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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덕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 전등록 번역, 불경, 불교경전, 선문답, 화두 (5)

일이삼선생 2023. 6. 29.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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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덕전등록 제16권






길주吉州 청원산靑原山 행사行思 선사의 제5세 중 72인

낭주朗州 덕산德山 선감宣鑒 선사의 법손 9인
악주鄂州 암두巖頭 전활全豁 선사
복주福州 설봉雪峰 의존義存 선사
천태天台 서룡원瑞龍院 혜공慧恭 선사
천주泉州 와관瓦棺 화상
양주襄州 고정高亭 간簡 선사
홍주洪州 감담感潭 자국資國 화상 
  [이상 6인은 기록에 보임]
덕산德山 아호鵝湖 소석紹奭 대사
봉상부鳳翔府 무구無垢 화상
익주益州 쌍류雙流 위지尉遲 화상 
  [이상 3인은 기연할 어구가 없으므로 기록하지 않음]

담주潭州 석상石霜 경제慶諸 선사의 법손 41인
하중河中 남제산南際山 승일僧一 선사
담주潭州 대광산大光山 거회居誨 선사
여산廬山 회우懷祐 선사
균주筠州 구봉九峰 도건道虔 선사
태주台州 용천涌泉 경흔景欣 선사
담주潭州 운개산雲蓋山 지원志元 선사
담주潭州 곡산谷山 장藏 선사
복주福州 복선산覆船山 홍천洪荐 선사
낭주朗州 덕산德山 존덕存德 혜공慧空 선사
길주吉州 숭은崇恩 화상
석상石霜 제3세 휘輝 선사
영주郢州 파초芭蕉 화상
담주潭州 비전肥田 복伏 화상
담주潭州 녹원鹿苑 휘暉 선사
담주潭州 보개寶蓋 약約 선사
월주越州 운문雲門 해안海晏 선사
호남湖南 문수文殊 화상
봉상부鳳翔府 석주石柱 화상
담주潭州 중운中雲 개蓋 화상
하중河中 서암捿巖 존수存壽 선사
남악南嶽 현태玄泰 상좌
  [이상 21인은 기록에 보임]
항주杭州 용천龍泉 경敬 선사
노부潞府 반정盤亭 종민宗敏 선사
신라新羅 흠충欽忠 선사
신라新羅 행적行寂 선사
홍주洪州 녹원鹿源 화상
영주郢州 대양산大陽山 화상
활주滑州 관음觀音 화상
운주鄆州 정각正覺 화상
상주商州 고명高明 화상
허주許州 경수慶壽 화상
진주鎭州 만세萬歲 화상
제2세 진주鎭州 영수靈壽 화상
진주鎭州 홍제洪濟 선사
길주吉州 간지簡之 선사
대량大梁 홍방洪方 선사
앙주卬州 수한守閑 선사 
신라新羅 낭朗 선사
신라新羅 청허淸虛 선사
분주汾州 상爽 선사
여항餘杭 통通 선사 
  [이상 20인은 기연할 어구가 없으므로 기록하지 않음]

예주澧州 협산夾山 선회善會 선사의 법손 22인
예주澧州 악보산樂普山 원안元安 선사
홍주洪州 상람上藍 영초令超 선사
운주鄆州 사선四禪 화상
강서江西 소요산逍遙山 회충懷忠 선사
원주袁州 반룡산盤龍山 가문可文 선사
무주撫州 황산黃山 월륜月輪 선사
낙경洛京 소산韶山 환보寰普 선사
태원太原 해호海湖 화상
가주嘉州 백수사白水寺 화상
봉상부鳳翔府 천개산天蓋山 유幽 선사
홍주洪州 동안同安 화상 
  [이상 11인은 기록에 보임]
소주韶州 담보曇普 선사
길주吉州 선거산僊居山 화상
태원太原 자복資福 단端 선사
홍주洪州 노선산盧僊山 연경廷慶 화상
월주越州 월봉越峰 화상
낭주朗州 기사산祇闍山 화상
익주益州 서목棲穆 화상
숭산嵩山 전全 선사
익주益州 협산원夾山院 화상
서경西京 운암雲巖 화상
안복安福 연휴延休 화상 
  [이상 11인은 기연할 어구가 없으므로 기록하지 않음]


행사行思 선사의 제5세 ②

앞의 낭주朗州 덕산德山 선감宣鑒 선사의 법손

악주鄂州 암두巖頭 전활全豁 선사
그는 천주泉州 사람으로서 성은 가柯씨이다. 어릴 때에 청원淸原 의공誼公에게 귀의하여 머리를 깎고, 장안長安의 보수사寶壽寺에 가서 계를 받고, 경과 율의 여러 부部를 익히다가, 선원을 두루 돌면서 설봉雪峰 의존義存과 흠산欽山 문수文邃 등과 도반을 맺었다.
여항餘杭의 대자산大慈山을 떠나서 그럭저럭 임제臨濟에 이르렀는데, 때마침 임제가 입적하였으므로 앙산仰山을 뵈었다. 문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방석을 들면서 말했다.
“화상이시여.”
앙산이 불자를 들려고 하니, 대사가 말했다.
“훌륭한 솜씨이군요.”
나중에 덕산德山 화상을 뵈올 때에 방석을 들고 법당에 올라가서 쳐다보자, 덕산이 말했다.
“무엇인가?”
대사가 꾸짖으니, 덕산이 말했다.
“노승老僧의 허물이 어디에 있는가?”
“두 겹의 공안公案이군요.”
그리고는 참문하는 방으로 내려가니, 덕산이 말했다.
“이 스님은 약간 행각을 한 사람 같구나.”
이튿날 올라가서 문안을 드리니, 덕산이 말했다.
“그대가 어제 새로 온 사람인가?”
“그렇습니다.”
“어디서 그 따위 헛된 짓을 배웠는가?”
“전활全豁은 끝내 스스로를 속이지 않습니다.”
“이 뒤에는 나를 저버리지 말라.”
다음날 대사가 참문參問을 갔다가 방장 문에 들어서서 몸을 비끼며 물었다.
“범부입니까, 성인입니까?”
덕산이 할을 하니, 대사가 절을 하였다. 이에 어떤 사람이 동산洞山에게 이야기하니, 동산이 말했다.
“만일 전활 상좌가 아니었다면 알아듣기가 퍽 어려웠을 것이다.”
대사가 이 말을 듣고 말했다.
“동산 노인이 좋고 나쁜 것도 모르고 말을 잘못하였다. 나는 당시에 한 손은 들고 한 손은 내렸었다.”

설봉이 덕산의 회상에서 반두飯頭를 하는데, 어느 날 밥이 늦었다. 덕산이 발우를 들고 법당으로 올라가는데, 설봉이 밥 수건을 말리다가 덕산을 보고 말했다.
“종도 치지 않고 북도 울리지 않았는데, 노화상께서는 어디로 가십니까?”
덕산이 그대로 방장으로 돌아갔다. 대사가 법당에서 이 말을 듣고 손바닥을 어루만지면서 말했다.
“가엾은 덕산이 마지막 구절을 알지 못했구나.”
덕산이 이 말을 듣고 시자를 시켜 대사를 방장으로 불러 놓고 물었다.
“그대는 나를 긍정하지 않는가?”
대사가 은밀히 자신의 뜻을 열어 보이니, 이튿날 덕산이 상당해서 이야기했을 때는 평소와는 달랐다. 대사가 큰방 앞에 가서 손뼉을 치고 껄껄 웃으면서 말했다.
“저 늙은이가 마지막 구절을 안 것이 기쁘다. 훗날 천하 사람들도 그를 어쩌지 못하리라. 그러나 겨우 3년뿐이다.”[과연 덕산德山이 3년 만에 죽어 버렸다.]

어느 날 대사가 설봉雪峰 의존義存, 흠산欽山 문수文邃와 셋이서 이야기를 하다가 설봉이 갑자기 사발에 든 물을 가리키니, 문수가 말했다.
“물이 맑아서 달이 나타난다.”
설봉이 말했다.
“물이 맑아서 달이 나타나지 않는다.”
대사가 물 사발을 차 버리고 떠나 버렸다. 이로부터 흠산은 동산의 제자가 되고, 설봉과 전활 두 대사는 함께 덕산의 법을 이었다.
대사가 설봉과 함께 덕산을 하직하니, 덕산이 물었다.
“어디로 가려는가?”
대사가 대답했다.
“잠시 화상의 곁을 떠나서 하산하겠습니다.”
“앞으로는 어찌하겠는가?”
“잊지 않겠습니다.”
“무엇에 의지하여 그런 말을 하는가?”
“어찌하여 ‘지혜가 스승을 능가해야 비로소 스승의 가르침을 온전히 전해줄 수 있으며, 지혜가 스승과 같으면 훗날 스승의 덕을 반으로 줄일까 걱정이다’는 말을 듣지 못했습니까?”
“그렇다, 그렇다. 잘 보호해 지녀라.”
두 대사가 절을 하고 물러났다. 의존은 민천閩川으로 돌아가 상골산象骨山의 설봉雪峰에서 살았고, 대사는 동정洞庭의 와룡산臥龍山에 암자를 짓고 사니, 무리들이 모여들었다. 

어떤 스님이 물었다.
“스승이 없어도 출신처出身處가 있습니까?”
“음성 이전의 옛 솜털[毳]이 현란하다.”
“당당하게 올 때는 어떠합니까?”
“눈을 찔러서 깨트리겠다.”
“어떤 것이 조사의 뜻입니까?”
“여산廬山을 옮기고 오면 그대에게 말해 주리라.”

어느 날 대사가 상당하여 무리들에게 말했다.
“내가 일찍이 󰡔열반경󰡕을 7, 8년 동안 연구했는데, 두세 단락의 문장은 납승衲僧의 말과 비슷하더라.”
그리고는 또 말했다.
“그만두라, 그만두라.”
이때에 어떤 스님이 나와서 절을 하고 말해 달라고 청했다. 이에 대사가 대답했다.
“불법의 뜻은 이(伊:∴)자의 세 점과 같다. 첫째는 동쪽에다 한 점을 찍어서 모든 보살들의 눈을 점하여 열고, 둘째는 서쪽에다 한 점을 찍어서 모든 보살의 목숨[命根]을 점하고, 셋째는 위쪽에다 한 점을 찍어서 모든 보살의 정수리를 점하니, 이것이 첫째 단락의 뜻이다. 또 불법의 뜻은 마혜수라摩醯首羅가 얼굴을 번쩍 들어서 한 개의 눈이 세워진 것과 같으니, 이것이 둘째 단락의 뜻이다. 또 불법의 뜻은 도독고(塗毒鼓:독을 바른 북)와 같으니, 한 번 소리를 울리면 멀고 가까운 곳의 사람이 다 상실하거나 또는 함께 죽는다. 이것이 셋째 단락의 뜻이다.”
이때에 소엄小嚴 상좌가 물었다.
“어떤 것이 도독고입니까?”
대사가 두 손으로 무릎을 껴안고 몸을 꾸부리며 말했다.
“한신韓信이 조회朝會에 임한 것이니라.”
소엄은 말이 없었다.

협산夾山의 회상에 있던 스님이 석상石霜에게 와서 문에 들어서면서 인사를 했다. 이에 석상이 말했다.
“안녕하신가? 그대여.”
그 스님이 말했다.
“그럼 안녕히 계십시오.”
다시 암두巖頭에게 가서 앞에서처럼 인사를 하니, 대사가 말했다.
“허허[噓].”
스님이 말했다.
“그럼 안녕히 계십시오.”
그리고는 발길을 돌렸다. 이에 대사가 말했다.
“비록 후생後生이기는 하나 관장[管帶]할 줄 아는구나.”
그 스님이 돌아가서 협산에게 이야기하니, 협산이 말했다.
“대중은 알겠는가?”
대중이 대답이 없으니, 협산이 말했다.
“아무도 말을 하지 않는다면, 내가 두 눈썹이 빠질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말하리라.”
그리고는 이어서 말했다.
“석상은 살인도殺人刀는 있으나 활인검活人劍은 없다.”

대사가 나산羅山과 함께 탑 자리를 잡으러 갔는데, 나산이 길 중간에서 갑자기 말했다. 
“화상!”
대사가 고개를 돌리면서 말했다.
“왜 그러시오?” 
나산이 손을 들면서 말했다.
“저기에 좋은 땅이 한 조각 있소.”
대사가 꾸짖으면서 말했다.
“과주瓜州 참외를 많이 생산하는 고을이다.
에서 참외를 파는 놈이로구나.”
또 몇 리를 가다가 서성거리는데, 나산이 절을 하고서 물었다.
“화상께서 30년 동안 동산에 계시지 않았습니까? 그런데도 동산을 수긍치 않으셨습니다.”
“그렇다.”
“또 화상은 덕산의 법을 잇지 않았습니까? 그런데도 덕산을 수긍치 않으셨습니다.”
“그렇다.”
“덕산을 수긍치 않은 것은 묻지 않겠지만, 동산에게는 어떤 모자람이 있습니까?”
대사가 한참 있다가 말했다.
“동산은 좋은 부처이지만 광채가 없을 뿐이다.”

어떤 이가 물었다.
“날카로운 칼로 천하를 베는데 누가 머리를 내밀겠습니까?”
대사가 말했다.
“어둡구나.” 
그가 다시 물으려고 하자, 대사가 꾸짖었다.
“이 둔한 놈아, 나가라.”
“고금古今을 거치지 않을 때에는 어떠합니까?”
“눈을 부라려라.”
“고금의 일이 어떠합니까?”
“마음대로 무르익느니라.”

대사가 어떤 스님에게 말했다.
“어디서 오는가?”
“서경西京에서 옵니다.”
“황소黃巢가 지나간 뒤에 칼을 거두어서 얻었는가?”
“거두어서 얻었습니다.”
대사가 목을 늘여서 칼날을 받는 시늉을 하자, 스님이 말했다.
“스님의 머리가 떨어졌습니다.”
대사가 크게 웃었다.[그 스님이 나중에 설봉雪峰에게 가서 앞의 이야기를 하다가 주장자를 맞고 산 밑으로 쫓겨 내려왔다.]
“두 용이 여의주를 다투는데 누가 얻습니까?”
“둘 다 틀렸다.”

어떤 스님이 설봉에게 물었다.
“성문들의 견성見性은 밤에 달을 보는 것과 같고, 보살의 견성은 낮에 해를 보는 것과 같다고 하였는데, 화상의 견성은 어떠하십니까?”
설봉이 주장자로 세 차례 때렸다. 그 스님이 나중에 앞의 이야기를 다시 대사에게 물으니, 대사는 주먹으로 세 차례 갈겼다.
“무엇이 삼계의 주인입니까?”
“그대는 무쇠 방망이를 맞아야 하는 것을 알고 있는가?”

서암瑞巖이 물었다.
“어떤 것이 비로자나의 스승입니까?”
“무엇이라 했는가?”
서암이 다시 물으니, 대사가 말했다.
“그대의 나이가 17, 8세가 아닌가?”
“티끌 속에서 어떻게 주인을 가려냅니까?”
“구리 쟁반에 기름을 담았다.”
“활이 부러지고 화살이 다했을 때에는 어떠합니까?”
“가거라.”
“어떤 것이 암두의 적적的的한 뜻입니까?”
“지시해 주어서 고맙다.”
“화상께서 답변해 주십시오.”
“진중珍重하게.”
“어떤 것이 도입니까?”
“헤어진 짚신을 호수 속에 던진다.”
“만 길 우물 속에서 어떻게 해야 바닥까지 도달할 수가 있습니까?”
“훔[吽].”
스님이 다시 물으니, 대사가 말했다.
“발밑으로 지나갔다.”
“옛날의 돛을 달지 않았을 때에는 어떠합니까?”
“후원後園에서 당나귀가 풀을 뜯고 있다.”
그 뒤에도 사람들이 부처를 묻고 법을 묻고 도를 묻고 참선을 물으면, 대사는 언제나 ‘허噓’ 소리를 내면서 또 항상 대중에게 이렇게 말했다.
“내가 갈 때에는 큰 울부짖음을 한바탕하고 갈 것이다.”

당나라 광계光啓 후에 중원中原에 도적이 일어나서 모두가 피난을 가는데, 대사만이 태연히 앉아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도적 떼가 많이 와서 공양거리가 없다는 이유로 칼로 찔렀다. 대사는 태연자약한 안색으로 큰 소리를 한마디 지르고 임종하였는데, 그 소리가 몇 십 리까지 들렸다. 이때가 곧 광계光啓 3년 정미(丁未, 887) 4월 8일이었다. 나중에 문인들이 화장을 하고 사리 49개를 얻었으며, 대중이 탑을 세우니 수명은 60세였다. 희종僖宗이 청엄淸嚴 대사라 시호를 내렸고, 탑호는 출진出塵이라 하였다.

복주福州 설봉雪峰 의존義存 선사
그는 천주泉州 남안南安 사람으로서 성은 증曾씨이다. 집안이 대대로 불법을 믿었으므로 대사는 나면서부터 마늘과 파 따위를 싫어하였다. 강보襁褓 속에서 범종 소리를 듣거나 번幡과 꽃과 불상을 시설한 것을 보면, 반드시 엄숙한 얼굴을 지었다.
나이 12세에 그의 부친을 따라 포전莆田의 옥간사玉澗寺에 갔다가 경현慶玄 율사를 보자, 얼른 절을 하면서 말했다.
“나의 스승이시군요.”
그리고는 머물러서 시봉을 하였다. 17세에 머리를 깎고 부용산芙蓉山의 상조常照 대사를 뵈었는데, 상조가 어루만지면서 법기[器]로 여겼다. 나중에 유주幽州의 보찰사寶刹寺에 가서 구족계具足戒를 받고 오랫동안 선원을 돌다가 덕산德山과 인연을 맺었다.
당나라 함통咸通 때에 민중閩中으로 돌아와서 상골산象骨山에 올라가 설봉雪峰에다 선원을 지으니, 무리들이 흡연翕然히 모여들었다. 의종懿宗이 진각眞覺 대사라는 호를 내렸으며, 자색 가사를 하사하였다.

어떤 스님이 물었다.
“교리의 뜻과 조사의 뜻이 같습니까, 다릅니까?”
대사가 대답했다.
“우레 소리가 땅을 흔들어도 방 안에는 들리지 않는다.”
그리고는 또 말했다.
“그대가 행각을 하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저의 눈은 본래 바른데, 스승 때문에 삿되게 되었을 때에는 어찌합니까?”
“미혹해서 달마達磨를 만난 것이다.”
“저의 눈은 어디에 두어야 합니까?”
“스승을 추종하지 않아야 한다.”
“머리를 깎고, 염색한 옷을 입고, 부처님의 은혜를 입었는데, 어째서 부처님을 인정하지 말라고 하십니까?”
“좋은 일도 없는 것만 못하니라.”

대사가 어떤 강사에게 물었다.
“여시如是라는 두 글자는 모두가 과목의 글인데, 어떤 것이 본문인가?”
강사가 대답이 없었다.[오운五雲 화상이 대신 말하기를 “다시 세 단원으로 나눕니까?”라고 하였다.]
“어떤 사람이 ‘3신身 가운데서 어느 몸이 온갖 수數에 떨어지지 않는가?’라고 물으니, 옛사람이 대답하기를 ‘나도 항상 이에 대하여 간절하다’고 한 뜻이 무엇입니까?”
“내가 아홉 차례 만에 동산洞山에 올랐느니라.”
스님이 다시 물으려 하니, 대사가 말했다.
“이 승려를 끌어내라.”
“어떤 것이 눈앞의 일입니까?”
“천 리가 멀지 않느니라.”
“어떤 것이 대인의 모습[大人相]입니까?”
“우러러보면 분수가 있다.”
“문수文殊와 유마維摩는 무슨 일을 이야기했습니까?”
“뜻[義]에 떨어졌다.”

어떤 스님이 물었다.
“적연寂然해서 의지할 곳이 없을 때에는 어떠합니까?”
“여전히 병이다.”
“전변轉變한 뒤에는 어떠합니까?”
“배가 벌써 양주揚州로 내려갔다.”
“옛사람이 말하기를…….”
이렇게 말을 시작하는데, 대사가 눕는 시늉을 하였다가 한참 만에 일어나서 말했다.
“무엇을 물었느냐?”
스님이 다시 물으니, 대사가 말했다.
“헛되이 났다가 헛되이 죽는 놈아.”
“화살이 드러나매 칼을 던지는 때는 어떠합니까?”
“훌륭한 솜씨는 과녁을 맞히지 않는다.”
“눈앞에 보이는 것에 과녁이 전혀 없을 때에는 어떠합니까?”
“분수에 따른 훌륭한 솜씨를 방해하지 않는다.”
“옛사람이 말하되, ‘길에서 도를 통달한 사람을 만나면 말과 침묵으로 대답하지 않는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무엇으로 대답합니까?”
“차나 마시게.”

대사가 스님에게 물었다.
“어디서 왔는가?”
“신광神光에서 왔습니다.”
대사가 말했다.
“낮에는 햇빛이라 부르고 밤에는 불빛이라 부르는데, 무엇을 신광神光이라 하는가?”
스님이 대답이 없으니, 대사 스스로가 대답했다.
“햇빛과 불빛이니라.”
서栖 전좌典座가 물었다.
“옛사람이 말하기를 부처님의 향상사向上事를 알아야 이야기를 나눌 자격이 있다고 했는데, 어떤 이야기입니까?”
대사가 꼭 붙들고 말했다.
“말하라, 말해.”
서 전좌가 대답이 없자, 대사가 걷어차서 쓰러뜨렸다. 서 전좌가 일어나서 땀을 흘렸다.

대사가 어떤 스님에게 물었다.
“어디서 왔는가?”
스님이 대답했다.
“근래에 제중(淛中:浙中)을 떠났습니다.”
“배로 왔느냐, 뭍으로 왔느냐?”
“두 길을 모두 거치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여기를 왔느냐?”
“무슨 막힘이 있습니까?”
대사가 곧 때렸다.
“옛사람이 눈앞에 서로 드러낸다고 말할 때는 어떠합니까?”
“이렇다[是].”
“어떤 것이 눈앞에 서로 드러내는 것입니까?”
“아이고, 아이고.”

대사가 어떤 스님에게 물었다.
“이 검은 암소의 나이가 얼마인가?”
스님이 대답이 없으니, 대사가 스스로 대답했다.
“77세이다.”
그 스님이 물었다.
“화상이 어째서 검은 암소가 되셨습니까?”
“무슨 잘못[罪過]이야 있는가?”

어떤 스님이 하직하니, 대사가 물었다.
“어디로 가는가?”
“경산徑山 화상께 절을 하러 갑니다.”
“만일 경산이 그대에게 이 지방의 불법이 어떠냐고 물으면 무엇이라 대답하겠는가?”
“묻게 되면 대답하겠습니다.”
대사가 주장자로 때리고, 이어서 도부道怤에게 이 이야기를 하면서 물었다.[도부道怤는 곧 경청鏡淸 순덕順德 대사이다.]
“그 스님은 허물이 어디에 있기에 방망이를 맞았는가?”
도부가 말했다.
“경산에게 묻다가 크게 곤란을 당했습니다.”
“경산은 제중淛中에 있는데, 어떤 질문을 했기에 크게 곤란을 당했다고 하는가?”
도부가 말했다.
“듣지 못하셨습니까? 멀리 묻고 가까이 대답한다는 말을.”
대사가 그만두었다.[동선東禪 제齊가 말하기를 “그 스님이 설봉의 뜻을 알았다면 왜 매를 맞았을까? 알지 못했다면 그를 때려서 무엇 하랴? 말해 보라. 허물이 어디에 있는가? 경청鏡淸이 비록 부자간으로 분석했으나 마치 커다란 졸작을 만든 것 같다. 알겠는가? 또 설봉이 그만둔 것은 그를 긍정한 것인가, 그를 긍정하지 않은 것인가?”라고 하였다.]
어느 날 대사가 혜릉慧稜에게 말했다.[혜릉은 곧 장경長慶이다.]
“나는 위산潙山이 앙산仰山에게 ‘여러 성인들이 어디로 갔느냐?’고 묻자, 앙산이 ‘혹은 하늘에 있고, 혹은 인간에 있다’고 대답하는 것을 들었는데, 그대의 생각에는 앙산의 뜻이 무엇이라 여기는가?”
혜릉이 대답했다.
“여러 성인들이 들고 나는 곳을 물었다면 그렇게 대답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면 그대는 전혀 긍정치 않는 것이니, 만일 어떤 사람이 홀연히 물으면 그대는 어떻게 대답하겠는가?”
“그저 틀렸다고 말하겠습니다.”
“그대는 틀리지 않았구나.”
“틀린 것과 무엇이 다릅니까?”

대사가 어떤 스님에게 물었다.
“어디서 왔는가?”
“강서江西에서 왔습니다.”
“강서와 여기와는 거리가 얼마인가?”
“멀지 않습니다.”
대사가 불자를 세우고 말했다.
“이것을 막아 볼 텐가?”
“그것을 막으면 곧 멀어집니다.”
대사가 때렸다.
“학인이 처음으로 총림에 들어왔으니, 스님께서 들어갈 길을 지시해 주십시오.”
대사가 대답했다.
“차라리 스스로 몸을 티끌처럼 부술지언정 끝내 한 스님의 눈을 멀게 하지는 않겠다.”
“49년 뒤의 일은 묻지 않겠거니와 49년 이전의 일은 어떠합니까?”
대사가 불자拂子로 입을 윽박지르면서 때렸다.

어떤 스님이 대사를 하직하고 영운靈雲에게 가서 물었다.
“부처님께서 세상에 나시기 전에는 어떠합니까?”
영운이 불자를 드니, 또 물었다.
“세상에 나신 뒤에는 어떠합니까?” 
영운이 또 불자를 들었다. 그 스님이 이내 돌아오자, 대사가 물었다.
“그대는 최근에 떠난 것 같은데 빨리도 돌아왔구나.”
그 스님이 대답했다.
“제가 저기에 가서 불법을 묻다가 맞지 않아서 돌아왔습니다.”
“그대는 무슨 일을 물었는가?”
스님이 앞의 이야기를 하니, 대사가 말했다.
“그대가 물어라. 내가 말해 주리라.”
스님이 물었다.
“부처님께서 세상에 나시기 전에는 어떠합니까?”
대사가 불자를 들었다.
“세상에 나신 뒤에는 어떠합니까?”
대사가 불자를 내려놓았다. 이에 그 스님이 절을 하니, 대사가 문득 때렸다.[나중에 스님이 현사玄沙에게 이야기하니, 현사가 말하기를 “그대가 알고자 하는가? 내가 비유 하나를 말해 주리라. 마치 어떤 사람이 동산 한 자리를 파는데, 동․서․남․북을 모두 계약해서 팔았으나 가운데 있는 정자나무 하나는 여전히 내 것인 것과 같다”라고 하였다. 숭수崇壽 조稠가 말하기를 “그가 아는 곳을 때렸겠는가? 다른 도리가 있겠는가?”라고 하였다.]
그리고 6조가 말한 ‘바람이 움직이는 것도 아니고, 깃발이 움직이는 것도 아니고, 그대의 마음이 움직일 뿐이다’고 한 이야기를 들자, 대사가 말했다.
“초라한 조사여, 용두사미가 되고 말았으니 20방망이쯤 때리는 것이 좋겠구나.”
이때 태원太原 부孚 상좌가 모시고 섰다가 이 말을 듣고 치아를 부딪치니, 대사가 다시 말했다.
“내가 아까 그렇게 말한 것도 20방망이를 때리는 것이 좋겠다.”[운거雲居 석錫이 말하기를 “어디가 조사께서 용두사미가 된 곳이기에 20방망이를 맞아야 한다고 했을까?”라고 했으며, 또 설봉이 말하기를 “나도 방망이를 맞아야 한다 했으니 불법의 뜻은 무엇이겠는가? 오랫동안 대중의 상좌에 있었기에 모르는 것이 없을 것이거늘 처음 들어온 형제들은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라고 하였다. 동선東禪 제齊가 말하기를 “설봉이 그렇게 말한 것이 점검한 것인가, 다른 함정이 있는가? 대중 가운데서 스스로의 허물을 드러냈다거나 드러내지 않았다 하는 것은 그만두고 조사께서 말씀하기를 ‘바람이 움직이는 것도 아니고, 깃발이 움직이는 것도 아니다’라고 한 뜻이 무엇일까?”라고 하였다.]

대사가 혜전慧全에게 물었다.
“그대가 들어갈 곳을 얻었는데, 어찌하겠는가?”
혜전이 말했다.
“화상과 함께 다 헤아렸습니다.”
“어느 곳을 헤아렸는가?”
“어느 곳을 가고 옵니까?”
“그대가 들어갈 곳을 얻었으니 또 어찌하겠는가?”
혜전이 대답이 없으니, 대사가 때렸다.

전탄全坦이 물었다.
“평평한 풀밭에서 사슴들이 떼를 이루고 있는데, 어찌하면 사슴 중의 왕을 쏘아 잡을 수 있겠습니까?”
대사가 전탄을 부르니, 전탄이 대답했다. 이에 대사가 말했다.
“차나 마셔라.”

대사가 어떤 스님에게 물었다.
“요사이 어디서 떠났는가?”
“위산潙山에서 떠났습니다. 거기서 ‘어떤 것이 조사께서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하고 물었더니, 위산이 자리에 걸터앉았습니다.”
대사가 물었다.
“그대는 그를 긍정하는가?”
“저는 그를 긍정하지 않습니다.”
대사가 충고했다.
“위산은 옛 부처의 후신後身이다. 빨리 가서 절하고 참회하라.”
현사玄沙가 말했다.
“산골의 늙은이가 위산의 일을 잘못 아는구나.”[동선東禪 제齊가 말하기를 “어디가 지나친 곳인가? 지나칠 때에 그렇게 알아야 할 것인가? 만일 그렇게만 알아야 한다면 위산의 뜻을 알지 못하리라. 또 설봉이 말하기를 ‘위산은 옛 부처의 후신이니 빨리 가서 참회하라’고 했으니 이는 위산을 증명한 말인가, 찬탄한 말인가? 이 일은 자세히 하기가 어려우나, 잘 보면 어려운 일은 아니다”라고 하였다.]

어떤 이가 물었다.
“학인이 말할 수 없는 곳을 스님께서 말씀해 주십시오.”
대사가 대답했다.
“나는 법을 위해서 사람을 아낀다.”
대사가 불자拂子를 들어 어떤 스님에게 보이니, 그 스님이 나가 버렸다.[장경長慶 능稜이 천주泉州의 왕연빈王延彬에게 이야기하고 이어 말하기를 “이 스님은 한 방망이를 먹었다 해야 하리라”고 하니, 왕연빈이 말하기를 “화상은 무슨 생각을 하십니까?”라고 했다. 이에 장경 능이 말하기를 “자칫하면 놓칠 뻔했다”라고 하였다.]

대사가 혜릉慧稜에게 말했다.
“옛사람이 앞으로 셋셋[前三三]이고, 뒤로 셋셋[後三三]이라고 한 뜻이 무엇입니까?”
혜릉이 나가 버렸다.[아호鵝湖가 따로 말하기로 “예”라고 하였다.]

대사가 어떤 스님에게 물었다.
“어디서 왔는가?”
“쪽밭[藍田]에서 왔습니다.”
대사가 말했다.
“어찌하여 풀숲에 들지 않았는가?”[장경 능이 말하기를 “험하다”고 하였다.]
“큰일을 어떻게 하나요?”
대사가 스님의 손을 잡고 말했다.
“상좌가 이것을 누구에게 물었는가?”

어떤 스님이 절을 하니, 대사가 다섯 방망이를 때렸다. 이에 그 스님이 말했다.
“허물이 어디에 있습니까?”
대사가 다시 다섯 방망이를 때리고 꾸짖어 내쫓았다.

대사가 어떤 스님에게 물었다.
“어디서 왔는가?”
“영외嶺外에서 왔습니다.”
“달마達磨를 만났는가?”
“청천백일靑天白日이옵니다.”
“자기 일은 어떻게 할 것인가?”
“다시 무엇을 어쩌라 하십니까?”
대사가 문득 때렸다. 대사가 그 스님을 전송하려고 네댓 걸음 가다가 “상좌여” 하고 불렀다. 스님이 고개를 돌리자, 대사가 말했다.
“길 조심하오.”

어떤 스님이 물었다.
“망치를 들거나 불자를 세우는 것은 종승宗乘에 맞지 않는데, 화상께서는 어찌하시겠습니까?”
대사가 불자를 세웠다. 그 스님이 스스로 고개를 숙이고 나가자, 대사는 돌아보지 않았다.[법안法眼이 대신 말하기를 “대중은 이 장수 한 분을 보라”고 하였다.]

어떤 스님이 물었다.
“3승乘 12분교分敎는 범부를 위해서 연설하였습니까, 범부를 위해서 연설하시지 않았습니까?”
“한 곡조의 양류지楊柳枝도 필요하지 않다.”

대사가 경청鏡淸에게 말했다.
“예전에 어떤 노숙老宿이 관인官人을 데리고 법당을 돌다가 ‘이 대중들은 모두가 불․법․승을 배우는 사람들이오’라고 말하니, 관인이 대답하기를 ‘금싸라기가 아무리 귀하다지만 어찌하겠는가’라고 해서 노숙이 대답하지 못했다.”
이에 경청이 대신 말했다.
“아까 벽돌을 던져서 옥을 얻었다.”[법안法眼이 말하기를 “관인은 어째서 귀만을 소중히 여기고 눈은 천히 여기는가?”라고 하였다.]

대사가 상당하여 불자를 들고 말했다.
“이것은 중․하의 근기를 위한 것이다.”
이때에 어떤 스님이 물었다.
“상상上上 근기의 사람이 오면 어찌하겠습니까?”
대사가 불자를 드니, 스님이 말했다.
“그것은 중․하의 근기를 위하는 것입니다.”
대사가 때렸다.
“국사國師가 시자를 세 차례 부른 뜻이 무엇입니까?”
대사가 일어나서 방장으로 돌아갔다.

대사가 어떤 스님에게 물었다.
“올 여름에 어디에 있었는가?”
“용천涌泉 지명地名으로서, 샘이 솟는다는 뜻이다.
에 있었습니다.”
“오래 솟던가, 잠시 솟던가?”
“화상의 물음이 맞지 않습니다.”
“내 물음이 맞지 않는다고?”
“그렇습니다.”
대사가 때렸다.

농막으로 울력을 가다가 길에서 원숭이를 만났다. 이에 대사가 말했다.
“저 축생이 일면一面의 옛 거울을 하나 등에 지고서 산승의 벼이삭을 따는구나.”
어떤 스님이 말했다.
“광겁曠劫에 이름이 없거늘 어째서 옛 거울이라 하십니까?”
대사가 대답했다.
“흠집이 생겼구나.”
“왜 그리 급하십니까? 말귀도 모르시는군요.”
“내가 잘못했다.”
민수閩帥가 은교상銀交床을 시주하니, 어떤 스님이 물었다.
“화상은 대왕의 이와 같은 공양을 받으시고 장차 무엇으로 보답하시렵니까?”
대사가 손으로 땅을 치면서 말했다.
“나를 칠 이가 별로 없다.”[어떤 스님이 소산疎山에게 묻기를 “설봉이 나를 때릴 이가 없다고 말한 뜻이 무엇입니까?”라고 하니, 소산이 말하기를 “머리 위에다 외꽃을 꽂고 꼬리를 드리우니 발꿈치에 가지런하다”고 하였다.]
“비로자나를 몽땅 삼켰을 때에는 어떠합니까?”
“복당(福唐:福州의 縣)이 수복된 뒤에 잘 평정되었는가?”

대사가 대중에게 말했다.
“내가 만일 이러쿵저러쿵 말을 하면 그대들은 말을 쫓고 구절을 찾겠지만, 내가 만일 영양羚羊이 뿔을 걸듯 하면 그대들은 어디를 더듬겠는가?”[어떤 스님이 보복保福에게 묻기를 “설봉이 무슨 말씀이 있었기에 영양羚羊이 뿔을 걸은 것으로 견주는가?”라고 하니, 보복이 말하기를 “설봉의 제자 노릇도 하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라고 하였다.]
대사가 민천閩川에 있는 40여 년 동안 배우는 자들이 여름 겨울을 막론하고 1천5백 명에서 줄지 않았다. 
양梁나라 개평開平 2년 무진戊辰 서기 808년이다.
 춘3월에 병이 나니, 민수閩帥가 의원에게 진찰을 하라고 했다. 그러자 대사가 말했다.
“나는 병이 난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는 끝내 그 약을 먹지 않고 게송을 남기면서 법을 전했다. 여름 5월 2일 아침에 쪽밭[藍田]에 갔다가 저녁때에 돌아와서 목욕을 하고 밤중에 입적하니, 수명은 87세이고 법랍은 59세였다.

천태天台 서룡원瑞龍院 혜공慧恭 선사
그는 복주福州 사람으로서 성은 나羅씨이다. 집안이 대대로 유교 집안이라서 17세에 진사進士에 나가려고 서울로 갔는데, 종남산終南山 봉일사奉日寺에 갔다가 조사들의 영정[遺像]을 보고 드디어 출가할 뜻을 내었다.
22세에 계를 받고 사방을 돌아다니다가 덕산德山 선감宣鑒 선사를 뵈었는데, 선감이 물었다.
“알겠는가?”
혜공이 대답했다.
“무엇을 말씀입니까?”
“서로 만나자.”
“아셨습니까?”
선감이 껄껄 웃으니, 마침내 입실入室하였다. 선감이 세상을 떠난 뒤에 문인들과 함께 천태산의 서룡원瑞龍院에 가서 법석法席을 크게 열었다.
당나라 천복天復 3년 계해(癸亥, 903) 12월 2일 오시午時에 대중에게 종을 치라고 하고는 좌우를 돌아보면서 말했다.
“간다.”
말을 마치고는 가부좌를 틀고 입멸하니, 수명은 80세이고 법랍은 62세였다. 문인들이 탑을 세웠다.

천주泉州 와관瓦棺 화상
덕산德山이 물었다.
“그대는 알겠는가?”
대사가 대답했다.
“잘 모르겠습니다.”
“그대는 모른다는 것을 취하여 이루는 것이 좋겠다.”
“알지 못하는데 또 무엇을 이루겠습니까?”
“그대는 무쇠덩어리와 같구나.”
대사는 마침내 덕산에게 제자의 예를 올렸다.

양주襄州 고정高亭 간簡 선사
처음에 강을 사이에 두고 덕산德山을 뵙자 합장하고 인사를 하였다. 덕산이 손에 든 부채로 그를 부르자, 대사가 홀연히 깨닫고는 옆 걸음[橫趨]으로 물러가서 다시는 돌아보지 않았다.
나중에 양주에서 법석을 열어 덕산의 대를 이었다.

홍주洪州 대녕大寧 감담感潭 자국資國 화상
백조白兆가 물었다.
“집안에 초상이 났으니, 화상께서 위로해 주십시오.”
대사가 대답했다.
“괴롭고 슬프구나.”
백조가 대답했다.
“아버지도 죽고, 어머니도 죽었습니다.”
대사가 때려서 내쫓았다. 대사는 대체로 스님들을 만나면 거의 주장자로 때려서 쫓았다.
앞의 담주潭州 석상산石霜山 경제慶諸 선사의 법손

하중河中 남제산南際山 승일僧一 선사
어떤 스님이 물었다.
“모처럼 스님께 가까이 예배하게 되었으니, 스님께서 지시해 주십시오.”
대사가 대답했다.
“내가 만일 그대에게 지시한다면 그대를 모독하는 것이니라.”
“학인이 어찌해야 옳습니까?”
“절대로 시비를 따지지 말라.”
“어떤 것이 납승衲僧의 숨결[氣息]입니까?”
“일찍이 그대에게 훈습熏習한 적이 있는가?”
“종류는 묻지 않겠으나, 어떤 것이 다른 종류입니까?”
“머리가 필요하거든 멋대로 쪼개서 갖고 가라.”
“어떤 것이 법신의 주인입니까?”
“지나칠 수 없는 것이다.”
“어떤 것이 비로자나의 스승입니까?”
“초월하지 못하는 것이다.”
대사가 처음에는 말산末山에 살았는데, 나중에 민수閩帥가 법석을 열어 달라고 청했다. 장경선원長慶禪苑에서 임종하니, 시호는 본정本淨 대사이고 탑호는 무진無塵이었다.

담주潭州 대광산大光山 거회居誨 선사
그는 경조京兆 사람으로서 성은 왕王씨이다. 처음에 석상石霜에게 입실하여 함장函丈 강의하는 자리를 말한다.
에서 묻고 배우면서 2년을 지냈다. 또 북탑北塔을 지키게 하니, 베옷을 입고 짚신을 신으며 자못 자기의 몸을 위하는 생각을 품지 않았다.
어느 날 석상이 그의 얻은 바를 시험하기 위하여 물었다.
“국가에서 매년 과거를 열어서 급제를 시키니, 조정에 가서 직책을 하나 받지 않겠는가?”
대사가 대답했다.
“벼슬자리에 나가려 하지 않는 사람도 있습니다.”
“왜 그렇지?”
“명예를 위하지 않기 때문이겠죠.”

석상이 문병을 왔다가 물었다.
“오늘을 제외하고 따로 다시 시간이 있는가?”
대사가 대답했다.
“그에게는 오늘이란 말도 하지 않는 것이 옳습니다.”
석상이 퍽 옳다고 여겼다. 이와 같이 묻기를 몇 차례 거듭했으나 대답하는 것이 어긋남이 없었다. 20년 가까이 그 주변을 배회하던 끝에 유양瀏陽의 청신사淸信士 호공胡公이 대광산大光山에 살기를 청하니, 거기서 종지를 크게 드날렸다.
어떤 스님이 물었다.
“달마 스님은 조사이십니까?”
“조사가 아니다.”
“조사가 아니라면 무엇 하러 왔습니까?”
“그대가 조사로 추천하지 않기 때문이다.”
“추천된 뒤에는 어떠합니까?”
“조사가 아닌 줄을 비로소 알게 된다.”
“혼돈混沌이 나뉘기 전에 어떠합니까?”
“부처님의 일대시교一代時敎는 누구에게 편 것인가?”
대사가 또 말했다.
“일대시교라는 것은 다만 당대의 사람들을 거두기 위한 것이다. 설사 철저한 경지에 이르러도 결국 일을 마친 사람일 뿐이니, 그대들은 납의衲衣 밑의 일이라고 여기지 말아야 한다. 그래서 49년 동안 밝혀도 다 밝히지 못했고, 49년 동안 표방해도 표식을 세우지 못했다고 말하는 것이다.”
무릇 배우는 자들에게 보인 설법이 대략 이와 같았다. 
당나라 천복天復 3년 계해(癸亥, 903) 9월 3일에 입적하니, 수명은 67세였다.

여산廬山 서현사棲賢寺 회우懷祐 선사
그는 천주泉州 선유僊遊 사람이다. 구좌산九坐山의 진陳 선사에게 배우다가 이윽고 석상石霜에게 입실하여 참학參學하였다. 이미 오묘한 경지에 들어가서는 사산謝山에 살았으나, 그의 덕화가 널리 퍼지기 전에 다시 서현사棲賢寺로 옮겨서 머무르자, 무리가 많이 모였다.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오로봉五老峰 앞의 구절입니까?”
대사가 대답했다.
“만고천추萬古千秋이니라.”
“그러면 후사後嗣가 끊어지지 않겠습니까?”
“누구에게 주려고 주저하는가?”

어떤 스님이 물었다.
“멀리서 왔으니, 스님께서 깨우쳐 주십시오.”
“때[時]를 맞추지 않는구나.”
“스님께서 때를 맞추어 주십시오.”
“나 또한 바꾸지 못한다.”
“어떤 것이 법마다 차별이 없는 것입니까?”
“눈 위에다 서리를 더하는군[雪上加霜].”
대사가 나중에 여산에서 입멸하니, 시호는 현오玄悟 대사이고 탑호는 전등傳燈이라 하였다.

균주筠州 구봉九峰 도건道虔 선사
그는 복주福州 후관侯官 사람으로서 성은 유劉씨이다. 법회法會를 두루 편력하다가 나중에 석상石霜의 수기를 받고, 구봉九峰에서 무리를 교화하였다.
대사가 상당하였을 때에 어떤 스님이 물었다.
“무간지옥의 사람은 어떤 행을 합니까?”
“축생의 행을 행한다.”
“축생은 또 어떤 행을 합니까?”
“무간지옥의 행을 한다.”
“그것은 마치 항상 길에서 사는 사람과 같겠습니다.”
“그대는 목숨을 함께하지 않은 자가 있음을 알아야 한다.”
“어찌하여 목숨을 함께하지 않습니까?”
“길이 살면 기운이 일정치 않느니라.”
대사가 또 말했다.
“여러 형제들이여, 목숨을 알겠는가? 목숨을 알고 싶다면 흐르는 샘이 목숨이요, 맑고 고요함은 몸이요, 천 물결이 다투어 솟구침은 문수의 경계요, 맑은 하늘과 하나로 맞붙음은 보현의 평상平床이다. 그 다음 한 구절을 빌리는 것은 달을 가리키는 것이요, 그 안의 일은 달을 이야기함이요, 위로부터의 온갖 종문의 일은 절도사節度使의 신호 깃발과 같다. 
그렇다면 제방의 선덕先德들이 아직 허다한 명목을 세워서 설명하기 전에는 여러 형제들은 어떠한 체격(體格:바탕의 격식)을 잡아서 헤아리는가? 여기에 이르러서는 혀를 빌리지 않고 이야기해야 하고, 귀를 빌리지 않고 들어야 하고, 눈을 빌리지 않고 분별해야 한다. 
그러므로 말하기를 ‘소리 이전에는 던져도 나오지 않고, 구절 뒤에는 형체를 감추지 못한다’고 하였다. 건곤이 몽땅 그대 당사자의 본체인데, 어디에다 눈과 귀와 코와 혀를 안치하려는가? 다만 의근意根을 향해서 도모하고 헤아리면서 알음알이를 짓지 말지니, 오는 세상이 다하여도 쉴 분수가 없으리라. 그러므로 옛사람이 말하기를 ‘마음과 뜻을 가지고 현묘한 종지를 배우려고 하면, 마치 서쪽으로 가려는 이가 동쪽을 향한 것과 같다’고 한 것이다.”
이때에 어떤 스님이 물었다.
“구중궁궐에 소식이 없는데 은사恩赦가 어떻게 오겠습니까?”
“흐르는 빛이 비록 두루하더라도 문지방 안에는 비추지 못한다.”
“흐르는 빛과 문지방 안의 거리가 얼마나 됩니까?”
“푸른 물에 파도가 일고, 청산의 빛깔이 아름다우니라.”
“사람마다 다 가르쳐 달라고 하면, 스님은 무엇으로 구제하시렵니까?”
“그대는 거대한 산악에 한 줌 흙이 모자란다고 말하는 것인가?”
“그러면 사방에서 배우러 온 이들이 무엇을 해야 합니까?”
“연야달다演若達多가 머리를 잃었다고 한 것은 스스로의 마음이 미쳤기 때문이다.”
“미치지 않은 이가 있겠습니까?”
“있다.”
“어떤 것이 미치지 않은 사람입니까?”
“갑자기 새벽길을 가노라면 눈이 떠지지 않는다.”
“어떤 것이 학인의 자기自己입니까?”
“다시 누구에게 묻는가?”
“그대로 문득 알아들을 때에는 어떠합니까?”
“수미산 위에 다시 수미산을 얹겠는가?”
“조사와 조사가 잇달아 전했다고 하는데, 전한 것이 어떤 법입니까?”
“석가는 인색한데, 가섭은 후덕했다.”
“궁극적으로 전한 일이 무엇입니까?”
“백세의 노인이 밤 등잔을 나누어 켠다.”
“모든 부처님들도 나의 도가 아니라면, 어떤 것이 나의 도입니까?”
“나의 도는 모든 부처를 부정한다.”
“모든 부처를 부정하면, 무엇 때문에 나의 도를 세웠습니까?”
“아까는 잠시 불러들이고, 이제는 도리어 쫓아낸다.”
“어째서 쫓아냅니까?”
“쫓아내지 않으면 눈에 티가 든다.”
“온갖 곳에서 찾을 수 없다고 하니, 이 어찌 성인이 아니겠습니까?”
“어떤 성인인가?”
“우두牛頭가 4조를 만나기 전에 어찌 성인이 아니겠습니까?”
“이는 성인의 경계를 아직 잊지 못한 것이다.”
“두 성인의 거리가 얼마입니까?”
“티끌 속에서는 몸을 숨기는 술법이 있지만, 온몸이 황제의 수도에 들어간 것을 어찌하겠는가?”
“옛사람이 참 마음[眞心]과 허망한 마음[妄心]을 말했다고 들었는데, 어떠합니까?”
“참을 세우므로 허망함이 나타난 것이다.”
“어떤 것이 참 마음입니까?”
“잡식雜食을 하지 않는다.”
“어떤 것이 허망한 마음입니까?”
“반연攀緣이 일어났다 거꾸러졌다 하는 것이다.”
“이 두 가지 길을 여의고서 어떤 것이 학인學人의 본체本體입니까?”
“본체는 여의지 않는다.”
“어째서 여의지 않습니까?”
“공덕천功德天도 공경치 않으니, 누가 흑암녀黑暗女를 미워하겠는가?”
“예로부터 말하기를 건곤乾坤이 온통 눈망울이라 했는데, 어떤 것이 건곤의 눈입니까?”
“건곤도 그 속에 있다.”
“건곤의 눈이 어디에 있습니까?”
“바로 건곤의 눈이다.”
“비추어 볼 수가 있습니까?”
“세 가지 광명의 힘을 빌리지 않는다.”
“세 가지 광명의 힘을 빌리지 않는다면, 무엇에 의지하여 건곤의 눈이라 말하겠습니까?”
“만일 그렇지 않으면 해골 앞에서 무수한 귀신을 보리라.”
“붓 한 자루로 단청을 하는데, 어째서 초상을 그리지 못합니까?”
“승요僧繇가 지공誌公을 허락했다.”
“승요는 누구의 인가를 받았기에 지공을 허락했습니까?”
“검은 거북이 수미須彌의 기둥에다 절을 한다.”
“동용動容이 옛 길에 잠기고 몸이 침몰한 뒤에야 안다고 하니, 이 뜻이 어떠합니까?”
“부처님 돈을 훔쳐서 부처님의 향을 산다.”
“학인은 잘 모르겠습니다.”
“모르겠거든 향을 피우고 본래의 부모님께 공양하라.”
대사가 나중에 늑담泐潭에 살다가 임종하니, 시호는 대각大覺 선사이고, 탑호는 원적圓寂이었다.

태주台州 용천涌泉 경흔景欣 선사
그는 천주泉州 선유僊遊 사람이었는데 본래 백운산白雲山에서 수행을 하다가 석상石霜의 가르침을 받고는 단구丹丘의 용천사[涌泉之蘭若]에 살았다.
어느 날 대사가 가사를 입지 않고 밥을 먹으니, 어떤 스님이 물었다.
“너무 속되지 않습니까?”
대사가 대답했다.
“지금[今]에 즉한다면 어찌 스님이겠는가?”

