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경전 유교 경전 도교 경전

경덕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 전등록 번역, 불경, 불교경전, 선문답, 화두 (3)

일이삼선생 2023. 6. 29. 10:03
반응형





경덕전등록 제9권






회양懷讓 선사의 제3세 56인

홍주洪州 백장百丈 회해懷海 선사의 법손 30인
담주潭州 위산潙山 영우靈祐 선사
홍주洪州 황벽산黃檗山 희운希運 선사[법요法要는 권말卷末에 붙임]
항주杭州 대자大慈 환중寰中 선사
천태산天台山 보안普岸 선사
균주筠州 상관常觀 선사
담주潭州 석상石霜 성공性空 선사
복주福州 대안大安 선사
고령古靈 신찬神贊 선사
광주廣州 화안和安 통通 선사
강주江州 용운龍雲 대臺 선사
낙경洛京 위국衛國 도道 선사
진주鎭州 만세萬歲 화상
백장산百丈山 열반涅槃 화상
홍주洪州 동산東山 화상
  [이상 14인은 기록에 보임]
고안高安 무외無畏 선사
동암東巖 도광道曠 선사 
형주邢州 소素 선사
당주唐州 대승산大乘山 길본吉本 선사
소승산小乘山 혜심慧深 선사
양주楊州 혜조사慧照寺 소일昭一 선사
정주禎州 나부羅浮 감심鑒深 선사
홍주洪州 구선산九仙山 범운梵雲 선사
강주江州 여산廬山 조操 선사
월주越州 우적사禹迹寺 계진契眞 선사
균주筠州 포산包山 천성天性 선사
명주明州 대매산大梅山 피안彼岸 선사
홍주洪州 요산遼山 장술藏術 선사
승주昇州 기사산祇闍山 도방道方 선사
청전淸田 화상
대우大于 화상
  [이상 16인은 기연할 어구가 없으므로 기록하지 않음]

앞의 건주虔州 서당西堂 장藏 선사의 법손 4인
건주虔州 처미處微 선사
  [1인은 기록에 보임]
계림雞林 도의道義 선사
신라국新羅國 혜慧 선사
신라국新羅國 홍직洪直 선사
  [이상 3인은 기연할 어구가 없으므로 기록하지 않음]

앞의 포주蒲州 마곡산麻谷山 보철寶徹 선사의 법손 2인
수주壽州 양수良遂 선사
  [1인은 기록에 보임]
신라국新羅國 무염無染 선사
  [1인은 기연할 어구가 없으므로 기록하지 않음]

앞의 호남湖南 동사東寺 여회如會 선사의 법손 4인
길주吉州 서산薯山 혜초慧超 선사
  [1인은 기록에 보임]
서주舒州 경제景諸 선사
장엄사莊嚴寺 광조光肇 선사
담주潭州 막보산幕輔山 소昭 선사
  [이상 3인은 기연할 어구가 없으므로 기록하지 않음]

앞의 경조京兆 장경사章敬寺 회운懷惲 선사의 법손 16인
경조京兆 천복薦福 홍변弘辯 선사
복주福州 구산龜山 지진智眞 선사
낭주朗州 회정懷政 선사 
금주金州 조操 선사
낭주朗州 고제古堤 화상
하중河中 공기公畿 화상
  [이상 6인은 기록에 보임]
백림원柏林院 한운閑雲 선사
선주宣州 현철玄哲 선사
하중河中 보견寶堅 선사
서경西京 도지道志 선사
강주絳州 신우神祐 선사
서경西京 지장智藏 선사
허주許州 무적無迹 선사
수주壽州 유숙惟肅 선사
신라국新羅國 현욱玄昱 선사
신라국新羅國 각체覺體 선사
  [이상 10인은 기연할 어구가 없으므로 기록하지 않음]


회양懷讓 선사의 제3세 ①

앞의 백장百丈 회해懷海 선사의 법손

담주潭州 위산潙山 영우靈祐 선사
그는 복주福州 장계長谿 사람으로서 성은 조趙씨이다. 15세에 부모 곁을 떠나 출가해서 본군本郡 건선사建善寺의 법상法常 율사律師에 의하여 머리를 깎았고, 항주杭州 용흥사龍興寺에서 계를 받은 뒤에 대소승大小乘의 경전과 계율을 연구하였다.
23세에 강서江西에 가서 백장百丈 대지大智 선사를 뵈었는데, 백장이 한 번 보고는 바로 입실入室을 허락해서 마침내 참학參學하는 사람들의 우두머리를 차지했다.
어느 날 시립侍立해 있자, 백장이 물었다.
“누구냐?”
“영우靈祐입니다.”
“그대는 화로 속에 불이 있는지 헤쳐 보았는가?”
대사가 헤쳐 보고서 말했다.
“불이 없습니다.”
백장이 몸소 일어나 깊숙이 헤쳐서 조그마한 불을 얻고서는 그에게 들어 보이면서 말했다.
“이것이 불이 아닌가?”
대사가 깨닫고서 절을 한 뒤에 자기의 견해를 펴니, 백장이 말했다.
“그것은 잠시 나타난 갈림길일 뿐이다. 경전에 말하기를 ‘불성을 보고자 하면 마땅히 시절인연時節因緣을 관찰해야 한다’고 하였는데, 시절이 이르게 되면 마치 미혹했다가 홀연히 깨달은 것 같고 잊었다가 홀연히 기억한 것과 같아서, 비로소 자기 물건이지 남에게서 얻은 것이 아님을 성찰하게 된다. 그러므로 조사께서 말씀하시기를 ‘깨달아 마치면 깨닫지 못한 것과 같고, 마음이 없으면 또한 법도 없다’고 하셨으니, 이는 다만 허망하게 범부다 성인이다 하는 따위의 마음이 없고, 본래의 심법心法이 원래 스스로 갖추어진 것이다. 그대가 이제 그렇게 되었으니, 잘 보호해 지녀라.”
이때 사마司馬 두타頭陀가 호남湖南에서 오자, 백장이 그에게 말했다.
“노승이 위산潙山으로 가고자 하는데 어떻겠는가?”[사마司馬 두타頭陀는 참선하는 것 외에 인륜의 덕을 쌓고 교리의 이치를 궁구하니, 제방의 선원에서 그의 말을 많이 따랐다.]
사마 두타가 대답했다.
“위산은 기이하고 묘하여서 1,500명이 모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화상께서 머무실 곳은 아닙니다.”
“왜 그런가?”
“화상은 뼈의 사람인데 그 산은 살[肉]의 산이니, 설사 거처한다 하여도 무리들이 1천 명을 채우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면 나의 무리 가운데 거기에 살 만한 사람이 없겠는가?”
“두루 살펴보겠습니다.”
백장이 시자를 시켜서 제1좌[화림華林 화상]를 불러오게 하고서 물었다.
“이 사람이 어떻겠나?”
두타가 기침을 한 번 시키고 몇 걸음 걷게 한 뒤에 대답했다.
“이 사람은 안 됩니다.”
다시 전좌典座 전좌典座는 음식을 장만하는 직책이다.
[영우靈祐 선사를 말한다.]를 불러오니, 두타가 말했다.
“이 사람이야말로 위산의 주인입니다.”
백장이 밤에 대사를 방으로 불러들여서 법을 부촉하며 말했다.
“나의 교화 인연은 여기에 있다. 위산은 빼어난 경계이니, 마땅히 그대가 살면서 나의 종지를 계승하여 후학들을 널리 제도하라.”
이때 화림華林이 이 말을 듣고서 말했다.
“외람되지만 제가 대중의 우두머리에 있었는데, 영우 대사가 어찌하여 주지를 합니까?”
백장이 말했다.
“만일 대중에게 격식을 벗어난 한마디를 내릴 수 있는 사람이라면, 당장에 주지를 시키리라.”
그리고는 정병淨甁을 가리키면서 물었다.
“정병이라고 부르지 못한다. 그대는 무엇이라 부르겠는가?”
화림이 대답했다.
“말뚝이라 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백장이 수긍하지 않고, 다시 영우에게 물었다. 위산이 정병을 걷어차서 넘어뜨리니, 백장이 웃으면서 말했다.
“제1좌가 도리어 위산에게 졌구나.”
드디어 대사를 위산으로 보냈다. 이 산은 원래 험준하여 인적이 아주 끊겼다. 그래서 대사는 원숭이 떼를 벗 삼고 도토리와 밤을 주워서 끼니를 때우니, 산 밑의 사람들이 차츰 알게 되어서 무리를 거느리고 와서 함께 절을 지어 주었다.
대장군[連帥]인 이경양李景讓이 황제께 아뢰어 동경사同慶寺라 이름하였고, 상국相國인 배휴裵休가 와서 현묘한 진리를 물으니 천하의 선객들이 모여들었다.
대사가 상당하여 이렇게 설법을 했다.
“도인의 마음은 솔직해서 거짓이 없고, 등지지도 않고 바라보지도 않으며, 허망한 심행心行도 없어야 한다. 하루 종일 듣고 보는 평상한 일에서 왜곡이 없어야 하며, 또한 눈을 감거나 귀를 막지도 않고, 다만 정情을 사물에 붙이지 않으면 된다. 위로부터의 모든 성인은 단지 혼탁한 쪽의 허물과 걱정을 말했을 뿐이니, 만약 허다한 나쁜 지각과 정견情見이나 상습想習의 일이 없으면, 마치 가을 물이 맑은 것처럼 청정하여 함이 없고 담박하여 장애가 없다. 이런 사람을 도인道人이라 부르는데, 또한 일 없는 사람이라고도 한다.”
이때에 어떤 스님이 물었다.
“돈오頓悟 일시에 깨닫는 것을 말한다. 
한 사람도 더욱 닦아야 합니까?”
“만일 참다운 깨달음으로 근본을 얻은 사람이라면 그 스스로 때[時]를 알 것이니, 닦는다거나 닦지 않는다 함은 두 갈래의 말일 뿐이다. 가령 지금 처음으로 발심한 사람들이 인연에 따라 한 생각[一念]에 스스로의 이치를 단박에 깨달았더라도, 아직도 비롯함이 없는 광겁曠劫의 습기는 단박에 청정해지지 않으므로 반드시 그로 하여금 현재의 업과 흐르는 의식을 청정하게 제거해야 하나니, 이것이 닦는 것이다. 그로 하여금 닦아 나아가게 하는 법이 따로 있다고 말하지 말라. 법을 듣는 데서 이理에 들어가고, 이理의 깊고 묘함을 들으면, 마음이 스스로 뚜렷이 밝아서 미혹의 경지에 머무르지 않으리라. 설사 백천 가지 묘한 뜻으로써 당대를 올렸다 내렸다 해도 이는 자리에 앉아서 옷을 입었다가 다시 벗는 것으로 살림을 삼는 것이니, 요약해서 말한다면 실제의 이지理地는 한 티끌도 받아들이지 않지만 만행을 닦는 부문에서는 한 법도 버리지 않느니라. 만일 단도직입單刀直入으로 깨달으면, 범부와 성인의 정견情見이 다하면서 체體가 드러나 항상 참되고, 이理와 사事가 둘이 아니라서 그대로 여여如如한 부처이니라.”

앙산仰山이 물었다.
“어떤 것이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대사가 대답했다.
“매우 좋은 등롱燈籠 댓살로 틀을 만들고 겉에 종이나 헝겊을 덮어 씌워 그 속에 등불을 넣는다. 
이다.”
“단지 그것이면 문득 옳지 않겠습니까?”
“그것이라니, 무엇인가?”
“매우 좋은 등롱 말씀입니다.”
“과연 모르는구나.”

어느 날 대중에게 말했다.
“허다한 사람들이 단지 대기大機만을 얻고[구본舊本에서는 ‘대식大識’이라 하였으나, 여기서는 ‘대기大機’로 고쳤다. 󰡔광등병별록廣燈幷別錄󰡕을 살펴보면, 모두 “단지 대기大機만을 얻을 뿐이다”라고 했는데, 제16권 구봉九峰 혜慧 선사의 글에서는 “단지 대체大體만을 얻을 뿐이다”라고 하였으니, 확실한 것은 알 수 없다.], 대용大用은 얻지 못했다.”
앙산이 이 말을 들면서 산 밑의 암주庵主에게 물었다.
“화상께서 그렇게 말씀하신 뜻이 무엇이겠습니까?”
암주가 말했다.
“그 내용을 다시 말해 보시오.”
앙산이 다시 들어 보이려고 하다가 암주에게 걷어 차여서 쓰러졌다. 그가 돌아와서 이 일을 대사에게 말하니, 대사가 껄껄 웃었다.

어느 날 대사가 법당에 앉았는데, 고두(庫頭:창고를 관리하는 스님)가 목어木魚를 치자, 화두(火頭:불을 관리하는 스님)가 부젓가락을 던지고 손뼉을 치면서 크게 웃으니, 대사가 말했다.
“대중 가운데 그런 사람도 있었더냐?”
그리고는 그를 불러다가 무슨 까닭인지 묻자, 화두가 대답했다.
“제가 죽을 먹지 않았는데, 시장한 탓에 기뻐했습니다.”
위산이 고개를 끄덕였다.[동사東使가 듣고 말하기를 “위산潙山의 무리에는 그런 사람이 없는 줄 알았다”라고 하였다. 와룡臥龍이 말하기를 “위산의 무리에는 그런 사람이 으레 있을 줄 알았다”라고 하였다.]

울력으로 차를 따던 중에 대사가 앙산에게 말했다.
“종일토록 차를 따도 그대의 소리만이 들리고 그대의 형상은 보이지 않으니, 본래의 형체를 드러내서 서로 보이도록 하자꾸나.”
앙산이 차나무를 흔드니, 대사가 말했다.
“그대는 단지 그 용用만을 얻었을 뿐 그 체體는 얻지 못했다.”
앙산이 물었다.
“화상께서는 어찌하시겠습니까?”
대사가 잠자코 있으니, 앙산이 말했다.
“화상께서는 단지 그 체만을 얻고 그 용은 얻지 못하였습니다.”
“그대에게 스무 방망이를 때리리라.”[현각玄覺이 말하기를 “허물이 어디에 있는가?”라고 하였다.]

대사가 법당에 오르자, 어떤 스님이 나서서 말했다.
“화상께서 대중에게 설법을 해주십시오.”
“내가 그대들을 위해 사무치게 애썼다.”
그 스님이 절을 하였다.[뒷사람이 설봉雪峰에게 이야기하니 설봉이 말하기를 “옛사람은 그토록 노파심이 간절했구나”라고 하였다. 현사玄沙가 말하기를 “산두山頭 화상이 옛사람의 일을 그르쳤구나”라고 하였다. 설봉이 이 말을 듣고 현사에게 묻기를 “어떤 것이 내가 그릇된 곳인가?”라고 하니, 현사가 대답하기를 “시원찮은 위산이 그 스님의 한마디 질문에 백 조각이 났다”라고 하니, 설봉이 기침을 하고 그만두었다.]

대사가 앙산에게 말했다.
“혜적아, 빨리 말해서 음계陰界에 들어가지 말라.”
“저는 아직 믿음도 서지 않았습니다.”
“그대는 믿어 마쳐서 서지 않았는가, 믿지 않아서 서지 않았는가?”
“다만 혜적慧寂일 뿐이니 다시 누구를 믿겠습니까?”
“그렇다면 정성성문定性聲聞 괴로움을 보고 괴로움의 원인을 끊으며 적멸해지기를 희망하여 적멸하게 되는 방법을 닦아 적멸해진 경지에 만족하여 다시 전진하지 않고 수승하다는 견해를 내는 사람을 정성성문定性聲聞, 즉 고정적인 성문이라 한다.
이구나.”
“혜적은 부처도 보지 않습니다.”
대사가 앙산에게 물었다.
“󰡔열반경󰡕 40권에서 부처님의 말씀은 어느 정도이고, 마魔의 말은 어느 정도인가?”
“모두가 마魔의 말입니다.”
“이 뒤에는 어느 누구도 그대를 어쩌지 못하겠구나.”
앙산이 물었다.
“혜적의 일생사[一期之事] 무종의 법난에 의한 퇴속의 일을 말한다. 
의 행리行履는 어느 곳에 있습니까?”
“다만 그대의 안목이 바른 것만을 귀하게 여길 뿐이지, 그대의 행리는 말하지 않겠다.”

앙산이 빨래를 밟다가 빨래를 쳐들고 대사에게 물었다.
“바로 이러할 때에 화상께서는 어찌하시겠습니까?”
“바로 그러할 때에 나의 이 속에는 어찌할 것이 없다.”
“화상께서는 몸은 있으나 용用은 없으십니다.”
대사가 잠자코 있다가 문득 쳐들고서 물었다.
“그대는 바로 이러할 때에 어찌하겠는가?”
“바로 그러할 때에 화상께서는 되돌아서 그를 보셨습니까?”
“그대는 용用은 있으나 몸이 없구나.”[이는 2월에 있었던 문답이다.]
대사가 홀연히 앙산에게 물었다.
“그대가 지난봄에 한 말은 원만치 못했으니, 이제 다시 말해 보라.”
“바로 그러할 때에 진흙을 휘젓는 것을 꺼려야 합니다.”
“감옥살이하는 동안에 지혜가 늘었구나.”

어느 날 대사가 원주院主를 불렀는데, 원주가 오자 대사가 말했다.
“원주를 불렀는데 네가 왜 오느냐?”
원주가 대답하지 못했다.[조산曹山이 대신 대답하기를 “화상께서 저를 부르지 않은 줄은 알고 있었습니다”라고 하였다.]
또 시자를 시켜 제1좌를 불러오라 해서 제1좌가 오자, 대사가 말했다.
“제1좌를 불렀는데 네가 왜 왔느냐?”
역시 대답이 없었다.[조산曹山이 대신 말하기를 “시자를 시켜서 부르셨으니 안 올 수도 없습니다”라고 하였다. 법안法眼이 따로 말하기를 “아마 시자가 불렀을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대사가 새로 온 스님에게 이름이 무엇이냐고 물으니, 그 스님이 월륜月輪이라고 하였다. 대사가 동그라미 하나를 그려 놓고 물었다.
“이것과 어떻게 닮았는가?”
그 스님이 대답했다.
“스님의 그런 말씀을 제방의 사람들은 아무도 수긍하지 않습니다.”
“나는 그렇다 치고, 그대[闍梨]는 어떤가?”
스님이 말했다.
“월륜月輪을 보셨습니까?”
“그대는 그렇게 말하나 여기서는 아무도 제방諸方을 수긍하지 않는다.”

대사가 운암雲巖에게 물었다.
“그대가 오랫동안 약산藥山에 있었다는데 사실인가?”
“그렇습니다.”
“약산의 대인상大人相이 어떻던가?”
“열반 뒤에 있습니다.”
“열반 뒤에 있는 것이 어떤 것인가?”
“물을 뿌려도 묻지 않습니다.”
운암이 도리어 대사에게 물었다.
“백장 스님의 대인상大人相은 어떠합니까?”
“우뚝하고 당당하고 휘황하고 찬란해서 소리 이전이어서 소리가 아니요 색色의 뒤이어서 색이 아니니, 모기가 무쇠 소[鐵牛]에 붙은 것 같아서 그대의 주둥이를 댈 곳이 없다.”

대사가 앙산에게 정병淨甁을 주려는데 앙산이 받으려 하자, 대사가 얼른 손을 오므려 거두며 말했다.
“이것이 무엇인가?”
“화상께서는 무엇이 보이십니까?”
“그렇다면 어째서 나에게서 찾는 것이냐?”
“그렇지만 인의仁義의 도리로 보건대 화상의 정병을 받아서 물을 떠다 드리는 것이 본분사本分事이겠습니다.”
대사가 그때서야 정병을 넘겨주었다.

어느 날 앙산과 같이 가다가 잣나무를 가리키면서 말했다.
“앞에 있는 것이 무엇인가?”
앙산이 말했다.
“잣나무일 뿐입니다.”
대사가 다시 등 뒤의 늙은 농부를 가리키면서 말했다.
“저 늙은이도 앞으로 5백 명의 대중쯤은 거느리겠다.”

어느 날 앙산에게 물었다.
“어디서 돌아오는 길인가?”
“밭에서 돌아옵니다.”
“벼를 잘 베었는가?”
“잘 베었습니다.”
“푸르게 보이던가, 누렇게 보이던가, 푸르지도 누렇지도 않게 보이던가?”
“화상의 등 뒤의 것은 무엇입니까?”
“그대는 보았는가?”
앙산이 벼이삭을 번쩍 들면서 물었다.
“화상께서 언제 이것을 물으신 적이 있습니까?”
“이것은 거위가 우유를 가려내는 것이다.” 󰡔정법념처경正法念處經󰡕에 말하기를 “우유와 물을 담아서 한 자리에 두면 거위는 우유 그릇을 가려서 마시고, 물은 마시지 않는다”라고 하였으니, 자기가 그일, 즉 본분사本分事를 잘 안다는 뜻이다.


겨울철에 대사가 앙산에게 물었다.
“날씨가 차가운가, 사람이 차가운가?”
“여러 사람이 그 속에 있습니다.”
“어째서 곧바로 말하지 않는가?”
“본래부터 굽지 않았습니다[不曲]. 화상께서는 어떻습니까?”
“곧바로 흐름을 따를 뿐이다.”

어떤 스님이 와서 절을 하자, 대사가 일어나는 시늉을 했다. 그 스님이 말했다.
“화상께서는 일어나지 마십시오.” 
대사가 말했다.
“노승老僧은 본래 앉은 적이 없다.”
“저도 절을 한 적이 없습니다.”
“왜 절을 하지 않는가?”
그 스님이 대답이 없었다.[동안同安이 대신 말하기를 “스님, 괴이하게 여기지 마십시오”라고 하였다.]

석상石霜의 휘하에 있는 두 선객이 와서 말하기를 “여기는 한 사람도 선禪을 아는 이가 없구나”라고 하였다. 나중에 울력으로 나무를 운반하다가 두 선객이 쉬는 것을 보고는, 앙산이 장작 한 개비를 들고 가서 물었다.
“말할 수 있겠소?”
두 선객이 모두 말이 없으니, 앙산이 말했다.
“선을 아는 이가 없다고 말하지 않는 것이 좋을 뻔했다.”
그리고는 돌아와서 위산에게 이렇게 말했다.
“오늘 그 두 선객이 저[慧寂]의 감정을 받았습니다.”
대사가 말했다.
“어느 곳에서 그대의 감정을 받았는가?”
앙산이 앞의 이야기를 하니, 대사가 말했다.
“혜적도 나에게 감정을 받았다.”[운거雲居 석錫이 말하기를 “어디가 위산潙山이 앙산仰山을 감정한 곳인가?”라고 하였다.] 

대사가 조는데 앙산이 와서 문안을 드리니, 대사가 문득 얼굴을 돌려서 벽을 향했다. 앙산이 말하였다.
“화상께서는 어찌 그러십니까?”
대사가 일어나면서 말했다.
“내가 아까 꿈을 꾸었는데, 그대가 시험 삼아 나를 위해 풀어 보라.”
앙산이 물 한 대야를 떠다가 대사에게 세수를 시켜 주었다. 조금 있다가 향엄香嚴도 문안을 오자, 대사가 말했다.
“내가 아까 꿈을 꾸었는데, 혜적이 풀었으니 그대도 해몽을 해 보라.”
향엄이 차 한 잔을 갖다 바치니, 대사가 말했다.
“두 사람의 견해가 사리자[鶖子]를 능가하는구나.”

어떤 스님이 말했다.
“위산潙山의 일정립一頂笠 삿갓의 이름이며, 위산潙山의 종지를 뜻한다. 
을 만들지 않고는 막요촌莫傜村 위산 아래의 마을 이름이다.
에 이르지 못한다고 했는데, 어떤 것이 위산의 일정립입니까?”
대사가 즉시 그를 차 버렸다.

대사가 상당하여 대중에게 말했다.
“노승이 죽은 뒤에는 산 밑에 가서 한 마리 검정 암소[水牯牛]가 될 터인데, 왼쪽 겨드랑이 밑에다 ‘위산의 승려 아무개[潙山僧某甲]’라고 다섯 자를 쓰겠다. 이때 위산의 승려라 부르면 곧 검정 암소라 하고, 검정 암소라고 하면 위산의 승려라 할 터인데, 뭐라 불러야 옳겠는가?”[운거雲居 석錫이 대신 말하기를 “스님에게는 다른 법호가 없습니다”라고 하였다. 자복資福이 대신 동그라미를 그려 놓고, 옛사람의 시구[頌]를 들어 말하기를 “위산이라 할 수도 없고 소라고 말할 수도 없으니, 한 몸에다 두 이름을 붙이기란 실로 어렵구나. 두 쪽을 떠나서 말해 보라. 어떻게 말해야 예사 무리에서 벗어나겠는가?”라고 하였다.]
대사가 종승의 가르침을 편 지 40여 년에 달관한 이는 셀 수 없었으며 입실入室한 제자는 41인이었다.
당나라 대중大中 7년 정월 9일 양치질과 세수를 하고 나서 편안히 앉아 태연히 열반에 드니, 수명은 83세이고 법랍은 64세였다. 본산(위산)에다 탑을 세우니, 대원大圓 선사라 시호를 내렸고, 탑호는 청정淸淨이라 하였다.

홍주洪州 황벽黃檗 희운希運 선사
그는 민閩 지방 사람이다. 어릴 때에 고향의 황벽산黃檗山에서 출가하였는데, 이마 사이가 우뚝 솟은 것이 살로 된 구슬 같았고, 음성이 낭랑하고 의지가 깊고 맑았다.
나중에 천태산天台山에 가다가 어떤 스님을 만났다. 그와 함께 웃고 말하기를 마치 예전부터 서로 아는 사이처럼 했는데, 자세히 살펴보니 눈의 광채가 사람을 쏘듯 빛났다. 그와 같이 길을 가는데, 때마침 개울물이 넘쳐서 삿갓을 벗고 지팡이를 세우고 발걸음을 멈추게 되었다. 이때 그 스님이 대사를 데리고 함께 건너겠다고 하자, 대사가 말했다.
“건너시려면 사형이나 혼자 건너시오.”
그 스님이 옷을 걷고 물살을 건너는데, 마치 평지를 걷는 것처럼 하면서 돌아보며 말했다. 
“건너오시오, 건너오시오.” 
대사가 말했다.
“쯧쯧. 고얀 놈이로군. 내가 진작부터 알았더라면 네 다리를 꺾어 놓았을 것이다.”
그 스님이 이 말에 탄복하였다.
“참으로 대승의 법기法器이시니, 저로서는 미치지 못할 바입니다.”
말을 마치고는 이내 사라졌다. 

나중에 서울[京師]에 갔다가 어떤 사람이 알려 주어서 백장百丈을 찾아가 물었다.
“위로부터 전해 오는 종승(宗承:법)을 어떻게 보여 주십니까?”
백장이 잠자코 있으니, 대사가 말했다.
“뒷사람들로 하여금 끊이지 않도록 하십시오.”
백장이 말했다.
“장차 그대가 그런 사람이 되겠구나.”
그리고는 일어나서 방장으로 들어가니, 대사가 뒤를 따라 들어가서 말했다.
“저는 일부러 찾아왔습니다.”
“그렇다면 뒷날에 나를 저버리지 말라.”

어느 날 백장이 대사에게 물었다.
“어디를 갔다 오는가?”
“대웅산大雄山 밑에서 버섯을 따고 옵니다.”
“호랑이[大蟲]를 보았는가?”
대사가 호랑이 소리 흉내를 내니, 백장이 도끼를 들고 찍으려는 시늉을 했다. 대사가 백장을 한 대 갈기니, 백장이 껄껄 웃고는 돌아가 버렸다.
상당하여 대중에게 말했다.
“대웅산 밑에 호랑이가 한 마리 있으니, 여러분은 조심하시오. 늙은 백장도 오늘 한 차례 물렸소.”
대사가 남전南泉에 있을 때에 울력으로 나물을 다듬는데, 남전이 물었다.
“어디를 가시오?”
“나물을 다듬으러 갑니다.”
“무엇으로 다듬는가요?”
대사가 칼을 번쩍 드니, 남전이 말했다.
“여러 사람이 나물을 다듬는군.”

어느 날 남전이 대사에게 말했다.
“내가 우연히 목우가牧牛歌를 지었는데 장로長老가 화답해 주시오.”
“저에게는 따로 스승이 계십니다.”
대사가 하직하고 떠나는데 남전이 문밖까지 전송을 나왔다가 대사의 삿갓을 번쩍 들고 말했다.
“장로의 몸은 몹시 큰데 삿갓은 퍽 작구려.”
대사가 말했다.
“그렇지만 대천세계가 몽땅 이 속에 들어 있습니다.”
남전이 다시 말했다.
“왕王 노사老師는 적聻 부정하는 소리이니 자기는 그 삿갓 속에 있지 않다는 말이다. 
이오.”
대사는 그대로 삿갓을 쓰고 떠났다.

그 뒤에 홍주洪州 대안사大安寺에 머물렀는데 학자들이 밀물같이 모였다. 당시에 정승[相國]인 배휴裵休가 완릉宛陵 지방을 다스렸다. 그는 대선원大禪苑을 짓고 대사에게 설법을 청했는데, 대사가 본래 머물던 산을 몹시 사랑하므로 다시 황벽黃檗이라 불렀다. 나중에 또 고을로 청해 모시면서 자기가 저술한 글 한 편을 대사에게 보이니, 대사는 이를 받아서 자리 옆에 놓고 대략 훑어보지도 않고 가만히 침묵하다가 말했다.
“알겠는가?”
“모르겠습니다.”
“문득 이렇게 회통한다면 오히려 비슷하겠지만, 만약 종이나 먹으로 표시한다면 어찌 나의 종지라 하겠는가?”
배휴는 다시 시 한 수를 지어 바쳤다.

대사로부터 심인心印을 전해 받은 뒤로
이마에 둥근 구슬이 있는 일곱 자 몸이
석장을 건 채 10년을 촉수蜀水에 살다가
돛단배를 띄워 오늘 장빈章濱을 건너왔네.
自從大士傳心印    額有圓珠七尺身
掛錫十年棲蜀水    浮盃今日渡章濱

천 명의 용상龍象들의 고고한 행보를 따르고
만 리의 향기로운 꽃으로 좋은 인因을 맺어서
스승으로 섬기면서 제자가 되기를 원하는데
장차 그 법을 누구에게 부촉할지 모르겠구나.
一千龍象隨高步    萬里香華結勝因
擬欲事師爲弟子    不知將法付何人

[앞에 서술한 것을 보건대, 황벽 선사가 홍주洪州의 대안사大安寺에 있을 때에 배공裵公이 선주宣州에다 절을 짓고 대사를 청해 살게 하여 황벽이라 했다. 또 시를 바쳤다고 하였는데 서술한 일과 시의 뜻이 전혀 부합되지 않는다. 이제 이 시를 상고하건대 이는 배공이 홍주에 있을 때에 지은 것이다. 석장 걸고 10년을 촉수蜀水에 살았다고 한 것은 대사가 먼저 고안高安의 황벽黃蘗에 산 지가 10년이 된 것을 말한다. 󰡔전한지리지前漢地理誌󰡕를 보건대 예장군豫章郡 건성현建成縣에 촉수蜀水가 있다고 했으니 건성은 당唐의 고안현高安縣에 해당한다. “부배浮盃에서 오늘날 장빈章濱을 건너왔네” 한 것은 황벽에서 대사를 홍성洪城으로 청해 온 것이니 󰡔전한지리지󰡕에 의하건대 예장강<豫章水>은 장빈현 서남에서 시작하여 북쪽 큰 강으로 흘러 들어갔다고 하였으니 홍주성洪州城이 장수章水 곁에 있고 고을 이름도 예장豫章이기 때문이다. 또 배공이 지은 󰡔전심법요傳心法要󰡕 서序에 말하기를 “큰 선사가 있으니 이름은 희운希運이다. 홍주洪州의 고안현에 있는 황벽산黃蘗山의 취봉鷲峰 밑에 살았는데 학인들이 항상 천 명이 넘었다. 내가 회창會昌 2년에 종릉鍾陵을 다스리다가 산에서 고을로 모셔다가 용흥사龍興寺에 계시게 하고 조석으로 도를 물었고, 대중大中 2년에는 완릉宛陵으로 전근되자 다시 고을로 모셔다가 개원사開元寺에 계시게 했다”라고 하였으니, 종릉은 홍주洪州요, 완릉은 선주宣州이다. 이 글을 보더라도 대사가 먼저는 고안의 황벽에 계신 것을 배공이 홍주로 청해 모셨다 했으니 앞의 시와 부합되고, 선주로 옮겼을 때에 다시 대사를 맞이했으나 개원사에 계시게 했다 했을 뿐 전혀 절을 지었다는 말이 없는데 여기서는 왜 이렇게 착오가 났는지 모르겠다. 그러니 배공의 󰡔전심법요󰡕 서序와 시詩가 바른 것이라고 여겨진다. 또 회창會昌 3년에 무종武宗이 불교를 폐지시켰는데 그 이듬해에 대사가 황벽에 숨어 있은 지 이미 10년이 되었다 한 것은 필연한 일이요, 배공이 선주에 대사를 청한 것은 대중大中 때에 중흥한 뒤에 대사가 다시 황벽에서 무리를 모을 때이다. 그러므로 천경남공장千頃南公章에 말하기를 “대중 초에 배공이 완릉을 다스리러 나왔다가 황벽 화상을 산에서 나오라고 청하니 남공도 따라갔다”라고 하였다. 그밖에 것은 배공장裵公章에 있다.]

대사는 여전히 기뻐하는 기색이 없었다. 이로부터 황벽 문중의 기풍이 강표江表에 성행했다.

어느 날 상당하여 대중이 구름처럼 모이자, 이내 말했다.
“그대들은 무엇을 구하고 싶은가?”
그리고는 몽둥이로 쫓아 버리면서 말했다.
“모두가 술 찌꺼기를 먹는 놈들이니, 이렇게 행각을 하다가는 남에게 비웃음을 당하리라. 다만 8백 명, 천 명이 모인 곳이 보이기만 하면 갈 것이며, 공연히 시끄럽게 떠들려고 하지 마라. 노승이 행각할 때에 풀포기 밑에서 한 사람을 만나면 문득 정수리에다 한 바늘 찔러 보아서 아픈 줄 알면 자루에다 쌀을 담아다가 공양하려 했는데, 만약 모두가 그대들처럼 그저 이렇게 편하게 있었다면 어디선들 오늘의 일[今日事:本分事]이 있었겠는가? 그대들이 이미 행각을 자처하였으니 모름지기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할 것이다. 대당국大唐國 안에 선사가 없다는 것을 알겠는가?”
그때 어떤 스님이 나서서 물었다.
“제방諸方의 존숙尊宿들이 모두가 대중을 모아 놓고 교화하는데, 어찌하여 선사禪師가 없다고 하십니까?”
대사가 말했다.
“선禪이 없다는 것이 아니라, 스승[師]이 없다고 말했을 뿐이다. 그대[闍梨]는 보지 못했는가? 마 대사 휘하에서 88인이 도량에 앉았지만, 마 대사의 올바른 안목을 이어받은 이는 불과 두세 사람이니, 여산廬山 화상이 그 중의 하나이다. 무릇 출가한 사람은 위로부터 전해온 일의 분수가 있음을 알아야 한다. 가령 4조 휘하의 우두牛頭 융融 대사가 종횡으로 거침없이 말했으나 오히려 향상의 문빗장은 알지 못하였으니, 이런 안목과 두뇌가 있어야 바야흐로 삿되고 바른 무리를 가릴 수 있으리라. 또 자기 자신의 실제는 능히 체달하지 못한 채 다만 말만을 배워서 가죽 주머니에 넣고 가는 곳마다 자기가 선을 안다고 칭하지만, 도대체 그대들의 생사를 면하게 할 수 있겠는가? 노숙老宿들을 가벼이 여기면 지옥에 빠지기가 화살처럼 빠르리라. 나는 문으로 들어오는 것만 보아도 문득 그대를 다 알아챈다. 알겠는가? 시급히 노력해야지 용이한 일로 여기지 말라. 한 조각 옷을 들고 입에 밥을 넣으면서 일생을 헛되이 보내지 말지니, 눈 밝은 사람이 그대를 비웃을 것이다. 그대가 오랜 뒤에 모두가 속물이 되어서 벗어날 것을 생각한다면, 마땅히 스스로 멀건 가깝건 누구 얼굴 위의 일인지 살펴야 한다. 만일 이해하면 즉각 모일 것이고, 만약 이해하지 못하면 즉시 흩어져 가거라.”
“어떤 것이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대사가 갑자기 때렸다. 그밖에 갖가지 시설施設도 모두가 상근기에 속하는 것이고, 중근기와 하근기는 엿보지도 못하는 것이었다.
당나라 대중大中 때에 본산에서 임종하니, 단제斷際 선사라는 시호를 하사했고, 탑호는 광업廣業이라 하였다.


항주杭州 대자산大慈山 환중寰中 선사
그는 포판蒲阪 사람으로서 성은 노盧씨이다. 정수리의 뼈가 봉우리같이 솟았고 음성이 종소리 같았는데, 어릴 때에 부모를 잃자 무덤 곁에 초막을 짓고 상복을 입은 채 망극한 은혜에 보답하려고 하였다. 그 후 병주幷州의 동자사童子寺에서 출가하였고, 숭악嵩嶽에서 계를 받고 온갖 율학律學을 익혔다.
나중에 백장을 뵙고서 심인心印을 받았으며, 그곳을 떠나 남악의 상락사常樂寺로 가서는 산봉우리에다 띠집을 짓고 살았다.
어느 날 남전南泉이 와서 물었다.
“어떤 것이 암자庵子 안의 주인인가?”
대사가 대답했다.
“아이고, 아이고.”
“통곡하는 것은 그만두고, 어떤 것이 암자 안의 주인인가?”
“알기야 알겠지만 거만하게 굴지 마시오.”
남전이 옷소매를 떨치고 나가 버렸다.

나중에 절강성浙江省의 대자산大慈山에 머물렀는데, 상당하여 말했다.
“산승山僧은 답은 풀 줄 모른다. 다만 병은 능히 알아챌 수 있다.”
이때에 어떤 스님이 대사(환중)의 앞으로 나와서 서니, 대사가 문득 법좌에서 내려와 방장으로 돌아갔다.[법안法眼이 말하기를 “대중 가운데서 병이 눈앞에 있다 하여도 알지 못한다”라고 하였다. 현각玄覺이 말하기를 “말해 보라. 대자大慈가 병을 아는가, 알지 못하는가? 이 스님이 나온 것이 병인가, 병이 아닌가? 병이라면 매일 다니고 서는 것을 모두 병이라 하지 못할 것이요, 병이 아니라면 나와서 무엇 하리오?”라고 하였다.]
조주趙州가 물었다.
“반야般若의 본체는 무엇입니까?”
대사가 대답했다.
“반야의 본체는 무엇인가?”
조주가 껄껄 웃으면서 나갔는데, 대사는 이튿날 조주가 마당 쓰는 것을 보고 물었다.
“반야의 본체는 무엇인가?”
조주가 비를 놓고 손뼉을 치면서 크게 웃자, 대사는 문득 방장으로 돌아가 버렸다.

