과 더불어 다르지 않다.”
박릉왕이 다시 물었다.
“지혜로운 이가 묘한 말을 인용하니 마음과 서로 회통해야 마땅합니다. 그러나 말이 마음 길[心路]과 다르니, 이를 합하려고 하면 만 배나 어긋납니다.”
대사가 대답했다.
“방편으로 묘한 말을 하는 것이 병病을 타파하는 대승大乘의 길이기는 하지만, 본래의 성품에 관계된 이야기는 아니고 도리어 공空의 변화로부터 이루어진 것이다. 무념無念이라야 참되고 항상해서 끝내 마음의 길[心路]을 끊으니, 생각을 여읜 성품이 움직이지 않으면 생멸生滅의 어그러짐이 없다. 산골짜기의 메아리에는 먼저 소리가 있는 것이며, 거울에 비친 모습은 돌아서서 볼 수 없는 것이다.”
박릉왕이 다시 물었다.
“수행자가 경계가 있음을 체현하다가 자각으로 인해 경계의 허망함을 압니다. 그렇다면 앞의 자각과 뒤의 자각과 경계를 합하여서 세 마음이 있는 것입니다.”
대사가 대답했다.
“경계의 작용은 바탕의 자각[體覺]이 아니니, 자각을 파하면 사유하지 못한다. 자각을 인하여 경계의 허망함을 알고, 자각할 때에는 경계가 일어나지 않으니, 앞의 자각과 뒤의 자각과 경계가 합쳐서 세 가지 더딤[遲]이 있다.”
박릉왕이 다시 물었다.
“선정에 머물러서 함께 구르지 않음을 올바른 삼매라고 하나니, 모든 업이 능히 끌어당기지 못하지만 미세한 무명이 천천히 그 뒤를 밟는 줄 알지 못합니다.”
대사가 대답했다.
“다시 듣건대, 어떤 사람이 허망한 집착으로 마음의 헤아림을 일으켜서 세 가지 가운데의 일[事]이 이루어지지 않으므로 구르지 못함[不轉]이 도리어 허망하다. 마음이 삼매에 속박된 채 그것으로 업장業障을 맑게 한다고 하지만, 마음 티끌의 만 분의 일이라도 무명을 요달하여 설하지 못하면 미세한 습기의 인因이 일어나면서 천천히 이름과 모습이 생긴다. 바람이 불면 파도가 일어나고 고요히 하고자 하면 물이 안정되어야 하나니, 다시 앞길을 말하고 싶지만 뒤의 마음이 놀랄까 두렵다. 무념無念은 큰 짐승의 울부짖음이요, 성품의 공함은 서리가 내림이니, 별이 흩어지고 잡초가 꺾이고, 이리저리 나는 새가 떨어진다. 다섯 길[五道]의 어지러움이 안정되고, 네 가지 악마도 틈을 노리지 못하리니, 마치 사나운 불길이 타오르는 것과 같고 또한 날카로운 칼로 쪼개는 것과 같다.”
박릉왕이 다시 물었다.
“자각에 의지해서 만법을 알면, 만법이 본래 그러합니다. 만일 비추어 쓰는 마음을 빌면, 단지 비추어 쓰는 마음을 얻을 뿐이지 마땅히 마음속의 일은 아닙니다.”
대사가 대답했다.
“자각에 의지해서 만법을 알면, 만법은 끝내 의지함이 없다. 만약 비추어 쓰는 마음을 빌면, 마땅히 마음 밖에는 있지 않다.”
박릉왕이 다시 물었다.
“따르고 따르면서 간택함이 없어도 밝은 마음이 나타나지 않으면 다시 사념의 마음으로 어두워집니다. 마음에 공功을 들이는 행이 있으면, 지혜의 장애는 제거하기 더욱 어렵습니다.”
대사가 대답했다.
“이것이 있다고 하나 있다고 할 수 없고, 이것을 찾지만 찾을 수가 없으니, 간택하지 않음이 곧 진정한 간택이다. 그러나 어둠을 벗어나 밝은 마음을 얻고자 한다면, 사려思慮하는 자의 마음이 어두워져서 마음을 간직하고 공행功行에 의탁하게 되니, 어찌 지혜를 장애하는 어려움을 논하겠는가? 설사 부처에 이르러도 병이 되는 것이다.”
박릉왕이 다시 물었다.
“중도를 꺾은 소식消息의 사이는 진실로 안온하기 어려우니, 스스로 행行을 쓰는 사람이 아니면 이 어려움은 끝내 보기 어렵습니다.”
대사가 대답했다.
“중도를 꺾음으로써 소식을 바라지만, 소식은 쉬움도 어려움도 아니다. 먼저 마음자리[心處]의 마음을 관찰하고, 다음에는 지혜 속의 지혜를 추구하고, 셋째는 추구하는 이를 비추고, 넷째는 무기無記를 통달하고, 다섯째는 이름을 해탈하고, 여섯째는 참과 거짓에 평등하고, 일곱째는 법의 근본을 알고, 여덟째는 무위無爲를 사랑하고, 아홉째는 공空의 음덕陰德을 두루하게 하고, 열째는 운우雲雨를 받는다. 끝까지 다하여 저 자각마저 없으면 무명에서 본래의 지혜가 나나니, 거울의 영상에 세 가지 업이 나타나고 요술쟁이[幻人]가 네거리에서 교화를 한다. 공변空邊의 다함에도 머물지 말고 마땅히 있음 속의 없음을 비추어야 한다. 공空과 유有의 안에서 벗어나지 않고 공과 유의 함께함도 거느리지 않으니, 이를 이름하여 중도를 꺾었다[折中]고 한다. 중도를 꺾음은 언설이 아니며, 편안하고 고요함은 처소가 없는 편안함이니, 행을 쓰는 것으로 어찌 능히 결정할 수 있겠는가?”
박릉왕이 다시 물었다.
“따로 한 종류의 사람이 있으니, 그들은 ‘공의 무상無相을 잘 이해해서 입으로는 선정과 산란이 동일하다’고 하며, 다시 ‘있음 속의 없음’을 말합니다. 즉 계합하여 증명하면 작용하면서도 항상 적멸하고, 알고 지각하면 적멸하면서도 항상 작용하니, 마음을 써서 참된 이치를 회통하고는 다시 작용[用]이 작용 없는 것[無用]이라고 말합니다. 지혜와 방편이 많으면 말이 이치와 합하는데, 여여如如한 이치는 본래 그러할 뿐 식심識心을 말미암아 회통하는 것이 아니니, 이미 마음으로 회통하는 것이 아님을 알았다면 마음과 마음은 그 모습이 없어집니다. 이와 같이 알기 어려운 법은 영겁토록 알 수 없으리니, 이와 동일하게 마음을 쓰는 사람은 법으로는 교화할 수 없을 것입니다.”
대사가 대답했다.
“따로 공을 증득하는 자가 있다는 것은 앞의 게송에서 말한 것과 같으니, 공을 수행하여 적멸을 지키면 식견識見이 잠시 뒤집어지지만, 참됨을 회통한 것이 마음의 헤아림이라서 끝내 근원을 요달하지 못했음을 알리라. 또 마음의 작용을 쉬라고 설하는 것도 지혜가 많은 것이 아마 서로 비슷할 뿐 진실하게 성품을 밝히지 못하였기 때문에 공을 구하여도 수고로울 뿐이다. 영겁토록 깊은 의식[幽識] 속에 머물러서 모습을 감싸고 있음을 도무지 모르니, 광명을 놓아서 문득 땅을 움직인들 그에게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박릉왕이 다시 물었다.
“앞에서 말한 바 마음을 보는 이에게도 얇은 비단의 두께와 같은 어려움이 있습니까?”
대사가 대답했다.
“마음을 본다 함은 비단의 두께와 같은 것이 있음이니, 허깨비 같은 마음이 어찌 보기를 기대하겠는가? 하물며 허깨비 같은 마음이란 것도 없으니, 종용從容해서 입을 대기 어렵다.”
박릉왕이 다시 물었다.
“오래도록 커다란 기업基業을 갖고 있었지만, 마음의 길이 어긋나서 간격이 생겼으니, 미세한 장애를 깨달으면 즉시 진제眞際를 통달할 것입니다. 그러나 스스로 솜씨 좋은 스승이 아니면, 이 이치를 능히 터주지 못하리니, 바라옵건대 대사께서 저에게 요체의 문을 열어 주셔서 마음 쓰는 자들을 인도하여 바른 길을 잃지 않게 하소서.”
대사가 대답했다.
“법성法性은 본래 기업基業인지라 꿈의 경계에서 어긋남이 이루어지며, 실상實相의 미세한 몸은 색色이나 마음으로는 영원토록 깨닫지 못한다. 홀연히 만난 혼돈의 선비[混沌士]는 중생들을 가엾이 여기셔서 의심에 의탁하여 널리 물음을 시설하니, 이치를 감싸서 안으로 항상 밝게 하고, 생사의 그윽한 길을 환히 사무치게 하고, 칭찬과 비방에 요동치 않게 한다. 야로(野老:자기 스스로를 일컬음)는 분명히 드러내서 대답하나니, 법상法相은 부끄러운 의례儀禮로서 중생의 몽매함을 일깨우는 약이지만 도리어 색色의 성품일 따름이다.”

현경顯慶 원년에 고을 수령인 소원선蕭元善이 산에서 내려와 건초사建初寺에 살기를 거듭 청하였다. 대사는 사양하다가 마지못하여 마침내 상수上首 제자인 지암智巖을 방에 들라고 명해서 법인法印을 부촉한 뒤에 대대로 전수하도록 당부하였다.
그리하여 산을 떠나려 할 때에 대중에게 말했다.
“나는 다시 이 산을 밟지 않을 것이다.”
당시 새와 짐승들이 슬피 울기를 한 달이 넘도록 그치지 않았고, 암자 앞에 큰 오동나무 네 그루가 있었는데 한 여름이건만 홀연히 스스로 시들었다.
그 이듬해 정사년丁巳年 윤정월閏正月 23일 건초사에서 임종하니, 수명은 64세이고 법랍法臘은 41세였다. 그 달 27일 계롱산雞籠山에 무덤을 만드니, 전송하는 이가 1만여 명이나 되었다. 그 우두산牛頭山의 옛터에 금원金源, 호포천虎咆泉, 석장천錫杖泉, 금구金龜 등의 연못과 좌선하던 석실石室이 지금도 모두 남아 있다.

제2세 지암智巖 선사
그는 곡아曲阿 사람으로서 성은 화華씨이다. 약관의 나이에 지혜와 용맹이 남보다 뛰어났고, 키는 7척尺 6치[寸]나 되었다.
수隋의 대업大業 때에 낭장郎將이 되어서 항상 활 끝에다 물 거르는 주머니 하나를 달고 다니면서 가는 곳마다 물을 떠먹었고, 누차 대장을 따라 토벌을 나가서 공을 세웠다.
당唐의 무덕武德 때에 나이 40세가 되자, 마침내 출가를 원하였다. 그리하여 서주舒州 완공산皖公山에 들어가 보월寶月 선사의 제자가 되었다.
그 뒤 어느 날 좌선을 하다가 키가 10척이 넘는 기이한 스님이 보였는데, 모습이 훤칠하고 말소리가 낭랑하였다. 그가 대사에게 말했다.
“그대는 80생을 출가했으니 마땅히 더욱 정진하라.”
말을 마치고는 이내 사라졌다.  
어느 날 골짜기에서 선정에 들었는데, 갑자기 골짜기의 물이 넘쳤으나 대사가 태연히 흔들리지 않자 물이 저절로 물러갔다. 이때에 어떤 사냥꾼이 지나다가 이를 보고는, 허물을 고치고 선행을 닦았다.
또 옛날에 함께 군대에 종사하던 두 친구가 있었는데, 대사가 은둔했다는 말을 듣자, 함께 산에 들어가서 대사를 찾았다. 이윽고 대사를 만나게 되자 말했다.
“낭장은 미쳤는가? 왜 여기에 계시오?”
대사가 대답했다.
“나는 광증狂症에서 깨어나려고 하는데, 그대의 광증은 제대로 일어나고 있구나. 무릇 색을 즐기고, 소리에 빠지고, 영화로움을 탐하고, 은총을 바라면 생사生死를 떠돌게 될 뿐이니, 어찌 이로부터 벗어나겠는가?”
두 사람은 깊이 감동하여 탄식하고는 물러갔다.

대사는 정관貞觀 17년에 건업建業으로 돌아가서 우두산牛頭山에 들어가 우두牛頭 법융法融 선사를 뵙고는 큰 일[大事]을 밝혔다.
선사가 대사에게 말했다.
“내가 도신道信 대사大師의 진결眞訣을 받으니 얻은 바가 몽땅 없어졌다. 설사 열반보다 수승한 어떤 법이 있다고 하여도 나는 또한 꿈과 허깨비 같다고 말하겠노라. 무릇 하나의 티끌이 날아서 허공을 가리고, 하나의 겨자씨가 떨어져서 땅을 덮는다. 그대는 지금 이런 소견을 이미 초월했으니, 내가 다시 무엇을 말하겠는가. 산문山門을 교화하고 인도할 일을 이제 그대에게 맡기노라.”
대사는 명命을 받고 제2세가 되었다. 뒤에 다시 정법을 혜방慧方 선사에게 전하고는, 백마사白馬寺와 서현사棲玄寺에 있다가 다시 석두성石頭城으로 옮겨 머물렀다. 
의봉儀鳳 2년 정월 10일에 입멸하였는데, 얼굴빛이 변하지 않고 몸의 굴신屈伸이 살았을 때와 같았으며, 방 안에 이상한 향기가 가득하여 열흘이 지나도 가시지 않았다. 유언에 따라 수장水葬을 지내니, 수명은 78세이고, 법랍法臘은 39세였다.


제3세 혜방慧方 선사
그는 윤주潤州 연릉延陵 사람으로서 성은 복濮씨이다. 개선사開善寺로 출가하였는데, 구족계를 받을 무렵에는 경․율․논을 환하게 밝혔다.
뒤에 우두산에 들어가서 지암智巖 선사를 뵙고는 비의秘義의 요체를 물었는데, 지암은 그의 근기가 정법을 감당할 만한 그릇임을 보고는 마침내 심인心印을 보여주니, 대사는 활연히 깨달았다. 그로부터 숲 밖을 나가지 않기를 10년이 넘게 하니, 사방에서 배우는 자가 구름처럼 모였다.
대사가 하루는 대중에게 말했다.
“나는 다른 곳으로 가서 근기에 따라 중생을 제도할 생각이니, 너희들은 잘 있어라.”
그리하여 정법안장을 법지法持 선사에게 부촉하고는, 마침내 모산茅山으로 돌아갔다. 몇 해 있다가 열반에 들려고 하는데, 5백 명쯤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머리칼을 뒤로 드리워서 보살같이 꾸미고는 제각기 번을 들고 와서 “법사님께 강의를 청합니다”라고 하였다. 또 산신이 큰 구렁이의 몸으로 변하여 뜰 앞에 와서 울며 이별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그러자 대사가 시자侍者인 홍도洪道에게 말했다. 
“나는 떠나야겠다. 너는 지금 문인들에게 가서 이 사실을 알려라.”
문인들이 달려왔을 때 대사는 이미 열반에 들었으니, 때는 당나라 천책天冊 원년 8월 1일이었다. 산의 나무들이 흰빛으로 변하고 계곡의 물이 7일 동안 흐르지 않았으며, 도인과 속인이 슬프게 앙모하면서 우니 그 소리가 산골짜기를 진동하였다. 수명은 67세이고, 법랍은 40세였다. 

제4세 법지法持 선사
그는 윤주潤州 강녕江寧 사람으로서 성은 장張씨이다. 어릴 때에 출가하여 30세가 되었을 때 황매산黃梅山의 홍인弘忍 대사大師 회상에 가서 법을 듣다가 마음이 열렸고, 뒤에 다시 혜방 선사를 만나  인가를 받고서 그의 산문山門을 계승하여 우두종牛頭宗의 조사가 되었다. 그래서 황매[弘忍] 대사大師가 세상을 하직할 때에 그의 제자인 현색玄賾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후대에 나의 법을 전할 자가 열 사람쯤 되리니, 금릉金陵의 법지法持도 그 중의 하나이니라.”
나중에 법안法眼을 지위智威 선사에게 부촉하고, 당나라 장안長安 2년 9월 5일에 금릉金陵 연조사延祚寺의 무상원無常院에서 임종하면서 유언하였다. 
“사체는 소나무 밑에 드러내 놓아 새와 짐승들이 먹게 하라.” 
해가 솟는 아침 공중에서 신령한 번幡이 서쪽으로부터 와서 산을 몇 차례 돌았고, 그가 살던 옛집의 대숲은 흰빛으로 변했다가 7일이 지나서야 그쳤다. 수명은 68세이고, 법랍은 41세였다.

제5세 지위智威 선사
그는 강녕江寧 사람으로 성은 진陳씨이다. 영청산迎靑山에서 머물렀다. 열 살 되었을 때 어느 날 홀연히 집을 나갔는데, 어디를 갔는지 알 수가 없었다. 부모가 이리저리 찾다가 만났을 때에는 이미 천보사天寶寺의 통統 법사法師에 의하여 출가한 뒤였다.
스무 살에 구족계를 받은 뒤에 법지法持 선사가 세상에 나셨다는 말을 듣고는 찾아가 뵙고서 정법을 전해 받았다. 그로부터 강남[江左]의 배우는 무리들이 모두 대사의 문하로 달려왔는데, 그 중에서 혜충慧忠이라는 이가 법기法器로 지목되었다. 대사는 일찍이 그에게 게송을 제시해 주었다.

생각 생각[念念]에 얽매이지 말라.
생사生死의 강물을 이루게 되면
여섯 길[六趣]의 바다에서 헤매면서
끝없는 파도를 벗어나지 못하리.
莫繫念念      成生死河
輪迴六趣海    無見出長波

혜충이 게송으로 화답하였다.

생각의 상想은 허깨비로부터 일어나고
성품은 본래 끝과 시작이 없네.
만일 이 속의 뜻을 깨닫는다면
생사의 긴 물결은 저절로 멈추리라.
念想由來幻    性自無終始
若得此中意    長波當自止

대사가 다시 게송으로 보여 주었다.

나의 본래 성품은 비고 없지만
허망함을 반연하여 남과 내가 생기네.
어찌해야 허망한 정情을 쉬어 버리고
공처空處에 돌아가 앉을 수 있겠는가.
余本性虛無    緣妄生人我
如何息妄情    還歸空處坐

혜충이 또 게송으로 대답했다.

비고 없음이 바로 실다운 바탕[實體]이거늘
남과 내가 어디에 존재하리오.
허망한 정을 쉬려 하지 않는 것이 
바로 반야선般若船을 타는 것일세.
虛無是實體    人我何所存
妄情不須息    卽汎般若船

대사는 그가 깨달았음을 알고는 곧 산문山門을 부촉하였다. 그리고는 마침내 인연을 따라 교화하는 길을 떠났다. 
당나라 개원開元 17년 2월 18일에 연조사延祚寺에서 임종했는데, 열반에 들려고 할 때에 제자들에게 이렇게 일렀다. 
“숲 속에다 사체를 놓아서 새나 짐승들에게 보시하라.”
수명은 77세였다.

제6세 혜충慧忠 선사
그는 윤주潤州 상원上元 사람으로서 성은 왕王씨이다. 나이 스물세 살에 장엄사莊嚴寺에서 업을 닦다가 나중에 지위智威 선사가 세상에 나왔다는 말을 듣고는 가서 뵈었다. 지위 선사가 흘깃 보면서 말하였다. 
“산의 임자[山主]가 왔군.”
대사가 이 말에 감응하여 미묘한 지취旨趣를 깨달았다. 마침내 좌우에서 모시다가 나중에는 그 곁을 하직하고 여러 곳으로 순례巡禮를 떠났다.
지위 선사가 구계원具戒院 앞에 능소등(凌霄虅:덩굴나무)이 있는 것을 보았는데, 여름이 되어도 시들어 있었다. 이에 사람들이 베어 버리려고 하자, 말했다.
“베지 말라. 혜충이 돌아올 때에는 이 등나무가 다시 살아나리라.”
대사가 돌아오는 날 과연 그 말처럼 되니, 지위 선사는 산문을 그에게 맡기고 연조사延祚寺에 가서 살았다.

대사는 평생에 옷 한 벌로 살면서 바꾸지 않았고, 그릇은 오직 쇠솥[鐺] 하나만을 사용했다. 일찍이 누가 스님에게 곡식 두 창고를 공양했는데, 도적이 엿보자 호랑이를 시켜서 지키게 하였다. 이때 현령縣令 장손長遜이라는 이가 산 정상까지 왔다가 대사를 뵙고는 물었다.
“제자가 몇이나 되십니까?”
대사가 대답했다. 
“서넛 되오.”
“좀 볼 수 있겠습니까?”
대사가 선상禪床을 탁탁 치자 호랑이 세 마리가 으르렁거리면서 나오니, 장손이 겁이 나서 달아났다. 

뒤에 대중이 청해서 성에 들어가 옛 장엄사莊嚴寺에 머물렀다. 대사는 전殿의 동쪽에다가 따로 법당 하나를 짓고자 하였는데, 그곳에 먼저 있던 고목 위에는 까치들이 집을 짓고 있었다. 목수들이 나무를 베려고 할 때에 대사가 까치들에게 말하였다. 
“여기다 법당을 지으려고 하는데, 너희들은 왜 빨리 물러가지 않느냐?”
말을 마치자, 까치들은 곧 다른 나무로 옮겨가서 둥지를 틀었다.

처음 기초를 쌓을 때에 두 신인神人이 와서 네 귀퉁이를 정해 주었고, 다시 밤에도 몰래 와서 일을 도왔기 때문에 공사는 며칠도 되지 않아서 끝났다. 그리하여 사방의 학도學徒들이 구름처럼 법좌에 모여들었는데, 법을 얻은 이만도 34명으로서 제각기 한 곳에 거점을 두고 많은 대중을 교화하였다. 대사가 일찍이 안심게安心偈를 지어서 대중에게 보였다.

사람과 법이 쌍으로 맑고
선함과 악함을 모두 잊었다.
진심眞心의 참되고 실다움이
바로 보리의 도량道場이로다.
人法雙淨    善惡兩忘  
眞心眞實    菩提道場

당나라 대력大歷 3년에 석실 앞에다 쇠솥을 걸고 나무에다 옷을 거니, 등나무가 갑자기 한여름인데도 말라죽었다.
대력 4년 6월 15일에 스님들을 모아서 포살布薩을 마친 뒤에 시자에게 명하여 머리를 감기고 몸을 씻기게 하였는데, 그날 밤에 상서로운 구름이 그 정사精舍를 덮고 공중에서 다시 하늘 음악 소리가 들리더니, 새벽이 되자 편안히 열반에 들었다. 그때 갑자기 비바람이 사납게 치면서 숲속의 나무를 부러뜨리고, 또 흰 무지개가 바위와 골짜기를 꿰뚫었다. 5년 봄에 다비를 거행하였는데, 셀 수 없이 많은 사리를 얻었다. 수명은 87세였다.

앞의 법융法融 선사 휘하 3세의 방계로 나온 법손

금릉金陵 종산鍾山의 담최曇璀 선사
그는 오군吳郡 사람으로서 성은 고顧씨이다. 처음에 우두牛頭 법융法融 대사를 뵈었는데, 대사가 첫눈에 기특하게 여겨서 그에게 일러 주었다.
“빛깔과 소리는 생긴 적이 없는 독약[鴆毒]이요, 느낌과 상념은 지인至人의 함정[坑阱]이니, 그대는 알겠는가?”
대사는 묵묵히 살펴서 현묘한 종지를 크게 깨달았다. 이어서 종산鍾山에 자취를 감춘 지 여러 해 동안 띠집[茅庵]에서 질그릇을 쓰며 일생을 마쳤으니, 당나라 천수天授 3년 2월 6일에 평온하게 선정에 들어서 7일 만에 열반에 들었다. 수명은 62세였다.

앞의 지위智威 선사 휘하 3세의 방계로 나온 법손

선주宣州 안국사安國寺 현정玄挺 선사
그는 어느 곳 사람인지 알 수 없다. 일찍이 어느 날 장안에서 󰡔화엄경󰡕을 강의하던 스님이 오조(五祖:智威)에게 와서 물었다. 
“진성연기眞性緣起라고 하는데, 그 뜻이 무엇입니까?”
오조가 잠자코 있자, 그때 대사(현정)가 모시고 서 있다가 말했다.
“대덕께서 한 생각[一念]을 올바로 일으켜서 물을 때가 바로 진성眞性 속의 연기입니다.”
그 스님이 그 말끝에 크게 깨달았다. 
또 어떤 이가 물었다. 
“남종南宗은 누구로부터 세워진 것입니까?” 
대사가 대답했다. 
“마음의 종지[心宗]는 남도 아니고 북도 아니다.” 

윤주潤州 학림鶴林 현소玄素 선사
그는 윤주潤州 연릉延陵 사람으로서 성은 마馬씨이다. 당나라 여의如意 시절에 강녕江寧 장수사長壽寺에서 수업을 하다가 늦게 지위智威 선사를 참례해서 마침내 참된 종지를 깨달았다. 
나중에 경구京口의 학림사鶴林寺에 거주했는데, 하루는 어떤 백정이 와서 알현하고는 자기 집에 와서 공양 받기를 원했다. 대사가 흔쾌히 승낙하고서 가자 대중들이 모두 의아하게 여겼다. 대사가 그들에게 말했다.
“불성佛性은 평등하여 어진 이와 어리석은 이가 같다. 제도할 수 있는 이라면 즉시 가서 제도할 뿐이니, 다시 무슨 차별을 두겠는가?”

또 어떤 스님이 와서 물었다. 
“무엇이 서쪽에서 온 뜻입니까?”
대사가 대답하였다. 
“이해하는[會] 것이 곧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요, 의심하는 것이 곧 의심하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나서 다시 말했다. 
“이해함이 없으면 의심함이 없을 것이요, 의심함이 없으면 이해함도 없을 것이다.”

또 어떤 스님이 와서 문을 두드리자 대사가 물었다.
“누구요?”
스님이 대답했다.
“중입니다.”
“중만이 아니라 부처가 온다 해도 들어오지 못한다.”
“부처가 왔는데도 어찌하여 들어가지 못합니까?”
“그대가 머물 곳은 없다.”
천보天寶 11년 11월 11일 밤중에 병 없이 열반에 드니, 수명은 85세였다. 황학산黃鶴山에 탑을 세우니, 대진 선사 대화보항의 탑[大津禪師大和寶航之塔]이라는 시호를 내렸다. 