강彊과 덕德, 두 선객이 오다가 길에서 대사가 소를 타고 가는 것을 보고도 알아채지 못하고서 중얼거렸다.
“뿔과 발톱은 너무나 분명하지만, 타고 있는 이를 모르겠는데 어찌하겠는가?”
대사가 소를 몰아서 가 버렸다. 두 선객은 어느 정자나무 밑에 쉬면서 차를 달였다. 대사가 되돌아오다가 소에서 내려 두 선객에게 인사를 건네고는 함께 앉아서 차를 마셨다. 대사가 물었다.
“두 선객은 최근에 어디서 떠났는가?”
“저쪽에서 떠났소.”
“저쪽 일이 어떠하던가?”
그가 찻잔을 번쩍 드니, 대사가 말했다.
“이것은 오히려 이쪽이다. 저쪽은 어떤가?”
두 선객이 대답이 없었다. 이에 대사가 말했다.
“소를 탄 사람을 모르겠다고 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

담주潭州 운개산雲蓋山 지원志元 선사
그의 호는 원정圓淨 대사인데, 제방으로 행각을 할 때에 운거雲居에게 물었다.
“지원이 어쩔 수 없을 때에는 어떻게 합니까?”
운거가 대답했다.
“다만 그대의 공력이 미치지 못하는 곳일 뿐이다.”
대사가 절을 하고 물러나서 석상石霜에게 가서도 앞과 같이 물으니, 석상이 대답했다.
“그대뿐이 아니라 나도 어쩔 수 없다.”
“화상께서 어찌하여 어쩔 수 없습니까?”
“내가 만일 어쩔 수 있다면, 그대의 어쩔 수 없음을 들고 지나갔을 것이다.”[그 밖에도 문답이 있는데 석상장石霜章에서 서술되어 있다.]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부처입니까?”
“얼굴이 누런 그것이다.”
“어떤 것이 법입니까?”
“장경 안에 있는 그것이다.”
“연등然燈부처님께서 세상에 나시기 전에는 어떠하였습니까?”
“어두울 수 없다.”
“뱀[蛇子]이 어찌하여 도롱뇽[蛇師:이무기나 용]을 삼킵니까?”
“온몸의 빛깔이 같지 않기 때문이니라.”
“어떤 것이 납승衲僧입니까?”
“선지식을 찾아서 도를 묻는 자다.”

담주潭州 곡산谷山 장藏 선사
스님이 물었다.
“조사의 뜻과 교리의 뜻이 같습니까, 다릅니까?”
“푸른 하늘에 밝은 해와 한밤중의 진한 서리니라.”

복주福州 복선산覆船山 홍천洪荐 선사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본래의 면목입니까?”
대사가 눈을 감고 혀를 내밀었다가 다시 눈을 뜨고 혀를 내밀었다. 이에 스님이 말했다.
“본래부터 그렇게 많은 면목이 있습니까?”
“아직까지 무엇을 보았는가?”
“길에서 도를 통달한 사람을 만나면 말이나 침묵으로 대답하지 않는다고 하는데, 무엇으로 대답해야 합니까?”
“나도 이럴 뿐이다.”

대사가 입멸하기 3일 전에 시자를 시켜서 제1 상좌를 불러오게 하였다. 대사가 누워서 방귀를 한 방 뀌니, 제1 상좌가 시자에게 말했다.
“화상께서 목이 말라 물을 마시겠다고 하신다.”
대사가 벽을 향해 누워서 임종하면서 대중을 모으게 하고는 이어서 두 손을 펴고 혀를 내어 보이니, 그때 제3좌坐가 말했다.
“여러분, 화상의 혀가 굳어집니다.”
이에 대사가 말했다.
“괴롭다, 괴롭다. 진실로 제3좌의 말과 같이 혀가 굳어진다.”
이렇게 두 번 말하고 입적하니, 시호는 소륭紹隆 대사이고 탑호는 광제廣濟였다.

낭주朗州 덕산德山 존덕存德 선사
호는 혜공慧空 대사이다.[제6세 주지]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한 구절입니까?”
대사가 말했다.
“다시 물어라.”
“어떤 것이 화상의 선타바僊陀婆입니까?”
“지난밤 3경更에 달 밝은 것을 보았다.”

길주吉州 숭은崇恩 화상
어떤 스님이 물었다.
“조사의 뜻과 교리의 뜻이 같습니까, 다릅니까?”
“소림에는 비록 달이 있지만 총령葱嶺에서 구름을 뚫지는 못했다.”

석상石霜 휘輝 선사[제3세 주지]
어떤 스님이 물었다.
“부처님께서 세상에 나신 뒤에는 먼저 다섯 비구를 제도하셨지만, 화상께서 세상에 나오셔서는 누구를 먼저 제도하셨습니까?”
“전혀 제도하지 않았다.”
“어째서 제도하지 않았습니까?”
“그가 다섯 비구가 아니기 때문이다.”
“어떤 것이 화상의 가풍입니까?”
“대 젓가락과 질그릇 사발이니라.”

영주郢州 파초芭蕉 화상
어떤 스님이 물었다.
“위로부터의 종승宗乘을 어떻게 드러냈습니까?”
“이미 눈빛이 차가운 이[冷眼人]에게 들켰다.”
“온갖 반연에 떨어지지 않고 스님께서 곧바로 일러 주십시오.”
“물음이 있어야 대답이 있다.”
“어떤 것이 화상께서 사람을 위하시는 한 구절입니까?”
“그대가 묻지 않을까 걱정만 했었다.”

담주潭州 비전肥田 복伏 화상
호는 혜각慧覺 대사이다. 
어떤 스님이 물었다.
“이 지방의 이름이 무엇입니까?”
“비전肥田이니라.”
“어찌해야 합니까?”
대사가 주장자로 때려서 쫓았다.

담주潭州 녹원鹿苑 휘暉 선사
어떤 스님이 물었다.
“온갖 인연을 빌리지 말고 말씀해 주십시오.”
대사가 화로를 두드렸다. 이에 스님이 말했다.
“친절한 자리를 다시 한마디 말씀해 주십시오.”
“잠꼬대하지 말라.”
“우두牛頭가 4조를 보기 전에는 어떠하였습니까?”
“달이 물속에 있는 것과 같다.”
“본 뒤에는 어떠합니까?”
“물이 달에 있는 것과 같다.”
“조사와 조사가 서로 전했다 하는데 무엇을 전했습니까?”
“그대가 나에게 물으면 나는 그대에게 물으리라.”
“그러면 승속[緇素]을 분별치 못하겠습니다.”
“어디를 갔다 왔는가?”

담주潭州 보개寶蓋 약約 선사
어떤 스님이 물었다.
“보개寶蓋를 높디 높이 달면 그 안의 일이 어떠합니까? 스님에게 언하言下의 종지 한 구절만 청할 뿐 많이는 필요치 않습니다.”
“보개는 공중에 매달려 있어 길이 있어도 통한 적이 없으니, 행여 언하의 종지를 구한다면 문득 동쪽과 서쪽이 있게 된다.”

월주越州 운문산雲門山 증미사拯迷寺 해안海晏 선사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법복[衲衣] 밑의 일입니까?”
“사람이 딱딱한 돌멩이를 씹는 것과 같다.”
“어떤 것이 옛 절에 있는 한 화로의 향불[一爐香]입니까?”
“광대하여서 아무도 냄새를 맡는 이가 없다.”
“냄새를 맡으면 어떠합니까?”
“6근根이 모두 이르지 못한다.”
“오랫동안 증미사[拯迷] 미혹한 이를 제도한다는 뜻이다.
의 소문을 들었는데, 이제 왔건만 왜 증미拯迷를 보여 주지 않습니까?”
“그대는 증미를 알아채지 못한다.”


호남湖南 문수文殊 화상
어떤 스님이 물었다.
“승요僧繇는 왜 지공誌公의 초상을 그리지 못했습니까?”
“비단 승요뿐만 아니라 지공도 그리지 못한다.”
“지공이 왜 그리지 못합니까?”
“채색과 비단을 가지고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화상께서는 그리실 수 있습니까?”
“나도 그릴 수 없다.”
“화상은 어째서 그리지 못하십니까?”
“그는 얼굴빛과 상관치 않으니, 내가 어떻게 그를 그리겠는가?”
“어떤 것이 비밀한 방입니까?”
“팽팽해서 나아가지 못한다.”
“어떤 것이 비밀한 방 안의 사람입니까?”
“소 등에 앉지 않는다.”

봉상부鳳翔府 석주石柱 화상
제방으로 교화를 다닐 때에 동산洞山 화상[제3세 주지]이 이렇게 법문하는 것을 보았다.
“네 종류의 사람이 있으니, 한 사람은 말은 부처와 조사를 능가하지만 한 걸음도 행하지를 못하고, 한 사람은 행은 부처와 조사를 능가하나 말은 한 구절도 하지를 못하고, 한 사람은 행하기도 하고 설하기도 하고, 한 사람은 설하지도 못하고 행하지도 못한다. 어떤 것이 그 사람이겠는가?”
대사가 무리에서 나서서 대답했다.
“말은 부처와 조사를 능가하지만 행이 미치지 못하는 사람은 단지 혀가 없어서 행을 허락하지 않았을 뿐이고, 행은 부처와 조사를 능가하나 한 구절도 말하지 못하는 사람은 다만 발이 없어서 말을 허락하지 않았을 뿐이고, 설하기도 하고 행하기도 한 사람은 함函과 뚜껑이 맞아떨어지는 것이고, 설하지도 못하고 행하지도 못하는 사람은 마치 목숨을 끊으면서 살려고 하는 것과 같으니, 이는 석녀石女가 칼을 쓰고 족쇄를 찬 것과 같습니다.”
동산이 말했다.
“그대의 자신[自己]은 어찌 되었는가?”
“두루 통한 회상會上이라면 탁월함이 어찌 드러나겠습니까?”
“만일 바다 위에 명공明公이 빼어나다면 어떻겠는가?”
“허깨비의 사람[幻人]이 서로 만나니 손뼉을 치면서 깔깔 웃습니다.”

담주潭州 중운中雲 개蓋 화상
어떤 스님이 물었다.
“화상께서 법당을 여셨으니, 무엇을 하시렵니까?”
대사가 대답했다.
“당나귀 같은 그대를 위한다.”
“모든 부처님께서 세상에 나오셔서는 무슨 일을 합니까?”
“당나귀 같은 그대를 위한다.”
“부처와 조사가 세상에 나시기 전에는 어떠합니까?”
“형상을 잡을 수 없다.”
“세상에 나신 뒤에는 어떠합니까?”
“그대도 모름지기 몸을 옆으로 뉘어야겠다.”
“어떤 것이 위로 향하는 한 구절입니까?”
“문수도 입을 잃는다.”
“어떤 것이 문턱의 한 구절입니까?”
“머리에 꽃송이를 꽂았다.”
“어떤 것이 백억百億을 초월하는 것입니까?”
“초월한 사람은 긍정할 수 없다.”

하중부河中府 서암산棲巖山 대통원大通院 존수存壽 선사
어떤 사람인지 모르나 성은 매梅씨이다. 처음에는 경론을 강의하다가 나중에 석상石霜에게 입실하고, 인연 따라 교화를 다니다가 포판蒲阪에 다다르니, 승속이 마음을 기울여 귀의하였다.
어떤 스님이 물었다.
“연꽃이 물에서 나오기 전에는 어떠합니까?”
“그대는 물 밖에 나온 뒤의 연꽃을 물은 것이 아닌가?”
스님이 대답이 없었다. 
대사는 평상시에는 말이 드물지만, 묻는 이가 있으면 대답하였다. 제도한 제자가 4백 명이고 비구니가 100여 명이었다. 수명은 93세이고 시호는 진적眞寂 대사였다. 

남악南嶽 현태玄泰 상좌
어떤 사람인지 자세하지 않으나 침착하여 말수가 적었으며, 한 번도 비단을 입지 않았으므로 사람들이 태포납泰布衲이라 불렀다.
처음에 덕산德山 선감宣鑒 선사를 뵙고 대청[堂]까지 올랐다가 나중에 석상石霜 보회普會 선사를 뵙고 드디어 입실하였다. 살던 절이 형산衡山의 동쪽에 있었는데 칠보대七寶臺라고 칭하였다. 그는 문도門徒를 기르지 않기로 맹세하였으나 사방에서 모인 후진들이 따르므로 모두 평교平交의 예로써 상대하였다.
일찍이 형산衡山 일대가 화전火田을 일구기 위해 놓은 불로 많은 피해를 입자 대사가 화전[畬田]의 노래를 지으니, 이 노래가 널리 퍼져 대궐에까지 들리게 되어서 어명으로 불 놓는 일이 금지되었다. 이 때문에 형악 안에 있는 절들은 다시는 불에 타는 일이 없었으니, 모두가 대사의 힘이었다. 
여전畬山의 노래는 다음과 같다. 이 부분은 신수대장경에 주註로 되어 있으나 내용상 본문에 넣어 번역하였다.


여산요畬山謠

밭을 일구는 사내는 아는 것이 없어서
해마다 푸른 산턱을 베고 자른다네.
그 중에도 가장 수려한 형악의 산색인
검푸른 솔밭이 날카로운 도끼에 꺾이네.
畬山兒無所知      年年斫斷靑山嵋
就中最好衡嶽色    杉松利斧摧貞枝

영묘한 새와 들짐승이 의지할 곳을 잃었고
흰 구름도 검은 연기를 피해 길을 바꾸고
원숭이는 길이 막혀 바위산을 떠나가고
나물과 곡식 대신 잡초만 무성하네.
靈禽野鶴無因依    白雲迴避靑煙飛
猿猱路絶巖崖出    芝朮失根茅草肥

해마다 깎은 뒤에는 씨 뿌리고 김매니 
천년이 지나도 처음 모습 회복 못해
그리고도 올해는 적게 심었다고 하니
명년에는 양지쪽을 더 많이 깎으려 하네.
나라 위해 추수하는 명산도 이렇거늘
이 이치가 무엇인지 알고도 모르리라.]
年年斫罷仍栽鋤    千秋終是難復 신수대장경에는 ‘□’로 되어 있으나, 다른 경에는 ‘복復’으로 되어 있으므로 이에 의거해 번역하였다. 

又道今年種不多    來年更斫當陽坡
國家壽嶽尙如此    不知此理如之何

임종할 때가 되어도 아무 스님도 오지 않으니, 몸소 문밖에 나아가 스님 하나를 불러들여서 화장 준비를 하라고 한 뒤에 게송을 읊었다.

금년에 65세인데
4대大가 주인을 떠나려 하네.
그 도는 스스로 현묘하고 현묘하니
거기에는 부처도 조사도 없네.
今年六十五    四大將離主
其道自玄玄    箇中無佛祖

머리도 깎지 말고
목욕도 시키지 말고
한 무더기 사나운 불길이면
천만 번 만족하리라.
不用剃頭    不須澡浴  
一堆猛火    千足萬足

게송을 마치고는 단정히 앉아서 한 발을 드리우고 떠났다. 화장을 마치고 사리를 거두어서 견고堅固 선사의 탑 왼쪽에다 조그만 부도를 세우고 봉안하니, 세상 수명은 65세였다.

앞의 예주澧州 협산夾山 선회善會 선사의 법손

예주澧州 악보산樂普山 원안元安 선사
봉상부鳳翔府 인유麟遊 사람으로서 성은 담淡씨이다. 어린 나이에 출가하여 고향의 회은사懷恩寺 우祐 율사에 의해 머리를 깎고 계를 받은 뒤에 경과 논을 통달하였다. 그러다가 취미翠微와 임제臨濟에게 처음으로 도를 물었는데, 임제는 언제나 대중 앞에서 다음과 같이 칭찬하였다.
“임제 문하의 화살 하나를 그 누가 감히 맞서겠는가?”
대사는 인가를 받고 나자 스스로 족하다고 여겨서 바로 협산夾山에 가서 암자를 세웠다. 나중에 협산夾山에게서 편지가 왔는데 열어 보고는 깜짝 놀랐다. 그는 암자를 버리고 협산에게 가서 절을 하고 단정히 섰는데, 협산이 말했다.
“닭이 봉鳳의 둥지에 서식하니, 똑같은 종류가 아니다. 나가라.”
대사가 말했다.
“먼 곳에서 덕화를 흠모하고 찾아왔으니, 스님께서 한번 지도해  주십시오.”
“눈앞에 그대가 없고, 여기에는 노승이 없다.”
“틀렸습니다.”
“가만히 있어라. 그대는 너무 경솔히 굴지 말라. 계곡과 산은 저마다 다르지만, 구름과 달은 같다. 그대가 천하 사람의 혀끝에 앉아서 판단하는 일은 없지 않겠으나, 어찌 혀가 없는 사람으로 하여금 말을 알아듣게 하겠는가?” 
대사가 멍하니 대답하지 못하자, 협산이 때렸다. 대사는 이로부터 몇 해 동안을 섬겼다.[흥화興化가 대신 말하기를 “부처가 되면 중생 걱정은 말라”고 하였다.]
어느 날 대사가 협산에게 물었다.
“부처도 마귀도 이르지 못하는 곳을 어떻게 체득하겠습니까?”
“촛불은 천 리 밖의 상像을 밝히는데, 어두운 방 안의 노승이 제 홀로 미혹한다.”
또 물었다.
“아침 해가 이미 솟았고 저녁 달이 나타나지 않았을 때는 어떠합니까?”
협산이 대답했다.
“용이 바다의 구슬을 물고 있으나, 노니는 물고기는 돌아보지도 않는다.”
협산이 입멸하려 할 적에 대중에게 말했다.
“석두石頭의 한 가지를 살피고 살펴라. 곧 사라지리라.”
대사가 이에 대답했다.
“그렇지 않습니다.”
“왜 그런가?”
“스스로 청산青山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이 그렇다면 나의 도는 멸망치 않으리라.”
협산이 세상을 떠난 뒤에 대사는 잠양涔陽에 갔다가 고향 사람을 만났다. 그에게 무릉武陵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니까 고향 사람이 물었다.
“훌훌히 지난 몇 해 동안을 어디서 피난을 하셨소?”
“다만 시끄러운 곳에만 있었소.”
“왜 사람 없는 곳으로 가지 않았소?”
“사람 없는 곳에는 무슨 어려움이 있는가?”
“시끄러운 곳에서 어떻게 피난을 합니까?”
“비록 시끄러운 곳에 있으나 사람들이 알아채지 못하오.”
고향 사람이 어리둥절하였다. 이어서 그가 또 물었다.
“듣건대 서천西天에 28조祖가 있지만 중국에 와서는 한 사람이 한 사람에게만 전했다 하는데, 그들 서로가 간곡한 말을 하지 않았다면 어떠했을까요?”
“촌 늙은이의 문 앞에서는 조정의 일을 이야기할 것이 못되오.”
“그러면 무엇을 이야기하리까?”
“아직 헤어진 자를 만나지 못했다면 끝내 주먹을 펴지 않소.”
“조정에서 오지 않은 이를 만나도 이야기를 나누겠습니까?”
“국량局量을 벗어난 기틀을 쓸데없이 목격하는구나.”
그 스님은 대답이 없었다.

대사는 이어 예양의 악보산으로 가서 조용히 살다가 나중에 낭주朗州의 소계蘇谿로 옮기니, 사방에서 참선하는 무리가 모였다. 이에 대중에게 보였다.
“맨 마지막의 한마디에 비로소 마지막 관문에 이르나니, 요긴한 길목을 지키고 앉았노라면 범부도 성인도 통하지 못한다. 상류上流의 선비를 알고자 하는가? 조사나 부처의 견해를 이마에다 붙여서 마치 신령스러운 거북이 등에다 그림을 진 것 같게 하지는 말라. 이는 스스로 목숨을 잃는 근본이 된다.”
또 말했다.
“남쪽을 가리키는 외길은 지혜로운 이라야 소통할 줄 안다.”
“별안간 볼 때에는 어떠합니까?”
“새벽 별이 서광의 빛깔을 보이지만 어찌 태양 빛만 하리오?”
“이렇게 와도 세우지 못하고 이렇게 가도 없애지 못할 때는 어떠합니까?”
“땔나무를 파는 나무꾼은 비단옷을 귀하게 여기지만 도인은 가볍게 여긴다.”
“경에 말하기를 ‘백천百千의 부처님께 공양하는 것이 하나의 수행도 없고 깨달음도 없는 자에게 공양하는 것만 못하다’고 하였으니, 백천 부처님에게는 무슨 허물이 있고, 수행도 깨달음도 없는 자에게는 무슨 공덕이 있습니까?”
“한 조각 흰 구름이 골짜기 입구에 걸리니, 밤에 돌아갈 둥지를 헷갈린 새들이 얼마나 많던가?”
“해가 돋기 전에는 어떠합니까?”
“바다에 물이 마르자 용은 그대로 숨고, 은하수에 구름이 뭉게뭉게 피어오르니 봉황도 따라서 난다.”
“어떤 것이 본래의 일입니까?”
“한 알의 씨앗이 거친 밭에 떨어지니 김을 매지 않아도 싹이 잘 자란다.”
“한결같이 김을 매지 않으면 풀 속에 매몰되지 않겠습니까?”
“살과 뼈[肌骨]는 꼴[芻蕘]과는 다르고, 피[稊稗]는 끝내 벼가 될 수 없다.”
“사물의 생명을 상하지 않는 것은 어떠합니까?”
“눈병으로 산 그림자가 굴러가니, 미혹한 이가 공연히 방황한다.”
“고금古今을 이야기하지 않을 때는 어떠합니까?”
“신령스런 거북도 괘의 징조[兆]가 없거늘 빈껍데기를 부질없이 뚫지 말라.”
“밝음과 어두움을 내걸지 않을 때에는 어떠합니까?”
“현묘함 속에서는 말하기 쉬우나 뜻을 벗어난 것은 제기하기 어렵다.”
“여래의 집에 태어나지 않고 화황華王 화려한 왕위를 말한다.
의 자리에 앉지 않을 때에는 어떠합니까?”
“그대는 화로火鑪의 무게가 얼마나 된다고 말하는가?”
“조사의 뜻과 교리의 뜻이 같습니까, 다릅니까?”
“사자의 굴속에는 다른 짐승이 없고, 코끼리가 지난 곳에는 여우의 발자취가 끊어진다.”
“행行이 부사의不思議한 곳에 이르면 어떠합니까?”
“청산靑山은 항상 발을 드는데, 밝은 해는 조금도 옮기지 않는다.”
“몽땅 시든 거친 밭에 홀로 서 있는 일은 어떠합니까?”
“백로[鷺]가 눈 쌓인 둥우리에 깃든 것은 그나마 가리기 쉬우나, 까마귀가 칠漆에 뛰어들어서 서 있는 것은 분간하기 어렵다.”
“어떤 것이 손님과 주인을 한꺼번에 이야기하는 것입니까?”
“마른나무에 곁가지가 없어서 새가 와도 발붙이기 어렵다.”
“종일 몽롱朦朧할 때에는 어떠합니까?”
“보배를 모래밭 속에 던지니, 알아챈 이는 천연스럽게 이상히 여긴다.”
“그러면 손을 벌리고도 스님을 만나지 못하겠습니다.”
“학의 울음을 꾀꼬리 소리로 잘못 듣지 말라.”
“원이삼점圓伊三點은 사람들이 모두 소중히 여기는데, 악보산樂普山의 가풍은 어떠합니까?”
“우레 소리가 한 번 진동하니, 북소리는 저절로 사라진다.”
“한낮일 때는 어떠합니까?”
“한낮이라도 오히려 반은 이지러졌다. 해가 넘어가야 비로소 둥글어진다.”
“어떤 것이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삽삽颯颯 까슬까슬한 모습이다.
한 마루 끝의 대나무는 서리를 거쳐도 스스로 추위를 모른다.”
스님이 다시 물으려 하니, 대사가 말했다.
“다만 바람이 소리만 들릴 뿐, 몇 천 줄기[竿]인지는 전혀 모른다.”

대사가 상당하여 대중에게 말했다.
“손빈孫賓이 점포를 거두고 떠났으니, 점칠 자는 나오너라.”
이때에 어떤 스님이 나서서 말했다.
“화상께서 한 괘 풀어 주십시오.”
대사가 대답했다.
“그대의 집에서 그대의 아버지가 죽었다.”
그 스님이 대답이 없었다.[법안法眼이 대신 손바닥으로 세 차례 내리쳤다.]

“어떤 것이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대사가 선상을 두드리면서 말했다.
“알겠는가?”
“잘 모르겠습니다.”
“하늘에서 홀연히 우레가 진동하여 우주가 놀라는데, 우물 안의 두꺼비는 고개도 들지 않는다.”
“악마도 부처도 이르지 못하는 곳을 어떻게 가려냅니까?”
“연야달다는 머리를 잃은 것이 아닌데, 거울 속의 것을 잘못 알았다.”
“어떤 것이 생사를 여의도록 구원하는 것입니까?”
“물그릇을 잡고 구차히 목숨을 늘리는 자는 하늘 음악의 묘함을 듣지 못한다.”
“4대大는 어떻게 해서 있습니까?”
“조용한 물에는 본래 물결이 일지 않거늘 물거품이 바람결에 일어난다.”
“물거품이 꺼져서 물로 돌아갈 때에는 어떠합니까?”
“섞이거나 혼탁하지 않아서 물고기와 용이 마음대로 뛰논다.”
“생사의 일이 어떠합니까?”
“일념一念에 기틀을 잊으니, 태허太虛에 티가 없다.”
“어떤 것이 도입니까?”
“기틀(기계)을 간직하면 오히려 자취에 막히고, 말뚝(기계의 고동)을 버리면 통하는 길이 있다.”
“어떤 것이 한 창고[一藏]에다 다 갈무리하지 못하는 것입니까?”
“비가 북돋우니 세 가지 풀이 빼어나고, 옥은 본래부터 빛나고 있다.”
“한 가닥의 털이 큰 바다를 다 삼킨다는데, 거기에 다시 무슨 말이 있겠습니까?”
“집안에 백택白澤 신화에 나오는 짐승, 모든 일을 잘 안다.
의 그림이 있으니, 반드시 그러한 요괴는 없을 것이다.”[보복保福이 따로 말하기를 “집안에 백택의 그림이 없어도 그러한 요물은 반드시 없으리라”고 하였다.]
“응연凝然 척 얼리는 모습이다.
할 때에는 어떠합니까?”
“때때로 우레가 시절에 응하니, 산봉우리를 흔들고 개구리를 놀라게 한다.”
“천만 가지 운동이 이 응연과 다르지 않을 때에는 어떠합니까?”
“신령스런 학은 허공 밖을 날지만, 둔한 새는 둥우리를 여의지 못한다.”
“그 일이 어떠합니까?”
“백발노인이 소년에게 절하는 일은 온 세상 사람이 믿기 어렵다.”
“여러 성인들이 이렇게 오시면 무엇으로 공양하십니까?”
“토숙土宿이 비록 석장錫杖을 짚었으나 바라문은 아니다.”
“조사의 뜻과 교리의 뜻이 같습니까, 다릅니까?”
“해와 달이 함께 하늘을 구르는데, 뉘 집에만 따로 길이 있겠는가?”
“그렇다면 드러나고 숨음의 길이 달라서 일이 한 가닥이 아니겠습니다.”
“스스로 염소를 잃지만 않았다면 어찌 기로岐路에서 울 필요가 있으랴?”
“학인이 고향으로 돌아가려 할 때에는 어떠합니까?”
“집도 부서지고 사람도 죽었는데, 그대는 어디로 돌아가려 하는가?”
“그러면 돌아가지 않겠습니다.”
“뜰 앞에 남은 눈은 해가 녹이겠지만, 방안에 돌아다니는 먼지 뉘라서 없애랴?”
“움직임[動]은 법왕의 싹이요, 고요함[寂]은 법왕의 뿌리라 하는데, 뿌리와 싹은 묻지 않겠지만 무엇이 법왕입니까?”
대사가 불자를 드니, 스님이 말했다.
“그것도 역시 법왕의 싹입니다.”
“용이 동굴에서 나오지 않으면 누가 어찌하겠는가?”
대사가 두 산에서 개당한 법어가 제방에 널리 퍼졌다. 

당나라 광화光化 원년元年 무오戊午 가을 8월에 소임을 보는 스님을 불러서 경계하였다.
“출가의 법에는 물건을 오래 남겨두지 않는다. 씨를 뿌릴 때에는 마땅히 일을 줄이고 살펴서 이리저리 얽어매는 잡무는 모두 멈춰라. 세월은 너무나 빠르고 대도大道는 깊고 현묘하니, 만일 그럭저럭 보낸다면 어떻게 깨달아 체득할 수 있으랴?”
이와 같이 간절히 격려했으나 대중은 늘 있는 일이라고 하면서 전혀 주의하지 않았다. 그 해 겨울이 되어서 약간의 병이 났으나, 물으러 온 이들을 지도하기에 게을리 하지 않다가 12월 1일에 대중에게 고했다.
“나는 내일이 아니면 모레에 떠난다. 이제 한 가지 일을 그대들에게 묻겠으니, 만일 그것을 옳다고 하면 머리 위에 다시 머리를 포개는 것이요, 그것을 옳지 않다고 하면 머리를 끊고서 살기를 구하는 것이다.”
이때에 제1 상좌가 대답했다.
“청산은 발을 들지 않고, 밝은 낮에는 등불을 들지 않습니다.”
“이것이 어떤 시절인데 그런 말을 하는가?”
이때에 언종彦從 상좌가 따로 대답했다.
“이 두 갈래를 떠났으니, 화상께서는 더 묻지 마십시오.”
“맞지 않았다. 다시 말해라.”
“언종도 다하지 않음을 말했습니다.”
“나는 그대가 다하든 다하지 않든 상관하지 않는다.”
“언종에게는 화상의 말씀에 대답할 시자가 있지 않습니다.”
대사가 하당下堂하였다. 
그날 밤 시자를 시켜서 언종을 불러다 놓고 물었다.
“그대가 오늘 나에게 대답한 것이 매우 도리가 있다. 그대의 말에 의하건대 분명히 선사先師의 뜻을 체험했다. 선사께서 말씀하시기를 ‘눈앞에는 법이 없고 뜻이 눈앞에 있을 뿐이니, 눈앞의 법은 귀나 눈이 미치는 곳이 아니다’라고 하셨는데, 어느 구절이 주인인 구절이라 여기는가? 만일 가려낸다면 의발衣鉢 주머니를 전해 주리라.”
“언종은 모릅니다.”
“그대는 알 것이니, 말이나 해보라.”
“언종은 진실로 모릅니다.”
대사가 할을 하여 내쫓고 말했다.
“괴롭구나, 괴로워.”[현각玄覺이 말하기를 “언종彦從 상좌가 참으로 모르는가? 아니면 의발 주머니에 집착될 것이 두려워서인가?”라고 하였다.]
그 달 2일 오시午時에 다른 스님이 앞의 이야기를 들어서 대사에게 물으니, 대사가 스스로 대신 대답하였다.
“자비의 배[慈舟]는 맑은 물결 위에서 노를 젓지 않고, 검의 골짜기[劍峽]에서는 헛되이 나무오리[木鵝]만을 놓았다.” 검협劍峽은 험준한 성이요, 나무오리[木鵝]는 수隋․당唐 때부터 있던 성을 공격하는 무기의 일종이니, 험준한 검협에는 이 나무오리의 공격도 아무런 효력이 없었다는 말이다. 

그리고는 이내 입적하니, 수명은 65세이고 법랍은 46세였다. 탑은 절의 서북쪽 모퉁이에 세웠다.

홍주洪州 상람上藍 영초令超 선사
처음에는 균주筠州의 상람산上藍山에 있으면서 협산夾山의 선법을 설하니, 배우는 무리가 많이 모였다. 나중에는 홍주에다 선원을 짓고 살면서 상람上藍이라 부르니, 교화가 더욱 번성하였다.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상람의 본분의 일입니까?”
“천 성인에게도 빌리지 않았거늘 어찌 만 가지 기틀에서 구하랴?”
“구하지도 않고 빌리지도 않을 때에는 어떠합니까?”
“그대의 손아귀에서 들거나 놓지 않을 수 있겠는가?”
“칼날 앞에서 어떻게 일을 가려내겠습니까?”
“칼날 앞에서 그림자가 드러나지 않았으니, 혀끝에서 찾지 말라.”
“두 용이 구슬을 다투는데 어느 쪽이 얻습니까?”
“그 구슬이 땅에 두루하지만 눈에는 진흙처럼 보이니라.”
“선재善財가 문수文殊를 만난 뒤에 다시 남쪽으로 간 뜻이 무엇입니까?”
“배움은 입실入室에 의지해야 비로소 알아서 방향을 통달한다.”
“어째서 미륵이 문수에게 보내서 보게 했습니까?”
“도가 넓어서 끝이 없으니, 만나는 사람 또한 다함이 없다.”
당나라 대순大順 경술庚戌 정월 초에 대중을 불러 모으고 말했다.
“내가 본래 머물기로 잡은 시한이 10년이었다. 이제 교화의 일이 끝났으니 떠나야겠다.”
그리고는 보름달 공양을 마치고 종소리를 들으면서 단정히 앉아 영원히 떠나니, 시호는 원진元眞 대사이고 탑호는 본공本空이었다.

운주鄆州 사선四禪 화상
어떤 스님이 물었다.
“옛사람들은 청하는 이가 있으면 저버리지 않았습니다. 이제 화상께 우물에 드시기를 청하오니, 가시겠습니까?”
대사가 대답했다.
“깊고 깊어서 딴 근원이 없건만, 마시는 이는 온갖 근심을 멸한다.”
“어떤 것이 화상의 가풍입니까?”
“그 속에 있는 사람의 뜻을 알자면, 모름지기 달빛의 차가움을 알아야 한다.”

강서江西 소요산逍遙山 회충懷忠 선사
어떤 스님이 물었다.
“비슷하지 않은 구절을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 있습니까?”
“혹은 닷새의 공양 이전이거나 혹은 닷새의 공양 이후이다.”
“칼과 거울이 밝고 날카로운데 털끝만치라도 어떻게 미혹되겠습니까?”
“불공견삭不空羂索이니라.”
“큰 화로의 맹렬한 불길이 어떤 물건을 삶아서 단련하겠습니까?”
“부처와 조사를 삶는다.”
“부처와 조사를 어떻게 삶습니까?”
“업業이 그 속에 있다.”
“무엇을 업이라 합니까?”
“부처님의 힘도 그만은 못하니라.”
“49년 동안 한마디도 말씀하시지 않았다고 하는데, 어떤 것이 한마디 말씀도 하지 않은 것입니까?”
“신발 한 짝을 들고 서쪽으로 간 도인은 돌아보지도 않았느니라.”
“그것이 화상께서 멈추실 자리가 아니겠습니까?”
“말[馬]이 관가의 말이니 마패[印]를 쓸 필요가 없다.”
“어떤 것이 한편으로는 늙는데, 한편으로는 늙지 않는 것입니까?”
“3종從과 6의義이니라.”
“어떤 것이 기특한 한 구절입니까?”
“부처님의 평상에 앉아서 부처님의 밑동을 찍는다.”
“조사와 부처 어느 쪽과 더 친합니까?”
“순금과도 바꾸려 하지 않거늘 뉘라서 진흙덩이와 바꾸려 하겠는가?”
“그렇다면 긍정하지 않음이 있습니다.”
“그대는 귀한데, 나는 비천하구나.”
“어떤 것이 만년 묵은 소나무에 검을 달아 둔 것입니까?”
“틀린 말로는 미칠 수 없다.”
“마땅히 무엇을 해야 합니까?”
“그저 그대가 이야기하라.”
“언어 밖의 일을 어떻게 밝힐 수 있습니까?”
“날이 오래고 해가 쌓이다 보니 힘줄과 뼈만 앙상하다.”
“마군魔軍을 대적하지 않고서 어떻게 도를 증득하겠습니까?”
“바닷물은 표주박으로는 푸지 못한다.”
“구름 있는 산에는 머물지 않고, 항상 밑바닥 없는 배에만 거처할 때에는 어떠합니까?”
“과일이 익는 것은 저절로 그러하다.”
“다시 한 번 말씀해 주십시오.”
“문 앞의 것이 참다운 불제자이다.”
“학인은 어째서 보지 못합니까?”
“곳곳마다 왕王 노사老師이다.”

원주袁州 반룡산盤龍山 가문可文 선사
어떤 스님이 물었다.
“죽은 스님이 천화遷化하면 어디로 갑니까?”
“돌소[石牛]가 강가의 길을 따라 가고, 대낮에 야명등夜明燈을 밝히는구나.”
“어떤 것이 부처입니까?”
“어리석은 아이가 아비를 버리고 달아나는군.”
대사는 나중에 상람원上藍院에 가서 살았다.

무주撫州 황산黃山 월륜月輪 선사
그는 복주福州의 복당福唐 사람으로서 성은 허許씨이다. 15세[志學之歲]에 고향에 있는 황벽산黃檗山에 가서 관觀 선사에게 귀의하여 교법과 계법을 받고, 행각을 떠나 도수塗水에 가서 삼봉三峰 화상을 만났다. 비록 문답에 조리가 있었으나 기연機緣이 맞지 않았다. 
이윽고 협산夾山에서 성대한 교화를 듣고서 찾아가 뵈니, 협산이 물었다.
“이름이 무엇인가?”
“월륜月輪입니다.”
협산이 동그라미 하나를 그려 놓고 물었다.
“이것과 어떻게 닮았는가?”
“화상의 그런 말씀을 제방諸方에서는 아무도 긍정하지 않습니다.”
“나는 그렇다 치자. 그대는 어떤가?”
“월륜을 보기는 하셨습니까?”
“그대는 그렇게 말하나, 요즘의 제방 사람은 아무도 긍정하지 않는다.”
이에 대사는 가르침을 받아 지니고서, 자주 묻고 배웠다.

어느 날 협산이 소리 높여 물었다.
“그대는 어디 사람인가?”
“민중閩中 사람입니다.”
“나를 알겠는가?”
“화상께서도 저를 아시겠습니까?”
“그렇지 않다. 그대는 먼저 나에게 짚신 값을 갚아라. 그런 뒤에 나는 그대에게 강릉江陵의 쌀값을 갚으리라.”
“저 화상을 알지도 못하고, 강릉의 쌀값이 얼마인지도 확실히 모릅니다.”
“그대는 사자후를 잘 하였다.”
그리하여 협산에게 입실하여 수기를 받고는 그에게 의지해 있다가 7년 만에 하직하였다. 무주의 용제산龍濟山에 가서 자리를 잡으니, 배우는 자들이 구름같이 모였다. 대사가 마침내 여기서 협산의 심오한 종지를 펴니, 명성이 제방에 뻗쳤다. 나중에 임천臨川으로 돌아가 기꺼이 황산黃山에 머물렀다. 
대중에게 말했다.
“내가 이 산에 살기 시작한 이래로 자못 본래의 뜻에 맞았다.”
대사는 이어 상당하여 대중에게 말했다.
“조사께서 서쪽에서 오셔서 특별히 이 일을 제창하셨거늘, 여러분들이 알지 못하고 밖을 향해 구하느라고 흙탕물 속에서 구슬을 찾고 형산荊山에 가서 옥을 뒤진다. 그래서 문으로 들어오는 것은 집안의 보배가 아니라고 말한 것이니, 그림자를 머리로 인정하니 어찌 큰 잘못이 아니랴?”
이때에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조사의 뜻입니까?”
“양전梁殿에는 공功을 들이지 않고, 위방魏邦과는 마음 자취가 끊어졌다.”
“어떤 것이 도입니까?”
“돌소[石牛]는 자주 삼춘三春의 안개를 뿜고, 나무말[木馬]이 우는 소리가 길거리에 가득하다.”
“어찌하여야 본래의 면목을 보겠습니까?”
“돌거울[石鏡]을 매달려고 애를 쓰지 말지니, 날이 새면 자연히 닭이 운다.”
“종문의 한 구절을 스님께서 헤아려 주십시오.”
“황산 봉우리가 홀로 초탈하여 사물 밖에 빼어나고, 해가 오고 달이 가매 냉기가 으스스하다.”
“분별치 않는 말을 어떻게 지적해 냅니까?”
“칼을 잃은 지가 오랜데 이제야 뱃전에다 표시를 하는가?”
“어떤 것이 법복 밑의 일입니까?”
“돌소가 물 위에 누웠으니, 동서남북을 마음대로 다닌다.”
“어떤 것이 눈앞의 일입니까?”
“가을바람은 여운이 있고, 조각달은 안 비추는 곳이 없다.”
“어떤 것이 학인이 마음을 쓸 곳입니까?”
“깨달음의 문은 가리지 않았으니, 달을 대하여 미혹하지 말라.”
“어떤 것이 푸른 하늘의 길[靑霄路]입니까?”
“학이 구름 밖의 나무에 깃드니, 괴로운 풍상風霜이 그칠 줄 모른다.”
“과거의 일이 어떠합니까?”
“용이 맑은 못에서 울부짖으니, 물결이 저절로 쉰다.”
대사가 황산에 있은 지 모두 13년 동안 배우는 자가 왔다가 헛되이 간 적이 없었다.
이후 당唐의 동광(同光, 925) 3년 12월 21일에 약간의 병이 났다가 그 달 26일 오시午時에 단정히 앉아서 떠나니, 수명은 72세이고 법랍은 53세였다. 이듬해 정월 20일에 선원의 서북 모퉁이에다 탑을 세웠다.

낙경洛京 소산韶山 환보寰普 선사
어떤 스님이 와서 뵙고 절을 한 뒤에 서 있자, 대사가 말했다.
“천재가 못난이 집에 숨었구나.”
그 스님이 앞을 지나서 한쪽에 가서 서 있자, 대사가 말했다.
“대들보 재목을 하나 잃었구나.”

준포납遵布衲이 산 밑에서 대사를 만나서 물었다.
“소산韶山이 어디쯤입니까?”
“푸르디푸른 울창한 곳이다.”
“다만 그것 뿐은 아니겠죠?” 
“그렇기는 하나 그대에게 무슨 일이 있는가?”
“제가 한 가지 묻고자 하는데 대답해 주시겠습니까?”
“그대를 보니, 황금 어금니로 된 사람이 아니거늘, 어찌 활을 당겨 위지尉遲 종족의 이름이다.
를 쏠 줄 알겠는가?”
“봉황은 곧바로 구름 속으로 날아갔거늘, 그 누가 숲속의 들까치를 두려워하겠습니까?”
“망루 위에 달린 그림이 그려진 북을 그대 뜻대로 쳐서 나와 같은 가풍을 펼쳐 보아라.”
“한 구절이 고금의 격식을 초월하지만, 송라(松蘿:머루 덩굴)가 달 바퀴와 더불어 가지런하지는 못합니다.”
“설사 그대가 곧바로 위음왕부처님 밖으로 뛰쳐나왔다 해도 여전히 소산韶山에 오기까지는 보름의 여정이 있다.”
“허물이 어디에 있습니까?”
“거리낌 없는 말은 요즘 사람들도 알고 있다.”
“그렇다면 참된 옥은 진흙 속에서도 다르므로 만기萬機의 티끌을 배척하지 않습니다.”
“노반(魯般:노나라에 재주가 매우 뛰어난 사람)의 문하에서 헛되이 재주를 부리는구나.”
“저는 그렇거니와 스님의 뜻은 어떠합니까?”
“옥녀玉女가 밤에 북[梭]을 던지고 서쪽 집에서 비단을 짠다.”
“그것은 화상의 가풍이 아닙니까?”
“밭가는 농부가 보습 자루[玉漏]를 놓으니,[󰡔경공사원卿公事苑󰡕에 말하기를 “옥루玉漏는 마땅히 옥루玉耬로 써야 하나니, 루耬는 보습 자루<犁>이다. 농부가 보습을 쓰는 까닭은 씨를 뿌리기 위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선록禪錄󰡕에서 말한 “보습을 보면서 보습을 친다”고 한 것이 이것이다. 󰡔위략魏略󰡕에 말하기를 “황보음皇甫陰이 돈황燉煌 태수太守로 있을 때에 백성들이 밭 갈기와 씨뿌리기를 모르므로 백성들에게 보습 만드는 법을 가르쳐 주니 힘이 반이나 적게 들었다. 그러나 보습은 여전히 내륙지방의 농구로서 남쪽 사람들은 대체로 모르니, 이 때문에 여기서 자세히 밝힌다.] 능숙한 이[行家]의 행위는 아니다.”
“그것은 역시 말과 글입니다. 어떤 것이 화상의 가풍입니까?”
“몸을 가로누워 우주를 상대하니, 누가 머리를 내민 사람인가?”
임종한 뒤에 시호를 무외無畏 선사라 하였다.

태원太原 해호海湖 화상
어떤 사람이 관정灌頂 삼장을 청해서 공양하려고 자리를 펴니, 대사(해호)가 그 자리에 앉아 버렸다.
이때에 운섭雲涉이라는 좌주坐主가 있다가 물었다.
“화상은 몇 해나 도를 닦았습니까?”
대사가 말했다.
“좌주여, 가까이 오라.”
운섭이 가까이 다가서니, 대사가 말했다.
“교진여憍陳如는 몇 해나 도를 닦았는가?”
운섭이 물끄러미 서 있자, 대사가 꾸짖었다.
“이 오줌싸개야.”

어떤 스님이 물었다.
“화상의 선원에는 왜 사람이 적고, 정수定水 화상의 선원에는 왜 사람이 많습니까?”
대사가 대답했다.
“풀이 깊으니 들 사슴[野鹿]이 많고, 암벽이 높으니 해태[獬豸]들이 드물다.”

가주嘉州 백수사白水寺 화상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대사가 대답했다.
“사해에 굴택窟宅이 없지만 한 방울 물로 천지를 적신다.”
“조계曹溪의 외길에서 무슨 일을 이야기합니까?”
“시냇가의 천년 묵은 소나무에는 학이 모이고, 달 속의 향기로운 계수나무에는 봉황이 돌아온다.”

봉상鳳翔 천개산天蓋山 유幽 선사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천개산天蓋山의 물입니까?”
“사해四海에는 넘쳐흘러도 물방울[涓滴]에는 침범하지 않는다.”
“학인이 경經을 보려고 하는데 어떻습니까?”
“이미 큰 상인[大商]이 되었는데 어찌하여 조그만 이익을 구하는가?”

홍주洪州 건창建昌 봉서산鳳棲山 동안同安 화상[제1세 주지]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화상의 가풍입니까?”
“금빛 닭이 알을 품고 은하수로 돌아가고, 옥빛 토끼가 새끼를 배고 자미紫微 별로 들어간다.”
스님이 말했다.
“홀연히 나그네가 오면 어떻게 대하시겠습니까?”
“황금 과일을 이른 아침에 원숭이가 따러 가고, 옥빛 꽃은 밤늦게 봉황새가 물어 온다.”
“종일토록 못에 있었는데 왜 고기를 낚지 못했습니까?”
“현묘한 근원은 무생無生의 보배를 숨기지 않나니, 부질없이 푸른 못에다 낚시를 드리우지 말라.”
“맑은 기틀의 한 구절이 밝게 드러났는데도 만나지 못할 때에는 어떠합니까?”
“태양의 문하에는 별도 달도 없고, 천자의 대궐 앞에는 가난한 아이가 없다.”
“어떤 것이 동안同安이 몸을 굴릴[轉身] 곳입니까?”
“광겁토록 옥로玉露에 잠긴 일이 없는데, 눈앞에서 어찌 태양의 기틀에 걸리랴?”
“험악한 길을 어떻게 나아갑니까?”
“현묘한 몸이 천 갈래 길을 투과하지만, 푸른 바다에는 파도가 없으니 가기가 어렵다.”
“어떤 것이 법복 밑의 일입니까?”
“한 조각 밝은 달은 예나 지금이나 여전하니, 어찌 어부들이 밤에 낚시를 드리운 것과 같으랴?”
“어떤 것이 크게 부끄러움이 없는 사람입니까?”
“공왕空王은 무생전無生殿에 앉지 않고, 가섭당迦葉堂 앞에서는 등불을 켜지 않는다.”


경덕전등록 제17권






길주吉州 청원산靑原山 행사行思 선사의 법손 

제5세 밑의 26인

원주袁州 동산洞山 양개良价 선사의 법손 26인
홍주洪州 운거산雲居山 도응道膺 선사
무주撫州 조산曹山 본적本寂 선사
동산洞山 제2세 도전道全 선사
호남湖南 용아산龍牙山 거둔居遁 선사
경조京兆 화엄사華嚴寺 휴정休靜 선사
경조京兆 현자蜆子 화상
균주筠州 구봉九峰 보만普滿 대사
태주台州 유서幽棲 도유道幽 선사
동산洞山 제3세 사건師虔 선사
낙경洛京 백마白馬 둔유遁儒 선사
월주越州 건봉乾峰 화상
길주吉州 화산禾山 화상
명주明州 천동산天童山 함계咸啓 선사[11권에 목록만 있고 전하는 것은 없음]
담주潭州 보개산寶蓋山 화상
익주益州 북원北院 통通 선사
고안高安 백수白水 본인本仁 선사
무주撫州 소산疎山 광인光仁 선사
예주澧州 흠산欽山 문수文邃 선사 
  [이상 18인은 기록에 보임]
명주明州 천동산天童山 의義 선사
태원太原 자성資聖 방方 선사
신라국新羅國 금장金藏 화상
익주益州 백白 선사
담주潭州 문수文殊 화상
서주舒州 백수산白水山 화상
소주邵州 서호西湖 화상
청양靑陽 통현通玄 화상
  [이상 8인은 기연할 어구가 없으므로 기록하지 않음]

제6세 43인

악주鄂州 암두巖頭 전활全豁 선사의 법손 9인
태주台州 서암瑞巖 사언師彦 선사
회주懷州 현천玄泉 언彦 선사
길주吉州 영암靈巖 혜종慧宗 선사
복주福州 나산羅山 도한道閑 선사
복주福州 향계香谿 종범從範 선사
복주福州 나원羅源 성수聖壽 엄嚴 선사
  [6인은 기록에 보임]
홍주洪州 대녕大寧 해일海一 선사
신주信州 아호산鵝湖山 소韶 화상
홍주洪州 대녕大寧 눌訥 화상 
  [이상 3인은 기연할 어구가 없으므로 기록하지 않음]

홍주洪州 감담感潭 자국資國 화상의 법손 1인
안주安州 백조산白兆山 지원志圓 선사
  [1인은 기록에 보임]

호주濠州 사명思明 화상의 법손 1인
양주襄州 취령鷲嶺 선본善本 선사
  [1인은 기록에 보임]

담주潭州 대광산大光山 거회居誨 선사의 법손 13인
담주潭州 곡산谷山 유연有緣 선사
담주潭州 용흥龍興 화상
담주潭州 복룡산伏龍山 제1세 화상
경조京兆 백운白雲 선장善藏 선사
담주潭州 복룡산伏龍山 제2세 화상
협부陜府 용준산龍峻山 화상
담주潭州 복룡산伏龍山 제3세 화상
  [이상 7인은 기록에 보임]
대광산大光山 현玄 선사
장주漳州 등하藤霞 화상
송주宋州 정각淨覺 화상
화주華州 숭승崇勝 증證 화상
악주鄂州 영수永壽 화상
악주鄂州 영죽靈竹 화상
  [이상 6인은 기연할 어구가 없으므로 기록하지 않음]

균주筠州 구봉九峰 도건道虔 선사의 법손 10인
신라新羅 청원淸院 화상
홍주洪州 늑담泐潭 신당神黨 선사
길주吉州 남원산南源山 행수行修 선사
홍주洪州 늑담泐潭 명明 선사
길주吉州 추산秋山 화상
홍주洪州 늑담泐潭 연무延茂 선사
홍주洪州 동안同安 상찰常察 선사
홍주洪州 늑담泐潭 오悟 선사
길주吉州 화산禾山 무은無殷 선사
홍주洪州 늑담泐潭 모牟 화상
  [이상 10인은 기록에 보임]

태주台州 용천涌泉 경흔景欣 선사의 법손 1인
태주台州 육통원六通院 소紹 선사
  [1인은 기록에 보임]

담주潭州 운개산雲蓋山 지원志元 선사의 법손 3인
운개산雲蓋山 지한志罕 선사
신라新羅 와룡臥龍 화상
팽주彭州 천태天台 화상
  [이상 3인은 기록에 보임]

담주潭州 곡산谷山 장藏 선사의 법손 3인
신라新羅 서암瑞巖 화상
신라新羅 박엄泊嚴 화상
신라新羅 대령大嶺 화상
  [이상 3인은 기록에 보임]

담주潭州 중운中雲 개산蓋山 화상의 법손 1인
운개산雲蓋山 경景 화상 
  [1인은 기록에 보임]

하중부河中府 서암棲巖 존수存壽 선사의 법손 1인
도덕道德 선사
  [1인은 기연할 어구가 없으므로 기록하지 않음]


행사行思 선사의 제5세 ③

원주袁州 동산洞山 양개良价 선사의 법손

홍주洪州 운거雲居 도응道膺 선사
그는 유주幽州 옥전玉田 사람으로서 성은 왕王씨이다. 어릴 때에 스승에 의지하여 교법을 배우다가 25세에 범양范陽의 연수사延壽寺에서 구족계를 받았다. 은사[本師]가 성문聲聞의 편취(篇聚:소승의 계율)를 익히라고 하니, 대사가 한탄하였다.
“대장부가 어찌 계율에 얽매이겠는가?”
그리고는 취미산翠微山에 가서 도를 물었다. 3년이 지났는데, 행각을 다니는 스님이 예장豫章으로부터 와서 동산洞山 양개良价 선사의 법석法席을 굉장히 칭찬하니, 대사가 드디어 그의 말을 따라 그곳으로 갔다.
동산洞山이 대사에게 물었다.
“그대의 이름이 무엇인가?”
“도응道膺입니다.”
“위로 향한[向上] 법을 한번 말해 봐라.”
“향상이라고 말하면 도응이라 이름하지 못합니다.”
“내가 운암雲巖에 있을 때에 대답하는 것과 다르지 않구나.”