어떤 스님이 하직하니, 대사가 물었다.
“어디로 가는가?”
“강서江西에 잠시 다녀오겠습니다.”
“내가 그대에게 한 가지 수고를 끼쳐야겠는데, 되겠는가?”
“화상께서 무슨 일이십니까?”
“노승老僧 한 분을 구해서 모시고 오라.”
“화상을 능가하는 사람은 또한 얻을 수 없습니다.”
대사가 문득 그만두었다. 그 스님이 나중에 동산洞山에게 이 이야기를 하자, 동산이 말했다.
“그대가 어찌 이러한 말에 응대를 할 수 있었겠는가?”
“화상이시라면 이러한 말에 어찌 응대하시겠습니까?”
“이미 구했다.”[법안法眼이 따로 말하기를 “화상께서 가시면 제가 삿갓을 들고 가겠습니다”라고 하였다.]
동산이 또 그 스님에게 물었다.
“대자大慈께서는 그밖에 다른 말씀이 있던가?”
“어느 때 대중에게 말씀하기를 ‘한 길[丈]을 말하는 것이 한 자[尺] 걷는 것만 못하고, 한 자를 말하는 것이 한 치[寸]를 걷는 것만 못하다’고 하셨습니다.”
“나 같으면 그렇게 말하지 않겠다.”
“어떻게 말씀하겠습니까?”
“말하면 행할 수가 없고, 행하면 말할 수가 없다.”[운거雲居가 말하기를 “행할 때에는 말이 없고 말할 때에는 행이 없다고 하였으니, 말하지도 행하지도 않을 때에는 어느 길로 가야 하겠는가?”라고 하였다. 낙보樂普가 말하기를 “행과 말이 함께 이르면 본래의 일이 없고 행과 말이 이르지 않으면 본래의 일이 있지 않다”라고 하였다.]
나중에 당나라 무종武宗이 불교를 폐지하자, 대사는 천민의 복장[短褐]을 하고 은둔하다가, 대중大中 임신년壬申年에 다시 머리를 깎고 종지宗旨를 크게 선양했다. 
함통咸通 3년 2월 15일에 병 없이 임종하니, 수명은 83세이고 법랍은 54세였다. 희종僖宗이 성공性空 대사라 시호를 내렸고, 탑호를 정혜定慧라 하였다.

천태산天台山 평전平田 보안普岸 선사
그는 홍주洪州 사람이다. 백장百丈의 문하에서 종지를 얻은 뒤에 천태산天台山의 수승한 경치에서 성현이 가끔 난다는 말을 들었다. 그래서 한번 가보고자 하여 멀리 찾아가서 띠집을 짓고는 숲 밑에서 조용히 참선을 했는데, 세월이 흐르면서 사부대중에게 알려지게 되어 큰 절을 짓고 평전선원平田禪院이라 하였다.
어느 때 대중에게 말했다.
“신령한 광명이 어둡지 않아서 만고萬古에 빛나니, 이 문에 들어와서는 알음알이[知解]를 두지 말라.”
어떤 스님이 와서 뵙자, 대사는 주장자로 한 번 때렸다. 그 스님이 가까이 와서 주장자를 잡으니, 대사가 말했다.
“노승이 아까는 너무 경솔했구나.”
스님이 대사를 주장자로 한 번 때리니, 대사가 말했다.
“작가作家로구나. 작가야.”
그 스님이 절을 하니, 대사가 붙들고 말했다.
“이 사리(闍梨:그대)가 너무 급하구나.”
그 스님이 껄껄 웃자, 대사가 말했다.
“이 사승師僧이 오늘 크게 당했구나.”

언젠가 게송으로 대중에게 보였다.

큰 도는 텅 비어서
항상 하나의 참된 마음이니
선도 악도 생각하지 말라.
신神이 맑아 사물이 표현되면
인연 따라 먹고 마실 뿐이니
그밖에 다시 무엇을 하랴.
大道虛曠    常一眞心    
善惡勿思    神淸物表
隨緣飮啄    更復何爲

본원(本院:平田禪院)에서 임종하니, 지금도 산문山門에 탑이 남아 있다. 송조宋朝에서 더욱 잘 중수하고 수창壽昌이라는 편액을 하사하니, 보안 선사는 곧 수창선원壽昌禪院의 개산조開山祖이다.

균주筠州 오봉五峰 상관常觀 선사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오봉五峰의 경지입니까?”
대사가 말했다.
“험하다.”
“어떤 것이 경계 안의 사람입니까?”
“막혔다.”

어떤 스님이 하직하니, 대사가 말했다.
“사리闍梨여, 어디로 가려는가?”
“오대산五臺山으로 가겠습니다.”
대사가 손가락 하나를 세우고 말했다.
“만일 문수文殊를 만나고 나면 이리로 오라. 그대를 만나 주리라.”
그 스님이 대답이 없었다.

대사가 어떤 스님에게 물었다.
“그대는 소를 본 일이 있는가?”
“보았습니다.”
“왼쪽 뿔을 보았는가, 오른쪽 뿔을 보았는가?”
그 스님이 대답이 없으니, 대사가 스스로 대답하였다.
“보는 것에는 왼쪽과 오른쪽이 없다.”[앙산仰山이 따로 말하기를 “좌우를 분별할 수가 있기는 한가?”라고 하였다.]
또 어떤 스님이 하직하자, 대사가 말했다.
“그대가 제방諸方에 가거든 노승이 여기에 있다고 비방하지 말라.”
“저는 화상께서 여기에 계시다고 말하지 않겠습니다.”
“그대는 노승이 어디에 있다고 말하겠는가?”
그 스님이 손가락 하나를 세우자, 대사가 말했다.
“벌써 노승을 비방하는구나.”

담주潭州 석상산石霜山 성공性空 선사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대사가 대답했다.
“어떤 사람이 천 길 우물 속에 빠졌는데 한 치의 노끈도 쓰지 않고 그 사람을 건져낼 수 있다면, 그때 그대에게 서쪽에서 오신 뜻을 대답해 주리라.”
“요사이 호남湖南에 창暢 화상이 세상에 나셨는데, 그도 역시 종횡으로 막힘없이 설법을 하십니다.”
대사가 사미沙彌를 불러서 분부했다.
“이 송장을 끌어내라.”[사미는 앙산仰山이다.]
사미가 나중에 탐원耽源에게 이를 말하면서 물었다.
“어찌하여야 우물 속의 사람을 건져내겠습니까?”
탐원이 대답했다.
“에잇, 어리석은 놈아, 누가 우물 속에 있단 말이냐?”
앙산은 나중에 위산潙山에게 물었다.
“어찌하여야 우물 속의 사람을 건져내겠습니까?”
위산이 불렀다.
“혜적慧寂아.”
혜적이 대답했다.
“네.” 
위산이 말했다.
“건졌다.”
나중에 (혜적이) 앙산에 살기 시작한 뒤에 앞의 이야기를 들면서 대중에게 말했다.
“나는 탐원의 처소에서 이름[名]을 얻었고, 위산의 처소에서 땅[地]을 얻었다.”

복주福州 대안大安 선사
그는 본주(本州:福州) 사람으로서 성은 진陳씨이다. 어릴 때에 황벽산黃檗山에서 공부하면서 계율을 두루 익혔는데, 혼자 생각하기를 ‘내가 아무리 애써 고행하여도 현극玄極의 진리는 듣지 못했다’고 하면서 혼자서 길을 떠났다. 장차 홍주洪州까지 가는 길에 상원上元에 도착했을 때 한 늙은이를 만났는데, 그가 대사(대안)에게 말했다.
“대사가 남창南昌으로 가면 반드시 얻는 바가 있을 것이다.”
대사는 바로 백장산百丈山으로 가서 절을 하고 물었다.
“학인學人이 부처를 알고자 하는데, 어느 것입니까?”
“흡사 소를 타고 소를 찾는 것과 같다.”
“알아챈 뒤에는 어떠합니까?”
“사람이 소를 타고 집에 이른 것과 같다.”
“처음부터 끝까지 어떻게 보임保任해야 합니까?”
“소 먹이는 사람이 지팡이를 들고 지키면서 남의 밭을 침범하지 않게 하는 것과 같으니라.”
대사가 이로부터 종지를 깨달아 다시는 밖으로 구하지 않았다. 
같이 참구하던 영우靈祐 선사가 위산에 절을 지으니, 대사는 몸소 밭을 갈면서 수도하였다. 그러다 영우 선사가 입적하자 대중이 뒤를 이어 주지되기를 청했다.
대사가 상당上堂하여 대중에게 말했다.
“그대들은 모두 와서 편안히 있으면서 무엇을 찾고 있는가? 만일 부처가 되고 싶다면 그대들 스스로가 부처인데도 옆집으로 달리는구나. 바쁘게 헤매기를 마치 목마른 노루가 아지랑이를 쫓는 것과 같으니, 어느 때에나 상응相應할 수 있겠는가? 그대들이 부처가 되고 싶다면, 다만 허다한 뒤바뀜ㆍ반연․망상ㆍ나쁜 지각ㆍ더러운 욕망 따위의 청정치 못한 중생심이 없어지면 그대들은 문득 초발심의 정각인 것이니, 부처를 다시 어디에서 따로 찾겠는가? 
그러므로 나도 위산에서 30년 동안 지내면서 위산의 밥을 먹고 위산의 똥을 싸면서도 위산의 선을 배우지는 않았고, 다만 한 마리 검정 암소를 돌보았을 뿐이다. 그 놈이 풀밭으로 들면 곧 끌어냈고, 남의 밭에 침범하면 즉시 채찍으로 길들였는데, 이것이 오래되자 요 기특한 놈이 사람의 말을 잘 들어서 지금은 맨땅의 흰 소[露地白牛]로 변하여 항상 면전에 있다. 그리하여 종일토록 훤하게 드러나 있어서 쫓아도 가지 않는다.
그대들은 각자 값을 따질 수 없는 크나큰 보배를 가지고 있다. 그리하여 눈의 문으로부터 광명을 놓아서 산하대지를 비추고, 귀의 문으로부터 광명을 놓아서 온갖 선악의 소리를 듣는다. 이처럼 여섯 문으로 밤낮 없이 항상 광명을 놓으니, 이를 이름하여 방광삼매放光三昧라 한다. 하지만 그대들 스스로 알아채지 못하고서 4대大의 몸속에서 그림자를 취한다. 안과 밖에서 붙들어 유지하면서 옆으로 기울지 않게 하는 것이 마치 사람이 무거운 짐을 지고 외나무다리를 건너도 발을 실족하지 않게 하는 것과 같으니, ‘이 어떤 물건인가?’ 하고 맡겨서 유지하면 문득 이러함[如是]을 얻겠지만, 그러나 그대들이 털끝만치라도 찾으려고 들면 보지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지공誌公 화상이 말하기를 ‘안과 밖에서 찾아다니면 전혀 없지만, 경계 위에서 활동할 때에는 어디나 있다’고 한 것이다.”
어떤 이가 물었다.
“온갖 활동[施]이 법신法身의 작용이라 하는데, 어떤 것이 법신입니까?”
“온갖 활동이 법신의 작용이니라.”
어떤 스님이 물었다.
“5온蘊을 여의고서 어떤 것이 본래의 몸입니까?”
“땅[地]ㆍ물[水]ㆍ불[火]ㆍ바람[風]과 수受ㆍ상想ㆍ행行ㆍ식識이니라.”
“그것은 5온이 아닙니까?”
“이것은 다른 5온이다.”
어떤 이가 물었다.
“이 몸[陰]이 이미 다하고 저 몸이 아직 생겨나지 않았을 때에는 어떠합니까?”
“이 몸이 다하지 않았을 때에는 어떤 것이 그대[大德]인가?”
“모르겠습니다.”
“이 몸을 알면 문득 저 몸도 분명하다.”
어떤 이가 물었다.
“대용大用이 현전해서 궤칙軌則에 얽매지 않을 때에는 어떠합니까?”
“그대가 작용하면 다만 작용하게 된다.”
그 스님이 옷을 벗고 대사를 세 바퀴 도니, 대사가 말했다.
“위로 향하는 일[向上事]은 어째서 말하지 못하는가?”
그 스님이 입을 열려고 하자, 대사가 문득 때리면서 말했다.
“이 들여우 귀신같은 놈아, 썩 나가라.”

어떤 스님이 법당法堂에 올라가서 동서를 두리번거리면서도 대사를 보지 못하고 말했다.
“좋은 법당에 사람이 없구나.”
대사가 문으로 나가면서 말했다.
“어떤가?”
그 스님이 대답이 없었다.

설봉雪峰 화상이 산에 갔다가 나뭇가지 하나를 얻었는데 그 형상이 마치 뱀과 같았다. 그래서 등 쪽에다 “본래 스스로 천연天然이지 조탁雕琢을 빌리지 않는다”라고 새겨서 대사에게 갖다 주니, 대사가 말했다.
“본래 산에 사는 사람도 칼이나 도끼의 흔적은 없다.”

어떤 이가 대사에게 물었다.
“부처님께서 어디에 계십니까?”
“마음 밖에 있지 않다.”
“쌍봉 상인(雙峰上人:六祖)은 무엇을 얻었습니까?”
“법은 얻을 바가 없다. 설사 얻은 바가 있다 해도 본래 얻음 없음을 얻은 것이다.”

어떤 스님이 물었다.
“황소黃巢 반란을 일으킨 장수 이름이다.
의 군대가 오면 화상은 어디로 피하시겠습니까?”
“5온산蘊山으로 간다.”
“만일의 경우 그들에게 잡히면 어찌하겠습니까?”
“반란을 일으킨 장군이구나.”
대사가 민성閩城에서 크게 교화하기를 20여 년 계속하다가 당나라 중화中和 3년 10월 22일에 황벽사黃檗寺로 돌아가서 병으로 인하여 임종하니, 능가산楞伽山에 탑을 세우면서 원지圓智 선사 증진證眞의 탑이라는 시호를 내렸다.

복주福州 고령古靈 신찬神贊 선사 
고향[本州]의 대중사大中寺에서 출가 생활을 하다가 나중에 행각을 나서서 백장百丈을 만나 깨닫고는 다시 본사本寺로 돌아왔다. 은사恩師가 물었다.
“그대는 내 곁을 떠나서 어떤 사업을 익히고 왔는가?”
“아무런 사업도 익히지 않았습니다.”
드디어 일을 잡도록 했는데, 어느 날 은사가 목욕을 하다가 대사에게 등을 밀라고 하니, 대사가 등을 문지르면서 말했다.
“좋은 불전佛殿인데 부처가 성스럽지 못하구나.”
그의 스승이 고개를 돌려서 보자, 대사가 또 말했다.
“부처가 성스럽지는 못하나, 능히 광명은 놓는구나.”
은사가 어느 날 창 밑에서 경을 읽는데, 벌이 들어왔다가 창호지에 부딪치면서 나가려고 하였다. 대사가 이를 보고 말했다.
“세계가 저처럼 넓은데 나가려 하지 않고 창호지만을 두드리고 있으니, 나귀 해[驢年] 12지支에 없는 해로, 실현될 가능성이 없음을 비유하는 말이다.
에나 나가겠군.”
그의 스승이 경전을 덮고 물었다.
“너는 행각을 하다가 누구를 만났느냐? 내가 아까부터 그대의 말을 듣자니, 범상치 않구나.”
“백장 화상께서 저에게 쉴 곳을 가르쳐 주셨는데, 이제 제가 은사의 덕을 갚으려는 것뿐입니다.”
그러자 그의 스승이 대중에게 고하여 공양을 장만하고 대사에게 설법을 청하니, 대사가 법좌에 올라서 백장 문중의 기풍을 제창하면서 설법을 하였다.
“신령스런 광명이 홀로 빛나면서 영원히 근진根塵 몸과 환경을 아울러 이르는 말이다.
을 초탈했으니, 체體는 참되고 항상함을 드러내어 문자에 구애받지 않는다. 마음의 성품은 물들지 않아서 본래 스스로 원만히 이루었으니, 오직 허망한 반연만 여의면 그대로 여여한 부처이다.”
그의 스승이 이 말끝에 감응하여 깨닫고서 말했다.
“늘그막에 이런 지극한 설법을 들을 줄이야 누가 알았으랴?”

나중에 고령사古靈寺에 머물면서 대중을 모아 몇 년간 교화하였다. 임종이 가까워지자 머리를 깎고 목욕하고는, 종을 울린 뒤에 대중에게 말했다.
“그대들은 소리 없는 삼매를 아는가?”
대중이 말했다.
“모릅니다.”
“그대들은 조용히 들어라. 다른 생각을 말라.”
대중이 모두 귀를 기울이고 있는데, 대사가 엄숙히 입적하니 본산에다 탑을 세웠다.

광주廣州 화안사和安寺 통通 선사
무주婺州 쌍림사雙林寺에서 공부를 하였는데, 어릴 때부터 말수가 적었으므로 당시 사람들이 말하지 못하는 통通 수좌首座라 불렀다.
부처님께 절을 하는데 어떤 선객이 와서 물었다.
“좌주座主가 절하는 것은 누구에게 하는가?”
“부처님입니다.”
선객이 불상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저것이 무슨 물건인가?”
대사가 대답을 못했다. 밤중이 되자 위의를 갖추어서 절하고는 선객에게 물었다.
“오늘 물은 바를 저는 모르겠는데, 그 뜻이 무엇입니까?”
선객이 물었다.
“좌주의 법랍이 얼마나 되오?”
“10년입니다.”
“출가하신 일이 있소?”
대사가 어리둥절해 하자, 선객이 말했다.
“만일 모른다면 백 살인들 어찌하겠소?”
그 선객이 같이 마조馬祖를 뵙자고 해서 강서江西로 갔는데, 마조는 이미 입적했다. 그래서 백장百丈을 뵙고는 의심이 단박에 풀렸다.

어떤 사람이 물었다.
“스님께서는 선사이십니까?”
“나는 선을 배운 적이 없다.”
대사가 한참 있다가 다시 그 사람을 부르자, 그 사람이 응답했다. 대사가 종려나무[椶櫚樹]를 가리켰다.[그 사람은 대답이 없었다.]

어느 날 대사가 앙산仰山에게 분부하여 평상을 가져 오라고 했다. 앙산이 가져오자 대사가 말했다.
“본래의 자리로 보내라.”
앙산이 그 말을 따르자, 대사가 말했다.
“평상 저쪽은 어떤 물건인가?”
“아무 물건도 없습니다.”
“이쪽은 무슨 물건인가?”
“아무 물건도 없습니다.”
대사가 불렀다.
“혜적아.” 
앙산이 대답했다.
“예.” 
대사가 말했다.
“가거라.”
강주江州 용운龍雲 대臺 선사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조사께서 서쪽으로 오신 뜻입니까?”
“노승老僧이 지난밤에 외양간 안에서 소를 잃었다.”

경조京兆[목록과 󰡔정종기正宗記󰡕에는 모두 낙경洛京이라 하였        다.] 위국원衛國院 도道 선사
어떤 스님이 와서 뵙자, 대사(도 선사)가 물었다.
“어디서 오는 길인가?”
스님이 말했다.
“상남湘南에서 왔습니다.”
“황하黃河의 물이 맑은가?”
그 스님은 대답이 없었다.[위산潙山이 대신 말하기를 “‘이 꼬마야, 건너려거든 건너지, 의심은 해서 무엇 하려느냐?’ 할 것을……”이라고 하였다.]

대사가 병이 났을 때 어떤 사람이 문병을 왔는데 대사가 나오지 않으니, 그 사람이 말했다.
“화상의 도덕道德을 들은 지 오래되었습니다. 홀연히 법체가 불안하다는 말을 듣고 뵈러 왔습니다.”
대사가 발우 틀[鉢鐼]에다 발우를 담아서 시자를 시켜 내다 바치게 하니, 그 사람이 대답하지 못했다.

진주鎭州 만세萬歲 화상
어떤 스님이 물었다.
“대중이 모였습니다. 무슨 이야기를 하는 것이 좋을까요?”
대사가 말했다.
“「서품序品」 제1이니라.”[귀종歸宗이 따로 말하기를 “절이나 하고 물러가라”고 하였다.]

홍주洪州 백장산百丈山 유정惟政 선사[이 전기傳記는 예전 책    에는 제6권에 마조의 법손인 대주大珠 화상 다음에 있었는데, 이제 그 내용으로 미루어 보아 이 권으로 옮겨다 백장百丈 회해懷海 선사의 법손에다 삽입하고 백장百丈 열반涅槃 화상의 전기로 삼는다. 당唐의 유공권柳公權이 쓰고 무익황武翊黃이 지은 열반화상비涅槃和尙碑에 말하기를 “대사의 휘諱는 법정法正인데, 그가 󰡔열반경󰡕을 잘 강하였으므로 열반이라는 칭호가 붙었다”라고 하였으니, 이제 이 문장에 말하기를 “그대는 나의 밭을 개간해 다오. 나는 그대에게 큰 이치를 말해 주리라”고 했으니, 그것이 열반 화상임이 분명하다. 또 남전南泉을 보고 사형<伯>이라 했으니, 백장의 제자임이 분명하다. 그렇지만 유정惟政과 법정法正의 두 이름이 다른 것은 무엇인가? 쓰기를 잘못한 까닭일 것이다. 또 홍각범洪覺範의 󰡔임간록林間錄󰡕에서도 예전 책이 잘못되었다고 했고, 󰡔정종기󰡕에는 유정과 법정 두 이름이 있으나, 백장은 대수<代>를 셀 수 있고, 분명한 교법에는 이름만이 같지 않을 뿐이니 분별하여서 함께 둘 수 없으므로 이제는 비문을 바른 것이라 여긴다. 또 󰡔경공사원卿公事苑󰡕에는 말하기를 “백장百丈 열반涅槃 화상은 위산潙山의 제자요, 백장의 손자다”라고 했으니, 이는 더욱 엄청난 착오로서 취할 바가 못 된다.]
어느 날 스님에게 말했다.
“그대가 나의 몫으로 밭을 일궈 주면, 나는 그대에게 큰 이치를 말해 주리라.”
그 스님이 밭을 일궈 놓고 돌아가서 큰 이치를 말씀해 달라고 하니, 대사가 두 손을 벌렸다.
어떤 노숙老宿이 햇빛이 창틈으로 비친 것을 보고 대사에게 물었다.
“창이 해의 곁으로 갔는가, 해가 창 곁으로 왔는가?”
대사가 대답했다.
“노스님 방에 손님이 왔으니 가 보십시오.”
대사가 남전에게 물었다.
“제방의 선지식들이 아직 남에게 말하지 않은 법이 있을까요?”
“있소.”
“어떤 것입니까?”
“마음도 부처도 아니라는 것이오.”
“그런 것은 말하였을 것입니다.”
“나는 이렇게 하겠소.”
“사형께서는 어찌하시려는 것입니까?”
“나는 선지식이 아니거니 어찌 말했는지 않았는지를 알겠는가?”
“제가 잘 모르겠으니, 사형께서 말씀해 주십시오.”
“나는 그대를 위해 힘껏 이야기했다.”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부처님끼리의 도가 같은 것입니까?”
“선정이니라.”
대사가 서울을 가다가 길에서 어떤 관원을 만났는데 밥을 먹으라 했었다. 때마침 나귀가 우는 것을 보고 관인이 “두타頭陀여” 하고 불렀다. 대사가 머리를 드니, 관인이 나귀를 가리켰다. 대사는 다시 관원을 가리켰다.[법안法眼이 대신 말하기를 “나귀의 울음소리만을 해야 할 것이다”라고 하였다.]

홍주洪州 동산東山 혜慧 화상
산 구경을 하다가 바위 하나를 보고 어떤 스님이 물었다.
“이 바위에 주인이 있습니까?” 
“있다.”
“어떤 사람입니까?”
“세 집이 사는 외딴 마을[三家村]에서 무엇을 찾는가?”
그 스님이 또 물었다.
“어떤 것이 바위 안의 주인입니까?”
“어찌 그리 숨이 가쁘냐?” 숨결이 급해서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고 하는 말이다. 


젊은 스님이 행각 길에서 돌아오자, 대사가 물었다.
“그대는 나를 떠나 밖에 있은 지 얼마나 되는가?”
“10년입니다.”
“동쪽․서쪽을 가리키지 말고 곧바로 말해 보라.”
“화상 앞에서는 감히 거짓말을 하지 못하겠습니다.”
대사가 할을 하면서 말했다. 
“이 상놈아.”

청전淸田 화상
어느 날 청전淸田 화상이 도瑫 상좌上座에게 차를 달여 주는데, 대사가 승상繩床을 세 번 치자 도 상좌도 세 번 쳤다. 대사가 말했다.
“내가[老僧] 승상을 두드린 것에는 훌륭한 방편이 있지만, 상좌가 두드린 것에는 무슨 도리가 있는가?” 
“제가 두드린 것에도 방편이 있는데, 화상께서 두드린 뜻은 무엇입니까?”
대사가 잔을 번쩍 들어 보이자, 도 상좌가 말했다.
“선지식의 안목은 마땅히 그러해야 합니다.”
차를 달이고 나서 도 상좌가 다시 물었다.
“화상께서 아까 잔을 드신 뜻이 무엇입니까?”
“다른 도리가 있을 수 없다.”

대우大于 화상
대우大于 화상이 남용南用과 함께 다실[茶堂]에 갔는데, 어떤 스님이 가까이 와서 인사를 하자, 남용이 말했다.
“나도 그대를 용납하지 않았고, 그대도 나를 보지 못했는데, 누구에게 인사를 하는가?”
그 스님이 말이 없으니, 대사가 말했다.
“평평한 순백의 땅[平白地] 시비가 없는 경지를 말한다.
에서는 그렇게 묻지 말아야 한다.” 
남용이 말했다.
“대우도 말이 없구나.”
대사가 그 스님을 붙들고 말했다.
“네가 이러하니, 나를 욕되게 하는 것도 이렇구나.”
그리고는 한 대 때렸다. 남용이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맑은 달과 푸른 하늘이구나.”

시자가 와서 보살피니 대사가 물었다.
“금강金剛의 올바른 선정에서는 일체가 그러하지만, 가을이 가고 겨울이 오는 것은 또 어찌하겠는가?”
“화상께서 물으시는 것을 방해하지 않겠습니다.”
“지금은 방해하지 않지만 떠난 뒤에는 어찌하겠는가?”
“누가 감히 저에게 묻겠습니까?”
“대우는 얻은 바가 있는가?”
“그래도 다른 사람의 점검이 필요합니다.”
“종사를 잘 보좌해서 광채를 없애지 않게 하라.”
시자가 절을 하였다.

앞의 건주虔州 서당西堂 지장智藏 선사의 법손

건주虔州 처미處微 선사
어떤 스님이 물었다.
“3승 12분교에서 이理를 체달하여 묘함을 얻으면, 조사의 뜻과 같습니까, 다릅니까?”
“그렇다면 반드시 여섯 구절 밖을 향하여 비추어야지, 저 색과 소리를 따라 구르지 않아야 하리라.”
“어떤 것이 여섯 구절입니까?”
“말함․침묵함․말하지 않음․침묵하지 않음․모두 옳음․모두 옳지 않음이다. 그대는 어떻게 계합하겠는가?”
그 스님은 대답이 없었다.

대사가 앙산仰山에게 물었다.
“그대의 이름이 무엇인가?”
“혜적慧寂입니다.”
“어느 것이 혜慧이고, 어느 것이 적寂인가?”
“다만 눈앞에 있을 뿐입니다.”
“앞과 뒤는 여전히 있구나.”
“앞뒤는 제쳐 두고, 화상께서는 무엇을 보셨습니까?”
“차나 한 잔 마셔라.”

앞의 포주蒲州 마곡산麻谷山 보철寶徹 선사의 법손

수주壽州 양수良遂 선사
처음에 마곡麻谷을 뵙자, 마곡이 불렀다.
“양수良遂야.”
대사가 대답하였다. 
“네.”
이렇게 세 번 불러서 세 번 대답하니, 마곡이 말했다.
“이 둔근鈍根인 대사야.”
대사가 이 말에 살펴 깨닫고서 말했다.
“화상께서는 저를 속이지 마십시오. 만일 제가 와서 절을 하지 않았더라면, 일생을 헛되이 보낼 뻔하였습니다.”
마곡도 그렇다고 여겼다.

앞의 호남湖南 동사東寺 여회如會 선사의 법손

길주吉州 서산薯山 혜초慧超 선사
동산洞山이 와서 절을 하려는데, 대사가 말했다.
“그대가 이미 한 곳[一方]에 살고 있는데, 또 여기를 와서 무엇 하려는가?”
“저는 의심을 어쩔 수 없어서 일부러 화상을 뵈러 왔습니다.”
대사가 “양개良介야” 하고 부르자, 동산이 “네” 하고 대답했다. 
대사가 말했다.
“이것이 무엇인가?”
양개가 대답이 없으니, 대사가 말했다.
“좋은 부처인데 다만 광채가 없을 뿐이구나.”

경조京兆 장경사章敬寺 회운懷惲 선사의 법손

경조京兆 대천복사大薦福寺 홍변弘辯 선사
당唐 선종宣宗이 물었다.
“선종禪宗에는 어찌하여 남종과 북종의 이름이 있소?”
“선문에는 본래 남종과 북종의 이름이 없습니다. 옛적에 여래께서 정법안장正法眼藏을 대가섭에게 전하셨는데, 이것이 차츰 차츰 전해져서 28조 보리달마菩提達磨에 이르러서는 이 지방으로 오셔서 초조初祖가 되셨습니다. 5조 홍인弘忍 대사에 이르러 근주蘄州의 동산東山에서 법문을 열었는데, 이때 두 제자가 있었으니 하나는 혜능慧能으로서 옷과 법을 전해 받고 영남嶺南에서 6조가 되셨고, 또 하나는 신수神秀이니 북쪽에서 교화를 폈습니다. 나중에 신수의 문인 보적普寂이 자기의 스승을 제6조라 하고, 자기는 제7조라 자칭하였습니다. 그들이 얻은 법은 하나이지만 인도하여 깨닫게 하는 데에는 돈頓과 점漸의 차이가 있습니다. 그래서 남돈南頓ㆍ북점北漸이라는 말이 생긴 것이지, 선종에 본래부터 남종․북종이라는 이름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무엇을 계율이라 하오?”
“그릇된 것을 막고 악을 그치는 것을 계율이라 합니다.”
“무엇을 선정이라 하오?”
“여섯 감관이 경계와 교섭하면서도 연緣을 따르지 않는 것을 이름하여 선정이라 합니다.”
“무엇을 지혜라 하오?”
“마음과 경계가 모두 공해서 비추어 밝히는 데 의혹이 없는 것을 이름하여 지혜라 합니다.”
“무엇을 방편이라 하오?”
“방편이라는 것은 실다움을 가리고 모습을 덮는 권교權巧의 문이니, 중中ㆍ하下 근기를 위하여 간곡히 시설한 것을 방편이라 합니다. 설사 상上근기를 위하여 방편을 버리라고 하면서 위없는 도[無上道]를 설하더라도, 이것 역시 방편일 따름입니다. 나아가 조사들의 현묘한 말이 공功을 잊고 언어가 끊어졌다 하여도, 역시 방편의 자취를 벗어나지 못합니다.”
“무엇을 부처의 마음[佛心]이라 하오?”
“부처[佛]란 인도 말이니, 당나라 말로는 각覺입니다. 이른바 사람들에게 지혜의 깨달아 비춤[覺照]이 있는 것을 부처의 마음이라 하나니, 마음이란 부처님의 다른 이름으로서 백천 가지 별명이 있으나 체體는 하나뿐입니다. 본래 형상이 없는 것이라서 청ㆍ황ㆍ적ㆍ백이나 남자나 여자 따위의 모습도 아니며, 하늘에 있어도 하늘이 아니고 인간에 있어도 인간이 아니지만, 하늘을 나타내고 인간을 나타내며 남자도 되고 여자도 됩니다. 그러면서도 비롯하지도 않고 끝나지도 않으며, 생함도 없고 멸함도 없습니다. 그래서 그 호칭을 영각의 성품[靈覺性]이라 하나니, 마치 폐하께서 날마다 만기萬機 나랏일[國務]을 뜻한다. 
에 감응하시는 것이 바로 폐하의 부처 마음이신 것과 같습니다. 설사 1천 부처님께서 공통으로 전해 주신다 하여도 따로 얻을 바가 있는 것으로 생각지는 마십시오.”
“요사이 사람들이 염불念佛을 하는데, 그 일은 어떻소?”
“여래께서 세상에 나셔서 인간과 하늘의 스승인 선지식善知識이 되셨습니다. 근기를 따라 법을 설하시는데, 상근기를 위해서는 최상승인 돈오頓悟의 지극한 이치를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중․하 근기는 단박에 깨달아 밝히지 못하니,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위제희韋提希 부인을 위해 방편으로 16관문觀門을 열어서 염불로 극락에 태어나게 하셨습니다. 이 때문에 경전에 말하기를 ‘이 마음이 부처요, 이 마음으로 부처를 이루며, 마음 밖에 부처가 없고, 부처 밖에 마음이 없다’고 한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경을 지니면서 염불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주문을 외우면서 부처를 구하는데, 어떻습니까?”
“여래께서 갖가지로 열어 보이신 것은 모두 최상의 1승乘을 위한 것입니다. 마치 온갖 강과 시내의 흐름이 모두 조종朝宗인 바다로 들어가는 것과 같으니, 이처럼 차별된 온갖 법수法數가 모두 살바야(薩婆若:一切智)의 바다로 귀착됩니다.”
“조사는 이미 심인心印을 깨달아 알았는데, 󰡔금강경󰡕에서 말하기를 ‘얻을 바 없는 법’이라 한 것은 무엇이오?”
“부처님의 일대 교화는 진실로 한 법도 남에게 준 것이 없고 다만 뭇 사람들 각자의 자기 성품이 동일한 법보法寶의 창고임을 보여줄 뿐입니다. 당시에 연등여래然燈如來께서 다만 석가의 본법本法을 인가해도 얻을 바가 없어서 바야흐로 연등의 본뜻에 계합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경에 말하기를 ‘나도 없고 너도 없고 중생衆生도 없고 수자壽者도 없다. 이 법은 평등하여 온갖 착한 법을 닦으면서도 형상에 머물지 않는다’고 한 것입니다.”
“선사는 이미 조사의 뜻을 깨달았다 하면서도 경을 보거나 예불을 하시오?”
“사문인 석자釋子가 예불하거나 경을 보는 것은 주지(住持:살림)의 평상법이니, 네 가지 과보가 있습니다. 즉 부처님의 계율에 의하여 몸을 닦고, 선지식을 찾아서 묻고, 점차로 범행梵行을 닦고, 여래께서 행한 자취를 실천하는 것입니다.”
“무엇이 돈오[頓見]이며, 무엇을 점수漸修라 하오?”
“단박에 자기 성품을 밝혀서 부처와 더불어 짝이 되었으나, 그러나 비롯함이 없이 물든 습기習氣가 있기 때문에 점수漸修를 빌려 대치함으로써 성품에 순응하여 작용을 일으키게 하는 것이니, 마치 사람이 밥을 먹을 때에 첫술에 배가 부르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이날 홍변弘辯 대사가 일곱 시간 동안 대화를 주고받으니, 황제는 자색 가사[紫方袍]를 하사하였다. 입멸한 뒤에는 원지圓智 선사라 시호를 내렸고, 또 명령을 내려서 천하에 있는 조사의 탑들을 수리해서 잘 지키라고 하였다.

복주福州 구산龜山 지진智眞 선사
그는 양주揚州 사람으로서 성은 유柳씨이다. 고향의 화림사華林寺에서 공부를 하다가 당나라 원화元和 원년에 윤주潤州 단도丹徒 천향사天香寺에서 계를 받았는데, 경전이나 논서는 배우지 않고 오직 선나禪那만을 흠모하였다. 
처음에 회운[惲] 선사를 뵙자, 회운 선사가 물었다. 
“어디서 왔는가?”
지진智眞이 대답했다.
“이르러도 이른 바가 없고, 와도 온 곳이 없습니다.”
회운 선사가 비록 침묵을 지켰으나, 지진은 스스로 깨달았다. 그리하여 무주婺州의 오설산五洩山에 가서 정원正原 선사를 만났고, 장경長慶 2년에는 그와 함께 건양建陽에 갔다가 고을 사람인 섭분葉玢의 청에 의하여 동선사東禪寺에 머물렀다. 그리고 나서 개성開成 원년에 복주福州로 갔는데, 장계읍長谿邑 사람인 진량陳亮과 황유黃瑜의 청에 의하여 구산龜山에다 선원을 세웠다.
어느 날 대중에게 설법을 했다.
“얼굴을 움직이고 눈을 깜박이는 것이 당사자[當人]을 벗어난 것이 아니고, 한 생각[一念]의 청정한 마음이 본래 부처이니라.”
그리고는 게송을 읊었다.

마음은 본래 티끌을 여의었으니 어찌 씻을 필요가 있겠으며
몸에는 병이 없으니 어찌 의원을 찾으랴.
그러한 부처가 몸에 있지 않음을 알려 하면
높이 달린 밝은 거울 비치기 전을 보라.
心本絶塵何用洗    身中無病豈求醫
欲知是佛非身處    明鑑高懸未照時

나중에 무종武宗의 사태沙汰를 만나자, 게송 두 수를 대중에게 보였다.

밝은 달이 형상을 나누워 곳곳에 새로우니
속인들이 어떻게 공空을 아는 이를 무너뜨리랴.
누가 말했는가, 속세에 있는 것이 수도에 방해된다고.
금속金粟도 장자長者의 몸을 받은 적이 있다네. 유마維摩 거사가 금속여래金粟如來의 후신이라고 전한다. 