서주舒州 천주산天柱山 숭혜崇慧 선사 
그는 팽주彭州 사람으로서 성은 진陳씨이다. 당나라 건원乾元 초에 서주 천주산天柱山에 가서 절을 창건하니, 황제가 영태永泰 원년元年에 천주사天柱寺라는 명호를 내렸다.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천주天柱의 경계입니까?”
대사가 대답했다.
“주박산主薄山은 높아서 해[日]를 보기 어렵고, 옥경봉玉鏡峰 앞에서는 사람을 알아보기 쉽다.”
“달마가 이 땅에 오기 전에도 불법이 있었습니까?”
“오기 전은 문제 삼지 말고, 바로 지금 일은 어떠한가?”
“저는 이해하지 못하니 스님께서 가르쳐 주십시오.”
“만고萬古의 긴 허공에 하루아침의 풍월風月이다.”
양구良久하다가 다시 말했다.  
“사리(闍黎:상대방을 가리키는 말)여, 이해하겠는가? 자기 일은 어찌하고서, 달마가 왔는가, 오지 않았는가를 간섭하는가? 그가 온 것은 마치 점쟁이와 같을 뿐이니, 그대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보자 그대를 위해 괘를 뽑아 보고 길하다 흉하다고 말하지만, 모두가 그대의 분수에 매여 있을 뿐이다. 일체를 스스로 살펴보라.”
“어떤 것이 점을 풀이하는 사람입니까?”
“그대가 문을 나설 때는 문득 맞지 않는다.”
“어떤 것이 천주天柱의 가풍家風입니까?”
“때때로 백운白雲이 와서 문을 막을 뿐, 다시 풍월風月이 사방의 산으로 흐르는 일은 없다.”
“죽은 스님은 천화遷化하여 어디로 갔습니까?”
“심악봉灊嶽峰은 높아서 길이 푸름을 쌓아가고, 서강舒江의 밝은 달은 빛깔이 찬란하다.”
“어떤 것이 대통지승불大通智勝佛입니까?”
“광겁曠劫 이래로 일찍이 막히거나 걸린 적이 없으면, 대통지승불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어찌하여 부처님의 법이 현전하지 않는 것입니까?”
“다만 그대가 회통하지 못하지 못했기 때문에 현전하지 않게 된 것일 뿐이다. 만일 그대가 회통하였다면, 이룰 만한 불도佛道도 없는 것이다.”
“어떤 것이 도道입니까?”
“흰 구름이 청산을 덮고, 벌과 새가 뜰에 핀 꽃 위를 걷는다.”
“예로부터의 성인들은 어떤 말씀을 하였습니까?”
“그대는 지금 내가 무슨 말을 한다고 보는가?”
“종문(宗門:祖師의 家門)의 도리에서 화상이 제창해 주기를 청합니다.”
“돌소[石牛]가 길게 부르짖으니 진공眞空의 밖이요, 나무말[木馬]이 울 때에 달은 산 너머로 숨는다.”
“어떤 것이 화상께서 사람을 이롭게 하는 곳입니까?”
“한 줄기의 빗발이 두루 뿌리니, 1천 봉우리의 산색山色이 수려하다.”
“어떤 것이 천주산 속의 사람입니까?”
“홀로 1천 봉우리의 정상을 거닐고, 아홉 굽이의 샘물에서 노니느니라.”
“어떤 것이 서쪽에서 온 뜻입니까?”
“흰 원숭이가 새끼를 안고 푸른 봉우리에 오고, 벌과 나비는 초록빛 꽃술 사이로 꽃을 물어온다.”
대사가 산에 살면서 도를 연설한 지 22년째인 대력大歷 14년 7월 22일에 열반에 들었다. 절 북쪽에다 탑을 세웠는데, 진신眞身이 아직도 존재한다.

앞의 윤주潤州 학림사鶴林寺 현소玄素 선사의 법손

항주杭州 경산徑山 도흠道欽 선사
그는 소주蘇州 곤산崑山 사람으로서 성은 주朱씨이다. 처음에는 유교儒敎를 따랐는데, 28세 때 현소玄素 선사가 그를 만났을 때 이렇게 말했다. 
“그대의 신기神氣가 온화하고 순수한 것을 보아 하니, 참된 법보法寶로다.” 
대사가 감동을 받아 깨우친 바가 있어서 바로 제자가 되기를 원하니, 현소는 몸소 머리를 깎아 주면서 당부하는 말을 하였다.
“그대는 물을 따라 내려가다가, 경徑이란 곳을 만나거든 멈추어라.”
마침내 대사가 남쪽으로 가다가 임안臨安에 닿았을 때 동북쪽에 있는 산을 보고는 나무꾼을 찾아서 물었는데, 나무꾼이 경산徑山이라고 대답하자 그곳에 머물렀다[駐錫].

어떤 스님이 대사에게 물었다.
“어떤 것이 도입니까?”
대사가 대답했다.
“산 위에 잉어가 있고, 물 밑바닥에 먼지가 있다.”

마조馬祖가 사람을 시켜서 편지를 보냈는데, 편지에는 원상圓相 하나를 그렸었다. 대사는 편지를 받고 개봉한 뒤에 원상 안에다 한 획劃을 긋고 다시 봉해서 돌려보냈다.[혜충慧忠 국사가 이 말을 듣고 “도흠은 아직도 마조의 속임수에 빠졌다”라고 하였다.]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조사께서 서쪽으로 오신 뜻입니까?”
대사가 대답했다.
“그대의 물음이 마땅치 않다.”
“어찌해야 마땅하겠습니까?”
“내가 열반에 든 뒤에야 그대에게 말해 주리라.”

마조가 문인門人인 지장智藏을 보내서 물었다.
“12시時 가운데 무엇으로 경계를 삼습니까?”
“그대가 돌아갈 때에야 전갈을 하겠다.”
지장이 말했다.
“지금 바로 돌아가겠습니다.”
“조계曹谿에게 물어보라고 말을 전하라.”

당나라 대력大歷 3년에 대종代宗이 조칙을 내려서 대사를 궁궐로 부르고는, 친히 예를 갖추어서 뵈었다. 어느 날 대사가 대궐 안 뜰에 있다가 황제를 보고 일어나 섰다. 황제가 물었다.
“대사는 왜 일어나시오?”
대사가 대답했다.
“단월檀越께서는 어찌하여 네 가지 위의威儀 가운데서 빈도賓道를 보셨습니까?”
황제가 기뻐하면서 혜충慧忠 국사國師에게 말했다.
“도흠道欽 대사에게 이름 하나를 하사하려고 하오.”
혜충 국사가 흔연히 조칙을 받고 물러나서 국일國一이라고 지어 바치니, 황제가 하사하였다. 
나중에 궁궐을 하직하고 본산으로 돌아왔다가 정원貞元 8년 12월에 병환에 걸린 모습을 보이고는 법을 설하고 나서 열반하니, 수명은 79세이고 시호는 대각大覺 선사였다.
앞의 항주杭州 경산徑山 도흠道欽 선사의 법손

항주杭州 조과鳥窠 도림道林 선사
그는 본군本郡의 부양富陽 사람으로서 성은 반潘씨이다. 어머니 주朱씨는 입으로 태양이 들어오는 꿈을 꾸고는 태기가 있었다. 탄생할 때에는 기이한 향기가 방에 가득하였으므로 향광香光이라고 이름하였다.
9세에 출가하여 21세에는 형주荊州의 과원사果願寺에서 구족계를 받았고, 나중에 장안 서명사西明寺에 있는 복례復禮 법사에게 가서 󰡔화엄경華嚴經󰡕과 󰡔기신론起信論󰡕을 배웠다. 복례가 진망송眞妄頌을 보이면서 선나禪那를 닦으라 하자, 대사가 물었다.
“처음에 어떻게 관찰하며, 어떻게 마음을 써야 합니까?”
복례가 오래도록 말이 없자, 대사는 세 번 절하고서 물러갔다. 
때마침 당의 대종이 경산徑山 국일國一 선사를 대궐로 초청했는데, 대사가 가서 선사를 뵙고 마침내 정법을 전해 받았다. 그리고는 남쪽으로 돌아왔는데, 이보다 먼저 고산孤山의 영복사永福寺에는 벽지불辟支佛의 탑이 있어서 당시의 도속道俗들이 함께 법회를 하고 있었다.
대사가 석장을 흔들면서 들어가니, 영은사靈隱寺의 도광韜光 법사가 물었다.
“여기는 법회를 하는 곳인데, 어찌하여 소리를 내는가?”
대사가 대답했다.
“소리가 없으면 누가 이 법회를 알겠는가?”

훗날 진망산秦望山에 낙락장송落落長松이 있는 것을 보았는데, 가지와 잎이 무성하면서도 그 모양이 마치 일산 같아서 마침내 그 위에 자리를 잡고 살았다. 그래서 당시 사람들은 그를 조과鳥窠 선사라 하였다. 또 까치가 그 곁에 둥지를 짓고 자연히 길들여져 가까이했으므로 작소鵲巢 화상和尙이라고도 하였다.
회통會通이라는 시자侍者가 있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떠나려고 하직을 하자, 대사가 물었다.
“너는 지금 어디로 가려는가?”
회통이 대답했다.
“회통은 법을 알기 위해 출가하였지만, 화상의 자비로운 가르침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이제 여러 곳을 다니면서 불법을 배우고자 합니다.”
“그런 불법쯤이라면 나에게도 약간은 있다.”
“어떤 것이 화상의 불법입니까?”
대사가 즉시 몸에서 실오라기[布毛] 하나를 뽑아서 불어 날리니, 회통이 마침내 현묘한 종지를 깨달았다.

원화元和 시기에 백거이白居易가 이 고을의 군수로 왔는데, 이 산에 들른 길에 대사를 알현하고서 물었다.
“선사께서 머무는 곳이 너무나 위태합니다.”
대사가 대답했다.
“태수의 위험은 더욱 심하오.”
“제자는 지위가 강산江山을 진압하고 있는데, 무슨 위험이 있겠습니까?”
“장작과 불이 서로 사귀듯이 식識의 성품이 멈추질 않으니, 위험치 않겠는가?”
또 물었다.
“어떤 것이 불법의 대의입니까?”
“모든 악은 짓지 말고, 뭇 선행은 받들어 행하라.”
“세 살짜리 아기도 그런 것은 알겠습니다.”
“세 살짜리 아기도 말은 할 수 있으나, 80살 노인도 행하지 못한다.”
백거이가 드디어 절을 하였다. 

선사가 장경長慶 4년 2월 10일에 시자에게 말했다.
“나는 이제 과보가 다했다.”
말을 마치고는 앉은 채로 열반에 드니, 수명은 84세이고, 법랍은 63세였다.[어떤 이가 말하기를 “대사의 이름이 원수圓修이다”라고 하였는데, 시호諡號가 아닌가 한다.]

앞의 항주杭州 조과鳥窠 도림道林 선사의 법손

항주杭州 초현사招賢寺 회통會通 선사
그는 본군(本郡:항주) 사람으로서 성은 오吳씨이고, 본래 이름은 원경元卿이다. 형상이 단정하면서도 준엄하고 어릴 때부터 총명하였다.
당나라 덕종德宗 때에 육궁사(六宮使:관직 이름)가 되니, 왕족들이 모두 좋아하였다. 봄이 되어 소양궁昭陽宮 뜰에서 꽃들이 번성한 것을 보고는 오래도록 구경하고 있었는데, 홀연히 공중에서 이런 소리가 들렸다.
“허망한 허깨비의 모습이 피었다 떨어지기를 그치지 않으면서 선근善根을 파괴하거늘, 그대는 어찌 그것을 즐기는가?”
대사가 자세히 반성해 보니 젊은 나이에 벼슬을 숭상한 것이 지극히 싫어졌다. 하루는 황제가 궁전에서 노닐다가 대사에게 물었다.
“경卿은 어찌하여 즐거워하지 않소?”
대사가 대답했다.
“신臣은 어릴 때부터 누린 것을 먹지 않으면서 스님이 되기를 소원하였습니다.”
“짐朕은 그대를 형제처럼 여기고 있어서, 부귀가 남보다 뛰어나고자 한다면 그대의 뜻을 따라 줄 것이지만, 출가만은 허락하지 못하오.”
열흘이 지났을 때 황제는 그의 얼굴이 초췌한 것을 보자, 왕빈王賓을 불러 상相을 보게 하였다. 왕빈이 아뢰었다.
“이 사람은 삼보를 계승해야 합니다.”
황제가 대사에게 말했다.
“경의 소원대로 하겠으니, 마음대로 날짜를 받아서 곧 알려 주오.”
대사가 황제의 승낙을 받고 감사를 드렸다. 이때 고향에서 어머니가 병환이 났다는 소식이 왔다. 곧 집으로 돌아가 어머니를 문안하기를 청원하니, 황제는 하사품을 후하게 주고 유사有司에게 분부하여 길을 안내케 하여 집으로 보냈다. 집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도광韜光 법사法師의 권면勸勉으로 조과鳥窠 도림道林 선사를 만나 그의 단월(檀越:시주)이 되어 암자와 절을 지어 주었다. 절이 낙성되는 날 이렇게 여쭈었다.
“제자는 7살 때부터 채식을 하였고, 11살에 5계를 받았고, 지금 22살에는 스님이 되기 위하여 관직을 그만두었습니다. 바라건대 화상께서는 스님을 만들어 주십시오.”
도림이 대답했다.
“요즈음 스님이 되는 사람은 정성껏 고행하는 이가 드물어서 그 행실이 대체로 들뜨거나 넘친다.”
대사가 말했다.
“본래의 청정함[本淨]은 갈고 닦아서 이루는 것이 아니며, 원래의 밝음[元明]은 연緣에 따라 비추는 것이 아닙니다.”
“그대가 만약 청정한 지혜가 묘하게 원만하고 그 체體가 스스로 공적한 것을 요달한다면, 그것이 바로 진정한 출가이니 어찌 외적인 모습을 빌리겠는가. 그대는 마땅히 재가在家의 보살이 되어 보시와 계율을 함께 닦음으로서 사령운謝靈運의 무리처럼 되어라.”
“그러나 이(理:이치)로는 비록 그렇더라도 사(事:현상)에서는 무슨 이익이 있겠습니까. 만일 자비를 드리워서 거두어 주시면, 맹세코 스승의 가르침을 따르겠습니다.”
이와 같이 세 번 청했으나 모두 허락되지 않았다. 이때 도광 법사도 강력히 조과 스님께 여쭈었다.
“궁사(宮使:관직의 명칭, 회통을 가리킴)가 장가를 들지도 않았고 시녀侍女도 두지 않았는데, 선사께서 거두어 주시지 않으면 누가 제도하겠습니까?”
이에 조과는 곧 머리를 깎고 구족계를 주었다. 대사는 항상 묘재卯齋 묘시卯時에 먹는 재식齋食을 뜻한다.
를 지키면서 밤낮으로 정진하였으며, 대승 경전을 외우고 안반삼매(安般三昧:수식관)를 익혔다. 이윽고 굳이 사양하고 딴 곳으로 가려는데, 조과가 실오라기[布毛]를 불어 보이자, 현묘한 종지를 깨달았기 때문에 당시 포모布毛 시자侍者라는 별명이 있었다.[앞의 조과 장鳥窠章에서 언급하였다.] 조과 선사가 열반에 든 지 20년 만에 무종武宗이 그 절을 폐하는 법난法難을 만났는데, 대사는 뭇 스님들과 함께 신령한 탑에 하직 인사를 하고 떠나니, 그의 남은 생애는 알 수 없다.

앞의 혜충慧忠 선사의 두 세대의 방계 법손

천태산天台山 불굴암佛窟巖 유칙惟則 선사
그는 경조京兆 사람으로서 성은 장손長孫씨이다. 처음에 우두牛頭의 충忠 선사를 뵙고서 현묘한 종지를 크게 깨닫고, 나중에 천태폭포天台瀑布의 서쪽 바위 밑에 은둔했다.
당나라 원화元和 때에 법석法席이 점차 번창하였는데, 이때부터 이 바위를 불굴佛窟이라 하였다. 하루는 대중에게 이런 법문을 하였다.
“천지天地도 본래 없는 물건이요, 나도 없는 물건이다. 그러면서도 일찍이 물건이 없던 적이 없다. 이렇게 성인은 그림자와 같고 백 년은 꿈과 같은 것이니, 누가 태어나고 죽겠는가? 지극한 사람[至人]이 이로써 홀로 비추면 능히 만물의 주인이 되리니, 나는 이것을 아는데 그대들도 아는가?”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나라연(那羅延:金剛)의 화살입니까?”
대사가 대답했다.
“과녁을 맞추었다.”
하루는 홀연히 문인들에게 말했다.
“그대들은 이제 스스로 힘써야 할 것이니, 내가 무슨 말을 하겠는가?”
그 뒤 이튿날 밤에 단정히 앉아서 열반에 드니, 수명은 80세이고 법랍은 58세였다.

앞의 천태산天台山 불굴암佛窟巖 유칙惟則 화상和尙의         법손

천태산天台山 운거雲居 지智 선사
일찍이 화엄원華嚴院의 스님 계종繼宗이 물었다.
“성품을 보아서 부처를 이룬다[見性成佛]는 말은 무슨 뜻입니까?”
대사가 대답했다.
“청정한 성품은 본래부터 담연湛然하여 동요가 없으니, 유무有無․정예淨穢ㆍ장단長短ㆍ취사取捨에 속하지 않고 체體 스스로가 그러하다. 이와 같이 분명히 보면 성품을 보았다 하나니, 성품이 곧 부처이고 부처가 곧 성품이므로 성품을 보아서 부처를 이룬다고 하는 것이다.”
“성품이 이미 청정해서 유무有無에 속하지 않는다면, 무엇을 인因하여 보는 일이 있습니까?”
“보아도 보는 대상이 없느니라.”
“보는 대상이 없다면, 무엇을 인하여 다시 보는 일이 있습니까?”
“보는 것도 또한 없느니라.”
“이렇게 볼 때는 누가 보는 것입니까?”
“보는 주체도 있지 않다.”
“궁극의 이치는 무엇입니까?”
“그대는 알지 못하는가? 허망한 계교로 있다고 하면, 곧 주체[能]와 대상[所]이 있게 되어서 미혹했다는 명칭을 얻게 된다. 보는 데 따라서 견해를 내면 문득 생사에 떨어지지만, 밝게 보는 이는 그렇지 않아서 종일 보아도 본 적이 없고 본 곳을 구해도 그 체體와 모습[相]을 얻을 수 없어서 능能과 소所를 함께 끊으니, 이를 이름하여 성품을 보았다고 한다.”
“이 성품이 일체의 처소에 두루합니까?”
“두루하지 않은 곳이 없다.”
“범부에게도 갖추어 있습니까?”
“위에서 말하기를 두루하지 않은 곳이 없다 하였거늘, 어찌 범부인들 갖추지 않았겠는가?”
“어찌하여 부처님과 보살들은 생사에 구속되지 않고 범부들만이 이 고통에 얽매입니까? 그러니 어찌 두루했다고 하겠습니까?”
“범부들은 청정한 성품 가운데서 능과 소가 있다고 계교하므로 곧 생사에 떨어지지만, 부처님과 보살들은 청정한 성품은 유무에 속하지 않음을 잘 알아서 능과 소를 세우지 않느니라.”
“만약 그렇게 설하신다면, 깨친 이와 깨치지 못한 사람이 있겠습니다.”
“깨달음이란 대상이 본래 없거늘, 어찌 깨달음의 주체가 있을 수 있겠는가?”
“지극한 이치[至理]는 어떠합니까?”
“내가 요점을 말하리니, 그대는 마땅히 기억해 두라. 청정한 성품에는 범부와 성인도 없고, 깨달은 이와 깨닫지 못한 사람도 없다. 범부와 성인은 둘 다 같은 이름이니, 만약 이름을 따라 소견을 내면 곧 생사에 빠지지만, 만약 방편으로 세운 이름이 실체가 아님을 알면 이름에 해당하는 자가 없다.” 
또 말하였다.
“이는 가장 궁극적인 경지이니, 만일 나는 능히 깨달았고 다른 사람은 미처 깨닫지 못했다고 말한다면, 이는 큰 병이다. 청정함과 더러움[淨穢], 범부와 성인[凡聖]이 있다고 보는 것도 큰 병이고, 또 범부와 성인이 모두 없다는 소견을 내어도 인과를 무시하는 것이고, 청정한 성품은 의지해 머물 수 있다고 보아도 큰 병이고, 의지해 머물지 못한다는 견해를 지어도 큰 병이다. 그러나 청정한 성품에 동요는 없지만 파괴되지 않는 방편의 감응 작용과 아울러 자비를 일으켜 운행함을 갖추느니라. 이와 같이 자비를 일으켜 운행하는 곳이 바로 청정한 성품을 내는 것이니, 이를 일러 성품을 보아 부처를 이룬다[見性成佛]고 하느니라.”
계종은 뛸 듯이 기뻐하면서 절을 하고 물러갔다.


앞의 제32조 홍인弘忍 대사大師의 제1세 방계 법         손[제1세]

북종北宗 신수神秀 선사[󰡔야사삼장지耶舍三藏誌󰡕에 말하         기를 “양지良地에서 현묘한 도리가 나온다 했으니, 높고         낮음에 통하는 것은 역시 높은 것이다. 39족族에 비견해        도 족하일모분足下一毛分이다”라고 하였다.]

그는 개봉開封 위씨현尉氏縣 사람으로 성은 이李씨이다. 어릴 때에 유가儒家를 가까이해서 널리 섭렵하여 많이 배웠는데, 얼마 있다가 출가하여 스승을 찾고 도를 찾았다. 기주蘄州 쌍봉雙峰에 있는 동산사東山寺에 가서 5조 홍인 대사를 만나 좌선에 힘쓰다가 이윽고 탄복해서 말했다. 
“이 분은 진실로 나의 스승이로다.”
그리고는 고행하기를 마음속으로 서원한 후 스스로 나무하기와 물 긷기를 하면서 도를 구하였다. 홍인이 묵묵히 이를 알고 더욱 소중히 여기면서 말했다.
“내가 제도한 사람이 많으나 오해悟解에 있어서는 그대를 따를 자가 없다.”

홍인이 열반에 든 뒤에 신수가 강릉江陵의 당양산當陽山에 머물렀는데, 당의 측천무후則天武后가 듣고 수도로 불러서 궁내의 도량에서 공양하며 더욱 공경스럽게 예를 베풀었다. 그리고는 옛 산에 도문사度門寺를 두도록 명령하여 그의 공덕을 기렸다. 이때에 왕王․공公․사士․서庶가 모두 그가 있는 곳을 향하여 배례하였고, 중종中宗이 즉위하고 나서는 더욱 정중히 여겼다. 
대신大臣 장열張說이 제자의 예로써 법의 요체를 묻자, 대사가 게송으로써 대답했다.

일체의 불법佛法은
스스로의 마음에 본래 있거늘
마음을 가지고 밖으로 구하면
아버지를 버리고 도망하는 것이네.
一切佛法    自心本有
將心外求    捨父逃走
신룡神龍 2년에 동도東都의 천궁사天宮寺에서 열반에 드니, 대통大通 선사라 시호를 내리고는 우의(羽儀:儀裝)와 법물法物을 갖추어 용문龍門에 빈소를 차리게 하였는데, 황제는 다리[橋]까지 전송하였고, 왕․공․사․서는 모두 장지葬地까지 참석하였다. 장열張說과 징사徵士인 노홍일盧鴻一이 제각기 비碑에 제사하였다. 문인인 보적普寂과 의복義福 등은 모두가 조야朝野의 존경을 받았다.

숭악嵩嶽 혜안慧安 국사國師[󰡔야사삼장지耶舍三藏誌󰡕에서         말하기를 “아홉 여인은 부모를 버리고 떠났고, 여덟 여인        은 혼인婚姻을 포기하고서 썩은 상에 여섯 다리를 붙여          가면서 마음으로 무리 가운데 으뜸이신 혜안 스님에게 귀        의하였다”고 하였다.]

그는 형주荊州의 지강枝江 사람으로 성은 위衛씨이다.
수隋나라 문제文帝 개황開皇 17년에 천하에 널린 사도승니(私度僧尼:度牒 없이 제멋대로 된 스님)를  총괄하여 심사하게 하였는데, 대사가 말하기를 “나는 자격이 없다” 하고는 산골에 숨었다.
대업大業 때에 장정을 많이 뽑아 운하를 개통할 때 굶주려 죽은 시체가 즐비하자, 대사는 걸식을 해서 그들을 구제하였다. 이때 구제를 받은 이가 매우 많았다.
양제煬帝가 대사를 불러도 나아가지 않고 태화산太和山에 몰래 들어갔다. 황제가 강도江都에 행차함으로써 천하가 소란해지자, 주장자를 떨치고 떠나 형악사衡嶽寺로 가서 두타행頭陀行을 하였다.
당나라의 정관貞觀 때에 황매산黃梅山에 가서 홍인 대사를 뵙고는 마음의 요체를 전해 받았으며, 인덕麟德 원년에 종남산終南山 석벽石壁을 지나다가 거기서 눌러 살았다. 고종高宗이 또 대사를 부른 적이 있지만, 조칙을 받들지 않고 명소名所를 두루 다니다가 숭산嵩山의 소림少林에 이르러서 말하였다. 
“여기가 내 생명을 마칠 곳이다.” 
이때부터 참선하는 이가 많이 모였는데, 탄연坦然과 회양懷讓 두 사람이 와서 물었다.
“어떤 것이 조사께서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대사가 대답했다.
“어찌하여 자기自己의 뜻은 묻지 않는가?”
“어떤 것이 자기의 뜻입니까?”
“마땅히 비밀한 작용을 관찰해야 한다.”
“어떤 것이 비밀한 작용입니까?”
대사가 눈을 떴다 감았다 해서 보이니, 탄연히 그 말끝에 돌아갈 곳을 알고는, 다시는 딴 곳으로 가지 않았다. 그러나 회양은 기연機緣이 맞지 않아서 하직하고 조계曹谿로 갔다.

측천무후가 수도로 불러들여 스승의 예로 대우하면서 신수神秀 선사와 똑같이 매우 존중하였다. 측천무후가 일찍이 대사의 나이를 묻자, 이렇게 대답했다. 
“기억하지 못합니다.”
측천무후가 다시 물었다.
“어찌하여 기억하지 못하시오?”
대사가 대답했다.
“생사生死의 몸은 마치 돌고 도는 고리와 같으니, 고리는 시작도 끝도 없거늘 기억해서 무엇 하겠습니까? 하물며 이 마음이 흘러 들어가는 중간中間은 틈이 없거늘[無間] 거품이 일어났다 꺼졌다 함을 보는 것은 망상일 뿐입니다. 처음의 식識으로부터 움직이는 형상이 사라질 때까지도 다만 이러할 뿐이거늘, 어찌 연월일을 기억하겠습니까?”
측천무후가 듣고 머리를 조아려서 신봉하였다. 이윽고 신룡神龍 2년에 중종中宗이 자색紫色 가사를 하사하고 제자 14인을 출가시켰으며, 이어서 궁중으로 맞이하여서 공양하였다. 
신룡 3년에는 또 마납摩衲 가사 한 벌을 하사하자, 대사는 사양하고 숭악嵩嶽으로 돌아갔다. 그리고는 그해 3월 3일에 문인에게 이렇게 부촉하였다. 
“내가 죽거든 시체를 숲 속에 놓아 두어 들불에 타도록 하라.” 
얼마 있다가 만회공萬廻公이 와서 뵙자, 대사는 미친 듯이 손을 잡고 이야기를 하는데 곁에서 모신 이가 귀를 기울이고 자세히 들어도 무슨 소리인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8일째가 되자 문을 닫고 누워서 입적하니 춘추는 128세였다.[수隋의 개황開皇 2년 임인년壬寅年에 태어나, 당의 경룡景龍 3년 기유년己酉年에 멸하였다. 그때 노안老安 국사國師라 칭하였다.] 문인들이 유언에 따라 시체를 메다 숲 속에 놓으니, 과연 들불이 나서 저절로 화장을 하여 80개의 사리를 얻었는데, 그 중 다섯 개는 붉은 자주색으로서 궁중에 남겨 두었다. 선천先天 2년이 되자 문인들이 부도를 세웠다.

원주袁州 몽산蒙山 도명道明 선사

그는 파양鄱陽 사람으로 진陳나라 선제宣帝의 후손이었다. 나라가 멸망하자 평민이 되었는데, 왕손인 까닭에 일찍이 직위[署]를 받았으므로 장군이라는 칭호가 있었다. 
어릴 때에 영창사永昌寺에서 출가하였는데, 도를 흠모함이 지극히 간절하였으므로 5조祖의 법회에 가서 극진한 뜻[極意]을 연구하였다. 처음에는 이해하거나 깨달은 것이 없었는데, 5조가 노盧 행자行者에게 비밀히 옷과 발우를 전했다는 말을 듣고는 동지들 수십 명을 거느리고 뒤를 쫓아서 대유령大庾嶺까지 이르렀다. 대사가 가장 먼저 보았고 다른 이는 아직 오지 못했는데, 노盧 행자는 대사가 오는 것을 보자 의발衣鉢을 반석 위에다 던지면서 말했다.
“이 옷은 믿음을 표시하는 것이거늘 힘으로 다툴 수 있겠는가? 마음대로 가져가라.”
대사가 옷을 들으려고 했으나 산처럼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는 주저하다가 겁이 나서 말했다.
“제가 온 것은 법을 구하기 위한 것이지 옷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바라건대 행자께서는 저에게 열어 보여 주십시오.”
조사가 대답했다.
“선善도 생각지 말고 악惡도 생각지 말지니, 바로 이럴 때 어떤 것이 도명道明 상좌上座의 본래면목本來面目인가?”
대사가 즉각 크게 깨닫고는 온몸에 땀을 흘리면서 눈물을 흘리며 몇 차례 절하고는 물었다.
“위에서 보이신 비밀한 말과 비밀한 뜻 이외에 따로 뜻이 있으십니까?”
조사가 대답했다.
“내가 지금 그대에게 말한 것은 비밀이 아니다. 그대가 자신의 본래면목을 반조返照하면, 비밀은 문득 그대 곁에 있다.”
“제가 비록 황매산에서 대중을 따랐으나, 실제로는 아직 자신의 면목을 밝히지 못했습니다. 이제 들어갈 곳을 가르쳐 주심을 받으니, 마치 사람이 물을 마실 때 차고 더운 것을 스스로 아는 것과 같습니다. 이제 행자께서 저의 스승이십니다.”
“그대가 그렇게 말한다면, 그대와 내가 함께 황매黃梅를 스승으로 섬겼기 때문이니, 잘 보호해서 지녀라.”
“저는 이후에 어디로 가오리까?”
“원袁을 만나면 멈추고, 몽蒙을 만나면 살아라.”
대사가 절하고 하직한 뒤에 급히 고개 밑으로 돌아가서 다른 동지들에게 말하기를 “앞산이 까마득하여 아무리 멀리 바라보아도 아득할 뿐 종적이 없다. 딴 길로 찾아보자”라고 하자, 모두가 그 말을 믿고 따랐다. 
대사는 돌아온 뒤에 홀로 여산廬山의 포수대布水臺에 가서 3년을 살다가 비로소 원주袁州의 몽산蒙山으로 가서 현묘한 교화를 크게 퍼뜨렸다. 처음에는 이름을 혜명慧明이라고 하였으나, 혜능 조사의 앞 글자를 피하기 위하여 도명道明이라고 이름하였다. 제자들은 모두 남쪽으로 보내서 6조를 참문하게 하였다.