나중에 대사가 물었다.
“어떤 것이 조사의 뜻입니까?”
동산이 대답했다.
“그대가 훗날 주인 노릇을 할 때에 홀연히 어떤 사람이 그대에게 물으면 무엇이라 대답하겠는가?”
“도응이 잘못했습니다.”

언젠가 동산이 대사에게 이렇게 말했다.
“내가 듣건대 사대思大 스님의 이름. 생각이 크다고 해서 사대思大라 한다.
 화상이 왜국倭國에 태어나서 왕이 되었다는데, 사실인지 알고 싶다.”
대사가 대답했다.
“만일 진실로 사대라면 부처도 짓지 않거늘 하물며 국왕이겠습니까?”
동산이 그렇다고 여겼다.

어느 날 동산이 또 물었다.
“어디를 갔다 왔는가?”
“산을 돌고 옵니다.”
“어느 산이 살만 하던가?”
“어느 산인들 살 수 없겠습니까?”
“그렇다면 나라 안이 온통 그대에게 점령을 당하겠구나.”
“그렇지 않습니다.”
“그러면 그대는 들어갈 길을 얻었구나.”
“길이 없습니다.”
“길이 없으면 어떻게 나를 보러 왔는가?”
“길이 있다면 화상과는 간격이 생깁니다.”
동산이 다시 말했다.
“이 사람은 나중에 천만 사람이 붙들어도 잡지 못하리라.”

어느 날 동산을 따라 물을 건너는데, 동산이 물었다.
“물이 얼마나 깊은가?”
대사가 대답했다.
“젖지 않습니다.”
“거친 사람이구나.”
“스님께서 말씀해 보십시오.”
“마르지 않았다.”

동산이 대사에게 말했다.
“옛날에 남전南泉이 󰡔미륵하생경彌勒下生經󰡕을 강론하는 스님에게 묻기를 ‘미륵이 언제 하생下生하는가?’라고 하니, 그가 대답하기를 ‘지금은 천궁天宮에 계시는데 장차 하생하실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이에 남전이 말하기를 ‘하늘에도 미륵이 없고 땅에도 미륵이 없다’고 하였느니라.”
그러자 대사가 얼른 이 이야기를 들추면서 물었다.
“하늘에도 미륵이 없고 땅에도 미륵이 없다면, 누가 이름을 지었습니까?”
동산이 곧바로 선상禪床이 진동함을 느끼고서 말했다.
“도응, 그대이네.”

대사가 장을 담그는데 동산이 물었다.
“무엇을 하는가?”
“장을 담급니다.”
“소금을 얼마나 넣는가?”
“저어서 넣습니다.”
“어떤 맛이 나는가?”
“되었습니다.”

동산이 물었다.
“대천제大闡提는 부모를 죽이고, 부처의 몸에서 피를 내고, 화합의 승단을 깨뜨렸는데, 이런 갖가지 죄악에 효양孝養이 어디 있겠는가?”
대사가 대답했다.
“비로소 효양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로부터 동산이 입실을 허락하여 대중 가운데서 우두머리가 되었다.

처음에 삼봉三峰에 있을 때에는 그 덕화가 넓지 못하더니, 나중에 운거산雲居山에 살기 시작하면서 사부대중이 구름같이 모였다.
어느 날 상당해서 옛사람이 ‘지옥의 고통은 아직 괴로움이 아니고, 이 가사袈裟 밑에서 큰일을 밝히지 못하고 죽는 것이 가장 괴롭다’고 한 말을 들고서 대중에게 말했다.
“그대들이 이미 이러한 수행의 무리에 있다. 10분의 9를 버렸더라도 많다고 생각지 말고 다시 작은 힘이라도 써야만 그대들의 평생 행각을 욕되지 않게 하고 총림을 저버리지 않는 것이리라. 옛사람이 말하기를 ‘이 일을 보임保任하고 싶다면 모름지기 높고 높은 산 정상에 서고, 깊고 깊은 물 밑으로 다녀야 비로소 조그마한 기력이 있는 것이다’라고 하였으니, 그대들이 이 일을 끝내지 못했다면 모름지기 현묘한 길을 밟아 나가야 한다.”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사문이 소중히 여겨야 할 바입니까?”
“심식心識이 이르지 못할 곳이니라.”
“부처와 조사는 어떤 계급이 있습니까?”
“둘 다 계급이다.”
“어떤 것이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옛 길에서 사람들을 만나지 않았느니라.”

가관可觀 상좌上座가 물었다.
“표식도 과녁도 없으니, 스님께서 빨리 지도해 주십시오.”
“바로 지금 어떠한가?”
“말하라면 없지는 않으나, 말하지 않는 것이 낫겠습니다.”
“어찌 그대뿐이겠는가?”
“어떤 것이 구결口訣입니까?”
“가까이 오라. 그대에게 말해 주리라.”
스님이 다가가서 말했다.
“말씀해 주십시오.”
“알았다, 알았어.”
대사가 효자손[癢和]을 던지면서 물었다.
“대중은 알겠는가?”
대중이 대답했다.
“모르겠습니다.”
“참새 쫓는 물건도 모르는가?”
“어찌하여야 화상을 괴롭히지 않겠습니까?”
“처덕(處德:사람 이름)을 내게로 불러다오.”
그 스님이 가서 불러오니, 대사가 말했다.
“문을 닫아다오.”
“마조馬祖는 88인의 선지식을 내었는데, 화상은 몇 사람을 내었습니까?”
대사가 손을 펴서 보였다.
“어떤 것이 향상인向上人이 밟아 나갈 곳입니까?”
“천하태평天下太平이니라.”
“놀러 나간 자식이 돌아올 때에는 어떠합니까?”
“돌아오니 반갑다.”
“무엇을 바칩니까?”
“아침에 3천 번, 저녁에 8백 번 때린다.”
대사가 대중에게 말했다.
“좋은 사냥개는 자취만을 잘 찾을 줄 아니, 홀연히 영양羚羊이 뿔을 걸고 있으면 자취만이 아니라 숨소리도 모른다.”
어떤 스님이 물었다.
“영양이 뿔을 걸었을 때에는 어떠합니까?”
“6․6이 36이니라.”
대사가 또 말했다.
“알겠는가?”
“모릅니다.”
“자취가 없다고 하지 않았는가?”[어떤 스님이 조주趙州에게 말하니 조주가 말하기를 “운거雲居 사형은 오직 있었구나”라고 하였다. 그 스님이 다시 묻기를 “영양이 뿔을 걸었을 때에는 어떠합니까?”라고 하니, 조주가 대답하기를 “6․6이 36이니라”라고 하였다.]

대중이 밤에 법문을 청하러 모였는데, 시자가 등불을 가지고 오니 그림자가 벽에 비쳤다. 이에 어떤 스님이 물었다.
“두 개가 서로 같을 때에는 어떠합니까?”
“하나는 그림자이다.”
“학인이 고향으로 돌아가고자 할 때에는 어떠합니까?”
“단지 그것뿐이다.”

신라新羅의 스님이 물었다.
“불타파리佛陀波利가 문수를 보고서 왜 돌아갔습니까?”
“다만 갖고 오지 않았기 때문에 돌아갔을 뿐이다.”

대사가 대중에게 말했다.
“불법을 배우는 사람은 못을 끊고 쇠를 자르는 기질이라야 한다.”
이때에 어떤 스님이 나서서 물었다.
“화상의 못과 무쇠를 주십시오.”
“입 속의 것은 무엇인가?”

어떤 스님이 물었다.
“경전에 말하기를 ‘이 사람은 전생의 죄업으로 의당 악도에 떨어질 것이라서 지금 사람들에게 경멸을 받는다’고 하니, 이 뜻이 무엇입니까?”
“움직이면 악도에 떨어지고, 고요하면 남에게 천대를 받는다.”[숭수崇壽 조稠가 말하기를 “마음 밖에 법이 있다 하면 악도에 떨어지고 자기의 본분만을 지키면 남에게 업신여김을 받는다”고 하였다.]
“향적세계香積世界의 밥은 누가 먹을 수 있습니까?”
“먹는 사람은 입에 들어가도 모름지기 끌어내야 함을 알아야 한다.”

어떤 스님이 방 안에서 경을 염念하는데, 대사가 창 밖에서 물었다.
“그대가 염念하는 것이 무슨 경인가?”
“󰡔유마경維摩經󰡕입니다.”
“󰡔유마경󰡕을 물은 것이 아니라, 염念하는 것이 무슨 경인가?” 
그 스님이 이로부터 깨달았다.

어떤 스님이 물었다.
“외로이 아득하고 우뚝할 때는 어떠합니까?”
“외로이 아득하고 우뚝하니라.”
“잘 모르겠습니다.”
“눈앞에 있는 안산案山도 모르는가?”

신라의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기에 그렇게 말하기가 어렵습니까?”
“말하기 어려울 것이 무엇인가?”
“화상께서 말씀해 주십시오.”
“신라新羅, 신라이니라.”
“눈 밝은 사람이 왜 칠漆처럼 검습니까?”
“괴이할 것이 무엇인가?”

형남荊南 절도사節度使 성예成汭가 대장으로 하여금 공양거리를 가지고 산으로 보내면서 그 편에 물었다.
“세존께서는 비밀한 말씀을 하셨고, 가섭은 숨기지 않았다는데, 어떤 것이 세존의 비밀한 말씀입니까?”
대사가 불렀다.
“상서尙書여.”
그 사람이 대답하니 대사가 말했다.
“알겠는가?”
“모르겠습니다.”
“그대가 모른다면 세존께서는 비밀한 말씀을 하셨고, 그대가 알면 가섭이 숨기지 않았느니라.”

어떤 스님이 물었다.
“갓난아기는 왜 아무것도 모릅니까?”
“같이 나지 않았기 때문이니라.”
“나기 전에 어떠합니까?”
“멸한 적이 없느니라.”
“나기 전에는 어느 처소에 있었습니까?”
“처소는 있으나 거두어지지 않는다.”
“어떤 사람이 멸함을 받습니까?”
“멸할 수 없는 자이니라.”

대사가 대중에게 말했다.
“그대들 스님들은 말을 하거나 기염을 토하려면 반드시 까닭이 있어야 하고, 무릇 일을 물을 때에는 모름지기 좋고 나쁨, 높고 낮음, 귀하고 천함을 알아야 한다. 멋대로 지껄여서는 이익이 없거늘 가는 곳마다 옆집의 비슷한 말만을 찾는다. 그래서 평상시에 항상 그대들에게 말하기를 ‘비슷하지 않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한 것이니, 똑같이 배운 것이 너무 많을까 걱정하기 때문이다. 첫째로 갖고 오지를 말라. 갖고 오면 비슷하지 않다. 팔십 먹은 노인이 과거를 보러 가는 것은 아이들의 장난이 아니다. 한마디가 차이가 나면 천 리나 만 리나 어긋나서 거두기가 어려우니, 곧바로 뼈를 깨뜨려서 골수를 꺼내야 모름지기 유래가 있고, 언어가 가위처럼 서로 맞물려서 끊이지 않아야 비로소 옳다. 가지가지마다 갖추고, 물건 물건마다 새로우니, 이 정밀함으로 묘함을 얻는 일이 아니겠는가? 
그대에게 말하나니, 앎이 있는 이는 끝내 차례를 따르지 않기에 열 차례를 말하려 하다가도 아홉 차례를 쉰다. 왜 그렇겠는가? 이익이 없을까 걱정하기 때문이다. 바로 체득한 사람은 마음이 섣달의 부채[臘月扇]와 같아서 입가에 다만 곰팡이가 피어날 뿐이지만, 이것은 그가 억지로 그런 것이 아니라 자연히 그러한 것이다. 이러한 일을 얻고자 하면 모름지기 이러한 사람이라야 하나니, 이미 이러한 사람이라면 어찌 이러한 일을 근심하랴? 부처의 변사邊事를 배운다는 것은 마음을 잘못 쓴 것이니, 설사 천 권의 경전과 만 권의 논論을 알고, 강의할 때 하늘에서 꽃이 떨어지고 돌이 고개를 끄덕인다 하여도 자기의 일과는 전혀 관련이 없거늘, 하물며 그 밖의 것이 무슨 용처用處가 있겠는가? 만일 유한有限한 심식心識으로 무한無限 속의 작용을 지으면 마치 모난 나무를 둥근 구멍에 맞추는 것과 같아서 상당히 어긋난다. 설사 꽃과 비단을 모아서 일마다 모두 완성하고 또 온갖 일을 다 할지라도 다만 일 마친 사람이요 허물없는 사람이라고 불릴 뿐이지, 끝내 존귀하다고는 부르지 않을 것이다. 장차 존귀함의 변두리라도 안다면 어떤 물건을 덧붙이겠는가? 보지 못했는가? 문으로 들어오는 것은 보배가 아니고, 방망이 위에서는 용을 이루지 못한다고 한 것을.”
대사가 이와 같이 30년 동안 깊고 묘한 진리를 강설하니, 무리들이 항상 1천5백 명에 이르러서 남창南昌 주씨周氏가 더욱 그 기풍을 흠모했다.
당나라 천복天復 원년 가을에 병이 나더니, 12월 28일에 대중에게 마지막 방편을 열어서 세상을 벗어나는 일의 시작과 마지막의 뜻을 펴니, 대중이 모두 처연해 했다. 이듬해 정월 3일에 가부좌를 맺고 입적하니, 지금도 본산本山에는 영당影堂이 남아 있다. 시호는 홍각弘覺 대사라 하였고, 탑호는 원적圓寂이라 하였다.

무주撫州 조산曹山 본적本寂 선사
그는 천주泉州 포전莆田 사람으로서 성은 황黃씨이다. 어릴 적에는 유학儒學을 흠모하다가 19세에 출가하여 복주福州의 복당현福唐縣에 있는 영석산靈石山으로 들어가서 25세에 구족계를 받았다.
당나라 함통咸通 초엽에는 선종禪宗이 융성하였다. 때마침 동산洞山 양개良价 선사가 도량에 머물러 있어서 법을 물으러 갔는데, 동산이 그에게 먼저 물었다.
“그대의 이름이 무엇인가?”
“본적本寂입니다.”
“위로 향하는 뜻으로 다시 말해 보라.”
“말할 수 없습니다.”
“어째서 말하지 못하는가?”
“본적이라고 이름 짓지 못하니까요.”
동산이 깊이 그를 그릇[器]으로 여겼다. 이로부터 대사는 동산께 입실하여 이해한 바를 인가 받고, 그 주변을 서성거리기 몇 해만에 동산을 하직하니, 동산이 물었다.
“어디로 가려는가?”
“변하지 않는 곳으로 갑니다.”
“변하지 않는다면 어찌 간다는 것이 있겠는가?”
“가더라도 변하지는 않습니다.”
그리고는 이내 하직하고 떠나서 인연 따라 방랑하였다. 처음에는 청을 받아서 무주撫州의 조산曹山에 머물다가 나중에는 하옥산荷玉山에 살았는데, 두 곳의 법석에 배우는 자들이 구름같이 모였다.
어떤 이가 물었다.
“만 가지 법과 짝이 되지 않는 이는 누구입니까?”
대사(본적)가 대답했다.
“그대는 홍주洪州에 있던 많은 사람들이 어디로 갔다고 여기는가?”
“눈썹과 눈이 서로 압니까?”
“서로 모른다.”
“어째서 서로 알지 못합니까?”
“한 곳에 같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분간치 못하겠군요.”
“그러나 눈썹은 눈이 아니니라.”
“어떤 것이 눈입니까?”
“분명[端的]한 것이니라.”
“어떤 것이 눈썹입니까?”
“나도 의심이 난다.”
“화상께서는 왜 의심을 하십니까?”
“의심하지 않는다면 분명할 것이다.”
“모습에서는 무엇이 참입니까?”
“모습 그대로가 참이니라.”
“어떻게 드러내야 합니까?”
대사가 탁자(托子:찻상)를 번쩍 들었다.
“허깨비의 근본은 무엇이 참됩니까?”
“허깨비의 근본은 원래 참되니라.”[법안法眼이 따로 말하기를 “허깨비의 근본은 참되지 않다”라고 하였다.]
“허깨비이거늘 어떻게 드러냅니까?”
“허깨비 그대로를 드러내느니라.”[법안이 따로 말하기를 “허깨비는 그대로라 할 것이 없다”라고 하였다.]
“그렇다면 시종일관 허깨비를 여의지 않았겠습니다.”
“허깨비의 모습을 도저히 찾을 수 없느니라.”
“어떤 것이 항상 존재하는 사람입니까?”
“내가 잠시 외출한 틈을 만났구나.”
“어떤 것이 항상 존재하지 않는 사람입니까?”
“그런 이는 얻기 어렵다.”

청예淸銳라는 스님이 와서 물었다.
“저는 외롭고 가난하니, 스님께서 구제해 주십시오.”
“예銳 사리闍梨야, 이리 가까이 오너라.”
청예 사리가 가까이 다가서자, 대사가 말했다.
“천주泉州 백씨 댁에서 술 석 잔을 주었는데, 아직 입술도 적시지 않았는가?”[현각玄覺이 말하기를 “그에게 술을 준 곳은 어딘가?”라고 하였다.]
“망설이는 것이 어찌 류類가 아니겠습니까?”
“설사 망설이지 않는다 해도 역시 류類이다.”
“어떤 것이 다른 종류입니까?”
“감각[痛痒]이 없는 것들이 아니겠는가.”

경청鏡淸이 물었다.
“맑고 텅 빈 이치[理]가 끝내 몸이 없을 때에는 어떠합니까?”
“이치는 그렇다 치고 현실[事]은 어떠한가?”
“이치 그대로가 현실입니다.”
“조산曹山의 한 사람쯤은 속이기 쉬우나, 온갖 성인의 눈이야 어찌하겠는가?”
“만일 온갖 성인의 눈이 없다면 어찌 그렇지 않음을 비추겠습니까?”
“법으로는 바늘 끝도 통하지 않지만, 사사롭게 수레와 말이 드나든다.”

운문雲門이 물었다.
“고쳐지지 않는 사람이 왔는데, 스님께서 지도해 주시겠습니까?”
대사가 대답했다.
“조산曹山에는 그렇게 한가로운 공부를 하는 사람이 없다.”
“옛사람이 말하기를 사람마다 모두 제자가 있다고 하는데, 전란이 났을 때도 있습니까?”
대사가 그에게 “손을 내밀어라” 하고는, 그의 손가락을 하나하나 가리키면서 말했다.
“하나․둘․셋․넷․다섯이 찼구나.”
“노조(魯祖:보운 선사)께서 벽을 향해 앉은 것은 무엇을 표현한 것입니까?”
대사가 손으로 귀를 막았다.
“듣건대 옛사람이 말하기를 ‘누구든지 땅에 쓰러지면 땅으로 인하여 일어나지 않는 이가 없다’고 하였는데, 어떤 것이 쓰러지는 것입니까?”
“긍정하는 바로 그것이니라.”
“무엇이 일어나는 것입니까?”
“일어났구나.”
“경전에 말하기를 ‘커다란 바다는 시체를 묵혀 두지 않는다’고 하였는데, 어떤 것이 바다입니까?”
“만유萬有를 포함하는 것이다.”
“어째서 시체를 묵혀 두지 않습니까?”
“호흡[氣]이 끊어진 자는 붙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미 만유를 포함한다면서 왜 호흡이 끊긴 자는 붙지 못합니까?”
“만유는 공덕이 아니요, 호흡이 끊긴 자라야 공덕이 있느니라.”
“향상向上에도 또한 일[事]이 있습니까?”
“있다고 하든 없다고 하든 무방하지만, 용왕이 칼을 어루만지는 것은 어찌하겠는가?”
“어떤 지혜를 갖추어야 대중의 어려운 물음에 잘 맞추어 대답합니까?”
“말을 드러내지 않는 것이다.”
“묻고 따지는 것은 무엇입니까?”
“칼이나 도끼로 쪼개도 들어가지 않느니라.”
“그렇게 묻고 따지는데도 긍정하지 않을 사람이 있겠습니까?”
“있다.”
“어떤 사람입니까?”
“나[曹山]다.”

어떤 이가 물었다.
“말이 없을 때에는 어떻게 드러냅니까?”
“그 속에서 드러내지 말라.”
“어디서 드러내오리까?”
“지난밤 3경更에 평상 머리에서 돈 세 닢을 잃었느니라.”
“해가 뜨기 전에는 어떠합니까?”
“나도 진작부터 이렇게 왔다.”
“해가 뜬 뒤에는 어떠합니까?”
“그래도 나는 보름 동안 갈 길[半月程]이 남았다.”

대사가 어떤 스님에게 물었다.
“무엇을 하는가?”
“마당을 씁니다.”
“부처님 앞을 쓰는가, 부처님의 뒤를 쓰는가?”
“앞과 뒤를 한꺼번에 씁니다.”
“나에게 짚신이나 갖다다오.”

대사가 강덕彊德 상좌에게 말했다.
“보살이 선정에 있으면 코끼리가 강 건너는 소리를 듣는다는 말이 어느 경전에 있는 법문인가?”
“󰡔열반경󰡕에 있습니다.”
“선정 이전에 듣는가, 선정 이후에 듣는가?”
“화상께서 떠내려가십니다.”
“이르기는 힘차게 일렀다만 이제야 절반을 얻었다고 할 수 있다.”
“화상께서는 어떠하십니까?”
“여울 밑에서 건져다오.”
“학인이 하루 종일 어떻게 보임保任해야 합니까?”
“마치 독기 있는 마을을 지난 것 같아서 물 한 방울도 젖지 않느니라.”
“어떤 것이 법신法身의 주인입니까?”
“이곳[秦]에는 사람이 없다는 말이다.”
“그것이면 문득 옳지 않겠습니까?”
“목을 벤다.”
“어떤 도반道伴을 가까이하여야 듣지 못하던 것을 항상 들을 수 있습니까?”
“한 이불을 같이 덮는 사람이니라.”
“그것은 역시 화상에게 들은 것이죠. 어떤 것이 듣지 못한 것을 항상 듣는 것입니까?”
“목석木石과는 다르니라.”
“어느 것이 앞에 있고, 어느 것이 뒤에 있습니까?”
“듣지 못하는 것을 항상 듣는다고 말하는 것을 보지 못했는가?”
“나라 안에서 칼을 빼 들은 이가 누구입니까?”
“나[曹山]다.”[법등法燈이 따로 말하기를 “그대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라고 하였다.]
“누구를 죽이려 했습니까?”
“그저 일체를 몽땅 죽인다.”
“갑자기 본래의 부모를 만나면 어찌합니까?”
“무엇을 가리겠는가?”
“자기는 어찌하겠습니까?”
“누가 나를 어찌하겠는가?”
“왜 죽이지 못합니까?”
“손댈 곳이 없느니라.”
“한 마리의 소가 물을 마시는데 다섯 마리의 말이 울지 않을 때는 어떠합니까?”
“나는 입 다무는 법을 알고 있다.”
또 말했다.
“나, 조산은 효성이 극진하다.”
“항상 생사의 바다 속에 있다고 하였는데, 빠진 이가 누구입니까?”
“둘째 달[第二月]이니라.”
“벗어나기를 구해야 합니까?”
“벗어나서 여의기를 구하지만 길이 없다.”
“벗어난다면 누가 그를 제접합니까?”
“무쇠 칼[鐵枷]을 멘 사람이니라.”

어떤 스님이 와서 약산의 일화를 들면서 물었다.
“약산이 어떤 스님에게 묻기를 ‘그대는 몇 살인가?’ 하니, 스님이 대답하기를 ‘72살입니다’라고 하고, 약산이 다시 묻기를 ‘나이가 72세란 말이지’ 하니, 스님이 대답하기를 ‘그렇습니다’라고 하자, 약산이 문득 때렸는데, 이 뜻이 무엇입니까?”
대사가 대답했다.
“앞의 화살은 그나마 쓸 만하더니, 나중의 화살은 사람에게 깊이 박혔구나.”
“어찌하여야 방망이를 면하겠습니까?”
“바른 칙명勅命이 시행된 뒤에는 제후들이 길을 피한다.”[동선東禪 제齊가 말하기를 “조산曹山은 약산藥山의 뜻을 알고서 손을 내민 것인가, 아니면 다른 도리가 있는가 판단해 보라. 저 스님이 조산에게 이야기하고 물었을 때에 그가 알아들을 만한 곳이 있었던가? 홀연히 그에게 묻기를, ‘그대는 몇 살인가?’ 하였더라면 그는 따로 어떤 대답을 했을까?”라고 하였다.]
“어떤 것이 불법의 대의입니까?”
“구덩이를 메우고 골짜기를 채우느니라.”
“어떤 것이 사자입니까?”
“뭇 짐승이 가까이 가지 못하느니라.”
“어떤 것이 사자 새끼입니까?”
“부모도 능히 잡아먹는다.”
“이미 뭇 짐승이 가까이 가지 못하는데, 어째서 새끼에게 잡혀 먹힙니까?”
“새끼가 울부짖으면 조부모까지도 함께 다하느니라.”
“조부모도 다한단 말입니까?”
“역시 다한다.”
“다한 뒤에는 어떠합니까?”
“온몸이 아버지에게로 돌아간다.”
“아까는 왜 조부까지 다한다고 하셨습니까?”
“듣지 못했는가? ‘왕자王子가 능히 한 나라의 일을 이루니, 마른나무 위에서 약간의 꽃들을 다시 딴다’고 했느니라.”
“잠깐이라도 옳고 그름이 있어서 어지러이 마음을 잃을 때는 어떠합니까?”
“목을 벤다, 목을 벤다.”

어떤 스님이 와서 향엄香嚴의 일화를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어떤 사람이 향엄에게 묻기를 ‘어떤 것이 도입니까?’ 하니, 향엄이 대답하기를 ‘마른나무 속에서 용龍이 운다’고 하였습니다. 그 사람이 다시 ‘잘 모르겠습니다’라고 하니, 향엄이 대답하기를 ‘해골바가지 속의 눈동자이니라’라고 하였습니다. 그 사람이 나중에 석상石霜에게 가서 묻기를 ‘어떤 것이 마른나무 속에서 용이 우는 것입니까?’ 하니, 석상이 말하기를 ‘아직도 기쁨을 띠고 있구나’라고 하였으며, 그가 다시 ‘어떤 것이 해골바가지 속의 눈동자입니까?’라고 물으니, 석상이 대답하기를 ‘아직도 식識을 띠고 있구나’라고 하였습니다.”
대사가 이 이야기를 듣고 게송을 말했다.

마른나무에서 용이 우니 참으로 도를 보고
해골바가지에 식識이 없으니 눈은 애초에 밝네.
기쁨과 식識이 다할 때에 소식이 다한다면
그 사람은 어떻게 흐림 속의 맑음을 가려내랴.
枯木龍吟眞見道    髑髏無識眼初明
喜識盡時消不盡    當人那辨濁中淸

이 게송을 듣자, 그 사람이 다시 대사에게 물었다.
“어떤 것이 마른나무 속에서 용이 우는 것입니까?”
“혈맥이 끊이지 않는 것이니라.”
“어떤 것이 해골바가지 속의 눈동자입니까?”
“다 마르지 않은 것이니라.”
“그런 말을 들은 이가 있겠습니까?”
“온 누리에서 듣지 못한 이는 아무도 없느니라.”
“용이 운다는 것은 어떤 장구章句입니까?”
“무슨 장구인지는 알지 못하나 듣는 이는 모두 상실한다.”
대사는 이와 같이 상근기를 깨우치되 그 자취를 찾을 수 없게 하더니, 동산洞山의 오위전량五位銓量을 받은 뒤로는 특별히 총림의 표준으로 삼았다.
당시 홍주洪州의 종씨鍾氏가 자주 청했지만 일어나지 않고, 오직 대매大梅 화상의 산거송山居頌 한 수만을 써서 대답했다.
천복天復 신유辛酉의 늦여름, 어느 날 밤에 소임 맡은 스님에게 물었다.
“오늘이 며칠이냐?”
“6월 15일입니다.”
“나는 일생 동안 행각을 하면서 간 곳마다 90일을 한 철로 삼고 살았다.”
이튿날 아침에 입적하니, 수명은 62세이고 법랍은 37세였다. 문인門人이 사리[眞骨]을 거두어 탑을 세웠다. 시호는 원증元證 대사요, 탑호는 복원福圓이었다.



동산洞山 도전道全 선사[제2세 주지이니, 중동산中洞山이라고      도 한다.]
처음에 동산洞山 양개良价 화상에게 물었다.
“어떤 것이 세상을 벗어나 여의는 요체입니까?”
동산이 대답했다.
“그대[闍梨]의 발밑에서 연기가 나는구나.”
대사가 당장에 깨달아 다시는 다른 곳으로 가지 않았다.[운거雲居 응진膺進이 말하기를 “화상께서 말씀하신 ‘발밑에서 연기가 난다’는 말씀을 끝내 저버리지 않겠습니다”라고 하니, 동산이 말하기를 “걸음마다 현묘함을 얻는 이는 공력이 이른 것이다”라고 하였다.]
동산 화상이 입적한 뒤에 대중이 그의 뒤를 이으라고 청해서 주지가 되니, 바닷물같이 많은 대중이 기꺼이 복종하여서 현묘한 기풍이 전혀 실추되지 않았다.

어떤 스님이 물었다.
“부처님께서 왕궁에 드신 것이 어찌 큰 성인께서 다시 오신 것이 아니겠습니까?” 
“호명護明보살이 하생下生한 것은 아니니라.”
“이미 큰 성인이 다시 오셨다면, 어찌하여 다시 6년 동안 고행을 하셨습니까?”
“허깨비 사람이 허깨비 일을 한 것이로다.”
“허깨비가 아닌 자는 어떠합니까?”
“왕궁에서 찾아도 찾을 수 없다.”
“청정행淸淨行을 수행한 자가 열반에 들지 못하고, 파계한 비구가 지옥에 들지 않는다고 하는데, 무슨 뜻입니까?”
“제도를 다해서 그림자도 남기지 않으니, 그는 도리어 열반도 초월한다.”
“눈에 가득한 천 리 길이 어떤 가풍과 모범입니까?”
“그대의 가풍과 모범이니라.”
“그러면 화상의 가풍과 모범은 어떠합니까?”
“바사(婆娑:토인의 인형)의 눈을 펴지 않는다.”

호남湖南 용아산龍牙山 거둔居遁 선사
그는 무주撫州 남성南城 사람으로서 성은 곽郭씨이다. 나이 14세에 길주吉州의 만전사滿田寺에서 스님이 되었다가, 나중에 숭악嵩嶽에 가서 계를 받고 여러 선방을 찾아 주장자를 짚고 돌아다녔다. 
처음에 취미翠微 화상을 뵙고 물었다.
“학인이 화상의 회상에 온 지 한 달이 지났는데, 화상께서는 매일 상당하면서도 한 법도 보여 주시지 않으니, 무슨 까닭입니까?”
취미가 대답했다.
“무엇을 의심하는가?”[어떤 스님이 앞의 이야기를 들어 동산洞山에게 물으니, 동산이 말하기를 “그대는 무엇을 나에게 괴이하게 여기는가?”라고 하였다. 법안法眼이 따로 말하기를 “조사께서 오셨다”라고 하였다. 동선東禪 제齊가 말하기를 “이 세 존숙의 말에 친소親疎가 있는가? 있다면 어디가 친한가? 없다면 친소의 안목은 어디다 두었겠는가?”라고 하였다.]
또 덕산德山을 뵙고 물었다.
“멀리서는 덕산의 한 구절 불법을 들었는데, 곁에 와서 보니 화상의 한 구절의 설법도 볼 수 없습니다.”
덕산이 대답했다.
“무엇을 의심하는가?”
대사는 이 말을 긍정하지 않고 바로 동산으로 가서 앞과 같이 물으니, 동산이 대답했다.
“어찌하여 나를 괴이하게 여기는가?”
대사는 다시 덕산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고, 이어 스스로 허물을 깨달았다. 마침내 동산에 머물면서 대중을 따라 묻고 배웠다.
어느 날 이렇게 물었다.
“어떤 것이 조사의 뜻입니까?”
동산이 대답했다.
“동산의 물이 거슬러 흐르거든 그대에게 말하리라.”
대사가 이때부터 불법의 깊은 뜻을 깨달아서 다시 제자의 예로 섬기기를 8년 만에 호남湖南에 있는 마씨馬氏의 청을 받아 용아산龍牙山 묘제선원妙濟禪苑에 가서 사니, 호는 증공證空 대사였다. 5백 명의 무리가 모였는데 법을 얻지 못한 이가 없었다.
어느 날 상당하여 대중에게 보였다.
“불법을 배우려는 사람은 부처도 조사도 모두 뚫고 지나가야 한다. 신풍新豊 화상이 말하기를 ‘부처님도 조사도 모두 원수의 집안인양 여겨야 비로소 배울 자격이 있다’고 하였으니, 만일 부처와 조사의 벽을 뚫고 지나지 못하면 부처와 조사에게 속임을 당하리라.”
이때에 어떤 스님이 물었다.
“조사와 부처가 사람을 속이려는 마음이 있습니까?”
“그대는 강과 호수들이 사람을 막으려는 마음이 있다고 여기는가?”
그리고는 또 말했다.
“강과 호수는 비록 사람을 막으려는 마음이 없으나, 사람들이 지나갈 수 없기 때문에 강과 호수가 사람을 가로막게 된 것이므로 강호江湖가 사람을 가로막지 않는다고는 할 수 없다. 조사와 부처는 비록 사람을 속이려는 마음이 없으나, 사람이 뚫고 지나지 못하므로 조사와 부처가 사람을 속이게 된 것이므로 조사와 부처가 사람을 속이지 않는다고는 말할 수 없다. 만일 조사와 부처를 뚫고 지나면 이 사람은 조사와 부처를 초월한 것이니, 비로소 조사와 부처의 뜻을 체득하여 향상向上의 옛사람과 같게 되리라. 만일 뚫고 지나지 못하고 그저 부처를 배우거나 조사를 배운다면, 만 겁을 지나도 기약할 수가 없다.”
또 어떤 이가 물었다.
“어찌하여야 조사와 부처의 속임을 받지 않습니까?”
“모름지기 스스로가 깨달아야 한다.”

대사가 취미에 있을 때에 취미 화상에게 물었다.
“어떤 것이 조사의 뜻입니까?”
취미가 말했다.
“나에게 선판禪板을 갖다다오.”
대사가 선판을 갖다 주니, 취미가 받아 가지고는 대사를 때렸다. 이에 대사가 말했다.
“때리기는 화상 마음대로 때리지만 조사의 뜻은 없습니다.”
또 임제臨濟에게 가서 물었다.
“어떤 것이 조사의 뜻입니까?”
임제가 말했다.
“나에게 방석[蒲團]을 갖다 주시오.”
대사가 방석을 갖다 주니, 임제가 받아 가지고는 대사를 때렸다. 이에 대사가 말했다.
“때리기는 화상 마음대로 때리지만 조사의 뜻은 없습니다.”
나중에 어떤 스님이 대사에게 와서 물었다.
“화상께서 행각하실 때에 두 존숙에게 조사의 뜻을 물으셨다는데, 두 존숙의 도안道眼이 밝았습니까?”
대사가 대답했다.
“밝기는 밝더라마는 조사의 뜻은 없었다.”[동선東禪 제齊가 말하기를 “대중 가운데서 말하기를 불법은 있으나 조사의 뜻이 없다 하니, 이렇게 알아서야 무슨 쓸모가 있으랴? 그렇다고 조사의 뜻이 없다는 이치를 달리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라고 하였다.]

어떤 이가 물었다.
“어떤 것이 도입니까?”
“다른 사람과 다르지 않은 마음이 그것이니라.”
또 말했다.
“만일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과 다르지 않은 마음을 체득했다고 한다면 비로소 도인이다. 만일 이것이 말뿐이라면 아무 관련이 없다.
도자(道者:수행자)여, 그대들은 완전한 도인道人을 아는가? 하루 종일 옷 입고 밥 먹는 일을 제외하고는 털끝만큼도 다른 사람과 다른 마음이 없고 사람을 속이려는 마음이 없어야 그가 비로소 도인이다. 만일 내가 얻었다거나 내가 알았다고 하면, 전혀 교섭할 길이 없으니 매우 어려운 일이니라.”

어떤 이가 물었다.
“어떤 것이 조사께서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대사가 대답했다.
“석오구(石烏龜:돌 거북)가 말을 하거든 그대에게 말하리라.”
“석오구가 말을 합니다.”
“그대에게 뭐라 하던가?”
“옛사람이 무엇을 얻었기에 문득 쉬었습니까?”
“도적이 빈방에 든 것 같으니라.”
“무변신보살無邊身菩薩은 어째서 여래의 정수리를 보지 못했습니까?”
“그대는 여래에게 정수리가 있다고 말하는 것인가?”
“대유령大庾嶺 마루에서 들어도 들리지 않을 때에는 어찌합니까?”
“6조는 어떻게 가지고 갔는가?” 
“쥐 두 마리가 등 넝쿨을 침범할 때에는 어찌합니까?”
“몸을 숨길 곳이 있어야 한다.”
“어떤 것이 몸을 숨길 곳입니까?”
“내 집을 본 일이 있는가?”
“유마 거사가 손바닥으로 세계를 받쳤다고 하는데, 유마는 어디에 섰었습니까?”
“도사여, 그대는 유마가 손바닥으로 세계를 받쳤다고 여기는가?”
“앎이 있는 이도 생사가 있습니까?”
“흡사 그대가 깨닫기 전과 같다.”
“어떤 것이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그 하나의 물음이 가장 괴롭다.”[보자報慈가 말하기를 “이 한 물음이 가장 좋구나”라고 하였다.]
“조사의 뜻과 교리의 뜻이 같습니까, 다릅니까?”
“조사는 나중에 오신 분이다.”
“조사는 일 없는 사문입니까?”
“사문이라면 일이 없을 수 없다.”
“어째서 일이 없을 수 없습니까?”
“한 개를 찾아도 얻기 어렵다.”
“두꺼비[蟾蜍]에게는 반조返照의 빛이 없고, 옥토끼[玉兎]가 달을 짝으로 삼을 뜻이 없을 때는 어떠합니까?”
“요순堯舜 임금의 덕화가 아직도 남았다.”[동선東禪 제齊가 말하기를 “이것이 무슨 문안인가? 그대들을 하루에 다 견주건대, 이것은 어느 시각에 하는 인사에 해당하는가?”라고 하였다.]
“어찌하여야 이 몸이 안락합니까?”
“다른 몸[別身]에 속지 않아야 된다.”[법안法眼이 따로 말하기를 “누가 그대를 괴롭히기라도 하던가?”라고 하였다.]
대사는 양梁나라 용덕龍德 3년 계미(癸未, 933) 8월에 경미한 병이 났고, 그해 9월 13일 밤중에 큰 별이 방장 앞에 떨어지는 일이 있었는데, 이튿날 아침에 단정히 앉아 입멸하니 수명은 89세였다.

경조京兆 화엄사華嚴寺 휴정休靜 선사
대사가 일찍이 낙보樂普 화상의 휘하에서 유나維那 소임을 맡았을 때에 종을 쳐 울력[普請]을 알리면서 말했다.
“상간(上間:윗목)의 스님은 나무를 나르고, 하간(下間:아랫목)의 스님은 김을 매시오.”
이때에 제1 상좌가 물었다.
“성승聖僧 큰방에 모신 문수文殊의 등상을 의미한다.
은 무엇을 합니까?”
대사가 대답했다.
“방 안에서도 바로 앉지 못하니, 양쪽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오.”

대사가 동산에 있을 때에 물었다.
“학인이 이치의 길[理路]을 보지 못했으므로 미혹한 마음[情識]을 면치 못했습니다.”
동산이 대답했다.
“그대는 이치의 길을 보기는 했는가?”
“보는 것[見]에는 이치의 길이 없습니다.”
“어디서 미혹한 마음[情識]을 얻었는가?”
“제가 묻고자 하는 일입니다.”
“그렇다면 모름지기 만 리 밖에 한 치의 풀도 없는 곳에서 서 있어야 한다.”
“한 치의 풀도 없는 곳에서 서는 것을 허락할까요?”
“곧장 그렇게 가라.”

대사가 나무를 나르는데, 동산이 나무 단을 꼭 붙들고 물었다.
“좁은 길에서 서로 만났을 때에는 어찌하는가?”
“엎치락뒤치락하니 얼마나 다행입니까?”
동산이 다시 말했다.
“그대는 내 말을 명심하라. 그대가 남쪽으로 가서 살면 천 명의 무리가 있고, 북쪽으로 가서 살면 2․3백 명뿐이니라.”
대사가 처음에 복주福州 동산東山에 있는 화엄사華嚴寺에 살다가 오래지 않아 후당後唐의 장종莊宗 황제의 부름을 받아서 현묘한 기풍을 크게 드날렸으니, 그때의 무리는 3백 명이었다.

어떤 이가 물었다.
“조사의 뜻과 교리의 뜻이 같습니까, 다릅니까?”
대사가 대답했다.
“용궁에 간직한 3장藏을 다 뒤져도 뭇 이치는 다 말하지 못한다.”
“크게 깨달은 사람이 어째서 다시 미혹합니까?”
“깨진 거울은 거듭 비추지 못하고, 떨어진 꽃은 다시 가지에 붙지 않는다.”
“대군大軍이 천왕天王에게 재齋를 마련해서 승리를 빌고, 적군도 천왕에게 재를 마련해서 승리를 빌면, 천왕은 누구의 소원을 이루어 줍니까?”
“하늘이 비를 내릴 때에는 초목의 무성함과 말라죽음을 가리지 않는다.”

어느 날 어가[車駕]의 행차가 절에 이르러 향을 피웠다. 황제가 물었다.
“이것은 어느 신神이오?”
“호법선신護法善神입니다.”
“불법이 사태沙汰를 당할 때에는 어디를 갔었는가?”
“하늘이 비를 내리는 것은 초목의 무성함과 말라죽음을 가리지 아닙니다.”
나중에 대사는 하삭河朔 지방을 왕래하다가 평양平陽에서 입적했는데, 다비하여 얻은 사리로 네 곳에 부도浮圖를 세웠으니, 첫째는 진주晋州요, 둘째는 방주房州요, 셋째는 종남산終南山 소요원逍遙園이요, 넷째는 종남산 화엄사華嚴寺이다. 시호는 보지寶智 대사요, 탑호는 무위無爲였다.

경조京兆 현자蜆子 화상
그는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없다. 다만 그 행적이 몹시 기이하고, 사는 곳이 일정치 않았다.
동산에게 심인心印을 받은 뒤로 민천閩川에서 속세에 어울려 살았는데, 도구道具를 갖추지도 않고 계율을 따르지도 않았다. 날마다 강변에 가서 조개와 굴을 따다가 배를 채우고, 저녁에는 동산에 있는 백마묘白馬廟에 가서 지전紙錢 신을 모시기 위한 장식물이다.
 속에 묻혀 사니, 사람들이 그를 현자蜆子 화상이라 불렀다.
이때에 화엄사華嚴寺의 휴정休靜 선사가 그의 진가眞假를 시험하기 위해서 먼저 지전 속에 잠입했는데, 밤이 깊어지자 대사가 돌아왔다. 이에 휴정이 꼭 붙들고 물었다.
“어떤 것이 조사께서 서쪽에서 오신 뜻인가?”
대사가 얼른 대답했다.
“신 앞에 놓인 술상이오.”
휴정이 기특히 여겨서 사과하고 물러갔다. 나중에 휴정이 수도에서 법을 펴는데 대사도 왔었으나, 끝내 무리를 모아 놓고 설법하는 일은 없었고 오직 거짓으로 미친 척할 뿐이었다.
균주筠州 구봉九峰 보만普滿 대사
어떤 스님에게 물었다.
“어디서 떠나왔는가?”
“민중閩中에서 왔습니다.”
“먼 길을 오기에 어려웠겠군.”
“어렵지 않았습니다. 걸음을 옮기니 어느덧 당도했습니다.”
“걸음을 옮기지 않는 이도 있는가?”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여기까지 왔지?”
스님이 대답을 못하자, 대사가 꾸짖었다.
“사람을 몽땅 속이는구나.”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화상의 가풍입니까?” 
“바로 지금의 것은 무엇인가?”
“학인은 잘 모르겠습니다.”
“네거리에 핀 마린화馬藺華이니라.”

태주台州 유서산幽棲山 도유道幽 선사
경청鏡淸이 물었다.
“어떤 것이 소부少父입니까?”
대사가 대답했다.
“표적이 없는 것이니라.”
“표적 없는 것이 소부입니까?”
“무슨 허물이 있는가?”
“소부는 어떠합니까?”
“도자道者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가?”
“어떤 것이 부처입니까?”
“그대의 믿지 못함이 중생이다.”
“학인은 철저히 믿습니다.”
“만일 훌륭하다는 생각[勝解]을 내면, 곧 갖가지 삿됨에 빠지리라.”

대사가 임종하려 할 때에 어떤 스님이 물었다.
“화상께서 입멸하신 뒤에는 어디로 가시렵니까?”
“조화롭다, 조화롭다.”
이렇게 말하고는 앉은 채로 입적하였다.

후동산後洞山 사건師虔 선사[제3세 주지이니, 청림靑林 화상이      라고도 한다.]
처음에 협산夾山에 있다가 선동산先洞山을 뵈니, 양개良价 화상이 물었다.
“요사이 어디서 떠났는가?”
“무릉武陵에서 떠났습니다.”
“무릉의 불법이 이 지방과 어떤가?”
“오랑캐 땅에는 겨울에도 죽순이 돋습니다.”
동산이 시자들에게 분부했다.
“별도의 시루에다 향기로운 밥을 지어서 이 사람에게 공양하라.”
대사가 곧이어 나가자, 동산이 말했다.
“이 사람이 후일에는 천하 사람을 몹시 날뛰게 하리라.”

대사가 동산에서 소나무를 가꾸는데, 유옹劉翁이라는 노인이 와서 게송을 써 달라고 하므로 이런 게송을 지었다.

죽죽 뻗어서 석 자도 넘는 것이
울창하여 잡초를 덮었네.
알지 못할세라, 어느 시대의 사람이
이 소나무의 늙은 모습 보게 되려나.
長長三尺餘    鬱鬱覆荒草
不知何代人    得見此松老

유옹이 게송을 받아 가지고 동산에게 갖다 바치니, 동산이 말했다.
“늙은이여, 고맙소. 이 사람만이 제3세 주지가 될 수 있소.”
대사가 처음에는 수주隋州 토문土門에 있는 소청림小靑林 난야蘭若에 있었으나, 나중에는 과연 다시 동산으로 돌아와 대를 잇게 되었다. 그는 스님이 새로 오면 우선 땔나무를 세 차례 옮기게[三轉] 한 뒤에 큰방에 들도록 하였다.
이때에 어떤 스님이 그 일을 수긍하지 않으면서 물었다.
“세 차례 옮기기 전은 묻지 않겠지만, 세 차례 옮긴 뒤에는 어떠합니까?”
대사가 대답했다.
“철륜천자鐵輪天子가 천하에 명령을 내린다.”
스님이 대답이 없으니 대사가 때려서 내쫓았다.
어떤 스님이 물었다.
“지난날에 병을 앓다가 이제 또 중독이 되었으니, 스님께서 고쳐 주십시오.” 
“금비(金鎞:금으로 된 수술용 칼)로 골을 쩍 가르고, 정수리에다 제호醍醐를 부어라.”
“그렇다면 스님께서 고쳐 주신 것에 감사를 드립니다.”
대사가 때렸다.
“오랫동안 짊어지고도 만나지 못할 때에는 어찌합니까?”
“옛 황실의 자[尺]는 한 치[寸]였느니라.”
“스님께서 이야기에 대답을 해주십시오.”
“아수라가 해와 달을 손바닥으로 가리노라.”

대사가 상당하여 대중에게 말했다.
“조사의 종지가 오늘날 시행되어 법령이 이미 드러났으니, 다시 무슨 일이 있겠는가?”
이때에 어떤 스님이 물었다.
“정법안장正法眼藏은 조사에서 조사로 똑같이 인가하셨다는데, 화상께서는 누구에게 전해 주셨습니까?”
“신령스런 싹은 나는 땅이 있지만, 큰 깨달음[大悟]은 스승에게 매여 있지 않다.”
“어떤 것이 도입니까?”
“소[牛]를 돌이켜서 먼 개울을 찾는구나.”
“어떤 것이 도 가운데 있는 사람입니까?”
“머리에 눈[雪]을 맞고 눈썹을 치키는 것이니라.”
“길이 천 가닥으로 다른데, 어떻게 단박에 깨닫습니까?”
“발바닥 밑의 여주驪珠를 등지고, 공연히 긴 하늘의 달만을 원망하는구나.”