明月分形處處新    白衣寧墜解空人
誰言在俗妨修道    金粟曾爲長者身

인욕선인忍辱仙人이 숲속에서 좌선을 하다가
가리왕歌利王에게 사지를 찢긴 적이 있었는데
이에 비해 우리의 성조聖朝에는 그런 일이 없으니
지금 수도를 그만두게 한들 무엇이 슬프랴.
忍仙林下坐禪時    曾被歌王割截支
況我聖朝無此事    只今休道亦何悲

선종宣宗이 중흥한 뒤에도 다시 먹물 옷을 입지 않았다. 함통咸通 6년에 본산에서 임종하니, 수명은 84세이고 법랍은 60세였다. 귀적歸寂 선사라는 시호를 내리고, 탑호는 비진祕眞이라 하였다.
낭주朗州 동읍東邑 회정懷政 선사
앙산仰山이 와서 뵙자, 대사(회정)가 물었다.
“그대는 어디 사람인가?”
“광남廣南 사람입니다.”
“듣건대 광남에는 진해명주鎭海明珠라는 구슬이 있다는데 사실인가?”
“사실입니다.”
“그 구슬은 어찌 생겼는가?”
“밝고 흰 달[白月]이 떠 있는 듯한 모양입니다.”
“그대가 가지고 왔는가?”
“가지고 왔습니다.”
“왜 노승老僧에게 보여 주지 않는가?”
“어제 위산潙山에 갔는데 그 분도 저에게 이 구슬을 찾았지만, 다만 대답할 말도 없고 펼칠 이치도 없음을 알았습니다.”
“참으로 사자 새끼의 커다란 사자후師子吼로구나.”

금주金州 조操 선사
어느 날 미米 화상을 청해서 재齋를 올렸는데 자리를 마련하지 않았다. 미 화상이 도착해서 자리를 펴고 절을 하니, 대사가 선상禪床에서 내려왔다. 미 화상이 얼른 대사의 자리에 올라가 앉으니, 대사는 땅에다 자리를 펴고 앉았다. 재가 끝나자 미 화상이 훌쩍 떠나 버리니, 시자가 말했다.
“화상께서는 온갖 사람의 흠앙을 받으시는데, 오늘은 남에게 자리를 빼앗기셨군요.”
“3일 뒤에 오면 구제를 받게 되리라.”
과연 3일 뒤에 미 화상이 다시 와서 말했다.
“전날에는 도적을 만났었다.”[어떤 스님이 경청鏡淸에게 묻기를 “옛사람이 도적을 만났다고 한 뜻이 무엇인가?”라고 하니, 경청이 대답하기를 “송곳 끝이 뾰족한 것만을 보고 줄 대가리<鑿頭>가 모난 것은 보지 못했는가?”라고 하였다.]

낭주朗州 고제古堤 화상
평상시에 스님이 오는 것을 보면 이렇게 말했다.
“가거라. 그대는 불성佛性이 없다.”
스님이 대답을 하건 대답을 하지 않건 모두 그의 취지에 계합하지 못했다.
어느 날 앙산이 와서 뵙자, 대사(고제)가 또 말했다.
“가거라. 그대는 불성이 없다.”
혜적慧寂이 손을 모으고 앞으로 가까이 가서 “예” 하니, 대사가 웃으면서 말했다.
“그대는 어디서 이런 삼매를 얻었는가?”
“저는 위산潙山에게서 얻었습니다. 그런데 화상께서는 누구에게서 얻으셨습니까?”
“나는 장경章敬에게서 얻었다.”

하중河中 공기公畿 화상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도道이며, 어떤 것이 선禪입니까?”
“이름이 있으면 대도大道가 아니며, 시비是非는 모두 선禪이 아니다. 이 속의 뜻을 자세히 알고자 하면, 단풍잎은 우는 아기를 달래는 돈임을 알라.”


황벽黃蘗 희운希運 선사 전심법요傳心法要 하동河東 배휴裵休가 집성하여 펴냈다.


대선사大禪師가 있었으니, 이름은 희운希運으로서 홍주洪州 고안현高安縣 황벽산黃蘗山 취봉鷲峰 밑에서 살았다. 조계曹溪 6조의 적손嫡孫이고, 백장百丈의 제자이며, 서당西堂의 조카로서 홀로 최상승인 문자를 여읜 심인心印을 지닌 채 오직 한마음만을 전할 뿐 다른 법이 없었다.  
마음의 본체는 공하여서 만 가지 인연이 모두 적멸하니, 마치 둥근 해가 허공에 솟아서 비추는 것이 섬세한 티끌도 없이 고요한 것과 같았다. 이를 증득한 자는 새롭거나 오래됨도 없고 깊거나 얕음도 없으며, 이를 말하는 자는 뜻과 견해도 세우지 않는다. 종주(宗主:주장)도 세우지 않고, 문호도 열지 않아서, 바로 그대로일 뿐이라, 생각을 움직이면 즉시 어긋나니, 그런 뒤에야 본래의 부처가 된다. 그러므로 그 말은 간결하고, 그 이치는 곧고, 그 도는 높고, 그 행은 뛰어나다. 사방의 배우는 무리들이 산을 바라보고 모여들어서 모습만을 보고도 깨달았으니, 왕래한 무리들이 항상 1천여 명이었다.
내가 회창會昌 2년에 종릉鍾陵을 다스리러 나왔다가 산에서 고을로 맞이해서 용흥사龍興寺에 묵으시게 하고는 조석으로 도를 물었다. 대중大中 2년에는 완릉宛陵을 다스리러 나왔다가 다시 임지로 모셔다가 개원사開元寺에 계시게 하고 조석으로 도를 물었지만, 물러나서는 열에 하나나 둘을 기억할 뿐이라서 심인心印이라 여기면서도 감히 드러내 알리지 못했다. 이제 입신入神의 정의精義가 미래까지 들리지 못할까 걱정하다가 끝내 내놓아서 그의 문하 제자인 태주太舟와 법건法建에게 주어서 옛 산인 광당사廣唐寺로 돌아가 장로  스님들에게 지난날에 항상 듣던 법문과 같은지 다른지를 가려 달라고 하였다.
당나라 대중大中 11년 10월 8일에 삼가 기록한다.[본래 이 뒤로 각 단락<段>마다 연월<歲月>이 기록되어 있으나, 여기서는 번거로움을 피해 생략한다.]

모든 부처님과 온갖 중생은 오직 한마음일 뿐 다시 다른 법이 없다. 이 마음은 비롯함이 없는 이래로 태어난 적도 없고 멸한 적도 없으며, 푸르지도 않고 누렇지도 않으며, 형태도 없고 모습도 없으며, 있고 없음에도 속하지 않으며, 새 것과 옛 것을 헤아리지 않고, 길지도 않고 짧지도 않으며, 크지도 않고 작지도 않으니, 일체의 한량과 이름과 자취와 상대를 초월하여 바로 당체當體 그대로일 뿐이다. 생각을 움직이면 곧 차별되니, 마치 허공이 변제邊際가 없어서 측량할 수 없는 것과 같다. 오직 이 한마음만이 곧 부처라서 부처와 중생은 조금도 차이가 없지만, 다만 중생들이 모습에 집착해서 밖으로 구하다가 도리어 잃을 뿐이다. 부처로 하여금 부처를 찾게 하고 마음을 가지고 마음을 잡게 하여 겁이 다하고 형상이 다해도 끝내 깨닫지 못하나니, 그리하여 염念을 쉬고 사념[慮]을 잊으면 부처가 저절로 현전함을 알지 못한다.

○ 이 마음이 곧 부처이고, 부처가 곧 중생이고, 중생이 곧 부처이고, 부처가 곧 마음이니, 중생일 때에도 이 마음은 줄지 않고, 모든 부처가 되었을 때에도 이 마음은 늘지 않는다. 나아가 육도만행六度萬行에 이르기까지 항하의 모래같이 많은 공덕은 본래 스스로 다 갖추고 있는 것이므로, 닦아서 더할 필요가 없다. 인연을 만나면 베풀고 인연이 쉬면 고요하니, 만일 이 일에 대해 흔들리지 않는 굳은 믿음을 갖지 않고 모습에 집착한 수행으로 공용功用을 구하고자 하면, 모두가 망상이라서 도道와는 아주 어긋난다.
이 마음이 곧 부처이니, 다시 다른 부처가 없고 또한 다른 마음도 없다. 이 마음은 밝고 맑은 것이 마치 허공과 같아서 한 점의 모양도 없다. 마음을 일으키거나 생각을 움직이면 즉시 법체法體에 어긋나서 모습에 집착하게 되나니, 비롯함이 없는 과거로부터 본래 형상에 집착할 것이 없다. 부처님께서 육도만행六度萬行을 닦아서 부처가 되고자 한 것은 차례[次第]이지만, 비롯함이 없는 이래로 차례로 된 부처[次第佛]는 없다. 오직 한마음을 깨달으면 다시 사소한 법도 얻을 것이 없나니, 이것이 곧 참 부처이다.
부처와 중생은 한마음이라서 차이가 없으니, 마치 허공이 섞이지도 않고 파괴되지도 않는 것과 같다. 또 둥근 해가 사천하를 비추는데, 해가 비출 때에는 광명이 천하에 두루하지만 허공은 본래 밝아진 적이 없고, 해가 저문 뒤에는 어둠이 천하에 두루하지만 허공은 본래 어두워진 적이 없는 것과 같다. 밝고 어두운 광경은 저절로 서로 엇바뀌지만 허공의 성품은 텅하니 트여서 변하지 않으니, 부처와 중생의 마음도 또한 마찬가지다. 만일 부처는 청정하고 빛나는 해탈의 모습이라 하고, 중생은  더럽고 어두운 생사의 모습이라 여기면, 이 사람의 그러한 견해는 항하의 모래같이 많은 겁을 지나더라도 끝내 보리菩提를 얻지 못하리니, 바로 모습에 집착하기 때문이다.
오직 이 한마음일 뿐 다시 티끌만큼의 사소한 법도 얻을 수가 없는 것이 바로 부처이건만, 요사이 도를 배우는 사람들은 이 마음의 체體를 깨닫지 못하고, 문득 마음 위에 마음을 내어 밖을 향해 부처를 구하여서 모습에 집착한 수행을 하니, 이는 모두 잘못된 법이지 보리의 도가 아니다.

○ 시방에 계신 부처님께 공양하는 것이 얻을 수 없는 하나의 무심無心에게 공양하는 것만 못하니, 사람들이 이루기 어렵다. 무심이라는 것은 일체의 마음이 없는 것이니, 여여如如한 체體는 안팎이 목석과 같아서 움직이지도 않고 전변하지도 않으며, 안팎이 허공과 같아서 막히지도 않고 걸리지도 않으며, 능能도 없고 소所도 없으며, 방향이나 처소도 없고, 모습도 없고 득실得失도 없다. 나아가는 이가 감히 이 법에 들어가지 못하는 것은 공에 떨어져서 머물 곳이 없을까 걱정하기 때문이니, 그래서 낭떠러지를 바라보고는 물러난다.
문수는 이理에 해당하고 보현은 행行에 해당하는데, 이理란 참으로 공하여 걸림이 없는 이理이고, 행行이란 모습을 여의어 다함이 없는 행이다. 관음觀音은 대자大慈에 해당하고, 세지勢至는 대지大智에 해당한다. 유마維摩는 정명淨名이라 번역하니, 정淨이란 성품이고 명名이란 모습인데, 성품과 모습이 다르지 않으므로 정명이라 호칭한 것이다. 모든 대보살들이 표현하는 것은 사람마다 다 가지고 있는 것으로서 일심을 여의지 않으니, 깨달으면 바로 그것이다. 이제 도를 배우는 사람들은 자기 마음속의 깨달음을 향하지 않고 마음 밖에서 구하느라고 형상에 집착하며 경계를 취하니 모두 도에 위배된다. 
항하의 모래라 함은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모래인데, 이 모래는 부처님과 보살과 하늘ㆍ범왕들이 밟고 지나가도 기뻐하지 않고, 소ㆍ양ㆍ벌레ㆍ개미가 밟고 지나가도 화내지 않고, 진기한 보배ㆍ향기로운 향기가 있어도 모래는 탐내지도 않고, 똥ㆍ쓰레기 따위의 더러움이 와도 모래는 싫어하지 않는다.

○ 이 마음은 곧 무심無心의 마음으로서 온갖 모습을 여의었다. 부처님과 중생이 조금도 다르지 않으니, 오로지 능히 무심하면, 바로 그대가 구경究竟의 깨달음이다. 도를 배우는 사람이 만약 당장에 무심이 되지 못하면, 여러 겁을 수행하여도 끝내 도를 이루지 못하고 3승의 공행功行에 얽매여서 해탈치 못한다.
그러나 이 마음을 증득하는 데는 더디고 빠름이 있으니, 어떤 이는 법을 들으면 한 생각[一念]에 문득 무심을 얻는 이도 있고, 어떤 이는 10신信ㆍ10주住ㆍ10행行ㆍ10회향迴向에 이르러야 비로소 무심을 얻는 이도 있고, 어떤 이는 10지地에 이르러야 비로소 무심을 얻는 이도 있다. 길건 짧건 무심을 얻어서 그대로 머무르면, 다시는 닦을 것도 없고 다시는 증득할 것도 없어서 실로 얻을 바가 없어 진실하여 허망치 않다. 한 생각[一念]에 얻은 이와 10지에서 얻은 이의 공용功用은 가지런하여 조금도 깊고 얕음이 없건만, 다만 여러 겁을 지나면서 잘못 받아들여 애를 쓸 뿐이다. 
악을 짓고 선을 짓는 것이 모두 모습에 집착하는 것이니, 모습에 집착하여 악을 지으면 허망하게 윤회를 받아들이고, 모습에 집착하여 선을 지으면 헛되이 고통을 받을 뿐이어서, 이 모두 언하言下에 스스로 근본법을 깨닫는 것만 못하다. 이 법은 곧 마음이니, 마음 밖에는 법이 없다. 이 마음은 곧 법이니, 법 안에는 마음이 없다. 마음은 스스로가 무심이라서 또한 무심이라 할 것도 없다. 마음을 가지고 무심이려고 하면 마음은 곧 있음[有]을 이루나니, 묵묵히 계합할 뿐 온갖 사량思量이 끊겼기 때문에 “언어의 길이 끊어지고, 마음이 행하는 곳이 멸했다”고 말한 것이다.
이 마음은 본원청정불本源淸淨佛로서, 사람마다 모두 갖고 있으니, 꼬물거리는 축생들도 부처님이나 보살들과 동일한 체體이어서 다르지 않다. 다만 망상 분별 때문에 갖가지 업과業果를 짓지만 본래의 부처 자리에는 진실로 한 물건도 없으니, 비고, 통하고, 적멸하고, 고요하고, 밝고, 묘하고, 편안하고, 즐거울 뿐이다. 스스로 깊이 깨달아 알면 당장에 문득 이러해서 원만하고 구족하여 다시는 모자라는 바가 없다. 설사 3아승기겁 동안 정진 수행하여 온갖 지위를 거쳤더라도 급기야 일념一念을 증득할 때에는 다만 원래의 자기 부처를 증득할 뿐이니, 위로 향하는 길에 다시 한 물건도 덧붙일 수 없다.
여러 겁에 걸친 공용功用을 관찰하건대 모두가 꿈속의 허망한 짓이니, 그러므로 여래께서 말씀하시기를 “나는 아뇩보리阿耨菩提를 실제로 얻은 바가 없다. 만일 망령되게 얻은 바가 있었다면 연등然燈부처님께서 나에게 수기授記를 주시지 않았으리라”고 하셨고, 또 말씀하시기를 “이 법은 평등하여 높고 낮음이 없으니, 이것을 이름하여 보리菩提라 한다”고 하셨다. 즉 이 본원의 청정한 마음은 중생ㆍ부처ㆍ세계ㆍ산ㆍ강ㆍ형상 있음ㆍ형상 없음과 더불어 시방세계에 두루하면서 일체 평등하여 피아彼我의 모습이 없다.
이 본원의 청정한 마음은 항상 스스로 원만히 밝고 두루 비추지만 세상 사람들이 깨닫지 못하는 이유는, 다만 보고 듣고 지각하고 아는[見聞覺知] 것을 인정하여 마음으로 삼기에 보고 듣고 지각하고 아는 것에 덮이게 되어서 정묘하고 밝은 본체를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다만 당장에 무심하면 본체가 저절로 나타나니, 마치 둥근 해가 허공에 솟아서 시방을 두루 비추어도 장애가 없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도를 배우는 사람이 보고 듣고 지각하고 아는 것을 인정해서 동작으로 삼다가 보고 듣고 지각하고 아는 것을 비워 버리면, 즉시 마음의 길[心路]이 끊어져서 들어갈 곳이 없다. 다만 보고 듣고 지각하고 아는 곳에서 본래의 마음을 인정할 뿐이지만, 그러나 본래의 마음은 보고 듣고 지각하고 아는 데 속하지 않고, 또한 보고 듣고 지각하고 아는 것을 여의지도 않는다. 다만 보고 듣고 지각하고 아는 것에 대해 알음알이[見解]를 일으키지 말고, 보고 듣고 지각하고 아는 것에 대해 생각을 움직이지 말고, 또한 보고 듣고 지각하고 앎을 여의고서 마음을 찾지도 말고, 또한 보고 듣고 지각하고 앎을 버리고서 법을 취하지도 말라. 나아가지도 않고 여의지도 않으며, 머물지도 않고 집착하지도 않으면, 종횡으로 자재해서 도량 아님이 없다.

○ 세상 사람들이 도道를 듣기를, 부처님들이 모두 마음의 법을 전하셨다고 하지만, 마음 위에 따로 증득할 수 있고 취할 수 있는 하나의 법이 있다고 여겨서 마침내 마음을 가지고 법을 찾는다면, 마음이 곧 법이고 법이 곧 마음임을 알지 못하게 된다. 마음을 가지고는 다시 마음을 찾을 수 없으니, 천만 겁을 지나더라도 끝내 얻을 날이 없을 것이다. 당장에 무심해서 문득 본래의 법인 것만 못하나니, 마치 장사[力士]의 이마 구슬이 이마 속에 숨어 있기 때문에 밖을 향해 구하면 시방을 두루 다녀도 끝내 얻을 수 없지만, 지혜로운 이가 가르쳐 주면 당장 본래의 구슬이 예전과 같음을 스스로 보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도를 배우는 사람도 자기 본래의 마음을 잃고 의심하여 부처라는 것을 알지 못하여, 밖을 향해 찾으면서 공용功用의 행을 일으키고, 차제次第에 의거해 과위果位를 증득하고, 여러 겁을 거치면서 부지런히 구하면, 결코 도를 이루지 못하니, 이는 당장에 무심인 것만 못하다. 일체의 법이 본래 있는 바가 없고, 얻을 바도 없고, 머무름도 없고 의지함도 없고, 능能도 없고 소所도 없음을 반드시 알아서 망념을 움직이지 않으면 문득 보리를 증득하리라.
그리하여 도를 증득할 때는 다만 본래 마음의 부처[本心佛]를 증득할 뿐이라서, 여러 겁의 공용은 모두 헛된 수행이다. 마치 장수가 구슬을 얻었을 때에도 본래의 이마 구슬을 얻었을 뿐이라서 밖을 향해 찾는 노력과는 관계없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나는 아뇩보리阿耨菩提를 실제로 얻은 바가 없다”고 하시고는, 사람들이 믿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기 때문에 다섯 가지 눈으로 보는 바 다섯 가지 말을 이끌어 진실하여 허망치 않은 것이 바로 제일의제第一義諦라고 하셨다.

○ 도를 배우는 사람은, 4대大로 몸이 이루어지되, 4대에는 내[我]가 없고 나[我]에도 또한 주재主宰가 없음을 의심하지 말아서 이 몸엔 나도 없고 주재자도 없음을 알아야 하며, 또한 5음陰에도 내가 없고 주재자도 없음을 의심하지 말아서 이 마음에도 내가 없고 주재자도 없음을 알아야 한다. 6근根ㆍ6진塵ㆍ6식識에 화합하고 생멸하는 것도 역시 마찬가지로서, 18계界가 이미 공하면 일체가 다 공하니, 오직 본래의 마음만이 훤하게 청정하다.
의식으로 먹는 이가 있고 지혜로 먹는 이가 있는데, 4대로 된 몸은 굶주림과 시장함이 걱정이므로 형편에 따라 기르되, 탐욕이나 집착을 내지 않는 것을 이른바 지혜로 먹는다 하고, 멋대로 맛을 취하여 허망하게 분별을 일으키면서 오직 입에 맞는 것만을 구할 뿐 싫어하여 멀리하려 하지 않는 것을 이른바 의식으로 먹는다고 한다.
성문聲聞이란 소리에 의지해 깨닫는 것을 성문이라 한다. 스스로의 마음을 요달하지 못하고 음성의 가르침 위에서 알음알이를 일으키거나, 신통에 의해서나 상서로운 모습이나 언어나 운동運動에 의해서 보리 열반이 있다고 듣고서, 3아승기겁을 닦아야 불도를 이루는 것은 모두 성문의 도에 속하나니, 이를 일러서 성문이라 한다. 부처님만이 당장에 스스로의 마음이 본래 부처라서 한 법도 얻을 수 없고 한 행도 닦을 것이 없음을 단박에 요달하니, 이것이 위없는 도[無上道]이고 이것이 진여불眞如佛이다.
도를 배우는 사람은 오직 한 생각[一念]이라도 있으면 도와 간격이 생긴다는 것을 걱정해야 하니, 생각 생각[念念]이 모습이 없고 생각 생각이 함이 없으면[無爲] 그것이 바로 부처이다. 도를 배우는 사람이 부처를 이루고 싶으면, 온갖 불법은 아무 것도 배우지 말고 오직 구할 것 없기와 집착 없기만을 배워라. 구함이 없으면 마음이 나지 않고, 집착이 없으면 마음이 물들지 않나니, 나지 않고 물들지 않으면 그대로가 부처이다.
8만 4천 법문은 8만 4천 번뇌를 대치하는데, 이는 교화로 이끄는 방편문일 뿐이니, 본래는 한 법도 없다. 여의는 것이 곧 법이요, 여읠 줄 아는 이가 부처이니, 다만 일체의 번뇌를 여의기만 해야 할 뿐, 얻을 만한 법은 없다.

○ 도를 배우는 사람이 요긴한 비결을 알고 싶다면, 다만 마음 위에다 한 물건도 붙이지 말라. 부처의 법신法身은 마치 허공과 같다고 하는 말은, 바로 법신 그대로가 허공이고 허공 그대로가 법신임을 비유한 것이다. 그런데 평범한 사람은 법신이 허공의 처소에 두루하거나 허공 속에 법신이 포함되어 있다고 여길 뿐, 법신 그대로가 허공이고 허공 그대로가 법신임을 모른다. 만일 허공이 있다고 단정하여 말하면 허공은 법신이 아니요, 법신이 있다고 단정적으로 말하면 법신은 허공이 아니다. 다만 허공이란 견해를 짓지 말지니 허공이 곧 법신이기 때문이요, 법신이란 견해를 짓지 말지니 법신이 곧 허공이기 때문이다.
법신과 허공은 다른 모습이 없고, 부처와 중생은 다른 모습이 없으며, 생사와 열반은 다른 모습이 없고, 번뇌와 보리는 다른 모습이 없다. 일체의 모습을 여읜 것이 부처인데, 범부는 경계를 취하고 도인은 마음을 취한다. 마음과 경계를 모두 잊어야 바로 참된 법이지만, 경계를 잊기는 쉬워도 마음을 잊기는 지극히 어렵다. 사람들이 감히 마음을 잊지 못하는 까닭은 공空에 떨어져 더듬을 곳이 없을 것을 걱정하기 때문이니, 공은 본래 공도 없는 것이라서 오직 하나의 참 법계일 뿐임을 모르는 것이다.

○ 이 신령스런 깨달음의 성품[靈覺性]은 비롯함이 없는 이래로 허공과 수명을 같이 하니, 태어난 적도 없고 멸한 적도 없으며, 있었던 적도 없고 없었던 적도 없으며, 더러운 적도 없고 깨끗한 적도 없으며, 시끄러운 적도 없고 고요한 적도 없으며, 젊었던 적도 없고 늙었던 적도 없으며, 방향이나 처소도 없고 안이나 밖도 없으며, 수량도 없고 형상도 없으며, 색상色像도 없고 음성도 없으며, 찾을 수도 없고 구할 수도 없으며, 지식으로 이해할 수도 없고 언어로써 표현할 수도 없으며, 경물景物로 만날 수도 없고 공용功用으로 도달할 수도 없다.
모든 불보살佛菩薩들과 일체의 꿈틀거리는 중생이 똑같이 대열반의 성품이니, 성품은 곧 마음이요, 마음이 곧 부처요, 부처가 곧 법이다. 한 생각[一念]이 참[眞]을 여의면 모두 망상妄想이 되니, 마음으로써 다시 마음을 구하지 말고, 부처로써 다시 부처를 구하지 말고, 법으로써 다시 법을 구하지 말라. 그러므로 도를 닦는 사람은 당장 무심無心으로 묵묵히 계합해야지 마음을 망설이면 곧 어긋난다.
마음으로써 마음을 전하는 이것이 바른 소견[正見]이니, 행여 밖을 향해 경계를 쫓는 것을 마음이라 여기지 말라. 이것은 도적을 잘못 알아서 아들로 여기는 것과 같다. 탐냄ㆍ성냄ㆍ어리석음이 있기 때문에 곧 계율ㆍ선정ㆍ지혜를 세우는 것이니, 본래 번뇌가 없다면 어찌 보리가 있겠는가? 그러므로 조사께서 말씀하시기를 “부처님께서 온갖 법을 말씀하신 것은 일체의 마음을 없애기 위한 것이다. 나는 일체의 마음이 없으니 어찌 일체의 법을 쓰겠는가?”라고 하셨다.
본원의 청정한 부처[本源淸淨佛] 위에는 다시 한 물건도 붙일 수 없나니, 비유컨대 허공을 한량없는 값진 보배로 장엄해도 끝내 머물지 못하는 것과 같다. 불성佛性도 허공과 똑같아서 아무리 한량없는 지혜와 공덕으로 장엄하여도 끝내 머물 수 없으니, 다만 본래의 성품을 미혹해서 유전하여 보지 못할 뿐이다.
○ 이른바 심지법문心地法門이란 것은 만법이 모두 이 마음에 의하여 세워진 것이라서 경계를 만나면 있고 경계가 없으면 없는 것이니, 깨끗한 성품 위에다 오로지 경계의 견해만은 짓지 말아야 한다.
이른바 정혜定慧라 함은 거울의 작용이 역력歷歷하고 적적寂寂하고 성성惺惺한 것이니, 보고 듣고 지각하고 아는 것이 모두 경계 위에서 견해를 짓는 것이다. 임시로 중근기와 하근기를 위해 설할 것이라면 옳다고 하겠지만, 만약 친히 증득하고자 하면 모두 이런 견해를 짓지 말아야 하니, 모두 경계에 속박되기 때문이다.
법에는 빠지는 곳이 있으니 있음[有]의 경지에 빠지는 것이다. 다만 일체 법에 대하여 있다는 소견[有見]을 짓지 않으면 곧 법을 보는 것이다.

○ 달마 대사가 중국에 오신 뒤로 오직 한 성품만을 설했을 뿐이고 오직 한 법만을 전하셨으니, 부처로써 부처를 전하였을 뿐 다른 부처를 말하지 않았고, 법으로써 법을 전하였을 뿐 다른 법을 말하지 않았다. 법은 바로 설할 수 없는 법이요, 부처는 취할 수 없는 부처이니, 이것이 바로 본원의 청정한 마음이다. 오직 이 한 나만이 진실이고, 나머지 둘은 참되지 않다. 반야般若는 지혜가 되는데, 이 지혜가 바로 무상無相의 근본이다.

○ 범부凡夫는 도에 나아가지 않고 오직 여섯 감정[六情]을 멋대로 부려서 여섯 세계[六道]로 빠진다. 즉 도를 배운 후에도 한 생각[一念]으로 생사를 계교하게 되면 곧 온갖 마魔의 길에 떨어지고, 한 생각으로 온갖 소견을 일으키면 곧 외도에 떨어지며, 생生이 있다고 보아서 그것을 멸滅하는 데로 나아가면 곧 성문의 도에 떨어지고, 생生이 있다고 보지 않고 오직 멸滅만 있다고 보면 곧 연각緣覺의 도에 빠진다. 법은 본래 나지도 않으므로 멸함도 없나니, 생멸이라는 두 소견을 일으키지 말며, 싫어하지도 말고 기뻐하지도 말라. 일체의 모든 법은 오직 한마음이 그런 것이니, 그런 뒤에야 곧 불승佛乘이 된다.

○ 범속한 사람은 모두 경계를 쫓아 마음을 내는데, 그 마음은 싫어함과 기뻐함을 따른다. 만일 경계가 없고자 하면 반드시 그 마음을 잊어야 하니, 마음을 잊으면 경계가 공하고, 경계가 공하면 마음이 멸한다. 마음을 잊지 않고서 경계를 없애려고 하면, 경계는 없앨 수 없고 다만 어지러움만 더할 뿐이다. 그러므로 만법은 오직 마음뿐이고, 마음은 또한 얻을 수 없거늘, 다시 무엇을 구하겠는가?

○ 반야의 법을 배우는 사람은 한 법도 얻을 수 있다고 보지 않아서 3승乘에는 뜻을 두지 말아야 한다. 오직 하나뿐인 진실은 증득할 수 없거늘, 이른바 “내가 능히 증명하고 능히 얻었다”고 하면 모두가 깨달았다고 착각하는 사람[增上慢人]일 뿐이니, 법화法華 회상會上에서 옷자락을 떨치고 물러간 무리들은 모두 이러한 무리들이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보리의 법에 대해 실제로 얻은 것이 없다”고 하신 것이니, 그저 잠자코 계합할 뿐이다.

○ 범속한 사람이 닦아서 증득하고 싶다면, 다만 5온蘊은 모두 공하고 4대大에는 내[我]가 없으며, 참마음은 모습이 없어서 가지도 않고 오지도 않으며, 태어날 때도 성품은 오는 것이 아니고 죽을 때도 성품은 가는 것이 아니며, 담연히 원적圓寂해서 마음과 경계가 일여一如함을 관찰하라. 다만 이처럼 당장 단박에 깨달을 수 있다면, 3세에 얽매이지 않아서 문득 세간을 벗어난 사람이니, 결코 털끝만치도 나아가거나 집착함이 있어서는 안 된다. 만일 훌륭한 모습의 부처님들이 마중을 나오시는 등 갖가지 일이 현전함을 보더라도 따라가는 마음을 내지 말고, 흉악한 모습으로 갖가지 일이 나타나더라도 두려워하는 마음을 내지 말라. 다만 스스로 마음을 잊어서 법계와 똑같으면 문득 자재하게 된다.

○ 무릇 화성化城이라는 것은 2승乘과 10지地, 나아가 등각等覺이나 묘각妙覺에 이르기까지 모두 임시방편으로 세워서 이끌어간 가르침을 모두 화성이라 한다. 보배 있는 곳이[寶所]란 바로 참 마음이자 본래 부처이자 자기 성품인 보배이니, 이 보배는 사량분별[情量]을 초월한 것이라서 건립할 수도 없다. 즉 부처도 없고 중생도 없으며, 주체[能]도 없고 대상[所]도 없으니, 어느 곳에 성이 있으랴.
만일 이것이 이미 화성이라면 어디가 보배 있는 곳이냐고 묻는다면, 보배 있는 곳이란 가리킬 수 없다. 가리킬 수 있는 보배 장소라면 진실한 장소가 아니니, 이 때문에 “가까이 있다[在近]”고 말했을 뿐이다. 가깝다는 것은 생각과 분별로 말할 수 없는 것이니, 다만 당체當體에 그대로 계합한 것일 뿐이다.
천제闡提라는 것은 믿음을 갖추지 못한 것이다. 온갖 6도의 중생과 나아가 2승들까지도 불과佛果가 있음을 믿지 않나니, 이들은 모두가 선근이 끊어진 천제라 할 수 있다. 반면 보살들은 불법을 깊이 믿어 대승과 소승이 있음을 보지 않아서 부처와 중생이 동일한 법성法性이니, 이들을 선근이 있는 천제라고 한다.
대체로 음성의 가르침을 인해서 깨닫는 이를 성문聲聞이라 이름하고, 인연을 관찰해서 깨닫는 이를 연각緣覺이라 이름한다. 만일 자기 마음속을 향하여 깨닫지 못하면 비록 부처를 이루었다 하더라도 역시 성문불聲聞佛이라 한다. 도를 배우는 사람이 법에서만 깨닫고 마음에서는 깨닫지 못하면, 아무리 여러 겁을 수행하더라도 끝내 근본 부처[本佛]는 아니다. 만일 마음으로는 깨닫지 못하고 법에서만 깨달으면, 마음은 경시하고 법은 중시하는 것이라서 마침내 흙덩이만을 쫓는 격이 되니, 근본 마음을 잊었기 때문이다. 다만 근본 마음에 계합하면 법을 구할 필요가 없나니, 마음이 곧 법인 것이다.

○ 범속한 사람들은 대체로 경계가 마음을 장애한다고 여기고 사事가 이理를 장애한다고 여긴다. 그래서 항상 경계에서 도피함으로써 마음을 편안케 하려 하고, 사事를 막아서 이理를 간직하려 하는데, 이는 마음이 경계를 장애하고 이理가 사事를 장애하는 것을 모르기 때문이다. 다만 마음을 공하게 하면 경계는 저절로 공하고, 다만 이理를 고요하게 하면 사事는 저절로 고요해지니, 마음을 뒤바꾸어서 쓰지 말라.

○ 범속한 사람들이 대체로 텅 빈 마음[空心]을 긍정하지 못하는 것은 공空에 떨어질까 두려워서 자기 마음이 본래 공한 줄 모르기 때문이다. 어리석은 사람은 사事는 없애도 마음은 없애지 못하지만, 지혜로운 이는 마음을 없애지 사事는 없애지 않는다.
보살의 마음은 허공과 같아서 일체를 다 버렸으므로 지은 바 복덕을 전혀 탐내지 않으니, 버림에는 세 가지가 있다. 안팎의 몸과 마음을 몽땅 다 버려서 마치 취하고 집착할 바가 없는 허공과 같고, 그런 뒤에 방향에 따라 사물에 감응하되 능能과 소所를 모두 잊으면, 이것을 이른바 큰 버림[大捨]이라 한다. 만일 한쪽으로는 도를 행하여 덕을 펴고, 한쪽으로는 두루 버려서 희망하는 마음이 없으면, 이것을 이른바 중간 버림[中捨]이라 한다. 만약 뭇 선행을 널리 닦으면서 희망하는 바가 있다가 법을 듣고는 공을 알아서 끝내 집착하지 않게 되면, 이것을 이른바 작은 버림[小捨]이라 한다.
큰 버림이란 촛불이 앞에 있는 것과 같아서 다시는 미혹이나 깨달음도 없는 것이고, 중간 버림이란 촛불이 옆에 있는 것과 같아서 밝기도 하고 어둡기도 한 것이며, 작은 버림은 촛불이 뒤에 있는 것과 같아서 앞길의 구덩이와 함정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보살은 마음이 허공과 같아서 일체를 몽땅 버린다. 과거의 마음을 얻을 수 없음은 과거의 버림이요, 현재의 마음을 얻을 수 없음은 현재의 버림이요, 미래의 마음을 얻을 수 없음은 미래의 버림이니, 이른바 3세世를 모두 버린다는 것이다.
여래如來께서 가섭迦葉에게 법을 전하신 이래로 마음으로써 마음을 인가하시니, 마음과 마음이 다르지 않다. 허공에다 도장을 찍으면 도장은 문양을 이루지 못하고, 물건에다 도장을 찍으면 도장은 법을 이루지 못한다. 그러므로 마음으로써 마음을 인가하매 마음과 마음이 다르지 않은 것이니, 도장 찍는 이[能印]와 찍는 바[所印]가 함께 계합하기가 어렵다. 이 때문에 얻는 자가 적으니, 마음은 곧 무심이요, 얻음은 곧 얻음 없음이다.

○ 부처님은 세 가지 몸[三身]이 있으니, 법신法身은 자기 성품의 영통靈通한 법을 설명한 것이요, 보신報身은 일체의 청정한 법을 말한 것이요, 화신化身은 육도만행六度萬行의 법을 말한 것이다.
법신의 설법은 언어와 음성과 형상과 문자로 하는 것이 아니니, 설할 것도 없고 증득할 바도 없어서 자기 성품이 영통靈通할 뿐이다. 이 때문에 “설할 만한 법이 없는 이것을 이름하여 설법이라 한다”고 하셨다. 보신과 화신은 모두 근기에 따라 감응하여 나타나 설법하는 바이며, 또한 사事에 따르고 근기에 응하여 섭화攝化하는 바이니, 모두 참된 법[眞法]이 아니다. 이 때문에 말하기를 “보신과 화신은 참 부처도 아니고 또한 법을 설하는 자도 아니다”라고 하였다.

○ 말한 바가 똑같이 하나의 정명精明이 나뉘어서 여섯 가지 화합和合이 되었다고 하는데, 하나의 정명이란 한마음[一心]이요, 여섯 가지 화합이란 여섯 감관이 제각기 경계[塵:번뇌]와 화합하는 것이니, 눈은 빛과 화합하고, 귀는 소리와 화합하고, 코는 냄새와 화합하고, 혀는 맛과 화합하고, 몸은 감촉과 화합하고, 뜻은 법과 화합하는데, 중간에 여섯 가지 의식이 생겨서 18계界가 된다. 만약 18계가 공하여 있는 바[所有]가 없음을 요달해 알면, 여섯 가지 화합을 묶어서 하나의 정명으로 삼는데, 하나의 정명이란 곧 마음이다. 그러나 도를 배우는 사람은 모두 이를 알지만, 다만 하나의 정명이 여섯 가지 화합을 짓는다는 견해를 면치 못하여서, 드디어 법에 얽매여 근본 마음에 계합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에 여래께서 세상에 나오셔서 1승乘의 진실한 법을 설하고자 했지만, 중생이 믿지 않고 비방을 하다가 고통의 바다에 빠졌다. 만약에 전혀 설하지 않으면 부처가 간탐慳貪에 떨어지는 것이며, 중생을 위하지 않으면 미묘한 도[妙道]를 몽땅 버리는 것이니, 그리하여 마침내 방편으로 3승乘을 말씀하신 것이다. 승乘에는 대승과 소승이 있고 증득에는 깊음과 얕음이 있는데, 모두 본래의 법이 아니기 때문에 “오직 이 1승의 도일 뿐 나머지 둘은 참되지 않다”고 한 것이다. 그러나 끝내 일심의 법을 능히 드러내지 못했으므로 가섭을 불러 법좌의 자리를 함께하면서 따로 일심을 부촉하니, 이는 말을 여읜 설법이다. 이 한 가지의 법이 오늘날 따로 행해지고 있으니, 능히 계합해서 깨닫는 자는 문득 부처 경지에 이른다.