앞의 북종北宗 신수神秀 선사의 법손[홍인 대사의 제2        세 법손]

오대산五臺山 거현巨玄 선사
그는 안륙安陸 사람으로서 성은 조曹씨이다. 어릴 때에 명복원明福院 낭朗 선사에게 수학하였는데, 처음에는 경론經論을 강의하다가 나중에는 선회禪會에 참석하였다. 그리하여 북종北宗을 찾아갔을 때에 신수神秀가 물었다.
“백운白雲이 흩어진 곳은 어떠한가?”
대사가 대답했다.
“어둡지 않습니다.”
“여기에 이른 뒤에는 어떠한가?”
“한 가지에서 다섯 잎이 난 것을 똑바로 보았습니다.”
신수가 잠자코 허락하므로 방에 들어가 모시면서 대하니 거의 어긋남이 없었다. 뒤이어 상당上黨의 한령寒嶺에 가서 사니, 몇 해 사이에 수천 명의 무리가 모였다. 나중에 오대산五臺山에서 교화를 시작하여 20여 년 만에 열반에 드니 향년 81세였다. 당의 개원開元 15년 9월 3일에 전신을 그대로 탑에 모셨다.

하중부河中府 중조산中條山 지봉智封 선사
그의 성은 오吳씨이다. 처음에 󰡔유식론唯識論󰡕을 강의했지만 이름과 형상[名相]에 막혀서 선지식의 꾸지람을 받자, 격분한 나머지 강의를 그치고 길을 떠났다. 
무당산武當山에 올라가 신수 선사를 보고는 의심이 단박에 풀렸지만, 성태聖胎를 기를 것을 생각해서 신수를 하직하고는 포진蒲津의 안봉산安峰山에 가서 살았다. 10년 동안을 산에서 내려오지 않고 나무 열매와 샘물을 마시고 살았다. 때마침 그 고을의 목사牧使 위문승衛文昇이 성안으로 들어오기를 청하면서 신안국원新安國院을 지어 주자 그곳에서 살기 시작했는데, 승속이 끊임없이 귀의하였다.
목사가 물었다.
“제가 오늘 이후에 어떠합니까?”
대사가 대답했다.
“해가 몽범(濛氾:해가 지는 곳)으로부터 떠서 나무를 비추니 전혀 그림자가 없다.”
목사가 처음에는 깨닫지 못해서 읍을 하며 물러났다. 잠시 있다가 밝게 열리면서 의심이 풀려 스스로 깨달았다.
대사가 중조산中條山을 20여 년 동안 왕래했는데, 그 도를 얻은 자가 헤아릴 수 없었다. 열반에 든 뒤에 문인들이 고을의 성 북쪽에다 탑을 세웠다.

연주兗州 항마降魔 장藏 선사
그는 조군趙郡 사람으로서 성은 왕王씨인데, 아버지는 고을의 아전이었다.
대사는 7세에 출가하였는데, 그때는 들에 요귀妖鬼가 많아서 사람들을 홀렸다. 대사는 단신으로 가서 그들을 항복시키되 조금도 두려워하는 기색이 없었으므로 항마降魔라는 이름을 얻었다. 그리고는 바로 광복원廣福院의 명찬明讚 선사에 의해 출가해서 부지런히 시봉하여 법을 받았다.
나중에 북종(北宗:神秀의 宗派)이 아주 크게 교화가 번성하게 되자, 힘써 노력하기를 서원하니, 신수가 물었다.
“네 이름을 항마降魔라고 하나, 여기에는 산의 정령이나 나무의 요괴가 없으니, 네가 도리어 마魔가 되겠느냐?”
대사가 대답했다.
“부처가 있으니 마도 있습니다.”
“네가 만일 마라면 반드시 부사의不思議의 경계에 머물 것이다.”
“이 부처라는 것도 본래 공하거늘 무슨 경계가 있겠습니까?”
신수가 예언을 해주었다.
“너는 소호(少皥:小昊로 神話時代 皇帝의 이름)의 터에 인연이 있다.”
이에 대사가 태산泰山을 찾아 들어가니, 몇 해 사이에 학자가 구름같이 모여들었다. 
어느 날 문인들에게 고하였다. 
“나는 이제 늙었다. 사물이 극에 이르면 근원으로 돌아가는 법이다.”
말을 마치고 나서 입적하니, 수명은 91세였다. 

수주壽州 도수道樹 선사
그는 당주唐州 사람으로서 성은 문聞씨이다. 어릴 때부터 여러 경서를 탐독하다가 나이 50세가 되자 어떤 고승의 권유로 출가하기를 서원하고는 본부本部 명월산明月山에 있는 혜문慧文에게 절하고 스승으로 모셨다.
대사는 나이 많아서 법法을 구하느라 무척 더딘 것을 부끄럽게 생각했기 때문에 스스로를 격려하면서 다니지 않은 곳이 없었다. 나중에 동락東洛으로 돌아와 신수神秀 선사를 만나고 나서야 말끝에 미묘한 이치를 깨닫고 만년에 법기法器를 이루었다.
이윽고 수주壽州의 삼봉산三峰山을 택하여 초가를 짓고 살았다. 일찍이 어떤 촌사람[野人]이 있었는데, 옷과 겉치장은 소박했으나 말하는 것이 궤이詭異하였다. 말하고 웃는 때 이외에는 부처님 보살ㆍ아라한ㆍ하늘ㆍ선인 등의 형상을 짓기도 하고, 혹은 신령한 광명을 놓기도 하고, 혹은 소리를 내기도 했다. 대사의 제자들은 이를 보았지만 아무도 헤아리지 못했다. 이런 식으로 10년을 거친 뒤에 적적히 자취를 감추었다.
대사가 대중에게 말했다.
“촌사람이 갖가지 재주를 부려서 사람들을 미혹했지만, 오직 불 꺼진 노승老僧만은 듣지도 않고 보지도 않았을 뿐이다. 그의 재주는 다함이 있지만, 나의 보지도 않고 듣지도 않음은 다함이 없다.”
당의 보력寶歷 원년에 병이 나서 입적하니 수명은 92세였다. 이듬해 정월에 탑을 세웠다.

회남도淮南都 양산梁山 전식全植 선사
그는 광주光州 사람으로서 성은 예芮씨이다. 처음에 암자 하나를 지어서 살았는데, 태수太守인 위문경衛文卿이 본주本州의 장수사長壽寺에 머물도록 하였으므로, 법문을 열어 무리를 모았다. 위문경이 물었다.
“장차 불법의 흥망이 어떠하겠습니까?”
대사가 대답했다.
“참되고 실다운 물건은 옛날도 이제도 없고 또한 궤촉(軌躅:法則)도 없지만, 유위有爲의 법은 네 가지 형상으로 변천한다. 법이 장차 액난厄難을 당하리니, 그대는 볼 수 있을 것이다.”
대사는 93세로써 일생을 마쳤고, 당의 회창會昌 4년 갑자甲子 9월 7일에 탑을 세워 안치하였다.

앞의 숭악嵩嶽 혜안慧安 국사의 법손

낙경洛京 복선사福先寺 인검仁儉 선사
그는 숭산嵩山에서 물음을 파罷한 뒤에 들과 장터로 걸림 없이 다니니, 당시 사람들이 그를 등등騰騰 화상이라고 하였다.
당나라 천책天冊 만세萬歲 시절, 측천무후가 불러서 대궐에 들어갔는데, 측천무후를 우러러본 채 양구良久하다가 입을 열었다.
“아시겠습니까?”
측천무후가 대답했다.
“모르겠소.”
“노승은 말하지 않는 계를 지니고 있습니다.”
이렇게 말하고는 곧 물러갔다. 이튿날 단가短歌 19수를 지어서 바치니, 측천무후가 살펴보고서 가상히 여겼다. 그래서 후한 선물로 사례를 하였는데, 대사는 전혀 받지 않았다.
또 가사歌辭를 필사해서 천하에 퍼뜨리게 하였는데, 그 가사는 진리를 펼침으로써 당시의 풍속을 경책한 것이었다. 오직 요원가了元歌 1수만이 세상에 성대히 유행하였다.

숭악嵩嶽 파조타破竈墮 화상
그의 이름과 성씨는 알 수 없다. 말과 행실은 헤아리기 어려웠으며, 숭악嵩嶽에 은둔해 살았다. 
산 중턱에 매우 영험하다는 제당[廟] 하나가 있었는데, 그 안에 조왕신竈王神 하나만을 모셔 놓고 원근遠近의 사람들이 끊임없이 제사를 지내면서 산목숨을 매우 많이 삶아 죽였다. 대사가 하루는 시봉하는 스님을 데리고 제당에 들어가서 지팡이로 조왕신을 세 번 때리고 나서 말했다.
“쯧쯧, 이 조왕신은 단지 진흙과 기와로 이루어졌거늘, 성스러움이 어디로부터 왔고 영험함은 어디로부터 일어났기에 이렇듯이 산목숨을 삶아 죽이는가?”
그리고는 다시 세 번을 치니 조왕신이 넘어지면서 깨졌다.[안安 국사國師가 파조타破竈墮라고 불렀다.] 조금 있다가 어떤 사람이 푸른 옷을 입고 높은 관을 쓰고서 홀연히 대사에게 절을 하니, 대사가 물었다.
“당신은 누구인가?”
그가 대답했다.
“저는 본래 이 제당의 조왕신이었는데, 오랫동안 업보를 받다가 오늘에야 화상께서 설하신 무생법문無生法門을 듣고서 이곳을 벗어나 하늘에 태어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일부러 사례하러 왔습니다.”
“이는 그대가 본래 가지고 있는 성품이지, 내가 억지로 말한 것이 아니다.”
조왕신은 다시 절하고는 이내 사라졌다. 조금 있다가 시봉하는 스님들이 대사에게 물었다.
“저희들은 오랫동안 스님을 곁에서 모시고 있었지만, 아직도 스님께서 애써서 저희들에게 직접 일러 주시는 말씀을 듣지 못하였는데, 조왕신은 어떤 지름길을 얻었기에 하늘에 태어나게 되었습니까?”
“나는 다만 그에게 ‘본래 진흙과 기와가 합친 것’이라고 말했을 뿐 그를 위해 별다른 도리를 말한 것은 없다.”
시봉하던 스님들이 선 채로 말이 없자, 대사가 다시 말했다.
“알겠는가?”
주사(主事:직책의 이름)가 대답했다.
“모르겠습니다.”
“본래 가지고 있는 성품인데, 어찌하여 알지 못하는가?”
시봉하던 스님들이 이내 절을 하자, 대사가 말했다.
“떨어졌다, 떨어졌다. 깨졌다, 깨졌어.”
나중에 의풍義豊 선사라는 이가 안安 국사國師에게 모든 일을 아뢰니, 안 국사가 탄복하였다.
“이 사람이 물아일여物我一如를 몽땅 알아 버렸으니, ‘밝은 달이 허공에 있는 것과 같아서 보지 못하는 사람이 없다’고 말할 수 있으리라. 그의 말의 본뜻을 바로 알기 어려우리라.”
의풍 선사가 머리를 숙이고 합장한 채 물었다.
“모르겠습니다만, 어떤 사람이 그의 어맥을 바로 알겠습니까?”
“알지 못하는 자이다.”

또 어떤 스님이 물었다.
“사물마다 형상이 없을 때는 어떠합니까?”
대사가 대답했다.
“절을 하면 오직 그대일 뿐 내가 아니며, 절을 하지 않으면 오직 나일 뿐 그대가 아니다.” 그 스님이 절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한 대답이다. 

그 스님이 절을 하고 물러가자, 대사가 말했다.
“본래 있는 물건은 물건이면서 물건이 아니다. 그러므로 마음이 능히 사물을 굴리는 것이 바로 여래와 같다고 말하는 것이다.”
또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선행善行을 닦는 사람입니까?”
대사가 대답했다.
“창을 들고 갑옷을 입은 사람이니라.”
“어떤 것이 악을 행하는 사람입니까?”
“선禪을 닦아서 정定에 든 사람이니라.”
“저는 근기가 얕으니, 스님께서 곧바로 가르쳐 주소서.”
“그대가 나에게 악을 물으나 악은 선을 쫓지 않고, 그대가 나에게 선을 물으나 선은 악을 쫓지 않는다.”
양구良久하고는 다시 말했다.
“알겠는가?”
“모르겠습니다.”
“악한 사람은 착한 생각이 없고, 착한 사람은 악한 마음이 없다. 그러므로 선과 악은 모두 뜬구름과 같아서 둘 다 일어나거나 사라지는 곳이 없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 스님이 이 말끝에 크게 깨달았다.

또 어떤 스님이 우두산牛頭山에서 왔는데, 대사가 물었다.
“누구의 법회法會에서 오는가?”
그 스님이 다가와서 합장한 채 대사 주위를 한 바퀴 돌고 나서 나가자, 대사가 말했다.
“우두의 회상에는 이런 사람이 있을 수 없다.”
스님이 대사 주위를 돌다가 위쪽에서 합장하고 서 있자, 대사가 말했다.
“과연이로다, 과연이야.”
스님이 불쑥 물었다.
“사물을 감응하매 타자他者를 말미암지 않을 때는 어떠합니까?” 사물에 감응한다 함은 법신法身․보신報身․화신化身을 이루는 것이요, 그를 말미암지 않는다 함은 주인공을 말미암지 않는다는 말이니, 수행을 부정하는 뜻이다.

“어떻게 타자를 말미암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런 것이 바로 정正을 따라 근원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근원에 돌아가는데 무엇을 따르겠는가?”
“화상의 지시가 아니었다면 허물에 떨어질 뻔하였습니다.”
“아직 4조 때의 도리는 보지 못했으니, 본 뒤에 다시 소식을 통해 오라.”
그 스님이 불쑥 대사를 한번 돌고 나가자, 대사가 말했다.
“정正을 따르는 도는 예나 지금이나 그러하다.”
그 스님이 절을 하였다.

또 어떤 스님이 오랫동안 모시고 서 있자, 대사가 곧 입을 열었다.
“조사와 부처들은 오직 사람 그대로의 본성本性과 본심本心을 말했을 뿐이다. 따로 도리는 없으니, 알아 차려라, 알아 차려라.”
그 스님이 절하고 물러가려고 하자, 대사가 불자拂子로 때리면서 말했다.
“한 곳이 이러하니, 천 곳이 모두 그러하구나.”
그 스님이 합장한 채 가까이 다가와서 “네”라고 소리를 지르자, 대사가 말했다.
“다시는 믿지 않겠다. 다시는 믿지 않아.”
그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대천제(大闡提:善根이 없는 무리)인 인간입니까?”
대사가 대답했다.
“예배를 존중하는 자이다.”
“어떤 것이 크게 정진하는 사람입니까?”
“욕하고 성내는 것이다.”
그 뒤에는 어찌 되었는지 그의 행적을 모른다.

숭악嵩嶽 원규元珪 선사
그는 이궐伊闕 사람으로서 성은 이李씨이다. 어릴 때에 출가하여 당나라 영순永淳 2년에 구족계를 받고, 한거사閑居寺에서 계율 배우기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나중에 혜안慧安 국사國師를 뵈었을 때, 참된 종지로써 인가하자 현묘한 이치를 단박에 깨달았다. 마침내 숭악의 방오龐塢에다 터를 잡고 살았다. 
하루는 아관(峨冠:職名) 차림을 한 이인異人이 따르는 자를 아주 많이 데리고 가벼운 걸음으로 점잖게 걸으면서 대사에게 문안을 드렸다. 대사가 그의 용모를 보니 특이한 것이 예사 사람이 아니었다. 대사가 말하였다.
“어서 오시오. 무슨 일로 오셨소?”
그가 대답했다.
“스님께서 저를 어찌 아시겠습니까?”
대사가 대답했다.
“나는 부처와 중생을 동등하게 본다. 나는 한 눈으로 보거늘 어찌 분별하겠는가.”
“나는 이 숭악의 산신山神으로서 능히 사람들을 살리고 죽게 하거늘, 대사께서 어찌 한 눈으로 저를 보십니까?”
“나는 본래 나지도 않았거늘 어찌 그대가 죽게 할 수 있겠는가. 나는 몸과 허공이 동등한 것으로 보고, 나와 그대가 동등한 것으로 본다. 그대는 능히 허공과 그대를 무너뜨릴 수 있는가? 설사 허공을 무너뜨리고 그대를 무너뜨릴 수 있다 하여도, 나는 나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는다. 그대는 오히려 이와 같이 할 수도 없을 터인데, 어찌하여 나를 나고 죽게 하겠는가?”
산신이 머리를 조아리고 말했다.
“저도 다른 신보다는 총명하고 정직하다고 여겼는데, 어찌 스님같이 광대한 지혜와 변재를 가진 이가 있을 줄이야 알았겠습니까? 바라건대 바른 계戒를 주셔서 저로 하여금 이 세상을 건너게 해주십시오.”
“그대가 계를 달라는 것이 곧 계이다. 왜냐하면 계율 밖에 계율이 없기 때문이니, 달리 무슨 계가 또 있겠는가?”
“그 이치는 저로서는 막막하게 들릴 뿐입니다. 오직 스님의 계를 구할 뿐이니, 저를 문중의 제자로 삼아주십시오.”
대사는 곧 그를 위해 자리를 펴고 향로[鑪]를 잡고 책상을 반듯이 놓고 말했다.
“그대에게 5계戒를 주겠으니, 받들어 지닐 수 있다면 즉시 ‘능히 지키겠소’라고 대답하라. 만일 지닐 수 없다면 ‘못하겠소’라고 대답하라.”
산신이 말했다.
“삼가 가르침을 받겠습니다.”
대사가 계를 주었다.
“그대는 음행을 하지 않겠는가?”
“장가는 들어야겠습니다.”
“그것을 말한 것이 아니다, 색욕을 부리지 않음을 말한다.”
“그것은 능히 지키겠습니다.”
“그대는 도적질을 하지 않겠는가?”
“제가 무엇이 부족해서 도적질을 하겠습니까?”
“그것을 말한 것이 아니다. 중생들이 흠향歆饗하면 복을 준다고 하고, 공양하지 않으면 재앙을 준다고 하는 것을 말한다.”
“그것은 능히 지키겠습니다.”
“그대는 살생하지 않겠는가?”
“실제로 그 권한을 지니고 있거늘, 어찌 죽이지 않는다고 하겠습니까?”
“그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남용하거나 잘못 알고서 죽이는 것을 말한다.”
“그것은 능히 지키겠습니다.”
“그대는 거짓말을 하지 않겠는가?”
“저는 정직하거늘 어찌 거짓말을 하겠습니까?”
“그것을 말한 것이 아니다. 앞과 뒤가 천심天心에 맞지 않는 것을 말한다.”
“그것은 능히 지키겠습니다.”
“그대는 능히 술로 인한 낭패를 당하지 않겠는가?”
“그것은 능히 지키겠습니다.”
“위에서 말한 것이 부처님의 계이다. 또한 마음으로 받들어 지니되 마음에 장애나 집착이 없어야 하고, 있음의 마음으로 남을 위해도 나와 남이라는 생각이 없어야 하나니, 능히 이와 같이 하면 천지보다 앞서 태어났어도 정령이 되지 않고, 천지보다 뒤에 죽어도 늙지 않는다. 종일토록 변화하여도 움직인 적이 없고, 끝내 다 적멸하여도 쉬는 적은 없으니, 이 이치를 깨달으면 비록 장가를 들어도 아내가 있다고 여기지 않고, 비록 흠향을 받아도 취하는 것이 아니요, 비록 권한을 가져도 권세를 부리지 않고, 비록 작용함이 있어도 의도적이지 않고, 비록 술에 취해도 혼미하지 않게 된다. 만일 만물에 대하여 무심할 수 있다면 색욕을 부려도 음행이 아니고, 복을 주고 재앙을 주어도 도적질이 아니고, 남용과 착오와 의심으로 죽여도 살생이 아니고, 앞뒤가 천리를 어겨도 거짓말이 아니고, 혼미하여 뒤바뀌어도 취한 것이 아니니, 이것을 무심無心이라 한다. 무심이면 계가 없고 계가 없으면 무심이라서, 부처도 없고 중생도 없고 너도 없고 나도 없으니, 네가 없다면 누가 계를 지키는가?”
산신이 말했다.
“저의 신통이 부처님 버금갑니다.”
“그대의 신통은 열 구절[十句]에서 다섯 가지는 능해도 다섯 가지는 능하지 못하고, 부처님이라면 열 구절에서 일곱 가지는 능해도 세 가지는 능하지 못하다.”
산신이 두려워서 자리를 고쳐 앉으면서 물었다.
“그 내용을 알려 주십시오.”
“그대가 상제上帝를 거역하고 동쪽 하늘로 가면서 서쪽으로 일곱 가지 광채를 비출 수 있는가?”
“못합니다.”
“그대가 지기地祇를 윽박지르고 오악五嶽을 뭉개고 사해四海를 묶어둘 수 있겠는가?”
“못합니다.”
“이것을 다섯 가지 능하지 못함이라고 말한다. 부처님께서는 온갖 형상의 공空함을 깨달아서 만법의 지혜를 이루셨으나 결정된 업을 즉시 없애지는 못하고, 부처님께서는 뭇 중생의 성품을 다 아시고 억만 겁의 일을 기억하시나 인연 없는 중생을 제도하지는 못하고, 부처님께서는 한량없는 유정有情을 제도하시나 중생 세계를 다하게 하지는 못하나니, 이것을 세 가지 능하지 못함이라고 말한다. 결정된 업이라도 영원한 것은 아니고, 인연이 없다 함도 일기一期를 말한 것이고, 중생세계도 본래 증감增減이 없는 것이라서 한 사람도 유법有法을 능히 주재하는 자가 없다. 유법에 주재자가 없는 것을 무법無法이라 하고, 무법에 주재자가 없는 것을 무심無心이라 한다. 가령 내가 이해하기로는 부처님은 본래 신통이 있는 것이 아니요, 다만 무심으로써 온갖 법을 통달했을 뿐이다.”
“저는 진실로 우매해서 공空의 이치를 아직 들은 적이 없지만, 대사께서 주신 계는 잘 받들어 행하겠습니다. 이제 인자하신 덕에 보답하고 싶어서 저의 능력을 바치겠습니다.”
“내가 몸을 관찰하건대 물질이 아니고, 법을 관찰하건대 무상하거늘, 공연히 다시 무슨 욕망이 있겠는가?”
“대사께서 필경 저에게 세간 일을 하도록 명령하시면, 저의 조그마한 신통을 부려서 이미 발심한 이와 처음으로 발심하는 이와 아직 발심하지 않은 이와 신심이 없는 이와 신심이 굳은 이 등의 다섯 무리로 하여금 제 신통의 자취를 보게 함으로써, 부처가 있고 신통이 있고 능함이 있고 능하지 못함이 있고 자연自然이 있고 비자연非自然이 있다는 것을 알게 하겠습니다.”
“그러지 말라. 그러지 말라.”
“부처님께서도 신장에게 불법을 옹호하게 하셨는데, 스님께서는 어찌 부처님의 말씀을 어기십니까? 바라건대 잘 가르쳐 주십시오.”
대사는 마지못하여 대답했다.
“동암사東巖寺 둘레는 삭막해서 나무가 없고, 북쪽 산봉우리[北岫]에는 숲이 있지만 거의[皆][구본에는 배背로 되어 있다.] 의지가 되지 않는다. 그대가 북쪽 산봉우리의 나무를 옮겨다 동암사 쪽에 심어 주겠는가?”
“잘 알았습니다. 그러나 밤중에 반드시 소란한 움직임이 있을 것이니, 놀라지 마십시오.”
그리고는 곧 절을 하고 물러갔다. 대사가 문까지 전송하고서 보니 그 위의의 성대함이 왕과도 같았다. 바람․안개․연기․노을이 어지러이 뒤섞이고, 당기와 번기와 고리와 패물이 하늘을 찌를 듯이 넘실거렸다. 그날 저녁에 과연 폭풍이 울부짖으면서 구름이 몰려오고 번개가 쳤는데, 집이 흔들리고 자던 새들이 놀라서 울었다.
대사가 대중에게 일렀다.
“놀라지 말라. 산신이 나에게 약속한 일이 있다.”
이튿날 아침에 보니 북쪽 산봉우리의 솔밭이 몽땅 동암사 쪽으로 옮겨졌는데, 첩첩이 줄지어서 심어져 있었다. 대사가 대중에게 말했다.
“내가 죽은 뒤에라도 행여 이 일에 대해 입 밖에 내지 말라. 만일 말을 만들길 좋아하는 이가 있으면 반드시 나를 요망하다 하리라.”
개원開元 4년 병진년丙辰年에 문인들에게 유언을 했다.
“내가 처음에는 절 동쪽 마루턱에 살았는데, 내가 죽거든 너희들은 반드시 거기에다 내 뼈를 묻어라.”
이 말을 마치고는 태연히 열반하니[委蛻], 춘추는 73세였다. 문인들이 그곳에 탑을 세웠다.

앞의 숭산嵩山 보적普寂 선사의 법손[홍인 대사의 제3세]

종남산終南山 유정惟政 선사
그는 평원平原 사람으로서 성은 주周씨이다. 처음에는 고향의 연화사延和寺 전징詮澄 법사에게서 공부를 하다가 숭산嵩山 보적普寂 선사에게서 법을 받았다. 참 이치[眞詮]를 깨닫고 나서는, 곧 태일산太一山으로 들어갔는데, 배우는 자들이 도량에 가득하였다.
당나라 대화大和 때에 문종文宗이 조개[蛤蜊]를 좋아하자 해안의 관리들이 앞을 다투어 진상했기 때문에 백성들이 피로하였다. 하루는 수랏상에 껍질이 벌어지지 않은 것이 있었다. 임금이 이상하게 여겨서 즉시 향을 피우고 기도를 하자, 잠깐 만에 보살의 형상으로 변했는데 범상梵相이 구족하였다.
즉시 금속단金粟檀으로 된 향합(香合:香盒)에 넣고 아름다운 비단으로 덮어서 흥선사興善寺에 하사하여 스님들로 하여금 섬기게 하였다. 그리고는 여러 신하들에게 이 무슨 상서로움이냐고 물었다. 그들 가운데 누군가가 말하기를 태일산에 있는 유정惟政 선사가 불법에 깊이 밝고 지식이 한이 없다고 하였다. 황제는 곧 그를 불러서 이 일에 대해 물으니, 대사가 대답했다.
“신臣이 듣건대, 사물은 공연히 나타나는 일이 없다고 했으니, 이는 바로 폐하의 신심信心을 열어 주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계경契經에서 말하기를 ‘이러 이러한 몸으로 제도할 이에게는 곧 이러이러한 몸을 나타내서 법을 설하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황제가 말했다.
“보살께서 이미 몸을 나타내셨지만 설법은 아직 듣지 못했소.”
대사가 말했다.
“폐하께서는 이 일을 보시고 예삿일이라 여기십니까, 아니면 예삿일이 아니라 여기십니까? 믿으십니까, 믿지 않으십니까?”
“드물고 기이한 일이니, 짐은 깊이 믿는 바이오.”
“그러면 폐하께서는 이미 설법을 들으셨습니다.”
그때 황제는 일찍이 없었던 기쁨을 느끼고서 천하의 사원에 명하여 각기 관음상觀音像을 모시게 함으로써 특별한 조짐[休]에 보답하였다. 그리고 이로 인해 대사를 내도량內道場에 머무르게 하였지만 누차 사양하고 산으로 들어갔다. 다시 조서를 내려서 성수사聖壽寺에 머무르게 하였는데, 무종武宗이 즉위하자 대사는 홀연히 종남산終南山으로 들어가 은거하였다. 사람들이 그 까닭을 물으니, 대사는 이렇게 대답했다. 
“나는 원수를 피해서 왔다.”
나중에 산간의 초막에서 임종하니 나이는 87세였으며, 화장을 한 뒤에 사리 49개를 얻었는데 회창會昌 3년 9월 4일에 탑에 모셨다.
 