낙경洛京 백마白馬 둔유遁儒 선사
어떤 이가 물었다.
“어떤 것이 납승衲僧의 본분사本分事입니까?”
“십도十道에 바람이 통하지 않는데 벙어리가 먼 곳의 소식을 전한다.”
“무슨 소식을 전했습니까?”
대사가 합장한 채로 정대頂戴하였다.
“어떤 것이 밀실密室 안의 사람입니까?”
“자못 생生은 얻을 수 없고, 생겨나지 않았을 때도 귀하지 않다.”
“무엇이 생겨나지 않았을 때도 귀하지 않은 것입니까?”
“그대의 아버지이니라.”

어떤 이가 물었다.
“3천 리 밖에서 백마의 소문을 듣고 왔는데, 와서 보니 어째서 보이지 않습니까?”
“그대에게 보이지 않는 것이 나에게 무슨 상관이냐?”
“화상께서 지시해 주소서.”
“지시한다면 곧바로 핵심과 멀어진다.”
“어떤 것이 학인의 본분사입니까?”
“지난밤 3경更에 해가 한복판이었다.”
“어떤 것이 법신法身의 향상사向上事입니까?”
“우물 밑의 개구리가 달을 삼킨다.”[어떤 스님이 황룡黃龍에게 묻기를 “어떤 것이 우물 안의 개구리가 달을 삼키는 것입니까?”라고 하니, 황룡이 대답하기를 “어쩔 수 없느니라”고 하였다. 스님이 말하기를 “그러면 삼키겠습니다”라고 하니, 황룡이 대답하기를 “마음대로 삼키게 둬라”고 하였다. 스님이 다시 묻기를 “삼킨 뒤에는 어떠합니까?”라고 하니, 황룡이 대답하기를 “좋은 개구리로다”라고 하였다.]
“어떤 것이 학인이 시급히 힘써야 할 곳입니까?”
“날랜 새도 둔한 것이 안타까워 일찍 하지만 이미 늦다고 한다.”
“어떤 것이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이마에 점 박힌 원숭이가 달을 건지려다 물결을 일으킨다.”

월주越州 건봉乾峰 화상[혹은 서봉瑞峰이라고도 한다.]
어떤 스님에게 물었다.
“어디서 왔는가?”
“천태산天台山에서 왔습니다.”
“돌다리[石橋]가 양단兩段으로 되었다는데 정말인가?”
“화상은 어디서 그런 소식을 들으셨습니까?”
“나는 그대가 화정봉華頂峰 앞의 손님인가 여겼더니, 그저 평전平田의 농막[莊] 속 사람이구나.”
“어찌하여야 삼계를 벗어납니까?”
대사가 소리를 질렀다.
“원주院主를 불러다가 저 승려를 쫓아내라.”

대사가 여러 스님들에게 물었다.
“6취趣를 헤맬 때 어떤 안목眼目을 갖추어야 하는가?”
대중이 대답이 없었다.
어떤 이가 물었다.
“어떤 것이 부처와 조사를 초월하는 말입니까?”
“내가 그대에게 묻겠다.”
“화상은 그만두십시오.”
“나의 한 가지 물음도 알지 못하면서 부처와 조사를 초월하는 말은 물어서 무엇 하려는가?”

길주吉州 화산禾山 화상
어떤 이가 물었다.
“학인이 한 가지 묻고자 하는데 스님께서 대답해 주시겠습니까?”
“화산이 벌써 그대에게 대답했네.”
“어떤 것이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화산의 대정(大頂:앞이마)이니라.”
“어떤 것이 화상의 가풍입니까?”
“눈에 가득한 청산에 흰 구름이 이는 것이니라.”

명주明州 천동산天童山 함계咸啓 선사[앞서 소주蘇州의 보화산      寶華山에 살았다.]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본래 없는 물건입니까?”
“돌이 윤기가 있어도 옥을 함유하지 않았거나, 쇳돌이 노다지와 다른 것이니라.”

복룡산伏龍山 화상이 왔는데 대사가 물었다.
“어디서 왔는가?”
“복룡산伏龍山에서 왔습니다.”
“용을 항복시켰는가?”
“그 축생을 항복시키지 못했습니다.”
대사가 말했다.
“차나 마시고 가라.”

간簡 대덕大德이 물었다.
“학인이 우뚝우뚝 찾아왔으니 스님께서 또렷또렷 지시해 주십시오.”
대사가 대답했다.
“나는 여기서 똥 한 번 누면 그만인데, 무슨 우뚝우뚝과 또렷또렷이 있으랴?”
“화상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니, 다시 짚신을 사서 행각을 다니셔야 되겠습니다.”
“앞으로 가까이 오게.”
간簡 대덕이 가까이 오자, 대사가 말했다.
“내가 그렇게 대답한 것이 허물이 어디에 있는가?”
간 대덕이 대답이 없으니, 대사가 때렸다.[11권 목록에 경산徑山 감종鑒宗 밑에도 수록되어 있는데, 무슨 까닭인지 모르겠다.]

담주潭州 보개산寶蓋山 화상
어떤 스님이 물었다.
“한 칸의 새지 않는 집[無漏舍]에 누가 살아야 옳습니까?”
대사가 대답했다.
“이름이 없으니 체體를 걸지 않는다.”
“지위는 있습니까?”
“처하지 않는다[不處].”
“어떤 것이 보배 일산입니까?”
“하늘이나 인간으로부터는 얻지 못한다.”
“어떤 것이 보배 일산 속의 사람입니까?”
“시인時人에게는 알려지지 않느니라.”

어떤 스님이 물었다.
“부처님께서 오실 때는 어찌합니까?”
“그의 길을 찾으려 해도 찾을 길이 없다.”
“간절하고 간절할 때에 어째서 사람을 세우지 않습니까?”
“돌아갈 때도 밟을 것이 없느니라.”
“그럴 때에는 어떻게 성립합니까?”
“시인時人에게는 알려지지 않느니라.”
“세계가 무너질 때에 이것은 어디로 갑니까?”
“천 명의 성인이 찾아도 찾지 못하느니라.”
“시인時人은 어떻게 귀의합니까?”
“다만 모름지기 비슷할 뿐이니라.”
“과녁이라도 있습니까?”
“표식도 세우지 않느니라.”

익주益州 북원北院 통通 선사
협산夾山에 있을 때 어느 날 협산夾山이 상당하여 이렇게 말했다.
“즉각 끊어 버린 주인공이라야 제2의 소견에 떨어지지 않으리라.”
이에 대사가 나서서 말했다.
“짝과 합하지 않는 한 사람이 있다는 것을 모름지기 알아야 합니다.”
협산이 말했다.
“그것도 역시 제2의 소견이다.”
대사가 선상을 흔들어 엎으니, 협산이 말했다.
“그대는 어떤가?”
“제 혀가 썩거든 화상께 이야기하겠습니다.”
다른 날 대사가 또 협산에게 물었다.
“눈앞에 법이 없다 함은 ‘눈앞’에 뜻을 둔 것이지 ‘눈앞의 법’이 아니므로 귀와 눈이 이르지 못한다고 한 것이 어찌 화상의 말씀이 아니겠습니까?”
“그렇다.”
이에 대사가 선상禪床을 흔들어 엎고 합장[叉手]하고 섰으니, 협산이 일어나서 주장자로 한 차례 때렸다. 그러자 대사는 물러가 버렸다.[법안法眼이 말하기를 “그가 선상을 흔들어 엎고는 어찌하여 얼른 달아나지 않고, 한 방망이 맞은 뒤에 물러갔을까?”라고 하였다.]

대사가 동산에 있을 때에 대중을 따라 법문을 들었으나 현묘한 뜻을 깨닫지 못하고 마침내 동산을 떠나 촉령蜀嶺으로 들어가겠다고 하직을 아뢰었다. 이에 동산이 말했다.
“잘 가라. 험준한 봉우리에 원숭이가 날뛰니, 조심하거라.”
대사가 침음沈吟하면서 잠자코 있자, 동산이 “통通 사리闍梨여” 하고 불렀다. 대사가 “네” 하고 대답을 하니, 동산이 말했다.
“어찌하여 촉령으로 들어가지 않는가?”
대사가 이로 인하여 깨닫고 다시는 촉령으로 들어가지 않고 동산을 섬겼다.[당시에 곽두통钁頭通이라고 불렸다.]

주지가 된 뒤에 상당하여 대중에게 말했다.
“여러 상좌들이여, 무슨 일이 있거든 나와서 따지시오. 만일 상상근기上上根機라면 이런 일이 필요치 않지만, 중류나 하류라면 모름지기 문호門戶를 꽁꽁 단속하여 보송보송하게 하여 흙탕물이 들어오지 못하게 하라. 그리고 제일 빠르게 일을 덜려면[省事] 모름지기 무심無心이어야 한다. 만일 무심이 되지 못하면 천 가지, 만 가지를 이야기하더라도 다만 알음알이[知解]를 이룰 뿐이니, 이 납승의 문하에서 무슨 쓸모가 있겠는가?”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무심입니까?”
“얽매이지 않는 것이니라.”
“두 용이 여의주를 다투면, 어느 쪽이 차지합니까?”
“얻는 것이 잃는 것이니라.”
“잃지 않으면 어떠합니까?”
“내 구슬을 돌려다오.”
“어떤 것이 청정법신입니까?”
“티가 묻지 않은 것이니라.”
“굴리지[轉] 못할 때에는 어떠합니까?”
“공功에 이르지 못하니라.”
“어떤 것이 크게 부귀한 사람입니까?”
“마치 전륜왕轉輪王의 보배창고와 같은 것이니라.”
“어떤 것이 몹시 궁색한 사람입니까?”
“술집의 허리띠 같은 것이니라.”
“물을 뿌려도 묻지 않을 때에는 어떠합니까?”
“보송보송하게 말랐다.”
“한 번의 망치로 문득 이룰 때는 어떠합니까?”
“우연한 일이 아니다.”
입멸한 뒤에 시호를 증진證眞 대사라 하였다.

고안高安 백수白水 본인本仁 선사
동산洞山에서 수기를 받은 뒤, 당나라 천복天復 때에 홍정洪井 고안현 백수원白水院으로 옮겨와서 머무니, 무리는 3백 명이 넘었고 현묘한 말씀은 널리 퍼졌다.
어느 날 동산 화상의 기재忌齋를 마련했는데, 어떤 스님이 물었다.
“선사先師께 공양을 올리면, 선사께서 오십니까?”
대사가 대답했다.
“공양거리 한 몫을 더 놓아야 하겠구나.”

홍주洪州 서산西山에서 여러 행자들이 와서 절하고 물었다.
“오늘 다른 일로 온 것이 아니오니, 스님께서 지시해 주십시오.”
대사가 대답했다.
“그대들 모두가 지시를 바라는가?”
“그렇습니다.”
“나더러 누구에게 법을 전하라는 것이냐?”
경청鏡淸이 행각行脚 길에 들르자, 대사가 그에게 말했다.
“수도자여, 날씨가 춥군요.”
경청이 대답했다.
“그렇다고 아뢰기가 외람됩니다.”
“누울 자리와 덮을 것은 얻으셨소?”
“설사 있다 해도 펴는 재주가 없습니다.”
“설사 수도자가 물방울을 얼려서 얼음을 이룬다 해도 그 일에 관계치 않으리라.”
“물방울과 얼음이 생기는 일과는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그렇다.”
“이 사람의 뜻은 어떠합니까?”
“이 사람은 뜻에 떨어지지 않는다.”
“뜻에 떨어지지 않는다면, 이 사람은 어디에 머무릅니까?”
“높은 산의 정상은 수도자와 더불어 이야기할 바가 아니다.”
“어떤 것이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뜰 앞에 향나무를 본 일이 있는가?”
“그러시면 화상은 오늘 저로 인해 시비를 벌이시는 것이군요.”
“말 많은 중[座主]이구나.”
교연皎然이라는 스님이 떠난 뒤에 대사는 비로소 그가 설봉雪峰에 있던 선객임을 알고서 말했다.
“법을 훔치는 사람은 끝내 법기法器를 이루지 못한다.”[교연皎然이 나중에 장생산長生山에 사는데 어떤 스님이 와서 묻기를 “위로부터 종승宗乘을 어떻게 드날렸습니까?”라고 하니, 교연이 대답하기를 “그대 한 사람을 위하여 온 장생산을 더럽힐 수는 없다”라고 하였다. 현사玄沙가 이 말을 듣고 말하기를 “교연 사형의 불법이 크게 시행될 것이며 수기를 받을 인연도 익었다”고 하였지만, 그 뒤로 모든 인연이 맞지 않아서 과연 본인本人의 예언이 맞았다.]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변천하지 않는 이치입니까?”
“낙화落華는 흐르는 물을 따르고, 명월明月은 외로운 봉우리 위에 솟았다.”

대사가 세상을 떠나려 할 때에 사부대중이 다 모여서 제사를 차리고 종을 치고 향을 피우자, 대중에게 고했다.
“향 연기가 끊어지는 곳이 내가 열반에 드는 때이다.”
이 말을 마치고 가부좌를 맺고 앉으니, 호흡이 향 연기를 따라 사라졌다.

무주撫州 소산疎山 광인光仁 선사
키가 작고 흉한 모습이었지만, 말씨가 능숙하여 대중에서 으뜸이었다. 당시 동산의 문하에서 뛰어난 인격으로 현묘한 진리를 고양하는 이는 모두가 광인光仁을 능전량能詮量의 표준으로 삼았고, 제방諸方에서 삼매를 닦는 이들은 앉은뱅이 사숙(師叔:광인을 가리킴)에게 물어야 한다고 하였다.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부처님들의 스승입니까?”
“왜 소산疎山 늙은이에게 묻지 않는가?”[스님이 대답하지 못했다.]

대사가 손에 나무 뱀[木蛇]를 잡고 있으니, 어떤 스님이 물었다.
“손에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대사가 번쩍 들면서 말했다.
“조曹씨네 딸이다.”
“어떤 것이 화상의 가풍입니까?”
“1척 5촌 되는 머리 수건이니라.”
“어떤 것이 1척 5촌 되는 머리 수건입니까?”
“원圓 속에서 얻을 수 없는 것이니라.”

대사가 향엄香嚴의 이야기를 들어서 경청鏡淸에게 물었다.
“긍정이 중重하여도 온전하지 못하다 하였으니, 부怤 도자道者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부 도자가 대답했다.
“온전하게 긍정의 중함에 돌아갑니다.”
“온전한 긍정을 얻지 못한 자는 어떤가?”
“거기에는 긍정의 길이 없습니다.”
“비로소 병든 스님의 뜻에 맞는구나.”

고산鼓山이 위음왕불威音王佛의 스승을 이야기한 일로 인하여 대사가 물었다.
“어떤 것이 위음왕불의 스승인가?”
고산이 대답했다.
“부끄러움 없는 것을 좋다고 하지 마십시오.”
대사가 다시 말했다.
“그대는 그렇게 말하면 되겠지만, 만약 병든 이 중으로서는 그렇지 않다.”
“그러면 어떤 것이 위음왕불의 스승입니까?”
“귀함이 없는 지위에는 앉지 않는 것이니라.”

동산洞山[제4세 주지]이 물었다. 
“어떤 것이 한 구절입니까?”
“말하지 못한다.”
“어찌하여 말하지 못하십니까?”
“때에 맞는 무리가 없기 때문이다.”
“이러할 때에는 어떠합니까?”
“장군은 편교(便橋:다리 이름)에도 오르지 않았거늘, 금아金牙에서 쓸데없이 오누[筈:화살의 꼬리]를 잡았다.”
“어떤 것이 바로 가리키는 것입니까?”
“구슬 속에 물이 있는 것이니, 만일 믿지 못한다면 하늘가에 가서 태양에게 물어라.”

동짓날 밤에 상당했는데, 어떤 스님이 와서 물었다.
“어떤 것이 겨울이 오는 뜻입니까?”
“수도 안에서 대황(大黃:약초의 종류)이 나는 것이니라.”
“화상께서 세상을 뜨신 뒤에는 어디로 가시겠습니까?”
“등 밑은 풀밭이요, 네 다리는 하늘을 가리키느니라.”
대사가 임종할 때에 게송을 읊었다.

나의 길은 푸른 하늘 밖이니
흰 구름은 정처 없이 한가롭네.
세상에는 뿌리 없는 나무가 있으니
가랑잎은 바람에 실려 돌아오네.
我路碧空外    白雲無處閑
世有無根樹    黃葉風送還

게송을 마치고는 입적하였다. 또 󰡔사대송四大頌󰡕 등과 󰡔약화엄장자론略華嚴長者論󰡕을 저술하였는데, 세상에 널리 퍼졌다.

예주澧州 흠산欽山 문수文邃 선사
그는 복주福州 사람이니, 어려서부터 항주杭州 대자산大慈山 환중寰中 선사에 의거하여 공부를 하였다. 이때에 암두巖頭와 설봉雪峰이 무리 속에 있다가 대사(문수 선사)가 토론하는 것을 보고는, 그가 법기法器임을 알고서 그를 데리고 여러 곳으로 행각을 떠났다.
두 대사는 덕산德山과 인연이 맞아서 둘 다 인가를 받았는데, 대사는 아무리 자주 깨우쳐 주어도 끝내 의심이 풀지 못했다. 그러다가 어느 날 덕산에게 물었다. 
“천황天皇도 그렇게 말하고 용담龍潭도 그렇게 말했는데, 덕산은 어떻게 말씀하시겠습니까?”
덕산이 말했다.
“그대는 천황과 용담이 말한 것을 이야기하여 보라.”
대사가 바야흐로 말을 하려는데, 덕산이 주장자로 때리고 열반당(涅槃堂:임종하는 방)으로 메고 들어갔다. 이에 대사가 말했다.
“옳기는 옳으나 나를 때리는 것이 너무 심하군요.”[법안法眼이 따로 말하기를 “옳기는 옳으나 나를 잘못 때렸습니다”라고 하였다. 이 밖에도 여러 가지 어록이 있는데, 덕산德山과 암두巖頭의 장章에 자세히 나와 있다.]
대사는 나중에 동산洞山의 말 아래서 지견을 얻고 이어서 동산의 제자가 되었다. 27세에 흠산欽山에 머물면서 대중 앞에서 스스로의 허물을 뉘우치고, 이어 처음 동산을 뵈었을 때에 일을 이야기하였다.
“동산이 나에게 묻기를 ‘어디서 왔는가?’라고 하였고, 내가 대답하기를 ‘대자大慈에서 왔습니다’라고 하니, ‘대자를 보았느냐?’고 묻기에 ‘보았습니다’라고 대답하였다. 동산이 다시 묻기를 ‘색色 이전을 보았는가, 색 이후를 보았는가?’라고 하기에 ‘이전도 이후도 아닌 것을 보았습니다’라고 하니, 동산이 그만두었습니다.”
그리고는 대사가 다시 말했다.
“스승을 너무 빨리 여의어서 스승의 뜻을 다 이해하지 못했다.” 
이에 어떤 이가 물었다.
“어떤 것이 조사께서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양공梁公의 곡척(曲尺:굽은 자)이요, 지공誌公의 전도剪刀니라.”
“일체의 불법이 모두 이 경에서 나오셨다고 하는데, 어떤 것이 이 경입니까?”
“항상 구르는 것이니라.”
“경에서 무엇을 말씀하셨습니까?”
“의심이 있거든 물어라.”
“어떤 것이 화상의 가풍입니까?”
“비단 휘장과 은으로 된 향주머니에 바람이 불면 길가에 향기 가득하니라.” 

어떤 스님이 대사의 초상을 그려다 바치니, 대사가 물었다.
“나를 닮았느냐?”
스님이 대답이 없으니, 대사가 스스로 대답했다.
“대중이 눈치를 챘다.” 

어느 날 대사가 욕실에 들어갔다가 어떤 스님이 물레방아[水輪]를 밟아 돌리는 것을 보았다. 그 스님이 대사를 보고 내려 와서 인사를 하니, 대사가 말했다.
“신통하게도 녹록碌碌하게 물을 푸다가 어찌하여 그렇게 하는가?”
그 스님이 말했다.
“그러하지 않으면 또 어찌하겠습니까?”
“그렇게 한다면 흠산欽山의 안목이 어디에 있으랴?”
“어떤 것이 스님의 안목입니까?”
대사가 손으로 눈썹을 문지르는 시늉을 하니, 스님이 말했다.
“화상은 또 그렇게 하는군요.”
“그렇다. 내가 이렇게 하면 문득 이렇게 되지 않는다.”
스님이 대답이 없으니, 대사가 말했다.
“싸움을 해서 공이 없으니, 한바탕 민망할 뿐이니라.”
한참 동안 가만히 있다가 스님에게 물었다.
“알겠는가?”
“잘 모르겠습니다.”
“흠산이 그대 짐의 반을 나누어 졌다.”

대사가 설봉雪峰․암두巖頭와 함께 강서江西로 가다가 어느 찻집에 들려서 차를 마셨는데, 대사가 말했다.
“몸을 굴리고 기를 통할 줄[轉身通氣] 모르는 자는 오늘 차를 마시지 못하기로 합시다.” 
암두가 말했다.
“그렇다면 나는 결정코 차를 마시지 못하겠소.”
설봉이 말했다.
“나도 그렇소.”
이에 대사가 말했다.
“두 늙은이가 말귀도 못 알아듣는구나.”
암두가 말했다.
“어디로 가시겠소?”
대사가 말했다.
“자루 속에 있는 늙은 까마귀는 살아 있어도 마치 죽은 것 같소.”
암두가 말했다.
“뒤로 물러서시오, 뒤로 물러서시오.” 
대사가 말했다.
“활豁 사형은 그만두고, 존공存公은 어찌하시겠소?”
설봉이 손으로 동그라미를 그리니, 대사가 말했다.
“묻지 않을 수 없구나.”
암두가 ‘하하’ 웃으면서 말했다.
“까마득하구나.”
대사가 말했다.
“입이 있어도 차를 마시지 못할 사람이 많구나.”
암두와 설봉이 모두 말이 없었다.

양良 선객禪客이라는 이가 뵈러 와서 절을 하고는 물었다.
“화살 하나로 세 관문을 쏠 때는 어떠합니까?”
대사가 말했다.
“관문 속의 주인을 쫓아내 봐라.”
“그렇다면 허물을 아니 반드시 고치겠습니다.” 
“다시 어느 시절을 기다리겠는가?” 
“하나의 화살을 잘 쏠 뿐 장소에 집착하지 않습니다.” 
그리고는 나가 버리니, 대사가 말했다. 
“세 관문을 쏘려거든 흠산에게 화살을 날려 보라.”
양 선객이 다가 와서 잠자코 있다가 물러가니, 대사가 양 선객을 일곱 방망이 때렸다. 양 선객이 나가 버리자 대사가 말했다.
“저 어지러운 사람이 마음속으로 30년 동안 의심하게 놓아두리라.”
어떤 사람이 동안同安 화상에게 가서 이야기하니, 동안이 말했다.
“양공(良公:양 선객)이 비록 활을 쏘기는 했으나 과녁에 맞지 않았다.”
그 스님이 동안에게 물었다.
“어찌하여야 과녁에 맞겠습니까?” 
동안이 대답했다.
“관문 안의 주인이 누구인가?”
그 스님이 돌아와서 대사에게 이야기하니, 대사가 말했다.
“양공이 만일 그렇게 알았더라면 흠산欽山의 입길[口]을 면했으리라. 그러나 동안同安도 좋은 마음은 아니니 잘 살피어야 한다.”

어떤 스님이 뵈러 오니, 대사가 주먹을 번쩍 세우고 말했다.
“만일 펴서 손바닥을 이루면 다섯 손가락이 들쑥날쑥하겠지만, 지금은 주먹이 되었으니 반드시 높고 낮음이 없으리라. 그대는 흠산이 헤아릴 수 있다고 여기는가, 헤아릴 수 없다고 여기는가?”
그 스님이 가까이 와서 주먹만을 세우고 있으니, 대사가 말했다.
“그렇게 한다면 그대는 필경 폈다 오므렸다 하지 못하는 놈이리라.”
“그렇다면 화상께서는 어떻게 사람을 제접하십니까?”
“내가 만일 사람을 제접한다면 그대와 매 한가지다.”
“특별히 스님께 배우려 왔으니, 종풍宗風을 토로해 주십시오.”
“그대가 만일 특별히 왔다면 나는 반드시 토로하겠다.”
“말씀해 주십시오.”
대사가 때리니, 그 스님이 말이 없었다. 이에 대사가 말했다.
“그루터기를 지키면서 토끼를 기다리니, 정신만 헛되이 썼구나.”


행사行思 선사의 제6세 ①

앞의 암두巖頭 전활全豁 선사의 법손

태주台州 서암瑞巖 사언師彦 선사
그는 민월閩越 사람으로서 성은 허許씨이다. 어릴 적부터 스님이 되어서 흠결 없이 계를 지켰다. 
처음에 암두巖頭를 뵙고 물었다.
“무엇이 본래의 항상한 이치[常理]입니까?”
암두가 대답했다.
“움직였다.”
“움직일 때에는 어떠합니까?”
“본래의 항상한 이치가 아니니라.”
대사가 한참 동안 생각에 잠겨서 잠자코 있자, 암두가 말했다.
“긍정한다면 근진根塵을 벗어나지 못하고, 긍정하지 않으면 영원히 생사에 허덕인다.”
이 말에 대사는 깨달아서 몸과 마음이 가뿐하였다. 이에 암두가 다시 불러서 이리저리 시험해 물었으나, 어긋난 대답이 없었다.

대사는 다시 협산夾山 회會 화상에게 가서 뵈니, 협산이 물었다.
“어디서 왔는가?”
“와룡臥龍에서 왔습니다.”
“올 때에 용이 일어났던가?”
대사가 뒤를 돌아보니, 협산이 말했다.
“뜬 종기 위에다 다시 쑥불을 놓는구나.”
“화상은 또 그런 고통을 받아서 무엇 하시렵니까?”
협산이 그만두었다.
대사는 다시 단구丹丘에게 가서 종일 바보처럼 하고 있으니, 사부대중이 흠모하여 서암瑞巖에 머물기를 청하였다. 대중을 통솔함이 엄중하다고 강표江表 지방에서 그를 칭송하였다.

어떤 스님이 물었다.
“머리 위에 보배 일산이 나타나고 발밑에 구름이 생길 때에는 어떠합니까?”
“칼을 쓰고 족쇄를 찬 놈이니라.”
“머리에 보배 일산이 없고, 발밑에서 구름도 나지 않을 때에는 어떠합니까?”
“여전히 칼을 쓰고 있느니라.”
“끝내 어떠합니까?”
“밥 먹은 뒤에는 피곤하니라.”

경청鏡淸이 물었다.
“하늘이 덮지 못하고 땅이 싣지 못한다 하니, 어찌 그렇지 않겠습니까?”
“만일 그렇다면 곧 덮이고 싣게 되는 것이니라.”
“만일 서암瑞巖 화상이 아니었더라면 거의 만날 뻔하였습니다.”

대사는 사언師彦이라고 자칭했는데, 어떤 이가 물었다.
“어떤 것이 부처입니까?”
“돌소[石牛]이니라.”
“어떤 것이 법입니까?”
“돌소의 새끼이니라.”
“그러면 같지 않겠습니다.”
“합칠 수는 없느니라.”
“어째서 합칠 수 없습니까?”
“같다고 할 만한 같음[同]이 없거늘 합쳐서 무엇 하리오?”
“어떻게 헤아려야 계급에 떨어지지 않겠습니까?”
“물리쳐도 벗어나지 못하니라.”
“어째서 물리쳐도 벗어나지 못합니까?”
“본래부터 계급이 전혀 없기 때문이니라.”
“어떤 지위와 차례에 있습니까?”
“보광전普光殿에도 머물지 않느니라.”
“그렇다면 다스리고 교화하시기는 하십니까?”
“이름이 삼계에 소중하게 퍼졌으니, 어느 곳에선들 조정에 돌아오지 않으랴?”

어느 날 마을에 사는 어떤 노파가 와서 절을 하니, 대사가 물었다.
“그대는 빨리 집으로 돌아가서 수천 명의 생명을 구제하라.”
노파가 황급히 집으로 돌아오니, 그의 며느리가 대나무 광주리에다 소라를 주워 가지고 돌아왔다. 노파가 그것을 받아서 모두 물에다 넣어 주었다.
대사의 기이한 행적이 매우 많았는데, 모두 다른 기록에 남아 있다.

회주懷州 현천玄泉 언彦 선사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도道 가운데 사람입니까?”
“해가 지면 외로운 주막에 투숙하느니라.”
“어떤 것이 부처입니까?”
“장張씨네 세 아기이니라.”
“학인은 잘 모르겠습니다.”
“맏이와 중간과 막내도 모르는가?”
“어떤 것이 소리 이전의 한 구절입니까?”
“훔[吽].”
“구른 뒤에는 어떠합니까?”
“그게 무엇인가?”

길주吉州 영암靈巖 혜종慧宗 선사
그는 복주福州 장계張谿 사람으로서 성은 진陳씨이다. 구산龜山에게서 가르침을 받았다.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영암靈巖의 경계입니까?”
“소나무와 회檜나무가 빽빽해서 막혔느니라.”
“어떤 것이 경계 속의 사람입니까?”
“밤마다 원숭이가 운다.”
“어떤 것이 학인의 자기 본분사입니까?”
“진짜 금은 던져 버리고 기와조각을 주워서 무엇을 하려는가?”
대사는 나중에 화산禾山에서 살다가 임종했다.

복주福州 나산羅山 도한道閑 선사
그는 본 고을의 장계長谿 사람으로서 성은 진陳씨이다. 구산龜山에 의해 스님이 되었다가, 나이가 들어 구족계를 받고 제방을 돌아 다녔다.
일찍이 석상石霜을 뵙고 물었다.
“가고 머무름에 편안하지 않을 때에는 어찌합니까?”
석상이 대답했다.
“다만 다 버릴 뿐이다.”
대사가 뜻에 맞지 않아서 다시 암두에게 가서 앞서와 같이 물으니, 암두가 말했다.
“그저 가고 머무는 대로 할 뿐 그것을 상관해서 무엇 하랴?”
대사가 이에 감복하였다. 이어 청량산으로 가니, 민수閩帥가 그의 법문을 듣고 나산에 머물기를 청하니, 호를 법보法寶 대사라고 했다.
처음 상당하는 날에 법상에 올라 옷을 여미면서 말했다.
“잘 있었는가?” 
조금 있다가 또 말했다.
“잘 모르는 이는 앞으로 나서라.”
이때에 어떤 스님이 나서서 절을 하니, 대사가 소리를 높여 말했다.
“너무나 괴롭구나.”
그 스님이 일어나서 물으려고 망설이는데, 대사가 할을 해서 내쫓았다.

어떤 이가 물었다.
“어떤 것이 기특한 한 구절입니까?”
“무엇이라 했는가?”
“부처님께서 이마 사이로부터 백호광명白毫光明을 놓으셔서 1만 8천 세계를 비추었다고 하는데, 어떤 것이 광명입니까?”
“큰 소리로 말하라.”
“어떤 세계를 비춥니까?”
대사가 할을 하여 내쫓았다.

어떤 스님이 물었다.
“급해서 달려 왔습니다. 스님께서 한 차례 지도해 주십시오.”
“알겠는가?”
“잘 모릅니다.”
“화살이 지나갔다.”
“아홉 여자가 끌지 않으면, 누가 슬프게 끌어 주는 자입니까?”
“큰 소리로 물어라.”
스님이 다시 물으려 하자, 대사가 말했다.
“어디를 가려는가?”
“어떤 것이 종문宗門의 유포流布입니까?”
대사가 발을 뻗어 보였다.
“칼날 앞에 선 일을 어떻게 가려내서 밝힙니까?”
대사가 여의(如意:法具의 일종 )를 들어 보이니, 스님이 다시 말했다.
“화상께서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너무나 멀다.”
“어떤 것이 가장 묘한 한 구절입니까?”
“헤쳐서 드러냈는데 알겠는가?”
스님이 말을 계속하려고 하니, 대사가 말했다.
“말에 떨어졌다[話墮].”

정혜定慧 상좌가 와서 뵙자, 대사가 물었다.
“어디서 왔는가?”
“멀리서는 서촉西蜀에서 떠났고, 가까이는 개원開元을 출발했습니다.”
더 앞으로 가까이 나서면서 물었다.
“지금은 어찌하리까?”
대사가 대답했다. 
“차나 마시고 가라.”
정혜가 그래도 물러서지 않으니, 대사가 말했다.
“가을바람이 약간 훈훈하구나. 가거라.”
정혜 상좌가 법당 밖으로 나가서 탄복하였다.
“오늘 나산의 산채[寨]를 치려고 했는데, 활이 부러지고 화살이 다했구나.”
그리고는 그만두고 내려가서 큰방으로 들어갔다. 이튿날 대사가 상당했는데 정혜가 나서서 물었다.
“창문을 활짝 열었을 때에 마루에 서 있는 이가 누구입니까?”
대사가 할을 하니, 정혜가 말이 없었다. 이에 대사가 말했다.
“털도 아직 나지 않았구나. 가거라.”

스님이 한산시寒山詩를 들어서 물었다.
“온갖 새들이 꽃을 물어 올 때는 어떠합니까?”
“정녀貞女가 방 안에서 읊조리느니라.”
“천 리를 한 숨에 갈 때는 어떠합니까?”
“손님을 전송하고 뜰 밖에서 노닌다.”
“봉래산蓬萊山으로 가고자 할 때에는 어떠합니까?”
“퇴침에 기대고 앉아서 원숭이를 구경한다.”
“이것으로 양식을 충당할 때에는 어떠합니까?”
“고검古劍이 해골 앞에 있느니라.”
“온갖 풀[百草]의 끝이 다 조사의 뜻이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대의 눈을 찔러 꿰뚫으리라.”
“소리 이전에 옛 털이 난만[爛]하다는 뜻이 무엇입니까?”
“벽에 기대라.”
“앞에는 만 길 벼랑이 있고, 뒤에는 호랑이와 사자가 있는데, 바로 이러할 때에는 어찌합니까?”
“자재하니라.”
“누가 삼계의 주인입니까?”
“밥을 먹을 줄 아는가?”

대사가 임종할 무렵에 상당하여 대중을 모았다. 가만히 잠자코 있다가 왼손을 펴니, 소임을 맡은 이가 어쩔 줄을 몰라 하면서 동쪽에 앉은 스님들을 뒤로 물러나게 했다. 대사가 또 오른손을 펴니, 다시 서쪽에 앉은 스님들을 뒤로 물러나게 했다. 이에 대사가 대중에게 말했다.
“부처님의 은혜를 갚고자 한다면 대교大敎를 퍼뜨리는 것보다 나은 것은 없느니라. 나는 돌아간다. 돌아간다. 잘 있어라.”
말을 마치고는 태연히 입적하였다.

복주福州 향계香谿 종범從範 선사
어떤 스님이 와서 뵈니, 대사(종범)가 물었다.
“그대는 고산鼓山의 스님이 아닌가?”
“그렇습니다.”
“이마의 구슬을 어째서 보지 못하는가?”
스님이 대답이 없었다. 스님이 하직하는데 대사가 문까지 전송을 나왔다가 “상좌여” 하고 불렀다. 스님이 고개를 돌리니, 대사가 말했다.
“뱃속에 가득한 것이 모두 선禪이구나.”
“화상은 무슨 생각을 하십니까?”
대사가 크게 웃을 뿐이었다.

대사가 납의衲衣를 입다가 게송을 읊었다.

가섭의 높고도 이름난 옷은
입으려면 민첩한 근기라야 하나니
과녁과 화살이 나뉘고 난 뒤엔
감추지 않던 거북이 은밀히 드러나네.
迦葉上名衣    披來須捷機
才分招的箭    密露不藏龜

복주福州 나원羅源 성수聖壽 엄嚴 화상
어떤 스님이 천주泉州에서 돌아와서 뵙자, 대사가 바느질을 하다가 번쩍 들어 보이면서 말했다.
“산승山僧의 누더기 한 벌을 여러 사람 앞에 펴 보이나니, 운수雲水여, 두어 바늘 꿰매 주시되 침선針線이 보이지 않게 하라. 빨리 말하라.”
스님이 대답이 없으니, 대사가 말했다.
“그렇게 많은 세월을 거기서 무엇을 했는가?”

앞의 홍주洪州 감담感潭 자국資國 화상의 법손

안주安州 백조산白兆山 축건원竺乾院 지원志圓 선사
호는 현교顯敎 대사이다.
어떤 스님이 물었다.
“부처님들의 심인心印을 누가 전해 받았습니까?”
대사가 대답했다.
“달마 대사니라.”
“달마가 어찌 능히 전해 받았겠습니까?”
“그대는 누가 전해 받는다고 여기는가?”
“어떤 것이 곧바로 질러가는 외길입니까?”
“바로 질러라.”
“어떤 것이 불법의 대의입니까?”
“괴롭구나[苦].”
“어떤 것이 도입니까?”
“두루하다[普].”
“어떤 것이 학인學人의 본래 몸[自己]입니까?”
“잃었구나[失].”
“무엇이 산하山河와 대지大地가 없어진 것입니까?”
“소견을 일으키지 말라.”

현칙玄則이 물었다. 
“어떤 것이 부처입니까?”
“병정丙丁 동자童子 여기서 말하는 병정丙丁 동자童子의 ‘병정’은 십간十干으로, 오행五行에 맞추면 불[火]에 해당한다. 그러므로 병정 동자는 ‘불의 동자’이고, ‘병정동자래구화丙丁童子來求火’는 불의 동자가 불을 구하러 왔다는 이야기가 된다.
가 불을 얻으러 왔구나.”[현칙이 나중에 법안法眼에게 참문하고 나서야 비로소 그 이치를 깨닫고 금릉金陵의 보은원報恩院에 살았다.]
“어떤 것이 필발라굴畢鉢羅窟 가섭도량迦葉道場 속의 사람입니까?”
“석가모니불이니라.”
“어떤 것이 주정왕朱頂王 정수리가 붉다는 의미이다.
보살입니까?”
“그런 머리 붉은 자를 무엇 때문에 묻는가?”

앞의 호주濠州 사명思明 화상의 법손

양주襄州 취령鷲嶺 선본善本 선사
욕실浴室에 들어갔을 때에 어떤 스님이 물었다.
“화상은 때[垢]를 여읜 사람인데, 어째서 목욕을 하십니까?”
“고인 물[定水]이 맑고 가득하니, 이 때 없는 사람[無垢人]을 목욕하게 한다.”
“조사의 뜻과 경전의 뜻이 같습니까, 다릅니까?”
“취령鷲嶺의 봉우리 위에 푸른 풀이 하늘을 찌르고, 녹야원鹿野苑 안에 여우와 토끼가 어지럽게 달린다.”

앞의 담주潭州 대광산大光山 거회居誨 선사의 법손

담주潭州 곡산谷山 유연有緣 선사
어떤 스님이 물었다.
“객지에서 노닐던 자식이 어떻게 집으로 돌아옵니까?”
“사람이 만나는 길에서는 통하지 않느니라.”
“그렇다면 받들어 섬길 곳이 없겠습니다.”
“내가 말하나니, 그대의 발우가 땅에 떨어졌는데 들어 올려도 움직이지 않는구나.”
“한 번 퉁겨서 문득 구를 때에는 어떠합니까?”
“야생말[野馬]이 달릴 때에 고삐가 끊어지니, 돌사람[石人]이 손뼉을 치면서 깔깔 웃는다.”

담주潭州 용흥龍興 화상
어떤 스님이 물었다.
“한 번 퉁겨서 문득 구를 때에는 어떠합니까?”
“근기가 날카롭지 않구나.”
“자리를 얻어서 옷깃을 풀 때에는 어떠합니까?”
“단정하지 않다.”
“어찌하여 단정하지 못합니까?”
“증득함으로써 생기는 것이 아니니라.”
“어떤 것이 도중道中의 사람입니까?”
“종일토록 적막하여 눈썹을 비빈다.”

담주潭州 복룡산伏龍山 화상[제1세 주지]
어떤 스님이 물었다.
“긴 강[長河]을 저어서 소락酥酪을 만들고, 땅덩이[大地]를 황금으로 변화시킬 때에는 어떠합니까?”
“팔은 긴데 소매가 짧구나.”
“인연을 따라 결과를 인식한다고 하는데, 어떤 것이 결과입니까?”
“눈 속에 핀 모란꽃이니라.”
“어떤 것이 조사께서 서쪽으로 오신 뜻입니까?”
“그대는 그처럼 아프고 가려운 것도 모르는가?”

경조京兆 백운白雲 선장善藏 선사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깊고 깊은 곳입니까?”
“난쟁이가 깊은 개울을 건너는구나.”
“맨다리[赤脚]를 드러낼 때에는 어떠합니까?”
“어찌하여 다 벗어 버리지 않는가?”
“어떤 것이 법과 법이 생겨나지 않는 것입니까?”
“만 갈래 물이요, 천 봉우리의 산이니라.”

담주潭州 복룡산伏龍山 화상[제2세 주지]
어떤 스님이 물었다.
“인연을 따라 인득認得할 때에는 어떠합니까?”
“그대는 흥국문루興國門樓의 높이가 얼마나 되리라 여기는가?”
“자식이 아비의 덕을 이야기하지 않을 때에는 어떠합니까?”
“소리를 낮춰라. 소리를 낮춰라.”

협부陜府 용준산龍峻山 화상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용준산龍峻山입니까?”
대사가 대답했다.
“불안佛眼으로 보아도 보지 못한다.”
“어떤 것이 산중山中의 사람입니까?”
“무엇을 하려는가?”
“어떤 것이 선악을 모르는 사람입니까?”
“천 명의 성인도 가까이하지 못하느니라.”
“이 사람도 향상사向上事가 있음을 압니까?”
“모르느니라.”
“어째서 모릅니까?”
“선악도 알지 못하는데, 무슨 향상사를 말하겠는가?”
“어째서입니까?” 
“안욕(犴:짐승 이름)[앞 글자는 아俄와 한寒의 반절이고, 뒷글자의 음은 욕欲이다.]이란 말을 모르는가?”
“어떤 것이 부처님의 향상인입니까?”
“용모에 드러나지 않느니라.”
“무릇 펼치고 여는 것은 다 금시今時에 떨어진다고 했는데, 펼치지도 열지도 않을 때에는 어떠합니까?”
“펼치지 말라, 펼치지 말라.”
“끝내 어떠합니까?”
“열지 말라, 열지 말라.”

담주潭州 복룡산伏龍山 화상[제3세 주지]
어떤 이가 물었다.
“천산千山의 길을 다 걸으면, 현묘한 기틀[玄機]의 일이 어떠합니까?”
대사가 대답했다.
“새의 길[鳥道]에는 깃들지를 못한다.”

앞의 균주筠州 구봉九峰 도건道虔 선사의 법손

신라新羅 청원淸院 화상
“말을 달리면서 격구 놀이[爭毬]를 하면 누가 이기는 자입니까?”
“누가 지는 자인가?”
“그러면 겨루지 않는 것이 좋겠군요.”
“설사 겨루지 않는다 하여도 역시 허물이 있다.”
“어찌하여야 이런 허물을 면합니까?”
“애초에 잃은 적이 없다.”
“잃지 않은 곳을 어떻게 단련하겠습니까?”
“두 손으로 떠받쳐도 일어나지 않는다.”

홍주洪州 늑담泐潭 보봉寶峰 신당神黨 선사
어떤 스님이 물었다.
“네 가지 위의威儀 속에서 어떻게 주인을 가려내겠습니까?”
“보봉寶峰이 신을 벗지 않은 것을 바로 만났구나.”
“어떤 것이 불법의 대의입니까?”
“허공에 무쇠 배를 띄우니, 산봉우리의 물결이 하늘을 찌른다.”

길주吉州 남원산南源山 행수行修 선사
호는 혜관慧觀 선사 또는 광목光睦 화상이다.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남원산南源山의 경치입니까?”
“몇 개의 봉우리에서 원숭이와 새가 울었던가? 한 줄기 평평한 개울에서 놀던 아이들이 헤매는구나.”
“어떤 것이 남원南源의 깊고 깊은 곳입니까?”
“뭇 사람이 모두가 본다.”
“그렇다면 얕겠습니다.”
“그 두 지점은 퍽 멀다.”

홍주洪州 늑담泐潭 명明 선사
어느 날 객승의 자리로 내려가 앉으니, 대중이 방장으로 돌아가라고 청했다. 이에 대사가 말했다.
“말할 수 있으면 곧 가겠다.”
이때에 모牟 화상이라는 이가 대답했다.
“대중이 청합니다.”
대사가 그때서야 법당에 오르니, 어떤 이가 물었다.
“생각으로 헤아릴 수 없는 곳이라서 식정識情으로 헤아리지 못할 때에는 어떠합니까?”
“나는 옛사람을 어기고 싶지 않다.”
“옛사람의 뜻을 어기지 않으면 어떠합니까?”
“그래도 절 세 번은 받을 수 있다.”

스님이 물었다.
“방아와 다듬이로 갈고 갈아서 잊지 말아야 한다는데, 이게 무슨 뜻입니까?”
“호랑이 아가리 속에 살아 있는 참새이니라.”
“어떤 것이 수행하는 도자道者입니다.”
“털이 삼삼毿毿하니라.”
“어떤 것이 도자의 가풍입니까?”
“불전佛殿 앞에서 존자를 만난다.”
“어떤 것이 화상의 하루 일입니까?”
“발우 속에 부러진 젓가락이 없느니라.”
“어떤 것이 사문의 하루 일입니까?”
“시끄럽게 만인萬人의 근기를 빌지 않는다.”

길주吉州 추산秋山 화상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조사께서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삼杉나무니라.”

홍주洪州 늑담泐潭 연무延茂 선사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옛 부처님의 마음입니까?”
“끝내 토목이나 기왓장이라고 말하지 않아야 옳다.”
“해가 서산에 졌는데 숲 속의 일은 어떠합니까?”
“뜰 앞에는 붉은 꽃이 수려하건만, 방 안에서는 봄을 알지 못한다.”

홍주洪州 봉서산鳳棲山 동안원同安院 상찰常察 선사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봉서鳳棲의 가풍입니까?”
“봉서에는 가풍이 없다.”
“이미 봉서라면 어째서 가풍이 없습니까?”
“손님을 영접하지도 않고, 손님을 대접하지도 않느니라.”
“그러면 사해四海에서 배우러 온 자들은 무엇을 해야 합니까?”
“쟁반의 음식은 저절로 옆의 사람이 베푼다.”
“어떤 것이 봉서의 경계입니까?”
“천 봉우리가 줄을 지어 솟아 있고, 만 골짜기는 봄을 알지 못한다.”
“어떤 것이 경계 안의 사람입니까?”
“외로운 바위가 돌에 기대어 앉았으니, 백운白雲의 마음을 내리지 않는다.”

홍주洪州 늑담泐潭 광오匡悟 선사[제4세 주지]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바로 질러가는 외길입니까?”
“좋은 소식 같구나.”
“또한 향상사와도 통합니까?”
“물고기가 밑으로 지나간다.”
“어떤 것이 문을 닫고 수레를 만드는 것입니까?”
“살림살이에 한 물건도 없느니라.”
“어떤 것이 문에 나서서 바퀴를 맞추는 것입니까?”
“앉은 채로 장안長安에 가느니라.”
“향 연기가 자욱하게 큰 법석法席을 베풀었는데, 위로부터 내려온 종승宗乘을 어떻게 드날리겠습니까?”
“남에게 잘못 말하지 말라.”
“그렇다면 총체적으로 이러해야겠습니다.”
“역시 교섭이 없느니라.”
“여섯 잎이 향기로운데, 스님은 어느 잎을 전하셨습니까?”
“여섯 잎은 상속하지 않고, 꽃이 피어도 열매를 맺지 않느니라.”
“어찌 오늘의 일이 없겠습니까?”
“만약 오늘이라면 있는 것이니라.”
“오늘의 일이 어떠합니까?”
“잎과 잎이 이어진 가지마다 빼어난데, 꽃이 피니 곳곳마다 향기롭다.”

길주吉州 화산禾山 무은無殷 선사
그는 복주福州 사람으로서 성은 오吳씨이다. 7세에 설봉雪峰 진각眞覺 대사에 의해 스님이 되었다가, 나이가 차자 구족계를 받고 행각을 떠나 균양筠陽에 가서 구봉九峰을 뵈었다. 구봉이 입실入室을 허락하고는 어느 날 이렇게 물었다.
“그대가 멀리서 와서 재치 있게 대중을 따르는데, 어떠한 경계로서 수행할 수 있어야 한다고 보며, 어떠한 지름길을 통해서 벗어나 여의어야 한다고 여기는가?”
대사가 대답했다.
“겹겹의 어둠이 확 밝아졌으나 소경은 제 스스로가 보지 못할 뿐입니다.”
구봉은 처음에는 허락하지 않았으나, 대사가 나중에 그 뜻을 깨닫고 알던 지견을 단박에 잊었다. 
그 뒤에 청을 받아서 길주吉州 화산禾山에 있는 대지원大智院에 머무르면서 배우는 자들을 제도했다. 대사가 일찍이 교훈 열 편을 지으니, 제방에서 탄복하면서 ‘화산은 총림의 본보기로 삼을 만하다’고 여겼다.
당시 강남江南의 이李씨가 대사를 초빙하고서 물었다.
“화상은 어디서 오셨소?”
“화산禾山서 왔습니다.”
“화산이 어디에 있소?”
“사람은 조정의 대궐 앞에 오지만, 산악山嶽은 움직인 적이 없습니다.”
국주(國主)가 소중히 여겨서 양주揚州의 상광원祥光院에 살도록 명하였으나, 다시 산으로 들어가겠다고 청하여 강서江西 지방의 훌륭한 경관인 취암원翠巖院을 선택해서 살았다. 
당시 상람원上藍院에서도 방을 비워 놓고서 대사에게 왕래하며 교화해 달라고 하고, 호를 징원澄源 선사라 하였다.
이때에 어떤 스님이 물었다.
“학인이 처음으로 총림에 들어 왔으니, 스님께서 지시해 주십시오.”
대사가 대답했다.
“그대에게 아끼지 않겠다.”
“앙산仰山이 삽을 꽂은 뜻이 무엇입니까?”
“그대가 나에게 묻는 것이다.”
“현사玄沙가 삽을 걷어차서 쓰러뜨린 뜻은 무엇입니까?”
“내가 그대에게 묻는 것이다.”
“참다운 종풍을 가려내지 못했는데, 어떻게 체득할 수 있겠습니까?”
“머리가 크고 꼬리가 뾰족하니라.”
“지척 사이에 있는데 어째서 스님의 얼굴이 보이지 않습니까?”
“그대에게 하나의 반만 일러 주리라.”
“어째서 전부를 일러 주시지 않습니까?”
“법이 다하면 백성이 없다.”
“백성들이 없는 것은 두렵지 않으니, 스님께서 법을 다해 주십시오.”
“지기(知己:벗)를 위해서 몸을 잃는다.”
“어째서 몸을 잃습니까?”
“좋은 마음이라도 좋은 보답은 없다.”
“존자가 눈썹을 치키고 눈을 부릅뜨면서 아육왕[育王]을 볼 때는 어떠합니까?”
“지금도 그렇다.”
“학인은 어떻게 이해하오리까?”
“마리지산摩利支山 아님이 없다.”
“마니보전摩尾寶殿에 네 귀퉁이가 있는데, ‘한 귀퉁이는 항상 드러나 있다’고 합니다. 어떤 것이 항상 드러난 귀퉁이입니까?”
대사가 손을 번쩍 들고 말했다.
“그대가 나를 때려라.”
그리고는 물었다.
“그대는 알겠는가?”
“모르겠습니다.”
“그대가 어찌 나를 때릴 줄 알겠는가?”
“어떤 것이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쳐서 부셔라.”
“이미 이글거리는 불꽃 속에 있으니, 스님께서 단련해 주십시오.”
“망치가 떨어지면 그릇이 되느니라.”
“그러면 단련이 되었군요.”
“지주池州 화상이니라.”
“사방 벽에서는 벼를 떨고, 중간 줄은 풀을 벱니다. 화상께서는 어느 쪽으로 가시겠습니까?”
“어느 곳으로도 나가지 않는다.”
“그러면 대중과 똑같이 가겠군요.”
“보잘것없는 스승의 제자로군.”