배휴裵休 상국相國의 전심게傳心偈

내가 완릉宛陵과 종릉鐘陵에서 모두 황벽黃蘗 희운希運 선사의 󰡔전심법요傳心法要󰡕를 직접 얻었으므로 나도 전심게傳心偈를 지어 본다.

마음은 전할 수 없으나 
계합하는 것으로 전하고 
마음은 볼 수 없으나 
없음을 보는 것으로 삼지만 
계합해도 계합함이 없고 
없음도 또한 없음이 없네. 
心不可傳 以契爲傳 
心不可見 以無爲見 
契亦無契 無亦無無 

변화로 이루어진 성城에 머물지 말아야 하리니 
미혹한 이마에는 구슬이 있는데 
구슬이란 억지로 붙인 이름이니 
변화로 이루어진 성인들 어찌 형상이 있으랴? 
化城不住 迷額有珠 
珠是強名 城豈有形 

마음 그대로가 부처이니 
부처는 곧 생겨남이 없네. 
당장에 문득 이러할 뿐 
구하지도 말고 영위하지도 말라. 
卽心卽佛 佛卽無生 
直下便是 勿求勿營 

부처로 하여금 부처를 찾게 하면 
공功을 들이는 과정을 갑절이나 쓰게 되고 
법을 따라 견해를 내면 
곧 마魔의 경계에 빠지네. 
使佛覓佛 倍費功程 
隨法生解 卽落魔界

범부와 성인을 분별하지 않아야 
비로소 보고 들음을 여의나니 
무심이 거울과 같으면 
사물과 다투지 않게 되고 
무념이 허공과 같으면 
사물을 용납하지 않음이 없네. 
凡聖不分 乃離見聞 
無心似鏡 與物無競 
無念似空 無物不容 

3승 밖의 법은 
여러 겁을 지나도 만나기 드무나니 
만약 이럴 수만 있다면 
바로 세간을 벗어난 영웅이네.
三乘外法 歷劫希逢 
若能如是 是出世雄 

일찍이 듣건대, 하동河東 대사大士가 고안高安 도사導師의 󰡔전심법요󰡕를 직접 보고서 그 해에 게송을 지어 후학들에게 보이니, 단박에 벙어리가 말하고 소경이 보는 것 같아서 단청丹青처럼 환하였다. 내가 그 나머지가 없어진 것을 애석히 생각하여 이 기록의 끝에다 연이어 놓는다.
경력慶曆 무자년[戊子歲] 서기 1048년으로서 송宋의 인종仁宗 때이다. 
에 남종南宗의 스님 천진天眞이 쓰다.[󰡔전심법요傳心法要󰡕 안에 열한 곳을 고치고 세 글자를 빼고 아홉 자를 더 했는데, 모두 󰡔사가록四家錄󰡕과 별록別錄을 참고하였다.]



경덕전등록 제10권






회양懷讓 선사의 제3세 밑의 61인

지주池州 남전南泉 보원普願 선사의 법손 17인
호남湖南 장사長沙 경잠景岑 선사
형남荊南 백마白馬 담조曇照 선사
종남산終南山 운제雲際 사조師祖 선사
등주鄧州 향엄香嚴 하당下堂 의단義端 선사
조주趙州 동원東院 종심從諗 선사
지주池州 영취靈鷲 한閑 선사
악주鄂州 수유산茱萸山 화상
구주衢州 자호子湖 이종利蹤 선사
낙경洛京 숭산嵩山 화상
일자日子 화상
소주蘇州 서선西禪 화상
선주宣州 자사刺史 육긍陸亘
지주池州 행자行者 감지甘贄 
  [이상 13인은 기록에 보임]
자산資山 존제存制 선사
강릉江陵 도홍道弘 선사
선주宣州 현극玄極 선사
신라국新羅國 도균道均 선사
  [이상 4인은 기연할 어구가 없으므로 기록하지 않음]

항주杭州 염관鹽官 제안齊安 선사의 법손 8인
양주襄州 관남關南 도상道常 선사
홍주洪州 쌍령雙嶺 현진玄眞 선사
항주杭州 경산徑山 감종鑒宗 선사 
  [이상 3인은 기록에 보임]
당唐 선종宣宗 황제皇帝
백운白雲 담정曇靖 선사
노부潞府 녹수淥水 문거文擧 선사
신라新羅 품일品日 선사
수주壽州 건종建宗 선사 
  [이상 5인은 기연할 어구가 없으므로 기록하지 않음]

무주婺州 오설산五洩山 영묵靈黙 선사의 법손 4인
복주福州 구산龜山 정원正原 선사
  [1인은 기록에 보임]
감천사甘泉寺 효방曉方 선사
명주明州 서심사棲心寺 장환藏奐 선사
감천사甘泉寺 원수元遂 선사 
  [이상 3인은 기연할 어구가 없으므로 기록하지 않음]
낙경洛京 불광사佛光寺 여만如滿 선사의 법손 1인 
항주杭州 자사刺史 백거이白居易 
  [1인은 기록에 보임]

명주明州 대매산大梅山 법상法常 선사의 법손 3인
신라국新羅國 가지迦智 선사
항주杭州 천룡天龍 화상
  [이상 2인은 기록에 보임]
신라국新羅國 충언忠彦 선사 
  [1인은 기연할 어구가 없으므로 기록하지 않음]

형주荊州 영태사永泰寺 영단靈湍 선사의 법손 5인
호남湖南 상림上林 계허戒虛 선사
오대산五臺山 비마암祕魔巖 화상
호남湖南 기림祇林 화상
  [이상 3인은 기록에 보임]
여후산呂后山 문질文質 선사
소주蘇州 법하法河 선사
  [이상 2인은 기연할 어구가 없으므로 기록하지 않음]

유주幽州 반산盤山 보적寶積 선사의 법손 2인
진부鎭府 보화普化 화상
  [1인은 기록에 보임]
진주鎭州 상방上方 화상 
  [1인은 기연할 어구가 없으므로 기록하지 않음]

경조京兆 흥선사興善寺 유관惟寬 선사의 법손 6인
경조京兆 법지法智 선사 
경조京兆 무표無表 선사
경조京兆 혜건慧建 선사 
경조京兆 원정元淨 선사
경조京兆 혜광慧光 선사 
경조京兆 의종義宗 선사
  [이상 6인은 기연할 어구가 없으므로 기록하지 않음]

운수雲水 정종靖宗 선사의 법손 2인
화주華州 소마小馬 신조神照 선사
화주華州 도원道圓 선사 
  [이상 2인은 기연할 어구가 없으므로 기록하지 않음]

담주潭州 용아산龍牙山 원창圓暢 선사의 법손 2인
가화嘉禾 장이藏廙 선사
  [1인은 기록에 보임]
양장羊腸 장추藏樞 선사 
  [1인은 기연할 어구가 없으므로 기록하지 않음]

분주汾州 무업無業 국사의 법손 2인
진주鎭州 상정常貞 선사
진주鎭州 봉선奉先 의義 선사 
  [이상 2인은 기연할 어구가 없으므로 기록하지 않음]

여산廬山 귀종사歸宗寺 지상智常 선사의 법손 6인
복주福州 부용산芙蓉山 영훈靈訓 선사
한남漢南 곡성현穀城縣 고정高亭 화상
신라新羅 대모大茅 화상
오대산五臺山 지통智通 선사 
  [이상 4인은 기록에 보임]
홍주洪州 고안高安 대우大愚 선사
강주江州 자사刺史 이발李渤 
  [이상 2인은 기연할 어구가 없으므로 기록하지 않음]

노조산魯祖山 보운寶雲 선사의 법손 1인
운수雲水 화상
  [1인은 기연할 어구가 없으므로 기록하지 않음]

자옥산紫玉山 도통道通 선사의 법손 1인
당唐 양주襄州 절도사節度使 우적于頔
  [1인은 기연할 어구가 없으므로 기록하지 않음]

화엄사華嚴寺 지암智巖 선사의 법손 1인
황주黃州 제안齊安 화상 
  [1인은 기록에 보임]


회양懷讓 선사의 제3세 ②

앞의 지주池州 남전南泉 보원普願 선사의 법손

호남湖南 장사長沙 경잠景岑 초현招賢 대사
처음에는 녹원鹿苑에서 제1세世의 주지로 있었다. 나중에는 일정한 장소가 없이 살면서 인연에 따라 중생을 제접하고 요청에 따라 법을 설해 주니, 당시 사람들이 그를 장사長沙 화상이라 하였다.
상당上堂하여 말했다.
“내가 만일 한결같이 종지의 가르침만을 고양하면 법당 앞에 풀이 한 길이나 자라게 된다. 그러므로 나는 어찌할 수 없어서 그대들에게 말하나니, 온 시방세계가 사문의 눈[眼]이요, 온 시방세계가 사문의 전신全身이요, 온 시방세계가 자기 광명自己光明이요, 온 시방세계가 자기 광명 속에 존재하며, 온 시방세계의 단 한 사람도 자기 아님이 없다. 내가 항상 그대들에게 말하기를 ‘3세의 모든 부처가 온 법계의 중생들과 더불어 마하반야摩訶般若의 광명이다’라고 하였는데, 광명이 발하지 않았을 때 그대들은 어디에 있었는가? 광명이 아직 발하지 않았을 때는 부처도 없고 중생의 징조도 없거늘, 산하와 국토는 어디서 오겠는가?”
그때에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사문의 눈입니까?”
대사가 대답했다.
“영원히 드러낼 수 없느니라.”
또 말하였다.
“부처를 이루고 조사를 이루어도 드러낼 수 없고, 여섯 세계[六道]에 윤회하여도 드러낼 수 없느니라.”
“드러낼 수 없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낮에는 해를 보고, 밤에는 별을 보는 것이다.”
“학인은 잘 모르겠습니다.”
“묘고산妙高山의 빛깔이 푸르고 또 푸르니라.”

어떤 스님이 물었다.
“가르침 중에서 말씀하시기를 ‘항상 이 보리의 자리[菩提座]에 처한다’고 하는데, 어떤 것이 이 자리입니까?”
“노승老僧이 바로 앉았는데, 대덕은 바로 섰구먼.”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대도大道입니까?”
“그대를 아주 없애 버려라.”

어떤 스님이 물었다. 
“모든 부처님의 스승은 누구입니까?”
“비롯함이 없는 겁 이래로 누가 음덕을 덮어 주었는가?”
“부처님들이 나시기 전에는 어떠합니까?”
“노조(魯祖:보운 선사)가 법당을 열었을 때에도 사승師僧과 더불어 횡설수설하였었다.” 노조가 교화를 시작할 때에 어떤 스님이 나와서 “부처님들의 스승이 누구냐?”고 물으니, 노조가 말하기를 “머리 위에 보배관을 쓴 분이 아니고 무엇이랴”라고 하였다. 


어떤 스님이 물었다.
“학인이 지위[地]에 의거하지 않을 때는 어떠합니까?”
“그대는 어느 곳을 향하여 안신입명安身立命하겠는가?”
“지위에 의거할 때는 어떠합니까?”
“저 송장을 끌어내라.”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이류異類 중생을 교화하기 위하여 인간 이외의 몸을 받아 난 것을 말한다.
입니까?”
“자[尺]는 짧고, 치[寸]는 길구나.”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모든 부처님의 스승입니까?”
“곧은 것을 다시 휘어서 굽게 만들지 말라.”
“화상에게 향상向上의 설법을 청합니다.”
“그대[闍梨]는 눈이 멀었는데, 귀까지 먹으면 어찌하려고?”

대사가 같이 참구하는 회會 화상에게 어떤 스님을 보내 이렇게 말하게 하였다.
“화상께서 남전南泉을 뵙고 난 뒤에는 어떠했습니까?”
회 화상이 잠자코 있으니, 그 스님이 다시 물었다
“화상께서 남전을 뵙기 전에는 어떠하셨습니까?”
회 화상이 대답했다.
“다시 다른 것이 있을 수 없다.”
그 스님이 돌아와서 대사에게 이야기하니, 대사가 게송 하나를 지어서 보였다.

백 길 장대 끝에서도 동요하지 않는 사람을 
비록 깨달았다고 하지만 아직 참되지는 않나니 
백 길 장대 끝에서 모름지기 걸어 나가야 
비로소 시방세계가 온몸[全身]이리라.
百丈竿頭不動人    雖然得入未爲眞
百丈竿頭須進步    十方世界是全身

그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백 길 장대 끝에서 걸어 나가는 것입니까?”
“낭주朗州의 산이요, 예주澧州의 물이니라.”
“화상께서 설명해 주십시오.”
“사해四海와 오호五湖가 모두 황제의 덕화德化 속에 있느니라.”

어떤 나그네가 와서 알현하니, 대사가 불렀다.
“상서尙書여.”
그 사람이 대답을 하자, 대사가 말했다.
“이것이 상서의 본명本命 사람의 생명을 맡은 별, 타고난 운명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 아니겠는가?”
“바로 지금 대답한 것을 여의고 따로 제2의 주인이 있지 않습니다.”
“상서를 지존至尊이라 하면 되겠는가?”
“이렇듯 전혀 대답하지 않을 때가 제자의 주인공이 아니겠습니까?”
“단지 대답할 때만이 아니라 대답하지 않을 때도 비롯함이 없는 겁 이래로 그것이 생사의 근본이었다.”
그리고는 게송을 말했다.

도를 배우는 자가 진리를 인식하지 못함은 
다만 본래부터 식신識神을 인정하기 때문이니 
비롯함이 없는 이래로 생사의 근본을 
어리석은 사람들은 본래의 몸이라 부른다네.
學道之人不識眞    只爲從來認識神
無始劫來生死本    癡人喚作本來身

어떤 수재秀才가 󰡔불명경佛名經󰡕을 보다가 물었다.
“백천 부처님께서 다만 이름만 보일 뿐 어느 국토에 살았다는 말은 없으니, 그들도 중생을 제도하였습니까?”
대사가 말했다.
“황학루黃鶴樓란 시의 제호題號를 최호崔顥가 지은 뒤에 수재도 지은 적이 있는가?”
“지은 적이 없습니다.”
“한가해지거든 한 편 지어보는 것이 어떠한가?”

어떤 스님이 물었다.
“남전 화상이 천화遷化한 뒤에 어디로 가셨습니까?”
“동쪽 집에서는 나귀가 되고, 서쪽 집에서는 말이 된다.”
“그 뜻이 무엇입니까?”
“타야 하면 타고, 내려야 하면 내린다.”

호월皓月이라는 스님이 물었다.
“천하의 선지식들은 3덕德의 열반涅槃을 증득하셨습니까?”
“대덕은 과위果位 위의 열반을 묻는가, 인위因位 안의 열반을 묻는가?”
“과위 위의 열반을 묻습니다.”
“그렇다면 천하의 선지식은 증득하지 못했다.”
“어찌하여 증득하지 못했습니까?”
“공功이 아직 성현들과 가지런하지 못하기 때문이니라.”
“공이 성인들과 가지런하지 않은데, 어찌 선지식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불성佛性을 분명히 보는 것도 또한 선지식이라는 이름을 얻을 수 있다.”
“그러면 공이 어느 도와 가지런해야 대열반大涅槃을 증득했다고 합니까?”
대사가 게송을 지어서 보였다.

마하반야摩訶般若가 비추는 
해탈의 깊고 깊은 법은 
법신의 적멸체寂滅體이니 
셋이 하나인 이치가 원만하고 항상하다네. 
공功이 가지런한 곳을 알고 싶은가? 
이것을 이름하여 항상 적멸한 광명이라 한다네.
摩訶般若照    解脫甚深法
法身寂滅體    三一理圓常
欲識功齊處    此名常寂光

그 스님이 다시 물었다.
“과위 위의 3덕 열반은 이미 알려 주셨습니다만, 어떤 것이 인위因位 안의 열반입니까?”
“대덕大德이 바로 그것이다.”
그 스님이 다시 물었다.
“가르침 속에서 말씀하신 환幻의 뜻이 있습니까?”
“대덕이여, 그게 무슨 말인가?”
“그러면 환幻의 뜻이 없습니까?”
“대덕이여, 그게 무슨 말인가?”
“그렇다면 환의 뜻은 있지도 않고 없지도 않습니까?”
“대덕이여, 그게 무슨 말인가?”
“제가 세 차례나 밝혔으나 모두 환의 뜻과 계합하지 못했으니, 화상께서는 가르침 속에서 말한 환의 뜻을 어떻게 밝히겠습니까?”
“대덕은 일체법의 부사의不思議함을 믿는가?”
“부처님의 진실한 말씀을 어찌 믿지 않겠습니까?”
“대덕이 믿음을 말했는데, 두 가지 믿음[二信] 연신緣信과 증신證信. 연신은 처음으로 불법을 믿는 믿음이요, 증신은 맨 나중에 믿는 믿음이다.
 중에서 어느 것인가?”
“제가 말한 것은 두 가지 믿음 가운데서 연신緣信에 해당합니다.”
“어떤 교문敎門에 의거하여 연신을 내었는가?”
“󰡔화엄경󰡕에 말하기를 ‘보살마하살은 막힘도 걸림도 없는 지혜로써 일체 세간의 경계가 여래의 경계임을 믿는다’고 하였고, 또 󰡔화엄경󰡕에서 말하기를 ‘모든 불세존께서는 세간의 법과 모든 불법의 성품이 차별이 없어서 결단코 둘이 없음을 잘 아신다’고 하였으며, 또 󰡔화엄경󰡕에서 말하기를 ‘불법과 세간법에서 그 진실을 본다면 일체가 차별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대덕이 열거한 연신緣信의 교문敎門은 상당히 근거가 있구나. 노승이 대덕을 위해 가르침 중에서 말한 환幻의 뜻을 밝혀 주겠으니 잘 들어라. 만일 어떤 사람이 환幻이 본래 참[眞]임을 보면, 그렇다면 이름하여 부처를 본 사람이라 한다. 원만히 통하는[圓通] 법과 법은 생멸이 없나니, 멸함도 없고 생함도 없는 것이 부처님 몸[佛身]이니라.”
그 스님이 또 물었다.
“지렁이를 두 토막으로 끊으면 두 토막이 모두 움직이는데, 불성은 어느 쪽에 있습니까?”
“움직임과 움직이지 않음이 어떤 경계인가?”
“그 말씀은 경전과 관련이 없으니, 지혜로운 이의 말이라 할 수 없습니다. 화상께서 말씀하시기를 ‘움직임과 움직이지 않음이 어떤 경계인가?’라고 하셨는데, 어느 경전에서 나온 말입니까?”
“과연 그렇다. 말이 경전에 관계치 않는 것은 지혜로운 이의 말이 아니다. 그러나 대덕은 어찌하여 보지 못했는가? 󰡔수능엄경首楞嚴經󰡕에 말하기를 ‘반드시 알아야 한다. 시방의 끝없고 움직이지 않는 허공과 아울러 요동하는 땅․물․불․바람을 똑같이 6대大라 하나니, 성품이 참되고 원융하여 모두가 여래장如來藏이라서 본래 생멸이 없다’고 하였다.”
이어서 게송을 말했다. 

가장 깊고도 심히 깊구나.
법계와 사람의 몸이 문득 마음일세.
미혹한 이는 본래 마음을 잃고 온갖 경계[色]를 짓지만
깨닫고 나면 찰토刹土의 경계가 바로 참 마음[眞心]이로다.
몸과 계界의 두 티끌이 실다운 모습이 없으니
분명히 이를 요달하는 것을 지음知音이라 부른다네.
最甚深  最甚深    法界人身便是心
迷者迷心爲衆色    悟時刹境是眞心
身界二塵無實相    分明達此號知音

그 스님이 또 물었다.
“어떤 것이 다라니陀羅尼입니까?”
대사가 선상禪床의 오른쪽 끝[右邊]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저 사승師僧이 외울 줄 안다.”
“그밖에도 외우는 이가 있습니까?”
대사가 다시 선상의 왼쪽 끝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저 사승도 외울 줄 안다.”
“저에게는 어찌하여 들리지 않습니까?”
“대덕은 어찌하여 참된 외움에는 메아리가 없고, 참된 들음에는 들은 바가 없다는 것을 모르는가?”
“그렇다면 음성은 법계의 성품에 들어가지 않습니까?”
“빛깔을 여의고서 보려는 것은 올바른 봄[正見]이 아니고, 소리를 여의고서 들으려는 것은 삿된 들음이다.”
“어찌하여 빛깔을 여의지 않는 것이 올바로 보는 것이며, 소리를 여의지 않는 것이 올바로 듣는 것입니까?”
대사가 게송을 지어 보였다.

눈에 가득한 것은 본래 빛깔이 아니고
귀에 가득한 것도 본래 소리가 아니니
문수는 항상 눈에 접촉하고
관음觀音이 이근耳根을 채웠다.
滿眼本非色    滿耳本非聲
文殊常觸目    觀音塞耳根

셋을 알면 원래 한 바탕[一體]이고
넷을 요달하면 본래 동일한 진眞이니
당당한 법계의 성품에는
부처도 없고 또한 사람도 없다.
會三元一體    達四本同眞
堂堂法界性    無佛亦無人

어떤 스님이 남전南泉에게 물었다.
“살쾡이와 흰 염소는 있는 줄 알겠으나 3세의 모든 부처님은 있는 줄 모르겠다고 하셨으니, 어찌하여 3세의 부처님께서 있는 줄을 모르십니까?”
“녹원鹿苑에 들어가지 않았을 때에는 그래도 비슷하였다.”
“살쾡이와 흰 염소는 어찌하여 있는 줄 압니까?”
“그대는 어찌하여 그것을 괴이하게 여기는가?”
“화상께서는 누구의 대를 이었습니까?”
“나는 누구의 대도 잇지 않았다.”
“물어서 배우기는 하였습니까?”
“나 스스로 묻고 배웠느니라.”
“스님의 뜻은 무엇입니까?”
대사가 게송을 지어 보였다.

허공이 만상萬象에게 묻고 
만상이 허공에게 답하는 것을
어느 누가 친히 듣겠느냐.
나무로 만든 인형 아이로다.
虛空問萬象    萬象答虛空
誰人親得聞    木叉丱角童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평상한 마음[平常心]입니까?”
“자고 싶으면 자고, 앉고 싶으면 앉는 것이니라.”
“학인은 잘 모르겠습니다.”
“더우면 서늘하게 하고, 추우면 불을 쪼인다.”
“위로 향하는 외가닥 길[向上一路]을 말씀해 주십시오.”
“한 개의 바늘에 석 자의 실이다.”
“어찌 알아야 하겠습니까?”
“익주益州의 베와 양주揚州의 비단이다.”

어떤 스님이 물었다. 
“움직임[動]은 법왕法王의 싹이고, 고요함[寂]은 법왕의 뿌리라 하니, 어떤 것이 법왕입니까?”
대사가 노주露柱를 가리키면서 말했다.
“왜 저 대사에게 묻지 않는가?”

대사가 뜰 앞에서 볕을 쪼이는데, 앙산仰山이 말했다.
“사람마다 다 저런 일이 있건만 다만 수용하지를 못하는구나.”
대사가 말했다.
“마치 그대에게 수용하기를 청하는 것 같구나.”
“어떻게 수용하겠습니까?”
대사가 앙산을 차서 쓰러뜨리니, 앙산이 말했다.
“곧바로 호랑이[大蟲]같이 되었구나.”[장경長慶이 말하기를 “먼저는 둘 다 작가作家이더니 나중에는 둘 다 작가가 아니로구나”라고 하였다. 그리고 이어 따로 말하기를 “삿된 법을 조복시키기 어렵구나”라고 하였다.]
이로부터 모든 곳에서 그를 경잠의 호랑이라 불렀다.

어떤 스님이 물었다.
“본래의 사람[本來人]도 부처를 이룹니까?”
“그대는 대당의 천자天子가 손수 씨를 심고 벼를 베는 것을 보았는가?”
“그러면 어떤 사람이 부처를 이룹니까?”
“그대가 부처를 이룬다.”
그 스님이 말이 없으니, 대사가 말했다.
“알겠는가?”
“모르겠습니다.”
“가령 사람이 땅으로 인하여 넘어졌으면 다시 땅을 인하여 일어나야 하는데, 땅이 무어라 하더냐?”

삼성三聖이 수秀 상좌上座를 시켜서 물었다.
“남전이 천화한 뒤에 어디로 갔습니까?”
대사가 대답했다.
“석두石頭가 사미로 있을 때에 6조를 뵈었느니라.”
수 상좌가 말했다.
“석두가 6조를 뵌 일을 묻는 것이 아닙니다. 남전이 천화한 뒤에 어디로 갔습니까?”
“그[伊]로 하여금 잘 생각해서 가게 하라.”
수 상좌가 말했다.
“화상께는 비록 천 자나 되는 겨울 소나무는 있으나, 가지를 추출한 석순石筍은 없군요.”
대사가 잠자코 있으니, 수 상좌가 말했다.
“화상께서 대답해 주신 것을 감사드립니다.”
대사는 여전히 잠자코 있었다. 수 상좌가 삼성에게 가서 이야기하니, 삼성이 말했다.
“만일 진실로 그렇다면, 오히려 임제臨濟의 일곱 걸음보다 훌륭하다. 그러나 설사 그렇더라도 내가 다시 점검해 봐야 하겠다.”
이튿날 삼성이 올라와서 물었다.
“화상께서 어제 남전이 천화한 뒤에 어디로 갔느냐는 말에 대답하셨다고 들었는데, 광전절후光前絶後 전무후무前無後無하다는 뜻의 광전절후曠前絶後의 오기인 듯하다.
의 고금에 듣기 어려운 법문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대사가 여전히 잠자코 있었다.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문수文殊입니까?”
“담장 위의 기왓장이니라.”
“어떤 것이 관음觀音입니까?”
“소리와 말이니라.”
“어떤 것이 보현普賢입니까?”
“중생의 마음이다.”
“어떤 것이 부처입니까?”
“중생의 색신色身이니라.”
“항하의 모래알같이 많은 부처님의 본체는 모두 동일하거늘, 어찌하여 갖가지 명호가 있습니까?”
“안근眼根으로부터 근원을 돌이킨 것을 이름하여 문수라 하고, 이근耳根으로부터 근원을 돌이킨 것을 이름하여 관음이라 하고, 마음으로부터 근원을 돌이킨 것을 이름하여 보현이라 한다. 문수는 부처님의 묘하게 관찰하는 지혜[妙觀察智]요, 관음은 부처님의 반연 없는 큰 자비[無緣大慈]요, 보현은 부처님의 함이 없는 묘한 행[無爲妙行]이니, 세 성인은 부처님의 묘한 작용이고 부처님은 세 성인의 참된 체體이다. 작용을 하면 항하의 모래알같이 많은 거짓 이름이 있으나, 본체는 통틀어 박가범薄伽梵 하나뿐이다.”

어떤 스님이 물었다.
“색色이 곧 공空이요, 공이 곧 색이라 하는데, 이 이치가 어떠합니까?”
대사가 게송을 말했다.

막힌 곳이 장벽이 아니니
통한 곳을 허공이라 하지 말라.
만약 사람이 이렇게 이해하면
마음과 경계는 본래 같으니라.
礙處非牆壁    通處勿虛空
若人如是解    心色本來同

또 게송을 말했다.

불성이 훤하게 드러나 있는데
성품에 머물고 정情을 두면 보기 어려우니
중생에 내가 없음을 깨달으면
내 얼굴과 부처의 얼굴이 무엇이 다르랴?
佛性堂堂顯現    住性有情難見
若悟衆生無我    我面何殊佛面

스님이 물었다.
“제6식識과 제7식과 제8식은 필경 본체가 없거늘, 어찌하여 제8식을 굴려서 대원경지大圓鏡智를 이룬다고 하는 것입니까?”
대사가 게송으로 대답했다.

7식의 생겨남은 하나의 멸함에 의지하고 
하나의 멸함은 7식의 생겨남을 유지한다.
하나의 멸함은 멸함도 멸한 것이니
6식과 7식은 영원히 변천치 않네.
七生依一滅    一滅持七生
一滅滅亦滅    六七永無遷

또 어떤 스님이 물었다.
“지렁이를 두 토막으로 끊을 때에 두 토막이 모두 움직이는데, 불성은 어느 쪽에 있습니까?”
“망상은 해서 무엇 하겠는가?”
“그러나 꿈틀거리는데 어찌하겠습니까?”
“그대는 어찌하여 불과 바람이 아직 흩어지지 않았음을 모르는가?”
“어찌해야 산하와 국토를 굴려서 자기로 귀의하게 하겠습니까?”
대사가 도리어 물었다.
“어찌해야 자기를 굴려서 산하와 국토를 이루게 하겠는가?”
“알지 못하겠습니다.”
“호남성湖南城 밑은 백성을 부양하기 좋으니, 쌀값이 싸고 땔감이 많아서 사방의 이웃을 만족시키느니라.”
그 스님이 말이 없으니, 대사가 게송을 말했다.

산하를 굴린다고 누가 묻는가?
산하가 구르면 어디를 향하는가?
원통圓通에는 두 둔덕이 없으니
법성은 본래 돌아감이 없다.
誰問山河轉    山河轉向誰
圓通無兩畔    法性本無歸

󰡔화엄경󰡕을 강론하는 어떤 대덕이 물었다.
“허공은 실제 있는 것입니까, 아니면 없는 것입니까?”
대사가 말했다.
“있다 말해도 되고, 없다 말해도 된다. 허공이 있을 때에는 다만 거짓 있음만이 있고, 허공이 없을 때에는 다만 거짓 없음만이 없다.”
“화상께서 말씀하시는 바는 어떤 경전에 있는 말씀입니까?”
“대덕은 어찌 듣지 못했는가? 󰡔수능엄경󰡕에 말하기를 ‘시방의 허공이 그대의 마음 안에 생겨난 것이 마치 조각구름이 푸른 하늘에 떠 있는 것과 같다’고 하였으니, 이 어찌 허공이 생겨날 때에 거짓 이름만이 생겨나는 것이 아니겠는가? 또 말하기를 ‘너희들 한 사람이 참[眞]을 일으켜서 근원[元]에 돌아가면, 시방 허공이 모두 무너진다’고 하였으니, 이 어찌 허공이 사라질 때에 거짓 이름만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므로 내가 말하기를 ‘있음은 거짓 있음뿐이요, 없음은 거짓 없음뿐이다’라고 하는 것이다.”
다시 물었다.
“경에 말하기를 ‘마치 맑은 유리 안에 순금의 상像이 나타난 것과 같다’고 하는데, 이 뜻이 어떤 것입니까?”
“깨끗한 유리로써 법계의 체體를 삼고, 순금의 상像으로 무루지無漏智의 체를 삼으면, 체가 능히 지혜를 낳고 지혜가 능히 체를 요달하나니, 이 때문에 ‘맑은 유리 안에 순금의 상이 나타난 것과 같다’고 말한 것이니라.”
“어떤 것이 상상인上上人의 행할 곳입니까?”
“죽은 사람의 눈동자와 같다.”
“상상인이 서로 볼 때에는 어떠합니까?”
“죽은 사람의 손과 같으니라.” 쓸데없다는 뜻이다. 

“선재동자善財童子는 어찌하여 한량없는 겁 동안 보현의 몸 안에 있는 세계를 돌아다녔는데도 두루하지 못했습니까?”
“그대는 한량없는 겁 이래로 돌아다녔는데 두루하였는가?”
다시 물었다.
“어떤 것이 보현普賢의 몸입니까?”
“함원전含元殿 서울인 장안 안에 있는 대궐이다.
 안에서 다시 장안長安을 찾는구나.”
“어떤 것이 학인學人의 마음입니까?”
“온 시방세계가 그대의 마음이니라.”
“그렇다면 학인은 몸을 붙일 곳이 없겠습니다.”
“이것이 그대의 몸 붙일 곳이니라.”
“어떤 것이 몸 붙일 곳입니까?”
“바닷물이 깊고 또 깊으니라.”
“학인은 잘 모르겠습니다.”
“물고기와 용의 출입이 멋대로 오르락내리락 하느니라.”
“어떤 사람이 물으면 화상께서는 인연 따라서 대답해 주시겠지만, 전혀 아무도 묻지 않을 때에는 어찌하시겠습니까?”
“피곤하면 잠을 자고, 피로가 풀리면 일어난다.”
“학인이 어떻게 이해하라고 하시는 것입니까?”
“여름에는 벌거벗고 있으나, 겨울에는 옷을 입어야 하느니라.”
“죽은 스님이 어디로 갔습니까?”
대사가 게송으로 대답했다.

금강 같은 몸임을 모르고서
도리어 인연 따라 생겼다고 하는구나.
시방의 참다운 적멸은
어디엔 있고 또 어디엔 없으랴.
不識金剛體    却喚作緣生
十方眞寂滅    誰在復誰行

남전의 초상화에 찬讚을 부쳤다.

당당한 남전이여,
3세의 근원이니
금강으로 항상 머물러서
시방에 끝이 없네.
중생과 부처가 다함이 없으니
나타났다가는 곧 되돌아가네.
堂堂南泉    三世之源    
金剛常住    十方無邊
生佛無盡    現已却還

남전이 오래도록 막혀 있다가 깨닫고는 게송을 지었다.

오늘에야 고향에 돌아와 대문에 들어가니
남전이 친히 건곤乾坤에 두루했다고 말하네.
법과 법이 분명하여 모두가 조부祖父이니
돌이켜 뒤를 보면 후손들에게 부끄럽네.
今日還鄕入大門    南泉親道遍乾坤
法法分明皆祖父    迴頭慚愧好兒孫

대사가 이에 화답하였다.

오늘날 깨달은 일을 논하지 말지니
남전은 건곤에 두루했다고 말하지 않네.
고향에 돌아오면 모두가 후손의 일이니
조부祖父는 본래 문에 들어가지 않았네. 조부祖父란 본분本分이요, 후손들이란 신훈新薰이다. 

今日投機事莫論    南泉不道遍乾坤
還鄕盡是兒孫事    祖父從來不入門

대사가 또 배움을 권하는 게송을 지어 보였다.

만 길 장대 끝에서 아직 쉬지를 못하고
당당한 길이 있건만 노니는 이 별로 없네.
선사들아, 바라건대 남전을 통달하면
눈에 가득한 청산이 온통 가을이구나.
萬丈竿頭未得休    堂堂有路少人遊
禪師願達南泉去    滿目靑山萬萬秋

임제臨濟 화상이 “붉은 살덩이 위에 지위 없는 참 사람[無位眞人]이 있다”고 한 말을 인하여 대사가 게송을 지어 보였다.

만법이 한결같아서 가려낼 필요가 없나니
한결같다면 무엇을 가리고 무엇을 가리지 않으랴.
바로 지금의 생사가 본래 보리이니
3세의 여래와 똑같은 눈을 갖추었네.
萬法一如不用揀    一如誰揀誰不揀
卽今生死本菩提    三世如來同箇眼
대사가 사람들이 솔[松]과 대[竹]를 꺾는 짓을 경계하는 게송을 지었다.

천년 묵은 대와 만년 묵은 솔이여,
가지마다 잎사귀마다 모두가 동일하네.
사방의 수도하는 학인들에게 말하나니
손을 옴쭉하면 모두가 조사의 몸이다.
千年竹  萬年松    枝枝葉葉盡皆同
爲報四方玄學者    動手無非觸祖公

형남荊南 백마白馬 담조曇照 선사 
항상 말하기를 “즐겁다, 즐겁다[快活]”고 하더니, 임종할 때에는 “괴롭다, 괴롭다”고 하였다. 또 말하기를 “염라대왕閻羅大王이 나를 잡으러 왔구나”라고 하였는데, 이때 원주院主가 물었다.
“화상께서는 예전에 절도사節度使가 물속으로 던지는 일을 당하여도 얼굴 빛 하나 동요치 않으시더니, 오늘은 어찌하여 이러십니까?”
대사가 목침을 들고 말했다.
“너는 그때가 옳다는 것인가, 지금이 옳다는 것인가?”
원주가 대답이 없었다.[법안法眼이 대신 말하기를 “그때에 다만 귀를 가리고 나갔어야 한다”라고 하였다.]

종남산終南山 운제雲際 사조師祖 선사
처음에 남전에 있을 때에 물었다.
“마니주摩尼珠를 알아보는 이가 없는데, 여래장如來藏 안에서 직접 얻을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어떤 것이 여래장입니까?”
남전이 대답했다.
“그대와 더불어 오고 가는 것이 여래장이니라.”
“오고 가지 않는 것은 어떠합니까?”
“그것도 여래장이니라.”
“어떤 것이 구슬입니까?”
남전이 불렀다.
“사조師祖여.” 
대사가 대답했다.
“네.”
“가거라. 그대는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한다.”
대사가 이로부터 믿어 들어갔다.

등주鄧州 향엄香嚴 하당下堂 의단義端 선사
대중에게 보이셨다.
“형제들이여, 피차彼此가 아직 요달하지 못했다면, 무슨 일을 함께 헤아리고 따지겠는가? 내가 15일이면 곧 발표하리라. 지금의 학자들은 모름지기 금시今時를 요달해야 하지, 저 향상인向上人의 일 없음[無事]을 애착하지 말라. 
형제들이여, 설사 아무리 갖가지 차별된 이치[義路]를 배웠다 하여도 끝내 자기의 견해로 대신하지 못하리니, 마침내 직접 힘을 써야 비로소 얻는다. 공연히 남의 교묘한 구절이나 기억해서는 도리어 어지러움만을 더할 뿐이다. 그대들이 만일 상응하고 싶다면, 오로지 힘써 다하여 가는 털끝 하나도 남겨두지 말라. 그리하여 다만 허공과 같게 되면 바야흐로 약간의 분수가 있으리니, 허공은 사슬도 없고, 장벽도 없고, 형체도 없고, 마음도 눈도 없기 때문이니라.”
어떤 스님이 물었다.
“옛사람이 서로 만날 때에는 어찌하였습니까?”
“노승은 저 옛사람을 만난 적이 없다.”
“요사이 혈맥이 끊이지 않는 곳을 어째서 부러워합니까?”
“부러워 할 일이 무엇인가?”
“저는 한가로운 일은 묻지 않겠으니, 화상께서 대답해 주십시오.”
“나에게서 무엇을 더 찾는가?”
“한가한 일을 위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대는 날보고 꼭 말을 하라는 것인가?”
대사가 또 말했다.
“형제들이여, 부처도 티끌이요 법도 티끌이니, 종일토록 달리면서 구하면 언제 쉬겠는가? 다만 일상 가운데 정情을 두지 말고, 정을 사물에 걸어두지 말라. 선善이라 해서 취할 것도 없고, 악惡이라 해서 버릴 것도 없나니, 그들의 올가미를 쓰지 않게 해야 비로소 배울 자리니라.”