익주益州 무상無相 선사 법손[홍인 대사의 제4세]

익주益州 보당사保唐寺 무주無住 선사
그는 처음에 무상無相 대사에게 법을 얻었다. 뒤에는 남양南陽 백애산白崖山에서 참선[宴寂]에 오로지 힘쓰기를 여러 해 동안 하였는데, 배우는 자들이 차츰 차츰 모여와서 간곡히 청해 마지않았다. 이때부터 가르침을 내렸는데, 비록 널리 언교言敎를 연설하여도 오직 무념無念으로써 종지를 삼았다.
당나라의 정승[相國] 두홍점杜鴻漸이 이 지방의 안무사로 왔는데, 대사의 명성을 듣고 한번 뵙기를 바라더니, 대력大歷 원년 9월에 사자使者를 산으로 보내어 청했다. 이때 절도사節度使 최녕崔寧 또한 각 절의 스님들에게 명령하여 멀리 나와서 마중하게 하였다. 그리하여 10월 1일에 공혜사空慧寺에 이르렀다.
그때 두공杜公과 융수(戎帥:최녕)가 3학學의 석덕碩德들을 모두 한자리에 모아 놓고 절을 한 뒤에 두공이 물었다.
“전에 듣건대 대사께서 일찍이 여기에 머무르셨다는데, 그 뒤 어찌하여 떠나셨습니까?”
대사가 대답했다.
“일정하게 머무는 곳 없으니, 본래 성품이 거칠고 털털하여 산간에 있기를 좋아합니다. 하란산賀蘭山과 오대산五臺山을 비롯하여 훌륭한 경관을 두루 다니다가 상공의 관내에 있는 대자사大慈寺에서 나의 스승[先師]께서 최상승의 법을 연설하신다는 말을 듣고 일부러 멀리 와서 뵈었습니다. 그리고 외람되이 법을 받은 뒤에는 백애산白崖山에 머무른 지 여러 해가 지났는데, 이제 상공께서 부르시니 감히 따르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두공이 말했다.
“제자가 듣건대, 오늘날 스님께서는 ‘기억하지 말라[無憶], 생각하지 말라[無念], 망상하지 말라[莫妄]’는 세 구절의 법문을 설하신다고 하던데 사실입니까?”
“그렇습니다.”
“이 세 구절은 하나입니까, 셋입니까?”
“기억하지 말라 함은 계戒요, 생각하지 말라 함은 선정[定]이요, 망상하지 말라 함은 지혜[慧]이나, 한 마음이라도 생겨남이 없으면 계와 선정과 지혜를 갖추는 것이니, 하나도 아니고 셋도 아닙니다.”
“마지막 구절의 망妄자는 마음 심心을 쓰는 잊을 망忘자가 아닙니까?”
“아닙니다. 계집 녀女를 쓴 망妄자입니다.”
“근거가 있습니까?”
“󰡔법구경法句經󰡕에 말하기를 ‘정진한다는 마음을 일으키면 망상이지 정진이 아니다. 만일 마음이 망령되지 않으면 그 정진은 한량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두공이 듣고 나서 의심이 확연히 풀리자, 다시 물었다.
“대사께서는 앞으로 세 구절의 법문으로 사람들을 제도하시겠습니까?”
대사가 대답했다.
“초심학인初心學人에게는 생각을 쉬어서 의식의 물결을 그치게 하면 마치 물이 맑아져서 그림자가 드러나듯 하겠지만, 생각[念]의 체體가 없음을 깨달아서 적멸이 현전하면 무념 또한 성립하지 않습니다.”
이때 뜰 앞의 나무 위에서 까마귀가 울었는데, 두공이 물었다.
“대사께서는 들으셨습니까?”
“들었소.”
조금 있다가 까마귀가 날아갔는데 두공이 다시 물었다.
“대사께서는 들으셨습니까?”
“들었습니다.”
“까마귀가 날아가서 소리가 나지 않거늘, 어찌하여 듣는다고 말하십니까?”
그러자 대사가 널리 대중을 향해 말하였다.
“부처님의 세상은 만나기 어렵고 바른 법은 듣기 어려우니, 모두가 자세히 들어라. 들으면서도 들음이 있지 않으니 들음의 성품과는 관련되지 않는다. 본래 나지도 않거늘 어찌 멸한 적이 있겠는가. 소리가 있을 때는 소리의 경계[聲塵]가 스스로 생겨나고, 소리가 없을 때는 소리의 경계가 저절로 멸하지만, 그러나 이 들음의 성품은 소리를 따라 나지도 않고 소리를 따라 멸하지도 않는다. 이 들음의 성품을 깨달으면 소리의 경계에 얽매이지 않으니, 들음은 생겨남과 멸함이 없고 들음은 가고 옴이 없음을 반드시 알아야 한다.”
두공과 권속과 대중이 모두 머리를 조아리고는 또 물었다.
“무엇을 제일의제第一義諦라 이름하며, 제일의제는 어떤 차제次第를 따라서 들어갈 수 있습니까?”
대사가 대답했다.
“제일의제에는 차제가 없고 또한 출입出入도 없습니다. 세속제(世俗諦:세속적인 견해)에는 일체가 있지만 제일의제에는 없으니, 모든 법의 성품 없는 성품을 제일의제라고 합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유법有法은 세속제이고, 성품 없음이 제일의제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스님께서 열어 보여 주신 바는 실로 불가사의합니다.”
그리고는 두공이 다시 물었다.
“제자는 본래 성품과 식견이 미천하지만, 지난날 공무의 틈을 타서 󰡔기신론장소起信論章疏󰡕 2권을 지어 보았습니다. 이는 불법佛法에 맞는 것입니까?”
“무릇 장소章疏를 짓는 것은 모두 식심識心으로 사량思量하고 분별한 것이라서 유위有爲이고 유작有作이니, 마음을 일으키고 생각을 움직여야 지을 수 있는 것입니다. 󰡔기신론󰡕의 글에 근거하면 이렇습니다. 
‘온갖 법은 본래부터 언설言說의 모습을 여의고, 명자名字의 모습을 여의고, 마음으로 반연하는 모습을 여의어서 끝끝내 평등하여 변함이 없고 오직 일심一心만이 있을 뿐이기 때문에 이름하여 진여眞如라고 한다.’ 
이제 상공은 언설의 모습에 집착하고, 명자의 모습에 집착하고, 마음으로 반연하는 모습에 집착하여, 이미 갖가지 모습에 집착하고 있으니, 어찌 불법이라고 하겠습니까?”
두공이 일어나서 절을 하며 말했다.
“제자가 일찍이 여러 공봉대덕(供奉大德:스님을 높여 부름)들에게도 이 일을 물은 적이 있는데, 모두 제자를 칭찬하면서 불가사의하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모두 인정人情에 끌렸음을 알았으니, 대사야말로 이제 이치에 맞추어 설명해서 심지心地의 법에 합하였습니다. 진실로 이 참다운 이치야말로 불가사의합니다.”
두공이 다시 물었다.
“무엇을 불생不生이라 하고, 무엇을 불멸不滅이라 합니까? 그리고 어찌하여야 해탈을 얻겠습니까?”
대사가 대답했다.
“경계를 보아도 마음이 일어나지 않는 것을 이름하여 불생이라 하는데, 불생이면 곧 불멸입니다. 그리고 이미 생멸이 없다면 눈앞의 경계에 속박되지 않고 바로 그 자리에서 해탈합니다. 불생을 이름하여 무념無念이라 하고, 무념이면 곧 멸함이 없으니, 무념이면 곧 속박이 없고 무념이면 곧 해탈도 없습니다. 요점을 들어서 말하건대, 마음을 알아채면 곧 염念을 여의고, 성품을 보면 곧 해탈입니다. 식심識心을 여의고 성품을 보는[見性] 이외에 다시 위없는 보리를 증득하는 법문이 있다고 하면 옳지 못합니다.”
두공이 다시 물었다.
“무엇을 마음을 알아채고 성품을 본다고 합니까?”
“온갖 도를 배우는 사람이 생각을 따라 유전流轉하는 것은 대체로 참 마음[眞心]을 알아채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참 마음이라 함은 생각[念]이 날 때에도 따라 나지 않고, 생각이 멸할 때에도 그에 따라 잠잠해지지 않습니다. 가지도 않고 오지도 않으며, 안정되지도 않고 어지럽지도 않으며, 취할 수도 없고 버릴 수도 없으며, 들뜨지도 않고 침체하지도 않으며, 함이 없고 모습도 없지만 펄떡이는 잉어처럼 활발해서 평상平常에 자재自在합니다. 이 마음의 체體는 끝끝내 얻을 수 없고 지각할 수 없지만, 눈에 닿는 것이 모두 진여[如]라서 견성見性 아님이 없습니다.”
두공과 대중이 절을 하고 찬탄과 기쁨을 표시하면서 물러갔다. 무주 선사는 나중에 보당사保唐寺에 살다가 임종했다.


경덕전등록 제5권






제33조 혜능慧能 대사
제33조 혜능 대사의 법손[法嗣] 43인

서인도西印度 굴다堀多 삼장三藏
소주韶州 법해法海 선사
길주吉州 지성志誠 선사
변첨산匾檐山 효료曉了 선사
하북河北 지황智隍 선사
홍주洪州 법달法達 선사
수주壽州 지통智通 선사
강서江西 지철志徹 선사
신주信州 지상智常 선사
광주廣州 지도志道 선사
광주廣州 법성사法性寺 인종印宗 화상
길주吉州 청원산靑原山 행사行思 선사
남악南嶽 회양懷讓 선사
온주溫州 영가永嘉 현각玄覺 선사
사공산司空山 본정本淨 선사
무주婺州 현책玄策 선사
조계曹谿 영도令韜 선사
서경西京 광택사光宅寺 혜충慧忠 선사
서경西京 하택사荷澤寺 신회神會 선사
    [이상 19인은 기록에 보임]
소주韶州 기타祇陀 선사
무주撫州 정안淨安 선사
숭산嵩山 심尋 선사
나부산羅浮山 정진定眞 선사
남악南嶽 견고堅固 선사
제공산制空山 도진道進 선사
선쾌善快 선사
소산韶山 연소緣素 선사
종일宗一 선사
회계會稽 진망산秦望山 선현善現 선사
남악南嶽 범행梵行 선사
병주幷州 자재自在 선사
서경西京 함공咸空 선사
협산峽山 태상泰祥 선사
광주光州 법정法淨 선사
청량산淸凉山 변재辯才 선사
광주廣州 오吳 두타頭陀
도영道英 선사
지본智本 선사
광주廣州 청원淸苑 법진法眞 선사
현해玄楷 선사
담최曇璀 선사
소주韶州 자사刺史 위거韋據
의흥義興 손孫 보살菩薩
    [이상 24인은 기연할 어구가 없으므로 기록하지 않음]


제33조 혜능慧能 대사

속성은 노盧씨이다. 그의 선조는 범양范陽 사람이었는데, 아버지 행도行瑫가 무덕武德 때에 좌천을 당해 남해의 신주新州로 와서 자리를 잡고 살게 되었다.
세 살 때에 아버지를 잃고 어머니가 수절을 하면서 길렀다. 점점 자라면서 가세가 더욱 기울어 궁핍해졌으므로, 대사가 나무를 팔아서 살아갔다. 하루는 나무를 지고 저자에 갔다가 어떤 나그네가 󰡔금강경金剛經󰡕 읽는 소리를 들었는데, 전율을 느끼면서 그 나그네에게 물었다.
“그게 무슨 법이며, 누구에게 얻었소?”
나그네가 대답했다.
“이는 󰡔금강경󰡕이라는 것인데, 황매黃梅의 홍인 대사에게 얻었소.”
대사는 급히 어머니에게 법을 위해 스승을 찾겠다는 뜻을 말씀드리고 나서, 바로 소주韶州로 가다가 유지략劉志略이라는 거사를 만나 사귀게 되었다. 당시 유지략의 고모인 무진장無盡藏이라는 비구니가 있었는데, 항상 󰡔열반경涅槃經󰡕을 읽고 있었다. 대사가 잠시 듣고서 그 뜻을 해설해 주니, 비구니는 드디어 책을 들고 와서 글자를 물었다. 대사가 말했다.
“글자는 모르니 뜻이나 물으시오.”
비구니가 말했다.
“글자도 모르면서 어찌 뜻을 이해할 수 있습니까?”
“모든 부처의 묘한 이치는 문자에 매여 있지 않소.”
비구니가 깜짝 놀라 마을의 어른들에게 말했다.
“혜능은 도가 있는 사람이니, 초청해서 공양하시오.”
그러자 마을 사람들이 앞을 다투어 와서 절하고 공경하였다. 그 근처에 보림사寶林寺의 옛터가 있었다. 사람들이 집을 지어서 대사를 살게 하자고 논의하니, 사방에서 대중들이 구름처럼 모여서 잠깐 사이에 좋은 집이 이루어졌다. 대사는 어느 날 문득 스스로 생각했다. 
“내가 큰 법을 구하러 나왔는데 어찌 중도에서 그치겠는가?” 
그리하여 이튿날 길을 떠나 창락현昌樂縣 서산西山에 있는 석실石室에 이르러서 지원智遠 선사를 만났다. 대사가 법을 물으니, 지원이 대답했다.
“그대의 신령한 자태를 살피건대 예사 사람보다 뛰어난 바가 있다. 내가 들으니 서역에서 온 보리달마菩提達磨가 황매黃梅에게 심인心印을 전했다고 하니, 그대는 그곳에 가서 의심을 풀라.”
대사는 하직하고 나서 곧바로 황매의 동선東禪에 이르니, 때는 당나라 함형咸亨 2년이었다. 홍인 대사는 한 번 보더니 (그가 법기法器임을) 묵묵히 알아보았다. 나중에 의발과 법을 전해 주면서 회懷ㆍ집集이 맞닿는 지역에 숨어 있게 하였다.

의봉儀鳳 원년 병자년丙子年 정월 8일에 남해南海에 이르렀을 때 인종印宗 법사를 만나 법성사法性寺에서 󰡔열반경涅槃經󰡕을 강했다. 대사가 낭무廊廡 바깥 복도를 말한다.
에 머물고 있는데, 그날 밤 바람이 불어서 깃대 위의 깃발이 나부꼈다. 때마침 두 스님이 다투는데, 한 명은 ‘깃발이 움직인다’고 하고, 한 명은 ‘바람이 움직인다’고 하였으나, 주고받는 수작이 전혀 이치에 맞지 않았다. 이에 대사가 말했다.
“점잖은 토론에 속된 무리가 참견해도 좋겠는가? 다만 바람과 깃발이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이 움직일 뿐이오.”
인종印宗이 이 말을 몰래 듣고는 온몸의 털과 뼈[毛骨]가 오싹해지면서 이상하게 생각했다. 이튿날 대사를 방으로 불러들여서 바람과 깃발의 뜻을 묻자, 대사가 이치를 갖추어서 고하니 인종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일어나서 말했다.
“행자는 결단코 예사 사람이 아닌데, 스승은 누구이시오?”
대사가 하나도 숨기지 않고 법을 얻은 연유를 자세히 말하니, 인종이 제자의 예를 갖추어 선의 요체를 물었다. 그리고는 바로 사부대중에게 고했다.
“인종은 구족한 범부로서 이제 육신肉身 보살을 만났다.”
그리고는 곧 옆자리의 노 거사(盧居士:혜능)를 가리키면서 “바로 이 분이오”라 하고, 전해 받은 신표인 법의를 보여 달라고 해서 모두가 절하고 공경케 하였다.
정월 15일에 모인 여러 대덕들에게 머리를 깎았고, 2월 8일에 법성사法性寺에 가서 지광智光 율사律師에게 구족계를 받으니, 그 계단戒壇은 바로 남조南朝 송宋나라의 구나발타라求那跋陀羅 삼장三藏이 설치한 것이었다. 구나발타라가 예언하기를 “뒤에 육신 보살(혜능)이 이 계단에서 계를 받으리라”고 하였고, 양梁나라 말기에 진제眞諦 삼장三藏은 계단 옆에다 보리수 두 포기를 심으면서 대중에게 말하기를 “이후 120년 뒤에 큰 보살[大開士]이 이 나무 밑에서 무상승無上乘을 연설하여 한량없는 무리를 제도하리라”고 하였는데, 대사가 계를 갖춘 뒤에 이 나무 밑에서 동산법문東山法門 5조祖가 동산에 살았던 데서 기인한 말이다.
을 개설하니, 옛 예언과 완전히 부합하였다.
이듬해 2월 8일에 홀연히 대중에게 말하였다. 
“나는 여기에 살고 싶지 않으니, 옛집으로 돌아가야겠다.” 
그리하여 인종 법사와 스님과 속인 1천여 명이 전송하는 가운데 대사는 보림사寶林寺로 돌아가게 되었다.
소주韶州 자사刺史 위거韋據가 대범사大梵寺에서 묘한 법륜을 굴리기를 청하였고, 아울러 자기도 무상심지계無相心地戒를 받았는데, 문인이 기록해서 󰡔단경壇經󰡕이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전하였다. 그리고 나서 조계曹谿로 돌아와 크나큰 법비[法雨]를 뿌리니, 배우는 자들이 1천 명 이하로 내려가는 일이 없었다.

중종中宗이 신룡神龍 원년에 조칙을 내렸다. 
“짐이 혜안慧安과 신수神秀, 두 대사를 궁중으로 청해서 공양하고, 수많은 업무 속에 틈을 내서 늘 1승乘을 연구하였는데, 두 대사는 매양 미루고 사양하면서 남방에 있는 혜능 선사가 홍인 대사의 의발과 법을 비밀리에 받았으니 그에게 가서 물으라고 하였소. 이제 내시內侍인 설간薛簡을 보내서 대사를 부르는 터이니, 바라건대 대사는 자비로운 생각으로 속히 서울로 오십시오.” 
그러나 대사는 병을 핑계로 사양하는 표表를 올려 숲 속에서 일생을 마치기를 바란다고 하였다. 
그러자 설간이 말하였다.
“서울에 있는 선덕禪德들은 모두 말하기를 ‘도를 알고자 하면 반드시 좌선을 하면서 선정을 익혀야 한다. 선정을 익히지 않고 해탈을 얻는 법은 있지 않다’고 하는데, 스님께서 설하시는 법은 어떤 것입니까?”
대사가 대답했다.
“도는 마음을 말미암아 깨닫는 것이니, 어찌 앉는 데 있으랴? 경에 말하기를 ‘만일 여래가 앉거나 눕거나 한다고 보면, 그는 삿된 도를 행하는 사람이다. 왜냐하면 여래는 온 곳도 없고 가는 곳도 없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만일 생멸이 없으면 그것이 여래의 청정한 선정[淸淨禪]이요, 모든 법이 공적하면 그것이 여래의 청정한 앉음[淸淨坐]이니, 끝끝내 증득할 것이 없거늘 하물며 앉을 것이 있겠는가?”
“제자가 돌아가면 반드시 주상主上께서 물으실 것이니, 바라옵건대 화상께서 자비로 마음의 요체를 가리켜 나타내 주소서.”
“도는 밝음도 어두움도 없다. 밝음과 어두움은 서로 바뀌어 상대되는 뜻이므로 밝고 밝아서 다함이 없다 하여도 또한 다함이 있는 것이다.”
“밝음은 지혜에 비유하고 어두움은 번뇌에 비유하는데, 수도하는 사람이 지혜로써 번뇌를 비추어 깨뜨리지 않으면 비롯함이 없는 생사를 어디에 의지해서 벗어나겠습니까?”
“지혜로써 번뇌를 비추는 것이라면 이는 2승乘인 양이나 염소 수레를 찾는 어린애의 근기이다. 높은 지혜의 큰 근기는 전혀 그렇지 않다.”
“어떤 것이 대승大乘의 견해입니까?”
“밝음[明]과 밝지 않음[無明]은 그 성품이 둘이 아니다. 둘이 아닌 성품은 곧 진실한 성품이니, 진실한 성품이란 범부에 처해서도 줄지 않고 성현에 있어서도 늘지 않으며, 번뇌에 머물러도 어지럽지 않고 선정에 거하면서도 고요하지 않다. 단멸斷滅하지도 않고 항상하지도 않으며, 가지도 않고 오지도 않으며, 중간에도 있지 않고 안팎에도 있지 않으며, 나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으며, 성품과 모습이 여여如如하여 항상 머물러 변천하지 않으니, 이를 이름하여 도道라 말한다.”
“대사께서 불생불멸不生不滅을 말씀하시니, 어찌 외도와 다르겠습니까?”
“외도가 말하는 불생불멸은 멸함을 갖고 생겨남을 그치고 생겨남으로써 멸함을 드러내니, 멸함도 멸함이 아니고 생겨남도 생겨남이 없음을 설하는 것이다. 그러나 내가 설하는 불생불멸은 본래 스스로 생겨남이 없어서 지금도 멸하지 않으니, 그 까닭에 외도와는 같지 않다. 그대가 만일 마음의 요체를 알고 싶다면, 다만 일체의 선악에 대해서 모두 생각하거나 분별하지 말라. 그러면 자연히 청정한 마음의 체體에 들어가게 되어서 담연히 항상 고요하면서도 묘한 작용이 항하의 모래처럼 많으리라.”
설간이 가르침을 받고는 활연히 크게 깨달았다. 그리하여 하직 인사를 드리고 궁궐로 돌아가서 대사의 말대로 아뢰니, 황제는 조칙을 내려서 대사에게 사례하고 아울러 마납磨衲 가사 한 벌과 비단 5백 필과 발우 한 벌을 하사했다.
12월 19일에 조서를 내려서 옛 보림사를 중흥사中興寺로 고치고, 3년 11월 18일에 다시 소주韶州 자사刺史에게 조서를 내려서 더욱 융성한 대접을 하사하고 법천사法泉寺라는 편액[額]을 하사했다.

대사는 신주新州의 옛 거처인 국은사國恩寺에서 어느 날 대중에게 말했다.
“여러 선지식이여, 그대들은 제각기 마음을 청정히 해서 나의 설법을 들어라. 그대들 모든 사람들의 자심自心이 곧 부처이니 더 이상 의심하지 말라. 마음 밖으로는 한 물건도 건립할 수 없는 것이니, 모두가 이 본래의 마음이 온갖 종류의 법을 낳는 것이다. 그러므로 경에 말하기를 ‘마음이 나면 갖가지 법이 나고, 마음이 멸하면 갖가지 법이 멸한다’고 하였다. 만일 종자 지혜[種智]를 이루고자 하면, 모름지기 일상삼매一相三昧와 일행삼매一行三昧를 통달하라.
만일 온갖 곳에서 형상에 머무르지 않고, 그 형상에 대해 미움이나 애착을 내지 않으며, 취하고 버리는 일도 없고, 이익과 성괴成壞 따위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편안하고 고요하고 한가롭고 담담해서 허융담박虛融澹泊하면 이것이 일상삼매요, 만약 온갖 곳에서 다니고 멈추고 앉고 누울 때 순일하고 곧은 마음으로 도량을 움직이지 않아서 참으로 정토淨土를 이룬 것을 이름하여 일행삼매라고 한다.
가령 이 두 가지 삼매를 갖춘 사람이 있다면, 마치 땅에 있는 종자가 자라서 열매를 맺을 힘을 안에 갖추고 있는 것과 같나니, 일상一相과 일행一行에서도 또한 그러하다. 내가 지금 하는 설법은 마치 때에 맞게 비가 내려서 대지를 널리 적시는 것과 같다. 그대들의 불성도 온갖 종자에 비유할 수 있으니, 이 비에 적셔지면 모두가 싹이 틀 것이다. 나의 종지를 받는 자는 결단코 보리菩提를 얻을 것이요, 나의 행에 의거하는 자는 반드시 묘한 과위[妙果]를 얻을 것이다.”
선천先天 원년에 모든 대중들에게 말했다.
“내가 외람되이 홍인 대사의 의발과 법을 전해 받았다. 그러나 이제 그대들에게는 법만을 설할 뿐 의발은 부촉하지 않나니, 그대들의 신근信根이 순수하게 성숙하여 결코 의심이 없어서 큰일을 감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의 게송을 들어라.”

마음 땅[心地]은 온갖 종자 머금었으니
두루 내린 비에 모두가 싹이 트네.
꽃의 본성을 단박에 깨닫고 나면
보리의 열매가 스스로 이루어지리라.
心地含諸種    普雨悉皆生
頓悟華情已    菩提果自成

대사가 게송을 마치고 나서 다시 말했다.
“그 법은 둘이 없고, 그 마음도 마찬가지다. 그 도는 청정하고 또한 온갖 모습도 없다. 그대들은 행여 청정함[淨]을 관찰하거나 그 마음을 비우려 하지 말라. 이 마음은 본래 청정하여 취하거나 버릴 수가 없으니, 제각기 스스로 노력해서 인연 따라 떠나라.”

대사가 설법으로 중생을 제도하기 40년이 되는 해 7월 6일에 제자에게 명하여 신주新州 국은사國恩寺에 가서 보은탑報恩塔을 세우게 했는데, 공사를 다른 것보다 갑절이나 잘 하라고 하였다. 이때 촉승蜀僧 방변方辯이라는 이가 와서 인사를 하고는 조각에 능하다고 하니, 대사가 정색을 하면서 말했다.
“내 형상을 조각해 보라.”
방변이 그 뜻을 알지 못하고 대사의 진영眞影을 조각하니, 높이가 일곱 치[寸]가량으로서 교묘한 솜씨를 다하였다. 대사가 이를 보고 말했다.
“그대가 조각의 성품[塑性]은 잘 알지만, 불성佛性에는 능숙하지 못하구나.”
그리고는 옷과 물건으로 삯을 주니, 그 스님이 받고 나서 절하고 물러갔다.

선천先天 2년 7월 1일에 문인들에게 말했다.
“나는 신주로 돌아가고자 하니, 그대들은 속히 배를 손질하라.”
당시 대중이 슬피 울면서 좀더 머무시기를 청하자, 대사가 대답했다.
“부처님들께서 세상에 나타나신 것은 열반을 나타내기 위함이니, 온 것은 반드시 가게 마련이다. 이치가 늘 그러한 것이니, 나의 이 몸도 반드시 돌아가야 한다.”
대중이 말했다.
“스님께서 지금 가시면 조만간 돌아오십니까?”
“잎사귀가 떨어져서 뿌리로 돌아가니, 다시 올 날을 말할 수 없다.”
“스님의 법안法眼은 누구에게 전하십니까?”
“도 있는 자[有道者]는 얻고, 마음이 없는 자[無心者]는 통한다.”
“뒤에 환난은 없겠습니까?”
“내가 죽은 지 5, 6년 후에 어떤 사람이 와서 내 머리를 끊어 가리라. 나의 예언을 들어라.”