대사는 건륭乾隆 원년元年 경신庚申 2월에 작은 질병이 생겼었는데, 3월 2일에는 시자를 시켜서 “방장 문을 열고 대중을 모아라”고 한 뒤에 하직을 고했다.
“나중의 학자들은 화산을 알지 못하리니, 바로 지금 알아 둬라. 잘 있어라.”
이보다 앞서 대중은 생장生藏을 세우게 되었는데, 본국에서는 시호를 법성法性 선사라 하고 탑호는 묘상妙相이라 하였다.

홍주洪州 늑담泐潭 모牟 화상
“어떤 것이 학인이 힘을 쓰는 곳입니까?”
“바로 그것이 힘을 쓴 것이니라.”
“옛사람이 자리를 걷은 뜻이 무엇입니까?”
“잘 있어라.”
그리고는 법당에서 내려 왔다.

앞의 태주台州 용천涌泉 경흔景欣 선사의 법손

태주台州 육통원六通院 소紹 선사
처음에 용천涌泉 화상을 뵙고서 입실하여 종지를 깨달았다.
어느 날 밭을 태우고서 돌아오니, 용천이 물었다.
“어디를 갔다 왔는가?”
“밭을 태우고 옵니다.”
“불을 지른 뒤의 일은 어찌 되었는가?”
“무쇠 뱀이 뚫어도 들어가지 않습니다.”
용천이 허락했다.

나중에 육통원六通院에 살기 시작하니, 참선하는 무리가 모여와서 의지했다.
어떤 스님이 물었다.
“목구멍과 입술을 벗어나지 않는 일이 어떠합니까?”
“그대가 호미로 한 번 찍어서 건자산巾子山을 끊게 되면 그대에게 말해 주리라.”
“남산에 독룡毒龍 한 마리가 있는데 어찌하여야 가까이하겠습니까?”
“그대뿐만이 아니라 천 명의 성인이라도 가까이하지 못한다.”
“듣건대 남방에는 한 칼[一劍]에 관한 이야기가 있다는데, 어떤 것이 한 칼입니까?”
“칼날[鋒]과 맞서지 않느니라.”
“머리가 떨어지면 어찌하겠습니까?”
“나는 칼날과도 맞서지 않는다 했는데 무슨 머리가 있겠는가?”
그 사람이 절을 하고 물러갔다. 
대사가 여름을 쉬기 위해서 천태산天台山의 화정봉華頂峰에 들어가 자취를 감춘 뒤로는 그의 여생을 알 수 없다.

앞의 담주潭州 운개산雲蓋山 지원志元 선사의 법손

담주潭州 운개산雲蓋山 지한志罕 선사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산봉우리의 물결이 하늘까지 넘실대는 것입니까?”
“문수보살이 바로 시끄러움을 일으킨다.”
“바로 시끄럽게 굴 때에는 어찌합니까?”
“기틀 앞을 향해서 대비大悲를 펴지 말라.”

신라新羅 와룡臥龍 화상
“어떤 것이 대인大人의 모습입니까?”
“자줏빛 휘장 안에서 손을 내리지 못한다.”
“어째서 손을 내리지 못합니까?”
“존귀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루 종일 어떻게 마음을 쓰리까?”
“원숭이가 털 있는 벌레[毛蟲]를 잡아먹었다.”

영주影州 천태天台 화상[앞서 천태산에 살았다.]
“옛 부처님께서는 어디로 가셨습니까?”
“복판에 있는 큰집이 우뚝 솟아서 해마다 신령스런 싹을 낸다.”
“옛 거울을 갈지 않았을 때에는 어떠합니까?”
“공력을 들이지 않는다.”
“간 뒤에는 어떠합니까?”
“비추지 않는다.”

앞의 담주潭州 곡산谷山 장藏 선사의 법손

신라新羅 서암瑞巖 화상 
“흑과 백이 모두 없이 부처의 눈을 열었을 때에는 어떠합니까?”
“그대가 안을 지킬까 걱정이다.”
“어떤 것이 탄생한 왕자입니까?”
“깊은 궁궐에 있어서 끌어내도 나오지 않는다.”

신라新羅 박엄泊嚴 화상
“어떤 것이 선禪입니까?”
“옛 무덤[古塚]은 집이 되지 못한다.”
“어떤 것이 도道입니까?”
“공연히 수레와 말의 자취만 났구나.”
“어떤 것이 교敎입니까?”
“패다라엽[貝葉]에 다 적지 못한 것이니라.”

신라新羅 대령大嶺 화상
어떤 스님이 물었다.
“겨우 동관(潼關:수도인 장안으로 향하는 길목)에 와서 그만둘 때에는 어떠합니까?”
“그저 도중의 살림이니라.”
“그 안의 살림은 어떠합니까?”
“체體는 곧 얻었으나, 당當은 얻지 못했느니라.”
“체는 얻었는데 어째서 당은 얻지 못했습니까?” 
“체體가 어떤 사람의 분상分上의 일이기 때문이다.”
“그 안의 일이 어떠합니까?”
“존귀함을 짓지 않느니라.”

앞의 담주潭州 중운中雲 개蓋 화상의 법손

담주潭州 운개산雲蓋山 경景 화상
호는 증각證覺 선사이다.
어떤 스님이 물었다.
“국토가 안정되면 공功은 어느 곳에 돌아갑니까?”
“은대문(銀臺門:상소를 받는 문) 밑에서는 하례를 하지 않는다.”
“굴려도 공이 없을 때에는 어떻습니까?”
“왕가王家의 일은 그럴 수도 있느니라.”


경덕전등록 제18권






길주吉州 청원산靑原山 행사行思 선사의 제6세 법손 14인

복주福州 설봉雪峰 의존義存 선사의 법손 14인
복주福州 현사玄沙 사비師備 선사
복주福州 장경長慶 혜릉慧稜 선사
복주福州 대보산大普山 현통玄通 선사
항주杭州 용책사龍冊寺 도부道怤 선사
복주福州 장생산長生山 교연皎然 선사
신주信州 아호산鵝湖山 지부智孚 선사
장주漳州 보은報恩 회악懷岳 선사
항주杭州 서흥西興 화도化度 사욱師郁 선사
복주福州 고산鼓山 신안神晏 국사
장주漳州 융수隆壽 소경紹卿 선사
복주福州 선종僊宗 행도行瑫 선사
복주福州 연화산蓮華山 영복永福 종엄從弇 선사
항주杭州 용화사龍華寺 영조靈照 선사
명주明州 취암翠巖 영참令參 선사
  [이상 14인은 기록에 보임]


행사行思 선사의 제6세 ②

복주福州 설봉雪峰 의존義存 선사의 법손

복주福州 현사玄沙 종일從一 대사
법명은 사비師備이다. 복주 민현閩縣 사람으로서 성은 사謝씨이다. 어릴 때부터 낚시질을 좋아하여 남대강南臺江에다 작은 배 하나를 띄워 놓고 여러 어부들과 즐겁게 어울렸다. 
당나라 함통咸通 초에 이르러 나이 30세가 되자 홀연히 세상을 싫어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낚시 배를 버리고 부용산芙蓉山 영훈靈訓 선사에게 가서 머리를 깎고, 예장豫章의 개원사開元寺에 가서 도현道玄 율사律師에게 구족계를 받은 뒤에 베옷과 짚신을 신고 음식은 겨우 호흡을 이을 정도에 그치면서 항상 종일토록 가만히 앉았으니, 대중이 모두 이상히 여겼다. 설봉 의존과는 본래 사형 사제였으나 가까이 지내기를 스승과 제자처럼 하였는데, 설봉은 대사가 고행을 한다고 하여 두타頭陀라 불렀다.
어느 날 설봉이 물었다.
“어느 것이 비備 두타인가?”
대사가 대답했다.
“끝내 사람을 속이지는 않습니다.”
다른 날 설봉이 불러서 말했다.
“비 두타는 어째서 두루 참문하러 떠나지 않으시오?”
대사가 대답했다.
“달마는 동토東土에 오지 않았고, 2조祖도 서천西天에 가지 않았습니다.”
설봉이 그렇다고 여겼다. 
상골산象骨山에 갈 때에 대사와 같이 가서 힘을 합쳐 절을 지으니 참선하는 무리가 많이 모였다. 이에 대사도 설봉에게 입실하여 어려운 것을 묻고 아침저녁으로 문안을 빠뜨리지 않았다. 또 󰡔능엄경楞嚴經󰡕을 보다가 마음의 바탕을 밝힌 뒤로는 기틀에 응함이 민첩하고, 수다라修多羅와는 은밀히 계합하였다. 제방에서 공부하는 이가 해결하지 못한 일이 있으면 반드시 대사에게 와서 물었으며, 나아가 설봉 화상과 같은 이가 따지고 물어도 한 치의 망설임이나 물러섬이 없었다. 이에 설봉이 탄복했다.
“비 두타는 참으로 천상으로부터 다시 태어난 사람이로다.”

어느 날 설봉이 상당하여 말했다.
“이 일을 알고자 하는가? 마치 옛 거울이 경대에 걸려 있어서 오랑캐가 오면 오랑캐가 나타나고, 한漢나라 사람이 오면 한나라 사람이 나타나는 것과 같다.”
이때에 대사가 나서서 물었다.
“홀연히 밝은 거울이 깨어지면 어떠합니까?”
설봉이 대답했다.
“오랑캐도 한나라 사람도 모두 숨는다.”
대사가 말했다.
“노스님의 발꿈치가 여전히 땅에 닿지 않습니다.”

어느 날 대사가 상당하여 오랫동안 잠자코 있으니, 대중들은 모두가 설법을 하지 않는다고 여겨서 일시에 모두 흩어졌다. 이에 대사가 꾸짖었다.
“저것 봐라. 모두가 똑같구나. 지혜는 하나도 없으면서 그저 내가 두 조각 가죽을 열고 닫는 것만을 보면 모두 모여와서 말을 찾고 뜻을 헤아리지만, 내가 진실로 자기들을 위하는 것은 전혀 알지 못하는구나. 이렇게 살피기란 너무나 어렵고도 어렵구나.”
언젠가는 또 이렇게 말했다.
“여러 선덕禪德들이여, 여러분 모두가 제방을 두루 다니다가 돌아와서는 나에게 선을 묻고 도를 배운다고 하는데, 기특한 곳이 있는가, 아니면 그저 이렇게 이러쿵저러쿵 하는 것인가? 만약 있다면 시험 삼아 통해 보라. 그대들을 위하여 시비를 가려 주리라. 
나는 알아채서 얻은 것을 다했는데, 이 또한 있는 것인가? 만일 없다면, 그저 익살을 보러 다니는 것일 뿐임을 알아야 한다. 그대들이 이미 여기까지 왔다니, 내가 이제 그대들에게 물으리라. 그대들 모두는 안목을 가지고 있는가? 만약 있다면 바로 지금 문득 합하면서 알아채야 한다. 알아챘는가? 만일 알아채지 못했다면, 지금부터 내가 청맹과니[生盲]나 배냇벙어리[生聾]라 불러야겠다. 과연 옳겠는가? 이렇게 말해도 좋겠는가? 
선덕들이여, 그렇다고 스스로 못난 척하지도 말라. 그대들은 진실하거늘 어찌 그런 사람이 된 적이 있겠는가? 시방의 부처님들이 그대를 잡아다 정수리에 올려놓고 있으니, 조금이라도 잘못 알지 말라. 다만 이 일을 말한다면, 오직 나만이 아는 것이다. 알겠는가?
오늘까지 전해 받는 이들이 모두가 석가의 법을 전승했다고 말하지만, 나는 석가와 똑같이 참구했다고 하노라. 그대들은 누구와 참구했는가? 알겠는가?
도무지 쉽게 알 수 없는 것이니, 크게 깨닫지 않고서는 이해해 알았다고 하지 말라. 만일 깨달은 바에 한계가 있으면 역시 능히 보지 못한 것이니, 그대들은 크게 깨닫는 것을 알아챘는가? 그대들은 해골 앞에서 저 비추는 작용을 인정하지 말아야 하고, 그대들은 공空을 설하지 말고, 무無를 설하지 말고, 이쪽저쪽을 설하지 말고, 세간법世間法이 있다고도 하지 말고, 한 개라도 세간법이 아니라고도 하지도 말라. 화상자和尙子들아, 허공도 오히려 미망迷妄으로부터 환생幻生한 것이거늘, 지금 만일 크게 긍정해 버린다면 어디에 그런 말이 있을 수 있으랴? 오히려 허공의 소식도 없거늘 어디에 삼계의 업의 차례와 부모의 연생緣生이 있어서 그대의 수명에 앞뒤를 세우겠는가? 바로 지금 없다[無]고 하여도 오히려 거짓말이거늘, 하물며 있음[有]이겠는가? 알겠는가?
그대들은 오랫동안 행각한 화상자들로서 깨달은 일이 있다고 하니, 내가 이제 그대들에게 묻겠다. 산봉우리 벼랑에 사람 자취가 없는 곳에도 불법이 있는가? 재량해서 가려내겠는가? 만일 가려내지 못한다면 마쳤다고 할 수 없다. 내가 항상 말하기를 ‘죽은 스님의 얼굴 앞이 바로 눈에 닿은 보리요, 만 리의 신령한 광채가 정수리 뒤의 모습이다’라고 했나니, 누구든지 눈치를 챈다면 5음陰․18계界를 벗어남에 걸림이 없어서 그대들 해골 앞의 의식과 상념을 온통 벗어나리라. 다만 그대들은 진실한 사람의 몸[眞實人體]이거늘, 어디에 다른 한 법이 있어서 그대들을 가리고 덮은 것을 풀겠는가? 알겠는가, 믿겠는가, 알아서 긍정하겠는가? 모름지기 많이 노력하라.”
대사가 또 말했다.
“내가 이제 그대들에게 묻나니, 어떤 일을 이어받았으며, 어느 세계에 안신입명安身立命하겠는가? 판별할 수 있겠는가? 만일 판별하지 못한다면 마치 눈을 비벼서 허공에 꽃이 나는 것 같아서 보는 일마다 곧 어긋난다. 알겠는가?
바로 지금 현전해 있는 산하대지山河大地와 물체[色]․허공[空]․밝음․어둠 따위 갖가지 물건이 있다고 보는 것은 모두 미치고 헛되이 애쓰다가 생긴 허공 꽃의 모습이므로 뒤바뀐 지견知見이라고 부른다. 무릇 출가한 사람은 마음을 알아채고 근본을 통달하기 때문에 사문沙門이라 한다. 그대들이 이제 머리를 깎고 옷을 입고 사문이 되었으면, 즉각 자리自利와 이타利他의 분수에 합치해야 하는데, 아직껏 새까만 것만을 들여다보다가 온통 먹물같이 새까맣게 되면, 스스로도 구제하지 못하거늘 어찌 남을 구제할 줄 알겠는가? 
그대들이여, 불법의 인연은 그 일이 크니, 한가롭게 모여서 쓸모없는 말을 어지러이 지껄이면서 세월을 보내지 말아야 한다. 광음(光陰:세월)은 얻기 어려운 것이니, 아까운 것이다. 
대장부들이여, 어찌하여 스스로 성찰하면서 ‘이 무슨 일인가’를 살피지 않는가? 가령 위로부터 내려온 종풍宗風은 모두 불정족佛頂族일 뿐인데, 그대들이 긍정하지 않기 때문에 내가 방편으로 권고하되 ‘그대들은 다만 가섭 문하에 접속接續해서 단박에 초월하라’고 한 것이다. 이 하나의 문은 그대들을 범부와 성인의 인과因果를 초월하게 하고, 비로자나의 장엄세계莊嚴世界를 초월하게 하고, 석가의 방편문方便門을 초월하게 하나니, 곧바로 영겁토록 어떤 한 물건도 그대들에게 안목이 되어 주지 않거늘 그대들은 어찌하여 급히 구하여 취取하지 않는가? 나에게 3생生이나 2생 동안 더 청정한 업을 오래 쌓으라고 말할 필요는 없다.
그대들이여, 그대들의 종승宗乘은 무슨 일인가? 그대들의 몸과 마음을 통해서 공부하고 장엄하면 된다고 여기지 말고, 타심통他心通과 숙명통宿命通으로 된다고 여기지도 말라. 알겠는가?
설사 석가가 세상에 나타나서 무수한 변화를 일으키고 12분교分敎를 병의 물을 붓는 것처럼 말해서 한 마당[場] 불사를 이룰지라도, 그대들의 이 문중에서는 한 점도 쓰지 못하고 한 터럭의 재주도 쓰지 못한다. 알겠는가? 마치 꿈과도 같고 잠꼬대와도 같으니, 사문은 얻으려고 하지 말라. 벗어나기만 하면 알아채게 되나니, 알겠는가? 알아채는 것이 바로 큰 해탈이자 큰 벗어남이니, 그러므로 말하되 ‘범부와 성인을 초월하고, 생과 사를 벗어나고, 인과 과를 여의고, 비로자나와 석가를 초월해서 범부와 성인의 인과의 속임을 받지 않는다’고 했지만, 어디서든 알아챈 사람이 없다는 것도 그대들은 알겠는가? 오랫동안 생사의 애욕에 연연하고 선악의 업에 얽매여서 자유自由의 분수가 없게 하지 말아야 한다.
설사 그대들이 몸과 마음을 연마하여 허공과 똑같이 하고, 설사 그대들이 정명精明해서 고요히 흔들림이 없는 곳에 이르렀을지라도 식음識陰을 벗어나지 못한다. 옛사람이 ‘급히 흐르는 물과 같다’고 했으니, 급한 흐름을 깨닫지 못하면 허망되게 맑은 것으로 여긴다. 그렇게 수행하면 모두가 윤회輪廻를 벗어나지 못하여 전과 같이 돌고 돌리니, 그래서 ‘모든 행行이 무상하다’고 말하는 것이다. 다만 3승의 공과功果가 이처럼 두렵거늘, 만일 도의 안목이 없으면 역시 구경究竟이 되지 못하니, 어떻게 오늘의 박지범부博地凡夫로부터 한 터럭의 공력도 들이지 않고 단박에 초월하겠는가? 마음의 힘을 덜 줄 아는가? 또한 즐거움을 원하는가? 그대들에게 권하나니, 나는 지금 선 자리에서 그대들이 엿보기를 기대하지, 그대들이 공력을 들이고 행을 연마하기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지금 그렇게 하지 않으면 다시 어느 때를 기다리랴? 긍정하는가, 긍정하는가?”
대사가 또 어느 때에는 상당하여 대중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대들의 진실함이 이렇구나.”
또 어느 때에는 이렇게도 말했다.
“달마가 바로 지금 나타나 있는데, 그대들은 보았는가?”
또 이렇게 말했다.
“그대들이 험악함을 보고, 호랑이와 칼 따위의 온갖 일들이 그대들의 몸과 목숨을 핍박함을 보면 무한한 두려움을 내는데, 이렇게 한들 무엇 하겠는가? 마치 세간의 어떤 화가가 스스로 지옥의 변상變相을 그리고, 호랑이와 칼 따위를 벌려 놓고 자세히 보다가는, 도리어 스스로가 두려운 생각을 내는 것과 같으니, 그대들도 역시 마찬가지다. 백 가지 소견이 있는 것이 모두 그대들 스스로가 환상을 내어서 스스로가 두려워하는 것이니, 결코 다른 사람이 그대들에게 허물을 주는 것이 아니다.
그대들이 이제 이 환혹幻惑을 깨닫고 싶다면, 다만 그대들의 금강 같은 눈동자를 알아채라. 만일 알아챈다면 그대들로 하여금 털끝만큼이라도 드러내어 나타내게 할 것이 없거늘, 어디에 다시 그대들을 두렵게 할 호랑이와 칼 따위가 있겠는가? 설사 석가의 재주로도 빠져나갈 곳을 찾지 못하리니, 그러므로 내가 그대들에게 말하되 ‘사문의 안목은 세계를 잡아서 정하고 건곤乾坤을 덮으면서도 털끝만큼이라도 새지[漏] 않는다’고 한 것이니, 어디에 다시 한 물건이라도 있어서 그대들의 지견이 되겠는가? 알겠는가? 이렇게 해탈하고 이렇게 기특하거늘 어째서 궁구하여 취하지 않는가?”
대사는 또 이렇게 말했다.
“그대들은 모두가 큰 바다 속에 머리까지 몽땅 빠져 있으면서도 다시 손을 벌려 남에게 물을 달라고 구걸하는 것과 같다. 알겠는가? 
무릇 반야般若를 배우는 보살은 커다란 근기로서 큰 지혜가 있어야 한다. 만일 지혜가 있으면 지금 당장 해탈하겠지만, 만일 근기가 둔한 이면 모름지기 부지런히 인내해서 밤낮으로 피로도 잊고 음식도 거른 채 부모의 초상을 당한 것처럼 해야 한다. 이렇게 급하고 간절하게 일생을 다하고, 또 남의 도움을 받아서 뼈에 사무치도록 궁구하면, 알아보는 것이 어렵지 않으리라. 하물며 지금은 누가 이 배움을 감당하는 사람인가? 
그대들이여, 말만을 기억하여 마치 다라니를 외우는 것처럼 하지 말 것이며, 멈칫멈칫 제자리에서 중얼중얼[哆哆和和]하다가 남들이 꼭 붙들고 힐난할 때 갈 곳이 없게 되면, 도리어 화상이 자기를 위해 대답해 주지 않았다고 성내지 말아야 한다. 이렇게 배우면 퍽 괴로운 일이다. 알겠는가?
또 어떤 이는 일반적으로 승상繩床에 앉아서 선지식이라 하다가, 누가 물으면 손을 흔들거나 몸을 흔들거나 눈을 깜빡이거나 혀를 내밀거나 눈을 부릅뜬다. 또 어떤 이는 ‘소소영령昭昭靈靈한 영대靈臺의 지혜 성품이 능히 보고 능히 들을 수 있어서 5온蘊의 몸[身田] 속에서 주재主宰가 된다’고 하는데, 이런 것을 선지식이라 하면 크게 사람을 속이는 것이다. 알겠는가? 
내가 이제 그대들에게 묻나니, 그대들이 만일 소소영령함을 그대들의 진실이라고 인정한다면, 어째서 잠을 잘 때에는 소소영령이 이루어지지 않는가? 만일 잠잘 때에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어떻게 소소영령할 때가 있으랴? 그대들은 알겠는가? 이것은 도적을 오인해서 아들로 여기는 것이니, 이는 생사의 근본이자 망상의 인연이다. 그대들은 이 근원을 알고자 하는가? 내가 그대들에게 말하나니, 그대들의 소소영령은 다만 눈앞의 티끌인 빛․소리․냄새 따위의 법으로 인해서 분별이 생긴 것을 소소영령이라고 말할 뿐이다. 만일 눈앞의 티끌이 없다면 그대들의 이 소소영령은 거북의 털이나 토끼의 뿔과 같을 뿐이니, 그대들의 진실은 어디에 있는가?
그대들이 이제 저 ‘5온蘊 몸[身田]의 주재’를 벗어나고자 한다면, 다만 그대들의 비밀한 금강체金剛體를 알아채라. 옛사람이 그대들에게 이르기를 ‘원만히 성취하고 바르게 두루해서 항하의 모래같이 많ㅇ느 세계에 두루했다’고 하였는데, 내가 이제 그대들을 조금 위하겠으니 지혜 있는 이라면 비유를 통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대들은 이 남섬부주南贍部洲의 해를 보았는가? 세간 사람들이 하는 경영과 몸의 양육과 생활 따위의 갖가지 심행心行이나 작업이 모두 저 햇빛을 받아서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 없는데, 가령 저 해의 체體에도 허다한 일과 심행이 있는가? 두루하지 않은 곳이 있는가? 이 금강체를 알고자 하는 것도 이와 마찬가지다.
지금의 산하대지山河大地, 시방국토十方國土, 색色과 공空, 밝음과 어두움, 그리고 그대들의 몸과 마음이 모두 그대들의 원만히 이루어진 위광威光이 나타낸 바를 받지 않은 것이 없고, 하늘․인간 따위의 뭇 생령이 지은 업의 차례와 생의 과보를 받는 일과 성품 있는 이와 무정물까지도 모두 그대의 위광을 받지 않음이 없으며, 나아가 모든 부처님들이 불도를 이루신 뒤에 과위果位를 이루어 중생을 제도하는 것도 모두 그대들의 위광을 받지 않음이 없다. 금강체에 범부와 부처가 있겠는가? 그대들의 심행心行이 있겠는가? 없다고 말함으로써 문득 되었다고 여기지도 말아야 한다. 알겠는가?
그대들에게는 이미 이러한 기특하고 밝은 출신처出身處가 있는데도 어찌하여 발명發明해서 취하지 않고, 저 5온의 몸[身田]이나 귀신의 굴속에서 살림을 차리다가 그대로 스스로에게 속는가? 홀연히 무상살귀無常殺鬼가 닥쳐와서 눈을 이상하게 부릅뜨면, 몸의 소견이나 목숨의 소견으로는 이러한 때를 지탱하기 대단히 어렵다. 마치 거북의 껍질을 산 채로 벗기는 것 같아서 몹시 괴롭다. 그대들이여, 잠 속의 견해를 가지고서 옳다고 여기지 말라. 털끝만큼이라도 덮을 줄을 모르나니, 그대들은 알겠는가?
삼계三界가 편안하지 않음이 마치 불난 집과 같으니, 그대들은 안락을 얻은 사람이라고 할 수 없다. 그저 큰 무리를 지어서 남의 세계를 이리저리 야생 노루처럼 뛰어다니면서 의식衣食만을 구할 줄 아나니, 그렇게 하다가는 어찌 왕도王道가 시행되겠는가? 알겠는가? 국왕과 대신이 그대들을 구속하지 않고, 부모가 그대들의 출가를 방임했고, 시방의 단월이 그대들에게 옷과 음식을 공급하고, 토지신과 용신이 그대들을 수호하니, 미안한 생각을 가지고 은혜를 갚을 줄 알아야 한다. 남의 은혜를 저버리지 말라.
길게 이어진 평상 위에 뒹굴면서 세월을 보내는 것을 안락하다고 하지만 그렇지가 못하다. 모두가 죽과 밥으로 살아가고 보양하다가 끝내는 동과冬瓜가 썩듯 변하여 마침내 흙 속에 묻히면서도 업식業識이 망망해서 의거할 근본이 없다. 사문이 어째서 이런 지경에 이르렀는가? 가령 대지 위에서 꿈틀거리는 것들을 나는 지옥겁地獄劫의 머무름이라 부르는데, 지금 밝히지 못하면 내일 아침에나 모레는 당나귀 배때기나 말 뱃속으로 들어가서 보습을 끌고, 쟁기를 잡고, 자갈을 물고, 안장을 지고, 방아를 찧고, 물을 푸고, 불 속에 볶이는 꼴을 당하게 되리니, 너무나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다. 모름지기 크게 두려워하는 마음을 내어야 하나니, 이 모두가 그대 스스로 저지른 일이다. 알겠는가?
만일 이렇게 깨닫는다면 지금부터 영겁토록 그대들에게 그런 소식이 있다고 하지 않아도 되지만, 만일 이를 깨닫지 못한다면 번뇌와 악업의 인연을 한 겁이나 두 겁을 지나도 쉬지 못하고, 바로 그런 그대들과 함께 금강 같은 수명을 같이하게 되리라. 알겠는가?”

남제南際 장로가 설봉雪峰에게 갔는데, 설봉이 남제에게 대사를 뵈라고 하였다. 대사가 물었다.
“옛사람이 말하기를 ‘이 일은 오직 나[我]만이 능히 안다’고 하였는데, 장로는 어떠한가?” 
남제가 대답했다.
“알려고 하지 않는 자도 있는 줄 알아야 합니다.”[귀종歸宗 유柔가 따로 표현하기를 “손으로 세 차례 내리쳤다”고 하였다.]
대사가 말했다.
“산두山頭 화상이 허다한 고통을 받았으나 무엇 하겠는가?”

설봉이 울력으로 산전山田을 파다가 뱀 한 마리를 보자 주장자로 꿰어 올리고는 대중을 불러 말했다.
“보라, 보라.”
그리고는 칼로 두 토막을 내었다. 이에 대사가 주장자로 퉁겨서 뒤로 던지고는 다시 돌아보지도 않으니, 대중이 깜짝 놀랐다. 그러자 설봉이 말했다.
“빼어나구나.”

어느 날 대사가 설봉을 모시고 산을 도는데, 설봉이 한 곳의 땅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여기에다 하나의 무봉탑無縫塔을 세우리라.”
대사가 말했다.
“높이가 얼마나 되게 할까요?”
설봉이 위와 아래를 돌아보자, 대사가 말했다.
“인간과 하늘의 의보依報는 화상만 못하겠지만, 만약 영산靈山의 수기受記라면 한참 멀었습니다.”
설봉이 말했다.
“세계의 넓이가 한 자이면 옛 거울의 넓이도 한 자요, 세계의 넓이가 한 길이면 옛 거울의 넓이도 한 길이다.”
대사가 화로를 가리키면서 말했다.
“화로의 넓이는 얼마입니까?”
“옛 거울의 넓이와 같다.”
“노화상의 발꿈치가 땅에 닿지도 않았습니다.”
대사가 처음으로 초청을 받아서 매계장梅谿場의 보응원普應院에 살다가 중간에 현사산玄沙山으로 옮기니, 이때부터 바다 같은 총림의 무리가 바람에 쏠리듯 모여와서 의지했다.
민수閩帥, 왕공王公이 무상승無上乘을 연설해 달라고 청하면서 스승의 예로 대접하고, 학도들이 8백여 명이나 모여서 방문이 닫힐 사이가 없었다.
대사가 상당하여 잠자코 있다가 대중에게 말했다.
“내가 그대들을 위해서 애썼다. 알겠는가?”
어떤 스님이 물었다.
“적적寂寂하여 말이 없을 때에는 어떠합니까?”
“잠꼬대를 하는가?”
“본분사本分事를 스님께서 알려 주십시오.”
“잠을 자는가?”
“학인은 자지만 화상은 어떠하십니까?”
“어쩌면 그렇게 아프고 가려운 것을 모르는가?”
대사는 이어서 말했다.
“애석하구나. 얼마나 많은 큰 스님들이 천리만리千里萬里를 행각하다가 이곳에 이르렀지만, 잠자는 것과 잠꼬대도 알지 못하고 그대로 물러가는구나.”
어떤 이가 물었다.
“어떤 것이 학인의 자기自己입니까?”
“자기는 무엇에 쓰는 것인가?”
스님이 물었다.
“위로부터 전하는 종문宗門의 일을 화상께서는 여기서 어떻게 말씀하십니까?”
“듣는 이가 별로 없더라.”
“화상께서 곧바로 말씀해 주십시오.”
“귀머거리를 어찌하겠는가?”
대사가 또 말했다.
“그대들이 바로 지금의 일을 어쩔 수 없어서 나로 하여금 이러한 위광威光을 억누르고 입이 쓰도록 권고하게 함으로서 백천 가지 방편으로 이러쿵저러쿵 말하여 그대들이 알게 해달라고 하지만, 모두가 뒤바뀐 지견知見을 이룰 뿐이다. 이 목구멍과 입술로는 그저 들여우의 정령[精] 같은 업보를 이루어 그대들을 속일 뿐이니, 내가 그런 일들을 긍정할 수 있겠는가? 허물이 있는지 없는지는 오직 나만이 스스로 알 뿐이니, 그대들이 어찌 이해하겠는가? 만일 그러한 사람이 나타난다면 달갑게 꾸짖음을 받으리라.
대체로 남의 스승이 된다는 일은 무척 어려운 일이니, 모름지기 선지식이라야 비로소 알게 된다. 내가 이제 이렇게 방편을 써서 그대들을 도와도 여전히 바로 보지 못하는데, 하물며 순수하게 종승宗乘만을 드날린다면 그대들은 어디에다 몸과 마음을 두겠는가? 알겠는가?
49년의 일이 방편일 뿐이다. 영산靈山 회상에는 백만 대중이 있었으나, 오직 가섭迦葉 한 사람만이 직접 법문을 들었고 다른 이는 모두 듣지 못했다. 그대는 가섭이 직접 들은 일이 무엇이라고 여기는가? 그렇다고 여래는 말없이 말씀하고, 가섭은 들음 없이 들었다고 하는 것으로 문득 맞아 떨어졌다고 여기지는 말라. 또 그대들이 원인을 닦고 결과를 이루어서 복과 지혜로 장엄한 일이라고 할 수도 없다. 알겠는가? 
또다시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나에게 정법안장正法眼藏이 있는데 대가섭에게 전해 준다’고 한 것을 나는 달을 이야기한 것과 같다고 말하고, 조계曹谿께서 불자拂子를 들어서 세운 것도 달을 가리킨 것과 같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대당국大唐國 내 종승宗乘 가운데의 일을 일찍이 한 사람도 거양하고 제창한 것을 본 적이 없다고 하노라. 설사 어떤 사람이 거양하고 제창했다면, 온 누리의 사람이 몽땅 성품과 목숨[性命]을 잃는 것이 마치 구멍이 없는 쇠방망이처럼 되어서 일시에 칼끝이 무디고 혀가 굳어지리라.
여러분들은 다행히 나를 만났기에 신명身命을 아끼지 않고 그대들의 뒤바뀐 지견과 함께 해주고, 그대들의 미친 뜻을 따라 주는 것이다. 그대들이 무엇을 물었을 때에 내가 그대들과 함께 이렇게 알고 듣고 하지 않았다면, 그대들은 어디에서 나를 볼 수 있겠는가? 알겠는가? 너무나 어려우니, 노력하라. 잘 있어라.”
이어서 게송을 읊었다.

만 리의 신령한 광명은 정수리의 뒷모습이니
정수리가 몰락할 때에는 어디를 바라보랴.
일이 이미 이루어져서 뜻도 또한 쉬니
이것이 원래 부딪치는 곳마다 두루한 것이라네.
지혜로운 이는 다스려서 얼른 끌어올리나니
잠깐이라도 머리를 잃도록 기다리지 말라.
萬里神光頂後相    沒頂之時何處望
事已成  意亦休    此箇來蹤觸處周
智者撩著便提取    莫待須臾失却頭

또 게송을 읊은 것이 있다.

현사玄沙가 거니는 길은 특별하니
요즘 사람들은 간절히 알아야 하네.
한 겨울에도 햇살이 포근하고
6월도 서리가 내리는 때라네.
玄沙遊徑別    時人切須知
三冬陽氣盛    六月降霜時

말은 있으나 혀와는 관계가 없으니
말 없음이 간절하고 중요한 언사이네.
나의 마지막 구절을 아는가?
세상에 출현해도 아는 이가 적구나.
有語非關舌    無言切要詞
會我最後句    出世少人知

어떤 이가 물었다.
“네 가지 위의威儀 외에 어떻게 국왕을 섬기오리까?” 
대사가 대답했다.
“그대는 왕법王法의 죄인인데 어찌 그런 일을 물을 줄 아는가?”
“옛사람이 망치를 번쩍 들거나 불자를 세우기도 했는데, 그것도 종승 안의 일에 해당됩니까?”
“해당되지 않는다.”
“옛사람의 뜻이 무엇입니까?”
대사가 불자를 번쩍 드니, 스님이 다시 물었다.
“종승 안의 일이 어떠합니까?”
“그대가 깨달아야 비로소 알 것이다.”
“어떤 것이 금강역사金剛力士입니까?”
대사가 입으로 ‘후’ 하고 불었다.

문文 통두桶頭 통두는 직책이고, 문은 성씨이다.
가 산을 내려가니, 대사가 물었다.
“문 통두여, 산을 내려가면 언제 돌아오는가?”
“3․5일 걸리겠습니다.”
“돌아올 때에 밑 없는 통桶이 있거든 한 짐 지고 돌아오라.”
문 통두가 대답이 없었다.[귀종歸宗 유柔가 대신 말하기를 “화상은 그것을 무엇 하시겠습니까?”라고 하였다.]

대사가 어떤 때 이렇게 말했다.
“제방의 노숙老宿들은 모두가 말하기를 ‘사물을 제접해서 중생을 이롭게 한다’고 하는데, 이제 그대들에게 묻나니, ‘소경이며 귀머거리이며 벙어리인 세 가지 병자가 있다’고 한다면 그대들은 어떻게 그를 제접하겠는가? 만일 방망이를 번쩍 들거나 불자를 세운다면 그의 눈이 보지 못할 것이요, 그와 이야기를 한다면 귀가 막혔으니 듣지 못할 것이요, 입으로도 다시 말하지 못할 것이다. 만일 제접하지 못한다면, 불법은 영험이 없을 것이다.”
이때에 어떤 스님이 나서서 말했다. 
“화상께서는 이 세 가지 하자가 있는 사람을 제가 헤아리는 것을 허락하시겠습니까?”
“그대에게 허락하겠으니 어떻게 헤아리겠는가?”
그 스님이 인사를 드리고 물러가자, 대사가 말했다.
“아니다, 아냐.”[법안法眼이 말하기를 “내가 그 당시에 나한羅漢 화상이 이 스님의 일을 말하는 것을 듣자 곧 세 가지 하자가 있는 사람을 알았다”고 하였다. 운거雲居 석錫이 말하기를 “그 스님이 알았을까, 몰랐을까? 몰랐다면 법안은 어째서 말하기를 ‘나는 그 스님의 일을 듣고 세 가지 하자가 있는 사람을 알았다’고 하였을까? 상좌들이여, 차이 없으니, 와서 따져 보자. 여러분, 모두 알아야 한다”고 하였다.]
나한羅漢이 말했다.
“계침(桂琛:나한 화상의 이름)은 눈과 귀가 있음을 보고 있는데, 화상께서는 어떻게 제접하시겠습니까?”
대사가 대답했다.
“세 가지 하자가 있는 사람이 지금은 어디에 있는가?”
또 다른 스님이 말했다.
“남을 속일 뿐 아니라 스스로도 속이는구나.”

장경長慶 능稜이 오자, 대사가 물었다.
“피해야 할 독약을 제외하고는 어떻게 말해야겠는가?”
장경 능이 대답했다.
“어리석으니, 무엇 때문인가?”
대사가 다시 말했다.
“설봉산雪峰山의 상수리가 먹을 만했는데, 이 속에 온 참새가 똥을 쌌구나.”

대사가 어떤 스님이 와서 절을 하는 것을 보자 이렇게 말했다.
“절을 하라. 나 때문에 그대에게도 절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어느 날 해갱海坑에 가서 장작을 패는 울력을 하는데 호랑이 한 마리를 보았다. 어떤 스님이 외쳤다.
“스님, 호랑이입니다.”
대사가 말했다.
“그대의 호랑이다.”
절에 돌아온 뒤에 스님이 물었다.
“아까 호랑이를 보시고 제 것이라 하셨는데, 스님의 뜻이 무엇입니까?”
대사가 대답했다.
“사바세계에는 네 겹의 장애가 있는데, 만약 이것을 뛰어 넘는다면 그대에게 5음의 경계를 벗어났다고 허락하겠다.”[동선東禪 제齊가 말하기를 “상좌여, 옛사람이 보고서 말하기를 ‘나의 몸과 마음이 허공과 같다’고 했는데, 요즘 사람이 통과할 수 있는가?”라고 하였다.]

대사가 장생長生 연然 화상에게 물었다.
“유마 거사가 부처님을 뵙고서 ‘미래에서 오지도 않고, 과거로 가지도 않고, 지금에도 머물지 않는다’고 하였는데, 그대는 어떻게 보는가?”
“교연皎然의 허물을 용서해 주십시오. 요량할 일이 있습니다.”
“그대의 허물을 어떻게 용서하는가?”
장생이 잠자코 있으니, 대사가 말했다.
“누구에게 맡길까?”
“공연히 귀만 기울이고 있었군요.”
“역시 그대가 귀신 굴속에서 살림을 차린 것을 심정적으로 알겠다.”[숭수崇壽 조稠가 따로 장생에게 말하기를 “무엇을 여래라 합니까?”라고 하였다.]

어떤 스님이 물었다.
“학인은 어찌하여 제대로 이르지 못합니까?”
대사가 대답했다.
“그대의 입을 꽉 막았는데 어떻게 이를 줄 알겠는가.”[법안法眼이 말하기를 “옛사람이 그렇게 말한 것이 매우 기특하다. 상좌에게 하나 묻겠으니 어떤 것이 입인가?”라고 하였다.]

어떤 이가 물었다.
“무릇 말[言句]은 모두가 함정에 빠진다고 하니, 함정에 빠지지 않는 말을 화상께서 헤아려 주십시오.”
대사가 대답했다.
“저울대를 꺾어 버리고 오너라. 그대에게 헤아려 주리라.”
“옛사람은 눈을 깜박여서 사람을 제접했는데, 화상은 어떻게 사람을 제접하십니까?”
“나는 눈을 깜박여서 사람을 제접하지 않는다.”
“이것이 무엇이기에 그렇게 보기 어렵습니까?”
“너무 가깝기 때문이다.”[법안이 말하기를 “가깝다고도 할 수 없다. 바로 상좌 당신이다”라고 하였다.]

대사가 설봉에 있을 때에 광光 시자侍者가 대사에게 말했다.
“사숙師叔께서 선법禪法을 배우신다면, 저는 무쇠 배를 부수고 바다로 내려가겠습니다.”
대사가 주지가 된 뒤에 물었다.
“광 시자는 무쇠 배를 부쉈는가?”
광 시자가 대답이 없었다.[법안法眼이 대신 대답하기를 “화상은 끝내 그렇지 못합니다”라고 하였다. 법등法燈이 대신 대답하기를 “스님, 배에서 내리십시오”라고 하였다. 현각玄覺이 대신 대답하기를 “가난한 사람이 묵은 빚을 생각한다”고 하였다.]

어느 날 대사가 스님을 시켜서 설봉 화상에게 글을 보냈다. 설봉이 받아서 뜯어보니, 흰 종이만 석 장 있었다. 이에 그 스님에게 물었다.
“알겠는가?”
그러자 그 스님이 말했다.
“모르겠습니다.”
설봉이 다시 말했다.
“‘군자천리동풍君子千里同風’이란 말을 듣지 못했는가?”
그 스님이 돌아와서 대사에게 이야기하니, 대사가 말했다.
“그 늙은 노장이 실수한 줄도 모르고 있구나.”[동선東禪 제齊가 말하기를 “어디가 지나친 곳인가? 만일 분명히 지나쳤다면 스승이 어찌 제자의 뜻을 알지 못하겠는가? 만일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면 현사玄沙의 뜻을 어떻게 풀이하려는가? 만일 알았다면 현사의 뜻을 참고해 보라”고 하였다.]

대사가 경청鏡淸에게 물었다.
“경전에 말하기를 ‘보살마하살은 한 법을 보지 않아도 큰 허물이 된다’고 하였는데, 어떤 법을 보지 않는다는 말인가?”
경청이 돌기둥[露柱]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저런 법을 보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동안同安 현顯이 따로 말하기를 “화상이 그러실 줄은 미리 알고 있었습니다”라고 하였다.]
대사가 대꾸했다.
“절강성 지방의 맑은 물과 백미白米는 그대 마음대로 먹겠지만 불법을 알려면 아직 멀었다.”[현각玄覺이 말하기를 “말해 보라. 현사玄沙가 그렇게 말한 뜻이 무엇인지 듣지 못했는가?”라고 하였다. 그러자 어떤 스님이 동산洞山에게 묻기를 “한 법도 보지 않음이 큰 허물이 된다고 하였는데, 그 뜻이 어떠합니까?”라고 하였다. 동산이 대답하기를 “한 법도 보지 않는다 함은 좋은 말이다”라고 하였다. 그러자 상좌인 일숙각一宿覺이 말하기를 “한 법도 보지 않으면 곧 여래이니, 바야흐로 관자재나 보현보살이라 한다”고 하였고, 또 말하기를 “한 법도 보지 않으면 큰 허물이 된다고 하였으니, 한 가지인가, 두 가지인가? 판단해 보라”고 하였다.]

어떤 스님이 물었다.
“듣건대 화상께서 말씀하시기를 ‘온 시방세계가 한 개의 밝은 구슬이다’라고 하였는데, 학인이 어떻게 이해해야 하겠습니까?”
대사가 대답했다.
“온 시방세계가 한 개의 밝은 구슬인 것을 알아서 무엇 하겠는가?”
이튿날 대사가 도리어 그 스님에게 물었다.
“온 시방세계가 한 개의 밝은 구슬이라 하는데, 그대는 어떻게 알고 있는가?”
스님이 대답했다.
“온 시방세계가 한 개의 밝은 구슬인데 알아서 무엇 하겠습니까?”
대사가 대답했다.
“나는 그대가 산 귀신의 굴에다 살림을 차린 것을 알았다.”[현각玄覺이 말하기를 “똑같이 그렇게 말했는데 어째서 산 귀신이 되었는가?”라고 하였다.]
“어떤 것이 무봉탑(無縫塔:달걀 모양의 탑)입니까?”
대사가 대답하였다.
“크든 작든 하나의 바느질로 꿰매어 가린다.”[현각玄覺이 말하기를 “총림에서 말하기를 ‘그렇게 왔지만 어디서 무봉탑을 만났는가?’라고 하는데, 맞았는가, 맞지 않는가?”라고 하였다.]

위韋 감군監軍이 와서 뵙고, 조산曹山 화상이 매우 기괴하다고 한 일을 이야기하니, 대사가 물었다.
“무주撫州에서 조산曹山까지는 거리가 얼마나 되는가?”
위씨가 곁에 있는 스님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상좌여, 조산에 가신 적이 있습니까?”
“가 보았습니다.”
“무주에서 조산까지는 몇 리나 되는가요?”
“120리입니다.”
“그러면 상좌는 조산에 가 보지 않았군요.”
그리고는 위 감군이 일어나서 대사에게 절을 하니, 대사가 말했다.
“감군은 도리어 이 스님에게 절을 하시오. 이 스님이 오히려 부끄러워할 줄 압니다.”[운거雲居 석錫이 말하기를 “어디가 이 스님이 갖추고 있는 부끄러움을 아는 곳인가? 만일 점검해서 알아낸다면 상좌들에게 행각의 안목이 있다고 허락하리라”고 하였다.]

인도에서 성명聲明 삼장三藏이라는 이가 왔는데, 민수閩帥가 대사에게 소개하여 만나게 하니, 대사가 부젓가락으로 구리 화로를 두드리면서 물었다.
“이게 무슨 소린가?”
삼장이 대답했다. 
“구리 소리입니다.”[법안法眼이 따로 말하기를 “대사께서 대왕을 위하여 말씀해 보십시오”라고 하였다. 법등法燈이 따로 말하기를 “화상께서 물으시는 소리를 들었습니다”라고 하였다.]
대사가 말했다.
“대왕은 외국 사람에게 속임을 당하지 마시오.”
삼장은 대답이 없었다.[법안法眼이 대신 대답하기를 “대사께서는 오랫동안 대왕의 공양을 받으셨습니다”라고 하였다. 법등法燈이 대신 대답하기를 “화상께서 도리어 남의 속임을 받으셨군요”라고 하였다.]

대사가 남쪽의 포전현莆田縣에 갔는데, 백 가지 유희遊戲로써 영접하였다. 이튿날 대사가 소당小塘이라는 장로에게 물었다.
“어제 그처럼 시끄럽던 것이 모두 어디로 갔는가?”
소당이 옷자락을 들어 보이니, 대사가 말했다.
“상대가 안 되는 줄은 미리 짐작했었다.”[법안이 따로 대답하기를 “어제 얼마나 시끄러웠습니까?”라고 하였다. 법등이 따로 말하기를 “오늘 다시 한 번 웃는 것이 좋겠습니다”라고 하였다.]

대사가 어떤 스님에게 물었다.
“건달바乾闥婆의 성城이란 말이 있는데, 그대는 어떻게 이해하는가?”
스님이 대답했다.
“꿈이나 허깨비같이 여깁니다.”[법안은 물건을 두드려 보여서 따로 답하였다.]

대사가 지장地藏 계침桂琛과 방장에서 이야기를 하는데, 밤이 깊어지자 시자가 문을 닫았다. 대사가 말했다.
“문을 모두 닫으면 그대는 어디로 나가려는가?”
계침이 말했다.
“무엇을 문이라 합니까?”[법등法燈이 따로 말하기를 “화상은 쉬어 가시려는 것이 아닙니까?”라고 하였다.]

어느 날 대사가 주장자로 땅을 찌르면서 장생長生에게 물었다.
“스님이다, 속인이다, 남자다, 여자다 하는 소견 가운데 그대는 어떤 소견인가?”
장생이 말했다.
“화상은 교연皎然이 보는 곳을 보십니까?”
대사가 말했다.
“알아챈 이가 천하에 가득하다.”
“듣건대 화상께서 말씀하시기를 ‘들음의 성품이 법계에 두루하다’고 했다는데, 설봉이 북을 친 것은 어째서 듣지 못하셨습니까?”
“누가 듣지 못한 줄을 아는가?”
“험악한 길에서는 무엇을 나루터와 다리로 삼습니까?”
“그대의 눈을 나루터와 다리로 삼는다.”
“아직 얻지 못한 이는 어찌합니까?”
“빨리 구원해라.”

대사가 위 감군과 함께 과자를 먹는데, 위 감군이 물었다.
“어떤 것이 날마다 쓰면서도 모르는 것입니까?”
대사가 과자를 번쩍 들면서 말했다. 
“먹었다.”
위씨가 과자를 다 먹고 나서 다시 물으니, 대사가 말했다.
“그저 날마다 쓰면서도 모르는 것이니라.”

나무를 나르는 울력을 하다가 대사가 말했다.
“그대들 모두가 나의 힘을 이어받았다.”
이때에 어떤 스님이 말했다.
“스님의 힘을 이어받았다면 어째서 울력이 필요합니까?”
대사가 꾸짖었다.
“울력을 하지 않으면 어떻게 나무를 나르겠는가?”

대사가 진명眞明 대사에게 물었다.
“선재善財동자가 미륵에게 가서 물으니, 미륵은 문수에게로 가라 했고, 문수는 부처님에게 가라 했는데, 부처님께서는 어디로 가라고 시켰겠는지 말해 보라.”
진명이 대답했다.
“모르겠습니다.”
“모를 줄로 짐작은 했었다.”[법안法眼이 따로 말하기를 “무엇을 부처라 합니까?”라고 하였다.]

대보大普 현통玄通이 대사에게 와서 뵙고 절을 하니, 대사가 말했다.
“그대는 그곳에 머물면서 남의 집 선남․선녀들을 속이지 말라.”
“현통은 그저 공양문供養門을 열고 있을 뿐이니, 아침저녁으로 어찌 그런 일을 하겠습니까?”
“어려운 일이구나.”
“그 정황이 어렵습니다.”
“어디가 어려운 곳인가?”
“그가 기꺼이 수긍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대사가 방장으로 들어가서 문을 닫았다.