어떤 스님이 말했다.
“제가 일찍이 한 노숙老宿을 하직하는데, 그가 저에게 말하기를 ‘가거든 어진 벗을 가까이하고 도반을 따르라’고 하였습니다. 그 노숙의 뜻이 무엇이겠습니까?”
그리고는 절을 하려는데 대사가 말했다.
“절이야 마음대로 하더라도 노비를 상전으로 잘못 알지는 말라.”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근원을 곧바로 끊는 것입니까?”
대사가 주장자를 던지고 방장으로 들어가 버렸다. 

어느 날 대사가 대중에게 말했다.
“말을 하면 비방하는 것이요, 고요하면 기만하는 것이다. 고요함과 말함에도 위로 향하는 길이 있겠지만, 노승이 입이 좁아서 그대들에게 말할 수가 없구나.”
그리고는 곧 법당에서 내려왔다.
스님이 물었다.
“한 구절이 무엇입니까?”
“여기에는 한 구절이랄 것도 없다.”
“정인(正因:本分)에 대해 어찌하여 일이 없습니까?”
“나는 멈추거나 그친 적이 없다.”
또 말했다.
“설사 겹겹으로 깎고 다듬어서 깨끗하게 하더라도 멈추어 그친 적이 없고, 방편으로 때로 시설을 한다 하여도 역시 방편으로 사람을 제접한 것이다. 만일 저쪽의 일이라면 그럴 이치가 없다.”

조주趙州 관음원觀音院[동원東院이라고도 함] 종심從諗 선사
그는 조주曹州 학향郝鄕 사람으로서 성은 학郝씨이다. 어릴 때에 고향의 호통원扈通院에서 스승에 의해 머리를 깎았으나, 계는 받지 않고 있다가 바로 지양池陽으로 가서 남전南泉을 뵈었다. 때마침 남전이 누워서 쉬다가 물었다.
“근래에 어디서 떠났는가?”
“근래에 서상원瑞像院에서 떠났습니다.”
“서상瑞像을 본 적이 있는가?”
“서상은 보지 못했고, 다만 누워 있는 여래만을 보았습니다.”
“너는 주인이 있는 사미냐, 주인이 없는 사미냐?”
“주인이 있는 사미입니다.”
“주인이 어디 있는가?”
“한겨울 날씨가 지독히 차가우니, 화상께서는 존체만복尊體萬福하십시오.”
남전이 법기라고 여겨서 입실入室을 허락하였다. 

다른 날 남전에게 물었다.
“어떤 것이 도道입니까?”
“평상심平常心이 도이니라.”
“향해서 나아갈 수 있습니까?”
“향하려 하면 즉시 어긋난다.”
“향하려고 하지 않을 때에는 어떻게 도인 줄 압니까?”
“도는 알고 모르는 데 속하지 않나니, 아는 것은 허망한 지각이고, 알지 못함은 무기無記 여기서는 생각이 없음을 말한다.
이다. 만일 참으로 통달하여 의심치 않는 도라면 마치 허공처럼 텅하니 트인 것과 같으니, 어찌 억지로 시비를 일으키리오.”
대사가 그 말끝에 이치를 깨달았다. 그리하여 숭악嵩嶽의 유리단琉璃壇에 가서 계를 받은 뒤에 다시 남전으로 돌아왔다. 

어느 날 남전에게 물었다.
“본분이 있는 줄 아는 사람은 어느 곳을 향해 쉽니까?”
“산 밑에서 소가 되느니라.”
“가르쳐 주셔서 고맙습니다.”
“지난밤 3경更에 달이 창에 비치더라.”

대사가 화두火頭를 맡고 있었는데, 어느 날 문을 잠그고 불을 붙여서 집안에 연기를 가득하게 해 놓고는 소리쳤다.
“불이야, 불이야.”
그때 대중이 모두 달려오자, 대사가 말했다.
“말하면 즉시 문을 열어 주리라.”
대중이 아무도 대답하는 이가 없었는데, 남전이 열쇠를 가지고 와서 창틈으로 넘겨주자, 대사가 얼른 문을 열었다.

또 황벽黃蘗에게 가니, 황벽이 대사가 오는 것을 보고 얼른 방장의 문을 닫았다. 대사가 횃불을 법당 안으로 들고 들어가서 “불이야, 불이야” 하니, 황벽이 문을 열고 꼭 붙들고는 물었다.
“말해 봐라.”
대사가 말했다.
“도적이 떠난 뒤에 활을 쏘는군요.”

또 보수寶壽에게 가니, 보수는 대사가 오는 것을 보고 선상禪床 위에서 돌아앉았다. 대사가 자리를 펴고 절을 하니 보수가 선상에서 내려앉으므로 대사는 나와 버렸다.

또 염관鹽官에게 가서 말했다.
“화살이오.”
염관이 대답했다.
“지나쳤다.”
대사가 다시 말했다.
“맞았다.”

또 협산夾山에게 가서 주장자를 들고 법당으로 들어가니, 협산이 말했다.
“무엇을 하는가?”
“물속을 더듬는 중이오.”
“한 방울도 없는데 무엇을 더듬는가?”
대사가 주장자를 짚고서 나와 버렸다.

대사가 오대산五臺山 구경을 가려고 하는데, 어떤 대덕이 게송을 지어서 만류하였다.

어느 곳 청산인들 도량이 아니기에
구태여 지팡이 짚고 청량淸凉에 절하는가.
구름 속에 설사 황금 털이 나타난다 해도
올바른 눈으로 볼 때에는 길상이 아니라네.
何處靑山不道場    何須策杖禮淸涼
雲中縱有金毛現    正眼觀時非吉祥

대사가 물었다.
“어떤 것이 올바른 눈입니까?”
대덕이 대답이 없었다.[법안法眼이 대신 말하기를 “상좌가 나의 생각을 알아주시오”라고 하였다. 동안同安 현顯이 대신 말하기를 “이것이 상좌의 눈이오”라고 하였다.]

대사의 도가 이로부터 북쪽 지방에 퍼지니, 대중이 조주趙州 관음원의 주지로 청했다. 상당하여 대중에게 말했다.
“손바닥에 있는 밝은 구슬에 호인胡人이 다가오면 호인이 나타나고, 한인漢人이 오면 한인이 나타나는 것과 같다. 노승이 한 가닥 풀을 잡고서 장륙금신丈六金身의 작용으로 삼고, 장륙금신을 잡아서 한 가닥 풀의 작용으로 삼나니, 부처가 번뇌이고 번뇌가 부처이다.”
이때에 어떤 스님이 물었다.
“부처는 어떤 이에게 번뇌입니까?”
“온갖 사람에게 번뇌이다.”
“어찌하여야 면하겠습니까?”
“면해서 무엇 하랴?”

대사가 마당을 쓰는데, 어떤 사람이 물었다.
“화상은 선지식인데 어찌하여 티끌이 있습니까?”
“밖에서 왔느니라.”
스님이 또 물었다.
“청정한 가람에 어찌하여 티끌이 있습니까?”
“또 한 점 더했구나.”

또 어떤 사람이 대사와 동산을 거닐다가 토끼가 놀라 뛰는 것을 보고서 물었다.
“화상은 큰 선지식인데, 어찌하여 토끼가 보고서 놀랍니까?”
“노승이 살생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어떤 스님이 물었다.
“깨달음의 꽃[覺華]이 아직 피어나지 않았을 때 어떻게 참 열매[眞實] 본문에는 ‘정貞’으로 되어 있으나 본문 문맥의 흐름상 ‘진眞’으로 보아야 할 듯하며, 명본明本에도 ‘진眞’으로 되어 있으므로 진眞으로 고쳐 번역하였다.
인 줄 알 수 있습니까?”
“피었다.”
“그대로 진眞이고, 그대로 실實입니까?”
“진眞이 실實이고, 실實이 진眞이다.”
“어떤 사람의 분수에 맞는 일입니까?”
“노승에게도 분수가 있고, 그대[闍梨]에게도 분수가 있다.”
“제가 불러들이지 않았는데 어찌합니까?”
대사가 거짓으로 듣지 못한 척했다. 스님이 말이 없으니, 대사가 말했다.
“가거라.”

대사의 절에 돌 깃대가 있었는데, 바람에 부러졌다. 어떤 스님이 물었다.
“다라니陀羅尼 깃대가 범부가 되었습니까, 성인이 되었습니까?”
“범부가 되지도 않고, 성인이 되지도 않았느니라.”
“끝내 무엇이 되었습니까?”
“땅에 떨어졌느니라.”

대사가 어떤 좌주에게 물었다.
“무슨 경을 강하는가?”
“󰡔열반경󰡕을 강합니다.”
“한 대목 물어도 좋겠는가?”
“좋습니다.”
대사가 다리로 허공을 차고 한 번 ‘후’하고 분 뒤에 물었다.
“이건 무슨 뜻인가?”
“경에는 그런 뜻이 없습니다.”
“5백 역사力士 󰡔열반경󰡕에 말하기를 “5백 역사가 길을 닦는데 돌 하나를 치우지 못했다. 이때에 부처님께서 발로 차고 입으로 부니 먼지같이 날아갔다”고 하였다. 
가 돌을 치우는 뜻인데, 없다고 하는군.”

대중이 저녁 설법에 모이자, 대사가 말했다.
“오늘 밤에 대답을 해주겠으니, 물을 것이 있는 자는 나오너라.”
그때 어떤 스님이 문득 나와서 절을 하자, 대사가 말했다.
“아까는 벽돌을 던져서 옥을 낚으려 했는데, 벽돌이 걸려들었구나.”[보수保壽가 말하기를 “법을 바로 쏘지 못하니 몰우전(沒羽箭:화살 이름)만 소비했다”라고 하였다. 장경長慶이 각覺 상좌上座에게 묻기를 “그 스님이 나와서 겨우 절을 했을 뿐인데, 왜 그 스님을 벽돌이라 했을까?”라고 하니, 각 상좌가 말하기를 “아까부터 저쪽에도 그렇게 묻는 이가 있었소”라고 하였다. 장경이 다시 묻기를 “그에게 무어라 했는가?”라고 하니, 각 상좌가 대답하기를 “그에게도 그렇게 대답했소”라고 하였다. 현각玄覺이 말하기를 “어디가 벽돌이 될 요소인가? 총림叢林에서 말하기를 ‘나서기만 하면 벽돌이 된다’고 하였으나, 매일같이 나고, 들고, 다니고, 멈추고, 앉고, 눕는 이들이 모두가 벽돌일 수는 없다. 말해 보라. 그 스님이 나온 것이 안목을 갖추었는가? 안목을 갖추지 못했는가?”라고 하였다.]

어떤 스님이 오대산에 가다가 한 노파에게 물었다.
“오대산 가는 길이 어디요?”
노파가 말했다.
“곧장 가시오.”
그 스님이 그 길로 곧장 가니, 노파가 말했다.
“또 저렇게 가는군.”
그 스님이 대사에게 와서 이야기하니, 대사가 말했다.
“내가 가서 그 노파를 감정해 보겠다.”
이튿날 가서 노파에게 물었다.
“오대산 가는 길이 어디요?”
“곧장 가시오.”
대사가 그 길로 곧장 가니, 노파가 말했다.
“또 저렇게 가는군.”
대사가 절에 돌아와서 그 스님에게 말했다.
“내가 그대를 위해 그 노파를 감정해 보았다.”[현각玄覺이 말하기를 “앞의 스님이 갈 때에도 그렇게 말했고, 조주가 갈 때에도 그렇게 말하니 어디가 그 노파를 감정한 곳인가?”라고 하였다. 또 말하기를 “조주의 감정을 받았을 뿐 아니라 그 스님의 감정까지 받았구나”라고 하였다.]
어떤 스님이 물었다.
“이렇게 온 사람도 스님께서는 제접하십니까?”
“제접한다.”
“이렇게 오지 않은 사람도 스님께서는 제접하십니까?”
“제접한다.”
“이렇게 오는 자는 스님께서 제접할 수 있겠지만, 이렇게 오지 않은 자야 어떻게 제접하시겠습니까?”
“그만두어라. 말할 필요가 없다. 나의 법은 묘하여 헤아리기 어렵다.”

대사가 절을 떠나서 길을 가다가 한 노파를 만났는데, 그녀가 물었다.
“화상께서는 어느 절에 계십니까?”
“조주趙州 동원東院 서쪽이오.”
노파가 대답이 없었다. 대사가 절에 돌아와서 대중에게 물었다.
“서쪽이라 한 것이 옳았는가?” 
그랬더니 혹은 동쪽이나 서쪽이란 뜻이어야 한다고 하고, 혹은 의지하고 있다는 뜻이어야 한다고 하니, 대사가 말했다.
“그대들 모두가 염철판관(鹽鐵判官:稅務吏)이나 되면 좋겠다.”
“화상께서는 어찌하여 그렇게 말씀하십니까?”
“그대들 모두가 똑똑하기 때문이다.”[법등法燈이 대중을 대표하여 말하기를 “화상께서 가셨던 곳을 알고 있습니다”라고 하였다.]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주머니 속의 보배입니까?”
“입을 다물어라.”[법등法燈이 따로 말하기를 “마치 사람인 듯 말하지 말라”고 하였다.] 

어떤 스님이 새로 와서 대사에게 말했다.
“제가 장안에서 왔는데 주장자 하나를 횡橫으로 메었으나 한 사람도 건드리지 않았습니다.”
“바로 대덕의 주장자가 짧기 때문이겠지.”[동안同安이 대신 말하기를 “노승은 요즘 그런 사람을 본 적이 없다”라고 하였다.]
스님은 대답이 없었다.[법안法眼이 대신 말하기를 “하하하”라고 하였다. 동안同安이 대신 말하기를 “짧지 않습니다”라고 하였다.]

어떤 스님이 대사의 초상을 그려다 바치니, 대사가 말했다.
“나를 닮은 것인지, 나를 닮지 않은 것인지 말하라. 만약 나를 닮았다면 곧 나를 때려죽이고, 나를 닮지 않았다면 그 초상화를 태워 버려라.”
스님은 대답이 없었다.[현각玄覺이 대신 말하기를 “두어 두고 공양하겠습니다”라고 하였다.]

대사가 부싯돌을 치면서 스님에게 물었다.
“나는[老僧] 이것을 불[火]이라 부르는데, 그대는 뭐라 부르는가?”
그 스님이 말이 없자, 대사가 말했다.
“현묘한 종지를 알아채지 못하면, 공연히 수고롭게 고요함만 생각할 뿐이다.”[법등法燈이 따로 말하기를 “내가 그대에게 졌다”라고 하였다.]

새로 온 스님이 와서 뵈니, 대사가 물었다.
“어디서 오는 길인가?”
“남방에서 오는 길입니다.”
“불법은 온통 남방에 다 있는데, 그대는 거기서 무엇을 했는가?”
“불법에 어찌 남북이 있겠습니까?”
“그대가 설사 설봉雪峰이나 운거雲居에서 왔다 하여도 다만 외통수[擔板漢] 판자를 지고 숲 속을 가는 사람이란 말이니, 앞으로만 가고 옆으로는 가지 못하는 외통수라는 뜻으로 쓴다.
일 뿐이다.”[숭수崇壽 조稠가 따로 말하기를 “화상은 나그네로 인하여 주인이 되셨습니다”라고 하였다.]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부처입니까?”
“불전佛殿 안에 있는 것이다.”
“불전에 있는 것이야 진흙으로 빚은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렇다.”
“어떤 것이 부처입니까?”
“불전 안에 있는 것이다.”
“학인이 우둔하여 알지 못하겠습니다. 화상께서 가르쳐 주십시오.”
“죽을 먹었는가?”
“죽을 먹었습니다.”
“발우를 씻게나.”
그 스님은 홀연히 깨달았다.
○ 대사가 상당하여 대중에게 말했다.
“잠시라도 시비가 일어나면 어지러이 본심을 잊는다. 이 말에 대답할 이가 있는가?”
나중에 어떤 스님이 낙포洛浦에게 이야기하니, 낙포가 구치扣齒 아래윗니를 딱딱 부딪치는 것이다.
를 하였다.  또 운거雲居에게 가서 이야기하니, 운거는 “하필何必”이라고 하였다.
그 스님이 돌아와서 대사에게 말하니, 대사가 말했다.
“남방에서 많은 사람이 몸을 잃고 죽어가는구나.”
그 스님이 말했다.
“화상께서 이야기하여 주십시오.”
대사가 마침 이야기하려는데, 그 스님이 곁의 스님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저 대사가 밥을 먹고 나서 이런 말을 하는구나.”
대사가 그만두었다.[이 한 단원은 구본舊本에는 없던 것인데, 여기서는 별록別錄에 의하여 고쳐 바로잡았다.]

어떤 스님이 물었다.
“오래전부터 조주趙州의 돌다리 소문을 들었는데, 와서 보니 외나무다리[掠彴]만이 보이는군요.”
“그대는 외나무다리만을 보고, 조주의 돌다리는 보지 못하는구나.”
“어떤 것이 조주의 돌다리입니까?”
“지나쳤다, 지나쳤어.”
또 어떤 스님이 앞과 똑같이 묻기에 대사도 앞과 똑같이 대답했다. 그 스님이 다시 물었다.
“어떤 것이 조주의 돌다리입니까?”
“말도 건너게 하고, 나귀도 건너게 하느니라.”
“어떤 것이 외나무다리입니까?”
“한 사람 한 사람씩 건너게 하느니라.”[운거雲居 석錫이 말하기를 “조주는 돌다리를 두둔했는가? 외나무다리를 두둔했는가?”라고 하였다.]

대사가 사미의 문안드리는 소리를 듣고, 시자에게 말했다.
“저 아이를 보내라.”
시자가 곧 가라고 하니, 사미는 인사를 하고 떠났다.
이때에 대사가 말했다.
“사미는 문안에 들어왔는데, 시자는 문밖에 있구나.”[운거雲居 석錫이 말하기를 “어느 것이 사미는 문안에 있고 시자는 문밖에 있는 까닭인가? 만일 이 일을 잘 알면 조주를 보게 되리라”고 하였다.]

대사가 새로 온 스님에게 물었다.
“어디서 왔는가?”
“남쪽에서 왔습니다.”
“조주의 관문關門이 있는 것을 아는가?”
“관문에 상관하지 않는 자가 있음을 아셔야 합니다.”
대사가 말했다.
“이 사제 소금[私鹽]을 팔아먹는 놈아.”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대사가 선상에서 내려와 서자, 그 스님이 말했다.
“그것만으로 옳지 않겠습니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대사가 채두菜頭에게 물었다.
“오늘은 날 채소를 먹는가, 익은 채소를 먹는가?”
채두가 채소를 번쩍 들어서 대사에게 바치니, 대사가 말했다.
“은혜를 아는 이는 적고, 은혜를 저버리는 이는 많구나.”

어떤 스님이 물었다.
“공겁空劫에도 수행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대는 무엇을 공겁이라 하는가?”
“한 물건도 없는 것입니다.”
“그것은 애초에 수행이라 칭할 수도 있거늘 무엇을 공겁이라 하겠는가?”
스님이 말이 없었다.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현묘함 속의 현묘함입니까?”
“그대가 현묘하게 된 지 얼마나 되는가?”
“현묘하게 된 지 오래되었습니다.”
“그대[闍梨]가 만일 나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현묘에게 죽임을 당할 뻔하였다.”
어떤 스님이 물었다.
“만법은 하나로 돌아가지만, 하나는 어디로 돌아갑니까?”
“내가 청주靑州에 있을 때에 베 장삼을 하나 만들었는데, 무게가 일곱 근이었다.”

어떤 스님이 물었다.
“밤에는 도솔천을 떠나고 낮에는 염부제에 강림했는데, 그 중간에 어찌하여 마니 구슬[摩尼珠]이 나타나지 않았습니까?”
“무엇이라 했는가?”
그 스님이 다시 물으니, 대사가 말했다.
“비바시불毘婆尸佛이 벌써부터 마음을 두었지만 아직껏 묘妙를 얻지 못했구나.”

대사가 원주에게 물었다.
“어디서 오는가?”
“송생送生에서 옵니다.”
“까마귀가 어째서 날아가는가?”
“저를 두려워해서입니다.”
“그대는 10년이나 일을 보았는데, 어찌하여 그런 말을 하는가?”
원주가 도리어 물었다.
“까마귀가 왜 날아갔습니까?”
“원주에게 살생할 마음이 없기 때문이니라.”

어느 날 대사가 발우를 번쩍 들고 말했다.
“30년 뒤에 나[老僧]를 볼 수 있거든 남겨 두어서 공양하라. 만일 보지 못하겠다면 부숴 버리리라.”
어떤 스님이 나서서 말했다.
“30년 뒤에는 감히 화상을 뵈었다고 말하겠습니다.”
대사는 곧 발우를 부숴 버렸다.

어떤 스님이 하직을 아뢰니, 대사가 물었다.
“어디로 가려는가?”
“설봉雪峰으로 가겠습니다.”
“설봉이 홀연히 그대에게 묻기를 ‘화상께서 무슨 말씀이 있는가?’ 하면 그대는 무엇이라 대답하겠는가?”
“저는 무엇이라 할지 모르겠으니, 화상께서 말씀해 주십시오.”
“겨울에는 춥다고 말하고, 여름에는 덥다고 말하라. 또 설봉이 그대에게 궁극의 일을 물으면 어찌하겠는가?”
그 스님은 또 말하였다.
“말할 수 없습니다.”
대사가 말했다.
“다만 직접 조주로부터 왔을 뿐이지, 말을 전하는 사람이 아니라고 하라.”
그 스님이 설봉에 가서 앞의 말처럼 설봉에게 말하니, 설봉이 말했다.
“역시 조주다운 대답이로다.”
현사玄沙가 듣고 말했다.
“가엾은 조주여, 낭패하고도 모르고 있구나.”[운거雲居 석錫이 말하기를 “조주가 낭패를 당한 곳이 어디인가? 이를 찾아내면 그는 상좌의 안목을 가졌다”라고 하였다.]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조주의 한 구절입니까?”
“나에게는 반 구절도 없다.”
“어찌 화상에게 없겠습니까?”
“노승은 한 구절이 아니다.”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출가입니까?”
“높은 이름을 차지하지 않고, 구차히 얻으려 하지 않는 것이니라.”

어떤 스님이 물었다.
“맑고 맑아서 점點도 끊어졌을 때에는 어떻습니까?”
“거기서는 나그네로 떠도는 놈이 붙지 못하느니라.”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조사의 뜻입니까?”
대사가 선상의 다리를 치니, 그 스님이 말했다.
“그것만으로는 옳지 않은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렇거든 뽑아 가거라.”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비로자나불의 원만한 모습[圓相]입니까?”
“내가 어려서 출가한 이래 아직도 눈병이 나지 않았느니라.”
“어찌 사람을 위하지 않습니까?”
“그대가 항상 비로자나불의 원만한 모습을 보게 되기를 바란다.”
“화상께서는 지옥에도 들어가시겠습니까?”
“나는 맨 마지막에 들겠다.”
“큰 선지식께서 어찌하여 지옥에 들어가십니까?”
“들어가지 않으면 누가 그대를 교화하겠느냐?”

어느 날 진정수眞定帥 왕공王公이 아들들을 데리고 절에 들어왔는데, 대사가 앉아서 물었다. 
“대왕이여, 알겠습니까?”
왕공이 대답했다.
“모르겠습니다.” 
“어릴 때부터 재계齋戒를 지키다가 몸이 이미 늙어 버리니, 사람을 만나도 선상을 내려갈 힘이 없습니다.”
그러자 왕공이 더욱 예를 갖추었다. 이튿날 객장군客將軍을 시켜서 말을 전하니, 대사가 선상에서 내려와 그를 받아들였다. 조금 있다가 시자가 물었다.
“화상께서는 대왕이 오는 것을 보고도 선상에서 내려오지 않더니, 오늘 군대의 장수가 왔을 때에는 어찌하여 선상에서 내려왔습니까?”
대사가 말했다.
“네가 알 바가 아니다. 제1등의 사람이 오면 선상 위에서 맞고, 중등中等의 사람이 오면 선상에서 내려와 맞고, 말등末等의 사람이 오면 삼문三門 밖에서 맞느니라.”
대사가 불자拂子 하나를 왕공에게 전하면서 말했다.
“만일 어디서 얻었느냐고 묻거든, 다만 노승이 평생 써도 다하지 못한 것이라 말하라.”
대사의 현묘한 말이 천하에 퍼지니, 당시에 조주의 문풍門風이라 하면서 모두가 경외하며 따랐다.
당나라 건녕乾寧 4년 11월 2일에 오른쪽 겨드랑이를 땅에 대고서 입적하니, 수명은 120세였다.[어떤 사람이 대사의 나이를 물으면 대사는 말하기를 “한 둘레의 염주를 세고 세어도 끝이 없다”라고 하였다.] 나중에 진제眞際 대사라는 시호를 내렸다.

지주池州 영취靈鷲 한閑 선사
대중에게 말했다.
“이는 그대들 모두의 본분本分의 일이다. 만일 나[老僧]에게 말하라고 하면, 이는 뱀에다 발을 그리는 격이니, 이것이 바로 돈교頓敎이다. 상좌들이여.”
이에 어떤 스님이 물었다.
“뱀에 발을 그리는 것은 묻지 않겠습니다만, 어떤 것이 본분의 일입니까?”
대사가 말했다.
“그대[闍梨]가 말해 보라.”
그 스님이 다시 물으려 하자, 대사가 말했다.
“어째서 발을 그리는가?”

명수明水 화상이 물었다.
“어떤 것이 단박에 법신法身을 얻는 것입니까?”
“한 번 용문龍門을 뛰어넘어서 구름 밖을 바라보아야지, 황하黃河에 머리를 처박는 물고기는 되지 말라.”

앙산仰山이 물었다.
“고요하고 고요하여 말이 없을 때에 어떻게 보고 듣습니까?”
“무봉탑無縫塔 계란같이 생긴 돌 하나로 만들어 이은 틈이 없는 탑을 말한다. 
 앞에 빗물이 많다.”

어떤 스님이 물었다.
“둘이서 서로 말이 없을 때에는 어떠합니까?”
“항상하다.”
“항상함을 지나치는 것이 있습니까?”
“있다.”
“화상께서 말씀해 주십시오.”
“현묘한 구슬이 스스로 환하게 빛나니, 벽 밖의 광명이 어찌 필요하겠는가?”

어떤 스님이 물었다.
“오늘 서천西川의 무염無染 대사에게 공양이 있는데, 대사께서도 오시겠습니까?”
“본래 스스로 이르는 바가 없거늘, 이젠들 어찌 바람을 따라 구르겠는가?”
“그렇다면 공양해서 무엇 하겠습니까?”
“공력功力은 유위有爲에서 엇바뀌고, 바뀌지 않는 이치[不換義]는 서로 간섭하느니라.” 왕래하지 않는다는 뜻이니 법신을 말한다.

악주鄂州 수유산茱萸山 화상 
처음에 수주隋州의 호국원護國院에서 제1세 주지로 있었는데, 금륜金輪 가관可觀 화상이 물었다.
“어떤 것이 도입니까?”
“허공에다 말뚝을 박지 말라.”
“허공이 말뚝입니다.”
대사가 때리니, 가관이 붙들고 말했다.
“저를 때리지 마십시오. 뒷날에 사람을 잘못 때렸다고 하겠습니다.”
대사가 곧 그만두었다.[운거雲居 석錫이 말하기를 “이 사람이 안목을 갖추었는가, 갖추지 못했는가? 어찌하여 매를 맞았는가?”라고 하였다.]

조주趙州 종심從諗 화상이 먼저 운거雲居에 이르니, 운거가 물었다.
“늙어 빠진 건방진 놈아, 어찌하여 머물 곳을 찾지 않는가?”
종심이 말했다.
“어느 곳에 머물러야 합니까?”
“산 앞에 옛 절터가 있다.”
“화상께서나 그곳에 사시지요.”
종심이 나중에 대사에게 이르니, 대사가 물었다.
“늙어 빠진 건방진 놈아, 어찌하여 머물지 않는가?”
종심이 물었다.
“어디에 머물러야 합니까?”
대사가 말했다.
“늙어 빠진 건방진 놈아, 머물 곳도 모르는구나.”
종심이 말했다.
“30년 동안 말[馬] 놀이를 하다가 오늘에야 나귀에게 채였다.”[운거雲居 석錫이 말하기를 “조주가 나귀에 채인 곳이 어디인가?”라고 하였다.]

여러 스님들이 모시고 섰는데, 대사가 말했다.
“그렇게 공연히 서서 아무 말이 없으니, 답답하기만 하구나.”
어떤 스님이 나와서 물으려 하자, 대사가 그를 때리면서 말했다.
“대중을 위하여 애썼다.”
그리고는 곧 방장으로 들어갔다.

어떤 행자行者가 와서 뵙자, 대사가 물었다.
“일찍이 조주를 만난 일이 있는가?”
“화상께서 한번 말씀해 보시겠습니까?”
“나뿐만 아니라 일체 사람이 말하지를 못한다.”
“화상께서 저를 놓아 주시는 것입니까?”
“그 속은 예전부터 인정人情이 통하지 않는다.”
“그래도 자비심은 있어야 합니다.”
대사가 얼른 때리면서 말했다.
“깬 뒤에 오라. 그대에게 말해 주리라.”


구주衢州 자호암子湖巖 이종利蹤 선사 
그는 전주澶州 사람으로서 성은 주周씨이다. 유주幽州의 개원사開元寺에서 출가하고는 나이가 차자 구족계를 받았다. 나중에 남전南泉에게 입실하고는 바로 구주衢州의 마제산馬蹄山에 가서 띠집을 짓고 살았다.
당나라 개성開成 2년에 고을 사람인 옹천귀翁遷貴가 산 밑의 자호子湖를 보시해서 절을 짓게 하니, 함통咸通 2년에 안국선원安國禪院이라는 편액을 하사하였다.
어느 날, 상당하여 대중에게 보였다.
“자호子湖에 개 한 마리가 있는데, 위로는 사람의 머리를 취하고, 중간으로는 사람의 심장을 취하고, 아래로는 사람의 발을 취하니, 따지려고 하면 곧 몸을 잃고 목숨을 잃는다.”
이에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자호의 개 한 마리입니까?”
대사가 말했다.
“멍멍[嘷嘷].”

임제의 밑에 있던 두 스님이 뵈러 왔다. 바야흐로 발[簾]을 걷으려는데 대사가 말했다.
“개 조심하라.”
두 스님이 고개를 돌리니, 대사는 그대로 방장으로 돌아갔다.

대사가 승광勝光 화상과 함께 밭에서 김을 매다가 갑자기 호미질을 멈추고는 승광을 돌아보면서 말했다.
“일은 없지 않으나, 마음을 헤아리려 하면 곧 어긋난다.”
승광이 절을 하고 물으려 하자, 대사가 걷어차 버리고서 절로 돌아갔다.

어떤 비구니가 와서 뵙자, 대사가 말했다.
“너는 유철마(劉鐵磨:맷돌) 유철마는 위산 영우 선사의 제자로 늙은 비구니이니, 성이 유劉씨이다. 철마는 근기가 뛰어나 닥치는 대로 모두 갈아 없애는 위엄이 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가 아니냐?”
“외람되오나, 그렇습니다.”
“왼쪽으로 도는 맷돌인가, 오른쪽으로 도는 맷돌인가?”
“화상께서는 뒤바뀐 말을 하지 마십시오.”
대사가 문득 때렸다.

어느 날 밤중에 대사가 승당僧堂 앞에서 “도적이야, 도적이야” 하니, 대중이 모두 놀라서 달아났다. 대사가 승당 안에서 나오는 스님 하나를 붙들고 외쳤다.
“유나(維那:대중을 감독하는 책임)야, 도적을 잡았다, 잡았어.”
그 스님이 말했다.
“저는 도적이 아닙니다.”
“네가 바로 그 도적놈이니, 다만 수긍하지 않을 뿐이다.”
대사가 게송을 지어서 대중에게 보였다.

30년 동안 자호子湖에 머물면서
두 때의 죽으로도 기력이 좋네.
날마다 산에 올라 몇 차례 보였는데
요즘 사람 아는지를 그대에게 묻노라.
三十年來住子湖    二時齋粥氣力麤
每日上山三五轉    問汝時人會也無

대사가 자호에서 45년 동안 설법을 하다가 광명廣明 때에 병 없이 임종하니, 수명은 81세이고 법랍은 61세였다. 지금까지 본산本山에 탑이 남아 있다.

낙경洛京 숭산嵩山 화상
어떤 스님이 물었다.
“옛길이 훤할 때에 어떠합니까?”
대사가 말했다.
“앞서지 못한다.”
“어째서 앞서지 못합니까?”
“막힌 곳이 없기 때문이니라.”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숭산嵩山의 경계입니까?”
“해가 동쪽에서 뜨고, 달은 서산으로 기우느니라.”
“학인은 잘 모르겠습니다.”
“동쪽과 서쪽도 모르는가?”

어떤 스님이 물었다.
“6식識이 함께 생길 때에는 어떠합니까?”
“다르다.”
“어째서 그러합니까?”
“같다.”

일자日子 화상
아계亞谿가 뵈러 왔는데, 대사가 일어나는 시늉을 하자, 아계가 말했다.
“저 늙은 산귀신[山鬼]이 아직도 나를 보는구나.”
대사가 말했다.
“잘못했다, 잘못했어. 아까 내가 잘못 대했다.”
아계가 나아가 말을 하고자 하니, 대사가 그를 꾸짖었다. 그러자 아계가 말했다.
“큰 진陣 앞에는 방축을 쌓는 것이 무방합니다.”
“옳다, 옳다.”
아계가 말했다.
“옳지 않습니다, 옳지 않습니다.”[조주趙州가 말하기를 “딱한 두 늙은이가 외통수에 몰렸구나”라고 하였다.]

소주蘇州 서선西禪 화상
어떤 스님이 물었다.
“3승乘 12분교分敎는 묻지 않겠습니다만, 어떤 것이 조사께서 서쪽에서 오신 분명한 뜻입니까?”
대사가 불자拂子를 쳐들어 보이니, 그 스님이 절도 하지 않고 물러가서 설봉雪峰을 뵈었다. 설봉이 물었다
“어디서 왔는가?”
“절중浙中에서 왔습니다.”
“올 여름에는 어디에 있었는가?”
“소주蘇州의 서선西禪에 있었습니다.”
“화상께서는 안녕하신가?”
“제가 올 때에는 안녕하셨습니다.”
“어째서 안온[從容]하지 못한가?”
“불법이 분명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무슨 일이 있었는가?”
그 스님이 앞의 일을 이야기하니, 설봉이 말했다.
“그대는 어찌하여 (그의 말을) 수긍하지 않았는가?”
“그것은 경계이기 때문입니다.”
“그대는 소주蘇州 성안의 남녀들을 보았는가?”
“보았습니다.”
“그대는 길옆의 나무들을 보았는가?”
“보았습니다.”
“무릇 남녀들이나 길옆의 나무들을 보는 것이 모두가 경계인데, 그대는 수긍하겠는가?”
“수긍합니다.”
“그렇다면 불자를 쳐들어 보인 것은 어찌하여 수긍하지 않았는가?”
그 스님은 곧 절을 하면서 말했다.
“학인이 차례대로 발언했으니, 화상께서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온 천지가 온통 그대의 눈[眼]인데, 그대는 어디에 쭈그리고 앉았는가?”
스님은 말이 없었다.
선주宣州 자사刺史 육긍陸亘 대부大夫
처음에 남전南泉에게 물었다.
“옛사람이 병 속에다 거위 한 마리를 길렀는데, 거위가 점점 자라나서 나오지 못합니다. 아직 병을 깨뜨릴 수도 없고 거위를 죽일 수도 없으니, 화상께서는 어찌하여야 꺼내겠습니까?”
남전이 불렀다.
“대부여.”
육긍陸亘이 대답했다.
“네.”
남전이 소리쳤다.
“나왔다.”
육긍이 이로부터 깨달았다. 

남전이 입적할 때에 원주가 물었다.
“대부는 왜 선사를 위해 곡을 하지 않습니까?”
육긍이 말했다.
“원주가 말할 수 있으면 곡을 하겠소.”
원주가 말이 없었다.[장경長慶이 대신 말하기를 “곡을 해야 하는가, 하지 않아야 하는가?”라고 하였다.]

지주池州 감지甘贄 행자行者
돈 3관문貫文을 가지고 승당僧堂에 들어와서 수좌[第一坐] 앞에서 말했다.
“상좌께 재물을 보시하겠습니다.”
상좌가 말했다.
“재물 보시도 다함이 없고, 법 보시도 끝이 없다.”
“그런 말을 하고서야 어찌 저의 돈을 받으시겠습니까?”
그래서 돈을 도로 가지고 나오니, 상좌가 말이 없었다. 또 남전에게 가서 죽을 올리면서 말했다.
“화상께서 경을 읽어 주십시오.”
남전이 말했다.
“감지甘贄 행자가 죽을 공양하였구나. 대중에게 청하나니, 살쾡이와 흰 염소를 위해 마하반야바라밀摩訶般若波羅蜜을 염念하라.”
감지 행자가 절을 하고 물러가니, 남전이 부엌으로 가서 냄비를 부숴 버렸다.

어느 날 설봉雪峰 화상이 오는 것을 보고 감지 행자가 문을 닫고 말했다.
“화상이시여, 들어오십시오.”
설봉이 울타리 밖에서 옷을 들여보내니, 감지 행자가 문을 열고서 절을 하였다.

어떤 암자의 주지가 필요한 집기를 얻기 위해 시주를 구하니, 감지 행자가 말했다.
“내 물음에 답한다면 즉시 시주를 하겠소.”
그리고는 심자心字를 써 놓고 물었다.
“이것이 무슨 글자요?”
“마음 심心자입니다.”
다시 자기의 아내를 불러서 물었다.
“이것이 무슨 글자요?”
“마음 심자입니다.”
“내 촌뜨기 마누라도 암자의 주지가 될 수 있겠군.”
그 스님은 말을 못했고, 감지 행자도 시주를 안 했다.

또 어떤 스님에게 물었다.
“어디서 왔소?”
“위산潙山에서 왔습니다.”
“일찍이 어떤 스님이 위산에게 묻기를 ‘어떤 것이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라고 하니, 위산이 불자拂子를 번쩍 쳐들었다는데, 상좌는 위산의 뜻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오?”
“일[事]을 빌려서 마음[心]을 밝히고, 물건[物]에 의탁하여 이치[理]를 드러낸 것이라 여깁니다.”
“그냥 위산으로 돌아가는 것이 좋겠소.”[보복保福이 듣고는 손을 엎치락뒤치락하였다.]