머리 위에 어버이를 봉양하기 위함이고
입안에 밥을 넣기 위함이라네.
만滿의 환난을 만나면
양楊씨와 유柳씨가 관리이리라.
頭上養親    口裏須餐
遇滿之難    楊柳爲官

또 말했다.
“내가 간 지 70년쯤에 두 보살이 동쪽에서 올 텐데, 하나는 재가자在家者이고, 또 하나는 출가자이다. 두 사람은 동시에 교화를 펴서 나의 종지를 건립하고 가람伽藍을 잘 꾸며서 법손이 번창하리라.”
말을 마치자 신주의 국은사로 가서 목욕한 뒤에 가부좌를 한 채 천화遷化하니, 기이한 향기가 사람을 엄습하고 흰 무지개가 땅에서 뻗쳤다. 때는 곧 그 해 8월 3일이었다.
당시 소주와 신주의 두 자사가 각각 신령한 탑을 세우려 하자, 스님과 속인이 따라야 할 곳을 결정하지 못하였다. 그러자 두 고을의 자사가 같이 향을 피워 축원하기를 “향 연기가 끌리는 쪽이 대사께서 돌아가시려는 곳이다”고 하였다. 이때 향로가 하늘로 곧게 솟아올라서 조계曹谿로 날아가니, 11월 13일 탑에 안치하였다. 수명은 76세였다.
이때에 소주 자사 위거韋據가 비문을 찬술하였고, 문인들은 머리를 취한다는 예언을 기억해서 먼저 철엽칠포鐵葉漆布 인도에서 생산되는 베이다.
로써 대사의 목을 견고히 보호하였다. 탑 속에는 달마가 전한 신표인 법의[서역西域의 굴현포屈眴布이다. 목면木綿으로 짠 것이며, 후인이 푸른 비단으로 안을 대었다.]를 넣었고, 중종中宗이 하사한 마납 가사와 보배 발우 및 방변方辯이 조각한 동상과 도구들은 탑을 관리하는 시자가 맡았다.
개원開元 10년 임술壬戌 8월 3일 밤중에 갑자기 탑에서 쇠사슬이 끌리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스님들이 놀라서 일어나 보니, 어떤 효자孝子가 탑에서 달아나고 있었다. 이내 살펴보니, 대사의 목에 상처가 있었다. 그리하여 도적이 들어온 사실을 자세하게 고을에 알리니, 군수 양간楊侃과 자사 유무첨柳無忝이 보고를 받고 체포에 박차를 가했다. 5일 만에 석각촌石角村에서 도적을 붙들었는데, 소주韶州로 보내서 국문鞠問을 하니, 장정만張淨滿이라는 자로서 여주汝州의 양현梁縣 사람이었다. 홍주洪州의 개원사開元寺에서 신라新羅의 스님 김대비金大悲에게 돈 2만 냥을 받고 6조 대사의 머리를 끊어 오라는 명령을 받았는데, 이는 해동海東으로 가지고 가서 공양하려고 한 것이었다.
유柳 자사는 보고를 받은 뒤에 곧바로 형벌을 내리지 않고 몸소 조계에 가서 대사의 상족(上足:맏제자)인 영도令韜에게 물었다. 
“어떻게 처단해야 하겠습니까?”
영도가 대답했다.
“만일 국법으로 따진다면 마땅히 죽여야 하지만, 불교의 자비는 원수와 친족이 평등합니다. 하물며 그는 모셔다가 공양하려고 한 것이니, 그 죄를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유 자사가 가상히 여기면서 찬탄했다. 
“비로소 불문佛門의 광대함을 알겠습니다.” 
마침내 그를 놓아 주었다.[그 뒤에 유명한 이가 저술한 행장과 신도들이 공양한 일에 진기한 일이 많으나, 번거로워서 기록하지 않는다.]
상원上元 원년에 숙종肅宗이 사자를 보내서 대사의 의발을 내도량으로 모셔다가 공양했는데, 영태永泰 원년 5월 5일에 대종代宗의 꿈에 6조 대사가 자기의 의발을 청하므로, 7일에 자사刺史인 양함楊瑊에게 조서를 내렸다.
“짐이 혜능 선사의 꿈을 꾸었는데, 법을 전해 받은 가사를 다시 조계로 돌려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이제 진국대장군鎭國大將軍 유숭경劉崇景을 시켜서 받들어 모시고 가게 하노라. 짐은 이를 나라의 보배라 생각하나니, 경들은 법식에 따라서 본사本寺에 봉안하고, 여러 스님들 가운데 종지를 잘 받드는 이로 하여금 엄숙히 수호하여 실수가 없도록 하라.”
나중에 혹 도적을 맞더라도 모두 멀리 가기 전에 붙들었는데, 이렇게 하기를 네 차례나 거듭하였다.
헌종憲宗이 대감大鑒 선사라는 시호를 내리고, 탑호는 원화영조元和靈照라고 하였다.
송宋나라 개보開寶 초기에 왕사王師가 남해南海를 평정할 때에 유劉씨의 패잔병[殘兵]이 행패를 부리는 바람에 대사의 탑과 절이 쓰러지고 불탔으나, 대사의 유해는 탑을 지키는 스님에 의해서 하나도 손상되지 않았다. 이윽고 다시 짓는 일이 시작되었는데, 공사가 끝나기 전에 태종太宗이 즉위하게 되었다. 그는 선문禪門에 마음을 두었기 때문에 훨씬 더 장엄하게 꾸몄다.
대사가 당나라 선천先天 2년 계축癸丑에 입멸하신 이래 지금의 경덕景德 원년 갑진년甲辰年에 이르기까지가 무릇 292년이다. 법을 받은 이는 인종印宗 법사 등 33인을 제외하고도 각기 한 지방을 교화하면서 정통 후계자를 표방했으며, 그밖에 이름을 숨기고 자취를 감춘 이는 헤아릴 수 없다. 여기서는 여러 사람들의 전기 가운데 그 내용을 간략하게 추려서 열 명만을 기록하여, 방계로 나왔다고 말한 것이다. 


제33조 혜능 대사의 법손[法嗣] 43인

서역西域 굴다堀多 삼장三藏

그는 천축 사람이었는데, 동쪽으로 소양韶陽까지 왔다가 6조를 만나 언하言下에 깨달았다.
나중에 오대산五臺山을 돌아보고 다시 정양현定襄縣으로 가는 도중에 마을을 지나다가, 어떤 스님이 암자를 짓고서 앉아 있는 것을 보고 물었다.
“그대는 외로이 앉아서 무엇을 하는가?”
그 스님이 대답했다.
“고요함을 관찰합니다.”
“관찰하는 이는 누구이며, 고요함이란 어떤 물건인가?”
그 스님이 새삼 절을 하고서 물었다.
“그것은 무슨 뜻입니까?”
삼장이 대답했다.
“그대는 어찌하여 스스로 관찰하고 스스로 고요하지 못하는가?”
그 스님은 멍한 채 대답할 줄을 모르자, 삼장이 다시 말했다.
“그대는 누구의 제자인가?”
“신수 대사의 제자입니다.”
“나는 서역 한 외도로서 가장 낮은 근기의 사람이지만, 그런 소견에는 빠지지 않았다. 공연히 꼿꼿하게 앉아 있는 것이 도에 무슨 이익이 있으랴?”
그 스님이 다시 물었다.
“누구를 스승으로 섬기셨습니까?”
“나의 스승은 6조 대사이다. 그대는 어찌하여 빨리 조계로 가서 참된 요체를 결단하지 않는가?”
그 스님은 즉시 암자를 버리고 6조에게 가서 앞의 일을 자세히 말씀드렸는데, 6조가 가르침을 주는 것이 삼장의 말과 부합하므로 그 스님은 깊이 믿게 되었다. 그 뒤에 삼장은 어찌 되었는지 모른다.

소주韶州 법해法海 선사

그는 곡강曲江 사람이다. 처음에 6조를 보고서 이렇게 물었다.
“마음이 곧 부처라 하는데, 바라건대 가르침을 내려 주소서.”
조사가 대답했다.
“앞생각[前念]이 나지 않음이 곧 마음이요, 뒷생각[後念]이 멸하지 않음이 곧 부처이며, 일체의 모습을 이룸이 곧 마음이요, 일체의 모습을 여읨이 곧 부처이다. 내가 구족하게 말하자면 몇 겁이 지나도 다하지 못하나니, 나의 게송을 들어라.”

마음 그대로[卽心]를 이름하여 지혜라 하고
부처 그대로[卽佛]가 바로 선정이니
선정과 지혜를 균등히 지니면
의중意中이 청정하리라.
卽心名慧    卽佛乃定
定慧等持    意中淸淨

이 법문을 깨닫는 것은
그대의 습성習性을 말미암고
본래의 무생無生을 쓰는 것이니
이렇게 함께 닦는 것이 올바름이네.
悟此法門    由汝習性
用本無生    雙修是正

법해法海가 믿고 받아들이면서 게송으로 찬탄하였다.

마음 그대로가 원래 부처이거늘
이를 깨닫지 못하고 스스로 굽혔구나.
선정과 지혜의 인因을 함께 닦아야
모든 사물을 여읜다는 것을 나는 알았네.
卽心元是佛    不悟而自屈
我知定慧因    雙修離諸物
[󰡔육조단경󰡕에서 말하기를 “법해法海라고 하는 문인門人은 곧 선사禪師이다”라고 하였다.]

길주吉州 지성志誠 선사

그는 길주吉州의 태화太和 사람이다. 어릴 때 형남荊南의 당양산當陽山 옥천사玉泉寺에서 신수神秀 선사를 섬겼는데, 나중에 두 종파 6조의 남종南宗, 신수의 북종北宗을 말한다.
가 성대히 교화를 펴게 되자, 신수의 무리들이 왕왕히 남종南宗을 비방하기 시작했다.
“혜능慧能 대사大師는 글자 하나도 모르거늘, 무슨 장점이 있겠는가?”
신수가 타일렀다.
“그는 스승 없이도 깨닫는 지혜를 얻어서 최상승의 도리를 깊이 깨달았으니, 나는 그만 못하다. 또 나의 스승인 5조께서 친히 의발과 법을 전해주셨으니, 어찌 예사로운 일이겠는가? 다만 한스러운 것은 멀리 떨어져 가까이하질 못한 채 헛되이 국가의 은혜를 받는 일이다. 그대들은 여기에 막혀 있지 말고 빨리 조계로 가서 의심을 풀라. 훗날 돌아오거든 다시 나에게 그의 설법을 설해다오.”
대사[志誠]가 이 말을 듣고는 절하고 물러갔다. 그리하여 소양韶陽에 이르자 대중이 청해 묻는 뒤를 따라 들어가면서 온 곳을 말하지 않았다.
이때 6조가 대중들에게 말했다.
“지금 법을 훔치러 온 이가 이 회상에 몰래 숨어들었다.”
대사가 앞으로 나가서 앞의 일을 자세히 말하자 6조가 말했다.
“그대의 스승은 어떻게 대중에게 보이는가?”
“항상 대중에게 당부하시기를 ‘마음을 머물러서 고요함을 관찰하고, 오래 앉아서 눕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조사가 말했다.
“마음을 머물러서 고요함을 관찰하는 것은 병이지 선정이 아니며, 오래 앉아서 몸을 구속하는 것은 진리에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나의 게송을 들어라.”

태어난 후로는 앉아서 눕지 않고
죽고 나서는 누워서 앉지 못하니
원래 냄새나는 뼈 무더기이거늘
무슨 공과 허물이 있겠는가?
生來坐不臥    死去臥不坐
元是臭骨頭    何爲立功過

대사가 물었다.
“대사께서는 어떤 법으로 사람을 가르치십니까?”
조사가 대답했다.
“내가 어떤 법을 남에게 준다고 하면 이는 그대를 속이는 것이다. 다만 방향에 따라 속박을 푸는 것을 가명삼매假名三昧라고 한다. 나의 게송을 들어라.” 

일체에 무심함이 자성의 계戒요
일체에 걸림 없음이 자성의 혜慧요
늘어나지도 않고 물러나지도 않음이 스스로의 금강이요
몸이 가건 몸이 오건 본래 삼매로다.
一切無心自性戒    一切無礙自性慧
不增不退自金剛    身去身來本三昧

대사가 게송을 듣고는 곧 뉘우치고 감사하면서 귀의를 서원했다. 그리고는 하나의 게송을 바쳤다.

5온蘊은 허깨비의 몸이니
허깨비가 어찌 궁극의 경지이겠는가.
진여를 돌이켜서 향한다면
법은 도리어 청정치 못하네.
五蘊幻身    幻何究竟
迴趣眞如    法還不淨

조사가 그렇다고 여기니, 이에 대사는 옥천사玉泉寺로 돌아갔다.

변첨산匾檐山 효료曉了 선사

그의 전기는 전하지 않는다. 오직 북종北宗의 문인인 홀뢰忽雷 징澄이 찬술한 비명碑銘만이 세상에 성대히 유행하고 있으니, 대략 간추리면 다음과 같다.
“대사는 변첨산匾檐山에 살았고, 법호는 효료曉了이며, 6조의 맏제자[嫡嗣]이다. 대사는 무심無心의 마음을 얻었고 모습 없는 모습을 요달했으니, 모습 없음이라 함은 삼라만상이 눈앞에 어지러운 것이요, 무심이라 함은 분별이 치성한 것이다. 한마디의 말이나 한마디의 메아리도 끊어져서 메아리를 전할 수 없거늘 전해서 행했고, 말로 궁구할 수 없으므로 궁구하면 잘못이다. 대사는 스스로 없음조차 없는 없음을 얻었으나 없음에서 없지 않고, 나는 이제 있음이 있는 있음이지만 있음에서 있지는 않다. 있지 않는 있음은 오고 가도 늘어나지 않고, 없음 아닌 없음은 열반에도 줄지 않는다. 아, 대사께서 세상에 계시자 조계가 밝았고, 대사께서 열반에 드시자 법의 배[法舟:佛法]가 기울었다. 대사가 무설無說을 담론하자 우주에 가득했고, 대사께서 미혹한 무리에게 보이시니 요의了義의 대승이로다. 변첨산의 빛깔이 검은빛을 드리우니, 빈 골짜기에는 오히려 효료의 이름이 남았네.”

하북河北 지황智隍 선사

그는 처음에 5조의 법석法席에 참석했었다. 비록 진작부터 의심을 물어서 결단했으나, 여전히 점수의 수행[漸行]에서 맴돌고 있다가, 나중에 하북河北에 가서 암자를 짓고 20여 년 동안이나 계속 앉아 수행하며 잠시도 게을리 하는 기색이 없었다.
그러다가 6조의 문인인 책策 선사가 그 지방을 지나면서 부지런히 법의 요체[法要]를 구하라고 격려하자, 마침내 대사는 암자를 버리고 6조를 찾아가 뵈었다. 6조는 멀리서 온 것을 가엾이 여겨서 문득 깨우쳐 주니[開抉], 대사는 그 말끝에 활연히 깨달았는데 전에 20년 동안 얻은 마음이 자취도 없이 싹 제거되었다. 그날 밤에 하북의 단월인 여러 거사들은 홀연히 공중에서 나는 소리를 들었다.
“황隍 선사가 오늘 도를 얻었다.”
나중에 하북으로 돌아가서 사부대중을 교화했다.

홍주洪州 법달法達 선사

그는 홍주 풍성豊城 사람으로서 7세에 출가하여 󰡔법화경法華經󰡕을 읽었다. 구족계를 받은 뒤에 조사(6조)에게 가서 절을 하는데 머리가 땅에 닿지 않았다. 조사가 꾸짖었다.
“땅에 닿지 않게 절을 하려면 절을 하지 않는 것과 뭐가 다르겠는가? 그대의 마음속에 반드시 한 물건이 있으니, 어떤 일을 쌓아 익혔는가?”
대사가 대답했다.
“󰡔법화경法華經󰡕을 염송念誦하기를 이미 3천 번에 이르렀습니다.”
“그대가 1만 번을 염송해서 경의 뜻을 얻더라도 그 일이 훌륭하다고 여기지 않는다면, 나와 더불어 행할 수 있다. 그대는 지금 이 사업事業을 짊어지고 있으면서도 도무지 허물이 되는 줄은 모르고 있구나. 나의 게송을 들어라.”

절은 본래 아만의 깃발을 꺾는 것
어찌하여 머리가 땅에 닿지 않는가?
나[我]가 있으면 죄가 곧 생기고
공명심이 없으면 복은 비할 바 없네.
禮本折慢幢    頭奚不至地
有我罪卽生    亡功福無比
조사가 또 말했다.
“그대의 이름이 무엇인가?”
대사가 대답했다.
“법달法達입니다.”
“그대의 이름이 법달이라 하지만, 어찌 법을 통달한 적이 있겠는가? 다시 게송을 들어라.”

그대는 지금 이름이 법달이건만
부지런히 염송하면서 쉬지를 않는구나.
헛되이 염송하면 소리만을 따르는 것
마음을 밝혀야만 보살이라 칭한다네.
汝今名法達    勤誦未休歇
空誦但循聲    明心號菩薩

그대와는 인연이 있기 때문에
내가 지금 그대에게 설해 주나니
다만 부처님이 말씀 본래 없었음을 믿는다면
연꽃이 입에서 피어나리라.
汝今有緣故    吾今爲汝說
但信佛無言    蓮華從口發

대사가 게송을 듣고 허물을 뉘우치면서 말했다.
“지금부터는 온갖 일에 겸양하고 공손하겠으니, 바라건대 화상께서 자비를 베푸시어 경전 속의 뜻과 이치를 말씀해 주십시오.”
“그대가 이 경을 읽었다 하니, 무엇으로 종취宗趣를 삼고 있는가?”
“학인學人이 어리석어서 처음부터 글자만을 읽었으니, 어찌 종취를 알겠습니까?”
“그렇다면 내 앞에서 한 번 외워 보라. 내가 설명해 주리라.”
대사가 곧 큰 소리로 경전을 외워서 「방편품方便品」까지 이르렀을 때에 조사가 말했다.
“그만두라. 이 경은 원래 인연으로 세상에 출현하심을 종지로 삼았으니, 아무리 갖가지 비유를 많이 말했다 하여도 이를 벗어나지 않는다. 어떤 인연인가? 오직 하나의 큰 일[一大事]이다. 하나의 큰 일이라 함은 곧 부처의 지견知見이니, 그대는 행여 경의 뜻을 잘못 이해하지 말라.
그(경)를 보고 말하기를 열고 보이고 깨닫고 들어가게 하는 것은 바로 부처의 지견이고, 나와는 관계가 없다고 이와 같은 견해를 짓는다면, 이는 경을 비방하고 부처를 헐뜯는 짓이다. 부처님은 이미 부처가 되어서 온갖 지견을 구족했거늘 어찌 다시 열어 보일 필요가 있으랴. 그대는 이제 반드시 믿어야 한다. 부처의 지견이라 함은 오로지 그대 스스로의 마음[自心]일 뿐이며, 다시 별다른 체體는 없다.
그러나 모든 중생이 스스로 광명을 가린 채 탐욕과 애욕의 티끌 경계가 밖에서 반연하고 안에서 요동을 치면서 밖을 향해 달림[驅馳]을 기꺼이 받으므로, 부처님께서 수고롭게 삼매에서 일어나 입이 쓰도록 쉬라고 하면서 부처와 더불어 둘이 아니니 밖을 향해 구하지 말라고 하신 것이니, 이 때문에 ‘부처의 지견을 열어 준다’고 한 것이다. 그대들은 오로지 온갖 수고를 다해 염念에 집착하는 것을 공부가 된다고 여기니, 이것이 어찌 이우犂牛가 꼬리를 아끼다가 죽는 것과 다르겠느냐?”
“그렇다면 오직 이치만을 이해해야지 수고롭게 경을 읽을 필요는 없는 것입니까?”
“경에 무슨 허물이 있기에 그대의 생각에 장애를 주리오? 다만 미혹과 깨달음은 사람에게 있고 손해와 이익은 그대를 말미암을 뿐이다. 나의 게송을 들어라.”

마음이 미혹하니 법화法華가 구르고
마음을 깨달으니 법화를 굴린다.
오래 염송해도 마음을 밝히지 못한다면
이치[義]와는 영원히 원수가 되리라.
心迷法華轉    心悟轉法華
誦久不明己    與義作讎家

생각 없는 생각이 곧 올바름이고
생각 있는 생각은 삿됨을 이루나니
있음ㆍ없음을 모두 헤아려 알지 않으면
영원히 백우거白牛車를 타리라.
無念念卽正    有念念成邪
有無俱不計    長御白牛車

대사가 게송을 듣고 다시 물었다.
“경에 말하기를 ‘여러 대성문大聲聞들로부터 보살에 이르기까지 모두 생각하고 헤아려도 부처의 지혜를 측량할 수 없다’고 하였는데, 이제 범부들도 하여금 스스로의 마음을 깨닫기만 하면 곧 부처의 지견이라 하시니, 상근上根의 무리가 아니면 의심과 비방을 면치 못할 것입니다. 또 경에서 세 수레[三車]를 말하였는데, 큰 소大牛의 수레와 흰 소 수레가 어떻게 다릅니까? 바라옵건대 화상께서 다시 가르침을 내려 주십시오.”
“경의 뜻이 분명하거늘 그대 스스로가 미혹하여 등지는구나. 3승乘의 사람들이 부처님의 지혜를 능히 측량하지 못하는 까닭은 헤아리고 따지기 때문이다. 가령 너희들이 머리를 모아 함께 생각하고 추측하더라도 더욱 멀어질 뿐이다. 부처님은 본래 범부를 위해 설했지 부처를 위해 설하시지 않았다. 이 이치를 기꺼이 믿지 못하겠거든 마음대로 물러가거라. 문득 흰 소 수레에 앉을 줄은 전혀 모르고 다시 문밖에서 세 수레를 찾는구나. 더구나 경문에 분명히 그대를 향해 ‘2승도 없고 3승도 없다’고 하였거늘, 그대는 어찌하여 살피지 않는가? 세 수레는 가짜인 것이니 지난날[昔時]이 되기 때문이며, 1승은 실다운 것이니 지금[今時]이 되기 때문이다. 다만 그대로 하여금 가짜를 버리고 실다움으로 돌아가게 할 뿐이니, 실다움으로 돌아간 뒤에는 실다움 또한 이름이 없는 것이다. 
마땅히 알아야 하나니, 소유한 진귀한 재물은 모두 그대에게 속하는 것이라서 그대의 수용受用을 말미암는 것이다. 다시는 아버지라는 상념도 짓지 말고, 아들이라는 상념도 짓지 말고, 또한 상념을 쓰지도 말지니, 이것을 이름하여 󰡔법화경󰡕을 지닌 것이라 하는데, 겁에서 겁에 이르기까지 손에서 경을 놓지 않고, 낮에서 밤에 이르기까지 생각하지 않는 때가 없는 것이다.”
대사는 조사의 깨우침을 받자 뛸 듯이 기뻐하면서 게송으로 찬탄했다.

경전을 3천 번이나 외웠지만
조계의 1구句에 없어졌네.
출세간의 종지를 밝히지 못하면
어찌 여러 생의 광증狂症을 쉬겠는가?
經誦三千部    曹谿一句亡
未明出世旨    寧歇累生狂

양과 사슴과 소를 방편으로 시설해서
처음과 중간과 나중에도 잘 선양했으나
누가 알았겠는가? 불난 집 속이 
원래 법 중의 왕이라는 것을.
羊鹿牛權設    初中後善揚
誰知火宅內    元是法中王

조사가 말했다.
“그대는 이제부터 비로소 경전을 염念하는 스님이라 부를 수 있겠구나.”
대사는 이로부터 현묘한 이치를 깨닫고, 또한 경 외우기를 쉬지 않았다.

수주壽州 지통智通 선사

그는 수주壽州의 안풍安豊 사람이다. 처음에 󰡔능가경楞伽經󰡕을 약 1천 번이나 읽었으나, 3신身 부처님의 몸이 다양한 중생들을 제도하기 위하여 여러 모습으로 나타난다는 것을 상징하는 말로서, 법신法身․보신報身․화신化身을 말한다.
ㆍ4지智 불교의 유식학파唯識學派에서 말하는 여래如來의 네 가지 지혜로, 대원경지大圓鏡智․평등성지平等性智․묘관찰지妙觀察智․성소작지成所作智를 말한다. 
의 이치를 알지 못하여 조사에게 절하고 그 이치를 해석해 달라고 하니, 조사가 말했다.
“3신이라 함은 청정법신淸淨法身은 그대의 성품이요, 원만보신圓滿報身은 그대의 지혜요, 천백억화신千百億化身은 그대의 행이다. 만약 본래의 성품을 여의고 따로 3신을 말한다면, 이를 몸은 있으나 지혜가 없다고 이름하며, 만약 3신에 자체의 성품이 없음을 깨닫는다면, 이를 4지智의 보리菩提라 이름한다. 나의 게송을 들어라.”

스스로의 성품에 3신을 갖추고
광명을 발하여 4지를 성취하나니
보고 듣는 인연을 여의지 않고
초연히 부처 지위에 오르네.
自性具三身    發明成四智
不離見聞緣    超然登佛地

내가 이제 그대를 위해 설하나니
삼가 믿으면 영원히 미혹이 없으리.
밖으로 달리면서 구하는 이를 배우지 말지니
종일토록 보리를 설명할 뿐이다.
吾今爲汝說    諦信永無迷
莫學馳求者    終日說菩提

대사가 물었다.
“4지의 이치를 들을 수 있겠습니까?”
조사가 대답했다.
“이미 3신을 회통하면 문득 4지가 밝아질 것이니, 어찌 다시 물을 필요가 있으랴? 만일 3신을 여읜 채 따로 4지를 담론한다면, 이는 지혜는 있으나 몸은 없다고 이름하는 것이니, 이 지혜 있음에 나아가다 도리어 지혜 없음을 이루게 된다. 다시 게송을 들어라.”

대원경지大圓鏡智는 성품이 청정한 것이고
평등성지平等性智는 마음에 병이 없는 것이고
묘관찰지妙觀察智는 보아도 공을 들이지 않고
성소작지成所作智는 대원경大圓鏡과 같다.
大圓鏡智性淸淨    平等性智心無病
妙觀察智見非功    成所作智同圓鏡

5식ㆍ8식ㆍ6식ㆍ7식이 결과와 원인으로 굴러가나
단지 명언名言을 쓸 뿐 실다운 성품은 없네.
만일 구르는 곳에서 정情을 남겨두지 않으면
번거로이 일어나도 영원히 나가정那伽定에 처하리.
五八六七果因轉    但用名者無實性
若於轉處不留情    繁興永處那伽定
[식識을 바꾸어서 지혜를 이룬다 함은 전오식前五識을 바꾸어 성소작지成所作智를 이루고, 제6식을 바꾸어 묘관찰지妙觀察智를 이루고, 제7식을 바꾸어 평등성지平等性智를 이루고, 제8식을 바꾸어 대원경지大圓鏡智를 이루는 것이다. 이와 같이 6식과 7식은 원인 안에서 움직이고, 5식과 8식은 결과 위에서 바뀌나, 다만 이름만이 움직일 뿐 그 본체는 움직이지 않는다.]

대사가 감사의 절을 하면서 게송으로 찬탄했다.