어떤 이가 물었다.
“학인이 처음으로 총림에 들어 왔으니, 스님께서 들어갈 길을 지시해 주십시오.”
대사가 대답했다.
“시냇물 소리를 듣는가?”
“듣습니다.”
“이것이 그대가 들어갈 곳이니라.”

천수泉守 왕공王公이 대사에게 누대樓臺에 오르길 청하면서 미리 객사客司에게 말했다.
“내가 대사를 인도해서 누대 앞에 이르거든 곧 사다리를 메고 가버려라.”
객사가 분부대로 시행했다. 이에 왕공이 말했다.
“대사께서는 어서 누대에 오르십시오.”
대사가 누대를 둘러보고, 이어 그 사람을 둘러본 뒤에 말했다.
“불법이란 것이 이런 도리가 아니겠는가?”[법안法眼이 말하기를 “사다리를 메다 버리기 전에는 날마다 몇 차례나 누대에 올랐는가?”라고 하였다.]
대사가 천수 왕공과 함께 방에서 이야기를 하는데, 어떤 사미가 주렴을 들고서 들어 왔다가 그들을 보고는 이내 물러가니, 대사가 말했다.
“저 사미에게 20방망이를 때리는 것이 좋겠다.”
왕공이 말했다.
“그렇다면 저의 잘못입니다.”[동안同安이 따로 말하기를 “조사께서 오셨다”라고 하였다.]
대사가 말했다.
“불법은 그런 것도 아니다.”[경청鏡淸이 말하기를 “물<水>을 치지 않는다”라고 하니, 어떤 스님이 묻기를 “물을 치지 않는다는 뜻이 무엇입니까?”라고 하였다. 경청이 대답하기를 “청산을 갈아서 먼지를 만든다면 한가하지 않은 사람임을 감히 보증한다”라고 하였다. 동선東禪 제齊가 말하기를 “현사의 뜻이 무엇이겠는가? 혹은 말하기를 ‘설사 그렇게 한다 하여도 주장자를 때려야 한다’고 했고, 혹은 말하기를 ‘일은 본인의 자격에 매였다’고 했고, 혹은 말하기를 ‘아는 곳을 알아맞혔다’라고 했으니, 이 세 가지 말이 현사의 뜻을 알았겠는가?”라고 하였다.]

대사가 근기에 맞추어 중생을 지도하기를 30여 년 동안에 석두石頭와 청원靑原의 준수한 무리들이 지금에 이르기까지 끊이지 않도록 미래를 인도하였고, 연설한 법의 요체를 담은 크고 작은 기록은 사해 안에 널리 퍼졌다. 그 밖의 어록들은 각각 문도들의 전기와 제방의 갖가지 따져 물은 부분(본 책27권에 나옴)에 나온다.
양梁나라 개평開平 2년, 무진戊辰 11월 27일에 병이 나서 임종하니, 수명은 74세이고 법랍은 44세였다. 민수閩帥가 탑을 세웠다.

복주福州 장경長慶 혜릉慧稜 선사
그는 항주杭州 염관鹽官 사람으로서 성은 손孫씨이다. 어릴 때부터 성품이 순박했으며, 나이 13세에 소주蘇州에 있는 통현사通玄寺에서 출가하여 계를 받고 여러 선방禪房을 찾아다녔다.
당唐나라 건부乾符 5년에 민중閩中으로 가서 서원西院에 사는 영운靈雲을 뵈었으나 여전히 의심이 있었는데, 나중에 설봉에게 가서 의혹의 마음 덩어리가 얼음 녹듯이 풀렸다.
이어 설봉에게 물었다.
“위로부터 여러 성인들이 전수한 외길[一路]을 스님께서 보여 주십시오.”
설봉이 잠자코 있으니, 대사가 절을 하고 물러났다. 이에 설봉이 빙그레 웃었다. 다른 날 설봉이 대사에게 말했다.
“내가 항상 스님들에게 말하기를 ‘남산에 별비사(鼈鼻蛇:독사) 한 마리가 있으니, 그대들은 잘 살펴라’고 하였다.”
그러자 대사가 대답했다.
“오늘 당堂 안에서 여러 사람이 신명身命을 잃었습니다.”
설봉이 옳다고 여겼다.
대사가 방장에 들어가서 뵙고 참문하니, 설봉이 물었다.
“이것이 무엇인가?”
대사가 대답했다.
“오늘 날씨가 맑아서 울력하기에 좋겠습니다.”
이후로 묻고 대답하는 것이 모두 현묘한 진리를 어긴 적이 없었다. 이어서 이러한 깨달음의 게송을 읊었다.
만상萬象 속에서 홀로 몸을 드러내니
오직 사람이 스스로 수긍해야만 비로소 친해지네.
예전에는 잘못하여 도중途中에서 찾았는데
오늘 살펴보니 불 속의 얼음과 같구나.
萬象之中獨露身    唯人自肯乃方親
昔時謬向途中覓    今日看如火裏氷

대사가 서원에 있을 때에 선詵 상좌에게 물었다.
“이 속에 상골산象骨山이 있는데 가본 적이 있는가?”
“가보지 못했습니다.”
“어째서 못 갔는가?”
“스스로 본분사本分事가 있습니다.”
“어떤 것이 상좌의 본분사인가?”
선 상좌가 옷자락을 들어 보이니, 대사가 말했다.
“그것뿐인가, 아니면 따로 있는가?”
“상좌는 무엇을 보셨습니까?”
“왜 용두사미龍頭蛇尾가 됐는가?”

대사가 선주宣州의 보복保福에게 있다가 나중에 하직하고 설봉으로 돌아가는데, 보복이 물었다.
“산두山頭 화상께서 혹시 상좌의 소식을 물으면 어떻게 대답하시겠소?”
대사가 대답했다.
“비린내는 피하지 않고 조금은 인정하죠.”
“소식이란 것이 무엇이오?”
“나로 하여금 누구에게 분부하게 할 건가요?”
“내가 비록 이런 말을 하지만 반드시 그런 일이 있지는 않습니다.”
“만일 그렇다면 앞길은 전적으로 그대에게 달렸군요.”
대사가 보복과 함께 산에서 거니는데, 보복이 물었다.
“옛사람이 묘봉산妙峰山 봉우리라고 말했는데, 바로 그것으로 옳은 것이 아니겠소?”
대사가 대답했다.
“옳기는 옳지만 아깝구나.”[어떤 스님이 고산鼓山에게 묻기를 “장경 화상이 그렇게 말한 뜻이 무엇인가?”라고 하니, 고산이 대답하기를 “손공(孫公:장경)이 만일 나중에 말을 하지 않았더라면 해골이 들을 덮고 백골이 골짜기를 메웠다 하리라”고 하였다.]

대사가 설봉에 왕래하기 29년 만인 천우天祐 3년에 천주泉州 자사인 왕연빈王延彬의 초청을 받아서 초경사招慶寺에 머물렀다.
처음으로 개당開堂하는 날에 왕공(왕연빈)이 조복朝服을 입은 채 앞에 나서서 말했다.
“스님께 설법을 청합니다.” 
대사가 말했다.
“들리는가?”
왕공이 절을 하니 대사가 말했다.
“그렇기는 하나 누군가는 긍정하지 않을까 걱정이다.”
그리하여 조사의 뜻을 드날리는데 근기에 따라 주었다 뺏었다 하니, 관리 등이 간절히 사모하여 날마다 도의 덕화가 퍼졌다.

나중에 민수가 장락부長樂府의 서원西院에 살기를 청하고는 위에 아뢰어서 편액[額]을 장경長慶, 호는 초각超覺 대사라 하였다. 
상당하여 가만히 있다가 대중에게 말했다.
“어느 누가 알아보겠는가? 만약 알지 못하면 여러 형제를 속이는 것이다. 다만 지금에 무슨 일이 있는가? 꽉 막힌 것이 아닌가? 그것이 누구 집안의 일인가? 기꺼이 짊어지지 않겠다면 다시 어느 때를 기다리는가? 만일 영리한 근기로 배우는 이라면 이 속에 이르렀다고 하지도 않으리라. 알겠는가? 요사이 보통 행각하는 사람들은 귓속이 꽉 차 있다. 가령 이것저것 거두어들였다면 여러 사람들의 행각하는 일에 합당한가?”
이때에 어떤 스님이 물었다.
“행각하는 일을 어떻게 배웁니까?”
대사가 대답했다.
“남에게 구할 줄만 아는구나.”
“어떤 것이 홀로 벗어나는 외길[一路]입니까?”
“왜 번거롭게 다시 묻는가?”
“교리에서 표현한 유명한 말씀과 묘한 이치를 3과科 5음陰․12처處․18계界 등을 말한다.
에 관계없이 곧바로 말씀해 주십시오.”
“잘 있게[珍重].”
대사는 이어 대중에게 말했다.
“분명한 노랫소리도 그대들은 알지 못하는데, 홀연히 암암리에 닥치는 일을 당하면 그대들은 어찌하겠는가?”
어떤 스님이 또 물었다.
“어떤 것이 암암리에 닥치는 일입니까?”
대사가 대답했다.
“차나 마셔라.”
중탑中塔이 말했다.
“화상께서도 같이 잡수십시다.”

어떤 이가 또 물었다.
“어떤 것이 털끝만큼도 막히지 않는 일입니까?”
대사가 말했다.
“마주하면서도 마주하지 못하는구나.”
“어찌하여야 의심도 미혹도 없겠습니까?”
대사가 두 손을 벌리니, 스님이 말을 더하지 못했다. 이에 대사가 말했다.
“그대가 다시 물어라. 내가 너에게 대답하리라.”
스님이 다시 물으니, 대사가 허벅다리를 드러내고 앉았다. 이에 스님이 절을 하자, 대사가 말했다.
“그대는 어찌 생각하는가?”
스님이 말했다.
“오늘 바람이 불겠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것은 아직 안정되지 않은 사람의 견해이다. 그대는 고금古今 가운데 어떤 절요節要가 있어서 장경長慶과 같으리라 여기는가? 만일 이야기할 수 있다면 그대가 이야기의 주인공임을 허락하리라.”
그 스님이 서 있기만 하자, 대사가 다시 물었다.
“그대는 어디 사람인가?”
“향북向北 사람입니다.”
“남북으로 3천 리 밖까지 와서 거짓말만 배워 무엇 하겠는가?”
스님이 대답이 없었다.

대사가 상당하여 가만히 있다가 말했다.
“오늘밤에 조금 되었다고 말하지 말라.”
그리고는 자리에서 내려왔다.
어떤 이가 물었다.
“어떤 것이 성인의 말에 계합되는 것입니까?”
“가엾은 장경이 그대의 한 질문을 받고 입이 광주리같이 되었구나.”
“어째서 그렇습니까?”
“아까 무엇을 물었던가?”

대사가 대중에게 말했다.
“내가 만일 순전히 종승宗乘만을 드러내면 모름지기 법당의 문을 닫아야 한다. 그러므로 법을 다하면 백성이 없다고 하는 것이다.”
이때에 어떤 스님이 말했다.
“백성이 없는 것은 두렵지 않으니 스님께서 법을 다해 주십시오.”
“낙처落處를 알겠는가?”
“어떤 것이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향엄香嚴이 말한 것도 일시에 즉각 물리쳤다.”

대사가 언젠가 대중에게 말했다.
“모두가 오늘밤과 같으면 노호(老胡:달마)는 희망이 있다.”
보복保福이 듣고서 말했다.
“모두가 오늘밤과 같으면 노호는 희망이 없다.”[현각玄覺이 말하기를 “그렇게 말한 것이 서로 보고서 한 말인가, 보지 않고 한 말인가?”라고 하였다. 동선東禪 제齊가 말하기를 “이 두 존숙의 말은 같으면서도 제각기 도리가 있으니, 대중 가운데서 말하기를 ‘모두가 이와 같다 한들 무엇이 혐의스러운가?’ 하였고, 또 말하기를 ‘모두가 오늘밤과 같다면 무엇을 하겠다는 것인가? 만일 이렇게 안다면 깨달음이 이지러졌다’고 하리라”고 하였다.]

안국安國 홍도弘瑫 화상이 새롭게 대사의 호를 얻으니, 대사가 치하하러 갔다. 이에 안국이 마중을 나오니, 대사가 물었다.
“대사의 호號가 왔는가?”
안국이 대답했다. 
“왔습니다.”
“어떤 호인가?”
“명진明眞입니다.”
대사가 두 손을 벌리니, 안국이 말했다.
“어디를 갔다 오십니까?”
대사가 말했다.
“하마터면 허물을 묻지 않을 뻔했네.”

대사가 어떤 스님에게 물었다.
“어디서 왔는가?”
“고산鼓山에서 왔습니다.”
“고산에는 석문石門에 걸터앉지 않는다는 구절이 있다는데, 어떤 사람이 그것을 들어 그대에게 묻는다면 그대는 어떻게 말하겠는가?”
“지난밤에 자숙慈宿에게 보답했습니다.”
“등을 때리는 몽둥이가 있는데, 그대는 어찌하겠는가?”
“화상께서 그 몽둥이를 쓰신다면, 인천人天의 공양을 헛되이 받지 않을 것입니다.”
“하마터면 놓칠 뻔했구나.”

어떤 이가 물었다.
“옛사람이 말한, 서로 만나서 뜻을 들추어내거나 거양하지 않아도 문득 앎이 있을 때는 어떠합니까?” 
대사가 대답했다.
“앎이 있는가?”[스님이 이 말을 가지고 보복保福에게 가서 물으니, 보복이 말하기를 “이것이 누구의 말이던가?”라고 하였다. 스님이 말하기를 “단하丹霞의 말입니다”라고 하니, 보복이 말하기를 “가라. 내 낮잠을 방해하는구나”라고 하였다.]
대사가 큰방에 들어가서 소두疎頭를 들고 말했다.
“보는 것이 곧 보지 못하는 것이다. 보았는가?”
대중은 대답이 없었다.[법안法眼이 대신 대답하기를 “비록 받기는 했으나 다른 곳에 가서는 남에게 보일 수 없습니다”라고 하였다.]

대사가 나산羅山에게 가서 새로 만든 닷집[龕子]을 보고 주장자로 두드리면서 말했다.
“엄청나게 많이 준비했구나.”
나산이 대답했다.
“아주 졸렬합니다.”
“기꺼이 들어가겠는가?”
“훔[吽].”

대사가 상당上堂하였을 때 대중이 모여서 좌정하니, 대사가 스님 하나를 끌어내며 말했다.
“대중은 이 스님에게 절을 하라.”
또 말했다.
“이 스님에게 무슨 장점이 있기에 문득 대중으로 하여금 이 스님에게 절을 하라 하는가?”
대중은 대답이 없었다.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문채文彩가 나기 전의 일입니까?”
“그대가 먼저 말하라. 나는 나중에 말하겠다.”
그 스님은 서 있기만 했다.[법안法眼이 따로 말하기를 “화상께서 말씀해 주십시오”라고 했다.]
그러자 대사가 말했다.
“그대는 어떻게 말했는가?”
스님이 말했다.
“저는 혀를 끊는 분수가 있었습니다.”

보복이 열반에 드니, 어떤 사람이 대사에게 물었다.
“보복이 껍질을 버리고 어디로 갔습니까?”
대사가 대답했다.
“그대는 보복이 어떤 껍질 속에 있다고 여기는가?”[법안이 따로 말하기를 “어떤 것이 보복의 껍질인가?”라고 하였다.]

민수閩帥의 부인 최崔씨[도를 받들었으며 연사練師라 자칭했다.]가 사람 편에 옷과 물건을 보냈는데, 그 사자가 와서 말했다.
“연사練師께서 대사의 회답을 받아 오라고 하셨습니다.”
대사가 말했다.
“연사에게 가서 회답을 받으시라고 말을 전하라.”
조금 있다가 사자가 다시 대사의 앞에 와서 대답을 하고 돌아갔다. 이튿날 대사가 고을에 들어가니, 연사가 말했다.
“어제 대사께서 회답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대사가 말했다.
“어제의 회답을 다시 나에게 보여 주시오.”
연사가 두 손을 벌리니, 민수가 대사에게 물었다.
“연사가 아까 드린 서신이 대사의 뜻에 맞습니까?”
대사가 말했다.
“약간은 비슷하더군요.”[법안이 따로 말하기를 “그의 한마디를 대왕大王께서 말씀하셨군요”라고 하였다.]
“대사의 뜻은 무엇이었습니까?”
대사가 가만히 있자, 민수가 말했다.
“대사의 불법이 깊고도 원대한 것이 불가사의하군요.”

어떤 스님이 말하기를 “고려의 스님이 명주明州에서 관음상 하나를 조성해서 배에다 싣기 위하여 여럿이 메었으나 꼼짝도 하지 않았다”고 했기 때문에 이로 인해 개원사開元寺로 청해 들여 공양한 뒤에 대사에게 물었다.
“찰토刹土에 몸을 나투지 않음이 없는데, 어째서 고려에는 가지 않으려고 했을까요?”
“몸을 나투는 것은 두루하지만 모습을 보기에 치우침이 있다.”[법안이 따로 말하기를 “그대는 관음을 아는가?”라고 하였다.]

어떤 사람이 스님에게 물었다.
“어느 등에다 불을 킬까요?”
“장명등長明燈에다 켜라.”
“언제 킬까요?”
“작년에 켰다.”
“장명長明이 어디에 있습니까?”
스님이 대답이 없으니, 대사가 대신 말했다.
“만일 이렇지 않으면, 왕공께서 남의 속임을 받지 않는다는 것을 어찌 알겠습니까?”

대사가 두 곳에서 법문을 열었는데 무리가 1천5백 명이었고, 민월閩越 지방에서 27년 동안 교화를 행했다.
후당後唐의 장흥長興 3년, 임진壬辰 5월 17일에 입적하니, 수명은 79세이고 법랍은 60세였다. 왕씨가 탑을 세웠다.

복주福州 대보산大普山 현통玄通 선사
그는 복주福州의 복당福唐 사람으로서 도솔산兜率山에서 업을 닦았다. 설봉을 스승으로 섬기기 몇 해 만에 심법心法을 받아 가지고 대보산에 살기 시작했다.
스님이 물었다.
“여룡驪龍의 턱 밑에 있는 여의주를 어떻게 해야 얻습니까?”
대사가 손뼉을 치고는 눈을 깜박였다.
“방편 이전의 일은 어떠합니까?”
대사가 그 스님을 밀어냈다.
“어떤 것이 조사께서 서쪽으로 오신 뜻입니까?”
“해골 뼈나 물어뜯는 놈은 물러가라.”
“티끌을 헤치고 부처를 볼 때에는 어떠합니까?”
“칼[枷]을 벗고 와서 상량商量하라.”
“아주 급히 와서 뵈었으니, 스님께서 맞아 주십시오.”
“둔한 놈이구나.”

항주杭州 용책사龍冊寺 순덕順德 대사 도부道怤 
그는 영가永嘉 사람으로서 성은 진陳씨이다. 어릴 적부터 누린내 나는 것을 먹지 않았다. 집안 어른들이 억지로 마른 고기를 먹였더니, 즉시에 구역질을 하고 마침내 출가하기를 청했다.
고향의 개원사開元寺에 가서 구족계를 받고, 행각을 떠나 민천閩川에 이르러 설봉을 뵈었다. 설봉이 물었다.
“어디 사람인가?”
“온주溫州 사람입니다.”
“그러면 일숙각一宿覺과 한 고향이구나.”
“일숙각은 어디 사람입니까?”
“한 방망이 호되게 맞는 것이 좋겠지만 놓아 준다.”
어느 날 대사가 물었다.
“고덕古德들은 어찌하여 마음으로 마음을 전하시지 않았습니까?”
“뿐만 아니라 문자나 어구語句도 세우지 않았느니라.”
“문자와 어구를 세우지 않았다면 스님께서는 어떻게 전하십니까?”
설봉이 가만히 있자, 대사가 절을 하고 사례하였다. 이에 설봉이 말했다.
“다시 한 차례 나에게 묻는 것이 좋지 않겠는가?”
“화상께 한 차례 질문을 하겠습니다.”
“단지 그것뿐인가? 아니면 따로 헤아릴 일이 있는가?”
“화상께서는 그렇게 하시면 됩니다.”
“그대에게는 어떠한가?”
“사람으로 하여금 은혜를 저버리게 하는군요.”

어느 때 설봉이 대중에게 말했다.
“당당堂堂하고 밀밀密密하구나.”
이에 대사가 나서서 물었다.
“무엇이 당당하고 밀밀합니까?”
설봉이 일어서면서 말했다.
“무엇이라 했는가?”
대사가 뒤로 물러나 서 있으니, 설봉이 법문을 했다.
“이 일은 이처럼 존귀하고 이처럼 면밀하다.”
대사가 말했다.
“도부道怤가 온 지 몇 해가 지났지만, 화상께서 그렇게 가르치시는 것을 듣지 못했습니다.” 
“내가 전에는 없었지만 지금은 있다. 방해되는 바가 있지는 않은가?”
“그렇지 않습니다. 이것은 화상께서 어쩔 수 없는 것일 뿐입니다.”
“나로 하여금 이렇게까지 하도록 하는구나.”
대사가 이로부터 깊이 믿게 되었으나 여전히 대중을 따라 수행하니, 민중閩中에서 소부포납小怤布衲이라 불렀다.

울력을 하는 곳에서 설봉이 위산의 ‘색色을 보면 문득 마음을 본다’는 말을 들어서 대사에게 물었다.
“이 말에 허물이 있는가?”
대사가 말했다.
“옛사람은 무슨 일을 했을까요?”
“아무리 그렇다 해도 그대와 더불어 상량商量해야겠다.”
“그러면 도부가 밭을 매는 것만 못하겠습니다.”

어느 날 설봉이 대사에게 물었다.
“어디서 오는가?”
“밖에서 옵니다.”
“어디서 달마를 만났는가?”
“다시 어느 곳을 말씀하십니까?”
“그대를 믿지 못하겠다.”
“화상께서는 그렇게 어물어물하지 않는 것이 좋겠습니다.”
설봉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중에 대사가 제방을 두루 다니면서 방편과 지혜를 더욱 확보한 뒤에 조산曹山을 방문하니, 혜적慧寂 화상이 물었다. 
“어디서 왔는가?”
“어제 명수明水에서 떠났습니다.”
“언제 명수에 이르렀는가?”
“화상께서 이르렀을 때에 이르렀었습니다.”
“그대는 내가 언제 이르렀다고 여기는가?”
“아까만 해도 기억하였습니다.”
“그렇고 그렇다.”
대사가 참문을 마치고 초청을 받아 월주越州의 경청선원鏡淸禪苑에 머물면서 설봉의 종지를 제창하니, 배우는 자들이 모여들었다.

부사副使인 피광업皮光業은 일휴日休의 아들이었는데, 풍부한 말과 학문으로 자주 대사께 질문을 퍼부었다. 그러나 물러가서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도부 대사의 고매한 이론은 사람들이 어느 누구도 그 극치를 엿보지 못하리라.”

새로 온 스님이 와서 뵈니, 대사가 불자를 들어 보였다. 이에 그 스님이 말했다.
“오랫동안 경청의 소문을 들었는데 아직도 그런 것이 남았군요.”
대사가 대답했다.
“오늘은 사람을 만나기도 했고, 만나지 못하기도 했다.”
“어떤 것이 영원靈源의 곧은 외길입니까?”
“경호鏡湖의 물이 엄청나게 깊다.”
대사가 어떤 스님에게 물었다.
“어디서 왔는가?”
“응천應天에서 왔습니다.”
“만리어鰻黧魚를 보았는가?” 
“보지 못했습니다.”
“그대가 만리어를 보지 못했는가, 만리어가 그대를 보지 못했는가?”
“모두 아닙니다.”
“그대는 다만 처음을 삼가고 끝을 보호할 줄만 아는구나.”
“학인이 그 근원을 아직 도달치 못했으니, 스님의 방편을 청합니다.”
“어떤 근원인가?”
“그 근원 말입니다.”
“만일 그 근원이라면 어찌 방편을 받아들일 수 있으리오?”
스님이 절을 하고 뒤로 물러서니, 시자가 물었다.
“화상은 아까부터 저 사람의 물음을 이루어 준 것이 아닙니까?”
“아니다.”
“저 사람의 물음을 이루어 주지 않는 것이 아닙니까?”
“아니다.”
“궁극적으로 무슨 뜻입니까?”
“먹물 한 방울이 두 곳에서 용이 된다.”

대사가 휘장 안에 앉았는데 어떤 스님이 문안을 하자, 대사가 휘장을 열어젖히면서 말했다.
“끊을 때 끊지 못하면 도리어 혼란을 초래한다.”
“끊어야 할 것을 어째서 끊지 못합니까?”
“내가 만일 법을 다한다면 백성들이 없을까 두렵다.”
“백성들이 없는 것은 두렵지 않으니, 스님께서 법을 다해 주십시오.”
“유나야, 이 승려를 끌어내라.”
또 말했다.
“그만두어라. 내가 남방에 있을 때부터 저 화상이 올 줄을 알고 있었다.”

울력으로 김을 매는데 욕두浴頭가 와서 대사에게 “목욕하십시오”라고 했으나, 대사는 돌아보지도 않았다. 이렇게 세 차례를 거듭 청하자, 대사가 호미를 들어서 때리는 시늉을 하였다. 욕두가 달아나자, 대사가 부르면서 말했다.
“이리 오라. 이리 와.”
욕두가 고개를 돌리자, 대사가 또 말했다.
“앞으로 작가作家를 만나거든 분명히 이야기해 주어라.”
그 스님이 나중에 보복에 가서 앞의 일을 이야기하는데, 얘기를 마치기도 전에 보복이 손으로 그 스님의 입을 막았다. 스님이 돌아와서 대사에게 이야기하니, 대사가 말했다.
“설사 그대가 그렇다 하더라도 역시 작가는 아니다.”

대사가 하옥荷玉에게 물었다.
“어디서 오는가?”
“천태天台에서 옵니다.”
“내가 어찌 그대에게 천태를 물었겠는가?”
“화상은 어찌 용두사미가 되십니까?”
“경청이 오늘 손해를 보았다.”

대사가 경을 보는데 어떤 스님이 물었다.
“무슨 경을 보십니까?”
“내가 옛사람과 백초百草를 깎는다.”
그리고는 도리어 물었다.
“그대는 알겠는가?”
“작은 나이이건만 이렇게 왔습니다.”
“지금은 어떠한가?”
스님이 주먹을 드니, 대사가 말했다.
“내가 그대에게 졌다.”

대사가 어떤 스님에게 물었다.
“어디서 왔는가?”
“불국佛國에서 왔습니다.”
“부처님께서 무엇으로 국토를 삼는가?”
“청정한 장엄으로 국토를 삼습니다.”
“국토는 무엇으로 부처를 삼는가?”
“묘함, 청정함, 참됨, 항상함으로 부처를 삼습니다.”
“그대는 묘하고 청정함에서 왔는가, 장엄에서 왔는가?”
“대답 못할 것이 없습니다.”
“허허, 다른 곳에서 다른 사람이 그대에게 묻거든 그런 대답을 하지 말라.”

전왕錢王이 고을 안의 설법을 더 넓히기 위하여 천룡사天龍寺에 살라고 명하고는 처음으로 대사를 뵙고 나서 말했다.
“참으로 도인이구나.”
그리고는 정중히 예를 올렸다. 이로부터 오월吳越 지방에서 현학玄學이 번성하였다. 그 뒤에 다시 용책사龍冊寺를 짓고 대사를 청해서 살게 하였다. 
대사가 상당上堂하여 말했다.
 “지금 어쩔 수 없어서 그대들에게 말하나니, 만일 스스로가 징험하면 착실히 그대들의 분수에 친절하게 이를 터인데, 어찌하여 유달리 성긴[疎] 생각을 내는가? 다만 집안을 버려둔 지 오래되고 유랑한 세월이 깊도록 한결같이 티끌 경계를 반연했기 때문에 이런 소견을 이룬 것이니, 이 까닭에 깨달음을 등지고 티끌에 합했다고 부르기도 하고, 아비를 버리고 도망했다고도 이름 짓기도 한다. 이제 여러분께 권하나니, 아직 쉬지 못한 이는 쉬어 가는 것이 좋고, 사무치지 못한 이는 사무치는 것이 좋겠다. 대장부가 그토록 기개가 없이 비탄에 잠기기만 할 것인가? 종일토록 끝없이 헤매면서 왜 관대管帶의 길을 찾지 않는가? 아무도 나에게 관대의 외길을 묻지 않더라.”
이때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관대의 외길입니까?”
대사가 말했다.
“허허噓噓, 매를 맞고 싶거든 말하라.”
“그렇다면 학인이 잘못했습니다.”
“하마터면 그대에게 깨질 뻔했구나.”

채주蔡州가 물었다.
“근원은 없고 길만 있어서 돌아오지 못할 때에는 어떠합니까?”
대사가 대답했다.
“저 중아, 앉으려면 앉아라.”
“어떤 것이 마음입니까?”
“긍정하면[是] 둘째 자리이니라.”
“긍정하지 않을 때에는 어떠합니까?”
“또한 긍정의 자리도 이루지 못하느니라.”
“긍정도 긍정하지 않음도 모두 그렇지 않을 때에는 어떠합니까?”
“더 많이 지껄이는 허물이 있다.”
“하루 종일 무엇으로 증험을 삼습니까?”
“힘을 얻으면 나에게 말하라.”
그 스님이 “예” 하고 대답하니, 대사가 말했다.
“10만 8천 리가 오히려 가깝다.”
“어떤 것이 방편문을 빠르고 쉽게 성취하는 것입니까?”
“빠르고 쉽게 성취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학인은 살피어도 분명하게 꿰뚫지 못하니 어찌합니까?”
“대신할 수 있는 것이라면 대신하겠다.”
“어떤 것이 현묘함 속의 현묘함입니까?”
“이것이[是]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합당한 것입니까?”
“나무토막도 말을 이해한다.”
“어떤 것이 사람이 무심하게 도에 합하는 것입니까?”
“어째서 도가 무심하게 사람에게 합하는 것은 묻지 않는가?”
“어떤 것이 도가 무심하게 사람에게 합하는 것입니까?”
“백운白雲은 잠시 청산으로 오는 것이 무방하지만, 명월明月이야 어찌 푸른 하늘에서 내려오라고 하겠는가?”
“학인이 미처 묻지 못한 곳을 스님께서 대답하지 마시고, 화상께서 대답하지 못한 곳을 학인은 묻지 않겠습니다.”
대사가 멱살을 잡고 말했다.
“이것이 나의 도리인가, 그대의 도리인가?”
“화상께서 저를 때리신다면 저도 화상을 때리겠습니다.”
“대상[對]을 얻거든 서로 밭갈이나 하라.”

스님이 귀종歸宗을 하직하는 어느 스님의 이야기를 들면서 물었다.
“귀종이 묻기를 ‘어디로 가는가?’라고 하니, ‘백장百丈으로 오미선五味禪을 배우러 갑니다’고 대답하자, 귀종은 아무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대사가 이내 말하였다.
“귀종이 혼자서 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귀종이 혼자서 한 일입니까?”
“방망이도 다 없어졌으니, 절 밖으로 쫓아내라.”
스님이 절을 하니, 대사가 말했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학인이 잘못했습니다.”
“그대가 그럴 줄 짐작은 했었다.”
“듣건대 스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제방에는 설치는 자가 아니면 모두 틀에 갇힌 자거나 덫을 놓는 사람이다’라고 하셨다고 하는데, 화상은 어떠하십니까?”
“그대의 이 한 물음을 받고 나니, 당장에 앞니가 빠졌다.”
“어떤 것이 친근하고 은밀한 일입니까?”
“항상 쓰면서 남에게까지 미치느니라.”
“모르는 이는 어떠합니까?”
“맑아도 좋고, 비가 와도 좋다.”

대사가 어떤 스님에게 물었다.
“문밖에 무슨 소리냐?”
“빗방울 소리입니다.”
“중생이 뒤바뀌어서 자기를 미혹하고 물건을 쫓는구나.”[법안法眼이 따로 말하기를 “그려 보라”고 하였다.]

어떤 스님이 대사에게 물었다.
“어떤 것이 똑같은 모습[同相]입니까?”
대사가 부젓가락을 화로에다 꽂으니, 스님이 또 물었다.
“어떤 것이 다른 모습[別相]입니까?”
대사가 또 부젓가락을 한쪽에다 꽂았다.[법안이 따로 말하기를 “묻는 것이 이치에 맞지 않다”고 하였다.]

어떤 스님이 동자童子 하나를 데리고 와서 말했다.
“이 아이가 항상 스님들에게 불법 묻기를 좋아하니, 화상께서 시험해 보십시오.”
대사가 차를 끓이라고 해서 동자가 차를 끓여 오니, 대사가 마시고 동자에게 잔을 넘겨 주었다. 동자가 가까이 오자 대사가 손을 오므리면서 말했다.
“얻은 것을 말해 보겠는가?”
동자가 말했다.
“물으시죠.”[법안이 따로 말하기를 “화상은 더 마시시겠습니까?”라고 하였다.]
이에 그 스님이 물었다.
“이 아이의 견해는 어떠합니까?”
“겨우 한 생이나 두 생 동안 계를 지킨 스님이다.”
대사가 세 곳에서 법문을 열어 설법하신 것을 문인들이 기록했는데, 여기서는 그 줄거리만을 추려 둔다.
진晋의 천복天福 2년 정유丁酉 8월에 입멸하니, 수명은 74세였는데 승속 간에 슬프게 곡을 하면서 상복을 입는 자가 무척 많았다. 대자산大慈山에서 다비를 하여 얻은 사리는 용모산龍母山 북쪽에다 탑을 세워 안치했다.

복주福州 장생산長生山 교연皎然 선사
그는 본 고을 사람이었는데 설봉雪峰에게 입실하여 비밀하게 심인心印을 전해 받고 10년 동안 시봉을 하였다.
어느 날 다른 스님과 함께 나무를 패는데 설봉이 말했다.
“쪼개서 중심에 도달하면 머물러라.”
대사가 말했다.
“쪼개 버리겠습니다.”
설봉이 다시 말했다.
“옛사람은 마음으로 마음을 전했는데, 그대는 어째서 쪼개 버린다고 하는가?”
대사가 도끼를 던지면서 말했다.
“전했습니다.” 
그러자 설봉이 주장자로 한 차례 때리고 물러갔다.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제1구第一句입니까?”
설봉이 잠자코 있자 그 스님이 물러나서 대사에게 이야기하니, 대사가 말했다.
“이것은 제2구第二句이다.”
설봉이 그 스님을 다시 오게 해서 물었다.
“어떤 것이 제1구인가?”
대사가 통곡을 하였다.
“아이고, 아이고.”

설봉이 나무를 나르는 울력을 하다가 대사에게 물었다.
“옛사람이 말하기를 ‘누가 알았으랴? 석모席帽의 밑이 원래 옛날의 근심하던 사람인 것을’이라고 했는데, 옛사람의 뜻이 어떠한가?”
대사가 삿갓을 비껴쓰면서 말했다.
“그것이 누구의 말인가요?”

설봉이 대사에게 물었다.
“경을 지닌 자는 능히 여래를 짊어진다고 했는데, 어떤 것이 여래를 짊어지는 것인가?”
대사가 설봉에게 방망이질을 해서 선상 위로 쫓았다.

설봉이 울력을 마치고 등藤덩굴 한 다발을 메고 돌아오는데, 길에서 어떤 스님을 만나자 등덩굴을 놓아 버리고 합장하고 섰다. 그 스님이 앞으로 가까이 와서 들려고 하자, 설봉이 즉시 그 스님을 걷어 차버렸다. 절로 돌아온 설봉이 대사에게 이 일을 이야기하면서 말했다.
“내가 오늘 그 승려를 걷어찼더니 그토록 상쾌하더라.”
대사가 대답했다.
“화상이 그 스님을 대신해서 열반당涅槃堂으로 들어갔군요.”[법안法眼이 숭수사崇壽寺에 있을 때에 두 스님이 제각기 도리를 이야기하면서 대사에게 판단하라 하니, 현각이 말하기를 “두 스님이 동시에 열반당에 들라” 하였다. 현각이 말하기를 “어디가 그 스님을 대신하여 열반당에 든 경지인가?”라고 하였다. 숭수崇壽 조稠가 말하기를 “이 한마디는 다시 노형에게로 돌려야겠다”라고 하였다. 동선東禪 제齊가 말하기를 “장생의 뜻은 무엇이겠는가?”라고 하였다.]

대사가 일찍이 어떤 암주庵主를 찾아가서 이야기를 하였다. 암주가 물었다.
“요즈음 어떤 스님이 내게 서쪽에서 오신 뜻을 묻기에 내가 불자를 들어 보였는데 맞습니까?”
대사가 대답했다.
“어찌 맞고 맞지 않음을 말하리오?”
어떤 이가 암주에게 물었다.
“누군가는 이 일을 잘 보임保任하는 것이 호랑이 머리에 뿔을 대동한 것 같고, 어떤 이는 이 일을 싫어하고 버리는 것이 한 푼의 가치도 안 되니, 이 일은 어째서 칭찬과 비방이 같지 않습니까? 청컨대 가려내서 보여 주십시오.”
암주가 대답했다.
“때 맞춰 오고 감이 우연으로부터인데, 어찌 가려낼 수 있으랴?”
대사가 말했다.
“만약 그렇다면 이 뒤로는 남을 지도하지 마십시오.”[현각玄覺이 말하기를 “동일하게 한 일인데 어째서 얻음과 잃음이 있는가? 상좌들이여, 만일 지혜의 눈이 없다면 얻고 잃음을 가려내기 어렵다”라고 하였다.]

설봉이 대사에게 물었다.
“광명과 경계가 모두 없으면 다시 어떤 물건인가?”
대사가 대답했다.
“저[皎然]의 잘못을 용서하시면, 감히 헤아려 보겠습니다.”
“그대의 허물을 용서하면 어떻게 헤아린단 말인가?”
“저도 화상의 잘못을 용서하겠습니다.”
설봉이 깊이 허락하였다. 이어 수기를 받고 장생산長生山에 살면서 교화하였다. 
어떤 스님이 물었다.
“위로부터 내려온 종승을 어떻게 드날리십니까?”
“그대 하나를 위해서 장생산을 버릴 수 없다.”
“옛사람이 말하기를 ‘무명無明이 곧 불성佛性이니, 번뇌를 끊을 필요가 없다’고 했는데, 어째서 무명이 곧 불성인 것입니까?”
대사가 성난 표정으로 주먹을 쳐들면서 꾸짖었다.
“오늘 저 스님을 때리리라.”
“어떤 것이 번뇌를 제거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까?”
대사가 손으로 머리를 긁으면서 말했다.
“저 스님이 저토록 인간의 업을 발동시키는구나.”
“길에서 도를 도달한 사람을 만나면 ‘말이나 침묵으로 대하지 않는다’고 하는데, 무엇으로 대합니까?”
“지묵紙墨에 올려서 무엇하리요?”
민수閩帥가 선주禪主 대사라 불렀다. 그가 임종한 곳은 알 수 없다.

신주信州 아호鵝湖 지부智孚 선사
그는 복주福州 사람이니, 처음에는 강사(講肆:講院)에 몸을 담아 장안長安에서 수업을 하다가, 현극玄極의 이치를 사모하여 설봉雪峰에게 갔다. 설봉을 몇 해 동안 섬기다가 심결心訣을 깨달은 뒤에는 인연을 따라 아호산에 있으면서 법석法席을 크게 열었다. 
어떤 스님이 물었다.
“만법이 하나로 돌아가면, 하나는 어디로 돌아갑니까?”
대사가 대답했다.
“그대 한 사람만이 바쁜 것이 아니니라.”
“허공이 경전을 강설하면 무엇으로 종宗을 삼습니까?”
“그대는 청중聽衆이 아니니 나가거라.”
“5역죄逆罪를 범한 아들도 아비의 언약을 받을 수 있습니까?”
“스스로 재단하는 힘이 있더라도 자기가 상하는 것을 면하지 못한다.”
“어떤 것이 부처의 향상인向上人입니까?”
“정식情識의 앎으로는 그대도 어쩌지 못하리라.”
“어째서 어쩌지 못합니까?”
“어린아이가 반드시 군자를 만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사람이 와서 경산徑山 화상이 입적했다고 아뢰니, 어떤 스님이 물었다.
“경산 화상이 입멸하여 어디로 갔습니까?”
“너무나 영리하여 그대를 능가하는 이도 있다.”
“예부터 있는 한 구절을 스님께서 말씀해 주십시오.”
“발밑에서 무엇을 뒤지는가?”
“바로 지금 보고 묻는 것입니다.”
“그대가 변신變身하지 못한 것을 보라.”
“설봉이 주장자를 던진 뜻이 무엇입니까?”
대사가 향시(香匙:향 수저)를 던지자, 스님이 말했다.
“그 뜻이 무엇입니까?” 
“좋은 종자가 아니구나. 나가라.”
“어떤 것이 아호鵝湖의 제1구句입니까?”
“무엇을 말하는가?”
“어찌하여야 옳습니까?”
“나의 낮잠을 방해하는구나.”
“묻지도 않고 대답하지도 않을 때에는 어떠합니까?”
“남에게 물어서 어찌 알겠는가?”
“길 잃은 아이가 아직 집에 돌아오지 않았을 때에는 어떠합니까?”
“길에 있지 않았다.”
“돌아온 뒤에는 어떠합니까?”
“바로 길을 잃었구나.”
“어떤 것이 근원이 되는 일입니까?”
“도중에서 무엇을 찾는가?”
“어떤 것이 한 구절입니까?”
“알겠는가?”
“그것으로 되지 않겠습니까?”
“아이고, 아이고.”

경청鏡淸이 물었다.
“어떤 것이 바로 지금[卽今]입니까?”
대사가 대답했다.
“왜 또 바로 지금을 찾는가?”
“하마터면 곁가지로 나갈 뻔했군요.”
“이야기[語]는 거슬리나 말[言]은 순종하는구나.”

장주漳州 보은원報恩院 회악懷岳 선사
그는 천주泉州 사람이다. 어려서는 고향의 성수원聖壽院에서 업을 닦았고, 설봉에서 참문을 마친 뒤에는 용계龍溪에 살았는데, 현묘함을 찾는 무리가 모여들었다.
어떤 스님이 물었다.
“하루 종일 어떻게 실천[行履]해야 합니까?”
대사가 대답했다.
“움직이면 죽는다.”
“움직이지 않을 때에는 어떠합니까?”
“여전히 고총古塚을 지키는 귀신이다.”
“어떤 것이 학인의 출신처出身處입니까?”
“어떤 것이 그대를 결박했는가?”
“그렇지만 몸을 벗어날 수 없으니 어찌합니까?”
“허물이 누구에게 있는가?”
“어떤 것이 보은원報恩院의 신령스런 한 물건입니까?”
“그렇게 많은 술 찌꺼기를 먹어서 무엇 하겠는가?”
“또한 손발까지 드러냈습니까?”
“여기가 어떤 곳인가?”

다른 스님이 물었다.
“우두牛頭가 4조祖를 보기 전에는 어떠합니까?”
“만 리에 한 조각구름이니라.”
“본 뒤에는 어떠합니까?”
“확연히 탈락했느니라.”
또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불법의 대의입니까?”
“지난밤 3경更에 불을 잃어버렸다.”
“검은 구름이 어두움을 몰고 오는데, 누가 비를 맞을 자입니까?”
“높은 곳이 먼저 기우느니라.”
“종승宗乘을 저버리지 않으려면 어떻게 제창提唱해야 합니까?”
“산은 스스로가 산이라 하지 않고 물은 끊임이 없느니라.”
“부처님께서 세상에 나시기 전에는 어떠하였습니까?”
“그대가 어찌 알겠는가?”
“티끌을 헤쳐서 부처를 볼 때는 어떠합니까?”
“어느 해에 보겠는가?”
“사자가 굴에 있을 때에는 어떠합니까?”
“사자라는 것이 어떤 가구家具인가?”
“사자가 굴에서 나왔을 때에는 어떠합니까?”
“사자가 어디에 있는가?”
“어떤 것이 눈앞의 부처입니까?”
“빨리 절을 하라.”

대사가 임종할 무렵에 상당하여 대중에게 보였다.
“산승山僧이 12년 동안 종지宗旨의 가르침을 제창했는데, 여러분은 나의 어디가 괴이한가? 만일 3승乘의 경전이나 5종의 논論을 듣고자 하면, 여기서 개원사開元寺가 지척이다.”
말을 마치고는 입적하였다.

항주杭州 서흥西興 화도化度 오진悟眞 대사
그는 천주泉州 사람이다. 설봉의 심인心印을 받은 뒤에 항주杭州와 월주越州 사이에서 성대히 교화하다가 나중에 서흥진西興鎭의 화도원化度院에 거처하였는데 법석法席이 크게 번창하였다.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대사가 불자를 드니, 그 스님이 말했다.
“학인은 잘 모르겠습니다.”
“차나 마셔라.”
“어떤 것이 무봉탑無縫塔입니까?”
“다섯 자나 여섯 자이니라.”
“어떤 것이 한 티끌입니까?”
“9세世와 찰나刹那를 나눈 것이니라.”
“어찌하여야 법계를 다 포용합니까?”
“법계가 어디에 있는가?”
“골짜기가 제각기 다른데 스님은 어떻게 하나를 밝히시겠습니까?”
“그대는 왜 헛기침을 하는가?”

어떤 스님이 물었다.
“학인은 처음 발심했으니, 스님께서 들어갈 길을 지시해 주십시오.”
“그대는 교화하는 방도의 어디가 이상하다고 여기는가?”
“어떤 것이 빛깔을 따르는 마니주摩尼珠입니까?”
“청靑․황黃․적赤․백白이니라.”
“어떤 것이 빛깔을 따르지 않는 마니주입니까?”
“청․황․적․백이니라.”
“어떤 것이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이것은 동쪽에서 왔고, 이것은 서쪽에서 왔다.”
“우두가 4조를 보기 전에는 어떠하였습니까?”
“새와 짐승이 모두 미혹했다.”
“본 뒤에는 어떠합니까?”
“산은 깊고 물은 차니라.”
“유마維摩거사와 문수보살文殊菩薩은 무엇을 이야기했습니까?”
“오직 문 앞에 있는 경호수鏡湖水만이 맑은 바람에 옛 시절의 물결을 변치 않고 있구나.”
이로부터 명성이 널리 퍼지니, 전왕錢王이 그의 도덕을 소중히 여겨서 자의紫衣와 대사의 호를 내렸다.

복주福州 고산鼓山 흥성興聖 국사 
법명은 신안神晏이다. 그는 대양大梁 사람으로서 성은 이李씨이다. 어릴 때부터 누린내를 싫어하고 범종梵鐘 소리만을 좋아했는데, 12세가 되는 해에 몇 줄기 흰 서기瑞氣가 살고 있는 방 안의 벽에 와서 닿았다. 대사는 곧 붓을 들고 그 벽에다 이렇게 썼다.

흰 서기야, 여기서 당장 사라져라.
공연히 와서 요기를 피우지 말라.
삿된 행을 물리치고 참된 소견에 돌아가면
반드시 범부를 초월해 성인으로 들어가리라.
白道從茲速改張    休來顯現作妖祥
定祛邪行歸眞見    必得超凡入聖鄕

글씨를 다 쓰니, 서기는 이내 사라졌다.
또 나이가 지학(志學:15세)에 이르렀을 때 매우 지독한 병에 걸렸는데, 꿈에 신인神人이 와서 약을 주었다. 잠에서 깨어나자 단박에 병이 나았다. 이듬해에 또 꿈을 꾸니, 범승梵僧이 와서 고하였다.
“출가할 때가 되었소.” 
마침내 위주衛州 백록산白鹿山 도규道規 선사에 의해 머리를 깎았다.
숭악嵩嶽에 가서 구족계를 받다가 동학들에게 말했다.
“옛사람이 말하기를 ‘백사갈마白四羯磨를 하면 계戒․정定․혜慧가 완전하다’고 했는데, 어찌 법칙[準繩]으로만 얽맬 수 있겠는가?”
그리고는 주장자를 집고 선禪의 관문을 두루 두드리면서 말만을 기억하여 알음알이로 삼다가, 설령(雪嶺:설봉)에 와서야 활연히 부합하였다.
어느 날 설봉雪峰을 뵈니, 설봉은 그의 인연이 익은 것을 알고 벌떡 일어나 멱살을 잡으면서 말했다.
“무엇인고?”
대사가 확연히 깨달아 마치고 또 마쳤다는 마음까지 없어져서 오직 손을 들어 흔들 뿐이니, 설봉이 다시 물었다.
“그대는 도리道理를 지었는가?”
“무슨 도리가 있겠습니까?”
이에 설봉이 그의 고매한 견해를 알고 어루만지면서 인가하였다. 
설봉이 입적한 뒤에 민수閩帥가 고을의 왼쪽으로 20리 되는 곳에 고산鼓山을 개척하여 선원을 짓고는, 대사에게 종승의 법을 제창해 달라고 청하였다.
대사가 상당上堂하여 대중을 모으고는 잠자코 있다가 말했다.
“남전南泉이 살았을 때에도 어떤 사람은 남전을 알지 못했었는데, 지금 남전을 아는 이가 있는가? 나와서 대중 앞에서 시험해 보라.”
이때에 어떤 스님이 나서서 절을 하고서 막 일어나자, 대사가 말했다.
“무엇인가?”
스님이 가까이 다가서면서 말했다.
“화상께 묻습니다.”
“재주가 없으니, 물러가라.”
또 말했다.
“경전에는 경전의 강사가 있고, 논장에는 논의 강사가 있고, 율에는 율사가 있고, 함函마다 번호가 있고, 부部마다 표지가 있으니 각자 전해 가져라. 그리고 불법은 가르침을 건립하는 것이고, 선도禪道는 울음을 그치게 하는 설명이니, 여러 성인들이 일어나더라도 사람의 마음이 평등하지 않으므로 교묘히 방편의 문을 열어서 마침내 많은 문이 생겼다. 병이 생긴 원인이 같지 않으므로 처방이 다르니, 있음[有]에 머물면 있음을 타파하고 공空에 머물면 공을 꾸짖는다. 두 가지 허물이 없어진 뒤에는 중도中道도 모름지기 버려야 한다. 그러므로 고산은 말하나니, 구절은 기틀에 맞지 않고 말은 일을 펴는 것이 아니다. 말을 따르는 이는 죽고, 구절에 막힌 이는 미혹하게 된다. 언어 이전도 제창하지 않거늘 어찌 구절 뒤를 이야기하리오? 곧바로 석가가 문을 닫고 정명(淨名:유마 거사)이 입을 다문 데 이르러야 한다. 대사(달마)는 양梁나라 시절 동자가 당일에 하나를 묻고 둘을 묻고 셋을 물었더라도 몽땅 깨달아 마쳤는데, 여러분들은 어찌 생각하는가?”
이때에 어떤 스님이 절을 하자, 대사가 말했다.
“큰 소리로 물어라.”
“학인이 화상께 묻사옵니다.”
대사가 할을 해서 내쫓았다.
“자기의 일을 밝히지 못했는데, 무엇으로 증험을 삼겠습니까?”
대사가 소리를 지르면서 들리지 않는 시늉을 하니, 그 스님이 다시 물었다. 그러자 대사가 말했다.
“한 점이 흐름을 따르니, 먹어도 다 무겁지 않다.”
“어떤 것이 온 건곤乾坤을 싸는 구절입니까?”
“앞으로 가까이 오라.”
그 스님이 앞으로 가까이 오니, 대사가 말했다.
“너무나 둔하구나.”
“어찌하여야 대를 잇겠습니까?”
“들개가 풍취가 없거늘 공연히 손만 벌렸다.”
“어찌하여야 좋습니까?”
“잘못되었다.”
“학인이 문득 알아들을[承當] 때에는 어떠합니까?”
“그대가 어떻게 알아들었는가?”[법등法燈이 따로 말하기를 “힘을 허비하지 말라”고 하였다.]
“어떤 곳이 학인이 바로 서는 곳입니까?”
“온갖 거룩한 행行을 따르지 않는다.”[법등이 따로 말하기를 “그대는 어지럽게 달리게 하는구나”라고 하였다.]
“천산만산千山萬山에서 어느 것이 바른 산입니까?”
“바른 산은 무엇 하려는가?”[법등이 말하기를 “천산과 만산이니라”고 하였다.]