앞의 항주杭州 염관鹽官 제안齊安 선사의 법손

양주襄州 관남關南 도상道常 선사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대사가 주장자를 들고 말했다.
“알겠는가?”
“모르겠습니다.”
대사가 할을 해서 쫓아냈다.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대도大道의 근원입니까?”
대사가 한 주먹을 갈겼다. 대사는 매번 스님들이 와서 뵐 때에 주장자로 때려서 쫓거나, 혹은 한 시각 늦었다고 하거나, 혹은 관남關南의 북을 치라고 하였으나, 당시의 무리 중에서 알고서 맞장구를 치는 이는 드물었다.

홍주洪州 쌍령雙嶺 현진玄眞 선사
처음에 도오道吾에게 물었다.
“신통 없는 보살은 어찌하여 발자취를 찾기가 어렵습니까?”
“도가 같은 이라야 알 수 있다.”
“화상께서는 아십니까?”
“모른다.”
“왜 모르십니까?”
“가거라. 내 말을 모르는구나.”
대사는 나중에 염관鹽官에게서 마음을 깨달았다.

항주杭州 경산徑山 감종鑒宗 선사
그는 호주湖州 장성長城 사람으로서 성은 전錢씨이다. 고향의 개원사開元寺에서 고한高閑 대덕에 의해 출가하였다. 󰡔정명경淨名經󰡕과 󰡔사익경思益經󰡕에 정통했는데, 나중에 염관鹽官에 가서 오공悟空 대사를 뵙고 의심을 풀었다.
당나라 함통咸通 3년에 경산徑山에 살면서 선교禪敎를 드날렸다. 젊은 스님[小師] 홍인洪諲[홍인은 경산徑山의 제3세 주지인 법제法濟 대사이다.]이 논論을 강할 수 있는 것으로써 자랑을 삼고 있자, 대사가 말했다.
“불조佛祖의 정법은 곧바로 끊어서 언전言詮을 여의었는데, 그대는 바다의 모래나 세어서 이치에 무슨 이익이 있겠는가? 다만 알음알이를 두지 않고 외연外緣을 끊어 버려서 일체의 마음을 여의면, 그것이 그대의 참 성품[眞性]이니라.”
홍인이 이 말을 듣자 어리둥절했다. 절을 하고 하직해서 위산潙山으로 가서야 현묘한 종지를 깨닫고는 위산을 스승으로 삼았다.
함통咸通 7년 병술丙戌 윤3월 5일에 입적하였다. 나중에 무상無上 대사라는 시호를 내리니, 그가 곧 경산의 제2세 주지였다.

앞의 오설산五洩山 영묵靈黙 선사의 법손

복주福州 장계長谿 구산龜山 정원正原 선사
그는 선주宣州 남릉南陵 사람으로서 성은 채蔡씨이다. 어릴 때에 출가하여 고향의 적산籍山에서 머리를 깎고, 당나라 원화元和 12년 정유丁酉에 건주建州 건원사乾元寺에서 구족계를 받았다.
이윽고 오설산五洩山으로 가서 영묵靈黙 선사에게 입실하여 현묘한 이치를 결택한 뒤에 구산龜山에 머물면서 제2세 주지가 되었다. 대사는 일찍이 이런 게송 두 수를 지었다. 그 첫 번째 게송이다.

푸른 바다가 몇 차례나 뽕밭으로 변했지만
오직 허공만은 홀로 담연湛然하네.
이미 언덕에 이른 이는 뗏목에 연연하지 않나니
아직 건너지 못한 자나 배를 타야 하겠지.
滄溟幾度變桑田    唯有虛空獨湛然
已到岸人休戀筏    未曾度者要須船

그 두 번째 게송이다.

스승을 찾아서 본심의 근원을 아니
양쪽 언덕 현묘해도 하나도 온전치 않네.
그대로가 부처라 다시 부처를 찾지 말지니
다만 이러함을 인하여 반연을 잊을 뿐이다.
尋師認得本心源    兩岸俱玄一不全
是佛不須更覓佛    只因如此便忘緣

대사는 함통咸通 10년에 본산에서 임종하니, 수명은 78세이고 법랍은  54세였다. 성공性空 대사 혜관慧觀의 탑이라는 시호를 내렸다. 

앞의 낙경洛京 불광사佛光寺 여만如滿 선사의 법손

당唐의 항주杭州 자사刺史 백거이白居易
자는 낙천樂天이니, 오랫동안 불광佛光 선사를 참문하여 심법心法을 얻었고, 아울러 대승의 금강보계金剛寶戒를 받았다. 원화元和 때에 서울의 흥선법당興善法堂에 가서 네 가지 법을 물었고,[내용은 흥선장興善章에 보인다.] 15년에 항주로 부임했다가 조과鳥窠 화상을 방문하여 문답하고는 게송을 지었다.[내용은 조과장鳥窠章에 있다.]
일찍이 제濟 법사에게 글을 보내서 부처님의 위없는 큰 지혜로써 교리를 펼쳐 드러냈다. 근기의 높고 낮음을 따르는 일이 어찌 있겠는가마는 병을 따라 약을 주는 것은 같지 않았으니, 평등한 한 맛의 말과 상반될 때에는 󰡔유마경󰡕과 󰡔금강삼매경󰡕 등 여섯 가지 경전을 인용하여 두 이치[二義]를 물리치면서 토론하였다.
또 5온蘊과 12인연因緣으로써 명색名色을 연설하되, 전후에 유례가 없이 이치를 세워서 따졌다. 아울러 깊은 것을 끌어내고, 숨은 것을 찾아내고, 유현幽玄한 것도 통하고, 은미隱微한 것도 밝혔는데, 그러나 제濟 법사의 대답은 받지 못했다. 그 뒤에도 대답하는 이가 드물었다.
또 동도東都 응凝 선사의 8점漸 관觀․각覺․정定․혜慧․명明․통通․제濟․사捨이니 제29권에 나온다.
의 과목을 받고, 각각 한마디씩을 덧붙여 게송을 지어서 그 취지를 해석하니, 얕은 곳으로부터 깊은 곳에 이르는 것이 마치 구슬을 꿴 것과 같았다.
취임하는 곳마다 조사의 도를 찾아서 배웠는데 일정한 스승이 없었고, 나중에 빈객賓客 관명이니, 대신 가운데 다섯 사람을 뽑아 태자를 가르치고 외국 손님을 접대하며 국가 전반을 토의하는 직책 이름이다.
으로서 동도東都를 맡아 다스릴 때에 자기의 봉급을 털어서 용문龍門의 향산사香山寺를 지었고, 절을 다 짓고는 손수 기문記文을 지어서 달았다.
무릇 글을 지을 때에는 교화의 일을 고무하여 불승佛乘을 찬미하지 않음이 없었으니, 모두가 본집(本集:백거이의 文集)에 있다. 그리고 그가 벼슬한 차례와 입멸[歸全]한 연대는 사전史傳에 남아 있다.

앞의 대매산大梅山 법상法常 선사의 법손

신라국新羅國 가지迦智 선사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그대가 그 경지에 들면, 그대에게 바로 말해 주리라.”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대매산大梅山의 종지입니까?”
“소락[酪]의 근본[本] 소락酥酪의 근본인 우유를 말한다.
도 일시에 던져 버려라.”

항주杭州 천룡天龍 화상 
상당上堂하여 말했다.
“대중이여, 나[老僧]의 말을 기다리지 말고 올라오려면 문득 올라오고, 내려가려면 문득 내려가라. 제각기 화장세계華藏世界 성품의 바다가 있어서 공덕을 구족하고 광명이 걸림 없으니, 저마다 잘 참구해 보아 진중珍重하게나.”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조사의 뜻입니까?”
대사가 불자를 세웠다.
스님이 물었다.
“어찌하여야 삼계를 벗어나겠습니까?”
“그대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앞의 영태사永泰寺 영단靈湍 화상의 법손

호남湖南 상림上林 계령戒靈 선사[목록目錄에서는 계허戒虛라고      하였다.]
처음에 위산潙山을 뵈니, 위산이 물었다.
“대덕은 어떻게 하고 왔는가?”
“갑옷과 투구를 완전히 갖추고 왔습니다.”
위산이 말했다. 
“모두 벗고 오라. 그러면 대덕을 만나 주겠다.”
“벗었습니다.”
위산이 혀를 차며 말했다.
“도적이 아직 때리지도 않았는데 벗으면 어떻하냐?”
대사(계령)가 대답하지 못하니, 앙산仰山이 대신 말했다.
“화상께 청하나니, 좌우를 물리쳐 주십시오.”
위산이 손으로 읍揖을 하면서 말했다. 
“예, 예.” 
나중에 대사가 영태永泰를 뵈러 갔다가 비로소 이 뜻을 깨달았다.

오대산五臺山 비마암祕魔巖 화상 
항상 나무 갈고리 하나를 지니고 있다가 스님이 와서 절을 하는 것을 보면 즉시 그의 목을 걸면서 말했다.
“어떤 놈의 악마나 도깨비가 너를 출가하게 하였느냐? 어떤 놈의 마귀나 도깨비가 너를 행각行脚하게 했느냐? 말을 하여도 갈고리 아래서 죽고, 말을 하지 못해도 갈고리 아래서 죽으리니, 빨리 말하라.”
배우는 스님들 가운데는 대답하는 이가 드물었다.[법안法眼이 대신 말하기를 “살려 주십시오”라고 하였다. 법등法燈이 대신 목을 쭉 빼어 보였다. 현각玄覺은 대신 말하기를 “늙은이야, 갈고리를 내려 놔라”라고 하였다.]
호남湖南 기림祇林 화상
항상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을 요귀라고 꾸짖으면서 손에는 목검木劍을 들고 자칭 항마降魔라고 일컬었다. 그리하여 어떤 스님이 와서 뵙기만 하면 “마귀가 왔다, 마귀가 왔어” 하고는 목검을 어지러이 휘두르다가 방장으로 슬쩍 들어갔다.
이와 같이 하기를 12년 동안 계속하다가 나중에는 검을 놓고 말이 없으니, 어떤 스님이 물었다.
“12년 이전에는 어찌하여 마군을 항복시켰습니까?”
“도적은 가난한 집을 털지 않는다.”
“12년 이후에는 어찌하여 마군을 항복시키지 않습니까?”
“도적은 가난한 집을 털지 않는다.”

앞의 유주幽州 반산盤山 보적寶積 선사의 법손

진주鎭州 보화普化 화상
그는 어느 곳 사람인지 알 수 없으나, 반산盤山을 스승으로 섬겨서 참 비결을 은밀히 전해 받았다. 그리고는 미친 척하면서 말을 해도 법도法度가 없었다.
반산盤山이 세상을 떠난 뒤에는 마침내 북쪽 지방에서 교화를 폈는데, 성의 저자나 무덤 사이에서 방울 하나를 흔들면서 이렇게 외쳤다.
“밝은 것이 와도 때리고, 어두운 것이 와도 때린다.”
어느 날 임제臨濟가 다른 스님을 시켜서 그를 붙들어 놓고는, 그에게 물었다.
“밝지도 어둡지도 않을 때에는 어떠합니까?”
“내일 대비원大悲院에 재齋가 있단다.”
무릇 사람을 보면 그 지위의 고하를 막론하고 방울을 한 번 흔드니, 당시의 사람들이 보화普化 화상이라 불렀다. 혹은 방울을 귓전에다 대고 흔들기도 하고, 혹은 그의 등을 문질렀는데, 그 중에 돌아보는 자가 있으면 즉시 손을 펴면서 말했다.
“돈 한 닢 주구려.”
제때가 아닐 경우에도 음식이 있으면 먹었으니, 일찍이 저물 무렵에 임제원臨濟院에 들어가서 생채쌈[生菜飯]을 먹는데 임제가 와서 말했다.
“저 자는 마치 한 마리 나귀와 같구나.”
대사가 문득 나귀 울음소리를 내니, 임제가 그만두었다. 이때 대사가 말했다.
“오줌싸개 같은 임제는 외쪽 눈만 갖추고 있다.”[스님이 법안法眼에게 묻기를 “임제가 당시에 어떤 말을 했어야 합니까?”라고 하니, 법안이 대답하기를 “임제가 뒷사람들에게 미루어 주었다”라고 하였다.]
대사는 마보사馬步使가 나와서 벽제[喝道] 지체 높은 사람의 행사를 도와주는 사람인 마보사馬步使가 소리를 질러 길을 트고 안내하며 잡인들의 통행을 통제하는 것[喝道]을 말한다. 
하는 것을 보자, 대사도 갈도를 하면서 씨름을 하려는 시늉을 하였다. 마보사가 사람을 시켜 방망이로 다섯 대를 때리게 하니, 대사가 말했다.
“비슷하기는 하나 옳지는 않다.”
대사가 일찍이 소란한 거리에서 방울을 흔들면서 외쳤다.
“갈 곳을 찾아도 찾을 수 없구나.”
이때에 도오道吾가 대사를 보고서 붙들고 물었다.
“그대가 가려는 곳이 어디인가?”
대사가 말했다.
“그대는 어디서 왔는가?”
도오가 말이 없으니, 대사는 손을 털면서 떠나 버렸다.
어느 날 대사가 임제원臨濟院에 들어가니, 임제가 말했다.
“도적이다, 도적이야.”
대사도 소리쳤다.
“도적이다, 도적이야.”
둘이서 같이 승당僧堂에 들어갔다가 임제가 성상聖像을 가리키면서 물었다.
“성인입니까, 범부입니까?”
대사가 대답했다.
“성인이다.”
“그 따위 소리를 하시는군요.”
대사가 방울을 흔들면서 외쳤다.
“하양河陽의 신부新婦요, 목탑(木塔:절 이름)의 노파선老婆禪 신부는 살갗을 드러내지 않으니 성인이요, 노파선은 노파가 부끄러움이 없으니 범부에 견준 것이다.
이다. 오줌싸개 임제는 외눈만을 갖추었구나.”
당나라 함통咸通 초에 임종할 때가 가까워지자, 저자에 들어가서 사람들에게 말했다.
“장삼을 하나 해주시오.”
사람들이 바지를 주기도 하고 누비옷을 주기도 하였으나, 모두 받지 않고 방울을 흔들면서 가 버렸다.
이때 임제가 사람들을 시켜 관棺 하나를 보내니, 대사가 웃으면서 말했다.
“임제, 그 애가 제법 영리하구나.”
얼른 받아들이고는 이내 작별을 고했다.
“보화가 내일 동문 밖에서 죽으리라.”
고을 사람들이 앞을 다투어 성 밖으로 나오니, 대사는 소리를 높여서 말했다.
“오늘은 일진[靑烏]이 맞지 않는다. 내일 남문 밖에서 죽으리라.”
사람들이 또 따라가자, 다시 말했다.
“내일 서문으로 나가야 길할 것 같다.”
이에 사람들은 차츰 줄어들고, 나갔던 사람들도 곧 돌아와서 사람들의 뜻이 거의 무심하게 되었다. 그러자 넷째 날에는 몸소 관을 메고 북문 밖으로 나가서 방울을 흔들면서 관으로 들어가 입적하였다.
고을 사람들이 소식을 듣고 앞을 다투어 성문을 나가서 관을 열어 보니, 이미 시체는 보이지 않고 오직 방울 소리만이 차츰 멀어졌는데, 그 까닭은 알 수가 없었다.

앞의 용아산龍牙山 원창圓暢 선사의 법손

가화嘉禾 장이藏廙 선사
그는 구주衢州 신안信安 사람으로서 성은 정程씨이다. 당나라 원화元和 때에 부모를 하직하고 장사長沙의 악록사嶽麓寺에 가서 영지靈智 율사에 의해 출가하였다.
장경長慶 3년 무릉武陵 개원사開元寺에서 계를 받을 때에 율부律部를 듣다가 동학同學에게 말했다.
“교리에 문은 번거롭고 넓기만 하니, 총괄하는 문을 찾아야 하겠다.”
그리고는 용아산龍牙山의 원창圓暢 선사를 찾아가서 뵈니, 용아龍牙가 말했다.
“5온蘊과 18계界가 참이 아니요, 부처와 중생이 내[我]가 아니니, 그대의 올바른 근본은 무엇이라 이름해야 하며, 또 누구에게서 얻는 것인가?”
대사는 그 말 하나에 깨닫고, 가산柯山으로 돌아가서 회창會昌의 사태沙汰를 피했다. 
나중에 용흥龍興에서 도화道化를 널리 펴다가 건부乾符 6년 3월에 입적[長往]하니, 수명은 82세이고 법랍은 56세였다.

앞의 귀종사歸宗寺 지상智常 선사의 법손

복주福州 부용산芙蓉山 영훈靈訓 선사
처음에 귀종歸宗을 뵙고는 물었다.
“어떤 것이 부처입니까?”
귀종이 말했다.
“내가 그대에게 말한다면 그대는 믿겠는가?”
“화상께서 말씀하시는 정성스럽고 참된 말을 어찌 믿지 않겠습니까?”
“바로 그대가 부처다.”
“어떻게 보임保任하리까?”
“하나의 그림자라도 눈을 가리면 허공의 꽃이 어지럽게 떨어진다.”[법안法眼이 말하기를 “귀종歸宗이 만일 뒷말을 하지 않았더라면 귀종(歸宗:조종에 돌아간다는 뜻)이라 할 것이 무엇이랴?”라고 하였다.]

대사가 귀종에게 하직을 아뢰니, 귀종이 물었다.
“자네는 어디로 가려는가?”
“영중嶺中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자네가 여기에 여러 해 있었으니, 짐을 꾸려 놓고는 잠시 오라. 내가 자네에게 유일하고 최상인 불법을 말해 주리라.”
대사가 짐을 꾸려 놓고 법당에 올라가니, 귀종이 말했다.
“가까이 오너라.”
대사가 그의 앞으로 다가서니, 귀종이 말했다.
“날씨가 차니, 도중에 조심하라.”
대사가 이 말을 듣고는 앞서의 견해를 단박에 잊었다. 
나중에 입적하니, 홍조弘照 대사라 시호하고, 탑호는 원상圓相이라 하였다.

한남漢南 곡성현穀城縣 고정高亭 화상
어떤 스님이 협산夾山에서 와서 절을 하자, 대사가 때렸다. 그 스님이 말했다.
“일부러 와서 절을 했는데, 왜 때리십니까?”
그 스님이 다시 절을 하자, 대사가 또 때리고 밀쳤다. 그 스님이 돌아가서 협산에게 이야기하니, 협산이 말했다.
“그대는 알겠는가?”
“모르겠습니다.”
“그대가 모르는 것이 다행일세. 만일 알았다면 협산은 벙어리가 되었을 것이다.”

신라新羅 대모大茅 화상
상당하여 대중에게 말했다.
“모든 부처님의 스승을 알고자 하면 무명無明의 마음속에서 알아차려야 하고, 항상 머물면서도 시들지 않는 성품을 알고자 하면 만 가지 초목이 변천하는 곳에서 알아차려라.”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대모大茅의 경계입니까?”
“칼끝을 드러내지 않는다.”
“어찌하여 칼끝을 드러내지 않습니까?”
“맞설 자가 없느니라.”

오대산五臺山 지통智通 선사[대선불大禪佛이라 자칭하였다.]
처음에 귀종歸宗의 회상會上에 있었는데, 어느 날 밤에 홀연히 순당巡堂 법당 주변을 도는 행사이다.
을 하다가 소리쳤다.
“나는 이미 크게 깨달았다.”
대중이 모두 놀랐는데, 이튿날 귀종이 상당하여 대중을 모으고서 물었다.
“지난밤에 크게 깨달았다는 스님은 나오너라.”
대사가 나서면서 말했다. 
“지통智通입니다.”
귀종이 말했다. 
“그대는 어떤 도리를 보았기에 ‘크게 깨달았다’ 했는지 나에게 말해 보라.”
“비구니[師姑]는 원래 여자로서 된 것입니다.”
귀종이 잠자코 인가하였다. 대사가 하직하니, 귀종이 문까지 전송을 나와서 삿갓을 들어 주었다. 대사가 받아서 머리에 쓰고 떠나면서 전혀 되돌아보지 않았다. 
나중에 오대산 법화사法華寺에 있다가 임종할 때에는 게송을 남겼다.

손을 들어 남두성南斗星을 더듬고
몸을 돌이켜 북극성[北辰]에 기댄다.
머리를 내밀어 하늘 밖에서 보나니
누가 나와 같은 사람이더냐.
擧手攀南斗    迴身倚北辰
出頭天外見    誰是我般人

앞의 화엄사華嚴寺 지장智藏 선사의 법손

황주黃州 제안齊安 화상
배우는 무리에게 보여 말했다.
“말이 구절에 속하지 않는 것을 부처와 조사는 헛수고를 하였고, 현묘한 운율은 끊이지 않거늘 뉘라서 알아들으랴?”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찌하여야 자기 부처를 알 수 있겠습니까?”
“잎사귀 하나에 시절이 분명하니 소식이 다함이 없고, 솔바람의 운율이 그쳐도 아는 이 없음을 원망하네.”
“어떤 것이 자기 부처입니까?”
“풀 앞에서는 준마駿馬가 끝없이 많더니, 묘함이 다하니 도로 축생이구나.”

어떤 이가 물었다.
“대사의 연세가 얼마입니까?” 
대사가 대답했다.
“5․6․4․3과도 닮지 않았나니, 어찌 1․2와 같을 수 있으랴? 진실로 궁구하기 어렵다.”
대사의 게송이 있으니, 다음과 같다.
 
훨훨 타는 불 속의 사람에게 길이 있으니
회오리의 정수리에 우뚝 깃드노라.
항상함은 겁을 거친들 무슨 차이가 있으랴.
밝은 해는 말없이 운행하며 평등하게 비추네.
猛熾焰中人有路    旋風頂上屹然棲
鎭常歷劫誰差互    杲日無言運照齊

대사는 나중에 봉상鳳翔에 거처했다.



경덕전등록 제11권






회양懷讓 선사의 제4세 89인 

담주潭州 위산潙山 영우靈祐 선사의 법손 43인
원주袁州 앙산仰山 혜적慧寂 선사
등주鄧州 향엄사香嚴寺 지한智閑 선사
양주襄州 연경延慶 법단法端 선사[12권의 향엄香嚴 밑에 또 수록되    어 있는데 그 까닭을 알 수 없다.]
항주杭州 경산徑山 홍인洪諲 선사
복주福州 영운靈雲 지근志勤 선사
익주益州 응천應天 화상
복주福州 구봉九峰 자혜慈慧 선사
경조京兆 미米 화상
진주晋州 곽산霍山 화상
양주襄州 왕경초王敬初 상시常侍 
  [이상 11인은 기록에 보임]
복주福州 쌍봉雙峰 화상
장연長延 원감圓鑑 선사
지화志和 선사
홍주洪州 서산西山 도방道方 선사
위산潙山 여진如眞 선사
병주幷州 원순元順 선사
흥원부興元府 숭호崇皓 선사
악주鄂州 전심全諗 선사
숭산嵩山 신검神劍 선사
허주許州 홍진弘進 선사
여항餘杭 문립文立 선사
월주越州 광상光相 선사
소주蘇州 문약文約 선사
상원上元 지만智滿 선사
금주金州 법랑法朗 선사
악주鄂州 황학산黃鶴山 초달超達 대사
백록白鹿 종약從約 선사
서당西堂 복復 선사
온주溫州 영공靈空 선사
대위大潙 간簡 선사
형남荊南 지랑智朗 선사
위산潙山 보윤普潤 선사
위산潙山 법진法眞 선사
흑산黑山 화상
저주滁州 정산定山 신영神英 선사
상산霜山 화상
남원南源 화상
위산潙山 충일冲逸 선사
위산潙山 언彦 선사
기주蘄州 삼각산三角山 법우法遇 선사
등주鄧州 지전志詮 선사
형주荊州 홍규弘珪 선사
암배巖背 도광道曠 선사 
  [이상 33인은 기연할 어구가 없으므로 기록하지 않음]

복주福州 대안大安 선사의 법손 10인
익주益州 대수大隨 법진法眞 선사
소주韶州 영수靈樹 여민如敏 선사
복주福州 수산壽山 사해師解 선사
요주饒州 요산嶢山 화상
천주泉州 보전莆田 숭복崇福 혜일慧日 대사
태주台州 부강浮江 화상
노주潞州 녹수淥水 화상
광주廣州 문수원文殊院 원圓 선사
  [이상 8인은 기록에 보임]
온주溫州 영양靈陽 선사
홍주洪州 지의紙衣 화상
  [이상 2인은 기연할 어구가 없으므로 기록하지 않음]

항주杭州 경산徑山 감종鑒宗 대사의 법손 3인
명주明州 천동산天童山 함계咸啓 선사
배산背山 행진行眞 선사
항주杭州 대자산大慈山 행만行滿 선사
  [이상 3인은 기연할 어구가 없으므로 기록하지 않음]

조주趙州 동원東院 종심從諗 선사의 법손 13인
홍주洪州 신흥新興 엄양嚴陽 존자
양주揚州 광효원光孝院 혜각慧覺 선사
농주隴州 국청원國淸院 봉奉 선사
무주婺州 목진木陳 종랑從朗 선사
무주婺州 신건新建 선사
항주杭州 다복多福 화상
익주益州 서목西睦 화상 
  [이상 7인은 기록에 보임]
담주潭州 마곡산麻谷山 화상
관음원觀音院 정악定鄂 선사
선주宣州 명평산茗萍山 화상
태원太原 면免 도자道者
유주幽州 연왕燕王
진주鎭州 조왕趙王 
  [이상 6인은 기연할 어구가 없으므로 기록하지 않음]

구주衢州 자호암子湖巖 이종利蹝 선사의 법손 4인
태주台州 승광勝光 화상
장주漳州 부석浮石 화상
자동紫桐 화상
일용日容 화상 
  [이상 4인은 기록에 보임]

길주吉州 효의孝義 성공性空 선사의 법손 1인
공주邛州 수흥원壽興院 수한守閑 선사
  [1인은 기연할 어구가 없으므로 기록하지 않음]

악주鄂州 수유茱萸 화상의 법손 1인
석제石梯 화상 
  [1인은 기록에 보임]

천룡天龍 화상의 법손 2인
무주婺州 금화산金華山 구지俱胝 화상 
  [1인은 기록에 보임]
신라국新羅國 언충彦忠 선사 
  [1인은 기연할 어구가 없으므로 기록하지 않음]

장사長沙 경잠景岑 선사의 법손 2인
명주明州 설두산雪竇山 상통常通 선사 
  [1인은 기록에 보임]
무주婺州 금화산金華山 엄령嚴靈 선사 
  [1인은 기연할 어구가 없으므로 기록하지 않음]

양주襄州 관남關南 도상道常 선사의 법손 2인
관남關南 도오道吾 화상
장주漳州 나한羅漢 화상 
  [이상 2인은 기록에 보임]

백마白馬 담조曇照 선사의 법손 1인
진주晋州 곽산霍山 무명無名 선사 
  [1인은 기연할 어구가 없으므로 기록하지 않음]

신라新羅 대증大證 선사의 법손 2인 
문성文聖 대왕大王
헌안憲安 대왕大王 
  [이상 2인은 기연할 어구가 없으므로 기록하지 않음]

소마小馬 신조神照 선사의 법손 1인
진운군縉雲郡 연운원連雲院 유연有緣 선사 
  [1인은 기연할 어구가 없으므로 기록하지 않음]

고안高安 대우大愚 화상의 법손 1인
균주筠州 말산니末山尼 요연了然 
  [1인은 기록에 보임]

신라新羅 홍직洪直 선사의 법손 2인
흥덕興德 대왕大王
선강宣康 태자太子 
  [2인은 기연할 어구가 없으므로 기록하지 않음]

허주許州 무적無跡 화상의 법손 1인
도수道遂 선사 
  [1인은 기연할 어구가 없으므로 기록하지 않음]



회양懷讓 선사의 제4세 ①

앞의 위산潙山 영우靈祐 선사의 법손

원주袁州 앙산仰山 혜적慧寂 선사
그는 소주韶州 혜화懷化 사람으로서 성은 섭葉씨이다. 나이 열다섯 살에 출가하려 했으나 부모가 허락하지 않았다. 2년 후에 두 손가락을 끊고 부모 앞에 꿇어앉아서 바른 법을 구하여 노고에 보답하겠노라고 서원하였다. 
그리하여 마침내 남화사南華寺 통通 선사에 의지하여 머리를 깎고, 미쳐 구족계를 받기 전에 행각을 떠났다. 처음에 탐원耽源을 만나서 현묘한 종지를 깨닫고, 나중에 위산潙山을 참문參問하여 당堂의 깊숙한 곳에 오르게 되었다. 
위산潙山 영우靈祐가 물었다.
“그대는 주인이 있는 사미냐, 주인이 없는 사미냐?”
“주인이 있습니다.”
“어디에 있는가?”
대사(앙산)가 서쪽에서 동쪽으로 가서 서니, 영우는 그가 범상치 않은 인물임을 알고서 법을 일러 주었다. 
대사가 물었다.
“어떤 것이 참 부처가 사는 곳입니까?”
“생각하면서도 생각 없는 묘함으로써 신령한 불꽃의 무궁함을 돌이켜 생각하되, 생각이 다하여 근원으로 돌아가면 성품[性]과 모습[相]이 항상 머무르고 일[事]과 이치[理]가 둘이 아니라서 참 부처가 여여如如하리라.”
대사가 이 말끝에 단박에 깨달았다. 이로부터 시봉을 하다가 강릉江陵으로 가서 계를 받고 여름을 지내면서 율장律藏을 탐구했다.

나중에 암두巖頭를 뵈니, 암두가 불자拂子를 쳐들었다. 대사가 방석을 펴니, 암두가 불자를 들었다가 등 뒤에다 두었다. 대사가 방석을 어깨에 메고 나가자, 암두가 말했다.
“나는 그대가 놓아 버리는 것은 수긍하지 않는다. 다만 거두어들이는 것만을 수긍한다.”

또 석실石室에게 물었다.
“부처와 도道의 거리가 얼마나 됩니까?”
“도는 손을 편 것 같고, 부처는 주먹을 쥔 것 같다.”
그 길로 석실을 하직하니, 석실이 문까지 전송을 나왔다가 대사를 부르고 말했다.
“그대는 한결같이 가지만 말라. 이후에 다시 내 곁으로 돌아오라.”[운거雲居 석錫이 말하기를 “알고자 하는가? 지금은 방으로 돌아갔다가 내일 다시 오라”고 하였다.]

위주韋宙가 위산潙山에게 가서 게송 하나를 써 달라고 하니, 위산이 말했다.
“얼굴을 빤히 보면서 전해 주어도 역시 모르는 둔한 무리이거늘, 하물며 종이나 먹으로 형용한다고 되겠느냐?”
그가 대사에게 와서 청하자, 대사는 종이 위에다 동그라미 하나를 그려 놓고는 이렇게 주注를 붙였다. 
“생각해서 아는 것은 제2두頭에 떨어지고, 생각하지 않고서 아는 것은 제3수首에 떨어진다.”
어느 날 위산을 따라서 밭을 일구다가 물었다.
“여기는 이렇게 낮고, 저기는 저렇게 높습니다.”
“물은 능히 사물을 평평하게 하니, 단지 물로써 수평을 삼아라.”
“물도 의지할 수 없습니다. 화상은 다만 높은 곳은 높은 대로 평평케 하고, 낮은 곳은 낮은 대로 평평케 하십시오.”
영우 위산이 옳다고 여겼다.

어떤 시주施主가 비단을 보냈는데, 대사가 물었다.
“화상은 시주의 이러한 공양을 받으시고, 무엇으로 보답하시겠습니까?”
영우靈祐가 선상禪床을 두드려 보이니, 대사가 말했다.
“화상께서는 어찌하여 뭇 사람의 물건을 자기 것으로 쓰십니까?”

영우가 갑자기 물었다.
“어디를 갔다 왔는가?”
“밭에 갔었습니다.”
“밭에 사람이 얼마나 있는가?”
대사가 삽을 꽂고 섰으니, 영우가 말했다.
“오늘 남산南山에서 여러 사람이 띠[茅]를 베더라.”
그러자 대사는 삽을 들고 가 버렸다.[현사玄沙가 말하기를 “내가 보았더라면 삽을 차서 넘어뜨렸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경청鏡淸에게 묻기를 “앙산이 삽을 꽂은 뜻이 무엇입니까?”라고 하자, 경청이 대답하기를 “개가 사서赦書를 물고 가니, 제후諸侯가 길을 피한다”라고 하였다. 또 묻기를 “현사가 삽을 차서 쓰러뜨린 뜻은 무엇입니까?”라고 하니 경청이 대답하기를 “배<船>를 어찌할 수 없어서 표주박을 때려 부셨다”라고 하였다. 또 묻기를 “남산에서 띠를 벤다는 뜻이 무엇입니까?”라고 하니, 경청이 대답하기를 “이정李靖이 세 형제 중에서 가장 오랜 진陣을 쳤느니라”고 하였다. 운거雲居 석錫이 말하기를 “말해 보라. 경청이 이러한 판단을 한 것이 맞는가, 맞지 않는가?”라고 하였다. 또 어떤 스님이 화산禾山에게 묻기를 “앙산이 삽을 꽂은 뜻이 무엇입니까?”라고 하니, 화산이 대답하기를 “그대가 나에게 물어라”고 하였다. 스님이 다시 묻기를 “현사가 삽을 쓰러뜨린 뜻이 무엇입니까?”라고 하니, 화산이 대답하기를 “내가 그대에게 묻는다”라고 하였다.]

대사가 위산에서 소를 먹일 때에 제1좌座가 말했다.
“백억 털끝에 백억 사자師子가 나타났구나.”
대사가 대답하지 않고 돌아가서 (위산을) 모시고 섰는데, 제1좌가 문안을 올리러 왔다. 대사가 앞의 말을 들면서 물었다.
“아까 말하기를 ‘백억 털끝에 백억 사자가 나타났다’고 하시지 않았소?”
상좌가 말했다.
“그렇소.”
“그렇다면 나타날 때에는 털 앞에 나타났소, 아니면 털 뒤에 나타났소?”
“나타날 때는 앞뒤를 설하지 않소.”
대사가 그대로 밖으로 나가니, 영우가 말했다.
“사자의 허리가 부러졌구나.”

위산의 상좌上座가 불자拂子를 번쩍 들고 말했다.
“이 도리道理를 알아채는 이에게 이것을 주리라.”
대사가 대답했다.
“제가 도리를 알아채리니, 그래도 되겠습니까?”
“다만 도리를 알아차리기만 하면 된다.”
그러자 대사가 불자를 빼앗아 가지고 갔다.[운거雲居 석錫이 말하기를 “어디가 앙산의 도리인가?”라고 하였다.]

어느 날 비가 오자, 상좌가 말했다.
“좋은 비로구나, 혜적慧寂 사리闍梨여.”
“좋은 것이 어디에 있습니까?”
상좌가 말이 없으니, 대사가 말했다.
“제가 말할 수 있습니다.”
상좌가 말했다.
“좋은 것이 어디에 있는가?”
대사가 비를 가리켰다.

위산이 대사와 함께 길을 가는데, 까마귀가 홍시紅柿 하나를 물어다가 앞에다 떨어뜨렸다. 위산이 그것을 주어서 대사에게 주니, 대사가 받아서 물로 씻어다가 위산에게 주었다. 영우(靈祐:潙山)가 물었다.
“그대는 이것을 어디서 얻었는가?”
“이것은 화상의 도덕道德이 감응한 바입니다.”
영우가 말했다.
“그대도 허탕을 칠 수는 없지.”
그리고는 반을 나누어 대사에게 주었다.[현사玄沙가 말하기를 “못난 위산이 앙산의 한 방망이를 맞고 넘어져서 아직도 일어나지 못하는구나”라고 하였다.]

대사가 빨래를 하는데, 탐원耽源이 말했다.
“바로 이럴 때에 어떠한가?”
대사가 말했다.
“바로 이럴 때를 어디서 보았습니까?”

대사가 위산을 왔다갔다하기 15년 동안 무릇 배우는 무리들이 그의 말과 글귀[語句]에 승복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위산의 비밀한 법인을 전해 받은 뒤에 무리를 이끌고 왕망산王莽山에 살았는데, 교화할 인연이 맞지 않아서 앙산仰山으로 옮기자, 배우는 무리가 많이 모여들었다.
대사가 상당하여 무리에게 보였다.
“그대들 모두가 제각기 광명을 돌이킬지언정 내 말을 기억하지 말라. 그대들은 비롯함이 없는 겁 이래로 밝음을 등지고 어두움에 던져진 탓에 망상의 뿌리가 깊어져서 단박에 뽑기가 어렵다. 그러므로 임시로 방편을 시설하여 그대들의 거친 의식을 뽑아 버리려 하니, 마치 누런 낙엽[黃葉]을 가지고 황금이라고 속여 우는 아이를 달래는 것과 같거늘 어찌 옳다고 하겠는가? 또 어떤 사람이 갖가지 물건과 금과 보배로 가게 하나를 차려서 장사를 하는 것과 같으니, 다만 오는 자들의 경중輕重을 헤아리는 것이다. 그러므로 석두石頭는 진금포眞金鋪요, 나는 잡화포雜貨鋪라 말하겠다. 어떤 사람이 와서 쥐똥을 찾더라도 나는 주고, 어떤 사람이 순금을 찾더라도 나는 주리라.”
다른 때에 어떤 스님이 물었다.
“쥐똥은 요구하지 않겠습니다. 화상께 청하나니, 진금을 주십시오.”
“활촉을 물고 입을 열려고 한다면, 나귀 해가 되어도 모를 것이다.”
스님이 대답하지 못하니, 대사가 말했다.
“찾고 부르면 거래[交易]가 있고 찾고 부르지 않으면 거래가 없다. 내가 선종을 설하려면 신변에 한 사람을 동반하는 것도 필요치 않거늘, 어찌 5백 명, 7백 명이 있을 수 있으랴? 내가 만일 이렇게[東] 말하고 저렇게[西] 말하면 앞을 다투어 주워 모으려고 하는데, 마치 빈주먹으로 아이들을 속이는 것과 같아서 도무지 진실함이 없다. 내가 이제 그대들에게 분명히 말하나니, 거룩한 쪽의 일에도 마음을 두지 말고, 오직 자기의 성품 바다를 향해 여실히 닦되 3명明과 6통通을 바라지 말라. 왜냐하면 이는 성인들의 아주 지말적인 일[末邊事]이기 때문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마음을 알아채고 근본을 통달하는 것이니, 다만 그 근본을 얻을지언정 그 지말적인 것을 근심치 말라. 다른 때, 훗날에 저절로 갖추어지리라. 만일 근본을 얻지 못하면, 비록 망정을 가지고 배운다 할지라도 얻지 못할 것이다. 그대들은 보지 못했는가? 위산 화상이 말하기를 ‘범속함이나 거룩함의 감정이 다해서 체體가 참되고 항상함을 드러내면, 이理와 사事가 둘이 아닌 것이 바로 여여如如한 부처이다’라고 하셨다.”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조사의 뜻입니까?”
대사가 손으로 허공에다 원상圓相을 그리고, 그 안에 불佛자를 쓰니, 스님은 말이 없었다.