3신은 원래 나의 본체[體]요
4지는 본래 마음의 광명이니
몸과 지혜가 원융하여 걸림 없으면
사물에 감응하여 자유롭게 형상을 따르네.
三身元我體    四智本心明
身智融無礙    應物任隨形

일으키고 닦는 것 모두가 망령된 움직임이요
지키고 머무는 것도 참다운 정精은 아니네.
묘한 종지를 스승으로 인하여 밝히니
끝내 더럽게 물든 이름은 없어졌도다.
起修皆妄動    守住匪眞精
妙言因師曉    終亡汚染名

강서江西 지철志徹 선사

그는 강서江西 사람이니, 성은 장張씨이고 이름은 행창行昌이다. 젊은 시절에는 협객俠客이었다. 
남북의 종파로 갈라진 뒤부터 비록 두 종주宗主는 너와 내가 없었지만, 그들의 문도들은 서로 미움과 사랑으로 대립하였다. 당시 북종의 문인들이 스스로 신수神秀 대사를 옹립하여 6조로 삼고, 혜능慧能 대사가 의발을 전해 받았다는 말이 천하에 퍼진 것을 시기하였다. 그러나 조사[慧能]는 보살이라서 미리 그런 일을 알고 돈 10냥을 방장方丈에 놓아두었다.
이때 행창이 북종 문인들의 촉탁을 받고서 칼을 품고 조실祖室에 들어가 해치려고 했다. 조사가 목을 길게 늘이고 나서자 행창이 세 번 칼을 휘둘렀으나, 도무지 다치게 하지를 못했다. 조사가 타일렀다.
“올바른 칼은 삿되지 않고, 삿된 칼은 올바르지 않다. 다만 너에게 돈을 빚졌을지언정 목숨을 빚진 일은 없다.”
행창이 놀라 까무러쳤다가 한참 만에 깨어나서 애절히 뉘우치며 출가할 뜻을 말하니, 조사는 마침내 돈을 주면서 말했다.
“그대는 떠나라. 무리들이 오히려 너를 해칠까 걱정이다. 훗날 모습을 바꾸어서 오라. 마땅히 너를 받아 주리라.”
행창이 분부를 받고 밤중에 도망을 했다. 그리고는 마침내 어떤 스님의 제자가 되어 계를 받고 부지런히 정진하였다. 하루는 조사의 말을 기억하고 멀리 와서 뵙자, 조사가 말했다.
“내가 오랫동안 그대를 생각했거늘, 그대는 어찌하여 늦게 왔는가?”
“전에 화상께서 용서해 주심을 받았습니다. 이제 비록 출가하여 고행하긴 해도 끝내 깊은 은혜를 보답하기 어려우니, 오로지 법을 전해 중생을 제도하는 일뿐입니다. 제자가 일찍이 󰡔열반경󰡕을 본 적이 있는데, 항상함과 무상함의 뜻을 밝히지 못했습니다. 바라옵건대 화상께서 자비를 베푸시어 설명해 주십시오.”
조사가 대답했다.
“무상함이란 곧 불성佛性이요, 항상함이란 착하고 악한 온갖 법을 분별하는 마음이니라.”
“화상께서 말씀하신 바는 경문과 크게 어긋납니다.”
“나는 부처님의 심인心印을 전해 받았거늘 어찌 감히 부처님의 경전을 어기리오?”
“경에서 늘 말하기를 ‘불성은 항상하다’고 했지만 화상께서는 도리어 ‘무상하다’고 하셨고, 선하거나 악한 온갖 법과 나아가 보리의 마음까지 모두가 무상하다고 했지만 화상께서는 도리어 ‘항상하다’고 하시니, 이것은 곧 서로 엇갈리는 것이라서 저희들로 하여금 더욱 의혹을 일으키게 합니다.”
“󰡔열반경󰡕은 내가 전에 무진장無盡藏 비구니가 한 번 읽는 것을 듣고 즉석에서 강의해 주었는데, 한 글자 한 구절도 경문에 합치하지 않음이 없었고, 나아가 그대에게도 결코 어긋난 말을 하지 않았느니라.”
“학인의 식견이 얕고 우매하니, 화상께서 더 자세히 열어 보여 주십시오.”
“그대가 알겠는가? 불성이 항상하다면, 어찌 다시 착하거나 악한 모든 법들을 말하겠는가? 이 겁이 다하도록 한 사람도 보리의 마음을 낼 자가 없으리라. 그러므로 내가 무상이라고 설하는 것이니, 바로 이것이 부처님이 말씀하신 진상(眞常:참된 항상함)의 도리이다.
또 일체의 모든 법이 무상하다면, 곧 사물마다 자체의 성품에 생사를 받아들임이 있으므로 참된 항상함의 성품이 두루하지 않은 곳이 있게 된다. 그러므로 내가 항상하다고 말한 것은 바로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참된 무상함의 뜻이다. 부처님께서는 범부나 외도들이 삿된 항상함에 집착하고, 모든 2승의 사람들이 항상함을 무상하다고 계교함으로써, 공통적으로 여덟 가지 뒤바뀜[八倒]을 이루기 때문에 󰡔열반경󰡕의 요의了義 법문에서 그러한 치우친 소견을 타파하면서 ‘참된 항상함[眞常]’․‘참된 나[眞我]’․‘참된 청정함[眞淨]’을 드러내어 말씀하셨는데, 그대는 지금 말에 의지하느라 이치를 등지게 되어서 단멸斷滅의 무상과 확정된 사상死常을 갖고 부처님의 원만하고 묘한 최후의 미묘한 말씀을 잘못 해석하고 있으니, 설사 천 번을 읽는다 한들 무슨 이익이 있겠는가?”
행창이 홀연히 술에서 깨어난 듯이 깨달았다. 그리고는 게송을 말했다.

무상의 마음을 고수하기 때문에
부처님께서는 항상함이 있는 성품을 연설했으니
방편이란 것을 알지 못하는 이는
봄의 연못에서 돌멩이만 만지는 것과 같네.
因守無常心    佛演有常性
不知方便者    猶春池執礫

나는 이제 애를 쓰지 않고도
불성이 눈앞에 버젓이 나타났으니
스승께서 주신 바도 아니며
나 또한 얻은 바가 없다네.
我今不施功    佛性而見前
非師相授與    我亦無所得

조사가 말하였다. 
“너는 이제 꿰뚫었으니, 마땅히 이름을 지철志徹이라 하라.” 
그러자 대사는 절을 하고서 물러갔다.

신주信州 지상智常 선사

그는 본주(本州:信州)의 귀계貴谿 사람이다. 더벅머리 시절에 스님이 되어서 견성見性하기를 구하였다. 하루는 6조를 뵈러 갔는데, 조사가 물었다.
“어디서 왔으며, 무엇을 구하고자 하는가?”
대사가 대답했다.
“학인學人은 근래에 홍주洪州 건창현建昌縣의 백봉산白峰山에 가서 대통(大通:신수) 화상을 뵈었습니다. 그 분은 견성해서 성불하는 이치를 보여 주었지만, 아직도 저는 여우 같은 의심을 해결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길주吉州로 가는 길에 사람을 만났는데, 저의 미혹함을 지적하면서 화상께 귀의하라고 하였습니다. 바라건대 자비로써 거두어 주십시오.”
조사가 말했다.
“그(신수)가 무슨 말을 하던가? 한번 내 앞에서 말해 보라. 그대에게 증명해 주리라.”
“처음 그곳에 간 지 석 달 동안은 아무런 지시도 받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법을 위하는 마음이 간절했으므로 한밤중에 홀로 방장에 들어가 절하면서 간절히 청하였습니다. 대통 화상은 그제야 말했습니다. 
‘너는 허공을 보았느냐?’ 
‘보았습니다.’
‘네가 본 허공은 어떤 모양인가?’
‘허공은 형상도 없거늘 무슨 모양이 있겠습니까?’ 
‘너의 본래 성품이 마치 허공과 같으니, 제 성품을 돌이켜 관찰해서 한 물건도 볼 만한 것이 없음을 요달하면, 이것을 이름하여 바르게 본다[正見]고 한다. 또 한 물건도 알 만한 것이 없음을 요달하면, 이것을 이름하여 진지眞知라고 하느니라. 푸르고 누름ㆍ길고 짧음이 없고 다만 본원本源의 청정함과 각체覺體의 원명圓明함을 본다면, 이를 이름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이라 하고, 또는 극락세계極樂世界라 하고, 또는 여래의 지견知見이라 한다.’ 
학인이 이런 설법을 들었으나 아직도 석연치 못하오니, 화상께서 잘 설명해 주시어 막힘이 없게 하여 주십시오.”
조사가 말했다.
“그 대사의 말은 아직도 소견과 앎[見知]이 남아 있으므로 그대로 하여금 깨닫게 하지 못한다. 내가 이제 그대에게 하나의 게송을 들려주겠다.”

한 법도 보지 않아도 보지 않음을 간직하면
마치 뜬구름이 해를 가린 것과 같고
한 법도 알지 못해도 공空한 앎을 지키면
오히려 태허太虛에 번개가 번득이는 것과 같네.
不見一法存無見    大似浮雲遮日面
不知一法守空知    還如太虛生閃電

이러한 지견知見이 별안간 일어나면
잘못 오인한 것이니 어찌 방편을 이해했으랴.
그대가 당장의 일념一念도 스스로 아니라고 알았다면
자기의 신령한 광명이 항상 드러나리라.
此之知見瞥然興    錯認何曾解方便
汝當一念自知非    自己靈光常顯見

대사는 게송을 듣자, 마음이 탁 트여져서 게송 하나를 읊었다.

까닭 없이 알음알이[知解]를 일으켜
모습에 집착해서 보리를 구했구나.
정情을 둔 채 일념을 깨달은들
옛날의 미혹함을 어떻게 초월하리오.
無端起知解    著相求菩提
情存一念悟    寧越昔時迷

자기 성품인 자각의 근원체根源體가
비춤에 따라 굽히면서 천류遷流했나니
조사의 방장에 들지 않았더라면
아득히 두 갈래에서 갈팡질팡했으리.
自性覺源體    隨照枉遷流
不入祖師室    茫然趣兩頭

광주廣州 지도志道 선사

그는 남해南海 사람인데, 처음 6조의 회상에 와서 말했다.
“학인學人이 처음 출가한 이래로 󰡔열반경涅槃經󰡕을 10여 년이나 읽었지만, 아직도 대의를 밝히지 못하였습니다. 바라건대 화상께서 가르쳐 주십시오.”
조사[六祖]가 대답했다.
“그대는 어느 부분을 아직 모르는가?”
“‘모든 행行은 무상하니, 이는 생멸生滅의 법이다. 생멸마저 멸해 버리고 나면, 적멸寂滅함이 즐거움이 된다’고 하였는데, 이에 대해 의혹이 있습니다.”
“어떤 의심이 드는가?”
“일체 중생은 모두 두 가지 몸이 있는데, 하나는 색신色身이고 또 하나는 법신法身입니다. 색신은 무상하여 생하기도 하고 멸하기도 하지만, 법신은 항상해서 앎도 없고 깨달음도 없습니다. 그런데 경에서 말하기를 ‘생멸마저 멸하고 나면 적멸함이 즐거움이 된다’고 하였으니, 어느 몸이 적멸하며 어느 몸이 즐거움을 받습니까? 가령 색신이라면 그 색신이 멸할 때에 4대(大:땅ㆍ물ㆍ불ㆍ바람)로 흩어지니, 이는 전적으로 괴롭고 괴로운 것이라서 즐겁다 하지 못할 것이고, 가령 법신이 적멸하다면 곧 초목이나 기와나 돌과 같으리니, 누가 즐거움을 받겠습니까?
또 법성은 생멸의 본체[體]이고 5온蘊은 생멸의 작용[用]이니, 한 본체 위의 다섯 가지 작용으로 생멸이 항상합니다. 생生이라면 본체로부터 작용을 일으킨 것이요, 멸滅이라면 작용을 거두어서 본체로 돌아간 것인데, 만일 다시 난다는 말을 긍정하면 유정의 종류들은 끊이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을 것이요, 만약 다시 난다는 말을 긍정치 않으면 곧 영원히 적멸로 돌아가서 무정물無情物과 같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온갖 법은 모두가 열반에 굴복되어서 오히려 나지도 못하거늘, 무슨 즐거움이 있겠습니까?”
“그대는 스님이면서도 어찌하여 외도의 단멸과 항상이라는 삿된 소견을 익혀 가지고 최상승最上乘의 법을 따지려 하는가? 그대의 소견에 따르자면, 육신 밖에 따로 법신이 있고, 생멸을 여의고 적멸을 구하는 것이로구나. 또 열반의 영원한 즐거움을 추론해서 몸으로 받는 자가 있다고 말하니, 이는 곧 생사에 집착하고 세상의 쾌락을 탐하는 짓이다. 
그대는 이제 잘 알아야 한다. 온갖 미혹한 사람들이 5온의 화합을 자기의 체상體相으로 잘못 여기고, 온갖 법을 분별하여 바깥 진상塵相이라 여기고, 살기를 좋아하고 죽기를 싫어하여 생각 생각마다 천류遷流하고, 꿈 같고 허깨비 같아 허망하고 가짜인 것을 알지 못해서 헛되이 윤회를 받고, 항상 즐거움인 열반을 도리어 괴로움이라 여겨서 종일토록 밖으로 구하므로, 부처님께서는 이를 가엾이 여겨서 열반의 진정한 즐거움을 보인 것이다. 그리하여 찰나에도 생겨나는 모습[生相]이 없고 찰나에도 멸하는 모습[滅相]이 없어서 없앨 만한 생멸도 없으니, 이것이 바로 적멸이 앞에 나타나는 것이다. 이렇게 앞에 나타날 때에 또한 앞에 나타나는 한계[量]가 없으니, 이를 일러서 항상된 즐거움이라 한다. 이 즐거움은 본래 받는 자도 없고 받지 않는 자도 없거늘, 어찌 하나의 본체에 다섯 가지 작용이라는 이름이 있겠는가. 더구나 열반이 모든 법령法令을 굴복시켜서 영원히 나지 못하게 한다고 하니, 그야말로 부처를 비방하고 법을 헐뜯는 것이로다. 나의 게송을 들어라.”

위없는 위대한 열반이여,
뚜렷이 밝아서 항상 고요히 비추니
어리석은 범부는 이를 죽음이라 말하고
외도들은 집착해서 단멸斷滅이라고 여기네.
無上大涅槃    圓明常寂照
凡愚謂之死    外道執爲斷

온갖 2승을 구하는 사람들은
작용이 없다고 지목하지만
모두가 망정으로 헤아리는 데 속하니
62가지 견해의 근본이 되네.
諸求二乘人    目以無爲作
盡屬情所計    六十二見本

망령되게 헛되고 가짜인 이름을 세운 것을
어찌하여 진실한 이치라고 하겠는가?
오로지 헤아림[量]을 초월한 사람이라야
통달을 해서 취하고 버림이 없다네.
妄立虛假名    何爲眞實義
唯有過量人    通達無取捨

5온의 법을 알고
5온 속의 나도 앎으로써
밖으로 뭇 색상色象을 나타내고
낱낱의 음성의 모습도 나타내지만
以知五蘊法    及以蘊中我
外現衆色象    一一音聲相

이것을 모두 꿈이나 허깨비와 같이 여기고
범부와 성인의 견해를 내지 않으며
열반이란 견해도 짓지 않으면
두 변[二邊]과 3제際가 끊어지리라.
平等如夢幻    不起凡聖見
不作涅槃解    二邊三際斷

항상 모든 감관에 응하여 작용하나
작용한다는 상념을 일으키지 않고
온갖 법을 분별해 따지지만
분별한다는 상념을 일으키지 말라.
常應諸根用    而不起用想
分別一切法    不起分別想
겁의 불이 바다 밑까지 태우고

바람이 산봉우리를 두드려대도
참되고 항상한 적멸의 즐거움인
열반의 모습은 여전히 이러하리라.
劫火燒海底    風鼓山相擊
眞常寂滅樂    涅槃相如是

내가 이제 억지로 설명을 해서
그대로 하여금 삿된 소견 버리게 하니
그대는 말에 따라서 이해하지 않으면
그대가 약간은 알았다고 허락하리라.
吾今彊言說    令汝捨邪見
汝勿隨言解    許汝知少分

대사가 게송을 듣고 기뻐 뛰면서 절하고 물러갔다.

광주廣州 법성사法性寺 인종印宗 화상

그는 오군吳郡 사람으로서 성은 인印씨이다. 스승을 따라 출가한 뒤에는 열반대부涅槃大部에 정통하였다. 당나라 함형咸亨 원년에 수도에 갔을 때 대경애사大敬愛寺에 살라는 조칙이 있었으나, 굳이 사양하고 기춘蘄春으로 가서 홍인 대사를 뵈었다.
나중에 광주廣州 법성사法性寺에서 󰡔열반경󰡕을 강의하다가 6조 혜능 대사를 만나고 나서야 비로소 현묘한 이치를 깨닫고는 혜능을 법을 전한 스승으로 삼았다. 또 양梁나라로부터 당唐나라에 이르기까지의 여러 선지식[達者]의 어록을 모아 󰡔심요집心要集󰡕을 저술하였는데 세상에 널리 성행하고 있다. 
선천先天 2년 2월 21일에 회계산會稽山 묘희사妙喜寺에서 임종하니, 수명은 87세였다. 회계의 왕인 사건師乾이 탑의 명銘을 세웠다. 

길주吉州 청원산靑原山 행사行思 선사

그는 본주(本州:吉州)의 안성安城 사람으로서 성은 유劉씨이다. 어릴 때에 출가하였는데, 매양 여러 사람들이 모여서 토론을 하면 대사만은 잠자코 있었다.
나중에 조계의 법석法席이 번성하다는 말을 듣고 가서 절하고 물었다.
“마땅히 무엇에 힘써야 계급階級에 떨어지지 않겠습니까?”
조사가 도리어 물었다.
“그대는 일찍이 무엇을 했었는가?”
“성제聖諦도 하지 않았습니다.”
“어떤 계급에 떨어졌었는가?”
“성제도 하지 않거늘 무슨 계급이 있겠습니까?”
조사가 그를 법기로 여겨서 회상의 무리가 아무리 많아도 언제나 대사를 제일 윗자리에 있게 하니, 마치 2조가 말을 하지 않아도 소림(少林:達磨 大師)이 말하기를 나의 골수를 얻었다고 한 것과 같았다.
하루는 조사가 대사에게 말했다.
“예로부터 옷과 법을 합쳐서 스승과 제자 사이에 전했으니, 옷은 믿음을 표시하고 법은 마음을 인가한 것이다. 나는 이제 사람을 얻었으니, 어찌 믿지 않을 것을 걱정하겠는가. 나도 옷을 전해 받은 뒤로 오늘까지 이렇듯 많은 환난을 당했는데, 하물며 후대의 자손들이겠는가. 반드시 많은 싸움이 일어나리니, 옷은 산문(山門:절)에 남겨 두고 그대는 한 지방을 나누어 교화하면서 끊이지 않게 하라.”

대사가 법을 얻은 뒤에 길주吉州 청원산靑原山 정거사靜居寺에 살았다.
6조가 열반에 들려고 할 때에 희천希遷[곧 남악南嶽의 석두石頭 화상이다.]이라는 사미沙彌가 와서 6조께 물었다.
“화상께서 열반에 드신 뒤에 희천은 누구에게 의지하리까?”
6조가 대답했다.
“생각 사思자를 찾아가라.”
조사가 세상을 떠난 뒤에 희천은 매양 조용한 곳에 단정히 앉아서 죽은 듯이 고요하니, 제1 수좌가 물었다.
“그대의 스승은 이미 가셨는데, 공연히 앉아서 무엇을 하는가?”
“나는 유언을 받았는데 생각 사思자를 찾으라고 하였소.”
“그대의 사형師兄 가운데 행사行思 화상이란 분이 계시는데, 지금 길주에 사신다. 그대의 인연은 거기에 있을 것이다. 조사의 말씀은 매우 정직했거늘 그대 스스로가 미혹했을 뿐이다.”
희천이 이 말을 듣고, 곧 조사의 탑에 절하고 물러나서 곧바로 정거사로 갔다. 대사[行思]가 물었다.
“그대는 어디서 오는가?”
희천이 대답했다.
“조계에서 왔습니다.”
“무엇을 얻으러 왔는가?”
“조계에 가기 전에도 잃은 것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조계에는 무엇 하러 갔는가?”
“조계에 가지 않았던들 어찌 잃지 않은 줄 알았겠습니까?”
희천이 다시 물었다.
“조계 대사께서도 화상을 아셨습니까?”
대사가 대답했다.
“그대는 지금 나를 아는가?”
“아는데 어찌 또 알아보겠습니까?”
“온갖 짐승의 뿔이 많으나 기린의 뿔 하나로 만족한다.”
희천이 다시 물었다.
“화상은 스스로 조계를 떠나서 언제 여기에 오셨습니까?”
“나는 모르겠다. 그대는 언제 조계를 떠났는가?”
“희천은 조계에서 오지 않았습니다.”
“나 또한 그대의 온 곳을 알고 있다.”
“화상은 다행히 대인大人이시니 너무 서두르지 마십시오.”
다른 날 대사가 다시 희천에게 물었다.
“어디서 왔다고 했지?”
“조계에서 왔습니다.”
대사가 불자拂子를 번쩍 들면서 물었다.
“조계에도 이런 것이 있던가?”
“조계뿐이 아니라 인도[西天]에도 없습니다.”
“자네는 인도에 다녀온 것이 아닌가?”
“갔었다면 곧 있는 것입니다.”
“맞지 않으니, 다시 말하라.”
“화상께서도 하나의 반[一半]을 취한 것을 말씀하셔야 합니다. 전적으로 학인만을 속이지는 마십시오.”
“그대에게 말하기는 사양치 않으나 뒷사람이 알아듣지 못할까 걱정이다.”

대사가 희천에게 편지를 주어 남악南岳 회양懷讓에게 전하게 하면서 말했다.
“이 글을 전하고는 속히 돌아오라. 나에게 묵은 도끼 하나가 있는데, 그대에게 주어서 산에 살게 하리라.”
희천이 남악에 가서 채 글을 바치기 전에 문득 물었다.
“여러 성인들을 사모하지 않고, 자기의 영靈도 소중히 여기지 않을 때는 어떠합니까?”
회양이 대답했다.
“그대의 질문이 너무 도도하다. 어찌하여 아래를 향해 묻지 않는가?”
희천이 말했다.
“차라리 영겁토록 윤회를 받아들일지언정 여러 성인들로부터 해탈을 구하지는 않겠습니다.”
회양이 문득 그만두었다.
희천이 정거사로 돌아오자, 대사가 물었다.
“그대가 떠난 지 오래지 않았는데, 글은 전달했는가?”
“소식도 통하지 못했고, 글도 전하지 못했습니다.”
“왜 그랬는가?”
희천이 앞의 말을 자세히 보고하고는 이어 말했다.
“떠날 때에 화상께서 무딘 도끼를 준다고 하셨는데 지금 주십시오.”
대사가 발 하나를 쭉 뻗으니, 희천이 절을 하였다. 그리고는 하직하고 남악으로 갔다.[현사玄沙가 말하기를 “가엾은 석두石頭 화상이 회양에게 덜미를 잡혀 쓰러지듯이 아직도 일어나지 못했다”라고 하였다.]

하택荷澤 신회神會 선사가 와서 절하고 도를 물으니, 대사[行思]가 물었다.
“어디서 왔는가?”
신회가 대답했다.
“조계에서 왔습니다.”
“조계의 뜻하는 바가 어떻던가?”
신회가 몸을 흔들기만 하니, 대사가 말했다.
“아직도 기와와 자갈로 막혀 있구나.”
“화상께서는 요사이 진금眞金을 사람들에게 주시지 않으셨습니까?”
“설사 그대에게 주었다 한들 어디에 부치겠는가?”[현사玄沙가 말하기를 “과연果然이다”라고 하였다. 운거雲居 석錫은 말하기를 “현사가 과연이라 한 것이 진금인가, 기왓장인가?”라고 하였다.]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불법의 대의입니까?”
대사가 대답했다.
“여릉廬陵 지방의 쌀값이 어떤가?”
대사는 석두 희천에게 법을 전하고, 당나라 개원開元 28년 경진庚辰 12월 13일에 법당에 올라 대중에게 고한 뒤에 가부좌를 맺은 채 열반에 들었다. 희종僖宗이 홍제弘濟 선사 귀진歸眞의 탑이라는 시호를 내렸다.

남악南嶽 회양懷讓 선사

그는 두杜씨로서 금주金州 사람이다. 15세에 형주荊州 옥천사玉泉寺에 가서 홍경弘景 율사律師에 의지하여 출가하였다. 구족계具足戒를 받은 뒤에 율장[毘尼藏]을 익혔는데, 하루는 스스로 탄식하기를 “무릇 출가한 자라면 무위無爲의 법을 배워야 하는데, 천상과 인간에 수승한 곳이 없구나”라고 하였다.
이때 동학同學인 탄연坦然이 대사의 고매한 뜻을 알고서 숭산嵩山의 혜안慧安 화상을 함께 뵙자고 권유했다. 혜안의 가르침[啓發]을 받고 나서는, 다시 곧바로 조계로 가서 6조를 참배하였다. 6조가 물었다.
“어디서 왔는가?”
회양이 대답했다.
“숭산嵩山에서 왔습니다.”
“어떤 물건이 이렇게 왔는가?”
“한 물건이라 해도 맞지 않습니다.”
“닦아서 증득할 수 있는가?”
“닦아 증득함은 없지 않지만, 더러움에 물들게 되지는 않습니다.”
“바로 이 더러움에 물들지 않는 것이 모든 부처님들이 호념護念하는 바이다. 그대도 이미 그러하고 나도 또한 그러하다. 서천西天의 반야다라般若多羅 삼장三藏이 예언하기를, 그대의 제자 가운데 망아지 하나가 나와서 천하 사람을 밟아 죽인다고 했으니, 모두 그대 마음속에만 간직해 두고 너무 급히 말하지 말라.”
대사가 활연히 계합하여 곁에서 15년을 시봉하였다. 그리고 선천先天 2년에야 비로소 형악衡嶽으로 가서 반야사般若寺에 살았다.

개원開元 때에 도일道一[즉 마조馬祖 대사大師를 말한다.]이라는 사문이 전법원傳法院에 머물면서 매일 좌선을 하고 있었다. 대사는 그가 법기法器임을 알아보고서 곁에 가서 물었다.
“대덕大德은 좌선을 해서 무엇을 도모하는가?”
“부처가 되려고 합니다.”
대사는 바로 벽돌 하나를 잡아서 절 앞의 바위 위에다 갈았다. 도일이 이를 보고서 물었다.
“무엇 때문에 벽돌을 갑니까?”
“거울을 만들려고 하네.”
“벽돌을 간다고 어찌 거울이 되겠습니까?”
“벽돌을 갈아서 거울을 만들지 못하거늘, 어찌 좌선을 하여 부처를 이루겠는가?”
“어찌해야 하겠습니까?”
“소가 수레를 몰고 가는 것과 같으니, 수레가 가지 않으면 수레를 때려야 옳은가, 소를 때려야 옳은가?”
도일이 대답이 없자, 대사가 다시 말했다.
“그대는 좌선坐禪을 배우는 것인가, 앉은뱅이 부처[坐佛]를 배우는 것인가? 만일 좌선을 배운다면 선禪은 앉고 눕는 데 있지 않고, 만일 앉은뱅이 부처를 배운다면 부처는 정해진 모습이 아니다. 머무름이 없는 법[無住法]에서 취하거나 버리지 말아야 한다. 그대가 만일 앉은뱅이 부처라면 곧 부처를 죽이는 일이니, 만약 앉는 모습에 집착한다면 그 이치를 통달한 것이 아니다.”
도일이 대사의 가르침을 받자, 마치 제호醍醐를 마신 것 같아서 절을 하며 물었다.
“어떻게 마음을 써야 무상삼매無相三昧에 합일하겠습니까?”
대사가 대답했다.
“그대가 심지법문心地法門을 배우는 것은 종자를 뿌리는 것과 같고, 내가 법의 요체를 연설하는 것은 비유하자면 하늘에서 비를 뿌리는 것과 같으니, 그대의 인연이 맞았으므로 마땅히 그 도를 보리라.”
“도는 빛깔이나 형상이 아니거늘 어떻게 볼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까?”
“심지心地의 법안法眼은 도를 능히 보나니, 무상삼매의 경우도 그렇다.”
“이루어짐과 무너짐이 있습니까?”
“만일 이루어짐ㆍ무너짐ㆍ모임ㆍ흩어짐 따위로써 도를 보는 자는 도를 본 것이 아니다. 나의 게송을 들어라.”

마음 땅[心地]은 온갖 종자를 품었으니
비를 만나면 모두 다 싹을 틔우네.
삼매의 꽃은 모습이 없거늘
무엇이 무너지고 무엇을 이루겠는가.
心地含諸種    遇澤悉皆萌
三昧華無相    何壞復何成

도일은 깨우침을 받고 심의心意가 초연해져서 10년을 시봉하였는데, 나날이 그의 경지는 현묘하고 오묘해졌다.

대사에게는 입실入室한 제자가 모두 여섯 명이었는데, 그들 각자에게 인가하는 말을 해주었다.
“그대들 여섯 사람이 똑같이 내 몸을 증득해서 각기 한 길[一路]에 계합하였다. 한 사람은 나의 눈썹을 얻어서 위의威儀가 훌륭하고[상호常浩], 한 사람은 나의 눈을 얻어서 돌아봄에 능숙하고[지달智達], 한 사람은 나의 귀를 얻어서 이치를 듣는 데 능숙하고[탄연坦然], 한 사람은 나의 코를 얻어서 기氣를 아는 데 능숙하고[신조神照], 한 사람은 나의 혀를 얻어서 담론에 능숙하고[엄준嚴峻], 한 사람은 나의 마음을 얻어서 고금古今에 능숙하다[도일道一].”
또 말하였다.
“일체법은 모두 마음으로부터 생겨나지만, 마음은 본래 생겨난 바가 없어서 법이 머물 수가 없다. 만일에 이 마음 바탕[心地]을 통달하면 하는 일마다 걸림이 없나니, 상근上根의 무리를 만나기 전에는 마땅히 말을 삼가고 조심해야 한다.”