대사가 초경招慶을 만났는데 초경이 말했다.
“예삿일[家常]이군요.”
대사가 대답했다.
“이 만족할 줄 모르는 사람아.”
“그래도 여전히 막혔군요.”
대사가 도리어 이렇게 말했다.
“예삿일이다.”
“오늘은 불이 없군요.”
“굉장히 인색한 사람이군.”
“마음대로 가져가시오.”[동선東禪 제齊가 이 일을 들어 말하기를 “이 두 존숙의 말에 얻은 이와 잃은 이가 있는가? 있다면 어디가 얻은 것이며, 어디가 잃은 곳인가? 만일 얻음도 잃음도 없다고 하면, 그는 행각의 안목을 갖추지 못했다”라고 하였다.]

어떤 이가 물었다.
“어찌하여야 생사의 윤회를 면합니까?”
“생사를 가지고 오라.”
“어떤 것이 종문 안의 일입니까?”
대사가 손뼉을 치면서 말했다.
“훔훔[吽吽].”
“어떤 것이 향상向上의 한 관문[一關]의 빗장입니까?”
대사가 때렸다.
“어떤 것이 고산鼓山의 바른 주인입니까?”
“눈이 멀었으니 어쩌겠는가?”

대사가 보복保福에게 물었다.
“옛사람이 말하기를 ‘그름은 그름이 아니고, 옳음은 옳음이 아니다’라고 했는데, 그 뜻이 무엇인가?”
보복이 찻잔을 번쩍 드니, 대사가 말했다.
“시비를 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
“어떤 것이 진실한 사람의 몸입니까?”
“바로 지금은 어떠한 몸[體]인가?”
“끝내 어떠합니까?”
“어찌 그런 경지에 이르겠는가?”
“어떤 것이 불법의 대의입니까?”
“둥근 해가 둥실 뜨니[金烏一點], 만 리에는 구름 하나 없다.”

대사가 어떤 스님에게 물었다.
“고산에게 석문石門에 걸터앉지 않는다는 구절이 있다는데,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스님께 청합니다.”
대사가 때렸다.
“무엇이 옛사람이 심력心力을 던 곳입니까?”
“그대는 어떻게 힘을 들였는가?”
“말이 천하에 가득해도 입의 허물은 없다고 하는데, 어떤 것이 입의 허물이 없는 것입니까?”
“어떤 허물이 있는가?”
“어떤 것이 요긴한 곳입니까?”
“부끄러움을 아는가?”

대사가 민수閩帥와 함께 불상佛像을 우러러보고 있는데, 민수가 물었다.
“이는 어떤 부처입니까?”
대사가 대답했다.
“대왕께서 감정해 보십시오.”
“감정한다면 부처님이 아닙니다.”
“그러면 무엇입니까?”
민수가 대답이 없었다.[장경長慶이 대신 말하기를 “대사께서 대중에 계시다는 말을 들은 지 오래인데 어찌 그리 경솔하십니까?”라고 하였다.]

어떤 이가 물었다.
“위로부터 내려온 종승宗乘을 어떻게 제창합니까?”
대사가 불자로 입을 후려갈겼다.
“어떤 것이 교리 이외에 따로 전한 일입니까?”
“차나 마셔라.”
그리고는 또 말했다.
“이제 여러분들을 위하여 머리를 처박으며 저 여러 성인들의 교화문에 들어가 뒤진다고 해서 나오지는 않는다. 그러므로 그대들에게 말하나니, ‘교리를 폈으나 도달하지는 못했고, 조사도 서쪽으로 오지 않았으며, 3세의 모든 부처님도 제창할 수 없고, 12분교에도 다 싣지를 못했고, 범부와 성인이 포섭하지도 못하고, 과거에서 지금으로 전해질 수도 없다’고 하노라. 홀연히 이러한 자가 소식을 통하지도 않았는데 그에게 이렇게 말하다가 그에게 갑자기 주둥이를 맞으면, 그를 괴이하게 여기겠는가? 비록 그렇더라도 분별없이 때리지는 말라. 고산이 항상 말하기를 ‘석문에 걸터앉지 않는 한 사람이라도 있다면 석문에 걸터앉지 않는 구절이 있어야 한다’고 했으니, 어떤 것이 석문에 걸터앉지 않는 구절인가? 고산이 주지한 지 30여 년에 5호湖․4해海에서 온 이들이 높은 봉우리 위에서 산과 물을 구경하기는 했으나, 한 사람도 시원하게 통한 이는 없다. 지금이라도 누군가 통한 이가 있다면 어둡지는 않으리라. 형제들이여, 잘 지내라[珍重].”
그리고는 게송을 읊어 대중에게 보였다.

당장에도 알기 어렵거늘
말을 쫓으면 더욱 멀어질 것이요,
만약 부처와 조사를 논한다면
특히 천지만큼의 차이가 생기리라.
直下猶難會    尋言轉更賖
若論佛與祖    特地隔天涯

민수가 절을 하고 항상 법문을 물었다.

장주漳州 융수隆壽 흥법興法 대사
법명은 소경紹卿이다. 그는 천주泉州 사람으로서 성은 진陳씨이다. 어릴 때에 영암사靈巖寺에서 경과 논을 익혔으며, 교리 수업을 다 마치고는, 선나禪那에 심취深趣하였다. 그리하여 설봉雪峰을 찾아가서 법을 물었고, 거기서 부지런히 시봉하기 몇 해 만에 인연을 따라 깨달았다.
어느 날 설봉을 모시고 거닐다가 토란잎이 움직이는 것을 본 설봉이 손으로 가리키자, 대사가 대답했다.
“소경紹卿은 무척이나 두렵습니다.”
“그대의 집안일인데 두려울 것이 무엇인가?”
대사가 여기서 훤히 깨달아 다른 곳으로 다닐 생각을 버렸다. 이윽고 용계사龍谿寺에서 거처해 달라는 초청을 받았다. 
어떤 스님이 물었다.
“옛사람이 말하기를 ‘마니전摩尼殿에 네 귀퉁이가 있는데, 한 귀퉁이는 항상 드러났다’고 하는데, 어떤 것이 항상 드러난 귀퉁이입니까?”
대사가 불자를 들었다.
“한 알의 양식도 저축하지 않았거늘 어찌 만 사람의 굶주림을 구제하겠습니까?”
“협객俠客의 면전에서 칼을 빼앗는 듯하니, 그대는 필시 총명한 사람은 아닌 것 같다.”
“크게 더듬은 소경이 오면 스님께서는 그를 제접하시겠습니까?” 
“앞과 뒤가 크게 응하니, 이런 편의를 얻었구나.”
“이것이 제접하는 것이 아닙니까?”
“이 놈이 여기에 와서 부리를 박는구나.”
“귀와 눈이 이르지 못하는 곳은 어떠합니까?”
“그대에게 그런 작용이 없다.”
“그러면 들은 것입니다.”
“참으로 귀가 먹은 놈이구나.”
장주漳州 태수 왕공이 조사의 가풍을 매우 숭상해서 황제께 아뢰어 자의紫衣와 대사의 호를 하사케 하였다.

복주福州 선종원僊宗院 인혜仁慧 대사
법명은 행도行瑫이다. 그는 천주泉州 사람으로서 성은 왕王씨이다. 고향의 개원사開元寺에서 공부를 하다가 설봉의 선회禪會에 참석한 뒤로 소문이 사방에 퍼졌다. 민수閩帥가 설법을 청하고 배우는 자가 구름처럼 모였다. 
상당上堂하여 말했다.
“나는 석가와 동참(同參:같이 공부하는 일)했다. 그대들은 누구를 뵈었다고 여기는가?”
이때에 어떤 스님이 나서서 절을 하고 물으려는데, 대사가 말했다.
“틀렸다.”
“어떤 것이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웅이산熊耳山에서도 감춘 적이 없느니라.”
어떤 이가 물었다.
“당장의 일[直下事]에 대하여 스님의 방편을 구합니다.”
“그대의 물음이 아니었다면 나도 말하지 않았을 것이다.”
“어떤 것이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대낮에는 한가한 사람이 없다.”

복주福州 연화산蓮華山 영복원永福院 초증超證 대사
법명은 종엄從弇이다.[먼저는 장주漳州 보은원報恩院에 살았다.]
어떤 스님이 물었다.
“유교儒敎에서는 5상常으로 극칙極則을 삼지만, 종문에서는 무엇으로 극칙을 삼습니까?”
대사가 가만히 있자, 그 스님이 말했다.
“그러면 학인이 조급합니다.”
“주장자를 쳐야 되겠군.”
“경전에 말하기를 ‘오직 1승의 법만이 있다’고 하는데, 어떤 것이 1승의 법입니까?”
“그대는 내가 여기서 무엇을 한다고 여기는가?”
“그러면 경전의 뜻을 모르시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대를 저버리지는 않는다.”
“묻는 곳을 향해 이해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학인의 묻는 곳이라면, 화상께서는 어찌하겠습니까?”
“차나 마셔라.”

장경은 항상 말하기를 “법을 다하면 백성이 없다”고 하니, 대사가 말했다.
“나는 그렇지 않소. 만약 법을 다하지 않으면 어떻게 백성을 얻겠습니까?”
그때 어떤 스님이 말했다.
“스님, 법을 다해 주십시오.”
“나는 그대의 납세納稅가 필요하지 않다.”
“다른 것은 묻지 않겠으니, 부디 지름길을 지시해 주십시오.”
“불쾌하다. 절이나 세 번 해라.”

대사가 상당하여 말했다.
“쯧쯧[咄咄], 화살을 조심해라.”
그리고는 이내 방장으로 돌아갔다.
“스님께서 바른 법령을 다해 주십시오.”
“덮어 버리지 말라.”
“대중이 다 모였으니, 스님께서 설법해 주십시오.”
“들리는가?”
“만약에 다시 골똘히 생각하면 미치기 어려울 것입니다.”
“진실로 그렇다면 바로 얻은 것이다.”
“마니전摩尼殿에 네 귀퉁이가 있는데 한 귀퉁이는 항상 드러났다고 하니, 어떤 것이 항상 드러난 귀퉁이입니까?”
“다시 점을 찍지 말라.”
대사가 상당하여 좌석 가장자리에 서서 대중에게 말하기를 “두 존자가 함께 교화하지는 못한다”고 하고는 방장으로 돌아갔다.

항주杭州 용화사龍華寺 진각眞覺 대사
법명은 영조靈照이다. 그는 고려高麗 사람이었다. 민閩과 월越 지방을 떠돌다가 설봉에게 입실하여 현묘한 종지에 은밀히 부합하였다. 그 후로는 오직 누더기 한 벌로 지내니, 민중閩中에서는 그를 조포납照布衲이라 불렀다.
어느 날 저녁에 대사가 반달[半月]을 가리키면서 부溥 상좌에게 물었다.
“저 한 조각은 어디로 갔을까?”
부 상좌가 말했다.
“스님은 망상을 부리지 마십시오.”
대사가 다시 말했다.
“나머지 한 조각도 잃었구나.”

대중이 아무리 찬탄하고 칭송해도 담담하게 스스로를 지켰다.
처음 무주婺州 제운산齊雲山에 있을 때였다. 상당하여 가만히 있다가 홀연히 손을 펴고 대중에게 보이면서 말했다.
“이것을 잡으시오, 이것을 잡으시오.”
또 말했다.
“한 사람이 거짓[虛]을 전하니, 만 사람이 진실[實]을 전한다.”
어떤 스님이 물었다.
“풀 베는 목동들도 노래하고 춤을 추는데, 요즘에도 그런 일이 있습니까?”
대사가 자리에서 내려가 춤을 추면서 말했다.
“사미여, 알겠는가?”
“모릅니다.”
“산승山僧의 덩더꿍 춤도 모르는가?”
“영산회상에서는 법과 법을 전했는데, 제운齊雲에서는 무엇을 부촉하십니까?”
“그대 한 사람 때문에 제운산을 황폐시킬 수는 없다.”
“그것이 친히 부촉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대중을 너무 웃기지 말라.”
“환단(還丹:신선의 약품) 한 알이 쇠를 점點하여 금을 이루고, 지극한 이치의 말 한마디가 범부를 점하여 성인을 이룬다고 하는데, 스님께서 한 번 점하여 주십시오.”
“제운이 금을 점해서 쇠를 이룬 것을 아는가?”
“금을 점해서 쇠를 이루었다는 말은 미처 들은 바가 없습니다. 지극한 이치의 한 말씀을 내려 주십시오.”
“구절 밑에서 알아채지 못하면 후회하여도 미치지 못한다.”

대사가 다음에는 월주越州의 경청원鏡淸院으로 옮기니 바다 같은 무리가 기꺼이 뒤를 따랐다.
어느 날 대중에게 말했다.
“법령을 다해 버렸다.”
어떤 스님이 말했다.
“스님께서 법령을 다해 주십시오.”
대사는 대답했다.
“훔훔[吽吽].”
“어떤 것이 학인의 본분사本分事입니까?”
“경청은 입 놀리기를 아끼지 않는다.”
“스님께서 잘 다듬어 주십시오.”
“10의 8은 이루어졌다.”
“어째서 10이 다 이루어지지 않습니까?”
“경청의 닦는 이치를 알았는가?”

대사가 어떤 스님에게 물었다.
“어디서 왔는가?”
“오봉五峰에서 왔습니다.”
“무엇을 하러 왔는가?”
“화상께 절하러 왔습니다.”
“왜 스스로에게 절하지 않는가?”
“절을 했습니다.”
“경호鏡湖의 물이 얕구나.”

어떤 이가 물었다.
“어떤 것이 제1의 구절[第一句]입니까?”
“이름과 말을 잘못 내리지 말라.”
“스님께 어찌 방편이 없으시겠습니까?”
“까마귀가 참새를 기른다.”

어떤 이가 물었다.
“향상의 외길은 천 성인도 전하지 못한다고 하니, 어떤 사람이 전해 가졌습니까?”
“천 명의 성인도 나를 의심하더라.”
“그것이 곧 전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진제晋帝가 혜강嵇康을 죽였다.” 
“석가가 마갈摩竭에서 방문을 닫았고, 정명淨名이 비야毘耶에서 입을 다물었으니, 이 뜻이 무엇입니까?”
“동쪽 복도 아래가 양양삼삼兩兩三三이니라.”
대사가 대중에게 말했다.
“제방에서는 비로법신毘盧法身으로 극치를 삼지만, 경청은 이 속에서 그렇지가 않다. 비로자나도 스승이 있고 법신도 주인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어떤 것이 비로의 스승이며 법신의 주인입니까?”
“두 공公을 어찌 감히 논하겠는가?”
“옛사람이 말하기를 ‘빛깔[色]을 보는 것이 곧 마음을 보는 것이다’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빛깔이거니와 어떤 것이 마음입니까?”
“그렇게 물으면 나[山僧]를 속이는 것이 아닌가?”
“가르기[剖] 이전의 일을 스님께서 결단해 주십시오.”
“어디에 떨어졌는가?”
“그러면 입을 잃었습니다.”
“한산寒山이 위산潙山을 전송한다.”
또 말했다.
“가만있어라. 그대가 입을 잃었는가, 내가 입을 잃었는가?”
“사나운 호랑이도 새끼는 물지 않습니다.”
“당나귀는 나가고 말은 돌아오는구나.”
대사가 어떤 스님에게 갑자기 물었다.
“기억하는가?”
“기억합니다.”
“무엇이라 했는가?”
“무엇이라 하십니까?”
대사가 말했다.
“회남淮南의 어린애가 절에 왔다.”
“무엇이기에 뛰어난 매와 뛰어난 새매가 쫓아도 미치지 못합니까?”
“그대가 따로 물으면, 나도 따로 대답하리라.”
“따로 대답해 주십시오.”
“10리里의 행인은 같은 길을 걷는다.”
“금 부스러기가 귀중하지만 눈에 넣을 수 없을 때에는 어찌합니까?”
“넣을 수 없는 것을 넣을 수 있겠는가?”
스님이 절을 하니 대사가 말했다.
“심사신(深沙神:신장의 이름)이구나.”
“보리수菩提樹 밑에서 중생을 제도했다는데, 어떤 것이 보리수입니까?”
“마치 고련수苦練樹 같으니라.”
“어째서 고련수 같습니까?”
“본래 훌륭한 말[良馬]이 아니니, 어찌 수고로이 채찍을 흔들겠는가?”

나중에 호주湖州 태수 전공錢公이 항주의 서쪽 관문에다 보자원報慈院을 짓고는 대사를 맞이하여 법당을 열게 하니, 선회禪會에 사람들이 몰렸다. 이어서 전왕(전공)이 용화사龍華寺를 세우고, 금화金華 부대사傅大士의 영골靈骨과 도구와 사진을 모신 뒤에 대사에게 주지住持하라고 명했다.
진晋나라 천복天福 12년 정미丁未 윤7월 26일에 본사에서 임종하니, 수명은 78세였다. 대자산大慈山에 탑을 세웠다.

명주明州 취암翠巖 영명永明 대사
법명은 영참令參이다. 그는 호주湖州 사람으로서, 설봉에게 수기를 받은 뒤에 취암翠巖에서 법석을 크게 열었다.
어떤 이가 물었다.
“혀를 빌리지 말고 스님께서 말씀해 주십시오.”
“다방[茶堂]에 가서 차나 다듬어라.”
“국사가 세 차례 시자를 부른 뜻이 무엇입니까?”
“사람을 핍박해서 무엇 하겠는가?”
“다른 것들은 묻지 않겠습니다.”
대사가 잠자코 있으니, 스님이 다시 말했다.
“남에게 어떻게 이야기하오리까?”
대사가 시자를 불러 차를 끓이라고 하였다.

대사가 상당하여 말했다.
“올 여름, 여러분과 더불어 말하고 논했는데, 취암의 눈썹이 남았는가 살펴보라.”[장경長慶이 듣고 말하기를 “생겼다”라고 하였다.]
어떤 스님이 물었다.
“온갖 언구言句는 모두가 물듦이라는데, 어떤 것이 향상사向上事입니까?”
“온갖 언구는 모두가 물듦이다.”
“어떤 것이 요긴한 곳[要處]입니까?”
“대중이 그대를 비웃는다.”
“탁 트여서 칼날에 막히지 않을 때에는 어떠합니까?”
“거의 모든 사람이 그런 견해를 낸다.”
“끝내 어떠합니까?”
“탁 트여서 칼날에 막히지 않는다.”
“옛사람이 방망이를 들거나 불자를 세운 뜻이 무엇입니까?”
“삿된 법은 부지하기 어렵다.”
“승요僧繇는 어째서 지공誌公의 초상을 그리지 못했습니까?”
“어떤 것이 꼭 맞아떨어지는 것인가?”
“험악한 길에서는 무엇으로 나루터를 삼습니까?”
“약산藥山이 두세 번 간곡히 부탁했다.”
“범속함이든 거룩함이든 막히지 않으면서 근기에 맞추어 어떻게 보여줍니까?”
“남에게 취암翠巖이 영리하다는 말을 하지 말라.”
“묘한 기틀의 언구는 모두 맞지가 않나니, 종승宗乘의 일은 어떠합니까?”
“절을 하라.”
“학인은 잘 모르겠습니다.”
“출가해서 행각까지 하고도 절하란 말을 모르는가?”
전왕錢王이 대사의 도풍道風을 듣고서 용책사龍冊寺에 살기를 청하자, 거기에 가서 여생을 마쳤다.



경덕전등록 제19권






길주吉州 청원산靑原山 행사行思 선사의 제6세 법손 42인

복주福州 설봉雪峰 의존義存 선사의 법손 42인
복주福州 안국安國 홍도弘瑫 선사
양주襄州 운개산雲蓋山 귀본歸本 선사
소주韶州 임천林泉 화상
낙경洛京 남원南院 화상
월주越州 동암洞巖 가휴可休 선사
정주定州 법해원法海院 행주行周 선사
항주杭州 용정龍井 통通 선사
장주漳州 보복保福 종전從展 선사
천주泉州 수룡睡龍 도부道溥 선사
항주杭州 용흥사龍興寺 종정宗靖 선사
복주福州 남선南禪 계번契璠 선사
월주越州 월산越山 사내師鼐 선사
남악南嶽 금륜金輪 가관可觀 선사
천주泉州 복청福淸 현눌玄訥 선사
소주韶州 운문雲門 문언文偃 선사
구주衢州 남대南臺 인仁 선사
천주泉州 동선東禪 화상
여항餘杭 대전산大錢山 종습從襲 선사
복주福州 영태永泰 화상
지주池州 화룡산和龍山 수눌守訥 선사
건주建州 몽필夢筆 화상
복주福州 고전古田 극락極樂 원엄元儼 선사
복주福州 부용산芙蓉山 여체如體 선사
낙경洛京 게학산憩鶴山 화상
담주潭州 위산潙山 서棲 선사
길주吉州 조산潮山 연종延宗 선사
익주益州 보통산普通山 보명普明 대사
수주惰州 쌍천雙泉 양가암梁家庵 영永 선사
장주漳州 보복保福 초오超悟 선사
태원太原 부孚 상좌
남악南嶽 유경惟勁 선사
  [이상 31인은 기록에 보임]
태주台州 십상十相 심초審超 선사
강주江州 여산廬山 눌訥 선사
신라국新羅國 대무위大無爲 선사
노주潞州 현휘玄暉 선사
호주湖州 청정淸淨 화상
익주益州 영안永安 설봉雪峰 화상
노선盧僊 덕명德明 선사
무주撫州 명수明水 회충懷忠 선사
익주益州 회과懷果 선사
항주杭州 이상耳相 행수行修 선사
승산嵩山 안덕安德 선사
  [이상 11인은 기연할 어구가 없으므로 기록하지 않음]


행사行思 선사의 제6세 ③ 

복주福州 설봉雪峰 의존義存 선사의 법손

복주福州 안국원安國院 명진明眞 대사
법명은 홍도弘瑫이다. 그는 천주泉州 사람이며, 성은 진陳씨이다. 어릴 때부터 마늘․파를 끊고, 출가할 것을 맹세하다가 용화사龍華寺 동선東禪에서 구족계를 받고 설봉에게로 갔다. 설봉이 모습을 보더니, 법기法器가 될 만한 것을 짐작하고서, 본심本心으로 인도하여 분수에 넘치는 믿음에 들게 하였다. 그리고는 다시 여러 선원을 두루 다니면서 제방의 삼매를 얻은 다음 설봉에게로 돌아오니 설봉이 물었다.
“어디서 오는가?”
“강서江西에서 옵니다.”
“어디서 달마達磨를 만났는가?”
“분명히 화상께 일렀습니다.”
“무엇이라 했든가?”
“어디를 다녀오십니까?”

어느 날 설봉이 대사를 보더니, 갑자기 멱살을 잡고 말했다.
“온 천지 모두가 해탈문인데, 그대의 손을 잡고 들게 하여도 들지 않는구나.”
“화상께서는 괴이한 홍도弘瑫를 얻을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등 뒤에는 허다한 스님이 있으니, 어찌하겠는가?”

대사가 국사의 비문에 있는 말을 들었다.
“마음을 얻으면 이란(伊蘭:냄새가 나쁜 풀)이 전단나무로 바뀌고, 종지를 잃으면 감로수가 쑥밭이 된다.”
그리고는 어떤 스님에게 물었다.
“한 마디에 얻고 잃는 두 뜻이 있어야 하는데,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스님이 주먹을 들면서 말했다.
“주먹이라 하지 못할 것입니다.”
대사가 긍정하지 않고, 도리어 주먹을 들면서 말했다.
“이것을 주먹이라 부르기 때문이다.”

대사가 청을 받아 균산囷山에 머무르니, 참선하는 무리들이 뒤를 따랐다. 그 뒤에 민수閩帥가 대사의 덕화를 듣고, 안국사安國寺에 살게 하니, 현풍玄風을 크게 드날리어 8백여 명의 무리가 모였다.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대사가 대답했다.
“옳기는 옳으나 잘못 알지 말라.”
“어떤 것이 제1의 구절입니까?”
“물어라.”
“학인이 아직까지 근기를 다하지 못했는데 스님께서 근기를 다해 주십시오.”
대사가 잠자코 있으니, 스님이 절을 하였다. 이에 대사가 말했다.
“홀연히 딴 곳에 갔을 때에 누군가가 그대에게 물으면 어떻게 대답하겠는가?”
“끝끝내 감히 잘못 들추지는 않겠습니다.”
“문밖에 나서기도 전에 이미 웃음거리가 되었구나.”
“어떤 것이 달마가 전한 마음입니까?”
“원래 발꿈치 자국이 아니었느니라.”
“어떤 것이 종승宗乘의 일입니까?”
“그대 하나를 위해서 대중을 흩어버릴 수는 없다.”
“있음과 없음에 빠지지 않는 근기를 스님께서 말씀해 주십시오.”
“그대가 판단해 보라.”
“어떤 것이 한 터럭 끝의 일입니까?”
대사가 가사를 번쩍 드니, 스님이 말했다.
“스님께서 지시해 주십시오.”
“박옥璞玉을 안았으니, 눈물을 흘리지 말라. 내일 아침에는 다시 초왕楚王에게 바쳐 보라.”
“적적寂寂하여 말이 없을 때에는 어떠합니까?”
“한 걸음 더 나아가라.”
“온갖 언구言句는 모두가 인연과 방편에 빠지는데, 인연과 방편에 빠지지 않는 일은 무엇입니까?”
“두레박질을 하는 사람[桔橰之士]은 자주 만나지만, 군색함을 지키는 무리[抱甕之流]는 만나기 어렵다.”
“위로 향하는 외길은 천 성인도 전하지 못하는데 화상께서는 어떻게 전하십니까?”
“입은 남겨 두어야 밥을 먹지 않겠는가?”
“어떤 것이 고상한 사람입니까?”
“하빈河濱에는 귀를 씻는 이가 없고, 반계磻溪에는 낚시를 드리운 사람이 없어졌다.” 하빈에서 귀를 씻은 이는 소부巢父 허유이며, 반계에서 낚시질을 하던 이는 강태공姜太公이다. 

“12시時 가운데 어찌하여야 생사를 구제하겠습니까?”
“발우를 들었으니 뭇 풍류를 기웃거리지 말며, 얼음을 딛었거늘 무엇 때문에 걸음이 들락날락하리오?”
“학인이 종승의 법을 묻고자 하는데 허락하시겠습니까?”
“묻기만 하라.”
스님이 들으려는데 대사가 할을 해서 내쫓았다.

어떤 이가 물었다.
“눈앞의 생사를 어떻게 면하겠습니까?”
“생사를 붙들어 오라.”
“있음을 아는 사람은 어째서 이르지 못합니까?”
“그대 아버지의 이름이 무엇인가?”
“어떤 것이 사람을 살리는 칼입니까?”
“감히 그대의 눈을 멀게 할 수는 없다.”
“어떤 것이 사람을 죽이는 칼입니까?”
“그저 이것이다.”
“칼끝을 범하지 않고 어떻게 상대방을 알겠습니까?”
“나귀 해[驢年]가 지나갔다.”
“쓰고 떫은 것을 스님께서 한마디 주십시오.”
“꽤 중얼거리게 하는구나.”
“어째서 그렇습니까?”
“그래도 자세히 아는 것이 좋겠다.”
“항상 바른 지위에 있는 사람도 인간과 하늘의 공양을 없앨 수 있습니까?”
“없앨 수 없다.”
“어째서 그렇습니까?”
“이게 무슨 마음씨인가?”
“어떤 사람이 없앨 수 있습니까?”
“옷 입고, 밥 먹는 이가 없앨 수 있다.”

혜릉慧稜 화상이 초경사招慶寺에 있을 때에 대사가 법당 동쪽 귀퉁이에 서서 대중에게 말하기를 “여기에서 한 가지 질문을 하는 것도 좋겠다” 하였는데, 어떤 스님이 얼른 묻되 “화상은 어째서 바른 지위에 계시지 않습니까?” 하니, 혜릉이 말하기를 “그대를 위하여 이렇게 왔노라” 하였고, 그 스님이 또 말하되 “지금은 어떠하십니까?” 하니, 혜릉이 말하되 “그대의 눈은 무엇 하려는가?”라고 한 일을 들어 이야기했다. 그리고는 말했다.
“그가 이렇게 물은 것이 특별한 도리이기는 하나 지금은 어떻다 여기는가?”
뒤에 안국安國이 말했다.
“그러면 대중이 일시에 흩어져도 되겠습니다.”
대사도 대신 말했다.
“그러면 대중이 일시에 절을 해야 한다.”

양주襄州 운개산雲蓋山 쌍천원雙泉院 귀본歸本 선사[서쌍천西       雙泉이라고도 하나니, 수주隋州에 동쌍천東雙泉이 있기 때문이다.]
그는 경조부京兆府 사람이니, 어릴 때에 계를 받고, 󰡔법화경󰡕을 읽었다. 처음 설봉을 뵈었을 때에 설봉이 선상에서 내려와 등을 타고 앉으니, 대사는 이때에 깨달았다.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쌍천雙泉입니까?”
“한 쌍의 눈썹이 아깝구나.”
“학인은 잘 모르겠습니다.”
“일찍이 우왕禹王의 힘을 번거롭게 하지 않았더라면 여울져 흐르는 일[湍流事]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어떤 것이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대사가 멱살을 잡으니, 그 스님이 얼굴을 붉혔다. 이에 대사가 말했다.
“나에게는 그런 것이 없다.”
대사는 손가락이 가늘고 긴 것이 남보다 달랐으므로 사람들이 수상手相 대사라 하였다.

소주韶州 임천林泉 화상[전에는 헌산巘山에서 살았다.]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티끌입니까?”
“모르는 사이에 산을 이룬다.”

대사가 백운白雲의 자광慈光 대사를 뵙고 나오는데 백운이 문까지 전송을 나와서 대사를 부축하여 계단을 내려오면서 말했다.
“조심하셔서 넘어지지 마십시오.”
대사가 말했다.
“홀연히 미끄러지면 어찌하겠소.”
“다시는 부축하지 않겠습니다.”
대사가 웃으면서 물러갔다.

낙경洛京 남원南院 화상
어떤 이가 물었다.
“어떤 것이 법과 법이 나지 않는 것입니까?”
대사가 말했다.
“나왔다.”

어떤 선비가 고금의 서적을 두루 보아서 사람들이 장백회張百會라 하였는데, 어느 날 그가 대사를 찾아뵈니, 대사가 말했다.
“장백회가 아니시오?”
“그렇다 하기에 외람됩니다.”
대사가 손으로 허공에다 한 획을 긋고 말했다.
“알겠는가?”
“모르겠습니다.”
“한 자도 모르면서 어찌 백 가지를 아는 백회百會라 불리우는가?”

월주越州 동암洞巖 가휴可休 선사
어떤 이가 물었다.
“어떤 것이 동암洞巖의 바른 주인입니까?”
“열어라.”
“어떤 것이 화상께서 친절하게 사람을 위하시는 곳입니까?”
“바다는 송장을 묶어 두지 않는다.”
“어떤 것이 위로 향하는 외길입니까?”
대사가 옷을 들어 보였다.
“학인이 멀리 왔으니, 스님께서 방편을 베풀어 주십시오.”
“방편이 끝났다.”

정주定州 법해원法海院 행주行周 선사
어떤 이가 물었다.
“바람이 그치고 물결이 고요할 때엔 어떠합니까?”
“남쪽 담을 불어서 쓰러뜨린다.”
“어떤 것이 도중의 보배입니까?”
“광채를 드러내지 않는 것이다.”
“그것뿐이지 않습니까?”
“그러면 드러난 것이다.”


항주杭州 용정龍井 통通 선사
처서處棲 상좌가 물었다.
“어떤 것이 용정龍井의 용입니까?”
의기意氣가 타고난 그대로와는 다르니 신필神筆도 쓰지 못한다.”
“어째서 그리지 못합니까?”
“무리에서 뛰어났으되 뿔이 없으며, 같은 무리 가운데서도 같지 않으니라.”
“그렇다면 비를 뿌릴 줄 압니까?”
“끝없는 세계에 두루 뿌리니, 곳곳에 모두 물방울이 맺힌다.”
“종문 안의 일도 있겠습니까?”
“있다.”
“어떤 것이 종문 안의 일입니까?”
“원래는 형상을 가릴 것 없으나 사물에 응하는 데는 손색이 없느니라.”
“어떤 것이 취모검吹毛劍입니까?”
“저 송장을 끌어내라.”

장주漳州 보복원保福院 종전從展 선사
그는 복주福州 사람이니, 성은 진陳씨이다. 15세에 설봉을 예참하고 그에게서 수업을 받다가, 18세에 고향의 대중사大中寺에서 구족계를 받았다. 그리고는 오초吳楚 사이를 유행하다가 나중에 돌아와서 시봉을 하는데, 어느 날 설봉이 불러 놓고 물었다.
“알겠는가?”
대사가 가까이 가려 하니, 설봉이 주장자로 밀어냈다. 대사가 당장 깨달아 절을 하고 물러갔다.
또 항상 고금의 방편을 들어 장경長慶 혜릉慧稜 화상에게 물으니 장경이 퍽 갸륵히 여겼다. 어느 때 장경 화상이 말했다.
“차라리 나한에게 3독毒이 있다고 할지언정 여래에게 두 말이 있다고 말하지 말라. 이는 여래가 아주 말이 없다는 것이 아니라, 다만 여래는 두 가지 말을 않는다는 것이다.”
이에 대사가 말했다.
“어떤 것이 여래의 말입니까?”
“귀머거리가 어찌 들을 수 있으랴.”
“화상께서 두 번째 것을 말씀하시는 줄은 짐작했습니다.”
장경이 도리어 물었다.
“어떤 것이 여래의 말인가?”
대사가 대답했다.
“차나 마시지요.”[운거雲居 석錫이 말하되 “어떤 곳이 장경長慶을 향하는 두 번째 길<第二頭道處>인가’ 하였다.]

반산盤山이 말하기를 “광명과 경계가 모두 없어지면 어떤 물건인가?” 하니, 동산洞山이 말하기를 “광명과 경계가 없어지기 전에는 어떤 물건인가?” 한 일을 대사가 들어 말했다.
“이 두 존숙尊宿의 말에 의하건대 분별하는 생각도 없어지지 못했다.”
그리고는 장경에게 물었다.
“지금 어떻게 말해야 아주 없애겠습니까?”
장경이 잠자코 있으니, 대사가 말했다.
“화상께서 귀신 굴속에 들어가 살림을 하시는 줄은 짐작했었습니다.”
장경이 도리어 물었다.
“어떠한가?”
“두 손으로 보습을 잡으니 물이 무릎을 지납니다.”

어느 날 장경이 물었다.
“경계[色]를 보면 마음을 본다 했는데, 그렇다면 저 뱃사공[船子]이 보이는가?”
“보입니다.”
“뱃사공은 그만두고, 어떤 것이 마음인가?”
대사가 뱃사공을 가리켰다.[귀종歸宗 유柔가 말하기를 “화상은 다만 남에게 물을 줄만 아시는군요”라고 하였다.]

설봉이 대중에게 말했다.
“여러 상좌上座들이여, 망주정望州亭에 가서도 상좌들을 만났고, 오석령吳石嶺에 가서도 상좌들을 만났고, 큰방에서도 상좌를 만났다.”
대사가 아호鵝湖에게 이 이야기를 들어 물었다.
“큰방 앞에서 만난 것은 그만두고, 망주정과 오석령에 어디서 만났습니까?”
아호가 지척거리면서 방장으로 들어가니, 대사도 큰방으로 돌아갔다.[동선東禪 제齊가 말하되 “이 두 존숙이 만난 자리에는 서로 본 것인가, 보지 못한 것인가? 판단해 보라” 하였다.]

양梁의 정명貞明 4년 정축丁丑에 장주漳州 자사刺史 왕공王公이 대사의 도덕을 흠모하여 보복선원保福禪苑을 짓고 대사를 맞이하여 머물게 하였다. 개당開堂하는 날에 왕공이 꿇어 앉아 세 번 절하고, 몸소 대사를 부축하여 법당에 오르게 하니, 대사가 말했다.
“웃음거리를 일으켜서 무엇 하리오? 그러나 두세 번은 용서하지 않으리라. 여러분, 알겠는가? 만일 안다면 바로 옛 부처님과 어깨를 나란히 견주게 된다.”
이때에 어떤 스님이 나와서 절을 하려는데 대사가 말했다.
“날씨가 좋으니 떠나지 말고, 비가 오거든 머리를 감어라.”
그제야 그 스님이 물었다.
“군수께서 불법을 숭상하여 절을 짓고 도풍을 크게 떨치게 하시니, 화상께서 으뜸가는 가르침을 제창해 주십시오.”
대사가 대답했다.
“알겠는가?”
“그러시면 중생들이 믿을 곳이 있겠습니다.”
“그 더러운 것을 남에게 칠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
스님이 나와서 절을 하니, 대사가 말했다.
“대덕은 그렇게 하는 것이 좋겠으나 뱃사공을 넘어뜨리지 말라.”
“온통 잠자코 있을 때는 무엇으로 법칙을 삼습니까?”
“허물이 어디에 있는가?”
“모르겠습니다.”
“조는 놈아, 나가라.”

대사가 어떤 스님을 보자 주장자로 돌기둥을 때리고 또 그 스님의 머리를 때리니, 그 스님이 소리를 질렀다. 이에 대사가 말했다.
“저것은 왜 아픈 줄을 모르는가?”
스님이 대답이 없었다.[현각玄覺이 대신 말하되 “주장자 놀리기를 퍽 좋아하시는군요” 하였다.]

어떤 이가 물었다.
“마등摩騰 중국으로 처음 오신 스님이다.
이 한漢에 왔을 때에는 하나의 장경藏經이 분명하였지만, 달마가 서쪽에서 왔을 때에는 무엇으로 보여 주었습니까?”
“상좌가 행각한 일이 무엇인가?”
“모르겠습니다.”
“모르거든 알도록 할지언정 옆집에 가서 남의 처분을 잊지는 말라. 만일 오랫동안 총림에 있으면서 거칠지만 알아서 거리가 비슷하게 된 이는 간 곳마다에서 참될 수 있겠지만, 만일 처음으로 마음을 낸 후학後學이면 차례도 모른다. 그 까닭에 산승山僧이 구업口業을 아끼지 않고 그대들에게 말하기를 ‘티끌같이 많은 겁의 일이 지금 그대로 있다’ 하노니, 알겠는가? 그러나 불법을 국왕․대신․군수에게 부촉하였다. 옛날 부처님의 회상에서와 같이 지금도 그러하다. 만일 복록과 영화로 말하면 말하지 않겠거니와 당시에 부처님의 부촉을 받는 일을 기억하는가? 만일 안다면 천 성인과 어깨를 나란히 하거니와 혹시 알지 못한다면 이 일은 남에게서 얻는 것이 아니며, 자기도 아니라는 것을 절실히 믿어야 한다. 말이 많으면 도道와는 더욱 멀어지고, 바로 언어의 길이 끊기고, 마음이 움직일 곳이 없어졌다 하여도 옳지는 않다. 너무 오래 섰었다. 진중珍重하라.”

다른 날 상당하여 대중이 운집하니, 대사가 말했다.
“어떤 사람이 불전佛殿 뒤를 지날 때는 그가 장삼이사張三李四로 보이는데 불전 앞을 지날 때에는 어째서 보지 못했겠는가 말해 보라. 불법의 이해가 어디에 있는가?”
어떤 스님이 말했다.
“한 분分의 소홀한 곳이 있기 때문에 보지 못합니다.”
대사가 꾸짖고, 스스로가 대신 대답했다.
“불전이라면 보지 못한다.”
“불전이 아니라면 보았겠습니까?”
“불전이 아닌데 무엇을 보겠는가?”
“12시時 가운데서 어떻게 징험을 잡으리까?”
“징험을 해 보는 것이 좋겠다.”
“학인은 어째서 보지 못합니까?”
“다시 눈을 비비지 말라.”
“주인과 동반同伴이 겹겹하여 시방十方의 끝까지 일제히 외친다 하니, 어떤 것이 시방의 끝까지 일제히 외치는 것입니까?”
“그대는 왜 딴 사람을 시켜서 묻지 않는가?”
“말에 의하여 뜻을 알 때면 어떠합니까?”
“어떤 말에 의했는가?”
스님이 머리를 숙이고 잠자코 있으니, 대사가 말했다.
“번개 치는 듯한 근기가 공연히 깊이 생각을 하는구나.”
“무위無爲의 바다에 들고자하면 모름지기 반야선般若船을 타야 한다 하니, 어떤 것이 반야선입니까?”
“청해 보라.”
“이렇게 나아갈 때에는 어떠합니까?”
“역시 열반당 안에 있는 놈이구나.”

대사가 스님이 밥 먹는 것을 보고 발우를 들면서 말했다.
“예삿일이다.”
스님이 말했다.
“화상은 무슨 심보입니까?”

어떤 비구니가 와서 뵈니, 대사가 말했다.
“누군가?”
시자가 대답하되 “각사고覺師姑 수도하는 비구니를 가리키는 말이다.
입니다” 하니, 대사가 말했다.
“이미 각사고라면 여기에는 무엇 하러 왔는가?”
비구니가 말했다.
“인의仁義의 도리에는 없을 수 없습니다.”
대사가 스스로 대신 대답했다.
“화상은 무슨 마음이십니까?”[현각玄覺은 “법안法眼이 스님이 흙을 져 나르는 것을 보고 흙 한 덩어리를 짐에다 보태면서 말하기를 ‘내가 그대를 도와 주리라’ 하니, 스님이 말하기를 ‘화상의 자비에 감사합니다’ 하였는데 이에 법안이 긍정하지 않았다. 이에 한 스님이 따로 말하기를 ‘화상은 무슨 마음씨이십니까?’ 하니, 법안이 그만두었다” 하는 말을 들어 물었다. “이 두 가지 이야기에 말이 같은가? 딴 도리가 있는가? 어디가 마음씨라 할 곳인가?” 하였다.]

민수閩帥가 사자를 보내 주기(朱記:붉은 도장)를 전해 오니, 대사가 상당하여 말했다.
“떠나면 도장 문채가 머무르고, 머무르면 도장 문채가 없어진다.”
어떤 스님이 말했다.
“떠나지도 머물지도 않거늘 도장 문채는 무엇 하겠습니까?”
가면 도장 문채가 머물고, 머무르면 도장 문채가 깨진다. 만일 가지도 머물지도 않는다면, 도장 문채를 찍는 것이 옳은가, 찍지 않는 것이 옳은가. 대중들 중에서 말할 수 있는 자가 있는가?”
가면 심인이 머물겠지만, 머물면 심인이 파괴되리라. 다만 가지도 않고 머물지도 않는다면, 인印을 쳐야 옳은가, 치지 말아야 옳은가

대사가 때리니, 스님이 말했다.
“그러면 산 속에 귀신굴이 완전히 오늘을 인하였겠습니다.”
대사가 잠자코 있을 뿐이었다.[현각玄覺이 말하되 “어디가 산 속의 귀신굴인가? 총림에서는 말하기를 ‘가지도 오지도 않는 자리에 머문다’는 것이 곧 산 속의 귀신굴이다. 그 까닭에 타파하였다 하는데 그러한 분별이 바로 귀신굴이다. 말해 보라. 보복이 그를 때린 뜻이 무엇인가?” 하였다.]

대사가 어떤 스님에게 물었다.
“어디서 왔는가?”
“강서江西에서 왔습니다.”
“배운 것이 무엇인가?”
“드러낼 수 없습니다.”
“왜 그런가?”[법안法眼이 따로 말하되 “부질없는 말이다” 하였다.]
스님이 대답이 없었다.

대사가 동산洞山의 진찬眞讚을 들어 말하였다.
“한갓 종이와 먹을 보면 산중山中 사람이 아니다.”
이에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산중 사람입니까?”
“그대가 그려 보라.”
“총명한 아이가 아니었더라면 그럴 뻔했습니다.”
“그대는 총명한 아이이다.”
“화상은 무슨 마음씨이십니까?”
“오는 말[言]이 풍부하지 않구나.”

대사가 어떤 스님이 돈 세는 것을 보고 손을 벌리면서 한 푼 달라 하니, 그 스님이 말했다.
“화상은 어째서 그런 지경에 이르셨습니까?”
“나는 이런 지경에 이르렀다.”
“그런 지경에 이르렀거든 한 푼 가져가십시오.”
“그대는 왜 이런 지경에 이르렀는가?”

대사가 어떤 스님에게 물었다.
“어디서 왔는가?”
“강서江西의 관음원觀音院에서 왔습니다.”
“그러면 관음을 뵈었는가?”
“보았습니다.”
“왼쪽으로 보았는가, 오른쪽으로 보았는가?”
“볼 때에 좌우를 거치지 않았습니다.”[법안法眼이 따로 말하되 “화상이 보시는 것 같습니다” 하였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불에 들어가도 타지 않고, 물에 들어가도 빠지지 않는 것입니까?”
“물과 불이라면 벌써 빠짐과 태움을 당했다.”

대사가 반두飯頭에게 물었다.
“가마솥의 넓이가 얼마나 되는가?”
“화상께서 재어 보십시오.”
대사가 손으로 재는 시늉을 하니, 그가 말했다.
“화상은 저를 속이지 마십시오.”
“그대가 도리어 나를 속이는구나.”

어떤 스님이 물었다.
“위없는 길을 통달코자 하면 마땅히 본원本源을 알아야 한다 하니, 어떤 것이 본원입니까?”
대사가 한참 있다가 불쑥 시자에게 물었다.
“아까 그 스님이 무엇을 물었는가?”
그 스님이 다시 물으니, 대사가 할喝을 하면서 말했다.
“나는 귀머거리가 아니다.”
“학인이 요사이 총림에 들어 왔으니, 스님께서 깨달아 들어갈 길을 완전하게 지시해 주십시오.”
“만일 완전히 지시한다면 내가 도리어 그대에게 절을 하리라.”

대사가 어떤 스님을 보고 말했다.
“그대는 무슨 업을 지었기에 그렇게 키가 큰가?”
“화상은 얼마나 짧습니까?”
대사가 몸을 움츠리고 짧은 시늉을 하니, 스님이 말했다.
“화상은 사람을 속이지 않는 것이 좋겠습니다.”

대사가 시자를 시켜 융수隆壽 장로를 청하면서 말했다.
“꼭 혼자서 오시오. 시자를 데리고 오지 마십시오.”
융수가 대답했다.
“데리고 오지 말라 한다면 어찌 여읠 줄 알리오.”
“퍽이나 인자하시군요.”
융수가 대답이 없으니, 대사 스스로가 대신 대답했다.
“화상의 상족上足께서 전하여 보여 주신 일을 다시 감사합니다.”

대사가 보복원에 머무른 지 1기(紀:20년)가 되자, 학자들이 항상 7백 명에서 줄지 않았고, 근기에 따라 지도하여 중생을 이롭게 하던 일은 이루 다 기록할 수 없었다. 이에 민수閩帥가 존중히 여기어 황제께 아뢰어 명복(命服:관복)을 하사했다.
당唐의 천성天成 3년, 무자戊子에 경미한 병이 났는데 어떤 스님이 방장에 들어 와서 문안을 하니, 대사가 말했다.
“내가 그대를 안 지 여러 해가 되었는데 어떤 방법으로 나를 구제해 주려는가?”
스님이 말했다.
“방법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듣건대 화상께서는 입 조심을 할 줄 모르신다더군요.”[법등法燈이 따로 말하되 “화상은 입 조심을 하실 줄 아십니까?” 하였다.]
또 대중에게 말했다.
“내가 10여 일 동안 기력이 없어 곤한 것은 딴 일이 없다. 단지 때가 왔을 뿐이다.”
어떤 스님이 물었다.
“때가 왔다면 스님께서 가시는 것이 옳습니까, 머무시는 것이 옳습니까?”
“길[道]이니라.”
“그러면 저는 감히 경솔히 굴지 못하겠습니다.”
“돈 잃고 벌 받는구나.”
말을 마치자 가부좌를 맺고 앉아서 입적하니, 그날은 3월 21일이었다.

천주泉州 수룡산睡龍山 도부道溥 대사
호는 홍교弘敎 대사이다. 그는 복주福州 복당福唐 사람이며, 성은 정鄭씨이다. 보림원寶林院에서 업을 닦다가 설봉에게서 마음을 깨친 뒤에 오봉五峰에 살았다.
상당上堂하여 이렇게 말했다.
“공산空山에 대꾸하는 이가 없다고 말하지 말라.”
그리고는 방장으로 돌아갔다.
어떤 스님이 물었다.
“온갖 언구言句는 대천大千세계의 꼭대기를 벗어나지 않는다 하니, 꼭대기 밖의 일은 어떠합니까?”
대사가 대답했다.
“온갖 언구는 대천세계의 꼭대기가 아니니라.”
“어떤 것이 대천세계의 꼭대기입니까?”
“마혜수라천摩醯首羅天도 역시 소천小千세계이니라.”
“학인이 처음으로 총림에 들어 왔으니, 방편문方便門 가운데서 스님의 지시를 구합니다.”
대사가 문턱을 두드리니, 그 스님이 말했다.
“위로 향하는 길에도 일이 있습니까?”
“있다.”
“어떤 것이 위로 향하는 일입니까?”
대사가 다시 문턱을 두드렸다.