대사가 제1좌에게 말했다.
“선善도 생각지 않고 악惡도 생각지 않으면, 바로 이럴 때 어떠한가?”
“바로 그럴 때가 저의 몸과 목숨을 던져 버릴 곳입니다.”
“어째서 나[老僧]에게는 묻지 않는가?”
“바로 그럴 때에 화상이 계신다고 보지 않습니다.”
“나를 부축하면서도 일어나지 못하게 하는구나.”

대사가 위산에 돌아가서 문안을 드리는데, 영우가 물었다.
“그대는 이미 선지식이라 불리니, 제방諸方에서 온 사람들이 앎이 있는지 앎이 없는지, 스승이 있는지 스승이 없는지, 의학義學을 배웠는지 현학玄學을 배웠는지를 어떻게 변별하는지 말해 보라.”
“제게는[慧寂] 시험하는 곳이 있습니다. 제방에서 온 스님을 보면 문득 불자를 세우면서 그에게 묻되 ‘제방에서도 이것을 설하는가, 설하지 않는가?’라고 합니다. 또 말하되 ‘이것은 그만두고 제방의 노숙老宿들의 뜻은 어떠한가?’라고 합니다.”
영우가 탄복하였다.
“이는 예로부터 종문宗門의 (날카로운) 손톱이요, 어금니이다.”

어느 날, 위산이 물었다.
“대지大地의 중생이 업식業識이 망망茫茫해서 의거할 근본이 없는데, 그대는 어떻게 그에게 있고 없음을 아는가?”
“저에게 시험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때마침 어떤 스님이 그 앞을 지나자, 대사가 불렀다.
“사리闍梨여.”
그 스님이 머리를 돌리니, 대사가 말했다.
“화상이시여, 이것이 업식業識이 망망해서 의거할 근본이 없는 것입니다.”
영우가 말했다.
“이는 사자師子의 젖 한 방울로 나귀의 젖 여섯 섬을 물리치는 것이다.”

상공相公인 정우鄭愚가 물었다.
“번뇌를 끊지 않고 열반에 들 때에는 어떠합니까?”
대사가 불자를 번쩍 세우자, 상공이 말했다.
“입入이란 한 글자를 요구하지 않아도 됩니다.”
“입이란 글자 하나가 상공을 위하지도 않소.”[법등法燈이 따로 말하기를 “상공은 번뇌를 일으키지 마시오”라고 하였다.]

대사가 어떤 스님에게 물었다.
“어디서 오는가?”
“유주幽州에서 옵니다.”
“내가 마침 유주의 소식을 알고 싶었는데 쌀값이 얼마인가?”
“제가 올 때에 까닭 없이 시장을 지나쳐 오다가 돌다리를 차서 부러뜨렸습니다.”
대사가 그만두었다.
대사가 어떤 스님이 오는 것을 보고 불자를 번쩍 세우니, 그 스님이 할喝을 했다. 대사가 말했다.
“할喝을 한 것은 타당함이 없지 않으나, 노승老僧의 허물이 어디에 있는지 말해 보라.”
“화상께서 경계를 가지고 사람에게 보이는 것은 합당치 않으십니다.”
대사가 그를 때렸다.

대사가 향엄香嚴에게 물었다.
“아우[師弟]의 요즘 견처見處는 어떠하오?”
“제가 갑자기 말하려니 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는 게송을 하나 바쳤다.

작년의 가난은 아직 가난이 아니었고
금년의 가난이 비로소 가난일세.
작년엔 송곳 하나 꽂을 땅도 없더니
금년엔 송곳마저 없다네.
去年貧未是貧      今年貧始是貧
去年無卓錐之地    今年錐也無

대사가 말했다.
“그대는 여래선如來禪만을 얻었을 뿐, 조사선祖師禪은 얻지 못했다.”[현각玄覺이 말하기를 “조사선祖師禪과 여래선如來禪은 다른 것인가, 다르지 않은 것인가? 말해 보라”고 하였다. 장경長慶이 말하기를 “일시에 꺾어 버렸다”라고 하였다.]
위산이 거울 하나를 봉해서 대사에게 보냈는데, 대사가 상당하여 이를 꺼내 들고 말했다.
“말해 보라. 이것이 위산의 거울인가, 앙산의 거울인가? 누군가가 바로 말하면 깨뜨리지 않겠다.”
대중이 아무런 대답도 없자, 대사가 박살을 내버렸다.

대사가 쌍봉雙峰에게 물었다.
“아우의 요즘 견처見處는 어떠하오?”
“저의 견처에 의거하건대, 실로 한 법도 정情에 해당할 만한 것이 없습니다.”
“그대의 견해는 아직 경계에 있구나.”
“제가 보는 바는 그렇지만, 사형께서는 어떠하십니까?”
“그대는 어찌하여 한 법도 정에 해당할 만한 것이 없다는 것을 모르는가?”
위산이 이 말을 듣고 말했다.
“혜적의 이 한마디가 천하 사람을 의혹으로 몰아넣는구나.”[현각玄覺이 말하기를 “󰡔금강경󰡕에 말하기를 ‘진실로 연등불然燈佛이 한 법도 나에게 수기를 주신 것이 없다’고 하였고, 그는 한 법도 정에 해당할 만한 법이 없다고 하였다는데, 어찌하여 아직도 경계에 있다 하는가”라고 하였다.]

어떤 스님이 물었다.
“법신法身도 법을 해설하십니까?”
“나는 말할 수 없다. 따로 한 사람이 말할 수 있다.”
“말할 수 있는 이는 어디에 있습니까?”
대사가 베개[枕子]를 내놓았다. 위산이 이 말을 듣고 말했다.
“혜적은 칼날 위의 일을 쓰는구나.”

대사가 눈을 감고 앉았는데, 어떤 스님이 가만히 와서 곁에 섰다. 대사가 눈을 뜨고 땅 위에다 원상圓相을 하나 그리고, 원상 안에다 수水자를 쓴 뒤에 그 스님을 돌아보았다. 그 스님은 말이 없었다.

대사가 지팡이 하나를 짚고 다니자,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디서 얻으셨습니까?”
대사가 문득 등 뒤에다 숨기니, 스님은 말이 없었다.

대사가 어떤 스님에게 물었다.
“그대는 어떤 것을 잘 아는가?”
“점卜을 좀 압니다.”
대사가 불자를 번쩍 들고 말했다.
“이것은 64괘卦에서 어느 괘에 해당하는가?”
대답이 없으니, 대사가 대신 대답했다.
“아까는 뇌천대장雷天大壯이더니, 이제는 지화명이地火明夷 뇌천대장雷天大壯은 활달한 괘요, 지화명이地火明夷는 옹색한 괘이다. 첫 번째 물음에는 자신 있게 답하고, 두 번째 물음에는 답하지 못한 것을 이르는 말이다.
로 변했구나.”

대사가 어떤 스님에게 물었다.
“이름이 무엇인가?”
“영통靈通입니다.”
“얼른 등롱燈籠 속으로 들어가게.”
“벌써 들어갔습니다.”[법안法眼이 따로 말하기를 “무엇을 등롱燈籠이라고 하는가?”라고 하였다.]

어떤 스님이 물었다.
“옛사람이 말하기를 ‘색色을 보면 문득 마음을 본다’고 하였습니다. 선상禪床은 색인데, 화상께서는 색을 여의고서 학인學人의 마음을 가리켜 주십시오.”
“어떤 것이 선상禪床인지 가리켜 보라.”
스님은 대답이 없었다.[현각玄覺이 말하기를 “홀연히 그가 선상禪床을 가리켜 냈다면 어떻게 대꾸해야 좋을까?”라고 하니, 어떤 스님이 말하기를 “화상께서 말씀해 주십시오”라고 하였다. 그러자 현각이 대신 손뼉을 세 번 치고 말았다.]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비로자나의 스승입니까?”
대사가 꾸짖으니, 그가 다시 물었다.
“무엇이 화상의 스승입니까?”
“무례하게 굴지 말라.”

대사가 한 스님과 이야기를 하는데, 그 곁에 있던 스님이 말했다.
“말하는 쪽은 문수文殊요, 침묵하고 있는 쪽은 유마維摩이다.”
대사가 말했다.
“말하지도 않고 침묵하지도 않는 이는 그대가 아닌가?”
스님이 잠자코 있으니, 대사가 말했다.
“어찌하여 신통을 나타내지 않는가?”
“신통을 나타내기는 사양치 않겠으나, 단지 화상께서 교학에 빠져들까 걱정입니다.”
“그대가 하는 짓을 비추어 보니, 교리 밖의 안목은 없구나.”
“천당과 지옥의 거리가 얼마나 됩니까?”
대사가 주장자로 땅에다 한 획을 그었다. 

대사가 관음원觀音院에 있을 때에 다음과 같은 방牓을 걸었다.
“경을 보는 동안에는 일을 묻지 말라.”
나중에 어떤 스님이 문안을 드리러 왔다가 대사가 경을 보는 것을 보고는 곁에 모시고 서서 기다렸다. 대사가 경을 덮고 물었다.
“알겠는가?”
“저는 경을 보지 못했으니, 어찌 알 수 있겠습니까?”
“그대는 이후에 차차 알게 될 것이다.”[그 스님이 암두巖頭에게 가니, 암두가 묻기를 “어디서 왔는가?”라고 하였다. 그 스님이 “강서江西 관음원에서 왔습니다”라고 하니, 암두가 묻기를 “화상께서 무슨 말이 없던가?”라고 하였다. 그 스님이 앞의 말을 이야기하니, 암두가 말하기를 “그 노장이 묵은 창호지 속에 파묻혔으리라 여겼는데, 아직도 살아 있구나”라고 하였다.]

어떤 스님이 물었다.
“선종禪宗에서 단박에 깨달아서 필경 문門에 들어가는 뜻이 어떠합니까?”
“이 뜻은 지극히 어렵다. 만일 조종祖宗 문하의 상근상지上根上智라면 하나를 듣고 천을 깨달아서 큰 다라니[大總持]를 얻겠지만, 이런 근기의 사람은 얻기 어렵다. 근기가 미약하고 지혜가 얕은 이가 있으니, 이 때문에 고덕古德이 말하기를 ‘만약 선禪의 정려靜慮에 안주하지 못하면 도달한 자는 그 속에서 몽땅 아득해진다’고 하였느니라.”
스님이 물었다.
“이러한 격외格外의 일을 제외하고 따로 학인들을 깨닫게 하는 방편이 있습니까?”
“따로 있건 따로 없건 그대의 마음을 안주하지 못하게 할 뿐이니라. 그대는 어디 사람인가?”
“유주幽州 사람입니다.”
“그대는 그곳을 생각한 일이 있는가?”
“항상 생각합니다.”
“그곳에는 누각․궁전․숲․동산․사람․말 따위가 들끓는데, 그대가 돌이켜 생각해 보면 허다한 현상이 있는가?”
“제가 도달한 그 속에서는 일체가 보이지 않습니다.”
“그대의 견해는 아직 경계에 머물러 있으니, 믿음의 경지[信位]에는 이르렀을지라도, 체득의 경지[人位]에는 이르지 못했구나. 그대의 견해에 의거하건대, 단지 하나의 현묘함만을 얻었으니, 자리를 얻어서 옷을 풀어헤치면, 뒷날에는 저절로 알게 되리라.”
그 스님은 절을 하고 물러갔다.

대사는 처음에는 앙산에서 시작했다가 나중에 관음원으로 옮겨서, 근기를 제접하고 사물을 이롭게 하는 데 선종의 표준이 되었다. 임종하기 몇 해 전에 게송을 지어서 대중에게 보였다.

나이 일흔일곱을 채웠지만
바로 지금도 늙어가도 있다네.
성품에 맡겨 스스로 부침浮沈을 하노니
양손으로 붙잡아 무릎을 굽히네.
年滿七十七    老去是今日
任性自浮沈    兩手攀屈膝

소주韶州 동평산東平山에서 입적하니, 나이는 77세였는데 무릎을 껴안고 임종하였다. 시호는 지통智通 대사 묘광妙光의 탑이라 하였고, 나중에 앙산仰山으로 탑을 옮겼다.

등주鄧州 향엄香嚴 지한智閑 선사
그는 청주靑州 사람이다. 속세를 싫어하여 부모를 하직하고 사방으로 다니면서 도를 흠모하다가 위산潙山의 선회禪會에 의지했다. 영우靈祐 화상은 그가 법을 이을 만한 그릇임을 알고 지혜의 광명을 일깨워 주기 위하여 어느 날 이렇게 말했다.
“나는 그대의 평생 배운 견해와 경전이나 책에서 기억해 가진 것을 묻지 않겠다. 그대가 아직 태胎에서 아직 나오지 않아서 동쪽과 서쪽을 분간하지 못할 때의 본분사本分事에 대해서 시험 삼아 한마디[一句] 말해 보라. 내가 그대에게 수기하겠다.”
대사가 어리둥절하면서 대답을 못하다가 오래 침음沈吟한 끝에 몇 마디의 견해를 말했으나, 영우가 모두 허락하지 않으니 대사가 말했다.
“화상께서 말씀해 주십시오.”
영우가 말했다.
“내가 말하면 나의 견해일 뿐이니, 그대의 안목에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대사가 결국 방으로 돌아가서 수집해 놓은 제방諸方의 어구語句들을 뒤져 보았으나, 한마디도 대꾸할 만한 것이 없었다. 이에 대사는 스스로 탄식하였다.
“그림의 떡으로는 굶주림을 채울 수 없구나.”
그리고는 모두 태워 버리면서 말했다.
“금생에 불법을 배우지 못할 바에는 먼 길을 떠나 죽이나 밥을 먹어치우는 중이 되어서 심신心神의 괴로움이나 면하리라.”
그리고는 울면서 위산을 하직하고 남양南陽에 이르러서 충忠 국사國師의 옛터를 구경하다가 그곳에서 휴식을 취했다. 그러던 어느 날, 산에서 잡초를 베다가 기와를 던진 것이 대나무에 부딪쳐 소리가 나는 찰나에 자기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리면서 확연히 깨달았다. 급히 돌아와서 목욕하고 향을 피우면서 멀리 위산을 향해 절을 하며 찬탄했다.
“화상의 대비하신 은혜는 부모의 은혜보다 높습니다. 그 당시에 만일 저에게 설명하셨다면, 어찌 오늘의 일이 있겠습니까?”
그리고는 게송 하나를 지었다.

한 번 치는 소리에 아는 바를 잊으니
다시는 닦고 다스리지 않게 되었네.
덩실덩실 옛길을 넘나드니
초조해 하는 근기에 떨어지지 않네.
一擊忘所知    更不假修治
動容揚古路    不墮悄然機
[끝의 두 문구는 구본舊本과 복소본福邵本에는 모두 없는데, 여기서는 󰡔통명집通明集󰡕에 의해서 삽입한 것이다.]

곳곳마다 자취를 남기지 않고
소리와 빛깔은 위의威儀 밖이니
제방諸方의 도를 통달한 자들이
모두 상상기上上機라 말하네.
處處無踪迹    聲色外威儀
諸方達道者    咸言上上機

대사가 상당하여 말했다.
“도는 깨달아 도달하는 것이지 말에 있지 않다. 하물며 밀밀密密하고 당당堂堂하여 일찍이 짬이 없음을 본다면 마음과 뜻을 괴롭힐 필요가 없다. 잠깐 빛을 돌려 비추면[回光] 나날이 써도 공용이 온전하거늘, 미혹한 무리가 스스로 등질 뿐이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향엄香嚴의 경계입니까?”
“꽃도 나무도 살지 못한다.”
“어떤 것이 선타바仙陀婆입니까?”
대사가 선상禪床을 치면서 말했다.
“이 속을 지나쳐 오라.”
“어떤 것이 현재에 배움입니까?”
대사가 부채를 빙빙 돌리면서 말했다.
“보았는가?”
스님이 대답이 없었다.
“어떤 것이 바른 생활[正命]의 음식입니까?”
대사가 손으로 긁어모아서 보였다.
“어떤 것이 무표계無表戒 계행戒行의 신념이 굳어져서 저절로 지켜지는 상태를 말한다.
입니까?”
“그대가 속인이 되면 곧 말해 주겠다.”
“어떤 것이 소리와 빛깔 밖에서 서로 만나는 한 구절입니까?”
“내가 향엄에 머물지 않을 때는 어디에 있다고 말하겠는가?”
“그럴 때도 소재所在가 있음을 감히 말하지 못합니다.”
“마치 환인幻人의 마음[心]과 심소법心所法과 같으니라.”
스님이 물었다.
“모든 성인들을 사모하지 않고 자기의 영혼도 소중히 여기지 않을 때에는 어떠합니까?”
“온갖 기연[萬機]이 다 쉬어 버리고, 1천 성현이 도와주지 않는다.”

이때에 소산疎山이 대중 속에 있다가 구역질 소리를 내면서 말했다.
“이게 무슨 소리인가?”
대사가 물었다.
“누구냐?”
대중이 모두 대답했다.
“사숙師叔이십니다.”
“나[老僧]를 긍정하지 않으시는가?”
소산이 나서면서 말했다.
“그렇소.”
“그대가 말할 수 없는 것인가?”
“말할 수 있소.”
“말해 보시오.”
“날더러 말하라고 한다면, 스승과 제자의 예를 갖추어야만 되겠소.”
대사가 법좌에서 내려와 절을 하면서 앞의 말을 거두어 물으니, 소산이 말했다.
“왜 긍정하고 중시하는 것이 온전하지는 않다고 말하지 않았소?”
대사가 말했다.
“설사 그대가 그렇다 해도 30년 동안 거꾸로 똥을 쌀 것이며, 설사 산에 살더라도 땔나무가 없을 것이며, 물 가까이 있어도 먹을 물이 없으리니, 분명히 기억해 두시오.”
나중에 소산에 살았는데, 과연 대사의 예언과 같았다. 27년이 지나서 겨우 병이 나으니, 스스로 이렇게 말했다.
“향엄 사형이 나에게 수기하기를 30년 동안 거꾸로 똥을 싼다고 하였는데, 아직도 3년이 남았다.”
그래서 매번 밥을 먹고는 손으로 긁어서 토하여 앞의 예언에 맞추었다.[소산疎山이 나중에 도부道怤 장로에게 묻기를 “소중히 여긴다는 말을 긍정하나 완전히 긍정치는 않는다는 말을 그대는 어찌 생각하나?”라고 하였다. 도부가 대답하기를 “완전히 긍정에로 돌아갔다”라고 하였다. 소산이 다시 묻기를 “완전하지 않을 때에는 어찌하는가?”라고 하니, 도부가 말하기를 “거기에는 긍정할 길이 없다”라고 하였다. 이에 소산이 말하기를 “비로소 나의 뜻에 맞는다”라고 하였다.]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음성 이전의 구절입니까?”
대사가 말했다.
“대덕이 묻기 전이 바로 답[卽答]이다.”
“즉시卽時에는 어떠합니까?”
“즉시에 물었구나.”
“어떤 것이 곧바로 근원을 끊어서 부처님께서 인印한 바입니까?”
대사가 주장자를 던지고 손을 털면서 떠나 버렸다.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스님의 법의 대의大意입니까?”
“금년에 서리가 일찍 내려서 메밀을 전혀 거두지 못했다.”
“어떤 것이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대사가 손을 품에 넣었다가 주먹을 꺼내 펴면서 주는 시늉을 하니, 그 스님이 꿇어앉아 두 손으로 받는 시늉을 하였다. 이에 대사가 물었다.
“이게 무엇인가?”
스님이 대답이 없었다.
“무엇이 도입니까?”
“고목枯木에서 용트림한다.”
“학인은 잘 모르겠습니다.”
“해골 속의 눈동자이니라.”[현사玄沙가 말하기를 “고목 속에 용龍이 숨었는가?”라고 하였다.]
“네 구절[四句]을 여의고 백 가지 부정[百非]을 끊은 경지를 화상께서 말씀해 주십시오.”
“사냥꾼 앞에서는 본사本師의 계율을 말하지 않는다.”

어느 날 대중에게 말했다.
“어떤 사람이 천 길 벼랑에서 입으로는 나뭇가지를 물고, 발로는 밟은 것이 없고, 손으로도 잡을 것이 없는데, 홀연히 어떤 사람이 와서 ‘어떤 것이 서쪽에서 오신 뜻인가’를 물었다고 하자. 만일 입을 열어 대답하면 곧 몸과 목숨을 잃고, 대답하지 않으면 그가 물은 것을 거스르게 되니, 이럴 때에는 어찌해야 할까?”
이때에 초招 상좌上座라는 이가 나서서 말했다.
“나무에 올랐을 때는 묻지 않겠지만, 나무에 오르지 않았을 때에는 어떠합니까?”
대사가 웃기만 하였다.

대사가 어떤 스님에게 물었다.
“어디서 왔는가?”
“위산에서 왔습니다.”
“화상께서 요즘에는 무어라 하시는가?”
“어떤 사람이 ‘무엇이 서쪽에서 오신 뜻이냐’고 물으면, 화상께서는 불자를 세우셨습니다.”
대사가 그 말을 듣고 말했다.
“거기의 형제兄弟들은 화상의 뜻을 어떻게 이해하던가?”
“거기의 형제들은 색色에 의해서 마음을 밝히고, 사물에 의지해 이理를 드러낸다고 하였습니다.”
“알면 즉각 아는 것이지, 알지 못하는 이들이 어찌하여 그리 성급하게 구는가?”
스님이 도리어 물었다.
“스님의 생각은 어떠하십니까?”
대사도 다시 불자를 들었다.[현사玄沙가 말하기를 “저 향엄香嚴의 발꿈치가 땅에 닿지 않았을 뿐이다”라고 하였다. 운거雲居 석錫이 말하기를 “어디가 향엄의 발꿈치가 닿지 않은 곳인가?”라고 하였다.]
대사가 학인들에게 보이는 말은 대부분 간결하였다. 게송이 2백여 편이 있는데, 인연을 따르고 근기에 대응할 뿐 규율에 구애받지 않아서 제방에 널리 알려졌다. 시호는 습등襲燈 대사라 하였다.

양주襄州 연경산延慶山 법단法端 대사
어떤 사람이 물었다.
“지렁이를 두 토막에 내면 두 토막이 모두 움직이는데, 불성은 어느 쪽에 있습니까?”
대사(법단)가 두 손을 펴 보였다.[동산洞山이 따로 말하기를 “묻는 이는 어느 쪽에 있다고 여기는가?”라고 하였다.]
대사가 입적한 뒤에 시호는 소진紹眞 대사라 하였고, 탑호는 명금明金이라 하였다.

항주杭州 경산徑山 홍인洪諲 선사
그는 오흥吳興 사람으로서 성은 오吳씨이다. 나이 열아홉 살에 개원사開元寺의 무상無上 대사에 의해 머리를 깎았다.[무상無上 대사는 염관鹽官의 뒤를 이었는데, 나중에 경산徑山에서 제2세 주지로 있었다.]
스물두 살에 숭악嵩嶽에 가서 구족계를 받고 돌아와서 본사本師께 절하니, 무상 대사가 물었다.
“그대는 수행을 하는 가운데 무엇으로 네 가지 은혜에 보답하겠는가?”
홍인洪諲이 대답을 못한 채 3일 동안 먹는 것도 잊었으며, 결국 하직하고 행각行脚을 나섰다. 그 길로 운암雲巖을 가서 뵈었으나 인연이 맞지 않았으며, 나중에 위산潙山에 가서 막혔던 의심이 모두 풀렸다.
당나라 회창會昌의 사태를 만나 대중이 모두 슬퍼하자, 홍인이 말했다.
“대장부가 이런 액난厄難을 만나는 것이 어찌 천명이 아니겠는가? 어찌하여 아녀자처럼 구는가?”
대중大中 초에 사문의 모습을 회복하고는 고향 서봉원西峰院으로 돌아왔다. 함통咸通 6년에 경산에 올라왔는데 이듬해에 본사本師가 입적하니, 대중이 뒤를 이으라고 하자 경산의 제3세가 되었으나 법으로는 위산의 제자였다.

어떤 스님이 물었다.
“숨을 차단해서 재[灰]와 같이 될 때는 어떠합니까?”
대사(홍인)가 말했다.
“그래도 요즘 사람들이 노력함이 낫구나.”
“노력한 뒤에는 어떠합니까?”
“농부가 밭에 씨를 뿌리지 않느니라.”
“궁극적으로 어떠합니까?”
“곡식이 익어도 타작마당에 가지 않느니라.”
어떤 스님이 물었다.
“용문龍門에서 바람과 우레의 힘을 빌리지 않고 곧바로 뛰어넘는 자는 어떠합니까?”
“역시 1품品과 2품品의 차별이 있느니라.”
“그것은 이미 계급이거니와 위로 향하는 일[向上事]은 어떠합니까?”
“나는 그대에게 용문이 있는 줄 모른다.”

어떤 스님이 물었다.
“눈 같고 서리 같을 때에는 어떠합니까?”
“그래도 오염된 것이다.”
“오염되지 않았을 때에는 어떠합니까?”
“똑같은 빛깔은 아니리라.”

허주許州의 전명全明 상좌上坐가 먼저 석상石霜에게 물었다.
“한 털에다 여러 구멍을 뚫을 때는 어떠합니까?”
석상이 대답했다.
“모름지기 만년을 지내야 하리라.”
“만년 뒤에는 어떠합니까?”
“과거[登科]를 보려면 그대 마음대로 과거를 보고, 장원을 하려면 마음대로 장원을 하라.”
나중에 대사에게 또 물었다.
“한 털에다 여러 구멍을 뚫을 때는 어떠합니까?”
“광채를 내려면 마음대로 광채를 내고, 결과를 맺으려면 마음대로 결과를 맺어라.”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긴 것입니까?”
“천 명의 성인도 헤아리지 못하느니라.”
“어떤 것이 짧은 것입니까?”
“초명蟭螟 모기의 눈에 산다는 아주 작은 벌레를 말한다.
의 눈에도 차지 않는 것이니라.”
그 스님은 수긍하지 않고 바로 떠나서 석상을 찾아가 이야기하니, 석상이 말했다.
“다만 실다움에 너무 가까울 뿐이다.”
그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긴 것입니까?”
석상이 대답했다.
“굽지 않은 것이니라.”
“어떤 것이 짧은 것입니까?”
“쌍륙雙陸 골패의 일종이다.
 판 위에서는 노름을 꾸짖지 않는다.”

불일佛日 장로長老가 대사를 방문하자, 대사가 물었다.
“듣건대 장로께서는 홀로 한 지방을 교화하신다고 하던데, 어떻게 이 높은 봉우리까지 왕림하셨습니까?”
불일이 대답했다.
“밝은 달이 중천에 걸렸는데, 얼음과 서리가 춥다고 여기지 않습니다.”
“그것은 장로의 가풍이 아니겠습니까?”
“높고 높은 만중관萬重關 깊은 산중을 말한다.
은 그 속에 보배 달을 머금습니다.”
“그것은 여전히 글과 말이니, 어떤 것이 장로의 가풍입니까?”
“오늘 다행히도 불일佛日을 만났습니다.”
그리고는 불일 장로가 도리어 물었다.
“은밀하고 온전히 참된 것[隱密全眞]에 대해서 요즘 사람은 말할 수 없는 것이라고 알고, 크게 살펴서 허물이 없는 것[大省無辜]에 대해서는 요즘 사람이 말할 수 있다고 아는데, 바로 이 두 갈래가 요즘 사람들이 오르내리는 곳입니다. 장로께서 직접 스스로의 도[自道]를 말씀하신다면 어떻게 말씀하시겠습니까?”
대사가 대답했다.
“우리 집안의 도처道處는 도라고 할 것이 없습니다.”
“여래의 길 위에는 사사로운 왜곡이 없으니, 얼른 현묘한 소리로 한 마당[一場]에 화답하십시오.”
“해와 달이 서로 비추는 것은 그대에게 맡기지만, 푸른 못과 구름 밖은 상관치 않습니다.”
“머리가 하얀 끝없는 무리에게 알리나니, 이번에는 젊은이를 고향에 보내지 마시오.”
“늙고 젊음이 똑같은 굴레라서 향하고 등짐이 없으니, 우리 집안의 현묘한 길에도 들쑥날쑥이 없다오.”
“한 마디[一言]로 천하를 안정시키는데, 네 구절[四句]이 누구에게 남으랴?”
“그대는 셋이다, 넷이다 말하지만, 나는 그 속의 하나도 없다고 하겠소.”
대사는 이어서 게송을 보였다.

동서에 관계치 않으니
남북에 어찌 막히랴.
그대는 셋이다, 넷이다 말하지만
나에게는 하나도 없구나.
東西不相顧    南北與誰留
汝卽言三四    我卽一也無

광화光化 4년 9월 28일에 대중에 말하고는 임종하였다.

복주福州 영운靈雲 지근志勤 선사
그는 본주(本州:福州)의 장계長溪 사람이니, 처음에 위산에 있다가 복사꽃을 보고서는 도를 깨닫고 게송을 지었다.

30년 동안 검을 찾던 나그네여,
몇 차례나 잎이 지고 가지가 돋았나.
스스로 복사꽃을 한 차례 본 뒤로는
지금에 이르도록 다시는 의심치 않네.
三十來年尋劍客    幾逢落葉幾抽枝
自從一見桃華後    直至如今更不疑

영우靈祐가 이 게송을 보고 그 깨달은 바를 따져서 서로 계합하였다. 영우가 말했다.
“인연 따라 깨달아 도달했으니, 영원히 잊지 말고[退失] 잘 수호하고 간직하라.”[어떤 스님이 현사玄沙에게 말하니, 현사가 이 말을 듣고 말하기를 “지당하고 심히 지당하나, 노형(영운)이 아직 끝까지 알지는 못했다 하노라”고 하니, 스님이 이 말을 의심하였다. 현사가 지장地藏에게 묻기를 “내가 그렇게 말한 것을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는가?”라고 하니, 지장이 말하기를 “계침桂琛이 아니었더라면 천하 사람을 끝없이 달리게 할 뻔하였소”라고 하였다.]
그 길로 민천閔川으로 돌아가니, 현묘함을 찾는 무리가 모여들었다.
상당上堂하여 대중에게 일렀다.
“여러분, 온갖 길고 짧은 것은 모두 무상으로 돌아가오. 네 계절의 초목에서 잎이 지고 꽃이 피는 것을 보시오. 하물며 티끌같이 많은 겁 이래로 하늘과 인간 등의 일곱 갈래에서 땅․물․불․바람으로 이루어졌다 무너졌다 하면서 윤회하는 일이겠는가? 인과가 다할 무렵에는 3악도惡道의 고통이 털끝만치도 더하거나 덜하지도 않으면서 오직 뿌리와 꼭지인 신식神識만이 항상 존재한다. 상근기는 어진 벗의 깨우침을 받으면 그 자리에서 해탈하여 문득 도량이겠지만, 중․하의 근기는 어리석으므로 능히 각조覺照하지를 못하고 삼계를 헤매면서 생사에 유전流轉하는 것이오. 그리하여 석가세존께서 그들 하늘과 인간을 위해 교법을 시설해 증명함으로써 지혜의 도를 현발顯發하셨는데, 그대들은 알겠는가?”
이때에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찌하여야 생․노․병․사를 벗어나겠습니까?”
대사가 말했다.
“청산靑山은 원래 움직임이 없는데, 뜬구름만이 둥실둥실 오고 간다.”
스님이 물었다.
“군왕이 싸움터에 나갈 때는 어떠합니까?”
“춘명문[春明門:장안성의 東門] 밖에서 장안長安을 묻지 말라.”
스님이 말했다.
“어찌하여야 천자를 뵙겠습니까?”
“눈먼 학이 맑은 못에 앉았건만, 물고기가 발밑을 지나간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불법佛法의 대의입니까?”
“나귀의 일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말[馬]의 일이 이르렀구나.”
그 스님은 비유하는 뜻을 알지 못해서 다시 물었다.
“다시 일러 주십시오.”
“채색 기운[彩氣]은 밤마다 항상 움직이나, 정령精靈은 낮에도 만나기 어렵다.”

설봉雪峰이 게송을 지어서 쌍봉雙峰이 영嶺에서 나올 때에 보냈는데, 끝 구절에 말하기를 “우레가 그쳐도 소리는 멈추지 않는다”고 하니, 대사가 이를 고쳐 말하되 “우레가 울려도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라고 하였다. 설봉이 이를 듣고서 말했다.
“영운산靈雲山 마루에 옛 달[古月]이 나타났구나.”
설봉이 물었다.
“옛사람이 전삼삼前三三 후삼삼後三三이라 한 뜻이 무엇입니까?”
대사가 말했다.
“물속의 고기요, 산 위의 새니라.”
“그 뜻이 무엇입니까?”
“높이 있으면 쏠 수 있고, 깊이 있으면 낚을 수 있다.”
“제방諸方에서 모두가 잡식雜食을 한다는데, 화상께서는 어떠하신지 모르겠습니다.”
“민중閩中에만 특이함이 있어서 우뚝하게 해안을 진압한다.”
“오랫동안 전쟁터에만 다니는 이가 어찌하여 벼슬자리에는 나가지 않습니까?” 
“군왕이 도가 있으면 천하[三邊]가 고요하거늘, 어찌하여 수고롭게 만 리에 긴 성을 쌓겠는가?”
“무기를 던지고 팔짱을 낀 채 조정으로 돌아올 때는 어떠합니까?”
“자비로운 구름에서 내리는 비가 끝없는 찰토刹土를 널리 적시지만, 고목枯木 나무에는 꽃이 피지 않아 자라지 못하는 것을 어찌하겠는가?”
“혼돈이 나뉘지 않았을 때 중생[含生]은 어디서 왔습니까?”
“돌기둥[露柱]이 아기를 배는 것[懷兒]과 같다.”[어떤 곳에는 아兒가 태胎로 되어 있다.]
“나뉜 뒤에는 어떠합니까?”
“조각구름이 매우 맑은 하늘에 흠집을 낸 것과 같다.”
“매우 맑은 하늘에도 흠집이 납니까?”
대사가 대답하지 않으니, 이어서 말했다.
“그러면 중생이 오지 않았겠습니다.”
대사가 또 대답하지 않으니, 이어서 말했다.
“다만 순수하고 맑아서 티도 끊어졌을 때는 어떠합니까?”
“그래도 참되고 항상함이 흘러든다.”
“어떤 것이 참되고 항상함이 흘러드는 것입니까?”
“거울이 항상 밝은 것과 같다.”
“향상向上에도 다시 일이 있습니까?”
“있다.”
“어떤 것이 향상사向上事입니까?”
“거울을 부숴 버리고 와서 서로 보라.”
“어떤 것이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우물 속에다 사과나무를 심는구나.”
“학인은 잘 모르겠습니다.”
“금년에는 복숭아와 자두가 귀해서 한 개에 천금千金이다.”
“마니구슬이 뭇 빛깔을 따르지 않을 때엔 어떤 빛깔입니까?”
“흰 빛깔이다.”
“그러면 뭇 빛깔을 따르겠습니다.”
“조趙나라의 구슬이 본래 흠이 없지만, 인상여藺相如는 진秦의 임금을 속였다.”
“군왕이 싸움터에 나간 때는 어떠합니까?”
“여재呂才를 호이산虎耳山에 장사 지냈느니라.” 여재呂才는 지리에 밝은 사람이었는데 죽을 때 딸에게 유언하기를, “나를 호이산虎耳山에 장사하면 너는 천자의 부인이 되리라”고 하여 딸이 그의 말대로 하니, 과연 그렇게 되었다 한다. 

“그 일이 어찌된 것입니까?”
“백의천白衣天 천자의 청혼사를 말한다. 
이 오는 것을 앉아서 맞느니라.”
“왕은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용안龍顔을 건드리지 말라.”

익주益州 응천應天 화상
스님이 물었다.
“사람마다 불성이 있다는데 어떤 것이 화상의 불성입니까?”
“그대는 무엇을 불성이라 하는가?”
“그러면 화상은 불성이 없습니까?”
그러자 대사가 외쳤다. 
“유쾌하다, 유쾌해.”

복주福州 구봉九峰 자혜慈慧 선사
처음에 위산에 있을 때, 위산이 상당하여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들었다.
“그대들은 다만 대체大體만을 얻었지 대용大用은 얻지 못했다.”
대사(구봉)가 몸을 빼어서 떠나가자, 위산이 불렀다. 대사가 뒤를 돌아보지 않으니, 위산이 말했다.
“이 사람은 꽤 법기法器가 될 만하다.”
대사가 어느 날 위산을 하직하고, 영중嶺中으로 돌아가면서 말했다.
“제가 화상을 하직하여 천 리 밖에 있더라도, 화상의 좌우左右를 여의지 않습니다.”
위산이 정중하게 인사를 했다.
“잘 다녀오시오.”

경조京兆 미米 화상[미칠사米七師라고도 한다.]
처음에 행각을 마치고 본사에 돌아와 있노라니, 어떤 노숙老宿이 물었다.
“달밤에 두레박줄이 끊어진 것을 보면 사람들은 뱀이라 부르는데, 화상[七師]께서 부처님을 보는 것은 무엇이라 하시겠습니까?”
대사가 대답했다.
“부처를 봄이 있으면 곧 중생과 같아집니다.”[법안法眼이 따로 말하기를 “이게 어떤 때에 묻는 것일까?”라고 하였다. 법등法燈이 말하기를 “부른다는 것이 옳지 않다”라고 하였다.]
노숙이 말했다.
“천년 복숭아의 씨로구나.”

대사가 앙산에게 스님을 보내서 물었다.
“지금[今時]도 깨달음을 빌려야 합니까?”
앙산이 말했다.
“깨달음은 없지 않으나, 둘째 머리에 떨어지는 것을 어찌하겠는가?”
대사가 깊이 수긍했다. 
또 동산洞山에게 스님을 보내 말했다.
“그것의 구경究竟은 어떠합니까?”
동산이 말했다.
“모름지기 그에게 물어야 된다.”
대사가 또 수긍하였다.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가사[衲衣] 밑의 일입니까?”
“누추하다면 그대 멋대로 싫어하되, 구름이나 노을의 경계에 마음을 두지 마시오.”