어떤 대덕이 물었다.
“가령 거울이 물상物像을 비추어내는데, 물상이 이루어진 뒤에는 거울의 밝음은 어디로 갑니까?”
대사가 대답했다.
“대덕의 동자童子 때 모습은 어디에 있는가?”[법안法眼은 다르게 말하기를 “어떤 것이 대덕이 부어서 만든 물상인가?”라고 하였다.]
“다만 물상이 이루어진 뒤에는 어찌하여 비추지 못하는가 했을 뿐입니다.”
“비록 비추지 못한다 하여도 티끌만큼도 속이지는 못한다.”

나중에 마조馬祖 대사大師가 강서江西에서 교화를 펴고 있었는데, 대사(회양)가 대중에게 말했다.
“도일이 대중에게 법을 설하는가?”
대중이 대답했다.
“벌써부터 설법을 합니다.”
“아무도 소식을 전해 오는 이가 없구나.”
대중이 잠자코 있었다. 대사는 스님 하나를 보내면서 말하였다. 
“그가 법상에 오르기를 기다렸다가 그저 ‘어떠하십니까?’라고 묻고는, 그가 대답하는 말을 낱낱이 기억해 오라.” 
그 스님은 모든 것을 지시대로 하고 돌아와서 대사에게 말했다.
“마 대사가 말하기를 ‘오랑캐의 난리를 겪은 이래로 30년 동안 한 번도 염장鹽醬을 빠트린 적이 없다’고 합니다.”
대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천보天寶 3년 8월 11일에 형악衡嶽에서 열반에 드니, 칙령으로 대혜大慧 선사 최승륜最勝輪의 탑이라는 시호를 내렸다.



온주溫州 영가永嘉 현각玄覺 선사

그는 영가 사람으로서 성은 대戴씨이다. 어릴 때에 출가하여 삼장을 두루 탐구하였다. 특히 천태天台 지관止觀의 원묘圓妙 법문에 정통해서 네 가지 위의威儀 가운데 항상 선관禪觀에 그윽이 합치했는데, 나중에 좌계左谿 현랑玄朗 선사의 격려를 받고서, 동양東陽의 책策 선사와 함께 조계로 갔다.
처음에 조계에 이르러서는 주장자와 병을 들고 조사(6조)를 세 번 돌고 나서 우뚝 섰다. 조사가 말했다.
“무릇 사문이란 모름지기 3천 가지 위의威儀와 8만 가지 세행細行을 갖추어야 하는데, 대덕은 어디서 왔기에 도도한 아만을 부리는가?”
대사[永嘉]가 대답했다.
“생사의 일은 중대하고 무상無常이 신속迅速하기 때문입니다.”
“어찌하여 무생無生을 체득해서 신속함이 없는 도리를 요달하지 않는가?”
“체體가 곧 무생이고, 요달에는 본래 신속함이 없습니다.”
“그렇다. 참으로 그렇다.”
이때에 대중이 모두 깜짝 놀랐다. 대사는 그때야 비로소 위의를 갖추어 절을 하고는 이내 하직을 고하였다. 조사가 말했다.
“돌아감이 너무 빠르지 않은가?”
대사가 대답했다.
“본래 스스로 움직이지 않거늘, 어찌 빠름이 있겠습니까?”
“누가 움직이지 않음을 아는가?”
“당신이 스스로 분별을 내었습니다.”
“그대는 무생無生의 뜻을 매우 잘 터득하였구나.”
“무생에 어찌 뜻이 있겠습니까?”
“뜻이 없다면 누가 분별하는가?”
“분별도 또한 뜻이 아닙니다.”
조사가 탄복하면서 말했다.
“훌륭하고, 훌륭하다. 하룻밤 쉬어가라.”
그리하여 그때 사람들이 그를 일러 일숙각一宿覺이라 하였다. 책공策公도 대사를 만류하므로, 다음날 산을 내려와 온강溫江으로 돌아가니, 배우는 자들이 밀물처럼 모여들었다.
호는 진각眞覺 대사라 한다. 증도가證道歌 한 수를 지었고, 선종의 깨달음과 수행의 원만한 종지를 얕은 경지로부터 깊은 곳까지 자세히 저술했다. 경주慶州 자사刺史 위정魏靖이 모아서 서문을 내고, 10편으로 묶어서 󰡔영가집永嘉集󰡕이라 하니, 모두 세상에 널리 알려졌다.

1. 도를 사모하고 위의에 뜻을 두라[慕道志儀]
도를 닦고자 하면, 먼저 뜻을 세우고 의칙儀則을 본받아서 궤칙軌則을 밝혀야 한다. 그러므로 도를 사모하고 위의에 뜻을 둠을 첫 번째로 밝힌다.

2. 교만과 사치한 뜻을 경계하라[戒憍奢意]
처음에 비록 뜻을 세워서 도를 닦고 궤칙도 잘 인식했지만, 3업業이 교만하면 망령된 마음이 요동하나니, 어찌 선정을 얻을 수 있으리오? 그러므로 두 번째 순서로 교만과 사치한 뜻을 경계함을 밝힌다.
3. 3업을 깨끗이 닦아라[淨修三業]
앞에서 교만과 사치를 경계한 것은 강요綱要만을 대략 표시한 것이니, 이제 더 자세히 단속해서 허물이 생기지 않게 해야 한다. 그러므로 세 번째의 순서로 3업을 깨끗이 닦아서 몸과 입과 뜻을 경계함을 밝힌다.

4. 사마타奢摩他의 게송
이미 몸과 입을 단속하여 거친 허물이 생기지 않게 하였으니, 다음에는 모름지기 입문入門이어야 한다. 도를 닦는 점진적인 차례는 정혜定慧와 다섯 가지로 일으키는 마음과 여섯 가지로 간추리는 법[料簡]에서 벗어나지 않나니, 그러므로 네 번째의 순서로 사마타의 게송을 밝힌다.

5. 비바사나毘婆舍那의 게송
계戒가 아니면 선禪이 못되고, 선이 아니면 혜慧가 못된다. 위에서 이미 선정을 닦았는데, 선정이 오래되면 지혜가 밝아진다. 그러므로 다섯 번째의 순서는 비바사나의 게송을 밝힌다.

6. 우필차(優畢叉:中道)의 게송
선정만을 치우쳐 닦을 경우 선정이 오래되면 침체되고, 지혜만을 치우쳐 배울 경우 지혜가 많으면 마음이 요동한다. 그러므로 여섯 번째의 순서로 우필차의 게송을 밝힌 것이니, 선정과 지혜를 평등히 해서 침체하거나 요동치지 않게 하고, 선정과 지혜를 균등하게 함으로써 두 가지 치우침을 버리게 한다.

7. 3승乘의 점차漸次
선정과 지혜가 이미 균등하면 고요하면서도 항상 비추고 세 관법觀法이 한마음이리니, 어찌 의심을 버리지 못할 것이며, 어찌 비춤이 원만하지 않겠는가? 스스로의 이해는 비록 밝더라도, 남을 가엾이 여기는 일은 아직 깨닫지 못했으니, 깨달음에 깊고 얕음이 있다. 그러므로 일곱 번째 순서로 3승乘의 점차를 밝힌다.
8. 현실[事]과 진리[理]는 둘이 아니다
3승이 깨닫는 진리는 그 진리가 끝이 없나니, 진리를 궁구하는 것은 현실에 있고, 현실을 깨달으면 그것이 곧 진리이다. 그러므로 여덟 번째로 현실과 진리가 둘이 아님을 밝힌 것이니, 현실 그대로가 진리임을 알아 뒤바뀐 소견을 버리게 한다.

9. 벗에게 권유하는 글[勸友人書]
사事와 이理가 이미 원융하여 속마음이 저절로 밝지만, 다시 배움을 멀리해서 헛되이 세월을 보내는 것을 가엾이 여긴다. 그러므로 아홉 번째 순서로 벗을 권유하는 글을 밝힌다.

10. 발원문發願文
벗을 권고함이 비록 남을 가엾이 여기는 일이기는 하나, 마음을 오로지 한 곳에만 두면 정情이 오히려 두루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열 번째의 순서로 발원문을 밝혀서 온갖 유정을 제도할 것을 서원한 것이다.

또 다음은 마음을 관찰하는 열 가지 문이니, 제1은 그 법이 본래 그러함을 말한 것이고, 제2는 그 관찰의 체體를 드러낸 것이고, 제3은 상응相應함을 말한 것이고, 제4는 교만함을 경계한 것이고, 제5는 게으름을 경계한 것이고, 제6은 관찰의 체體를 거듭 드러낸 것이고, 제7은 시비를 밝힌 것이고, 제8은 표현된 종지[詮旨]를 간추린 것이고, 제9는 어디서나 관법을 이루는 것이고, 제10은 현묘한 근원에 묘하게 부합하는 것이다.

제1. 법이 본래 그러함을 말하다
무릇 심성心性은 비고 통하여 움직임과 고요함의 근원과 둘이 아니며, 진여는 사려[慮]가 끊어졌지만 헤아림을 반연하는 염念과 다르지 않다. 미혹한 소견이 어지럽게 일어나지만, 그것을 추궁하면 오직 하나의 고요함뿐이요, 심령의 근원은 모양을 그릴 수 없지만, 그것을 조감照鑒하면 천차만별이다. 천차만별로 같지 않으므로 법안法眼이라는 이름이 저절로 성립되고, 하나의 고요함에는 차이가 없으므로 혜안慧眼이라는 명칭이 엄연히 존재하고, 이치[如理智]와 한량[如量智]이 둘 다 사라지므로 불안佛眼의 공덕이 뚜렷이 나타난다. 그러므로 3제諦 우주만유를 관찰하는데 진실하여 허망하지 않은 세 가지 말씀이란 뜻이니 공제空諦․가제假諦․중제中諦 또는 제일의제第一義諦이라고 하고, 혹은 무無․유有․중中의 셋을 말하기도 한다. 첫째 공제 또는 무제는 현실이 있다고 굳게 집착하는 이를 위해 눈에 보이는 현실을 공한 것이요, 없는 것이라고 가르치는 말씀이요, 둘째 가제, 혹은 유제는 위의 말을 듣고 끝끝내 없으리라고 집착하는 이에게 현실은 허무한 것이요, 없는 것이지만 현실적으로 거짓 벌어진 현상은 엄연히 존재하여 온갖 차별을 형성한다고 가르치는 말씀이요, 셋째 중제 또는 제일의제는 공제와 가제, 무제와 유제를 융합하여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는 절대한 경지를 가르치는 말씀이다.
가 한 경계여서 법신의 이치가 항상 청정하고, 3지智 여량지如量智․여리지如理知․제일의지第一義智를 말한다.
가 한마음이어서 반야의 광명이 항상 비추며, 경계와 지혜가 묘하게 부합하니 해탈의 감응이 기틀을 따르고, 세로도 아니고 가로도 아니면서 원이圓伊 둥글고 가로 세로가 아닌 형상이다.
의 도가 현묘하게 회통한다. 그러므로 3덕德 반야般若․법신法身․해탈解脫을 말한다.
의 묘한 성품이 완연히 한마음을 어기지 않은 줄 아는 것이니, 깊고 넓어서 헤아릴 수 없지만 어디로 나간들 길이 아니겠는가? 이런 까닭에 마음으로 도를 삼는 것은 흐름을 더듬어 근원을 찾는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제2. 관찰의 체體를 드러내다 
다만 한 생각[一念]이 곧 공空이면서도 공이 아니고 공이 아니면서도 공 아님도 아닌 줄을 아는 것이다.

제3. 상응함을 말하다
마음과 공이 상응하면, 헐뜯거나 칭찬을 받은들 무엇을 근심하고 무엇을 기뻐하겠는가? 몸과 공이 상응하면, 칼로 베이거나 향을 바른들 무엇을 괴로워하고 무엇을 즐거워하겠는가? 의보依報 중생이 의지하는 과보이다.
와 공이 상응하면, 베풀거나 빼앗긴들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겠는가? 마음과 공이면서도 공 아님이 상응하면, 애착의 소견은 모두 잊고 자비로 두루 구원한다. 몸과 공이면서도 공 아님이 상응하면, 안으로는 마른나무와 같으나 겉으로는 위의를 나타낸다. 의보와 공이면서도 공 아님이 상응하면, 탐욕을 영원히 끊어서 재물로써 구제를 베풀리라. 마음과 공이면서도 공이 아니고 공이 아니면서도 공 아님도 아님이 상응하면, 실상(實相:진리)이 비로소 밝아지면서 부처의 지견을 열리라. 몸과 공이면서도 공이 아니고 공이 아니면서도 공 아님도 아님이 상응하면, 한 티끌에서 삼매[正受]에 들어가고 온갖 티끌의 삼매는 일어나리라. 의보와 공이면서도 공이 아니고 공이 아니면서도 공 아님도 아님이 상응하면, 향기로운 대궐과 보배 누각으로 장엄한 국토에 태어나리라.

제4. 교만함을 경계하다
만일 그렇지 않으면 상응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제5. 게으름을 경계하다
바다를 건너려면 반드시 배를 타야 하나니, 배가 아니면 어찌 건널 수 있겠는가? 마음을 닦으려면 반드시 관觀에 들어가야 하나니, 관이 아니면 어찌 마음을 밝힐 수 있겠는가? 마음도 오히려 밝히지 못한다면, 어느 날에 상응하겠는가? 잘 생각해서 스스로 자만하지 말아야 한다.

제6. 관법의 체體를 거듭 드러내다
다만 한 생각[一念]이 공이기도 하고 공이 아니기도 하며, 있음도 아니요, 없음도 아닌 줄만 알 뿐이요, 생각 그대로가 공이기도 하고 공이 아니기도 하며, 있음이 아닌 것도 아니요, 없음이 아닌 것도 아닌 줄은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제7. 시비를 밝히다
마음은 있음도 아니고 마음은 없음도 아니며, 마음은 있지 않음도 아니고 없지 않음도 아니니,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면 긍정[是]에 빠지고, 있지도 않고 없지도 않다고 하면 부정[非]에 빠진다. 이처럼 다만 옳다거나 그르다거나 하는 것을 부정할 뿐이지, 옳음을 부정하고 그름을 부정하는 긍정은 아닌 것이다. 이제 둘 다 부정[雙非]함으로써 양쪽을 깨뜨리니, 긍정을 긍정해서 부정을 타파하니 긍정이 오히려 부정이다. 또 둘 다 부정함으로써 양쪽을 타파하니, 부정을 부정해서 부정을 타파하니 부정이 곧 긍정이다. 이처럼 다만 옳음을 부정하고 그름을 부정한 긍정일 뿐이지, 부정도 아니고 부정 아님도 아니며, 긍정도 아니고 긍정 아님도 아닌 것은 아니다. 이와 같이 시비(긍정과 부정)의 미혹이 미세하여 가려내기 어려우니, 정신을 맑게 하고 생각을 고요히 해서 세밀히 연구해 보라.

제8. 표현된 종지를 간추리다
지극한 이치는 말이 없으나 글과 말을 빌려서 그 종지를 밝히고, 종지는 관법이 아니나 관법을 닦는 것을 빌려서 그 종지를 회통한다. 만약 종지가 아직 분명하지 못하다면 말이 적확하지 않기 때문이요, 만약 종지를 아직 회통하지 못했다면 관찰이 아직 깊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깊이 관찰하면 이내 그 종지를 회통하게 되고, 적확한 말은 반드시 그 종지를 밝히게 되나니, 종지가 이미 밝아지고 회통되었다면, 관법이 어찌 더 이상 존속하랴.

제9. 어디서나 관법을 이루다
무릇 언사言辭를 다시 연설해서 관법의 체體를 거듭 표방한 것은, 종지宗旨는 다름이 없으나 말과 관법[言觀]은 상황에 따라 바뀜이 있음을 밝히고자 한 것이다. 상황에 따라 바뀌면 말과 이치 사이에 어긋남이 없고, 어긋남이 없으면 관법과 종지가 다르지 않나니, 다르지 않은 종지가 곧 진리요, 어긋남이 없는 이치가 곧 종지이다. 종지는 하나이나 이름은 둘이니, 관법과 말로 그 악보[弄胤]를 밝혔을 뿐이다.


제10. 현묘한 근원에 묘하게 계합하다 
마음을 깨달은 자가 어찌 관법에 집착하여 종지를 헷갈려 할 것이며, 교리에 통달한 사람이 어찌 말에 걸려서 이치를 알지 못하겠는가? 이치가 밝으면 언어의 길이 끊어지니[言語道斷] 어떤 말로 논의할 수 있을 것이며, 종지를 회통하면 마음 가는 곳이 소멸하니[心行處滅] 어떤 관법으로 능히 사고할 수 있으랴? 마음과 말로써 논의하고 생각할 수 없다면 그 핵심[寰中]에 묘하게 계합했다고 말할 수 있으리라.

대사는 선천先天 2년 10월 17일에 편안히 앉아서 열반에 드니, 11월 13일에 서산西山의 양지에 탑을 세웠다. 무상無相 대사라는 시호를 조서로 하사하고, 탑호는 정광淨光이라고 하였다. 송나라 황조皇朝 순화淳化 때에 태종太宗 황제가 본주本州에 명령하여 감탑(龕塔:塔室)을 중수重修하였다.

사공산司空山 본정本淨 선사

그는 강주絳州 사람으로서 성은 장張씨이다. 어릴 때에 스님이 되어 조계에서 수기授記를 받았고, 사공산司空山 무상사無相寺에 승적을 두었다.
당의 천보天寶 3년에 현종玄宗이 중사中使인 양광정楊光庭을 산으로 보내서 상춘등常春藤을 캐오라고 했는데, 지나는 길에 방장方丈으로 들어와서 절하고는 물었다.
“제자는 도를 사모한 지 오래입니다. 바라건대 화상께서는 자비로써 가르쳐 주십시오.”
선사가 대답했다.
“천하 선종의 석학碩學들이 모두 수도로 모이니, 천사天使께서 조정으로 돌아가시면 물을 수 있을 것이오. 나[貧道]는 산수에 의지할 뿐 마음을 쓰는 바가 없소.” 
광정光庭이 울면서 절을 하자, 선사가 말했다.
“나에게 절을 하지 마시오. 천사天使는 부처를 구하는가요, 아니면 도를 구하는가요?”
“제자는 지혜가 우매합니다. 모르겠습니다만, 부처와 도는 어떻게 다릅니까?”
“만약 부처를 구하고 싶다면 마음이 바로 부처이고, 만약 도를 이해하고 싶다면 무심이 곧 도라오.”
“어찌하여 마음이 바로 부처입니까?”
“부처는 마음을 인因하여 깨닫고, 마음은 부처로써 드러나는 것이니, 만일 무심을 깨달으면 부처도 있지 않다오.”
“어찌하여 무심이 곧 도입니까?”
“도는 본래 마음이 없어서 무심을 도라 이름하나니, 만일 무심을 요달하면 무심이 곧 도라오.”
광정이 절을 하고는 믿고 받아들였다. 
대궐에 돌아온 뒤에 산에서 있었던 일을 자세히 아뢰니, 곧 광정에게 선사를 불러들이라는 칙령을 내렸다. 12월 13일에 수도에 이르자 백련사白蓮寺에 머물라는 조칙을 내렸고, 이듬해 정월 15일에 양가兩街 좌가와 우가이니, 좌가는 선종禪宗이고 우가는 교종敎宗이다.
의 명승과 석학을 내도량內道場으로 불러서 선사와 더불어 부처의 진리를 드날리게 하였다.
당시 원遠 선사라는 이가 소리를 높여서 선사에게 말했다.
“이제 황제의 앞에서 종지를 비교하고 헤아리고 있으니, 마땅히 곧바로 묻고 곧바로 대답해야지 번거롭게 말할 필요는 없습니다. 선사가 보는 바로는 무엇을 도라 여기고 있습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무심無心이 도입니다.”
원 선사가 다시 말했다.
“도는 마음을 인하여 있거늘 어찌 무심을 도라고 말하는 것입니까?”
“도는 본래 이름이 없지만 마음을 인하여 도라 이름하오. 마음이란 이름이 만약 있는 것이라면 도는 헛되지 않을 것이지만, 마음을 궁구하면 본래 있지 않은 것이거늘 도가 무엇을 의지하여 이루어지리오. 두 가지 모두가 허망한 것이니, 임시로 세운 이름일 뿐이오.”
“선사에게는 몸과 마음이 있음을 보는 것이 도입니까?”
“산승에게는 몸과 마음이 본래 도라오.”
“아까는 무심이 도라 하시더니, 이제는 몸과 마음이 본래 도라 하시니, 어찌 서로 어긋나는 것이 아닙니까?”
“무심이 도이면 마음이 없어질 때 도도 없어지는 것이니, 마음과 도가 하나와 같기 때문에 무심이 도라 하였고, 몸과 마음이 본래 도라 함은 도도 본래 몸과 마음이니, 몸과 마음이 본래 공했으므로 도 역시 근원을 궁구하면 있지 않은 것이오.”
“선사의 몸을 보건대 몹시 왜소한 데도 이런 이치를 아시는군요.”
“대덕大德은 다만 나의 모습만을 볼 뿐 나의 모습 없음은 보지 못하는구려. 모습을 보는 것은 대덕의 소견일 뿐이오. 경에 말하기를 ‘무릇 모습이 있는 것은 모두가 허망하니, 만일 모든 모습이 모습 아닌 줄을 보면, 즉시 그 도를 깨닫는다’고 하였으니, 만약 모습을 진실이라 여긴다면 겁이 다하더라도 도를 깨닫지는 못할 것이오.”
“이제 바라건대, 선사께서는 모습 위에서 모습 없음을 설해 주십시오.”
“󰡔정명경淨名經󰡕에 말하기를 ‘4대大에 주재자가 없고, 몸 또한 나[我]도 없고 내 것[我所]이라는 소견도 없어야 도와 더불어 상응한다’고 하였는데, 대덕이 만일 4대에 주재자가 있다고 여기면 이는 내가 있음이요, 만일 나라는 소견이 있으면 겁이 다하여도 도를 이해할 수 없을 것이오.”
원 선사가 이 말을 듣고 어쩔 줄을 모르면서 미적미적 자리를 피하니, 선사가 게송을 말해 주었다.

4대에 주재자가 없으니 마치 물과 같아서
곧은 것을 만나든 굽은 것을 만나든 피차彼此가 없고
더럽고 깨끗함이라는 두 마음을 내지 않으니
어찌 막히고 트인다는 두 가지 뜻이 있었겠는가.
경계에 닿아서 그저 물같이 무심하기만 하면
세상을 아무리 종횡한들 무슨 일이 있으랴.
四大無主復如水    遇曲逢直無彼此
淨穢兩處不生心    壅決何曾有二意
觸境但似水無心    在世縱橫有何事

다시 말했다.
“4대 가운데 어느 하나가 그러면 나머지 4대도 그러하니, 만약 4대에 주재자가 없음을 밝히면 곧 무심을 깨닫고, 만약 무심을 요달하면 자연히 도에 계합할 것이오.”
또 지명志明 선사라는 이가 물었다.
“만일 무심이 도라 하면, 기왓장이나 자갈도 무심이니 도이어야 합니다. 만일 몸과 마음이 본래 도라면, 4생生․10류類도 모두 몸과 마음이 있으니 역시 도이어야 합니다.”
선사가 대답했다.
“대덕이 만일 보고 듣고 깨닫고 안다는 견해를 지으면 도와는 아주 멀어지나니, 즉 보고 듣고 깨닫고 알기를 구하는 자는 도를 구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경에 말하기를 ‘눈ㆍ귀ㆍ코ㆍ혀ㆍ몸․뜻이 없다’고 하였으니, 여섯 감관[六根]도 없거늘 보고 듣고 깨닫고 앎이 무엇을 의지하여 이루어지겠습니까? 이처럼 근본을 추궁하면 본래 있는 것이 않으니 어느 곳에 마음을 간직하겠습니까? 그렇다면 어떻게 초목이나 기왓장, 자갈과 같지 않느냐고 할 수 있겠습니까?”
지명이 말이 막혀서 물러갔다. 선사는 또 게송을 말했다.

보고 듣고 깨닫고 앎에 장애가 없고
소리ㆍ향기ㆍ맛ㆍ감촉이 항상 삼매라
마치 새가 허공 속에서 다만 저렇게 날듯이
취할 것ㆍ버릴 것과 미움도 고움도 모두 없네.
감응하는 곳마다 본래 무심임을 이해하면
비로소 관자재라는 이름을 얻으리라.
見聞覺知無障礙    聲香味觸常三昧
如鳥空中只麽飛    無取無捨無憎愛
若會應處本無心    始得名爲觀自在

또 진眞 선사라는 이가 물었다.
“도가 이미 무심이라면 부처는 마음이 있습니까? 부처와 도는 하나입니까, 둘입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동일하지도 않고 다르지도 않다오.”
“부처가 중생을 제도하는 것은 마음이 있기 때문이요, 도가 사람을 제도하지 못하는 것은 마음이 없기 때문이라오. 하나는 제도하고 하나는 제도하지 못하니, 어찌 둘이 없다 하리오?”
“만일 부처는 중생을 제도하는데 도는 중생을 제도하지 못한다고 한다면, 이는 대덕께서 허망하게 두 가지 소견을 내었을 뿐입니다. 저로서는 그렇게 여기지 않나니, 부처도 헛된 이름이고 도 역시 허망하게 세워진 것이니, 두 가지가 다 실답지 않아서 모두 거짓 이름일 뿐입니다. 하나의 거짓 가운데서 어떻게 둘을 나누겠습니까?”
“부처와 도가 종래로 거짓 이름이라고는 하나, 이름을 세울 때에는 누가 세웠겠소? 만약 세운 자가 있다면 어찌 없다고 하겠소?”
“부처와 도는 마음을 인하여 세워진 것인데, 세운 마음을 추궁하면 그 마음도 없습니다. 마음이 이미 없다면 둘 다 모두 진실하지 않음을 깨달은 것이요, 마치 꿈 같고 허깨비 같음을 알았다면 곧 본래의 공[本空]을 깨달은 것입니다. 그러나 억지로 부처와 도의 두 이름을 세웠나니, 이는 2승 사람의 견해일 따름입니다.”
선사는 이어서 닦을 것도 없고 지을 것도 없음을 게송으로 말하였다.

도를 본다면 닦는다고 하겠지만
보이지 않거늘 다시 무엇을 닦으랴.
도의 성품은 마치 허공과 같으니
허공을 어떻게 닦으랴.
見道方修道    不見復何修
道性如虛空    虛空何所修

수도하는 이를 두루 보건대
불을 헤치면서 거품을 찾는구나.
다만 꼭두각시 놀리는 것만을 볼지니 
선이 끊어지면 일시에 쉬어 버리리.
遍觀修道者    撥火覓浮漚
但看弄傀儡    線斷一時休

또 법공法空 선사라는 이가 물었다.
“부처와 도가 둘 다 거짓 이름이면, 12분교分敎도 마땅히 진실하지 않을 것인데, 어찌하여 예전부터의 존숙尊宿들은 모두 도를 닦는 것을 말했습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대덕이 경전의 뜻을 잘못 이해했소. 도는 본래 닦을 것이 없거늘 대덕은 억지로 닦고, 도는 본래 지을 것이 없거늘 대덕은 억지로 짓고, 도는 본래 일이 없거늘 대덕은 억지로 많은 일을 내고, 도는 본래 앎이 없거늘 그 가운데서 억지로 앎을 내나니, 이러한 견해들은 도와 더불어 서로 어긋나는 것이오. 예전의 존숙들은 마땅히 그렇지 않았는데, 다만 대덕이 잘못 알았을 뿐이오. 잘 생각해 보시오.”
선사는 또 게송을 말했다.