항주杭州 용흥龍興 종정宗靖 선사
그는 태주台州 사람이다. 처음에 설봉에게 참문하여 비밀히 인가를 받은 뒤에 자진해서 반두飯頭의 소임을 맡아 10여 년 동안을 수고하였다.
일찍이 큰방에서 바짓가랑이 하나를 걷어 올리고 발[簾]을 치는데 설봉이 보고 예언하였다. 
“그대가 뒷날에 주지가 되면 스님이 천 명이 있겠으나, 그 가운데 납자는 하나도 없으리라.”
대사가 허물을 뉘우치고 고향으로 돌아와서 육통원六通院에 살았다. 이어 전왕錢王이 용흥사龍興寺에 살라 하니, 무리가 천 명이 넘었으나 오직 3학學을 외우기만 하는 무리일 뿐이어서, 설봉의 예언이 들어맞았다.
주周의 광순廣順 초에 81세가 되었는데 전왕이 그 절의 대전大殿에서 위없는 법을 연설해 주기를 청하니, 승속이 모여왔다. 이에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육통六通의 독특한 말씀[唱]입니까?”
“온 천하가 벌써 이야기했다.”
“어떤 것이 육통의 가풍입니까?”
“한 벌의 베 누더기가 한 근 남짓하니라.”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학인이 전진할 외길입니까?”
“누가 감히 그대를 속이겠는가?”
“어찌 방편이 없겠습니까?”
“벌써 굴복한 것이니라.”
“어떤 것이 화상의 가풍입니까?”
“새벽에는 죽이요, 낮에는 밥이니라.”
“화상께서 더 말씀해 주십시오.”
“나는 곤하다.”
“끝내 어떠합니까?”
대사가 껄껄 웃기만 하였다. 
전왕이 더욱 존중히 여겨 자주 고을로 모셔 들이고, 처음으로 주지하던 절 이름을 따서 육통六通 대사라 불렀다.
현덕顯德 원년 갑인甲寅의 늦겨울에 입멸하니, 수명은 84세요, 탑을 대자산大慈山에 세웠다.

복주福州 남선南禪 계번契璠 선사
상당하여 이렇게 말했다.
“유명한 말이나 매우 뛰어난 글귀 같은 것이라면 이미 사방에 널리 알려졌다. 오늘 대중 가운데 제1의第一義를 초월하여 한마디 할 이가 있는가? 있다면 사람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것이로다.”
이때에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제1의입니까?”
“왜 제1의를 묻지 않는가?”
“지금 물었습니다.”
“벌써 제2의에 떨어졌다.”
“옛 부처님의 곡조를 스님께서 화답해 주십시오.”
“나는 그대의 어지러운 소리에 화답하지 않겠다.”
“그러면 누구를 위해 화답하시겠습니다.”
“어디를 갔다 왔는가?”

월주越州 제기현諸曁縣 사내師鼐 선사
호는 감진鑒眞이다. 처음에 설봉께 참문하였다가 허탕을 쳤고, 나중에 민왕閩王의 청을 받아 청풍루淸風樓에서 공양을 받다가 오래 앉았던 끝에 눈길을 번쩍 들어 햇빛을 보고 홀연히 깨닫고 게송을 읊었다.

청풍루에서 관원의 공양을 받다가
평생의 안목이 환연히 열리고야
보통普通 양무제 때 연호이니, 달마 대사가 온 일을 말한다.
때의 멀고 먼 일이
총령蔥嶺을 거쳐서 온 것이 아닌 줄 알았네.
淸風樓上赴官齋  此日平生眼豁開
方知普通年遠事  不從蔥嶺路將來

돌아와서 설봉에게 바치니, 설봉이 옳다고 긍정했다.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부처의 몸입니까?”
“그대는 어느 부처님의 몸을 물었는가?”
“석가부처님의 몸을 물었습니다.”
“혀가 삼천대천세계를 덮었다.”
대사가 임종할 때에 대중이 모이니, 게송 하나를 보여 주었다.

눈의 광채는 빛을 따라 다했고
귀의 의식은 소리를 쫓아 사라졌네.
근원에 돌아오는 것 별 뜻이 아니니
오늘과 또는 내일 아침이니라.
眼光隨色盡    耳識逐聲消
還源無別旨    今日與明朝

게송을 마치자 가부좌를 맺고 앉아서 입멸하였다.

남악南嶽 금륜金輪 가관可觀 선사
그는 복주福州의 보당保唐 사람이니, 성은 소蘇씨이다. 석불사石佛寺의 제합齊合 선사에 의해 머리를 깎았다. 지계바라밀[戒度]을 원만히 닦은 뒤에 곧바로 설봉雪峰에게 참문하니, 설봉이 말했다.
“가까이 오라.”
대사가 가까이 가서 막 절을 하려는데 설봉이 발을 들어 밟으니, 대사가 홀연히 깨달았다. 이때부터 12년 동안 스승으로 섬겼는데, 다시 총림으로 두루 다니다가 남악의 법륜봉法輪峰에 가서 머물렀다.
대사가 상당하여 대중에게 말했다.
“내가 설봉에 있을 때에 그에게 한 차례 밟히고 아직까지 눈을 뜨지 못하니, 이 무슨 경계인가?”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대사가 대답했다.
“옳지 않다.”

대중이 야참夜參을 밤에 법문을 청하는 일을 말한다.
 마치고 법당에서 내려오는데 대사가 “대중들아” 하고 불러 대중이 고개를 돌리니, 대사가 말했다.
“달을 좀 봐라.”
대중이 달을 쳐다보니, 대사가 말했다.
“달은 만궁彎弓과 같은데, 비는 적고 바람은 많다.”
대중이 대답이 없었다.

어떤 이가 물었다.
“옛사람이 말하기를 ‘비로자나불도 스승이 있고 법신도 주인이 있다’는데 어떤 것이 비로자나의 스승이며, 법신의 주인입니까?”
“평상 위에다 또 평상을 포개지 말라.”
“어떤 것이 일용日用의 일입니까?”
대사가 손뼉을 세 번 치니, 스님이 말했다.
“학인이 잘 모르겠습니다.”
“다시 무엇을 기다리는가?”
“위로부터의 종승宗乘을 어떻게 남에게 전합니까?”
“나는 오늘 차를 마셨다.”
“스님께서 지시해 주십시오.”
“지나쳤구나.”
“바른 것은 묻지 않습니다. 스님께서 겉으로 지시하는 것을 보여 주십시오.”
“고양이나 안아라.”

대사가 어떤 스님에게 물었다.
“어디서 왔는가?”
“화광華光에서 왔습니다.”
대사가 곧 밀어내고 문을 닫으니, 스님은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어떤 이가 물었다.
“길에서 도를 아는 이를 만나 말은 묵묵한데 대답하지 않는다 하니, 어떤 것으로 대답합니까?”
“애석하구나. 나가라.”
대사가 스님에게 물었다.
“어떤 것이 빤히 마주 보는 일인가?”
“스님께서 살펴 주십시오.”
“그렇게 말하면 맞겠는가?”
“거짓으로 하면 맞지 않겠습니다.”
“또 다른 한 가지 집착이구나.”
“어떤 것이 영원靈源의 외길입니까?”
“딛고 지나가서 무엇 하려는가?”

설봉의 원주院主가 서신을 보내 대사를 청하되 “산두(山頭:설봉) 화상이 나이가 많으신데 장로는 왜 산으로 들어와서 전법을 하시지 않습니까?” 하니, 대사가 답서를 보냈다.
“산두 화상이 딴 견해가 생기면 산으로 들어가겠다.”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설봉의 견해입니까?”
대사가 대답했다.
“나는 놀랐다.”

천주泉州 복청원福淸院 현눌玄訥 선사
그는 고려高麗 사람이다. 처음에 복청도량에서 상골象骨의 법등을 전하니, 학자들이 사모하고 모여들었다.
천주 군수 왕공王公이 물었다.
“어떤 것이 종승 안의 일입니까?”
대사가 꾸짖으니, 스님이 또 물었다.
“어떤 것이 눈에 띄는 보리菩提입니까?”
“그대는 반년 동안의 양식을 잃었다.”
“어째서 반년 동안의 양식을 잃었다 합니까?”
“남의 한 말 쌀을 탐냈기 때문이다.”
“어떤 것이 청정법신淸淨法身입니까?”
“청개구리와 지렁이니라.”
“오직 하나인 굳고 비밀한 몸이 온갖 티끌 속에 나타난다 하니, 어떤 것이 굳고 비밀한 몸입니까?”
“당나귀와 고양이니라.”
“스님께서 지시해 주십시오.”
“당나귀도 모르는가?”
“어떤 것이 물물物物 위에서 밝히는 것입니까?”
대사가 한 발을 뻗어 보였다.
대사가 복청원福淸院에 있었던 20년 동안에 현묘한 도풍을 크게 떨치다가 본산에서 임종했다.

소주韶州 운문산雲門山 문언文偃 선사
그는 고소姑蘇의 가흥嘉興 사람이니, 성은 장張씨이다. 처음에는 목주睦州의 진陳 존숙尊宿에게 참학하여 대지大旨를 발명했고, 나중에 설봉에게 가서 현요玄要를 더욱 연마하였다.
이어 자취를 감추고 대중 속에 숨어 소주韶州의 영수靈樹 민敏 선사 법회에서 제1좌座의 자리에 앉았다. 민敏 선사가 열반에 들려 할 때에 광주廣主에게 글을 보내 대사로 하여금 뒤를 이어 주지를 하게 했으나, 대사는 근본을 잊지 않고 설봉을 스승으로 삼았다.
개당開堂하는 날에 광주가 몸소 나와서 물었다.
“제가 묻습니다.”
대사가 대답했다.
“눈앞에 딴 길이 없다.”[법안法眼이 말하되 “남에게 이로움이 없게 할 수 없다” 하였다.]
또 대사가 말했다.
“오늘 여러분을 속인다 하지 말라. 어쩔 수 없어서 여러분들 앞에서 한바탕 북새를 떨었지만, 홀연히 눈 밝은 사람을 만나면 한바탕 웃음거리라고 하리라. 그러나 지금 피할 수도 없다. 그대들에게 묻노니 위로부터 어떤 일이 있었으며, 무엇이 부족했는가? 그대들에게 일이 없다 하여도 속이는 것이니, 모름지기 그러한 경지에 이르러야 한다. 또 입을 따라 어지러이 묻지도 말라. 자기의 마음이 캄캄하다가는 내일 아침이나 뒷날에 큰 일이 날 것이다. 만일 그대들이 근성根性이 둔한 무리라면 옛사람이 교화를 펴든 문호에 가서 동쪽과 서쪽을 둘러보면서 이것이 무슨 도리인가를 살펴라. 그대들이 알고자 하는가? 모두가 그대들 스스로 한량없는 겁으로부터 망상이 두터운 인연으로 해서 잠시 남의 말을 들으면 선뜻 의심을 낸다. 부처를 묻고, 조사를 묻고, 위로 향함과 아래로 향함을 물어서 알음알이를 구하면 더욱 교섭할 길이 없다. 마음으로 망설여도 어긋나거늘 하물며 말이 있을 수 있으랴. 마음으로 망설이지 않음이 옳지 않겠는가. 다시 무슨 도리가 있으랴. 안녕[珍重].”
대사가 또 상당上堂하여 말했다.
“내가 어쩔 수 없어서 여러분에게 말하기를 ‘당장에 일이 없이 하라’ 했지만 벌써 그대들을 묻어 버린[埋沒] 것이다. 그대들이 다시 앞으로 나아가려 하여 앞을 향해 말을 찾고 구절을 좇아 알음알이를 구하고, 천 가지 만 가지로 온갖 질문을 하여 다만 한바탕의 말 재주만을 괴롭힐 뿐이다. 도와는 더욱 멀어지니, 언제 쉴 시기가 있으랴. 이 일이 만일 언어 위에 있다면 3승과 12분교는 언어가 없지 않거늘 어찌하여 교리 이외에 따로 전한다 하리오. 만일 배워서 아는 지혜로 얻는다면 10지地 성인의 설법이 빗발 같고 구름 같아도 꾸지람을 받되 ‘성품을 보아도 얇은 비단이 막힌 것 같다’ 하는가. 이것으로 미루어 알건대 온갖 마음이 있는 이는 하늘과 땅의 차이가 있도다. 그러나 얻은 사람일 것 같으면 불을 이야기하여도 타지 않는다. 입이 종일토록 일을 말하여도 일찍이 입술이나 이에 걸지 않았고, 한 글자에도 집착하여 말하지 않았으며, 종일토록 옷을 입고 밥을 먹어도 한 알의 쌀에 닿거나 한 올의 실에 걸리지도 않는다. 아무리 이와 같다 하여도 역시 문밖과 뜰 가의 일이다. 얻으려면 실제로 얻어야 하나니, 그렇게 하여야 옳다. 만일 납승衲僧 문하의 일로써 말한다면 어구 속에 근기를 드러내어도 공연히 깊이 생각하고, 설사 한 구절 끝에 알아들어도 역시 낮잠을 자는 놈이다.”
대사가 또 말했다.
“3승 12분교에서 이리저리 말하고, 천하의 노화상이 가로 세로 설법을 하였으니, 나에게서 바늘 끝과 칼끝을 뽑아내는 도리를 말해 보라. 이렇게 말하더라도 벌써 죽은 말[馬]을 치료하는 짓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몇 사람쯤은 이러한 경계에 이르렀다. 감히 그대들에게서 말 속에 메아리가 숨었고, 구절 속에 말끝이 있으리라고는 바라지 않는다. 눈을 깜박하면 천 리의 차이가 생기고, 바람이 쉬면 물결도 고요해진다. 복유상향伏惟尙饗. 잘 있어라.”
대사가 상당하여 말했다.
“여러분은 모두가 제방으로 다니면서 선지식께 참문하여 생사를 결택했으니, 도처의 선지식께서 드리우신 방편이 없겠는가. 혹시 깨치지 못한 구절이 있던가? 나와서 이야기해 보라. 나와 여러분이 함께 헤아려 보자.”
이때에 어떤 스님이 나와서 절을 하고 말을 하려는데 대사가 말했다.
“가거라. 서천西天의 길은 멀고 멀어서 10만여 리나 된다.”
“학인이 애써서 헤아릴 일이 무엇입니까?”
“대중이 너무 오래 서 있다.”
대사가 또 말하겠다.
“한 가지 법칙을 말해서 그대들로 하여금 당장에 이해하게 하여도 벌써 그대들의 머리 위에다 똥물을 뿌린 것이요, 설사 한 터럭을 들어 온 누리를 일신에 밝힌다 하여도 역시 살을 저며서 종기를 만드는 것이다. 비록 그러하나 그대들은 착실히 그러한 경지에 이르러야 한다. 만일 간절하지 않으면 빼앗아 얻지 못할 것이며, 도리어 뒤로 물러나 자기의 말밑에서 이게 무슨 도리인가 자세히 살펴야 한다. 진실로 털끝만큼도 그대들을 알게 하는 것도 없고, 그대들을 의심케 하는 것도 없다. 그대들은 제각기 자기의 큰 일이 앞에 나타나서 그대들을 한 털끝만큼도 번거롭게 하지 않고 그대로 불조佛祖와 조금도 다름이 없거늘 그대들 스스로의 믿음이 얇고 악업이 두터워서 돌연히 허다한 두각頭角을 일으켜 발우를 짊어지고 천리만리에 다니면서 헛된 수고를 하였지만 그대들에게 무엇이 부족한가? 대장부라면 누구에겐들 자격이 없으랴. 눈에 띄는 대로 알아차려도 옳지 않으니, 남의 속임수나 남의 처분을 받지 말라. 잠시 노화상들이 입을 움직이는 것을 보면 얼른 좋아하여 돌을 갖다가 입을 콱 막는다. 이는 곧 똥 위의 똥파리가 앞을 다투어 빨아먹는 것 같아서 삼삼오오 짝을 지어 머리를 모으고 헤아리니, 여러분들을 괴롭힐 뿐이다. 고덕들이 한 때, 여러 사람들을 어쩔 수 없어서 방편으로 한 마디나 만 구절을 드리워 그대들의 들어갈 길을 틔워 주었으니, 그런 일은 한쪽에 던져두고, 혼자서 약간의 애라도 쓴다면 어찌 조금 가까워질 곳이 있지 않겠는가. 힘써라, 힘써라. 시간은 사람을 기다리지 않고, 나간 호흡은 들어올 보장이 없다. 다시 어디에다 몸과 마음의 정력을 쏟을 곳이 있으랴. 간절히 뜻에 새겨라. 잘 있어라.”
대사가 또 말했다.
“온 천지를 일시에 가져다가 그대들의 눈썹 위에 올려 논다 하여도 그대들이 이런 말을 듣고 뛰어나와서 성급히 늙은 나를 붙들고 한 주먹 때리기를 바라지 않고, 그저 느릿느릿 관찰하되 이것이 있음인가, 없음인가, 이게 무슨 도리인가 하라. 설사 그 속에서 밝힌다 하여도 진정한 납승衲僧의 문하에 가면 두 다리를 망치로 쪼개 주리라. 그대들이 만일 그럴듯한 사람이라면 어디엔가 노숙老宿이 나타났다는 말을 듣고는 낯을 붉히면서 내 얼굴에다 침을 뱉어도 좋다. 그대들이 만일 그렇지 못한 사람이어서 남의 말을 듣자 당장 알아듣는다 하여도 벌써 제2의 근기에 빠진다. 그대들은 덕산德山 화상이 스님이 오는 것을 보자 주장자로 때려 쫓았고, 목주睦州 화상은 스님이 들어오는 것을 보자 얼른 말하기를 ‘현전에 공안公案을 이루었으니, 그대에게 30방을 주리라’ 한 것을 보았다. 그 밖의 무리는 어찌해야 하겠는가? 만일 한결같이 허탕을 치는 놈이라면 남의 침방울이나 먹고, 한 무더기나 한 짐의 쓰레기를 안은 채 이리저리 다니면서 당나귀 주둥이나 말의 주둥이로 자랑하기를 ‘나는 물음[問]을 열 가지로 굴리고 다섯 가지로 굴릴 말을 안다’ 하는데, 설사 그대들이 아침에 묻고 저녁까지 겁을 다해 의론하더라도 그런 일을 꿈엔들 보겠는가. 어디가 사람에게 힘을 덜어 주는 곳인가. 그러한 이는 누군가가 납자들에게 공양시키는 자리에 가서 말하기를 ‘나도 밥을 얻어먹었으니, 함께 이야기할 무슨 일이 있으랴’ 하다가 다른 날 염라왕의 앞에서는 그대들이 알았던 것을 되찾지 못한다. 
형제들이여, 만일 얻었다면 그는 업에 따라 세월을 보내도 되지만 얻지 못한 이라면 절대로 쉽게 생각하면서 시간을 보내지 말라. 옛사람이 많은 갈등葛藤을 벌려 그대들을 위한 곳이 있으니, 설봉 화상이 말하기를 ‘온 땅덩이가 모두 그대이다’ 하였고, 협산夾山이 말하기를 ‘백 가지 풀 위에서 노승老僧의 뜻을 알아보아야 하고, 시끄러운 저자 속에서 천자를 알아보아야 한다’ 했고, 낙보樂普는 말하기를 ‘한 티끌을 잠시 들면 땅덩이가 온통 거두어지고, 한 터럭 끝에 사자의 전신全身이 있다’ 하였다. 그대들이 이것을 파악해서 엎치락뒤치락 깊이 생각하여 세월이 오래되면 자연히 깨달아 들어갈 길이 있으리라. 이 일은 아무도 그대를 대신할 이가 없으니 모두가 제마다의 분수에 있다. 노화상들이 세상에 나신 것은 오직 그대들을 증명하기 위함이니, 그대들이 조그마한 인연만이라도 있으면 그대들을 속이려 해도 되지 않으려니와 그대들이 실제로 얻지 못했다면 방편으로 그대들을 이끌어 줄 수도 없다.
그대들은 모두가 한결같이 짚신을 떨어뜨리면서 부모와 스승을 버리고 행각을 하였으니, 모름지기 비슷하게나마 정신을 차려야 한다. 진실로 들어갈 곳이 있는데 개․돼지를 물어뜯는 솜씨를 만나면 생명을 아끼지 않고 흙탕물 속에 뛰어들어 이끌어 주어 씹을 것이 있게 하려니, 눈을 부릅뜨고 발우 주머니를 높이 걸고 주장자를 꺾어 버리고 10년, 20년을 철저히 공부하면 이루지 못할 이 없으니 걱정하지 말라. 설사 금생에 깨치지 못할지라도 내생에는 인간의 몸을 잃지 않고 이 문중에 들어와서 힘을 덜어 평생의 서원을 저버리지 않고, 스승과 부모와 시방 시주들의 은혜를 저버리지 않으리니, 꼭 마음에 새겨 둬라. 공연히 고을과 고을 사이로 쏘다니거나 주장자를 비스듬히 메고 천 리나 2천 리를 다니면서 여기에서 여름을 지내고, 저기서 겨울을 묵어 좋은 산수에서 성품대로 즐기고 잿밥이 많은 곳에서 의발衣鉢을 얻기 쉽다 하지 말라. 괴로운 일이다. 
남의 쌀 한 알을 얻으려다 반년의 양식을 잃나니, 이런 행각이 무슨 이익이 있으랴. 신심 있는 단월이 채소와 쌀알을 가지고 온 것을 어떻게 소화하겠는가. 모름지기 스스로 살필 것이다. 시간은 사람을 기다리지 않는다. 홀연히 눈이 감기면 무엇으로 앞길을 대항하려 하는가. 마치 끓는 물에 넣은 게[蟹]처럼 손발을 허우적거리지는 말라. 그대가 허탕으로 큰 소리 할 곳이 없다. 등한히 세월을 보내지 말라. 한 번 사람의 몸을 잃으면 만 겁劫에 회복하지 못하나니, 적은 일이 아니다. 눈앞의 일에만 의존하지 말라. 속인들도 말하기를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 하였거늘 하물며 사문이 아침과 저녁마다 신을 신고 무엇을 하려는가. 힘껏 노력하라, 노력하라. 잘 있어라.
또 대사가 말했다.
“그대들은 할 수 없구나. 누군가가 조사의 뜻을 말하는 것을 들으며 얼른 부처와 조사를 초월하는 말을 묻는데 그대들은 무엇을 부처, 조사라 하기에 부처와 조사를 초월하는 도리를 말하는가? 또 삼계를 벗어나는 도리를 묻는데 그대들은 삼계를 가져와 보라. 어떤 것이 있어서 보고, 듣고, 깨닫고, 알고 하는 작용이 그대들을 막으며, 어떤 소리와 빛이 그대들과 상대함이 있는가? 또렷또렷한 저 차 종자가 어느 것이 들쑥날쑥한 견해를 이루는가? 옛 성현들이 어쩔 수 없어서 몸을 비껴[橫身] 중생을 위하여 말하기를 ‘모든 체體가 그대로가 참됨이요, 물건과 물건이 모두 본체를 볼 수 없다’ 하였거니와 나는 그대에게 말하노니, 당장에 무슨 일이 있는가? 벌써 그대들을 파묻어 버렸다. 실제로 들어간 곳이 없거든 조용한 때에 혼자서 살펴보라. 옷을 입고, 밥을 먹고, 똥․오줌을 누는 일을 제하고 다시 무슨 일이 있으랴. 까닭 없이 허다한 망상을 일으켜 무엇 하리오.
또 어떤 이들은 흡사 일 없는 사람같이 머리를 모으고 옛사람의 말이나 배워 알음알이로 기억해 두었다가 망상으로 헤아린 뒤에 내가 불법을 알았다 하면서 오로지 장단에 맞춰 부질없는 이야기나 하여 시간을 보내고, 다시 뜻에 맞지 않는다 하여 천리만리 부모와 스승과 화상을 버리고 떠나니, 그런 짓을 하면 그 들여우 같은 이에게 어떤 죽음이 있어 급한 행각이 있겠는가.”
대사가 상당上堂하여 말했다.
“시운이 얇아져서 상계像季에 이른 줄 알겠으니, 요사이의 스승들은 북쪽으로 가서 문수께 예배하고, 남쪽으로 가서 형악衡嶽을 돈다. 이렇게 행각하는 명자비구名字比丘는 헛되이 시주들의 공양만을 축낼 뿐이니, 애달프다. 물으면 칠통같이 깜깜하면서도 그저 장단에 맞추어 시간을 보낸다. 설사 두세 사람이 부질없이 많이 배워서 이야기들만 기억해 가지고 도처에서 비슷한 말로 노숙老宿들을 인가하던 말을 찾아 상류上流들을 업신여기면서 박복한 업을 지으니, 다른 날 염라대왕이 그들을 구속할 때에는 그들은 아무 말도 못한다. 만일 후학․조실이라면 모름지기 정신을 차려 부질없이 남의 말만을 기억하지 말라. 많은 허虛가 적은 실實만 못하나니, 뒷날에 스스로를 속일 뿐이다. 무슨 일이 있으랴. 가까이 오라.”
또 대사가 상당하여 대중이 모이니, 대사가 주장자로 앞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건곤과 땅덩이의 미진과 부처님들이 모두 여기서 불법을 다루면서 승부를 따르고 있다. 누가 이를 간하였는가? 아무도 간하는 이가 없다면 노승이 그대들을 대신해서 간하리라.”
이때에 어떤 스님이 나서서 말했다.
“화상께서 간해 주십시오.”
대사가 말했다.
“이 들여우야.”
또 대사가 말했다.
“그대들이 옆집으로 행각을 다닌 것이 모두가 하남河南이나 해북海北인데 모두가 살아가는 인연이 있는 곳이다. 알 수 있는 이는 나와서 말해 보라. 내가 증명해 주리라. 있는가, 있는가? 나오너라. 그대들이 모른다면 내가 그대들을 속이는 것이다. 그대들은 알고자 하는가? 인연이 북쪽에 있는 이는 북쪽에는 조주趙州 화상과 오대산五臺山의 문수가 모두 그쪽에 계시고, 남쪽에 인연이 있다면 남쪽에는 설봉雪峰․와룡臥龍․서당西堂․고산鼓山이 모두 거기에 있다. 그대들이 알기를 원하거든 그 속에서 알도록 하라. 만일 보지 못했더라면 허탕을 치지는 말라. 보았는가. 보았는가? 그럼 내가 불전佛殿을 타고 나가는 것을 보아라. 잘 있어라.”
또 대사가 상당하여 말했다.
“천친天親 보살菩薩이 까닭 없이 밤나무 지팡이 하나를 만들었구나.”
그리고 한 획을 죽 긋고 말했다.
“티끌같이 많은 세계의 부처님께서 모두 이 속에서 이리 저리 이야기를 하고 계시다.”
그리고는 법당에서 내려왔다.
또 대사가 말했다.
“내가 여러분들을 보건대 두세 가지 동기 안에서 이리 저리 얽지 못하고, 헛되이 법의만을 입었으니, 무슨 이익이 있으랴. 그대들은 알겠는가? 그대들을 위하여 주석을 내 주리라. 이 뒤에 제방으로 다니다가 어떤 노숙이 손가락 하나를 세우거나 불자 하나를 세우고, 이것이 선이다 하거나 이것이 도이다 하는 것을 보면 주장자로 머리를 때려 깨뜨리고 떠나라. 만일 그렇지 못하면 모두가 하늘 마魔의 권속들이 우리 조종을 파멸시키는 것이다. 그대들이 알지 못하겠거든 어지러운 이야기 속에서 살펴라. 내가 항상 그대들에게 말하기를 ‘미진과 국토와 3세의 부처님과 서천의 28조와 당토의 6조가 주장자 위에서 설법을 하고, 신통 변화를 부리니, 종횡으로 시방세계에 마음대로 퍼진다’ 했으니, 그대들은 알겠는가? 알지 못하겠거든 허탕을 치지도 말라. 그러나 실제에 의하건대 실제로 자세히 보았겠는가? 설사 그러한 경지에 이르렀더라도 꿈에도 스님이나 사미를 보지 못한다. 세 집 되는 시골에서 한 사람도 만나지 못하겠구나.”
대사가 벌떡 일어나서 주장자로 한 획을 긋고 말했다.
“모두가 이 속에 있다.”
또 한 획을 긋고 말했다.
“모두가 여기에서 나왔다. 잘 있어라.”
또 대사가 상당하여 말했다.
“화상들이여, 남자라면 모름지기 남자의 콧구멍을 알아야 한다. 그럼 어떤 것이 콧구멍인가?”
대중이 모두가 대답이 없으니, 대사가 말했다.
“마하반야바라밀다摩訶般若波羅蜜多로다. 오늘 큰 울력이 있으니 나가라.”
대사가 또 상당하여 말했다.
“화상들이여, 설사 그대들에게 무슨 일이 생겼다 하더라도 역시 머리 위에 머리를 붙이는 것이요, 눈 위에 서리를 더하는 것이요, 관 속에서 눈을 부릅뜨는 것이요, 뜸으로 생긴 종기에 쑥불을 켜는 것이다. 이러한 한바탕의 혼란은 작은 일이 아니다. 그대들은 어찌해야 하겠는가? 제각기 살아날 구멍을 찾는 것이 좋겠다.
부질없이 고을과 고을 사이로 헤매면서 셋이나 다섯씩 모여 지껄이고, 또 저것이 공재公才의 말이다, 저것이 진리에서 나왔다, 저것이 현실 위의 도이다, 저것이 본체의 말이다 하나니, 본체라 함은 그대들의 집 안에 있는 늙은 부모이다. 밥을 씹어 삼키고는 그저 꿈 이야기를 하되 내가 불법을 알았다 하는데 그래서야 그대들의 행각이 당나귀 해에나 쉴 자리를 얻으리라 생각된다.
또 어떤 이들은 누군가가 쉴 곳을 이야기하는 것을 들으면 곧 5음, 18계 속으로 들어가서 눈을 감거나 낡은 쥐구멍 속에서 살림을 하거나 검은 산 밑의 귀신 굴속에서 앉으려 하다가는 들어갈 머리를 찾았다 하나니 꿈엔들 보았으랴. 그런 이들은 만 명을 때려죽인들 무슨 허물이 있으랴. 밑에서부터 시작한다고 불리지만 작가作家를 만나지 못해서 끝끝내 허탕을 치니, 그대가 실제로 본 곳이 있다면 드러내어 보라. 그러나 함께 헤아리리라. 헛되어도 좋고 나쁨을 모르면서 우뚝우뚝 모여서 부질없는 이야기하나니, 내게 들켜 붙들려 와서 시험을 받은 뒤에 마지못해서 망치로 다리를 부러뜨리지 말라. 또 말하지 못한다 하지도 말라. 그대들의 가죽 밑에도 피가 있는가? 간 곳마다 굴욕을 당해 무엇 하려는가? 호종胡種을 멸망시킨 것은 모두가 들여우 떼인데 모두 여기에서 무엇을 하는가? 주장자로 한꺼번에 내쫓으라.”
어떤 이가 물었다.
“어떤 것이 불법의 대의입니까?”
대사가 대답했다.
“봄이 오면 풀이 제대로 푸르다.”

대사가 신라의 스님에게 물었다.
“무엇으로 바다를 건넜는가?”
“좀 도둑이 패망했습니다.”
대사가 손을 벌리면서 말했다.
“그대는 왜 여기에 있는가?”
“그럴듯합니다.”
“다시 팔딱팔딱 뛰는구나.”
“우두가 4조祖를 보기 전에는 어떠하였습니까?”
“집집마다 관세음觀世音이었느니라.”
“본 뒤에는 어떠하였습니까?”
“불 속의 달팽이가 큰 벌레를 삼킨다.”
“어떤 것이 운문雲門의 한 곡조입니까?”
“섣달 25일이니라.”
“어떤 것이 설령雪嶺에서 진흙소가 영각을 하는 것입니까?”
“천지가 캄캄하다.”
“어떤 것이 운문의 나무말이 우는 것입니까?”
“산과 강이 달린다.”
“위로부터 전해 오는 일을 스님께서 드러내 주십시오.”
“아침에는 동남을 보고 저녁에는 서북을 본다.”
“선뜻 그렇게 알아들을 때에는 어떠합니까?”
“동쪽 집에 등불을 켜니, 서쪽 집에서는 어두운 방에 앉았다.”
“12시時 동안에 어찌하여야 헛되이 보내지 않겠습니까?”
“어디에다 이런 질문을 하는가?”
“학인은 잘 모르겠으니, 스님께서 이야기해 주십시오.”
“벼루와 붓을 가지고 오라.”
종이와 붓과 벼루를 가지고 오니, 대사가 게송 하나를 지었다.

이야기해도 돌아보지 않으면
곧 어긋나고
망설이고 따지려 하면
어느 겁에 깨달으리오.
擧不顧    卽差互    
擬思量    何劫悟

“어떤 것이 학인의 자기自己입니까?”
“산을 거닐고 물을 구경하느니라.”
“어떤 것이 화상의 자기입니까?”
“유나維那가 없어 다행이다.”
“한 입에 몽땅 삼킬 때에는 어떠합니까?”
“내가 그대의 뱃속에 있다.”
“화상이 어째서 학인의 뱃속에 있습니까?”
“네 화두話頭를 돌려다오.”
“어떤 것이 도입니까?”
“가거라.”
“학인이 잘 모르겠으니, 스님께서 말씀해 주십시오.”
“사리여, 관가의 처사가 분명하거늘 어찌 다시 판결하리오.”
“생사가 닥쳐오면 어떻게 물리치겠습니까?”
대사가 손을 벌리면서 말했다.
“나의 생사를 돌려다오.”
“어떤 것이 부모가 허락하지 않아서 출가하지 못하는 것입니까?”
“얕구나.”
“학인이 잘 모르겠습니다.”
“깊구나.”
“어떤 것이 학인의 자기입니까?”
“그대는 내가 모르리라고 여기는가?”
“만 가지 사물이 모두 조용해질 때에는 어떠합니까?”
“불전佛殿을 내게로 들고 오라. 그대들을 위하여 헤아려 주리라.”
“불전이 그와 무슨 관계가 있으리까?”
대사가 할을 하고 말했다.
“이 부질없는 말만 지껄이는 놈아.”
“어떤 것이 교리 이외에 따로 전한 한 구절입니까?”
“대중에게 물어보라.”
“그렇게 할 때에는 어찌하겠습니까?”
“광명이 어디서부터 세워졌는가?”
“어떤 것이 화상의 가풍입니까?”
“문 앞에 글 읽는 사람이 있다.”
“어떤 것이 법신을 꿰뚫는 구절입니까?”
“북두北斗 속에 몸을 감춘다.”
“어떤 것이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장마가 개이지 않는구나.”
또 말했다.
“죽과 밥의 기운이구나.”
“옛사람이 종횡으로 두루 설명해도 여전히 위로 향한 한 관문을 몰랐다 하니, 어떤 것이 위로 향한 한 관문입니까?”
“서산의 동쪽 봉우리가 푸르다.”
“어떤 것이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강에다 돈을 흘렸으니, 강에서 건져야 한다.”

어느 때, 대사가 앉아서 한참 있노라니,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찌 석가세존의 당시와 같을 수야 있겠습니까?”
대사가 말했다.
“대중이 서 있는 지가 오래이니, 어서 절을 하라.”

언젠가 대사가 이런 게송을 읊었다.

운문산이 높으니 백운이 얕게 날고
물결이 급하니 고기 떼가 못 붙네.
문 안에 들어서자 온 뜻을 미리 아니
어찌 다시 번거로이 바퀴자국의 흙을 들추리.
雲門聳峻白雲低    水急遊魚不敢棲
入戶已知來見解    何煩再擧轢中泥


구주衢州 남대南臺 인仁 선사
누군가가 물었다.
“어떤 것이 남대南臺의 경계입니까?”
“귀한 줄 모르는구나.”
“끝내 어떠합니까?”
“그대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대사는 나중에 고향의 진경사鎭境寺로 옮겨서 머물다가, 그곳에서 임종하였다.

천주泉州 동선東禪 화상
처음으로 법당을 여니, 어떤 스님이 물었다.
“국왕이 청하여 법왕이 세상에 나셨으니, 어떻게 종승을 제창하여야 조사의 가풍에 어긋나지 않겠습니까?”
대사가 대답했다.
“어쩌면 되겠는가?”
“물에 들어가지 않으면 고기가 있는 줄 어찌 알겠습니까?”
“부질없는 말을 말라.”
“어떤 것이 불법의 가장 친절한 곳입니까?”
“지나쳤다.”
“학인이 마지막으로 왔으나 스님의 맨 먼저 구절을 청합니다.”
“어디서 왔는가?”
“어떤 것이 학인의 자기 본분의 일입니까?”
“괴롭다.”
“어떤 것이 불법의 대의입니까?”
“딱하기도 하지, 타향살이만을 생각하는구나.”
여항餘杭 대전산大錢山 종습從襲 선사
그는 설봉의 상족(上足:큰 제자)으로서 스승의 인가를 받아 종지를 환히 깨닫고는 항상 말하기를 ‘관남關南의 북을 치면서 설봉의 노래를 부르리라’ 하였는데 나중에 절강성 지방에 가서 전왕錢王을 뵈니, 왕이 대사의 덕화에 감복되어 이 산에 살면서 법을 펴라 하였다.
스님이 물었다.
“왕의 청에 의하지도 말고, 대중이 모인 일에도 인하지 말고, 서쪽에서 오신 분명한 뜻을 바로 말씀해 주십시오.”
대사가 대답했다.
“저 화상이 저리로 지나쳐 간다.”
“학인이 잘 모르겠으니, 스님께서 지시해 주십시오.”
“어쩌면 그렇게도 좋고 나쁨을 모르는가?”
“문을 닫고는 바퀴를 깎고, 문을 열고는 수레를 만듭니다.”
“수레 만드는 것은 묻지 않거니와 그대는 무엇을 바퀴라 하는가?”
“학인이 잘 모르겠으니 스님께서 지시해 주십시오.”
“뛰어난 장인匠人이 공사를 하는 데는 도끼를 드러내지 않는다.”

복주福州 영태永泰 화상
어떤 스님이 물었다.
“듣건대 화상께서는 호랑이를 보셨다는데 사실입니까?”
대사가 호랑이 소리를 지르니, 스님이 때리는 시늉을 하였다. 
이에 대사가 말했다.
“이 죽은 놈아.”
“어떤 것이 천진불天眞佛입니까?”
대사가 손뼉을 치면서 말했다.
“모른다, 모른다.”

지주池州 화룡산和龍山 수창원壽昌院 수눌守訥 선사
호는 묘공妙空 선사이다. 그는 복주福州 민현閩縣 사람이니, 성은 임林씨이다. 고전古田 수봉壽峰 화상에 의하여 업을 닦았다.
어떤 이가 물었다.
“용문龍門에 이르기 전에는 어떻게 발을 붙이겠습니까?”
대사가 말했다.
“목숨을 보전하기 어렵다.”

새로 온 스님이 들어와서 뵈니, 대사가 물었다.
“어디서 떠났는가?”
“마음을 여의지 않았습니다.”
“쉽지 않게 왔구나.”
그 스님도 그렇게 말했다.
“쉽지 않게 왔습니다.”
대사가 한 대 갈겼다.
“어떤 것이 전하신 마음입니까?”
“두세 번 부탁했으니, 남에게 말하지는 말라.”
“어떤 것이 위로부터 전하는 종승의 법입니까?”
“그대의 입에다 무엇을 넣을까?”
“빠르고 요긴한 곳으로 스님께서 한 번 지도해 주십시오.”
“무엇이 빠르고 요긴한가?”
건주建州 몽필夢筆 화상
누군가가 물었다.
“어떤 것이 부처입니까?”
대사가 대답했다.
“그대를 속이지 않는다.”
“그것뿐이 아니겠습니다.”
“그대가 남을 속이는구나.”

민왕閩王이 대사를 청해 재齊를 올리고 물었다.
“화상께서는 붓을 얻어 가지고 오셨습니까?”
“계산稽山의 수관繡管이 아니요, 달 속의 옥토끼 털이 아닌 것이 부끄러우나 대왕께서 물으시니, 산승山僧이 어찌 대답을 않겠습니까?”
민왕이 또 물었다.
“어떤 것이 법왕法王입니까?”
“몽필夢筆의 가풍은 아닙니다.”

복주福州 고전古田 극락極樂 원엄元儼 선사
누군가가 물었다.
“어떤 것이 극락極樂의 가풍입니까?”
대사가 대답했다.
“눈앞에 가득한 것이 끝이 없다.”
“만법은 본래 근본이 없거늘 학인들로 하여금 무엇을 알아들으라 하십니까?”
“잠꼬대를 말라.”
어떤 이가 물었다.
“오래 어두운 방에 있어도 그 근원을 통달치 못하여 오늘 올라왔으니, 스님께서 한 차례 지도해 주십시오.”
“눈을 감아서 밤[夜]을 만들지 않는 것이 좋겠다.”
“그렇다면 우담발화優曇鉢華가 된 것은 오로지 요새 사람을 위한 것이겠으나 위로 향한 종풍을 어떻게 드리워 보이십니까?”
“그대가 알겠는가?”
“그러면 의심을 쉬겠습니다.”
“대중을 향해 잠꼬대를 말라.”
“마등摩騰이 한漢에 들어온 일은 묻지 않겠거니와 달마가 양梁에 왔을 때에는 어떠합니까?”
“지금 무엇이 틀렸는가?”
“그렇다면 이치는 3승을 벗어났고, 꽃이 되어 다섯 잎이 되었습니다.”
“무슨 3승과 다섯 잎을 말하는가. 나가라.”

복주福州 부용산芙蓉山 여체如體 선사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옛사람의 곡조입니까?”
대사가 한참 있다가 말했다.
“들었는가?”
“듣지 못했습니다.”
대사가 게송 하나를 보였다.

옛 곡조가 웅장한 소리를 내더니
지금까지도 메아리 여전하구나.
제1의 자리를 가리키라 한다면
조사도 부처도 모두가 어리둥절하네.
古曲發聲雄    今時韻亦同
若敎第一指    祖佛盡迷蹤

낙경洛京 게학산憩鶴山 화상
백곡柏谷 장로가 찾아오니, 대사가 말했다.
“퍽 늙으셨군요.”
“나의 늙지 않음을 돌려주오.”
대사가 한 주먹 갈겼다.
“준마駿馬가 서진西秦으로 들어가지 않을 때에는 어떠합니까?”
“어디로 가는가?”

담주潭州 위산潙山 서棲 선사
어떤 이가 물었다.
“바로 이러한 때에는 어떻게 가까이합니까?”
“그대는 어떻게 가까이하려는가?”
“어찌 방편문方便門이 없겠습니까?”
“개원開元과 용흥龍興이요, 대장大藏과 소장小藏이니라.”
“어떤 것이 빠른 신통입니까?”
“새 옷이 헌 누더기가 되었다.”
“어떤 것이 황심교黃尋橋입니까?”
“많은 사람을 속이는구나.”
“어지러움을 빌리지 말고, 어떤 것이 화상의 가풍입니까?”
“승냥이[野干]의 소리를 내지 말라.”

길주吉州 조산潮山 연종延宗 선사
자복資福 화상이 와서 뵈니, 대사가 선상에서 내려와 맞았다. 이에 자복이 물었다.
“화상이 여기에 계신 지 몇 해나 됩니까?” 
“둔한 새가 갈대에 앉았고, 곤한 고기가 잠박[箔] 위에 멈췄소.”
“그러면 참 도인이시군요.”
“앉아서 차나 마시십시오.”
“어떤 것이 조산潮山입니까?”
“송장은 묶지 않습니다.”
“어떤 것이 산 안의 사람입니까?”
“돌 위에다 홍련紅蓮을 심습니다.”
“어떤 것이 화상의 가풍입니까?”
“조정의 의식을 절대로 범하지 마시오.”

익주益州 보통산普通山 보명普明 대사
어떤 이가 물었다.
“어떤 것이 불성입니까?”
대사가 말했다.
“그대는 불성이 없다.”
“꼬물거리는 생령들도 모두가 불성이 있다는데, 학인은 어째서 없습니까?”
“그대가 밖을 향해 구하기 때문이다.”
“어떤 것이 현현玄玄한 구슬입니까?”
“그것은 옳지 않다.”
“어떤 것이 현현한 구슬입니까?”
“잃어버렸다.”

수주隋州 쌍천산雙泉山 양가암梁家庵 영永 선사
어떤 이가 물었다.
“달마가 9년 동안 벽을 향해 앉은 뜻이 무엇입니까?”
대사가 대답했다.
“졸음이 오지 않았다.”

호국護國 장로가 와서 뵈니, 대사가 물었다.
“드러난 장소에서 남자와 여자들이 뒤섞여 제각기 한 가지씩을 묻는데, 묻는 내용이 각각 다르면 장로는 어떻게 대답하시겠습니까?”
호국이 손으로 허공에다 원상圓相을 그리니, 대사가 말했다.
“스님의 자비하심에 감사합니다.”
“그렇다고 하기에 외람됩니다.”
대사가 고개를 숙이고 다시 돌아보지도 않았다.

누군가가 물었다.
“어찌하여야 모든 반연을 몽땅 쉬겠습니까?”
“눈 위에다 다시 서리를 보태는구나.”

장주漳州 보복원保福院 초오超悟 선사[제2세 주지]
어떤 이가 물었다.
“고기가 아직 용문龍門을 지나지 못할 때에는 어떠합니까?”
“깊은 못에서 성품을 기른다.”
“벗어난 뒤에는 어떠합니까?”
“잠깐 사이에 푸른 하늘에 오르니, 뭇 종류가 따르기 어렵다.”
“오른 뒤에는 어떠합니까?”
“인자한 구름을 두루 덮어 대천세계를 적신다.”
“이슬을 맞지 않는 이도 있습니까?”
“있다.”
“어떤 것이 이슬을 맞지 않는 이입니까?”
“곧게 선 말뚝이 해를 버티고 섰다.”

태원太原 부孚 상좌
두루 제방을 다니니, 이름이 온 세상에 퍼졌다. 일찍이 절강성 지방에 갔다가 경산徑山의 법회에 올라가니, 어느 날 큰 법당 앞에서 어떤 스님이 물었다.
“상좌上座께서는 오대산에 가 보셨습니까?”
“갔었다.”
“문수보살을 보셨습니까?”
“보았다.”
“어디서 보셨습니까?”
“경산의 큰 법당 앞에서 보았다.”
그 스님이 나중에 민천閩川에 가서 설봉에게 이야기하니, 설봉이 말했다.
“왜 영嶺 안으로 들어오게 하지 않았는가?”
대사가 이 말을 듣고 곧 보따리를 싸 가지고 달려갔다. 처음으로 설봉에 올라가서 해원廨院에서 쉬다가 감자甘子를 나누어서 곁에 있는 스님에게 주니, 장경長慶 능稜 화상이 물었다.
“어디서 가지고 왔는가?”
대사가 대답했다.
“영 밖에서 가지가 왔습니다.”
“먼 길에 오기 쉽지 않은데 이것을 지고 왔구나.”
대사가 “감자여, 감자여” 하고 외치면서 법당으로 올라가 설봉을 뵙고, 절을 한 뒤에 자리 옆에 섰으니, 설봉이 잠시 돌아보았다. 이에 대사는 그대로 내려가서 일 보는 이를 만나 보았다.
다른 날, 설봉이 대사를 보자 해를 가리키니, 대사가 손을 흔들었다. 이에 설봉이 말했다.
“그대는 나를 긍정하지 않는가?”
대사가 말했다.
“화상이 머리를 흔들어 제가 꼬리를 저었는데 어디가 화상을 긍정하지 않는 곳입니까?”
“간 곳마다 꼭 숨겨야 할 일이다.”
어느 날 대중이 만참晩參을 하는데 설봉이 중간 뜰에 누웠으니, 대사가 말했다.
“5주州의 관할 안에 저런 화상과 비슷한 사람만 있더라.”
설봉이 벌떡 일어나서 가 버렸다.
설봉이 일찍이 대사에게 물었다.
“임제가 3구句를 말한 일이 있다 하니, 사실인가?”
대사가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어떤 것이 제1구인가?”
대사가 눈길을 들어 보니, 설봉이 말했다.
“그것은 여전히 제2구이다. 어떤 것이 제1구인가?”
대사가 손을 모으고 물러가니, 설봉이 퍽 갸륵히 여기어 입실을 허락하고, 스승과 제자의 의를 이루었다. 그리하여 대사는 다시 다른 곳으로 가지 않고 욕실浴室을 맡았다.

어느 날 현사玄沙가 올라와서 문안을 하니, 설봉이 물었다.
“여기에 늙은 쥐 한 마리가 있는데 지금은 욕실에 있다.”
현사가 말했다.
“화상을 위해 감정해 보기까지 기다리십시오.”
말을 마치자 바로 욕실로 가서 대사가 물을 긷는 것을 보고 말했다.
“상좌여, 좀 만납시다.”
“진작 보았습니다.”
“어느 겁에 보신 일이 있소?”
“낮잠을 자서 무엇 하리오.”
현사가 다시 방장으로 들어가서 설봉에게 감정을 마쳤다고 아뢰니, 설봉이 말했다.
“어떻게 감정했는가?”
현사가 앞이 일을 이야기하니, 설봉이 말했다.
“그대는 도적을 맞았구나.”

고산鼓山 안晏 화상이 대사에게 물었다.
“부모가 나기 전에 콧구멍이 어디에 있습니까?”
대사가 말했다.
“노형께서 먼저 말씀해 보시오.”
“아직껏 살았는데 그대는 어디에 있다고 여기십니까?”
대사가 긍정하지 않으니, 안晏 화상이 물었다.
“왜 그러십니까?”
“손에 든 부채를 가져오시오.”
안 화상이 부채를 갖다 주니, 대사가 잠자코 놔두었다. 이에 안 화상이 어쩔 줄 모르니, 한 주먹 때렸다.

대사가 창고 앞에 섰으니,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눈에 띄는 그대로의 보리입니까?”
대사가 개를 걷어차서, 소리를 지르며 달아나게 하니, 스님이 대답이 없었다. 이에 대사가 말했다.
“개가 한 번 차이는 것도 견디지 못하는구나.”
대사가 세상에 나서지 않으니, 제방에서 태원太原 부孚 상좌라 불렀다. 유양維揚에서 생을 마쳤다.

남악南嶽 반주도량般舟道場 보문寶聞 대사
법명은 유경惟勁이다. 그는 복주福州 사람이다. 본래부터 고행苦行을 닦아 비단 옷을 입지 않고, 오직 누더기 한 벌로 추위와 더위를 보내니, 사람들이 두타頭陀라 불렀다.
처음에 설봉을 뵈어 깊은 경지에까지 들어갔고, 다시 현사玄沙의 법석에 가서 법을 물어 심인心印을 깨달았다.
어느 날 감鑒 상좌에게 말했다.
“듣건대 그대가 󰡔능엄경楞嚴經󰡕의 주註를 냈다더구나.”
감 상좌가 대답했다. 
“외람되오나, 그러합니다.”
“두 문수라는 대목을 어떻게 주석하였는가?”
“스님께서 감정해 주십시오.”
대사가 소매를 흔들고 떠났다.

당의 광화光化 때에 남악에 들어가서 보자報慈의 동장東藏[삼생장三生藏이라고도 한다.]에 사니, 동장에는 거울 등[鏡燈] 하나가 있는데 그것은 화엄 제3조 현수賢首 대사가 지은 것이었다. 대사가 이를 보자 광대한 법계의 중중한 제망문帝網門과 부처와 부처끼리 광명이 얽히는 형상을 몽땅 깨달았다. 그리고는 찬탄하였다.
“이는 선철先哲들의 특이한 공功이니, 부사의한 방편의 지혜를 갖춘 이가 아니면 어찌 창설하리오.”
그리고는 오자송五字頌 다섯 문장을 저술하니, 보는 이는 이른바 현실이 서로 융통하는 이치를 깨달았다. 그 뒤에 계속 남악에 있다가 임종했다.
대사는 양梁의 개평開平 때에 󰡔속보림전續寶林傳󰡕 4권을 저술하였으니, 이 책은 정원貞元 이후의 선문에서 법을 전한 계보를 기록한 것이다. 또 칠언각지송七言覺地頌을 지어 여러 교리의 연기緣起를 저술하였고, 따로 󰡔남악고승전南嶽高僧傳󰡕을 지었는데, 이 모두가 세상에 널리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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