진주晋州 곽산霍山 화상
앙산의 한 스님이 와서 외쳤다.
“집운봉集雲峰 밑의 네 그루 등나무 줄기인 천하의 대선불大禪佛이 왔습니다.”[대선불大禪佛은 12권에 나오는 진주晉州 곽산霍山 경통景通 화상이다.]
대사가 유나維那를 불러서 장작을 운반하라 하니, 대선불이 잰걸음으로 물러갔다.

대사는 비마祕魔 화상이 스님들이 와서 절하는 것을 보면 나무 갈고리로 집는다는 말을 들었다. 어느 날 마침내 비마 화상을 찾아가서는 보자마자 절도 하지 않고 비마의 품속으로 들어갔다. 비마가 대사의 등을 세 번 문지르니, 대사가 일어나 손뼉을 치면서 말했다.
“사형이여, 저는 천 리 길을 왔소.”
그리고는 이내 돌아갔다.[어떤 책에는 “사형師兄은 3천 리 밖에서 나를 속였군요”라고 하였다.]

양주襄州 왕경초王敬初 상시常侍
일을 맡아 보고 있는데 미米 화상이 왔다. 왕공王公이 붓을 드니, 미 화상이 말했다.
“허공을 판단할 수 있겠소?”
왕공이 붓을 던지고 청廳에 들어가서는 다시 나오지 않았다. 미 화상이 의심이 나서 이튿날 고산鼓山이 공양을 받으러 들어가는 편에 그의 뜻을 알아 달라고 하고는, 미 화상도 뒤를 따라 들어가서 으슥한 곳에서 엿보았다. 고산이 앉자마자 물었다.
“어제 미 화상이 뭐라 말했기에 보질 않았소?”
왕공이 대답했다. 
“사자는 사람을 물지만, 사냥개[韓盧]는 흙덩이를 뭅니다.”
미 화상이 이 말을 엿듣고는 이내 어제의 잘못을 깨달았다. 그리고는 급히 뛰쳐나오면서 껄껄 웃고 말했다.
“내 알았소, 알았소.”

일찍이 어떤 스님에게 물었던 적이 있었다.
“온갖 중생이 모두 불성이 있습니까?”
그 스님이 말했다.
“모두 있습니다.”
왕공이 벽에 걸린 개 그림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저것도 있습니까?”
스님이 대답하지 못하자, 왕공이 대신해서 대답하였다.
“물릴지 모르니 조심하시오.”

앞의 복주福州 대안大安 선사[대위大潙 화상이라고도           한다.]의 법손[장경원長慶院이라는 세 글자가 빠졌으니         대사가 비록 장락부長樂府의 서원西院에 살았었으나 죽은         뒤로 20년에 민수閩帥가 초경招慶으로 옮겼고, 능稜 화상        이 서원에 와서 살기 시작한 뒤에야 비로소 장경長慶이라        는 편액을 주청해 달았다.]

익주益州 대수大隋 법진法眞 선사
어떤 스님이 물었다.
“겁화劫火가 훨훨 타서 삼천대천세계가 모두 무너지는데, 그것도 무너집니까?”
“무너진다.”
“그렇다면 남[他]을 따라가는군요.”
“남을 따라간다.”
“어떤 것이 대인大人의 모습입니까?”
“가슴에 방(牓:卍)을 붙이지 않는 것이니라.”

대사가 어떤 스님에게 물었다.
“어디로 가는가?”
“서산西山으로 암자살이를 갑니다.”
“내가 동산 마루를 향해 그대를 부르면, 그대가 올 수 있겠는가?”
“그러지 못하겠습니다.”
“그대는 암자살이를 못하겠다.”

어떤 스님이 물었다.
“생사生死가 이르렀을 때에는 어찌합니까?”
“차를 만나면 차를 마시고, 밥을 만나면 밥을 먹는다.”
“누가 공양을 받습니까?”
“발우를 거두라.”
대사의 암자 옆에 거북이 한 마리가 있었는데, 어떤 스님이 물었다.
“온갖 중생은 가죽이 뼈를 감쌌는데 저 중생은 뼈가 가죽을 쌌으니, 어찌된 일입니까?”
대사가 짚신을 들어다가 거북이 곁에다 놓으니, 그 스님이 말이 없었다.
다시 물었다.
“어떤 것이 부처님들의 요긴한 법입니까?”
대사가 불자를 들면서 말했다.
“알겠는가?”
“모르겠습니다.”
“노루[麈] 꼬리로 만든 불자이니라.”
“어떤 것이 학인學人의 자기自己입니까?”
“이는 나의 자기이다.”
“어째서 화상의 자기입니까?”
“이는 그대의 자기이니라.”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무봉탑無縫塔입니까?”
“높이가 다섯 자이니라.”
“학인은 잘 모르겠습니다.”
“곤륜崑崙에서 나는 벽돌이니라.”

어떤 스님이 물었다.
“화상께서 백 년을 마치신(입멸함) 뒤에는 누구에게 법을 전하시겠습니까?”
“맨 기둥[露柱]의 화로火爐이니라.”
“받아들이는 것이 있습니까?”
“화로의 맨 기둥이니라.”

어떤 행자가 무리를 이끌고 오니, 대사가 물었다.
“나를 보러 온 사람들아, 동쪽을 무엇이라 하는가?”
“동쪽이라 부를 수 없습니다.” 
대사가 꾸짖으면서 말했다.
“이 썩을 놈들아, 동쪽이라 부르지 않는다면 무엇이라 부른단 말인가?”
행자는 말을 못하고 대중은 흩어졌다.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화상의 가풍家風입니까?”
“붉은 흙에다 키[簸箕]를 그리는 것이니라.” 이는 구설을 쫓는 비방이다.

“어떤 것이 붉은 흙에다 키를 그리는 것입니까?”
“키에 입술이 있어야 쌀이 튀어나가지 않느니라.”

대사가 어떤 스님에게 물었다.
“어떤 교법敎法을 강하는가?”
“󰡔백법론百法論󰡕을 강합니다.”
대사가 주장자를 번쩍 들고 물었다.
“이는 어디서 일어났는가?”
“인연으로 일어납니다.”
“괴롭다, 괴로워.”

대사가 어떤 스님에게 물었다.
“어디로 가려는가?”
“보현普賢을 예배하러 갑니다.”
대사가 불자를 들고 말했다.
“문수文殊와 보현普賢이 모두 여기에 있다.”

어떤 스님이 원상圓相을 그려서 뒤를 향해 던진 뒤에 절을 하자, 대사가 말했다.
“시자侍者야, 저 스님에게 차 한 잔을 주어라.”

어느 날 대중들이 뵈러 오자, 대사가 입에 풍기風氣가 든 시늉을 하면서 말했다.
“누가 나의 입을 고쳐 주겠는가?”
그러자 스님들이 앞을 다투어 약을 보내왔고, 속인들까지도 많은 약을 보냈으나, 대사는 모두 받지 않았다. 7일 후에 대사 스스로 입을 주물러서 바르게 하면서 말했다.
“그렇게 오랫동안 두 조각 가죽을 놀렸는데, 아직까지 아무도 내 입을 고쳐 주지 않는구나.”
촉주蜀主가 흠모하여 사자를 보내어 자주 청했으나, 대사는 늙고 병들었다는 이유로 모두 사양하였다. 나중에 신조神照 대사라 불렸다.

소주韶州 영수靈樹 여민如敏 선사
그는 민천閩川 사람이다. 광주廣主의 유劉씨가 대대로 대사를 존중히 여기면서 지성知聖 대사라 불렀다.
어떤 스님이 물었다.
“불법의 지극한 이치는 어떠합니까?”
대사가 손을 펴기만 하였다.
“어떤 것이 화상의 가풍입니까?”
“천년 묵은 밭에 8백 명의 주인이니라.”
“어떤 것이 천년 묵은 밭에 8백 명의 주인입니까?”
“낭당(郎當:퇴락)한 집은 아무도 수리하지 않는다.”
“어떤 것이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동자童子는 막요莫傜 조상이 국가에 공이 있어서 나라의 역사役事를 면제받았다는 남방 호족의 명칭이다. 
의 후손이다.”
“스님, 더 자세히 설명해 주소서.” 
“그대는 건주虔州에서 왔는가?” 장안의 동남쪽에 있으므로 서쪽 일을 모르느냐는 뜻이다.

“그것이 무엇이기에 이렇게 알기 어렵습니까?”
“화관火官의 머리 위에 풍차風車 바람개비이니 풀무와 같은 것으로서 불을 붙이는 것이다.
가 있다.”

어떤 비구니가 자기[瓷]로 만든 발우 한 벌을 보냈는데, 대사가 번쩍 들고서 물었다.
“이것은 어느 곳에서 나온 것인가?”
비구니가 대답했다.
“정주定州에서 나왔습니다.”[법등法燈이 따로 말하기를 “여기의 것과 다르지 않구나”라고 하였다.]
대사가 동댕이쳐서 깨뜨리니, 비구니가 대답이 없었다.[보복保福이 대신 말하기를 “적을 속이는 이는 망한다”라고 하였다.]
어떤 사람이 물었다.
“화상의 연세는 얼마입니까?” 
대사가 대답했다.
“오늘 태어나서 내일 죽는다.”
“화상의 고향은 어디십니까?”
“해는 동쪽에서 뜨고, 달은 서쪽으로 진다.”

대사가 40여 년 동안 영嶺 밖에서 교화를 펴니, 자못 영험한 자취가 있었다. 때마침 광주廣主가 장차 군사를 일으키려고 하는데, 대사에게 결정 여부를 묻기 위해서 직접 절에 찾아왔다. 하지만 대사는 이를 미리 알고서 태연히 앉아서 입멸하였다. 광주가 노하여 지사(知事:책임자)를 꾸짖으면서 말했다.
“화상께서 언제 병환이 나셨소?”
“대사께서는 병환이 나신 일이 없습니다. 아까 편지 한 통을 주시면서 군왕이 오시거든 드리라고 하였습니다.”
광주가 열어 보니, 편지는 다음과 같았다.
“인천人天의 안목은 법당 안의 상좌上座이다.”
광주가 대사의 뜻을 알아듣고서 마침내 군사를 거두었다. 그리고는 상좌[第一座]에게 상당 설법을 청했다.[이가 곧 운문雲門 문언文偃이니 설봉雪峰의 법을 이은 사람이다.]
대사의 전신全身은 흩어지지 않았다. 장사할 기구와 감龕과 탑은 모두 광주廣主가 마련했는데, 지금도 영수진신靈樹眞身의 탑이라 부르고 있다.

복주福州 수산壽山 사해師解 선사
행각할 때에 동산洞山의 법회에 가니, 동산이 물었다.
“그대[闍梨]의 고향은 어디인가?”
“화상께서 실제 고향을 물으신다면 저는 민중閩中 사람입니다.”
“그대의 아버지 이름은 무엇인가?”
“오늘 화상에게 이 질문 하나를 받으니, 곧바로 앞과 뒤를 몽땅 잊었습니다.”

수산壽山에 있으면서 상당하여 말했다.
“여러 상좌들이여, 다행히 진실한 말이 있어서 권고하나니, 여러분[兄弟] 각자가 스스로 체득하라. 범속하다느니 거룩하다느니 하는 분별[情]이 다하면 본체가 드러나서 참되고 항상하리니, 그러면 전부터 있던 허망한 반연의 때 묻은 마음을 일시에 벗어 버려서 허공과 같은 모습이 될 것이다. 다른 때인 훗날에는 이것의 좋고 나쁨을 알게 되리라.”

민사閩師가 물었다.
“수산壽山의 나이는 얼마요?”
“허공과 꼭 같소.”
“허공의 나이는 얼마요?”
“수산의 나이와 같소.”

요주饒州 요산嶢山 화상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대사가 말했다.
“한 겨울 날이 몹시 춥구나.”
“어떤 것이 화상의 깊고 깊은 곳입니까?”
“그대의 혀가 땅에 떨어진 뒤에 그대에게 말하리라.”
“어떤 것이 장륙금신丈六金身입니까?”
“판관判官이 결정한 안건을 상공(相公:정승)이 고치느니라.”

장경長慶이 물었다.
“위로부터 내려온 종승宗乘을 여기서는 어떻게 이야기합니까?”
“선대의 성현을 짊어지지 않기를 원하는 것이다.”
“선대의 성현을 짊어지지 않는 것이 무엇입니까?”
“드러내지 못한다.”
“그러면 스님이 말씀해 보십시오.”
대사가 말했다.
“어디를 오고 갔는가?”
“그냥[只][구본에는 ‘수首’자로 되어 있다.] 어느 곳이든 오고 갔을 뿐입니다.”

천주泉州 포전현莆田縣 국환숭복원國歡崇福院 혜일慧日 대사
그는 복주福州 후관현侯官縣 사람으로서 성은 황黃씨이다. 태어나면서부터 특이하더니, 자라서는 이름을 문구文矩라 하고, 고을의 옥졸獄卒이 되었다. 가끔 임무를 버린 채 신광사神光寺의 영관靈觀 화상에게나 서원西院의 대안大安 선사에게 갔는데, 아전들도 그런 그를 금하지 못했다.
나중에 만세탑萬歲塔의 담공譚空 선사에 의해 머리를 깎았으나, 가사도 입지 않고 구족계도 받지 않은 채 오직 얼룩 비단으로 괘자挂子를 만들어서 걸쳤을 뿐이었다. 그리고 다시 영관 화상의 처소에 가니, 영관이 말했다.
“나는 그대의 스승이 아니다. 그대는 서원에 가서 예를 표하라.”
대사가 조그마한 청죽靑竹 지팡이를 짚고서 서원 법당에 드니, 대안이 멀리서 보고 빙그레 웃으면서 말했다.
“열반당涅槃堂으로 들라.”
대사가 대답하고는 죽장竹杖을 돌리면서 들어갔다. 
당시 5백 명쯤 되는 스님들이 괴질에 걸렸는데, 대사가 죽장으로 차례차례 점지하자, 저마다 그 점지에 따라 병이 나았다. 민왕閩王이 소중히 예우하면서 국환선원國歡禪苑을 창설해 살게 했는데, 그 뒤에도 신령스런 자취가 매우 많았다. 
당의 건녕乾寧 때에 입멸하였다.

태주台州 부강浮江 화상
어떤 때에 설봉 화상이 무리를 이끌고 와서 물었다.
“지금 2백 명이 서원에 의탁해서 여름을 지내려는데 가능하겠습니까?”
대사(부강)가 주장자로 땅에 한 획을 긋고 나서 말했다.
“드러낼 수 없는 것이 바로 도이다.”
설봉이 말이 없었다.

노주潞州 녹수淥水 화상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조사께서 서쪽으로 오신 뜻입니까?”
“뜰 앞의 꽃과 약초가 흐드러진 것을 보았는가?”
스님은 말이 없었다.
광주廣州 문수원文殊院 원명圓明 선사
그는 복주福州 사람으로서 성은 진陳씨이다. 본래 대위大潙에게 물어 종지를 얻었고, 나중에 설봉에게 가서 더 물었지만 법에는 맛에 차이가 없었다.
또 일찍이 오대산五臺山에 갔다가 문수보살의 화현化現을 보았는데, 이에 가는 곳마다 절을 짓고는 문수원文殊院이라 하였다.
개보開寶 때에 전추밀사前樞密使 이숭구李崇矩가 남쪽으로 순행을 돌다가 대사의 절에 와서 지장보살상地藏菩薩像을 보고는 어떤 스님에게 물었다. 
“지장보살은 어찌하여 손을 펴고 있는가?” 
스님이 말했다.
“손안의 구슬을 도적맞았기 때문이죠.”
이공李公이 다시 대사에게 물었다.
“지장보살이 어찌 도적을 맞습니까?”
대사가 말했다.
“오늘 잡았소.”
이공은 곧 그에게 절을 하였다. 
순화淳化 원년에 입멸하니, 수명은 136세였다.

앞의 조주趙州 종심從諗 선사의 법손

홍주洪州 무녕현武寧縣 신흥新興 엄양嚴陽 존자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부처입니까?”
대사가 말했다.
“흙덩어리다.”
“어떤 것이 법입니까?”
“땅의 움직임이다.”
“어떤 것이 스님입니까?”
“죽을 먹고 밥을 먹는 것이다.”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새롭게 흥기한 물입니까?”
“앞에 있는 강물 속이다.”
“어떤 것이 사물에 감응하여 형태를 나타내는 것입니까?”
“나에게 상床을 들어서 보내라.”
대사에게는 항상 뱀 한 마리와 호랑이 한 마리가 좌우를 따랐는데, 손으로 직접 음식을 주었다.

양주楊州 성동城東 광효원光孝院 혜각慧覺 선사
스님이 물었다.
“깨달음이 꽃이 피어서 사바세계에 두루하고 조사의 심인心印이 서쪽에서 왔는데, 무엇을 이야기해야 좋을까요?”
“정情이 생기면 지혜가 막힌다.”
“그것은 교리가 아닙니까?”
“그대는 무슨 옷을 입고 있는가?”
스님이 물었다.
“한 방망이에 허공을 쳐부술 때는 어떠합니까?”
“피곤하면 쉬어라.”

대사가 송제구宋齊丘에게 물었다.
“도를 알겠는가?”
“도라는 것은 드러낼 수 없습니다.”
“있어서 드러낼 수 없는가, 없어서 드러낼 수 없는가?”
“모두 그렇지 않습니다.”
“드러낼 수 없는 것이구나.”
송씨가 대답이 없었다.

어느 날 대사가 대중을 이끌고 밖에 나갔다가 돌기둥을 보자, 합장하고서 인사를 하였다.
“안녕하셨습니까? 세존이시여.”
어떤 스님이 말했다.
“화상이시여, 이것은 돌기둥입니다.”
“목이 터지도록 울어도 쓸데없으니, 입을 다물고 얼마 남지 않은 봄[春]을 보내는 것이 더 좋겠구나.”

어떤 스님이 물었다.
“멀리 멀리서 대사를 뵈러 왔습니다. 대사의 생각은 어떠하십니까?”
“관청 일이 엄격해서 늘어놓는 일[安排]을 허락하지 않는다.”
“대사께서 어찌 방편이 없으시겠습니까?” 
“불 창고 속에서 하루를 묵어라.”

장張 거사居士가 물었다.
“늙음을 어찌할 수 없군요.”
대사가 말했다.
“나이가 몇인가?”
“80살입니다.”
“늙었다 할 만하군.”
“궁극적으로는 어떠합니까?”
“설사 천 살을 먹는다 해도 머무는 것은 아니다.”

어떤 사람이 물었다.
“저는 평생 소 잡는 것을 좋아했는데, 죄가 있습니까?”
“죄가 없다.”
“어째서 죄가 없습니까?”
“하나를 죽이고, 하나를 되돌렸기 때문이다.”

농주隴州 국청원國淸院 봉奉 선사
어떤 스님이 물었다.
“교리의 뜻과 조사의 뜻이 같습니까, 다릅니까?”
“단비를 뿌리니 크고 작은 풀이 자라고, 봄에 부는 바람에는 머리를 싸매지 않는다.”
“그렇다면 결국 하나입니까, 둘입니까?”
“상서로운 구름이 앞을 다투어 일어나도 바위굴은 일그러지지 않는다.”
“어떤 것이 화상의 가풍입니까?”
“소반․평상․의자․화로․창문이니라.”
“어떤 것이 출가한 사람입니까?”
“구리 머리와 무쇠 이마와 까마귀 부리에 사슴의 몸이니라.”
“어떤 것이 출가한 사람의 본분사本分事입니까?”
“아침에 일어나서는 ‘안녕하십니까?’ 하고, 저녁에는 ‘안녕히 주무십시오’ 하는 것이니라.”

어떤 스님이 물었다.
“우두牛頭가 4조祖를 보기 전에는 어찌하여 새와 짐승들이 꽃을 물어 왔습니까?”
“협부陜府의 사람들이 철우鐵牛 협부(陜府:지명)를 지킨다는 신의 이름이다.
에게 돈과 재물을 보내는 것과 같다.” 이 말은 능소能所의 관념이 있기 때문이라는 뜻이다.

“4조를 본 뒤에는 어찌하여 꽃을 물어오지 않았습니까?”
“목마木馬가 새벽부터 8백 리를 간다.” 진짜 말이 8백 리를 가는데, 목마가 간다는 것은 실제가 없다는 뜻이다.

“하루 12시 가운데 어떻게 그 마음을 항복시키겠습니까?”
“얼음을 두드려서 불을 구하니, 오랜 겁을 지내도 만나지 못하리라.”
“12분교分敎는 아기의 울음을 달래는 뜻이라 하니, 울음 달래는 일을 여의고서 한 구절 말씀해 주십시오.”
“우뚝한 봉우리 정상에 귀밑머리를 딴 여자니라.”
“어떤 것이 불법佛法의 대의입니까?”
“석가는 우두옥졸牛頭獄卒이요, 조사는 마면아바馬面阿婆 귀신의 이름이다.
니라.”
“어떤 것이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동쪽 벽이 서쪽 벽을 치는 것이니라.”
“어떤 것이 깨뜨려도 깨지지 않는 구절입니까?”
“털끝만치도 막히지 않았거늘 요새 사람들은 아득하게 듣는다.”

무주婺州 목진木陳 종랑從朗 선사
어떤 스님이 물었다.
“학을 놓아 주어 조롱[籠]을 나가서 눈[雪]과 화합할 때는 어떠합니까?”
“나는 한 빛깔이 아니라고 말하겠다.”

금강金剛이 쓰러지니, 어떤 스님이 물었다.
“본래 금강은 무너지지 않는 몸[不壞身]인데, 어찌하여 땅에 쓰러집니까?”
대사가 선상禪床을 치면서 말했다.
“행行․주住․좌坐․와臥이니라.”
대사가 임종할 때에 게송을 남겼다.

30년 동안 목진산木陳山에서 살았지만
그 동안 공 이룬 것 하나도 없네.
누군가 내게 서쪽에서 온 뜻 묻는다 하여
어찌 눈썹인들 깜짝하리오.
三十年來住木陳    時中無一假功成
有人問我西來意    展似眉毛作麽生

무주婺州 신건新建 선사
그는 사미[小師]를 기르지 않았는데, 어떤 스님이 와서 물었다.
“화상께서는 연세도 많으신데, 왜 아이 하나를 길러서 시봉侍奉을 시키지 않으십니까?” 
“눈멀고 귀먹은 놈이 있거든 구해다오.”

어떤 스님이 하직을 고하니, 대사(신건)가 물었다.
“어디로 가느냐?”
“서울의 개원사開元寺로 가겠습니다.”
“내가 그 절 주지에게 보낼 편지가 하나 있는데, 네가 갖다 주겠느냐?”
“주십시오.”
“그러나 너도 어쩌지 못할 것이라 생각되는구나.”

항주杭州 다복多福 화상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다복多福의 한 떨기 대나무입니까?”
“한 줄기나 두 줄기가 비끼어 섰느니라.”
“학인이 잘 모르겠습니다.”
“세 줄기나 네 줄기는 굽었느니라.”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가사[衲衣] 밑의 일입니까?”
“많은 사람들이 의심을 하더군.”
“어째서 그렇습니까?”
“달 속에 머리를 갈무리했느니라.”

익주益州 서목西睦 화상
상당하였는데 어떤 속가의 선비가 손을 들고 말했다.
“화상이 바로 한 마리의 당나귀입니다.”
“노승이 그대를 태우게 되었구나.”
그가 말이 없었다. 그 뒤로 3일 뒤에 다시 와서 말했다.
“제가 3일 전에 도적을 맞았습니다.”
대사가 주장자를 들고서 쫓아내 버렸다.
대사는 때로 갑자기 시자를 불러서 시자가 대답을 하면 대사는 이렇게 말했다.
“다시 밤이 깊어서 조용해지거든 너와 함께 상량商量하겠다.”

앞의 구주衢州 자호암子湖巖 이종利蹤 선사의 법손

태주台州 승광勝光 화상
어떤 이가 물었다.
“어떤 것이 화상의 가풍입니까?”
대사가 말했다.
“복주福州의 여지荔枝와 천주泉州의 자동刺桐이니라.”
“어떤 것이 불법佛法이란 두 글자입니까?” 
“그거야 당장 말할 수 있다.”
“말씀해 주십시오.”
“귀가 뚫린 서역 스님이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인다.”

용화사龍華寺 조照 화상이 오니, 대사(승광)가 붙잡고 말했다.
“무엇인가?”
조 화상이 말했다.
“잘못을 범하지 마시오.”
대사가 손을 놓으니, 조 화상이 말했다.
“승광의 소문을 들은 지 오랩니다.”
대사가 잠자코 있자, 조 화상이 하직하고 나섰다. 대사가 문까지 전송을 나와서 말했다.
“이번에 헤어지면 어디서 다시 만날꼬?”
조 화상이 깔깔 웃으면서 떠났다.

장주漳州 부석浮石 화상
상당하여 말했다.
“산승山僧이 점치는 일을 시작했는데, 사람들의 빈천貧賤과 부귀富貴를 판단하고 남녀의 생사를 예언한다.”
이때에 어떤 스님이 나와서 말했다.
“생사와 빈부를 여읠 뿐만 아니라 5행行에도 떨어지지 않은 채 대사께서 곧바로 말씀해 주십시오.”
“금金․목木․수水․화火․토土이니라.”

자동紫桐 화상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자동紫桐의 경계입니까?”
“그대의 눈에다 모래를 넣어도 되겠는가?”
“대단하신 자동께서 경계도 모르시는군.”
“노승이 그 일을 꺼리는 것은 아니다.”
그 스님이 나가려 하자, 대사가 선상에서 내려와 붙들고 말했다.
“오늘 이 좋은 공안公案을 노승은 아직 조금[分文:푼돈]도 손에 넣지 못했다.”
“제가 승려이기에 다행이군요.”
“화禍는 홀로 오지는 않는다.”

일용日容 화상
활奯[음은 활豁이다.] 상좌가 와서 뵙자, 대사가 세 번 손뼉을 치면서 말했다.  
“맹호가 난간 끝에 왔는데, 누가 대적하겠는가?”
활 상좌가 말했다.
“날쌘 새매가 충천冲天에 떴는데 누가 잡겠소?”
“이것저것 모두 감당키 어렵군.”
“그 공안公案을 판단치 못했으니, 그만둡시다.”
대사가 주장자를 끌고 춤을 추면서 방장으로 돌아가니, 활 상좌가 말이 없었다. 대사가 말했다.
“저 사람이 죽었는가 보다.”[운산雲山이 말하기를 “활 상좌는 앞의 말과 다르지 않다”라고 하였다.]

앞의 악주鄂州 수유茱萸 화상의 법손

석제石梯 화상
어떤 스님이 새로 와서 대사(석제) 앞에 섰다가 잠시 후에 물러갔다. 대사가 말했다.
“무슨 가려내서 밝힐 곳이 있더냐?”
그 스님이 다시 서서 한참 동안을 잠잠히 있으니, 대사가 말했다.
“가려냈다. 가려냈어.”
“가려낸 뒤에는 어떻습니까?”
“묻어 버려야 된다.”
“아이고, 아이고.”
“아까는 그럴싸하더니, 이제는 도리어 맞지 않구나.”
그 스님이 그대로 나갔다.

앞의 천룡天龍 화상의 법손

무주婺州 금화산金華山 구지俱胝 화상
처음에는 암자에 살았는데, 실제實際라 부르는 비구니가 삿갓을 쓰고 주장자를 들고 와서 대사를 세 번 돌고 난 뒤에 말했다.
“바로 말하면 삿갓을 벗으리라.”
이렇게 세 번 물었으나 대사가 모두 대답치 않으니, 비구니가 그대로 떠났다. 이때에 대사가 말했다.
“해가 이미 저물었으니, 하룻밤 묵어가라.”
“바로 말하면 자고 가겠소.”
대사가 또 대답이 없으니, 비구니가 떠났다. 대사가 탄식하였다.
“나는 비록 대장부의 형체를 갖추었으나 대장부의 기개가 없다.”
그리고는 암자를 버리고 여러 지역으로 참문參問을 떠나려 하니, 그날 밤에 산신이 나타나서 말했다.
“이 산을 떠나지 마시오. 오래지 않아 큰 보살이 와서 화상께 설법을 해주실 것이오.”
과연 열흘 뒤 천룡天龍 화상이 암자에 오니, 대사가 나가 맞이하고서 앞의 일을 자세히 이야기하였다. 그러자 천룡이 한 손가락을 세워서 보였는데, 이에 대사가 곧바로 크게 깨달았다. 이로부터 배우는 스님이 오면 대사는 오직 손가락 하나만을 세울 뿐 따로 법을 제창하는 일은 없었다.
동자 하나를 데리고 있었는데, 밖에 나갔다가 남들이 “화상께서는 어떻게 법의 요체를 말씀하시던가?”라는 힐문을 받고 동자가 손가락을 세우고는, 돌아와서 있었던 일을 대사에게 말하니, 대사가 칼로 그의 손가락을 끊었다. 동자가 펄펄 뛰면서 달아나는 것을 대사가 한마디 부르자, 동자가 머리를 돌렸다.
대사가 손가락을 세우니, 동자가 활연히 깨달았다.
대사가 세상을 떠나려 할 때에 대중에게 말했다.
“내가 천룡의 한 손가락 선禪을 얻고서 일생 동안 썼어도 다하지 않았다.”
말을 마치고 열반에 들었다.[장경長慶이 대중을 대신하여 말하기를 “맛난 음식도 배부른 사람에게는 맞지 않는다”라고 하였다. 현사玄沙가 말하기를 “내가 그때에 보았더라면 손가락을 꺾어 버렸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현각玄覺이 말하기를 “말해 보라. 현사가 그렇게 말한 뜻이 무엇이겠는가?”라고 하였다. 운거雲居 석錫이 말하기를 “현사가 그렇게 말한 것이 그를 수긍한 것인가, 수긍하지 않은 것인가? 만일 수긍한다면 어찌하여 손가락을 꺾어 버린다 했을까? 수긍하지 않는다면 구지俱胝의 허물이 어디에 있을까?”라고 하였다. 선조산先曹山이 말하기를 “구지가 알아차린 곳이 거칠어서 단지 한 근기, 한 경계, 한 종류만을 알았으니 손뼉을 치고 손바닥을 비비는 것은 서원西園이 어리둥절케 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라고 하였다. 현각은 또 말하기를 “또 말해 보라. 구지가 깨달은 것인가? 만일 깨달았다면 승당처承當處를 말하라. 만일 깨닫지 못했다면 한 손가락으로 선禪을 다하지 못했다고 말하라. 또 말하라. 조산曹山의 의지意旨는 어디에 있는가?”라고 하였다.]

앞의 장사長沙 경잠景岑 선사의 법손

명주明州 설두산雪竇山 상통常通 선사
그는 형주邢州 사람으로서 성은 이李씨이다. 작산鵲山에 들어가서 출가하였고, 20세에 고향의 개원사開元寺에서 계를 받고 계율을 익히기를 7년 만에 이렇게 말했다.
“마등摩騰이 한漢에 와서는 이 글을 번역해 냈는데, 달마達磨는 양梁에 와서 다시 무슨 일을 밝혔는가?”
그리고는 멀리 장사長沙 경잠景岑 화상을 찾아가 뵈니, 경잠이 물었다.
“어디 사람인가?”
“형주邢州 사람입니다.”
“나의 도道는 거기서 오지 않았다.”
“화상께서는 일찍이 여기에 계시지 않았습니까?”
경잠이 옳다고 여겨서 입실을 허락하였다. 나중에 동산洞山과 석상石霜에게 갔으나 법의 맛에 차이가 없었다. 
당나라 함통咸通 말년에 선성宣城에 갔는데, 군수가 사선산謝仙山에다 선원禪苑을 두자고 주청하고는, 서성원瑞聖院이라는 이름을 짓고서 대사(상통)에게 살기를 청하였다. 
어떤 스님이 와서 물었다.
“어떤 것이 밀실密室입니까?”
“바람도 통하지 않는다.”
“어떤 것이 밀실 안의 사람입니까?”
“모든 성인들이 보려 하여도 볼 수 없느니라.”
또 말했다.
“1천 부처도 능히 사량思量하지 못하고 1만 성인도 능히 의론하지 못하며, 하늘과 땅이 무너뜨려도 무너뜨리지 못하고 허공이 감싸더라도 감싸지 못하며, 일체가 이에 견줄 수가 없고 3세에서 불러도 일어나지 않는다.”
“어떤 것이 3세의 모든 부처님들이 몸을 낸 곳[出身處]입니까?”
“그는 그대에게 3세가 있다는 것을 알려고 하지 않는다.”
한참을 묵묵히 있다가 또 말했다.
“알겠는가? 그렇지 않다면 우선 부처를 드러내려 해도 드러낼 수 없는 곳에서 체득하라. 하루 종일 항상 존재하리라. 식識이 다하고 공功이 없어져서 갑자기 일어난다 하여도 그를 해치는 것인데, 하물며 언구言句이겠는가?”
광계光啓 때에 뭇 도적이 일어나니, 대사는 대중을 거느리고 사명四明으로 옮겼다. 대순大順 2년에 군수가 설두雪竇에 살기를 청하면서 교화가 번성했다.
천우天祐 2년 을축乙丑 7월에 병이 나니, 대중을 모아 향을 피우고 부촉을 한 뒤에 합장한 채로 입적하니 수명은 72세였다. 그 해 8월 7일에 선원의 서남쪽 모퉁이에다 탑을 세웠다.

앞의 관남關南 도상道常 선사의 법손

양주襄州 관남關南 도오道吾 화상
처음에 시골길을 지나다가 무당들의 노래에서 식신識神이 없다는 소리를 듣고 대사(도오)가 홀연히 깨달았다. 나중에 도상道常 선사를 뵙고 그 견해를 인가 받고는, 다시 덕산德山의 문하에 가서 법미法味가 더욱 두드러졌다. 
무릇 상당하여 무리에게 설법할 때에는 연꽃 삿갓을 이고, 금란金襴 가사를 입고, 간자簡子를 들고, 북을 치고, 호적을 불면서 입으로 노삼랑魯三郞을 외쳤다. 그리고 어떤 때에는 관남의 북을 두드리고, 덕산의 노래를 부른다고 하였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조사께서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대사가 간자를 들고 읍을 하면서 “예” 하였다.

어느 때 대사가 목검木劍을 어깨에 메고 춤을 추니, 스님이 물었다.
“손에 있는 검은 어디서 얻었습니까?”
대사가 땅에다 던지니, 스님이 다시 주워서 대사의 손아귀에다 쥐어 주었다. 이에 대사가 말했다.
“어디서 얻었는가?”
스님이 대답이 없으니, 대사가 말했다.
“그대가 3일 이내에 한마디를 하는 것을 용납하노라.”
그 스님이 여전히 말이 없으니, 대사가 스스로 대신하여 검을 어깨에 메고 춤을 추면서 말했다.
“이렇게 했어야 한다.”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화상의 가풍입니까?”
대사가 선상에서 내려와 여인의 절을 하면서 말했다.
“그대가 멀리서 오셨는데도 전혀 접대하지를 못했습니다.”
대사가 관계灌溪에게 물었다.
“어떻소?”
“지위가 없소.”
“허공과 같은 것이 아닌가?”
“이 백정아.”
“죽일 만한 생물이 있으면 심심치는 않겠다.”

장주漳州 나한羅漢 화상
처음에 관남關南의 도상道常 선사에게 주먹을 맞고 깨달았는데,[상세한 어록은 도상 선사의 장章에 보인다.] 이로 인해 다음과 같은 게송을 지었다.

함통 7년에 처음으로 도를 물어
가는 곳마다 들은 소리는 모르는 말뿐이었네.
마음속의 의심덩이는 마치 나무토막 같아서
봄철에도 즐거움 없어 숲가에 섰네.
咸通七載初參道    到處逢言不識言
心裏癡團若栲栳    三春不樂止林泉

홀연히 법왕의 주단 위에 앉아서
문득 의심을 펼쳐서 스승 앞에 간구하자
스승은 주단 위의 나가那伽 선정에서 깨어나
팔뚝을 걷고서 내 가슴을 한 대 갈겼네.
忽遇法王氈上坐    便陳疑懇向師前
師從氈上那伽起    袒膊當胸打一拳

의심덩이가 마치 다람쥐처럼 흩어져 버리매
고개 들고 바라보니 해[日]가 뜨고 있네.
이로부터 성큼성큼 우뚝하여서
지금에 이르기까지 언제나 쾌활하나니
뱃속이 팽팽하게 부르기만 할 뿐이요,
다시는 발우 들고 동으로 서로 가지 않네.
駭散癡團獦狚落    擧頭看見日初圓
從茲蹬蹬以碣碣    直至如今常快活
只聞肚裏飽膨脝    更不東西去持鉢

또 게송을 지었다.

우주 안의 한가한 나그네가
인간 가운데 야승野僧이 되었으니
나를 비웃으려거든 그대 맘대로 하라.
가는 곳마다 스스로 등등騰騰하다네.
宇內爲閑客    人中作野僧
任從他笑我    隨處自騰騰

앞의 고안高安 대우大愚 선사의 법손

균주筠州 말산니末山尼 요연了然
관계灌溪 지한智閑 화상이 길을 가다가 이 산에 들러서 먼저 말했다.
“만일 맞게 대답하면 여기에 살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선상禪床을 뒤집어엎으리라.”
그리고는 법당으로 들어가니, 요연了然 비구니가 시자를 보내서 물었다.
“상좌는 산 구경을 온 것인가, 불법을 위해 왔는가?”
지한이 말했다.
“불법을 위해서 왔소.”
요연이 그제야 법상에 오르니, 지한이 뵈러 나갔다. 요연이 물었다.
“상좌는 오늘 어디서 떠났는가?”
“길 어귀[路口]에서 떠났소.”
“어째서 덮어두지 않는가?”
지한은 말문이 막혔다.[화산禾山이 대신 말하기를 “어떻게 거기에 가겠소?” 하였다.]
그제야 절을 하고 물었다.
“어떤 것이 말산末山이오?”
“정수리를 드러내지 않는 것이다.”
“어떤 것이 말산의 주인이오?”
“남녀의 모습이 아니다.”
지한이 대뜸 할喝을 하고서 말했다.
“왜 변하지 않는가?”
“신神도 아니고 도깨비도 아닌데, 무엇을 변화라 하겠는가?”
지한이 그때서야 굴복하고서 3년 동안 원두園頭를 맡았다.

어떤 스님이 와서 찾아뵈니, 요연이 말했다.
“몹시도 남루하구나.”
스님이 말했다.
“아무리 그렇지만 사자의 새끼입니다.”
“사자의 새끼라면 어째서 문수文殊를 등에 지고 있는가?”
스님은 대답이 없었다.

다른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옛 부처의 마음입니까?”
“세계가 기울고 무너지느니라.”
“세계가 어째서 기울고 무너집니까?”
“어찌 내 몸이 없겠는가?”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