도의 본체는 본래 닦을 것 없나니
닦지 않아도 저절로 도에 합하네.
만약 도를 닦는 마음을 일으키면
이 사람은 도를 이해하지 못하리라.
道體本無修    不修自合道
若起修道心    此人不會道

하나의 참 성품[眞性]을 버리고
도리어 시끄러움에 드는 것이니
홀연히 수도하는 사람을 만나거든
무엇보다도 도를 향하지 말라고 하라.
棄却一眞性    却入鬧浩浩
忽逢修道人    第一莫向道

또 안安 선사라는 이가 물었다.
“도가 이미 거짓 이름이라면 부처란 말도 허망하게 세운 것이고, 12분교도 사물을 제접[接]하고 중생을 제도하는 것으로서 일체가 허망한 것이 되니, 무엇을 참[眞]으로 삼겠습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허망함이 있기 때문에 참을 가지고 허망함을 대치한 것이지만, 허망함의 본성을 추궁하건대 본래 공하니, 참인들 어찌 연고가 있겠소? 그러므로 참과 허망은 모두 거짓 이름이니, 두 가지 일을 대치하건대 도무지 실체가 없고, 근본을 추궁하건대 일체가 모두 공할 뿐이오.”
“이미 일체가 허망하다고 말했다면 허망함도 참과 똑같아서 참과 허망함이 다르지 않으리니, 그것을 어떤 물건이라 합니까?”
“만일 어떤 물건이라고 말하면 어떤 물건 또한 허망할 뿐이오. 경에 말하기를 ‘닮은 것도 없고 견줄 수도 없으니, 언어의 길이 끊어져서 새가 허공을 나는 것 같다’고 하였소.”
안 선사는 부끄러워하면서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선사가 또 게송을 말했다.

참을 추궁하니 참은 모습이 없고
허망을 추궁하니 허망은 형상이 없네.
추궁하는 마음을 돌이켜 관찰하면
마음도 거짓 이름임을 알게 되리라.
도를 이해하는 것도 이와 같으니
이르는 곳마다 다만 편안할 뿐이네.
推眞眞無相    窮妄妄無形
返觀推窮心    知心亦假名
會道亦如此    到頭亦只寧

또 달성達性 선사라는 이가 물었다.
“선禪은 지극히 묘하고 지극히 은미隱微해서 참과 허망이 쌍으로 소멸하고, 부처와 도가 둘 다 멸진하며, 수행의 성품이 공하고 이름과 형상이 진실하지 않으며, 세계가 허깨비 같아서 일체가 거짓 이름이라 하는데, 이런 견해를 지을 때라도 중생의 선과 악이라는 두 근본은 끊을 수 없습니다.”
선사가 대답했다.
“선과 악의 두 근본은 모두 마음을 인하여 있을 뿐이오. 마음을 추궁해서 있는 것이라면 근본도 허망하지 않겠지만, 마음을 추궁해서 이미 없다면 근본이 무엇을 인하여 성립하겠소? 경에 말하기를 ‘선한 법과 선하지 않은 법이 마음으로부터 화하여 생긴다’고 하였으니, 선과 악의 업연業緣은 본래 실다움이 있는 것은 아니라오.”
선사가 다시 게송을 말했다.

선善이 이미 마음에서 생겼다면
악惡인들 어찌 마음을 여의고 있으랴.
선과 악은 밖의 인연일 뿐
마음에 실제로 있는 것은 아니네.
善旣從心生    惡豈離心有
善惡是外緣    於心實不有

악을 버린들 어디로 보낼 것이며
선을 취한들 누구에게 지키게 하랴.
애달프다. 두 소견을 가진 사람은
양쪽을 반연하느라 분주하구나.
만약 본래부터 무심인 줄 깨닫는다면
비로소 예전부터의 잘못을 뉘우치리라.
捨惡送何處    取善令誰守
傷嗟二見人    攀緣兩頭走
若悟本無心    始悔從前咎

또 어떤 임금의 측근 신하가 물었다.
“이 몸은 어디서 왔다가 백 년 뒤에는 어디로 돌아갑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가령 사람이 꿈을 꿀 때에는 그 꿈이 어디서 왔다가 잠깬 뒤에는 어디로 갑니까?”
“꿈을 꿀 때는 없다고 할 수 없고, 깬 뒤에는 있다고 할 수 없으니, 비록 있고 없음이 있으나 가고 오는 바는 없습니다.”
“나[貧道]의 이 몸도 바로 그 꿈과 같습니다.”
또 게송을 말했다.

삶[生]을 꿈속처럼 보나니
꿈속에서는 진실로 어지럽다가
홀연히 깨고 보면 만사萬事를 쉬어서
도리어 잠들었던 때를 깨닫는 것과 같네.
視生如在夢    夢裏實是鬧
忽覺萬事休    還同睡時悟

지혜로운 이는 꿈을 깨는 것을 알지만
미혹한 이는 꿈속의 소란함을 믿나니
꿈이 두 가닥[兩般] 깨달았다 미혹했다 하는 것을 말한다.
과 같은 줄 알면
한 번 깨달음에 별다른 깨달음은 없네.
부귀와 빈천도
또한 다른 길이 아니로다.
智者會悟夢    迷人信夢鬧
會夢如兩般    一悟無別悟
富貴與貧賤    更亦無別路

상원上元 2년 5월 5일에 열반에 드니, 대효大曉 선사라 시호를 내렸다.

무주婺州 현책玄策 선사

그는 무주의 금화金華 사람이다. 
출가하여 온갖 곳을 다니다가 하삭河朔에 이르니, 지황智隍 선사라는 이가 일찍이 황매산黃梅山의 5조(홍인)를 뵙고 20년 동안 암자에 살면서 스스로 선정에 든다[正受]고 여기고 있었다. 대사(현책)는 지황 선사의 얻은 바가 아직 참되지 못함을 알고는, 그에게 가서 물었다.
“그대는 여기 앉아서 무엇을 하는 것이오?”
지황이 대답했다.
“선정에 듭니다.”
“그대가 선정에 든다고 말하니, 마음이 있는 것이오, 마음이 없는 것이오? 만약 마음이 있다면 온갖 꿈틀거리는 종류가 모두 선정을 얻어야 할 것이요, 만약 마음이 없다면 온갖 초목의 종류들도 또한 선정을 얻어야 할 것이오.”
“내가 선정에 바로 들어갈 때에는 있다거나 없다거나 하는 마음을 보지 못합니다.”
“이미 있다거나 없다거나 하는 마음을 보지 못한다면 바로 항상한 선정이니, 어찌 들어가고 나감이 있겠소? 만약 들어가고 나감이 있다면 큰 선정[大定]이 아닐 것이오.”
지황이 말없이 한참 있다가 누구를 스승으로 섬겼느냐고 물으니, 선사가 대답했다.
“나의 스승은 조계의 6조라오.”
지황이 물었다.
“6조는 무엇으로 선정을 삼습니까?”
“우리 스승께서 말씀하시기를 ‘묘하고 맑고 원만하고 적멸해서 본체와 작용이 여여如如하고, 5음陰이 본래 공하고 6진塵이 있는 것이 아니니, 나가지도 않고 들어가지도 않으며 정해지지도 않고 어지럽지도 않다. 선禪의 성품은 머무름이 없고, 머무름을 여의면 선의 적멸이다. 선의 성품은 생겨남이 없고, 생겨남을 여의면 선의 상想이다. 마음은 허공과 같지만, 또한 허공의 양量도 없다’고 하셨소.”
지황이 이 말을 듣고서도 끝내 의문이 쉬지를 않자, 마침내 조계에 가서 의심을 풀어달라고 청하였다. 그리하여 조사의 뜻과 선사의 뜻이 그윽이 부합하면서 지황이 비로소 깨달았다. 
선사는 그 뒤에 금화로 돌아가서 법석法席을 크게 열었다.


조계曹谿 영도令韜 선사

그는 길주吉州 사람으로서 성은 장張씨이다. 6조에 의해 출가하였는데, 잠시도 곁을 떠나지 않고 시봉을 하였다. 조사가 열반에 든 뒤에 옷과 탑을 맡은 주인이 되었다.
당의 개원開元 4년에 현종玄宗이 그의 덕풍德風을 듣고 대궐로 불렀으나, 선사는 병을 핑계로 나아가지 않았다. 상원上元 원년에 숙종肅宗이 사자를 시켜 법을 전한 옷을 대궐로 들여다 공양하려고 하면서 대사(영도)도 함께 대궐로 들라 하였는데, 역시 병을 핑계로 사양하였다. 조계산에서 생애를 마쳤으니, 수명은 95세이고, 시호는 대효大曉 선사라 하였다.

서경西京 광택사光宅寺 혜충慧忠 선사

그는 월주越州의 저기諸曁 사람으로서 성은 염冉씨이다. 심인心印을 받고 나서 남양南陽 백애산白崖山의 당자곡黨子谷에 살기 시작하여 40여 년을 산에서 내려가지 않으니 덕행이 대궐까지 퍼졌다.
당나라 숙종肅宗 상원上元 2년에 중사中使인 손조진孫朝進에게 칙령을 내려서 서울로 맞아들여 스승의 예로써 대우하니, 처음에는 천복사千福寺의 서선원西禪院에 머물다. 그 후 대종代宗이 즉위하자 다시 광택사光宅寺로 맞이하니, 16년 동안 중생의 근기를 따라서 설법하였다.
당시 서천西天의 대이大耳 삼장三藏이란 이가 수도에 왔는데 타심통他心通의 혜안慧眼을 얻었다고 하였다. 황제가 국사로 하여금 시험케 했는데, 삼장이 국사를 보자 얼른 절을 하고 오른쪽 옆에 섰다. 국사가 물었다.
“그대가 타심통을 얻었는가?”
삼장이 대답했다.
“외람됩니다.”
“그대의 도(타심통)로 볼 때 지금 노승(老僧:나)이 어디에 있다고 말하겠는가?”
“화상은 한 나라의 스승인데, 어찌하여 서천西川에 가서 경도(競渡:뱃놀이, 배로 하는 경주)놀이를 구경하십니까?”
그러자 국사가 재차 물었다.
“그러면 그대의 도로 볼 때 노승老僧은 지금은 어디에 있다고 말하겠는가?”
“화상은 한 나라의 스승인데, 어찌하여 천진교天津橋 위에서 원숭이 놀리는 것을 구경하십니까?”
국사가 세 번째도 위와 같이 물었는데, 삼장이 한참 동안 어쩔 줄 몰라 하자, 국사가 꾸짖었다.
“이 들여우 귀신같은 놈아, 타심통이 어디에 있느냐?”
삼장이 아무 대답도 못했다.[어떤 스님이 앙산仰山에게 묻기를 “대이大耳 삼장이 세 번째는 왜 국사를 보지 못했는가?”라고 하니, 앙산이 대답하기를 “앞의 두 차례는 경계에 끄달린 마음이요, 나중에는 자수용삼매自受用三昧에 들었다. 그러므로 보지 못했다”라고 하였다. 또 어떤 스님이 앞의 이야기를 현사玄沙에게 물으니, 현사가 대답하기를 “그대는 앞의 두 차례에 국사를 보았다고 여기는가?”라고 하였고, 현각玄覺은 말하기를 “앞의 두 차례에 보았다면 뒤에는 왜 보지 못했는가? 그렇다면 이해利害가 어디에 걸려 있는가?”라고 하였다. 또 어떤 스님이 조주趙州에게 묻기를 “대이大耳 삼장이 세 번째에는 국사를 보지 못했다 하니 국사는 어디에 계셨습니까?”라고 하니, 조주가 대답하기를 “삼장의 코끝에 있었다”라고 하였다. 또 어떤 스님이 현사에게 묻기를 “코끝에 있었다면 왜 보지 못했습니까?”라고 하니, 현사가 대답하기를 “너무 가깝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하루는 시자侍者를 부르자, 시자가 대답하였다. 이렇게 세 번 불렀는데 세 번 모두 대답하자, 국사가 이렇게 말했다.
“내가 너를 배신[孤負]한다고 여겼는데, 도리어 네가 나를 배신하는구나.”[스님이 현사玄沙에게 묻기를 “국사가 시자를 부르는 뜻이 무엇일까요?”라고 하니, 현사가 대답하기를 “그는 시자가 알 것이다”라고 하였다. 운거雲居 석錫이 말하기를 “시자가 알았겠는가? 못 알았겠는가? 알았다 하려 하나 국사가 말하기를 ‘네가 나를 배신한다’라고 했고, 몰랐다 하려 하나 현사가 말하기를 ‘시자가 안다’라고 하였으니, 어떻게 따져야 하겠는가?”라고 하였다. 또 현각玄覺 징徵이 어떤 스님에게 묻기를 “어떤 것이 시자가 알아들은 것이겠는가?”라고 하니, 그 스님이 대답하기를 “알지 못했다면 어찌 그렇게 대답할 줄 알았겠습니까?”라고 하였다. 그러자 현각이 다시 말하기를 “그대는 알지 못했다”라고 하였다. 또 말하기를 “만일 이 즈음에서 잘 헤아리면 현사玄沙를 보게 될 것이다”라고 하였다. 또 어떤 스님이 법안法眼에게 묻기를 “국사가 시자를 부른 뜻이 무엇입니까?”라고 하니, 법안이 대답하기를 “가 있다가 다음 날 오라”고 하였다. 운거 석이 말하기를 “법안이 그렇게 말한 것이 국사의 뜻을 밝힌 것인가, 밝히지 못한 것인가?”라고 하였다. 또 어떤 스님이 조주에게 묻기를 “국사가 시자를 부른 뜻이 무엇입니까?”라고 하니, 조주가 대답하기를 “어떤 사람이 어둠 속에서 글씨를 쓰면 글자는 이루어지지 않으나 글 자국<文彩>은 이미 이루어진 것과 같다”라고 하였다.]
남전南泉이 와서 뵙자, 국사가 물었다.
“어디서 오는가?”
남전이 대답했다.
“강서江西에서 왔습니다.”
“마조馬祖의 진면목을 얻어 왔겠지?”
“다만 이것일 뿐입니다.”
“네 배후를 드러내어라.”
남전이 문득 그만두었다.[장경長慶 능稜이 말하기를 “아마도 모르고 있었던 것 같다”라고 하였다. 보복保福 전展이 말하기를 “하마터면 화상이 이 근처에 이르지 못할 뻔했다고 했어야 한다”라고 하였다. 운거 석이 말하기를 “이 두 존자가 모두 등 뒤를 붙들었는데 남전이 그만둔 것은 앞을 붙든 것인가, 뒤를 붙든 것인가?”라고 하였다.]

마곡麻谷이 와서 뵙고는 선상禪床을 세 번 돈 뒤에 국사 앞에 석장錫杖을 구르며 서 있자, 국사가 말했다.
“이미 그렇다면, 무엇 하러 다시 나를 볼 필요가 있겠는가?”
마곡이 다시 석장을 구르자, 국사가 꾸짖었다.
“이 들여우 귀신 같은 놈아, 썩 물러가라.”

국사는 늘 대중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선종을 배우는 자들은 마땅히 부처님 말씀 가운데 1승의 요의법了義法을 따라서 자기 마음의 근원에 계합해야 한다. 불요의법不了義法을 배우는 자는 서로 인정하지 않는 것이 마치 사자 몸속의 기생충과 같다. 무릇 남의 스승 된 자가 명리名利에 간섭하거나 따로 이단異端의 소견을 내면, 자기와 남에게 무슨 이익을 주겠는가? 마치 세간의 위대한 장인匠人의 연장은 주인의 손을 다치게 하지 않고, 큰 코끼리가 짊어진 것은 노새로서는 감당하지 못하는 것과 같다.”
어떤 스님이 와서 물었다.
“어찌하여야 부처가 되겠습니까?”
국사가 대답했다.
“부처와 중생을 일시에 놓아 버리면, 그 당처當處가 해탈이다.”
“어찌해야 상응을 하겠습니까?”
“선과 악을 생각하지 않으면 저절로 불성佛性을 보게 되리라.”
“어찌하여야 법신法身을 증득하겠습니까?” 
“비로자나불의 경계를 넘어서야 한다.”
“청정법신淸淨法身은 어찌하여야 얻습니까?”
“부처를 구하는 데 집착하지 않을 뿐이다.”
“어떤 것이 부처입니까?”
“마음 그대로가 부처니라.”
“마음에 번뇌가 있습니까?”
“번뇌의 성품은 저절로 여의느니라.”
“그렇다면 어찌하여 끊지 못합니까?”
“번뇌를 끊으면 2승이라 하고, 번뇌가 생겨나지 않으면 위대한 열반이라 하느니라.”
“좌선하면서 고요함을 관찰하는 일은 또한 어떻습니까?”
“더럽지도 않고 깨끗하지도 않거늘, 어찌 억지로 마음을 일으켜서 청정한 모습[淨相]을 관찰할 필요가 있겠는가?”
“선사께서는 시방 허공이 법신이라고 보고 계십니까?”
“상념想念의 마음으로 취하면 이는 뒤바뀐 소견이니라.”
“마음 그대로가 곧 부처라면 무엇 하러 다시 만행萬行을 닦습니까?”
“여러 성인들은 모두가 두 가지 장엄[二嚴:福․慧]을 갖추셨는데, 그대는 어찌 인과가 없다고 배척하는가? 또 내가 이제 그대의 말에 대답을 하자면 겁이 다해도 끝이 없으니, 말이 많으면 도道와는 멀어진다. 그러므로 말하기를 ‘법을 설함에 얻는 바가 있으면 이는 여우의 울음이요, 법을 설함에 얻는 바가 없으면 이는 사자의 울부짖음이라’ 하느니라.”

남양南陽의 장분張濆이라는 행자가 와서 물었다.
“들리는 말에 의하건대, 화상께서는 무정설법無情說法을 하신다고 하는데, 저는 그 일을 아직 체득하지 못했습니다. 바라옵건대 화상께서 자비를 베푸시어 가르쳐 주십시오.”
국사가 대답했다.
“그대가 무정설법을 물으려면 다른 무정無情을 이해해야만 비로소 나의 설법을 들을 수 있으리니, 그대는 다만 무정설법을 들어 두기만 하라.”
“단지 지금과 같은 유정有情의 방편 중에서 잡는다면, 어떤 것이 무정의 인연입니까?”
“지금과 같은 일체의 움직임과 작용 속에서 범부와 성인의 두 무리가 도무지 약간이라도 일어나거나 멸함이 없는 것이니, 문득 의식을 벗어나는 것이며 유有와 무無에 속하지 않는 것이어서, 비록 치성하게 보고 지각하고 단지 듣지만, 그 정식情識의 얽매임이나 집착은 없다. 그러므로 6조께서 말씀하시기를 ‘여섯 감관이 경계를 대하여 분별하는 것은 식識이 아니다’라고 하신 것이다.”
어떤 스님이 와서 뵙고 절을 하자, 국사가 물었다.
“무슨 업을 쌓았는가?”
“󰡔금강경󰡕을 강의하였습니다.”
“맨 처음의 두 글자가 무엇이던가?”
“여시如是입니다.”
“그것이 무엇인가?”
그 스님은 대답이 없었다.

어떤 사람이 물었다.
“어떤 것이 해탈입니까?”
국사가 대답했다.
“모든 법이 서로 이르지 못하는 그 당처當處가 해탈이니라.”
“그렇다면 아주 끊어 버린[斷] 것입니까?”
“그대에게 말하기를 ‘모든 법이 서로 이르지 못하는 곳’이라 하였거늘, 무엇을 끊는다는 말인가?”

국사가 어떤 스님이 오는 것을 보고 손으로 원상圓相을 그리고, 원상 안에다 일日자를 써 보였는데, 그 스님이 대답이 없었다.

국사가 본정本淨 선사에게 물었다.
“그대가 이다음에 기특한 말을 보면 어찌하겠는가?”
본정이 대답했다.
“일념一念의 애착도 없을 것입니다.”
“이는 그대의 집안일이다.”

숙종이 물었다.
“국사는 어떤 법을 얻었소?”
국사가 대답했다.
“폐하께서는 허공의 한 조각구름을 보셨습니까?”
황제가 말했다.
“보았소.”
국사가 말했다.
“소복소복하게 매달렸나이다.”
또 물었다.
“어떤 것이 10신身의 조어사(調御師:부처님)란 말이오?”
국사가 벌떡 일어나서 말했다.
“아시겠습니까?”
“알지 못하겠소.”
“노승의 물병이나 갖다 주십시오.”
또 물었다.
“어떤 것이 무쟁삼매無諍三昧란 말이오?”
“단월檀越 여기서는 황제를 가리킨다.
께서 비로자나의 정수리를 밟고 걸으십시오.”
“그 뜻이 무엇이오?”
“자기가 청정법신을 짓는다고 인식하지 마십시오.”
또 국사에게 물었는데 국사가 전혀 돌아보지 않자, 황제가 말했다.
“짐은 당나라의 천자이거늘, 국사는 어찌하여 전혀 돌아보지 않는가?”
“황제께서는 허공을 보았습니까?”
“보았소.”
“그가 눈을 찡그리고 폐하를 보던가요?”

어군용魚軍容이 물었다.
“스님께서 백애산白崖山에 계실 때에 하루 종일 어떻게 수행하셨습니까?”
국사가 동자童子를 불러 놓고 그의 정수리를 만지면서 말했다.
“또랑또랑[惺惺]할지니, 다만 또랑또랑해라. 역력歷歷할지니, 다만 역력하라. 그리고 나서는 남의 속임을 당하지 말라.”

국사가 자린紫璘 공봉供奉과 토론할 때에 국사가 자리에 오르자, 공봉이 물었다.
“스님께서 뜻[義]을 세우십시오. 제가 타파하겠습니다.”
국사가 말했다.
“뜻을 다 세웠다.”
“어떤 뜻입니까?”
“과연 보지 못하는군. 그대의 경계가 아닐세.”
그리고는 곧 자리에서 내려왔다.
하루는 자린 공봉에게 물었다.
“부처란 무슨 뜻인가?”
“깨달음[覺]이란 뜻입니다.”
“부처님이 미혹한 적이 있는가?”
“미혹했던 일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깨달아서 무엇 하겠는가?”
공봉이 대답이 없었다.
공봉이 다시 물었다.
“어떤 것이 실상實相입니까?”
“텅 빔을 잡아오너라.”
“텅 빔은 얻을 수 없습니다.”
“텅 빔도 얻을 수 없다면서 실상은 물어서 무엇을 하려는가?”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불법의 대의입니까?”
국사가 대답했다.
“문수당文殊堂 안의 만 명의 보살이니라.”
“학인學人은 알지 못하겠습니다.”
“대비大悲보살은 눈과 손이 천 개이니라.”
탐원耽源이 물었다.
“입멸하신 뒤에[百年後] 어떤 사람이 극칙極則의 일을 물으면 어찌하겠습니까?”
국사가 대답했다.
“이 딱한 사람아, 호신부자(護身符子:생명을 보호하는 부적)를 구해서 무엇 하랴?”

국사는 교화할 인연이 다해서 열반에 들 때가 왔음을 깨닫고 대종大宗에게 하직을 아뢰니, 대종이 말했다.
“국사께서 열반에 드신 뒤에 제자는 무엇을 기억해 두어야 하겠소?”
국사가 대답했다.
“단월에게 고하나니, 하나의 무봉탑無縫塔을 세우십시오.”
“스승께서 탑의 모양을 떠주시기 바랍니다.”
국사가 묵묵히 있다가 말했다.
“알겠습니까?”
“모르겠습니다.”
“내가 떠난 뒤에 응진應眞이라는 시자가 도리어 이 일을 알리라.”
대력大歷 10년 12월 9일에 오른쪽 겨드랑이로 누워서 영원히 떠나니, 제자들이 당자곡黨子谷 안에 탑을 세우고 영구를 모셨는데, 황제는 대증大證 선사라는 시호를 내렸다.
나중에 대종이 응진을 궐내로 불러들여서 앞서 있었던 일을 물으니, 응진이 묵묵히 있다가 말했다.
“황제께서는 아시겠습니까?”
“모르겠소.”
응진이 게송을 말했다.

상수湘水의 남쪽이요, 담수潭水의 북쪽이니
그 가운데 황금이 가득한 나라가 있네.
그림자 없는 나무 밑에 같은 배를 탔지만
유리전琉璃殿에는 아는 이가 없다네.
湘之南  潭之北    中有黃金充一國
無影樹下合同船    瑠璃殿上無知識

응진은 나중에 탐원산耽源山에서 살았다.


서경西京 하택荷澤 신회神會 선사

그는 양양襄陽 사람으로서 성은 고高씨이다. 14세에 사미沙彌가 되어서 6조를 뵈었는데, 조사가 물었다.
“지식(知識:상대를 가리킴)이 멀리서 오느라고 몹시 수고했는데, 근본[本]을 가지고 왔느냐? 근본을 가지고 있다면 마땅히 주인을 알 것이니, 한번 말해 보아라.”
대사가 대답했다.
“머무름 없음[無住]을 근본으로 삼고, 봄[見]이 곧 주인입니다.”
조사가 말했다.
“이 사미가 어찌 다음 말[次語]을 알아들을 수 있으랴.”
그리고는 갑자기 주장자로 때렸는데, 대사는 주장자를 맞으면서 생각했다.
‘큰 선지식은 여러 겁을 지나도 만나기 어려운데, 이제 만났으니 어찌 몸과 목숨을 아끼랴?’
이때부터 시봉을 하였는데, 어느 날 조사가 대중에게 말했다.
“나에게 한 물건이 있는데, 머리도 없고 꼬리도 없으며, 이름도 없고 자字도 없으며, 얼굴도 없고 등[背]도 없으니, 여러분은 아시겠는가?”
대사가 나서면서 말했다.
“모든 부처님의 근원이자 신회神會의 불성佛性이겠습니다.”
“그대들에게 이름도 없고 자字도 없다고 했는데, 그대는 문득 근원이요 불성이라고 하는구나.”
대사는 절을 하고 물러갔다. 대사는 이윽고 서경西京으로 가서 계를 받고, 당의 경룡景龍 때에 다시 조계로 돌아왔다. 
조사가 열반에 든 뒤로 20년 동안 조계의 돈지(頓旨:頓悟의 敎理)는 형오荊吳 지방에서 침체되고, 숭악嵩嶽의 점문(漸門:漸修의 敎理)만이 진락秦洛 지방에서 성행하였는데, 이 무렵에 서울로 들어갔다. 천보天寶 4년에 두 종파[남종은 혜능의 돈종頓宗이고, 북종은 신수의 점교漸敎이다.]의 교리를 확정하여 󰡔현종기顯宗記󰡕를 저술했는데, 그것이 세상에 널리 퍼졌다.
하루는 고향에서 부모가 별세했다는 소식이 왔는데, 대사는 법당에 올라가서 종을 치고 외쳤다.
“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셨으니, 대중 스님들이여, 󰡔마하반야경摩訶般若經󰡕을 읽어 주십시오.”
대중이 겨우 모이자, 대사가 다시 종을 치며 말했다.
“대중 스님들이여, 너무 수고하셨습니다.”
국사는 상원上元 원년 5월 13일 밤중에 엄숙히 열반에 드니, 세속 수명은 75세였다. 상원 2년에 낙경洛京 용문龍門에다 탑을 옮기니, 탑 곁에다 보응사寶應寺를 지으라는 조칙이 내렸고, 대력大歷 5년에는 진종반야전법지당眞宗般若傳法之堂이라는 호가 하사되었고, 7년에는 또 반야般若 대사라는 탑호가 내려졌다.
어떤 스님이 와륜臥輪 선사의 게송을 소개하였다.

와륜은 기량이 있어서
온갖 사량과 상념을 끊을 수 있고
경계를 대해서도 마음을 일으키지 않으니
보리菩提가 나날이 자라네.
臥輪有伎倆    能斷百思想
對境心不起    菩提日日長
6조 대사가 이를 듣고 말했다.
“이 게송은 아직 심지心地를 밝히지 못했다. 만일 이에 의해 수행하면, 얽매임만 더할 뿐이로다.”
그리고는 한 게송을 보였다.

혜능은 기량이 전혀 없어서
온갖 사량과 상념을 끊지 않고
경계를 대해서도 마음을 자주 일으키니
보리인들 어찌 자라겠는가.
慧能沒伎倆    不斷百思想
對境心數起    菩提作麽長

[이 두 게송은 제방諸方에서 많이 이야기하기 때문에 권의 끝에다 붙인다. 와륜臥輪은 이름이 아니고 살던 장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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